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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경(發勁)

2018.02.03 조회 10,874 추천 129


 1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5월의 하늘은 맑고 따뜻했다.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연두에서 진녹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 신록의 계절. 이 싱그러운 계절 중에서도 그 중간인 2015년 5월 15일 금요일.
 
 이날은 스승의 날이자, 충북의 한 읍 단위소재 중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중간고사도 마쳤겠다, 모두 홀가분한 마음으로 등교하는 교정의 정문 앞.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남녀공학인 관계로 남녀학생들이 혼재되어 있었지만 여학생이 훨씬 더 많았다. 그런 여학생 대부분이 이상하게 간혹 뒤를 돌아보곤 했다. 곧 그 이유가 밝혀졌다.
 
 멀리서 한 남학생이 달려오자 여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향했고 걸음은 모두 멈추었다. 185cm 전후로 보이는 장신 남학생 하나가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모습에 이런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곧 체육복 차림의 남학생이 점점 가까워졌다. 그러자 얼굴이 붉어지는 여학생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곧 그 이유가 밝혀졌다. 그의 얼굴이 유독 잘 생겼기 때문이었다.
 
 시쳇말로 ‘만찢남’이었다. 마치 만화책을 찢고 나온 책속의 주인공처럼 잘 생긴 외모가 여학생들의 일방적인 사랑을 연출하는 풍경이었던 것이다.
 
 만찢남이자 여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강철산(姜鐵山)이 서서히 달려 그녀들 앞을 통과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그에게 접근해 말을 거는 여학생은 없었다.
 
 곧 그가 정문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제야 여학생들이 빠른 걸음으로 그의 뒤를 쫓았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철산은 호흡을 고르며 천천히 교사(校舍)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학년 1반 교실. 그의 등장에 먼저 와 있던 학생들이 우르르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 중에는 반장 유경태도 있었다.
 
 “이번에는 너,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종목에는 출전해야 한다?”“무슨 그딴......?”
 “아니면 우리 반이 우승 못한다.”
 “그래도 네 종목이면 너무 많잖아?”
 
 “벌써 명단 제출했으니 그런 줄 알고 있어.”
 마지못해 철산이 경태에게 물었다.
 “무슨 종목들인데?”
 “100m, 400m계주, 3000m, 축구,”
 
 “젠장, 내가 철인이냐?”
 “너 철인 맞잖아?”
 “됐어, 인마.”
 승낙의 조건은 가벼운 욕설이었다.
 
 “줄 다리기까지 출전시키지 않는 게 어딘데?”
 “됐어, 짜식아!”
 철산의 강력한 등짝 스매싱에도 경태는 웃으며 그의 곁을 떠났다.
 
 * * *
 
 12학급 전교생이 운동장에 집합해 있다. 정년퇴임을 앞둔 노 교장의 훈화는 오늘 같은 날도 빠지지 않는다.
 “모름지기 청소년기 이때의 체력이 평생을 좌우하므로, 운동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고도 길게 이어진 노 교장선생님의 훈화는 학생들이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해서야 끝났다. 곧 학년별 일정표에 따라 체육대회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2학년은 육상부터 시작되었다. 그것도 100m 달리기. 이에 철산도 반대표로 출전을 하게 되었다. 곧 각 반에서 2명씩 총 8명이 2개조로 나뉘었다. 운동장 사정상 여덟 명이 동시에 달릴 수 없어, 2개조로 나누고 네 명만이 트랙의 출발점에 섰다.
 
 철산도 A조에 속해 1반이라 제1라인에 섰다. 곧 2학년 체육선생님의 명이 떨어졌다.
 “제 자리에!”
 
 그의 명에 따라 여덟 명 학생들이 일제히 출발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분명 스탠딩스타트는 아니다. 그렇다고 완벽한 크라우칭 스타트(Crouching start) 자세도 아니었다. 크라우칭스타트 자세 비슷하게 자세를 취했지만, 출발 시 양발의 지지대인 스타팅 블록(starting block)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맨 땅에 양발을 딛고, 양손은 출발선 바로 뒤쪽을 짚은 생태로 출발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차려!”
 
 체육 선생님의 명에 따라 여덟 명이 일제히 엉덩이를 치켜들었다. 찰나의 시간이 영겁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지나고 ‘탕!’하는 총성과 함께 네 명은 일제히 지면을 박찼다.
 
 제1라인의 철산 또한 총성이 울림과 동시에 뒷발을 가슴 쪽으로 당겼다. 동시에 팔을 힘껏 앞, 뒤로 흔들며 상체를 앞으로 숙인 체 달려 나갔다.
 
 그 순간.
 와.......!
 반대표로 출전하는 학생들을 응원하는 함성이 유리창을 들썩이게 했다. 전 학년의 시선이 100m 트랙으로 쏠렸다.
 
 “철산아! 더 달려!”
 “네 실력을 보여줘!”
 “힘 내, 짜식아!”
 “사랑해, 자기야!”
 
 중학생의 입에서 튀어나왔다고는 믿기지 않는 소리까지 응원의 함성 속에 묻힌 가운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학생이 있었다. 철산이었다.
 
 출발은 약간 늦었다. 그러나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자 2위와의 격차를 벌리며 압도적 거리 차이로 결승선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이에 여기저기서 어이없다는 멘트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뭐야, 저 놈!”
 “육상 선수야?”
 “쟤가 저렇게 빨랐어?”
 “혹시 한국 신기록 나오는 것 아니야?”
 “설마.”
 
 “야, 빨리 가서 초시계 가져와!”
 온갖 잡음(?) 속에는 2학년 체육담당 교사인 문동욱의 목소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철산은 뒤를 돌아보는 여유까지 보이며 100m 결승선을 유유히 통과했다. 2등과 20m 이상의 거리차를 벌리며.
 
 “철산아, 철산아!”
 체육선생답지 않게 배까지 나온 문동욱이 헐떡거리며 결승선까지 달려간다. 그리고 채 호흡도 고르지 못하고 말한다.
 
 “너, 다시 한 번 뛰어봐.”
 “네?”
 “최소한 소년체전 신기록은 나올 것 같다.”
 “결승에서 다시 한 번 뛰어야하니 그때 체크하시죠?”
 
 “그럴까?”
 
 “네.”
 “내가 너무 놀라서 그만.”
 “이해합니다.”
 
 씩 미소 짓는 철산의 웃음이 의미심장하다.
 
 * * *
 
 운동장 한가운데서는 축구경기가 한창 열리고 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는 농구경기가 열리고 있고, 강당에서는 배구경기가 한창이다. 그런데 철산의 놀라운 실력 때문에 트랙경기 계획의 일부가 변경되었다.
 
 각 학년 100m, 3000m, 400m계주 예선이 끝나고, 순서대로 다시 결승전을 치르려던 것이 모두 취소되고, 1, 2, 3학년 100m 예선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100m 결승이 시작된 것이다.
 
 초미의 관심은 예선을 통과한 네 명이 벌이는 2학년 결승 경기. 문동욱은 2학년 경기가 시작되려하자 일찌감치 스톱워치를 들고 결승선에 섰다. 결승선에는 결선답게 테이프도 걸렸다.
 
 곧 1학년 체육교사의 ‘제자리에’라는 구령과 함께 철산은 또 다시 출발선에서 자세를 취했다.
 “차려!”
 
 탕.........!총성과 함께 철산은 앞으로 힘차게 달려 나갔다.
 와........!
 또 다시 천지를 진동하는 함성 속에 철산은 압도적으로 2등과 거리차를 벌리며 결승선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모두의 안타까운 외침 속에 질주에 질주를 거듭한 철산이 가슴을 앞으로 내민 채 결승선을 통과했다. 동시에 초시계를 누른 문동욱이 황급히 숫자판을 본다.
 
 “뭐야 이거, 스톱위치 고장 난 것 아니야?”
 “기록이 얼마인데요?”
 관심을 갖고 스톱위치에 찍힌 숫자를 보려 머리를 들이미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철산의 담임교사인 오채영이다.
 
 33세 노처녀(?)가 풍기는 향수냄새에 한 발 물러서면서 문동욱이 중얼거렸다.
 “고장이 아니면 한국 신기록인데.......?”
 “네?”
 
 말도 안 된다는 듯 먼 산을 바라보는 문동욱의 가슴에는 온갖 상념이 회오리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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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댓글(21)

[탈퇴계정]    
오 매검향 역적이가 끝나 아쉬웠는데
2018.02.03 19:43
매검향    
jepq3027님! 반갑고 고맙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 되세요!
2018.02.03 20:02
[탈퇴계정]    
기대되요. 잘보고 갑니다.
2018.02.04 10:42
매검향    
형주대통님!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2018.02.04 11:47
동급생    
줄 달리 라고 쓴건 아마 줄당기기 인것 같은데 맞나 모르겠네요
2018.02.04 19:19
매검향    
동급생님! 반갑고 고맙습니다! 덕 분에 찾아보니 줄다리기가 맞네요.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2018.02.04 19:28
이충호    
반갑습니다...
2018.02.05 16:06
장금    
잘봤어요
2018.02.05 20:11
매검향    
충팔님! 장금님! 감사, 감사드리고요!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2018.02.05 20:54
독풍검운진    
드디어신작이군요기다렸습니다
2018.02.0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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