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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슈퍼스타 갱생기 [E]

슈퍼스타 갱생기 1-1권

2018.02.01 조회 12,772 추천 109


 # 프롤로그
 
 송민우는 지끈거리는 두통 때문에 눈을 떴다.
 어두운 실내를 밝히는 희미한 백열등이 가장 먼저 보였다.
 그리고 드는 의문.
 ‘나는 누구지?’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었다.
 이곳이 어딘지, 어떻게 해서 왔는지, 왜 이곳에 누워 있는지조차도.
 심지어 자신의 이름마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깨질 것 같은 두통에 두 손이 절로 머리로 향했다. 한데 축축한 헝겊 같은 것이 잡혔다.
 더듬거려 보니 붕대였다.
 ‘머리를 다친 건가?’
 다쳤는지조차 기억에 없으니 추측은 공허했다.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헉! 누, 누구세요?”
 언제부터 있었는지 침대와 조금 떨어진 의자에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
 “저, 절 구해 준 분입니까? 병원은 아닌 것 같은데 여기가 어디죠? 어떻게 된 겁니까?”
 송민우가 이런저런 질문을 했지만 남자는 두 손으로 깍지를 만들어 턱을 받친 채 쳐다만 볼 뿐이었다.
 문득 사내의 눈빛이 두렵다는 생각과 얼굴이 낯설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혹시······, 날 아십니까?”
 “큭큭큭! 정말 날 기억하지 못하는군.”
 사내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메말라 있었다.
 “알지. 잘 알고말고.”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송민우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
 움찔!
 기억은 없지만 몸이 반응을 했다. 저 사내의 손이 두렵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기억을 잃었지만 몸은 날 기억하는 건가? 큭큭큭! 이거 영광으로 알아야겠군.”
 “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제가 누구이고 당신이 누구인지 설명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송민우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용기를 내 말했다.
 한데 사내는 왼쪽 입꼬리를 올리며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글쎄, 내가 기억을 못 하게 만들었는데 굳이 설명을 해 줘야 하나? 스스로 기억해. 그리고 절망하라고. 그게 이번에 너에게 내려지는 형벌이니까.”
 “형벌? 내가 무슨 죄를 지은 겁니까?”
 “······죄라면 죄겠지.”
 사내는 벽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송민우의 시선도 낡은 건물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거울을 향했다.
 ‘누군가 있어!’
 이중으로 된 거울이며 그 뒤에 자신이 이러고 있는 진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젠 가자고. 기억을 되찾으면 그때 다시 보게 될 테니 그리 슬픈 표정 짓지 말라고. 킥킥킥!”
 송민우의 머릿속엔 사내를 따라가면 안 된다고 요란한 경종이 울고 있었다.
 “이익!”
 꽈당! 까강! 깡!
 송민우는 무작정 사내를 밀고는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손에 링거가 꽂혀 있었던 터라 그가 움직이자 링거액을 꽂아 뒀던 금속 막대가 땅에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왜 이러는 겁니까!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는 몰라도 설명은 해 줘야 할 거 아닙니까!”
 쾅! 쾅!
 거울을 깰 듯이 두들기며 소리쳤지만 거울 반대쪽에 있을 상대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하아~ 이 새끼가, 얌전히 보내 주려고 했더니 결국엔 또 힘을 쓰게 만드는군.”
 몸이 절로 떨리게 만드는 사내가 혀로 입술을 핥으며 다가왔다.
 송민우는 계속 거울을 치고만 있을 수 없었다.
 두렵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기억이 없어서일까. 자연스럽게 사내를 상대할 무기를 찾았고 링거 줄에 딸려 온 금속 막대가 눈에 띄었다.
 송민우는 링거 줄을 당겨 금속 막대를 손에 쥐었다. 그러자 손은 여전히 떨렸음에도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어라? 기억을 잃으면서 용기를 얻은 거야? 반항을 해 보겠다? 그래, 가만히 맞고만 있으면 재미가 없지.”
 송민우는 사내가 적당한 거리에 들어서자 성급하게 막대를 휘둘렀다.
 위잉~
 속이 빈 금속 막대라 바람 소리를 만들어 내며 사내를 향했지만 결론적으로 허공만 가른 꼴이었다.
 살짝 몸을 눕혀 송민우의 공격을 피한 사내는 몸을 바로 하며 주먹을 날렸다.
 퍽!
 한 대에 눈앞이 번쩍하더니 곧 세상이 컴컴해졌다.
 “감히 네까짓 게 엉겨?”
 퍽퍽퍽퍽!
 유리벽에 등을 기댄 채였기에 쓰러지지도 못하고 사내의 주먹에 일방적으로 당하기 시작하는 송민우.
 맞고 있으니 오히려 두려움과 떨림이 사라졌다. 아니 정신이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몸을 웅크려 피해를 줄이며 기회를 엿보던 송민우는 들고 있던 금속 막대로 있는 힘을 다해 사내의 옆구리를 찔렀다.
 푹!
 “아악!”
 일방적이던 구타가 멈췄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사내의 얼굴은 악귀처럼 구겨졌다.
 “뿌득! 이 버러지 새끼가······!”
 송민우에겐 지금이 기회였다. 하지만 사내의 옆구리를 뚫은 금속 막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완전히 얼어 버렸다.
 사내는 거칠게 금속 막대를 뽑아 버리고는 길이가 25센티미터 정도 되는 사시미 칼을 꺼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겁니까!”
 “자업자득이야. 억울해하지 마.”
 “자업자득이라니 무슨······, 커억!”
 송민우는 마지막 말을 다 꺼내지 못했다.
 뱃속으로 화끈한 무엇이 들어왔다. 이어 뒤틀리는 느낌이 들었고 쑥 빠져나간다.
 그리고 다시 화끈한 느낌.
 ‘이, 이유나 알자고······.’
 말을 하고 싶어 입을 벌렸지만 목을 거슬러 올라온 피만 주루룩 흐를 뿐이었다.
 세상은 급속도로 탈색되어 갔다.
 그와 동시에 몸은 중력의 힘을 따라 바닥에 쓰러졌다.
 기억을 모두 잃고 서서히 죽어 가던 송민우는 문득 지금 상황보다 더 슬픈 일을 당했던 것 같았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분노하거나 슬퍼할 힘도 없었기에 기억이 나지 않음에 안도했다.
 ‘억울하지만······ 자업자득이라는 건가······.’
 배에서 느껴지던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차츰 세상은 멍한 상태가 되어 갔다.
 ······타앙!
 총소리 같은 것이 들리고 누군가가 몸을 만지는 것 같았는데 확실하지는 않았다.
 ‘······우는 건가? ······울어 줄 사람이 왜······.’
 송민우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 1. 각오
 
 주변이 시끄럽다는 생각에 정신을 차렸다.
 “······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안정이 되면 곧 정신을 차릴 겁니다.”
 ‘누구지?’
 자신을 칼로 찌른 사내의 목소리는 분명 아니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자신을 죽인 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잊겠는가.
 “정말 아무 이상이 없는 거죠?”
 “예. 검사를 했지만 기적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곧 깨어날 것 같으니 깨어나면 상태를 봐서 다시 정밀 검사를 하든지 하면 될 겁니다.”
 두 사람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한 명은 의사고, 다른 한 명은 자신을 아는 사람 같았다.
 ‘살아 있는 거야?’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다. 배에 칼을 몇 번 찔렸는데 살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울던 이가 119에 신고를 해서 응급처치를 받았다면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됐다.
 ‘근데 가만······! 아무 이상이 없다고?’
 배를 더듬어 봤다. 살과 살이 맞닿는 느낌. 붕대도 상처도 없었다. 눈을 떴다.
 “미, 민우야! 이 자식, 무사했구나!”
 웬 사내가 반갑다는 듯 소리쳤다. 하지만 그를 무시하고 고개를 들어 배를 확인했다.
 멀쩡했다. 심지어 구멍이 뚫렸었던 흔적도 없었다.
 ‘도대체 뭐지?’
 꿈속의 꿈을 꾸는 것일까?
 의문투성이였다.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과 현 상황 사이의 괴리감에 잠시 멍하니 앉아 있는데 이야기를 하던 두 사람 중 양복을 입은 중년 사내―무사하다고 소리를 쳤던―가 기쁜 얼굴로 다가왔다.
 “······누구시죠?”
 처음 보는 얼굴.
 당한 일이 있었기에 일단 경계심부터 들었다.
 “뭐? ······자, 장난치지 마. 이틀 동안 너 때문에 하도 걱정해서 지금은 장난칠 생각 없다.”
 중년 사내는 의사와 나를 번갈아 보다 다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초췌해 보이는 중년 사내의 말에 잠깐 생각을 하다가 물었다.
 “제 이름이 민우······ 입니까? 민우, 민우. 그리 익숙하다고 느껴지진 않는군요. 당신의 이름은 뭐죠?”
 “······! 미, 민우야.”
 중년 사내는 이름을 가르쳐 줄 정신이 없는지 멍한 상태가 되어 내 얼굴을 봤다. 그때 의사가 다가와 말했다.
 “교통사고가 일어났을 때의 충격 때문에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습니다. 송민우 씨, 기억나는 게 없습니까?”
 “······제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요? 칼에 찔린 것이 아니고요?”
 “칼이라니요.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차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다행히 안전벨트를 하고 있어서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았지만 혹시 머리가 아프거나 하진 않습니까?”
 머리를 더듬어 봤다.
 붕대는 없었고, 조금 전처럼 심한 두통도 없었다.
 “없습니다. 한데 촬영이라뇨?”
 “민우 씨는 유명한 배우입니다. 기억나지 않습니까?”
 생각해 보려 했지만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전혀요. 제 이름이 송민우라는 것도 지금에서야 알았습니다.”
 “음, 안정을 취하다 보면 기억이 날 수도 있을 겁니다. 혹시 모르니 뇌 검사를 다시 해 보도록 하지요.”
 “선생님, 정말 민우가 기억······ 상실증인 겁니까?”
 당사자인 나보다 오히려 중년 사내가 더 난리가 난 듯 행동했다.
 “글쎄요, 일단은 뇌 검사를 해 보고 결과를 본 다음에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정확한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일단은 환자의 안정이 우선이니 다른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의사의 말은 두루뭉술했다. 마치 그도 내가 왜 기억을 못 하는지 이해를 못 하는 듯 보였다.
 중년 사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고 의사는 밖으로 나갔다.
 나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 중년 사내를 보고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저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하아! 미치겠네. 내 이름은 조용해. 내가 한마디라도 할라치면 네가 만날 조용히 하라고 놀렸잖아. 기억 안 나? 그리고 내가 네 소속사 사장이잖아!”
 “조용 해!”
 “······기억이 났냐?”
 “이런 식으로 놀렸단 말이죠? 전혀 기억나지 않는군요.”
 혹시나 기억이 날까 한 번 따라 해 봤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망할 자식. 못된 성격은 기억을 잃어도 똑같구나. 에휴~ 내가 환자 앞에서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쉬어라. 혹시 필요한 거 있냐?”
 지금 당장 뭐가 필요한지 고민하다가 말했다.
 “저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휴우~ 알았다. 정리해서 보내 주마. 그리고 밖에 문경이······, 장문경이라고 매니저 있으니까 시킬 것 있으면 시켜라.”
 “네, 고맙습니다.”
 조용해가 성격이 급해서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한데 그런 나를 바라보는 조용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밖으로 나갔다.
 그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일단은 현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됐다.
 ‘만일 지금이 꿈이 아니라면 조금 전에 죽었던 기억은 꿈일 가능성이 높아.’
 한데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했다. 특히 감정의 찌꺼기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 이상했다.
 “자업자득이라······.”
 특히 사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머릿속에 각인이라도 된 듯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중구난방으로 떠오른 생각들을 침대에 앉아 정리하려 했다. 그러나 정리할 기억조차 없음을 곧 깨달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한쪽에 있는 거울 앞에 섰다.
 서글서글한 눈매, 오뚝한 코, 남자라기엔 얼굴선이 가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남자다움도 가진 아주 잘난 얼굴이었다.
 ‘송민우, 넌 누구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의 답을 찾는 게 최우선이었다.
 
 ***
 
 “민우야!”
 “······엄마?”
 화려한 차림의 중년 여인을 본 순간, 민우는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 수 있었다.
 기억이 아닌 본능이었다.
 “그래, 내 아들, 괜찮니? 의사 선생이 기억상실증이라던데 이제 기억이 나니?”
 연신 몸 이곳저곳을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길에선 애틋함이 느껴졌다.
 민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뇨. 그래도 엄마라는 건 알겠어요.”
 “흑! 어쩌니 우리 아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안아 오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민우는 슬며시 눈을 감았다.
 ‘따뜻해.’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고 어떤 기억이 떠오르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뭔가를 찾은 것 같았다.
 “아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글쎄요?”
 “엄마가 맛있는 거 사 올게. 잘생긴 얼굴이 이렇게 마르다니······.”
 다시 눈물을 글썽거리는 어머니를 보며 민우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울지 마세요. 의사 선생님이 곧 괜찮아질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던 걸로 사다 주세요. 혹 기억날지 모르니까요.”
 “그래, 그러마.”
 민우는 어머니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시선을 전면에 있는 TV로 돌렸다.
 그리고 리모컨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TV에서는 자신이 멋지게 조폭들을 쓰러뜨리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아.’
 화면에 나오는 얼굴은 분명 자신이었음에도 마치 타인을 보는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민우는 병원에서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 가고 있는 중이었다.
 TV를 켜면 보였고, 인터넷을 검색하면 셀 수 없을 정도의 기사가 있었다.
 띠링!
 한참 영화를 보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울었다.
 민우는 손닿을 거리에 있는 세 대의 스마트폰 중 메시지가 왔음을 알리는 스마트폰을 집고서 확인을 했다.
 
 [Web발신, KC은행 6*2* 송*우님, ······흥부칼국수 12,000원. 누적 4,910,355원]
 
 민우의 어머니가 카드 결제를 했다는 메시지였다.
 민우는 스마트폰을 끄려다 문득 그 위로도 쭉 찍혀 있는 기록들을 살펴봤다.
 단순한 결제 기록이었지만 오랜 기간 쌓인 결과를 보니 어머니와의 관계가 눈에 보이는 듯했다.
 맨 위의 메시지가 2년 6개월 전.
 그때 당시 찍혀 있는 내용들은 대부분 백화점이었고 결제금액도 400~500만 원은 기본이었다.
 한 달 카드 결제 대금 또한 1억이 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 1년 6개월 전부터 카드 메시지 중 한도가 초과했다는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금액을 보고 카드 한도 금액을 5,000만 원으로 설정해 놨다는 걸 민우는 알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1년 전부터는 천만 원으로 줄어 있었다.
 문득, 병실로 들어올 때의 어머니 차림새가 떠올랐다.
 반지, 목걸이, 팔찌, 귀걸이, 브로치 등 하나같이 번쩍이던 물건들이었다.
 ‘과소비를 하시는 모양이군.’
 민우의 생각은 딱 거기까지였다.
 기억도 없는데 굳이 어머니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 이유는 없었다.
 스마트폰을 만진 김에 검색 사이트를 확인하는데 ‘안정을 되찾은 민우, 칼국수와 만두를 먹다.’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이건 뭐야?”
 어이없어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오셨다.
 “병원 밖에는 네 소식을 알려는 기자들로 난리구나.”
 기사가 어떻게 올라왔는지 알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귀찮다는 듯 말하면서도 웃음이 가득한 걸 보니 은근히 상황을 즐기는 모양이었다.
 민우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어머니가 차려주는 칼국수와 만두를 맛있게 먹었다.
 칼국수와 만두를 싹 비운 민우는 젓가락을 놓으며 말했다.
 “잘 먹었어요, 엄마.”
 “더 먹고 싶은 거 없니?”
 “없어요. 한데 엄마······.”
 “응?”
 민우는 잠깐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버지는 계세요?”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니?”
 “네.”
 “휴우~ 너 열네 살 때 돌아가셨잖니.”
 “그렇군요.”
 돌아가셨다는 말에도 민우의 마음은 담담했다.
 현재 자신의 나이가 스물아홉, 15년이나 지났으니 무던해질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동생들은 기억나니?”
 “글쎄요, 혹시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나요?”
 그저 막연히 떠오르는 생각을 말했을 뿐이었다.
 “맞아. 걔들 이름은?”
 민우는 한참을 기억하려 노력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민수는 너보다 다섯 살 어리고, 민지는 열한 살 어리단다. 흑!”
 “만나면 기억날 거예요. 너무 걱정 마세요.”
 민우는 어머니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툭하면 눈물을 떨구는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아서였다.
 여동생 민지가 찾아온 것은 낮잠을 자고 나서였다.
 “오빠!”
 교복 위에 패딩 점퍼를 입고 귀여운 표정을 지은 채 들어오는 민지를 본 민우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서 와, 민지야.”
 “어? 오, 오빠 왜 그래?”
 민지는 자신의 오빠인 민우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건 인터넷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슬픔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밝은 척하며 병실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민우가 울어 당황스러웠다.
 “응? 뭐가?”
 민우는 당황한 표정의 민지를 보고 비로소 자신이 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굵은 눈물방울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왜 이러지?’
 갑작스런 눈물에 민우도 당황스러웠다.
 “왜 울어, 바보같이······.”
 민우가 울어서일까, 민지도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이에 비해 다소 작아 보이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민우는 울고 있는 민지를 보며 언젠가 이런 비슷한 장면을 봤음을 기억해 냈다.
 언제인지 어디인지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만 당시의 감정만은 고스란히 기억났다.
 그리고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소중한 것을 잃은 아픔.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무기력함이 울게 했고, 잃었다고 생각한 것이 눈앞에 있다는 기쁨에 웃고 있었다.
 “······기뻐서.”
 “바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기억나. 네가 내 동생이라는 것도, 나에게 무척이나 소중한 존재라는 것도······.”
 민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민지를 껴안았다.
 “오, 오빠?”
 “잃지 않을 거야. 그리고 잊지 않을게. 누군가 나에게 준 기회라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게.”
 민우는 민지를 안고 한참을 울었다.
 스스로도 무슨 감정인지 혼란스러웠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히 기억이 났다.
 자업자득.
 모든 슬픔의 근원은 자신에게 있었음을.
 
 ***
 
 “민우 형, 사장님이 자료를 보내 주셨어요.”
 “고맙다, 문경아. 이거 한 잔 마셔라.”
 “아···, 네······.”
 문경은 민우가 내미는 음료수를 받으며 어색하게 대답을 했다.
 인간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고 믿어 왔는데 그 믿음이 서서히 깨지고 있었다.
 문경이 처음 SD엔터테인먼트에 들어왔을 때 선배 매니저들에게 연예인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었다.
 TV에 나오는 이미지는 이미지일 뿐이라며 예를 들어 줬는데 그 예의 주인공은 언제나 송민우였다.
 개차반, 개새끼, 개자식, 개XX알······.
 그의 별명 앞에는 언제나 ‘개’가 붙어 있을 정도로 성격 나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인물이었다.
 한데 지금은 기억을 잃어서인지 말투는 봄바람처럼 따뜻했고 표정은 생불이라고 할 만큼 부드러웠다.
 ‘이 인간 절대 기억을 되찾지 못하게 해 주세요.’
 문경은 민우가 건넨 음료수를 보며 처음으로 그를 위해 기도를 했다.
 “문경아.”
 “네? 네네!”
 “뭘 그리 놀래? 잠깐 할 말이 있는데 여기 앉아 볼래?”
 민우가 권하는 의자는 바로 그의 옆이었다.
 문경은 잔뜩 긴장한 채 의자에 앉았다.
 “혹시 내가 무섭냐?”
 “아, 아뇨! 혀, 형을 왜 무서워해요.”
 민우는 화들짝 놀라는 문경을 보고는 피식 웃고는 하루 동안 궁금했던 것에 대해 물었다.
 “혹시 우리 엄마와 나 사이가 어땠니?”
 “그, 그건······.”
 “조금씩 알아 가다 보면 기억을 찾지 않을까 싶어 묻는 말이니 네가 아는 대로 솔직히 말해 줬으면 좋겠다.”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을······.’
 하늘을 보고 외쳤지만 들어줄 양반이 아니었기에 문경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저도 들은 건데······ 사이가 조금 안 좋았어요.”
 “왜?”
 “잘은 모르지만······ 사모님이 항상 비싼 물건을 산다고 형이 화를 자주 냈어요. 간혹 사채업자들이 사무실로 찾아오기도 했고요.”
 “역시 그랬구나.”
 너무나 흔한 설정.
 “네? 혹시 기억이 나셨어요?”
 “아니, 카드승인내역을 보고 짐작한 거야. 한데 사채업자까지 왔다니 꽤 심각했나 보네?”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어요. 두 번 정도밖에 안 찾아왔거든요.”
 “알았다. 그 얘긴 됐고. 난 어떤 인간이었냐?”
 “······그, 글쎄요?”
 민우는 문경의 반응과 얼굴 표정을 보고 대략 짐작이 갔다.
 “많이 안 좋았냐?”
 “마, 많이는 아니고······ 쬐~ 끔. 이 정도? 아니, 이 정도? 아니, 이 정도쯤.”
 문경이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정도를 표시했는데 처음엔 닿을 듯 말 듯 하게 벌리더니 점점 더 크게 벌렸다.
 그 모습에 민우는 소리 내 웃었다.
 “하하하! 인마! 그러다가 손 찢어지겠다.”
 “에? 아!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가 있냐. 대충 보니까 아주 성깔이 더러웠나 보구나?”
 “······.”
 민우는 문경의 표정을 보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에 문경은 화제를 돌렸다.
 “한데 뭐 하고 계셨어요?”
 “사인 연습.”
 “사인 연습을 왜······?”
 “간호사가 해 달라고 종이를 내미는데 알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생각해 보고 있는 중이었어.”
 “형 사인이······ 잠시 만요.”
 문경은 좀 전에 가지고 온 자료 상자를 뒤적거리다 화보집을 찾아 건넸다.
 화보집 앞에는 송민우라는 이름을 멋지게 흘려 쓴 사인이 있었다.
 “이렇게 하는 건가?”
 민우의 손은 거침없이 움직여 화보집에 있는 사인과 비슷한 모양의 사인을 만들어 냈다.
 몇 번 더 해 보자 사인지와 똑같은 사인이 만들어졌다.
 “사인을 못해도 백만 번 이상했을걸요. 그러니 손이 기억하고 있나 보네요.”
 “후후! 그런가 보다.”
 몇 번 더 따라하자 사인을 보지 않고도 금세 똑같은 사인을 할 수 있었다.
 그곳에 간호사의 이름과 간단한 멘트를 적은 민우는 탁자 위에 올려뒀다. 그리고 문경이 가지고온 자료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송민우는 열일곱 살 때 아이돌 그룹 B.O.O.M으로 데뷔를 한 후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멤버 간의 불화로 그룹이 해체되기 전까지 한류를 이끄는 아이돌로 아시아를 좁다 하고 누볐고 이후 배우로 성공적으로 변신을 했다.
 3년 전 출연한 드라마가 30퍼센트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슈퍼스타로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작년 10월부터 영화를 찍고 있었는데 마지막 촬영을 하고 돌아오던 길에 눈길에 미끄러지며 사고가 난 것이었다.
 기록을 살피던 민우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언제 영화를 찍고, 언제 광고를 찍고, 언제 드라마를 찍었다는 단편적인 사실만이 기록되었다.
 배우이니 당연한 기록이었지만 촬영이 없을 때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선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쓸 만한 기록도 있었다.
 급여지급에 관한 서류가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금액이 지급되었다고 나와 있었다. 즉, 지급된 금액을 다 쓰지 않았다면 한동안 지금처럼 병원에서 지내도 생활엔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뜻이었다.
 서류 이외엔 대부분이 출연했던 드라마나 영화의 DVD였는데 양이 제법 많았다.
 서류와 함께 가져온 노트북에 DVD를 넣고 막 재생시키는데 조용해가 누군가와 들어왔다.
 “기억 좀 돌아왔냐?”
 “어서 오세요, 사장님. 기억은 아직입니다.”
 “징그럽게 사장님은······, 예전처럼 형이라고 불러라.”
 “음, 제가 싸가지가 없었다고 하던데 역시 그랬군요.”
 “갑자기 무슨 소리냐?”
 “다 늙은 사람한테 형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하는 말입니다.”
 “허얼~ 그 말에 나오는 늙은 사람이 날 말하는 거냐? 이 망할 자식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먼! 너 기억상실증 아니면 이제부터는 큰일 난다. 그러니 연기하는 거면 당장 말해!”
 조용해를 보면 왠지 놀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한 번이면 족했다.
 “기억상실증인지 뭔지 모르지만 어쨌든 기억이 없다는 건 사실입니다.”
 “알았다. 그럼 이분이 물어보는 말에 대답 잘해 드려라.”
 조용해가 가리키는 남자는 30대 후반의 샐러리맨이었는데 꽤 날카로운 인상을 갖고 있었다.
 “송민우 씨, 반갑습니다. 대양보험의 김규식입니다.”
 “안녕하세요, 송민우입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은 모두 녹음이 될 겁니다. 나중에 법적책임을 질 수 있다는 점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죠.”
 김규식이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조용해가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해 보험을 들어 놓은 모양이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스물아홉입니다.”
 “예전에 제대를 하셨는데 혹 소속 부대는 아십니까?”
 “연예사병을 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기억이 나신 건가요?”
 “아뇨. 과거의 자료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국군드라마 DVD가 있어서 미루어 짐작한 겁니다.”
 민우는 상자가 가리키며 말했다.
 “연예사병은 소속이 아닙니다. 송민우 씨의 소속은 3사단 백골부대였습니다.”
 “그렇습니까? 정보 고맙습니다.”
 민우는 3사단 백골부대라는 말을 몇 번 중얼거리며 머릿속에 저장을 시켰다.
 김규식은 이외에도 고등학교 졸업 여부와 스캔들 내용까지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그리고 1시간 가까이 질문을 한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기억상실이 맞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인기의 정점을 찍고 있는 민우가 보험금 때문에 기억상실을 연기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직업상 확인을 해야 했다.
 “조사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덕분에 좋은 정보를 알게 되어 제가 감사드립니다.”
 “사실 제가 말씀드린 건 모두 거짓입니다.”
 “네?”
 “3사단이 아니라 8사단에서 일반사병으로 근무했고, 고등학교는 졸업했습니다. 진실을 알기 위한 거짓이었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가요? 이해는 하겠는데 좀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직업인지라.”
 사실로 알고 열심히 기억하려고 노력했던 것들이 거짓이라니 민우는 씁쓸했다.
 김규식은 미안했던지 자신이 조사한 자료를 민우에게 건넸다.
 “별것 아니지만 제가 조사한 걸 드리겠습니다. 꼭 기억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민우는 김규식이 주고 간 서류를 읽으며 잘못 주입한 기억을 바로잡았다.
 그러는 동안 김규식을 배웅하고 돌아온 조용해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괜찮냐?”
 “뭐가요?”
 “너 원래 누가 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거 싫어했잖아?”
 “싫어했다는 기억도 없는걸요.”
 “아참! 그렇지. 어쨌든 보험금 들어오면 회사 몫 빼고 바로 보내 주마.”
 “알아서 하세요. 한데 형 원래 난 어떤 사람이었어요?”
 “사실을 원하냐? 아님 약간 각색된 걸 원하냐? 그것도 아님 완전히 각색된 걸 원하냐?”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조용해의 모습에 그가 진실을 말해 줄 사람임을 알게 되었다.
 “각색 없는 진실이요.”
 “충격 받지 마라.”
 “그 정도예요?”
 “그리고 내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생각임을 먼저 말하마.”
 “겁주지 말고 얼른 말해요.”
 도대체 무슨 얘긴데 이렇게 서론이 긴지 궁금했다.
 곧 조용해가 입을 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개자식이었다. 아무나에게 막말 잘하고, 매니저나 스타일리스트 애들한테는 수시로 욕해서 울리고, 어른들 말은 개무시하고, 같이 일하는 여배우들에게 껄떡거리고, 선배가 말하면 옆집 개가 짓느냐는 듯 무시하고. 더해 주랴?”
 “······네.”
 “됐다. 더 이상 얘기하면 돌아오려던 기억도 화들짝 놀라 도망가겠다.”
 조용해는 민우의 표정을 보고 괜한 얘기를 했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민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해 주세요. 알아야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안 하죠.”
 “······그래, 두 번 다시 하지 말라는 뜻에서 계속하마. 윗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이에겐 간을 빼 줄 듯이 행동하고, 아랫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이는 사람 취급도 안하고, 팬들 앞에선 착한 사람처럼 행동하다가 돌아서면 욕을 했고, 명품 선물이 들어오면 좋아라하고 인형 선물이 들어오면 던져 버리고······.”
 조용해의 입에서는 쉴 새 없이 말이 쏟아졌다.
 민우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생길 정도였다.
 인간쓰레기였다.
 스타라 추앙받는 인간쓰레기.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릴 줄이야. 억울해하지 말라던 사내의 말처럼 억울해할 일이 아니었어. 한데 이런 날 위해 울어 주던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사내는 하수인에 불과했고, 울어 주던 이가 분명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 사람일 것이다.
 ‘복수였겠지?’
 그 사람에 대한 원망이 약간 희석됨을 느꼈다.
 누구인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떤 잘못을 했는지 직접 듣고 사죄하고 싶었다.
 꿈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왠지 모르게 진짜처럼 느껴졌다.
 ‘하나씩 고쳐 나가자. 뒤틀어진 걸 바로잡다 보면 정말 한여름 밤의 꿈처럼 되겠지.’
 민우는 이전과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쉴 새 없이 말을 하던 조용해가 멈췄다.
 “이제 끝났어요?”
 “어림없는 소리 마라. 10박 11일은 꼬박해도 못 끝낼 거다.”
 “후후! 그럼 10박 11일 동안 들어 볼까요?”
 “미친 놈. 내가 너처럼 한가한 줄 아냐. 지금까지 말한 것만 고쳐라. 그럼 내가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벌거벗고 춤을 춘다.”
 “약속하시는 겁니다.”
 “오냐. 약속하마.”
 민우는 그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점도 있었다.”
 “네?”
 “네 녀석의 좋은 점도 있었다고!”
 “뭔데요? 욕 다 해 놓고 이제 와서 위로할 필요 없어요.”
 “의리는 있었다.”
 무슨 말이 더 나오나 기다렸지만 의리 있다는 말을 끝으로 조용해는 입을 다물었다.
 “에에? 그게 끝이에요?”
 “많을 줄 알았냐? 주제 파악 좀 해라, 이 자식아!”
 “눼에~ 눼에~ 근데 그것도 고쳐야 할 점 같은데요? 개차반 같은 놈이 돈도 안 되는 의리 따위를 지키다니 전혀 어울리지 않잖아요.”
 “······기억을 상실하고도 뒤끝은 여전하구나. 유일한 장점이니 고치지 마라. 그랬다가는 내 손에 죽는다.”
 “죽일 때 머리를 때려 한 방에 보내 주세요. 배는 너무 아프더라고요.”
 “미친 놈! 지가 언제 배를 다쳐 봤다고······.”
 민우는 조용해의 말에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틀 전에요.”
 
 ***
 
 퇴원을 하기로 했다.
 병원에서 검사만 한다고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한데 퇴원을 하는 것도 일이었다.
 스타일리스트가 와서 입을 옷과 헤어스타일, 심지어 초췌해 보이게끔 화장까지 하고 있었다.
 1시간이 넘게 꼼짝 못하고 앉아 있던 민우가 조용해에게 물었다.
 “원래 이러는 겁니까?”
 “당연하지. 그동안 기다려 준 기자들을 위해서 기자회견 해야 한다. 물론 대답은 내가 할 테니까 넌 가만히 있어도 돼.”
 조용해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배우라는 직업, 꽤나 번잡한 일이군요?”
 “배우가 아니라 스타니까. 게다가 대한민국 역사상 기억상실증에 걸린 스타는 너 하나다. 드라마보다 드라마 같은 상황이지. 그 때문에 취재 경쟁도 장난 아냐. 집에 가더라도 함부로 움직일 생각하지 마.”
 정말 자신이 처음일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의문은 의문이고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그로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여 답을 대신했다.
 민우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만지고 있는 스타일리스트를 본 순간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참, 나랑 같이 사고 났다던 매니저랑 스타일리스트는 어떻게 됐어요?
 “빨리도 묻는다. 장호······, 휴우~ 신장호라고 네 매니저는 갈비뼈가 금이 가서 전치 6주 받았다. 스타일리스트 지연인 다리가 부러져 깁스한 채 몇 달 보내야 한다고 하더라.”
 인터넷 기사로 분명 다쳤다는 글을 봤음에도 그들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에 민우는 미안했다.
 조용해가 그걸 느꼈는지 한마디 덧붙였다.
 “쯧! 네가 걔들을 신경 쓸 시간이나 있었냐? 이틀간 혼수상태였다가 일어나니 기억상실증이었잖아? 걔들은 잘 지내고 있으니 너나 얼른 기억을 되찾아.”
 “이곳 병실에 있어요?”
 “왜, 찾아가게?”
 “가 봐야죠.”
 “걔들은 아무 잘못 없어. 걔들도 피해자라고.”
 “누가 뭐래요? 괜찮은지 보러 가겠다는 거예요. 얼마나 다쳤는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조용해는 민우의 말에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문경에게 사람이 바뀌었다는 말을 들었고 그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한데 오늘 새삼스레 기억을 잃기 전후로 많이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너 기억 되찾지 마라.”
 민우는 조용해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악담이에요?”
 “아니, 축언이다.”
 “형의 말대로 기억이 없는 채로 산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개자식일 때의 기억이라도 필요해요.”
 “왜?”
 “함부로 대했던 사람들에게 사과하고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지 않겠어요?”
 말을 끝내고 묘한 표정으로 미소 짓는 민우를 보던 조용해는 그가 지금은 바뀌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물론 기억을 찾고 난 후엔 어찌 될지 모르지만 말이다.
 “906호에 같이 있다.”
 “잠깐 갔다 올게요.”
 “같이 가자.”
 “괜찮은지 보러 가는 거라니까요.”
 “너 때문이 아니라 걔들 생각해서 가는 거야. 네가 가면 걔들 경기할 거다.”
 민우는 조용해가 오버한다고 생각했다.
 한데 병실에 갔을 때 나쁜 점에 대해 들었을 때완 또 다른 충격을 받아야 했다.
 “죄송합니다, 민우 형. 제 잘못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오빠. 흑! 제가 장호 오빠에게 말만 걸지 않았더라면······. 죄송해요, 죄송해요.”
 침대에 누워있던 신장호와 배지연은 아픔을 참고 일어나 맨발로 민우의 앞에 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고개를 들지 않고 계속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었다.
 민우는 그들의 행동에 당황스러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평소 얼마나 쥐 잡듯이 했으면 이럴까 싶었다.
 두통이 느껴져 왼손으로 머리를 짚어야 했다.
 “환자들이 뭐 하는 짓이야! 당장 침대에 올라가!”
 다행히 조용해가 나섰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신장호와 배지연을 일으켜 세워 침대로 억지로 눕혔다.
 “지금 민우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것 너희도 들었잖아. 그래서 너희들이 누구인지도 몰라.”
 “저, 정말이에요? 전······.”
 “네 잘못 아냐. 불가항력인 일을 당했음에도 셋 다 이렇게 무사한 것만으로도 난 신께 감사한다. 그리고 민우는 너희가 괜찮은지 보러 온 것뿐이다. 할 말 있냐?”
 두통이 가라앉자 민우는 할 말을 떠올려 보았다.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러나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다 낫고 다음에 만나면 얘기하자. 그때 사과를 제대로 할게.”
 “······.”
 “······.”
 신장호도, 배지연도 민우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올지는 생각 못 했는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 되었다.
 “너희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전혀 기억에 없어. 사과한다고 다 풀리지는 않겠지만 용서해 줬으면 좋겠다. 정말 미안하다.”
 당한 게 하루 이틀이 아닐 텐데 사과 한 번으로 용서가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러나 이제 첫걸음이라는 생각에 민우는 진심을 담아 사과했다.
 “기억을 찾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진심이라는 건 내가 보증하마. 그러니 걱정들 말고 편히 쉬고 빨리 나아라.”
 조용해가 민우의 어깨를 치며 나가자고 했다. 민우는 여전히 멍하니 있는 그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괜찮냐?”
 “네. 이젠 과거의 제가 무서워지네요. 도와줘서 고마워요, 형.”
 “네가 계약을 하지 않을까 봐 무서워 버릇이 나빠지는 걸 방치한 내 잘못도 더 크다. 이제부터 고쳐 나가면 되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마라.”
 “한데 저에게 그렇게 당하면서 저들이 붙어 있었던 이유는 뭐죠?”
 기억은 없지만 판단은 가능했다. 자신이었다면 욕이라도 실컷 하고 그만뒀을 것이다.
 “내가 말했지. 넌 의리는 있었다고.”
 “그것하고 상관이 있나요?”
 “응. 저들에게 회사가 주는 돈은 고작 100만 원이 조금 넘어. 세금 빼면 그보다 안 돼. 그래서 담당 스타에게 의존을 하게 되지.”
 민우는 금세 이해를 했다.
 “제가 돈을 넉넉히 줬나요?”
 “안 그랬음 버텼겠냐? 집안 사정이 안 좋은 애들이라 일부러 너한테 붙인 거야.”
 “돈을 빌미로 애들을 괴롭히고 있었다니······ 제가 악당처럼 느껴지네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 적당히 괴롭히면서 돈도 안 주는 놈들도 수두룩하니까.”
 위로의 말이었지만 딱히 위로가 되지 않았다.
 “참! 제가 저 둘에게 현금으로 줬나요? 아님 계좌 이체로 줬나요?”
 “몰라. 아마 계좌 이체로 줬을걸. 넌 그런 면에서는 굉장히 철저했거든. 한데 왜?”
 “병원에 있다고 해도 줘야 하니까요. 집안 사정도 안 좋다면서요?”
 “보험에서 나오고, 회사 차원에서 위로금도 나올 테니 신경 쓰지 마. 그리고 일을 돕는 것도 아닌데 너한테 돈을 바라면 안 되지.”
 “그래도 그러면 안 되죠.”
 “쯧! 알아서 해라. 네 돈 네가 쓰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냐.”
 민우는 돈으로 사죄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같이 다친 사람인데 갑작스럽게 월급이 줄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형?”
 “또, 왜? 너 은근히 수다스러워졌다. 이제 기자회견 해야 하니까, 그만 물어.”
 “······.”
 조용해는 그만 물으라고 했다고 입을 닫는 민우를 보고 한숨이 나왔다.
 “에휴~ 언제부터 내 말을 그렇게 잘 들었다고. 묻고 싶은 게 뭔데?”
 “둘한테 월급을 주려고 생각해 봤더니 내가 얼마나 돈이 있는지 몰라서요.”
 “······어이쿠, 두야. 걱정하지 마. 너 부자야. 그것도 졸라 부자야. 작년에 네가 번 게 얼마인 줄 알아? 200억이 넘어, 이 인간아.”
 “다행이네요.”
 얼마나 있는지 몰랐지만 당장은 두 사람의 월급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다행? 장난치냐? 너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회사는 죽을 맛이다. 당장 다음 달에 광고 두 개 예약된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다.”
 “그건 형의 사정이죠.”
 “······내가 의리는 잊지 말라고 했지?”
 “글쎄요? 기억에 없어서요. 형이 기억을 찾지 말라고 했으니 전 모르는 일이에요.”
 “망할! 이리와. 내가 당장 기억을 찾게 해 줄게.”
 “됐거든요. 기자회견이나 하러 가요. 하하!”
 “거기 서, 인마!”
 조용해는 웃으면서 도망가는 민우를 보며 쫓는 시늉만 할 뿐이었다.
 “의리를 잊는다 해도 지금이 보기 좋다, 민우야.”
 조용해는 웃으며 멀어진 민우를 향해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건 뭐야?”
 기자회견을 위해 병실을 나오는데 문경이 연신 박스를 옮기고 있는 게 보였다.
 “팬들이 보내온 거예요. 병실 앞에다가 갖다 둔 건데 이제 치워야 할 것 같아서요.”
 “어떻게 할 건데?”
 “일단 사무실로 옮겨서 필요한 것만 형에게 줄 거예요. 나머지는 소각장행이죠.”
 “소각장?!”
 박스는 한눈에 보기에도 제법 정성이 담겨 있었다.
 갖가지 응원 글이 곁에 적혀 있었고 커다란 리본으로 상자를 장식해놓았다.
 “줘 볼래?”
 “이거요? 아무래도 인형 같은데요?”
 문경은 큰 상자를 흔들어 보더니 말했다.
 “괜찮아.”
 “······제가 열게요. 간혹 장난치는 녀석들이 있어서.”
 리본을 풀고 열쇠를 이용해 박스의 테이프를 자르자 안에 내용물이 보였다.
 커다란 판다 인형이 편지를 품고 있었다.
 “판다 인형은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형이 작년에 출연한 드라마에서 연인에게 선물한 인형이에요. 선물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내용 때문인지 회사에 가면 이 인형만 한 방 가득이에요.”
 민우는 판다 인형이 품고 있는 편지를 뜯어 보았다.
 낫기를 기원하는 여고생의 편지였다.
 “뭐해? 빨리 와!”
 조용해가 복도 끝에서 손짓을 했다.
 “팬레터는 어떻게 해?”
 “······.”
 말을 하지 않았지만 알 것 같았다.
 “모두 챙겨 줄래? 가급적이면 선물들도.”
 “네.”
 민우는 판다 인형과 편지를 들고 병원에서 마련해 준 기자회견장으로 향했다.
 “이걸 들고 가려고?”
 입구에서 조용해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안 돼요?”
 “에휴~ 네 맘대로 해라.”
 조용해는 말싸움하기도 귀찮다는 듯 넥타이를 매만지며 들어갈 준비를 했다.
 “가자!”
 민우는 조용해를 따라 기자회견장으로 들어갔다.
 파파파파파파파파팍!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번쩍임 때문에 눈을 뜨기 힘들 정도였다.
 익숙한 환경이었을까 민우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돌리며 눈의 초점을 흐리게 만들었고 한결 편하게 원하는 자리로 가 앉을 수 있었다.
 딱히 그가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기자들의 질문에 모두 조용해가 대답했고, 기억상실증이라는 사전 지식이 있어서인지 기자들도 무리하게 대답을 종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순 없었다.
 “송민우 씨, 아까 들어오실 때 판다 인형을 들고 오던데 무슨 의미가 있는 겁니까?”
 민우는 조용해에게 걱정 말라는 듯 살짝 웃어 주고는 입을 열었다.
 “팬이 손편지와 함께 보내 주신 선물입니다. 특히 그 편지에 지금의 저에게 딱 맞는 글이 있어서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글이었나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편지를 쓴 팬분이 한창 힘들 때 저 덕분에 힘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젠 그 힘을 제게 다시 돌려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글 중에 이런 글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민우는 편지를 펼쳐서 글을 읽었기 시작했다.
 “기억을 잃었다고 두려워하지 마세요. 기억을 잃었다는 건 시련이 아닌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기억을 되찾았을 때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비교해 보세요. 그때 오빠는 두 개의 삶 중 더 나은 쪽을 선택할 수 있을 거예요.”
 “하하하! 멋진 팬이군요.”
 “그렇습니다. 그분과 더불어 많은 팬들께서 보여 주신 관심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민우는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기자들은 박수와 카메라 플래시를 민우에게 선사했다.
 그렇게 기자회견을 마친 민우는 집으로 향했다.
 
 ***
 
 한강이 보이는 청담동 고급 빌라로 들어선 밴 차량은 고급스러운 외제차가 두 대가 서 있는 작은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민우는 내릴 생각도 못 하고 창문 밖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밴을 뒤따르던 차량에서 내린 조용해는 밴의 문을 열면서 소리쳤다.
 “내가 문까지 열어 줘야겠냐?”
 “여기예요?”
 “그래. 저 두 대의 차가 네 것이라는 것도 기억에 없겠네?”
 사람조차 기억하지 못하는데 아무리 비싼 외제차라도 기억날 리가 없었다.
 “네가 애지중지하던 놈들이다. 기억나기 전까지 타고 다닐 생각 마라. 빨간불에 차가 멈춰야 하는 것도 잊어버렸을 테니까.”
 “문경이가 운전하는 거 보니까 알겠던데요.”
 “참 편리한 기억상실증이다. 어쨌든 타고 다니지 마. 앞으로 문경이가 너랑 24시간 있을 거야.”
 “사, 사장님!”
 장문경이 화들짝 놀라며 조용해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조용해는 단칼에 그의 눈빛을 무시했다.
 “장호가 나을 때까지만 버텨. 다음엔 네가 그토록 바라던 걸그룹 매니저 시켜 줄게.”
 “······정말이죠?”
 “내가 너한테 거짓말할 정신이 있어 보이냐? 그리고 가급적 민우 정신 차리게 만들어. 기억은 못 찾아도 좋아. 구실만 하게 만들어.”
 “제가 무슨 수로요?”
 “수가 있었으면 너한테 맡기겠냐? 내가 하지. 노래도 시켜 보고, 연기도 시켜 보고, 그래서 방송에 나갈 정도로만 만들어. 저렇게 멍하니 있다간 정말 회사 문 닫을지도 모른다.”
 “설마요?”
 “지금 주가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얘기해 줄까? 그리고 민우가 돈을 못 벌면 네가 좋아하는 걸그룹 데뷔도 뒤로 미뤄야 할 판국이야.”
 오버해서 말하긴 했지만 송민우의 가치는 회사의 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걸그룹 얘기만 나오면 꼼짝도 못하는 문경을 보며 민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조용해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던 민우는 빌라 입구에 여러 개의 박스가 있는 걸 발견했다.
 “이것도 팬들이 보낸 겁니까?”
 “응. 대단한 애들이지. 삼엄한 경비망을 뚫고 이곳까지 와서 상자를 놓고 가는 거니까. 하지만 우리가 보기엔 귀찮은 일이야. 담을 넘다가 걸리는 애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그나마 이웃 주민분들이 봐줘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벌써 집을 옮겼어야 해.”
 “나중에 감사하다고 해야겠네요.”
 “······꼭 그래라.”
 조용해의 눈빛에 그동안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데 이렇게 입구에 둬도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지 않나 보군요?”
 “이곳으로 올 사람은 너뿐이니까.”
 “네?”
 민우가 반문을 했지만 조용해는 귀찮다는 듯 입구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고, 조용해를 따라 집으로 들어간 민우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빌라는 집마다 다른 입구를 가진 구조였다.
 “이곳이 제 집인가요?”
 빌라 안으로 들어간 민우는 복층 구조의 실내를 보며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깔끔하게 꾸며진 곳이었지만 크기 면에서나 인테리어 면에서 화려하다는 인상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월세다. 그것도 회사 돈으로 낸다.”
 “지나치게 크군요.”
 “역시 기억은 찾지 마라. 그리고 다음에 옮길 때 적당한 곳으로 정해 주길 바란다.”
 민우는 과거의 자신이 원해서 구한 집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난 이젠 회사로 가 봐야 하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문경이에게 말해라.”
 “고마워요, 형.”
 “······그래. 또 들르마.”
 조용해가 가고 문경이 입구에 있던 상자들을 잔뜩 들고 들어왔다.
 “어디다 둘까요?”
 “거실에 둬. 지낼 방은 좀 있다 말해 줄게.”
 집의 구조가 기억날 리가 만무했다.
 민우는 거실 입구로 가서 차근차근 알아보기로 했다.
 입구에 있는 신발장을 열어 본 민우는 가볍게 인상을 썼다. 신발이 가득했고, 한쪽에는 신발 박스처럼 보이는 박스가 쌓여 있었다.
 신발장도 하나가 아니라 좌우로 있었는데 우측은 아예 방으로 꾸며져 있었다.
 신발의 개수를 세어 보려던 민우는 그저 신발이 많다는 정도로 머릿속에 새겨 두고 다음으로 넘어갔다.
 “뭐 하세요?”
 “집 구경. 소파에 앉아서 편하게 있어.”
 이곳저곳을 일일이 열고 닫자 소파 근처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던 문경이 물었다.
 거실과 부엌을 훑어본 민우는 거실 바로 옆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 자신의 방임을 알 수 있었다.
 두세 명은 충분히 잘 수 있는 침대와 그 머리맡에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자신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고가 나기 전에 입었던 옷이 침대에 걸쳐져 있었고, 화장대 위엔 몇 가지 악세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민우는 옷장처럼 보이는 곳의 문을 열었다.
 옷장이 아니라 옷과 액세서리가 가득한 드레스룸이 나왔다.
 “많기도 하다.”
 고급스러운 시계만 해도 수십 개, 그 외의 장신구들까지 합치면 천 개는 넘을 것 같았다. 이곳을 다 살펴보는 것만으로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기에 민우는 서랍 안에 무엇이 있는지만 확인하고 나왔다.
 민우의 집 탐험은 계속되었다.
 2층까지 모두 구경을 하고 손님방인 듯한 곳을 문경이 쓰라고 말해준 후, 거실에 서서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빠졌다.
 ‘이상하군, 왜 없지? 드레스룸인가?’
 민우가 찾는 건 통장이나 그와 유사한 개인적인 물건들이었다.
 드레스룸에 들어가 샅샅이 뒤졌지만 찾는 건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찾은 끝에 침대 옆 책장 밑에 있는 금고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밀번호가 기억날 리 없는 송민우는 멍하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열쇠 수리공을 불러야 하나?”
 기억이 없으니 불편한 게 한두 개가 아니다.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어나려 하는데 문득 떠오르는 숫자가 있었다.
 설마 하는 생각에 눌러 봤다.
 띠! 띠! 띠! 띠띠! 띠! 철컹!
 “열렸다!”
 일상적이었을 일인데 지금은 그저 신기하다.
 작은 모텔에 있는 냉장고 크기의 금고 안에는 현금과 각종 영수증과 가계부, 통장 하나가 놓여 있었다.
 “꽤 철저한 성격이었나 보네.”
 가계부와 영수증이야 그렇다고 쳐도 통장엔 연필로 어디서 들어온 돈인지 어떤 용도로 출금했는지가 꼼꼼히 적혀 있었다.
 통장의 잔고가 억대가 넘는 걸 보니 돈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기억을 잃기 전에야 어찌 되었건 지금은 가계부와 씨름을 할 여유도, 생각도 없었다.
 어느 정도 집을 둘러본 민우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나 뇌가 너무 순백이라 그런지 고민은 길지도 깊지도 않았다. 교통사고의 후유증인지 어느새 그는 잠이 들었다.
 
 ***
 
 똑똑!
 노크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양말도 채 벗지 않고 잠든 것 같은데 양말은 벗겨져 있었고 이불도 덮여 있었다.
 “으, 응?”
 “형, 죽 사 왔으니까 아침 식사하세요.”
 “······벌써 아침이라고? 내가 얼마나 잤어.”
 “16시간 정도요. 너무 곤히 쉬고 계셔서 안 깨웠어요. 갖다 드릴까요?”
 “아니.”
 오랜 시간 잤음에도 침대가 끈끈이처럼 몸을 잡아당기는 듯했다. 그러나 배고픔이 덕지덕지 붙은 잠을 털어 내게 만들었다.
 아침을 먹었다. 할 일이 없어 소파에 앉았다.
 “커피 한 잔 내려 드릴까요?”
 “응.”
 커피를 마셨다. 여전히 할 일이 없다.
 TV를 켰다. 내 얼굴이 나오는 광고가 꽤 많다.
 근데 광고 빼곤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평소 TV 보는 걸 안 좋아했나?
 TV를 켜 놓고 하염없이 멍하니 있었다.
 장문경은 뭔가 그리 바쁜지 왔다 갔다 한다.
 왠지 그의 번잡함이 부럽다.
 “형, 점심 뭐 드실래요. 나가서 사 올게요.”
 시계를 보니 어느새 11시 30분이다.
 “문경아, 잠깐 이리 와봐.”
 “예, 형.”
 그는 후다닥 달려와 옆에 선다. 음식 주문받으러 온 종업원처럼 군다.
 “앉아. 물어볼 게 있으니까.”
 그는 공손히 앉았다. 기억을 잃었음에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편하게 하라는 해도 안 고쳐지는 걸 보면 시간이 약인 모양이다.
 “나 평소에 뭐 했냐?”
 “네?”
 “기억을 잃기 전에 주로 뭘 했냐고?”
 “제가 형 담당이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일을 많이 하셨죠. 일본 갔다 중국 갔다 동남아시아 순방 갔다 정신없이 다니셨죠.”
 일 중독자였나, 아니면 돈에 환장해서?
 “일 안 할 땐?”
 “그야 모르죠. 근데 장호 말로는 웬만하면 집에서 꼼짝도 안 했다던대요.”
 “그래?”
 “생각해 보면 친구도 없고 친한 선후배도 없는데 뭘 하겠어······ 아! 제 말은 그게 아니라······, 그러니까 스케줄이 없을 땐 피곤해서 집에서 쉬었다는 얘깁니다. 하하······.”
 “알았어, 일 봐.”
 이렇게 멍 때리는 게 기억을 잃어서가 아니라 평소 생활이었다니, 돈은 벌었는지 모르지만 세상 참 삭막하게도 살았다.
 ‘하나씩 하나씩 고쳐 나가자.’
 마음을 먹은 것만으로도 조금 착해지는 기분이다.
 “아! 근데 형. 점심은 뭐 먹을 거예요?”
 “돼지국밥. 이왕이면 부산의 유명 맛집에서 파는 걸로 먹고 싶네.”
 “······.”
 “하하하! 농담이다. 아까 TV에 홍은동 족발집 나왔는데 그 집 족발로 먹자.”
 일단 뒤끝부터 고쳐야 할 모양이다.
 
 
 # 2. 한 걸음씩
 
 뜬금없는 환생 혹은 꿈의 기억.
 그것을 제외하곤 잃어버린 기억상실.
 이 두 가지로 인해 꽤나 감성적으로 행동했던 송민우는 차츰 이성을 되찾아 갔다.
 생을 기획사에서 만들어 준 이력서로 확인하고 아이돌 가수를 할 때부터 병원에 입원할 때까지의 모든 영상을 확인하며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대신 비어 버린 기억의 책장에 ‘뭘 하면서 살았는지’에 대해선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었다.
 그러면서 ‘과연 나는 조용해 사장이 말한 것처럼 쓰레기처럼 살았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미래의 자신 모습인 듯한 개꿈과 지금까지 보고 들은 것을 보면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하지만 잘못은 바로잡아야겠지만 너무 저자세가 되어 기가 죽어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기억나지 않는 잘못을 바로잡을 순 없잖은가.
 ‘그러고 보면 난 꽤 이성적인 성격이었던 것 같아.’
 커피를 마시며 지난 며칠간의 일을 되돌려 보던 민우는 피식 웃었다.
 기억이 많지 않다는 것의 장점은 되돌아보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커피를 다 마신 민우는 팬레터를 보낸 팬들에게 손편지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집뿐만 아니라 회사로도 선물과 팬레터가 도착했기에 써야 할 양이 상당했기에 내용은 길지 않았다.
 덕분에 잘 지내고 있고 선물을 잘 받았다는 내용에 불과했지만 아침에 일어나 점심때까지는 꼬박 편지를 써야 했다.
 한데 민우는 괜찮았지만 정작 옆에서 풀을 붙이는 문경은 죽을 맛이었다.
 “형, 이렇게 손편지 쓰면 팬레터가 더 많이 올 거예요. 그때는 어쩌시려고요? 하루 종일 써도 아마 다 답장을 못 할 걸요.”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쓰는 건 멈추지 않았다.
 “차라리 팬카페에 들어가서 글을 쓰는 게 더 좋지 않겠어요? 누구누구에게 편지를 받았는데 고마웠다. 이렇게만 쓰면 될 일이잖아요. 채팅 기능이 있으니 간단히 채팅을 해도 되고요.”
 좋은 방법이다. 그런 방법이 있다는 걸 진즉에 알았다면 시간을 아낄 수 있었을 텐데.
 민우는 비로소 쓰는 걸 멈추었다. 그러나 펜은 여전히 든 채였다.
 “좋은 생각이긴 해. 근데 지금은 시간이 너무 남아돌아. 가만히 있으려니 좀이 쑤셔서 이렇게라도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야.”
 “그럼 저랑 연기 연습을 하는 건 어때요? 예전에 했던 대본들이 있으니 그걸로 해 봐요. 하다 보면 기억이 날 수도 있고요.”
 꽤 좋은 생각이었다.
 제3자 입장에서 보는 영화보단 대본이 훨씬 기억이 잘 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알았어. 그럼 이거 다 쓰고 시작하자.”
 “······.”
 문경은 긁어 부스럼이란 속담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이미 발을 빼기엔 늦었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처럼 편지 쓰기를 마친 민우는 사고가 나기 전까지 찍었던 영화 대본을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동안 약간이라도 기억이 나길 바랐지만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자신의 필체임이 분명한 대본에 적힌 메모조차 꼼꼼히 살펴봤지만 마찬가지.
 ‘연기를 해 보면 낫지 않을까?’
 대본을 다 읽고 잠시 눈을 감고 주인공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생각해 본 후에야 눈을 떴다.
 “신 50부터 해 보자.”
 신 50은주인공이 부조리한 정치인을 단죄하는 장면이었다.
 “네놈은 누구냐?”
 문경은 대본을 보며 국어책을 읽듯이 읽었고 민우는 바로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할 일 없는 백수.”
 “백수?”
 “응, 백수야. 그래서 심심할 때 간혹 청소를 하곤 해. 너 같은 쓰레기들을 말이지.”
 “······무, 무슨 말이지?”
 꿀꺽!
 문경은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지문에 ‘더듬거리며 말한다.’고 적혀 있어서 더듬거린 게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실실거리며 말하고 있는 민우가 진실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헐~ 성격은 더러워도 배우는 배우인가 보네. 눈빛이 어쩜 저렇게 금방 변하냐.’
 문경은 감탄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 그와는 상관없이 민우의 연기는 계속됐다.
 “하긴 쓰레기가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지. 좀 아플 거야. 난 쓰레기를 처리할 때 꽤 거칠거든.”
 “······저, 저리 가.”
 대본엔 칼을 든 주인공이 다가오는 장면이었지만 민우가 들고 있는 건 TV 리모컨이었다.
 한데 그 모습이 우습기는커녕 두려웠다.
 이미 대본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뱀의 눈을 본 개구리처럼 민우의 눈빛에 걸려 자신도 모르게 벌벌 떨었다.
 “으아아아아악!”
 문경은 민우가 다가오자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움츠렸다.
 “뭐야?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은 다 한 정치인이 그렇게 비명을 지르면 어쩌자는 거야? 좀 더 당당하게 죽어 줘야 하는 거 아냐?”
 “······.”
 문경은 자신의 추태를 깨달았다. 그리고 사장인 조용해가 민우의 연기력에 대해 말할 때마다 언급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타고난 미친 연기력!’
 문경은 조용해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연기를 하고 있지 않은 민우는 약간 나사 빠진 사람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죄송해요. 어, 어쨌든 이번 신은 끝났으니까 다른 신으로 해 봐요.”
 문경은 대본을 넘기며 폭력적이지 않은 장면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망할 폭력 영화!’
 온통 싸우고 죽이는 장면뿐이었다.
 그러다 여주인공과 대화하는 장면을 발견했다.
 “신 77 여주인공과 대화하는 장면 해 봐요. 험험!”
 목을 가다듬은 문경은 좀 전의 일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여성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백수면 백수답게 그냥 놀면서 살아. 내가 벌어서 널 먹여 살리면 되잖아!”
 “······미안. 네 말이 맞긴 한데 백수라고 해도 간혹 하고 싶은 게 있는 법이야.”
 “하지 마! 네가 그런다고 누가 알아나 준대? 차라리 다른 걸 해. 예전처럼 차라리 내 몸을 탐하란 말이야.”
 문경은 스스로의 여자 연기에 닭살과 함께 손발이 오그라들었지만 민우는 개의치 않았다.
 “훗! 그러고 보니 그립다.”
 문경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다가오는 민우를 보며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어지는 장면은 주인공이 여주인공의 와이셔츠를 풀고 옷을 벗기는 장면이었다.
 ‘눈이 정말 슬퍼 보인다.’
 문경은 눈앞의 민우가 불쌍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가슴팍이 시원해짐을 느끼고 정신을 차렸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던 문경은 어느새 활짝 열려 있는 가슴팍을 손으로 막으며 더듬거리며 말했다.
 “미, 민우 형······, 뭐, 뭐 하시는 겁니까?”
 “······쩝! 너랑은 도저히 연기 못 하겠다. 대사 읽는 것도 못 하냐?”
 민우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맞은편 소파에 앉아 버렸다.
 “······.”
 문경은 와이셔츠의 단추를 채우며 조용해가 민우를 욕할 때마다 들먹이던 말이 생각났다.
 ‘개도 루팡.’
 개 같은 도둑놈이란 별명을 순화한 것으로 같이 연기하는 여배우들의 마음과 몸을 훔친다고 붙은 별명이었다.
 문경은 시기심에 속으로 골빈 것들이라고 상대 여배우를 욕하곤 했었다.
 한데 이제 보니 원흉은 민우였다.
 ‘망할 자식, 아예 남자도 따먹겠군.’
 민망함에 민우를 한참 욕하던 문경은 문득 이상한 것이 있음을 깨달았다.
 “혀, 형 혹시 신 120의 대사 기억나세요?”
 “이젠 너랑 연기 연습 안 한다니까.”
 “그게 아니라 그냥 대사를 알고 있나 해서요.”
 “주인공이 함정에 빠진 신이잖아. 대사는 ‘함정이었군. 하지만 웬만한 함정으로는 날 잡을 수 없을 거야.’ 아냐? 그럼 상대는 ‘백수 정도는 잡을 수 있는 함정이지.’라고 말하지.”
 민우는 주저리주저리 신 120의 대사를 말했고 문경은 멍하니 민우와 대본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말했다.
 “······대본을 다 외우신 거예요?”
 “응?”
 문경의 말에 민우는 비로소 자신의 머릿속에 대본의 모든 내용이 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곧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대본을 외운 기억이 떠올랐나 보다. 정작 다른 기억은 나지 않고 쓸데없어진 대본이 기억나다니······.”
 하지만 문경의 이어지는 말에 자신의 머리가 이상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형은 촬영할 때만 대사 외우는 걸로 유명해요. 소속사 직원 중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걸요.”
 “그래? 내가 그렇게 머리가 좋았나?”
 “그게 아니라 그 정도로 대충······, 큼! 머, 머리가 좋아서일 수도 있겠네요.”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대본 연습도 어지간히 게을리했나 보다.
 오전 중에 읽었던 팬레터 중 하나를 떠올려 보았다.
 마치 사진이 찍힌 듯 전체 내용이 떠올랐다.
 기억력이 좋아졌다고 딱히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사진처럼 기억할 수 있다는 건 좋지 않은 기억도 잊지 못한다는 말과 같았다.
 “하······ 하하. 머리에 든 게 없어서 암기력이 좋아졌나 보다.”
 “농담이 나와요?”
 “그럼 울까?”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영화에서 보면 뇌종양 때문에······.”
 “바로 며칠 전에 병원에서 MRI 찍었잖아. 정기검진 때 가보면 알겠지.”
 민우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환자 취급은 이제 사양이었다. 머리가 좋았는데 써먹지 않은 걸 수도 있었다.
 “점심이나 사 와라. 아니다, 오늘은 밖에 나가서 먹자.”
 사 먹는 것도, 집에만 있는 곳도 지겨웠다.
 민우가 일어나서 옷을 입고 나오자 그제야 문경도 정신을 차리고 옷을 챙겨 내려왔다.
 “여기서 먹자.”
 집에서 멀지 않은 제법 큰 설렁탕집이었다.
 “어서 오십······ 시오······.”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중년 사내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지만 민우는 알아채지 못하고 빈자리로 향했다.
 점심시간이라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뭘······ 드릴까요?”
 “특탕으로 두 개 주세요.”
 직원이 자신의 얼굴을 알아봐서 당황하는 거라고 생각한 민우는 주문을 하면서 살짝 고개를 까닥이며 인사를 했다.
 하지만 나온 설렁탕 국물을 한입 떠먹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챘다.
 설렁탕은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짰다.
 문경은 아무렇지 않게 먹는 걸 보니 자신의 것에만 소금을 잔뜩 넣었으리라.
 민우는 종업원을 부르려다가 카운터의 중년 사내가 자신을 보며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는 걸 보았다.
 ‘동네 음식점에서도 미움을 받는 건가?’
 민우는 자조의 웃음을 짓고는 밥을 말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먹기 시작했다.
 민우라고 왜 짜증이 나지 않겠느냐마는 분명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참기로 했다.
 소금기 가득한 설렁탕 한 그릇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오히려 나았다.
 설렁탕집 주인인 중년 사내는 묵묵히 설렁탕을 먹기 시작하는 민우를 보고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서빙을 담당하는 자신의 처도 당황스러웠는지 엄청난 소금을 넣었다는 듯 두 손으로 커다란 원을 만들어 보이고 있었다.
 ‘저 짠 걸 먹고 있단 말이야?’
 중년 사내의 얼굴은 고소하다는 표정에서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일의 발단은 1년 전쯤이었다.
 TV에서 자주 보던 유명 배우가 설렁탕을 먹으러 왔다는 말에 양도 푸짐하게 주고 서비스로 수육까지 넉넉히 내줬었다.
 스타들의 사인과 사진 한 장이 매상에 도움이 된다고는 하지만 그에게는 매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2대째 해 온 설렁탕집이라 수많은 스타들이 다녀가며 사인과 사진을 남겼는데 한쪽 벽을 가득 채운 그 사인들이 그에게는 취미임과 동시에 컬렉션이었다.
 식사가 끝나고 그는 조심스럽게 사인과 사진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싸늘한 냉소와 건방지기 짝이 없는 말투였다.
 그날 이후로 그는 취미이자 컬렉션인 사인 모으기를 그만두었다.
 스타들이라고 딱히 서비스를 주지도 않았고, 사인을 해 달라는 말도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건방진 얼굴이 TV에 나오면 언제나 채널을 돌려 버렸었다.
 한데 그 일의 원흉이 왔으니 당시의 일이 떠올랐고 화가 난 그는 자신의 처에게 소금을 왕창 넣어 주라고 말한 것이다. 근데 태연히 먹고 있다.
 ‘가만 그러고 보니······.’
 며칠 전 TV에 건방진 놈이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말에 고소해 했던 것이 기억났다.
 같은 사람이면서 다른 사람이었던 거다.
 주인은 민우의 식탁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꾸역꾸역 먹고 있는 그릇을 뺏었다.
 “아저씨, 뭐 하는 짓이에요!”
 문경이 황당해하면서도 혹시나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민우를 보호하려고 했다.
 문경은 민우에게 만날 당하는 것과 달리 덩치가 좋았고 얼핏 보면 조폭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험악한 인상을 자랑했다.
 “문경아, 별일 아니니까 조용히 앉아 있어라.”
 민우는 문경을 말렸다.
 주인은 낮은 목소리였지만 화난 듯 말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미련합니까? 짜면 짜다고 말해야 할 것 아닙니까?”
 “사장님의 행동을 짐작건대 저랑 아마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겠죠?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민우는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 그리 큰 잘못이 아니었소. 그리고······ 나도 미안합니다. 음식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군요. 새로운 설렁탕을 내어 드릴 테니 드시고 가세요.”
 주인은 민우의 사과하는 모습에 화도 나고 미안하기도 한 묘한 마음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는 뚝배기를 들고 주방이 있는 곳으로 갔다.
 “형,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주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민우는 문경의 말에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TV에 나오는 얼굴이라 양을 더 주려고 하나 보지.”
 “그게 아닌 것 같은데요?”
 “이만 신경 끄고 밥이나 먹어라.”
 문경을 달래고 있는데 주인은 설렁탕뿐만 아니라 수육까지 한가득 갖다 주었다.
 “서비스요. 부족하면 더 갖다 주리다.”
 “이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주인은 더 이상 말을 섞기도 싫다는 듯 카운터로 가 버렸다.
 문경이 주인의 태도에 다시 욱하려 했지만 민우는 진정시키고 설렁탕과 수육을 먹기 시작했다.
 설렁탕을 먹는 민우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한 번 참음으로써 전부는 아니겠지만 빌어먹을 과거를 조금이나마 고쳤다는 것에 만족했다.
 
 약간의 소동 때문인지 사람들은 민우를 알아봤다.
 대부분이 그저 신기한 듯 쳐다보고 지나갔지만 개중 용감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었다.
 “······안녕하세요, 송민우 씨죠? 저······, 팬인데 사인 한 장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 이러시면······.”
 문경이 막으려고 했지만 민우가 먼저 말했다.
 “물론이죠. 기억상실증이라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하죠. 어디에다가 해 드릴까요?”
 민우는 문경을 말을 막으며 웃는 얼굴로 답했다.
 “자, 잠깐만요.”
 정말 해 줄지 몰랐던 아가씨는 주인에게 용지를 받으러 다녀왔다.
  민우는 그녀가 가져온 A4용지에 사인을 해 줬다.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영업 방해하면 안 되니까 빨리 찍죠. 이리 와요.”
 민우는 자신이 앉아 있던 옆자리로 옮기며 아가씨를 옆에 앉히고 사진을 찍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는 갔지만 몇몇은 스마트폰을 들고 먹는 모습을 찍었다.
 민우는 사실 꽤 귀찮았다.
 따뜻한 국이 식고 김이 모락모락 나며 촉촉했던 수육이 말라 가는 게 안타까웠다.
 그러나 기억을 잃었다 해도 통장에 쌓인 액수가 저런 팬들이 영화를 봐 주고 광고를 보고 물건을 사 주기 때문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향해 웃어 주기도 했다.
 신기함도 계속 보다 보면 흐려지기 마련, 사진을 찍던 사람들도 하나둘 줄었고 민우는 편안하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잘 먹었습니다. 다시 올게요.”
 “······서비스는 없소.”
 “하하! 다음엔 돈 주고 사 먹겠습니다.”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죽을 짓을 하지 않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말투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음식점을 나온 민우는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안 들어가세요?”
 “이왕 나온 거 좀 돌아다니다 가자. 넌 안에만 있는데 갑갑하지도 않냐?”
 “하지만 사장님이······.”
 “기억상실증이지 전염병이 아니잖아.”
 할 말만 하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민우를 보며 문경은 예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뒤를 쫓았다.
 정신을 차리고 내내 실내에서만 있었더니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짐을 느꼈다.
 흘낏거리는 사람들에게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한참 동네 이곳저곳을 걷던 민우의 걸음이 어떤 간판을 보고 딱 멈췄다.
 승진복싱클럽.
 꿈속의 사내에게 맥없이 당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필요해!’
 꿈속에서처럼 맞기 싫었다. 똑같은 일을 당한다면 사내를 이길 정도로 강해지고 싶었다.
 “형, 복싱 배우시려고요?”
 “응.”
 “으악! 안 돼요. 얼굴 망가지면 어쩌려고요.”
 “상처 하나쯤 있는 것도 괜찮겠지.”
 “그럼, 저 사장님한테 죽어요!”
 민우는 자신의 너무 미끈한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한 말이었지만 문경은 팔짝 뛰며 민우의 팔을 잡았다. 하지만 복싱클럽으로 들어가는 민우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땀 냄새가 가득한 남자들의 공간이라 생각했지만 땀 냄새보다는 상쾌한 방향제 향이 났고 남자보다는 땀복을 입고 운동하는 여자들이 더 많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여자들의 자세를 봐주던 사내가 다가오며 물었다.
 “권투를 배우고 싶어서요.”
 “어······? 혹시 배우 송민우 씨 아니십니까?”
 “맞습니다.”
 “우와! 반갑습니다. 사고 났다는 기사를 봤는데 이젠 괜찮으십니까? 다이어트 때문에 오셨다면 잘 오셨습니다. 저희는 다이어트 전문으로······.”
 “실전으로 배우고 싶습니다만.”
 “하하하! 남자라면 실전이죠.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복싱도장이 시끄러워졌다. 민우는 ‘꺅꺅’거리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사내를 따라갔다.
 “권투는 관장님이 봐주시는데 힘드실 겁니다. 아무리 송민우 씨라고 해도 장난으로 하면 혼을 내실 거고요.”
 “상관없습니다.”
 “음, 그럼 일단 한번 해 보시죠. 힘들면 그때 시간을 바꾸셔도 될 겁니다.”
 사범이라는 사내는 분명히 바꾸게 될 거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일단 관장님이 하시는 시간 때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침 6시부터 10시까지,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밤 10시부터 12시까지 시간 중에서 편한 시간을 선택하면 됩니다.”
 “하루 1시간씩인가요?”
 “아뇨. 원하는 만큼 하셔도 됩니다. 몸이 버틸 수 있다면 말이죠. 하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아침 시간으로 하겠습니다.”
 “3개월 끊으면 10퍼센트 할인됩니다. 6개월은 30퍼센트, 12개월은 50퍼센트죠.”
 “일단 6개월로······.”
 민우의 어깨를 잡는 손이 있었다.
 “형! 형은 연예인이에요. 당장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요. 정하고 싶으면 한 달만 해 봐요.”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민우에겐 지금 촬영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강해지는 게 우선이었다.
 “6개월로 하죠. 대신 시간 있을 때 많이 하겠습니다. 카드 되죠?”
 “물론이죠. 한데 10일이 지나면 환불이 불가능합니다. 물론 수수료는 부담하셔야 하고요.”
 사범은 걱정스럽다는 눈빛으로 카드를 긁었다.
 보통 민우 같은 이들은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환불해 달라고 하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눈빛과 다르게 민우의 눈빛은 반드시 강해지겠다는 의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
 
 생활의 패턴을 바꿔야 했다.
 일단 12시에 자던 습관을 바꿔 11시에 잠이 들었고, 5시에 일어나 준비를 한 후, 집에 있는 러닝머신으로 30분 정도 뛰다가 복싱클럽으로 향했다.
 추운 날이었지만 뛰어가니 오히려 상쾌하다는 느낌이었다.
 아침 6시임에도 도장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고 두세 명이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관장은 170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왜소한 체격의 중년이었는데 눈빛만은 꿈속에 나온 사내만큼이나 날카로웠다.
 “자네가 오늘부터 복싱을 배운다던 친구군.”
 다짜고짜 반말이었지만 왠지 거부감이 들지 않는 반말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뛰어왔나?”
 “예. 러닝머신으로 30분 정도 뛰었습니다.”
 “좋은 자세야. 한데 엄청 유명한 배우라더군. 미안하지만 난 TV를 즐겨 보지 않아서 잘 몰라. 어디서 본 얼굴은 확실하군.”
 “저도 절 잘 모르는걸요.”
 “허허허! 재미있는 친구군.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며? 혹시 기억을 찾고 싶어서 온 건가?”
 “복싱을 배우면 기억을 찾을 수 있는 겁니까?”
 민우는 관장이 말하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해 물었다.
 “주먹에 맞다 보면 기억을 되찾을 수도 있지. 물론 더 망가질 수도 있지만 말이야.”
 복싱이 쉽지 않은 운동임을 은연중에 말했지만 민우의 결심은 어느 정도 굳은 상태였다.
 “그럼, 기대해 봐야겠네요. 어떤 것부터 해야 할까요?”
 “줄넘기. 창식아!”
 “넵! 관장님.”
 관장의 부름에 창식이라는 앳된 청년이 달려왔다.
 “네가 이 친구 줄넘기 좀 가르쳐 줘라. 이 친구 따라가서 줄넘기부터 배워. 줄넘기하는 거 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고.”
 “네.”
 “예, 알겠습니다. 이리로 오시죠.”
 민우는 창식을 따라 도장의 한쪽으로 갔다.
 “반가워요, 송민우라고 해요. 잘 부탁해요.”
 “헤헤. 관장님이야 워낙 특이한 분이니 그렇다고 해도, 형님 모르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될까요? 이창식이에요. 말 놓으시고 편하게 창식이라고 부르세요.”
 창식은 험악한 인상과 달리 순박하기 그지없었다.
 “그럴까? 창식인 몇 살이지?”
 “올해 열아홉이에요.”
 “고삼?”
 “검정고시 준비 중이에요. 권투를 위해 학교는 그만뒀거든요. 헤헤!”
 “고생하네.”
 고등학교 얘기에 다소 어두운 표정을 짓는 창식을 보며 무슨 사연이 있다는 걸 직감했다.
 하지만 처음 만난 이에게 그런 것을 물을 정도로 민우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럼 시작해 볼까?”
 “네, 형님. 일단 제가 하는 모습 보여 드릴게요.”
 창식은 거리를 약간 벌리더니 바로 줄넘기를 시작했다.
 휘휘익! 휘휘익! 휘휘익!
 오른발과 왼발을 번갈아 가며 스텝을 밟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3분 하시고 30초 쉬세요. 그걸 열두 세트 하면 돼요. 해 보세요.”
 민우는 창식이 가르쳐 준 대로 줄넘기를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형님, 스텝은 이렇게요, 이렇게. 처음엔 천천히 하다가 익숙해지면 속도를 높이세요.”
 창식이 몇 번이고 보여 줬지만 따라 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스텝이 엉망이었는데 스텝에 신경 쓰면 줄이 걸렸고, 줄에 신경을 쓰면 스텝이 꼬였다.
 “이거 쉽지 않네.”
 줄넘기부터 만만치 않다.
 “형이 몸치라서 그래요.”
 “몸치 아니거든!”
 “하하! 몸치 맞거든요. 이걸로 해 보세요.”
 창식이 건네는 줄넘기는 반으로 잘린 줄넘기였다.
 “이걸로 일단 스텝이 완벽해질 때까지 연습하세요. 그다음에 정상적인 줄넘기로 하면 될 거예요.”
 “고맙다. 너도 가서 훈련해라. 잘하면 다음 단계 가르쳐 주고.”
 “한 달 동안 줄넘기만 하셔야 할걸요. 헤헤!”
 장난스럽게 웃고 가는 창식을 향해 주먹을 들어 올렸지만 민우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되지? 창식이 말처럼 몸치인가?’
 스텝 밟기가 쉽지 않았다.
 민우는 눈을 감고 창식이 보여 준 스텝 밟기를 생각해 보았다.
 마치 동영상처럼 선명하게 그 장면이 보였다.
 ‘느리게······. 더 느리게······.’
 신기하게도 머릿속에 있는 영상은 민우의 생각대로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민우는 눈을 감은 채 천천히 흉내 내기 시작했다.
 ‘저 자식 뭐 하는 거야? 기억상실증이 아니라 머리를 심하게 다친 거 아냐?’
 관장은 눈을 감고 어정쩡한 자세로 스텝을 밟는 민우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신만만하게 복싱을 배우러 왔던 사람들도 한 달을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돈을 돌려줘야 하긴 했지만 끈기 없는 사람을 가르치긴 죽기보다 싫은 관장이었다.
 저러다 말겠지 싶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곧 시합이라 민우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된다!’
 창식만큼은 아니라도 천천히 하다 보니 정확하게 스텝을 밟을 수 있었다.
 끊어진 줄넘기로 한참을 하던 민우는 정상적인 줄넘기기로 바꿔서 해 봤다.
 스텝이 되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신이 난 민우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줄넘기에 빠졌다.
 그렇게 한참을 하는데 줄이 어딘가에 걸렸고 줄넘기를 멈춰야 했다.
 “······형님, 얼마나 하시는 거예요? 이 땀 좀 봐. 이러다가 탈진해요, 형님.”
 창식은 약간 꿉꿉한 냄새가 나는 수건으로 얼굴 이곳저곳을 닦아 주었다.
 정신을 차린 민우는 갑자기 온몸의 맥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줄넘기를 하던 자리에 그냥 주저앉았다.
 “물 드세요, 형님.”
 “······고맙다.”
 입은 바싹 말라 있었고, 앉았음에도 땀은 계속 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8시가 넘어 있었다. 최소한 1시간은 넘게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는 소리였다.
 창식이 건넨 물을 마시자 약간의 기운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휴~ 이제 좀 살 것 같다.”
 “더 갖다 드려요?”
 “아니, 좀 있다 내가 먹으마.”
 “첫날부터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몸살 걸리면 어쩌시려고요. 그나저나 줄넘기 완전 잘하던데요?”
 “하하! 가르쳐 준 사람이 훌륭했으니까.”
 “제가 좀 훌륭하긴 하죠. 헤헤헤!”
 창식은 충분히 쉬라고 말한 후에야 자신의 운동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민우는 지친 몸도 쉴 겸 앉아서 창식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신이 무얼 하는지조차 잃어버릴 정도로 집중하는 건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 듯한 기억력은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다시 해 볼까?”
 땀도 적당히 식었고, 다리의 힘도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기에 민우는 다시 줄넘기를 잡았다.
 그리고 너무 집중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서서히 줄넘기를 시작했다.
 
 ***
 
 “독한 놈.”
 복싱클럽 관장인 두승진은 훈련을 하고 있는 민우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침 6시부터 12시까지 집에 갈 생각도 하지 않고 훈련을 하는 민우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물론 중간에 아침 먹는 시간을 빼면 5시간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몇 번 얘기했었다. 하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벌써 10일째 저러고 있으니 두승진도 이젠 포기 상태였다.
 물론 그가 길게 훈련을 한다고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오전 10시에 여성 손님들이 갑자기 확 늘어난 것이다.
 “쯧쯧! 또 정신줄을 놨구먼.”
 민우가 지금 하고 있는 훈련은 위빙과 더킹이었다.
 위빙은 몸을 좌우로 흔들어, 더킹은 무릎을 굽혀 주먹을 피하는 방법인데 고무줄을 길게 걸어 두고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연습을 했다.
 복싱 자세를 잡고 고무줄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민우는 마치 선수처럼 재빨랐다.
 두승진은 고무줄을 당겼다가 놓았다.
 “아얏!”
 얼굴에 고무줄을 맞은 민우는 그때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침 먹을 시간입니까?”
 “내가 자명종이냐? 제발 정신 좀 차려라.”
 “헤헤! 죄송합니다.”
 “창식이 흉내 내냐? 징그럽게 웃지 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무뚝뚝한 말이었지만 두승진이 자신을 챙기고 있음을 알기에 민우는 웃는 얼굴로 그를 따랐다.
 두승진은 복싱클럽을 운영하면서 세 명의 선수를 키우고 있었다.
 창식과 그보다 나이가 많은 이정호, 양호준이었는데 항상 그가 데리고 다니며 챙기고 있었다.
 “오늘은 뭘 먹지?”
 두승진이 복싱클럽을 나오며 중얼거리는 말은 민우가 보기에 습관이었다.
 첫날부터 지금까지 같이 밥을 먹고 있지만 단 하루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10분 동안 추위에 떨 수도 있었기에 민우가 말을 했다.
 “설렁탕 먹어요.”
 “또? 무슨 설렁탕에 원한 있냐?”
 “먹고 나면 든든하잖아요. 오늘은 제가 살 테니 가시죠?”
 “내가 거지냐? 왜 네가 만날 사는 건데? 오늘은 내가 살 거다.”
 “그럼 수육 먹어야지.”
 “아침부터 고기가 들어가냐? 그리고 왜 내가 산다니까 수육을 먹는 건데?”
 그러면서도 발길을 설렁탕집으로 옮기는 두승진을 보고 민우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또 왔습니다.”
 “······자주 오는군요.”
 “음식이 맛있어서요.”
 설렁탕집 주인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긴 했지만 첫날처럼 싫은 내색은 없었다.
 “여기 설렁탕 셋에 수육 하나 주쇼.”
 다섯이었지만 시키는 건 세 그릇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세 사람은 시합이 있어 체중 조절 중이었다.
 음식이 나오자 두승진은 설렁탕 한 그릇을 셋으로 나눴고 고기는 2조각씩 나눠 줬다.
 “꼭꼭 씹어 먹어라.”
 세 사람은 묵묵히 먹기 시작했다. 아무리 아껴 먹어도 식사는 금세 끝났다.
 젊은 세 사람에겐 가혹한 일이었다.
 3시간 운동을 하고 고작 몇 숟갈의 밥을 먹고 난 뒤 정호, 호준 두 사람은 일을 하러 간다.
 그리고 아르바이트 중간에 다시 쥐꼬리만큼 밥을 먹고 복싱클럽에 와 훈련을 한다.
 하루 종일 먹는 게 현재 민우가 먹고 있는 아침밥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며칠 전 그 얘기를 듣고 민우는 왜 그런 미친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권투는 비인기 종목이라 챔피언이 된다고 해도 보상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권투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버티고 있었다.
 민우는 그들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도 그들에게 배울 점이 있었다.
 좋아한다면 보상을 생각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물론 받아야 할 것을 받지 못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각자의 사정이 있으니 한계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 자신의 모든 걸 내던져 도전해 보는 것도 멋진 일이 아닌가.
 민우는 두승진이 먹는 음식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세 사람에게 자신이 준비해 온 것을 한 명씩 건네 줬다.
 “이게 뭡니까, 형님?”
 그나마 가장 친한 창식이 물었다.
 “지난번에 내가 관장님한테 세 사람의 신체 정보를 받았어. 그래서 소속사에 보내 식단을 짜 달라고 했거든. 알다시피 연예인들 식단 조절도 살인적이잖아. 그래서 꽤 과학적이지.”
 “이 자식이, 내가 비과학적이라고 놀리는 거냐?”
 “말이 그렇게 되나요?”
 “그래!”
 “뭐 과학적인 게 아닌 건 사실이니까요. 어쨌든 세 사람이 시합하기 전까지 하루 동안 먹어야 할 것들이 세세하게 나와 있어. 그리고 필수적으로 먹어야 하는 것들도 있고. 사실 과일류나 채소류는 각자 챙겨 먹기 힘들 것 같아 내가 미리 준비한 거야.”
 “형님······,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한마디면 돼. 관장님이 하시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자식이 병 주고 약 주냐?”
 투덜댔지만 선수들을 챙기는 민우가 밉지 않은지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지금 준 통에 아침, 점심, 저녁으로 먹을 야채와 과일이 있으니 먹어. 매일 아침 갖다 줄 거야. 내가 없더라도 매니저를 통해 보낼 테니까 꼭 챙겨. 그러니 지금부터 먹어도 돼.”
 세 사람은 설명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그저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 것 같았다. 찬합을 열어 본 세 사람은 많은 양에 꽤 놀랐다.
 “이거 다 먹어도 돼요?”
 “응. 맛은 없을 거야.”
 오로지 각종 야채와 과일, 칼로리는 최소화하고 배를 채울 것들로 이루어진 식단이었다.
 다들 만족하고 아침 식사를 마쳤다.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세 사람은 각자 할 일을 위해 돌아갔다.
 복싱도장으로 가는 길.
 두승진은 먼 곳을 보며 말했다.
 “······애들한테 신경 써 줘서 고맙다.”
 “저도 신세를 지고 있는데요, 뭘.”
 “짜샤! 그냥 그럴 땐 ‘네, 알겠습니다.’ 하면 되는 거야.”
 “후후! 네 알겠습니다.”
 “음흉하게 웃긴······. 또 운동할 거냐?”
 “해야죠. 관장님은 이제 퇴근이시죠?”
 “휴식 시간이지. 하지만 좀 뒤로 미룰 생각이다.”
 “오! 웬일이세요?”
 “너 괴롭히려고 그런다. 따라와. 샌드백 치는 법 가르쳐 줄 테니까.”
 먼저 계단을 올라가는 두승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렇게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거 같아.”
 계단을 오르는 민우는 어느 때보다 멋진 미소를 짓고 있었다.
 
 ***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민우는 누군가 자신을 쫓고 있음을 깨달았다.
 ‘진하게 선팅된 검은색 승용차!’
 아침을 먹기 위해 나왔을 때도 도장 근처에서 시동을 켠 채 서 있던 차량이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공교로웠다.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슬금슬금 뒤쫓아 오는 게 아무래도 수상쩍었다.
 ‘설마, 그놈인가?’
 제일 먼저 꿈속에서 봤던 사내가 떠올랐다.
 잠깐 생각하는 사이 검은색 차량은 바싹 가까이 다가왔다.
 민우는 잔뜩 긴장했다.
 복싱을 배운 지 이 주가 되어 가고 두승진이 잘하는 편이라고 추켜세웠지만 놈을 상대할 자신은 없었다.
 10미터 정도만 뛰면 제법 사람이 많이 오가는 거리였기에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정 위험하다 싶으면 당장이라도 도망갈 생각이었다.
 빵!
 경적 소리에 흠칫 놀라 돌아봤다. 한데 경적 소리는 검은색 승용차가 아닌 빠르게 다가오는 익숙한 밴에서 나는 소리였다.
 “형! 여기요, 여기.”
 마중 나온 문경이었다.
 지나가는 차였을까? 아니면 문경이 와서일까. 검은색 승용차는 속도를 내며 사라졌다.
 ‘43루에 98XX라······.’
 차량 번호를 기억한 후 옆에 서서 밴의 문을 여는 문경에게 말했다.
 “내가 애냐? 알아서 간다니까.”
 민우는 못마땅한 듯 말했다.
 “애가 아니니까 기다리고 있죠. 타세요.”
 “밥 먹고 들어가자.”
 “식사는 집에 가서 하세요.”
 평소와 달리 깐깐하다. 다시 한마디 하려다 방금 전의 승용차를 생각하니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5분도 되지 않아 집에 도착하자 체중계를 가져온다.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 설명을 했다.
 “사장님이 슬슬 몸 관리 시작하라고 하셔서요.”
 “왜? 이런 상태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거야?”
 “저야 모르죠. 오늘 오신다고 했으니 물어보세요. 그저······.”
 “그저, 뭐?”
 “정상이 아닌데 일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거 같고 그저 몸이 망가질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형도 이제 나이가 나이잖아요.”
 스물아홉, 배우로서 많은 나이는 아니다. 그러나 관리를 하지 않으면 몸매는 금방 망가질 나이었다.
 체중계에 올랐다.
 “어라? 몸무게가 더 빠졌네요?”
 민우가 복싱클럽에서 하는 운동량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럼, 원하는 거 먹어도 된다는 소리냐?”
 “아, 네······. 그렇죠.”
 “그럼, 고기 종류로 먹자. 허기가 지네.”
 “회사에 알리고 적당한 걸로 사 올게요.”
 문경이 나가자 아까 전의 일을 떠올렸다.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발걸음에 맞춰 다가오는 차량.
 ‘나에게 접근하려던 게 분명해.’
 몇 번을 되새겨 봐도 결론은 마찬가지. 유일한 기억 때문인지 왠지 오싹하다.
 그러나 그 승용차가 왜 접근한 건지를 알 수 없으니 막연한 상상뿐이다.
 “경호원이라도 고용하든지 문경이가 떨어지지 않게 하든지 해야겠네.”
 생각을 마친 민우는 문경이 오기 전까지 현관 옆에 쌓여 있는 선물박스를 정리하기로 했다.
 회사에서 1차 선별을 마쳤음에도 박스는 십여 개가 넘었다.
 “이건 팬레터고, 이건 먹을거리고, 이건 옷이고······.”
 팬클럽과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을 위해 기꺼이 조공을 바쳤다. 과연 받아도 될까 싶을 정도로 비싼 것부터 TV에 나가 좋아하는 것이라 말했던 천 원짜리 어포까지.
 이마저도 회사에서 1차로 추린 것이라니 일주일에 얼마나 많은 양이 오는지 모르겠다. 지금처럼 추린 것들만 받아도 1년이면 방 하나쯤은 채울 것 같다.
 “소각장에 보내는 이유가 있었네.”
 팬레터를 빠르게 읽고 선물을 정리할 때면 기분이 언제나 묘해진다.
 드레싱룸에, 부엌에, 쌓아두는 창고에 박스를 옮기는 것으로 1단계 정리를 마무리했다.
 저녁을 먹고 잠이 안 올 때 하나씩 정리할 작정이다.
 “오늘부턴 팬카페에 글을 올려 볼까.”
 답장을 쓰는 건 그만뒀다. 며칠 했는데도 중지에 굳은살이 생길 정도였다.
 노트북을 켜고 문경에게 알아 뒀던 팬카페로 들어갔다. 그리고 글쓰기를 누른 후 커서가 깜박이는 공간에 타자를 치려 했다.
 탁······, 타닥······, 탁······.
 타자 연습을 안 했나?
 스마트폰으로 쳐 보려고 했다.
 엄지가 고잔가?
 분당 열 글자 정도 치는데 누군가가 들어왔다.
 문경인가 싶었는데 조용해였다.
 “뭐 하냐?”
 “왔어요. 팬카페에 글 좀 올릴까 했는데 타자 치는 속도가 너무 느리네요. 기억을 얼른 되찾았으면 좋겠네요.”
 “기억 때문이 아냐.”
 “그럼요?”
 “평생 안 해 본 일을 하는데 될 리가 있나. 넌 SNS도 글쓰기 싫다고 안 하던 놈이야.”
 “팬카페에 제가 쓴 글이 있는데요?”
 “네 매니저 하던 녀석들이 쓴 거야.”
 타자가 느린 이유는 명백했다. 문경이 오면 그때 다시 하기로 하고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던져 놓았다.
 “걱정된다면서 오랜만이네요?”
 “매일 안 온다고 지금 갈구는 거냐?”
 “그렇게 느낀다면 그런가 보죠. 누구완 달리 전 할 거라곤 이 집에 갇혀 있는 것밖에 없거든요.”
 “기억 되찾았냐?”
 “아뇨.”
 “근데 이죽거리는 모양새가 옛날하고 똑같으냐? 인간 쉽게 안 변한다더니······, 쩝!”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잖아요.”
 “말을 해도······. 네 스케줄 취소한다고 발에 땀 나도록 뛰어다니느라 이제야 왔다. 됐냐?”
 사실 그가 늦게 왔다고 기분 나쁜 건 없었다. 왠지 모르게 그냥 조용해를 보면 놀리고 싶어졌다.
 조용해도 그런 줄 아는지 기분 나쁜 표정은 아니었다.
 “하하! 고생했네요. 근데 웬일이세요?”
 “네 얼굴도 보고 할 말도 있고, 겸사겸사.”
 “무슨 일인데요?”
 “너 사고 나기 전에 영화 찍었다는 거는 알지?”
 민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용해는 말을 이었다.
 “편집 중인데 추가 촬영이 필요하대. 어떻게 할 수 있겠어?”
 “거부할 수 있어요?”
 “아니. 중요한 부분이라 재촬영이 안 되면 네가 기억을 찾을 때까지 개봉을 미뤄야 한다더라.”
 “그럼 해요.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마냥 죽치고 있는 것보단 일을 하는 편이 기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
 
 “네. 그럼 일주일 뒤에 촬영장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기억을 못 찾았으니 별일 없도록 유의를 해 주면 고맙겠습니다.”
 조용해는 혹시나 잘못되면 반드시 책임지게 만들겠다는 듯 묵직한 목소리로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송민우 앞에선 한없이 가벼운 그였지만 기획사의 대표일 때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네가 보기엔 어때? 할 수 있을 것 같아?”
 앞에 공손히 서 있는 장문경에게 물었다.
 “네. 제가 볼 때 연기력은 문제없습니다.”
 “확실해? 잘못되면 기억을 찾기 전까지 완전 손 빨고 있어야 해. 그 상태로 1년만 지나면 너나 나나 길거리로 나앉아야 한다고.”
 “에이~ 그 정도는 아니지 않습니까. 모아 둔 많은 거 빤히 아는데.”
 장문경은 조용해가 연예기획사 SD엔터테인먼트를 처음 만들 때부터 함께했었다.
 “있기야 있지. 근데 그 돈 민우 그 자식 재계약할 때 줄 돈이야. 그마저도 일부라 투자도 받아야 해. 근데 야금야금 써 봐. 계약은 어떻게 할 건데?”
 “······민우 형이 의리는 있잖습니까?”
 “장난하냐? 재계약할 때 최소 100억은 줘야 하는데 너 같으면 계약금 100억과 의리 중에 어떤 걸 택할래?”
 “그야······, 100억이죠.”
 5년에 100억인데 의리 그딴 게 무슨 소용이람.
 “그래. 그게 당연한 거야. 나도 의리로 그놈 잡고 싶기야 하지. 근데 그게 될 거 같으냐?”
 하긴 작년 한 해에만 송민우가 SD엔터테인먼트에 벌어 준 돈이 70억이 넘었다. 지난 5년간 SD엔터테인먼트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손해로 계약을 한다고 해도 네임 밸류만 이용해도 충분히 손해를 만회할 수 있는 게 현재의 송민우였다.
 “사장님이 걱정하시는 바는 아는데 연기력에 문제가 없다는 건 확실합니다.”
 장문경은 얼마 전 송민우와 함께했던 연기 연습에 대해 말해주었다.
 “······남자인 저도 가슴이 떨렸다니까요.”
 “너 남자 좋아하냐?”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나도 알아, 자식아. 농담이야. 그 정도라면 연기는 문제없다는 건데.”
 문경의 말을 듣고 나니 현 위기를 어쩌면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 생각을 하다가 ‘그럼 어떻게 할까요?’라는 문경의 물음에 정신을 차렸다.
 “회사로 데리고 나와서 연기 연습 시켜 봐.”
 “네, 사장님.”
 조용해는 문경이 나가는 걸을 확인한 후 이후의 일에 대해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민우는 연기력을 알아보기 위해 아침 운동을 마치고 기획사로 향했다.
 “생각보다 회사 꽤 좋네.”
 차가 회사 앞에 서자 민우가 중얼거렸다.
 4층 건물에 외부 디자인이 마치 미술관이라고 해도 될 만큼 멋졌다.
 그러자 문경이 물었다.
 “어떻게 생각했는데요?”
 “용해 형이 하도 나 없으면 망한다고 해서 허름한 건물에 작은 간판 하나 달린 곳이라 생각했어.”
 “처음 사무실이 그랬죠. 이 건물 사실 형이 지은 거나 다름없어요. 형이 없다면 금방 무너질걸요.”
 문경은 은근히 돌려 민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데 민우의 답은 냉정했다.
 “쯧! 내가 없어서 망할 거라면 망해도 싸지.”
 당연했다.
 천년만년 지금과 같은 ―들어서 안 거지만― 인기를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사람 일이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지금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묘한 현상을 겪고 난 후라 그런지 회사가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닌 그가 회사에 의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민우의 생각이었다.
 외부 디자인과 비슷하게 인테리어도 강화 색깔 플라스틱을 이용해 꽤 감각적이었다.
 “여기에요, 형. 일찍 와서 오민희 씨가 아직 안 왔나 보네요. 차라도 갖다 드릴까요?”
 “물이면 돼. 넌 일 봐.”
 연습실 내부엔 정수기가 있었다.
 문경이 가고 딱히 구경할 것 없는 연습실을 두리번거렸다.
 “근데 이렇게 훤히 비치는 곳에서 연습을 하는 건가?”
 복도에서 내부가 보이는 구조였다.
 조금씩 삼키던 물을 다 마시고 나자 웬 여성이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민우는 일어나 쭈뼛거리며 인사를 했다.
 “기억상실이라더니 정말인가 보네?”
 “혹시 저희 아는 사이입니까?”
 “네가 배우 한다고 했을 때 내가 가르쳤으니까. 그리고 넌 항상 반말하며 날 누나라고 불렀어.”
 “아! 죄송해요. 전혀 기억이 안 나서.”
 “네 잘못이 아니잖아. 그나저나 널 다시 연습실에서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네 연기력은 웬만한 배우들도 한 수 접어 주잖아.”
 오민희는 연기자를 가르치는 선생을 해서인지 마치 학생을 대하듯 했는데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그랬나요?”
 “응, 그랬어. 사실 나도 단점 한두 개쯤 짚어 줄 수 있지 네 연기력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준은 아니거든.”
 기억을 잃어서인지 민우는 살짝 긴장하고 있었다. 그에 오민희는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긴장을 풀어 주었다.
 “훗! 근데 네가 긴장을 다하고 별일이다.”
 “에? 설마요.”
 “속으로는 어쩐지 몰라도 겉으로는 전혀. 오히려 자신감이 너무 넘쳐서 문제였지. 남들이 볼 땐 약간 건방져 보였거든.”
 “하아~ 내가 어떤 스타일인지 정말 궁금하네요.”
 솔직한 심정이었다.
 건방지게 보일 정도로 자신만만하고, 갑질 잘하고, 아부 잘 떠는 모습을 그려 보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네가 했던 드라마 중 ‘환희’ 기억나니?”
 “부잣집 아들로 나왔던 거 말이죠. 얼마 전에 기억을 떠올릴 겸 봤어요.”
 “내가 볼 때 너랑 정말 비슷해.”
 ‘환희’는 배우로 데뷔 후 두 번째로 찍은 드라마로 극 중 주인공을 괴롭히는 ‘김재범’ 역할을 맡았었다.
 악역이었고 재수 없는 역할이었지만 민우가 연기력으로 인정받고 스타덤에 오르게 한 고마운 역이기도 했다.
 “컥! 정말 재수가 없었군요. 이번에 보니까 저인데도 때려주고 싶을 만큼 얄밉던데.”
 어떤 스타일인지 묻지 말 걸 그랬다.
 “자! 이제 긴장도 슬슬 풀린 것 같으니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얼마나 하는지 보자. 말 나온 김에 대본도 있으니 환희의 ‘김재범’ 역을 해 볼까?”
 물어봤으면 대답을 들어야죠!
 민희는 민우의 대답은 상관없다는 듯 책장에서 대본을 가지고 왔다.
 “요즘 내가 애들 교육할 때 가장 많이 시키는 게 바로 ‘김재범’ 역이야. 연기 좀 한다는 애들도 재수 없게, 혹은 얄밉게는 표현을 잘하는데 매력적이게 보이게는 못 하더라. 신 130을 해 보자. 내가 남주 맡을게.”
 에휴~ 칭찬인지 욕인지.
 복잡한 기분을 털어 내고 대본을 봤다.
 이미 집에 있는 대본으로 내용은 알고 있다. 대본도 숙지 완료. 집중만 하면 됐다.
 오민희는 리모컨을 이용해 연습실을 불투명하게 만든 후 리딩을 시작했다.
 “왜 그랬어? 도대체 왜 그랬냐고, 왜!”
 “건방지게 굴지 마. 내가 한 일을 너 같은 녀석에게 설명할 이유 없어.”
 내려다보는 눈빛, 거만한 자세, 비틀린 말투.
 연기를 시작하자마자 180도 바뀐다.
 “······나쁜 자식! 그 애가 어떤 앤데, 그 애는······.”
 “훗! 웃겨. 그 애는 특별하지 않아. 그냥 길거리를 지나가는 흔한 여자 중 하나지.”
 연기가 계속 이어질수록 오민희는 놀랐다.
 ‘실력은 여전하네. 그나저나 눈빛이······.’
 연기력은 기억과는 상관이 없었던 모양이다.
 당장 싸대기를 날려 버릴 만큼 얄밉고 주먹을 날리고 싶을 만큼 건방진 모습이다.
 한데 눈빛을 보고 있자니 미워할 수 없다.
 드라마의 종반 부분에서 ‘김재범’은 상당히 아픈 과거가 있음이 밝혀진다.
 배다른 형제, 집안에서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독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 등.
 이미 종영한 드라마이고 그 과정을 훌륭하게 마쳐서인지 모르겠지만 눈빛에 온전히 그러한 느낌을 그대로 전달해 주고 있었다.
 ‘민우가 악역을 맡고도 주인공보다 더 사랑을 받았던 이유이기도 하지. 어째 눈빛이 더 깊어진 것 같아.’
 “잘하네. 익숙해서인지 기억상실과 연기력은 상관없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이번엔 다른 대본으로 해 보자.”
 “그래요.”
 두 번째는 ‘착하디착한 사람’이라는 대본이었다.
 대본엔 줄거리가 나와 있지 않았기에 물었다.
 “시놉이 어떻게 돼요?”
 “동호는 엄청 착한 사람인데 여자의 배신으로 점점 냉철하고 악하게 바뀌어 가는 거야. 착함과 악함, 내면과 외면의 갈등을 얼마나 잘 표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지.”
 “쉽지 않겠네요.”
 “테스트에 불과하니까 그냥 편하게 해. 신 33. 시간 줄 테니까 읽어 봐.”
 신 33은 배신당한 후 선에서 악으로 넘어가는 부분으로 그런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여주인공의 대화였다.
 트레이너답다고 할까, 표현하기에 따라 연기력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민우는 대화를 읽으며 어떻게 연기를 할지 고민했다.
 사실 그 전의 연기는 대본도 알고 있었고 드라마도 TV로 봤기에 흉내 낸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엔 처음 보는 대본이니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생각이 길어지자 오민희가 한마디 했다.
 “이 말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역할을 어떻게 분석하느냐?”는 내 질문에 네가 나한테 했던 말이 있어.”
 “뭔데요?”
 “어느 대선배가 했던 말이라면서 이렇게 말했어. 역에 날 맞추지 않고 역을 나한테 맞춘다고.”
 웬 개소리래?
 민우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말을 더했다.
 “보통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맡은 배역에 몰입하려는 경향이 많아. 작가가 그리는 주인공에 그대로 맞추려고 하지.”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요?”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다가 얼른 ‘요’를 붙였다. 다행히 오민희는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후후! 이제야 슬슬 너 같아지네. 말 편하게 해도 돼. 아무튼 너의 경우는 그 반대였어. 주인공을 너한테 맞췄어. 작가가 그리는 주인공이 아니고 네가 그리는 주인공으로 표현한 거지.”
 “작가들에게 어지간히 미움받았겠네?”
 “그랬으면 오늘의 네가 있을까?”
 듣고 보니 그랬다. 승승장구하지 않았던가. 얼굴발일 수도 있고.
 “어느 쪽이든 좋다 나쁘다 할 수 없어. 아무튼 그것마저도 잊은 것 같아서 말해 준 거야.”
 작가가 그린 주인공이 아니라 내가 그리는 주인공이라······.
 많지 않은 기억들이 빠르게 흐르며 ‘동호’를 어떻게 표현할지 그릴 수 있었다.
 “하자, 누나.”
 “대본은 안 봐?”
 “다 외웠어.”
 “에? ······그, 그래.”
 과거 민우는 트레이닝 받을 때도 대본을 외운 적이 거의 없었다. 외우라고 혼을 내도 소용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외웠다고 하니 오민희는 당황할 수밖에.
 “너까지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넌 빠져.”
 연기가 시작됐다.
 “싫어! 이러지 마. 분명 너만 다치게 될 거야. 그러니 그냥 잊어.”
 “다쳐도 상관없어. 이미 그때······, 난 죽었으니까. 막지 마. 그럼 너라도 용서 못 해.”
 “그래, 차라리 날 미워해. 대신 가지······ 마.”
 트레이너 오민희와 민우의 연기는 실제인 것처럼 이어지고 있었고 문경은 문을 조금 열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캬아~ 완전 잘하네.’
 혹시 이상한 장면을 연습할까 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그는 두 사람의 연기에 영화를 관람하는 것처럼 감탄을 내뱉었다.
 매달리는 여자와 뿌리치려는 남자, 그 상황에서 거칠게 오가는 대화.
 오민희가 대화를 힐끔거리는 것이 옥에 티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흥미진진했다.
 ‘가만······, 근데 저렇게 싸우다가 키스를 했던 것 같은데 아닌가?’
 문경은 드라마를 좋아했다.
 직업 때문이라기보단 드라마를 보며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이 드라마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착하디착한 사람’ 역시 그가 좋아하는 드라마였다. 특히 여주인공이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라 서너 번 봤을 정도였다.
 ‘헉! 키스 장면 맞아! 저 인간 저러다가 진짜로 할 분위긴데.’
 그가 보기에 기억상실의 부작용인지 몰라도 송민우는 연기할 때 너무 깊이 빠져들었다.
 말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이 송민우가 미안하다며 오민희를 안고 있다.
 저 다음 장면이 키스신이다.
 말리기로 결심한 문경은 얼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 여기까지······ 흡!”
 타이밍이 너무 기가 막혔다. 떼어 내려는 순간 그들은 떨어졌고 그때 문경이 송민우와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딥키스.
 ‘이, 이 미친놈아! 떠, 떨어······, 떠······.’
 송민우를 강하게 밀던 문경의 팔은 점점 힘이 빠지더니 아래로 떨어졌다.
 미친 키스력이었다.
 
 <『슈퍼스타 갱생기』 1-2권에 계속>

댓글(3)

외톨박이    
보험금을 회사와 나누는건 좀 이상 하네요
2018.02.21 06:35
외톨박이    
남녀가 한 병실에 있는 것도 말이 안되네요
2018.02.21 06:42
너울가지    
나름 볼만했어요. 중간에 지하실에 있는 디비디는 진짜 이해 안되더라구요. 여주 그리도 좋아했던거고 군대다녀와서 후에 외국가서 여주가 애기랑 있는거본후 바뀌었다고 갑자기 쓰레기되어 몰카 찍고하는건 넘 주인공성격관 안맞던데.. 흐지부지 넘어가긴 했는데 이부분 좀 아쉽고 초반에 죽기전에 여주가 복수하려고한거도 좀 웃기고 증오가 있더라도 이게 죽여야할정도도 아니었는데.. 그냥저냥 연기하는부분 맘에들어서 봤네요
2018.10.22 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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