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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석호 1-1권

2017.12.12 조회 4,049 추천 57


 # 1
 
 “석호야. 니 서울로 가라.”
 갑자기 성주 집으로 호출을 하시길래 뭔가 했는데··· 역시 이 백숙은 타지에서 홀로 지내는 아들새끼 걱정되어 먹이는 게 아니었나 보다.
 “아부지. 와 갑자기 서울로 가라 카시는데요?”
 “마! 니 맨날 쌈박질이나 해 쌓코 언제 철들기고”
 “아. 싸우고 싶어 싸우는 게 아니라니까요. 놈들이 시비를 걸었다니까요···.”
 “그렇다고 사내새끼가 그리 주먹을 가벼이 쓰나”
 “그럼 뭐 제가 맞고 왔어야 됐습니까.”
 갑자기 5살 어린 동생 진호가 신나서 물어본다.
 “형! 이번엔 몇 대 일로 싸웠는데?”
 “8 대 1이었다. 뭐 그중 덤빈 건 두 놈이긴 한데, 일단 여덟 놈이 오긴 왔었다.”
 “이겼나?”
 “암. 그카니까 형이 지금 여와 닭 뜯고 아있겠나.”
 “석호야. 아한테 쌈박질한 얘기 하지 마라. 배운다.”
 어머니가 타박하시길래 입을 닫는데, 진호는 그래도 신나서 떠들었다.
 “형! 내도 이번에 우리 반 통 먹었다 아이가!”
 “잘했다. 그케도 니 아들 때리고 그라면 안 된다. 알았나.”
 “당연하다! 내 누구 동생인데!”
 자식.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데, 아버지가 젓가락으로 손등을 강하게 탁!! 내리치며 말씀하셨다.
 “잘한다. 잘하는 짓이다! 니 깡패새끼가! 동생이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면, 형이 되가 혼을 내주든가 해야지. 이 뭐하는 짓이고!”
 억울하고 서러운지고··· 싸움을 잘하고 싶어 잘하나··· 그냥 아버지한테 맞고 개기다 보니, 맞는데 이골이 났고, 또래의 주먹이 시시했을 뿐이었는데······.
 기가 죽으니, 어머니가 다독인다며 말씀하셨다.
 “석호야. 암튼 아부지 말씀은 그런 게 아이라 더 좋은 환경에 가서 공부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니는 가만 있어봐라. 임마가 지금 대구 같은 작은 곳에 있으니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기다. 서울로 가가 큰 세상을 보면 임마도 기가 팍 죽을 기다.”
 똑같은 이야기를 3년 전에도 들었다.
 “아. 아부지! 진짜 듣자듣자 하니까. 자식새끼 기 죽으라는 게 아부지가 하실 말씀은 아니지 않나요!”
 “니 지금 뭐라캤노? 임마. 새 학기 시작하자마자 쌈박질을 얼마나 해 쌓으면, 담임이 학부형을 부르는 것도 아니고, 찾아와 사정을 하겠노.”
 “···그게 원래 우리 학교가 3, 4월엔 싸움이 좀 잦은 걸로 유명해가.”
 “시끄럽다! 니 그렇게 쌈박질이 좋으면 내랑 함 붙자! 나온나!”
 덤비라고 덤빌 수 있나··· 슬며시 꼬리나 내리고 닭이나 뜯어먹었다.
 
 21세기다. 그런 21세기가 되고 난 다음에도 벌써 강산이 한 번은 바뀌고 두 번째 변신에 들어가는 시기였다.
 그런 세상에서도 아버지나 우리 가족은 뭐랄까··· 그냥 전형적인 시골 사람들이었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가 공부를 하고, 또 그 도시를 떠나 더 큰 도시로 가 공부를 하고.
 14살부터 중학교를 혼자 다녔다는 것만도 벌써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인데··· 암튼 이 아버지의 말도 안 되는 교육방침에 의해 나는 또 다시 서울로 가게 되었다.
 
 ***
 
 성주 터미널에서 어머니는 짐을 손에 쥐어주며 신신당부를 하셨다.
 “서울 가면, 막내 삼촌이 나와 있는다 캤으니까. 말 잘 듣고.”
 아무래도 서울에서는 혼자보단, 자취하는 막내 외삼촌네 집이 낫겠다고 그래 말씀들을 하셨다. 나이차도 그리 나지 않고, 삼촌보다는 큰형 같은 존재라 내도 좋았다.
 온 가족 친척과 그리고 대구서 잠깐이라도 얼굴 본다고 온 친구 네 놈. 상철이, 민수, 정배, 성기와도 이별을 하며 버스에 올랐다.
 버스 문이 닫히고 창가에 앉아, 손을 흔들며 인사를 마쳤다.
 금방 조잡한 시내를 지나, 고속도로에 올랐다.
 솔직한 말로 두근거리기도 하고 겁도 나기도 했다.
 서울 생활은 어떨까? 어떤 친구를 사귀게 될까? 두근두근거리며 다음 날 전학수속을 밟았다.
 “안녕하십니까. 김석호라고 합니다.”
 한강 이남에 위치한 양성고등학교라는 곳이었다. 새로운 학교는 그 학교명에서 밝히듯 남녀공학이었다.
 남녀공학··· 남녀공학!!! 하이고야 아부지 고맙습니다. 열심히 살겠습니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바람에 실어 보냈다.
 막내 삼촌은 대학생에 취준생이라 같이 못 움직이고, 혼자서 전학 수속을 밟았다.
 낯선 교복을 입고, 교무실을 찾아가니, 젊고 아름다운 여선생님이 내를 반겨주셨다. 성함은 이신아 선생님이셨다.
 “어. 그래 네가 석호구나.”
 “예. 잘 부탁드립니다.”
 신아 쌤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난처한 듯 물었다.
 “설마··· 혼자 왔니?”
 “예. 전 대구에서도 혼자 지냈는데요.”
 “어··· 저런···.”
 이런 오해를 많이 받아봤기 때문에 먼저 선수를 쳐 말했다.
 “쌤. 저희 부모님은 잘~~ 살아계시고요, 저랑 사이도 좋으시구요. 아무 걱정하실 거 없어요. 그냥 저희 아부지가 좀 엄한 분이시라, 이런 일들은 혼자 처리하라는 주의시거든요. 저는 14살 때부터 밥하고 빨래도 혼자서 잘해내고.”
 “어. 그래그래. 앞으로 선생님이 잘해줄게. 걱정 말고 좋은 친구들 많이 사귀렴.”
 담임 신아 쌤은 젊고 아름다우셨다. 무엇보다 그 조곤조곤 서울 말투가 더 얼굴을 빛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담임보다 우리 누나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두 달간 피를 흘렸던 대구 중강고는 지역에서 이름난 남자고등학교였다.
 속된 말로 ‘중강을 잡으면 나중에 구의원 정도는 당선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런 명성에 힘입어 학업이나, 운동, 사업 쪽으로 걸출한 선배들이 많은 지역 명문이었다.
 무엇보다 사내놈들이 득시글하다보니, 학기 초의 살벌함이 학교 명성과 별개로 억수로 유명했다.
 나와 친구들은 그 싸움에서 승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엄밀히 학교를 다 잡은 것도 아니었고, 1학년을 넘어 이제 선배나 타 학교와의 마찰이 벌어질 것 같은 긴장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 양성고등학교는 그런 살벌함이 전혀 없었다.
 난 모든 고등학교가 우리 중강고 같은 줄 알고 있었는데, 한편으론 낯선 환경이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여기는 아이들이 실내화를 신고 다니고 있었다.
 교실 문이 철문이 아니었다.
 복도에 유리 창문이 달려 있었다.
 창문과 복도 중간 중간 아기자기하고 색색이 박힌 글씨가 적혀 있었다.
 남녀 화장실이 따로 있고, 이건 뭐 남녀공학이라 당연하다고 치지만. 여학생과 남학생이 같이 복도를 거닐고 있는 풍경은 정말 낯선 것이었다.
 난 전학생 특유의 낯설음과 중강고와는 180도 다른 화목한 분위기가 적응되지 않아 쭈뼛거리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담임보다 누나였으면 좋겠는 신아 쌤을 따라 1학년 7반에 도착했다.
 네모난 플라스틱에 적힌 1-7.
 남녀공학은 이런 숫자조차 귀엽게 써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숫자가 맘에 든다. 여기가 앞으로 내가 지낼 공간이라는 마음에 기합을 넣으며 교실로 들어갔다.
 
 
 # 2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 앞에서, 여학생들이 칠판에 낙서를 하는 광경을 보았다.
 여가 진짜 남녀공학은 공학인가 보다. 하며 속으로 쾌재를 지르는데, 아들이 신아 쌤한테 물었다.
 “어! 선생님 누구예요?”
 물론 교실에 남자들도 있다. 근데 그게 눈에 들어오나.
 “자 조용조용. 전학생이 왔어요. 다들 잠깐만 자리에 앉아 줘.”
 담임이 젊은 여선생이라 그런가 반이 통솔되지 않았다. 다들 대충 앉는 듯 마는 듯 자리에 걸터앉아 소란스런 분위기가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도 더 그랬을 거다.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다들 반갑다. 내는 김석호라고 한다.”
 최대한 사투리를 억누르며 말한다고 했는데, 그게 그렇게 웃긴가. 반 애들이 자지러져라 웃는다. 뭐 웃는 얼굴이 싫지는 않다. 난 친구들이 웃는 게 좋다. 근데 담임쌤이 난처한 말을 하셨다.
 “석호는 시골에서 왔어. 그러니 너희들이 잘 대해 줘야 해.”
 헐~ 이런! 젊고 아름다운 분이라 생각했거늘. 담임 선생님이 큰 것을 건드리셨다.
 “쌤! 대구는 시골이 아닌데요!”
 “아. 그러니? 미안 선생님이 한 번도 가보질 않아서.”
 그러자 반 애들은 또 뭐가 웃긴지 깔깔거리며 자지러졌다. 뭐, 그래 대구가 시골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데. 아이들이 신나하고 좋아하면 좋은 거지. 나도 활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학우 여러분께 오해를 받을까 말합니다. 대구는 여러분이 아는 그런 시골이 아입니다. 지하철도 있고, 맛집도 많고. 암튼 번화한 도시입니다.”
 역시 사투리는 가장 쉽게 타인을 웃기는 수단인가 보다. 그저 내가 입만 열면 다들 자지러진다. 뭐가 됐든 앞으로 인기는 얻기 쉽겠다.
 자리에 들어가 앉으니 남녀를 가리지 않고 반 애들이 다가오는데, 그중 저 멀리서 다가온 공부 좀 하게 생긴 샌님 같은 남학생이 물었다.
 “너. 진짜 대구에서 전학 왔어?”
 난 고개를 끄덕여주고, 짝으로 앉은 여학생을 보며 말했다.
 “와 니들 대구 모르나?”
 아까부터. 아니 처음 이 교실에 들어왔을 때부터. 이 여학생이 그렇게 눈에 들어왔다.
 진짜 어떻게 이리 이쁜 아가 다 있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야랑 짝이 됐는지. 참말로 서울 만세다!
 그 곱고 이쁜 아도 내를 보더니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투리 재밌다.”
 “사투리가 재밌나?”
 “어. 신기해.”
 “뭐가 그리 신기한데?”
 그러자 곱고 이쁜 아는 씨익 하고 미소를 지어준다. 막 심장이 두근X2을 넘어가 쾅쾅거렸다.
 그래 야한테 반하면서, 내 인생 만세. 아버지 만세. 서울 만세를 속으로 부르는데, 아까부터 알짱거리던 샌님 같은 남학생이 다시 물었다.
 “야. 대구 어디?”
 “와. 니 대구 아나?”
 “아니. 그냥 물어봤어.”
 “하하 모르면서 뭘 자꾸 묻는데.”
 다시 녀석을 지나쳐 짝궁인 여학생을 바라봤다.
 근데 농담이 아니라, 진짜 이 친구가 얼굴이나 외모가 장난이 아니다.
 난 짝으로 있는 여학우의 미소를 얻고자 계속해서 말했다.
 “암튼 인자는 서울놈이다. 대구 이야기 말고 서울 이야기 하자. 여가 강남이가?”
 “어? 여긴 강남 아닌데.”
 “와. 한강 이남이면 다 강남 아이가?”
 그러자 야는 또 씨익 하고 웃었다.
 좋단다 좋단다 가시나. 가만 보이 그냥 얼굴도 이쁜데, 웃는 얼굴이 더 반반하이 곱구만.
 “암튼 니 이름이 뭐꼬?”
 “희연이. 이희연.”
 “오~ 희연이. 내는 석호다. 앞으로 잘 부탁한데이.”
 “잘 부탁한데이~~”
 “따라하지 마라.”
 “따라하지 마라.”
 아고 이쁜 아가 사투리도 따라해 주고, 진짜 영광이다.
 뭐 어쨌든 이렇게 반에 스무스 하게 안착하게 되겠지. 그래 이게 청춘이지. 쌈질이나 하고 그게 청춘이가.
 좋다. 내는 오늘부터 다시 태어난다.
 그래! 진짜로 다시 태어나는 거다!!
 
 그래 맘을 먹고 있는데, 아까부터 자꾸 알짱거리던 샌님 같은 녀석이 말했다.
 “너. 근데 왜 나 무시해?”
 “뭐?”
 얌전하게 생겨 공부 좀 하게 생긴 놈이 정색을 하며 묻길래, 차분히 답해줬다.
 “내가 언제 무시했는데?”
 “지금 계속 무시하고 있잖아.”
 “내가 언제.”
 그러자 우리 고운 희연이가 녀석에게 말한다.
 “준학아 안 무시했어.”
 “아냐. 이 자식이 지금 날 개무시했어.”
 맞다. 개무시했다. 새끼 샌님 같아가 눈치는 있다. 그래도 니 같으면 이쁘고 고운 우리 희연이가 옆에 있는데, 니 같은 샌님한테 관심 주고 싶겠나.
 라고 입 밖에 꺼냈다가는 바로 싸움이 벌어지겠지. 그냥 가만히 있자고 속으로 되뇌는데, 거 생각 할수록 신기하네. 이건 내 못 참겠다.
 “어― 희연아. 임마 이. 와 이 카는데?”
 그러자 우리 고운 희연이가 설명을 해 주기도 전에 샌님 같은 준학이 놈이 말한다.
 “너 앞으로 조심해.”
 이건 또 뭔 고전적인 문장이고.
 “카하하하 니 지금 뭐라 캤노?”
 “웃어? 지금 너 웃었어?”
 “알았다. 알았다. 내 무시해가 미안하다. 화 풀어라.”
 조용히 넘기자. 첫날 아이가. 그런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는데 녀석이 무시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지도 내 무시하고 있으면서···.”
 서울에서 생각하는 지방 사람들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방에서 생각하는 서울 사람들에 대한 어떤 이미지가 있다.
 이 녀석은 그 지방 사람들이 생각하는 ‘서울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 것 같았다. 난 녀석을 보며 참 여가 서울이긴 서울인갑다. 생각하는데, 우리 고운 희연이가 말했다.
 “석호야. 준학이한테 가서 미안하다 그래.”
 “뭐가? 내가 뭘?”
 “쟤는 애는 나쁜 애가 아닌데 좀 성격이 문제가 있어서···.”
 “와. 자 뭐 있나?”
 우리 고운 희연이가 이리 친구 걱정을 할 이유가 뭔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야겠구만. 그런데 그러기도 전에 갑자기 교실 뒷문이 벌컥 열리며 한 무리의 덩치들이 들어왔다.
 “씨발! 대구에서 왔다는 촌놈 새끼가 누구야!!”
 오호~ 이런 이런. 그래서 우리 고운 희연이가 그런 걱정을 했는가 보구나.
 
 역시나 준학이 놈이 덩치들을 끌고 성큼거리며 다가온다.
 “어. 석호야 나는 잠깐···.”
 희연아 나를 버리고 가지 마라. 다시 돌아 올기재? 하는 헛소리를 혼자 되뇌는데, 그 사이 주변은 깔끔하게 정리되고. 준학이 놈과 덩치들이 서가 내를 내려다 봤다.
 “야. 김석호. 다시 묻는다.”
 하하하 이 녀석 이거 재미난 놈이구만.
 “그래 뭐가?”
 녀석은 이 패거리들을 끌고 와도 긴장하지 않는 내가 놀라운가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너. 진짜 대구에서 전학 온 거야?”
 “카하하하 뭔데? 니 지금 뭐하는데? 크하하하하”
 이 무슨 또라이고 미친놈인데. 진짜 세상에 별 또라이가 다 있는 거 같다.
 “마. 니. 그게 그리 궁금했나?”
 “···아니. 근데 넌 내 말을 무시했어.”
 “마. 정신 차리라. 니 지금 뭐하자는 플레이고?”
 그러자 묵직한 손이 내 어깨를 턱 하니 잡았다.
 슬 느낌이 왔다. 피할 수 없는 느낌이···.
 혓바닥으로 입술을 살살 적시며 고개를 돌려 물었다.
 “어이 덩치. 뭔데 이건.”
 “어이 덩치? 이 새끼가 아예 말버릇이 잘못 들었구나.”
 “마. 니 이 손 치아라. 그리고 준학이 니도. 내 니 말 무시한 건 미안하다. 그케도 지금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첫날이다 첫날. 이 무슨 드라마에서나 보던 상황이 내한테 펼쳐지는데.
 전학생이 첫날부터 싸움은 좀 그렇지.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우리 고운 희연이가 저 교실 앞쪽에서 저리 겁먹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고 희연이 쟈는 걱정하는 모습도 이쁘네. 그래. 내 이쁜 짝궁을 봐서라도 오늘은 싸움 안 할란다. 희연아 무서워하지 마라. 그래그래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내 안 싸운다.
 그러나 세상일 어디 내 마음대로 되는가. 갑자기 덩치 중 하나가 머리를 휘어잡았다.
 “아!”
 “이 새끼가. 지금 상황 파악이 안 되냐?”
 아. 이건 좀 에런데··· 입장 정리 해야 하나···.
 “어이 덩치··· 내 아까도 손 치우라 캤다. 두 번 말했다.”
 “하하하 이 새끼 봐라. 계속 여유네.”
 그러면서 덩치가 내 머리를 쥐고 흔들었다···.
 끝났다 인자··· 입장 정리나 하자···.
 “준학이 니. 내 하나만 묻자.”
 샌님 같은 놈은 내가 덩치한테 붙잡혀가 흔들흔들거리는 걸 보며 히죽히죽 웃다 물었다.
 “뭐?”
 “임마들 니 친구가?”
 “어.”
 “그라모 니, 니 친구들 좀 다쳐도 괘않겠나?”
 “뭐?”
 “분명히 말했다. 몇 번을 말했다. 이 손 치우는 게 좋다고 내는 분명히 말했다. 그리고 내 니 무시해가 미안하다고 내는 분명히 사과했다. 알았나.”
 “하하하. 재미난 놈이 전학을 왔네.”
 보자. 입장정리는 끝났고. 보자 보자. 몇 놈인가 보자 보자.
 준학이 놈 포함해서 덩치들이 하나, 둘, 서, 너이. 뭐 오 대 일이라면 어느 정도 다쳐도 정상참작 되겠지.
 싸움은 몸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머리와 맷집으로 하는 거지.
 바로 머리를 잡고 있는 덩치의 팔꿈치를 손바닥으로 강하게 올려쳤다.
 우득거리며 녀석의 팔꿈치가 어긋나는 게 느껴졌다. 놈은 고함을 질렀다.
 “아!!”
 동시에 벌떡 일어나며 바로 옆에 있던 또 다른 덩치의 얼굴엔 주먹을 휘둘렀다.
 퍽!
 둔탁한 소리를 내더니, 주먹이 치고 지나간 자리에서 놈의 코피가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두 놈을 재끼니, 나머지 두 덩치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앞뒤 가릴 거 없이 정면에 보이는 놈은 배를 걷어찼고, 그 옆에 있는 놈은 왼손을 크게 휘둘러 펀치를 날려줬다.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한 박자에 이루어진 공격이지만, 그래도 뒤의 두 놈은 좀 타격이 약했다.
 마침 딱 좋게 배를 걷어찬 놈이 두어 걸음 물러서 공간을 마련해 주었길래, 뒤돌려 차기로 녀석의 배를 다시 한 번 날려 줘가 놈을 저만치 교실 뒤쪽으로 떨어뜨렸다.
 내는 떨어진 한 놈을 잡으러 걸어가고, 주먹을 맞은 두 녀석은 씩씩거리며 달려오는데, 일단 저 뒤에 간 아 먼저 처리하도록, 옆에 있는 의자를 차서 놈들의 앞을 막았다.
 탁! 우당탕!!
 “아! 이 새끼가!!”
 놈들은 내가 찬 의자에 무릎을 찍더니 즈그들끼리 엉켜가 자빠지고 흥분해가 지랄이다.
 난 뛸 것도 없이 천천히 교실 뒤편으로 걸어가 교복을 벗고 말했다.
 “온나. 이 씨발놈들아. 다 직이 줄 테니까.”
 여유롭게 손을 까딱거리며 소매를 접어주는데 놈들이 덤비질 않는다.
 “뭐하노. 곧 수업 시작한다. 아들도 지금 다 저 멀리 있잖아. 빨리 끝내자.”
 그러자 뒤에 떨어져 있던 덩치 녀석이 달려들었다.
 놀랄 것도 없이 손을 일자로 뻗어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그리고는 녀석의 안면을 교실 뒤편 사물함과 칠판에 쳐 박고, 주먹을 얼굴과 복부에다 쉬지 않고 날려줬다.
 퍽퍽 거리고 한참 주먹을 날려주니. 한 놈은 분명히 쓰러졌고.
 보자 저 팔 다친 놈도 못 움직일 테니, 이제 한 놈? 아인가 두 놈. 코피 흘리던 놈이 맹맹하던 코가 진정이 되었는가 눈이 빨개서 일어났네. 빨리 끝나겠다.
 “뭐하노? 덤비라 안 카나”
 멍석을 깔아주면 편하게 누우면 될 걸, 놈들은 꿈쩍을 안 했다.
 “와 내가 갈까?”
 그러자 덩치들이 준학이 놈을 밀며 말한다.
 “야. 야 이 새끼야 너가 가···.”
 “어?! 어?! 내가 왜?”
 “너. 너가 불렀잖아···.”
 하하. 결국 고전적인 상황이니 만큼 저래 되는 기지.
 “그래. 준학이 니가 온나. 인자 끝내자.”
 하지만 사람은 생긴 대로 논다고. 샌님 같은 놈이 주먹을 들고 덤벼들 일 있나.
 녀석은 덩치들의 등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나를 정말 화나게 했다.
 “어이 준학이. 니 성이 뭐꼬?”
 “···나. 나 최 준학이다.”
 “그래. 최씨가. 최준학이. 니 그럼 최영 장군이라고 아나?”
 “···뭐?”
 “아나 모르나. 아이다. 니는 모르는 게 좋겠다. 니 같은 후손을 두고 어찌 그런 훌륭한 선조를 언급하겠노. 그냥 니는 거 가만히 있어라.”
 녀석을 혼내는 일은 잠시 뒤다. 그 전에 벌벌 떠는 두 녀석을 먼저 끝내준다. 임마들도 즈그들 나름의 가오가 있는데, 이래 쫄고 있으면 앞으로 학교 다니기 불편하다 아이가.
 그런데···.
 누구나 싸우다 보면 눈이 돌듯, 내도 좀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정신을 차리니, 이미 덩치들은 다 쓰러져 있었다.
 교실은 난장판이 되었고, 새로 산 교복 와이셔츠는 다 찢어져 있었다.
 그치만 뭐 늘 그렇듯. 난중에 임마들한테 교복 값이나 청구하면 되겠지. 어찌 보면 첫날 확~! 하고 기선 잡았으니 이것도 나름 편하다 아이가. 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내가 촌에서 왔다는 걸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이곳은 살기등등하고, 땀 냄새 풀풀 나고, 양호실의 소독약 냄새가 풍기는 대구의 중강고가 아니었다.
 여는 아기자기하고, 아들내미 딸내미 실내화 신고 하하호호 복도를 거니는 서울의 양성고 였다···.
 싸움이 너무 강렬했는갑다.
 우리 고운 희연이는 물론, 다른 모든 아이들조차. 내가 입만 열면 하하호호 웃어 주던 그 아이들이 아무도 내를 돌아보지 않고 말도 걸지 않았다.
 도리어 문제를 야기한 미친놈 최준학이를 동조하는 애들이 있었다.
 누구도 맞서 싸운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아들이 없었다.
 나는 전학 첫날. 학교와 교실에 강렬한 인상을 던졌고.
 동시에 왕따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허이구야··· 서울 험난하겠다.
 
 
 # 3
 
 “그래가?”
 “그래가는 뭐 그래가고···.”
 대구 친구 민수랑 통화를 하고 있었다.
 “니 또 싸웠나?”
 “싸우긴 뭘 싸우는데, [내를 지켰다] 캐야지.”
 전화기 너머에서 한숨이 들려온다. 미친개 민수가 한숨을 쉴 정도라니 자괴감이 강하게 든다.
 “아이고 석호야. 이 븅신아···.”
 “뭐. 그래도 내니까 막 싸우기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입장 정리도 하고, 말리기도 하고 그 캤지, 니가 내 상황이었으면 바로 얼굴 차고 난리 났을 거다 임마.”
 “뭐가 됐든. 이 븅신아··· 암튼 그래가 뭐 우에 됐는데?”
 “···.”
 “말을 해라. 딩시야.”
 “아니··· 그게···.”
 우물쭈물 거리게 된다. 그런데 눈치 빠른 놈이 먼저 물었다.
 “친구는 사겼나?”
 “그게···.”
 “이 쉐끼가 똑바로 말 안 하나!”
 “민수야. 내 왕따 된 거 같다···.”
 숨이 끊어질 듯한 웃음소리가 5분여 흘렀다. 민수는 꺽꺽 진정하더니 말했다.
 “당연하지. 딩시야. 내가 서울 아라 캐도 니 같은 놈 상종하기 싫겠다. 전학 첫날부터 사투리나 찍찍 내뱉 쌓고, 쌈질이나 하고. 또 우리 석호가 싸움 좀 요란하게 하나? 우당탕거리면서 걸출하게 싸우셨겠지. 안 그러나?”
 “···아이다. 아들 쌈 못해가 그리 크게 막 요란 피진 않았다. 암튼 내가 짐 그게 문제다.”
 “아이고 석호야··· 니 죗값 받는다 생각해라. 그동안 아들 좀 때렸나?”
 듣자듣자 하니까 이 자식이!
 “야 이 씨발놈아! 니가 그래 말을 하면 안 돼지! 내가 언제 아들 돈 뺏고 괴롭히고 한 적 있더나!!”
 “뭐가 됐든. 닌 드라마도 안 봤나. 사람을 상처 입혔으면 그게 다~ 죗값이 된다 카드라.”
 “그라믄 민수 니는 남은 여생이 행복할 줄 아나. 니야말로 미친개야! 니 죄를 떠올려라!!”
 “이 새끼가. 지가 전화해가 시비고. 끊어라.”
 “됐다! 내도 니한테 전화 안 한다.”
 “븅신이 서울 아들한테 쳐 당해놓고 내한테 화풀인데!”
 졸지에 다른 친구들 근황이나 뭐 이런 건 물어볼 생각도 못했다. 하긴 이제 떠나온 지 보름인데 뭔 일이 있겠나. 내가 문제다. 내가···.
 보름이란 시간.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선생보단 누나였으면 좋겠다는 신아 쌤은 내 같은 학생이 처음인가. 겁을 먹으신 거 같았다.
 학생주임과 교무주임 등은 간만에 물건이 왔구나 하는 눈빛을 빛내며 작은 꼬투리라도 잡으려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이쁘고, 웃을 땐 얼굴이 고운 우리 희연이는 확실히 나를 무시했다.
 가끔 말을 걸거나 뭔가를 빌리면 얼굴은 경직되어 있고, 작고 아담한 손만 빼꼼 필통을 밀었다.
 앞에도 뒤도, 다들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그 모습이 두려움이 됐든 뭐가 됐든 왕따는 왕따라는 거다.
 더 화나는 건, 급식에서도 혼자 밥을 먹는데. 소문이 소문을 낳은지라 사방 두 자리씩이 꼭 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저기 앉은 저놈이 그놈이다. 건들면 사납다. 라는 식으로 공개 처형을 하는 것 같았다.
 지난 금요일은 하도들 그래가 좀 심통이 났는데, 학교에서 나름 힘쓴다는 덩치들을 쓰러뜨려 그런가, 졸지에 그 행동이 더욱 아이들의 오해를 사고 말았다. 난 밥도 조용히 먹어야 했다···.
 아부지요. 아부지요. 이래가 아들내미 서울 보내면 기죽을 거라 캤심까. 좋으시겠네요. 장손 기죽어가 얌전히 지내서 참~~ 좋으시겠네요···.
 라고 궁시렁거리지만, 차마 부모님 걱정하실까 그런 문제는 내색할 수 없다.
 삼촌은 맨날 밤늦게 들어오니 별문제 없었고, 어머니랑 통화는 거의 밥 먹었냐, 말았냐. 는 부분인지라, 설마 내가 왕따를 당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계실 것 같았다.
 아무튼,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순 없었다. 일단 이 말도 안 되는 분위기를 어떻게든 전환할 계기가 필요했다.
 그 계기는 체육 시간에 찾아왔다.
 “자. 니들 공이나 차고 놀아라.”
 전국 어디를 가도 모든 체육 쌤이 같은 말을 하실 거다.
 그래 볼이나 차다 보면 자연스레 싹트는 남자들의 우정. 그걸 기대하면서 공을 툭툭거리고 운동장에 나가는데, 이상하게 아이들이 축구를 하지 않는다.
 지난 보름간 체육 시간은 두 번. 한 번은 비가 왔었고, 한 번은 내가 일부러 아이들을 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일부러 다가왔거늘. 이 너무 노골적이지 않나? 젠장. 기분만 더러워진다.
 열 받아서 혼자 골대에 볼 차기만 수십 번 하다가, 농구공으로 바꿔 오니 이제는 농구를 하던 아이들이 설렁설렁 눈치를 보다 하나둘 자리를 피했다.
 근데 더 열 받는 게 뭔지 아나? 저 아이들을 최준학 이 미친놈이 눈치를 살살 보며 몰아가고 있었다는 거다. 내 참 세상천지 저런 놈을 다 봤나···.
 하는 수 없다. 이성적으로 안 될 땐 그냥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
 “어이~. 느그들은 농구 계속 할 기가?”
 “어? 어···.”
 “내도 좀 껴줘”
 “어. 어··· 뭐 그래···.”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네 명이 있었다.
 키는 멀대 같이 큰 말과 같은 아이가 두 명. 순한 양 같은 아이가 두 명이었다.
 2:2로 뛰는 모습에 내가 끼면 3:2가 되니 이 무리에 껴든다는 것도 무리가 있지만, 당장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였다.
 신장 차이를 고려해 말 조가 아닌, 양 조랑 농구를 하는데, 아이들이 몸을 사리는 게 보인다.
 농군데, 어느 정도 몸싸움이 있다 한들. 내가 지들을 때릴까 겁줄까 욕을 할까.
 결국 분위기가 시큰둥하여 그냥 주저앉아 말했다.
 “됐다. 그냥 느그들끼리 해라. 괜히 내가 껴서 분위기가 이상해지네···.”
 그러자 말과 양들도 뭔가 미안했는가 아니면 끝날 시간이 다 되어 그런가. 덩달아 네 놈도 앉아 버렸다.
 생각지도 않게 저 멀리 그늘서 노닥거리는 여학우들 같이 이야기를 나눌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먼저 물었다.
 “느그들은 내가 싫나?”
 면전에서 사람이 싫다고 할 수 있을 소냐. 그래도 싫다 하면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거다. 그냥 고등학교 삼 년 조용히 지내든가, 아니면 울고불고 부모님한테 연락해서 다른 학교로 전학시켜 달라 하는 수밖에. 그런데 양 중에서도 조금 더 복실복실한 녀석이 말했다.
 “싫은 건 아닌데···.”
 “아닌데?”
 “아니··· 뭐 그냥 석호 너는 계속 대구에서 살았어?”
 “아니. 원래는 성주라고, 대구 옆에 작은 도시 있다. 거서 지내다 중학교부터 대구에서 다녔지.”
 “아~ 그렇구나···.”
 그렇게 대화가 끝난다···.
 안 된다! 어떻게 만든 불씬데!
 불씨를 꺼트려서는 안 된다!
 “준호 니 대구 아나?”
 “어? 내 이름을 어떻게 알어?”
 양 조에서 처음 말 걸어준 녀석을 모를 소야. 뭣보다 체육복에 떡 하니 이름이 적혀 있는데 그걸 묻다니.
 손가락으로 체육복의 가슴팍을 가리켜주니, 그제야 아~ 아 하며 놀라는 눈치를 보이는 준호. 그 외 석진이, 명수, 재현. 네 명의 이름을 다 호명해 주니 녀석들이 웃어 보였다.
 다행히 남자들에겐 힘이 있다는 모습이 각인이 되었는가 내 말을 쉽게 거절하진 못하는 분위기였다.
 일단 이 네 녀석이 내 친구다.
 무엇보다 모두가 날 무시할 때 그래도 옆에 있어 준 녀석들 아닌가. 그 하나만으로도 이 녀석들은 멋진 녀석들이다. 순하고 자시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난 허세나 가오를 잡고 싸움을 좋아하는 녀석이 절대 아니라는 오해를 풀어야 했다.
 
 친구. 그것은 뭘까에 관하여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14살. 그때는 친구를 사귀기 위해 무언가 노력을 했었던가?
 그냥 학교에 있다 보니까 어울렸고, 시비가 붙으니까 싸움이 벌어졌고, 친구가 당하고 있으니까 가서 싸우고 그랬었다. 사람을 사귀는 노력이나 집중 같은 걸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환경이 바뀌고 문화가 바뀌니, 이제는 노력을 해야 한다.
 외로움을 무시했었는데, 그 외로움이 가만 뒀다간 나를 좀먹을 것 같은 두려움이 느껴졌다. 성호중학교와의 패싸움 때도 느끼지 못한 두려움이었다.
 아무튼, 난 사람을 그리 가려 사귀는 편은 아니었지만, 성향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가. 준호, 석진, 명수, 재현 이 친구들은 대구에 있는 네 놈과는 또 확연히 다른 아들이었다.
 조용하다랄까, 차분하다랄까. 대구 놈들이 발정 난 야생마와 곰, 늑대, 표범 같다면, 이 친구들은 울타리 안에서 조용히 풀을 뜯는 그런 느낌. 석진, 명수 키가 큰 두 녀석은 말과 같았고, 준호, 재현은 더 순한 양과 같은 느낌이었다. 단지 준호가 더 복실복실했다.
 뭐가 됐든 성향이 다른 아이들을. 그것도 내한테 호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는 녀석들과 친구가 되기에는 난이도가 있어 보였다.
 그런 어려운 아이들과 사귀는 첫 단계는 역시 매점이었다.
 “어? 어··· 아니 나는.”
 “나도 좀. 난 매점이 별로 안 맞아서.”
 헉! 재현과 명수가 거절을 했다. 두 놈이 빠지니 석진과 준호는 따로 거절을 못 하는 눈치였다.
 어쩔 수 없다. 두 녀석은 놔두고, 두 녀석과 함께 매점을 향했다.
 “그러고 보니. 내 매점 첨 가본다.”
 “아. 진짜?”
 “그래. 전학 와 가 첫날부터 쌈박질에 교무실에 학생부에 끌려 다니다 인자서야 가보네.”
 “아. 하긴 그랬겠구나···.”
 준호가 그래도 꼬박꼬박 대꾸를 해주는 게 고마웠다. 석진이란 친구는 아직도 경계하는 눈치가 보였었다. 하여튼 사람은 차차 알아 가면 되는 것이니, 딱히 조급해 하지도 초조해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매점에 들어서자, 양과 말 두 녀석이 긴장되나 보다. 시끌시끌했던 매점이 순간 조용해지며, 모든 일 학년이 내를 쳐다보고 있었다.
 난 아들한테 부담주기 싫어가 먼저 나서서 말했다.
 “준호야 뭐 먹을래. 내가 사올게.”
 “아니야. 난 됐어···.”
 “왜. 내가 산다.”
 “아. 아니야. 괜찮아···.”
 “···그럼 니가 여까지 온 이유가 뭐고.”
 “어. 그게···.”
 내 오판이었나··· 임마들은 날 친구로 사귈 마음이 없었던 건가. 하는 실망감이 느껴질 무렵. 석진이가 말했다.
 “우리 매점 과자 맛있어.”
 “어?”
 “쫀득이랑 뭐 이것저것 여기 잡다한 불량식품 많이 팔어. 매점 업자가 이사장 친척인가 그래서 암튼 돈 되는 거 애들 건강에 안 좋은 거는 다 판다고 들었어.”
 “아~ 그래?”
 “가자. 준호야. 석호가 사준다는데 먹자.”
 조용하던 녀석이 준호를 이끌고 매점으로 들어선다.
 어느새 매점 안도 처음의 관심은 사그라들었고, 각자 자기 할 일 하느라 우리를 쳐다보는 남학생이나 여학생은 없었다.
 라면, 쫀득이 아폴로 등등 정말 석진이 말대로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불량식품은 다 팔고 있는 것 같았다. 친구를 사귀고자 매점에 왔는데, 졸지에 내가 더 신이 나서 과자들을 한아름 사 들고 있었다.
 대구 촌놈이 매점에서 과자를 종류별로 고르는 모습이 또 신기한가 순간 조용해지지만, 신경 쓰지 않고 골랐다. 심지어 내 사투리에 웃음을 짓는 아이들도 있었다.
 석진과 준호는 조금 멋쩍어했지만, 덩달아 내가 고르는 과자들에 이게 맛있다. 저게 맛있다. 이렇게 섞으면 좋다는 식으로 푸드코디네이터를 해 주었다.
 그렇게 이만 원에 가까운 돈을 쓰고 나왔다.
 과자가 한아름이었다. 교실에 가서 먹자고 했다. 그런데 석진이가 이걸 교실에 주렁주렁 들고 가느니, 차라리 애들을 밖으로 부르자고 했다.
 것도 좋은 생각이라 그렇게 하자고 해서, 처음에 몸을 뺐던 명수와 재현이가 밖으로 나왔다.
 “근데 쉬는 시간 다 끝나 가는데.”
 “그럼 니들이 석호가 가잘 때 같이 왔어야지.”
 “···그런가?”
 석진이라는 친구가 두 녀석을 나무란다.
 순한 말 같은 녀석이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하는 놀라는 표정을 지으니, 준호가 과자를 한 봉다리씩 애들 손에 쥐어주며 물었다.
 “줘도 되지?”
 “어? 어. 그럼. 먹자. 먹자고 사온 긴데, 정 안되면 수업 째고 무면 되지.”
 “하하하 그건 좀.”
 “뭐 어떤데? 수업 한두 시간 짼다고 뭐라 안 한다.”
 그렇게 자연스런 분위기가 됐다.
 주제를 매점으로 잡고 이야기를 나눴다. 뭐와 뭐는 같이 먹으면 맛있다. 밭두렁. 이게 아직도 있나? 존나 딱딱하네. 그래도 역시 새우깡을 이길 과자는 없다. 등등 약 보름 만의 일상적인 대화에 생소하기도 하고, 깊은 갈증이 풀리는 것도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러다 종 칠 시간이 되고 교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명수가 물었다.
 “매점을 오늘 처음 간 거야?”
 “뭐 교무실이니, 학생부니 불려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준학이 때문에 그렇구나.”
 “아니라곤 못 하겠고. 금마 뭔데? 뭐 그리 새끼가 찌질거리는데.”
 “그렇지만, 석호 너가 실수 한 거야.”
 왜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걸까?
 “명수야. 그게 뭔 뜻이고?”
 “왜 준학이를 건드렸어?”
 “니들 그날 교실에 없었나? 아님 못 봤나? 내가 건드린 게 아니라니까.”
 “그건 아는데, 그냥 준학이는 무시하지 그랬어.”
 “마··· 내가 금마 무시했다고 이 사단이 난 거 아이가. 지금···.”
 짜증이 있어 목소리에 싸늘함이 조금 묻어 나왔다.
 명수는 겁을 잔뜩 먹은 눈치였다. 다른 친구들도 역시 이놈은 이런 놈이구나 하는 표정을 보였다. 내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내는 내 입장도 있으니 말이다.
 그때 석진이가 말했다.
 “석호야. 명수한테 화내지 말고 일단 교실로 가자. 저렇게 말하는 것도 이유가 있어.”
 “···그게 뭔데?”
 “다음 쉬는 시간에 얘기해줄게. 지금은 교실로 가야지. 보는 눈들도 많고.”
 
 
 # 4
 
 수학 시간이었다.
 석진이의 말이 있어 그런가. 아니면 명수가 속을 긁어 그런가. 30여 분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교실 저 끝에 있는 찌질거리는 최준학만 눈에 들어온다.
 세상 살다 살다 저런 놈이 다 있을 줄이야.
 그나저나 그날 그 덩치들은 뭐길래 저놈이 부른다고 쪼르륵 달려왔을까. 놈들은 그 이후 뭐 하고 있을까? 보통 그렇게 싸우고 나면, 알아서 기어오든가 하는 부분도 있는데 녀석들은 그런 것도 없었다. 설마 다수로 덤벼졌다고 쪽팔려 학교 그만뒀나?
 아니. 그보다 왜 내가 실수를 했다는 걸까?
 최준학 저놈이 지 혼자 미쳐 날뛴 장단에 춤을 춰준 게 내 실순가. 그러고 보니. 여기 이쁘고 고운 희연이도 그날 그런 말을 했었다.
 “희연아.”
 “어?!”
 이름 부른 게 그래 놀랄 일이가··· 괜히 서운해진다.
 “뭐 그리 놀라는데.”
 “···어? 어. 아니. 왜?”
 희연이는 옆을 보지는 못하겠고, 눈만 살짝 돌려 나를 봤다.
 흑흑. 나는 네가 처음 보여주었던 그 고운 미소를 잊을 수 없지만, 이제 이 정도까지 하면 내가 마음을 버려야겠지. 안녕 적어도 내 열두 번째 짝사랑. 그냥 용건만 간단히 물을게.
 “희연아. 니 그날 기억나나?”
 “···언제?”
 “내 전학 온 날. 니 그날 캤잖아. 준학이 저놈한테 사과하라고. 기억 안 나나?”
 “어··· 내가 그랬어?”
 “그래. 니 그 캤다. 와 그랬노?”
 “···너가 준학이를 무시했잖아.”
 “와~ 내 돌겠네. 와 다들 이래 생각하지?”
 “준학이가 자기를 무시했다고 했으니까”
 “희연아. 솔직한 말로 내가 준학이를 무시했나. 지가 혼자 삐져가 그캤다고는 생각 안 드나?”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뭐?”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고. 준학이 쟤가 지 혼자 삐진 거라고.”
 “그래. 이제서야 말이 통하네.”
 “그래서 그래. 쟤 되게 사람 피곤하게 만들거든···.”
 “음.”
 “암튼 그게 궁금했던 거야?”
 어느새 희연이가 곁눈이 아닌 고개를 살짝 돌려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얼굴이 조금이라도 돌아섰다는데 마음이 다시 두근거린다.
 아니다. 이미 지나간 짝사랑은 돌아보지 않는 거다. 이제 그녀는 과거일 뿐이다.
 흔들리지 않고자 마음을 잡는데, 앞에서 선생님이 큰 소리로 말했다.
 “어이. 거기!”
 “예?”
 “왜 이렇게 떠들어?”
 “아. 죄송합니다.”
 선생님은 고개를 살짝 꺾어 안경 너머로 나를 보시더니 교탁 위에 책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너구나. 대구에서 온 풍운아가.”
 “쌤. 풍운아는 아니고요.”
 “시끄럽고. 나와서 이거나 풀어봐.”
 선생님은 칠판에 분필을 딱딱거리며 수식을 적어놓으셨다.
 어려웠는데, 얼추 정리해서 풀고 나니 팔짱을 끼고서 말씀하셨다.
 “오~ 그래~~ 배웠다 이거지. 그래서 수업에 집중 못 하고 떠든다 이거지.”
 “아니요. 쌤 그게 아니라.”
 “들어가.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수업에 집중 못 할 학생은 필요 없다.”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런데 반 분위기가 이상했다.
 야들은 내가 이런 수식도 못 풀 거라 생각한 건가. 아니면 예상외의 모습에 놀란 건가.
 가장 큰 변화는 짝궁 희연이의 얼굴이 이제 90도 돌아섰다는 것이었다.
 그러지 마라. 그 궁금하다는 표정을 보이지 마라.
 그 동그란 눈으로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보이지 마라.
 내는 이미 너한테 마음을 접었다. 그러니까.
 “석호 너 공부 잘해?”
 크흑. 가시나 와 이리 이쁘노···.
 “아니. 뭐 잘하고 자시고가 어딨노. 걍 열심히 하는 거지.”
 “흐음~~”
 흐음 이 카지 마라.
 턱에 팔 괴고 얼굴 돌리지 마라.
 그렇게 생각이랑 다르네 같은 표정 짓지 마라.
 내는 이미 니한테 마음을 접었다.
 니는 내 과거의 첫사랑일 뿐이다.
 그렇게 찌질한 준학이 놈이 잊혀지는 줄 알았는데, 녀석은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쫓아와 물었다.
 “어떻게 푼 거야?”
 “···뭐를?”
 “아까 수학이 적어준 거.”
 “···뭐가? 이래저래 하니까 푼 거지.”
 “너가 그걸 알리가 없잖아!”
 이놈은 뭔가. 미친놈이 아니면 대체 왜 이러는 건가.
 “어이 준학이 니 지금 시비 거나?”
 “뭐? 그래서 지금 나랑 싸우려고?”
 돌았나.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싶었다.
 그때 석진이랑 준호 명수랑 재현이가 다가와서 나를 끌고 일어났다.
 “석호야. 나가서 얘기하자. 나가서 얘기해!”
 이곳이 서울이 아닌 대구였다면, 이런 시비가 붙었을 때 누가 나를 말린 적이 있던가.
 아들이 말리고, 화를 삭이는 그 경험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최준학 같은 샌님과 주먹질을 하는 것도 우스워 보이는 문제였다. 뭣보다 반 애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래서 그냥 자리를 피해 줬다.
 쉬는 시간은 10분. 그중 얼토당토않은 일로 3~4분을 허비했으니, 이제 남은 시간은 약 5분. 아들 표정을 보아 하니, 최준학이라는 놈은 절대 5분으론 설명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내 얘기를 했다.
 “와~ 봤나. 느그들”
 “뭐?”
 “내 참은 거 봤나?”
 “···원래 이럴 때 안 참어?”
 “보통은 안 참지. 그냥 치고받는 거지.”
 “그건 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면서 아들이 조금 웃어 보였다.
 뭐가 됐든 봤나. 내는 폭력적이지 않다. 이래 평화적인 놈이라는 이미지는 줬으니 됐다. 하고 있는데, 명수가 말했다.
 “석호야. 아까는 내가 미안해.”
 “됐다. 뭐 그런 거 가지고 일일이 사과를 하고 앉았노. 치아라.”
 “그래. 너가 좀 낯설겠지만, 암튼 준학이는 피곤한 놈이야. 그리고 상대하기 껄끄럽고.”
 “그래. 그 최준학이 그놈에 관한 논의를 한다는 게, 또 이리 되뿌고 이카네.”
 석진이가 말했다.
 “암튼 준학이 얘기는 어차피 다음 시간 점심이니까 그때 하자.”
 “···뭐?”
 “진짜 긴 얘기거든. 그리고 석호 너는 모르지만, 우리 같은 애들은 지금 좀 상황이 곤란해져 있어.”
 “와 뭐 땜에?”
 “그러니까 그 얘기를 하려면 점심에 하자고. 어차피 또 들어가야 하니까.”
 그렇게 또 찌질한 놈에 관한 이야기는 뒤로하고 다시 교실로 돌아가게 되었다.
 전 시간에 먹다 남은 과자들도 이제 얼추 정리되고, 복도를 지나가는 길.
 준호가 물었다.
 “근데 너 공부 잘해?”
 “하하하 와. 내는 공부는 담쌓고 맨날 쌈박질만 하고 돌아 댕길 거 같나.”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이쯤 되니 공부 좀 해야겠네. 곧 중간고사다 아이가. 전학 오고 얼마 안 되가 그냥 버릴라 캤는데, 공부 좀 해야겠네. 무시 받아야 쓰것나.”
 겸사겸사 네 녀석에게 내기를 걸었다.
 “잘 들어라. 느그들. 이번 중간고사에서 내가 여기서 성적 젤 좋으면 느그들이 내 소원 하나씩 들어주는 기다.”
 “뭐?”
 “대신 느그들이 내보다 성적이 좋으면 내가 느그들 소원 들어줄게.”
 무시 받는 건 싫다. 더불어 쌈질만 한다는 오해도 풀고 싶다. 그 승부로 학업 승부를 걸었지만, 속내는 그냥 이걸 구실 삼아가 아들이랑 밖에서 고기도 함 구 묵고, 더 친해지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점심시간이 기다려졌다.
 이제 그 많은 학생들 가운데서 혼자 밥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이 녀석들은 정말 멋진 녀석들이었다.
 
 사람은 큰 거에 무너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아주 작은 것. 일상적인 것. 그런 것에서 무너지는 것 같다.
 그동안 서울에서 나는 군중 속의 고독을 느꼈다.
 악이 있어 참았지. 솔직히 힘든 경험이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친구들과 밥을 먹게 되었다.
 아까 매점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변의 시선이 곱진 않았다. 그래도 인자는 네 녀석도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 중심에 말과 같은 석진이가 있어 그런지, 아니면 이 친구들이 내가 조금은 익숙해졌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냥 임마들이 외향적이지 않을 뿐. 멋진 녀석들 이라는 덴 변함이 없었다.
 그나저나 석진이 녀석이 보면 볼수록 대구 친구 정배와 닮았었다.
 정배는 키도 크고 싸움도 잘하지만, 뭔 일이 터졌을 때 흥분해 날뛰는 우리와 다르게, 차분한 면이 있는 녀석이었다.
 어떻게 보면 정배가 있어, 우리 다섯이 친해질 수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석진이가 더욱 믿음직스러웠다.
 “암튼 준학이 점마는 뭔데?”
 질문은 믿음직한 석진이가 받아준다.
 “준학이는 조금 문제가 있어.”
 “무슨 문제?”
 “집안 문제도 있고, 과거도 있고.”
 두리번거리니, 최준학이 저 멀리 덩치들과 있는 모습이 보였다.
 덩치들. 다행히 자퇴하지는 않았구나. 웃기게 괜히 조금 반가운 기분까지 들었다.
 “뭔데 점마는 과거에 뭐였는데? 뭐 죽다 살아났나?”
 “그건 재현이랑 명수한테 들어. 셋은 같은 중학교에 다녔거든.”
 바톤을 재현이에게 넘기니, 순한 양 같은 재현이가 조금 긴장하며 말했다.
 “뭐 그냥 흔한 얘기긴 한데, 돈 많은 집 아들이 왕따를 당했고, 그러다 그걸 돈으로 이겨냈고 그런 거야.”
 “···뭐?”
 “석호 너는 전학 온 지 얼마 안 되서 잘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엔 애들 괴롭히고 그러는 애들이 없어. 왜인지 알어?”
 “몰라. 와? 준학이가 아 들을 돈 주고 샀나.”
 “어.”
 그냥 던진 말인데.
 “진짜?”
 아들은 고개를 끄덕여줬다.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였다.
 우린 다들 열일곱인데, 근데 사람을 샀다. 라는 말이 어떻게 이리 자연스럽게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걸까?
 이해 못 해 눈만 껌벅거리고 있으니, 명수와 준호가 덧붙여 설명해준다.
 “석호야. 그냥 이런 거야. 준학이는 중학교 때 크게 왕따를 당하다, 그 괴롭힘을 돈으로 이겨냈어. 그리고 그 애들이 고등학교에 와서까지 준학이한테 용돈을 받고 있는 거고.”
 “그래가.”
 “그랬대. 준학이가 그랬었대. 돈이라면 내가 주겠다. 대신 학교에서 누구도 괴롭히지 말아라.”
 “···좋은 거가?”
 “우리 같은 애들한테는 좋은 거지. 덕분에 학기 초 힘쓴다 했던 애들은 다 준학이한테 설득 되서 넘어갔고”
 “그래서 애들도 준학이 말이라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든 고집을 부리든, 그냥 저냥 대해줬고.”
 “그게 조금 심해지다 보니까, 조금씩 애가 기고만장해지면서 애들을 대하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뭐. 다들 그냥저냥 받아주고 있었어. 원래 애가 나쁜 애는 아니니까.”
 나는 다시 몸을 돌려세워 저 멀리 찌질거리는 최준학을 보았다. 그리고 녀석도 나를 보았다.
 녀석은 시선을 피하지만,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더불어 덩치들도 내게서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있었다.
 “더 말해봐라. 느그들은 그럼 다 알고 있었나?”
 “알지. 준학이가 수학여행 가서 지 입으로 떠들기도 했고, 애들이 괴롭히면 말하라고도 했었고.”
 “점마 뭐 연예인이가? 돈 버나?”
 “말했잖아. 집에 돈이 꽤 많다고.”
 “돈이 얼마나 많길래··· 니들은 저기 저 덩치들이 무섭나?”
 “···석호야. 너는 싸움을 잘하니까 모르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애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쉽게 넘어갈 문제는 아니야.”
 평범. 내가 아는 평범의 개념이 좀 다른 건가.
 나나 내 대구 친구들. 우리들이 싸움을 좀 하고 다니긴 했었다. 그러나 나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그렇고. 우리는 그냥 좀 포악한 머스마들이었을 뿐. 절대 특별하거나 누구를 위에서 누른다거나 돈을 뺏거나 하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학기 초나, 시비가 붙는 시간 말고는 반 아들도, 혹은 다른 학교 아들도 서로서로를 평범한 병신 취급하면서, 그렇게 어디가 모자란 놈들마냥 서로의 병신력을 치켜세워 주고 놀았다. 그렇다고 누가 내 친구 병신 취급하면 달려가서 싸우곤 했던 우리들이다.
 나는 그런 게 평범한 건 줄 알았는데··· 여는 좀 다른 건가?
 이 학교가 특이한 건지, 아니면 서울이 특이한 건지는 모르겠다.
 그것이 학생들 간에 암묵적으로 최준학을 치켜 주고 받는 평화인지도 모르겠다.
 “어? 석호야 너 어디가?”
 그냥 내 생각은 이렇다.
 열일곱 살들이. 제 돈도 아니고 부모 돈으로 사람을 사고. 학교 분위기를 좌우하고. 거기서 지 자존감을 챙기고 하는 건.
 그냥 딱 잘라서 재수 없다는 거다.
 “뭐야?”
 어느새 내는 최준학과 덩치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다가와 있었다.
 
 
 # 5
 
 덩치들을 흘겨보니, 그날 나한테 처맞은 네 명 말고도 네댓 놈이 더 있어 한 열 명쯤 되어 보였다.
 임마들은 쓰레기들이다. 쓰레기는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겁낼 이유가 없다.
 다시 시선을 돌려, 최준학을 보았다. 녀석은 나를 사납게 노려보고 있었다.
 “왜?”
 “어이. 준학이.”
 “왜!!?”
 녀석이 소리를 지른다.
 시끄럽던 급식실의 모두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대체 이놈은 왜 이렇게 나를 싫어하는 걸까? 뭐 그건 차차 알면 되겠지.
 일단 내가 이 녀석이 싫은 이유는 명확했다.
 나는 손을 들었다.
 짝!!!
 머리가 돌아갈 정도로 최준학의 뺨을 후려쳤다.
 급식실이 순간 정적에 쌓였다.
 최준학은 얼떨떨한 얼굴로 노려보았다.
 나는 손을 들어 녀석의 뺨을 또 때렸다.
 짝!!!
 이번엔 녀석이 의자에서 나자빠졌다.
 녀석은 눈물을 그렁그렁 맺으며 절규했다.
 “왜 때려! 개새끼야!!”
 “재수 없어 때렸다! 씨발놈아!”
 녀석보다 더 큰 소리로 외친다.
 최준학은 울먹거리며 뻘개진 볼을 어루만질 뿐,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난 계속해서 소리쳤다.
 “뭐하노! 쳐 맞았으면 덤비지 않고!”
 “씨발새끼···.”
 “사내새끼가 맞았으면. 욕하지 말고 주먹 쥐고 덤벼라!!!”
 도발을 해도 최준학은 주변만 두리번거릴 뿐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뭘 기다리는데. 못 덤비겠나. 이 덩어리들이 니 대신 싸워줄 거 기다리나.”
 덩치들은 욕을 들으니 몸을 들썩거리지만, 4 대 1로 줘 터진 공포가 뇌리에 박혀 있었다. 녀석들은 아무도 최준학을 대신해 싸우지 않았다.
 준학이는 이제 울고 있었다.
 나는 외쳤다.
 “봤나. 봤냐고! 이 새끼야. 이건 니랑 내 싸움이다! 덤비라. 안 덤비나!! 내가 갈까!”
 달려들어 최준학의 멱살을 움켜쥐고 주먹을 드니, 녀석이 울어대며 주먹을 휘둘렀다.
 난 그 주먹을 맞아줬다.
 샌님 같은 녀석. 주먹도 솜털 같았다.
 그런데 눈빛만은 죽일 듯한 살기가 담겨있었다.
 녀석은 울부짖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씨발새끼가!! 이 개새끼야!!”
 주먹을 맞아 주고 있으니, 덩치들이 달려와 준학이를 말리고, 나와 떨어뜨렸다.
 맞기는 내가 더 맞았는데, 녀석이 울고불고해서 누가 보면 내가 준학이를 일방적으로 때린 거 같은 모양새였다.
 그렇게 급식실의 사건이 끝나고 교무실로 불려갔다.
 
 ***
 
 우리 담임 이신아 쌤은 젊고 아름다운 분이셨다.
 나이가 얼마나 되시는진 모르지만, 갓 교생을 끝내고 부임한 신임 선생님일 것이다.
 더불어 그 조곤조곤한 서울 말씨는 나에게 엄청난 환상을 심어주는데, 마치 쌤보단 큰 누나 같은 사람이었으면 하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그런 웃기지도 않은 기대를 지금 노려보는 쌤의 두 눈빛이 깡그리 날려주고 있었다.
 신아 쌤이 보는 눈빛은 급식실에서 준학이가 날 노려보던 눈빛과 큰 차이가 없었다.
 난감하긴 하실 거다. 갑자기 대구에서 전학생이 하나 오더만, 첫날부터 쌈박질이나 해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교생이 보는 급식실에서 급우한테 귀싸대기를 쳐 날리고 했으니. 그러나 이건 명분이 있는 싸움이었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었다.
 “··· 왜 싸웠니?”
 신아 쌤은 나와 준학이를 나란히 세워두고 한숨을 쉬셨다.
 난 교무실에 와서야 석진이나 명수가 얘기했던, 준학이가 있는 집 자식이다. 라는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우리 두 사람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나는 건드려선 안 되는 걸 건드렸나 보다. 하고 있었는데
 “이 새끼가 먼저 때렸는데요.”
 하면서 준학이 놈이 눈이 벌개서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에 신아 쌤이 물으셨다.
 “석호. 네가 먼저 준학이 때렸니?”
 “예.”
 먼저 때렸다.
 근데 너무 당당하게 말을 했는가, 쌤이 더 놀라는 눈치다.
 역시 나 같은 놈들을 처음 다뤄 보시는 것 같다. 도리어 쌤이 더 어째야 하는지를 모르시는 것 같아가, 죄송스러워서라도,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쌤요. 제가 준학이를 먼저 때렸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왜 때렸니?”
 “저도 그 이유는 좀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뭐?”
 “근데, 여긴 보는 눈과 귀가 많아서 그러는데, 따로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허리를 숙여 정중하게 부탁을 드렸다. 근데 그 정중한 부탁에 교무실이 빵 터진다.
 “하하하 그 녀석. 그거 물건이네.”
 “이 선생님. 그냥 여기서 말하라고 해 봐.”
 졸지에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신아 쌤도 눈에 담긴 독기가 사그라드는 게 보였다.
 쌤은 우리 두 사람을 이끌고 사람이 없는 휴게실로 향했다.
 인적 없는 교사 휴게실에 들어오니, 선생님은 의자를 꺼내와 앉으라고 하셨다.
 준학이 놈은 계속해서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다.
 난 녀석을 한번 돌아보고는 신아 쌤한테 말했다.
 “쌤. 그거 알고 계셨습니까?”
 “뭘?”
 “준학이 놈이 돈으로 애들을 샀다는 거 말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자세한 내막은 준학이 놈한테 들으시면 안 될까요?”
 “준학아. 석호 말이 진짜니?”
 “아닌데요.”
 “석호야. 준학이는 아니라고 하는데, 넌 왜 친구를.”
 “쌤. 제가 들은 얘기는 이렇습니다.”
 나는 애들한테 들은 이야기를 전해드렸다.
 신아 쌤도 적잖이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래. 저게 정상이다.
 어디 열일곱 짜리가 돈으로 사람을 사고팔고 한단 말인가.
 그런데 준학이 놈은 당당했다.
 “그게 잘못인가요?”
 “뭐? 너 지금.”
 “선생님. 제가 학교 폭력을 없애준 거 아닌가요? 도리어 이 새끼가 와서 그 학교 분위기 다 망치고 있는 거 안 보이세요?”
 어떻게 하면 저런 논리가 성립이 되는 걸까.
 뭐 어찌 보면 그 말이 일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 준학이 놈은 뭐가 잘못된 건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신아 쌤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으리라 믿는다. 쌤도 뭐라 말을 해야 하는데, 뭐라 할지 답을 못 찾고 계시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이. 니. 최준학이. 느그 집 좀 사나?”
 “하! 하~ 아 진짜. 이 새끼가.”
 “그라고 니 아까부터 쌤 앞에서, 이 새끼 저 새끼 하지 마라. 건방지게.”
 “뭐?”
 참으로 신기하다. 덩치가 작든 뭐하든. 이렇게 깡다구 좋고 성질 괴팍한 놈이 어찌 지 몸 하나를 지키지 못해, 애들을 돈으로 사고팔고 했을까.
 이건 필시 이 녀석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교육의 문제다.
 “그래도 석호 너는 친구를 때리고 하면 안 돼지.”
 갑자기 신아 쌤이 나한테 뭐라고 하신다.
 아무래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시다 답을 못 찾으신 건가. 쉬운 것부터 정리하고 가는 건 수학에서도 당연한 수순이긴 하다.
 “쌤요. 저도 그 부분에 관해선 일견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풉! 근데 석호 너. 그 정중한 말투 좀 어떻게 안 되니? 너 지금 혼나고 있는 거야.”
 뭐가 우스우신 걸까. 선생님의 독기가 이제는 말끔히 사라지고 내가 기대하는 담임보단 차라리 누나였으면 하는 모습을 보이고 계셨다.
 “암튼, 쌤요. 무슨 오해를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준학이를 일방적으로 때린 게 아니에요.”
 “그럼?”
 “저도 맞았어요. 보세요.”
 난 일부러 헝클어진 교복이나, 손톱 자국이 찍힌 목덜미 등을 보여드렸다.
 준학이 놈은 어이가 없다는 듯 뻑뻑 한숨을 내셨다.
 “보셨죠? 저흰 싸운 거예요. 제가 일방적으로 준학이를 때렸다고 보시면 안 됩니다. 도리어 더 맞은 건 저예요.”
 “와~ 뭐 이런 새끼가···.”
 “와 아니가? 닌 내 안 때렸나? 그리고 니 말조심하라 캤다. 한번만 더 쌤 앞에서 이 새끼 저 새끼 하면 뒤진다. 알았나.”
 결국, 신아 쌤이 보기에도, 준학이 놈은 잘한 게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쌍방 과실로 나란히 교무실 밖에 서 있게 되었다.
 
 수업이 시작되고, 벌을 받는다. 덩그러니 복도에 놓여있게 되었다.
 난 익숙한 듯 이 시간을 빌어 창밖을 보기도 하고, 망상을 즐기기도 하는데, 준학이 놈은 이런 시간이 처음인가, 쭈뼛거리고 있었다.
 “뭐 하노. 앉아라.”
 “말 걸지 마라.”
 “말.걸.지.마.라. 이 지랄하고 있다.”
 “뭐?”
 “어이. 최준학이 내 뭐 하나만 묻자. 내가 니한테 뭘 그리 잘못했는데?”
 정말 궁금했다.
 내가 대체 이놈한테 뭘 그리 잘못했다고 전학 첫날부터 찍혀서 날 들들 볶는 걸까? 그리고 사람을 볶을라면, 제대로 강한 불에 확! 볶든가. 이겨 먹지도 못할 거 왜 자꾸 이겨먹자고 덤벼드는 걸까?
 “재수없는 새끼.”
 “하~ 진짜. 나도 성격 많이 죽었구나.”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최준학의 앞으로 다가갔다.
 “니. 내가 실실 웃고, 하나하나 상대해주니 만만해 비나. 내 아까 뭐라켔노? 한 번만 더 새끼 새끼거리면 뒤진다 캤나 안 캤나?”
 얼굴을 바짝 들이대니 녀석은 쫄다 못해 공포를 마주하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바짝 내리 깔았다.
 이게 짜증난다!!
 아니 대체 덤빌라면 제대로 덤비든가. 아니면 그냥 말든가!
 왜 이렇게 찌질거리는 걸까. 그리고 난 왜 이런 놈을 상대하느라 내 청춘을 낭비하고 있을까.
 “됐다. 됐어. 다 치아라. 인제 니나 내나 상관을 하지 말자.”
 무시가 답이다.
 미친놈은 무시가 답이랬다.
 다시는 녀석을 상대하지 않을란다.
 이 녀석이 돈으로 사람을 사든 말든. 전교생을 매수해 날 왕따를 시키든 말든. 상관 안 할란다. 난 그냥 내 인생 살아갈 것이고, 녀석은 계속해서 날 저주하든지 말든지 인생 지가 알아서 사는 것이다.
 근데, 그러지도 못하겠다.
 지금 우리는 수업시간 교무실 앞에서 단 둘이 체벌을 받고 있었고. 그 가운데 준학이 놈이 훌쩍거리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진짜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오르게 만드는 놈이었다.
 “아 씨발! 돌겠네. 니 와 우는데?”
 “···넌 몰라. 너 같은 새끼들은 몰라”
 “그래 모른다. 내는 암것도 모른다···.”
 “난 그냥 너가 지방에서 왔다고 해서, 잘해주고 싶었던 건데, 너가 먼저 날 무시했었어.”
 말이가 방구가. 병신 같은 새끼. 입으로 똥을 싸는데. 보자 휴지를 가져다 똥을 닦아줘야 되나, 아님 입구녕을 쳐 막아야 되나.
 근데 얼마나 더 개소리를 지껄일지 궁금해졌다.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역시나 최준학은 희대의 개소리를 내뱉었다.
 “난 너 같은 놈을 잘 알어. 매사에 당당하고, 세상이 지 꺼고. 애들 괴롭히고 지 맘에 안 들면 화내고 성질부리고. 난 너 같은 놈들 때문에 학교가 싫어서 자살하는 애들까지 봤어.”
 뭐가 문젠지는 알겠다.
 명수, 재현이가 이 녀석과 같은 중학교 출신이라면서 들려준 이야기가 있어 더 뭔지 알겠다.
 그래서도 녀석이 지금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걸 용서하지 못하겠다.
 “그라나? 내 같은 놈을 잘 아나?”
 “뻔뻔한 새끼. 난 그냥 잘해주려고 했을 뿐이었는데, 왜 나를 무시해.”
 “그라나? 무시한 건 내 이미 사과했다.”
 “이제 너 때문에 다른 애들이 내 말을 안 들어. 돈을 얼마를 쓰든 애들이 날 무시하고, 통솔에서 벗어난다고. 넌 학교에 맹수들을 풀어놓은 거야.”
 “맞나? 내가 맹수를 풀었나?”
 “너야 좋겠지. 싸움도 잘하고 주먹도 있으니까. 이제 그 양아치 같은 새끼들한테 추앙받으면서 떵떵거리고, 애들이나 괴롭히고 다니겠지. 근데 다른 애들은 어떡하라고.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학교생활을 얼마나 망치라고.”
 “하~ 준학아. 이놈아 좀 앉아봐라.”
 “왜 이 새끼야.”
 “깡다구 보소. 아까부터 새끼 새끼 하지 말라는 데도 계속하네. 그 깡다구로 와이리 쭈구리고 사는지 모르겠네. 암튼 내는 앉으라 캤다.”
 
 
 # 6
 
 준학이를 잡아당겼다. 녀석은 다리에 힘이 없어 쿵 하며 복도에 나자빠졌다.
 겁을 먹고 있었다. 그래도 녀석을 잡은 손에 강하게 힘을 주며 말했다.
 “닌 지금 큰 실수를 저질렀다.”
 “···.”
 “뭔지 모르겠지?”
 “뭐··· 뭐가? 내가 뭘.”
 “니 내 봤나.”
 “뭐?”
 “니 내 봤냐고.”
 “··· 무슨 소리야?”
 “이 개새끼야. 어디서 수작이고. 니 방금 니 입으로 말했다 아이가. 내가 아들 돈 뺏고, 성질부리고 하는 거 봤나?”
 “···안 봐도 뻔한 거 아냐?”
 “그게 뻔한기가···.”
 화병이 도질 거 같다는 게 뭔지 알 것 같다.
 속에서 열불이 난다는 게 뭔지 알 것 같다.
 그래서 한숨을 내쉬고 마른 입술을 혓바닥으로 적시며 말했다.
 “준학아. 앞으로 니가 살아가면서 많은 걸 보고 잊을 테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기억해라.”
 난 준학이의 면상에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내는 빈말은 안 한다.”
 녀석은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나한텐 이 녀석이 겁을 먹든 떨든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는 지금 이 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교실로 돌아가든가, 아니면 기회를 봐서 학교 밖으로 나가든가. 니를 놓치지 않고 쫒아가 때릴 거다. 니는 지금까지 니가 보았거나, 당했던 그 어떤 폭력보다도 더 무자비하고 끔찍하게 내한테 맞을 줄 알아라.”
 “··· 왜. 왜??”
 “왜? 니 지금 왜라 캤나? 니가 먼저 니 입으로 말했다 아이가. 내는 성질이나 부리고, 아들 돈이나 뺏고 할 거라고. 그러니 내는 그에 맞춰서 행동을 해줘야지”
 “그··· 그럼 아니야?”
 “이 병신새끼는 아까부터 왜 사람을 니 멋대로 판단하는데?”
 “뭐?”
 “니 내 봤나! 내가 아들 돈 뺏고, 줘 패고 하는 거 봤나!! 못 봤으면서 왜 니 좆대로 날 평가하고 재단해가 지랄인데! 이 개새끼가 진짜 뒤지고 싶나!”
 참다 참다 여기가 교무실 앞이고 체벌 중이라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성질을 버럭 내고 말았다.
 그 바람에 준학이 놈은 완전히 얼굴이 파랗게 질렸고,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나오는 소리가 들리고, 저 멀리서 교장실까지 문이 벌컥 열리고 말았다.
 그래도 이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왜 이 녀석이 멋대로 판단한 선입견에 내가 피해를 받아야 하는가.
 “뭐야! 이 녀석은!”
 역시나 교장 선생님같이 보이는 분이, 버럭 화를 내면서 다가왔다.
 이대로 정학을 당하거나, 학교를 옮기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나는 사람을 때려죽이지 않아도 될 것이고, 이 엿 같은 학교를 벗어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교무실에서 나온 수학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을 만류하며 말했다.
 “선생님. 제가 타이르겠습니다.”
 우리 반 수학을 가르치시던, 그 선생님이셨다.
 연륜이 있어 그런가, 수학 선생님이 나서니, 교장도 더 뭐라 안 하고 교장실로 돌아가셨다. 그리곤 수학 쌤은 우리를 일으켜, 다시 아까의 휴게실로 들어가셨다.
 체벌 중에 교무실 앞에서 빽! 소리를 질렀으니, 몇 대 맞겠구나 각오를 하고 어금니를 악물고 아랫배에 힘을 꾹 주었다.
 그런데 쩍! 소리가 나며, 내 옆에 준학이 놈이 고개가 꺾여선 휴게실 저 뒤쪽으로 나자빠졌다.
 수학 선생님은 흥분하셔서 소리치셨다.
 “일어나! 이 자식아!!”
 왜···? 왜 수학 쌤이 화를 저리 내시는 걸까···?
 수학 쌤은 준학이 놈이 일어나는 모습을 지켜 보다 못해 먼저 다가가 슬리퍼를 벗어 머리를 때리고, 주먹질하고 사방으로 손을 내리치셨다.
 나는 가만 보다가, 그래도 선생님이 학생을 이렇게 때리는 건 문제가 있겠다 싶어 뜯어말려야 했다.
 조금 늦게 교무실에 남아있던 몇 사람의 선생님들이 따라 들어와 역시 수학 쌤을 말리며 왜 이러시느냐 말로 하셔라 타이르셨다.
 그러자 수학 쌤이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이 자식! 아까부터 너희 두 놈이 하는 얘기 다 들었다! 이 건방진 자식!”
 수학 쌤은 동료 선생님들한테, 준학이 놈이 무슨 짓을 했고, 나를 어떻게 판단했으며, 지금까지 학교에 무슨 짓을 해 왔는지 낱낱이 알려 버리셨다.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들도 벙찌는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그리곤 준학이를 경멸하는 시선으로 내려 보며 손가락질을 하고 혀를 차셨다.
 “재벌이라더니, 못 쓰겠구만 이 녀석.”
 “애비가 자식을 망친 거지.”
 “아니지, 자식이 애비 얼굴에 먹칠을 한 거지.”
 준학이 놈은 무너지고 있었다.
 난 뭐라 더 이상 나설 곳이 없었다.
 수학 쌤은 그 상태로 무너진 준학이한테 말씀하셨다.
 “이 녀석! 집이 아무리 돈이 많기로서니, 제 멋대로 굴다니! 우리 교사들이 그리 우습더냐! 학교가 그리 못 미덥더냐! 그것도 모자라, 전학 온 새 친구를 맘대로 판단하고, 그 틀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폭력을 쓰다니! 당장 이 학교에서 나가라! 이곳에 학생이 돈으로 사야 하는 학풍과 교칙이란 없다!! 당장 나가라!!”
 
 “그래가···.”
 “그래가는 뭐 그래가고.”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대구 친구 민수랑 하고 있었다.
 “금마는 우에 됐는데?”
 “뭐 그냥 잘못했다고 싹싹 빌고, 교실로 돌아갔지.”
 “아이고 이 븅신아. 인생 스펙타클하다.”
 “내가 스펙타클이가. 금마가 스펙타클이지.”
 “그게 지금 서울로 전학 가가. 한 달도 안 된 놈의 이야기가. 와 사노. 거 서울 아이가. 거 한강 있다 아이가.”
 “내가 잘못했나 금마가 그랬다는 기지.”
 “암튼 지간. 참 인생 다이나믹하게 산다.”
 어떻게 하다 보니, 서울 이야기를 털어놓을 대상이 민수밖에 없었다.
 왕따나 당하고, 교무실이나 불려 다니는 쪽팔리는 이야기를 어찌 다른 놈들한테 할 수 있을 소냐. 뭐 아닌 대로 민수가 입이 무거우니, 첨부터 녀석을 고른 것도 있지만, 녀석은 입이 무거운 만큼, 돌아오는 악담도 컸으니 뭐가 되었든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만일 같은 이야기를 정배나 상철이가 처음부터 들었더라면 뭐라고 해 줬을까?
 상철이 놈은 그냥 지 성격답게 조용히 있으라고 했을 것이고, 정배는 정배대로 시시콜콜 이런 저런 이야기나 했을 것이다.
 성기는. 성기는··· 어? 그러고 보니 성기는 어떻게 지내는 걸까?
 “민수야. 좆대는 뭐하고 있는데 연락 한 번 없는데?”
 성기는 이름이 그래서 별명이 좆대였다.
 “좆대 금마··· 금마 뭐 있다.”
 “와 좆대 무슨 문제 있나?”
 “문제는 니한테 있지. 여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암튼 그래가 닌 이제 완벽한 왕따로 낙인찍힌 거가.”
 “그게 잘 모르겠다. 그날은 한 놈 빼고 겨우 사귄 애들도 좀 머뭇머뭇 하데.”
 “당연하지 븅신아. 서울 아들은 아 있나. 갸들은 ‘섬세’하데이.”
 “카하하하 ‘섬세’는 뭔데?”
 “있다 아 있나. 서울 아들은 막 그런 거 있잖아. 어? 섬세한 거. 여같이 무식하고 막 들판의 자갈 같지 않다. 갸들은 유리컵 다루듯이 다뤄야 된다.”
 “지랄한다. 서울 아들 만나본 적도 없으면서.”
 “에고. 석호 따라 서울 가시나들이랑 좀 놀아보나 했는데, 것도 물 건너가네.”
 “이 쉐끼는 친구 걱정 고민은 관심도 없나.”
 “니 인생 니가 챙겨야지. 와 내한테 지랄이고?”
 “됐다! 끊어라! 재수 없는 새끼. 내 니한테 다시는 전화 하는가 봐라.”
 “미친 새끼 지난번도 그래놓고. 전화하지 마라.”
 “안 한다!”
 “하면 뒤진다! 딩시 같은 새끼. 맨날 서울 아들한테 쳐 당해놓고 왜 나한테 화풀인데!”
 암튼 민수는 그렇다 치고. 성기가 무슨 문제가 있는가.
 정배나 상철이 민수랑은 꾸준히 연락은 되지만, 성기는 대구를 떠난 시점부터 톡을 보내도 단답이고, 뭔가 통화를 해도 짧게 통화를 하길래 연락하기가 꺼려진다.
 뭐 대구 놈들은 대구 놈들이고. 서울은 서울이고.
 이제 준학이와의 문제는 끝난 거 같다. 어쨌든 쌤들한테 찍힌 이상 녀석도 더 이상 지 멋대로 활개 치고 다닐 수는 없을 터.
 이번 준학이와의 일도 놓고 보면, 그냥 치고받고 “으하하 화해하고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됐다 병신 새끼야.” “어? 니 지금 욕했나? 뒤질래?” 같은 대구 촌놈들이 그립다.
 민수 말대로 ‘서울 아’들은 섬세한 건가?
 겨우 친구가 된 석진이나, 준호, 명수 재현이는 앞으로도 내 친구가 돼줄까?
 어쨌든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이제 희연이의 앞모습은 다시 볼 날이 없을 것이다.
 친구도 다 사라지는데, 그냥 조용조용 학교나 다니고, 조용조용히 공부나 하고 다녀야겠다.
 그래 서울 아이가. 공부하면 성적은 나오지 않겠나. 이참에 내도 목표를 서울대 법대로 잡아보고 인생을 바꿔볼까?
 아니. 현실적으로 서울대 법대는 말이 안 된다. 서울대 자체도 말이 안 된다. 하하 서울대 목표 이지랄 하하하하!
 근데 생각해보니까, 헛소리를 떠나가, 서울대고 나발이고 공부를 꽤 하기는 해야 한다.
 준학이 사건으로 나도 적잖이 학교 쌤들한테 찍힌 모양새였다.
 공부라도 좀 하지 않는다면, 친구를 떠나 선생님들한테도 찍혀서 난리가 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신아 쌤··· 담임보다 큰 누나 였으면 좋을 우리 착하고 여린 신아 쌤. 왜 신아 쌤은 내나 준학이 같은 떨거지들의 담임이 되셔서, 시말서나 쓰고, 교장실이나 불려 다니고···.
 나는 신아 쌤을 위해서라도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 공부다. 공부. 공부를 하는 거다.
 
 ***
 
 학교 분위기는 전과 달리 바뀌어 있었다.
 “준학이한테 돈을 받았다. 그로 인해 학교 폭력이 없었다.”라는 것이 몇몇 선생님들의 주체성에 커다란 생채기를 낸 것 같았다.
 학교가 얼마나 못 미더웠으면, 학생 하나가 돈으로 학풍을 만든단 말인가. 그리고 다들 그런 평화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겉으론 내색을 안 했을 뿐이지. 준학이 놈을 썩 맘에 들어 했던 학생도 몇 없었는가 보다.
 준학이는 전학을 가거나 퇴학을 당하진 않았다. 대신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었다.
 인자 반에서 왕따는 내와 준학이 두 사람이었다.
 아. 내 이야기를 하자면, 역시나 새로운 친구들한테 내는 좀 버거웠나 보다.
 준호, 명수, 재현이는 내게서 자연스레 멀어지고 말았다. 대신 석진이가 간간이 다가와 말도 걸고 해 주는 게 그냥 고마웠었다. 그것만으로도 내는 최준학보다는 조금 나은 위치에 있었다.
 “암튼, 석호 너 내기 기억하지?”
 “뭐? 무슨 내기?”
 “무슨 내기라니. 너가 먼저 말했었잖아. 성적 잘 나오는 사람 소원 들어주기로.”
 “아. 맞다.”
 “재현이랑 애들도 공부 열심히 하니까 잘해 보자.”
 내기 그거. 쫄리기 싫어가 아니면 그냥 한턱 눈치 보지 않고 쏠라고 한 말이었는데. 임마가 내 말을 기억해주고 있었다. 조금 감동이었다.
 그러니 굳이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애들을 묶어 넣지 않아도 된다고. 언제 날을 잡고 석진이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전해 주고 싶었다. 나는 그냥 나대로 공부에 집중을 했다.
 그리고 중간고사를 치렀다.
 중학교와 다르게 고등학교의 시험은 과연 난이도가 있긴 하더라.
 조금 어렵긴 했지만, 얼추 공부한 범위에서 나오긴 했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나도 교우관계가 꼬이느라, 딱히 놀러 다닐 시간도 없었고. 여러 신아 쌤이나, 수학 쌤이나 그래도 날 지지해준 선생님들을 봐서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긴 했다지만···.
 ···설마 전교 1등을 하게 될 줄은 진짜 몰랐다.
 
 
 # 7
 
 “그래. 밥은 묵은나?”
 “어무이. 내 밥 잘 먹고 있다. 그렇게 꼬박꼬박 확인 안 하셔도 된다.”
 “별일은 없고?”
 별일? 나쁜 의미든 좋은 의미든 정말 별에서나 벌어질 법한 일들은 많았다. 하지만 어디까지 말씀드리고 어디까지를 말씀드리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역시 어떻게 해봐야, 극과 극을 달릴 가족들. 그냥 두루뭉실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별일 없다.”
 “근데 와 사내새끼가 목소리에 히마리가 없노.”
 “밤이다 어무이. 오밤중에 옆집 다 들리구로 ‘하이고~~ 어무이! 마~~이 보고 싶습니다!!’ 캐야 하나.”
 “알았다. 알았다. 니 삼촌은 집에 있나?”
 “없다. 삼촌 맨날 늦는다.”
 “금마는 서울 바닥에 조카만 냅두고 맨날 싸돌아 댕기나?”
 “카하하 엄마. 내 대구에서도 혼자 있었잖아. 그땐 더 어렸잖아.”
 “그래도 거는 ‘서울’ 아이가.”
 “서울 뭐. 여도 다~ 사람 산다. 그라고 삼촌도 취업이다 뭐다 바쁘다.”
 “친구는 좀 사겼나?”
 “···하모. 내가 혼자 다니겠나.”
 “그래··· 거 가가지고는 쌈박질하지 말그라.”
 죄송합니다. 어무이. 참말로 죄송합니다. 하며 속으로 말을 삭히는데, 수화기 저 너머에서 아버지가 “뭔 놈의 전화를 그리 오래 해 쌓노!”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아버지 목소리도 들었다. 그럼 됐다.
 “아 혼자 있다 아입니까. 알았다. 알았다. 석호야 니 아버지 뭐라 칸다. 끊는데이.”
 “예. 들어가이소.”
 “밥 잘 챙기묵고.”
 “예”
 “아들이랑 친하게 지내고.”
 “예···.”
 “그라고 학교 선생님들한테 인사 잘하고.”
 “알았다. 알았어! 어무이. 쫌!”
 “알았다. 지 아부지 닮아가 말 참 이쁘게 한다···.”
 그렇게 걱정되면, 애당초 멀리 보내지를 말든가. 참으로 알 듯 모를 듯한 부모님들이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니, 자그마한 후회가 떠오른다.
 “1등 한 건 말씀드릴 걸 그랬나···?”
 다시 한 번 성적표를 꺼내본다.
 이 학교는 전산처리 뭐 어쩌구 해서 매 시험마다 성적표에 전교 등수가 찍혀 나온다고 했다.
 그 성적표에 분명히 써 있었다.
 반 석차 1/31 전교 석차 1/378
 1등이다. 1등. 아무리 그래도 전교 1등이라니.
 처음 교실에서 성적표를 받았을 때도, 너무 놀라서 받자마자 황급히 숨기고 말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희연이나 주위 누구도 내 성적까지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어가 들키지는 않았다. 뭐 애당초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거겠지만···.
 아무튼 다시 봐도 참 그렇다.
 “1등이 뭐고 1등이··· 쪽팔리게··· 적당히 한 10등에서 18등 사이면 딱 좋을걸. 너무 발악해서 공부만 한 거 같잖아···.”
 암튼 쪽팔린 건 쪽팔린 거고, 역시 나는 머리가 나쁜 게 아니었다.
 공부를 못 한 거다. 말 그대로 못.한.거.
 나는 중학 3년간 공부를 못 했다.
 왜 ‘못’ 했느냐? 시간이 없었다.
 왜 ‘시간’이 없었느냐?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느라? 쌈박질이나 하고 다니느라?
 아니! 우리 집이 친구 놈들의 아지트가 되는 바람에 못 했다!
 학원을 다니진 않았다. 그것 역시 아버지의 철학이었다.
 공부란 학교와 집에서 하는 것이란다.
 그 학교와 집에서 사람과 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도리어 중3 때는 내 집 문을 친구 놈들이 열어 줬었다.
 그렇게 물리적으로 혼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잠자고 먹고 하는 시간을 뺀 하루 두 시간.
 난 그 두 시간에 딸도 쳐야 했고, 아버지한테 혼나지 않게 적당한 성적도 냈어야 했다.
 그 시간이 이번에 좀 길게 있었다. 길게 집중을 할 수 있었고, 길게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단지 그 차이일 뿐인데··· 그렇다고 1등을 하나. 하이고야···.
 
 괜히 분수에 맞지 않는 점수가 또 다른 파란을 부르진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말을 보내고 학교에 가니, 신아 쌤이 호출을 하셨다.
 반 아들은 또 무슨 사고를 쳤을까 하는 호기심, 경멸, 한심을 둘둘 반으로 섞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쳐다보는 게 좋다. 내가 봐도 내가 전교 1등 할 재목은 아니니까. 하지만 우리 신아 쌤은 아니었다.
 “석호야. 선생님이 석호한테 많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거 같아··· 많이 힘들었지?”
 아닌데요. 오해 안 하셨는데요.
 라는 말을 차마 입 밖으론 못 꺼내겠다. 저 초롱거리는 눈동자를. ‘어쩜! 전교 1등이 우리 반에!’ 하는 저 신입 교사의 선망의 눈동자를 어찌 짓밟을 수 있단 말인가···.
 “··· 저 쌤. 그 시험은 좀.”
 “나는 선생 될 자격도 없어. 학생을 첫인상만으로 판단하고. 석호는 준학이나 다른 애들이 괴롭히는 상황에서도 열심히 공부했는데.”
 “아니요. 쌤 그게 제가 괴롭힘을 당한 게 아이라. 아니, 그보다. 제 첫인상이 뭐 어땠는데요!?”
 “심지어 부모님도 안 계신 상황인데··· 그런데도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흑! 난 정말 선생 자격 실격이야···.”
 담임보단 차라리 누나였으면 싶었는데, 이런 누나를 어찌 감당하겠나.
 “아무튼 석호 고마워. 덕분에 이번에 선생님 어깨가 으쓱해졌어! 부모님도 기뻐하실 거야.”
 멀쩡히 살아계시는 부모님을 두고, 와 자꾸 패드립을 치시는지 모르것다. 그거 하나는 집고 가야겠다.
 “저 쌤요. 저희 부모님은 잘 살아계시는데요.”
 “···그치만 석호. 너 보호자란에 연락처도 안 적었던데.”
 “그건··· 그게···.”
 “괜찮아 석호야. 선생님은 석호 같은 고학생을 응원해줄 수 있어.”
 고학생(苦學生)··· 분명 명사로 스스로 힘들게 공부하는 학생 같은 뜻 아니던가.
 미치겠다. 상상력이 풍부해서 국어 선생님인가. 그냥 사건을 너무 저지르다 보니 자연히 기재하지 않을 뿐인데··· 그게 이래 해석이 되나···?
 “쌤요. 진짜 오해하지 마시고요. 저희 아버지는 소 키우시고요, 어무이는 참외 농사를 하십니다. 두 분 다 일하실 때는 전화 잘 안 받으시고요. 그래서 뭔 일 났다 싶을 땐 차라리 선생님들이 부모님을 찾아가시곤 했었어요.”
 “···진짜?”
 “예! 그런 걸 속여가 뭐 합니까.”
 “그럼 지금은 혼자 지내니? 석호 너 대구에서도 혼자 지냈다고 했잖아.”
 “서울에선 삼촌이랑 같이 지내고 있어요.”
 “삼촌이 보호자시니?”
 “딱히 보호자는 아니고요. 어쨌든 저는 14살 때부터 밥하고 빨래도 혼자 잘해내고.”
 “그래. 그럼 여기다 삼촌 연락처 하나 적어놓으렴.”
 “···삼촌요? 와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을 해야지.”
 “···무슨 일요? 무슨 큰일이 있다고 보호자한테 연락을 하는데요?”
 “···얘는. 지난번 같이 또 애들이 괴롭히거나 하면 일단 어른들께 알려야지.”
 돌겠다.
 “하하! 쌤요! 괘않심더! 뭐 그런 짜잘한 일을 일일이 집에다 알립니까.”
 “그래도 석호야. 학교 폭력이라는 건, 학교만의 힘으로 해결하기가 어려워서.”
 “하모!~ 쌤요!! 괘않심다! 마. 괘않심다. 신경도 안 쓰고요, 제가 괴롭힘을 당한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보호자 연락처는 하나 적어 놓으렴.”
 “쌤요. 진짜 하~~~~나도 걱정 안 하셔도.”
 그렇게 펄쩍펄쩍 뛰며 괜찮다 할 때 등 뒤에서 수학 쌤이 뒤통수를 책으로 탁! 때리시면서 말씀하셨다.
 “선생님이 적으라면 적을 것이지. 뭘 시끄럽게 하고 있냐.”
 “···예. 죄송합니다.”
 “엉뚱한 자식. 전교 1등이라고 무슨 특혜가 있다거나 하는 기대는 하지 마라.”
 “···예.”
 내가 뭐라 캤나. 와 내한테 화풀이시고···.
 “그래. 암튼 그럼 부모님 연락처는 없는 거니?”
 “있긴 한데요··· 농장 전화고 집 전화라. 잘 안 받으실 거예요.”
 “···저기 석호야.”
 “예.”
 “선생님이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부모님 이야기··· 진짜 맞지?”
 안 되겠다. 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다.
 “쌤.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이런 일은 대구에서도 매년 거치는 일이었다.
 그때마다 이 영상이 큰 도움이 되긴 했었는데 서울까지 와서 써먹게 될 줄이야.
 타닥타닥 신아 쌤의 키보드를 빌려 검색창에 타자를 두드린다.
 『성주. 농사짓는 강아지 석구 편』
 “석호야 이게 뭐니?”
 “···쌤이 자꾸 오해하시니까요, 잠시 저희 가족을 보여드리려고요.”
 신아 쌤의 눈빛이 빛난다. 쪽팔림은 잠시. 오해를 푸는 게 먼저였다.
 《나래이션: 제작진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동네에 농사를 짓는 개가 있다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접수됐다. 제작진은 소문을 따라 경북 성주의 작은 마을로 찾아가 보는데, 마을 입구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소년이 제작진을 반겨준다.
 제작진: 저거, 초등학생 아냐?
 나래이션: 놀랍게도 제작진을 반겨준 건 트럭을 몰고 있는 어린 학생!
 제작진: 저기, 꼬마야. 여기 석구라고 농사짓는 개가 있다는데 어디 있는지 아니?》
 “어머! 이거 석호 너 아니니?”
 “쌔··· 쌤. 목소리가··· 너무 크신데요.”
 “트럭을 몰아? 이거 진짜니?”
 “쌤요. 그게 중요한 게 아이라···.”
 《나래이션: 제작진은 당황스럽다. 농사짓는 개도 개지만, 초등학생이 트럭도 몰고 트랙터도 몰고 어른 한 사람의 일을 거뜬히 해내고 있었다.
 제작진: 아버님. 아들 석호 군은 아직 초등학생 아닌가요?
 아버지 김상호 씨: 시골에서 어리고 자시고가 어디 있습니까. 사내 아면 같이 일손도 돕고, 트럭도 몰고 하는 기죠.
 나래이션: 그러면서도 아들 석호 군을 볼 적에 김상호 씨의 눈빛엔 짠~함이 묻어 나왔다~~》
 “이 분이 우리 아버지고요. 저 짠한 눈빛은 그때 PD 아저씨랑 싸워가면서 감정 잡으라고 몇 번을 찍은 장면이고요. 실제로 저런 분 절대 아니시고요.”
 “오~~!”
 《어머니 박희자 씨: 부모 입장에선 안타깝죠. 석호 아부지도 말은 저래 해도, 아들이 친구 하나 없이 맨날 뛰놀리 댕기는 게 안타까웠는지 어느 날 강아지를 한 마리 데꾸 오시더라구요.
 나래이션: 그게 농사짓는 강아지 석구였다. 석호는 강아지 석구와 우정을 나누면서, 일을 가르쳤단다.》
 “이분이 우리 어무이십니다. 여기 옆에 있는 쪼그만 아는 제 동생이고요. 지금은 많이 컸고요.”
 “오~~~~”
 “보셨죠. 저희 부모님. 가족 다 건강히 살아··· 어···?”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동영상을 보면서 거듭 감탄사를 내뱉던 신아 쌤의 큰 목소리에 교무실의 모든 선생님들이 우르르 몰려와 있었다.
 “뭐야?”
 “뭔데?”
 “이신아 선생님. 뭐 보고 있어요?”
 “네? 우리 학생 가족들이랑 tv 나온 거요.”
 그걸 왜 내 동의도 없이···.
 “저··· 쌔. 쌤요··· 여까지만 보시죠. 조회도 끝나가고 이제 곧 수업 있다 아입니까?”
 “왜? 계속 보자. 아직 시간 많이 남았는데.”
 “아니··· 근데 수업 안 가십니까?”
 “하하. 선생님들 수업을 왜 학생이 걱정하나.”
 카시면서 다른 선생님들이 나를 밀쳐내며 동영상을 계속 본다.
 나는 그만 있으나 없으나 한 존재가 된 것 같다.
 “저. 쌤요? 저는 그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어? 어 그래 석호야. 삼촌 번호. 적었구나. 그래 교실에서 보자.”
 신아 쌤과 다른 선생님들한테 이제 부모님의 존재유무 따위는 중요사항이 아닌 것 같다.
 교무실을 나서는데, 하하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겁나게 걸렸다.
 오해는 풀었으니 됐다고 해야 하는가. 어쨌든 신아 쌤이 연출된 영상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석구 그 똥개는 절대 그리 똘똘한 개가 아니고,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아들을 위한 훈훈한 부정을 가지신 분도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집도 떠오르고 학창시절도 떠오르고 만감이 교차한다.
 그러고 보니, 중학교 때 처음 싸움을 한 계기도 저 동영상이었다.
 학교에 어떤 놈이 저 빌어먹을 동물농장 재방송을 보고 와서는, 나를 촌스럽고 순딩순딩한 놈으로 놀려먹다 줘 터진 게 싸움의 시작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참 유치하기 그지없는 싸움의 원인이 아닐 수 없다.
 “뭐하는데 혼자 히죽거리냐?”
 석진이가 자리로 찾아왔다.
 “어? 어. 아이다.”
 “교무실은 왜 갔다 온 거야?”
 “그냥. 신아 쌤이 뭐 좀 물어보신다고.”
 “암튼 그래. 몇 등 했냐?”
 “어?”
 “내기했잖아.”
 석진이가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짧은 시간. 석진이를 보며 짱구를 굴리고 답했다.
 “하하. 내 별로 잘 모했다. 니는?”
 “나도 뭐 별거 없지. 근데 큰소리 치길래 너 공부 좀 하는구나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내도 공부 좀 하면 될 것 같았는데, 서울은 역시 어렵네.”
 “뭐 다 그렇지. 암튼 내기는 내기니까 등수를 공개해야지.”
 “됐다. 뭐 쪽팔리게 그런 걸 공개하고 그라노. 그냥 내가 니 먹고 싶은 거 함 살게.”
 “그렇다라. 암튼 곧 수업이네. 쉬는 시간에 가자. 너가 다~ 사는 거다.”
 “하모! 내 빈말 안 한다.”
 석진이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고, 수업을 맞아 책을 정리하는데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희연이가 한쪽 턱을 괴고서는 빤히 보고 있었다.
 
 
 # 8
 
 동그란 눈이 말똥거리고 있어가, 처음엔 깜짝 놀랐다.
 허고! 깜짝이야. 이쁜 아가 얼굴로 사람을 다 놀래키네. 야가 이래 내를 똑바로 볼 때가 다 있었나?
 “와?”
 “···아니. 그냥.”
 “와? 말해라.”
 “그냥. 들어보니까 성적이 잘 안 나왔다고 그러기에.”
 “···뭐. 그게 와?”
 “그냥. 그럼 누가 1등인 거지?”
 그러고는 다시 정면을 보며 시선을 피한 희연이었다.
 참으로 가시나. 사람 덜컹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얼굴로 덜컹거리더만, 인자는 말로 덜컹거리게 만든다.
 고민이다. 고민이야. 왜 1등 같은 귀찮은 걸 해서 지랄일까. 싸움도 잘하니 맨날 천날 시비 거리가 붙었던 거다. 그래서 뭐든 1등 보단, 적당히 잘하는 게 좋은 거다.
 근데 생각하면 할수록 그렇네···.
 여기서 내가 전교 1등이다. 해 버리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반 아이들이 웅성웅성거리며 “와~ 석호는 공부도 잘하는구나~!” 하면서 반겨줄까?
 아니다. 그건 이미 전학 첫날부터 물 건너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바라던 대로 이미지 메이킹이 되어 있었다면, 즉. 저 구석에서 엎어져 있는 개쉑끼 최준학이만 아니었다면 그럴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러나 이미 나는 그 길을 벗어났다.
 아닌 대로 스스로도 자각하지 않았던가. 나는 전교 1등 할 재목이 아니라고.
 그냥저냥 조용히 있으면 누가 알리도 없고, 관심 가질 일도 없다. 조용히 가는 거다.
 그냥 내 공부 하고, 내 생활 찾고 하다보면 저 성적도 내 성적이 아니니, 좋은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이 전교 1등의 문제가 내 예상과는 다르게 벗어나기 시작했다.
 대구에서도 그렇게 성적과 등수를 중요하게 여기는 애들은 있었지만, 이 동네만큼은 아니었다.
 여기가 서울이라 그러나. 아니면 동네가 좀 그래서 그러나.
 동네가 어디냐고?
 있다. 좀 신기한 그런 동네가 있다.
 여는 건물도 세련되고 큼직큼직한데, 동네 이름이 서울 같지 않은 촌시러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뭔가 저 대관령이나 추풍령이 떠오르는 이름.
 그래. 여는 ‘목동’이라 불린다.
 
 목동. 여는 좀 신기하다.
 서울에 오기 전에도 여가 치맛바람이 좀 있다. 학군이 유명하다. 라는 이야기를 듣긴 들었었다.
 대구도 수성구에 그런 동네가 있는지라, 그러려니 했는데. 백문불여일견 안 카나. 대구랑 다르게, 직접 마주한 서울 분위기는 내가 예상한 것과 다르더라.
 도리어 여는 내가 아는 세상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 광경이 주먹이냐. 머리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승부를 걸고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모습은 차이가 없었다.
 도리어 여 머리의 승부는 주먹의 승부보다 더 자비가 없는 것 같았다.
 주먹 싸움은 그랬다.
 시비가 붙는다. 이유야 가지각색이다.
 쳐다 봤다. 뒷담 깠다. 친구를 때렸다. 등등. 알고 보면 그냥 누군가 줘 패고 싶다 하는 미친놈이 시비를 걸고 맞서 싸운다.
 지금은 그래도 조금 덩치가 있지만, 중1때의 나는 몸도 작고, 집도 성주 시골에서 혼자 와 지내다 보니, 점마 정도면 쉽게 이겨 먹을 수 있겠다 싶은 만만함이 있었다. 거기 플러스알파로 동물농장···.
 억수로 싸웠던 것 같다.
 근데 거서 이기니까 이제는 ‘누가 통이냐’는 명목으로 또 싸움이 벌어졌다.
 통이 되가 이제 좀 잠잠해지나 했더만, 인자는 학교와 학교 간 뭔 놈의 쌈박질을 그리 하는지···. 중학교 3년은 정말 이게 깡팬지 학생인지 내가 봐도 분간이 안 되게 싸운 것 같다.
 나는 그래서 싸움이 싫었다. 때리고 맞고 씩씩거리고 하는 그 과정이 싫었다.
 그러면 싸움을 피하지 왜 일일이 이겨 먹느냐고?
 그 이유는 딱 하나다.
 싸움이 싫은 거지, 패자가 될 순 없었다.
 내 동생 진호는 멀리 가더래도, 좀 규모가 있는 초등학교를 들어갔지만, 나는 전교생이 7명도 안 돼, 전 학년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그런 시골 초등학교를 다녔다.
 학교를 졸업하고 마주한 대구의 중학교는 낭만적인 공간이 아니었다.
 나는 승자가 되기 위해가 아닌, 패자가 되지 않기 위해 싸움을 피할 수 없었다.
 뭐 모든 싸움을 어찌 알겠는가. 그냥 내가 겪은 싸움이 그렇다는 거다.
 그 공식의 일부분이 여기 들어맞는다.
 마치 대구 중강고의 서열 전쟁이 떠오른다.
 공부 잘하는 아들의 승부는 학기 초 주먹이 아닌, 바로 중간고사가 끝난 지금이었는가 보다.
 사람은 겉만 보고 모른다지만, 우리 고운 희연이가 얼굴만 고운 게 아니라, 공부도 꽤하는 수재였는가 보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면 딱 봐도, 공부 좀 한다하는 딸내미들이 희연이를 찾아와가 물었다.
 “희연아. 너 아니야?”
 “나. 아냐.”
 “그럼 누가 전교 1등이지?”
 “글쎄···.”
 창밖은 6월의 햇살이 내리쬐고, 교복도 하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첫 중간고사를 치루고 나니, 저마다 성적을 매기고 각자의 위치를 점검하고 다니는 아들이 나타났다.
 일대일 맞다이로 서열을 정하는 방식이 스맥다운이면, 중간고사는 로얄럼블 같은 개념 인가 보다.
 모두가 한 번에 붙어 성적에 따라 순위를 정하고 각자의 위치를 잡는 그런 로열럼블. 그리고 승부가 벌어졌다.
 근데, 결과가 나왔는데, 1등이 나타나질 않고 있었다.
 내 입장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공부 하는 아들은 이게 미치는 기다.
 졌는데, 승자가 없다.
 그냥 패자만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평상시 머리 좀 쓴다 하는 아들은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엎드려 자고 있었는데, 희연이를 찾아온 딸내미들의 이야기를 듣고 괜히 몸이 조마조마했다.
 나서지 말자, 나서지 말자. 하고 있는데, 이 가시나가 또 사람 덜컹거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지라 몸이 초조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희연이 임마가 목소리를 촤~악 내리깔고 한마디를 꺼내더라.
 “나는 우리 반에서도 1등이 아니야.”
 “그럼! 너희 반에서 전교 1등이 나온 거네!”
 “그건 모르지. 다른 반에서 나왔을 수도 있지.”
 “너 전교 석차는 몇 등인데?”
 “뭐 그런 걸 묻니··· 아무튼 나는 ‘절대’ 아니야.”
 가시나 와 저카노. 평상시 얼굴 한 번 안 비 주는 아가, 와 내 쪽을 보고 저런 말을 해 쌓는지 모르겠다.
 “아~ 뭐고. 와 이리 시끄럽지···.”
 그래도 전적이 있어 그런가, 엎드려 있다 슬 일나니까, 희연이 친구들이 하나둘 눈치를 보더니 각자의 반으로 흩어졌다.
 근데 희연이 이 가시나가 내를 빤~~하게 쳐다보고 묻는다.
 “석호 너.”
 “···와”
 “···혹시 너 아냐?”
 “뭐가?”
 “전교 1등.”
 하이고 가시나 와 이카노.
 “뭐가? 내 아이다.”
 “···그래?”
 “그래. 뭐 그라는 니는 몇 등인데?”
 “나? 반에서 2등.”
 “와 니 공부 잘하네.”
 “너보단 못한 거겠지.”
 와 이카노. 진짜 와 이카노.
 “등수. 그게 뭐 중요하나.”
 “중요하지.”
 “뭐가? 각자 공부 잘하면 그만 아이가?”
 “···그렇긴 한데. 그래도 누가 일등인지 알고 있는 거랑 모르고 있는 거랑 긴장감이 다르지.”
 “뭔 상관인데. 그냥 지 공부 지가 잘하면 됐다 아이가?”
 “···뭐 그렇긴 한데.”
 희연이도 딱히 할 말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나도 뭐 별로 전교 1등이라고 재고 그러고 싶은 기분도 없었다.
 “그라고 내가 전교 1등이면 뭐 어떻고, 아니면 뭐 어떤데?”
 “···차라리 너가 1등이라면 다행이지.”
 “와?”
 “있어. 그런게.”
 희연이는 그 고운 얼굴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야가 와 이카는지 그날은 이해를 못하고, 며칠이 지나고서야 알 수 있었다.
 성적과 등수에 관해 희연이 같이 어물쩍 넘어가는 아들이 있으면, 납득을 못 하고 넘어가는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석진이랑 매점을 갔다 오는 길이었다.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해 보였다.
 저 멀리 찌질이 최준학까지 긴장해서 한쪽을 보고 있었다.
 뭔데 난리고? 하며 성큼성큼 내 자리를 찾아가는데, 웬 키는 멀대 같이 커가 허여멀건 한 사내자식이 머스마들을 줄줄 끼고서 희연이 앞에 서가 있었다.
 사내자식은 희연이에게 따지듯 물었다.
 “너지?”
 “나 아니라니까!”
 “야. 이희연. 그냥 일등 했으면 했다고 그래. 뭘 그걸 그렇게 빼고 있어”
 “아니라니까! 그리고 넌 왜 자꾸 나한테 와서 시빈데?”
 “그냥. 너 고등학교 와서 공부 열심히 했구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보는 건데 왜 그렇게 화를 내냐?”
 “뭐고?”
 한마디에 우리 고운 희연이와 허연 멀대 같은 자식이 동시에 돌아보았다.
 두 사람의 표정은 상반되어 있었다.
 희연이는 내를 반갑게 보고 있었고, 멀대 같은 자식은 내를 무슨 먼 산 보듯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녀석의 명찰을 보았다.
 “백윤수. 닌 누고?”
 
 
 # 9
 
 “넌 뭐냐?”
 백윤수가 내한테 한 첫마디였다.
 나는 최준학 때와 마찬가지로 얼토당토않은 기분을 느끼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나도 점마한테 “닌 누고?”라고 물었으니, 점마도 내한테 “넌 뭐냐?”라고 묻는 게 비합리적이진 않아 보였다.
 그래서 답했다.
 “내? 여 희연이 짝궁인데.”
 “아. 그래? 미안. 야 일어나. 자리 주인 왔잖아.”
 그러자 백윤수의 손짓에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머스마가 슬슬 일어났다.
 난 자리에 앉아 녀석들을 둘러봤다.
 희연이는 묘하게 긴장하고 있었다.
 가시나 또 긴장하는 게 살짝 귀엽다.
 “희연아. 니 친구들이가”
 “···어.”
 “와~ 니 남자친구들도 많네.”
 “······.”
 희연이의 그 표정이 무슨 뜻을 내포하고 있는진 잘 모르지만, 뭔가 내가 실수를 했구나 하는 자각은 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백윤수는 나를 보며 물었다.
 “아~ 너가 걔구나.”
 “걔 누구?”
 “지방에서 온 전학생.”
 그래가 뭐 어쩌라고? 같은 시선으로 쳐다보니 백윤수가 씩 웃으며 말했다.
 “하하. 재밌는 짝궁이네. 암튼 이희연. 학원에서 보자.”
 그래 말하고, 백윤수는 똘마니들을 데리고 우르르 교실을 벗어났다.
 나는 교복도 말끔하고, 눈매도 날카로운 백윤수 패거리들을 보며 말했다.
 “뭐꼬. 희연이 니 친구들이라 캐가 그라나. 느낌이 덩치들은 아닌 것 같고, 엘리트 건달 같이 느껴진다.”
 그 말에 아가 팩 하니 돌아보는데, 그 눈빛이 서늘해가 괜히 위축이 됐다.
 수업종이 울리면서 희연이는 다시 냉랭한 모습으로 변했다.
 피곤하다. 피곤해.
 뭐가 이유길래 사람을 이리 긴장하게 만들고 난린지··· 이쁜 아 들은 인물값 한다더만, 역시 야한테 마음을 접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하면서, 수업에 집중하고자 했다.
 그런데 수업이 역사시간이었고, 쌤은 누가 봐도 역사 쌤이라 불릴 백발이 성행한 노인 쌤에다, 진도는 시험 위주로 진행되고 있었고, 날은 따듯했다.
 무엇보다 역사 시간.
 창밖 저 멀리 한강까지 반짝거리니, 머릿속은 온갖 망상이 피어오르기에 너무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카~~ 멋지네.”
 “뭐가?”
 혼잣말인데 희연이 임마가 내 말에 반응을 보였다.
 뭐 나는 그럴 맘은 없었는데, 그래도 아가 뭔가 기분이 안 좋아보이길래 그 말에 살짝 대꾸를 해줬다.
 “한강이”
 “한강이 멋있어?”
 “멋지지. 안 멋지나.”
 “뭐 그냥 강이지.”
 “카~ 이래가 서울 사는 아들은 낭만이 없다.”
 “그럼 너는 지방 애라 낭만 있어 좋겠다.”
 뭔데 이 가시나. 와 이리 가시가 돋혀 있는데.
 “니 와 이카노?”
 “니.와.이.카.노.”
 뭐꼬?
 “따라하지 마라.”
 “따.라.하.지.마 풉!”
 지가 봐도 웃긴가 갑자기 사투리를 따라하다가 지 혼자 쪼개고 앉아 있다.
 참으로 이 와중에도 가시나 참 곱다. 라고 생각하면 내가 호구 병신 같아서 차마 그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되뇌었지, 마음 까지 끌고 오지는 않았다.
 희연이는 한 3분을 지 혼자 감정을 추스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
 “됐다. 뭐 이제 와가.”
 “삐졌어?”
 돌겠고 이 지랄.
 “됐다.”
 “삐진 거야?”
 “아. 됐다니까.”
 “에이~ 어디 봐봐~”
 와 이 가시나 진짜 와 이카노. 어따 얼굴을 들이미는데.
 “아. 하지 마라.”
 “에~ 안 삐졌네.”
 “아이라니까 하하. 아~ 하지 마라!”
 “어이 거기!”
 결국 나이 지긋하신 쌤이 화를 내셔서 희연이는 장난을 멈췄다.
 또 괜히 무슨 시비를 걸지 몰라 가만히 수업을 듣는데, 야가 또 말을 건다.
 “한편으론 부럽다~ 한강을 멋지다고 할 수 있어서~~”
 대꾸하지 말아야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임마는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것도 아주 조그마한 목소리로 내만 들리게.
 “난 주말마다 한강을 가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낭만이라~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낭만 없다는 소리나 들어야 하나~”
 “하~ 청춘이라. 그래 그런 거지. 자연을 벗 삼아 들판을 뛰어다니고. 그게 청춘이긴 하지···.”
 절대. 절대 방금 저 희연이가 귀엽다거나, 장난스런 모습에 설랬다 거나 해서 대꾸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가만 뒀다가는 이 가시나가 내를 얼마나 피를 말릴지 모르겠어서 대꾸를 해줬다.
 “희연아. 지금 역사 시간 아이가.”
 “어.”
 “니 한강이 원래 뭐라 불렸는지 아나.”
 “글쎄?”
 “아리수.”
 “아리수?”
 “그래. 아리수.”
 “수돗물 이름이잖아.”
 “수돗물인지 뭔지. 암튼 여 한강이 원래 아리수라 불렸다 카더라.”
 “언제부터?”
 “내도 잘은 모르는데, 백젠지 고구련지 암튼 이미 삼국시대 때 한강은 아리수라 불렀다.”
 “···오~”
 “이 봐 봐라. 여 책에 삼국의 성행 케가 적혀있제. 지도 보이제. 여 보면 한강에 백제 있고, 고구려 있고 신라 있다 아이가.”
 “어.”
 탁. 작게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그게 낭만인기라.”
 “···.”
 와 돌겠다. 가시나 입술은 조곤이 다물고, 눈은 잘 모르겠다고 반짝거리고 앉아 있다.
 이건 절대 귀여워서가 아니라 그냥 잘 모르겠으니,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낭만’에 대해서 공감이 안 되니 말해주는 거다. 절대 네버. 예쁘고 귀여운 아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아는 척하는 게 아니다. 절대 아니다.
 “잘 모르겠나?”
 “모르겠어.”
 “지금 내는 서울에 있다 아이가. 저는 한강이 흐르고 있고. 그라고 지금은 역사 시간 아이가.”
 “어.”
 “상상해 봐라. 여는 원래 백제의 땅이었고, 그 다음엔 고구려의 땅이었다. 근데 또 신라의 땅이 된다.”
 “순서대로 가면 그렇겠지.”
 “그래. 근데 여서 재미난 게 뭔지 아나?”
 “모르겠는데”
 “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아니고. 백제, 고구려, 신라일까? 하는 거. 닌 안 궁금해봤나.”
 “···그런 게 궁금하니?”
 “궁금하지. 당연한 의문점 아이가. 드라마고 tv고 죄 고구려가 강대국 강대국 이 카는데, 왜 한강의 주인이 고구려 백제 신라가 아니라 백제 고구려 신라냐고.”
 “그렇기도 하겠네.”
 “이게 낭만이라. 이 아리수를 잡는 사람이 삼국시대 한반도의 주인이 되는 기다. 근데 여서 재미난 이야기가 있는데 니 아나?”
 “글쎄 뭔데?”
 가시나 웃고 이 칸다. 궁금하긴 한가 보다.
 “봐봐래이. 백제가 원래 한강을 잡고 삼국의 넘버원으로 있었다 아이가. 그걸 고구려가 뺏은 기야. 그라고 지금 쌤이 말하는 나제동맹 아있나.”
 “어”
 “이 나제동맹이 알고 보면 기똥차다.”
 “풉! 넌 쓰는 단어가 왜 그래?”
 “니 웃제. 니 지금은 웃제. 근데 니 알고 나면 절대 못 웃는다. 그라고 니 앞으로 한강 절대 전과 같이는 못 볼기다.”
 가시나 기대하는 눈치를 해가 그래. 어디 한번 들어보자. 이러는 거 같다.
 “나제동맹 이게 알고 보면, 그냥 전쟁이 아니다. 백제의 복수전이다.”
 “무슨 복수?”
 “방금 말했다 아이가. 한강은 백제 땅이었는데, 그걸 고구려가 뺏었어. 백제는 그 복수를 백년을 준비해 전쟁을 벌였어. 그게 나제동맹이야. 근데 기똥찬 게 뭔지 아나?”
 희연이는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신라가 배신을 때린 기지.”
 “신라가? 동맹이라며.”
 “그래. 동맹인데 배신을 때리고 이 한강을 지들이 뺏었다.”
 “···그건 신라가 나쁜 놈이네.”
 “하모.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드라마에 나왔다 아이가. 삼맥종이. 금마가 이때 신라왕인데, 니 진흥왕이라고 알제?”
 “여기 써 있어.”
 “그래! 그 진흥왕이 바로 이 삼맥종이다. 진흥왕 순수비. 그래 여도 사진 있네. 이 비석이 이게 보통 물건이 아이라. 여 봐 봐라. [한강유역을 점령한 왕의 업적을 기록한] 써 있다 아이가. 니도 봐 봐라.”
 희연이도 내 말에 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라모 신라는 무슨 깡으로 전쟁 중에 동맹국의 등을 쳤을까? 함 생각해 봐라.”
 “한강이 갖고 싶었나보지. 한강을 가지면 삼국의.”
 “맞다. 근데 거서 더 드라마틱한 일이 한 가지 있었다.”
 “뭔데?”
 “고구려. 나제동맹이 치고 올라오니까 고구려가 신라한테 밀서를 보낸다. 그 밀서에 뭐라 써 있었냐면.”
 [고구려는 신라와 동맹을 체결하며 한강 이남의 영유권을 인정한다.]
 “드라마틱하지 않나.”
 “···그게 뭐야?”
 “뭐긴. 첩보. 전략. 동맹. 배신. 상상해 봐라. 그냥 저냥 흘러가는 저 강물에 그런 다이내믹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아이가.”
 “···허~ 한강을 그렇게도 볼 수 있나?”
 “하모. 그라고 니. 그 신라가 동맹국을 배신하면서 이 한강을 뺏게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아나?”
 “누군데?”
 “예?”
 “누구냐고?”
 “···예?”
 갑자기 둔탁한 목소리가 나를 낭만의 세계에서 현실의 목동으로 끌고 왔다.
 역사 쌤이 교탁에서 씨익 미소를 지으며 보고 계셨고, 반 아이들은 눈이 멍해져서 우리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얼굴이 화~~악! 달아오르고 말문이 턱턱 막혔다.
 “아. 아··· 쌤··· 그게 아이고”
 “왜. 재밌는데 계속 얘기해 봐.”
 “···아니. 쌤··· 그게요 죄송합니다.”
 “아니야. 지금 혼내는 거 아니야. 진짜 재밌어서 그래. 누굴 보낸 거야?”
 “아니요. 쌤. 그게···.”
 아 들은 웃고 자지러지고 난리 나고, 희연이도 키득거리고 신났다.
 돌겠다. 뭐 신났다고 주둥아리를 놀려가 이 무슨 쪽이고···.
 역사 쌤은 그렇게 한참을 고귀하게 쪽을 팔아주시더니 칠판에 큰 한반도 지도를 그려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다들 들었지. 방금 전교 1등이 말한 나제동맹은 한반도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전환점이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신라는 한강 유역을 장악하여 경제력을 확보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때 한강을 뺏으라고 보낸 장수는 김무력이라고 김유신의 할아버지다. 학계에서는 그래서 삼국 통일의 주인공은 신라가 아닌 가야라는 음? 다들 어디를 보고 있는 거니?”
 쌤이 당황하실 만도 하지.
 모든 애들이 칠판이 아닌 나를 보고 있었으니까.
 “역시··· 너구나.”
 “음? 뭐가?”
 “너··· 김석호.”
 희연이까지 고양이 눈이 되어선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서도 역사 쌤은 고귀한 체벌을 잊지 않으셨다.
 “전교 1등이 말한 부분에서 시험 문제 3문제를 낼 테니 다들 공부 하도록”이라는 말씀을 하고 나가셨다.
 수업이 끝났는데, 반 아들이 아무도 움직이질 않고 있었다.
 다들 머릿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김석호’라는 사람에 대한 이질감을 어찌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 정적을 깬 것은 석진이었다.
 “너! 너 나보다 시험 못 봤다면서!”
 “어. 그게···.”
 “너 이 새끼! 니가 나를 가지고 놀아? 너 주먹도 쓰고 공부도 좀 한다 이거야?”
 목소리는 성이 났으면서도, 석진이는 웃고 있었다.
 그래. 녀석은 웃으며 욕을 했다.
 나는 그 순간 한 가지에 관해선 강력한 확신이 들었다.
 임마와 내는 인제 분명한 친구가 됐구나. 라는 것.
 그리고 친구가 됐으니 빨리 이 어색한 교실에서 구해달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냈다.
 “아~ 그라니까 그게.”
 “됐어. 이제 너 같이 이중적인 놈이랑은 끝이야.”
 “어허이~ 임마 석진아. 가자. 매점 가자! 내 다 쏠게!”
 “한번 가서 생각해 봐야겠는데. 이거 기만 당한 패배자의 마음이 쉽게 치유될 거 같지 않은데.”
 “가자. 가서 얘기하자.”
 그렇게 석진이 핑계를 대면서 교실을 후다닥 벗어났다.
 나를 따라 움직이는 서른한 명의 두 눈동자가 그렇게 불편했던 건 처음이었다.
 
 <『내 친구 석호』 1-2권에 계속>

댓글(6)

천외천객    
예상보다 훨씬 재밌네요~
2018.02.17 13:47
태클지니    
혹시나하고 보기시작했는데 몰입도가 장난아니네요 양도많은거같은데...재밌게 봤습니다
2018.04.27 03:21
정우랑    
설마 하고 읽었는데 한권에 45분. ㅋ 몰입도 짱이네. 별 내용없는 거 같은데 왜이리 빠져들지. 환생,전생,회귀,레벨,상태창에 너무 절여져서 살았나보네 킁 아무것도 없어요.
2020.09.29 15:46
ka*****    
친구 영화가 생각나는 글 ,.,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2020.10.02 10:43
해파랑    
제목이 특이해서 들어왔다가 이틀밤을 새웠네요 재밋습니다
2020.10.03 01:40
Ginx    
절대 돈 아깝지 않은 글 입니다. 깅추합니다.
2020.11.14 03:03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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