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곤마

1화

2018.02.02 조회 988 추천 4


 序章
 
 
 
 
 
 
 
 보름달이 훤하게 뜬 야심한 시각.
 
 작은 촛불 하나를 가운데 놓고 어른 한 명과 십대 중반의 소년 두 명이 마주보고 앉아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적룡사도(赤龍四刀)!”
 
 “쉿! 조용히 해라!”
 
 중년인은 한 아이가 목소리를 높이자 당황한 듯 입을 다물게 했다.
 
 “정말로 적룡사도를 이겼단 말입니까?”
 
 옆에 있던 또 다른 아이도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어디 적룡사도뿐이냐. 강남을 통틀어 가장 악질이라 불리던 칠절마검(七絶魔劍)과 사천당가에서 이십년 동안 잡으려고 해도 잡지 못했던 독비혈마(獨臂血魔)까지, 이루 셀 수가 없을 정도란다.”
 
 중년인은 마치 제 자랑이라도 하는 듯 어깨에 잔뜩 힘을 줬다. 목소리에는 어느새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묻어 있었다.
 
 방금 중년인이 언급한 별호들은 삼척동자도 안다는 초절정 고수들임과 동시에 천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마인들이었다.
 
 그런 자들을 모두 무릎 꿇렸단다.
 
 그것도 맨주먹으로 말이다.
 
 “후훗. 영광으로 알아라. 그런 사람을 배출해낸 곳이 지금 너희가 입문한 패왕문(覇王門)이니까 말이다.”
 
 그때, 소년들 중 한 명이 궁금하다는 듯 손을 들며 물었다.
 
 “한데 그분의 별호가 왜 곤마(棍魔)입니까?”
 
 중년인은 소년이 이런 질문을 한 연유를 쉽게 알아차렸다.
 
 그도 처음 곤마라는 별호를 들었을 때 두 가지 의문을 품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이곳 패왕문의 독문무공은 창술이라는 것이다. 은림창왕(隱林槍王)이라는 별호를 지닌 문주의 제자가 창이 아닌 곤이라는 병기를 다루니,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창과 곤, 곤과 창.
 
 비슷하지만 그 성질 자체가 전혀 다른 병기였으니까 말이다.
 
 사실 그 이유에 대해선 중년인도 알 길이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패왕문 내에선 곤마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행동마저도 금기시되었으니 말이다.
 
 소년이 가진 또 다른 의문은 바로 별호에 들어간 마(魔)라는 단어다.
 
 패왕문은 정파에 해당하는 문파였다.
 
 그런 문파의 제자가 얻은 별호에 마(魔) 자가 들어간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그런 별호를 스스로 붙였다는 것이다.
 
 중년인 또한 곤마라는 사내를 직접 본 적이 없었지만, 분명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사실만은 확실한 것 같았다.
 
 “하긴 그러니 그 신세가 되었겠지······.”
 
 “예?”
 
 “아, 아니다. 자, 늦었으니 그만하자. 그리고 지금부터 내 이야길 잘 들어라. 그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 만일 이를 어길시 파문도 면치 못함을 명심해라.”
 
 이제 갓 패왕문에 입문한 아이들이었기에 파문은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단어였다.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 아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뭐냐.”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아이들은 곤마라는 사내가 이룩한 업적을 듣고 그에 대한 환상이 생겨났다.
 
 한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는 건 왠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물어본 것이다.
 
 중년인은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
 
 아이들은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땅에 묻히셨습니까?”
 
 중년인의 손가락은 실내의 바닥을 향해 있었다.
 
 “돌······ 돌아가신 건가요?”
 
 아이들 나름대로의 추측이 이어졌지만 모두 사실이 아니었다.
 
 그리고 뒤이어 중년인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지하 뇌옥······ 그는 이 년 전부터 지금까지 그곳에 갇혀 있다.”
 
 “······!”
 
 
 
 第一章. 곤마 유천
 
 
 
 
 
 
 
 강호인들에게 섬서성의 패자(覇者)가 어디냐 물으면 대부분이 패왕문을 꼽았다.
 
 그리고 천하제일창이 누구냐 물으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패왕문의 문주 은림창왕이라 말했다.
 
 분명 삼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두가 그렇게 말했고, 그게 옳다고 생각했다.
 
 한데 불과 삼 년 만에 상당수가 천하제일창을 은림창왕이라고 말하는 데 망설이기 시작했다.
 
 일대일 비무에서 무패의 신화를 자랑하던 은림창왕이 삼 년 전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인에게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그날의 비무를 본 이들은 모두 괴인이 마음만 먹었다면 은림창왕의 목숨을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두가 인정하는 절정의 무림고수가 별호조차 없는 무명의 사내에게 패했다.
 
 그것도 창술로 말이다.
 
 그 충격은 상당했다.
 
 그리고 비무의 패배로 인하여 패왕문이 감수해야 했던 대가도 충격적이었다.
 
 오 년 동안의 봉문.
 
 제자를 받을 수도 없을뿐더러 대외적인 모든 활동을 금해야 하는 봉문을 당한 것이다.
 
 은림창왕은 자신의 패배로 인해 패왕문이 봉문당하자 수치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폐관에 들었다.
 
 그게 벌써 삼 년 전의 일이었다.
 
 문주이자 사부인 은림창왕이 폐관에 들어서자, 대신 업무를 처리하게 된 사람은 은림창왕의 첫 번째 제자인 패력신창(覇力神槍) 손평(孫平)이었다.
 
 모두가 마찬가지이겠지만 지난 삼 년은 손평에게 있어서 지옥보다 더 고통스러운 세월이었다.
 
 봉문을 당하자 패왕문이 그간 진행해 오던 모든 외부 사업이 중지가 되면서 자금줄이 막혀 버렸다.
 
 패왕문이라는 이름 아래 수련하고 있는 제자들의 숫자만 백 명이 훌쩍 넘어갔다. 그들의 생활비만 하더라도 엄청난 금액이 필요했다.
 
 지난 삼 년은 그동안 패왕문이 모아온 돈으로 충당을 했지만, 앞으로 남은 이 년이라는 시간을 버티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섬서성의 패자라 불리던 패왕문이었기에 자존심상 친분이 있는 타 문파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손평의 마음은 하루하루 새까맣게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후우······.”
 
 “여기 계셨습니까.”
 
 정원을 산책하며 분을 삭이던 손평을 안쓰럽게 쳐다보는 사내는 묵혈쌍창(墨血雙槍) 연무비(燕武斐)였다.
 
 손평과는 다섯 살 터울인 그는 은림창왕이 두 번째로 거둔 제자였다.
 
 일찍이 천애고아로 은림창왕의 손에 거둬진 그에게 있어서 손평은 형님이자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그런 그가 하루하루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연무비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다.
 
 “이렇게라도 바깥바람을 쐬지 않으면 살지 못할 것 같구나.”
 
 “너무 걱정 마십시오. 삼 년을 버텼으니 남은 이 년이라고 못 버틸 일이 없지 않습니까.”
 
 연무비의 말이 맞았다. 삼 년이란 세월을 견뎌 냈다. 남은 이 년을 못 버틸 이유가 없었다.
 
 “문제는 봉문이 끝나고 나서다.”
 
 오 년.
 
 길 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문파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곳이 무림이라는 세상이다.
 
 강하지 않으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도 하등 이상하지 않은 비정한 세상이기도 했다.
 
 섬서성의 패자라고는 하지만 자신들이 오 년 동안 봉문하고 잠시 멈춰 있는 사이 주변 문파들이 얼마만큼 성장할지 모르는 일이다.
 
 문주인 사부가 폐관에 들었으니, 그런 고민은 오로지 손평의 몫이었다.
 
 “알아보라고 한 건 어찌 됐느냐.”
 
 “아직······ 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이유는 다른 데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패왕문 내에서 단 두 사람만이 아는 사실이었고, 절대로 그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크흠······ 사면초가에 빠졌구나. 이 일을 어찌한단 말이냐.”
 
 “모두 제 불찰입니다.”
 
 손평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봉문을 당한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힘이 드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와 맞먹는 불운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미처 모르고 있었다.
 
 “사부님께서 폐관에서 나오시기 전까지 반드시 찾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대사형이나 저나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외부의 사람을 고용했다가 이 일이 무림에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답답한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니까 말이다.
 
 “하루라도 빨리 대책을 간구해야 합니다.”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있는 모양이구나.”
 
 손평은 누구보다 연무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사제인 그가 자신을 다그치는 걸 보면 분명 대책이 있는 것이다.
 
 “사형······. 아니, 형님.”
 
 갑자기 목소리를 낮게 가는 연무비의 표정에는 비장함마저 엿보였다.
 
 손평은 지그시 연무비의 눈을 응시했다.
 
 “곤마를 이용해야 합니다.”
 
 “······!”
 
 곤마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손평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다.
 
 오 년 전 곤마가 지하 뇌옥에 갇힌 이후부터 그 이름은 패왕문 내에서 금기시되었다.
 
 한데 연무비의 입에서 그 이름이 거론되자 손평의 몸에서는 진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못들은 것으로 하마.”
 
 “형님······ 다른 것도 아니고 패왕신창(覇王神槍)이 도난당했습니다. 패왕문의 신물, 패왕신창이 말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반드시 되찾아야 할 것 아닙니까. 안 그렇습니까?”
 
 방금 연무비의 입에서 흘러나온 내용을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면 패왕문은 발칵 뒤집어질 것이다.
 
 패왕신창.
 
 연무비의 말대로 그것은 일반적인 창이 아니었다. 패왕문의 백오십 년 전통을 있게 한 신병이었다.
 
 그것이 없는 문주는 패왕문을 이끌 수가 없으며, 그것이 없는 패왕문은 패왕문이라 불릴 수가 없었다.
 
 “곤마는 중죄인으로서 지하 뇌옥에 갇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고 해도 그 녀석은 안 된다.”
 
 “죄인이기 전에 사제······ 아니, 형제이지 않습니까.”
 
 “어허!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연무비의 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그의 말대로 지금으로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처지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곤마가 저지른 죄를 생각한다면 연무비의 제안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형님!”
 
 “나는 사적으로 네 형님일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문주님을 대신하는 입장이다. 예를 갖춰라.”
 
 손평의 눈빛이 살기로 번들거렸지만 연무비는 겁먹지 않았다.
 
 자신이 제안한 계획이 아니라면 패왕신창을 되찾아 오는 일은 지금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아이라면 잘 해낼 것입니다.”
 
 “······.”
 
 손평은 매몰차게 몸을 돌리더니 한참 동안이나 입을 열지 않았다.
 
 연무비는 사형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 확신했다.
 
 어디까지나 패왕신창을 도난당한 책임은 문주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는 손평이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게다가 손평의 성격상 그 책임을 제대로 지길 원할 것이다. 그리고 무슨 수를 쓰더라도 패왕신창을 되찾고 싶을 것이다.
 
 연무비는 손평이 다시금 입을 열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
 
 “스스로 곤마라는 별호를 지은 아이다. 그 이유를 잘 알 것이라 믿는다.”
 
 묵직한 손평의 음성에는 걱정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저도 오랜 고민을 한 뒤 사형에게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래, 네게도 무슨 생각이 있겠지.”
 
 “물론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석 달······ 석 달이다. 패왕신창을 찾든, 찾지 못하든 그 안에 반드시 곤마는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