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이계귀환병

1화

2017.12.07 조회 3,667 추천 34


 
 
 prologue.
 
 
 
 
 
 백두산 연구소.
 
 강원도의 태백산맥 깊은 산속에 존재하는 장소로, 겉으로는 그저 민간 시설의 관측소나 천문대처럼 보일 뿐인 장소다.
 
 하지만 실상 이 백두산 연구소는 국방부에서도 최고급의 기밀에 속해 있는 것들을 연구하는 시설이다. 허가받지 않은 누군가가 시설 내부로 들어왔을 때는 발견 즉시 사살해도 좋다는 상부의 명령까지 있을 정도로.
 
 그리고 그 속에서 더더욱 기밀에 부치고 있는 연구가 있었으니.
 
 차원석 연구동―
 
 높이가 10m쯤 되는 거대한 바위,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처럼 직사각형을 이룬 그 비석으로부터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 * *
 
 
 
 우우우웅―
 
 콰쾅!
 
 번쩍―!
 
 눈앞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
 
 “내, 내가 살아 있는 건가?”
 
 희미한 의식 속에서 김 병장은 중얼거렸다.
 
 죽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다.
 
 주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암흑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정말로 운 좋게 숨은 쉴 수 있었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절망스럽기만 했다.
 
 팔과 다리를 뻗어 보아도 그저 허공 속에서 허우적거릴 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럴 즈음, 김 병장은 자신의 뒤에서부터 밀려오는 거대한 압력을 느꼈다.
 
 콰아아아―
 
 “이건 또 뭐야?”
 
 김 병장은 표정을 굳히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것은 무의미한 발악에 불과했고, 거대한 압력이 다시 김 병장의 몸체를 빠르게 밀어냈다.
 
 텅―
 
 “크악―!”
 
 몸에 와 닿은 압력 때문에 김 병장이 비명을 내질렀다. 마치 신체가 엄청난 고속으로 어딘가를 향해 나아가는 느낌이었다.
 
 김 병장은 자신이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구불구불하게 연결된 암흑의 통로 속에서 위아래로 뒤집히고, 눈이 절로 크게 뜨인다.
 
 헛구역질이 나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에 밀려 튕겨 나가는 사이에, 김 병장의 뇌리 속에서 수만 가지의 영상이 스쳐갔다.
 
 ‘망할― 그 때 눈 딱 감고 거절할걸. 제대 하루 전날에 이게 뭔 지랄이냐고! 으아아― 엿 같은 세상아!’
 
 그렇게, 병장 김태식은 절망 섞인 비명을 내질렀다.
 
 
 
 Chap. 1 더럽게 꼬이는 말년 인생
 
 
 
 
 
 “크억!”
 
 거친 숨을 토해 내며 김태식이 기침을 콜록거렸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물이 솟구쳐 올랐고 김태식은 입 안으로 소금을 가득 삼킨 듯한 기분을 느꼈다.
 
 “으윽. 이건 바닷물이잖아.”
 
 간신히 상체를 일으킨 김태식이 소리쳤다.
 
 이윽고 김태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몸이 끈적끈적하게 젖어 있었고, 옷 속에서도 모래가 들어간 듯한 기분이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김태식은 자신이 백사장의 한곳에 밀려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파도가 백사장으로 몰아쳐왔고 그 때마다 하얀 포말이 거품처럼 일어났다.
 
 “그나마 운 좋게 살아난 건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무래도 파도에 밀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어딘가의 바위나 암초 등에 머리를 부딪친 것 같기도 하였다.
 
 다행히 피는 흐르지 않았다. 김태식은 안심했다.
 
 이윽고 백사장에 선 김태식은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딜 봐도 자신이 디디고 선 곳 말고는 섬도 배도 없었다. 하얀 포말의 파도와 야자나무로 보이는 기다란 나무들만 보일 뿐.
 
 ‘대체 여긴 어디야? 혹시 무인도? 아니, 뭘 했다고 무인도에 와? 아······ 그 이상한 게 덮쳤었지? 차원석이었으니······ 설마 여긴 지구가 아닌가?’
 
 “뭐, 이 씨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혼란에 빠진 김태식이 고개를 내저었다.
 
 일단은 살아난 것에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분명 100퍼센트 뒈졌구나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배가 불렀는지, 김태식은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에라, 찝찝해 죽겠네. 이건 뭐, 모래 찜질을 하고 앉은 것도 아니고.”
 
 잔뜩 중얼대던 김태식은 입고 있던 군복을 벗었다. 군화도 벗어서 안에 가득 찬 물도 빼내었다.
 
 그러더니 맨몸으로 바닷물에 들어가기도 하며 온몸에 진득진득 묻은 모래들도 씻어 내었다.
 
 대충 그렇게 한 뒤에 김태식은 바위에 걸터앉아 수평선을 바라보며 잠시 신세 한탄에 빠졌다.
 
 “니미, 하룻밤 푹 자면 제대였는데 이게 무슨 꼴이야? 국방부 시계 돌아가는 것만 죽어라 보며 제대할 날만 손꼽아 기다려왔더니, 젠장.”
 
 그러다가 문득 김태식은 다른 것에 생각이 떠오른 듯 이것저것 확인을 시작했다.
 
 “휴우······ 다행이다. 권총도 그대로 있고 대검도 그대로 있네.”
 
 자신이 야간 순찰 근무를 담당할 때 지급받았던 K­5 권총과 대검도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K­5의 손잡이의 아랫부분에는 쇠사슬이 달려 있었는데, 허리띠처럼 만들어진 탄띠와 연결되어 있었다.
 
 유사시에 권총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나름대로 무사히 그 기능을 해낸 것 같았다.
 
 만약 K­5 권총과 대검 중 하나라도 잃어버렸으면 차라리 제 목숨, 제가 끊는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제대는 고사하고, 헌병대에 끌려가거나 영창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까.
 
 이 외에도 걱정이 더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이 허가받지 않는 지역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어쨌든 김태식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K­5 권총을 분해하기 시작했다. 바닷물에 휩쓸려서 총 안으로 소금물이 들어갔을 게 분명하니까.
 
 권총을 분해해서 손질을 한 뒤에 다시 탄창을 결합했다. 탄창에는 13발의 38구경 군용 탄환이 들어가 있었다.
 
 김태식은 당연히 권총 사격 훈련도 받았고, 그때 사격 점수는 최상급이었다. 대검을 이용한 단검 격투술도 김태식의 주특기 중 하나다.
 
 주위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김태식은 하룻밤을 보낼 준비를 시작했다. 어차피 수색대에 있을 때에 야외 훈련을 밥 먹듯이 해 왔고, 그에게 이런 것은 별로 큰 어려움이 아니었다.
 
 장비가 부족해도, 주위에서 필요한 것들을 끌어 모아서 대충대충 만들면 되는 것이다.
 
 김태식은 비록 담배를 피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라이터는 항상 갖고 다녔다. 다행이었다.
 
 타다닥―
 
 모닥불이 피어 올랐다. 김태식은 바닷가에서 잡은 물고기를 꼬챙이에 꿰어서 굽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얼마 동안 굶고 있었던 것이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김태식이 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이윽고 물고기가 구워지자 그는 그것을 우적우적 씹어 먹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이게 무슨 꼴이야? 씨바아아아알―”
 
 그렇게 소리쳤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억울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쯤 자신은 중대장에게 제대증을 받고, 수많은 쫄따구들의 부러운 눈초리를 뒤로하며 룰루랄라― 하면서 사제, 다시 말해 민간 사회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 뒤에 또다시 예비군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런 것쯤이야 지금까지 겪어 온 군 생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법.
 
 그런데 제대를 하루 남기고, 이런 무인도에 떨어졌으니······ 이건 한마디로 뭐 된 거나 다름없다.
 
 아니, 아직까지 확실히 단정할 수는 없지만서도.
 
 확실한 건 어딘지도 모를 이곳에서 운 좋게 부대로 생환해 봐야, 헌병대부터 시작해서, 기무사, 그리고 나중에는 국가정보원까지 이런저런 감찰 정보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게 될 것이란 점이다.
 
 “아, 이래저래 더럽게 꼬였구나. 아악, 씨바아알!”
 
 수십 수백 번이고 목이 쉴 정도까지 악을 바락바락 질러 보았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성을 되찾아야만 했다.
 
 부대로 복귀해서 겪게 될 개 같은 상황은 둘째 치더라도 일단은 이곳에서 살아나갈 방법을 찾는 것이 우선이니까.
 
 이곳이 그저 단순히 무인도인지, 다른 차원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얼마 후 그는 야자나무 잎 등을 주워 모아 대충 바닥에 깔고 잠자리를 마련했다.
 
 그런 뒤, 잠시 드러누워서 하늘을 보던 김태식은 눈을 동그랗게 떠야만 했다.
 
 “뭐야, 이건 또. 이게 무슨 별자린데······.”
 
 눈에 익숙한 별자리를 찾는 것이 힘들었다.
 
 김태식이 특별히 천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군에 있으면서 지도나 나침반 따위가 없을 때 하늘의 별자리를 이용해 방향을 잡는 방법을 훈련했었다.
 
 북반부와 남반부의 별자리가 다르다지만, 그런 사실 역시 김태식은 훈련을 통해 익히 배웠다.
 
 하지만 지금은 밤하늘에서 방향이나 위치를 짐작할 만한 어떤 것도 찾아내기 힘들었다.
 
 “쳇, 할 수 없군! 그래도 일단 내일 해가 어느 쪽에서 떠오르는지 확인하면, 최소한 동쪽은 알게 되겠지.”
 
 그렇게 밤은 깊어 갔다.
 
 
 
 * * *
 
 
 
 “더 이상은 방법이 없군.”
 
 그렇게 소리치며 김태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면에 있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김태식의 미간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그동안 김태식은 물고기를 잡아 식량으로 삼으면서 해변가에서 생활했는데,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었을 뿐, 김태식이 줄기차게 기다렸던 구조의 가능성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일단 해가 떠오르는 방향으로 동쪽이 어디인지는 파악했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이 여전히 혼란스럽기만 했다.
 
 일주일 동안 해변에서 계속 관찰을 했지만, 지나가는 배나 그 비슷한 것도 발견할 수 없었고, 계속해서 불을 피우고 연기를 내면서 신호를 보냈지만 허사였다.
 
 하다못해 하늘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도 없었다. 어떤 배나 비행기도 근처로 지나가지 않았고, 그저 들리는 건 규칙적으로 밀려드는 파도 소리뿐이었다.
 
 일주일이나 지나자 김태식은 더 이상 이곳에서만 참고 기다릴 수가 없었다.
 
 구조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이제는 내륙으로 들어가는 것밖에 없다. 운 좋게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을 통해 한국으로 구조 연락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결정을 내린 김태식은 신속하게 준비를 했다.
 
 최소 일주일치 분량의 식량을 준비했다.
 
 그 대부분이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굽거나, 훈제해서 만든 것이지만 식량으로서는 그만이었다.
 
 그 뒤 김태식은 근처에서 덩굴이나, 나무, 그 외에 여러 가지들을 끌어 모아서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도 제작했다.
 
 이틀간에 걸친 작업 끝에 모든 준비가 끝나자 김태식은 식량을 챙겨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휴대하고 있던 대검은 돌에 대고 갈아서, 좀 더 칼날이 예리해지도록 만들었다.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갖고 있는 K­5 권총에도 탄창을 결합해서 안전장치를 해제해 놓았다. 만약 K­2 소총이나, K­3 분대 기관총 같은 것이 있었다면 훨씬 더 안심이 되겠지만 지금 자신이 갖고 있는 무기는 대검과 권총 한 자루, 그리고 세 개 분의 탄창이 전부였다.
 
 “그럼. 출발해 볼까?”
 
 그렇게 소리친 뒤에 김태식이 식량과 필요한 것들을 챙겨 들고 앞으로 나아갔다.
 
 일단 김태식은 방향을 내륙으로 잡았다. 무성하게 자라 있는 수풀을 대검으로 쳐내면서 전진을 시작한 것이다.
 
 
 
 * * *
 
 
 
 탁!
 
 김태식이 대검을 휘두르자 앞에 있던 무성한 풀들과 나뭇가지들이 차례차례 잘려 나갔다.
 
 그렇게 조금씩 길을 개척하며 나아가던 중이었다.
 
 처음 며칠간 김태식은 마치 정글 지대에 들어온 걸까 하고 생각에 빠졌었다. 빼곡하게 자라 있는 수많은 나무들과 덩쿨들이 앞길을 막고 있었으니, 그것을 헤치면서 나아가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다만 체력 하나는 알아주던 그였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정글처럼 빽빽하게 자란 나무들 아래로, 상당히 후덥지근한 기온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서서히 끝나 가고 있었던 것이다.
 
 수풀 지대는 끝났고, 김태식의 앞에 수림 지대가 나타났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김태식이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한국의 숲 속에 비해서는 나무들이 많이 자라 있었고 풀들도 무성했다.
 
 이곳에서 여행을 계속하면서 김태식은 색다른 것들을 여러 개 발견했다.
 
 그중 하나는 전혀 듣도 보도 못했던 수많은 야생 식물들이었다. 그중에서도 김태식을 놀라게 한 것은, 거대한 고사리처럼 보이는 나무들로, 김태식이 알기로 그런것들은 주로 공룡들이 활개치던 백악기나 고대 중생대에서 자라던 식물들과 나무들인데 이런 곳에서 발견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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