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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조합사 1-1권

2017.10.31 조회 5,427 추천 51


 # 01.
 
 눈을 떴을 때, 나는 달빛처럼 푸르스름한 빛이 내려앉은 숲에 누워있었다.
 장면만 바뀌었을 뿐 또 그 꿈이다.
 아니, 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생생하다.
 모든 감각이 살아있으니까.
 눈만 슴벅거리며 새까만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손 하나 까닥할 수 없지만 생생한 꿈. 끝은 늘 각혈하듯 컥컥대며 깨어난다. 이불을 젖히면 항상 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다. 그 이후론 찜찜하고 답답한 하루가 시작된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자각몽이라더라. 심하면 정신과로 가보라는 내용을 봤다.
 그래서 항우울제를 병행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처음은 괜찮았다. 그제야 살맛이 났다. 두세 달에 한 번 정도로 줄었으니까. 나중 가서 또 심해지긴 했지만, 항우울제 덕분인지 견딜 만했다.
 나만 이 꿈을 꾸는 걸까 싶어 인터넷에 털어본 적도 있다. 그러나 공감해준 사람은 없었다.
 내 이야기를 읽은 사람이 개꿈이라고 했다. 덧붙이는 말로 야동 그만 보고 일찍 자라고. 야시시한 걸 보고 자면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더라.
 빌어먹을.
 차라리 야한 꿈이라도 꿨으면 좋겠다.
 상상해본 적 있는가?
 몸의 주인은 분명히 나인데, 입술이 저절로 열리고 팔다리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나는 그랬다. 하얀 입만 보이는 새까만 사람에게 서두르라고, 도망치라고 외쳤다. 막상 실제로 마주하면 내가 도망치기 바빴을 텐데.
 물론 내가 했던 말을 완전히 알아들을 수 없다.
 서두르란 것도 간신히 입 모양으로 알아낸 것이다. 깨어나면 바로 입술을 우물거려 맞춰보면서 말이다.
 아닐지도 모른다.
 그냥 단순히 꺼어지라고, 꺼어지라고 외쳤을지도.
 꿈에서 내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다니.
 문득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젠장, 젠장.
 내가 왜 이런 꿈을 꿔야 하는 건데?
 어떻게든 용을 써서 몸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꿈쩍도 안 한다.
 어? 아주 잠깐, 잠깐 몸이 움찔거리네.
 움찔, 움찔.
 설마.
 ······이걸?
 왼편으로 얼굴이 확 돌아간다.
 어두운 숲에서 작달막한 체구가 불쑥 튀어나왔다. 전신이 초록빛 피부로 번들거리는 몬스터. 붉은 동공, 길고 뭉툭한 귀, 길게 찢어진 입 사이에는 누런 이빨들이 아귀처럼 삐죽하다. 배는 임산부마냥 불뚝 튀어나온 놈은, 무언가에 쫓기는지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덩달아 나도 가슴이 크게 두근거렸다.
 나를 지나친 몬스터가 빠르게 반대편으로 사라진다.
 놈의 뒤꽁무니를 좇던 시선이 다시 허공을 향한다.
 뭐야. 내가 안 보이는 건가.
 ―······!
 얼마 지나지 않아 찢어질 듯한 괴성이 들렸다.
 ―뚜둑, 뚜둑!
 뼈마디, 마디가 심하게 분질러지는 소리다. 얼핏 빠득빠득 씹는 소리도 나는 것 같다. 그 몬스터가 잡아먹힌 거야? 누구에게?
 동공이 확장되고, 악악 소리를 지르며 황급히 도망가야 하는 게 정상인데.
 오히려 가슴이 진정되어간다. 마침내 가냘프게 흘러나오던 몬스터의 신음이 끊어질 즈음, 몬스터가 사라졌던 곳에서 무언가가 나타났다.
 잠깐 진정되었던 가슴이 크게 일렁였다.
 단번에 알 수 있다. 나에게 걸어오고 있다는 걸.
 소름이 쫘악 돋았다.
 움직여, 움직이라고.
 그러나 두 눈은 천천히 감겨지고 있다.
 감기는 눈 사이로 보인 시뻘건 맹수의 눈이 가까워진다.
 마침내 눈이 완전히 감기는 순간.
 ―할짝
 “···허억!”
 허리를 세워 숨을 헐떡인다. 차가운 공기가 펌프질하듯 입속을 들락날락거렸다.
 온몸이 비 오듯 흐르는 땀으로 축축했다.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 주먹을 쥐어보았다. 내 진짜 손이다. 그제야 몸이 내 의지를 따라 움직였다.
 아, 죽겠다. 진짜.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깊은 한숨을 쉰다.
 ―멍멍!
 느릿하게 뜬 눈 아래에 앙증맞은 발을 모은 뭉치가 보인다. 말티즈를 닮은 녀석은 뭐가 좋은지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고 있다. 눈동자가 묘하게 붉은 건 내 착각이겠지.
 “잘 잤어?”
 뭉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모습이 귀여워 살풋 미소를 짓게 된다. 녀석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린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노오란 빛 한줄기가 드리워진 건너편 베란다가 훤히 보인다.
 벌써 아침이구나.
 그리 많이 잔 것 같지 않은데. 더 잘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일어나자.
 내 손가락과 싸움하는 뭉치를 끌어안고 화장실로 갔다.
 씻고 산책이나 해야겠다.
 현대 사회는 예전과 많이, 아니 모든 게 달라졌다.
 지구 밖, 안전거리에 있던 운석인 ‘아마겟돈’이 돌연 궤도를 이탈하여 지구를 향해 곧장 쏘아져왔다. 이에 다급해진 인류의 지도자들이 급히 힘을 모아 ‘아마겟돈’을 지구 밖에서 터뜨렸으나, ‘아마겟돈’은 수십, 수백의 파편이 되어 지구의 말라비틀어진 살 틈 곳곳으로 박혀 들어갔다.
 피해는 막심하진 않았다. 복구하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회복이 가능했다.
 인류는 거기에서 안심했으나,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아마겟돈’ 의 파편들이 떨어진 자리 위, 갑작스레 나타난 수상한 암흑의 공간. 그리고 동시에 일부 민간인들에게 나타난 집단 코마 현상.
 인류는 피해 복구와 함께 암흑 공간에 대한 연구, 집단 코마에 빠진 이들에 대하여 조사를 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암흑 공간에 대한 연구를 위해 보낸 군대와 연구원들은 잠깐 뭔가를 보여줬을 뿐, 모조리 삽시간에 연락이 두절되었고. 집단 코마에 빠진 이들은 한 달이 지나도 깨어날 생각을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집단 코마에서 깨어난 한 사람을 시작으로 깨어나기 시작한 이들.
 그들은 일반적인 힘과 재능을 가진 민간인과는 다른,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치, 게임 속의 능력을 그대로 재현해낸 듯한 힘과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이들은 능력자라 불렸다.
 또한 능력자들의 도움으로 그동안 진척이 없었던 암흑 공간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기 시작했다.
 암흑 공간의 발현과 능력자의 탄생.
 세간에는 이것을 망가져가는 지구를 되살리기 위한, 신의 마지막 노력이라고. 또 능력자들이 암흑 공간 너머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했다.
 물론 그건 헛소리에 불과했다.
 다른 세계에선 그 무엇도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으니까. 남자가 들어가면 처참하게 짓밟혀 죽었다. 여자가 들어가면 소리 없이 납치되어 끌려갔다.
 많은 희생을 치르고서야 그들과는 적대적이라는 걸 알았다. 인류는 서둘러 암흑 공간을 향한 호의적인 시선을 버렸다.
 그리고 급히 능력자들을 관리하는 협회를 세웠다. 나라를 지켜야 하니까. 각국의 협회 안에서 다시 또 수많은 길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길드의 역할은 나라를 지켜주면서, 동시에 암흑 공간을 탐사해오는 일이었지만···.
 나라의 위협은커녕 별다른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암흑 공간을 탐사하는 일엔 많은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망한 길드도 많았다.
 그리고 최근 들어 몇몇 길드가 많이, 아주 많이 변질되어버리고 말았다.
 한국에도 마찬가지로. 그나마 한국은 좁은 땅덩어리답게 적었다. 거기에 서서히 몬스터들도 암흑 공간 밖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모두가 그에 대해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위잉, 위잉!
 [긴급 상황입니다! 서울 중구에 계신 분들은 대피소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네임드로 추정되는 몬스터가 중구 시내를 향하고 있습니다! 몬스터의 처치를 위해 A급 능력자 길드인 헤르메스 길드가 움직이고 있는 중입니다!······]
 사방이 삽시간에 비명소리와 고성 소리에 휩싸인다.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스쳐간다. 다들 정신이 없다. 서로 뒤엉키거나, 밀치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에 바빴다.
 나도 어느새 그들의 틈에 섞여 황급히 달음박질하고 있었다.
 “왕왕, 왕!”
 “쉿, 쉬이잇.”
 미친 듯이 짖어대는 뭉치와 함께.
 ―빠아앙, 쾅!
 도로에선 차량 연쇄 추돌로 인해 운전자들끼리 고성방가가 오갔고, 도망치려는 시민들까지 섞여 아수라장이 됐다.
 곳곳에서 시커먼 연기가 짙게 피어오른다. 신호등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눈앞엔 서로 엉겨 붙으며 길을 빼곡히 차지한 차들이 보였다.
 “이런.”
 눈살을 확 찌푸린다.
 어쩔 수 없이 차디찬 차 보닛들을 짚으며 껑충껑충 넘어간다.
 “이, 이보쇼!”
 별안간 내 발을 붙잡는 급박한 음성.
 막 넘어갔던 소형 SUV 차량 밖으로, 강팍한 중년의 남성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급한 건지, 화난 건지 아리송한 얼굴이다. 일단 잔뜩 구겨진 인상이라 무섭다.
 다들 다 빠져나간 거 아니었어?
 슬며시 다른 차량의 보닛을 짚은 손을 내린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쇼!”
 빼꼼히 내밀어졌던 남자의 고개가 다시 들어간다.
 짙게 썬팅된 유리창 너머로 겁에 질린 그의 가족들이 보인다. 아내인 듯 보이는 여성은, 왕방울만 하게 치뜬 눈으로 남자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뒷좌석엔 두 눈이 얼굴을 덮을 듯한 여자아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른 내리자!”
 뒤를 돌아본 남자가 급히 문을 열고 내린다.
 작은 꽃무늬 엠블럼이 달린 흰색 민소매 티에, 검은 바지를 입은 강퍅한 인상의 중년인. 그의 뒤를 따라 문들이 발칵발칵 열린다. 중년인의 아내로 보이는 하얀 블라우스에 회색 치마의 여성 한 명.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자 아이가 일행이다.
 “처, 청년 미··· 미안한데. 호, 혹시 대피소가 어디유?”
 사투리가 섞인 독특한 억양이다. 서울은 처음인가보다. 대피소도 모르고.
 “저도 가려고 했어요. 뭉치 좀 데리고 있어줄래?”
 “네, 네에···.”
 어색하게 두 팔을 뻗은 여자아이의 품에 뭉치가 얌전히 안긴다. 평소엔 다른 사람을 그렇게 싫어하더니. 여자아이는 그렇게 좋은 모양이다.
 대피소는 지금 우리가 있는 곳과 가까웠다.
 그래도 서둘러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천천히 차 보닛들을 넘어가며 한곳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을 따라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이 붐비는 시내가 보였다.
 “어서 대피소로 가세요!”
 “질서를 지키세요! 일행이 있으면 꼭 확인하고!”
 제복을 입은 경찰들이 확성기로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천천히 들어가라는 경찰의 지시에 따라, 서로 떨어지지 않게 거리를 유지하며 대피소 안으로 들어갔다.
 대피소 안은 짙은 페인트 냄새가 났다. 한창 공사가 끝나서 그런가.
 여러 사람들의 냄새가 뒤섞인 듯 묘한 내음도 난다. 남성, 여성 향수. 살냄새. 지린내······.
 “젠장! 전화를 안 받아! 제발 전화 좀 받아!”
 “어, 엄마······.”
 “희진이 어딨어? 희진아!”
 그리고 절박한 얼굴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남자. 터덜터덜 걸어 다니며 울고 있는 여자 아이. 숨넘어갈 듯한 얼굴로 아이를 찾고 있는 여성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여, 여기면 안전한가?”
 불안하던 중년 남자는 다소나마 안심한 기색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더 안쪽을 향해 꾸물꾸물 몰려 들어가고 있다.
 “아뇨.”
 나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 더 가야해요.”
 대피소는 두 개의 구조로 구성되어 있었다.
 내가 있는 대피소는 공급받을 수 있는 식량이나 음식들이 많았지만, 그만큼 안전하지가 않았다.
 가려고 하는 장소는 두 번째 대피소였다.
 그곳은 강화된 철문이 이중 삼중으로 되어 있기에 거의 안전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마찬가지로 두 번째 대피소로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우리는 인파 속에서 되도록 떨어지지 않게 붙어 다녔다.
 ―쿵!
 “꺅!”
 “꺄아아악!”
 “뭐, 뭐야?”
 대피소 천장에서 바닥까지 전해지는 충격. 잠깐 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팟, 팟!
 천장의 형광등이 빠르게 점멸을 반복한다.
 사람들이 다시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뛰어요, 뛰어!”
 이미 물밀 듯 밀려오는 인파에 일행이 뿔뿔이 흩어진지 오래였다.
 목청을 돋워 뛰라고, 뛰라고 외치긴 했지만. 비명과 울음 섞인 소리에 묻혀 들리지도 않으리라.
 나는 입술을 짓씹은 채 앞으로 내달렸다.
 몇 번 불안정하게 깜빡이던 천장의
 통로를 지나서 철문만 통과하면 두 번째 대피소였다. 거기까지 가면 안전하다. 비명소리만 가득한 통로에서 나는 한 번 더 외쳤다.
 "휴대폰 손전등이 있으면 손전등을 켜요!"
 위에서 들려오던 소리도 어느 순간 멎었다.
 내 목소리를 알아들은 사람들 몇몇이 손전등을 킨 채로 앞서서 달려 나갔다.
 다행히 통로 끝 부근에 이를 즈음에는 비상 전력이 공급되었는지 천장이 다시 환해졌다.
 서로를 둘러보는 사람들 중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압사당한 건지 누운 채 미동이 없는 사람들도.
 ―쿠웅!
 돌연 통로 끝 천장이 가뭄에 든 논바닥 마냥 갈라졌다.
 잇달아 연쇄적으로 돌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토록 단단해보이던 천장이 힘없이 허물어져 내렸다.
 미처 피하지 못한 몇 명이 돌 틈에 깔려 목숨을 잃었다.
 ―파츳!
 불안정하게 빛나는 천장의 아래, 거대한 그림자가 춤을 추듯 일렁이고 있다.
 그 그림자 밑에 깔려있는 누군가가 피를 토해내며 발버둥 쳤다.
 “커허헉! 쿨럭, 쿨럭! 씨발, 씨바아알······.”
 “헤, 헤르메스 길드 이종찬 아냐?”
 A급 능력자 길드인 헤르메스의 일원이었다.
 어째서 그들 중 한 명이 먼저 와있는 거냐고 채 반문하기도 전에, 불안정했던 천장의 불빛이 돌아오자마자 이종찬의 목이 사라졌다.
 사라졌던 그의 목은 천천히 피를 흩뿌리며 바닥을 굴렀다.
 그 위로 거대한 덩치에 붉은 갈기털에, 늑대 얼굴을 한 네임드 몬스터 크루얼이 핏기 가득한 입을 벌리며 울었다.
 ―아우우우우우―!
 나는 압도적인 녀석의 모습을 보고 심장이 멈추는 것만 같았다.
 통로에는 민간인들뿐이고, 몬스터는 녀석뿐이다. 그나마 녀석과 싸울 수 있는 능력자는 이미 죽어버렸다.
 녀석의 근처에 있는 사람들 중 몇 명은 공포에 질린 채 주저앉아 비명을 질렀다.
 돌연 그들 사이에서 근육질의 사내가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이 나쁜 새끼가!”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휘둘러진 크루얼의 손에 의해 사내는 안으려던 자세 그대로 몸이 반 토막 난 채 허물어졌다.
 반 토막 난 몸으로 뜨끈한 장기들이 줄기줄기 바닥에 쏟아져 내렸다.
 뜨거운 피분수를 받던 여성이 얼굴을 어루만지더니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악!”
 통로 안은 순식간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다.
 녀석은 붉은 두 눈알을 희번득거리며 굴렸다.
 가장 처음 타깃이 된 건 엉금엉금 기어가는 정장 복장의 여성이었다.
 아마 어디 은행에서 일하던 은행원인 것 같았다.
 “피, 피해요.”
 기어가던 여성은 경고의 목소리에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깨진 안경에 있던 두 눈동자가 부릅떠지는 순간, 녀석의 거대한 발이 그녀의 머리통을 향하고 있었다.
 “끅······.”
 순식간에 터져 흐른 뇌수가 사방을 향해 흩뿌려졌다.
 그 엄청난 힘과 잔인한 행동을 본 사람들은 왔던 길로 미친 듯이 도망쳤다.
 모두가 하나같이 절망에 물들어 있었다.
 나도 그들 틈에 섞여 도망치다가 통로 한구석에 어린 여자아이가 주저앉은 채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아이의 품에서 얼굴을 핥아주고 있는 건 뭉치였다.
 “얘야!”
 내가 부르는 목소리에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붉어진 얼굴에 글썽이는 눈동자 아래로 눈물들이 콧잔등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물이 입가에 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아이가 주름 잡힌 입술을 열었다.
 “아저씨······.”
 나는 아이를 황급히 안아들었다.
 뭉치가 반갑다며 나에게 꼬리를 흔들면서 격하게 인사를 해주었지만, 인사를 받아줄 시간이 없었다.
 사람 여럿을 죽인 녀석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르르르륵―!
 사납게 울부짖던 녀석의 붉은 눈동자가 나와 마주쳤다.
 온몸이 굳어가는 것 같다.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일 수 없는 이 느낌.
 꼭 지난 꿈속에서처럼.
 나는 딱딱히 얼어붙은 채 아이를 꽉 껴안았다.
 “―――!”
 별안간 도망치는 사람들 틈으로 푸르스름한 빛이 사방을 밝혔다.
 쏜살같이 쏘아진 그 빛은, 대피소 안을 환하게 물들이며 놈을 덮쳤다.
 ―콰앙!
 방심한 틈을 탄 공격에 몸을 맞은 녀석의 살갗이 검게 타올랐다.
 급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한 것도 잠시.
 위협적인 포효와 함께 바닥을 네 발로 짚은 채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그것이었다.
 도망치지 못하고 깔려버린 사람들은 그에 짓눌려 몸이 터져버렸다.
 “하아··· 하아···!”
 급하게 달려온 듯 숨을 헐떡이는 여성을 보는 순간 나의 눈동자가 급격히 커졌다.
 다시금 손에 푸른 구체를 만들어 낸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디 창백했다.
 어떻게 그녀가 여기에 있는 걸까. 나는 자리에 주저앉은 채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언가 주문을 영창하는 듯 그녀의 입술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연이어 초록빛과 검붉은 빛이 그녀의 손에서 뻗어 나왔다.
 “······!”
 눈에 띄게 크루얼의 걸음걸이가 느려졌다.
 “―――!”
 그리고 시력을 잃은 듯 허우적거리며 땅바닥에 처박혔다.
 벅찬 숨과 함께, 다시 한 번 그녀의 입이 열렸다.
 “―――!”
 연이어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뇌전이 터져 나왔고,
 “――!”
 불타오르는 둥근 구체가 크루얼의 몸을 불태웠다.
 통로가 삽시간에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럼에도 서서히 움직이는 크루얼.
 그녀가 다시 마법 주문을 영창했으나, 마법을 과도하게 사용해버린 탓에 지친 듯 손을 펴지 못했다.
 “젠장, 젠장!"
 성큼성큼 불을 걷어내며 걸어오는 녀석을 보고 질린 듯 그녀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녀석이 그녀를 향해 달음박질한 순간.
 “꺄악!”
 “늦어서 미안!”
 검은색 슈트를 입은 한 명의 장한이 그녀의 앞을 막아서며 거대한 돌벽을 만들었다.
 달려오던 녀석의 얼굴이 돌벽에 처박히는 바람에 벽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지만, 이내 벽은 마치 생살이 돋는 것 마냥 원상복귀 되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 듯 녀석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녀를 도우러 온 사람은 한 명이 아니었다.
 “유진아!”
 마찬가지로 검은 슈트를 입고 있는 남성이었다. 그의 오른손에는 붉은 머리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른 장창이 들려 있었다.
 ―탓!
 기합과 함께 시뻘겋게 타오르는 창이 돌벽 틈으로 꿰뚫을 듯 뻗어나갔다.
 크루얼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몸을 틀었다.
 어느새 주문을 외운 건지 유진이의 입이 벌려짐과 동시에 그녀가 뻗은 두 손에서 환한 빛이 터졌다.
 “―――! ――!”
 ―캬우우우!
 한 방을 먹이기 위한 공격이었지만 어깨 한복판에 구멍이 뚫리는 상처만 남겨주었을 뿐 심각한 치명상은 아니었다.
 게다가 그 상처도 서서히 회복되어가고 있다.
 돌벽을 거둔 남자가 한 쪽 끝이 뾰족한 거대한 방패를 내세우며 고갯짓했다.
 “유진아, 어서 민간인들을 데리고 나가! 다른 애들은 곧 올 거니까 우린 걱정 말고!”
 “네, 오빠. 조심하셔야 해요!”
 내 쪽을 향해 공간 이동 마법을 펼친 그녀의 두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의 얼굴은 당황스러움이 가득했다.
 “시, 시우야?”
 나는 착잡한 마음에 어금니를 깨물다가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어째서 네가 여기에 있냐는 듯, 그리고 이내 무척이나 걱정 어린 눈동자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마치 죄라도 지은 것처럼 그녀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죄라도 지은 기분일까. 마음이 답답했다.
 “오랜만이야. 그보다 여기서 나가야겠어···.”
 “으, 응. 내가 밖으로 이동시켜줄게!”
 그녀의 손짓에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아찔한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순식간에 나의 몸은 대피소 밖으로 이동해 있었다.
 대피소 밖은 안절부절못해 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갑작스레 나타난 나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나는 양손을 들어 능력자가 구해준 거라고 말했다.
 그에 안심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나 때문이 아닌 능력자 때문에.
 “저, 저 사람. 헤르메스 길드장 아냐?”
 “어, 정말이네. 헤르메스 길드장 김영민이잖아!”
 고개를 돌리자 익숙하디 익숙한 얼굴에, 날개가 달린 붉은 신발이 그려진 망토를 두른 남자가 대피소 아래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서 굳게 무기를 움켜쥔 채 긴장된 표정으로 걷는 길드원들.
 나의 시선에 그는 잠깐 뒤돌아 보았지만, 무시하며 대피소 아래 어둠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한동안 씁쓸한 눈길로 바라보던 나는 내 옷깃을 잡는 손길을 느꼈다.
 “아저씨, 엄마랑 아빠는요?”
 “아··· 아마도 사람들이 너무 많다보니 잠깐 어디론가 가셨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참, 네 이름이 뭐니?”
 “수연이에요.”
 “그렇구나. 수연아. 많이 무서웠을 텐데, 고생 많았어.”
 나는 기특하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떻게 수연이를 잃어버린 부모님에게 데려다줘야 하나 고민하는 찰나였다.
 “수연아!”
 “아, 엄마. 아빠!”
 남자는 치료를 받다가 돌아다닌 건지 붕대를 매고 있던 부위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옆에 서 있는 여성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산발된 머리와 찢어진 치마가 그 당시 상황을 짐작케 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얼굴은 무엇보다도 환했다.
 눈동자에 굵은 눈물방울을 맺은 채 웃는 듯 울고 있는 사람들.
 “어떻게 나온 거니? 수연아. 갑자기 사라져서 엄청 걱정했잖아!”
 내가 안 보이는 모양이다.
 하긴, 상처가 더 찢어졌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걸 보면. 그만큼 수연이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 듯하다.
 수연이의 손가락이 나를 향해 곧게 뻗는다.
 “아저씨가 도와주셨어요.”
 그제야 수연이 아버지가 나를 본다. 수연이 어머니는 눈을 글썽이며 꾸벅 고개를 숙였고.
 수연이 아버지는 황급히 다가와 내 팔을 붙들었다.
 “우리를 도와주셨던 그분! 정말, 정말 감사해유!”
 “아닙니다.”
 나는 그들의 모습에 마음 한켠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황급히 따라 나온 의료진이 그에게 달라붙었다.
 죄송하다며 사과하고 얌전히 따라가는 그의 등을 걱정스런 눈길로 응시한다.
 흘깃 얼굴을 내민 수연이는 내게 아저씨, 잘 가요라며 인사했다.
 손을 흔들어 수연이에게 맞인사를 한다.
 고개를 돌리니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는 헤르메스 길드를 응원하는 민간인들과,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엄청 오랜만에 유진이를 봤다. 급히 달려온 탓에 헬쓱한 안색이었지만.
 “왕왕!”
 “응? 아···.”
 뭉치덕분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집에 가야지.”
 내가 살고 있는 집은 평범하디 평범한 주택이다.
 정부에서 민간인 보호 차원에서 자금과 사망한 사람들의 사유지 등등을 나누어 준 덕택에 여기서 살 수 있었다.
 정부가 지정한 민간인은 아무런 능력이 없는 민간인을 뜻했다.
 “하···.”
 한숨을 내쉬며 물을 틀었다.
 차가웠던 물줄기가 금세 따뜻하게 데워지며 내 몸을 두드렸다.
 샤워를 끝낸 나는 물을 잠그고 화장실을 나섰다.
 뭉치는 소파 위에서 몸을 새우처럼 구부린 채 자고 있다.
 언제 켰었는지 티브이에서 익숙한 곳이 보였다.
 서울 중구 시내.
 그리고 헤르메스 길드장 김영민의 인터뷰 진행되고 있었다.
 네임드 몬스터, 크루얼을 잡은 모양이었다.
 “······.”
 녀석은 이전엔 나의 둘도 없는 친한 친구였지만, 무엇이 나와 그를 갈라서게 한 건지 모르겠다.
 나는 리모컨을 들어 티브이를 껐다.
 뭉치의 밥그릇에 개밥을 쏟은 후 주방에 들어가서 밥을 만들었다.
 능력자들의 활약으로 인해 5년 동안 암흑 공간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암흑 공간 너머에 있는 또 다른 존재들은 능력자들이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운 좋게 파편 조각을 얻을 수 있는데, 이 파편 조각은 천해의 재료였다.
 땅에 심으면 광범위한 토지가 비옥해져서 식물이 자라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었고, 가공하여 사용하면 전기, 기름을 대체할 수 있는 데다 몬스터를 상대할 때 필요한 무기와 방어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황폐했던 지구의 환경이 되살아나는 등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수많은 암흑 공간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수많은 암흑 공간에 들어가 대박을 노리려는 능력자들도 많았지만, 이제는 거의 없었다.
 많은 능력자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각국과 능력자협회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암흑 공간은 접근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금지가 된 곳을 금지 구역이라고 불렀다.
 ―띵!
 갑자기 휴대폰이 밝은 빛을 토해낸다.
 “응?”
 밥을 먹다 말고 나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발신자는 표시가 제한이 되어 있었다.
 스팸인가.
 그냥 삭제를 해버리려던 나는 내용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임유진이 누군가에게 겁탈을 당할 것 같다며, 친구의 연락처를 보고 보낸 거니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보나마나 사기였다.
 그녀는 한국 내 1위 A급 능력자 길드인 헤르메스 길드에서 소속이 되어있는 여성이었다.
 핸드폰을 꺼버린 나는 결국 밥을 다 먹지 못한 채 한숨을 쉬며 숟가락을 놓았다.
 계속해서 화려한 마법을 사용하던 그녀, 사람들을 밖으로 보내주던 그녀가 떠올랐다.
 지친 듯 땀방울이 맺혀있던 콧잔등도.
 망할 헤르메스 길드.
 왜 안 도와준 거야.
 끊임없는 의문과 의혹이 들었지만, 이미 나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차키를 챙기고 있었다.
 내 소리에 뭉치가 깬 모양이었다.
 “월월!”
 뭉치가 어딜 가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볼일이 있어. 곧 돌아올 테니 기다려.”
 나는 서둘러 내 차량에 올랐다. 물론, 내 소유가 아닌 정부의 소유지만.
 언제 달려 나왔는지 뭉치가 펄쩍펄쩍 뛰며 운전자석 창문을 두드렸다.
 나는 아우성대는 뭉치를 황당하게 바라보았다.
 열어달라고 뭉치가 문을 벅벅 긁어댔다.
 문을 열자마자 들어온 뭉치는 곧바로 뒷자리로 이동했다.
 “···얌전히 있어.”
 주차 공간을 벗어난 나는 힘껏 엑셀을 밟았다.
 서서히 올라가는 속도계와 앞을 주시하면서, 나는 후미등으로 뭉치가 잘 앉아있는지 확인했다.
 녀석은 반듯한 자세로 헉헉거리며 속도감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뭉치도 만난 지 5년 됐나···.”
 5년 전, 나도 일부 사람들에게만 나타난 코마상태에 빠졌었다.
 하지만 코마상태에서 벗어나는 데에 걸린 기간은 남들보다 훨씬 느렸다. 물론, 멀쩡한 것만 해도 감사했다. 능력을 얻은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충격 받아 미쳐버린 이들도 있었으니.
 깨어난 후 검사를 받을 땐 아무런 능력도 없었다.
 그때 내 옆에서 곤히 자던 강아지가 뭉치였었는데, 의료진들 말로는 내가 혼수상태에서 나올 때까지 바로 옆에서 나를 지켜주던 강아지라고 들었다.
 아무튼 그렇게 어느 정도 이동했을 즈음일까,
 금세 약속 장소에 다다를 수 있었던 나는 차에서 내렸다.
 갓길 아래 다리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 두 명의 슈트를 입고 있는 자들이었다.
 능력자들만이 입을 수 있는 최첨단 슈트.
 파편 조각에서 추출한 내용물로 만들어진 그것은 착용자의 능력을 배가시켜준다고 들었다.
 슈트를 입고 있는 자들은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듯 헬멧을 쓰고 있다.
 나는 수상해 보이는 상황에 차량에서 내리지 않고 창문만 내린 채 얼굴을 내밀었다.
 “왔나?”
 한 명이 다가오면서 내게 입을 열었다.
 어째서 능력자가 여기에 있는 거지?
 나는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이는요?”
 “유진이?”
 남자가 내게 점점 다가왔다.
 그에 반해 한 명은 마치 상황을 지켜보는 듯이 가만히 있었다.
 “걔는 여기 없어. 설마 속을 줄 몰랐네. 길드장이 그렇게 말했긴 해도 이거 뭐 엄청 순진한 놈이군. 직접 전화해서 알 수도 있었을 텐데.”
 비아냥대는 그의 말에 심장이 덜컥했다. 길드장이라니.
 “뭐, 뭘 원하는 겁니까?”
 저벅저벅 다가오는 걸음걸이가 내겐 온몸을 두드리는 북소리 같았다.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두근거렸다.
 능력자들은 보통 기본적으로 신체적인 능력이 강하다.
 남자는 아무래도 그들보다 육체적인 능력이 뛰어난 능력자인 것 같았다.
 “죽어줘.”
 황급히 뒤로 후진하려 했으나 어느새 달려와 앞 범퍼를 붙든 채, 미소를 짓고 있는 남성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엑셀을 밟아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려 했지만 벗어날 수 없다.
 마치 허공을 달리려는 것 마냥 바퀴가 허공에서 헛돌았다.
 차가 들려지고 있다.
 “제발, 좀!”
 이미 옆자리에선 뭉치가 이빨을 드러내며 짖어대고 있었고, 나는 머리가 아래로 쏠리는 듯한 아찔한 감각을 느끼면서 황급히 조명등을 켰다.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은 남자가 차를 놓고 뒤로 물러서자, 그 틈으로 재빨리 후진하면서 달아나려 했다.
 “어딜!”
 옆에서 들이닥친 공격에 강하게 옆 유리창에 얼굴을 부딪혔다.
 머리가 불에 덴 듯한 화끈한 고통과 함께 눈이 감겼다.
 마치 바로 옆에서 폭탄이 터진 것처럼 거대한 이명이 내 귀를 휩쓸었다.
 겨우 겨우 눈을 들었을 땐 핸들을 놓쳐버린 나는, 갓길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그때 감겨져가는 두 눈으로 마지막으로 본 건 거대한 무언가가 내 몸을 감싸 안는 것이었다.
 연이어 돌바닥에 부딪힌 앞 유리창이 터져나가면서 나는 의식을 잃었다.
 “할짝!”
 무언가가 내 볼을 핥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무언가에 쑤셔진 것 마냥 어지러움을 느끼며 눈을 떴다.
 희뿌연 시야가 마치 초점이 잡히듯 서서히 눈앞에 놓인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고개를 틀어 옆에 있는 거대한 개의 머리를 본 순간.
 “뭐, 뭐야!”
 놀라서 황급히 뒤로 기어가고 말았다.
 목에 두꺼운 쇠사슬이 칭칭 감겨있는 개.
 개가 천천히 내게 다가오더니 엎드렸다.
 하얀 눈에 검붉은 눈동자가 나와 눈높이를 나란히 했다.
 ‘이제 깨어났어?’
 힐난하는 듯한 목소리가 거대한 개의 목에서 흘러나왔다.
 잘못 들었던 게 아닌 듯 개의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공격하려는 의사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에 안심하며 더듬거리듯 입을 열었다.
 “뭐, 뭐야. 나, 나한테 말한 거야?”
 ‘응.’
 “어떻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구라고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맑은 푸른 하늘과, 초록빛 생명을 머금은 채 우뚝 솟은 나무들.
 그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황당해서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이게 무슨······.”
 아직도 머리가 쑤셔오는 터라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도 갓길로 추락했다.
 아니 앞 유리창까지 터지는 걸 보았으니 사망했으리라 생각했다.
 혹여 사후세계가 아닐까 싶었지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사후세계라면 볼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감각을 설명해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보았던 거대한 무언가가 나를 감싸던 것. 거기까지 생각을 더듬던 나는 천천히 그것을 바라보았다.
 ‘맞아. 그때 그게 나야.’
 “어떻게 내 생각을···.”
 ‘글쎄. 너에게 집중하면 생각을 읽을 수 있긴 해. 그래도 너무 복잡한 건 읽을 수 없어. 네가 못 읽게 한다면 못 읽고.’
 방금 전의 그 말은 내 머리 속에서 울렸다.
 비현실적인 현상이었으나 현실도 비현실적이지 않았던가.
 애써 혼란한 마음을 가다듬었다.
 나는 죽었었다.
 앞 유리창이 터졌으니 확실히 죽은 게 맞았다.
 하지만 살아 있었다. 그것도 서울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언뜻 천둥과 번개가 아우성치며 세찬 비가 내리는 밤이 뇌리를 스쳤지만 말 그대로 스쳤을 뿐, 다시 기억해내려 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무언가 생각이 날 법한데 머리가 쿡쿡 쑤셨다.
 인상을 찌푸린 채 관자놀이를 누르며 나는 녀석을 응시했다.
 ‘···조금 기억이 나려나. 아무튼 많이 기다렸어. 눈을 뜰 때까지.’
 “나를?”
 ‘응. 5년을 기다렸어. 그리고 나는 녀석이 아냐. 니가 지어준 이름이 있었는데. 뭉치라고.’
 “무, 뭉치?”
 당황한 내 목소리에 뭉치는 가냘픈 웃음을 터뜨렸다.
 머릿속을 울리는 웃음소리는 무척이나 고혹적인 여성의 목소리였다.
 ‘현실의 인간에 비유하면 여자라고 할 수 있어. 여성체니까.’
 “그······, 그렇구나.”
 아연한 눈동자를 들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뭉치는 내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그 뭉치가 맞다면 5년 동안 부끄러운 것들을 다 보이고, 홀로 달랬던 영상까지도 같이 봤을 터였다.
 마찬가지로 그 생각을 읽은 모양인지 뭉치는 흥미로운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뭐, 내가 일반적인 개의 모습이었으니 어쩔 수 없지. 인간의 짝짓기도 나름 흥미로워.’
 “하, 하하. 그러···, 그러냐.”
 민망하게 달아오른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고개를 돌렸다.
 거의 매일을 붙어 다녔던 뭉치가 사실은 이런 거대한 개의 모습인 데다가, 말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
 그런 내 생각을 읽은 건지 또렷이 나를 응시하던 뭉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에 니가 대해주던 대로 하면 돼. 아니면 뭉치 님 하면서 떠받들어 줄 거야?’
 “아냐. 그럼, 평소에 하던 대로 할게.”
 라곤 했지만 적응하기 어려울 듯하다.
 평소대로 같이 목욕하고 같이 잠을 잔다니.
 “그런데 여긴 어디야?”
 시선을 들어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꿈속에서 많이 보았던 장소. 어슴푸레한 달빛만 있다면 꿈속에 들어왔다고 해도 믿을 정도다.
 맑디맑은 하늘에선 거대한 무언가가 날아다녔다.
 아까는 잘 못 봤는데, 불그스름하고 주먹만 한 개미들이 나무들 사이로 기어 다니고 있었다.
 초록빛 나무의 잎들과 숲속의 풀은 이슬을 머금은 것처럼 반짝였다.
 ‘시험의 공간이야. 시험의 공간을 통과한 자들을 너희 인간들은 능력자들이라고 불렀지.’
 시험의 공간을 통과한 자들.
 그렇다면, 나는 통과하지 않은 건가. 그래서 능력자가 아닌 거고.
 ‘아니. 너도 능력자야. 단지 그들을 구하다가 결국엔 시간을 넘겨버리는 바람에 강제로 그곳으로 돌아간 것뿐. 그 과정에서 이곳에 있었던 기억은 잃어버린 것 같아.’
 “그들을 구하려 했다고?”
 그래서 그 꿈에 나온 건가? 내가 여럿에게 목청 돋워 외치던 꿈.
 내가 능력자들을 구하려 했다니.
 금시초문이라는 듯 반문하자, 뭉치는 슬쩍 몸을 일으키더니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내 머리 속에서 말을 꺼냈다.
 ‘꿈이 아니야. 전부 네가 겪었던 일이니까. 확실히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네. 시험의 공간을 탈출하려는 그들을 덮쳤던 문지기를 먼 곳으로 유인한 게 너야. 나와 능력이 공유된 이후로 유일하게 너는 그 녀석을 상대할 수 있었지. 대신 통과하지 못하고 이렇게 5년이나 잠들어 버렸지만.’
 뭉치에게로부터 듣는 어마어마한 사실에 나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능력자들을 덮친 문지기를 먼 곳으로 유인한 게 나였고, 내가 그녀와 능력이 공유되었기 때문에 문지기를 상대할 수 있었다는 말이었다.
 헌데 내가 어떻게 뭉치와 만날 수 있었던 거지?
 ‘그건 음, 조금 말하기 어려운데. 영리하게 날 함정에 빠뜨린 네가 먹는 걸로 꼬셨어. 바삭바삭한 그거······.’
 왼쪽 위로 시선을 올린 채 골똘히 생각하는 뭉치였다.
 마치 사람 같은 행동이었다.
 바삭바삭한 그거라니.
 “음?”
 ‘초코바. 초코바 말야. 편의점에 같이 가면 늘 사주던 거.’
 그제야 뭉치의 말을 알아들었다.
 먹는 걸로 회유 당했다는 말인가.
 그러고 보니 뭉치가 자주 초코바를 사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난다.
 내가 초코바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납득한 후엔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내 이름은 뭐 지금이 좋기는 하지만, 예전엔 켈베로스라는 이름으로 불렸긴 해.’
 “···머리가 세 개인 개?”
 ‘응. 신화로도 나오던데, 아직은 하나야. 아무튼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될 것 같아.’
 아직은 하나라는 말이 거슬렸지만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이마를 짚었다.
 능력자들이 탈출하는 것을 도와주었고, 신화속의 존재를 초코바로 회유했다.
 전혀 기억나는 게 없었기에 나는 꿈인가 했다.
 꿈이든 무엇이든 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당장 내게 직면한 사실을 믿기가 어려웠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해?”
 ‘어떻게 하긴. 이제 너 혼자 시험의 공간을 통과해야지. 이제 이곳에는 너밖에 없어. 네가 매일 자고 있을 때 내가 틈틈이 확인도 해봤어. 아, 고블린 같은 것들은 내가 진즉에 쫓아버렸으니까 괜찮아.’
 “아···.”
 ‘물론 통과대를 지키고 있는 바무스가 엄청나게 화나 있긴 해. 영리한 네 머리라면 잘할 수 있으리라 믿어. 어서 통과하자. 몸이 근질거린단 말이야.’
 재촉하는 듯한 뭉치의 말에 엉거주춤 일어섰다.
 머리를 쿡쿡 쑤시던 감각도 한결 나아졌다.
 묻고 싶은 게 무척이나 많았다.
 어째서 이런 곳에 오게 된 건지, 그리고 뭉치와 같은 존재가 있는 건지. 이곳에서 나가면 어떻게 되는 건지.
 앞서가는 뭉치를 따라가며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나와 능력이랑 생각이 공유된 터라 내가 현실에서 눈을 뜬 순간 뭉치도 그곳에서 눈을 떴다는 것과 종말의 운석에 대한 건 마계의 최고위에 해당하는 자들이 알고 있으며, 이런 곳과 비슷한 장소가 또 있다는 것.
 하지만 시험의 공간이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뭉치 본인도 잘 모른다고 했다.
 마계가 뭔지 물어보니 실수했다는 듯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는 그녀의 태도에 결국 더 물어볼 수 없었다.
 ‘저기야.’
 오래된 듯 각양각색의 초록빛 식물들과 어우러진 낡은 검은색 돌의 계단 중심에는, 하늘을 향해 푸른색의 빛줄기가 곧게 뻗어져나가는 첨탑처럼 뾰족한 것이 세워져 있었다.
 “저게······.”
 첨탑 주변을 감싸고 있는 공간이 일그러진 부분.
 검은 안개가 둥둥 떠다니는 그것.
 “암흑 공간이야.”
 “아······.”
 간혹 방송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세간에 알려진 바로는 또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문이라고 알려진 암흑 공간.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살이 에는 듯한 한기를 느꼈다.
 ‘조심해.’
 뭉치의 경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이 북처럼 쿵쿵 울렸다.
 타는 듯한 갈증에 급하게 침이라도 마셨다.
 그럼에도 쉽사리 긴장감은 가라앉지 않았다.
 천천히 그곳을 향해 다가갈수록,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나를 옭아매었다.
 마치 동아줄에 잡힌 몸이 당겨지는 것 같은 압박감.
 인상을 찌푸린 채 자그마한 신음을 흘릴 즈음에야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맑고 푸른빛이었던 하늘이 마치 잉크에 번져가는 것처럼 붉어졌다가 어둠으로 물들어갔다.
 주변을 둘러보니 울창했던 숲속은 마치 불바다처럼 끊임없이 타올랐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첨탑 앞에 선 채로 씨근거리고 있는 존재가 있다.
 칠흙빛의 갑주를 두른 시커먼 광망이 흘러나오는 얼굴.
 살점 하나 남지 않는 그 얼굴은 마치 해골 같았다.
 그런 그의 손에는 타오르는 염화를 머금은 낫이 들려 있었다.
 “저게 바무스.”
 ‘응.’
 짤막하게 대답한 뭉치의 몸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상상했던 케르베로스와 모습이 비슷하다. 다만 머리는 하나라는 것 말곤.
 서서히 삐걱거리며 우리를 향해 돌아서는 바무스.
 녀석이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지저부한 입을 크게 벌리며 달려들었다.
 “크와아아아!”
 멀리 있던 그가 순식간에 나의 앞으로 나타나 낫을 휘둘렀다.
 횡으로 휘둘러진 염화를 머금은 낫은 정확히 나의 목을 향하고 있었다.
 ‘피해!’
 어라.
 거대한 낫을 어떻게 피해야 하나 싶다가, 나를 향해 휘둘러진 낫이 점점 느려져가는 게 보였다.
 마치 보통의 속도에서 2배, 3배, 4배 느려지는 것처럼 서서히 느려지던 낫이었다.
 그게 뭔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낫의 궤적을 피해 굴렀다.
 ―카가각!
 낫은 허무하게도 바닥을 긁었다.
 설마 피할 줄 몰랐다는 듯, 놈은 시퍼런 두 눈으로 낫이 박힌 자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사라진다.
 ‘위!’
 허공을 찢어발기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하늘에서 나타나 낫을 수직으로 찍어 내리는 바무스.
 “캬오오오―!”
 몸을 반으로 갈라버릴 작정인 듯 두 눈에선 시퍼런 광망이, 염화를 머금은 낫은 이글거렸다.
 ‘정말··· 정말 보인다.’
 부지불식간에 가해지는 공격이었지만 확실히 보인다.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려져가는 낫.
 녀석의 몸이 내려앉는 쪽으로 몸을 굴렸다.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근거리에서 가해지는 공격도 쉽게 피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들었다.
 ―콰직!
 거대한 낫이 땅에 허무하게 파고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나는 녀석의 두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시커먼 광망을 흘려대는 두 눈동자가 얼핏 커지는 듯싶었다.
 도망치려고 고개를 돌리는 녀석의 허리를 강하게 붙들어 매었다.
 갑주에서 느껴지는 살을 엘 듯한 한기.
 “캬아아아악!”
 마치 하늘 위를 걷는 듯한 아찔한 느낌이 잠깐 들었다.
 ‘조심해!’
 녀석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 모양이다.
 황급히 나를 떨쳐내려는 듯 나뭇가지 같은 왼손이 내 머리를 짚으려 했으나, 나는 유연하게 녀석의 공격을 피했다.
 혹시나 싶어 허리를 잡는 팔에 힘을 주어 보니, 녀석의 갑주가 순식간에 움푹 찌그러져갔다.
 ―빠득!
 찌그러진 갑주 안에 있던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캬아아아아아!”
 “크르릉!”
 그 틈을 타 뭉치가 포효를 내지르며 바무스의 머리통을 물었다.
 녀석이 낫을 휘둘러 그녀의 머리를 찍었지만 미미한 생채기만 날 뿐.
 되레 무는 힘을 더 가하도록 자극한 것 같다.
 ―꾸드득!
 “캬악― 캬아아악!”
 재빨리 바무스가 더는 낫을 휘두를 수 없도록 오른손을 움켜잡았다.
 손 안 가득히 단단하고 거친 가죽의 느낌이 느껴졌다.
 우악스레 오른쪽 팔꿈치를 잡아당긴 나는 그것이 아예 팔을 쓸 수 없도록 만들었다.
 ―우드드득!
 “끼에에에에―”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왼손으로 나를 밀친 녀석은 낫을 떨어뜨린 채 뒤로 주춤거렸다.
 바닥에 채 닿기도 전에 몸을 뒤집는다.
 터져버린 귀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오는 걸 느꼈다.
 머리가 빙글 도는 아찔한 기분.
 애써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고 녀석이 떨어뜨린 낫을 가로챘다.
 “캬아아악!”
 뭉치의 공격을 벗어난 녀석의 몰골은 처참했다.
 물어뜯긴 머리 한 쪽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기괴하게 틀어진 입에서는 연신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무기를 내놓으라며 하나밖에 남지 않은 시퍼런 눈동자를 굴리며 다가오는 녀석이었다. 녀석의 손에 벗어나도 여전히 불길을 잃지 않고 있는 낫을 휘두르며 달려갔다.
 “캬아아아악!”
 언뜻 겁에 질렸지만 필사적으로 낫을 향해 녀석은 손을 뻗었다.
 어떻게 낫을 휘둘러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지는 모른다.
 단지 본능적인 감각에 의존했다.
 상대방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휘둘러진 낫이 녀석의 몸뚱아리를 베었다.
 그러나 워낙 단단해 보이는 갑주 때문에 쇠가 우는 것처럼 철그렁거리며 낫의 날에 딸려가더니, 다시 나에게 달려들었다.
 욱신거리는 손을 뒤로 한 채 녀석의 남은 왼팔을 향해 낫을 휘둘렀다.
 ―써겅!
 마치 무쇠를 잘라내는 듯한 소리가 났다.
 고통에 젖은 목소리로 녀석이 울부짖었다.
 양팔을 잃은 탓에 균형을 잃어버린 녀석은 다시 달려들다 말고 옆으로 기우뚱 기울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와 내 손에 들린 낫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천천히 다가온 뭉치가 머리통을 마지막으로 짓눌러 터뜨렸다.
 ―퍼엉!
 수많은 검은 연기가 터져 나와 바닥을 흘렀다.
 나는 한동안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참았던 숨을 터뜨렸다.
 “후욱, 후욱······.”
 처음 상대하는 몬스터였다.
 그것도 순식간에 이동해서 공격할 정도로 강대한 몬스터.
 하지만 녀석을 이겼다.
 처음으로 죽인 적이었다.
 비록 뭉치가 힘을 준 덕택에 상대할 수 있었으나 나는 본래 능력자가 아닌 민간인이었다.
 아마 현실에서는 네임드급 몬스터였을 바무스를 민간인이었던 내가 죽였다.
 그것도 나와 뭉치 단 둘이서.
 ‘그게 그렇게 좋아?’
 묻는 그녀의 목소리엔 웃음기가 서려있었다.
 단순히 좋은 정도가 아니라며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바무스가 죽었음에도 공간은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하늘을 향해 푸른 빛줄기를 쏘아내고 있는 첨탑을 바라보던 나는 얼굴을 굳혔다.
 그들이 시험의 공간을 통과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게 나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헤르메스 길드장인 김영민이 나를 멀리하는 걸까.
 그리고 혼수상태에 깨어난 이후로 나를 피하는 유진이까지도.
 ‘우습군. 왜 그런 놈들을 생각해?’
 내 생각을 읽은 뭉치를 쳐다보았다.
 그들을 싫어하는 듯 경멸이 담긴 목소리였다.
 착잡한 눈으로 뭉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눈앞의 검은 돌의 계단을 올랐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달라졌던 그들의 태도가 조금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뛰어난 능력과 힘.
 그에 대한 시기와 질투.
 유진이가 질투를 할 리가 없었다.
 아마도 헤르메스 길드장인 김영민의 압박이 있었으리라 믿었다.
 내 차를 덮쳤던 사람의 얼굴도 누군지 알았다.
 낯이 익었던 그 얼굴은 분명 대피소에서 보았던 남자의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헤르메스 길드에 찍힌 게 된다.
 한국 내 능력자 길드 1위에 랭크된 헤르메스 길드.
 앞으로는 되도록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내야 했다.
 아니, 아무래도 한국을 떠나야할 것 같았다.
 그것보다 내가 다시 깨어나면 어디서 깨어나게 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건 걱정 마. 내가 안전한 곳으로 옮겼으니까.’
 “···고마워.”
 ‘뭘, 인간들의 세상을 구경하게 해준 너에게 이정도 쯤이야.’
 쑥스러워할 줄도 아네.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사람의 키만 한 첨탑의 앞에 섰다.
 첨탑의 꼭대기에는 원형의 이질적인 공간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천천히 그것을 향해 손을 뻗자, 하늘 높이 뻗었던 푸른 기운이 내 몸을 유유히 감싸 안았다.
 마치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기는 기분이었다.
 눈앞의 모든 게 서서히 새하얀 광경으로 변해갔고, 그 순간 거센 격류에 몸이 휩쓸리는 느낌을 받았다.
 입술을 깨문 채 눈을 질끈 감았다.
 ―파아아!
 화려한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연이어 밝고 고운 여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축하합니다!]
 [’시험의 공간’을 통과하셨습니다.]
 [유저 ‘김시우’의 기본 능력치가 공개됩니다.]
 [이제부터 레벨에 맞는 몬스터의 능력치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이름(Name) : 김시우 | 나이(age) : 25세
 
 - * Lv. x
 
 - 칭호(title)
 
 : 유저(User)[더 보기▼]
 
 - 성향(disposition)
 
 : 질서(order), 선(good)
 
 - 능력(ability)
 
 : 힘(Strength) : 10 | 민첩(Agility) : 10 | 지력(intelligence) : 5 | 행운(Luck) : 10
 * 유저(User) 김시우는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합니다.]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천천히 읽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더 이상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무슨 내용인지 채 묻기도 전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속삭였다.
 
 [‘유저’ 김시우는 ‘지옥의 파수꾼 켈베로스’를 조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위대한 업적으로, ‘몬스터의 신뢰를 받는 자’ 칭호를 수여받습니다. 칭호의 효과는 칭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위대한 업적 보상으로 ‘아공간’이 주어집니다. ‘아공간’은 시/공간의 제약 없이 상시로 소지 가능한 보관함입니다.]
 [위대한 업적 보상으로 특별한 능력이 추가됩니다.]
 [추가된 능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특수 능력(Special Ability)]
 [몬스터 조련(Lv. 0)]
 : 스킬 설명 - 몬스터 조련은 다른 몬스터를 ‘유저’ 김시우의 편이 되어 싸우도록 할 수 있습니다. 조련의 조건에는 1. 체력이 사망 직전인 경우. 2. * 그로기 상태인 경우. 3. * 특수한 경우가 있습니다. 현재 최대 조련 가능한 몬스터 수는 10마리까지 입니다.
 * 그로기 상태란, 제대로 서서 지탱을 하지 못할 상태를 의미합니다.(기절, 공포, 유혹, 마비 등)
 * 특수한 경우란, 전투나 소요 없이 조련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다음 레벨업까지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 일반 몬스터 조련 숙련도(0/100)]
 [* 일반 몬스터 조련 시, 동일한 몬스터의 조련 숙련도는 최대 200마리까지 적용됩니다.]
 
 [몬스터 조합(Lv 0)]
 : 스킬 설명 - 몬스터를 조합할 수 있습니다. 몬스터를 조합하여 다음 등급의 몬스터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일반(Common) 등급 - 네임드(Named) 등급 - 보스(Boss) 등급 - 신(God) 등급
 일반(Common) 등급에서 네임드(Named) 등급의 몬스터 조합 시도 시, 동레벨 대 구간에 있는 일반 등급의 몬스터 2마리가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네임드 등급에서 보스 등급의 몬스터 조합 시도 시, 동 레벨 대 구간에 있는 네임드 등급의 몬스터 2마리가 필요합니다.
 신 등급의 몬스터 조합 시도 시에도 보스 등급의 몬스터 2마리가 필요합니다.
 조합 시도가 성공한 경우, 동 레벨 대 몬스터가 만들어집니다.
 조합 소재를 사용할 경우, 네임드(Named) 등급 이상의 몬스터 조합 시도에서 일정 확률로 돌연변이 조합이 가능합니다.
 * 몬스터 조합에 성공할 경우 조련 가능한 등급에 관계없이 조련된 상태가 됩니다.
 [다음 레벨업까지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네임드 등급 몬스터 조합 성공(0/1)]
 [조합 확률]
 [네임드(Named) 등급 - 10%]
 [보스(Boss) 등급 - 1%]
 [신(God) 등급 - 0.5%]
 * 조합 관련 장치가 아공간에 추가됩니다.
 
 [영구 조련 몬스터로 변환(Lv. 0)]
 : 조련된 몬스터를 암흑 공간 밖에서도 데리고 다닐 수 있으며, 능력치 공유가 가능합니다.
 능력치 공유는 전체적인 능력치의 합이 가장 높은 몬스터에 한해서 이루어집니다.
 또한 성장을 할 수 없는 ‘유저’ 김시우 대신 성장할 수 있으나, 성장하는 데에 훨씬 많은 경험치가 필요합니다.
 [데리고 다닐 수 있는 몬스터 수 : 1/3]
 [현재 보유중인 영구 조련 몬스터 목록]
 [지옥의 파수꾼 켈베로스(Lv. 0) - 보스(Boss) 등급]
 
 -성향(disposition)
 
 : 혼돈(chaos), 중용(moderation), 사랑에 빠진(loved)
 
 -능력(ability)
 
 : 힘(Strength) : 55 | 민첩(Agility) : 50 | 지력(intelligence) : 40 | 행운(Luck) : 10]
 
 - 비어 있음.
 
 - 비어 있음.
 
 [축하합니다!]
 [‘시험의 공간’ 문지기이자, 사냥당할 수 없는 존재인 ‘바무스’를 사냥하셨습니다.]
 [이는 위대한 업적으로, ‘미친 인간’ 달성 칭호를 수여받습니다. 칭호 효과는 칭호 탭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위대한 업적 보상으로 다음의 아이템을 받습니다.]
 [‘바무스의 헬멧’]
 [‘바무스의 유령 갑주’]
 [‘바무스의 건틀렛’]
 [‘바무스의 부츠’]
 [‘바무스의 낫’]
 [귀환이 완료되었습니다.]
 
 수많은 메시지가 떠오른 바람에 중간 중간 무언가를 놓치고 말았다.
 그래도 큰 부분은 대강 이해할 수 있었다.
 몬스터를 조련하고 조합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업적 보상에 따른 아이템을 받았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 나는 가슴이 뭔가에 짓눌려진 듯 답답했다. 천천히 눈을 뜨니 뭉치가 가슴팍에 앉은 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양옆으로 벽이 있는 걸 보아하니 어딘가의 골목인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뭉치를 바라보며 혹시나 꿈을 꾼 건 아닌가 생각했다. 뭉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꿈이 아냐.’
 “···그렇구나.”
 피식 실없이 웃음을 흘린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한국에서 가장 늦게 능력자가 된 것이다. 도저히 실감이 안 나서 누운 그대로 멍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조용히 살까 싶었다. 정든 곳을 떠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사건을 생각하니 확실히 떠나는 게 나았다.
 ‘뭐, 그것도 괜찮지.’
 뭉치가 머릿속에서 말했다. 이런 귀여운 체구가 그런 거대한 개로 변한다니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헛웃음을 터뜨린 나는 그녀를 안아든 채 골목을 벗어났다.
 걸레처럼 찢어진 옷과 바지를 쓰레기통에 버린 나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샤프란 냄새가 섞인 폴리우레탄 냄새가 풍기는 체크 남방에 흰 면바지. 찢어졌던 바지에서 꺼낸 휴대폰이 갑자기 환해졌다.
 문자메시지가 와 있다. 휴대폰을 든 나는 마치 쏘아진 야구공에 맞은 것처럼 중심부터 깨져나간 액정 때문에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기록은 확인이 가능했다.
 “응?”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거의 열 통이 넘는 통화기록. 잠금을 풀어 확인해보니 모두 유진이에게서 온 전화였다. 얘가 나한테 전화를 걸 리가 없는데. 미간을 좁힌 채 통화 기록을 확인한 나는 메시지도 확인했다.
 ‘시우야, 제발 전화 좀 받아줘.’
 ‘오빠들이 내 휴대폰을 썼나봐. 네 번호를 검색한 기록이 남아 있어.’
 ‘시우야, 별일 없지? 제발. 제발, 전화 좀 받아.’
 ‘시우야, 제발······.’
 문자 메시지들 모두 아침에 온 내용이었다.
 그녀에게 연애 감정은 없다. 다만, 절친한 친구 사이가 급속도로 멀어진 이유를 모르겠다. 설령 김영민이 감시하고 있다고 해도 적어도, 연락 한 번은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이렇게 문자를 보낼 수 있었으면서?
 나는 통화 기록과 문자 메시지들을 모두 삭제했다. 이제 더 이상 한국에 남아 있는 미련은 없었다. 있다면 수연이와 또 만날 수 있을까하는 것뿐.
 혹여나 비슷한 능력을 가진 능력자들이 있을까 싶어 고글이나 네이바 등 여러 포털에서 검색을 해보았다. 그런 건 전혀 없었다.
 ‘특별한 능력’을 기준으로 검색을 시도하니 글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님들 혹시 능력자들 중에서도 특별한 능력을 가진 능력자도 있지 않음? 내 생각에 왠지 있을 것 같음. 막 C급 B급 이런 급으로 매길 수 없는 능력자가.’
 날카로운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이 글의 댓글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며 치부하고 있었다.
 - 무슨 소리야. 능력자면 다 특별한 건데. 능알못 인정하네.
 - 팝콘 팝니다. 콜라도 서비스요.
 - 글삭해라. 능력자들 기분 나빠할 듯.
 -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애초에 특별한 능력자가 있었으면 세계를 구하고도 남겠다.
 - 맞아.
 - ···
 결국 내 능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내용도 찾아볼 수 없었다.
 천천히 의자에 기댄 채 생각에 잠겼다.
 인터넷상에선 아무런 정보도 없다. 그럼, 남은 건 직접 써서 능력을 확인하는 것뿐이다.
 ‘좋아.’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돌린다.
 뭉치가 가지런히 손을 모은 채 꼬리를 느릿하게 흔들고 있었다.
 "내 생각 좀 안 읽으면 안 돼?"
 ‘정 그러면 못 읽게 막던가.’
 며칠을 집에서 머무르다, 미국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곳에선 타국에서 온 능력자를 대우하며 거주지가 없는 경우 거주지까지 마련해준다는 게 솔깃했다. 솔직히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말들이 많지만 아무래도 미국이 더 끌렸다.
 정리는 다 끝냈다.
 남은 건, 단 하나의 액자.
 한 장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나, 임유진, 김영민 셋이서 서울 시내로 구경을 다닐 때 찍은 사진이었다. 환히 웃고 있는 김영민과 임유진, 그리고 나.
 유독 유진이가 눈에 띈다. 가지런히 흘러내린 긴 흑발,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갈색 눈동자. 곱게 일자로 뻗은 미려한 눈썹. 오똑한 콧날, 살짝 말라 보이는 분홍빛 입술. 검은색의 롱 카디건에 수수한 옷차림이었지만, 그녀의 몸매를 다 숨길 수는 없었다.
 그녀는 확실히 예뻤다.
 액자를 담으려던 손을 거두었다.
 이제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탁 소리가 날 정도로 액자를 강하게 덮어버렸다.
 마지막으로 불이 꺼진 텅 빈 집을 눈동자에 담고, 작은 한숨을 내쉬며 정들었던 집을 떠났다.
 여권의 발급과 미국행 티켓을 떼는 건 순식간이었다.
 출국하기 전에 각국의 능력자들끼리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나 최근에 민간인들도 사용할 수 있게 된 번역기기를 사두었다. 한 개에 백만 원이 넘을 정도로 비싼 제품이었지만, 하나 정도는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쓰다가 어느 정도 영어에 익을 즈음이면 빼도 상관없다.
 뭉치는 내 허리에서 편안하게 잠을 청했다.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비행기인 터라 무서울 법도 한데 그녀는 즐기고 있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인 타운에서 짐을 풀고, 곧바로 미국 능력자협회를 방문했다.
 협회 건물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컸다. 미국 정부에서 능력자협회와 능력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입구에서 마치 맨인 블랙처럼 말끔한 정장에 딱딱한 분위기를 풍기는 경비병들에게 몸을 검사받았다.
 혹여나 테러가 있을 경우를 대비해서 이런 식의 엄중한 검사가 이뤄진다고 들은 바 있었다.
 “통과.”
 경비병의 말은 마치 한국어처럼 내게 들렸다. 반대로 내가 한국말을 하면 상대방은 못 알아들을 터였다. 번역 기기가 없으니. 협회 안으로 들어가선 제일 먼저 안내인을 찾았다.
 헤드 마이크를 끼고 있는 안내인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겼다. 푸른빛의 눈동자가 무척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능력자협회에 등록을 하고 싶습니다.”
 준비를 해오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눌한 말투였지만 나로서 노력할 수 있는 한계였다. 그다지 영어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인 같지 않다는 걸 알아챘는지 그녀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미국인이 아니신가보네요?”
 “네, 한국인입니다.”
 “아! 한국인이시군요.”
 놀랍게도 그녀의 입에서 유창한 한국어가 흘러나왔다.
 한시름 덜었다는 생각과 함께 안도감이 들었다.
 안내인이 한국말을 할 수 있으니 내가 어렵게 영어로 말할 필요가 없었다.
 “한국 능력자협회에 등록하셨나요?”
 “아뇨, 거기서 등록은 안 했어요. 미국에서 등록을 해도 상관이 없다고 들어서.”
 “네. 상관없습니다. 헌데 한국에서 등록하지 않고 미국으로 와서까지 등록을 하신 이유라도 있나요?”
 그녀로서는 당연한 의문이었다. 한국에서 자라서 능력자가 되었다면 한국 능력자협회에 등록을 해도 되는데, 왜 미국까지 와서 등록을 하냐는 것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한국보다는 미국에서 능력자에 대한 처우가 좋다고 해서요.”
 “아, 그러시군요. 저를 따라오시겠어요?”
 나는 몸을 일으킨 안내인의 뒤를 따라갔다. 협회 건물 계단 사이에 있는 대형스크린 화면에선 미국 최고 능력자인 레이스의 활약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수많은 동료들의 지원과 지지 속에서 거대한 가시 곤봉을 휘두르는 몬스터와 싸우는 모습이었다.
 미국 도심에 출몰한 몬스터. 암흑 공간을 빠져나온 것 같았다. 거의 빌딩만 한 몬스터는 몸집만큼이나 느릿느릿했다. 그러나 녀석이 휘두르는 곤봉에 집이 부서지고, 차량이 폭발하며 날아다녔다. 그럼에도 레이스는 침착한 얼굴로 천천히 녀석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었다. 나는 안내인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도 잊은 채 영상에 몰두해버렸다.
 “레이스 님은 무척 대단하시죠.”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런 것 같아요.”
 그녀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나는 영상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김시우입니다.”
 “제 이름은 셀렌이에요. 능력자 협회에 등록하시려면 기본적으로 능력치가 나오는지 알아보아야 해요. 만약에 시우 님이 평범한 민간인이라면 능력치가 안 나오겠죠. 여기가 능력치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랍니다.”
 그녀를 따라 들어간 방 한가운데에 사람이 한 명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었다. 독특한 점이라면 의자 밑으로 수많은 굵은 전기선들이 뒤에 달린 대형 화면까지 이어져있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능력치가 저 대형화면에 표시되는 것 같았다.
 “앉으시죠.”
 의자는 무척 서늘했다. 양팔과 다리를 묶여버린 나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말았다. 전기고문을 당하는 건 아닐까. 편안히 눈을 감으라는 지시에 나는 눈을 감았다. 아니겠지.
 그녀가 기기 조작을 끝내고 뒤로 물러서는 소리가 들렸다.
 
 [측정을 시작합니다.]
 
 여성의 목소리와 기계음이 뒤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천히 머리를 어루만지는 감각은 발까지 이어졌다. 마치 마사지를 받는 기분이었다.
 
 [측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나오시면 되요. 고생하셨어요.”
 “끝난 건가요?”
 셀렌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저 스크린으로 시우님의 능력치가 나타날 겁니다.”
 긴장했던 내가 무안해졌다. 어색하게 웃으며 의자에서 몸을 뗀 나는 뒤돌아서 대형 화면을 바라보았다. 새하얀 바탕 중심에 홀로그램처럼 사람의 인체가 빙글빙글 돌았다. 그 밑으로 수많은 글자들이 타자기로 두드리듯 나타났다.
 
 [측정된 능력치를 공개합니다.]
 [ 이름(Name) : 김시우 | 나이(age) : 25세
 : 힘(Strength) : 10 | 민첩(Agility) : 10 | 지력(intelligence) : 5 | 행운(Luck) : 10 ]
 
 다행히 능력치만 공개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이나 기타 사항은 안 보이고.
 “음··· 능력치는 일반인보다 조금 더 강한 C급이시네요. 반갑습니다. 김시우 능력자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악수를 건네는 셀렌의 얼굴은 무척 환했다. 나는 그녀의 악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능력이 C급이라도 너무 섭섭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평균적으로 능력자는 C급이고, 성장에 따라 능력치가 높아진다고 했다. 평균 능력치가 20 이상이면 B급이고, 30 이상이면 A급. 40 이상이면 S급이라며 현재 미국 최고 능력자인 레이스는 S급 능력자라고 했다.
 평균 능력치가 50 이상이면 어떻게 취급되냐고 물어보니 그녀는 말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레이스마저 5년 동안 달성한 게 S급이었다. 그래도 잠깐 눈을 감고 고민한 그녀는 입을 열었다.
 “능력치가 레이스보다 높은 능력자라면, 각 국가에서 나라를 팔아서라도 앞다퉈 데려가려고 할 거예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암흑 공간들이 있으니까요. 물론 지금도 레이스는 러브콜을 받고 있긴 해요. 근데 그게 왜 궁금하신 건가요?”
 아무것도 아니라며 대충 얼버무렸다.
 이상하다는 듯 흘겨보던 그녀는 곧 신경을 껐다.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미국에서 등록했기에 매달마다 미국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등의 여러 가지 중요한 정보들을 들을 수 있었다. 현재 살고 있는 소재지가 어디냐는 물음에 한인 타운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녀는 잠깐 고민하더니 마이애미 쪽에 집을 줄 수 있는데, 거기서 사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물론 조건이 있었다.
 “저희 미국 능력자들이 외곽 쪽 지역은 꺼려해요. 미국은 사람이 많지만, 능력자들의 수는 한국보다 적어요. 게다가 일부 능력자들이 간 암흑 공간은 금지 구역으로 바뀌어서···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한 암흑 공간도 있지만 능력자들이 그곳을 가려고 하지 않는답니다. 그 때문에 마이애미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어요. 언제 암흑 공간에서 몬스터가 뛰쳐나올지 모르니.”
 한마디로 능력자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곳이었다. 자국 내 능력자 보호 차원에서 타국에서 온 능력자를 쓴다. 어찌 보면 기발한 생각이지만 그 대상이 타인이 아닌 나였다. 그렇기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곳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곳이었으니까.
 그녀는 흔쾌히 허락한 나의 태도에 놀란 것 같았다. 한동안 말없이 나를 보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최근에 만들어진 슈트를 내게 빌려준다고 했다.
 그래도 망설이는 척 거절했다.
 굳이 슈트가 필요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 돼요. 소중한 목숨을 잃고 싶으신 거예요?”
 “아뇨. 그건 아닌데.”
 “그러니까 슈트를 영구적으로 빌려드릴게요. 애써 미국까지 찾아와서 등록하셨잖아요. 그냥 저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주세요.”
 결국 우격다짐으로 슈트를 빌리고 말았다.
 또한 여러 가지 보급용 장비들을 지원해주면서 필요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 가져가라고 했다. 내겐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딱 하나, 꽤 신식으로 보이는 확성기만 챙겨들었다.
 “그건 어디에다 쓰시려구요?”
 어깨를 으쓱인다.
 ”글쎄요.”
 스위치를 눌러서 테스트를 해보니 잘되는 것 같았다.
 의아하게 바라보던 그녀는 내가 챙겼던 물품들을 포장해주었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내비게이션을 건네주었다.
 내비게이션은 미국의 각 주별로 암흑 공간의 위치 등이 표시되어 있으며 능력자들끼리 공유도 가능하다고 했다. 그에 더해서 그녀는 마이애미로 안전히 갈 수 있도록 사람을 불러주었다. 아낌없이 지원해 주길래 무슨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았다. 물론 그녀는 나무가 아니라 셀렌이다. 사람을 기다리는 동안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여자친구는 있어요?”
 “아뇨.”
 “그렇구나.”
 셀렌은 내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마이애미로 가면 하인즈라는 사람이 도와줄 거예요.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제게 연락주세요.”
 그다지 연락할 일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나는 그녀가 내민 명함을 받았다.
 “왔네요. 저분을 따라가시면 될 거예요. 다음에 또 봬요!”
 셀렌을 대신할 안내인이 문틈에 서 있었다.
 꼭 다시 만나자며 그녀는 환한 미소로 날 배웅해주었다.
 “아, 저 혹시 한인 타운에 좀 들를 수 있을까요?”
 남자는 한국어를 못하기 때문에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었다. 정장에다가 까만 선글라스에 올백머리를 한 덩치가 산만한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리에 잔뜩 기름을 바른 듯 머리가 햇빛에 반짝였다.
 “거긴 왜?”
 “제가 가져온 짐이 거기에 있어서요.”
 “아, 좋아.”
 알겠다는 듯 남자는 고개를 느릿하게 주억였다. 한인 타운에 도착한 후 짐과 짐 더미에 파묻혀서 자고 있는 뭉치를 챙겼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마이애미까지 가려면 또 항공편을 타야했다. 그러나 동행한 그가 도움을 준 덕택에 쉽게 갈 수 있었다.
 해질녘 마이애미의 해변은 환상적이었다. 도착하기 전 여러 번 나의 능력치를 읽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얻었던 칭호를 확인해보지 않았다. 보통 능력치나 무언가를 확인할 땐 말로 확인할 수 있었다.
 “칭호 확인.”
 마치 게임처럼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메시지는 내 능력치 중 칭호만을 보여주었다.
 
 [칭호를 확인합니다.]
 
 - 칭호(title)
 : 유저(User)
 
 - 칭호 목록
 : ‘몬스터 조련사’ - ‘몬스터의 신뢰를 얻은 자.’, ‘미친 인간’, ‘유저’(3)]
 
 ‘미친 인간’이라는 칭호는 대체 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몬스터 조련사’ 칭호를 선택하니 해당하는 칭호에 대한 설명이 떠올랐다.
 
 ‘몬스터 조련사’
 - 최초로 몬스터를 조련하는 데에 성공하였습니다. 전체 능력치가 +5 증가합니다.
 
 파격적인 혜택이었다. 나는 벌려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 옆에 있는 ‘몬스터의 신뢰를 얻은 자’를 클릭해보았다.
 
 ‘몬스터의 신뢰를 얻은 자.’
 - 최초로 몬스터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일반(Common) 등급에 해당하는 몬스터의 선
 제 공격을 당하지 않습니다.
 
 “맙소사.”
 “시우?”
 “네?”
 “무슨 일이야?”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황급히 양손을 내저었다. 후미등에 비친 그의 눈이 미심쩍다는 듯 가늘어졌다. 그러나 이내 운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끌어안고 칭호를 장착했다. 몸이 상쾌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확실히 무언가가 달라진 것 같았다.
 “아공간 확인.”
 
 [아공간을 확인합니다.]
 
 아공간에는 내가 얻었던 아이템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구석에 무언가가 있었지만 확인하지 않았다. 나는 확성기만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슈트···.’
 우격다짐으로 빌렸던 슈트. 최근에 만들어진 거라면 엄청나게 비쌀 텐데 대체 무슨 정신이었을까. 한숨을 쉬며 슈트도 아공간으로 집어넣었다. 열려진 아공간은 다른 사람이나 심지어 뭉치도 볼 수 없었다. 그런 내가 이상하다 싶었는지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
 “시우, 뭐라고 한 거야? 괜찮아?”
 “네. 괜찮아요. 하하.”
 머쓱한 얼굴로 돌아앉은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도착한 곳은 긴 풀장이 딸린 고급 저택이었다. 정문에 있던 백발이 성성한 남자가 우리를 반겼다. 셀렌이 말했던 대로 기다리고 있던 그가 하인즈였다. 그는 내게 인자한 얼굴로 인사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점을 감안해준 듯 별말 하지 않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한국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
 “반갑습니다. 시우 님.”
 “아···네. 하인즈. 반가워요.”
 하인즈가 지내고 있는 층은 아래층이었고, 나는 위층이었다. 나선처럼 올라가는 계단을 오르면 2인 침대만큼 넓은 하얀 침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장기간의 여행으로 피로에 젖은 몸을 달래려 드러누운 나는, 그대로 깊은 수마에 빠져들었다.
 귀를 물리는 감각에 나는 눈을 떴다. 자고 있는 뭉치가 내 머리 옆에서 귀를 문 채 우물거리고 있었다. 한숨을 쉬며 나는 그녀를 떼어냈다. 천장을 바라보자, 아직까지 시차에 적응이 안 된 듯 머리가 몽롱했다.
 “으음···.”
 잠에서 덜 깬 눈으로 바닥을 훑던 나는 이대로 다시 자버릴까 싶었다. 그러나 마이애미의 아침이 밝았다. 분명 해질녘 즈음에 잤던 것 같은데 오래도 잤던 모양이었다. 뭉치가 미간을 찌푸린 채 뒤척거렸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내려 보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으···.”
 피가 머리로 쏠린 상태에서 일어서는 기분이었다. 뒤통수를 망치로 후려치는 것 같은 기분에 나는 이마를 짚었다. 연거푸 숨을 들이마시니 차츰 속이 안정되어 갔다. 나는 욕실에서 간단히 몸을 씻었다.
 “이런.”
 올 때 입고 온 옷을 그대로 입고 잔 모양이었다. 뭉치의 침인지 내 침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옷자락이 축축했다. 챙겨왔던 여분의 옷으로 갈아입은 후 매끈한 계단을 내려갔다. 정문으로 가다가 본 열려진 방에는 하인즈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하인즈는 독특하게도 안대를 끼고 자고 있었다.
 ‘어딜 가게?’
 가뿐하게 계단을 뛰어내려온 뭉치가 앞발을 주욱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더없이 상쾌한 듯한 목소리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의 대답을 기다리던 그녀에게 같이 가자고 말했다. 자고 있다면 나 혼자 갈 생각이었는데 깨어 있으니 같이 가도 상관은 없을 것 같았다.
 주머니에 찔러 넣은 내비게이션을 들어 총총 걸음으로 다가오는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게 뭔데?’
 “주변에 있는 암흑 공간을 보여주는 거야. 일종의 내비게이션 같은 거지.”
 ‘내비게이션? 어디서 얻었는데?’
 “능력자협회에 등록하니까 주더라. 이런 집도 주고.”
 ‘그렇구나.’
 뭉치는 납득한 목소리로 길게 하품했다.
 나는 집 앞에 그들이 마련해준 차를 타고 내비게이션을 따라 이동했다.
 우선은 금지 구역으로 정해지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두 명의 남자와 여자의 프로필이 내가 찍은 내비게이션 옆으로 떴지만,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남자는 C급, 여자는 B급이라 적혀져 있었으니 아마도 다른 능력자들인 것 같았다.
 도착한 곳은 마치 등잔 밑이 어두운 것처럼 아름다운 마이애미의 풍경과 달리 무척이나 상반된 곳이었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킨 장소는 자욱한 어둠이 넓게 깔려 있었다. 암흑 공간이었다. 사방은 깊은 어둠이 내려앉은 것처럼 어둡고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천천히 그곳을 향해 발을 들인 나는 또 다시 그 이질적인 기분을 느껴야했다.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았던 기분은 서서히 모든 게 변할 즈음에야 가라앉았다.
 마치 붉은색 잉크가 빠르게 퍼져가는 물처럼 하늘이 붉게 변했고, 건물들은 오래된 세월에 풍화된 것처럼 낡은 한숨을 토해내었다. 네 갈래로 갈린 길 중심에 서있던 나는 사방에 깔려 있는 수많은 존재들의 시선이 나에게 향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몬스터들의 모습에 심장이 요동쳤다.
 그런 나를 향해 절뚝거리며 몸을 돌린 존재들은 산자가 아니었다. 하나같이 머리가 기괴하게 뒤틀려 있거나, 핏줄이 터진 두 눈알을 희번득거린 채 썩어문드러진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적 정보 확인.”
 
 [적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Name) : 좀비 | 나이(age) : 알 수 없음
 
 - Lv. 알 수 없음.
 
 - 칭호(title)
 
 : 일반 몬스터(Common)
 
 - 성향(disposition)
 
 : 악(evil)
 
 - 능력(ability)
 
 : 힘(Strength) : 알 수 없음 | 민첩(Agility) : 알 수 없음 | 지력(Intelligence) : 알 수 없음 | 행운(Luck) : 알 수 없음]
 
 성장이 불가능한 나였기에 좀비들의 능력치를 읽을 수 없었다. 그래도 좀비이니 만큼 약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크르르르···.”
 어느새 모습을 바꾼 뭉치가 그들을 위협했다. 나는 재빨리 바무스의 아이템들을 착용했다. 긴장된 두 손으로 낫을 움켜잡았지만, 그들은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킁킁대며 낯선 냄새에 반응하기만 할 뿐이었다. 뭉치도 그런 상황이 얼떨떨한 모양이었다.
 “뭐야?”
 뭉치는 묻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흘겨보았다. 어깨를 으쓱인 나는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하얀색 이가 가득한 머리에 퀭한 두 눈동자 밑으로 썩어문드러진 코가 벌름거렸다. 몸에서 나는 역한 냄새에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조금씩 걸어가니 녀석이 순간 홱 고개를 내 쪽으로 돌렸다. 얼음에 굳어버린 동태의 두 눈깔과 같은 눈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어어어···.”
 그러나 다시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는 좀비였다. 짧게 호흡을 멈춘 나는 녀석의 허리를 향해 낫을 휘둘렀다. 타오르는 불을 머금은 낫의 날카로운 날이 그림을 그리듯 휜 순간, 좀비의 허리가 말끔하게 동강났다.
 수많은 좀비들이 급작스레 내 쪽으로 몰려들었다.
 “그어어어!”
 ‘시우!’
 황급히 녀석들을 향해 뛰어든 뭉치가 몇몇 좀비들을 물고 찢어발겼다. 그녀의 압도적인 힘에 좀비들은 마치 수수깡처럼 썰려나갔다. 기어이 뭉치의 틈을 벗어난 좀비는 내가 아닌 말끔하게 두 동강 난 좀비의 허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막지 마.”
 ‘왜!’
 흥분한 목소리로 그녀가 소리쳤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똑같은 좀비를 먹고 있는 좀비들을 보자 그녀는 놀라워했다.
 ‘뭘 어떻게 한 거야?’
 “시험의 공간에서 나올 때 보상으로 칭호를 받았던 게 있었는데, 그 칭호의 효과인 것 같아.”
 우르르 몰려든 좀비들에 의해 베었던 좀비의 몸은 아예 떡이 되어 있었다. 마치 핏덩이를 뭉쳐서 바닥에 꽂은 것 마냥 이리저리 비산하는 내용물들.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해보아야 했다. 꿀꺽, 침을 삼킨 나는 녀석들의 머리 위에서 소리쳤다.
 “조련!”
 ―파아아!
 새하얀 폭죽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들의 머리 위로 초록빛 세모가 생겨났다. 게걸스러운 동족 포식을 멈춘 채 조련된 좀비들은 멍한 얼굴로 나를 응시했다.
 ―띠링!
 
 [몬스터 조련에 성공하셨습니다.]
 [조련 성공 대상 : Lv.0 좀비(10) - 쫄따구]
 [다음 레벨업까지 필요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일반 몬스터 조련(10/100)]
 
 조련에 성공했다. 뭉치도 그들의 달라진 분위기를 느낀 모양이었다.
 
 [조련된 몬스터의 다음 행동을 지시해주세요.]
 
 조곤조곤 말하는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눈앞에 초록빛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홀로그램 상에는 아군을 뜻하는 초록색과, 적을 뜻하는 적색이 동시에 나타났다. 뭉치는 회색이었다. 나는 흘깃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야?’
 “아냐. 절대로 너를 부려먹고 싶다던가 그런 게 아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음표를 만들어낸 뭉치였다. 뭉치의 경우엔 조금 다른 특별한 경우인 것 같았다. 아쉽다며 입맛을 다신 나는 그녀에게 생각을 읽히지 않으려 여러 잡생각을 떠올렸다. 생각을 읽힌다면 대처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익···.’
 그녀의 분한 목소리를 뒤로한 채, 나는 눈앞의 홀로그램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초록색 좀비 한 명을 눌러보니 정보가 나타났다. 레벨은 여전히 알 수가 없는 상태였고, 마치 몰래카메라에 찍힌 듯한 좀비의 얼굴이 눈앞에 클로즈업 되었다. 나는 인상을 와락 찌푸리며 황급히 손을 휘저었다.
 “흠···.”
 어떻게 지시를 내리는 걸까. 동족 포식이 끝난 주변은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말고는 고요했다. 나는 홀로그램에서 적을 눌러보았다.
 적 한 명에 10명의 아군 좀비들의 표식이 찍혔다. 아군 전체가 공격하는 모양이었다. 삽시간에 기세가 달라진 아군 좀비들은 날선 이빨과 손톱을 내세우며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캬아아아악!”
 “그으으?”
 순식간에 열 명의 좀비들에게 에워싸인 녀석의 몸은 해체되어갔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녀석을 먹지 않고 팔과 다리, 머리 등등의 부위를 떼어낼 뿐이었다. 난폭한 그들의 행위에 놀란 좀비들은 슬금슬금 거리를 두었다. 녀석들에게도 두려움이 있던가.
 이번에는 슬금슬금 도망가는 더벅머리 좀비를 지정했다. 먹어버리기로.
 “캬아아아아악!”
 “그으, 그으으.”
 황급히 다리를 절며 도망치려 했지만, 마치 필사적인 것 마냥 달려드는 그들을 뿌리칠 수 없었다. 열 명의 아군 좀비들이 단숨에 녀석의 머리나 내장, 팔과 다리를 믹서기처럼 갈아 먹어버렸다.
 “대박이다.”
 입안 가득히 내용물들을 머금고 있는 그들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씩씩대며 입을 닦아내는 게 무척이나 든든해보였다.
 그나저나 어택 땅 한번 해볼까? 한 마리를 눌러서 다 공격한다면, 아예 홀로그램의 빈 곳을 누른다면?
 ‘너 대체···.’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사이에 내 생각을 읽은 모양이다.
 ‘몬스터 조련을 그런데 쓰려고 하다니.’
 머쓱해진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상해? 전부터 하고 싶었던 거라서.”
 ‘···네 마음대로 해.’
 그녀의 말에 나는 희미하게 웃음을 흘렸다. 전부터 하고 싶었던 게 있었다. 어택 땅. 이제는 오래된 게임인 스타크래프투나 룰에서 자주 쓰이던 것이었다. 말 그대로 유닛을 바닥에 찍어놓으면 자동으로 사냥을 한다는 개념이었다. 이것도 그와 비슷했다. 홀로그램의 바닥을 누르니 전체 적을 향해 지정되었다. 주변에 있는 적만 보여주기 때문에 멀리까지는 어려웠다.
 “사냥, 시작.”
 내가 누르는 것과 동시에 아군 좀비들이 뛰쳐나갔다. 예상치 못한 급습과 날카로운 공격에 멍하니 길바닥 위에 서있던 좀비들은 하나둘씩 핏덩이가 되어갔다. 간혹 덩치가 큰 좀비가 나타나면 몸집이 작은 좀비는 반대로 핏덩이가 되어버렸다. 나는 그럴 땐 여러 명을 묶어서 덩치가 큰 좀비를 지정해주었다.
 팔과 다리가 물리고 배가 찢겨져나가는 등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칠 때, 나는 녀석을 조련시켰다. 다시금 새하얀 폭발과 함께 조련에 성공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심지어 좀비들은 내가 가는 곳을 에워싸듯이 주변을 공격했다. 그 덕분에 나는 마치 마에스트로 같았다. 마에스트로의 지휘봉은 나의 손가락이 되고, 마에스트로의 연주자들은 나의 좀비들이 되었다.
 ―띠링!
 
 [몬스터가 성장하였습니다.]
 [성장 대상 : Lv.1 좀비(5)]
 [몬스터가 ‘병사’등급으로 성장하여 변화합니다.]
 
 “음?”
 황급히 그들을 불러 모았다. 잃어버린 5마리의 좀비들을 채운 육중한 거구의 좀비들과, 낡은 투구를 눌러쓴 채 해골을 들고 있는 5마리의 좀비들. 썩어문드러져 푸른빛을 띠었던 그들의 피부에 생기가 어렸다. 그래도 멍한 눈동자를 보면 여전히 그들은 좀비들이었다.
 ‘뭐야. 얘네들은? 조금 모습이 특이한데.’
 “성장했어. 쫄따구에서 병사로.”
 그게 뭐냐는 뭉치의 물음에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실컷 알아서 잡게 내버려뒀는데 스스로 성장해버렸다.
 “그럼. 한번 어느 정도인지 확인해볼까.”
 홀로그램에서 병사로 진급한 좀비를 누르고, 통통한 좀비를 누른다.
 곧바로 녀석은 가래침이 끓는 듯한 소리를 내지르며 달음박질했다.
 “그어어어어!”
 통통한 좀비가 그를 뒤늦게 발견하고 맞대응하려 했다.
 ―쩌억!
 하지만 녀석이 휘두른 해골에 단숨에 머리가 으깨졌다.
 “···.”
 이어지는 참혹한 광경.
 머리를 으깬 것도 모자라, 아예 몸을 떡메질하듯 빻아댄다.
 새삼 몬스터가 무척이나 잔혹한 존재들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어택땅을 누른다.
 신나게 달려가는 녀석들이 다시 나를 중심으로 내장과 살점의 바다를 만든다. 모세가 갈라진 홍해를 걸을 때의 느낌이 이러했을까. 아무리 덩치가 큰 좀비가 나오더라도 손가락 하나를 놀려주기만 하면 만사형통이었다.
 ‘···은근 즐기는 것 같다?’
 “그래?”
 ‘응.’
 “다행이네.”
 말과는 달리 나의 얼굴은 어두웠다. 5년이라는 긴 공백. 그 기간 동안 내가 즐길 수 있었던 게 있었을까. 아무런 능력도 없는 민간인으로서 매달 지원금을 받으며 사는 동안, 나는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순간은 달랐다.
 ―띠링!
 
 [몬스터가 성장하였습니다.]
 [성장 대상 : 좀비(5) - Lv.1(5)]
 [몬스터가 ‘병사’ 등급으로 성장하여 변화합니다.]
 
 남은 나머지 5마리의 좀비들도 성장했다. 멀리서 보아도 불쑥 덩치가 커진 게 보였다.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앞으로 전진했다. 좀비의 살처럼 썩은 도시의 건물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길모퉁이를 돌아서 주변을 정리하다가, 별안간 바닥이 쿵 울렸다.
 처음엔 경미했다.
 그러나 이윽고 마치 지진이 난 것 마냥 몸이 떨려왔다.
 눈꺼풀을 천천히 말아 올린다.
 그런 게 있다.
 항상 쫄따구가 있으면, 보스가 있는 법.
 ‘조심해. 뭔가 오고 있어!’
 황급히 좀비 병사들을 불러들였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듯 바닥의 울림이 짧아진다.
 그에 따라 내 심장도 두근대기 시작했다.
 ―쿵, 쿵, 쿠웅!
 소리가 멎었다.
 갸우뚱 고개를 기울인다.
 “갔나?”
 ‘글쎄,’
 ―콰아앙!
 순간 시간이 느릿하게 흘러간다.
 옆에 있던 낡아빠진 콘크리트 건물이 박살난다.
 조각조각, 사방을 향해 비산하는 유리 파편 틈으로 보스의 얼굴이 보였다. 반쯤 잘려나간 머리와 하나만 남은 듯한 붉은 눈동자. 선명한 근육들이 보일 정도로 단단해 보이는 몸과, 몸집보다 작은 빌딩쯤은 간단히 부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팔이었다.
 “적 정보 확인.”
 
 [적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 이름(Name) : 바뭄 | 나이(age) : 알 수 없음.
 
 - Lv. 알 수 없음.
 
 - 칭호(title)
 
 : 네임드 몬스터(Named)
 
 - 성향(disposition)
 
 : 악(evil)
 
 - 능력(ability)
 
 : 힘(Strength) : 알 수 없음 | 민첩(Agility) : 알 수 없음 | 지력(Intelligence) : 알 수 없음 | 행운(Luck) : 알 수 없음]
 
 “네임드급 몬스터···.”
 덩치가 큰 병사 좀비는 녀석의 키 반에도 못 미쳤다. 무슨 이런 미친 체구냐고 생각하기도 전에 녀석은 다시 오른 주먹을 휘둘렀다. 재빨리 녀석의 주먹이 향하는 궤적을 읽은 나는 좀비들을 피신시켰다. 조련시킨 몬스터가 나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내가 그들을 지켜줘야 한다니 우스운 상황이었다.
 -콰앙!
 길 한복판에 작은 크레이터가 생겨난다.
 내 몸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미리 건물 외벽을 타고 있는 힘껏 뛰었는데 높이도 뛰었다.
 가까워져보이던 하늘이 점점 멀어져갔다.
 ‘시우야!’
 “괜찮아!”
 몸을 둥글게 말아 가볍게 공중제비를 한 나는 아슬하게 녀석의 주먹 위로 착지할 수 있었다. 녀석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았다. 뭐라도 말해줘야 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녀석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안녕?”
 “크와아아아아아!”
 다시 녀석이 왼 주먹을 휘둘렀다. 잡아채려는 듯 휘둘러진 녀석의 왼 주먹은 뭉치의 이빨에 붙들린다. 절묘한 타이밍에 점프해서 낚아챈 탓이었다.
 단숨에 녀석의 오른팔을 뛰어올라갔다.
 거꾸로 올라가는 아찔한 느낌.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떨어져서 죽을지도 모른다.
 ‘시우야, 조심해!’
 “괜찮다고.”
 평평한 녀석의 어깨를 발로 짚은 채 낫을 휘두른다. 염화를 머금어 이글이글거리는 낫의 날은 태양빛에 반사되어 더없이 붉게 빛났다.
 황급히 녀석이 얼굴을 보호하려 오른팔을 안면에 가져다대고 있었지만, 이미 낫이 녀석의 목을 향해 휘둘러지고 있었다.
 ―서걱!
 희미한 실금이 아로새겨진 녀석의 목덜미가, 이내 좌우로 주욱 찢어지며 덜렁거린다.
 “크아아아아!”
 “이런!”
 긴장한 탓에 확실하게 베지 못했다.
 녀석은 고통에 울부짖으며 오른팔을 붕붕붕 마구 휘둘러댔다.
 재빨리 들려진 오른팔의 어깨를 붙잡고 매달린다. 거센 바람이 거칠게 얼굴을 강타하는 바람에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이대로 멀리 날아가버릴지도 모른다.
 급히 허공을 발로 차며 뛰어내린다.
 그와 동시에 좀비들을 내가 뛰어내릴 만한 쪽으로 불러들였다. 일명 좀비 베개. 혹시나 싶어 뒤를 돌아보니 녀석은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왼 주먹을 나를 향해 휘두르고 있었다.
 불타고 있는 뭉치는 녀석의 주먹에 매달려 있었다.
 “···젠장.”
 황급히 모이라는 지시를 취소했으나 녀석의 왼 주먹이 바닥에 틀어박히는 게 먼저였다. 나를 위해 모여들었던 좀비들은 수많은 살덩이 조각이 되어 이리저리 튀어 올랐다.
 ―띠링!
 
 [조련된 몬스터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망 대상 : 좀비(10) - Lv.1(1)]
 [조련된 몬스터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망 대상 : 좀비(9) - Lv.1(1)]
 [조련된 몬스터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망 대상 : 좀비(8) - Lv.1(1)]
 ···.
 수많은 메시지가 내 눈앞을 어지럽혔다.
 그와 동시에 자욱한 먼지가 거대한 몸집을 일으켰다.
 충격을 최대한 줄이려 낙법을 이용했지만, 발목을 삐끗하고 말았다. 발에서부터 올라오는 찌르르한 감각에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황급히 녀석이 볼 수 없는 곳으로 달렸다.
 “괜찮아?”
 ‘···응.’
 다행히 뭉치는 괜찮은 모양이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살덩이를 바라보았다. 처음 조련한 몬스터들이었는데. 홀로그램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전부 다 죽어버린 것이다.
 만약에 지능이 있었더라면 그들 스스로 피할 수도 있을 터였다.
 아쉬움에 얕은 한숨을 내쉬고 낫을 굳게 움켜잡았다. 열 명의 목숨을 가져간 대가로 평생 부려먹을 작정이다.
 녀석은 오른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머리가 반쪽뿐인 데다, 눈알이 하나뿐이었기에 반대쪽까지 보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숨을 멈춘 나는 쏜살같이 녀석이 보고 있는 반대편으로 달려갔다. 그와 동시에 뭉치가 녀석의 앞으로 뛰쳐나왔다.
 어그로는 성공적이었다.
 “크와아아아!”
 녀석이 다시 그녀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순간, 나는 거대한 낫을 휘둘러 녀석의 등짝을 찍었다. 살을 찢는 파육음과 함께 낫의 주둥이가 단단히 틀어박혔다.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크게 등을 돌린 녀석의 힘을 이용해 낫 위로 뛰어올랐다. 녀석의 살이 마치 칼에 잘라져가는 종이처럼 찢어진다.
 이리저리 몸을 뒤틀며 낫을 뽑으려는 녀석의 주먹을 디딤돌 삼아, 다시 한 번 허공을 차올랐다.
 아래로 잡아당기는 것만 같은 답답한 감각과 날카롭게 얼굴과 몸을 스치는 바람이 느껴졌다.
 멈췄던 숨을 내뱉었다.
 맑고 청량한 기운이 몸속에 들어차는 기분이 들었다.
 한 호흡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실눈을 뜬 채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빙글, 몸을 틀어 정확히 녀석의 머리를 향해 두 주먹을 내다꽂는다.
 ―투쾅!
 주먹에 닿은 단단한 무언가가 바스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녀석의 발밑으로 거대한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나는 내가 만들어낸 그 압도적인 광경을 멍하니 보며 떨어지고 있었다.
 ‘시우야!’
 황급히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나는 다행히 제대로 낙법을 펼칠 수 있었다. 동시에 녀석의 몸이 서서히 앞으로 기울어갔다.
 ―파아아!
 
 [축하합니다!]
 [네임드 몬스터 ‘바뭄’을 혼자서 사냥하셨습니다.]
 [최초로 네임드 몬스터를 한 방에 쓰러뜨리셨습니다.]
 [이는 대단한 업적으로, 추가 능력치 및 칭호와 ‘몬스터 조련사’ 김시우 님의 능력에 맞는 보상을 지급합니다.]
 [대단한 업적으로, ‘네임드? 혼자서도 잡아요.’ 달성 칭호를 수여받습니다. 칭호 효과는 칭호 탭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대단한 업적으로, ‘네임드 몬스터도 한 방!’ 달성 칭호를 수여받습니다. 칭호 효과는 칭호 탭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대단한 업적 보상으로, 전체 능력치가 +3 추가 되었습니다.]
 [대단한 업적 보상으로, 다음의 아이템을 받습니다.]
 [‘랜덤 몬스터 알이 담긴 상자’
 - ‘랜덤 몬스터 알’이란, ‘몬스터 조련사’ 김시우 님의 능력에 따라 지급된 보상으로서 네임드(Named)~보스(Boss) 등급에 해당하는 몬스터의 알입니다. 상자를 열면 확률로 선택이 됩니다.]
 [네임드 몬스터 ‘바뭄’을 쓰러뜨리셨습니다. 아래의 보상을 획득합니다.]
 [‘중형 운석의 파편 조각’x2]
 [‘바뭄의 피’x2]
 [‘바뭄의 힘이 담긴 수정’]
 [‘칼레고 오브레토’
 - 저주받은 고대 악마 ‘칼레고’의 영혼이 담긴 귀걸이. 착용자는 공격 받을 시 일정 확률로 고대 악마 ‘칼레고’를 소환하여 그의 보호를 받습니다.]
 
 주욱 떠오르는 업적 보상. 이건 그냥 닫고, 아예 쓰러뜨린 보상만 확인하기로 한다.
 보상으로 받은 것들은 모두 아공간에 들어가 있었다. 아마도 다른 사람이라면 바닥에 있는 것들을 주워야 했을 터였다. 얻은 건 나중에 확인해보기로 했다. 나는 재빨리 쓰러진 바뭄에게 다가갔다.
 “조련!”
 ―띠링!
 
 [조련에 실패하였습니다.]
 
 한발 늦은 걸까. 보상만으로도 많은 이득을 얻었지만, 녀석을 조련해서 부려먹을 생각이었다. 보상에 뜬 시점에서 포기해도 상관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목이 없어져 빈사 상태였던 덩치가 큰 좀비를 조련해본 적이 있었다. 다행히 조련하는 순간 녀석의 목도 붙었다.
 “조련!”
 ―띠링!
 
 [조련에 실패하였습니다.]
 
 거의 빈사상태에 이르렀지만 미약한 생명만 남아 있어도 된다.
 포기하지 않았다.
 ‘시우, 그만해.’
 내게 다가온 뭉치를 바라보았다.
 그저 묵묵히 다시 한 번 외쳤다.
 “조련!”
 ―띠링!
 
 [조련에 실패하였습니다.]
 
 내가 외치는 소리에 멀찍이 떨어져있던 좀비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더.
 “조련!”
 ―파아앙!
 폭죽이 터지는 상쾌한 소리와 함께, 바뭄의 몸 위로 거대한 초록빛 세모가 나타났다.
 
 ―띠링!
 
 [몬스터 조련에 성공하셨습니다.]
 [조련 성공 대상 : Lv.0 바뭄(1) - 쫄따구]
 [높은 등급의 몬스터를 조련하여 ‘몬스터 조련’ 스킬의 레벨업 포인트가 오르지 않습니다.]
 
 드디어 성공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조련된 녀석은 서서히 빌딩에 처박힌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덜렁거렸던 목의 일부는 회복된 것 같았다.
 
 <『몬스터 조합사』 1-2권에 계속>

댓글(5)

깨작슨    
노잼
2017.11.04 12:02
he****    
하~ 답답한 주인공. 대리만족을 원하는 사람은 비추임.
2017.11.05 21:00
의영    
강아지는 초콜릿 먹으면 죽어요 켈베로스인지 모르는 상태였으니깐 초코바말고 다른게 나을듯
2017.11.06 09:53
도롱M    
킬링타임으로 나쁘지 않다. 돈을 쓰라고 한다면 글쎄... 망설여 지게 되는 작품.
2017.11.07 11:19
복순잉    
.잘읽다가 어느순간.. 아..유치해라..
2018.07.29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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