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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산시대의 생존 1권 (상)

2018.01.23 조회 7,842 추천 64


 대출산시대의 생존 1권
 태양진 판타지 장편소설
 
 
 차례
 
 프롤로그
 1장 삶이 바뀌다
 2장 사냥을 하다
 3장 동굴하이에나의 습격
 4장 돌도끼를 만들다
 5장 늑대 새끼를 구하다
 6장 겨울을 준비하다
 7장 동거를 하다
 8장 봄바람이 불다
 9장 못생긴사람
 10장 활을 만들다
 
 
 
 
 프롤로그
 
 
 
 
 
 우주가 있었다.
 그 우주 안에 또 다른 우주가 있었고, 또 그 우주 안에는 또 다른 우주가 있었다.
 그리고 또 그 우주 안에는 또 다른 우주가 있었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며, 그 끝을 알 수 없는 우주가 한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수많은 다차원의 공간이 있는 우주 속에 어느 순간 아주 미세한 틈이 생겼다.
 그 미세한 틈으로 우주와 그 모든 생물체의 기록이 담겨 있는 초자원의 정보 집합체인 아카식레코드가 순간 희미하게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한 인간의 영혼이 보관된 노란 수정구가 살짝 금이 갔다.
 윤회로 끝없이 번복된 삶의 기록들이 그 금으로 인해 순식간에 섞이며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인해 원시적인 한 인간의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카식레코드는 실제로 인도의 선지자나 예언가들이 미래를 점을 칠 때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1장 삶이 바뀌다
 
 
 
 
 
 어둠침침한 깊은 동굴 속에서 작은 기척이 들려왔다.
 일어서기도 버거워 보이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소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휴!”
 
 또다시 머릿속이 아파오는지 소년은 얼굴을 찌푸렸다.
 한동안 두통 때문에 정신없었던 소년이 드디어 안정을 취했는지 주위를 둘러보며 한마디 내뱉었다.
 
 “여기는 어디지?”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소년은 자신이 걸치고 있는 생소한 동물 가죽을 보면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소년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혼란이 더욱더 가중되었다.
 의문의 표정을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누구지?”
 
 그 말을 하자마자 소년은 또다시 두통이 심하게 밀려오는지 무척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았다.
 이윽고, 그 소년의 작은 입술에서 고통의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며 그 자리에서 힘없이 쓰러졌다.
 
 * * *
 
 어둠이 온 세상을 집어삼킬 때 밤하늘에 떠오른 보름달이 홀로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동굴 속에서 쓰러졌던 소년은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 일어났다.
 며칠 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어서인지 소년은 앙상한 뼈만큼 기력이 무척이나 쇠한 상태였다.
 좀 전 두통 때문에 쓰러졌던 기억이 전혀 없는지 소년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을 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엄마, 아빠는 오지 않았다.”
 
 소년은 이 동굴이 익숙한지 한 쪽에 갖가지 물건들이 있는 곳으로 힘겹게 몸을 움직였다.
 동물의 내장으로 만들어진 물주머니를 찾아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물을 벌컥벌컥 들어 마셨다.
 
 소년은 어느 정도 목마름이 가시는지 시선을 돌려 자신이 먹을 만한 음식이 있는지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쪽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살점 하나 없는 동물 뼈만 두 눈에 보이자 순간 소년의 얼굴에서 실망의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실망도 잠시, 그 순간 소년의 기억 속에서 잊고 있었던 두통이 또다시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
 
 소년은 짧고 굵은 비명을 내뱉자마자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심하게 몰려오는 두통 때문인지 곧바로 소년의 어금니 사이로 거친 신음 소리가 동굴 안을 메아리쳤다.
 
 “아아아악!”
 
 한동안 거친 신음을 내뱉었던 소년은 어느 순간 자신의 머릿속에서 생소한 기억들이 뒤죽박죽 들어오고 있었다.
 장면 하나하나가 숨 쉴 틈 없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고통이 꽤 심했는지 소년은 좀 전과 다르게 길게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숨을 멎은 것처럼 그 자리에서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동굴 안을 울려 퍼지던 비명이 어느새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더니 한동안 정적이 흘러 넘쳤다.
 
 * * *
 
 밤하늘을 비추던 보름달이 어느새 저 멀리 우거진 수림 사이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동굴 안에 쓰러져 있던 소년은 작은 기척을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다가 소년은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마침 기억의 조각하나가 떠오르는지 눈빛이 흔들렸다.
 
 “내 이름은······.”
 
 머뭇거리며 말하는 소년의 입에서 무척이나 혼란스러운지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이······ 현. ······이현?!”
 
 재차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소년은 그 이름을 음미하면서 전혀 생소하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때야 부모님이 자신에게 부르는 이름이 떠올랐는지 작은 목소리로 조용히 내뱉었다.
 
 “뾰족한 돌.”
 
 ‘뾰족한 돌’과 ‘이현’이라는 이름 사이에 소년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잠시 혼란을 느끼며 멈칫거렸다.
 그리고 곧바로 소년은 자신의 이름을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
 
 “내 이름은 이현.”
 
 왠지 모르지만 ‘뾰족한 돌’이라는 이름이 소년에게는 촌스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 자신의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못 먹은 게 기억난 소년 이현은 허기짐을 느꼈다.
 
 때마침 며칠 전 자신의 부모님이 음식을 구하러 동굴을 떠났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마자 자신의 처한 상황에 대한 기억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부모가 음식을 구하러 가기 전 이현은 한동안 기침을 해대며 건강이 몹시 쇠약한 상태였다.
 
 “마치 감기에 걸린 것처럼······!”
 
 갑자기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감기’라는 단어를 내뱉자 소년 이현은 잠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곧바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마치 감기에 걸린 것처럼.”
 
 자신의 증상에 대해 정확하게 ‘감기’라고 단정을 짓자 이현은 그 단어를 곱씹으며 생소하지만 왠지 모르게 친숙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의문에 대해 생각할 틈을 안 주려는지 때마침 차가운 바람이 동굴 안으로 들어와 이현의 온몸을 때리고 지나갔다.
 소년 이현은 온몸을 한번 세차게 떨면서 그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그날 밤은 유난히 추웠다.
 몸살기가 있었는지 기침은 더욱 심해졌고 온몸에 열이 났었다.
 그뿐만 아니라 으스스한 게 온몸에 한기가 치고 들어왔었다.
 
 그 기억을 떠오르자 소년 이현은 다시 한 번 온몸을 세차게 떨었다.
 그날 밤은 자신이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이현은 그 상황에서 자신이 살아났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한쪽에서 자신의 추위를 조금이나마 덜어 준 모닥불을 향해 이현은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활활 타오르던 모닥불은 어느새 까만 재만 남아 있었다.
 깜짝 놀란 표정과 함께 급한 얼굴로 이현은 곧바로 모닥불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 마른 나무 장작이 남아 있는 걸 본 순간, 안도의 표정을 지은 이현은 적당한 크기의 나뭇가지 하나를 빠른 손놀림으로 집어 들었다.
 그리고 혹시나 불씨가 남아있는지 까맣게 탄 재를 훑어보며 조심스럽게 나뭇가지를 휘저었다.
 
 한동안 나뭇가지를 휘저었던 이현은 어느새 두 눈에 가득 차 있던 희망의 눈빛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때 아주 작은 몇 개의 불씨가 이현의 두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은 이현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장작 옆에 쌓여 있던 바짝 마른 낙엽을 몇 가닥 집더니 손을 비벼 잘게 만들었다.
 자신의 손에 잘게 쪼개진 낙엽 부스러기들을 살아 있는 불씨 위로 조심스럽게 덮었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엎드려 살아 있는 불씨와 눈높이를 맞춘 뒤 크게 숨을 들이켰다.
 
 “쓰읍!”
 
 어느새 이현의 양 볼이 부풀어지고, 불씨를 향해 조심스럽게 바람을 내뱉었다.
 
 “후!”
 
 한 번으로 불씨가 살아남을 기미가 전혀 안 보이자 이현은 재차 반복을 하며 바람을 불었다.
 
 ‘제발!’
 
 속으로 간절한 염원을 담으며 좀 전보다 신중하게 바람을 내뱉었다.
 이현의 간절함에 응답이라고 하려는지 아주 작은 불씨가 마지막 남은 재를 불태우려는 순간 환하게 빛을 내뿜었다.
 그 순간, 낙엽 부스러기에 그 불씨가 옮겨 가더니 순식간에 작은 불을 만들어 냈다.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이현은 곧바로 한쪽에 있는 낙엽을 한 움큼 손으로 집더니 재빠르게 그 작은 불 위로 조심스럽게 옮겼다.
 
 타닥타닥!
 마른 낙엽이 타는 소리가 들리며 환하게 불이 타오르자 그제야 이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이마의 땀방울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런 것도 모른 채 이현은 한쪽에 남아 있는 나뭇가지와 장작을 옮기며 살아남은 불을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작게 피어난 화톳불이 나뭇가지로 옮겨가며 모닥불로 변모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모닥불이 뿜어내는 열 때문인지 동굴 안에 온기가 피부로 다가오자 이현은 그제야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여전히 뱃속에서 울리는 ‘꼬르륵!’ 소리에 허기가 졌다.
 
 며칠째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 이현은 잠시 동굴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부모님이 음식을 구하러 떠난 지 삼 일이 훨씬 지난 후였다.
 아직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이 안 오는 걸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거나 변고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 일이 안 일어나기를 자식의 입장으로 간절히 바라지만 이현은 선뜻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음식을 구하러 떠날 것인지?
 
 점점 쇠약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 체력이 한계치에 다달라 이현 스스로도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염없이 마냥 부모님을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현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곧바로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뭐라도 먹어야 돼.”
 
 이현은 조심스럽게 자리에 일어나서 동굴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동굴의 입구에서 바깥으로 나오자 매서운 겨울의 강추위가 이현의 살을 파고들었다.
 가뜩이나 허접하게 엉겨 만든 가죽옷 사이로 침범한 한기는 이현을 더욱더 움츠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주위를 살폈다.
 아직 깜깜한 밤하늘의 바라보며 보름달의 위치를 확인하고 나서야 이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날이 밝으려면 좀 더 있어야겠지.”
 
 그 말을 하고 이현은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 * *
 
 동굴 안은 이현의 가족이 살기에는 공간도 충분히 넓고 컸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던 자신의 가족이 겨울이 다가오기 전에 이 동굴을 발견한 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
 
 과거에 몇몇 동물이 살았던 흔적을 찾을 수 있었지만 이현의 가족이 이 동굴을 발견했을 때는 다행히도 임자 없는 곳이었다.
 동굴 구조 또한 대형 육식동물을 방어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들어오는 입구는 좁지만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 크기가 점차 넓어지면서 성인 다섯 명이 동시에 살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동굴 안 쪽 끝에는 다 큰 성인이 엎드려서 들어갈 있는 작은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을 통해 반대쪽으로 이르다보면 족히 성인 열 명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전체적인 동굴 구조가 마치 옆으로 드러누운 표주박처럼 보였다.
 
 이 동굴을 우연치 않게 발견한 이현의 가족은 첫 번째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이현은 혼자서 그 공간을 차지하며 좀 전부터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탁! 탁!
 이현은 양손에 각각 적당한 크기의 돌과 짱돌을 쥐고 아버지가 가르쳐 준 방법으로 돌들을 부딪쳤다.
 
 탁! 탁!
 적당한 크기의 돌의 끝 부위를 짱돌을 이용해 앞뒤로 조금씩 깎아 내자 점차 날이 서며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한쪽 부위가 날카로워진 돌을 들고 이현은 만일을 대비하여 아버지가 남겨 준 나무창을 쳐다봤다.
 나무창 끝이 뭉툭한 게 날카롭게 다시 세울 필요가 있었다.
 이현은 곧바로 비워진 한 손으로 나무창을 들어 날이 선 돌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뭉툭한 부위를 깎아 내기 시작했다.
 
 스윽! 스윽!
 이현은 한참동안 집중을 하며 나무창 끝을 날카롭게 세웠지만 울퉁불퉁한 게 마음이 들지 않았다.
 
 “서툴러서 그런지 아버지가 만든 것처럼 안 나오네.”
 
 이현은 고개를 저으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때 창끝을 바라보던 이현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기억의 한 조각이 떠오르며 스며들었다.
 
 “그래, 갈자!”
 
 이현은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지식인 것처럼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이현은 나무창을 들어 모닥불이 있는 곳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 나무창끝을 모닥불 위로 올려 불이 옮기지 않을 정도로 돌려가며 검게 그을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검게 그을리자 모닥불에서 나무창을 뺀 이현은 곧바로 겉면이 거칠고 넓적한 돌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마음에 든 돌을 금방 찾아낸 이현은 겉면이 거친 부위를 이용해 창끝을 뾰족하고 날카롭게 갈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창끝을 간 이현은 자신이 만든 나무창을 바라보며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창끝을 한 번 더 그을리면 더욱더 단단해지겠지.”
 
 이현은 모닥불을 향해 또다시 걸어갔다.
 잠시 후, 간단한 무기와 주머니를 챙긴 이현이 동굴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덧 날이 밝아 겨울 태양이 동굴 입구를 향해 비스듬하게 햇빛이 비추고 있었다.
 
 “가자!”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세상 밖을 향해 용기 있게 첫발을 내딛는 이현이었다.
 
 * * *
 
 온 세상이 새하얗게 눈으로 덮여졌다.
 수북하게 쌓인 그 눈밭을 조심스럽게 주위를 경계하며 이현은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푹! 푹!
 갑자기 들려오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이현은 나무창을 세우며 소리가 난 방향으로 재빠르게 몸을 돌렸다.
 도망갈지 말지를 결정하기 위해 날이 선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하던 이현은 순간 기쁨의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토끼다.”
 
 그 말과 동시에 쇠약한 몸을 이끌고 토끼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겨울에 식량이 부족해져 포식자인 육식동물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상황이라 경계를 게을리 않고 좀 더 신경을 날카롭게 세우며 토끼를 뒤쫓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13살의 어린 나이라 신체적으로 다 성장하지 않은 탓인지 좀처럼 토끼와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잠깐 동안이지만 이현과 토끼는 서로의 삶을 위해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처절한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체력이 바닥이 났는지 이현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허! 허! 허!”
 
 그 거친 숨소리에 맞춰 이현과 토끼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절망의 눈빛이 이현의 눈에 아른거렸다.
 포기하기 이르다고 생각한 이현은 들고 있던 나무창을 역으로 잡고 토끼가 도망치는 예상 진로를 향해 힘껏 던졌다.
 이현의 손을 떠난 나무창이 작고 긴 포물선을 그리며 앞으로 쭉 나갔다.
 
 잠시 후.
 푸욱!
 눈밭에 꽂히는 소리와 함께 나무창이 쌓인 눈 위에 옆으로 비스듬히 꽂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저 멀리 자신의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지 토끼는 뒤꽁무니만 보인 채 재빠르게 도망치고 있었다.
 
 이현은 그 모습을 무척이나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허리를 반으로 구부린 상태로 거친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허! 허! 허!”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눈 안에 습기가 차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자신이 이대로 굶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문득 두려움이 파도처럼 한꺼번에 밀려왔다.
 동굴에서 멀리 떨어지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에 이현은 해가 하늘 한가운데에 있을 때까지 먹을 것을 찾기 위해 주위를 한동안 헤맸었다.
 가뜩이나 아무 것도 없는 메마르고 황량한 겨울이라서 그런지 먹을 수 있는 과일이나 열매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이현은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잠시 멍하니 바닥을 보다가 무의식적으로 말이 나왔다.
 
 “굶어 죽고 싶지 않아······.”
 
 그 말이 계기가 된 건지 이현은 조금씩 정신을 차리며 삶의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이현은 자리에 일어나 몸을 움직였다.
 놓친 토끼에 대한 미련을 벗어 던지고, 다음 사냥감을 발견하기 위해 주위를 빠르게 둘러봤다.
 
 동시에 자신의 처한 상황과 현실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하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어린 체구로 다른 동물을 사냥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이현은 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뭔가 기발한 게 필요해.”
 
 그 말을 하는 순간 조각난 기억의 잔재 속에 자신이 전혀 알지 못했던 생소한 지식이 튀어나왔다.
 
 “그래 덫을 만들자.”
 
 ‘덫’이라는 단어에 자신도 모르게 집중하자 무의식적으로 이현은 주위를 둘러보며 적당한 재료를 찾기 시작했다.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덫에 올무를 이용해 조금 변형된 덫을 만들려고 마음먹은 이현은 일단 탄력성이 있는 나무를 찾아 헤맸다.
 
 잠시 후, 자신의 손목만큼 적당한 두께의 나무를 찾은 이현은 차고 있던 가죽 주머니에서 주먹 도끼를 꺼내 바로 나무 밑동을 가볍게 찍어 내며 쓰러트렸다.
 그리고 곧바로 쓰러뜨린 나무의 잔가지를 쳐내기 시작했다.
 쳐낸 잔가지도 덫을 놓기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기에 바로 버리지 않고 따로 모아 놓았다.
 
 이현은 잔가지 나무들 중에 자신의 팔목 정도의 길이의 나뭇가지 세 개를 더 고른 뒤, 줄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나무껍질을 찾기 위해 눈을 돌렸다.
 보통 줄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나무껍질은 어린 느릅나무나 피나무가 적당한데 당장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한동안 적당한 재료를 찾아 헤매던 이현은 드디어 마음에 드는 나무를 발견하였다.
 이현은 그 나무로 다가가 자신의 어깨만큼 높이에서 주먹 도끼를 사용해 나무 겉껍질 부위를 원을 그리듯 빙 돌며 얕게 홈을 파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무껍질만 분리될 수 있을 정도의 홈만 판 이현은 좀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나무 밑동 부위에 홈을 파기 시작했다.
 위아래로 홈이 파인 나무껍질을 이번에는 윗동과 밑동을 이어서 세로로 한 줄의 홈을 파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자신이 원하는 모양이 되자 이현은 곧바로 세로로 이어진 홈 부분을 손으로 잡아 가볍게 나무껍질을 뜯어냈다.
 뜯어낸 나무껍질을 이번에는 자신의 엄지손가락 두께만큼 잘게 찢었다.
 그리고 잘게 찢어진 나무껍질을 매듭으로 이어서 적당한 길이의 줄을 만들었다.
 
 이현은 곧바로 자신이 만든 줄을 양손으로 잡아 바깥쪽으로 잡아당겼다.
 생각보다 나무가 질겨서 이현은 꽤나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어느 정도 적당한 재료가 다 모이자 이현은 덫을 설치할 장소로 몸을 움직였다.
 덫을 만들 재료를 구하는 동안에도 주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이현은 토끼 덫을 설치할 장소는 이미 봐 둔 상태였다.
 
 먹이 사슬에 최하위 있는 토끼는 겁이 많고 경계심이 많은 동물이었다.
 그렇기에 습성상 토끼는 자신이 가는 길로만 움직였다.
 이현은 그 지점을 몇 군데 봐 둔 상황이라 그 지점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잠시 후, 그 지점에 도착한 이현은 주위에 다른 대형 포식자가 있는지 꼼꼼히 확인하였다.
 아무 것도 없는 걸 확인한 후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덫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현은 먼저 토끼가 지나가는 통로 바깥쪽 적당한 장소를 고른 뒤 자신의 키보다 두 배 정도 긴 나무의 중간 부분을 잡고 위에서 아래로 찍기 시작했다.
 나무의 뾰족한 부위가 언 땅과 부딪치며 질퍽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퍽! 퍽! 퍽! 퍽!
 겨울이라 땅이 얼어서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쉽게 나무가 박히지 않았다.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은 이현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방법을 바꿨다.
 
 일단 땅 위에 덮여 있는 눈을 치웠다.
 그리고 주먹 도끼를 들어 땅을 파기 시작했다.
 
 퍽! 퍽!
 조금씩 아주 조금씩 얼어붙은 땅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한참 동안 땅을 파헤친 이현은 자신이 원하는 깊이에 도달하자 긴 나무를 세워서 박아 넣었다.
 그리고 그 주위를 파헤친 흙으로 다시 덮었다.
 하지만 땅이 얼어서 그런지 흙이 푸석푸석해 나무가 중심을 못 잡고 흔들거렸다.
 그 순간, 이현은 답답했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휴!”
 
 순간 깊은 한숨을 내쉰 이현은 어느새 퉁퉁 붓고 거칠어진 자신의 여린 손을 쳐다보며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이런 식으로는 자신이 원하는 덫을 설치할 수 없다고 판단되자 고개를 들어 토끼가 지나가는 길목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마침 적당한 두께와 길이를 갖춘 나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현은 지금까지 한 일이 헛수고라고 생각이 들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참나!”
 
 이현은 곧바로 몸을 움직여 그 나무로 다가갔다.
 나무에 다다른 후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적당한 목표 지점을 찾은 이현이 곧바로 숨을 크게 들어 마신 뒤 그 자리에서 힘껏 뛰어올라 나무 끝부분을 잡아챘다.
 순식간에 나무 끝 부위를 잡아챈 이현이 그대로 떨어지면서 그 힘에 이끌려 나무가 옆으로 휘어졌다.
 그 휘어진 나무가 탄성에 의해 튕겨나가려고 하자, 이현은 그 즉시 나무 끝을 자신의 왼쪽 겨드랑이 끼어 고정을 시켰다.
 
 곧바로 자신이 만든 나무껍질 줄을 이용해 잡고 있는 나무 끝부분을 묶기 시작했다.
 양옆으로 뻗어 나온 줄기의 한 부위를 단단하게 위아래로 엇갈려 여러 번 묶어 매듭으로 마무리를 지은 후 잡고 있던 나무를 가볍게 놓았다.
 
 튕!
 탄성 때문인지 나무가 잠시 흔들거리다가 제자리를 찾아갔다.
 이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것도 잠시, 곧바로 나무 끝에 매달린 줄의 길이를 쟀다.
 눈대중으로 어느 정도 길이를 잰 이현은 자신이 만든 줄의 한 부위를 주먹 도끼로 찍어서 잘라 냈다.
 그리고 그 줄의 끝 부위를 원 모양으로 올무를 만든 뒤 매듭으로 마무리 지었다.
 
 이현은 자신이 만든 올무가 튼튼한지 확인하기 위해 그 원 안으로 한 손을 집어넣은 뒤 위아래로 잡아 당겼다.
 어느새 자신의 손목을 잡아챈 올무가 꽉 조여 왔다.
 물론 나무껍질로 만든 줄이라서 조여 오는 과정이 부드럽지 못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조임이라면 토끼 정도는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아.”
 
 이현은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짧게 말을 내뱉은 후, 곧바로 다음 작업에 착수했다.
 먼저 자신이 손질한 나뭇가지 세 개 중 두 개를 골라 한쪽 끝을 주먹 도끼를 사용해 뾰족하게 말뚝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반대쪽에는 남아 있는 나뭇가지를 걸칠 수 있게 작은 홈을 만들었다.
 
 적당한 크기의 말뚝 두개가 완성되자 이현은 줄에 묶여 있는 나무를 중심으로 옆쪽으로 적당한 거리를 쟀다.
 그리고 토끼가 지날 갈 수 있는 넓이만큼 직선으로 서로 마주 볼 수 있게끔 두 개의 나무 말뚝의 위치를 눈대중으로 설정했다.
 
 이현은 곧바로 주먹 도끼의 뭉툭한 부위를 사용해 그 두 개의 나무 말뚝을 연달아 땅에 박았다
 두 개의 말뚝이 튼튼하게 고정되자 이현은 곧바로 그 다음 작업에 들어갔다.
 
 이현은 남아 있는 나뭇가지 하나를 박혀있는 두 개의 말뚝 거리만큼 주먹 도끼로 잘라낸 뒤, 그 나뭇가지 양쪽 끝을 주걱처럼 평평하게 만들었다.
 또한 그 나뭇가지 중간 부위에 작은 홈을 파서, 묶었을 때 줄을 흘러내리지 않게 만들었다.
 
 이현은 곧바로 올무가 연결된 줄 한 뼘 위로 그 나뭇가지를 얹혀서 홈 부위 중심으로 단단하게 묶었다.
 그리고 올무와 나뭇가지가 묶여있는 줄을 자신이 있는 쪽으로 힘껏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 줄이 매달려 있던 나무가 끝에서부터 옆으로 휘어지기 시작했다.
 마침 그때를 놓치지 않으려고 올무 위에 묶여 있는 나뭇가지를 잽싸게 잡아챈 뒤, 땅에 나란히 박혀 있는 나무 말뚝 사이로 양쪽 끝 홈 부위에 살며시 걸쳐 고정시켰다.
 
 숨까지 참으며 조심스럽게 나뭇가지에 손을 떼었다.
 이현은 자신이 손을 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미동이 없자 그제야 참았던 숨을 크게 내뱉었다.
 
 “휴!”
 
 아직은 성공이라고 단정할 수 없기에 이현은 마지막 작업을 시작했다.
 헐렁해진 원 모양의 올무를 박혀 있는 말뚝 사이로 조심스럽게 펼쳐놓았다.
 드디어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덫이 완성되자 만면에 미소를 지은 이현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현은 자신이 만든 덫이 잘 되는지 실험하기 위해 살며시 말뚝 사이에 걸쳐 있는 나뭇가지를 손으로 살짝 건드렸다.
 
 타닥! 휙!
 그 순간 휘어져 있던 나무가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으며 동그랗게 펼쳐져 있던 올무가 이현의 손목을 재빠르게 위로 잡아채 갔다.
 자신의 손목에서 느껴지는 쪼임이 가히 나쁘지는 않은지 이현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입에서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기 시작했다.
 
 “크흐흐! 큭큭크흐!”
 
 한참 동안 웃었던 이현이 정신을 차리고 난 후 제일 먼저 한 것은 자신이 만든 덫을 다시 설치하는 것이었다.
 하나로는 성에 안 차, 똑같은 방식으로 토끼가 다니는 길목에 두 개의 덫을 더 설치하였다.
 
 그렇게 두 개의 덫을 더 만드는 동안 어느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야외 활동하는 동안 대형 포식자에 들키지 않은 게 정말 운이 좋았다.
 그렇기에 이현은 주위를 다시 한 번 경계의 눈빛으로 둘러본 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해가 저물기 전에 빨리 가야 돼.”
 
 이현은 서둘러서 몸을 움직였다.
 일단 동굴에 가기 전에 가죽 주머니 안에 물을 채워야 됐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가까운 냇가로 가기에는 시간이 애매모호했다.
 
 “어쩔 수 없지.”
 
 이현은 냇가로 가는 걸 포기하고 곧장 거주지인 동굴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한참 빠른 몸놀림으로 동굴 쪽으로 이동하는 도중 갑자기 이현의 귓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부스럭! 부스럭!
 
 그 순간, 이현은 공포에 젖어들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마치 번개 맞은 것처럼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실제로 나무를 살짝 겉면만 태우면, 수분이 빠지면서 내구력이 더 좋아지며 단단해진다고 합니다.
 
 *실제로 피나무의 껍질은 고대에 밧줄을 만드는 데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물론 느릅나무 껍질도 마찬가지입니다.
 
 
 
 
 2장 사냥을 하다
 
 
 
 
 
 이현은 갑자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와중에도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렸다.
 
 부스럭!
 
 또다시 그 소리가 들리며 이현의 두 눈에 정체불명의 소리를 낸 물체가 순식간에 포착되었다.
 그 물체를 본 순간 이현은 깜짝 놀랐는지 두 눈 안에 있는 동공이 순식간에 커졌다.
 
 “꼬꼬!?”
 
 ‘꼬꼬’라는 단어를 말하는 순간 이현의 온몸에 젖어 있던 공포가 눈 녹듯이 사라지며, 어느새 얼굴에는 탐욕이 가득 차 있었다.
 며칠 동안, 한 끼도 식사를 못한 이현이었기에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에 오직 이현 자신과 ‘꼬꼬’라고 불리고 있는 야생 닭만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 야생 닭이 이현의 살기를 감지했는지 재빠르게 도망치더니 빈 공간이 있는 나무 밑 등 사이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본 이현은 자신도 모르게 목으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이현이 보기엔 저 멍청한 꼬꼬는 자신이 저승길에 들어간 것도 전혀 모르고 마치 완벽하게 은신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이현은 오늘 식량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알기에 순간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곧바로 자신의 무장을 재점검하며 꼬꼬가 숨어 있는 나무 밑동을 재빠른 몸놀림으로 막아섰다. 아니, 확실하게 도망가지 못하게 포위하고 있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사이, 이현이 조심스럽게 머리를 숙여 안으로 들어간 뒤 나가는 입구를 재빠르게 등으로 밀착시켰다.
 
 이현이 입구를 몸으로 가리자 나무 밑동 안이 조금 어두워졌다.
 하지만 이현의 두 눈에는 보였다.
 아직도 자신이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지 꼬꼬는 미동도 하지 않고 한 쪽에 가만히 웅크리고 있었다.
 
 이현은 침착한 태도로 자신이 들고 있던 나무창에 살며시 힘을 가해 다시 한 번 꽉 쥐었다.
 그리고 동시에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으로 쥐고 있던 창을 목표물을 향해 쭉 뻗었다.
 
 푹!
 워나 가까이에 있다 보니 나무창은 한 번에 야생 닭의 몸통을 꼬챙이처럼 뚫고 지나갔다.
 
 “꼬끼오!”
 
 하지만 야생 닭이 아직 살아있는지 구슬픈 소리를 내며 파닥파닥 날개를 펄럭였다.
 이현은 발버둥 치는 꼬꼬를 가만히 놔두지 않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동정이란 감정은 접어 둔 채 그 상태로 꼬꼬의 목을 한 바퀴 돌렸다.
 
 파다닥.
 마지막 저항인지 야생 닭이 심하게 몸을 펄럭이다가 잠시 후 숨이 끊어졌는지 두 개의 다리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이현은 자신이 잡은 사냥감을 보자 갑자기 심한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본능적인 이끌림에 의해 창에 의해 상처가 난 부위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댔다.
 언제부터인가 땅 아래쪽으로 뚝뚝 떨어졌던 야생 닭의 피가 어느새 이현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쪽! 쪽!
 한참동안 야생 닭의 피를 마시던 이현이 나오던 양이 현저히 줄어들자 그제야 상처 부위에 갖다 댔던 입술을 뗐다.
 어느새 이현의 입 주위에 빨간 피범벅과 야생 닭의 작은 솜털이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이현은 그런 자신의 모습에 신경 쓰지 않은 채 야생 닭의 두 다리를 거꾸로 잡고 나무 밑동을 빠져나왔다.
 곧바로 주위를 살피던 이현은 좀 전보다 날이 더 어두워진 것 같다는 생각에 거주지인 동굴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 * *
 
 동굴 안에 피워 놓은 모닥불 주위에서 몸을 녹이고 있던 이현이 한결 가벼운 얼굴로 나무 꼬챙이에 꽂혀 깃털을 골고루 태우고 있던 야생 닭을 쳐다봤다.
 깃털 타는 냄새가 동굴 안을 가득 채우며 어느새 야생 닭의 맨몸이 드러나자 모닥불에서 재빨리 꼬챙이를 빼냈다.
 
 이현은 꼬챙이를 자신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아직 야생 닭 특유의 냄새가 났지만 이현의 입장에서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야생 닭의 겉면에서 모닥불의 열기가 뻗어 나오고 있었다.
 
 이현은 그 열을 식히기 위해 야생 닭을 꼬챙이째 그대로 동굴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땅 위로 덮여있는 눈 더미 사이로 야생 닭을 팽개치듯 손을 놓았다.
 차가운 냉기와 뜨거운 열기가 서로 충돌하며 급하게 열 식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치이!
 뿌연 연기와 함께 야생 닭의 겉 부분이 점차 식어 가는 동안 이현은 옆에 아무렇게 널려 있는 눈을 한 움큼 잡아서 입에 가져갔다.
 입 안에 가득 차 있는 눈이 서서히 녹으며 이현의 갈증을 조금씩 풀어 주었다.
 
 이현은 어느 정도 갈증이 해소되자 또다시 한 움큼의 눈덩이를 양손에 움켜쥔 뒤 야생 닭의 맨몸에 골고루 발라 구석구석 문대며 전체적으로 씻겨 나갔다.
 한참 동안 그 작업을 계속하던 이현은 어느 정도 야생 닭의 특유의 냄새가 없어지자 해체 작업을 위해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 * *
 
 무뎌진 주먹 도끼를 대신해 새로운 주먹 도끼를 만든 이현은 본격적으로 야생 닭의 내장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 꼬리 부위부터 아랫배로 지나서 목 위까지 갈라진 야생 닭을 볼 수 있었다.
 이현은 다시 한 번 야생 닭을 나무 꼬챙이로 고정시킨 뒤 모닥불 가까이 다가가 굽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다시 시간이 흘러갔다.
 야생 닭을 골고루 익히기 위해 여러 번 번갈아 가며 굽던 이현은 어느새 특유의 숯불 향이 짙게 묻어 있는 노릇노릇한 고기 덩어리를 볼 수 있었다.
 이현은 배고픔 속에 기다리는 게 너무 지쳤는지 아직도 식지 않은 통닭을 맨손으로 뜯으며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뼈밖에 남지 않은 잔해를 보며 이현이 아쉬움에 입술을 쩝쩝거렸다.
 그렇게 어느 정도 포만감을 채운 이현은 갑자기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눈꺼풀이 서서히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쓰러져 깊은 잠을 자는 이현이었다.
 
 * * *
 
 오늘은 겨울 날씨답지 않게 유난히 따사로웠다.
 허기와 피로를 어느 정도 해소해서 그런지 전날보다 괜찮은 상태로 일어난 이현은 아침부터 분주히 몸을 움직였다.
 그 와중에 마음속으로 자신을 책망했다.
 
 어제 아무런 방비도 하지 않고 잠을 잤던 것은 큰 실수였다.
 물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지만 만일 다른 대형 포식자가 침입했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이현은 어제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경각심을 세우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하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고 있었다.
 
 먼저 이현은 동굴의 입구를 막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자신의 키보다 큰 나뭇가지를 잘라 한쪽에 모아 두었다.
 주로 겨울에도 잎이 살아 있는 소나무나 전나무 위주로 모았는데 어느 정도 자신이 원하는 양이 모이자 곧바로 다음 작업을 시작했다.
 
 이현은 일단 모아 놓은 나뭇가지를 세워 차례대로 동굴의 입구를 막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그 작업을 계속하던 이현은 어느 정도 동굴 입구가 촘촘히 둘러싸여지자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 구멍만 남기고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이현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으로 모닥불에 쓰일 마른 나뭇가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거의 대부분이 죽은 나뭇가지였는데 자잘한 것부터 자신의 팔뚝 크기까지 그 모양이 제각각이었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삼 일 동안 태워도 꺼지지 않을 양이 동굴 안 가장자리에 수북이 쌓이자, 이현은 마음이 든든했는지 살짝 기분 좋은 미소를 흘렸다.
 오늘 할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이현은 또 다른 토끼 덫을 설치하기 위해 아침에 만들어 두었던 줄과 나무 재료를 챙기고 조심스럽게 동굴 밖으로 나갔다.
 
 * * *
 
 자신이 첫 번째 덫을 설치한 장소에 온 이현은 실망한 표정으로 아무 것도 없는 올무를 쳐다봤다.
 어느새 휘어졌던 나무가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하지만 나무 끝에 매달려 있던 원 모양의 올무가 쪼여진 상태에서 작게 풀어진 것으로 보아 무엇인지 모르지만 뭔가 걸린 게 분명했다.
 
 이현은 거기에서 작은 희망을 봤는지 곧바로 실망의 기색을 지우고 다시 덫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새로 만들 덫은 아침에 준비했기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손에 익었는지 빠른 손놀림으로 덫을 재설치한 이현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다음 덫에는 뭐라도 있어야 할 텐데······.”
 
 이현은 곧바로 두 번째로 설치한 덫이 있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주위를 경계하며 몸을 돌렸다.
 어느새 두 번째 덫이 있는 곳에 다다른 이현은 자신의 두 눈에 하얀 물체가 올무에 걸려 매달려 있는 게 보이자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뛰어나갔다.
 점차 그 하얀 물체의 실체가 드러나자 이현은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와우! 잡았어.”
 
 올무에 한쪽 뒷다리가 걸린 토끼는 이현이 다가오자 거꾸로 있는 상태에서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이현은 줄이 느슨해져서 올무가 풀어지기 전에 재빨리 토끼의 긴 귀를 잡았다.
 그리고 겁을 먹고 있는 토끼를 향해 자신이 들고 있는 나무창을 여러 번 힘껏 질렀다.
 
 푸욱! 푸욱!
 찌르는 횟수만큼 토끼의 몸통에 구멍이 뚫리며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토끼는 미동 없이 이현이 가지고 온 가죽 주머니에 들어갔다.
 
 이현은 잠시 경계의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조금 전 자신이 토끼를 잡았다는 기쁨에 주체하지 못하고 환호를 지른 게 실수였다.
 혹시나 다른 육식 동물이 그 소리를 들었을까 봐 조심스러운 행동을 취했다.
 
 다행히도 다른 육식동물이 포착되지 않자 곧바로 빠르게 덫을 재설치하였다.
 덫을 설치한 이현은 덫이 설치된 장소를 유심히 보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조금 전 자신이 토끼를 죽이면서 덫 주위 곳곳에 피가 뿌려져 있었다.
 그 피 냄새를 맡고 다른 육식 동물이 찾아올 수가 있었다.
 
 자신의 신중하지 못한 행동을 자책하며 이현이 재빨리 손으로 눈을 한 움큼 잡고 피 냄새를 제거하기 시작했다.
 피가 스며든 눈덩이는 덫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현은 안심이 안 되었는지 언 땅을 파헤쳐 덫 주위를 흙으로 뿌렸다.
 어느 정도 피 냄새가 옅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이현이 곧바로 세 번째 덫이 설치하는 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 * *
 
 이번에도 올무에 토끼가 걸려 매달려 있었다.
 이현은 좀 전과는 다르게 신중하게 행동을 취했다.
 먼저 토끼의 귀를 잡은 뒤 매달린 상태에서 목을 잡고 비틀었다.
 토끼의 저항이 전보다 거칠어 심하게 발버둥을 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현이 더 강하게 손목에 힘을 주자 어느새 토끼가 잠잠해며 숨이 끊어졌다.
 
 이번에도 이현은 자신의 가죽주머니에 토끼를 집어넣은 뒤 다시 덫을 설치했다.
 그리고는 기분 좋은 미소로 그 자리를 떠나 가까운 냇가로 몸을 움직였다.
 
 졸졸졸.
 냇가 가장자리에 살얼음이 덮여 있는 상황에서도 한가운데는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현은 동물 내장으로 만든 주머니에 차가운 물을 담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물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를 쳐다봤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 물고기들이 이현을 유혹하고 있었다.
 이현은 이미 오늘 잡은 식량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 물고기를 보면서 쩝쩝 입맛을 다셨다.
 
 어느새 물주머니 안에 물이 가득차자 재빨리 물속에 담겨져 있던 손을 내뺐다.
 겨울이라 여전히 물이 차가웠다.
 이현은 심하게 차가워진 손을 재빨리 자신의 가죽옷에 닦은 뒤 아쉬움의 눈빛으로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걸 잡으면 좋을 텐데······.”
 
 그 말을 하던 이현이 갑자기 작은 두통이 밀려와 얼굴을 찌푸렸다.
 그 순간 이현의 머릿속에 생소한 기억이 떠올랐다.
 
 “통발을 만들자.”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지식인 것처럼 인지하더니 곧바로 주위를 둘러봤다.
 
 “싸리나무가 있으면 좋을 텐데······.”
 
 이현은 시야에 적당한 재료가 안 보이자 아쉬움이 드는지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내일 찾아도 상관없겠지.”
 
 그 말을 한 이현은 어느 순간 자신의 두통이 사라진 걸 전혀 모른 채 동굴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 * *
 
 동굴 안으로 돌아온 이현은 곧바로 자신이 드나드는 구멍을 나뭇가지로 막은 뒤 조금씩 꺼져가는 모닥불을 살리기 위해 마른 나무를 집어넣었다.
 어느 정도 동굴 안에 따뜻한 열기가 올라오자 잡아온 토끼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어제와 다르게 토끼 가죽을 살리기 위해 조심스럽게 주먹 도끼로 살과 가죽을 분리하고 있던 이현은 조금 답답했는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좀 더 날카로운 게 필요해.”
 
 그 말을 하고 동굴 안의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 지점에서 눈길을 멈췄다.
 가족과 함께 먹었던 이름 모를 동물의 뼈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현은 자리에 일어나 그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한참동안 동물 뼈 사이를 헤치며 뭔가를 찾던 이현이 드디어 마음에 드는 뼈 하나를 발견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꽤나 큰 동물의 넓적다리뼈를 손에 든 이현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현은 자신이 만들려고 하는 물건을 상상으로 실체를 그리며 잔잔한 미소를 흘렸다.
 
 “오늘은 힘들겠지.”
 
 이현은 들고 있는 동물 뼈를 한쪽에 놔두고 잠시 미뤄 뒀던 토끼 해체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방금 떠올랐던 생소한 지식이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이현은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의문을 품지 않고 해체 작업에만 집중했다.
 
 한참 동안 해체 작업에 몰두했던 이현은 가죽과 살, 내장으로 분리된 결과물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리고 어제처럼 바깥에 있는 눈으로 깨끗이 씻은 뒤 숯불에 구운 토끼 고기로 배를 채웠다.
 
 허기가 어느 정도 채워지자 어제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동굴 안을 점검하고 적당한 자리에 눈을 붙였다.
 자는 동안 동굴 바깥에서 여러 동물 울음소리가 들려 간혹 가다가 잠에서 깼지만 이현은 어느 정도 편안한 숙면을 취했다.
 
 * * *
 
 날이 밝자마자 일어난 이현은 아침부터 분주하기 움직였다.
 일단 이현은 토끼 덫을 만들기 위한 재료와 통발을 만들기 위해 싸리나무를 채취하여 한쪽에 모아 두었다.
 그리고 줄 대용으로 쓸 나무껍질을 구하는 동안 우연치 않게 나무 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굼뱅이를 발견했다.
 좋은 생각이 떠올라 굼벵이 몇 마리를 더 구해 한쪽에 따로 모았다.
 
 이현은 곧바로 미뤄 뒀던 아침을 먹었다.
 어제 먹고 남은 토끼 고기를 마저 불에 구워 먹은 이현은 소화를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동굴 바깥으로 나갔다.
 
 * * *
 
 토끼가 다니는 길목에 덫을 더 설치한 이현은 빠른 몸놀림으로 어제와 그제 설치한 덫을 일일이 둘러보며 그 결과물을 확인했다.
 오늘은 무려 토끼 네 마리가 올무에 걸려 있었다.
 잠시 사냥의 기쁨을 느낀 뒤, 이현은 어제처럼 토끼들을 목을 돌려 죽이고 냇가로 이동했다.
 
 냇가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물주머니에 물을 채운 이현은 아침에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주위에 있던 여러 가지 나뭇가지를 구해 한쪽에 모아 두었다.
 어느 정도 적당한 양이 모아지자 얼음이 없는 냇가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여기가 좋을 것 같아.”
 
 이현은 곧바로 물가에 다가가 동물 가죽으로 엉성하게 만든 신발을 벗고 발을 담갔다.
 차가운 물이 자신의 발목 위까지 올라오자 그때부터 모아 두었던 나뭇가지를 촘촘하게 박기 시작했다.
 각각 다른 모양의 나뭇가지를 지면에 물이 닿는 부위에서부서 반대쪽 지면에 물이 닿는 데까지 M자 모양으로 꽂았다.
 물론, 미끼를 따라 물고기가 들어 수 있는 구멍을 만들기 위해 M자 한가운데 안쪽 꼭짓점 부분은 나뭇가지를 박지 않았다.
 
 이현은 다시 한 번 자신이 만든 물고기 덫이 튼튼한지 확인한 뒤에야 자신의 주머니 안에 있는 굼벵이를 꺼내 들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아침까지 살아 있었던 굼벵이들 중 몇 마리가 미동도 하지 않고 죽어 있었다.
 다행히도 다 죽지 않아서 몇 마리가 이현의 손바닥 위에서 꿈틀거렸다.
 이현은 아무렇지 않게 죽은 굼벵이만 골라 입으로 가져갔다.
 
 찍! 찍!
 이현의 입 안에서 물컹거리며 씹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침내 잘게 쪼개진 굼벵이가 자신의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이현은 곧바로 미끼를 고정할 수 있는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주먹 도끼를 사용해 그 나뭇가지 끝부분만 살짝 반으로 쪼개 약간의 틈을 만들었다.
 
 이현은 곧바로 가죽 주머니에서 살아 있는 굼벵이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 나뭇가지 끝 부분에 살쩍 벌어진 틈 사이로 굼벵이를 끼어 넣었다.
 굼벵이가 나뭇가지 끝부분에 고정되자 곧바로 자신이 만든 M자 모양의 물고기 덫에 다가갔다.
 곧바로 미끼 위치를 설정한 이현은 물고기가 들어올 수 있는 구멍 안쪽 지점에 그 나뭇가지를 박아 넣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이현은 꽤나 만족스러웠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연이어서 똑같은 모양의 물고기 덫을 더 설치하였다.
 어느덧 미끼로 사용할 수 있는 굼벵이가 없어지자 이현은 기대에 찬 눈빛과 함께 지체 없이 그 자리를 떴다.
 
 * * *
 
 날이 저물기에는 멀었는지 동굴 바깥은 아직도 환했다.
 동굴 안으로 돌아온 이현은 토끼를 해체한 뒤 두 마리를 모닥불에 구웠다.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거친 돌을 이용해 어제 따로 놨던 동물의 넓적다리를 뼈를 갈았다.
 
 스윽! 스윽!
 단시간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현이 원하는 모양이 나오려면 며칠이 걸릴 것 같았다.
 
 드디어 모닥불에 올려놓은 토끼 고기가 맛있게 구워지자 이현은 하던 작업을 멈추고 미처 하지 못했던 식사를 했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르자, 이현은 식사 자리를 대충 정리하고 자리에 일어났다.
 그리고 동굴 밖으로 나간 뒤 자신이 드나드는 작은 구멍을 나뭇가지로 막은 뒤 물고기 덫이 설치된 곳인 냇가로 몸을 움직였다.
 
 냇가에 도착한 이현은 자신이 설치한 물고기 덫을 살피며 물고기가 걸렸는지 일일이 확인했다.
 총 세 개의 덫을 설치했는데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물고기가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희망을 가진 채 세 번째 덫이 설치한 곳에 다다르자 M자 울타리 안에 메기처럼 보이는 물고기가 바깥으로 나가지 않고 한 쪽에 잠자코 웅크리고 있었다.
 
 이현은 자신이 만든 덫에 물고기가 잡히자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곧바로 주위에 있는 나뭇가지 하나를 구해 왔다.
 그리고 덫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가 메기의 아가미 부위를 재빠르게 잡았다.
 순간 이현의 손아귀에 잡힌 메기가 온몸을 흔들며 파닥거렸다.
 
 자신의 팔뚝만 한 크기가 거세게 저항하자 힘에 부쳤다.
 이현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손아귀에 잡힌 메기를 물 밖으로 던졌다.
 물이 없는 맨땅에 떨어진 메기가 어떻게든 숨을 쉬려고 입을 크게 벌름거렸다.
 
 이현은 곧바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적당한 돌을 발견했다.
 그 돌을 집은 뒤 발버둥치는 메기에 가까이 다가가 비어 있는 한 손으로 그 메기의 몸통을 잡은 동시에 머리 부위가 깨지지 않을 만큼 돌로 강하게 내려쳤다.
 머리 부위를 연달아 강타당한 메기는 순간 기절을 한 것인지 좀 전과 다르게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이제야 좀 조용해졌네.”
 
 이현은 곧바로 자신이 좀 전에 구해온 나뭇가지를 이용해 메기의 아가미 사이를 꼬챙이처럼 꽂아 입 밖으로 나오게 했다.
 지금 당장 여기서 내장을 제거하고 싶었지만 점점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어쩔 수 없이 동굴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현은 잠시 물고기 덫을 바라보다가 미끼를 사용할 수 있는 굼벵이가 없다는 것을 알고 아쉬운 마음으로 그 자리에 발걸음을 옮겼다.
 
 * * *
 
 밤하늘의 별들이 하염없이 반짝이며 어느새 어두워졌다.
 동굴 안에 있던 이현은 메기를 먹기 위해 내장을 제거하고 모닥불에 굽고 있었다.
 한창 성장할 나이라서 그런지 배가 빠르게 꺼졌다.
 그래도 요즘 하루라도 안 굶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메기를 굽는 동안, 이현은 마저 넓적다리뼈를 갈며 내일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바싹 구워진 메기를 손에 든 이현은 뼈 사이사이에 있는 살까지 일일이 발라 먹었다.
 그리고 곧바로 잠자리를 만들었다.
 바닥에 넓게 깔아진 이름 모를 동물 가죽 위로 이현이 몸을 누웠다.
 모닥불의 열기에 동굴 안이 온기로 조금씩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현은 아직 먹은 음식이 소화가 안 되어 속이 더부룩해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또한 밤만 되면 울리는 야행성 동물 울음소리도 불면증에 한몫 거들고 있었다.
 이현은 잠시 몸을 뒤척이며 고개를 돌려 동굴 입구 쪽을 바라봤다.
 
 “여전히 안 오시네.”
 
 식량을 구하러 간 부모님이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걸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이현은 이제 이 세상에 자신 혼자 남게 되었다고 생각이 들자 갑자기 외로움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리고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이현은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을 흐르며 잠시 흐느끼다 지쳐 잠이 들었다.
 
 * * *
 
 오늘도 어김없이 날이 밝았다.
 이현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남아 있던 토끼 두 마리 중 한 마리를 구워서 먹었다.
 이전에는 보통 하루에 한 끼 정도 먹는데 요즘은 왠지 모르게 하루에 세 끼는 먹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가볍게 배를 채운 이현은 곧바로 뭔가를 만들기 위해 작업에 들어갔다.
 나무껍질 줄을 엮어 자신의 팔길이 정도의 지름으로 두 개의 원을 만들었다.
 이어서 그 두 개의 원을 구해온 싸리나무로 양쪽을 빙 둘려 연결하여 긴 원통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이현은 자신의 주먹만 한 지름의 원 모양을 하나 더 만든 뒤, 그 원통형 한쪽 면 안으로 엮어서 작은 원뿔 모양을 만들어 고정시켰다.
 
 어느 정도 뼈대가 완성되자 전체적으로 틈이 나 있는 부위를 싸리나무로 위아래로 번갈아 얽히고설켜 최대한 촘촘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물고기가 들어갈 수 있는 한쪽 구멍만 제외하곤 통발 전체가 완전히 꼼꼼하게 싸리나무로 둘러싸였다.
 이현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자신의 결과물에 꽤나 흡족했는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물고기가 도망가지 못하겠지.”
 
 곧바로 자리에 일어난 이현은 자신이 설치한 올무를 확인하기 위해 간단한 무장을 한 채 동굴 밖으로 나갔다.
 
 * * *
 
 일일이 올무 덫을 확인한 이현의 양손에는 토끼 세 마리가 산 채로 잡혀 있었다.
 잡자마자 죽이려 하다가 아직 자신의 안식처에 토끼 한 마리 정도의 고기가 남아 있는 것이 떠올라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살려 두었다.
 아무리 겨울이라 하지만 남아 있던 토끼 고기에서 조금씩 부패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현 시점에서 고기의 신선도를 유지할 있는 방법이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이현은 동굴로 돌아오자마자 산 채로 잡아온 토끼 세 마리의 목 부위를 나무껍질로 만든 줄로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동굴 바깥에서 구해 온 커다란 돌에 토끼 세 마리를 반대쪽 줄로 여러 번 감아 다시 한 번 단단히 고정시켰다.
 
 “이 정도면 도망가지 못하겠지.”
 
 이현은 그 말을 하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식사를 준비했다.
 남아 있는 토끼 고기를 숯불로 맛있게 구워 배를 채운 이현은 할 일이 더 남아 있는지 통발을 들고 동굴 밖으로 나갔다.
 
 * * *
 
 오늘은 M자형 물고기 덫에 물고기 두 마리가 함정에 빠져 도망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현은 어제처럼 그 물고기를 기절시킨 뒤 나무 꼬챙이에 끼어 넣었다.
 다시 살아있는 굼벵이를 미끼로 사용해 M자형 물고기 덫을 재설치하였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만든 통발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흐르는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안에 작은 돌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가죽 주머니에서 토끼 내장을 꺼내 통발 안에 집어넣었다.
 조금 부패한 냄새가 났지만 물고기 유인할 미끼로 안성맞춤이었다.
 
 이현은 잠시 긴 호흡을 내쉬며 각오를 다졌다.
 그리고 가죽신발을 벗고 차가운 물 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차가운 걸 넘어서 시려왔다.
 점점 깊은 곳으로 들어가 무릎을 넘어 허리까지 물이 차오르자 적당한 자리에 통발을 설치하였다.
 냇가가 흐르는 방향으로 통발 입구를 댄 이현은 그 통발이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 물 속에 널려있는 돌을 이용해 다시 한 번 튼튼하게 고정시켰다.
 
 빠르게 통발을 설치하고 물 밖으로 나온 뒤 재빨리 가죽 신발을 신어 묶었다.
 이현은 통발을 설치한 위치를 재차 확인하고는 왠지 모르게 저 상태로 안심이 되지 않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줄로 고정시켜야 하는 건데······.”
 
 뒤늦게 좋은 생각이 떠올라 얼굴을 찡그렸다.
 하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나무껍질 줄이 동이 나서 더욱더 아쉬움이 드는 이현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이현은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몸을 돌렸다.
 
 * * *
 
 동굴로 돌아온 이현은 내일 설치할 통발 두 개를 더 만든 뒤, 잡아온 물고기를 모닥불에 구워 저녁 식사를 했다.
 이현은 곧바로 잠을 자지 않고 또다시 겉면이 거친 돌을 이용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동물의 넓적다리뼈를 갈기 시작했다.
 한동안 넓적다리뼈를 열심히 갈던 이현이 서서히 피로가 몰려오자 하던 작업을 멈추고 잠자리를 만들었다.
 자기 전 한쪽 구석에서 웅크린 채 꼼지락거리는 토끼 세 마리를 살며시 쳐다보며 마음 편한 표정으로 잠을 잤다.
 
 한참 동안 잠을 자던 이현이 동굴 밖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그르렁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곧바로 자신 옆에 있던 나무 목창을 들고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동굴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긴장감과 함께 무서운 생각이 들어 목창을 들고 있던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킁! 킁!
 동굴 바깥에서 냄새를 맡는 소리와 함께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이현은 그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때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입구를 촘촘히 막고 있던 나뭇가지 사이로 뭔가가 뚫고 들어왔다.
 일단 머리 부분만 들어온 그 동물은 안에 있던 이현을 보자마자 거친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캬아!”
 
 
 *실제로 시베리아 유목 민족은 살아 있는 동물의 피를 먹음으로써 겨울에 부족한 비타민과 철분을 보충했다고 합니다.
 
 *M자형 물고기 덫은 되도록 미끼가 살아 있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메뚜기나 방아깨비 같은 살아 있는 곤충이 좋은데, 물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파닥거리며 물의 파동을 만들어 물고기를 유인한다고 한답니다.
 글에서는 겨울이라 굼벵이로 대신하였습니다.
 
 
 
 
 3장 동굴하이에나의 습격
 
 
 
 
 
 녀석은 자신을 먹잇감으로 생각했는지 이현을 향해 살기를 드러내며 동굴 안으로 어떻게든지 들어오려고 애를 썼다.
 그때까지도 이현은 겁을 먹은 채 도망가야 할지 맞서야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그 육식동물의 몸이 점차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반쯤 드러난 그 육식동물은 몸 전체가 노란빛 색깔로 덮어져 있었고, 가죽 곳곳에 검은 점이 박혀 있었다.
 
 ‘동굴하이에나!’
 
 이현은 속으로 그 육식 동물의 이름을 외치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는지 자신도 모르게 쥐고 있던 나무창을 앞으로 찔렀다.
 
 푸욱!
 목표를 정확하게 설정하지 않고 무심코 찌른 창이 동굴하이에나의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크르르륵! 캬아! 캬아!”
 
 이현의 빗나간 공격에 동굴하이에나가 급속도록 흥분하며,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오려고 더욱더 발광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만큼은 이현 자신도 자칫 죽음과 바로 직결된다는 것을 깨닫고 정신없는 상태에서 동굴하이에나 얼굴과 몸통 쪽에 재차 찔러갔다.
 
 푸욱! 푸욱!
 
 “크르르륵! 캬아! 캬아!”
 “죽어! 죽어!”
 
 미친 듯이 창을 찌르던 이현은 서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현이 내지른 창에 동굴하이에나의 얼굴과 몸 곳곳에 상처가 나 피를 조금씩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조악한 무기로는 자신에겐 생채기 정도밖에 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동굴하이에나가 기어코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미 물러서기로 마음먹은 이현은 마지막으로 하이에나의 한쪽 눈을 향해 정확하게 나무창을 내찔렀다.
 
 푹!
 그 순간, 동굴하이에나 한쪽 눈에 나무창의 뾰족한 부분이 순식간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캬아아아!”
 
 동굴하이에나의 거친 포효가 동굴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현이 몸을 돌려 동굴 안쪽 벽에 있는 작은 구멍으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동시에 동굴하이에나가 나뭇가지로 막아 놓은 동굴 입구를 헤치고 이현을 뒤쫓기 시작했다.
 한쪽 눈과 몸 이곳저곳에 피를 흘리며 쫓아가는 동굴하이에나는 살기로 짙게 배어 있었다.
 
 자신을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인 감으로 알아챈 이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뛰어갔다.
 하지만 점차 동굴하이에나와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어느 새 성인의 다섯 걸음 정도로까지 가까워졌다.
 그걸 아는지 모르지 이현은 입술을 꽉 깨물고 자신의 두 눈에 확연하게 보이는 작은 구멍을 향해 미끄러지듯이 몸을 날렸다.
 
 일단 다리부터 집어넣은 이현은 엉금엄금 기어가면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때, 동굴하이에나가 작은 구멍에 도착하자마자 얼굴을 먼저 집어넣었다. 그 상태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거친 포효와 함께 으르렁거렸다.
 
 “크르르르! 캬아!”
 
 하지만 이현이 숨은 구멍은 동굴하이에나의 체구보다 작아 안으로 들어오려는 게 쉽지 않았다.
 이현은 좁은 틈새에 낀 채 들어오려 애쓰는 동굴하이에나를 보았다.
 동굴하이에나로부터 세 뼘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캬악! 캬악!”
 
 잡힐 듯 말 듯한 거리에서 이현이 자신의 앞에 얼쩡거리자 동굴하이에나가 연신 입을 벌렸다가 닫았다.
 그때마다 날카로운 송곳니 사이로 동굴하이에나의 특유의 악취가 풍겨 나오며 이현의 코를 자극하였다.
 
 ‘좀 더! 좀 더!’
 
 이현은 속으로 간절히 외치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자신의 체구로는 더 이상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는 게 무리였는지 하이에나가 앞뒤로 움직이지 못하고 낑낑거렸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현이 뒤로 물러서는 것을 멈추고, 자신이 끝까지 쥐고 있던 나무창을 앞으로 연신 내질렀다.
 
 푸욱! 푸욱!
 
 “캬아아악! 캬아아악!”
 
 그게 통했는지 조금씩 동굴하이에나가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동굴하이에나는 또다시 비명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뒤로 물러나려고 발버둥을 쳤다.
 이현은 이것이 동굴하이에나를 죽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느꼈는지 전보다 더욱 빠르게 나무창을 찔러 갔다.
 그때마다 하이에나 얼굴 곳곳에 깊고 자잘한 상처가 생기면서 피로 범벅이 되어 갔다.
 
 “감히 나를 잡아먹으려고 해! 죽어! 죽어!”
 
 이현은 살기 위해 발악하듯 한참동안 괴성을 지르며 정신없이 찔러 대었다.
 어느 순간 동굴하이에나가 머리를 바닥에 댄 채 쥐 죽은 듯이 가만히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제야 이현은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있는 동굴하이에나를 쳐다봤다.
 동굴하이에나의 모습이 워낙 처참했는지 양쪽 두 눈뿐만 아니라 머리 곳곳에 구멍이 뚫려 뜨거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현은 죽은 걸 재차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나무창을 들고, 동굴하이에나의 한쪽 눈을 향해 찌른 다음 머릿속에 있는 뇌를 연신 헤집어 놨다.
 그때까지도 동굴하이에나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자 그제야 이현이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숨을 헐떡거렸다.
 
 “후! 후! 후!”
 
 동굴하이에나와 힘겨운 사투로 인해 체력이 고갈되어 이현은 곧바로 돌아누운 채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졌다.
 어느 정도 체력을 회복한 이현은 입구를 막고 있는 동굴하이에나를 보고 막막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대책 없이 행동했어.”
 
 살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정신없이 싸우다보니 미처 이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현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구를 막고 있는 동굴하이에나의 사체에 양손을 대고 온 힘을 다해 바깥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동굴하이에나 사체가 조금씩 뒤로 밀려 나가고 있었다.
 
 * * *
 
 “후! 후! 후!”
 
 드디어 작은 구멍으로 나온 이현이 또다시 거친 숨을 내뱉었다.
 다행히도 작은 구멍 입구 가까이 동굴하이에나가 있어서 어렵지 않게 나올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도 쉽지만은 않아 벌써 해가 떠올라 바깥을 환하게 비춰 주고 있었다.
 
 이현은 잠시 숨을 가다듬은 뒤, 자신을 습격한 동굴하이에나를 유심히 쳐다봤다.
 뒷다리가 앞다리보다 짧았다.
 이런 동물들은 달리는 속도가 느렸다.
 하지만 다른 육식 동물보다 지구력은 훨씬 뛰어났다.
 그뿐만 아니라 동굴하이에나의 무는 힘은 뼈를 통째로 씹어 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강했다.
 
 다행히도 이번에 이현이 잡은 동굴하이에나는 다 큰 성체가 아니었다.
 만일 다 큰 성체가 습격했다면 이현은 저항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잡아먹혔을 게 분명했다.
 물론, 동굴 안쪽으로 피신할 수 있다고 하지만 말 그대로 그걸로 끝이었다.
 무리 생활을 하는 동굴하이에나는 평상시에는 먹이를 찾기 위해 뿔뿔이 흩어지지만, 먹이를 발견하면 특유의 울음소리로 자신의 동료를 불렀다.
 
 결국, 장기전에 능하고 인내심이 강한 동굴하이에나의 무리에게 입구를 막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굶어 죽거나 아니면 잡아먹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리고 혹시나 동굴 바깥으로 탈출한다고 해도 그 이름처럼 동굴에서 생활하는 동굴하이에나에게 자신의 안식처를 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거주지가 없어진다면 결국 다른 포식자들에게 쉬운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예전에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전해 들은 이현은 오늘에서야 자신이 정말 대책 없이 지내고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오늘은 분명 이현에게 운이 좋은 날이었다.
 자신의 무리를 부르지 않은 상태로 동굴하이에나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이현은 일단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곧바로 죽어 있는 동굴하이에나 사체를 해체한 뒤,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만큼만 모닥불에 구워 허겁지겁 먹었다.
 그리고 쉬는 것도 미루고 곧바로 동굴 바깥으로 나가 덫에 걸린 토끼와 물고기를 수거해 왔다.
 
 동굴로 들어온 이현은 외출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떠오른 지식으로 곧바로 방비작업을 시작했다.
 물론, 잠깐의 두통이 이현을 괴롭히기 했지만, 몸을 움직이는 데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았다.
 한참 동안 바깥에서 두께가 자신의 주먹 정도 되는 나무들을 골라 주먹 도끼로 잘라 낸 뒤 일일이 하나둘씩 들고 동굴로 가지고 왔다.
 
 동굴로 나무를 가져온 뒤에는, 나무의 잔가지를 쳐냈다.
 어느 정도 방벽을 세울 나무 재료가 모이자,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밤에 작업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란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현은 서둘러 임시방편으로 만든 나뭇가지로 동굴 입구를 막았다.
 
 전날보다 더 촘촘하게 입구를 막은 이현은 곧바로 동굴하이에나 고기 한 점을 잘라 모닥불에 굽기 시작했다.
 고기가 굽는 동안 또다시 넓적다리뼈를 갈았다.
 동굴하이에나 고기가 어느 정도 익자 곧바로 작업을 멈추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를 마친 이현이 이번에는 방벽을 만들기 위해 동굴 안으로 가지고 온 나무를 가지고 양쪽 끝을 뾰족하게 만들었다.
 그 작업을 한참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이현의 손에 들고 있던 주먹 도끼가 쩍 소리를 내며 반으로 갈라졌다.
 
 “도대체 오늘 몇 번째야?!”
 
 이현은 오늘 하루 동안 세 번의 주먹 도끼를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또다시 주먹 도끼를 만들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이현의 걸음걸이에서 짜증이 잔뜩 배어있었다.
 
 “뭔가 튼튼한 게 있었으면 좋겠어,”
 
 주먹 도끼를 만드는 동안에도 하염없이 새로운 걸 구상하던 이현은 마땅히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자 아쉬운 입맛을 다셨다.
 마침 새로 만들던 주먹 도끼가 완성되자 곧바로 몸을 돌려 또다시 미처 끝내지 못했던 작업을 이어서 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드디어 모든 나무 재료의 양쪽 끝을 뾰족하게 만들었다.
 작업을 완료한 이현은 그제야 잠이 밀려오는지 눈이 빨갛게 충혈된 상태로 잠자리에 들어섰다.
 
 * * *
 
 눈 깜짝할 사이에 아침이 밝아 오자 피곤도 잠시 잠자리에 바로 일어난 이현은 곧바로 동굴 입구 주위에 물을 뿌렸다.
 땅이 흥건히 스며들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을 뿌린 이현은 역시나 동굴하이에나 고기로 아침에 배를 채운 뒤 곧바로 방벽을 세우기 위해 또다시 몸을 움직였다.
 동굴 바깥으로 나온 이현은 곧바로 마신이 물을 뿌린 지점을 발로 가볍게 내리찍은 뒤, 드러난 발자국의 깊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정도면 박을 수 있겠어.”
 
 동굴 입구 주위는 방금 뿌린 물 때문인지 땅이 물렁해진 상태였다.
 물론, 봄이 다가오는 건지 날씨가 조금 풀려 따뜻해진 것도 없지 않아 있었다.
 이현은 곧바로 동굴 안에서 어제 만들어 놓은 나무 재료들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동굴 입구 주위에 일직선 형태로 띄엄띄엄 박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큰 나무들를 일일이 박는 게 힘겨웠는지 연신 이마의 땀을 훔치는 이현이었다.
 
 드디어 자신이 드나들 입구만 제외하고 나무를 다 박아 놓은 이현은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쉬는 것도 잠시, 아직 튼튼하지 않은 나무 밑부분을 고정시키기 위해 지지대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일일이 박혀 있는 나무들과 지지대를 단단히 밀착시킨 뒤 나무껍질 줄로 튼튼하게 묶기 시작했다.
 하나라도 부족했는지 앞쪽과 똑같은 방법으로 뒤쪽에도 지지대를 설치하였다.
 
 어느 정도 틀이 완성되자, 이현은 늦은 점심 식사를 한 뒤 곧바로 덫이 설치된 곳을 둘러보았다.
 오늘도 결과물이 꽤 좋아 토끼와 물고기를 양손에 가득 들고 동굴로 돌아왔다.
 
 이현은 곧바로 다시 작업을 시작하였다.
 또다시 자신의 주먹만 한 두께의 나무를 구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재료가 모이자, 구해 온 나무들을 반으로 쪼개기 시작했다.
 나무 한쪽 끝 부분을 주먹 도끼로 살짝 박은 뒤, 그 벌어진 틈 사이로 양손을 넣어 벌려 가볍게 반으로 쪼개었다.
 그렇게 일일이 나무들을 반으로 쪼개고 나자, 어느새 저녁이 되었다.
 
 이현은 다음 작업은 내일로 미루고, 반으로 쪼개진 나무들을 동굴 안으로 옮겼다.
 아직 입구에는 아무런 방벽도 없어 임시방편으로 나뭇가지를 촘촘히 덮어 막았다.
 동굴 안으로 들어온 이현은 곧바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뭘 먹지?”
 
 며칠 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동굴 안에 있자 이현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현은 곧바로 어제 잡은 물고기와 아직도 고기가 남아 있는 동굴하이에나의 사체에 다가가 코를 내밀며 살며시 냄새를 맡았다.
 
 “킁! 킁!”
 
 조금 부패한 냄새가 나자 이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은 겨울이라서 부패하는 속도가 느리지만, 며칠이 지나면 못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이현이 잠시 생각에 잠기는 순간 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사이 기억 한 조각이 이현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래! 그거야.”
 
 이현은 마치 그 지식이 처음부터 알고 있는 것처럼 곧바로 몸을 움직여 무엇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단 길게 쭉 뻗어 있는 Y자형으로 된 나무 두 개를 구한 뒤, 그 두 개의 나무 길이를 맞춰 주먹 도끼를 사용해 다듬었다.
 얼추 길이가 맞춰지자 이현은 곧바로 받침대로 사용할 작은 나뭇가지 구해 왔다.
 그리고 각각 네 개의 나뭇가지로 Y자형의 나무 밑부분을 받침대로 고정시키기 위해 사각형 모양으로 엇갈려 나무껍질 줄로 단단히 묶었다.
 
 드디어 자신의 키보다 훨씬 높은 Y자형의 나무 두 개를 동굴 벽 가까이 마주 보며 세웠다.
 자신이 만든 결과물이 옆으로 기울지 않고 똑바로 세워지자, 이현은 잠시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다음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 제일 먼저 부패가 빨리 되는 물고기의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한 뒤, 동굴 밖에 쌓여 있는 눈으로 깨끗이 씻었다.
 그리고 나무껍질 줄로 물고기 아가미 안에 집어넣고 입 밖으로 나오게 한 뒤, 그 끝을 연결하여 줄이 자신의 팔길이 정도의 여분이 남을 정도로 묶었다.
 그렇게 잡아온 물고기들을 한동안 똑같은 방법으로 연달아 만들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곧바로 이현은 동굴하이에나의 사체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주로 살이 남아 있는 부위를 분리했는데, 어느 순간 이현의 옆에 몇 개의 살덩어리가 묵직하게 놓여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분리할 살덩어리가 없자, 이현은 곧바로 옆에 놓여 있는 살덩어리 하나를 집더니 한쪽 끝부분을 나무껍질 줄로 단단하게 묶었다.
 역시나 자신의 팔길이 정도의 줄을 여분으로 남기고, 남아 있던 살덩어리도 똑같은 방법으로 정리했다.
 
 잠시 이현은 세워 둔 두 개의 Y자형의 나무를 번갈아 보더니 고민에 잠겼다.
 
 “일단 해 보는 데까지 해 보자.”
 
 이현은 Y자형 나무가 벌어진 거리만큼 적당한 나무를 하나를 골라 옆으로 뻗친 잔가지를 쳐냈다.
 그리고 그 나무를 세워진 Y자형 나무 양 쪽 끝부분의 홈에 걸치려고 힘껏 뒷발을 들었다.
 하지만 손이 닿지 않아 그 나무를 걸치지 못하자 난감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이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뭔가 올라탈 수 있는 게 필요했다.
 고개를 돌려 동굴 안을 둘러봤다.
 그때 자신의 두 눈에 적당한 크기와 함께 넓적하게 퍼진 바위가 들어왔다.
 어느 정도 힘을 쓰면 자신이 저 바위를 어떻게든 옮길 수는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현은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일단, 그 바위에 다가가 몸을 숙인 다음 온 힘을 다하여 힘껏 들어 올렸다.
 그런데 예상보다 무게가 더 나가는 바람에 이현은 온갖 인상을 찌푸렸다.
 
 기어코 자신이 원하는 위치로 그 바위를 힘겹게 옮기자마자 바닥에 앉아 연신 숨을 헐떡거리는 이현이었다.
 쉬는 것도 잠시, 이현은 자리에서 곧바로 일어났다.
 
 “빨리 하자.”
 
 더 쉬고 싶은 자신을 향해 타이르듯 혼잣말로 조용히 다그친 이현은 곧바로 비슷한 바위를 하나둘 옮겨 탑처럼 쌓기 시작했다.
 어느새 자신의 허리만큼 탑이 쌓이자 이현은 조금 전에 만들었던 나무를 들고 그 바위 탑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나무를 Y자형 나무 양쪽 끝 홈에 가볍게 걸치고 내려왔다.
 
 “됐다.”
 
 어느 정도 수평이 맞춰지자 이현은 곧바로 줄로 묶어 두었던 물고기와 고깃덩어리를 하나씩 들고 바위 탑으로 올라가더니 걸쳐 있는 나무에 일일이 묶기 시작했다.
 어느새 물고기와 고깃덩어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 뒤 이현은 양손에 각각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모닥불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모닥불 안에 살아 있는 숯을 따로 분리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살아 있는 숯이 모이자 이현은 양 손에 있는 나뭇가지를 집게처럼 사용하며, 그 숯을 매달려 있는 물고기와 고깃덩어리가 있는 곳으로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 옮길 숯이 없자, 이현은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바라봤다.
 숯에서 올라오는 희뿌연 연기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물고기와 고깃덩어리를 골고루 흠뻑 적시고 있었다.
 딱 타지 않을 만큼 높이에 물고기와 고깃덩어리가 매달려 있는 게 꽤 마음에 드는지 이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정도면 식량을 길게 더 보관할 수 있겠지.”
 
 겨울이라 바깥에서 고기를 보관할 수 있었지만 다른 포식자들이 냄새를 맡고 몰려 올 수 있기에 현재로선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현이 곧바로 늦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바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갈비뼈에 살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동굴하이에나의 등갈비 부위를 모닥불에 올려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나 넓적다리뼈를 갈면서 틈틈이 고기가 익어가는 과정을 살폈다.
 어느새 맛있게 구워진 등갈비에서 육즙이 섞인 기름이 뚝뚝 떨어졌다.
 
 이현은 뼈를 가는 걸 멈추고, 등갈비를 하나씩 뜯으며 먹기 시작했다.
 한창 성장하는 시기라 먹고, 또 먹어도 배가 고팠다.
 특히나 오늘은 일을 많이 해서 그런지 이현은 평소보다 많이 먹고 일찍 잠이 들었다.
 
 * * *
 
 이현은 날이 밝자마자 넉넉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곧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 어제 반으로 쪼갰던 나무들을 동굴 밖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 나무를 하나씩 들고 동굴 입구에 띄엄띄엄 세워진 나무 기둥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작업을 시작했다.
 
 한 칸씩 건너 세워진 나무 기둥 틈 사이로 반으로 쪼개진 나무를 사용하여 직물을 짜듯 앞뒤로 번갈아 교차하며 엮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틈이 최소화 되도록 촘촘하게 엮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손이 안 닿은 부분은 어제처럼 바위를 옮겨 그 위로 올라가 힘겹게 엮기도 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이현은 어제부터 숯불 연기로 바짝 마른 물고기 하나와 고깃덩어리 하나를 꺼내더니 다시 한 번 모닥불에 구워 먹었다.
 생각보다 그 맛이 나쁘지 않았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외출 준비를 하고 동굴 바깥으로 나갔다.
 
 * * *
 
 여전히 조심스럽게 주위를 경계하며 동굴로 돌아온 이현의 손에는 오늘 덫에 걸린 토끼와 물고기가 들려 있었다.
 물고기는 이미 냇가에서 내장을 따로 분리해 해체를 끝낸 상황이었다.
 해체된 물고기는 어제처럼 나무껍질 줄로 엮어서 음식이 보관되는 훈연 건조대에 매달았다.
 역시나 그 밑에선 숯들이 연기를 하염없이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이현이 보기엔 죽어 있는 숯이 좀 있는 것 같아 모닥불에서 살아 있는 숯을 골라낸 뒤 훈연 건조대로 옮겼다.
 좀 전보다 진해진 연기를 보고 나서야 이현이 안심이 되는지 곧바로 오후 작업을 시작했다.
 오후도 오전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작업의 연속이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끝났네.”
 
 겨울의 추위에도 이현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렸다.
 어쨌든 자신이 드나드는 입구만 빼놓고 동굴 입구 전체가 빽빽하게 나무 방벽으로 막혀 있었다.
 물론 대형동물이나 육식동물이 마음먹고 쳐들어오면 쉽게 무너질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현재까지 이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더군다나 아직 방벽 작업이 다 끝난 게 아니었다.
 
 이현은 동굴 입구에 세워진 나무 방벽을 침엽수 나뭇가지로 둘러쌓아 촘촘히 막았다.
 물론, 자신이 드나드는 입구도 막았다.
 동굴 안으로 들어온 이현은 곧바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오늘은 동굴하이에나 고기보다 토끼 고기를 먹고 싶었다.
 
 이현은 살아있는 토끼 두 마리를 죽인 뒤 목을 잘라 생피를 마시며 갈증을 해소시켰다.
 그리고 곧바로 해체 작업을 한 후, 모닥불에 구워 저녁을 배부르게 먹었다.
 이현은 잘 준비를 마치고, 바로 숙면을 취했다.
 
 * * *
 
 또다시 아침이 밝아왔다.
 오늘은 튼튼한 문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이현은 역시나 자신의 주먹만 한 두께의 나무를 잘라 하나둘씩 동굴로 갖고 왔다.
 얼추 재료들이 갖춰지자 그 나무 재료를 자신이 드나드는 입구 정도 넓이만큼 가지런히 바닥에 펼쳤다.
 마치 직사각형 모양의 문이 된 그 나무들을 이번에는 나무껍질 줄로 아래쪽부터 먼저 각각의 나무를 연결하여 꼼꼼히 묶기 시작했다.
 그리고 똑같은 방법으로 중간 그다음 위쪽을 차례대로 연결하여 묶었다.
 
 이젠 나무껍질 줄로 완전히 하나가 된 나무문을 보면서 이현이 다음 작업을 이어나갔다.
 일단 지지대가 걸칠 수 있는 거치대를 만들기 위해 이현은 나무문 중간 부분에 두꺼운 나무를 가로로 놓은 뒤, 나무 틈 사이로 얽히고 설키서 단단히 묶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나무문이 완성되자 이현은 곧바로 나무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자신이 드나드는 입구로 옮겨서 막은 뒤, 지지대를 사용할 적당한 나무 세 개를 구해 와 나무문 중간의 거치대에 비스듬히 걸쳐 바닥에 고정시켰다.
 조금은 투박하지만 어느 정도 출입구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에 이현은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일단 이 정도만 하자.”
 
 이현은 그 말을 하고난 후, 점심 식사를 했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동굴 바깥으로 나가 덫에 걸린 토끼와 물고기를 가져왔다.
 동굴로 돌아온 이현은 며칠 동안 힘든 일만 해 와서 그런지 오후에는 단순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는 넓적다리뼈만 갈 계획이었다.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상태라 날만 더 세우며 되는 상황이었기에 이현은 오후 동안 거친 돌을 이용해 양쪽 날을 앞뒤로 번갈아 갈기 시작했다.
 
 “쓱! 쓱!”
 
 어느새 어둠이 몰려왔다.
 이현은 자신이 만든 뼈칼을 앞뒤로 유심히 관찰하였다.
 자신의 팔꿈치 정도 길이에 아주 긴 삼각형 모양을 가진 뼈칼은 끝부분이 뾰족하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며 양쪽 날이 날카롭게 서 있었다.
 이현은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뼈칼이 훨씬 더 잘 나오자 은근히 뿌듯함을 느꼈다.
 
 “이제는 손잡이를 만들어야겠지.”
 
 곧바로 뼈칼의 아랫부분인 뭉툭한 부위를 나무껍질 줄로 나선형 형식으로 감으며 손잡이를 만들었다.
 드디어 뼈칼이 완성되자 이현은 손잡이 부위를 잡고 좌우로 연신 휘둘렸다.
 손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가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때마침 저녁 시간이 되자 이현은 곧바로 뼈칼을 시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살아 있는 토끼 하나를 잡고 들어 올린 뒤, 목을 향해 과감히 뼈칼을 찔러 넣었다.
 
 푹!
 가볍게 살을 파고드는 느낌이 손끝에 전해지며 뼈칼이 순식간에 토끼의 목을 관통하였다.
 그 성능에 꽤 만족스러운지 이현은 곧바로 죽은 토끼의 가죽을 살과 분리하기 시작했다.
 
 스윽! 스윽!
 부드럽게 가죽을 갈리는 것이 주먹 도끼를 사용하는 것보다 작업 속도가 훨씬 빨랐다.
 이현은 자신만의 특별한 무기를 가진 것 같아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그날 저녁 식사는 기분 탓인지 유난히 맛이 좋았다.
 그렇게 내일을 위해서 또 하루가 지나갔다.
 
 
 *동굴하이에나는 실제로 무리 생활을 하며 유럽과 아시아동부까지 널리 분포되어 살았다고 합니다. 주로 들소, 말 등을 잡아먹었으며, 심지어는 동굴사자까지 먹었다고 합니다.
 몸집은 현재 아프리카 하이에나보다 좀 더 컸다고 합니다.
 
 *훈연법, 훈제법은 같은 방법입니다.
 인류는 음식을 보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저장법을 만들었는데 그중 최초로 만들어 진 것이 훈연법입니다.
 훈연법은 숯에 타는 연기로 고기를 겉면만 까맣게 태워 세균이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게 해서 변질을 늦추는 방법입니다.
 지금도 아프리카 부시맨은 옛날 방식 그대로 훈연법으로 사냥한 고기를 저장한다고 합니다.
 
 
 
 
 4장 돌도끼를 만들다
 
 
 
 
 
 아침부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어제와 다른 변덕스러운 날씨에 이현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현은 일단 아침에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눈보라 치는 바깥으로 나갔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동굴 안으로 돌아왔다.
 야외에서 활동하기에는 날씨가 너무 안 좋았다.
 오늘 하루는 동굴 안에서 생활하기로 마음먹은 이현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땅히 할 만한 일이 눈에 보이지 않자, 잠시 잠자리에 누워 쉬면서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어떻게 생활할 것인지, 필요한 게 무엇이며, 또 뭘 만들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눈이 감기면서 이현은 달콤한 낮잠을 잤다.
 
 점심쯤에 일어난 이현은 가볍게 식사를 끝낸 후, 다시 한 번 동굴 입구로 다가가 바깥의 날씨를 확인했다.
 여전히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쉽게 그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이현은 아쉬운 마음으로 발길을 돌렸다.
 설치한 덫을 확인해야 되는데 오늘은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이현은 자신이 드나드는 입구를 나무문을 옮긴 뒤, 지렛대를 사용하여 고정시켰다.
 그러다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왠지 모르게 자신이 만든 방벽이 조금 부실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문을 지탱하고 있는 지렛대에 시선이 돌아갔다.
 이현은 자신을 자책했다.
 
 “눈이 그치면, 방벽에도 지렛대를 설치해야겠어.”
 
 이현은 곧바로 오전에 계획했던 것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먼저 한 쪽에 쌓여있는 토끼 가죽과 동굴하이에나 가죽을 정리하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잠시 후, 그 가죽을 보던 이현은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제대로 관리를 안 해서 그런지 수분이 빠져 벌써 가죽이 쪼그라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현은 곧바로 동굴 안에 쌓여 있는 적당한 나무를 두 개를 골라 가죽 크기에 맞게 잰 후, 그 두 개의 나무를 교차해서 십자 모양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두 개의 나무가 교차하는 지점에 나무껍질 줄로 단단히 묶었다.
 그렇게 각각 가죽의 크기에 맞게끔 여러 개의 십자 모양을 만든 이현은 제일 먼저 동굴하이에나의 가죽을 집어 들었다.
 이현은 양손으로 동물하이에나 가죽을 잡고 최대한 넓게 펴려고 노력했다.
 
 쫙! 쫙!
 순간 가죽이 펴지면서 공기를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쪼그라들었던 가죽이 어느 정도 펼쳐지자 이현은 곧바로 동물하이에나의 가죽 크기에 맞는 십자 모양의 나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동물하이에나의 가죽 끝부분에 하나씩 십자 모양의 나무를 걸쳐서 가죽이 최대한 팽창할 수 있도록 나무껍질 줄로 고정시켰다.
 
 이현은 곧바로 그 가죽을 모닥불 가까이 있는 벽에 세웠다.
 그리고 차례대로 남아있는 토끼 가죽을 똑같은 방법으로 작업한 뒤 역시나 모닥불 근처에 세워 두었다.
 가죽을 햇빛에 건조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만, 날씨도 춥고 햇빛도 약해서 일단 임시방편으로 모닥불 근처에서 건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현은 가죽 작업을 다 마무리되자, 잠시 모닥불에 손을 쬐며 몸을 녹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모닥불 빛에 비친 자신의 손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많이 거칠어졌네.”
 
 겨울이라 손이 트면서 피부 곳곳이 갈라지고 있었다.
 거기에 며칠 동안 주먹 도끼로 무식하게 나무를 베서 그런지 여기 저기 긁힌 상처가 이현의 두 눈에 들어왔다.
 이현은 자신의 모습에 쓸쓸한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돌려 동굴 입구 쪽을 쳐다봤다.
 
 “안 오겠지······?!”
 
 순간 감상에 젖어드려는 자신의 감정을 돌리기 위해 이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감정에 맞서서 나름대로 저녁을 푸짐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다양한 고기들이 모닥불에 의해 맛있게 구워지고 있었다.
 
 타닥! 타닥!
 
 이현은 고기가 익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고기가 구워지면서 한두 방울 떨어지는 기름을 작고 평평한 돌로 일일이 받고 있었다.
 어느새, 그 작고 평평한 돌이 온통 기름으로 젖게 되자 모닥불에서 멀리 떨어진 한쪽 구석에 놓아두어 열을 식혔다.
 그런 돌이 벌써 다섯 개가 되어 있었다.
 
 이현은 그렇게 놓인 돌 중에 식은 돌 하나를 골라 양손을 문대고 비비며 기름을 골고루 바르기 시작했다.
 노르스름하게 굳어진 동물 기름이 이현의 거칠어진 손을 촉촉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느새 이현의 양손이 기름으로 인해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현은 좀 전과 다른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때마침 고기가 알맞게 구워지자 이현은 느긋한 얼굴로 각각의 고기가 품고 있는 풍미를 느끼며 먹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저녁을 배불리 먹은 이현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동굴 곳곳을 돌아다니며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점검이 아무 문제가 없자 그제야 편안하게 눈을 붙일 수가 있었다.
 
 * * *
 
 어제와 다르게 겨울의 따뜻한 햇살이 동굴 입구를 비추고 있었다.
 편안한 숙면을 취했는지 이현은 평상시와 다르게 늦게 눈을 떴다.
 눈을 뜨고도 일어나기가 싫었는지 잠시 뒤척이더니 덮고 있던 동물 가죽을 자연스럽게 자신의 얼굴로 가져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몽롱해진 정신을 잡기 위해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자신의 뺨을 양손으로 가볍게 때렸다.
 
 철썩!
 
 이현은 정신을 차린 뒤,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오늘 계획했던 일을 시작했다.
 우선 방벽에 지렛대를 설치하기 나무 재료를 모우기 시작했다.
 늦잠을 자서 그런지 이현이 나무 재료를 다 구하지 못했는데 배가 고파졌다.
 어쩔 수 없이 작업을 다음으로 미룬 이현은 가볍게 점심 식사를 하고 난 뒤, 설치한 덫을 확인하기 위해 동굴 바깥으로 나갔다.
 
 어제 워낙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쳐서 조금 걱정이 되는 이현이었다.
 가뜩이나 어제 확인도 못한 상황이라 이현은 평소보다 빠르게 몸을 움직여 이동했다.
 첫 번째로 설치한 덫에 도착한 이현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참나!”
 
 아무 것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바닥에 고정되어 있어야 할 말뚝과 올무가 눈에 쌓여 이현의 두 눈에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아마도 눈 속에 파묻혀 있는 것 같았다.
 이현은 그 자리에서 쌓여 있는 눈을 치운 다음 곧바로 덫을 재설치하였다.
 작동하는 것까지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이현은 그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차례대로 덫을 확인하고 재설치한 이현의 손에는 얼어 죽은 토끼 두 마리가 들려 있었다.
 아마도 덫에 걸린 토끼가 어제 불어 닥친 강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매달린 채 동사한 것 같았다.
 어쨌거나 어제 덫을 확인하지 못한 것치고는 결과가 썩 나쁘지는 않았다.
 
 덫을 확인한 후 냇가로 이동한 이현은 이번에는 물고기 덫이 안전한 지 일일이 확인한 뒤 재설치하였다.
 다행히도 물살에 휩쓸려간 물고기 덫 두 개만 빼놓고 나머지는 다 괜찮았다.
 그뿐만 아니라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물고기 세 마리가 도망가지도 못하고 M자형 덫에 갇혀 있었다.
 
 이현은 잠시 기쁨 누린 후, 그 자리에서 잡은 토끼와 물고기를 운반하기 좋게 해체한 뒤, 잃어버린 통발을 뒤로한 채 동굴로 돌아왔다.
 
 저녁이 되려면 아직 멀었는지 동굴로 돌아온 이현은 방벽에 설치할 지렛대를 만들기 위해 바삐 몸을 움직였다.
 시간이 흘러 결국 늦은 저녁에 돼서야 이현의 작업이 마무리되며 끝이 났다.
 이현은 곧바로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오늘 잡은 토끼 두 마리를 구워 먹었다.
 
 요즘 들어와 기름진 고기를 자주 먹어서 그런지 이현의 이빨과 그 사이에 이물질이 끼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식사 후라서 텁텁한 게 벌써부터 입안이 근질거렸다.
 그래서 오늘 바깥에 외출했을 때 냇가에서 버드나무의 가지 몇 개를 꺾어 가지고 왔었다.
 
 왜 나뭇가지를 가지고 와야 되는지 이현도 그 이유를 정확하게 몰랐다.
 단지, 그 순간만큼 왠지 모르게 꼭 가지고 와야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이현은 강제로 누군가가 지식을 주입한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몸을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현은 먼저 동굴로 가지고 온 버들 나뭇가지 하나를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손목 정도의 길이로 자른 뒤, 그 나뭇가지 한쪽 끝부분을 돌로 으깨서 마치 붓처럼 자잘하게 쪼갰다.
 이현은 붓 모양이 된 그 버들 나뭇가지를 들고 입 안에 있는 이빨 전체를 위아래로 구석까지 한참 닦기 시작했다.
 
 뿌득뿌득!
 
 버드나무 특유의 쓰디쓴 즙이 퍼지면서 점차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자 이현은 그제야 닦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한쪽 끝이 심하게 헤져 버린 버들 나뭇가지를 모닥불 위로 던졌다.
 잠시 활활 타오르는 버들 나뭇가지를 보면서 이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왠지 모르게 이빨을 닦고 나서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이현은 종종 버들 나뭇가지를 구해 이빨을 닦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잠을 자기 위해 잠자리를 만들었다.
 넓적하게 퍼진 동물 가죽 위로 곧바로 드러누운 이현은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 * *
 
 밤낮이 여러 번 바뀌며 며칠이 흘러갔다.
 그동안 이현은 쉴 새 없이 무언가를 만들고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먼저, 재료를 구해 토끼 덫과 M자형 물고기 덫을 더 설치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통발을 예전보다 튼튼하게 만들어 물살에 떠내려가지 않게 나무껍질 줄로 연결한 뒤 주위에 있는 나무나 바위에 묶어 고정시켰다.
 
 요즘 통발을 건질 때마다 자신의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잡혀 올라오고 있었다.
 반대로 토끼가 덫에 걸리는 숫자는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아마도 거주지에서 멀지 않은 반경에 덫을 설치해서 그런지 한정된 공간 안에 자신이 잡아먹은 토끼의 수만큼 그 개체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지 않나 이현은 조심스럽게 추측하고 있었다.
 원래 자신의 가족도 지금 살고 있는 동굴을 발견하기 전까지 수렵과 채집생활을 병행하며 사냥감이 떨어진다 싶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그랬다.
 
 물론 사냥감이 줄어드는 이런 상황을 이현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혼자 남게 된 지금은 더 이상 다른 곳으로 거주지를 옮길 수가 없었다.
 나이도 어릴 뿐더러 혼자 살기에는 아직까지 사냥감이 충분히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자신의 부모님이 있을 때보다 더 풍족하게 보내고 있었다.
 만약 부모님이 살아 돌아오신다면 자신이 만든 새로운 사냥법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전수할 생각이었다.
 어쨌든 며칠 동안 훈연 건조대에 꾸준히 식량을 보관하며 늘려 가고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덫에 걸린 토끼와 물고기를 해체 작업한 뒤 동굴로 가지고 와 훈연 건조대에 매달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현은 동물 뼈로 길이와 모양이 각각 다른 여러 개의 뼈칼을 만들었다.
 또한, 자신이 애용하는 나무창도 여러 개 더 만들었다.
 
 이현은 오늘 또다시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단 냇가에서 구해 온 자신의 양 손바닥의 크기만큼 되는 평평한 삼각형 모양의 돌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돌의 삼각형 한쪽 꼭짓점 부위의 두께를 눈대중으로 재었다.
 
 이현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쪽에 쌓여있는 나무더미에서 두께가 자신의 주먹보다 조금 더 큰 나무를 골라 가지고 왔다.
 그리고 잠시 품평하듯 그 나무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이현은 곧바로 그 나무를 자신의 팔목 정도의 길이로 잘라 냈다.
 그리고 그 나무를 눈대중으로 사등분을 한 뒤 삼등분 지점을 중심으로 아주 얇게 뼈칼을 사용해 앞뒤로 평평하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 그 지점이 평평하게 되자 고개를 돌려 모닥불에 시선을 돌렸다.
 이현은 곧바로 그 나무의 두께보다 작은 숯을 골라 꺼냈다.
 그리고 조금 전 만들어 두었던 그 나무의 평평한 부위에 그 작은 숯을 얹혔다.
 
 “치익!”
 
 나무가 타는 냄새가 퍼지면서 잠시 후, 숯이 닿는 부위가 까맣게 그을려졌다.
 그리고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현은 재빨리 숯을 그 나무에서 분리했다.
 그때부터 이현은 까맣게 탄 지점을 작은 주먹 도끼로 파기 시작했다.
 하얀 나무 속살이 나올 때까지 파고 나서야 이현은 하던 일을 멈췄다.
 
 이번에는 나무의 반대쪽 평평한 부위를 숯으로 검게 그을린 뒤 또다시 하얀 나무 속살이 나올 때까지 파기 시작했다.
 그렇게 똑같은 방법으로 그 나무의 평평한 부위가 구멍이 뚫릴 때까지 앞뒤로 번갈아가며 작업을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 나무가 양쪽으로 연결되어 시원하게 구멍이 뚫려 버렸다.
 
 “됐다!”
 
 이현은 짧은 외침을 뒤로하고 그 나무 구멍 사이로 자신이 구한 삼각형의 돌을 최대한 단단히 고정될 때까지 땅에 두드리며 안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재빨리 나무껍질 줄로 삼각형 돌이 끼어진 부위를 앞뒤좌우상하로 번갈아 가며 튼튼히 감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돌도끼가 이현의 손에서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잠시 후, 이현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만든 돌도끼를 휘둘리고 있었다.
 
 “묵직한 게 마음에 들어.”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음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날은 더 갈아야겠지.”
 
 * * *
 
 며칠이 흘렸다.
 봄이 오는지 만물이 소생하듯 따뜻한 햇살이 온 대지를 비추고 있었다.
 온 대지를 덮었던 눈들이 어느새 소리 없이 녹아 사라졌다.
 하지만 완연한 봄 날씨는 아닌지 밤이 되면 온도가 급격히 내려갔다.
 
 오늘도 이현은 덫을 설치한 곳을 돌기 전에, 새로운 덫을 설치하기 위해 거주지인 동굴에서 좀 더 멀리 있는 숲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가죽을 적당한 크기와 길이로 잘라 만든 허리띠를 허리에 착용한 이현은 허리띠 안쪽에 자신이 만든 무기와 가죽 주머니가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먼저, 이현의 허리 양쪽에는 크기가 다른 돌도끼가 허리띠 바로 위로 묵직한 돌을 드러내며 든든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앞쪽 배 부분에는 날카롭게 날이 선 두 개의 뼈칼이 나란히 허리띠 안으로 꽂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뒤쪽 허리 부분에 몇 개의 가죽 주머니가 허리띠에 매달려 있었다.
 
 그렇게 완전 무장한 채로 이현은 자신의 키보다 두 배정도 되는 나무창을 들고 새로 진입한 숲을 조심스럽게 이동하고 있었다.
 마침 덫을 설치할 장소를 발견한 이현은 곧바로 고개를 들어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기척도 없고 낌새도 보이지 않자, 이현은 안심한 눈빛으로 올무 덫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말뚝을 박으며 이현이 한참 마무리 작업에 열중하고 있을 때 순간 뒤에서 낙엽 밟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부스럭!
 
 이현은 곧바로 덫을 설치하는 작업을 멈추고, 재빠른 동작으로 몸을 일으켜 바로 옆에 놔둔 나무창을 잡았다.
 그리고 곧바로 나무창 끝을 자신의 앞쪽으로 길게 뻗어 만약을 대비했다.
 
 방어태세를 그대로 유지한 채 이현은 조심스럽게 뒷걸음치며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현재까지는 자신의 두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더 신중한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그리고 자신이 피신할 수 있는 나무를 고르기 위해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그때 또다시 낙엽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스럭! 부스럭!
 
 좀 전보다 크게 들려와 이현은 순간 움찔거렸다.
 그리고 그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꾸엑!”
 
 나무 사이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그 거대한 동물이 머리를 뻣뻣이 들고 이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입 밖으로 길게 뻗은 날카로운 송곳니가 매우 위협적으로 보였다.
 
 “멧돼지!?”
 
 이현이 깜작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그때, 가만히 있던 멧돼지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이현이 매우 못마땅한지 연신 거친 콧김을 내뿜었다.
 
 “쿠엑! 쿠엑!”
 
 이현은 일단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도저히 그 멧돼지와 맞설 수 없다는 생각에 자신이 들고 있는 창을 역으로 잡고 힘껏 던진 동시에 곧바로 몸을 돌려 눈여겨본 나무를 향해 빠르게 뛰어갔다.
 
 “슉!”
 
 이현의 손에서 벗어난 창은 멧돼지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며 땅에 박혔다.
 그런 이현의 행동이 멧돼지를 더 흥분시켰다.
 거대한 몸을 가진 멧돼지가 그 위용을 과시하듯 뒷발을 한번 차더니 이현을 향해 빠르게 돌진하였다.
 
 이현은 뛰는 도중에 뒤로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무섭게 돌진하는 멧돼지를 힐끔 쳐다봤다.
 점차 자신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이현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양 허리에 차고 있던 돌도끼 하나를 꺼내 힘껏 던졌다.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돌도끼가 가볍게 멧돼지의 어깨에 박혔다가 그 즉시 땅 밑으로 떨어졌다.
 그런 결과에 상관없이 이현은 어떻게든 멧돼지의 속도를 줄이기 위해 이번에도 남아 있는 돌도끼를 힘껏 던졌다.
 
 푹!
 
 이번에는 꽤 깊게 박혔는지 돌도끼이 박힌 상태로 멧돼지가 뒤쫓아 오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번 이현은 드디어 자신이 피신할 나무에 도착했다.
 곧바로 나무 겉면을 더듬어 조금이라도 들어간 곳을 찾았다.
 그리고 그 들어간 부위를 중심으로 양손과 양발을 사용하여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무가 생각보다 꽤 커서 그런지 무척 힘들었다.
 
 때마침 자신에게 돌진해 오던 멧돼지가 나무 밑동을 강하게 부딪혔다.
 
 쿵!
 
 나무에서 전해지는 충격에 이현은 순간 휘청거렸다.
 하마터면 나무에 매달려있던 손을 놓칠 뻔할 정도로 강력한 충격이었다.
 이현은 피가 나올 정도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매달리려고 양손에 힘을 줘 버텼다.
 
 결국 그 고비를 어렵게 넘길 수 있었다.
 이현은 곧바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죽을 뻔 했네.”
 
 만약 조금이라도 늦게 나무에 올라탔다면······.
 이현은 상상도 하기 싫은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좀 던 안전한 위치로 이동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나무를 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옆으로 뻗은 나뭇가지를 이현이 손으로 잡는 순간, 또 한 번 멧돼지의 강렬한 돌진이 있었다.
 
 쿵!
 
 또다시 나무가 휘청거렸다.
 이번에는 나뭇가지에 단단히 매달려 있어서 그 충격을 버틸 수가 있었다.
 어느새 안전한 위치로 올라간 이현은 나뭇가지를 발로 밟으며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 봤다.
 여전히 분이 안 풀렸는지 멧돼지가 씩씩거리며 그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크네.”
 
 자신의 안전이 확보되었는지 이현은 좀 전보다 편안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때, 멧돼지의 뒤에서 뭔가가 튀어 올랐다.
 
 “크아악!”
 
 엄청난 포효와 함께 무시무시한 발톱을 드러내며, 그 뭔가가 거대한 멧돼지의 등 위로 순식간에 올라탔다.
 그 모습을 보던 이현은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쿠에에에에엑!”
 
 멧돼지도 자신이 위험에 처한 상황을 아는 지 구슬픈 울음소리를 길게 내뺐다.
 그런데 그때 또다시 똑같은 개체 두 마리가 숲에서 연달아 튀어나왔다.
 
 “긴송곳호랑이(호모테리움)!”
 
 그 육식동물을 알아본 이현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유난히 긴 송곳니가 아래턱 밑으로 길게 나와 있었고, 뒷다리보다 앞다리가 조금 더 길었는데, 특히 짧은 꼬리가 이현의 두 눈에 들어왔다.
 그때 새로 나타난 두 마리의 긴송곳호랑이가 각각의 위치를 점하며 멧돼지를 포위하듯 몰아가고 있었다.
 그 사이 이미 멧돼지 위로 올라 탄 긴송곳호랑이가 자신의 입을 크게 벌려 길게 뻗어있는 송곳니로 위에서 아래로 찍어 내렸다.
 
 푹!
 
 “꾸에에에엑!”
 
 처절한 멧돼지의 울음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멧돼지의 등 부위에 구멍이 뚫리면서 피가 철철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긴송곳호랑의 공격이 연달아서 멧돼지의 등을 찍어 내렸다.
 
 푹! 푹!
 
 “꾸에에에엑!”
 
 긴송곳호랑이의 공격에 멧돼지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 순간을 기다렸는지 멧돼지를 포위하고 있던 두 마리의 긴송곳호랑이가 재빠르게 몸을 날렸다.
 또다시 멧돼지의 양 몸통 부위에 연달아 구멍이 뚫리며 몸 곳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긴송곳호랑이와 멧돼지의 처절한 사투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 *
 
 “크르르르! 캬악!”
 
 서로가 많이 먹겠다고 멧돼지의 사체를 둘러싸고 긴송곳호랑이들이 거칠게 그르렁거리며 먹고 있었다.
 이현은 나무 위에서 처음부터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공포에 휩싸여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현이 잠자코 있는 상태로 어느새 시간이 흘러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크르르르!”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캄캄한 밤인데도 불구하고 긴송곳호랑이의 그르렁 소리가 이현의 귓가에 들려왔다.
 여전히 긴송곳호랑이는 그 자리를 뜨지 않고 죽은 멧돼지를 뜯어 먹고 있었다.
 그리고 간혹 가다가 맹수의 무서운 눈빛이 어두운 가운데서도 순간순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 눈빛에 흠칫하던 이현이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됐는지 조용히 혼잣말을 내뱉었다.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 하나?”
 
 봄이라서 그런지 밤이 되자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동안 같은 자세로 서 있으니 온몸이 뻐근했다.
 그래서 자세라도 편안하게 하려고 이현은 나뭇가지 위에서 살며시 쪼그려 앉았다.
 
 그런데 그때, 이현의 작은 기척에 식사하고 있던 긴송곳호랑이 하나가 매서운 눈빛으로 나무 위를 쳐다봤다.
 그리고 동시에 이현과 긴송곳호랑이가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이현은 닭살이 돋으면서 순식간에 온몸이 굳어 버려 도저히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시간이 멈춘 듯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런데 그때 그 정적을 깨고 긴송곳호랑이의 거친 포효가 들려왔다.
 
 “캬악!”
 
 마치 너 같은 놈은 우리에게 전혀 위협이 안 된다는 걸 경고하려는지 이현에게 강한 살기를 한 번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긴송곳호랑이가 무심하게 죽은 멧돼지로 머리를 다시 처박았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그르렁 소리가 들리며 이현의 심장을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이현은 지금도 긴송곳호랑이가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과 그 살기를 잊을 수 없었다.
 잠시 그 자리에 멈춘 듯 숨을 죽이고, 어서 그 긴송곳호랑이 무리가 식사를 마치고 떠나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제발 빨리 가라.’
 
 이현은 급격히 떨어지는 온도에 어느 순간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고 있는 가죽옷을 움켜쥐며, 추운 바람이 못 들어오도록 몸 안쪽으로 더욱 끌어 당겼다.
 이현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완전히 고립되었음을 느꼈다.
 아무래도 오늘은 여기서 밤을 꼴딱 새워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절대 여기서 자면 안 돼.’
 
 이현은 자신의 마음을 다독이며, 그때부터 뜬 눈으로 밤을 새기 시작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멧돼지고기를 배불리 포식했는지 긴송곳호랑이 무리가 이현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그 자리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휴!”
 
 혹시나 자신을 먹잇감을 생각하고 기다리며 어쩌나 잔뜩 걱정하고 있던 이현이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긴송곳호랑이 무리가 확실히 떠났는지 재자 확인을 한 뒤에 이현이 나무 위에서 일어났다.
 이현은 우선 좌우로 몸을 움직이며 굳어 버린 근육을 풀었다.
 하지만 곧바로 나무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날이 밝을 때까지 뜬눈으로 밤을 새기 시작했다.
 
 * * *
 
 “하! 하! 하!”
 
 동굴로 안전하게 돌아온 이현은 진이 다 빠졌는지 한순간에 몸이 허물어지면서 곧바로 펼쳐져 있는 가죽 위로 드러누웠다.
 설치한 덫도 확인하지 않고 날이 밝자마자 곧장 동굴로 미친듯이 뛰어왔다.
 아직도 숨이 차는지 이현은 거친 숨을 헐떡거렸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이현은 잠자코 드러누운 상태에서 좀 전에 있었던 상황을 떠올랐다.
 또다시 그때의 공포가 기억나며 몸이 살짝 떨렸다.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이현은 잠시 후,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살며시 주위를 둘러봤다.
 뭔가가 침입한 흔적은 없었다.
 하지만 모닥불이 꺼져 있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아쉽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이현은 어제 저녁부터 굶었기에 무척이나 배고픈 상태였다.
 곧바로 자리에 일어나 훈연 건조대에 걸려 있는 고기를 꺼내 그 자리에서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배가 부르자 이현은 잠을 자고 싶었다.
 어차피 오늘 하루는 물 건너갔다.
 이현은 날이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는데 불구하고 불을 피우는 것도 미루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 피곤했는지 코를 골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무슨 꿈을 꾸는지 몰라도 이현이 작은 목소리로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다.
 
 “강해져야 돼.”

댓글(3)

원제    
늑대새끼를 구하다보단 새끼늑대를 구하다가...
2019.01.22 23:44
방구석책사    
소재가 특이하네요
2020.02.17 07:51
it****    
소재도 좋고 스토리도 좋내요. 단지 스토리중 냄새처리와 보안쪽은 고 거의 다루지 않는군요서 사실 그거땜에 단체생활을 했을듯
2022.06.07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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