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퓨리 나이트

1화

2017.12.07 조회 2,769 추천 25


 푸욱.
 
 
 
 등을 뚫고 한 자루의 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피를 묻혔는지 검신에는 진득한 피가 잔뜩 묻어났다.
 
 
 
 “아······ 악마다!”
 
 
 
 무기를 든 병사들은 그들 앞에 선 단 한 명에게 막대한 공포를 느꼈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자는 그들과 같은 사람이었다. 무섭게 생기기는커녕 오히려 생김새도 평범하고 왜소한 체구를 가진 그를 두고 무려 100명의 병사들이 겁먹고 있었다.
 
 
 
 “후우, 후우.”
 
 
 
 시체에 박힌 검을 빼낸 남자는 거친 숨을 입 밖으로 내뱉는 한편, 뜨겁게 타오르는 시선으로 앞을 응시했다.
 
 
 
 눈앞의 병사들을 보는 순간, 또다시 머릿속에서 지독한 분노가 끓어올랐다. 이미 탈력되어 이완된 근육들에 알 수 없는 힘이 들어가고 전신에서 피가 뜨겁게 끓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짐승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고성을 내지른 남자는 홀로 100명의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아아악!”
 
 
 
 “사, 살려 줘!”
 
 
 
 비명과 절규가 울려 퍼졌다. 단 한 명이 100명을 압도하며 살육을 자행했다.
 
 
 
 그리고 사내와 같은 자들은 또 있었다.
 
 
 
 제국은 이들을 광전사라 불렀다.
 
 
 
 말 그대로 분노의 정령 퓨리(Fury)에 의해 이성 없이 오로지 살육만을 일삼는 존재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들의 첫 출현은 8년 전쟁의 막바지쯤이었다.
 
 
 
 레펠드력 489년.
 
 
 
 북부의 소국가였던 리치몬드 공국은 돌연 자신의 종주국인 리히텐트 제국을 공격한다.
 
 
 
 겨우 150만의 인구를 가진 소국이 3,000만에 이르는 인구에 대륙의 3분의 1을 영토로 가진 리히텐트 제국을 이길 수 있다고 여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 통념은 단 2년 만에 리히텐트 제국의 수도인 리히튼이 함락되는 것으로 깨지게 된다.
 
 
 
 누구도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리치몬드 소국이 보유한 특수한 전력 ‘정령 융합체’ 덕분이었다.
 
 
 
 인간의 몸에 정령을 주입하여 인간이 정령의 힘을 낼 수 있게끔 하는 정령 융합체를 만드는 데 성공한 리치몬드 공국은 그들을 적극 활용해 리히텐트 제국을 함락시키고 말았다.
 
 
 
 결국 리히텐트 제국은 5년 만에 멸망하고 새로이 리치몬드 제국이 탄생했다. 그리고 이에 위기감을 느낀 대륙 각국들은 연합군을 결성해 신생 리치몬드 제국과 전면전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목숨이 사라졌으며 대륙은 극도로 피폐해져 갔다.
 
 
 
 지루한 싸움이 이어지고 처음의 기세를 잃은 리치몬드 제국은 점차 세력을 집중시킨 연합군에게 밀리기 시작해 전세는 평행선을 이루게 된다.
 
 
 
 이에 제국은 기존의 원소 계열 정령 대신 보다 다루기 까다롭다고 알려진 정신계 정령을 이용한 정령 융합체들을 만들게 된다. 이 후기 실험체 중 하나가 바로 분노의 정령 퓨리를 이용한 정령 융합체였다.
 
 
 
 끝없는 분노의 힘으로 전장에서 광전사가 되어 날뛰는 이들의 힘은 실전에서 큰 가치를 입증해 냈다.
 
 
 
 불리한 판세에 있던 수십여 곳의 전장에 투입된 이들은 압도적인 힘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동시에 전쟁에 참가한 연합군에 끝 모를 두려움을 안겨다 주었다.
 
 
 
 하지만 명성과 상관없이 죽음을 도외시한 그들은 전장에서 끊임없이 쓰러져 갔다. 그리고 전쟁이 끝났을 때, 이들의 존재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1장. 방랑
 
 
 
 
 
 
 
 한적한 시골 마을에 최근 흉흉한 일이 생겼다.
 
 
 
 근래에 한 산적단이 마을 근처에 자리 잡은 이후 그들의 횡포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참다 못한 마을 주민들은 마을 유일의 식당에 모여 대책 회의를 열었다.
 
 
 
 “제길! 당장 금화를 10닢이나 바치라니. 우리에게 그런 돈이 어디 있어?”
 
 
 
 “당하고만 있지 말고 영주께 사실을 알려요.”
 
 
 
 한 청년이 혈기 좋게 말하자 그보다 나이 많은 사내가 콧방귀를 뀌며 대꾸한다.
 
 
 
 “바보 같은 소리 마. 영주가 우리 같은 아랫것들을 신경이나 쓸 것 같아?”
 
 
 
 “그럼 이대로 당하고만 있잔 말입니까?”
 
 
 
 “누가 그렇대? 좀 더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라는 거잖아.”
 
 
 
 “여차하면 우리끼리라도 싸웁시다!”
 
 
 
 호기로운 청년의 말에 주민 대부분은 꺼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급기야 한 사람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놈들이 얼마나 무서운 놈들인지 너도 잘 알잖아!”
 
 
 
 “겨우 20명 정도예요. 우리 마을 사내들이 모두 나선다면······.”
 
 
 
 “그럼 그 두목은 어쩌고? 그자가 보인 힘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윽.”
 
 
 
 청년은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모두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
 
 
 
 “그럼 이대로 놈들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까?”
 
 
 
 “우리 마을 사정에 금화 10닢을 바치려면 다들 있는 것을 탈탈 털어야 될 텐데, 하아.”
 
 
 
 한숨에 이어 절망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당장 그 돈을 줘도 그다음에 또 무리한 요구를 해 올 게 분명해.”
 
 
 
 사람들의 우려를 본 촌장은 긴 한숨을 토해 냈다. 그 모습을 본 일부 주민들도 같이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소용없어. 용병을 쓰려면 돈이 필요한데 결국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되고 마는 짓이야.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마을을 구할 뾰족한 방법은 나오지 않았고 주민들의 시름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끼익.
 
 
 
 이때, 여태까지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순간 모든 주민들의 눈이 문 쪽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꽤 두터운 외투를 입은 낯선 사내였다.
 
 
 
 “······.”
 
 
 
 다들 사내를 보며 침묵을 지켰다.
 
 
 
 상대는 왼쪽 눈에 흐릿하고 작은 검상이 있긴 하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착해 보이는 얼굴을 한 보통 체격의 청년이었다.
 
 
 
 어디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청년이었다.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사내에게서 묘한 거리낌을 느꼈기에 다들 청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면서 마을 사람들은 혹시나 이 처음 보는 사내가 산적단의 일행이 아닐까 걱정했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사내는 사람들을 눈으로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옆머리를 손으로 긁적이며 이리 말했다.
 
 
 
 “실례합니다. 혹시 장사 중이시라면 식사 좀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
 
 
 
 순박한 목소리로 사내가 그리 말하자 갑자기 장내의 긴장은 풀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마을 주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저마다 내뱉었다.
 
 
 
 “여행자신가?”
 
 
 
 “아, 예.”
 
 
 
 촌장의 물음에 사내는 눈웃음을 살짝 보이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어색히 물었다.
 
 
 
 “그런데 제가 때를 잘못 맞춰 왔나요? 다들 여기서 뭔가 하시는 것 같아 보이는데요.”
 
 
 
 “아닐세.”
 
 
 
 촌장은 그리 말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들 일어나 각자 할 일 하러 가게. 터커도 장사를 해야 할 것 아닌가.”
 
 
 
 그 말에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사내는 그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 카운터에 서 있던 터커가 물었다.
 
 
 
 “식사를 하고 싶다고? 지금 우리 가게에선 간단한 스튜하고 빵만 줄 수 있는데 괜찮겠나.”
 
 
 
 “으음······ 저기······.”
 
 
 
 왜인지 사내는 말을 갑자기 더듬었다. 그런 모습에 터커는 의아함을 담은 시선을 보내었다.
 
 
 
 잠시 머뭇대던 사내는 입을 열었다.
 
 
 
 “실은 제가 가진 게 없어서 그런데 여기서 일하는 것으로 삯을 대신하면 안 될까요.”
 
 
 
 “허허.”
 
 
 
 돈이 없다는 말에 터커는 어처구니 없어 하며 웃었다. 이에 사내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문득 터커는 사내가 어디서 왔는지가 궁금해졌다.
 
 
 
 “자네, 어디서 왔나?”
 
 
 
 “남쪽에서 왔습니다.”
 
 
 
 “남쪽이라, 꽤 멀리서 왔군.”
 
 
 
 “그, 그렇습니다.”
 
 
 
 왠지 사내가 불쌍해 보였기에 터커는 인심을 쓴다는 생각으로 사내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노동력은 확실히 본전 뽑을 만큼 써먹을 테니 그리 알게.”
 
 
 
 “감사합니다.”
 
 
 
 
 
 
 
 잠시 뒤, 터커는 사내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내의 앞에 있던 스튜와 빵이 동났다. 마치 며칠 굶기라도 한 것처럼 금세 다 먹어치우는 그 모습에 터커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며칠 굶기라도 했나?”
 
 
 
 “아하하.”
 
 
 
 사내는 머쓱하게 웃을 따름이었다. 그 모습에 터커는 음식을 더 가지고 나왔다.
 
 
 
 배불리 먹고서야 만족스런 표정을 지은 사내는 곧 터커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며 말을 했다.
 
 
 
 “앞으로 밥값만큼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하하, 알겠네. 일단 짐을 풀 방을 알려 주지.”
 
 
 
 “예.”
 
 
 
 “아 그리고 한 가지 말해 두겠는데 이곳에 있을 때는 되도록 조용히 지내게.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일찍 여기를 떠나는 게 좋을 거야.”
 
 
 
 “예? 왜 그러십니까?”
 
 
 
 “그럴 이유가 있다네. 뭐 그 사정까지는 들어도 좋을 게 없으니 딱히 알려 하지는 말게나.”
 
 
 
 “아, 예.”
 
 
 
 사내는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보며 터커는 물었다.
 
 
 
 “아, 서로 소개가 늦었군. 난 터커라고 하네. 자네 이름은 뭔가?”
 
 
 
 “제 이름······ 말입니까?”
 
 
 
 왠지 모르게 사내는 자신의 이름을 대는 것을 꺼리는 듯했다. 하지만 곧 결심을 했는지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클라인이라고 합니다.”
 
 
 
 “좋은 이름이군. 나이는 몇 살인가?”
 
 
 
 “22살입니다.”
 
 
 
 “생각보다 나이가 어리군. 난 20대 중반이라고 봤는데.”
 
 
 
 터커의 말에 클라인은 쓰게 웃었다.
 
 
 
 “그런데 눈의 상처도 그렇고 전에 꽤 험한 일을 한 것 같은데 혹시 용병이었나? 아니면 병사?”
 
 
 
 “······병사였습니다.”
 
 
 
 “허, 역시 그랬군. 하긴 자네 같은 친구가 용병이었을 리는 없지. 그럼 지금 제대해서 고향에 돌아가던 중인가?”
 
 
 
 “······그런 셈이죠.”
 
 
 
 클라인은 이번에도 약간 머뭇대다 대답했다. 그에 터커는 뭔가 사정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보아하니 전쟁터에서 꽤 험한 꼴을 본 것 같군. 하긴 5년 전 전쟁은 어느 전쟁보다 참혹했지.”
 
 
 
 “아하하.”
 
 
 
 클라인은 손으로 뒤통수를 만지며 머쓱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한때는 그가 병사였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럼 오늘은 2층에 있는 빈 방에서 쉬고 내일 내 일 좀 도와주게.”
 
 
 
 “알겠습니다.”
 
 
 
 클라인은 환히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방랑자 클라인은 잠시 이 마을에 머물게 됐다.
 
 
 
 * * *
 
 
 
 클라인은 다음 날부터 터커의 일을 도왔다.
 
 
 
 “영차!”
 
 
 
 나무꾼의 집에서부터 가져온 묵직한 나무 짐을 등에 짊어지고 클라인은 길을 걸었다.
 
 
 
 낯선 외부인이 보이자 길 근처에서 놀던 아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우와, 형 힘 되게 세다.”
 
 
 
 “오빠, 오빠. 어디서 왔어요?”
 
 
 
 “아 응. 남쪽에서 왔단다.”
 
 
 
 클라인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아이들의 말을 일일이 들어 주었다. 그런 그의 태도에 아이들은 낯선 그에게도 스스럼없이 말을 붙였다.
 
 
 
 결국 클라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아이들과 잠시 놀아주었다.
 
 
 
 “오빠는 고향이 어디예요? 여기보다 큰 마을이에요?”
 
 
 
 “글쎄, 여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실은 아주 옛날에 떠나서 지금은 잘 모르겠단다.”
 
 
 
 “왜 떠났는데요?”
 
 
 
 “그건 별로 말하고 싶지 않구나.”
 
 
 
 “에이, 그러지 말고 가르쳐 줘요, 네?”
 
 
 
 “미안, 후훗.”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