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천마님 부활하셨도다 [E]

천마님, 부활하셨도다 1-1

2018.01.23 조회 1,597 추천 13


 천마님 부활하셨도다 1권
 
 목차
 
 서문(序文)
 1장 천마님, 부활하다
 2장 도로 아미타불
 3장 천마님, 고민하다
 4장 네놈의 몸을 내놓아라
 5장 부교주, 눈치채다
 6장 다시 거행된 의식
 7장 천마님, 다시 부활하다
 8장 천마님, 내기하다
 9장 식사에 초대되다
 
 
 
 서문(序文)
 
 
 
 십만대산(十萬大山).
 천년의 유구한 세월을 자랑하는 마교가 자리하는 그들의 성스러운 영토다.
 수많은 세월 동안 정파 무림에서 각고의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찾을 수 없던 숨겨진 어둠의 본거지라 불리는 마교의 십만대산.
 어두운 방 안, 엄숙하고 경건한 의식이 행해지고 있었다.
 붉은 천에 검은색으로 천(天)이 새겨진 제단의 주위에는 길고 검은 두건을 쓴 열두 명의 제사장이 서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묵직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경을 읽는 것처럼 알 수 없는 주문을 외고 있었다.
 그리고 제단 위에는 두 명의 남녀가 나신인 채 경건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두 눈을 감고 있는 그들에게 열두 명의 제사장의 뒤에 서 있던 반백의 노인이 당부하듯이 말했다.
 “천양지체(天陽志體), 천음지체(天陰志體).”
 “네에.”
 “네.”
 누워 있는 남녀는 무림에서 찾아보기 힘든 극고의 신체를 가진 이들이었다.
 천양지체(天陽志體), 하늘에서 내린 양기를 가진 자.
 천음지체(天陰志體), 하늘에서 내린 음기를 가진 자.
 “소교주··· 그리고 소공녀여. 그대들의 희생으로 우리 천마신교는 다시 예전의 영광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경건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반백의 노인의 눈시울은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누워 있는 훤칠한 청년은 마교의 이십삼 대 소교주인 천여휘였다.
 마교의 소교주인 그가 제단에 누워서 희생을 한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때 눈을 감고 있던 천여휘가 천천히 눈을 뜨고 옆에 누워 있는 아름다운 소녀를 바라보았다.
 “나연아, 두려우냐.”
 소녀의 이름은 천나연. 소교주인 하나뿐인 여동생이자, 마교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소공녀였다. 눈을 감은 채 오라버니의 목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던 그녀가 앵두 같은 입술을 실룩이며 말했다.
 “아니어요, 오라버니.”
 “장하구나, 내 누이.”
 “······.”
 “우리의 희생으로 천마신교가 다시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 얼마나 거룩한 희생이겠느냐.”
 “오라버니, 저는 기쁘게 받아들이겠어요.”
 두 남매는 천마신교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희생을 자처했다.
 제단의 제물이 되어서 옛 영광을 되찾을 수 있다면 높은 신분 따윈 상관없었다.
 서로 굳은 결의를 확인한 오누이는 서로의 손을 꼭 붙잡았다.
 “곧 월식입니다. 두 분은 눈을 감으시게.”
 반백의 노인의 말에 오누이가 천천히 눈을 감고 다시 경건한 자세를 취했다.
 열두 제사장의 경을 외는 소리가 점차 커져만 가고 있었다.
 제단이 있는 이 방은 마교에서 유일하게 하늘이 열려 있는 곳이다.
 하늘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달을 삼키고 있었고, 서서히 달은 그 흔적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반백의 노인이 눈을 부릅뜨며 제단의 가운데로 걸어갔다. 그가 한 손에 들고 있는 그릇에는 새끼 양의 식지 않은 피가 들어 있었다.
 제단의 한가운데에 피가 담긴 그릇을 두고 왼손, 오른손 번갈아가며 피를 젓더니, 천천히 피 묻은 손을 제단 위에 누워 있는 오누이의 이마로 가져갔다.
 “위대한 천마신교의 창시자이시여. 십만대산의 천만 교인의 어버이시여. 다시 현세로 내려와 그대의 후손들을 굽어 살피소서!”
 반백의 노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밤하늘에 나와 있던 달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알 수 없는 전조가 시작되었다.
 맑기만 했던 밤하늘에 벼락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우르르 쾅쾅!
 이윽고 밤하늘에서 거대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반백의 노인의 얼굴이 고조되었다.
 그는 천천히 제단 뒤로 물러나 제사장들과 같이 경을 읊었다.
 강한 전조에 음산한 기운이 방 안을 감돌고 있었다. 이에 열두 제사장의 몸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하나 그들은 쉬지 않고 경을 외었다.
 경을 읊는 소리에 맞추듯 마른하늘의 벼락과 천둥소리가 어우러지고 있었다.
 콰르르 쾅쾅!
 그때.
 “푸웃!”
 한 제사장을 시작으로 열두 제사장이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제단의 주위가 오색 빛깔의 안개로 휩싸이며 그것은 회오리바람처럼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더니 다시 내려와 오누이를 감싸 안았다.
 “오오오!”
 반백의 노인이 경외에 찬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마른하늘의 벼락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요해졌고, 가려졌던 달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색 빛깔의 안개 역시 사라져 있었다.
 반백의 노인이 긴장된 눈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오누이를 바라보았다.
 그때 소교주인, 천여휘가 감고 있던 두 눈을 번쩍하고 떴다.
 “오오오! 부활하셨나이까! 천세! 천세! 천천세!”
 반백의 노인이 감격스러운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납작 엎드려 절을 했다.
 그는 의식이 성공했음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두 눈을 뜬 천여휘의 태도가 이상했다.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엎드려 절을 하고 있는 반백의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세를 외치며 절을 하던 반백의 노인 역시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소교주를 바라보았다.
 “설마······.”
 “오 장로, 의식은 실패한 것 같소.”
 “어찌···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분명 정해진 의식대로 거행하였는데.”
 흐르던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반백의 노인, 오 장로는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소교주를 바라보았다.
 천마를 부활시키기 위해 행한 의식이 실패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본래대로라고 한다면 열두 제사장과 천음지체의 희생으로 천양지체에 천마의 영혼이 깃들어야만 했다.
 으득!
 소교주 역시도 헛된 희생만 치르고 의식이 실패한 것에 너무도 화가 났는지, 입술을 깨물자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소중한 여동생과 자신이 희생을 해서 치른 의식이 헛된 죽음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소교주는 그의 옆에 하얀 얼굴로 조용하게 누워 있는 아름다운 동생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바로 그러던 찰나였다.
 벌떡!
 “헉!”
 놀란 천여휘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쿵, 하고 옆으로 넘어졌다.
 죽은 듯이 누워 있던 천나연이 갑자기 벌떡 일어난 것이었다.
 이에 오 장로 역시도 황당한 표정으로 나신의 천나연을 바라보았다.
 벌떡 일어난 천나연이 천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나··· 연아?”
 “······.”
 천나연은 오라버니인 천여휘의 물음에 두 눈만 멀뚱멀뚱할 뿐이었다.
 이에 천여휘는 이상함을 느꼈다.
 의식으로 희생되었어야 할 동생이 되살아났다.
 ‘설마? 나연이에게······.’
 말이 되지 않는 상상이었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그 기대감은 금방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오라··· 버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요?”
 “나연아!”
 깨어난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소중한 누이였다.
 순간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의식이 실패했다고 여겨지자 천여휘는 허탈하면서 분한 마음이 들었다.
 오 장로 역시도 그녀의 두 눈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소교주, 부활 의식이 성공했다는 증거가 없네. 아무래도··· 의식은 실패한 것······.”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단의 밑에서 누군가 힘겹게 일어났다.
 거추장스러운지 머리에 쓴 검은 두건을 거칠게 벗는 그는 의식으로 희생된 제사장들 중 하나였다.
 얼핏 보아도 백 세는 가볍게 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대제사장!”
 오 장로가 놀라서 그를 불렀다.
 그는 제사장들을 이끄는 대제사장이었다.
 세수가 백이십 세에 달하는 천마신교에서 가장 연로한 노인이었다.
 의식으로 인해 숨을 거뒀을 거라 여겼던 그가 깨어났으니 놀랄 만도 했다.
 “엇?”
 그때 오 장로의 두 눈이 커졌다.
 놀랍게도 대제사장의 두 동공이 핏빛을 연상시킬 정도로 붉게 물들어 있던 것이다.
 “오··· 오오오오!”
 절망했던 오 장로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자는 대제사장이 아니었다.
 “오오오, 처··· 천마님! 부··· 부활하셨나이까!”
 “뭐?”
 “이곳은 당신의 거처인 천마신교이옵니다.”
 “뭐?! 천마신교?”
 납작 엎드려 답하는 반백의 오 장로가 황당하다는 듯이 되묻는 대제사장을 놀란 눈으로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대제사장은 천천히 자신의 쭈글쭈글한 손을 들어 살펴보더니 주름진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한마디 내뱉었다.
 “아··· 씨발.”
 
 
 
 
 1장 천마님, 부활하다
 
 
 선계(仙界).
 도를 닦는 이들이라면 누구나가 선계로 가기를 꿈꾼다.
 선계는 인간이 도를 수양해서 오를 수 있는 낙원과도 같은 곳이다.
 이런 선계는 보통 도인들이 쉽게 올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깊은 수양을 한, 도력이 높은 도인들 역시도 선계의 드높은 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선계의 방턱이라 불리는 도(道)의 중턱.
 그 도의 중턱에서는 수많은 혼백의 도인들이 수양하면서 선인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고비만 넘기면 곧바로 선계로 진입할 수 있는데, 하는 잡념으로 인해 이 중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이가 많았다.
 그런 혼백들이 넘쳐나는 도의 중턱의 한 귀퉁이가 유독 조용했다.
 그곳은 도의 중턱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봉우리였는데, 사방에 넘쳐나는 혼백들이 유독 이곳에는 보이지 않았다.
 스스스스!
 오히려 이 봉우리의 맨 위편에서는 알게 모르게 어두운 사념과 차가운 기운마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선한 기를 가진 혼백들이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뻑뻑!
 한데 뭔가 깊게 빨아들이는 소리가 봉우리 위에서 흘러나왔다.
 “후우~”
 이번에는 뭔가를 내뱉는 소리가 났다.
 그와 동시에 긴 연기가 넘실거리며 봉우리 위를 자욱이 뒤덮었다.
 봉우리를 자욱이 뒤덮은 연기에는 넘실거리는 사념들로 가득했는데, 이것은 선인에 이르기 직전의 혼백들을 기겁하게 만들고 있었다.
 뻑뻑!
 이러한 연기가 쉴 새 없이 봉우리에서 흘러나오니, 이곳만 유독 조용한 것이 당연했다.
 한참을 들이쉬고 내뱉는 소리와 연기가 가득하던 봉우리에서 갑자기 천둥번개와 같은 거대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사실 고함이라기보다는 절규에 가까웠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씨발! 씨발! 씨발!”
 절규를 하며 욕을 내뱉는 소리가 나오자 수많은 혼백이 자기들만의 도호를 읊으며 봉우리에서 더 멀리 떨어져 갔다. 혼백들은 뭔가를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바로 그때.
 부우우우웅!
 찬란한 빛이 발하며 선계 방향에서 오색구름이 몰려들었다.
 빛을 발하는 오색구름의 출현에 혼백들이 경외에 찬 눈길로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그에 화답하듯 오색구름에서 빛이 반짝반짝 흘러나오더니 빠른 속도로 어딘가로 향했다.
 오색구름이 빛을 내며 도달한 곳은 다름 아닌 뿌연 사념의 연기로 가득 찬 봉우리였다.
 우우우웅!
 봉우리에 도착한 오색구름에서 빛이 사라지며 낯선 인영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노란 금테가 둘러진 예복을 입고, 길게 늘어뜨린 백수(白鬚)에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었다.
 백수(白鬚)가 지긋한 노인의 풍채는 경건함이 넘쳤고, 그의 주위로는 밝은 기운들로 넘쳐났다. 혼백들이 예의를 차린 이 노인의 정체는 바로 선계의 선인이었다.
 “자네의 절규성이 선계까지 다 들리네그려.”
 선계의 선인은 봉우리의 끝에서 연기를 뻑뻑 뿜어대는 한 인영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봉우리의 끝에는 굉장한 체구의 압도적인 기운을 가진 중년 남성의 혼백이 바닥에 누워서 곰방대의 담배를 뻑뻑거리며 피우고 있었다.
 “허허허, 들은 체도 안 하는가. 자네가 고함을 지르는 게 선계까지 쩌렁쩌렁 울렸단 말일세.”
 연이어서 말하는 선인의 존재를 마치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며 중년의 혼백은 연신 곰방대를 물고 담배만 태우고 있었다.
 “이리이리 사념이 가득해서야, 쯧쯧.”
 담배 연기에서 흘러나오는 사념을 선계의 선인인 노인이 모를 수야 없었다.
 선인이 손을 휘젓자 놀랍게도 봉우리를 가득 메웠던 사념의 연기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러자 도의 중턱을 두르고 있는 맑은 기운이 다시 봉우리를 가득 메웠다.
 가만히 누워서 담배 연기를 뿜어대던 중년의 혼백이 그제야 고개를 들어 입을 열었다.
 “다 늙은 노친네가 쓸데없는 짓은.”
 도의 중턱에 기거하는 모든 혼백이 예를 표하는 선인에게 건방지게 말하는 이 중년의 혼백은 대체 누구인가. 그것은 이어지는 선인의 말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천마, 자네의 말투는 언제 들어도 구수하기 짝이 없구먼.”
 노 선인은 구수하다는 말로 좋게 표현해 주고 있었지만 눈살을 찌푸리는 그의 표정만 보아도 상당히 기분 나쁨을 알 수 있었다.
 담배 연기를 뻑뻑 뿜어대는 중년의 혼백은 다름 아닌 천마(天魔)였다.
 십만대산에 천년 마교를 세운 장본인인 천마, 그 본인이 이곳 선계의 방턱이라 불리는 곳에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넘쳐나는 위압감과 살기, 그리고 마기를 주체하지 못해서 사념으로까지 만들어내는 천마가 대체 왜 이곳에 있는 것일까?
 “망할, 그 구수한 말을 계속 잡수시고 싶어서 이리 왔소?”
 마도(魔道)의 시초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거친 기운을 내뿜고 있는 천마는 그와 달리 상당히 걸걸하면서 시정잡배들이 내뱉을 말투를 하고 있었다.
 “쯧쯧, 이리 성정이 모나서야.”
 “내 모난 성정에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 잔소리는.”
 “허허.”
 다른 선인들이 보았다면 참으로 재미있는 광경이었을 것이다.
 선도를 닦는 다른 혼백들은 항시 선인을 경건하게 대하건만 유독 이 천마만은 항상 불만스럽다는 듯이 답하니, 이렇게 만나기만 하면 말싸움하기 일쑤였다.
 “자네가 이러하니 동기뻘인 검선(劍仙)을 못 쫓아가는 게야.”
 “아, 씨발!”
 검선이라는 말에 천마는 거친 욕을 내뱉었다.
 누군가와 비교를 하는 말에 상당히 기분이 나쁜 듯했다.
 무림인들이 검선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모두가 존경을 표했을 것이다. 그는 마교의 시초인 천마의 유일한 호적수라 불리는 자였기 때문이었다.
 “욕을 한다고 달라지나. 자네 동기뻘인 검선은 벌써 오백 년 전에 선계로 진입해서 벌써 세 번이나 승진했어.”
 강조하듯이 선인이 세 손가락을 내밀자 천마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지 혼백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검선은 천마에게 있어서 영원한 호적수와도 같았다.
 만인은 그 둘을 호적수라고 부르지만 천마 본인은 검선을 영원한 웬수 덩어리라고 부른다.
 무림에 있을 때도 사사건건 천마의 앞을 가로막았던 것도 검선이었고, 비슷한 시기에 먼저 우화등선한 것 역시도 검선이었다.
 “아오!! 그놈의 승진한 거 그만 강조하시오! 내가 무슨 백수도 아니고.”
 “백수지. 천 년 가까이 여기서 죽치고 앉아 있는 백수.”
 노 선인의 얼굴이 한없이 밝아져 있었다.
 항상 기가 꺾일 줄 모르던 천마였지만 검선 이야기만 나오면 곧바로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일종의 열등감과도 같은 반응은 노 선인을 항상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무도(武道)로 선인이 되는 것이 그리 쉬운 줄 아시오.”
 그런 노 선인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지 천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넋두리하듯이 말했다.
 “당연히 어렵지. 그 어려운 길을 택한 건 자네고 말일세.”
 도를 지향하는 길 중에서 가장 어려운 길이 무도(武道)였다.
 이곳 도의 중턱에 있는 대다수의 혼백들은 말 그대로 ‘도(道)’ 그 자체를 지향하고, 수양해 왔기에 순수한 영혼에 가깝다.
 반면 무도의 경우는 무(武)를 닦아서 그것을 기반으로 도에 이르려고 하기 때문에 선인으로 가는 길이 험난하다. 더군다나 천마와 같은 경우는 보다시피 사념이 가득했기에 더욱더 힘들었다.
 “아직 혼백임에도 담배를 태우는 자네는 여전히 세속을 벗어나지 못했어. 그러니 동기인 검선조차 힘들게 오백 년이나 수양한 길을 자넨 여전히 못 닦고 있는 게야.”
 “젠장, 담배 끊는 게 쉬운 일인 줄 아시오?”
 천마는 상상 그 이상의 골초였다.
 혼백이 되어서 도의 중턱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천 년 동안 여전히 담배를 태웠고 그것을 끊을 생각조차 못 하고 있다.
 “거, 모르시오? 담배 끊는 놈은 상종도 하지 말라는 거.”
 “나랑 말장난하는 겐가? 선인이 되고 싶다는 자가 그 정도 인내심도 없어서야, 쯧쯧.”
 노 선인에게 한번 약점이 잡힌 후로 도저히 말로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뭐라고 반박할 여지가 없었기에 천마는 입을 꾹 다물고 연신 담배만 뻑뻑 피워댔다.
 “허허허.”
 그런 천마를 보던 노 선인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사실 내색은 안 했지만 노 선인이 바라본 천마는 상당히 순수한 혼백이었다.
 사념이 많고 살기가 넘친다고 해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순수함을 가졌기에 무도를 닦아서 이곳 도의 중턱에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었다.
 ‘확실히 도(道)에 있어 초탈하긴 했구나. 행동함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
 도를 수양하는 선인이라면 모두가 고리타분하고 법도를 지킬 것 같지만 일정한 경지에 이르러 초탈하게 되면 행동에 있어 거침없게 된다.
 물론 천마는 그 선상을 넘어서 너무 거침이 없는 것이 문제였지만 말이다.
 ‘순수한 마도(魔道)와 순수한 선도(善道)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지.’
 순수한 아이에게 선악의 개념이 없듯, 천마는 정해진 굴레를 초탈했다.
 선계로 갈 수 있는 자격은 충분했다.
 단지 여전히 세속적인 습관을 벗어나지 못해서 천 년 동안 선계로 진입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허허, 때가 되긴 했구나.’
 속이 상해서 담배를 연신 물고 있는 천마를 보며 노 선인이 능청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휴, 이래서야 선인으로서 제대로 일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먼.”
 “응? 그게 무슨 소리요?”
 갑자기 선인으로서 일을 할 수 있냐는 말에 천마가 피우던 담배를 멈추고 멍한 얼굴로 노 선인을 바라보았다.
 “자네의 그 지긋지긋한 백수 생활이 끝났단 말일세.”
 “그··· 그럼?”
 “이번에 보았던 선인 시험에 간신히 턱걸이를 했네. 천존(天尊)께서 자네가 천 년 동안이나 수양 쌓은 덕을 높게 평가했어. 에휴, 아직 천 년은 더 수양해야 한다고 말씀드렸건만.”
 “그··· 그렇다는 건, 내가 합격했단 말이오?”
 “뭐, 그런 거지.”
 능청스럽게 말하고 있는 노 선인이었지만 그 만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를 듣고 있는 천마의 얼굴이 아까의 구겨진 얼굴과는 전혀 상반되게 밝아졌다. 어울리지 않을 만큼 해맑은 미소를 짓는 천마에게 노 선인이 못 이기는 척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화려한 광채를 내뿜고 있는 금색 인장이었다.
 “오오오오!”
 천 년 동안 수많은 혼백이 이 인장을 찍고 선계의 문을 통과하는 것을 보아왔던 천마의 목소리가 한껏 고조되었다.
 “이 직인만 찍으면 자네도 이제부터 진정한 선인일세. 알겠나?”
 “아··· 알겠으니 빨리 찍으시오.”
 천 년이나 기다려 왔던 선계로 가는 길에 가까워지자 천마는 안달복달하며 노 선인을 보챘다. 이에 노 선인이 그걸 즐기듯이 천천히 직인의 뚜껑을 열고 입김을 하하 불면서 시간을 끌었다.
 “아, 이 노친네가 답답하게 이럴 거요!”
 “거참, 천 년을 기다린 걸 새삼 이 짧은 순간을 못 참아서야. 자, 찍네, 찍어!”
 노 선인은 천마의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을 더 즐기고 싶었지만 더 이상 장난을 쳤다가는 무슨 사달이 날 것 같았다. 그의 앞에 있는 남자는 무도로서 극의를 이룬 자였으니 말이다.
 노 선인이 직인을 찍기 위해 천마의 이마에 그것을 갖다 대려던 찰나였다.
 픽!
 휘익!
 “어이쿠!”
 픽, 하는 소리와 함께 온데간데없이 천마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덕분에 직인을 찍으려던 노 선인이 허공에 직인을 내밀다 앞으로 넘어질 뻔했다.
 갑자기 사라져 버린 천마의 혼백에 놀란 노 선인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주위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허허, 참으로 기이한 운명이로세.”
 한순간에 천 년을 기다려 온 천마의 바람이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이에 노 선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천 년 동안 도의 중턱에서 수양 아닌 수양을 쌓으며 진정한 선인이 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왔던 천마는 감격스러웠다. 무를 지향해서 선인이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시작이었기 때문이었다.
 노 선인이 직인을 찍기 위해 이마로 그것을 가져다 댈 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이 순간을 음미하기 위해 두 눈을 살짝 감았다.
 휘리리리리릭!
 놀라운 일이었다.
 그가 천 년 전, 우화등선했을 때의 감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천마는 자신의 혼백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끌려가는 강렬한 쾌감을 느꼈다.
 알 수 없는 쾌감이야말로 선인이 되기 위한 감각이겠거니와 그것에 몸을 맡겼다.
 [···시여. 시조시여.]
 그때 그의 귓가로, 아니, 혼백 전체로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시조시여, 시조이시여. 부디··· 부디 당신의 천마신교에 옛 영광을 찾아주시옵소서!]
 ‘응?’
 이상했다.
 그의 영혼 전체를 울릴 만큼 간절한 바람과도 같은 속삭임이었다.
 선인이 되기 위해 세속을 벗어나는 마당에 갑자기 속삭임이 들려오니 천마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거 정말 선인이 되는 거 맞아?’
 그의 혼백은 표류하는 배가 격랑을 맞이한 것처럼 회오리를 치며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아무리 패기가 넘치는 천마의 혼백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상태에서 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어어어어어!’
 그의 혼백에 밀려오는 강렬한 충격과 함께 천마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한참을 정신을 잃고 있던 천마는 호접지몽과 같은 감각을 맛보았다. 마치 모든 것이 꿈인 듯 아니면 자신의 꿈이 현실인 듯 알 수 없는 상태에 접어들자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엇!’
 벌떡!
 정신을 차린 천마는 자신이 누워 있음을 깨닫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직 멍한 상태인 그는 거추장스러움을 느꼈다.
 머리에 뭔가를 쓰고 있었는데 짜증이 난 나머지 거칠게 벗어버렸다.
 이상했다.
 천 년 동안 혼백이었던 천마가 느낀 이 감각은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느낌이었다. 자신에게 육신이 있었을 때 맛보았던 감각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천마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떠보았다.
 과연 자신이 눈을 떴을 때 기대했던 그 이상향, 오색 빛깔의 선계는 어떤 세계일 것인가.
 “······!”
 눈을 뜬 천마는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그의 눈앞에 들어온 광경은 자신이 천 년 동안 상상해 왔던 그런 선계가 아니었다.
 오색 빛깔에 운무가 가득한 아름다운 도원이 펼쳐져야 할 선계가 아니라 어두침침한 방에 의식을 행할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아릿하게 흘러나오는 이 향은 자신의 코의 감각이 틀림없다면 분명 혈향(血香)이었다. 그런 그의 귀에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제사장!”
 천마는 순간 멍해졌다.
 분명 자신을 부르는 소리인 듯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훤칠해 보이는 청년과 여인이 자신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둘 다 나신으로 있다는 점이었다.
 ‘뭐야? 이 미친것들은······.’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천마였다.
 그의 입장에서는 정말 황당한 일이었다.
 순간 선계의 도인들은 전부 알몸으로 다니는 건가 착각할 뻔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에 보이는 나신의 청년과 여인은 선인이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익숙한 마기(魔氣)가 청년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
 그리고 문득 천마는 이상한 것을 하나 더 느꼈다.
 뭔가 모르게 몸이 무거우면서 힘이 정체되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이상하다고 느끼던 찰나에 웬 정체 모를 반백의 노인이 그의 앞으로 기어오듯이 다가와 얼굴이 시뻘개져서 절을 해댔다.
 ‘···이건 또 뭐야?’
 “오오오, 처··· 천마 조사(祖師)님! 부··· 부활하셨나이까!”
 제단의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붉게 상기된 얼굴로 감격스럽게 말하는데, 천마는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반문했다.
 “뭐?”
 선계로 진입했어야 할 자신에게 뜬금없이 부활 운운하는 말을 하니 여간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니 분명 이곳은 선계가 아니었다. 틀림없는 이승이었다.
 뭔가 놀란 듯이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있는 천마를 바라보며 반백의 노인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곳은 당신의 거처인 천마신교이옵니다.”
 “뭐?! 천마신교?”
 천 년 만에 들어보는 그리운 이름이었다.
 그리고 천 년간 선계를 그려왔던 그가 지금 들어서는 안 될 그 이름이기도 했다.
 납작 엎드려 답하는 반백의 노인은 황당하다는 듯이 되묻는 천마의 말투에 놀라 긴장된 얼굴로 그를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천마가 자신의 손을 천천히 들어보았다.
 손마디를 비롯해 손등까지 쭈글쭈글한 손은 젊은이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노구의 몸이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아··· 씨발.”
 천마의 입에서 분노에 찬 거친 욕이 튀어나왔다.
 이에 반백의 노인과 나신의 청년이 황당하다는 듯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막 이승으로 소환된 천마는 몰랐지만 그 둘의 정체는 다름 아닌 마교의 다섯 번째 서열의 장로인 오 장로 능파금과 소교주인 천여휘였다.
 소교주 천여휘는 자신의 몸에 천마 조사의 혼백이 깃들어 부활할 거라 생각했지만 멀쩡히 본인인 채로 깨어나자 의식이 실패했다고 여겼다.
 그렇게 분해하던 찰나에 죽은 줄 알았던 대제사장이 살아났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동공에서 발하는 붉은 안광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홍안은 의식에서 말한 대로 혼백이 다시 살아났다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천여휘는 ‘성공이다!’라고 생각했다.
 의식을 치르기 전에 골골대던 대제사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분명 자신들의 시조, 천마가 몸에 깃든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실패한 의식이 성공했다고 기뻐했는데, 갑자기 그가 욕을 내뱉으니 황당하기만 했다.
 [···오 장로, 이게 무슨 일이오.]
 [그, 그게 소교주, 나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소.]
 소교주의 전음에 오 장로 역시도 당황스러워하며 답했다.
 혹시나 의식이 실패해서 알 수 없는 잡귀의 혼백을 대제사장의 몸에 끌어들인 것이 아닌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부들부들!
 한데 갑자기 대제사장인 늙은 노구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얼굴이 붉게 상기되는 것이 분노에 찬 것 같았다.
 천여휘는 뭔가 분노에 찬 듯이 온몸을 부들부들 떠는 대제사장을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틀림없이 구천(九泉)을 떠도는 악귀가 그의 몸에 깃든 것이라고 말이다.
 [오 장로! 실패요. 천마 조사가 아니오. 저건 틀림없는 악귀요!]
 [소··· 소교주, 나도 지금 그렇게 생각하였소.]
 오 장로 역시도 공감했는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전음을 보냈다.
 저 모습은 그들이 기대했던 위대한 천마 조사가 보일 수 있는 그런 반응이 아니었다.
 천마라면 위엄이 넘치는 기세로 의식으로 부활시킨 자신들의 공을 치하해 줄 것이라 여겼는데, 되레 욕을 내뱉으며 분노하는 것이 분명 악귀였다.
 바로 그때였다.
 형용하기 힘든 음산한 기운이 사방으로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인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거대한 마기(魔氣)였다.
 “허억!”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마기가!”
 전신이 떨릴 정도로 사방을 뒤흔드는 마기는 이윽고 흑색 빛깔의 운무(雲霧)로 변했다.
 천마의 몸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유형화된 것이었다.
 천마가 그들을 향해 손을 뻗자 유형화된 마기의 운무가 회오리를 치며 그들을 얽매기 시작했다.
 휘리릭!
 “억!”
 마기 둘러싸인 천여휘와 오 장로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오, 오라버니! 오 장로!”
 놀란 천나연이 소리쳤다.
 그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허공에 넘실거리던 그들의 몸은 순식간에 제단 밑에 서 있는 대제사장의 앞으로 끌려왔다.
 무림인들이 보았다면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그런 광경이었다.
 콱!
 “컥컥!”
 “케엑!”
 천여휘와 오 장로가 숨이 막힌 듯, 짧은 호흡으로 괴로운 신음성을 냈다.
 놀랍게도 대제사장의 연로한 손이 그들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기로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마교의 마공을 익혔기에 그들 역시도 마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정파의 정종 내공이 맑은 기운을 내포하듯, 마기 역시 내공에 마(魔)의 기운을 담은 것이라고만 여겼었다.
 그런 마기가 유형화되어서 몸을 포박했으니 놀라울 만도 했다.
 “이익!”
 “우, 움직일 수가 없소!”
 당황한 그들은 내공을 끌어 올려 반항해 보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단전에서 솟구쳐야 할 그것이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그들의 마기로 가득한 내공이 마치 두려움에 찬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이··· 이건 대제사장의 힘이 아니야. 설마······.’
 천여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마교, 아니, 십만대산에 거주하는 사람의 대다수는 무공을 익혔다.
 제사장들 역시도 마교의 교리대로 기본공을 익히기는 했으나, 대다수가 본연의 임무로 인해 무공의 성취가 그리 높지 않다.
 더군다나 대제사장같이 연로한 노인이 이런 신위가 가능할 리가 없었다.
 무공의 경지를 넘어서, 숨을 쉬듯이 마기를 다룰 수 있는 자는 오직 ‘그분’뿐이었다.
 “켁켁.”
 괴로워하는 그들을 바라보던 대제사장이 상기된 얼굴로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야, 이 미친놈들아, 전음으로 떠들면 안 들릴 줄 알았냐?”
 “헉!!”
 놀란 오 장로는 눈을 크게 부릅떴다.
 아무리 들어도 적응되지 않는 말투였지만 그보다도 다른 것이 그들을 놀랍게 만들었다.
 전음을 엿듣는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뭐? 악귀? 이 미친놈들이 건방지게 지들 조사한테 그딴 소리를 해?”
 안타깝게도 그는 정확하게 그들의 전음을 들었다.
 하지만 그 말과 동시에 천여휘의 동공이 커지며 심하게 흔들렸다.
 목을 세게 움켜쥐고 있는 통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고통스러웠지만 분명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지들 조사?’
 흔들리는 동공, 그리고 고통을 넘어선 희열에 천여휘의 눈가가 촉촉해지며 기쁨에 젖었다.
 ‘아버님! 조부님! 의식이 성공했습니다!’
 
 
 
 2장 도로 아미타불
 
 
 
 “네놈들이! 지금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는 알고 있는 게냐?”
 천마의 목소리는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그의 홍안을 바라보는 천여휘와 오 장로는 마치 섬뜩한 피의 수라에 빠지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압도당할 만큼 강렬한 패기와 마기가 그들을 감싸고 있었고, 육신에 천마가 깃든 대제사장의 앙상하고 늙은 손이 악마의 마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내가 이 순간만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데.”
 너무도 억울했다.
 그렇게 기다려 왔던 선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아주 잠시 뒤면 아름답게 펼쳐져야 할 도원향의 선계가, 그들이 벌인 금지된 의식으로 인해 한순간에 물 건너가고 말았다.
 콱!
 “켁켁!”
 천마의 앙상한 손에 힘이 더 들어가자 그들은 고통을 넘어서 죽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공이고 뭐고 아등바등하더라도 이 손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정말 죽을지도 몰랐다.
 [제발··· 제발······.]
 “······!”
 그때 천마의 머릿속으로 알 수 없는 사념이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정체 모를 목소리에, 분노에 차서 그들의 목을 비틀어 죽일 기세였던 천마의 힘이 천천히 누그러들었다.
 “엇.”
 털썩!
 그러고는 완전히 손에 힘이 빠지자 천여휘와 오 장로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들의 목에는 빨간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콜록콜록.”
 죽기 일보 직전까지 세게 움켜잡았다가 놓았으니, 기침이 날 만도 했다.
 어째서 천마가 이렇게 분노를 하는지 영문을 모르는 그들로서는 당혹스러웠지만 차마 이유를 물어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들의 눈앞에 서 있는 늙고 앙상한 노인은 마교를 세운 시초이자 무림사(武林史)에 다시없을 최강자인 천마였다.
 [제발··· 제발······.]
 “뭐야, 이 강렬한 사념은?”
 천마의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들리는 강렬한 사념이 가슴 깊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혼백으로 천 년 동안 도를 닦아오던 천마였기에 보통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강한 사념을 심신으로 체감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만! 그만!”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사념은 천마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결국 사념의 소리를 차단하기로 마음먹은 천마는 열어두었던 영신(靈身)의 소리를 닫았다.
 그러자 그를 괴롭히던 강렬한 사념의 울림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
 “후우, 이제야 살 것 같네.”
 아무리 천마라고 하더라도 사념이 울려 퍼지는 것은 고문과도 같은 일이었다.
 천마는 본능적으로 이 사념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자신의 육신의 원주인의 강렬한 바람이었다.
 천마가 고개를 숙여 바닥에 넘어진 채 자신들의 목을 매만지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야!”
 “네? 넵!”
 천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신을 부르자 오 장로가 놀라서 벌떡 일어나 답했다.
 방금 전까지 목을 부러뜨려 죽일 기세였기에 조금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생각보다 천마 조사는 감정적일지도 모른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 말라서 비틀어진 늙은 노구는 무엇이냐?”
 “조, 조사이시여. 그 육신은 의식을 주관하던 제사장들 중 하나의 것입니다.”
 “뭣?”
 천마가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오 장로를 노려보았다.
 어떤 식으로 부활 의식을 치렀기에 자신이 죽어가기 직전의 노인네의 몸에 들어왔단 말인가.
 “아까부터 조사, 조사, 하는데 네놈은 뭐냐?”
 천마의 물음에 오 장로가 옳다 싶어 답했다.
 “위, 위대하신 천마 조사이시여. 저는 대천마신교의 다섯 번째 장로입니다.”
 “오 장로?”
 오 장로라는 말에 천마의 눈에서 이채가 띠었다.
 대대로 마교에서 제사 의식을 담당하는 위치에 있는 자였다.
 “그, 그렇습니다.”
 그때 천마의 앞으로 천나연이 다가와 무릎을 꿇고 조아렸다.
 “응?”
 “조사 어른, 소녀는 어른의 이십삼 대 손인 천나연이라고 하옵니다.”
 이십삼 대 손이라는 말에 또다시 천마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천마가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크흠, 옷을 입어라.”
 천나연의 아름다운 나신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호강을 하게 해주었지만 자신의 후손이 나신으로 있는 것을 보자니 껄끄러워지는 천마였다.
 “아앗.”
 천마가 부활한 것에 정신이 팔렸던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알몸인 것을 알아챘다.
 부끄러워진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재빨리 단상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런 그녀에게 오 장로가 허둥지둥 의복을 가져다주었다.
 “흠.”
 천마가 눈을 감고 스스로의 몸을 탐색해 보았다.
 육신을 가지게 된 것이 천 년만인지라 익숙하지 않았다.
 ‘터무니없군······.’
 단전의 내공이라고는 삼사십 년 정도가 전부였다.
 육신이야 다 늙은 노구라 어쩔 수 없다지만 내공은 얼핏 기대했었는데 터무니없을 정도로 적었다.
 ‘제사장이라고 하더니 엉망이군.’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런 천마의 앞으로 의복을 입은 천나연이 다시 무릎을 꿇었다.
 ‘흠.’
 의복을 입은 천나연의 모습을 보니, 가히 월하가인이자 절색이라 할 만했다.
 천마가 그녀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일렀다.
 “가까이 와보거라.”
 “넷? 넷!”
 천나연이 다가오자 천마가 그녀의 팔목을 낚아채듯이 들어 올렸다.
 그녀의 맥으로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마기가 스며들었다.
 ‘아아, 조사님께서 내 내공을 살펴보려 하시는구나.’
 이에 그녀는 몸에 힘을 빼고 천마의 마기를 받아들였다.
 어렸을 적부터 부단히 명문 마공을 익혀온 천나연의 마기는 여느 마인들 이상으로 강했다. 그렇기에 천마의 혼백의 마기와 잘 호응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가진 내공이 미천하군.’
 천마는 그녀의 하단전에서 느껴지는 내공이 뭔가 성에 차지 않았다.
 사실 천나연이 보유하고 있는 내공은 거의 반 갑자에 이르는 수준으로, 그 나이 또래의 여성들에 비해서는 월등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마가 우화등선하기 전까지 가지고 있던 내공의 수위가 오 갑자에 육박할 정도였으니, 적다고 느껴질 만도 했다.
 ‘내 혈손이라고는 하지만 게을렀구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내공의 한계를 넘은 그로서는 반 갑자의 내공은 성에 차지 않았다.
 내심 후손이라는 말에 기대했는데, 여자임을 떠나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혈도나 세맥은 어느 정도 타통되어 있는 듯한데.’
 한참을 마기를 흘려보내 내공을 살펴보던 천마가 눈살을 찌푸렸다.
 ‘천음지체?’
 내공을 탐색하면서 알게 되었다.
 천나연의 육신은 다름 아닌 천음지체였다. 하늘이 내린다는 절대적인 음기를 가진 신체였던 것이었다.
 ‘천음지체의 몸으로 현천신공을 익혔으니 성취가 더딜 만도 하군.’
 천마의 독문 내공심법인 현천신공은 양의 성질을 타고 났기에 천음지체와는 오히려 상극에 가까웠다.
 천음지체는 음기의 무공을 익힌다면 뛰어난 성취를 가질 수 있는 육신이었다. 그리고 혈교의 술법을 이용한다면 최강의 강시를 만들 수 있는 육신이기도 했다.
 “재미있군. 천음지체라······.”
 천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녀의 육신이 천음지체라는 것을 알고 나니, 분명 자신의 후손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가 살아생전에 천음지체였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와 반대인 천양지체로 뜨거운 양기의 무공을 익히기 적합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설하.”
 천마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천여휘가 뭔가를 아는지 눈에 이채가 띠었다.
 후손으로서 천마신교의 가계도에서 항상 봐왔던 그 이름이었다.
 천마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이었으며, 그의 단 하나뿐인 아내였다.
 “그녀도 천음지체였지.”
 눈을 감고 추억을 되새기는 천마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처럼 그녀가 아른거렸다.
 혼백이 되어 도를 수양하느라 세속을 거의 잊었던 그에게 육신을 얻으면서 세속적인 감정의 불씨가 다시 살아난 것이었다.
 감았던 눈을 다시 뜬 천마의 얼굴은 전보다 한결 편안해 보였다.
 “되었다.”
 “아아, 네엣.”
 천마가 천나연의 맥을 짚고 있던 손을 뗐다.
 천나연의 볼이 붉게 상기되었다.
 단지 그녀의 혈도를 통해 헤아릴 수 없는 마기가 훑고 지나갔을 뿐인데, 묘하게 마기가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천마가 천여휘를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쯧쯧, 나를 이딴 다 죽어가는 노구에 부활시키다니 터무니없는 짓을 하였구나. 천양지체가 없었나?”
 “그··· 그게······.”
 자신을 부활시키려는 의식을 거행했다면 분명 천양지체의 신체를 가진 후손이 희생했을 터인데, 무공도 어설픈 쭈글쭈글한 노구에 부활시켰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긴, 천양지체가 쉽게 나올 육신은 아니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한다는, 하늘이 내린다는 신체가 그리 쉽게 나올 리가 없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천마가 무도로 등선하기까지 고손을 보았었는데, 그 긴 세월 동안 많은 자손이 태어났지만 천양지체는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 이해한다는 듯이 손짓하는 천마를 바라보며, 오 장로가 어찌 말해야 할지 망설이다 결국 입을 열었다.
 “···조사시여, 그게 아니옵고.”
 “잠깐 멈추시오!”
 그때 천여휘가 앞으로 나와 오 장로의 말을 끊으며, 한쪽 무릎을 꿇고 천마에게 포권을 취했다. 단지 알몸으로 자세를 취한 것이 보는 그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뭐냐?”
 “조사 어른, 저는 대천마신교의 이십삼 대 소교주인 천여휘라고 하옵니다.”
 여휘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던 천마의 눈썹이 치켜세워졌다.
 눈앞에 있는 훤칠한 청년이 당당하게 자신의 후손이라고 말을 하니, 또다시 묘한 감정에 휩싸였기 때문이었다. 단지 알몸인 것이 거슬렸지만 말이다.
 “호오, 네가 소교주라고?”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하는 천마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부드러워진 목소리에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한결 누그러짐을 느낀 천여휘가 당당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조사 어른, 제가 바로 천양지체이옵니다!”
 “뭐?”
 “제··· 제가 천양지체이옵니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누그러졌던 천마의 얼굴이 황당하다는 듯이 구겨졌다. 천마는 손가락으로 여휘를 가리키며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뭐야! 멀쩡한 천양지체가 있는데. 왜 이딴 늙은 몸에다 부활시킨 거야!”
 당당했던 천여휘의 얼굴이 창백해지기까지는 불과 한순간이었다.
 
 ***
 
 당금 무림에서 기억하는 천마는 어떠한 인물일까?
 천마를 상징하는 단어와 칭호들은 헤아리기 힘들 만큼 많다.
 마(魔)의 종주.
 십만대산의 피의 시조.
 최초로 무림의 패업을 이룬 자.
 그런 수두룩한 칭호들은 그의 패도적인 성향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혼백으로 도의 중턱에서 수양을 할 때도, 그런 패도적이고 호전적인 성향으로 선도의 혼백들이 혼비백산하여 그의 곁으로 다가오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 꼴이 뭐냐? 다 죽어가는 노친네의 몸에 집어넣다니!”
 우화등선을 하기까지도 중년의 모습을 유지했던 천마다.
 그런 그가 한순간에 피골이 앙상하고 쭈글쭈글한 노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천마가 거듭 화를 내자 당황한 천여휘는 창백해진 얼굴이 되어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했다. 사실 궁금한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내 혈손이고 뭐고, 곱게 죽고 싶다면 납득할 만한 변명을 해야 할 거야!”
 ‘아아, 정말 미치겠구나.’
 그를 노려보는 천마의 기세가 정말로 살기등등했다.
 천양지체인 그의 몸으로 깃들어야 했던 천마의 혼백이, 뜬금없이 늙은 제사장의 몸에 깃들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천마신교에 천 년 동안 보관했던 고문서에 의거해 정확하게 의식을 진행했다. 그 어떠한 것도 잘못될 소지가 없었다.
 “그, 그것은 소손도 잘 모르겠사옵니다. 분명 의식은 제대로 행하였는데······.”
 “의식을 제대로 행했는데, 내가 왜 이 꼴이지?”
 “엇? 조··· 조사님!”
 바로 그때.
 천마의 눈치를 보느라 진땀을 빼던 천여휘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눈을 커다랗게 뜨고 검지로 그의 오른손을 가리켰다.
 이에 천마는 꼴도 보기 싫은 주름진 오른손을 들어 보았다.
 부활하고 여태껏 너무 자연스러워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의 오른손 약지에는 하얀 구슬이 박힌 흑색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고작 이 반지 때문이라고 하진 않겠지?”
 반지는 지극히 평범한 장신구에 불과했다.
 특별히 영혼을 불러오는 의식에 쓰일 수 있는 도구로 보이진 않았다.
 “그것은 평범한 반지가 아니옵니다!”
 “평범한 반지가 아니면 뭐지?”
 “그, 그것은.”
 “그것은?”
 “···조사 어른의 사리가 박혀 있는 반지이옵니다.”
 잠시 망설였던 천여위가 사실을 밝혔다.
 천마의 오른손 약지에 껴져 있는 반지는 다름 아닌 그의 사리로 만든 반지였던 것이었다.
 불에서 태어나 불로 사라진다는 마교의 교리에 따라 천마가 무도로 깨달음을 얻어 등선하자 천마의 시신을 화장(火葬)을 했었는데, 놀랍게도 그 속에서 수많은 사리가 나왔었다. 사리의 대부분은 마교의 사원 납골당에 모셔두었지만 그중 세 개만을 남겨 만들었던 것이 바로 마교의 삼대 신물이었다.
 천마신검(天魔神劍).
 천마인장(天魔印章).
 천마반지(天魔斑指).
 세 개의 신물은 천 년의 세월 동안 전지자손하여 그 혈손들이 보관해 왔다.
 그중 유일하게 혈손이 아닌 자가 반지를 보관하고 있었는데, 그가 역대 대제사장들이었다. 천마반지는 교단의 의식을 담당하는 대제사장들이 등선한 마교의 조사인 천마의 힘을 빌리기 위해 착용하고 있었다.
 “제 생각에는··· 조사 어른의 사리가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리라고? 하아.”
 그제야 천마는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는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상적으로 의식을 행했다면 천양지체인 천여휘의 몸으로 혼백이 깃들었겠지만 일종의 분신과도 같은 천마의 사리가 있었기에 그것이 강렬한 매개체가 되어서 그의 혼백을 이끌었던 것이었다.
 “실로 어이가 없구나.”
 자신의 몸에서 나왔던 사리가 혼백을 끌어당기는 역할을 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천마였다. 그런 그에게 죄송하다는 듯이 천여휘가 다시 포권을 하며 고개 숙여 사죄했다.
 “조사님, 정말 송구하옵니다! 모두가 소손의 불찰입니다!”
 “크큭, 정말 어이가 없구나. 결국 진인사대천명이라는 건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사람이 계획하고 뭔가를 그리지만 결국 모든 순리는 하늘에 의해서 결정되어진다는 말이었다. 천 년을 수양하면서도 와 닿지 않던 그 말이 새삼 와 닿는 천마였다.
 오직 천마의 부활만을 꿈꾸던 혈손들이 이런 상황을 예측이나 했겠는가.
 그런 생각에 들자 천마는 약간은 누그러진 얼굴로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진심으로 사죄하고 있는 천여휘를 내려다보았다.
 “흥!”
 그가 탐탁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그의 혈손이었다.
 스르르륵!
 천마가 손을 내밀어 당기자 놀랍게도 천여휘의 굽혔던 허리가 부드럽게 일으켜 세워졌다.
 그것은 단순한 내공에 의한 것이 아니라 천마의 거인 같은 마기에 감응해서였다.
 ‘아아아!’
 천여휘 역시도 마공을 익힌 마인이었다.
 자신의 몸 안의 마기를 감응했던 천마의 강렬한 마기의 힘에 도취될 것만 같았다.
 그는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마기를 운용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쯧쯧! 네놈의 멍청한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구나.”
 그런 천여휘의 생각이라도 읽은 듯 천마가 혀를 찼다.
 하지만 자고로 무인이라는 자가 이런 호기심이 없다면 발전 또한 없을 것이다.
 혈손이라는 자가 천마 본인의 탁월한 마기 운용법에 대해 아무런 의문조차 표하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도 실망스러운 부분이었을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나발이고, 네놈은 언제까지 발가벗고 있을 게냐?”
 천마의 검미가 치켜 올라가며 인상이 구겨졌다.
 아까부터 계속 천마의 눈에 상당히 거슬리던 것이 있었다.
 아무리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보이는 천여휘의 덜렁거리는 ‘물건’이 짜증 날 정도로 선명하게 눈에 박혀왔다.
 “짜증 나니 뭐라도 걸쳐 입든지 해라.”
 “네, 넵!”
 교주인 아버지를 제외하고 타인의 눈치를 살핀 적이 없는 천여휘로서는 참으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새삼 밑에 사람들의 심경이 이해가 가는 그였다.
 신경질적으로 손을 휘젓는 천마를 뒤로하고 천여휘는 재단 옆의 서랍에 고이 모셔놓았던 자신의 의복을 챙겼다.
 검은 무복에 허리에는 금테를 두른 복색이었다.
 급하게 옷을 갈아입은 천여휘가 천마의 앞으로 와서 다시 무릎을 꿇었다.
 “못난 모습을 보여서 죄송합니다.”
 “쯧, 훨씬 낫군.”
 알몸으로 있을 때는 거북했는데 그나마 옷을 갖춰 입은 천여휘의 모습은 훤칠해 보였다.
 얼굴의 윤곽과 날렵한 턱 선에 오뚝한 코하며 마치 생전의 천마 자신의 젊었을 적을 보는 것처럼 마음에 들었다.
 “지금 보니 제법 그럴 듯하게 생겼구나.”
 “조사님, 감사합니다.”
 의외의 것에서 칭찬해 주는 천마의 말에 기분이 한결 좋아진 천여휘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나 한마디의 칭찬으로 끝이었다. 천마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했다.
 “흠, 왠지 이 방이 낯익구나.”
 천마가 제단 주위를 걸으며 방을 둘러보았다.
 그는 부활하면서 눈을 떴을 때, 이 방이 굉장히 낯익다고 생각했었다.
 아무리 본인이 세운 마교라고는 해도 천 년의 세월이 지났다면 많이 변했을 텐데, 왜 이렇게 낯익은 건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 천마의 앞으로 천여휘가 바닥에 엎드려 큰소리로 말했다.
 “소손 천여휘! 조사 어른께 죄를 청합니다!”
 “죄?”
 “조사님께서 등선하셨던 방을 부활 의식의 제단으로 사용했사옵니다!”
 “내가 등선한 곳이라고?”
 그랬다.
 천장이 뚫려 있는 이 방은 과거 천마가 사용했던 침실로, 그가 무도를 득도하고 등선한 장소였다. 그렇기에 천마 본인도 모르게 낯이 익었던 것이었다.
 마(魔)의 종주인 천마가 이곳에서 등선했다.
 즉, 마교에서 볼 때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장소가 되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후대 마교의 교주들은 이곳을 신성시 여겨 금지(禁地)로 지정해 놓았었다.
 천여휘가 천마에게 죄를 청했던 것도 이를 어기고 부활 의식의 제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뭘 이런 일로 두려워하느냐?”
 천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엎드려 있는 천여휘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여 부드럽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놀란 천여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쓰지도 않는 이 방을 썼다고 무슨 죄가 되겠느냐?”
 “조, 조사 어른!”
 너그럽게 용서하는 듯한 그 말에 천여휘의 목소리가 메었다.
 이제야 천마 조사가 자신의 진심을 알아주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빠득!
 “끄어어어억!”
 천마가 천여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다가 대뜸 그의 머리카락을 우악스럽게 쥐어 잡고 올린 것이었다. 머리가 통째로 뽑혀 나갈 것 같은 고통에 천여휘의 이마에는 잔뜩 핏줄이 돋았고, 그는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조사님! 조사니이이이임!”
 인간이 단련할 수 없는 몇몇 부위가 있는데, 남녀가 공통적으로 고통을 참을 수 없는 부위가 바로 머리채였다.
 비명을 지르는 천여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지 천마가 마귀와 같은 표정으로 그와 눈을 마주하며 섬뜩하게 말했다.
 “나를 네놈 멋대로 부활시킨 게 죄지!”
 
 
 
 3장 천마님, 고민하다
 
 
 
 “끄아아아악!”
 앙상하고 주름으로 가득한 노인의 손아귀라고 믿기 힘들었다.
 우악스럽게 힘이 들어간 손과 천마의 살기 어린 눈은 정말로 천여휘의 머리채를 통째로 뽑을 기세였다.
 ‘아악! 이대로 가다간 정말 머리채가 통째로 뽑힐지도 모른다.’
 조사님의 분노를 달게 받았다가는 죽을 것만 같았다.
 적어도 내공을 끌어 올려 몸을 보호해야만 했다.
 그러나.
 ‘어어?’
 단전에서 느껴지는 떨림과 함께 내공이 움직이지 않았다.
 무리해서라도 운기를 하려 했지만 단전은 파르르 떨리기만 할 뿐 아무 반응이 없었다.
 ‘말도 안 돼!’
 내공을 움직일 수 있다면 적어도 호신지체로 고통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텐데 그의 내공은 요지부동이기만 했다.
 천여휘의 내공 수위는 일 갑자에 달했다.
 갓 약관을 넘긴 그가 중소문파의 장문인급 정도의 내공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천양지체라는 극고의 신체.
 소교주로서 누릴 수 있는 각종 영약 복용과 같은 혜택.
 현천신공(玄天神功)이라는 역대 마교의 교주들만이 익히는 절세무공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공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늙은 제사장의 몸으로 어떻게?’
 아무리 마교의 시조인 천마라고 할지라도 지금 일신의 육신은 거동조차 힘들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더군다나 고작 삼십 년에 불과한 내공으로 펼칠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왜? 내공이 움직이지 않아서 당황했냐?”
 “끄으윽, 조··· 조사님!”
 천마가 그런 천여휘의 생각이라도 읽은 듯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
 알 수 없는 힘의 정체를 모르는 천여휘로서는 잡고 있는 머리채를 제발 놓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내가 왜 마(魔)의 종주라고 불렸는 줄 아느냐?”
 “끄윽, 왜··· 왜 그런 것이옵니까?”
 “세상의 모든 마(魔)는 내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하거든!”
 일반적인 무공의 범주라면 천마가 지금 육신의 수위로는 천여위를 제압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천여휘를 제압할 수 있는 것은 내공의 유무를 떠나 그의 마기가 제압당하고 있어서였다.
 “크큭! 네 녀석의 알량한 마기로는 나에게 반항할 수는 없다.”
 현천신공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은 바로 마기(魔氣)였다.
 마교의 모든 교인을 비롯해, 마도의 무공을 익힌 자들은 누구나 마기를 지니고 있다.
 천 년간 영신(靈身)을 수양해 온 천마의 영혼이 지닌 마기의 농도는 천여휘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빨리 말해.”
 “끄으윽, 무··· 무엇을?”
 “나를 부활시켰어야 할, 납득할 만한 이유!”
 “그··· 그건······.”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천여휘는 이유를 말하는 것을 망설였다.
 불같은 성정의 천마가 그 이유를 듣게 된다면 과연 어떤 태도를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위대한 마교의 후인으로서 차마 입에 올리기 힘든 말이었다.
 “말 안 해?”
 꽈악!
 “끄아아아악!”
 이유를 말하라고 하고는 더 세게 쥐어짜니 이마의 핏줄이 다 터질 것만 같았다.
 뭐라도 말하고 싶은데 너무 아픈 나머지 거의 실신하다시피 하는 천여휘였다.
 “조, 조사 어른!! 이··· 이걸 놓아주셔야 말이라아아··· 아아악!”
 지금 천마의 행동은 거의 화풀이와도 같았다.
 혈손이라고 해서 어느 정도 사정을 봐줄 것이라고 여겼던 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애초부터 천마는 선계에 진입하기까지 천 년이라는 세월을 애먹을 정도로 잔인하고 불같은 성정을 지니고 있었다.
 천 년 동안 기다려 왔던 인고를 한순간에 박살 냈는데, 매사에 거리낌 없는 성정의 그가 혈손이라 한들 쉽게 넘어가 주겠는가.
 털썩!
 “머, 멈춰주십시오! 천마 조사!”
 오 장로가 천마의 앞으로 오더니 무릎을 꿇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만히 뒤에서 천여휘가 그를 설득하는 것을 지켜보려 했지만 그대로 내버려 뒀다가는 그가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뭐냐?”
 고개를 돌려 오 장로를 바라보는 천마의 눈빛은 섬뜩했다.
 그의 피처럼 붉은 눈은 심금마저 떨리게 만드는 마기를 풀풀 풍겨대고 있었다.
 ‘허억!’
 이에 오 장로는 자신도 모르게 두려움에 떨며 시선을 내리깔고 말았다.
 분노한 천마는 말 그대로 아수라와 같은 자였다.
 ‘아아, 마교가 처한 상황이 있지만 우리가 진정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 것은 아닐까?’
 도저히 어디로 튈지 모를 성정을 지닌 천마를 과연 무슨 수로 통제한다고 부활시켰던 것일까 후회가 되는 오 장로였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일단은 천마의 분노를 가라앉혀야 했다.
 ‘마··· 말해야 한다!’
 천마를 부활시킨 후, 그가 현세에 익숙해지면 분위기를 맞춰가며 차후 진행하려 했었던 계획이었지만 지금 당장 말해야 했다.
 눈에 핏기까지 서려 비명을 지르는 천여휘를 살리려면 천마를 부활시킨 이유를 말해야만 했다. 차마 위대한 마도의 종주이며, 마교의 시조인 그에게 말하기 힘든 그 이유를 말이다.
 “천마 조사시여.”
 “말해라.”
 “천마신교가··· 저희 천마신교가······.”
 “이놈이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게로구나. 빨리 말하지 못할까!”
 우드드득!
 “끄아아아악!”
 계속 말문이 막히는 오 장로의 태도에 답답해진 천마가 손에 더욱 힘을 주며 그를 다그쳤다. 더욱 비명을 지르는 천여휘의 모습에 오 장로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정파 무림맹에 패했습니다.”
 “뭣?”
 “저희 신교가 패했고, 정파 무림맹이 무림을 통일했습니다.”
 오 장로는 눈시울을 붉히며 힘겹게 사실을 밝혔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천마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리며 진심으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손에 힘을 뺐다.
 털썩!
 덕분에 겨우 그의 손에서 벗어난 천여휘가 바닥으로 쓰러져 핏줄이 선 얼굴로 자신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런 천여휘를 뒤로하고 천마는 구겨진 얼굴로 오 장로의 앞으로 걸어와 말했다.
 “어이, 늙은이. 다시 얘기해 봐라.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등선했기에 속세에 미련이 없는 천마였지만 방금 들은 말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세워놓은 마교가 패하고 정파 무림맹이 무림을 통일했다는 말을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패한 것은 둘째치더라도 정도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무림을 정벌했다는 말이 아닌가.
 “부디 이 무력한 당신의 신도를 용서해 주십시오.”
 “개소리하지 말고 빨리 말해라.”
 “······.”
 “네놈도 저 녀석처럼 되고 싶으냐?”
 “···지금으로부터 육 년 전이 시작이었습니다.”
 아직도 머리카락을 붙잡고 바닥에 엎어져서 고통을 호소하는 천여휘를 한번 힐끔 쳐다본 오 장로가 사색이 되어서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육 년 전.
 무림의 동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천마가 활동하던 시기에도 그랬지만 무림의 힘은 삼등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정파, 사파, 마교.
 정도의 무공을 익히며 의협을 숭상한다는 정파(政派).
 해괴한 사도의 무공을 익히며 사악하고 잔인한 짓을 서슴지 않는 사파(私派).
 힘을 숭상하고 마를 지향하는 마교(魔敎).
 “어이, 사설이 왜 이렇게 길어. 배경 설명은 다 빼.”
 “흠흠! 알겠습니다.”
 단일 집단으로는 가장 세력이 강성했던 것이 마교였지만 정파와 사파는 워낙 수많은 집단이 모여서 연맹을 이루고 있었기에 그 힘의 균형은 견고하게 내려왔었다.
 “균형을 이루던 것이 깨진 게 바로 육 년 전, 검문(劍門)이 정파를 규합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나서였습니다.”
 “검··· 문?”
 검문이라는 말에 천마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었다.
 그것을 미처 보지 못한 오 장로가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정파 무림을 규합하겠다고 갑자기 나선 검문을 처음에는 수많은 대소문파들이 비웃었다고 한다.
 그러나 검문과 위치적으로 제일 가까웠던 해남파를 시작으로 파죽지세로 정파의 문파들이 봉문을 선언하면서, 구파일방의 정파 연맹은 위기를 느꼈다.
 “그렇게 위기를 느낀 구대문파의 고수들이 연합하여 검문의 본진을 공격했습니다.”
 놀랍게도 결과는 구대문파의 패배였다.
 결국 그것을 계기로 구파일방을 비롯한 정파들은 검문의 주도하에 무림맹에 복속되고 말았다. 정파 무림맹이라고 칭했지만 검문이 실권을 쥐고 있는 하나의 거대 세력으로 규합된 것이었다.
 ‘검문이 정파를 규합했다? 크큭, 그 고지식한 놈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표정이 어떨지 궁금해지는군.’
 천마의 얼굴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뭔가 놀라기보다는 흥미로워하는 표정으로 듣는 그의 태도가 의아했지만 오 장로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정파가 규합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일 년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전쟁의 시작은 그때부터였지요.”
 정파 무림맹을 규합한 검문은 몇 개월 채도 되지 않아 사파에 전쟁을 선포했다.
 연맹을 형성하고는 있었지만 특별하게 서로 연합을 하지 않았던 사파는 검문을 중심으로 규합된 정파에 일방적으로 패배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기간 동안 너희들은 뭘 한 거냐?”
 “그··· 그게······.”
 “설마 구경만 하고 있진 않았을 거고?”
 정파가 이 정도까지 규합되어서 사파를 공격했다면 마교에서도 분명 위기를 감지했을 것이다. 사파에 전쟁을 선포했다고 해도 개입할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어부지리를 취하기 위해······.”
 “쯧쯧, 미련하게 양패구상(兩敗俱傷)을 바란다고 구경만 했군.”
 천마의 말에 오 장로가 면목이 없다며 고개를 푹 숙였다.
 만약 천마 본인이었다면 양패구상만을 바라기보다는 양쪽으로 개입해 균형을 맞춰서 타격을 입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것도 그러했지만 사실 부교주인 마중달과의 알력으로······.”
 “부교주? 그딴 직책을 잘도 만들었군.”
 “흠흠!”
 천마가 집권하던 마교 시절에는 애초부터 부교주라는 직책이 없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교주에게 모든 실권이 돌아가도록 견고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 자리에 이 인자를 만들었으니, 집권의 견고함이 깨지고 알력이 일어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부교주인 마중달은 돌아가신 태상교주께서 신교로 초빙한 자입니다.”
 “꽤 실력이 있었나 보군.”
 “태상교주의 지인이셨고, 오황(五皇) 중 한 명입니다.”
 “오황?”
 “현 무림의 최고의 고수들입니다.”
 “호오?”
 피와 대결이 난무하는 무림에는 항상 각 시대를 대표하는 고수들이 있게 마련이었다.
 당금에 와서 최고의 고수라 불리며, 무림을 군림하는 이 다섯 고수를 무림인들은 오황(五皇)이라고 칭했다.
 “제법 하나 보군.”
 ‘제법?’
 오황을 두고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 천마의 말에 오 장로는 잠시 황당했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마교의 시조 천마였다. 그에게서 풍겨져 오는 무거운 마기와 그 위압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역대 무림인들 중 최강을 논한다면 그를 빼놓을 수가 없었다.
 하긴 천마가 아니라면 누가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보니 과연 천마가 원래의 몸이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오 장로였다.
 “그들 한 명, 한 명이 전부 다른 시기에 태어났다면 각자가 천하제일이 되었을 거라 칭할 만큼 강한 자들입니다.”
 “천하제일?”
 천마의 눈빛에서 호승심이 드러났다.
 천 년 동안 도의 중턱에서 선계로 가기 위한 수양만을 해왔기에 무공을 펼쳐본 지도 오래였다. 그런 와중이지만 현 무림에서 천하제일을 논한다는 말을 들으니, 호전적인 천마의 가슴에 호승심이 피어올랐다.
 ‘오오! 조사님께서 흥미를 느끼셨구나.’
 그런 천마의 눈빛을 눈치챈 오 장로가 쾌재를 지르며 속으로 생각했다.
 실상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설명한다 한들, 그가 단칼에 거절해 버리면 최악의 국면을 맞는 것이었다.
 “그중 한 명이 여기 있다는 거네?”
 “그··· 그렇지요.”
 “좋군. 계속 말해보아라.”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천마가 다시 이야기를 재촉했다.
 이에 오 장로가 방금 전과 달리 더 어두워진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삼 년 가까이 지속되던 전쟁의 끝을 알린 건 사파 연맹의 실질적 수장이었던 오황 중 한 명인 북호투황(北虎鬪黃)이 목숨을 잃고 나서였습니다.”
 사파 연맹을 이끌었던 오황의 일인이었던 북호투황은 투신이라 불리는 사내였다.
 사파와 북무림(北武林)을 대표하던 그의 패배는 사파의 급속한 몰락을 가져왔다. 견고할 것 같던 삼대 세력의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 바로 이 시점이었다.
 “사파의 세력까지 규합한 정파 무림맹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삼대 균형이라고 했으나 마교는 유일하게 단일 세력이었다.
 아무리 무를 숭상하는 마교라고 할지라도 그 많은 중원 무림맹의 적을 감당키는 힘들었다.
 불과 일 년이라는, 길지만 짧은 시간 동안 일만 마교인이 하나가 되어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결국 마교는 치욕스러운 항복과 함께 교주의 무공 전폐와 봉문을 선언해야만 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천마조차도 마교의 봉문이라는 말에는 잠시 눈에 이채가 띠였다.
 “···결국 교주님께서는 양팔까지 잃으시고 내공을 전폐당하는 치욕까지··· 크흑.”
 차라리 죽었다면 모를까. 무인으로서 팔과 무공을 잃는 치욕까지 당한 자신의 주군을 떠올리니 설움이 복받친 오 장로였다.
 “흑······.”
 모든 이야기를 마친 오 장로를 보며 천나연 역시도 눈시울이 붉히더니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제발··· 제발······.]
 ‘그래서 이 육신의 사념이 그렇게 짙었었군.’
 이런 사정을 알고 나니 자신을 어지럽히던 사념을 이해하게 된 천마였다.
 간절히 도움을 바라왔던 사념은 위기의 마교와 폐인이 된 교주를 생각하는 대제사장의 간절한 바람이었던 것이다.
 ‘하아······.’
 혈손들이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희생을 각오하면서 그를 소환한 것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마교의 시조이며, 천하제일이라 불렸던 그를 부활시켜 마교를 살리고자 하는 이들의 바람은 선인이 되기 위해 속세를 등져야 하는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쯧쯧, 세속을 저버리지 못하니, 그래서 자네는 안 되는 거야.”
 
 문득 도의 중턱에서 노 선인이 혀를 차며 자신에게 했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 젠장, 정말 짜증 나는 상황이구나.’
 솔직한 천마의 심경이었다.
 아무리 모든 것에 거리낌이 없는 천마였지만 참으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 육신을 버리고 다시 도의 중턱으로 돌아가 선인이 되는 길을 택할 것인가.
 무림의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르는 마교를 다시 도와야 하는 것인가.
 “제기랄!”
 그는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런 천마를 향해 머리채가 뜯길 뻔해 이마에 핏줄이 잔뜩 서 있는 천여휘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부복을 하며 말했다.
 “조사님, 후손으로서 못난 모습을 보여 송구스럽습니다. 저보다도 부디 신교의 남은 교인들을 살피시어 주시옵소서. 저의 목숨을 원하신다면 그리하겠습니다!”
 간곡한 목소리로 청하는 천여휘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마교를 살리고 싶은 것이 그의 심정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마(魔)의 시조 천마만이 모든 것을 반전시킬 수 있는 열쇠였다.
 “목숨을 바쳐?”
 천여휘의 비장한 각오에 천마가 묘한 얼굴이 되어 두 눈을 감았다.
 한참을 생각하던 그가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너,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했느냐?”
 천여휘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드디어 천마가 마음을 결정을 굳힌 것이었다.
 “그, 그렇습니다!”
 그런 천마의 결심을 확인한 천여휘가 눈시울을 붉히며 힘차게 답했다.
 이에 천마가 그의 턱을 손으로 잡아 올리며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네놈의 몸뚱이를 내놓아라.”
 “······?!”
 눈시울을 붉히던 천여휘의 얼굴이 한순간에 창백해졌다.
 
 
 
 4장 네놈의 몸을 내놓아라
 
 
 
 대뜸 몸을 내놓으라는 말에 한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천여휘였다.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사님,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무슨 말씀이온지······.”
 “말 그대로 네놈의 그 몸을 나에게 넘기라는 말이다.”
 “제, 제 몸을 말입니까?”
 “그렇다.”
 천마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가 원하는 요구 사항은 바로 천여휘의 몸이었다.
 천여휘는 여간 당황스럽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천마의 혼백이 늙은 대제사장의 몸에 깃들었는데, 그의 육신을 넘기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 것일까.
 “내 도움을 받고 싶다면서. 마음 바뀌기 전에 내놓아.”
 “그렇지만 어찌하여?”
 “멍청하긴! 이딴 다 죽어가는 노구로 현천신공의 극의를 발휘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으냐?”
 “아!”
 천마가 몸을 넘기라고 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천양지체의 육신을 원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일대 종사자인 천마라고 할지라도 처음부터 무공을 제대로 익힌 것도 아닌 다 죽어가는 노인의 몸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괜히 무리해서 무공을 연마하다가 급사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현천신공은 극도의 양기를 필요로 한다. 빠른 성취를 위해선 천양지체가 적합하지.”
 고개를 젓는 천마에게 의아한 표정으로 천여휘가 물었다.
 “한데, 아까 전에 보여주셨던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현천신공이 아니옵니까?”
 “뭐? 현천신공이 아니냐고? 허허허.”
 “···소손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사옵니다.”
 아까 전, 마기를 유형화해서 자신들을 제압했던 그 힘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현천신공을 거의 대성한 교주나 태상교주조차도 그런 신기에 가까운 마기를 운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이런, 이런······.”
 천마가 뒷짐을 지며 묘한 미소를 짓더니 그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무엇 때문에 자신의 주위를 빙 도는 건지 의아해진 천여휘가 그에게 묻기 위해 입을 떼려는 순간.
 스스스스!
 천마가 돌았던 발자국을 따라서 흑색 운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작게 피어나 서서히 자라더니 천장까지 치솟으며 천여휘의 주위를 회오리치듯 돌았다. 갑작스러운 회오리에 천여휘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으헉!”
 오싹!
 회오리치는 흑색 운무에서 소름이 돋을 만큼 흉흉한 마기가 감돌고 있었다.
 갇혀 있는 천여휘와 달리 눈앞의 놀라운 광경에 천나연과 오 장로의 얼굴에선 경외심이 피어올랐다.
 “이··· 이것은 무엇이옵니까?”
 처음에는 당황했었지만 자신을 위협하지 않는 흑색 운무의 회오리의 속에서 어느 정도 적응되었는지 천여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건 현천신공이다.”
 “현천··· 신공이라뇨? 이것이 현천신공이란 말씀입니까?”
 현천신공(玄天神功).
 마교의 시조인 천마가 창안한 절세의 신공절학이다.
 십이 단공으로 나누어진 현천신공은 그가 말년에 자신의 심득을 정리한 무공이었다.
 마교의 혈손들을 위해 남긴 무공이었지만 여태껏 천마 이래로 누구도 현천신공의 끝인 십이 단공을 익힌 자가 없었다.
 “저 역시도 조사님이 남기신 현천신공의 원본을 본 적이 있으나, 이런 것은······.”
 내공을 갈고닦은 자가 경지에 오른다면 그것을 유형화할 수 있는 것이 기(氣)이다.
 기를 유형화했을 때, 자신의 육신을 통해서, 혹은 검이나 도를 통해서 발산하는 형태를 권기(拳氣), 검기(劍氣)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말 그대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육신의 내공을 단련하여 깨달음을 통해 기를 응집한 고도의 무공이었다.
 ‘마기를 어떻게 유형화한단 말인가?’
 무림인들에게 있어서 정파의 정순한 기운이나 마인들이 가지고 있는 마기는 일종의 그 의지에서 발현되는 속성(屬性)과도 같았다.
 태상교주를 비롯해 교주에게 현천신공을 사사받은 소교주 천여휘 역시도 자신의 현천신공을 통해 마기를 키워왔고, 검기에 그것을 실을 수 있다. 하지만 현천신공의 끝을 바라보았다던 태상교주조차도 이처럼 마기를 유형화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설마 지··· 지금 보여주고 계신 것은 현천신공의 십이 단공이십니까?”
 현천신공의 마지막 경지인 십이 단공.
 여태껏 시조 천마 이래로 누구도 현천신공의 끝인 십이 단공을 익힌 자가 없다고 불릴 만큼 극악의 경지라 불리는 단계이다.
 천 년이라는 기간 동안 수많은 역대 교주가 현천신공의 끝을 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으나, 누구도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오히려 십일 단공에 오른 자조차도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전대 오황(前代五皇)이셨던 조부님만이 역대 교주님들 중에서 유일하게 십일 단공의 경지를 밟았었다.’
 천여휘의 조부이자 태상교주였던 천여극.
 전대 오황 중 일인이었던 그는 마교의 역사상 천마 이래로 가장 천재라 불렸던 자였다.
 역대 교주들 중에서 천마 이래로 처음으로 십일 단공의 경지를 개척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런 무공의 기재였던 태상교주조차도 말년까지 현천신공의 십이 단공을 넘어서 시조인 천마처럼 등선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었다.
 ‘그런 조부님조차도 돌아가시기 전에 포기했던 경지였다.’
 태상교주의 사인은 주화입마였다.
 십일 단공을 익히면서 화경을 극에 이르러 현경의 초입을 바라본 태상교주는 십이 단공을 자연지도의 경지로 해석했었다.
 마교의 시조 천마는 마도의 인물 중 최초로 우화등선했다.
 여태껏 우화등선은 선도를 익힌 자들이나, 자연지도의 경지에 이른 정종 무림인만이 가능한 일이라 여겼었다.
 ‘무리해서 자연지도를 깨닫기 위해 정파의 무공들 역시도 섭렵했었지.’
 현천신공의 근본은 마도였다.
 마도의 무공으로 그 끝에 다다른 자가 마지막으로 실수를 했던 것이다.
 억지로 정종의 최고의 경지인 자연지도를 포용해 십이 단공에 오르려 했던 태상교주는 상극의 기운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주화입마를 입고 만다.
 그런 조부가 말년에 혈손들에게 남겼던 유언이 떠올랐다.
 
 “쿨럭쿨럭, 어쩌면 현천신공은 그분만을 위한 무공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는 모르겠구나. 너희들은 십 단공이나 십일 단공에 이른다면 억지로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지 말도록 하여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태상교주는 세상을 떠났다.
 이후로 교주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억지로 현천신공의 경지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버렸다.
 이미 십 단공의 경지만으로도 무림에서는 수위에 꼽히는 고수가 되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정녕 이것이 십이 단공이 맞사옵니까?”
 “멍청하긴, 네 눈에는 이게 십이 단공으로 보이느냐?”
 “네엣?”
 “이건 등선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이다. 어찌 보면 십삼 단공이라 하여야 맞겠지.”
 “어···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이옵니까? 조사님의 육신은······.”
 노하기라도 할까 차마 뒷말을 잇진 않았지만 내공조차 경미한 노구였다.
 더군다나 현천신공을 익히지 않은 육신이었다.
 그런 육신으로 십이 단공을 넘어선 십삼 단공을 선보인다는 것이 가능한 말이란 건가.
 천여휘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나, 엄밀히 얘기한다면 현천신공의 십삼 단공은 육신이 아닌 원영신이 새겨진 경지였다.
 “내공조차 경미하지. 그래서 이 정도가 다지, 하압!”
 쿵!
 천마가 바닥을 향해 진각을 밟자 천여휘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흑색 운무의 회오리가 요동을 치며 좁혀지더니 그를 압박했다.
 휘리리릭!
 “어엇!”
 놀란 천여휘가 당황한 나머지 십 성의 내공을 끌어 올려 호신지체를 펼쳤다.
 좁혀지는 흑색의 운무와 맞닿은 천여휘의 얼굴은 긴장 일색이었지만 그의 호신지체와 부딪친 흑색 운무는 힘을 잃은 돌풍처럼 서서히 수그러들어 사라져 갔다.
 “이··· 이건?”
 천여휘는 아무런 상처도 내상도 입지 않았다.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 같던 흉흉했던 마기의 회오리가 마치 환상이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알겠느냐? 이 늙고 내공조차 경미한 육신의 한계를!”
 “마기만으로 한계가 있군요?”
 “아무리 마기를 유형화한다고 해도 가지고 있는 내공이나 그 경지가 미천하면 하등 쓸모가 없는 거지.”
 천마가 혼백으로 천 년간 갈고닦은 마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기에 마교의 혈손이나 마기를 가지고 있는 마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위축되고, 압도적인 천마의 마기에 굴복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심적인 것과 기세의 문제였다.
 “크큭, 만약 내 원래의 몸이었다면 유형화된 마기에 네 녀석은 시신조차 남아나지 않았을 거다.”
 “아아아!”
 ‘정녕 이분의 힘은 놀랍구나. 과연 천마 조사님이시다!’
 이제야 천마가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 천여휘였다.
 천마가 했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그에게 직접 마기를 유형화해서 보여주었던 것이었다.
 결국 시조인 천마의 깨달음을 육신이 쫓아오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감탄이 나오는 천여휘였다.
 천마의 말대로 그가 진정으로 천양지체의 육신을 얻어 원래의 경지를 회복한다면 얼마나 대단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래서 조사님은 저의 육신이 필요한 것이군요.”
 “그래. 이제 알았다면 네놈의 몸을 곱게 넘겨라.”
 더 이상 설명하기 귀찮다는 듯이 천마가 휙휙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그런 그를 향해 천여휘가 정중하게 무릎을 굽히고 포권을 취하며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손, 기쁜 마음으로 신교를 위해 기꺼이 조사님께 몸을 바치겠나이다!”
 천마에게 몸을 넘기는 것이야말로 마교를 위한 거룩한 희생이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은 마교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육신을 넘기기 전에 이런 천마의 힘을 간접적으로나마 보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천여휘였다.
 “오라버니······.”
 그런 천여휘를 바라보며 천나연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불렀다.
 비록 그들 오누이가 마교의 부흥을 위해 스스로들을 희생키로 결정했지만 씁쓸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조사님, 그럼 다음 월식 때까지 거처를 정하셔서······.”
 “뭐? 다음 월식?”
 다음 월식이라는 말에 갑자기 천마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이에 천여휘가 의아해하며 조심스럽게 답했다.
 “조사님, 지금 당장 의식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 월식이 행해지려면 상당 시일이 걸립니다.”
 “하··· 정말, 이 새끼!”
 “네?”
 거칠게 욕을 내뱉은 천마가 한 행동은 다음과 같았다.
 퍽!
 “억!”
 발로 냅다 천여휘의 턱을 차버린 것이었다.
 천나연 역시도 놀랐는지 ‘꺅’ 하고 소리치고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부복해 있던 자신을 발로 차버리자 당황한 천여휘가 입안에서 터진 피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를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조··· 조사님! 왜 그러시는 것이옵니까?”
 “네놈은 정말 멍청하구나. 의식이 왜 월식에 행해지는 줄도 모르고 어떻게 한 것이냐?”
 천마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를 나무랐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부활시키는 의식을 어떻게 진행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월식에 의식을 행하는 것은 그때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아······!”
 “내 혼백을 불러오기 위해서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 내가 이승에 있는데 무엇 때문에 월식에 의식을 행한단 말이더냐.”
 “모··· 몰랐습니다. 송구하옵니다!”
 의식의 대부분을 진행한 것은 오 장로였기 때문에 사실 천여휘로서는 대략적인 것만 알고 있었지만 천마에게 그것을 변명하기에는 제대로 알아두지 못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럼, 조사님, 언제쯤 의식을 행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장난하느냐? 지금 당장 해.”
 천양지체의 몸을 얻는 것은 지금의 천마에게는 매우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빨리 이 짜증 나는 늙은 노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천마 특유의 호기로 버티고 있었지만 온 뼈마디가 쑤시고 일어서 있는 것조차 힘든 늙은 대제사장의 육신이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천여휘로서는 그가 서둘러 재촉하는 것이 어서 빨리 예전의 무공 수위를 회복하고 싶어서 그러나 보다,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오 장로!”
 “부르셨소, 소교주.”
 하도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오른 오 장로가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오 장로 역시도 방금 전 그들의 대화를 들었기에 천여휘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다시 의식을 거행해야겠소.”
 “하오나, 그러려면 의식을 준비하고 그걸 행할 제사장들이 필요합니다.”
 “그렇겠군.”
 금지된 의식을 행하면서 열두 제사장이 전부 희생됐다.
 제단의 바깥쪽 바닥에 원을 그리며 쓰러져 있는 시신들이 그 증거였다.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 의식을 거행할 수는 없으니 또 다른 제사장들을 불러야 했다.
 “다른 제사장들을 데리고 의식을 준비할 터이니, 건너편 건물에 있는 침소에서 잠시 쉬고 계시는 게 어떠실는지요.”
 조사인 천마를 이곳에서 마냥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오 장로는 의식을 준비하는 동안 그가 쉬면서 기다릴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다.
 침실로 안내를 한 것은 천여휘였다.
 “조사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오 장로와 천나연은 다른 제사장들에게 협조를 구하러 갔다.
 의식을 위해 희생할 이들을 다시 구하려면 설득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마교를 위한다고 하여도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끼이이익!
 금지(禁地)라고 적혀 있는 낡은 문이 열렸다.
 제단이 있는 건물은 붉은 천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곳에서 나오니, 건물 앞으로 넓은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한밤중이었지만 달빛이 드는 정원에서 나는 그 공기가 사뭇 쾌청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정원을 걷는 천마가 길게 숨을 들이켜며 오랜만에 감상에 젖었다.
 ‘하아~ 오랜만의 인세(人世)의 공기로구나.’
 등선하고 도의 중턱에서 살아온 세월보다 더 긴 나날을 수양해 왔다.
 저승에는 향(香)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오감으로 인지하기보다는 제 육감으로 인지하는 세계였다.
 밤의 정취와 향을 맡으니 묘할 정도로 부활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쁘지 않구나.”
 “그렇습니까?”
 의식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해 주었던 대제사장이었다. 백이십 세의 노구를 끌고 마교의 부흥을 위해 망설임 없이 희생했던 그는 참으로 온화했던 노인이었다.
 그런 대제사장의 육신에 천마의 혼백이 들어온 것만으로 이렇게 다른 분위기가 날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육신을 지탱하는 것은 혼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구나.’
 비록 육신은 다 죽어가는 노인의 모습이었지만 붉은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투기는 말로 형용키 힘들었다.
 천여휘가 멍한 눈으로 대제사장을 그리며 천마를 바라보던 찰나였다.
 “불청객이 있구나.”
 “네?”
 천마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정원 한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나무 기둥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를 눈치채지 못했던 천여휘가 긴장된 표정으로 나무 기둥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누구냐!”
 “······.”
 넓은 정원에 천여휘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지만 나무 기둥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마가 실수할 리가 없다고 생각한 천여휘가 나무 기둥을 향해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바로 그때.
 스스슥! 나무 기둥 뒤에서 낯선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둥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어서 흐릿했지만 그 호리호리한 체형을 보아 여자인 듯했다.
 “여자?”
 천여휘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곳 제단이 있는 근처의 정원까지는 금지(禁地)였기에 교주의 혈통이 아니고는 마교의 장로들이라고 할지라도 가벼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누구냐! 이곳은 함부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런가요? 몰랐군요.”
 듣기 좋은 청아한 목소리였다.
 그림자에 가려진 여자는 손을 들어 보이며, 능청스럽게 말을 했다.
 “······?”
 목소리를 들은 천여휘의 눈썹을 찡그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짐작했기 때문이었다.
 “마 소저!”
 “이런 들켰네요.”
 나무 기둥 그림자에서 인영이 앞으로 걸어 나오자 밝은 달빛에 그녀의 정체가 드러났다.
 남색 계열의 가슴이 살짝 파인 육감적인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이었다.
 보기 드문 단발에 짙은 눈 화장과 붉게 물든 입술을 하고 있는 그녀는 묘한 색기마저 풍기고 있었다.
 [조사님! 부교주 마중달의 여식인 마연화입니다.]
 천여휘가 전음으로 그녀의 누구인지를 밝혔다.
 천마가 대제사장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마연화에게 정체를 드러내면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바람직하구나.]
 [네?]
 뜬금없는 그의 말에 천여휘가 인상을 쓰며 그를 바라보았다.
 천마의 시선은 그녀의 얼굴이 아닌 파여 있는 가슴 부분을 노골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천마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가슴골이 보일 만큼 파인 옷을 입은 여인이 없었다.
 “흐으으음.”
 워낙 노골적으로 쳐다보았기에 마연화가 자신의 가슴 부분을 손으로 살짝 가렸다.
 늙은 대제사장의 몸으로 거리낌 없는 행동을 하는 천마의 모습에 천여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위험한 여자입니다. 조사님, 부디 자중해 주십시오.]
 결국 전음을 통해 직접적으로 주의를 하는 천여휘였다.
 [뭘 자중하라는 거냐?]
 [지금 당장 조사님의 정체를 들키면 안 됩니다.]
 지금 마교 내에서 가장 위험한 적은 부교주인 마중달이었다.
 그런 만큼 부교주의 여식인 마연화에게 정체를 들켰다가는 상황이 복잡해질 수 있었다.
 천마 역시도 그가 말하는 의미를 알고 있기에 불만족스러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부디!]
 [흥, 알겠다.]
 퉁명스럽지만 알겠다는 천마의 확답을 듣고서야 안심이 된 듯, 천여휘가 마연화를 향해 물었다.
 “마 소저께서 어인 일로 야심한 시각에 이곳 금지 구역까지 온 것이오?”
 “소교주께 아까 몰랐다고 얘기했는걸요.”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유혹하는 여인처럼 말을 하는 마연화의 태도는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었다.
 ‘무슨 속셈으로 이곳으로 온 것이라 말인가?’
 정파 무림맹과의 전쟁으로 폐인이 된 교주와 장로들의 태반이 목숨을 잃으면서 부교주의 위세가 날이 갈수록 오르고 있었다. 덕분에 부교주 일파의 세력과 그의 여식인 마연화의 태도도 마찬가지로 방자해지고 있었다.
 “그 걸로는 답이 되지 않소. 금지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오? 너무 수상하지 않소?”
 “호호, 그런가요? 꼭 이 예쁜 정원까지 금지일 필요는 없잖아요?”
 가볍게 웃어넘기는 마연화의 태도에 천여휘가 인상을 찡그렸다.
 외부에서 초빙되어 온 인사의 딸이라고는 하나, 엄연히 마교에 속했으면 그 법도를 따라야 했다. 그런데 그런 그 자체를 부정하고 드는 것이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후후, 소교주, 너무 열 내지 마셔요. 멋진 얼굴로 그러시니 제가 무섭잖아요.”
 “지금 본 소교주를 상대로 말장난을 하는 것이오?”
 “어머, 아니랍니다. 소녀가 어찌 대천마신교의 소교주를 상대로 그렇게 할까요.”
 손끝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꼬면서 교태를 부리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은 남자를 상대하는 것에 있어서 이골이 난 듯했다. 천여휘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화법에 휘말리고 있었다.
 화가 나서 얼굴이 상기되려고 하는 천여휘를 보며, 마연화가 빙그레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소녀는 단지 마른하늘에 치던 벼락이 신기하게도 금지로 떨어진 것을 우. 연. 히 보아서 이곳으로 왔답니다.”
 ‘이런··· 젠장!’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마연화의 말에 천여휘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