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좀비 버스터

1화

2018.03.07 조회 2,044 추천 17


 [일러두기]
 
 [소설의 시점에 관해서]
 
 
 
 
 
 Player side
 
 [주인공의 시점]
 
 
 
 
 
 Player side
 
 [캐릭터의 이름]
 
 [주인공이 아닌, 다른 캐릭터의 시점]
 
 
 
 
 
 Ordinary Side
 
 [객관적 시점 / 삼인칭]
 
 
 
 
 
 Epilogue – Bad Ending
 
 
 
 
 
 손전등에서 흘러나오는 미약한 빛을 의지하며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팔을 조금만 벌려도 벽이 만져지는 좁은 길은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들리는 것은 계단을 밟는 내 발걸음 소리뿐이었다. 그조차도 얼마 들을 수 없었다.
 
 이윽고 계단의 끝에 다다른 것이다.
 
 계단은 철판으로 만든 문으로 막혀 있었다.
 
 이곳이 내 목적지다.
 
 “후우······.”
 
 작게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연다.
 
 끼익······.
 
 기름칠이 부실했는지 거슬리는 소음을 내며 문이 열린다. 문 안은 음습한 기운으로 가득 찬 방이었다. 크기는 다섯 평 정도로 그리 크지 않다.
 
 지하실 특유의 퀴퀴한 냄새 때문에 숨 쉬는 게 힘들었다. 그래도 조금 시간이 지나니 코가 익숙해졌는지 참을 만했다.
 
 “잘 지냈어?”
 
 나는 손전등을 움직여 벽을 비추었다.
 
 “크르르······ 크아아아!”
 
 그곳에는 사슬에 묶인 괴물이 있었다.
 
 이지를 잃고 인간의 고기를 탐하는 괴물, 좀비였다. 좀비의 근처에는 녀석이 싸지른 오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욕지기가 나오는 광경이지만 오랜 기간 봐 와서 익숙해진 탓인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밥 먹어라.”
 
 나는 등에 멘 가방 안에서 시뻘건 피가 떨어지는 고기 한 덩이를 꺼냈다. 거리 곳곳에 널린 자살한 사람들의 고기다.
 
 생명이 없는 육체는 그저 유기물질이다.
 
 쓸 곳이 있다면 써 주는 게 죽은 사람도 기뻐하리라.
 
 나는 접시에 올린 고기를 좀비 근처에 놓았다. 그러자 좀비는 게걸스럽게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주어진 식사에 녀석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크후······.”
 
 순식간에 고기를 해치운 좀비는 아직도 배가 차지 않은 모양이다. 녀석은 탐욕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좀 더 고기를!
 
 좀 더 피를!
 
 괴물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탐하려 날뛴다.
 
 철컹! 철컹!
 
 녀석의 몸뚱어리를 매어 둔 쇠사슬이 미친 듯이 출렁인다. 콘크리트와 연결된 쇠사슬은 금세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아니, 실제로 금이 가며 깨지기 시작했다.
 
 인육 한 덩이로 힘을 얻은 좀비가 괴물 같은 힘으로 쇠사슬을 부수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기까지인가.”
 
 더 이상 물리적인 수단으로 좀비를 매어 둘 방도가 없었다. 쇠사슬의 주박에서 벗어나는 순간 나는 녀석의 한 끼 식사거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날뛰는 좀비를 경계하며 나는 허리춤에 매어 놓은 팔뚝만 한 봉을 집어 들었다.
 
 초진동으로 물체의 분자 결합을 끊어버리는 무기.
 
 소닉 블레이드.
 
 손잡이에 달린 작동 스위치를 누르자 소닉 블레이드의 진동자에 전력이 공급되며 초진동이 발생한다.
 
 키이잉!
 
 고막이 찢어지는 것 같은 소음과 함께 소닉 블레이드의 진동자가 붉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쇳덩어리를 두부 자르듯 썰어 버릴 수 있는 무기의 첨단(尖端)을 발광하고 있는 좀비에게 향했다.
 
 이대로 팔을 휘두르면 눈앞의 좀비는 육편이 되어 바닥을 뒹굴게 되리라.
 
 “······.”
 
 이성은 무기를 휘두르라 재촉하지만 팔은 쉬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을 죽이는 데 망설이지 않을 인간이 몇이나 있겠는가? 인육을 탐하는 시귀(屍鬼)가 되었다지만 이 녀석은 내 ‘여동생’이었다.
 
 나는 그녀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뭐, 무리겠지.”
 
 우드득! 우득!
 
 쇠사슬은 어느새 거의 끊어졌다.
 
 근육의 힘으로 끊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니지만 좀비의 비상식적인 힘은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좀비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다.
 
 키이이!
 
 대답을 재촉하듯 소닉 블레이드의 진동자가 거세게 떨렸다.
 
 칼을 휘둘러 나를 살릴 것인가?
 
 휘두르지 않아 그녀를 살릴 것인가?
 
 “캬아아아!”
 
 애석하게도 내겐 생각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손바닥에서 진득하게 배어 나온 땀 때문에 손잡이가 미끄럽다. 나는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어 소닉 블레이드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허공에 붉은 궤적을 그리며 소닉 블레이드가 좀비를 토막 친다. 끈적거리는 타르 같은 피가 튀며 ‘좀비’는 ‘좀비였던 것’이 되었다.
 
 “허억······ 허억······.”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소닉 블레이드를 휘두르던 팔이 덜덜 떨린다. 이마에서 흐른 땀에 눈가가 따갑다. 숨소리는 거칠고 다리는 갓 태어난 사슴처럼 후들거렸다.
 
 타닥! 타닥!
 
 무아지경에서 깨어난 순간 나는 고기 타는 냄새를 맡았다. 소닉 블레이드의 고열에 좀비의 살덩이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실감할 수 있었다.
 
 한 명뿐인 혈육을 내 손으로 죽이고 말았다는 현실을. 내가 죽인 것은 그저 좀비일 뿐이라고 냉철한 이성이 주장했지만 나는 감성에 삼켜졌다.
 
 “으······ 으아아아!”
 
 머리를 땅에 박으며 나는 소리를 질렀다.
 
 물기로 얼룩진 시야 너머로 보이는 것은 그저 짙은 어둠뿐이다.
 
 나는 이 상황을 익히 알고 있다.
 
 이곳은 악몽 속의 세계다. 내 죄책감이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여주는 언젠가 겪었던 순간이다.
 
 그것을 깨닫자 나는 꿈의 세계에서 퇴거당했다.
 
 
 
 
 
 * * *
 
 
 
 
 
 “대위님, 일어나십시오.”
 
 누군가의 부름에 옅은 잠에서 깨어났다. 악몽을 꾼 탓인지 충분히 휴식을 취했음에도 몸이 무거웠다.
 
 나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동생을 죽인 그날 이후로 숫하게 되새김질한 악몽이었지만 괴롭기는 여전하다.
 
 담배라도 없었다면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쓴 맛을 넘어 탄 맛이 나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수통 안에 든 미지근한 물을 삼켰다.
 
 “좀비들은?”
 
 나는 단잠을 방해한 부하에게 질문했다.
 
 스물이나 되었을까 싶은 앳된 얼굴의 병사는 긴장으로 굳어진 표정으로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후 입을 열었다.
 
 “방어선 앞 이십 킬로미터 부근입니다. 예상 교전 시각은 금일 일팔공공 시 입니다.”
 
 “그래?”
 
 숨 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망적인 정보를 들었지만 별다른 감흥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세상에 무엇이 있어 혈육을 죽인 것보다 더한 고통과 두려움을 주겠는가?
 
 시체를 소생시키는 미지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괴물이라도 놈들이 내게 줄 수 있는 것은 고작 죽음뿐이다.
 
 삶이 괴로운 자에게 죽음은 차라리 축복이다.
 
 치직!
 
 필터까지 타 들어간 담배를 비벼 끄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수라장이 된 세상에서 먹고 살기 위해 선택한 군인의 길이지만 누군가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강 남쪽을 중심으로 펼쳐진 대 좀비 방어선이 뚫리면 얼마 남지 않은 생존자들은 모조리 몰살당하고 말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방어선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도망쳐도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나는 싸울 생각을 굳힌 상태다.
 
 아마 오늘이 지나면 더는 악몽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렇게 여기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지붕이 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는 숙소에는 나밖에 없다. 다른 병사들은 이미 정해진 위치에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보병의 제식 장비인 동력 장갑복을 챙겨 입고 방위선 중앙의 벙커로 향했다.
 
 강화 콘크리트로 둘러싼 작은 벙커에는 이미 병사 몇 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같이 죽기에는 시원찮은 면면들이지만 이제 와서 사치스러운 죽음은 바라지 않는다.
 
 “여기가 내 무덤인가?”
 
 불길한 소리를 한 내게, 병사들이 시선을 던졌지만 나는 상관치 않았다.
 
 인류는 좀비에게 패배했다.
 
 이르고 늦고의 차이가 있겠지만 인간은 멸절되고 말리라. 수도 없이 멸종된 생물들의 뒤를 이어 우리들도 사라질 뿐이다.
 
 살 수 있으리란 희망은 품지 않는다.
 
 희망은 인간을 발버둥 치게 만든다.
 
 나는 헛된 희망에 놀아나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온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는 시간, 망원경으로 동정을 살피던 병사가 중얼거렸다. 무엇이 오고 있는지 딱히 물어볼 필요는 없다.
 
 나는 총을 들고 벙커에 뚫린 총안구로 다가갔다.
 
 쾅! 콰쾅!
 
 방어선 전방에 매설한 지뢰가 터졌다.
 
 지뢰를 밟은 좀비는 사지가 끊어지며 허공을 날았다. 그것이 신호탄이었다. 공포에 등을 떠밀린 병사들이 방아쇠에 건 손가락을 당겼다.
 
 탕! 타타탕!
 
 이미 눈덩이는 비탈을 굴렀다. 한 번 탄 기세를 잃어버리면 방어선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아직 유효 사거리는 아니지만 나또한 손가락을 움직여 총을 쏘기 시작했다.
 
 “크아!”
 
 “끄엑!”
 
 어디서 그렇게 몰려나오는지 좀비는 지평선을 뒤덮을 정도로 많았다. 눈을 감고 쏴도 총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사격은 총열이 녹아서 못 쓸 정도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병사들은 원거리 공격 수단을 잃었고 좀비들은 지척이다. 애매모호했던 죽음이 명확한 형체를 가지고 눈앞을 알짱거린다.
 
 기왕 죽을 거면 좀비 한 마리라도 길동무로 끌어들이고 싶었다.
 
 나를 비롯한 병사들은 동력 장갑복과 연결된 전원 케이블을 소닉 블레이드에 이었다.
 
 키이이!
 
 이제 싸울 수단은 백병전밖에 남지 않았다.
 
 결국 방어선에 침입하는 데 성공한 좀비들은 이내 병사들을 덮쳤다. 죽이고자 하는 괴물과 살고자 하는 인간은 이빨과 칼을 부딪치며 싸움을 시작했다.
 
 결과를 말하자면 우리들은 파도를 맞닥뜨린 소금처럼 녹아 버렸다. 강력한 방어력을 갖춘 동력 장갑복도 좀비의 이빨과 손톱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비명과 절규가 메아리치며 하나둘 생명의 불길이 꺼져간다.
 
 차디찬 주검이 되어 대지에 몸을 뉘인 병사들은 이내 죽음에서 되살아나 살아 있는 인간을 공격했다.
 
 인류가 좀비를 이길 수 없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었다.
 
 “여기까지네.”
 
 입고 있는 장갑복은 이미 걸레가 된 지 오래고 이제는 소닉 블레이드를 작동시킬 배터리조차 없다. 그리고 내가 쓰러뜨려야 할 적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점령한 땅에 깃발이라도 꽂고 싶은지 좀비들의 진군은 거침이 없다.
 
 나는 벙커에 매설한 고성능 폭탄의 기폭 스위치를 눌렀다. 시한 신관이 장입된 폭탄은 앞으로 30초 후에 폭발한다.
 
 나는 한 놈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좀비들의 주의를 끌었다.
 
 “개새끼들아! 난 아직 살아 있다! 죽이고 싶으면 이리 와서 덤벼어어어!”
 
 “크악!”
 
 “우어어······”
 
 내 호객 행위에 넘어간 좀비들이 벙커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나는 주먹을 날리며 좀비 몇 놈을 때려눕히는데 성공했지만 결국 녀석들의 억센 손아귀에 잡혀 바닥에 몸을 뉘였다.
 
 “으······ 으아아아악!”
 
 배가 고팠는지 성질 급한 좀비 한 놈이 내 다리를 물었다. 다리 살이 뭉텅 떨어져 나가며 기절하고 싶을 정도의 극통이 뇌를 강타했다.
 
 나는 일어나려 발버둥을 쳤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아귀도 질릴 식욕의 소유자들이 내 몸뚱이를 뜯어먹기 시작한 것이다.
 
 우물우물······.
 
 와드득!
 
 산 채로 잡아먹히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곧 있으면 폭탄이 터진다.
 
 인생의 마지막 불꽃놀이를 구경하지 않으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띠이이이······.
 
 내 귀가 시한 신관이 내는 전자음을 들었다.
 
 드디어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것이다.
 
 영혼이 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나는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이죽거림을 남겼다.
 
 “인생······ 참······ 엿, 같네······.”
 
 콰콰쾅!
 
 순간 눈앞이 밝아지며 강렬한 열풍이 벙커 안을 휩쓸었다.
 
 눈이 멀 것 같은 그 빛을 마지막으로 내 의식은 암전되었다. 거지같은 세상에 태어나 엿 같은 인생을 산 남자의······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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