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심득의 레이드 [E]

심득의 레이드 1-1권

2018.01.23 조회 4,045 추천 38


 # 기연
 
 “꺄아아아악! 살려 줘!”
 크아아앙!
 “으악!”
 “케엑!”
 와드득. 와드득.
 지옥의 한가운데에 떨어진 듯한 아비규환의 모습을 본 뚱뚱한 몸집의 사내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헉. 헉.”
 공포로 물든 얼굴의 20대의 사내, 박동춘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몇 분 전만 하더라도 분명 자신은 버스 안에서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2교대 야간을 마치고 아침 버스를 탄 그는 피로함을 약간의 잠으로 때우며 집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깨어 보니 주변에 있는 건 죄다 시체들이었고, 그 시체들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는 무리는 다름 아닌 늑대 괴물들이었다.
 자신이 타고 있던 버스는 자신과 대략 30여 미터 떨어진 장소에서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지금 있는 장소는 거대한 동굴 속, 사방에선 아직도 인간들의 비명 소리와 몬스터가 인간을 씹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덜덜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고 속으로 수없이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발은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씨발, 씨발.’
 속으로 욕을 한 무더기 날리고 있었지만 패닉 상태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지옥늑대 한 마리가 바위 뒤쪽에 숨어 있던 동춘의 기척을 감지해 버렸다. 그리고 놈의 붉은 눈동자가 번들거리며 동춘을 향해 바라보았다.
 “헉!”
 놀란 동춘이 뒤로 벌러덩 넘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상태에서 서둘러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려고 버둥거렸지만 몸이 뻣뻣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지옥늑대가 입안에 있던 인간의 고깃덩이를 거칠게 씹어 삼키며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으으으으.”
 놈의 기세의 질려 몸이 굳어 버렸는지 이젠 버둥거리지도 못했다.
 크르르르르르.
 피가 줄줄 흐르는 살벌한 이빨을 드러내며 지옥늑대가 다가갔다.
 언뜻 봐도 송아지보다 더 큰 놈의 덩치, 그리고 붉은 눈동자의 지옥늑대가 혀를 날름거리고는 입 주위의 피를 핥으며 눈을 빛냈다.
 ‘이젠 죽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아 버렸다.
 순간 지옥늑대가 동춘을 향해 몸을 날렸다.
 팟!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와르르르르르.
 동춘이 있던 자리가 바닥으로 푹 꺼지기 시작했다.
 “어어어!”
 그러더니 몸이 아래로 빠르게 끌려 내려갔다.
 “으아아악!”
 카아아앙!
 더불어 동춘에 달려들던 지옥늑대가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공중에서 버둥거렸다.
 크아아아아앙!
 놈은 발이 지면에 닿자마자 발버둥을 치며 그곳을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결국 동춘과 마찬가지로 구덩이에 완전히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안으로 먼저 빨려 들어갔던 동춘은 추락과 동시에 다시 의식을 잃어버렸다.
 
 ***
 
 얼마의 시간이 또 지났을까 다시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다.
 이번엔 분명 자신이 죽어 저승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나 곧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아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크윽!”
 어디를 다쳤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고통 때문에 몸을 일으키는 게 쉽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
 눈을 뜨고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여 주변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도 동굴 속이다.
 그리고 자신이 바닥이 꺼지며 어디론가 추락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의 눈에 높은 천장 위에 구멍이 조그맣게 보였다. 높이는 대략 30미터 정도 아마도 저곳에서 자신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아직 살아 있는 걸 보면 꽤나 질긴 생명이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결코 행운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
 차라리 떨어져 그대로 죽어 버렸음 좋았을걸.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로 두려웠다.
 그런데 그때 그륵그륵 하는 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또 무슨 괴물이 있을지 두려움이 생겨 고개를 돌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 바닥이 무너질 때 지옥늑대 한 마리와 같이 떨어진 기억이 났던 탓에 어쩌면 그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떨어진 높이가 만만치 않겠지만 이런 괴물들은 그리 쉽게 죽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근두근.
 하지만 거친 숨소리와 같은 그 소리를 계속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바라보았다.
 주변이 어둡기는 했지만 은은히 빛나는 불빛이 존재하는 곳이라 사물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소리가 나는 곳에는 동춘의 예상대로 자신과 함께 떨어진 지옥늑대가 있었다.
 그런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것도 뭔가 심상치 않은 모습으로.
 크륵. 크르륵.
 상태가 심상치 않은지 숨을 거칠게 쉬는 것처럼 보였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보니 놈의 몸통 아래가 잔뜩 찢겨져 나가 있었다.
 아무래도 살아남기는 어려운 듯 보이는 모습에 일순간 안심했다. 하지만 녀석의 뒤에 커다란 그림자를 보고는 다시 기겁하고 말았다.
 “······!”
 자세히는 모르지만 인터넷을 통해 본 기억이 있는 종류였다.
 식물형 괴물, 아니 보통은 식물형 몬스터라고 부르는 종류다. 하지만 그는 그쪽 계통의 전문가가 아니라 종류까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그런 식물 몬스터의 커다란 머리 부분도 잔뜩 뜯겨져 있었다.
 식물인데 머리가 있다는 게 이상하지만 일단 그렇게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생긴 모습이 딱 파리지옥 같은 녀석이었으니까.
 그런데 주변이 꽤나 엉망으로 부서져 있었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지옥늑대가 떨어진 뒤, 두 놈이 서로 만나게 되었고 결국 박 터지게 싸운 게 아닌가 싶었다. 어쩌면 자신이라는 먹이를 두고 말이다.
 어쩌면 그런 사실이 동춘에게는 행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역시 죽는 게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살아 나갈 방법 따위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죽음과도 같은 고요함 때문에 1분 1초가 영원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자 몸의 상태가 좋아진 것인지 조금씩 거동이 가능해졌다.
 “끄으응!”
 최대한 힘을 주어 몸을 뒤집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전신의 감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곧바로 몸을 일으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시간이 조금 걸리긴 했어도 결국 몸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어깨 쪽과 허리의 통증이 심했지만 어쨌거나 움직이는 것은 가능했다.
 어찌 되었건 목숨이 붙어 있는 상황에서 그냥 죽기를 기다릴 수는 없는 일.
 고통을 삼키며 조금씩 몸을 움직여 주변을 이동해 갔다.
 그사이 지옥늑대의 숨은 어느샌가 끊어져 있었고, 식물 몬스터 역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라 최대한 놈들에게서 멀어지며 주변을 천천히 살폈다.
 툭.
 발에 뭔가가 걸렸다.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아 아래로 손을 뻗어 바닥을 살폈다.
 흙 속에 뭔가가 묻혀 있었다.
 손으로 흙을 조심스럽게 걷어 내자 뭔가가 손에 걸렸다.
 ‘뭐지?’
 천 뭉치 같은 뻣뻣한 느낌의 옷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덥석.
 “크억!”
 뭔가가 갑자기 자신의 손을 덥석 쥐자 놀란 동춘이 엉겁결에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리고는 동시에 눈앞에서 뭔가가 바닥을 뚫고 벌떡 일어섰다.
 “우왁!”
 화들짝 놀란 동춘은 손이 잡힌 채로 몸을 잔뜩 웅크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손에 느껴지는 감촉은 분명 사람의 손이 분명했다. 다만 체온이 느껴지지 않았고 손의 거죽이 엄청 거칠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물론 너무 놀란 지금은 그런 것을 제대로 따질 상황은 아니었다.
 사람의 손이건 그렇지 않건 지금 이 상황에선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잡힌 손을 서둘러 떼어 내고는 몸을 뒤로 빼며 물러섰다.
 눈앞의 검은 인영은 미동도 없이 그저 가만히 있었다.
 순간 오싹한 느낌에 동춘이 더듬거리며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 누구 있습니까?”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정확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략적인 인영이 확인된 상태라 일단 가슴을 진정시키고 물었다.
 그런데 그 인영에게서 뭔가 소리가 들려왔다.
 “······.”
 뭔가를 중얼거리며 말하는 것 같은데 자세히 들리지는 않는다.
 “······.”
 목소리가 갈라져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느낌상으론 노인인 것 같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그의 거친 피부도 그것을 확신시키고 있었다.
 어쩌면 아까 바닥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같이 떨어진 사람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지는 않았을 테니까.
 “괘, 괜찮으십니까?”
 “······.”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물었음에도 여전히 잘 들리지 않았다.
 “······.”
 “네?”
 “······.”
 그런데 방금까지 잘 들리지 않던 노인의 목소리가 갑자기 정확하게 들려왔다.
 “헉!”
 문제는 그 목소리가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들려왔다는 사실.
 그 때문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버릴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받겠느냐?]
 “······.”
 [내 것을 받겠느냐?]
 “······?”
 [오랜 세월을 기다려 왔느니라. 내겐 더 이상 시간이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구나.]
 그제야 정신을 차린 동춘이 덜덜 떨리는 음성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 무슨 말씀인지 잘······.”
 하지만 그림자 속 노인은 동춘을 재촉했다.
 [빨리 결정하거라. 내 것을 받겠느냐?]
 “······.”
 [아니다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오랜 세월을 기다린 보람이 없으니까 말이다. 원래대로라면 먼저 네 자질을 확인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시간이 없구나.]
 뭔가 갑자기 말이 많아진 느낌이었다. 덕분에 두려움보다는 당황스러움이 앞섰다.
 “저기······. 그보다 지금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요?”
 [후후후.]
 왠지 거만한 웃음소리.
 “······.”
 [내 것을 받는다면 그것은 쉬운 일.]
 “······.”
 [어서 결정하거라. 내게는 시간이 얼마 없다.]
 억지로 물건을 떠넘기려 하는 악덕 상인이 이럴까.
 “그냥 주시면······.”
 [네가 그것을 받아들일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저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신지.”
 [그렇다.]
 노인네가 사고를 크게 당해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 주자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주신다면 받을게요.”
 [허허, 이제야 편히 잠들 수 있겠구나. 장장 2천 년을 기다려 왔느니. 제자야, 그럼 이 스승은 너만 믿고 푹 쉬겠느니라.]
 “······네?”
 이 무슨 황당한 이야긴가 싶었지만 어차피 제정신이 아닌 노인네가 아닌가? 지금 머릿속에서 음성이 들려오는 것을 보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닌 건 마찬가지 같았지만.
 [제자야, 이제부터는 뼈 빠지게 수련만 한 스승 대신 신나게 살아 보거라!]
 그런데 그때였다.
 한순간이었지만 노인의 머리에서 빛이 생성되더니 이내 그 빛 덩어리가 아래로 내려가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손으로 이동했다.
 “으앗!”
 놀란 동춘이 노인의 손을 놓으려 했지만 강력한 손아귀 힘을 뿌리치지 못했다.
 “왜, 왜 이러세요?”
 동춘이 소리쳤지만 노인은 더 이상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동춘이 손을 떼어 내려고 발버둥을 치던 그때 뭔가 뜨거운 것이 손을 통해 그의 몸에 침투했다.
 “으아악!”
 마치 뱃속에 불덩이가 들어간 것 같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사, 살려 줘요!”
 하지만 동춘의 비명에도 노인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손으로 전해지던 뜨거운 기운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자 그제야 손을 놓아 주었다.
 “으아아아악!”
 강제하고 있던 힘이 사라지자 동춘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뱃속이 불타오르는 것 같은 고통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씨발!”
 바닥을 구르며 욕설을 날렸지만 이미 늦었다.
 차라리 그때 고통 없이 죽었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괜히 쓸데없이 살아남아 이 고통을 받는다며 자신의 팔자를 저주했다. 어째서 이상한 노인 때문에 자신이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서서히 고통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 가는 것도 좋겠지.’
 지금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의 원인 따위야 어찌 되었건 상관없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원하며 그렇게 조금씩 의식을 잃어 갔다.
 
 
 # 각성
 
 얼마의 시간이 더 흘렀을까.
 박동춘의 의식이 다시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징그럽게 질긴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몸 주위가 축축해져 있었다.
 어쩌면 자신의 몸에서 흘러내린 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별다른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눈을 천천히 떴다.
 여전히 어두운 동굴 속.
 그런데 어쩐지 동굴 속임에도 눈앞이 밝다는 게 조금 이상했다. 하지만 그런 거야 아무려면 어떤가. 지금 자신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으니 좋아할 일도 아니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으음.”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몸이 가벼웠다.
 그냥 가벼운 게 아니라 정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말이다.
 “······?”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천천히 일으키고는 앉은 채로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
 입고 있던 옷이 완전히 갈가리 찢겨져 너덜너덜한 누더기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그의 몸 주변에 검은 액체가 잔뜩 흘러 바닥을 적시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덕분에 질퍽한 느낌과 함께 역겨운 냄새가 동춘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서둘러 몸을 일으키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로부터 한 발 물러났다.
 기분 나쁜 액체와 주변에 있는 알 수 없는 찌꺼기들.
 그때 갑자기 의식을 잃기 전에 자신의 손을 잡았던 이상한 노인네가 떠올랐다.
 
 [제자야, 이제부터는 뼈 빠지게 수련만 한 스승 대신 신나게 살아 보거라!]
 
 마지막에 스스로를 스승이라고 말한 정체불명의 노인네.
 던전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라더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어이가 없는지 황당함에 피식거리고는 곧 주변을 둘러보았다.
 “엇!”
 그런데 눈앞에 낡은 무명옷 같은 옷을 입은 해골이 보이자 화들짝 놀라버렸다.
 그러고 보니 문득 노인이 있던 그 자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하지만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해골로 변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어쩌면 자신이 뭔가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으니까. 물론 생생한 감촉이 아직까지 느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내게 뭔가를 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뭐 환상이었으려나?”
 거친 피부의 감각이 아직 전해지고 있는 것 같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곧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몸에서 심한 악취가 풍기는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저 이곳을 살아서 빠져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
 그러고 보니 뭔가 의식을 잃을 때만 해도 삶을 포기했었는데 어쩐지 지금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데 문득 자신의 몸이 좀 이상하게 보였다.
 겨우 23살인 박동춘은 175cm에다 100kg이 훨씬 넘어가는 넉넉한 몸집을 가진 배불뚝이였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툭 튀어나와 있어야 할 배가 어디로 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자신의 발은 배로 인해 가려져 보이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찢어진 운동화가 잘 보인다.
 순간 서늘한 느낌이 뒷골을 스쳤다.
 어쩌면 뱃속의 내장이 어딘가 흘러 버려 홀쭉해졌는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아까 그 검은 액체는 자신의 몸속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쏴아.
 다시 한번 소름이 온몸을 핥고 지나갔다.
 덜덜덜.
 자신의 몸을 살필 엄두가 나지 않아 잠시 그렇게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그리고 곧 마른침을 삼킨 뒤 용기를 내어 손을 배 쪽으로 뻗었다. 물론 눈을 꼭 감은 채.
 너덜너덜한 셔츠 사이로 손이 들어가 배를 만졌다.
 꿀꺽.
 어딘가 상처가 심하게 나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그렇게 배 주변을 더듬더듬 만져 보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무척이나 매끈한 피부는 그렇다 치더라도 배에 있는 이 울퉁불퉁한 굴곡은 뭐란 말인가.
 “어?”
 그러고 보니 손을 아무리 더듬거려 보아도 배에 상처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서둘러 옷을 걷어 올렸다.
 그런데 어찌 된 것인지 튀어나와 있던 배는 온데간데없고 날씬한 허리에 복근이 선명하다.
 “이게 내 배라고?”
 놀란 동춘이 입을 떡하니 벌렸다.
 살아생전에 복근이라는 것이 자신의 몸에 있다는 것을 처음 본 것이다.
 다시 한번 자신의 배들 더듬거렸다.
 역시 복근이 맞다.
 군살 따위는 만져지지도 않았고, 더불어 복근의 모양도 꽤나 선명하다.
 잠시 멍한 상태로 있던 동춘이 얼굴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
 믿을 수가 없었다.
 어릴 적 여드름을 잘못 관리한 덕에 그의 얼굴은 심할 정도로 우둘투둘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여드름돼지, 아니면 귤껍돼지였다.
 그런데 그렇게 거칠던 피부가 여인의 살결처럼 부드러웠던 것이다.
 “······우째 이런 일이!”
 믿기지가 않았다.
 복근도 그렇고, 얼굴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으로 부드러운 피부도.
 역시 죽은 것일까?
 어쩌면 지금은 그저 죽은 자의 꿈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얏!”
 자신의 볼을 꼬집자 곧바로 전달되는 고통.
 귀신도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너무 정신이 맑다. 아니, 너무 맑으니까 아닐 수도 있다.
 이렇게 맑은 정신을 경험해 본 일이 과연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새로운 느낌이었다.
 뭔가 혼란스러워 정신이 없었지만 곧 강제로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감각에 이질적인 것이 감지되었기 때문이었다.
 ‘감각에 감지되었다고?’
 그러고 보니 자신의 감각이 주변 상황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당장은 이해할 수 없지만 일단 자신에게 뭔가 다가온다는 사실은 분명하다고 확신이 든 이상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곳을 향했다.
 그리고 곧 암흑 속에서 두 개의 붉은빛이 떠올랐다.
 ‘눈동자?’
 그리고 곧 그 빛의 주인인 괴생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헙!”
 그것을 본 동춘은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켰다.
 그의 눈에 보이는 도마뱀처럼 생긴 몬스터, 크기는 어지간한 악어보다 더 커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놈이 풍기는 죽음의 냄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렇게 마주 보는 긴장된 상황.
 그리고 곧 도마뱀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둔해 보이는 몸집에 비해 월등히 빠른 움직임이었다.
 순간 동춘이 반사적으로 빠르게 물러섰다.
 그런데.
 “흐억!”
 자신의 생각을 월등히 넘어서는 속도로 인해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몸이 가벼워진 것 때문에 발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몸이 거침없이 튕겨 나간 탓이다.
 동춘의 예상외 움직임에 반응한 도마뱀 몬스터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파파파팟.
 빠르게 물러나던 동춘의 등 뒤에 벽이 나타났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상황.
 그때 동춘을 쫓아오던 도마뱀이 거대한 아가리를 쩍 벌리며 덮쳐들었다.
 순간 생명의 위기를 느낀 동춘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날렸다.
 팟!
 가볍게 떠오르는 동춘.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도약력은 엄청났다.
 가볍게 뛰었음에도 5미터 이상 몸이 떠 오른 것 같았다.
 콰앙!
 동춘이 사라진 벽에 주둥이가 틀어박히자 사방으로 바위의 파편이 튀었다.
 하지만 놈은 그런 충격에도 별다른 상처를 입지 않고는 곧바로 동춘이 떠오른 방향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는 다시 동춘이 떠 있는 곳으로 향이 몸을 던졌다.
 거대한 놈의 몸이 고무공처럼 탄력 있게 뛰어올랐고 다시 아가리가 쩍 벌어졌다.
 동춘은 곧바로 허공에서 몸을 수평으로 만들며 발을 뒤쪽에 있던 벽을 힘차게 디뎠다.
 팟!
 간발의 차이로 도마뱀의 공격을 피해 내며 다시 20여 미터를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곧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이, 이거 뭐야?”
 자신이 한 행동임에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심결에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움직여질 거라고는 생각을 전혀 못 했던 탓이다.
 마치 헐리웃 영화의 히어로라도 된 기분이었다.
 크렉크렉.
 거대 도마뱀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번에 걸린 먹이는 생각 이상으로 재빨라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동춘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근처에 있던 자신만 한 바위덩이를 붙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힘껏 들어 보았다.
 “된다!”
 놀랍게도 자신보다 월등히 무거워 보이는 바위를 가볍게 들어 올리는 괴력을 보였다.
 물론 이 따위 바위로 상대할 수 있는 놈은 분명 아닐 테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헌터라는 초인들이 상대하는 몬스터이니 만큼 맨몸으로 싸워 이기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쩐 일인지 질 것 같지 않았다.
 방금 자신의 움직임만 해도 일반인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어쩌면 지금 환각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자신의 이런 모습 자체가 현실적이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그냥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지.”
 당연히 이런 능력을 가진 이상 힘없이 당해 줄 마음 따윈 없었다.
 도마뱀이 빠르게 달려들더니 아가리를 쩍 벌리며 동춘을 공격했다. 동춘은 가볍게 놈의 이빨을 피해 내고는 곧이어 손에 들린 바위덩이를 힘껏 휘둘렀다.
 콰아앙!
 바위가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하지만 동시에 도마뱀도 그 충격에 의해 뒤로 나동그라졌다.
 크에엑!
 놈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더니 엎어진 채로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적지 않은 충격에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동춘에게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돌덩이가 몹시도 약하다는 느낌이랄까.
 어쩌면 자신의 주먹이 더 쌜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하면서도 위험한 느낌.
 그사이 정신을 차린 도마뱀이 크르륵거리며 다시 동춘에게 달려들었다.
 긴가민가하는 표정의 동춘이 엉겁결에 주먹을 휘둘렀다.
 쐐애애액!
 뻐어억!
 키에에엑!
 뭔가 묵직한 느낌이 주먹을 통해 전해져 왔다. 그와 동시에 뭔가 단단했던 것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 같은 느낌.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도마뱀의 두개골을 부셔 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철푸덕.
 동춘의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진 도마뱀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곧 전신을 부르르 떨더니 축 늘어져 버렸다.
 “마, 말도 안 돼!”
 초인이라는 헌터들이 아이템이라는 각종 무기를 사용해 잡는 괴물이 바로 몬스터다.
 그런 놈을 맨주먹으로 때려잡아 버린 것이다. 그것도 가볍게.
 이게 만약 꿈이라도 너무 오바인 상황이다.
 그래서 자신의 볼을 쌔게 꼬집어 봤다.
 “아야.”
 이번에도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결국 이제까지 일은 꿈도 환상도 아닌 것이다.
 “이, 이게 도대체······?”
 황당함에 잠시 그렇게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리고 곧 정신을 차린 그는 쓰러져 있는 도마뱀에게 다가갔다.
 거짓말 같지만 죽었다는 건 분명하게 느껴졌다. 어째서 그런 것이 느껴지는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그냥 알 수 있었다.
 문득 자신에게 뭔가 큰 변화가 생긴 것만은 분명했다. 어쩌면 사람들이 로또처럼 가끔 겪는다는 각성을 우연히 하게 된 일인지도 몰랐다.
 헌터라니 꿈에도 그러던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아무도 없는 위험한 곳에서의 각성이라니, 행운인 듯하면서도 어쩐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바깥세상을 구경해 보지도 못하고 뼈를 묻을지도 모르니까.
 쩝.
 동춘은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잡생각을 하다 곧 혀를 길게 빼물고 죽어 있는 도마뱀을 내려다보았다. 이번에도 그의 감각에 뭔가가 걸렸다.
 “······?”
 이번엔 주변에서가 아닌 몬스터 거대 도마뱀의 몸속에서 느껴진 것이라 살짝 갸웃거렸다.
 그리고 다시 놈의 살폈다.
 확실히 놈의 몸에서 뭔가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이 뭘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반응하며 움직였다.
 우우둑.
 도마뱀의 기다랗고 날카로운 발톱을 과격하게 뜯어내 버렸다. 그리고는 그것으로 기이한 기운이 느껴지는 도마뱀의 몸통 부위에 박아 넣었다.
 푸슉.
 발톱으로 몸을 뚫은 뒤 곧바로 길게 찢어 버렸다. 동시에 발톱은 던져 두고 맨손으로 도마뱀의 몸속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도마뱀의 몸속을 휘젓던 동춘의 손이 곧 멈추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동춘이 이내 자신의 손을 뽑아 냈다.
 도마뱀의 피가 타고 흐르는 손에는 붉은색의 손톱만 한 보석이 들려 있었다.
 그 순간 동춘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었다.
 마나석.
 TV방송이나 인터넷에서는 많이 봤지만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자신이 알기론 몬스터의 몸속에서 가끔 발견되는 희귀한 보석이었다.
 그런 마나석을 자신은 어떻게 알고 정확히 몸속에서 찾아낸 것일까?
 하지만 놀랄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곧바로 그것으로부터 에너지를 손바닥으로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뭔가 뜨거운 것이 손을 통해 아랫배로 이동해 가기 시작했다.
 “흐엇!”
 순간 뭔가 떠오르는 생각.
 분명 노인의 손에서도 느껴지던 바로 그 감각이었다.
 그제야 그 노인이 뭔가를 준다던 것이 어쩌면 지금 자신의 이 비정상적인 능력의 원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 에너지가 들어차자 붉은 보석이 빛을 잃었다.
 동춘은 뱃속이 요동치자 반사적으로 그 자리에 본능적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몸속에 들어온 뜨거운 에너지를 정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분의 시간이 흐르고 나자 평온해진 얼굴로 다시 눈을 떴다.
 이제야 자신의 몸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던 노인.
 아마도 자신에게 그 모종의 힘을 주고 해골로 변한 것이리라.
 지금 당장은 힘의 진정한 정체는 모르지만 자신이 각성자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더불어 자신의 외모 변화에 그것이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도.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 제자라는 말을 한 연유도 알 것 같았다.
 오랜 세월 동안 얻은 힘을 모두 자신에게 전수, 아니 그냥 전해 주었으니 그렇게 부른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동춘은 해골로 변해 버린 노인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앉은 채로 있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곧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저 아무런 도구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작은 작은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는 것처럼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곧 일정한 크기의 구덩이가 만들어지자 노인의 뼈를 조심히 안아 들고는 그 안에 눕혔다.
 “편히 쉬십시오. 어르······ 아니, 스승님.”
 자신에게 기연을 내려준 은인이니 이젠 스승으로 못 부를 이유 따윈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흙을 덮고는 절을 했다.
 ‘나가게 해 주세요.’
 ‘내 것을 받는다면 그것은 쉬운 일.’
 스승의 말을 떠올리던 동춘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떨어진 곳으로 짐작되는 구멍이 보인다.
 하지만 왜인지 노인의 말처럼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벽과 높은 돌기둥, 바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들을 세심하게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곧바로 몸을 날렸다.
 팟.
 먼저, 가장 큰 바위 위로 점프.
 그리고 그 탄력을 이용해 벽을 박찼다.
 타탓.
 벽의 돌기 몇 곳을 박차며 다시 뛰어오른 뒤 천장 구멍 근처에 있던 종유석을 붙들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매달린 채 몸을 그네처럼 흔들고는 다시 몸을 공중으로 날렸다.
 “흐앗!”
 팟.
 몸이 자신의 계산대로 정확히 날아갔다. 그리고 구멍까지 떠오른 그가 손을 뻗어 구멍 주변을 붙잡았다.
 와르르.
 그러자 붙잡았던 부분이 무너졌다.
 하지만 빠른 손놀림으로 주변을 옮겨 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연속으로 무너지던 현상도 멈추었다.
 “휴우.”
 다행이라는 생각에 한숨을 쉬고는 곧바로 구멍 밖으로 몸을 날렸다.
 몸이 가볍게 구멍을 통과하며 위로 튀어 오르더니 이내 바닥에 가볍게 착지했다.
 탁.
 “으하하하. 성공이야.”
 동춘은 순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에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크르르르르.
 크르르.
 주변에 잔뜩 모여 있는 지옥늑대들을 보고는 동춘은 그대로 경직되고 말았다.
 “이런, 젠장!”
 자신이 떨어지기 전 어떤 상황이었던 것인지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에 잔뜩 있던 시체들은 이미 뼈다귀만을 남긴 채 뒹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동춘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 많은 시체를 늑대 몬스터들이 몽땅 먹어 치운 것이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이런 망할 녀석들.”
 크아아아아앙!
 가장 가까이 있던 지옥늑대 한 마리가 날렵한 움직임으로 동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동춘은 아래로 떨어질 때와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빠아악!
 캐앵!
 반사적으로 휘두른 주먹에 정통으로 대가리를 맞은 지옥늑대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아래에 있던 도마뱀처럼 부르르 떨더니 곧 축 늘어져 버렸다.
 이놈도 결국 주먹 한 방에 죽어 버린 것이다.
 크르르르르.
 지옥늑대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동춘에게 모여들었다.
 그런 상황임에도 동춘은 이상하리만치 침착했다.
 두려움이나 공포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말했다.
 “어서 덤벼라. 개새끼들아.”
 크아아앙!
 캉캉!
 동춘의 도발에 사방에서 달려드는 지옥늑대들.
 그 크기가 송아지에 버금갈 정도라 얼핏 보면 동춘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은 동춘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발군이었다.
 빈틈이 없어 보이는 놈들의 공격 사이를 유유히 피하며 가볍게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퍽, 퍽퍽, 퍼퍼퍽. 퍽. 퍼퍽.
 동춘의 주먹이 달려드는 지옥늑대들의 머리에 여지없이 박혀 들어갔다.
 캐캐캥.
 캥.
 캐엥.
 한 방, 한 방에 힘없이 나가떨어지는 지옥늑대들.
 곧 놈들도 결국 제일 먼저 동춘의 주먹에 제물이 된 놈과 같은 처지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모두 때려눕혔더니 진짜가 나타났다.
 크르르르르르.
 크기부터 일단 주변을 압도했다.
 새하얀 털에 이마부터 꼬리까지 이어진 붉은 털이 특징인 지옥늑대의 보스.
 크기는 어지간한 승용차보다 더 큰 느낌이라 위압감이 상당했다.
 크아아아앙!
 놈이 쏘아 내는 피어.
 그러나 동춘은 가볍게 그것을 슬쩍 흘려 버렸다.
 “······?”
 반사적으로 자신이 한 일이었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지 따위는 그냥 알 수 있었으니까.
 크르르르르.
 당연히 자신의 피어에 영향을 받을 줄 알았던 인간이 멀쩡하자, 지옥늑대 보스가 더욱 흉성을 터뜨리더니 곧바로 거대한 몸집을 날렸다.
 크아아아아앙!
 파파팟!
 커다란 덩치와 다르게 엄청난 스피드로 동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동춘의 표정은 그저 평온할 뿐, 아까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었다.
 크아아아앙!
 콱!
 놈의 이빨이 동춘의 몸에 막히려고 하던 찰나의 순간.
 몸을 가볍게 틀어 그것을 피해 냈다. 그러자 곧이어 보스 늑대의 앞발이 휘둘러졌다.
 부우웅.
 그러나 이번에도 그 공격을 흘리며 손을 뻗어 그것을 놈의 앞발에 달려 있는 거대한 크기의 발톱 하나를 가볍게 쥐더니 그대로 돌려 버렸다.
 꽈득!
 캐에에엥!
 발톱의 회전과 함께 순식간에 뜯겨 나가자 몬스터의 앞발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덕분에 놈이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툭.
 동춘의 손에서 뭔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방금 놈의 앞발에서 뽑아 낸 칼처럼 날카롭고 커다란 발톱이었다.
 그리고 보스 몬스터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동춘은 놈에게 빠르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확실히 보스라 다른지 곧바로 몸을 벌떡 세웠다.
 크아앙!
 갑자기 몸을 일으킨 보스 늑대가 그런 동춘을 향해 다시 앞발을 휘둘렀다. 이번엔 상처를 입지 않은 다른 쪽이었다.
 부우웅.
 그러나 이번에 그 앞발을 가볍게 손으로 쳐내고는 몸 쪽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놈의 몸 가운데를 향해 오른쪽 주먹을 내질렀다.
 퍼어엉!
 강렬한 폭음이 한 번 크게 울리더니 캐앵 하는 소리와 더불어 입안에서 피를 잔뜩 쏟아 낸다. 그리고 두 번째 주먹이 다시 같은 곳에 꽂혔다.
 퍼어어엉!
 이번엔 소리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귀와 코에서도 피를 분수처럼 뿜었다. 더불어 눈알마저 바깥으로 튀어나와 버리더니 곧 바닥을 굴러 버렸다.
 털푸덕.
 그 순간 동춘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이 죽어 널브러진 보스 늑대의 사체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자신이 놈을 죽인 건 사실이지만 자신의 그 모든 움직임은 의식하지 않은 그저 반사적인 행동에 불과했다.
 “내가 정말로 헌터가 된 건가?”
 몬스터를 평범한 인간이 잡을 수는 없다.
 물론 강력한 화력의 도움을 받는다면 하급 정도는 잡을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맨손으로 잡을 수 있은 인간이 있다면 그건 헌터밖에 없다. 그것도 일반 헌터가 아닌 제법 등급이 높은 헌터라야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동춘은 그저 일반인에 불과해 헌터들의 정확한 사정 따위는 알지 못했다. 그저 보통의 상식으로 생각한 것이다. 어쩌면 방금 싸운 놈들이 생각 이상으로 낮은 등급의 몬스터일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그런 것을 생각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늑대 사체 주변에 떨어져 있던 붉은색 회오리 문양의 돌조각을 발견한 것이다.
 사진으로 본 적 있는 귀환석이었다.
 사용법은 알고 있었다.
 귀환석에 에너지를 주입하면 던전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 정도는 말이다.
 물론 에너지를 어떻게 주입할 거냐에 대해선 그냥 알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귀환석에 에너지를 집중하려다 문득 보스 늑대의 오른쪽 앞다리 연결 부위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도마뱀의 몸속에서 느꼈던 바로 그것이었다.
 동춘은 곧바로 보스 늑대의 커다란 송곳니를 뽑았다.
 푸슉.
 크게 힘을 준 것 같지도 않은데 마치 썩은 이빨처럼 가볍게 뽑혀 나왔다.
 그것을 들고는 앞다리 부근을 찢어 손을 푹 찔러 넣었다.
 그리고 지옥늑대 보스의 몸속에서 나온 건 예상대로 마나석이었다.
 그런데 도마뱀의 몸속에서 나온 것보다는 조금 작은 것 같아 보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른 늑대들을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느껴지는 건 없었다.
 애초에 마나석이라는 것이 귀해 보스가 아닌 놈에게서는 굉장히 드물게 나온다는 건 알고 있었다.
 일단 마나석을 다시 손에 올리고 집중하자 에너지가 손을 통해 아랫배로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확실히 처음보다는 그 뜨거움이 덜했다.
 곧바로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것을 가라앉혔다.
 몸 구석구석을 도는 듯한 뜨거운 기운.
 처음엔 멋도 모르고 정신없이 해 버린 상황이라 잘 몰랐지만 다시 한번 해 보니 꽤나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뜨고 일어서자 몸이 더욱 가벼워진 것 같았다.
 일단 이곳에서 먼저 빠져나가자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더불어 몬스터 사체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동춘이 입맛을 다셨다.
 “가지고 나갈 방법이 없으니.”
 몬스터의 사체를 바깥으로 반출하기 위해선 특수한 재질의 가방이나, 박스 따위가 필요하다. 하지만 맨몸의 동춘에게 그런 것이 있을 리도 없고, 애초에 일반인인 그가 가지고 있을 만한 물건도 아니었다.
 “하는 수 없지.”
 어쨌거나 자신은 이미 몬스터를 잡을 수 있는 헌터로 각성한 모양이니 기회는 다시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곧 주머니에서 귀환석을 꺼내고는 그것에 집중했다.
 팟!
 주변의 사물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곧 어두워졌다. 그리고 물속을 통과하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전신에 덮쳐 오더니 곧 다시 시야가 밝아졌다.
 
 
 # 무면허 헌터
 
 “어?”
 그런데 동춘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예상 밖이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상황······?”
 그가 서 있는 곳은 도시 한복판, 거기다 왕복 도로 8차선의 한가운데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보다 황당한 건 지금 주변의 상황이었다.
 마치 이곳에 엄청난 폭발이라도 있었다는 듯 주변이 완전 쑥대밭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그가 있는 장소와 거리가 떨어져 있긴 했어도 많은 수의 헬기와 군 병력 그리고 검은 옷들로 무장한 헌터들이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는 게 보였다.
 번쩍. 번쩍.
 헌터들이 마나탄을 쏘아 대며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그제야 동춘은 자신이 버스에서 잠든 동안 일어난 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던전 폭발.
 일명 ‘몬스터 웨이브’라 불리는 현상.
 던전이 처음 생겨날 때나 혹은 던전의 에너지가 불안정할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그 폭발력은 가히 어마어마했다.
 동춘의 가족 역시도 10여 년 전에 일어난 던전 폭발로 인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 사건 이후로 줄곧 홀로 지내 왔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튼 자신이 잠든 사이에 던전 폭발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버스가 빨려 들어간 모양이었다.
 일반적으로 던전 폭발이 일어나면 주변의 대부분은 파괴되고 만다. 하지만 이렇게 가끔 던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현상이 있기도 했다.
 요즘엔 던전 에너지 감지 장치가 개발되어 던전이 새로 생겨나거나 에너지가 과하게 밀집될 경우, 전국에 있는 감지 센터에서 최소 12시간 전 알림 문자나 사이렌을 통해 알려진다.
 그랬기 때문에 이런 재앙이 생기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아예 없는 일도 아니라 이렇게 재수 없이 폭발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에서는 발생한 일이 없었지만 말이다.
 일단 동춘은 자신의 복장부터 해결을 해야만 했다.
 던전 속에서야 아무도 없었으니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이곳은 다르다. 일단 도시로 나온 이상 사람 꼴은 하고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곧바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건물들 사이에서 입을 만한 옷가지라도 발견하기 위함이었다.
 “······?”
 근처에서 의외의 차량을 발견했다.
 건물을 처박고 뒤집혀 있던 검은 방탄승합차의 뒷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게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헌터 팀들이 주로 사용하는 차량이라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몬스터의 습격에 당한 모양인지 주변에 피가 낭자하게 뿌려져 있었다.
 그의 기감에 걸리는 건 없었지만 일단 조심스럽게 뒤집힌 차에 다가갔다.
 운전석에는 목이 뜯겨져 즉사한 검은 슈트의 사내가 핸들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뒷문 쪽으로 다가가자 활짝 열려진 문으로 박스나 장비들이 잔뜩 쏟아져 나와 있었다. 바깥으로 튀어나온 것들 살피니 그중 검은 슈트가 몇 벌이 보였다.
 서둘러 자신이 걸친 누더기를 벗어 던지고 그중 적당한 것 하나를 집어 들었다. 검은색 가죽으로 만들어진 옷처럼 보였다. 그리고 표면에는 자잘하게 달려 있는 각종 금속 조각들의 정확한 기능은 몰랐지만 일단 그것을 주워 들었다.
 ‘마침 잘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이 전쟁터 같은 장소를 빠져나가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물론 이런 옷이 없다고 해도 빠져나갈 자신은 있었지만 옷이 멀쩡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팬티 바람으로 검은 헌터 슈트를 들어 올렸다.
 아래위가 일체형이라 마치 정비복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디자인 자체는 별게 없어 보이지만 옷 자체는 가볍고 크기도 여유 있어 입는 데 불편함은 없었다. 그런데 입자마자 쉭쉭거리며 자동으로 조여 주는 느낌이 드는가 했더니 어느새 몸에 딱 맞게 되었다.
 마치 옛날 영화 ‘백 투 더 퓨처’ 2탄에 나왔던 미래의 신발과 옷처럼 말이다.
 “이거 굉장하네.”
 헌터들의 슈트는 엄청난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20층 높이에서 떨어져도 몸을 보호할 정도라는 이야기는 들었던 것 같다. 물론 일반인 기준으로 말이다. 어차피 헌터들이야 맨몸으로 그 높이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을 정도의 초인이었으니까.
 아무튼 옷을 챙겨 입고 나자 생각 이상으로 가볍고 움직임이 좋아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주변에 굴러다니던 얇은 헬멧도 머리에 썼다. 오토바이 헬멧보다 훨씬 작았음에도 어지간한 총탄마저 막아낼 정도로 충격에 강한 놈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래서 꽤난 갑갑할 거라 생각했는데 이것도 생각 이상으로 가볍고 편했다. 물론 안 쓴 것보다야 좋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꽤나 통풍이 잘되고 쾌적했다.
 동춘은 서둘러 이곳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곧바로 달리기 시작했다.
 파아앗!
 “으헉!”
 뛰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튀어 나가니 너무 놀라 순간적으로 멈추고 말았다.
 “뭐, 뭐야?”
 던전에서 이상한 일을 겪고 나서 헌터 같은 능력을 각성한 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속도엔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일단 가볍게 뛰자.”
 그렇게 생각하며 천천히 뛰었음에도 평소 자신의 전력 질주보다 월등히 빨랐다. 거기다 지치지도 않았다. 완전 저질 체력이었던 기존의 자신을 생각해 보니 정말 엄청난 변화가 생긴 건 분명했다.
 던전에 끌려들어 간 건 분명 불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스승을 만나 그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건 하늘이 내린 기연이 분명했다.
 진정한 천운.
 로또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뭔가 동춘의 기감에 거슬리는 것이 걸렸다. 그리고 동시에 소리가 들려왔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처절하게 울부짖는 여자의 음성이었다.
 가볍게 조깅하듯 뛰어가던 동춘이 순간 멈추고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돌아보았다.
 제법 거리가 멀어 보였지만 동춘의 눈에는 그곳의 상황이 눈에 완벽히 들어왔다.
 소리 지르는 젊은 여자와 주변에 쓰러진 사람들의 모습.
 그곳에 지옥늑대 한 마리가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순간 동춘은 생각할 틈도 없이 그곳을 향해 달렸다.
 파팟!
 급한 마음에 전력을 다하자 그 멀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 들었다.
 “엇!”
 예상보다 너무 빨라 버려 다급한 나머지 지옥늑대를 향해 아무렇게나 주먹을 휘둘렀다.
 퍼어억!
 캐에에엥!
 주먹에 느껴진 묵직한 느낌.
 “어어!”
 서둘러 발을 멈추었지만 관성으로 인해 쉽게 속도가 줄지 않았다. 덕분에 앞에 쌓여 있던 자동차들 사이로 뚫고 들어가 버렸다.
 콰아아앙!
 승용차 몇 대가 그 충격에 부서져 나갔고 동춘의 몸은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하지만 이내 그곳에서 머리를 아니 헬멧을 긁적이며 나오는 동춘이었다.
 아직 자신의 육체적 능력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가 없었던 터라 조금 민망했던 것이다. 나름 도와준답시고 나섰는데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당장 확인해 봐야 할 일이 있었다.
 서둘러 방금 소리치던 여자가 있던 장소로 갔다.
 “아······.”
 지옥늑대의 머리통이 완전히 산산이 조각난 상태로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아직 그런 사정을 모르는지 공포로 인해 바닥에 엎드려 덜덜 떨고 있었다.
 동춘이 여자에게 다가갔다.
 “괜찮아요?”
 “꺄아악!”
 “······!”
 곧 여자는 방금 전의 목소리가 몬스터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인식하였는지 이내 고개를 들어 돌아보았다. 그런데 여자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고 머리는 꽤나 급박했던 상황을 말해 주듯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괜찮아요? 다친 데는······?”
 “······.”
 순간 여자는 말을 잃었는지 멍한 얼굴로 동춘을 바라보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신에게 달려들려 하던 늑대 몬스터를 찾는 것이리라. 그런데 바닥에 머리가 터진 녀석을 확인하더니 그제야 안심을 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눈물을 지저분해진 소매로 닦으며 고개를 숙인다.
 “고, 고맙습니다.”
 “아, 뭘요.”
 “저기, 헌터님.”
 순간 동춘은 흠칫하고 놀랐다.
 자신은 아직 헌터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반인이었다. 그럼에도 헌터라는 호칭에 등골이 오싹해져 왔다.
 헌터 사칭죄.
 일종의 무면허 운전처럼 헌터도 사칭할 경우 처벌이 따른다. 만약 그러한 일이 발각될 경우 최소 10년 이하의 징역에······.
 “우리 엄마 좀 살려 주세요.”
 여자가 울먹이며 말하자 순간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잡념이 사라져 버렸다.
 “······네?”
 “빨리, 병원에 가야 해요. 제발요.”
 순간 동춘은 그녀가 엎드린 채로 부둥켜안고 있던 사람이 그녀의 어머니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에 이리저리 상처가 난 상태로 의식을 잃은 모습의 여자.
 죽은 게 아니라 의식을 잃었다는 걸 동춘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의식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급한 상황.
 그런데 동춘의 예민한 감각이 그녀를 살렸다.
 ‘생명의 빛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단번에 그것까지 알아차렸다.
 이대로 병원까지 옮긴다고 하더라도 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어쩌지? 설명을 해 줘야 하나?’
 통곡하고 있는 여자를 보니 도저히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저기······.”
 “제발 살려 주세요. 염치없다는 건 알지만 제발 엄마를 병원으로 데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
 여자의 눈물을 보니 더 말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른 척 이곳을 도망치듯 떠나는 건 몰인정하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몇 가지 아련한 기억들.
 뭔지는 모르지만 여자의 어머니를 어쩌면 죽지 않게 도와줄 수는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깐만요.”
 동춘이 몸을 숙여 그녀 쪽으로 다가가자 여자가 몸을 비켜 주었다.
 여자의 어머니 몸을 대충 살피더니 그녀의 손목을 살짝 쥐어 보았다. 마치 한의사처럼 진맥하는 자신이 순간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지금은 잡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눈동자를 살핀 뒤 몸의 이곳저곳을 만져 보고는 대충 알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병명 따위는 모르지만 응급처치는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이다.
 곧바로 그는 쓰러져 있는 여자의 몸 몇 군데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들이더니 곧이어 몸을 옆으로 돌리고는 등을 툭 쳤다.
 그러자 곧바로 반응이 왔다.
 “콜록! 콜록!”
 의식을 잃었던 중년의 여자가 곧바로 검붉은 피를 뱉어 내며 기침을 하자 딸이 놀라며 소리쳤다.
 “엄마! 괜찮아!”
 “······수, 수경이니?”
 중년의 여자가 힘겹게 눈을 뜨고는 말하자, 딸이 기쁨에 흐느꼈다.
 “엄마······.”
 사실 무작정 살려 달라고 말하긴 했지만 본능적으로 살아나기는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헌터가 무슨 능력을 부렸는지 갑자기 의식을 차렸으니 기쁨에 눈물이 다시 터진 것이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이동합시다.”
 하지만 안전하지 않은 곳에서 이렇게 한없이 울고만 있을 순 없다. 그리고 아직 중년 여성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하기 때문에 빨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동춘은 그녀의 어머니를 들쳐 업었다.
 전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다.
 “고, 고맙습니다. 헌터님.”
 여자는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연신 고맙다며 머리를 숙인다.
 하지만 동춘은 계속 헌터님이라고 말하는 게 조금 신경 쓰였다. 그러나 그런 건 일단 이곳을 벗어나고 생각할 일이었다.
 서둘러 소란스러운 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혼자였다면 빠른 속도로 이동이 가능했겠지만 동춘을 따르는 여자 때문에 조금은 더뎠다.
 먼 곳에서 헌터들과 군인들이 몬스터들과 싸우는 모습이 간간히 눈에 보이자 몸을 숨기고 조심스럽게 계속 이동했다.
 일단 주변엔 이질적 존재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다행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폭발의 여파가 미치지 않은 장소까지 도달하자 주변에 잔뜩 119 구급차가 널려 있었고, 주변에서 몰려드는 부상자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여기요!”
 동춘이 소리치고는 구급차 쪽으로 다가가자 분주하게 움직이던 구급대원 하나가 움찔거렸다.
 갑자기 나타난 헌터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이분 좀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업고 있던 중년의 여성을 가리키자 주변에 있던 대원들이 서둘러 들것을 밀고 달려왔다.
 동춘은 여자를 곧바로 들것에 눕혔다. 그러자 그들은 서둘러 구급차에 그녀를 실었다.
 중년 여성이 구급차에 실리자 그녀의 딸은 그제야 안심하며 동춘에게 다가왔다.
 “정말 고맙습니다. 헌터님. 이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게요.”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다시 숙여 인사했다.
 동춘은 살아 오면서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를 이렇게 많이 받아 본 건 처음이라 조금 얼떨떨해했다.
 그사이 여자는 구급차에 같이 올라탔고, 그것을 확인하자 곧바로 출발했다.
 “휴우, 대충 끝인가?”
 떠나가는 구급차를 바라보며 동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어째 주변의 공기가 심상치 않았다. 모두가 자신을 신경 쓰고 있는 듯한 느낌.
 자신의 복장 때문에 모두 헌터로 오해하고 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쪽 편에 자신과 비슷한 복장을 한 진짜 헌터들의 무리가 검은 차량에서 내리더니 서둘러 장비를 챙겨 전쟁터와 같은 그곳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 진짜 곤란하네.’
 원래 목적은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얼떨결에 이곳까지 와 버리는 바람에 이대로 집으로 가는 게 좀 뻘쭘해졌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헌터들은 무조건 던전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투입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런 때에 나 몰라라 하며 이곳을 벗어날 배짱이 동춘에게는 없었다.
 “크음. 다시 싸움터로 가 볼까?”
 자신이 생각해도 온몸이 오그라들 것 같은 유치한 말을 던졌다. 그리고는 엉거주춤한 움직임으로 진짜 헌터들이 가는 방향으로 슬금슬금 따라가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을 벗어나면 적당한 장소에서 숨어 이동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곳을 벗어나면 이 빌어먹을 헌터 옷도 벗어 버릴 참이었다.
 안전도 좋지만 잘못하면 빵살이를 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헌터들을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그런데 앞의 무리 중 한 명이 동춘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이봐! 빨리 따라붙어!”
 그 때문에 다른 헌터들의 시선도 자동적으로 뒤쪽을 향했다. 그 때문에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젠장, 들켰다.’
 뭔가 상황이 꼬여 간다는 생각에 미간에 골이 패였다.
 “어? 마크가 없는데? 우리 팀이 아닌가 본데?”
 “그러네.”
 “솔플인가?”
 “솔플하기엔 좀 어설퍼 보이는데?”
 “팀원들을 잃고 혼자 남은 거겠지.”
 뭔가 자기들끼리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조용!”
 그렇게 말한 리더로 보이는 사람이 슬쩍 뒤쪽을 흘끔 보더니 소리쳤다.
 “이쪽으로 붙어요. 혼자 이동하는 건 위험하니까.”
 “아, 네.”
 이상하게 헌터라는 작자들에게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그것이 일반인의 숙명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소리에 다시 팀원들이 궁시렁거린다.
 “아, 씨. 다른 사람 끼면 곤란한데.”
 “떨거지를 끼워 넣으면 어쩌겠다는 거야?”
 “설마 팀 등록은 하지 않겠지.”
 동춘이 입은 복장은 그들에 비해 조금 심심한 느낌이 들었던 탓인지 대놓고 무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 들린다. 썩을 놈들아.’
 그들 입장에서도 반갑지 않을 테지만 동춘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아직 헌터들이라는 이 특별한 계급을 가진 인간들에게 가지는 초라함이랄까 그런 마음 때문에 쉽게 반응하기가 어려웠을 뿐이었다.
 아무튼 일단 이들에게 들켜 버렸으니 적당히 싸우는 도중에라도 몸을 빼자고 생각하며 그들을 따라갔다.
 물론 자신의 능력을 이미 어느 정도 느낀 이상 몬스터와 싸움을 시작한다고 해서 그리 크게 두렵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전쟁터 같은 이 상황이 아직 적응되지 않았을 뿐이었고, 자신이 헌터가 아닌 이상 발각되면 좋은 것도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어찌 되었건 자신은 헌터 자격이 없는 무면허 상태, 거기다 지금 입고 있는 헌터 슈트도 정당하게 얻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조금은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던 그때 헌터 집단이 첫 번째 몬스터와 조우했다.
 캬오오오오!
 아이언 레오파드.
 표범 주제에 피부가 은색 금속을 감싼 듯 번들거려 붙여진 이름이었다. 물론 그 피부는 어지간한 금속에 비할 바가 아닌 건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언 레오파드는 ‘M3등급’ 정도의 몬스터다. 굳이 비교하자면 지옥늑대가 ‘M2’등급이니 그보다는 더 강한 놈이었다.
 등급은 일반적으로 M1등급에서 출발하고 M8 이상이면 대규모 레이드 팀을 꾸려야 상대가 가능한 몬스터다. 그리고 M15등급이 넘으면 재앙 등급으로 분류된다.
 M1―M4 정도가 흔한 몬스터, 그래도 M3이면 꽤나 강한 축이다.
 “생각보다 거물인데?”
 “지옥늑대나 파이어폭스 정도가 많을 거라지 않았어?”
 “그래도 이 정도 녀석은 상대해야지. 그런 잔챙이들은 재미없잖아.”
 “하긴 우리 정도의 팀이 왔는데 M2 이하급이라면 곤란하지.”
 모두 꽤나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며 대형을 갖추었다.
 물론 동춘도 그들이 말한 파이어폭스에 대해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지금 보이는 아이언 레오파드 역시도 그리 신경 쓸 만큼 무서운 놈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이전의 그였다면 모를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신의 강함은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헌터 몇 명이 크로스보우를 겨누더니 검고 굵은 볼트를 발사했다.
 몇 발의 볼트가 아이언 레오파드 향해 날아갔지만 놈은 가볍게 그것을 피해 버렸다. 이윽고 두 번째 볼트 무리가 날아들었으나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기습적인 세 번째 한 발의 볼트만은 피하지 못하고 놈의 머리 쪽에 적중했다.
 펑!
 카오오오오!
 은색 빛을 번쩍이며 놈이 울부짖었다. 그 순간 머리부터 푸른색의 빛을 뿌리는 실이 놈의 몸을 칭칭 감쌌고 동시에 놈을 바닥에 고정시켜 버렸다.
 포획용으로 사용되는 캡쳐볼트, 그러나 일반적으로 몬스터를 그냥 살려 두는 경우는 없었다. 최대한 가죽을 상하지 않게 하고 또 마나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함일 뿐이다.
 펑! 펑! 펑! 펑!
 캬아아아아아!
 헌터들의 마나탄이 놈의 머리에 쏟아졌다.
 이놈의 약점은 머리였고, 머리만 부수면 몸통은 온전하게 보존할 수 있으니까.
 카오오오오!
 그런데 약점이라고 하는 머리마저도 그리 쉽게 부서지지 않는 게 이놈의 특징이었다. 물론 몸의 경우엔 더했으니 이런 식의 사냥법이 아니면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놈이었다.
 과거 이러한 사냥법과 장비가 없었을 땐 아이언 레오파드 하나를 잡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른 적도 있었다.
 펑! 펑! 펑! 펑!
 캬오오오오오!
 수백 발의 마나탄을 머리에 맞고 나서야 겨우 몸이 축 늘어졌다.
 포획용 볼트로 몸을 고정시키지 않았으면 이렇게 간단히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춘도 이런 사냥법에 대해선 그다지 아는 바가 없어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그런 동춘의 행동을 이해했는지 인근에 있던 헌터들이 피식거렸다.
 “아이언 레오파드 사냥은 처음인가 보네.”
 “그러게.”
 “복장을 봐라. 보나 마나 겨우 10레벨 턱걸이한 정도겠지.”
 “하긴.”
 일반적인 각성자들은 1레벨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리고 6레벨이 넘어가면 조금씩 사냥에 투입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보통은 10레벨이 넘어야 나름 헌터라고 인정해 주기 시작한다.
 지금 헌터 무리는 대략 중급 등급의 팀이었고, 그들은 20레벨 이상의 실력자들이었다.
 그런 그들 눈에 비친 보급형 헌터 슈트를 걸치고 있는 동춘이야 그저 그런 수준으로 보였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 데다가 아이언 레오파드 사냥을 보며 감탄하는 듯한 제스처를 보이니 당연히 그런 생각에 확신을 주었을 것이다.
 10여 명의 헌터들이 쓰러진 아이언 레오파드에게 몰려들었다. 이제부턴 몬스터 사체를 해체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곧이어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헬위즐 뼈를 재료로 만든 진동 나이프를 이용해 아이언 레오파드의 몸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아우, 이놈은 다 좋은데 해체가 지랄이야.”
 “사냥보다 이런 게 더 힘들어!”
 헌터들이 투덜거렸다.
 일반적인 몬스터에 비해 강한 가죽이라 고강도의 헬위즐 진동 나이프로도 쉽게 가르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만큼 강한 가죽이기 때문에 가치가 높은 것도 사실이었다.
 십여 명의 헌터들이 거기에 매달려 있는 동안 다섯 명은 주변을 경계했다. 해체 작업 중 갑자기 몬스터의 습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춘은 그저 뻘쭘하게 그들의 모습을 그저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은 이곳을 벗어나기엔 이르다는 판단에 좀 더 그들과 어울리다 적당한 시점에 벗어날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그때였다.
 “몬스터 에너지 반응입니다!”
 팀원 중 분석 장비를 등에 짊어진 사내가 소리쳤다.
 그 때문에 모두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리고 곧바로 반응이 왔다.
 쿠르르르르르.
 바닥에서 진동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땅속이다! 모두 다시 자리 잡아!”
 그들의 리더가 소리치자 해체 작업을 그만두고 모두 자신의 장비를 챙겨 자리를 잡았다. 동춘도 땅속에 움직이는 강한 힘의 존재를 느끼고는 살짝 물러섰다.
 이번 놈은 아이언 레오파드보다 더 강하다고 그의 감각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땅속을 뚫고 거대한 물체가 밖으로 튀어나왔다.
 콰아아앙!
 끄이이이이이!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며 땅속을 뚫고 나온 검은 물체의 정체는 거대 웜 계열의 ‘다크먹웜’이었다.
 헌터들은 경악하면서도 반사적으로 자신들의 무기를 사용해 공격을 시작했다.
 펑! 퍼퍼펑! 퍼엉!
 마나탄이 비 오듯 쏘아졌지만 아이언 레오파드의 사체를 물고 유유히 땅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얼핏 보았지만 크기는 대략 마을버스 정도의 크기.
 갑작스런 상황에 헌터들의 전열이 흐트러졌다.
 “씨발, M4짜리가 갑자기 왜 튀어나와?”
 “지껄이지 말고 빨리 정렬해!”
 다크먹웜이 이렇게 그냥 몬스터 하나 주워 먹고 사라질 리 없다는 알고 있기 때문에 모두 긴장하며 장비를 다시 확인하며 대응 태세를 갖췄다. 놈의 식탐은 무서울 정도니까.
 “빨리 감지기!”
 두 명이 신형 감지기를 사용해 웜 몬스터의 위치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땅속이라 감지가 되지 않았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모두 준비해. 그리고 감지기 계속 확인하고.”
 “네!”
 그리고 곧 그들의 예상대로 바닥에서 다시 다크먹웜이 튀어나왔다.
 콰아아아앙!
 “으아아악!”
 헌터 한 명이 놈에게 습격당하며 땅속으로 끌려들어 갔다.
 그 때문에 모두 당황하기 시작했다.
 던전 폭발이 일어나면 튀어나오는 몬스터도 다양한 편이지만 애초에 던전의 등급은 D3급.
 그렇다면 M3급의 몬스터가 가장 강하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하지만 던전이라는 장소 자체가 워낙 변수가 많은 곳이다. 거기다 몬스터도 항상 던전의 등급에 맞춰 생성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항상 더 강한 몬스터를 염두에 두고 팀을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헌터의 숫자가 넉넉한 것도 아니고,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 것도 아니라 그 점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어느 정도 화력으로 버티며 구원 요청을 하면 된다는 생각도 한몫했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거기다 상대는 단순한 M4급이 아니다.
 대형 웜 몬스터, 특히나 땅속으로 이동하는 상대하기 꽤나 까다로운 종류인 것이다.
 애초에 윗급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준비를 했다 하더라도 이 정도라면 엄청난 피해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쿠르르르르르.
 “또 왔어!”
 동료를 삼킨 놈이 곧 다시 땅위로 검고 거대한 몸집을 드러냈다.
 “빨리 캡쳐볼트를 날려!”
 핑! 핑핑핑! 핑!
 헌터 몇 명이 다크먹웜에게 포획용 볼트를 날렸다. 하지만 놈은 거대한 몸뚱이에 비해 움직임이 빨라 쉽게 명중되지 않았다. 그나마 명중되는 것도 탄성을 가진 피부에 의해 튕겨 나가 버린다.
 “계속 쏘라고!”
 “으아아!”
 헌터들이 소리를 지르며 캡쳐볼트뿐만 아니라 각종 개인 화기를 이용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펑펑펑. 슈슈슈슛. 퍼퍼펑.
 끼우우우우우.
 다크먹웜이 소리를 지르며 헌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해 갔다.
 놈은 헌터를 자신의 사냥감으로 판단 것이다.
 “씨발, 모두 피해!”
 리더 서상규가 소리쳤다.
 하지만 놈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으아악!”
 놈의 거대한 몸이 헌터가 있는 곳을 덮쳤다.
 이번에도 한 명의 헌터가 놈의 입에 덥석 물렸다.
 그나마 놈의 입에는 빨판처럼 흡착력이 있을 뿐 이빨은 존재하지 않아 당장은 목숨이 온전하다. 그래서 입에 물렸을 때 빨리 구출해야 한다.
 하지만 입속으로 완전히 들어가면 그 순간 생존 가능성은 제로가 된다. 입 아래 목구멍에는 강철 칼보다 더 날카로운 이빨들이 최소 수백 개가 모여 있어 삼켜지자마자 순식간에 믹서 속 고기처럼 갈려 버리는 탓이다.
 “으악! 살려 줘!”
 퍼어펑! 펑펑!
 사방에서 마나탄이 날아들어 놈의 몸을 두드렸지만 쉽게 피부를 뚫지 못했다.
 그리고 두 번째 희생자가 다크먹웜의 몸속에 빨려 들어가려던 찰나였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충격파가 놈의 측면에서 터졌다.
 크이이이이이!
 다크먹웜이 강력한 충격에 당했는지 옆으로 허리를 심하게 꺾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 덕분에 입속으로 절반 이상 빨려 들어갔던 헌터가 온몸에 진액을 잔뜩 바른 채로 밖으로 튀어 나갔다.
 털푸덕.
 “쿨럭. 쿨럭.”
 그 모습을 본 헌터들이 마나탄을 다크먹웜에게 쏘며 진액을 잔뜩 뒤집어쓴 동료에게 빠르게 다가가 그를 붙들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런데 허리를 꺾은 채로 소리를 지르던 웜 몬스터가 특유의 피어를 난사했다.
 끼우우우우우우우!
 “끄악!”
 “악!”
 “아아악!”
 피어가 사방으로 퍼지자 헌터들이 고통스러워하며 물러났다.
 피어를 쏘아 대던 놈이 소리를 멈추고는 자신에게 충격을 준 상대를 찾아 머리를 휘저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바로 코앞에 있다는 걸 확인했다.
 밋밋한 검은 슈트의 인간.
 그가 바로 방금 자신에게 엄청난 공격을 가했던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는 흉성을 터뜨리며 바로 달려들었다.
 끼이이이이!
 그 순간 헌터들은 그가 화난 다크먹웜의 제물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물론 덕분에 동료를 구할 수는 있었지만 그가 죽는 걸 막을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다크먹웜의 몸이 검은 슈트의 인간을 덮친 그때였다.
 “······!”
 갑자기 거대한 다크먹웜의 몸이 일직선으로 세워지더니 그대로 백드롭을 당하듯 뒤로 과격하게 넘어지며 처박혔다.
 콰아아앙!
 그 모습을 바라보던 헌터들이 그 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모두 경악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그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현실로 인식되지 않을 정도로 충격을 받은 것이다.
 
 꾸이이잇, 끼이이이.
 조금 전의 충격에 벗어나지 못한 다크먹웜이 머리를 심하게 흔들었다.
 파파팟!
 동춘은 놈이 자신 앞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그 순간을 노려 다시 달려들었다.
 그러자 다크먹웜은 죽음의 공포를 느꼈는지 빠르게 땅속으로 파고들어 가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르르.
 그때 동춘이 반사적으로 오른발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바닥을 향해 사정없이 내려찍었다.
 콰아아앙!
 동춘의 발이 땅속을 파고들었고, 그 충격으로 인해 땅이 올리더니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우왓!”
 “으아악!”
 헌터들이 충격파에 놀라 소리를 지르며 뒤로 밀려 나갔다.
 그 순간 바닥의 진동이 한층 강해지더니 땅속으로 반쯤 파고들어 갔던 다크먹웜이 허공으로 튕겨져 올라갔다.
 비록 그 무게 때문에 높이 떠오르진 않았지만 수 톤에 이르는 놈이 2미터 정도를 튀어 오른 건 엄청난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쿠우웅!
 바닥을 뒹구는 다크먹웜.
 놈의 머리 부분에 있던 검은 점과 같은 눈알들이 튀어나오며 피를 콸콸 쏟고 있었고, 항문 쪽으로는 내장까지 튀어나와 있었다. 완벽한 게 즉사해 버린 것이다.
 그 순간 주변에 흐르는 정적.
 그런데 죽은 다크먹웜의 몸속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동춘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는 곧바로 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놈을 한참 바라보자 주변의 헌터들은 긴장했다. 다크먹웜이 완전히 죽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동춘이 느닷없이 다크먹웜의 껍질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귤껍질을 발라내듯 너무나도 손쉽게 말이다.
 그 장면을 보던 헌터들도 순간 경악했다.
 몬스터의 껍질이라는 것이 그리 간단히 뜯어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라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었던 탓이다.
 그럼에도 저 평범한 슈트의 헌터는 가볍게 그것을 뜯어내 버렸다.
 푸슉.
 곧이어 동춘의 손이 다크먹웜의 몸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단단하면서도 익숙한 느낌의 물체가 잡혔다.
 곧바로 그것을 꺼냈다.
 붉게 빛나는 조그마한 보석.
 역시 마나석이었다.
 동춘은 이제야 자신이 이들에게 얽혀 있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곧바로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다가 아차 싶었다.
 거대한 몬스터의 사체가 남은 것이다.
 “저기요!”
 동춘이 헌터들에게 소리치자 그들의 리더인 서상규가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아, 네.”
 그리고는 서둘러 동춘에게 달려왔다.
 동춘의 활약을 본 상황에서 그의 말을 무시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의 세상은 헌터들이 대접받는 그런 세상, 만찬가지로 헌터들 간에도 서열이라는 게 당연히 존재했으며 그 서열을 가리는 기본 원칙은 강함이었다.
 “이거 사체 말인데요. 대신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네?”
 “저기 제가 좀 바빠서 그런데, 처리 비용의 20%를 드릴 테니까 대신 처리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그제야 동춘이 하려는 이야기를 알아듣고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물론입니다.”
 동춘도 자신이 듣기론 20% 정도가 적당하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것 같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물론 서상규의 입장에서도 20%면 적지 않은 돈이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거기다 돈 이외에 이것을 처리하면서 생기는 또 다른 이윤도 있었으니까.
 “자, 여기 있습니다.”
 서상규가 동춘에게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자신의 팀이 속해 있는 길드인 ‘사이클론’의 카드였다.
 “잘 아시겠지만, 이 카드를 이용하시면 곧바로 처리 내용과 자세한 내역, 그리고 금액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자세한 내용은 몰랐지만 티 내지 않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나중에 천천히 알아보면 되는 것이다.
 “그럼, 좀 부탁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눈에 띄게 공손해진 모습이 거북스러웠지만 자연스럽게 대하고는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가 사라지고 나자 모두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거대한 다크먹웜을 보며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떠들기 시작했다.
 “후아, 도대체 누구지? 딱 봐도 40레벨급 이상의 각성자 같은데?”
 “젠장, 난 숨도 제대로 못 쉬겠더라. 그런 앞도적인 능력이라니.”
 “M4급 몬스터를 1대1로 상대할 정도의 인간이야. 40 이상일지도 몰라.”
 “씨발, 저렇게 강한 인간은 처음 봐.”
 “효섭이 너 아까 존나 씹던데, 괜찮겠냐?”
 “씨발, 너도 맞장구쳤잖아. 누구더러 독박 쓰라고 지랄이야.”
 “야, 솔직히 말은 바로하자. 네가 혼자 떠든 거잖아.”
 “뭐야?”
 소란스러워지자 서상규가 소리쳤다.
 “조용!”
 그러자 주변에 정적이 흘렀다.
 “빨리 사체나 처리를 시작해. 그리고 병호 넌 지원 팀에게 연락해. 대형 차량이 두 대 정도 필요하다는 연락도 하고.”
 그렇게 말하며 서둘러 사체 해체 작업에 돌입했다.
 
 
 # 달라진 인생
 
 “휴우.”
 동춘이 한숨을 내쉬었다.
 헌터들과 어느 정도 멀어지고 나자 긴장이 풀린 것이다. 나름 그곳에서 태연하게 행동하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꽤나 긴장했던 것이다.
 “어우, 가슴 떨려.”
 몬스터와 싸운 거야 그렇다 쳐도 헌터들을 상대로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스스로 생각해도 믿기지 않았다.
 잠시 그렇게 자신을 진정시킨 동춘은 곧바로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옷을 찾아야 돼.”
 이 지역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에 일반인의 복장으로 환복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피신한 건물들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쇼윈도가 완전히 박살 난 의류 상가 건물을 발견하고는 그곳으로 들어가 맞는 옷을 대충 찾아 입고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자신이 입던 헌터 슈트는 일단 쇼핑백에 넣었다. 이곳을 빠져나가면 헌터 자격증을 취득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때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아무리 보급형이라고 해도 헌터 슈트는 기본적으로 가격이 엄청 비싸니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폭발 범위를 벗어나자 곧 주변에 군과 경찰들이 잔뜩 모여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중 경찰 하나가 동춘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괜찮습니까? 다치신 곳이 있다면 병원으로 보내 드릴 겁니다.”
 “아뇨. 전 괜찮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는 그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조그마한 원룸,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도착한 동춘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먼저 샤워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옷을 벗다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기겁했다.
 “엇!”
 자신의 체형이 완전히 변해 버렸다는 건 이제 잘 알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이 이렇게까지 변해 버렸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분명 자신의 얼굴형이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같은 사람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건 단순히 살이 빠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인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내 얼굴 맞아?”
 피부가 좋아졌다는 건 던전 안에서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집으로 돌아와 화장실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니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한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변화였던 것이다.
 “아, 이거 참.”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갑자기 각성자가 된 것도 놀라운 일인데, 이렇게 외모까지 압도적이라니 그야말로 미친 존재감이 아닐 수 없었다.
 “완전 연예인이구만. 이참에 방송계에 몸을 투신해?”
 그렇게 중얼거리며 키득거렸다.
 곧 자신이 외모에 감탄은 그만 두고 일단 샤워를 먼저 하고 옷부터 새것으로 갈아입었다. 무너진 건물에서 건진 옷이라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탓에 몸이 꺼끌거렸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살이 왕창 빠진 덕분에 옷장의 옷 중 맞는 게 하나도 없었다. 바지는 몸통 두 개는 들어갈 정도로 컸고, 셔츠 역시도 지금의 몸엔 너무 컸다.
 “옷부터 사야겠다.”
 일단 헐렁한 운동복을 대충 입고 근처 대형마트로 갔다.
 예전엔 꿈도 못 꿀 맵시 있는 사이즈의 바지와 셔츠를 구입한 뒤 마트 화장실로 가서는 갈아입었다.
 저렴한 옷이었음에도 마트 화장실 거울에 비친 동춘은 그야말로 모델 그 자체였다.
 “이런 내 모습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너무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난 놈이 거울 속에 보이니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제까지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않았던 삶, 그런 그에게 이런 외모는 전혀 새로운 세계였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지나가던 젊은 여자들이 자신을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개중엔 아예 대놓고 강렬한 눈빛을 보내는 여자들도 간혹 있어서 당황하기도 했다.
 그렇게 새로운 색다른 경험을 하며 걷는 동안 먼저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일단 헌터로 각성한 모양이었으니 헌터 자격증부터 발급받아야 될 것 같았다.
 
 헌터 자격은 일반적으로 기본자격증과 세부자격증으로 나누어진다.
 기본자격증의 경우 가까운 동사무소에서도 측정이 가능했다.
 이곳에서는 각성자 유무 정도만 판단할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했으나 검사비가 5만 원 정도라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리고 세부자격증의 경우엔 헌터협회에서 운영하는 전문 기관을 이용해야 하는데 검사 비는 보통 100만 원가량이라 꽤나 부담되는 금액이었다.
 일반적으로 기본자격증만 있으면 하급의 던전의 경우 출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D4 이상의 던전일 경우엔 출입이 금지된다.
 D4급 던전부터는 세부자격증 검사를 받아 10레벨 이상의 자격증을 따야 출입이 가능해진다.
 동춘은 자신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었지만 최소 30레벨급 이상이라는 건 확실했다. 당연하게도 자신이 아까 상대했던 몬스터가 M4이었으니 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M4급을 1대1로 상대하려면 최소 40레벨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것까지는 잘 몰랐다. 그것도 맨주먹이라면 레벨이 더 높아야 한다는 것도.
 아무튼 동춘은 먼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세부자격증이라고 판단해 먼저 전문 검사소로 갔다. 이제부턴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상황에서 겨우 100만 원을 아낄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100만 원이라는 부담스러운 금액에도 검사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당연하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사무소에서 기본자격증을 취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중 90% 이상이 1레벨, 나머지 10% 중에서도 절반 이상이 2레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혹시 모를 결과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 노량진처럼 이곳 검사소 주위엔 관련 학원들이 즐비했고, 늘 학원은 기초 각성자들로 만원이었다.
 세상이 바뀌면서 각성자의 숫자가 많아진 덕분에 헌터라는 현대판 귀족들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들끓는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만큼 헌터가 된다는 것은 신분 자체가 달라진다는 뜻이니 각성자라는 것만 확인되면 인생을 건 도박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튼 분주한 사람들 사이로 검사 신청을 넣었고, 5시간이나 기다리고서야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긴 시간을 기다린 것에 비해 검사 자체는 의외로 간단했다.
 그저 커다란 기계 앞으로 가서 20초 정도만 앉아 있으면 끝나는 것이니까.
 “3레벨입니다.”
 “네?”
 “3레벨이라구요.”
 검사관이 냉랭한 어조로 말하며 확인증을 건넸다.
 그것을 건네받은 동춘은 뭔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째서 자신이 3레벨인지에 대해 따지지는 않았다. 그런 걸 따진다고 들어줄 사람들이 아니기에.
 그러나 납득은 되지 않았다. 자신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거라는 건 분명했음에도 최하급이나 다름없는 3레벨이라니.
 “젠장, 100만 원만 날렸네.”
 이래서야 기본자격증을 딴 것보다 못하지 않은가?
 차라리 기본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면 가능성의 꿈이라도 꿀 테지만 이렇게 가장 낮은 등급을 이미 받아 버리면 그런 것도 없다.
 하지만 동춘은 이내 마음을 바꾸었다.
 3레벨이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해도 자신의 능력은 그보다 월등함을 잘 알고 있었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D1등급의 던전이라도 자신 정도면 실력으로 사냥을 한다면 회사를 다닐 때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어쨌거나 법적으로도 일단 각성한 이상, D3까지는 입장이 가능했다.
 물론 일반적으로 3레벨의 각성자가 D3 던전에 들어가는 미친 짓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
 
 ― 퇴사? 그 정도로 심하게 다친 거야?
 공장장이 되물었다.
 하지만 그의 말투에선 그리 걱정스러움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저 짜증만 느껴질 뿐이었다.
 “네. 던전 폭발 때 좀 많이 다쳤거든요.”
 ― 이거 곤란하네. 갑자기 이렇게 빠져버리면.
 이 와중에도 다친 사람보다 지들 고생할 것만 걱정이 되는가 보다. 물론 코딱지만 한 회사다 보니 한 명만 빠져도 나머지 사람들의 일감이 왕창 늘어 버리는 구조라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회사 걱정 때문에 다시 출근할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그만큼 피를 빨렸으면 됐으니까.
 일은 무지막지하게 부려 먹으며 월급이나 기타 복지가 부실한 건 회사가 작아서라는 핑계를 대는 그런 전형적인 곳이었다.
 ‘아, 짜증 난다. 진짜.’
 그렇다고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 다친 게 죄는 아니지, 거기다 던전 폭발이었다면 목숨이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니까. 그런데 병원엔 얼마나 있어야 한데?
 “그게 최소 3달은 있어야 한다고······.”
 ― ······그래?
 짜증난 듯한 공장장의 말투와 함께 전화기 너머 그의 주변에서 이런저런 소리도 들려왔다.
 ‘아 씨발.’이라든가, ‘민폐 새끼’라든가.
 이래서 미련이 없었던 것이다.
 ― 그럼 알았다.
 뚝.
 신호가 바로 끊기자 곧바로 짜증스런 표정으로 변해 버리고는 곧 집 전화 수화기를 내려놨다.
 “아우.”
 정말 이런 직장에서 평생을 보낼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이제야 자신이 회사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망할 새끼들.”
 정말 회사 쪽 방향으로는 오줌도 누기 싫었다.
 “앞으론 상종을 말아야지.”
 그렇게 중얼거린 동춘의 시선이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붉은 보석 쪽으로 향했다.
 다크먹웜의 몸에서 뽑아낸 마나석.
 저 정도의 마나석이라면 모르긴 해도 5천만 원은 훌쩍 넘어갈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처음에 경험했던 것처럼 자신이 마나석 에너지를 흡수하면 그냥 평범한 보석으로 돌아가 버린다.
 물론 마나가 사라진 마나석은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인터넷으로 거래하면 개당 10만 원 정도나 받을 수 있을까?
 “흐음.”
 큰돈이 걸려 있으니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5천만 원 이상이라면 홀라당 빨아 먹기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헌터들은 많은 전투 경험을 통해 상급으로 각성하는 방식이다. 당연히 몸속의 마나량도 그렇게 늘어나는 것이니까. 마나석의 경우엔 보통 이렇게 헌터가 직접 흡수하는 경우는 없었고, 보통 헌터 장비에 사용되고 있었다.
 충전이나 강화 같은.
 헌터들은 자신들의 등급을 올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장비에 쏟아붓는다. 어쨌든 강한 장비로 싸워 경험치를 올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으니까.
 간단히 생각해 보면 마나 흡수가 가장 이익이 맞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몸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아직은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5천만 원과 부정확한 마나 흡수 능력.
 일단 마나석 흡수는 미뤄 두고 자신의 지갑에 들어 있는 카드를 떠올렸다.
 ‘사이클론’ 길드의 카드.
 다크먹웜의 사체를 넘기고 받은 것이 있다는 것을 기억한 것이다. 지금쯤이면 어느 정도 처리가 완료되지 않았을까 예상이 되었다.
 ‘확인해 볼까?’
 입을 챙겨 입고 원룸을 나섰다. 그리고 근처의 은행으로 갔다.
 그리고 일반 카드 사용 기계가 있는 곳을 지나 VIP룸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경비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막아섰다.
 “이쪽은 일반 룸이 아닙니다.”
 동춘의 복장을 한 번 쓰윽 훑고는 그렇게 말했다.
 “여기.”
 동춘이 지갑을 꺼내 카드를 보여 주었다. 경비원이 그것을 확인하더니 표정이 금방 변했다.
 “죄송합니다. 절 따라오시죠.”
 곧바로 VVIP룸 쪽으로 안내를 해 주었다. 카드를 확인하자마자 태도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여기서 업무를 보시면 됩니다.”
 친절하게 안내한 경비원이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동춘은 몇 개의 칸막이가 된 곳 중 비어 있다는 표시가 된 한 곳을 열고 들어갔다.
 서너 평쯤 되는 깔끔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문 정면으로 캐시로비에 있는 현금자동인출기처럼 생긴 기계가 보였다. 그리고 한쪽 편엔 소파와 TV, 냉장고, 간단하게 커피와 간식거리가 놓여 있었다.
 마치 고급 개인 휴게실 같은 분위기.
 “은행에 이런 곳이 있었나?”
 여러 번 은행을 들락거리면서도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냉장고를 열어 보니 각종 음료수와 와인병도 보인다.
 “설마 돈을 받는 건 아니겠지.”
 그중 캔 콜라 하나를 꺼내 마시고는 느긋하게 소파에 앉았다.
 푹신푹신하니 좋다는 생각을 하며 가볍게 한 모금을 마신 뒤 ATM기 앞으로 다가갔다.
 모양은 고급스럽지만 기존에 사용하던 현금입출금기와 기능은 다르지 않았다.
 일단 ‘사이클론’이라 적힌 카드를 투입구에 넣었다.
 그러자 상단의 큰 모니터에 실행 중이라는 화면이 뜨더니 곧 정보가 떴다.
 ― 다크먹웜 사체 처리 내역.
 각종 상세 내역이 화면에 길게 적혀 있었다. 애초에 이렇게 많은 숫자를 확인하는 게 그의 취향에도 맞지 않아 대충 확인을 하고 마지막 자신에게 떨어질 돈을 확인했다.
 그들에게 양도한 수수료와 세금을 제외한 금액은 총 229,845,558원 이었다.
 “······.”
 순간 동춘은 자신이 숫자의 자릿수를 제대로 확인한 것인지 의심이 들어 다시 천천히 세어 보았지만 분명 2억 3천 정도가 맞았다.
 “헐.”
 생각보다 엄청난 거액이었다.
 헌터들이 돈을 많이 벌고 몬스터의 한 마리당 가격이 제법 비싸다는 건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수중에 들어올 엄청난 금액을 확인하고 보니 이제야 실감났다.
 곧바로 자신의 통장으로 이체를 하고는 곧바로 집에서 가지고 왔던 통장을 넣어 확인했다.
 확실히 2억 3천가량이 찍혀 있었다.
 동춘은 마시던 콜라를 마저 들이켜고 소파에 앉아 마음을 진정시켰다.
 현재 통장에 들어 있는 자신의 전 재산이 대충 천만 원 정도였는데 단번에 2억 4천가량으로 늘어나 버렸다. 1년 동안 회사를 다녀 뼈 빠지게 모은 돈이었음에도 하루 만에 번 돈에 파묻혀 버렸다.
 “뭔가 허무하네.”
 어색한 웃음을 지은 동춘이 곧 그곳을 나갔다.
 그런데 밖으로 나가자마자 고급스런 정장을 입은 여자가 동춘에게 다가왔다. 이름표가 붙은 걸 보니 여기 직원인 듯 보였다.
 “오늘도 저희 은행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깍듯한 인사에 조금 얼떨떨해져 머뭇거렸다.
 “고객님 VVIP 전용 출입구로 안내하겠습니다.”
 “······.”
 얼떨결에 여직원의 안내를 받아 이동한 곳은 건물 반대편에 있는 통로였다. 평상시 지날 땐 은행과 관련 없는 출입구라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VVIP 출입구였던 모양이었다.
 밖으로 나가자 여직원이 독일제 검정색 고급 세단의 문을 열어 준다.
 “뭐죠?”
 “저희 은행 서비스입니다. 원하시는 장소로 안내해 드릴 겁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여직원의 깍듯한 인사를 받으며 고급 세단의 뒷자리에 탔다. 생전 처음 타보는 고급 차라 기분이 얼떨떨하면서도 묘했다.
 그런데 차가 출발하지 않고 있었다. 운전기사도 별말이 없다.
 “······.”
 그제야 동춘은 목적지를 말하지 않았다가는 것을 기억하고는 서둘러 말했다.
 “근처 시내 쪽으로 가 주세요. 휴대폰 가게가 보이면 그곳에서 세워 주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출발한 고급 세단이 시내로 들어섰다.
 푹신한 세단의 시트에 몸을 푹 파묻고 있으니 귀족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편안한 자세로 창밖을 보며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 있었는데 어느새 시내에 있는 큰 휴대폰 매장 앞에 차가 멈추어 섰다.
 “도착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두어 시간 시내 드라이브나 시킬걸 그랬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곧 그런 마음은 털어 버렸다.
 곧 기사가 뒷문을 열어 주자 조금 어색한 자세로 동춘이 차에서 내렸다.
 “수고하셨어요.”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깔끔한 정장의 기사가 고개를 숙이더니 곧 운전석으로 향했다.
 그렇게 고급 세단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동춘이 입맛을 다셨다.
 “햐, 고급 차가 좋긴 좋네.”
 그렇게 중얼거리는데 주변 사람들이 동춘을 힐끔거린다.
 특히나 여자들이 동춘을 관심 있게 바라보고 있었고, 어떤 커플은 싸우는 모습도 보였다.
 아직 이 잘난 외모에 제대로 적응 못한 동춘이 서둘러 휴대폰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으로 동춘이 찾아온 이유는 당연히 휴대폰을 구입하기 위함이었다.
 던전에 빨려 들어갔을 당시 그 혼란한 와중에 분실해 버렸던 탓이다.
 “좋은 걸로 사야지.”
 그동안 성능이 떨어지는 공짜폰만 써 왔던 터라 이참에 이름 있는 새로운 기종으로 사려고 마음먹었다.
 
 ***
 
 “좋아, 까짓거 운 좋게 얻은 거니까.”
 집으로 돌아온 동춘은 다크먹웜의 마나석을 꺼내고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비싼 마나석이기는 하지만 이미 사체 처리로 2억이 넘는 돈이 입금된 마당에 돈 욕심을 너무 부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순식간에 5천만 원이 넘는 마나석을 의미 없이 날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자신의 능력에 투자해야 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크게 먹었다.
 꿀꺽.
 아무래도 거액의 물건을 집어삼키는 과정이니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곧바로 손에 집중을 시작했다.
 “······.”
 이번에도 뜨거운 기운이 손을 통해 몸속으로 딸려 들어왔다. 전과는 확실히 그 기운의 크기가 달랐다. 그것이 몸속을 들어와 이번에도 아랫배 쪽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단전.
 생각해 보니 뜨거운 기운들이 모이는 아랫배는 단전이라 불리던 장소가 틀림없었다. 단전에 대해 아는 건 무협지를 통해 얻은 지식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일단 자연스럽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다시 집중했다. 에너지가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을 몇 번 느끼고는 곧 그것이 다시 단전에 자리 잡고 안정이 되자 눈을 떴다.
 “후우.”
 심호흡을 하던 동춘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분명 뭔가 커다란 기운이 몸속으로 들어온 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을 전신에 회전시켜 다시 단전에 넣었다. 그런데 어쩐지 쓸모없는 짓을 한 기분이었다.
 커다란 강가에 물 한 바가지를 더 보탠 느낌이랄까.
 에너지가 몸을 도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그것만으로도 몸이 개운해진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굳이 마나석의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도 깨달은 것이다.
 “5천만 원을 날리고 나서야 깨닫다니.”
 순간 어이가 없어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곧 그런 감정은 털어 버렸다.
 이미 들어온 돈도 2억 3천만 원이나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박이다. 거기다 한 번의 만남이었을 뿐이지만 스승님이 남기신 엄청난 능력도 얻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5천만 원에 너무 마음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저 이제까지의 삶 때문에 습관적으로 그렇게 반응한 것뿐이다.
 “그래도 아쉽다. 쩝.”
 역시 5천만 원은 작은 돈이 아니니까.
 동춘이 머리를 긁적이며 바닥에서 일어서고는 자신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리고는 새로 산 휴대폰을 꺼냈다.
 “최신 기종이라더니 좋긴 좋네.”
 날려버린 5천만 원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새로운 휴대폰을 보며 다시 즐거워했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꺼낸 김에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동춘의 가장 절친인 김정수가 전화를 받았다.
 “정수야. 나다, 동춘.”
 ― 얼래, 번호 바꿨냐? 설마 새 폰 샀어?
 “그렇게 됐다. 지금 어디야?”
 ― 반백수가 어디겠냐? 집이지.
 반백수라고는 해도 녀석 역시 각성자였다. 물론 3레벨이라 일이 별로 없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3레벨이면 기껏해야 짐꾼 역할 정도다. 물론 전투 능력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방어력이 너무 약해 몬스터의 공격으로부터 취약해 전투엔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도 명색이 각성자임에도 레벨이 낮다 보니 어지간한 직장인보다 사정이 나빴다.
 “나와라. 밥 안 먹었지?”
 ― 오오, 어쩐 일이냐, 노랭이가 밥을 사겠다니. 해가 서쪽에 뜨려나 보다.
 “그래. 서쪽에서 뜰 일이 생겼다.”
 ― 그게 뭔데?
 “일단 만나서 밥이나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 오케이! 접수!
 
 ***
 
 “어이, 정수야. 여기다.”
 동춘이 손을 들어 부르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다가온 정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저기, 누구시죠?”
 그 반응에 동춘이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누구긴, 동춘 형님이시지.”
 “······.”
 “뭘 그리 놀래? 형님이 멋있어져서 놀랬냐?”
 그제야 눈이 커진 정수가 입을 떡 벌리며 다시 되물었다.
 “씨, 씨발. 대박! 네가 동춘이라고? 내 어릴 적 부랄 친구 박동춘이라고?”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쪽팔리게 부랄은······. 오버하지 말고 앉기나 해.”
 정수는 그제야 자신이 너무 크게 말했다는 사실을 느끼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있는 방향을 힐끔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는 다시 조용하게 물었다. 물론 여전히 눈을 부릅뜬 채로 말이다.
 “너 성형수술이라도 했냐? 아니지, 이 정도면 지방흡입수술도 대대적으로 받은 모양인데?”
 “지랄하지 말고 일단 앉기나 해.”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아직 동춘의 모습에 적응을 못 한 탓인지 여전히 얼떨떨해하고 있었다.
 “정말 무슨 일이야? 엊그제까지 회사 잘 다니던 녀석이 갑자기 평일에 불러내질 않나, 거기다 이렇게 변한 모습이라니.”
 “일단 진정하고, 식사라도 하면서 천천히 이야기하자.”
 “어, 그, 그래야지.”
 
 
 # 3레벨짜리 무적 헌터 (1)
 
 잠시 후.
 “진짜? 네가 각성했다고?”
 또 크게 소리 지른 정수가 곧바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오늘 정말 여러 번 놀라고 있었다.
 “그래. 그렇게 되면서 외모도 이렇게 변해 버렸다니까.”
 “그래도 좀 심한데? 나도 이쪽 계통에 있으면서 별의별 놈들 다 봤지만 너처럼 급변은 처음 들어.”
 실제로 헌터로 각성하게 되면 외모가 변한다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동춘의 경우는 그 정도가 좀 심했다. 솔직히 몸집도 만만치 않았던 데다가 얼굴도 여드름투성이에 인물도 좀 못난 게 사실이었으니까. 물론 자신이야 친구니까 외모 따윈 관계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동춘을 은근히 무시해 온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날씬한 몸에다 운동으로 다져진 듯 보이는 어깨, 그리고 저 잘난 외모는 자신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식당 테이블에 앉아있는 몇몇의 여자들이 동춘을 힐끔거리며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서둘러 물었다.
 “각성을 언제 했는데?”
 “어젯밤 시내에서 던전 폭발 있은 거 알고 있지?”
 “안 그래도 그거 땜에 대피 사이렌 울리고 난리도 아니었잖아. 어, 그런데 설마 그거랑 너 관계가 있는 거야?”
 “회사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타고 있던 버스가 던전에 빨려 들어가 버렸었다.”
 “뭐? 정말로? 그런 곳에서 어떻게 나온 거야?”
 동춘은 아침에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노인을 만났던 사실을 이야기할 땐 거짓말하지 말라며 웃기도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인 이야기를 듣던 녀석은 호기심이 동했는지 꽤나 집중했다. 특히나 외부로 나왔을 때 헌터 슈트를 입고 타 길드원들과의 일, 특히나 그들이 동춘을 처음엔 무시했다는 이야기를 할 땐 꽤나 흥분하기도 했다.
 “이쪽 업계도 보면 능력 따라 사람 엄청 차별하니까.”
 현재에도 정수는 그런 일들을 수도 없이 겪고 있으니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동춘에게서 건너 들으니 더 짜증이 날 뿐이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계속되자 다시 동춘의 말에 빠져들어 갔다. 특히나 다크먹웜과의 싸움 부분에선 먹던 음식이 목에 걸릴 정도로 놀랐다.
 “켁켁, 정말 맨손으로 그랬다고?”
 “그렇다니까.”
 “그래도 그건 좀 심하다. 너 꿈꾼 거 아니냐?”
 그 말에 동춘이 피식 웃더니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냈다.
 “······?”
 뭐 하려고 저러나 하며 정수가 바라보는데 그때 손가락 두 개로 동전을 쥔 동춘이 그것을 가볍게 접어 버렸다.
 “······!”
 그리고는 다시 동전을 원래대로 다시 폈다.
 “어때?”
 그러자 정수가 피식 웃더니 동춘처럼 자신의 주머니에서 동전을 하나 꺼냈다. 그리고는 곧 손가락에 힘을 주자 슬슬 구부러졌다. 물론 동춘만큼 쉽게 구부리지는 못했고, 다시 펴지도 못했지만 그가 놀랄 정도의 일은 아니라는 걸 보여 주려고 그랬던 것이다.
 “쩝.”
 동춘이 어색함에 입맛을 다셨다.
 나름 힘자랑한답시고 한 짓인데, 정수도 비슷하게 할 수 있으니 뻘쭘해진 것이다.
 “내가 3레벨이지만 꽤나 힘은 강한 편이니까. 그 무거운 짐들을 하루 이틀 짊어지고 던전을 돌아다닌 게 아니잖냐. 그래도 네가 나보단 확실히 강한 건 맞네. 인정.”
 쿨하게 정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정수는 동춘이 조금 가볍게 행동해도 어릴 적부터 봐 왔던 터라 헛소리나 지껄이는 그런 놈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건 그 이후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며 헌터팀의 서상규라는 사람에게 받은 검은색 카드를 내보였다. 동춘이 내민 카드를 들여다보던 정수가 그것을 알아보았다.
 “이거, 블랙카드잖아.”
 블랙카드란 중견길드 이상에서 사용하는 카드였다. 거기다 카드에 ‘사이클론’이라는 글자를 보더니 더 놀란 듯 보였다.
 “사이클론? 정말 거기 팀이었다고?”
 “우리 좀 믿고 살자.”
 하지만 블랙카드를 보고난 뒤엔 동춘의 말을 어느 정도 믿는 분위기였다. 물론 앞에 했던 말을 믿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이제 각성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은 동춘이 하는 말을 무작정 모두 믿는 건 아니었다.
 아직 이쪽 세계에 대하 지식이 많이 부족할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검사는 받아 봤냐?”
 “받아 봤지.”
 그렇게 대답한 동춘이 곧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그런 사정을 눈치채지 못한 정수가 동춘을 재촉했다.
 “결과는?”
 “······3레벨.”
 “뭐?”
 순간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정수의 생각을 안다는 듯 동춘이 다시 말했다.
 “3레벨이라고.”
 “······나와 같은 3레벨? 30레벨이 아니고?”
 “그래.”
 “그게 말이 돼? M4급 몬스터를 잡았다며? 그런데 3레벨? 지금 장난하냐?”
 정수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심득의 레이드』 1-2권에 계속>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