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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노래하다 1-1권

2018.03.12 조회 6,341 추천 64


 # 프롤로그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소리가 서로 교차하며 울려 퍼진다. 이를 시작으로 수많은 악기들이 지휘자의 손짓에 따라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거대한 야외 공연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숨소리조차 방해가 될까봐 숨죽인 채 전면에 등장한 한 사내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이번 오페라의 주역을 맡은 새로운 신성. 테너 민호 강.
 
 그는 무려 300 대 1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쟁률을 뚫고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주역 칼라프의 역할을 따냈다. 그 의외의 결과로 인해 동양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온 이 사내에게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전주가 나오자마자 모든 관객은 너무나도 유명한 이번 곡이 무엇인지 단숨에 알아차렸다.
 
 Nesun Dorma(공주는 잠 못 이루고).
 
 동양에 있는 거대한 대국의 공주 투란도트.
 
 그녀는 자신이 낸 문제 세 가지를 맞추면 결혼해 주겠노라고 공표한다. 수많은 이들이 권력에 눈이 멀어 도전하지만 모두 실패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갔다.
 
 또 한 사람의 도전자가 죽어가는 처참한 현장에서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한눈에 반해 버린 남자가 있으니 그가 바로 비운의 인물. 망국의 왕자인 칼라프였다.
 
 그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놀라운 기지로 그녀가 내는 두 가지 문제 모두를 맞춰 버리고 말았다.
 
 “그대에게 불을 붙이는 얼음, 그러나 그대가 뜨겁게 타오를수록 더욱 차갑게 어는 얼음. 그것이 그대를 종으로 삼으면 그대는 제왕이 되지. 그건 대체 뭘까?”
 
 자신만만한 투란도트가 낸 세 번째 질문 앞에서 오랫동안 고민하던 칼라프는 정답을 외쳤다.
 
 “투란도트!”
 
 자신이 선언한 대로라면 문제를 모두 맞춘 그와 결혼해야 마땅하지만 절대로 결혼할 생각이 없었던 그녀는 결혼을 취소해 달라고 아버지에게 매달린다.
 
 그녀의 진정한 사랑을 얻기 위해 칼라프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선언한다.
 
 자신의 이름을 맞추면 결혼도 취소하고, 거기다 더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놓겠다고!
 
 <오페라 투란도트의 3막>
 
 타타르국의 왕자이자 티무르의 아들인 칼라프가 계단에 몸을 기대고 있다.
 
 저 멀리서 왕자의 이름을 알아낼 때까지 그 누구도 잠들어 선 안 된다는 투란도트의 명령을 전하는 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칼라프가 일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이미 승리가 가득하다.
 
 ♪Nesun Dorman~ Nesun Dorma♪
 (아무도 잠들지 마라. 아무도 자면 안 된다)
 ♪Tu pure, o Principessa♪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주님)
 ♪Nella tua fredda stanza♪
 (당신의 차가운 방에서 보십시오)
 ♪Guardi le stelle che tremano damore e di speranza!♪
 (사랑과 희망에 넘쳐나는 별을!)
 
 얼마 전에 세상을 뜬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뒤를 잇는다는 평을 받은 바 있는 강민호의 풍성하고도 가슴을 두드리는 음색이 드넓은 공연장을 가득 채워갔다.
 
 “아아···.”
 
 여기저기서 수많은 여인들의 한숨 소리가 새어 나온다. 완벽하게 칼라프로 분한 테너 강민호의 노랫소리에 뭇 여인들의 가슴이 녹아내렸다.
 
 유려하게 이어지던 아리아는 지휘자의 격렬한 손짓에 따라 마침내 절정으로 치달았다.
 
 ♪Allalba vincero!♪
 (새벽이 되면 나는 승리하리라!)
 
 흘러내리던 땀방울이 방울져 떨어져 내렸다. 그간의 고생과 서러움을 폭발시켰다.
 
 ♪Vincero!♪
 (승리를!)
 
 나는 더 이상 패배자가 아니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당당히! 내 힘으로 이 자리에 올랐다!
 
 ♪Vince~~~~~~~~~~~♪
 (승~~~~~~~~~~~~~~~)
 
 자! 보아라 나의 승리를! 모든 관객들이여 환호하라!
 
 가장 불안하다고 알려진 하이 B(시)를 송곳처럼 찌르고 올라간 고음에 모든 관객들이 숨을 멈췄다.
 
 심지어 오케스트라마저 숨을 죽인 채 이 놀라운 신성의 찬란한 탄생을 주목했다. 지휘자의 들려 있던 지휘봉이 내려오는 순간을 기다리며 모든 이들의 긴장이 최고조에 올랐다.
 
 숨을 쉬지 못하고 있던 수많은 여인들이 현기증을 일으키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렇게 드넓은 야외 공연장의 모든 열기가 하나가 되어 솟구쳐 올랐다.
 
 그 중심에 이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낸 사내가 있었다.
 
 ♪ce~~~~~~~~~~~~~~~~~ro!!♪
 (~~~~~~~~~~~~~~~~~~리를!)
 
 오오오오오오오!!
 
 짝짝짝짝!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많은 관객들이 동시에 일어나 탄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그것은 의무적으로 보내는 박수가 아니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동을 절제할 수 없어 한가득 실어 보내는 찬사였다.
 
 “Bravo(브라보)!!”
 
 엄청난 환호가 쉬지 않고 이어졌다.
 
 오페라의 특성상 잠시 극이 중단 된다 할지라도 그에게 향하는 환호를 중단시키는 일은 없었다.
 
 특별석에 앉아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꼼꼼하게 메모하고 있던 저명한 음악 평론가 마이클 무어의 손이 덜덜 떨렸다.
 
 한 세기를 풍미한 위대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가고 그 빈자를 채울 만한 인재가 나타나지 않아 그 얼마나 슬퍼했었던가?
 
 그런데 드디어 그의 빈자리를 채우고도 남을 위대한 테너가 온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당당하게 선포했다. 그 승리의 선언에 모든 관객이 전율했다.
 
 좀처럼 감동하지 않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낼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악기를 연주하는 활로 보면대를 두드려댔다.
 
 [위대한 테너, 세상에 승리를 외치다!]
 
 내일 자신이 총책임자로 있는 저명한 음악잡지 Gramophone(그라모폰)의 전면을 장식할 표제였다. 그는 자신이 기자라는 사실조차 잠시 잊게 만든 사내를 향해 아낌없는 박수와 갈채를 보냈다.
 
 환의와 감동이 교차하는 바로 그 순간.
 
 투둑.
 
 섬뜩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야외무대 장치를 지탱하고 있던 와이어가 끊어졌다.
 
 우우우웅~!
 
 그 기묘한 소리를 제일 먼저 알아차린 건 무대 장치를 총감독하고 있던 엘리엇이었다.
 
 “어? 어어!! 피, 피햇!!”
 
 그 와이어가 끊기면서 거대한 기중기 모양의 무대 장치가 저 위에서부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제 막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 젊은 성악가 강민호가 서 있었다.
 
 콰아아앙!
 
 “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이 휘몰아치던 바로 그곳을 고막을 찢을 듯한 비명이 가득 채웠다.
 
 ***
 
 나는 고아였다.
 
 원장 수녀님의 말에 따르면 지독히도 춥던 어느 겨울날 누군가 내 이름이 적힌 쪽지와 함께 나를 자애원 입구에 버리고 갔다고 했다.
 
 고아의 삶이 그렇듯, 보육원의 삶이 그렇듯.
 
 나는 사랑에 목말랐다. 그 목마름은 채울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먼저 세상이 얼마나 차가운 곳인지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어릴 적에 제일 먼저 배운 건 원장 수녀님과 다른 직원들의 눈치를 살피는 법이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덜 맞기 위해 자애원을 장악하고 있는 형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을 배웠다.
 
 다행히 제법 역사가 오래된 이곳은 고정적인 후원자들이 꽤 있는 편이었다. 그래서 굶거나 추위에 떨거나 하지 않아도 됐다. 내가 처한 입장에서 볼 때 그건 꽤나 운이 좋은 것이었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바깥 풍경과 달리 내부는 형형색색의 장식들로 가득했다. 크리스마스라고 했다. 언뜻 듣기로는 신이라는 존재가 우리를 사랑해서 이 땅에 온 걸 기념하는 날이란다.
 
 그런데 나는 왜 고아인 걸까? 정말 신이라는 존재가 있는 거라면 물어보고 싶었다. 영철이나 미진이처럼 어디에 장애가 있거나 모자란 것도 아니고, 사지가 멀쩡했는데도 버려진 이유가 궁금했다.
 
 근처 성당에 갔더니 각종 먹을거리가 가득 담긴 봉투를 하나씩 손에 쥐어줬다. 평소처럼 직원들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마음대로 먹는다고 뭐라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렇게 큰 예배당에 앉아 초콜릿이 듬뿍 발라져 있는 이름 모를 과자를 먹고 있자니 무대 위에 그럴듯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순서대로 등장했다.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연극도 하고. 나름 봐줄 만했지만 그렇게 흥미를 끌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가 됐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아저씨가 검정색 양복을(나중에 그게 턱시도라는걸 알았다) 차려입고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말로 노래를 시작했다.
 
 ♪ Una furtiva lagrima negli occhi suoi spunto~♪
 (남몰래 흘리는 눈물이 그녀의 눈에 깃들었다)
 
 기존에 듣던 것과 뭔가 많이 달랐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의 노래가 끝나기 무섭게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박수를 쳤다. 마치 그래야만 그가 나를 한 번이라도 더 봐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튀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나였기에 늘 얌전한 편이었지만, 그날따라 나는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예배당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남자를 만나기 위해 정문으로 달렸다.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집에 가려면 무조건 이곳을 지나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제법 고급스러운 승용차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끼이익.
 
 나는 턱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차 앞을 가로 막았다. 급정거를 한 차의 운전석에서 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꼬마야, 무슨 일이야? 지금 큰일 날 뻔했다고. 하마터면···.”
 
 목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그냥 하는 말인데도 일반 사람들과는 뭔가 울림이 달랐다.
 
 나는 숨을 토해내며 외쳤다.
 
 “그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응? 뭐, 뭐가?”
 
 내 목소리가 지나치게 컸는지 그가 놀란 눈으로 묻는다.
 
 “그 노래 말이에요. 조금 전에 외국말로 뭐라고 하던 그거.”
 
 잠시 말이 없던 그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부드러운 갈색 눈동자가 바로 내 눈앞에 있었다.
 
 “흐음··· 그건 말이지 꼬마야. 성악이라고 한단다. 조금 전에 부른 건 오페라(Opera)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에 나오는 테너 아리아(Tenor Aria) 남몰래 흘리는 눈물(Una furtiva lagrima)이라고 하고.”
 “성악··· 사랑의 묘약···.”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잊어버리기라도 할까봐 수없이 되뇌며 머릿속에 새겼다. 그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혹시라도 나중에 생각이 있거든 이리로 찾아와라. 그 정도 열정이면 충분히 해볼 만하지. 후후훗.”
 
 그가 내게 작은 종이를 내밀었다.
 
 “박경호.”
 
 그의 이름 세 글자가 제일 크게 새겨져 있었다.
 
 저 멀리서 직원이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그를 향해 꾸뻑 인사를 하며 말했다.
 
 “나중에··· 꼭 그··· 성악이라는 거 가르쳐 주세요.”
 “그래. 알았다 꼬마야. 네 이름이 뭐지?”
 “민호요. 강민호.”
 “그래 기억해두마. 저기 너를 찾는 거 같은데?”
 “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잔뜩 성이 난 직원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를 향해 달려갔다. 분명 오늘 저녁에 매를 맞게 되겠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생각했다.
 
 “성악···.”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 내 나이 열두 살. 유난히도 추운 겨울에 있었던 일이었다.
 
 
 # 1
 
 오랜만에 어릴 적 꿈을 꾸었다.
 
 내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해준 스승님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 크리스마스의 밤. 입안을 달달하게 적셔주던 초콜릿도, 모처럼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 있었던 과자들도. 그분의 노래를 들었을 때와 같은 만족을 주지 못했다.
 
 한동안 바쁘게 살아오느라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요즘 건강은 어쩌신지 궁금했다.
 
 꿈이 끝났다.
 
 눈을 뜨자 금을 녹여 부은 것 같은 금발머리의 미녀가 제일 먼저 나를 반긴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전라의 상태였음에도 그녀는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녀가 내 쪽으로 몸을 밀착시키며 짓궂은 미소를 던진다.
 
 “민호, 무슨 꿈을 꿨기에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한 거야?”
 “비밀입니다. 에일리.”
 “칫. 민호는 맨날 비밀이래.”
 
 엘프 특유의 뾰족한 귀를 움찔거리며 그녀가 투덜댔다. 아름다운 외모만큼이나 빼어난 검술 실력을 자랑하는 그녀는 내가 속한 파티의 일원이었다. 그것도 그냥 엘프가 아닌 조화의 신이자 자애의 신인 엘리시아의 가호를 받아 태어난 고귀한 태생. 하이엘프였다.
 
 그리고 내 연인이기도 했다.
 
 나는 손을 뻗어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 자연스럽게 몸을 기댄 그녀가 내 가슴에 머리를 댄 채 물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네? 근데 정말 갈 거야? 우리랑 같이 지내면 안 될까? 이젠 우리가 가족이잖아.”
 
 나는 말없이 그 풍성하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그러자 그녀가 그 아름다운 얼굴을 바짝 들이대며 묻는다. 그녀의 얼굴에 가득한 안타까움이 전해져 왔다. 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도자기같이 매끄러운 얼굴을 쓰다듬었다.
 
 “미안, 나는 원래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잖아.”
 “그건 그렇지만···.”
 
 중간계에 발생했던 크고 작은 사건들.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은 사건들이 대륙 전역을 휩쓸고 지나갔다.
 
 덕분에 수많은 영웅들이 탄생했다가 사라져갔고, 그만큼이나 많은 서사시들이 만들어져 대륙 곳곳에서 불려졌다.
 
 그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꽤나 많은 모험을 이들과 함께 헤쳐 나오고 난 뒤였다.
 
 그때였을 거다, 아마.
 
 내가 돌아가기로 결심했던 것이.
 
 그녀의 맑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나는 엄지로 그녀의 눈물을 가볍게 훑어냈다. 그리고 그녀의 붉은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하이엘프인 그녀는 조화의 신인 엘리시아의 신탁을 받아 그 사실을 내게 건넸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며 슬퍼했다. 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눈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알고 있겠지만,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거야. 지닌 힘을 모두 잃을 수도 있고, 이곳에서의 기억을 모두 잊게 될지도 몰라. 최악의 경우에는 차원의 미아가 되어 영원히 차원의 틈을 떠돌 수도 있고.”
 “알고 있어.”
 
 내 덤덤한 대꾸에 그녀의 눈동자가 잘게 떨린다. 결국 체념한 듯 나직한 숨을 길게 내뱉은 그녀의 푸른 눈이 평소와 같은 빛을 발했다.
 
 “그래도, 갈 거라는 거지?”
 “응.”
 
 이미 오래전에 내린 결정이었다.
 
 이레귤러(Irregular).
 
 나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나로 인해 차원의 균형이 왜곡됐고, 그 틈을 타 수많은 존재들이 이곳 중간계를 넘보게 됐다.
 
 그 사실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면 모를까 알게 된 지금, 나 하나 좋자고 수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기며 웃었다.
 
 “웃차! 자, 그럼 마지막 만찬을 즐겨볼까요?”
 “칫, 아무튼 말 돌리는 건 선수라니까.”
 
 나는 샐쭉거리는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몸을 일으켰다.
 
 “여~ 잠꾸러기. 이제야 일어난 겐가? 허허허. 이거 마지막 떠나는 날까지 늦잠이라니. 아무튼 자네도 별종이야.”
 
 적당한 체구에 적당한 외모,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외양을 가진 사내. 필로스가 식당으로 들어서는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아아, 나의 영웅 필로스여···.’
 
 그는 우리 파티를 이끄는 리더 겸 용사였다.
 
 그의 독려 덕분에 그 험한 모험을 모두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진즉에 미쳐버렸던지 아니면 어디선가 무모하게 몸을 던져 비명횡사했을 게 뻔했다.
 
 “우리 음유시인께서 잠시 깊은 꿈나라로 떠났었나 보군그래.”
 
 내 곁으로 다가온 드웨인이 껄껄 웃으며 어깨를 두드린다. 그를 향해 마주 웃으며 자리에 앉자, 마법사 특유의 복색을 한 아이린이 입을 가리며 웃는다. 내게 와 닿는 그녀의 눈길이 제법 따스하다.
 
 그렇다.
 
 이들 모두가 나의 가족이었다.
 
 이 파티에서 내 역할은 음유시인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주로 이들 파티의 영웅담을 소재로 한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그리고 내 노래는 이들 모두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했다.
 
 노래를 만들어 세상에 뿌린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노래의 주인공의 이름이 그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마다 믿기 힘들 정도의 힘이 부여된다.
 
 그것이야말로 음유시인이 모든 파티에서 추앙받는 절대적인 이유.
 
 나는 그러한 음유시인들 중 독보적인 영역을 자랑하는 대륙 최고의 음유시인이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지나면 수많은 전설들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히게 되겠지만···.
 
 내가 만든 노래 중 단연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건 바로 용사인 필로스의 메인 테마곡이었다.
 
 이름 하여 ‘필로스의 성스럽게 빛나는 검’.
 
 손발이 오그라드는 제목이었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좋아했다.
 
 대륙 전체로 퍼져나간 이 노래는 한 번씩 불려 질 때마다 세상은 필로스에게 새로운 힘을 부여했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 엄청난 일들을 노래 하나로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음유시인인 나의 역할이었다.
 
 적당한 체술과 적당한 검술 실력.
 
 다른 능력만 놓고 봤을 때는 파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음유시인이 모든 파티에서 러브 콜을 보내는 독보적인 클래스라는 사실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대륙에서 몇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S등급을 받은 유일한 음유시인이었다.
 
 필로스 본인의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는 정성 덕분에 그들과 함께했고, 결국 모험의 마지막을 끝으로 내 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민호, 너를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일 거야.”
 
 맞은편에 앉은 필로스가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남자한테 저런 멘트를 듣다니···.
 
 그런데도 싫지 않다는 게 문제다. 그게 바로 필로스 그의 가장 특출한 능력. 영웅으로서 가지게 되는 자연스러운 포용력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드웨인이 이제는 남자까지 꼬시는 거냐며 농을 던지고, 일행들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한줌의 가식조차 없는 환한 웃음과 그 안에 가득 담긴 신뢰.
 
 어째서 이 파티의 중심이 그인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자! 모두들 기대하시라. 그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하는 신성력이 듬뿍 담긴 고기 파이를!”
 
 터억.
 
 밀레느가 재주도 좋게 잔뜩 들고 온 접시들을 사람들 앞에 내려놓는다. 사제인 그녀의 장난기 어린 표정을 보며 모두가 미소를 머금었다. 나는 동안의 극치를 달리는 그녀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대륙에 유행하는 노래들 중, 필로스의 것을 빼면 단연코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저 신성사제인 밀레느의 테마곡이었다.
 
 하이엘프인 에일리가 인간이 엘프인 자기보다 더 인기가 많은 게 말이 되냐며 투덜거리긴 했지만··· 그녀와 아이린까지 더한 세 여인은 여러 가지 의미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다.
 
 차원을 넘어선 다른 세계였지만 그 어디서나 여성 히로인은 인기를 구가하기 마련이었다.
 
 그 인기만큼 많은 노래가 불리고, 그 덕분에 우리 파티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후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뭔가 이상하네.’
 
 생각해 보면 꽤나 오랜 여정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생명을 잃은 뒤 눈을 떴을 때의 그 참담함이란···.
 
 별의별 고생을 다해가며 이곳에 정착할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내 스승이었던 아르케 님 덕분이었다.
 
 에일리의 부친이기도 한 그 덕분에 나는 내 장기를 살려 음유시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고, 덕분에 가장 위대한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는 파티에도 함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여정은 대륙 의 북쪽, 던전 끝에 자리 잡고 있는 드래곤을 죽임으로서 끝이 났다.
 
 ‘라온 드 아레테메오스’
 
 중간계에 남아있는 마지막 드래곤이자, 드래곤이라는 종족의 상징적인 존재인 드래곤 로드였다.
 
 그를 죽이고 얻은 전리품 중에 시간회귀의 마법진이 수록된 고서가 있었던 건, 어쩌면··· 필연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덕분에 나는 필로스와 약속한 대로 내가 왔던 세상으로의 회귀를 시도할 수 있었다. 그 준비를 위해 보낸 시간이 자그마치 3년하고도 24일. 그리고 마침내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모두가 의도적으로 평소처럼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 가운데서 느껴지는 아쉬움과 짙은 슬픔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 감정의 변화에 민감한 음유시인이었으니까.
 
 즐거운 식사 시간이 지나고, 각자가 즐기는 디저트를 후식으로 먹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그들과 함께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저택의 후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동원된 전대미문의 마법진이 필로스에게 하사된 저택의 후원에 그려져 있었다.
 
 거대한 마정석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을 잔뜩 머금은 채 가동된 마법진에서 작은 진동이 느껴진다.
 
 “나는 솔직히··· 지금도 네가 가지 않았으면 한다.”
 
 필로스의 말에 다른 이들의 얼굴이 동시에 위아래로 움직인다. 그 애처로운 눈빛에 마음이 흔들렸다.
 
 과연 그곳으로 다시 돌아간다고 한들 이들처럼 마음을 나눌 이들이 있기나 할까?
 
 아서라.
 
 흔들리려는 마음을 다잡으며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여러분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껄껄껄, 자네는 내 인생 최고의 음유시인이었네.”
 
 거대한 체구의 드웨인이 호탕하게 웃으며 엄지를 추켜세우고
 
 “어,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요. 기다릴 테니.”
 
 하이엘프인 에일리가 눈물을 훔쳐내며 환하게 웃는다.
 
 그녀의 기다림은 꽤나 오랫동안 이어질 게 분명했다. 그게 바로 엘프들의 사랑 방법. 나는 그녀를 보며 무언의 인사를 나누었다.
 
 “가지 말아요, 민호··· 흐윽.”
 
 마법사인 아이린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그대의 앞길에 아이스리아 님의 가호가 가득하길.”
 
 사제인 밀레느가 환한 미소로 나의 마지막 가는 길을 축복해 준다.
 
 “모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내가 마법진 중앙에 선걸 확인한 마법사들이 필로스에게 시선을 던진다.
 
 “자네와 함께한 모험들을 내 영원히 잊지 않겠네. 더불어 자네가 남긴 노래들도···.”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마법진이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했다.
 
 점점 강해져가는 진동의 끝에 엄청난 빛이 나를 에워쌌다.
 
 “안녕, 나의 친구들.”
 
 그렇게 나는 정들었던 제2의 고향을 떠나 내 본향으로 돌아갔다.
 
 ***
 
 위아래, 전후좌우가 구별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머릿속이 무엇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멍하기만 했다.
 
 ‘대체 여긴 어디지?’
 
 흐릿한 안개 속을 거니는 것 같았다. 몽롱한 상태에서 정처 없이 길을 찾아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이 기약 없는 걸음걸음이 문득 두렵게 느껴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 까?
 
 시간의 흐름을 인식할 수 없었기에 이곳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민호 씨?”
 “······.”
 
 안개 속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그 방향을 쉽사리 짐작하기 힘들었다.
 
 나는 무작정 소리를 쫓아 달렸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강민호 씨?”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목소리의 주인을 만날 것만 같았다.
 
 “강민호 씨?”
 
 소리의 진원지를 손으로 잡아채기라도 하듯이 허둥대며 앞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이 환하게 밝아졌다.
 
 “허억!!”
 
 나를 흔들어 깨우는 그의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벌떡 일어섰다.
 
 “괘, 괜찮아요?”
 
 가쁜 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돌리자 헤드셋 마이크를 착용한 젊은 남자가 미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시선을 내리자 그의 가슴에 달린 명찰이 눈에 들어왔다.
 
 [FD 주명훈]
 
 ‘FD?’
 
 그는 내 상태를 살피며 눈치를 보다가 근처에 있던 물병을 슬며시 건넸다. 무심코 손을 내밀어 이를 받아 든 나는 단숨에 생수 한 병을 들이켰다.
 
 “하아~ 후우~ 후우~”
 
 물을 들이키자 차올랐던 숨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지?’
 
 기억이 단절되기라도 한 것처럼 뒤죽박죽이다. 숨을 가라앉히며 애를 써도 쉽사리 그 빈틈을 채우지 못했다.
 
 ‘나는 분명···.’
 
 애를 쓰며 기억을 더듬던 나는 마지막 순간 내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눈부신 조명과 실물과 다른 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세트.
 
 화려한 복장을 입고 오페라 투란도트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아리아를 부르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 절정의 순간, 마치 일부러 그러기라도 한 것처럼 뭔가 엄청난 충격이 나를 덮쳤다. 그리고 눈을 뜨니 이곳이었다?
 
 ‘아니야···.’
 
 마치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마치 뿌연 안개 속에 싸여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잘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엄지로 꾹꾹 눌러가며 주변을 둘러봤다.
 
 익숙한 공간 익숙한 느낌.
 
 ‘대기실?’
 
 공연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용하게 되는 대기실과 느낌이 비슷했다.
 
 “저, 강민호 씨? 앞으로 15분 후에 녹화 들어갑니다. 이따가 순서가 되면 알려드릴 테니 준비하고 계세요.”
 “······.”
 
 나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어색하게 웃으며 손짓하던 그가 방문을 닫고 나간다. 닫히기 직전 방문에 적힌 내 이름이 보였다.
 
 [어메이징 스타 K 강민호]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무심코 고개를 돌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오페라 가수가 아닌 한 소년이 그 큰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어메이징 스타 K]
 
 국내 유수의 경쟁사들을 모두 제치고 선두에 우뚝 선 대한민국 대표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어느덧 시즌 세 번째를 맞는 이 프로그램은 가히 폭발적인 수치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지난 시즌과 달리 이번 시즌에는 유난히 뛰어난 참가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매 회마다 이변들이 속출했다. 다른 시즌에 나왔다면 각기 탑 10에는 족히 들어갈 정도의 실력자들이 우후죽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들의 경연을 담은 뷰튜브(Viewtube) 동영상의 조회 수는 매번 최고치를 갱신해 나갔다.
 그리고 촬영이 한창인 이곳 스튜디오 내에는 그런 이들과 미리 계약을 하기 위해 포진하고 있는 소속사 에이전트들이 한가득이었다.
 
 메인 심사위원 중 하나인 가수 이상철이 자리에 앉으며 녹화 준비가 한창인 스튜디오를 눈에 담았다.
 
 “어머? 벌써 오셨어요, 오빠?”
 “어, 왔니?”
 
 왕년에 섹시 댄스 가수로 잘나가다가 최근에는 새로운 발라드의 여신으로 각광받고 있는 백지현이었다. 특히나 애절한 목소리가 일품이라 그녀가 부른 드라마 OST는 매번 신규 음원차트를 올킬할 정도였다. 게다가 성격도 털털하고 윗사람에게 늘 공손하게 행동하는 탓에 대인 관계는 좋은 편이었다.
 
 그녀가 특유의 눈웃음으로 이상철을 반기며 자리에 앉았다.
 
 “상신 오빠는 아직인가 봐요?”
 “어, 다른 프로 녹화 있잖아.”
 “아~아. 그럼 오늘은 조금 늦게 시작하는 건가요?”
 “아니, 거의 다 와간다니까 정시에 시작할 거 같은데?”
 “흐응~ 그렇구나. 그나저나 오늘은 떨지 말아야 할 텐데.”
 
 그녀가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무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응? 누구?”
 “그 있잖아요, 실력은 좋은데 무대만 서면 떠느라 실력의 반의반도 못 보여주는 아이.”
 “아~ 강민호?”
 “네. 개인적으로 정이 많이 가는 아인데 아쉬워요.”
 “그러고 보니 걔 네가 와일드카드 써서 본선 올렸지?”
 “네.”
 “그거 때문에 벌써부터 인터넷 시끄럽던데, 신중하게 선택하지 그랬냐?”
 “정말 아까웠거든요. 아아~ 걔가 이번에 뭔가 확~ 잘해줘야 각종 구설수도 쏙 들어가고 제 안목에 대한 칭찬 기사들이 마구 올라올 텐데 말이죠.”
 
 그녀가 앓는 소리를 하며 테이블에 엎어진다.
 
 “뭐, 이번 본선부터는 더 이상 봐주기도 힘들 테니까. 근데, 어쩔 수 없잖아. 무대에서 떠는 실력자들이 어디 한둘이었냐. 안 떨고 잘하는 것도 실력이다.”
 
 이상철의 무심한 듯 정곡을 찌른 말이 엎드려 있는 백지현의 귓가를 스쳐 지나간다.
 
 ‘누가 그걸 모르나. 그 정도로 아쉬웠으니 그렇지.’
 
 그녀는 속으로 말을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빈 무대가 눈에 들어왔다.
 
 애처로울 만큼 바들바들 떨어대던 소년의 모습이 그 위에 그려졌다.
 
 “하아~”
 
 목소리 하나만큼은 기가 막힐 정도로 좋은 아이. 그러니 와일드카드 꺼냈을 때도 저 까다롭기 없는 상철 오라버니가 은근슬쩍 눈감아줬겠지. 본래부터 가수는 타고나야 한다고 늘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양반이니까.
 
 그가 인정할 정도의 재능. 그 소년에게는 그게 있었다.
 
 그런데 재.능.만 있었다. 카메라 울렁증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녹화 사인만 들어가면 사시나무 떨듯이 떨어댔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덜덜보이.
 
 비록 스태프들 사이에서만 불리는 별명이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마냥 웃어넘기기가 쉽지 않은 별명이었다. 그녀 또한 데뷔 초반에 비슷한 경험으로 많이 힘들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할까?
 
 왠지 남 같지 않은 아이였다. 게다가···.
 
 ‘고아였지? 그··· 아이.’
 
 처음 그 아이를 봤을 때 프로필 란에 있는 가족 항목이 모두 비어 있었다.
 
 고아라는 타이틀.
 
 물론, 초반에는 어느 정도 동정 여론 몰이용으로 써먹을 수 있었다. 요즘 세상이야 관심을 끌기 위해선 뭐든 써먹고 보는 편이니까. 하지만 그것도 실력이 뒷받침됐을 때나 통하는 얘기.
 그가 무대에서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자 그 특이한 이력에 제법 관심을 보이던 프로그램 담당자도 최근에는 시큰둥한 눈치였으니까.
 
 기회를 잡고 스타가 되느냐, 아니면 영원히 잊혀지느냐.
 
 오늘 그 아이는 그 잔인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잘됐으면 좋겠지만···.’
 
 “아이고, 미안합니다. 제가 좀 늦었죠?”
 
 귓가에 들려오는 친근한 목소리에 그녀는 상념을 접었다.
 
 “어머? 오빠 오늘 스타일 죽이는데?”
 “야야, 말도마라 네 언니가 스타일리스트를 달달 볶는데 내가 다 죽겠다니까.”
 “호호호호, 좋지 뭘 그래요?”
 “일단 그런 걸로~ 쉿!”
 
 주변을 살피며 손가락을 입에 가져가는 사내, 그 유쾌함과 달리 그의 음악에는 늘 진정성이 가득했다. 그래서 그 오랜 세월동안 훌륭한 가수이자 작곡자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형님, 잘 지내셨어요?”
 
 윤상신의 인사에 이상철이 가볍게 손을 들어 화답한다. 늘 참가자를 향한 평가가 갈리는 두 사람 사이에는 뭔가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의 인사에 쓰게 웃은 윤상신이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 두 사람을 조율하는 건 백지현의 몫. 그래서 담당 PD는 두 사람 사이에 백지현을 앉혔다. 원래 지난 시즌까지는 그 자리가 이상철의 자리였다.
 
 조금 언짢은 기색을 보이던 이상철을 겨우 설득한 PD의 노력 덕분에 이번 시즌은 비교적 무난하게 진행되는 중이었다.
 
 “이야~ 오늘부터 아주 살벌하겠는데요? 애들 긴장되겠네.”
 “그쵸? 상명 오빠한테 물어보니까 애들 목 상태가 많이 안 좋다네요. 긴장해서 너무 연습을 무리하게 하다 보니 그렇다던데.”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상철이 한마디 툭 던진다.
 
 “타고난 성대는 아플 틈도 없어. 걔네 수준이 거기까지인 거지.”
 
 백지현이 윤상신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혀를 쭉 내민다.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얼굴에 그가 한 번 크게 웃고. 각자 자신의 자리에 놓인 지원자들의 서류들을 살핀다. 그 사이사이 붙어 있는 담당 작가의 추천 코멘트들이 한가득이다. 천천히 읽어보니 대략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흐음, 그 두 명을 미는 건가?’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못하는 게 없던 여자 아이.
 아직 17세라는 점은 감안하면 미래가 기대되는 아이였다.
 
 ‘벌써 SN 측에서 작업 들어갔다고 하던데···.’
 
 한때 섹시 디바로 주가를 높였던 그녀가 아련한 추억을 되짚으며 키득거렸다. 그 높은 킬 힐을 신고 신들린 듯이 춤을 추던 시절. 지금은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았기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풍부한 저음이 매력적인 21살의 청년. 시즌3가 진행되는 동안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제법 인기를 끌고 있었다.
 
 “5분 후에 녹화 들어갑니다아~~!”
 
 조연출의 커다란 외침이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나는 거울 속의 소년을 향해 약속했다. 그리고 밖에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무대가 있었다. 고민은 끝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승님은 내게 입이 닳도록 얘기했다. 프로는 언제나 스탠바이.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원래의 실력을 발휘하는 게 프로라고. 그리고 나는 그 프로 세계에서 정점을 찍었었다. 그게 바로 조금 전이었다.
 
 그 감동, 그 환호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
 
 “강민호 씨?”
 “가죠.”
 “네? 아···네.”
 
 평소 대기라는 소리만 들어도 덜덜 떨어대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주명훈은 잠시였지만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우황청심환이라도 먹었나?’
 
 달라진 눈빛, 당당한 태도, 그보다 왠지 모르게 여유마저 느껴지는 본선 진출자를 보며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그대 그늘에서 지친 마음 아물게 해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
 
 무대 뒤쪽에 대기 하고 있는 내 귀에 익숙한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많이 듣지는 않았지만 내가 좋아했던 노래들 중 하나였다.
 
 ‘조영필의 노래를 앳된 소녀가 부르니까 색다르구나.’
 
 무대 뒤에서는 카메라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긴장하고 있는 참가자들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생소한 광경이지만, 조금 느낌이 다를 뿐 자주 경험했던 무대 뒤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나는 주명훈이 읊어주는 주의 사항을 들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일단, 이.녀.석.이 하던 것부터 제대로 마무리하고 난 다음 생각하자.’
 
 비겁하게 도망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내 취향과 맞지 않았으니까. 그게 노래라면 더욱이.
 
 짝짝짝짝.
 
 세트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에이전트들의 박수 소리가 세트장에 울려 퍼졌다. 잠시 동안 심사위원들의 멘트가 이어졌다.
 
 “수고하셨어요. 다음 무대에서는 좀 더 힘이 넘치는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마지막 멘트를 끝으로 자신의 차례를 끝낸 그녀가 몸을 돌렸다.
 
 후다다닥.
 
 잔뜩 상기된 얼굴의 소녀가 내가 있는 곳으로 뛰어 내려온다. 코끝으로 달콤한 향이 스쳐 지나갔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향이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가는데 그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강민호 씨? 올라가세요.”
 
 나를 향해 손짓하는 주민호에게 고개를 까딱하며 무대 위로 올라갔다.
 
 짝짝짝짝.
 
 의무적인 박수 소리가 나를 반겼다.
 
 표시가 된 자리로 걸어가서 선 나는 평소 습관대로 자연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오페라 무대와는 조금 다른 조명들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조금 더 강렬한 느낌?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고개를 내리자 제법 화려하게 꾸며진 테이블에 세 명의 남녀가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담겼다.
 
 ‘이상철, 백지현, 그리고 윤상신이었던가?’
 
 한국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을 만큼 유명한 이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중에서도 유독 가운데 앉아 있는 백지현이 나를 향해 반가운 눈빛을 던진다.
 
 ‘뭐지? 아는 사이인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이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제일 먼저 우측에 앉아 있던 윤상신이 마이크를 들었다.
 
 “어서 와요 강민호 씨. 아니 강민호 군이라고 부르는 게 더 자연스럽겠네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그가 옆에 있는 백지현의 귓속말에 호칭을 정정하며 묻는다.
 
 “네,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비교적 오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일까? 자연스럽게 입에 배인 말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내 대답 한마디에 스튜디오 전체가 한 차례 술렁거렸다.
 
 나는 의아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는 이내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놀란 눈을 한 그가 이유를 설명해 줬기 때문이었다.
 
 “호오~ 오늘은 안 떠네요? 늘 처음 인사할 때부터 많이 긴장한 모습을 보였었는데. 왠지 모르게 기대되는데요?”
 “감사합니다.”
 
 이어지는 내 대답에 그의 눈이 반짝인다. 정말로 뭔가 달라졌다는 걸 느낀 거 같았다.
 
 다음으로 가운데 앉아 있던 백지현이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안녕, 민호 군, 오늘 컨디션은 좋은가 봐요?”
 “아무리 와일드카드 써서 올린 참가자라고 해도 너무 과한 관심인데요?”
 
 뒤이은 윤상신의 멘트에 나는 그녀가 그토록 나를 반겼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윤상신, 묻지도 않았는데 이것저것 알아서 설명해 주니 고마운걸.
 
 “에이~ 당연하죠. 오늘 민호 군이 잘해줘야 제가 욕을 좀 덜먹거든요.”
 “어라? 그거 너무 부담되는 멘트인데?”
 “어머? 그런가? 미안해요 민호 군.”
 
 그녀가 살짝 혀를 빼물며 사과한다. 그 모습에 스튜디오 내에 웃음기가 맴돈다.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올라갔다.
 
 뒤이어 이상철이 마이크를 잡고 한마디 한다.
 
 “준비됐나요?”
 
 나는 무심하기 그지없는 그의 눈을 직시하며 대답했다.
 
 “혹시, 곡을 바꿔도 됩니까?”
 
 술렁.
 
 내 말에 스튜디오 전체가 조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게 술렁거렸다. 여기저기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하긴, 들어 보니 이미 리허설 자체도 다 마쳤다던데 이제 와서 곡을 바꾼다니 황당하기도 하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상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의외라는 듯 선글라스를 들어 올리며 나를 쳐다본 그가 마이크를 들고 말한다.
 
 “그동안 보여준 모습하고는 확실히 많이 다르네요. 그럼 민호 군은 원래 하려던 거 말고 어떤 곡을 하고 싶은 거죠?”
 “전임권 씨가 부른 ‘제발’입니다.”
 “오오~”
 
 에이전트들의 입에서 호성이 흘러나왔다. 그만큼 난이도가 어려워서 아무나 쉽게 소화할 수 없는 곡이었기에.
 
 그들과 달리 내 입장에서는 지금 유일하게 기억나는 노래가 그거밖에 없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오페라 아리아를 부를 수는 없지 않은가?
 
 “가능하겠어요?”
 
 이상철이 밴드 쪽을 바라보며 묻는다. 밴드 마스터가 담당 PD를 바라본다. 그의 고개가 끄덕여지고, 고개를 돌린 밴드 마스터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준비도 해야 하니 5분만 끊었다 가죠.”
 
 ***
 
 녹화가 잠시 멈춘 사이 SN 엔터테인먼트의 실장인 강희수가 피곤한 몸을 길게 쭉 펴며 기지개를 폈다.
 
 “후우~”
 
 이쪽 세계에 발을 담근 이후 제대로 숙면을 취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부족한 수면 시간으로 인해 멍해진 머리를 억지로 깨우는 데에는 커피만 한 게 없었다. 그녀는 진하게 탄 커피를 한 모금 머금은 채 전면을 바라보았다.
 
 ‘이름이 강민호였나?’
 
 꽤나 매력적인 음색을 가진 소년.
 
 처음에는 그 가능성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긴 했지만, 그 관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보고 있기 안쓰러울 정도였으니까.’
 
 그는 몇 번의 지난 경연에서 지나친 무대 공포증으로 인해 가진 실력의 반의반도 보여주지 못했다.
 
 ‘조금 아깝기는 했는데 말이지.’
 
 백지현이 하나밖에 없는 와일드카드까지 써가며 본선 경연에 올려 보냈을 때는 그녀로서도 조금은 의외다 싶었다.
 
 그러고 보면 그녀 외에도 꽤나 많은 스태프들과 이쪽 관계자들이 눈앞의 소년을 사심 없이 응원하고 있긴 했다. 사람들의 호감을 이끌어내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지만···.
 
 프로의 세계는 그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런데 조금 전 곡을 바꾸고 싶다고 당돌하게 요구하는 그 소년의 모습에서 그녀는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그녀가 이 바닥에서 나름 인정받으며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그 감이 뭔가 있다고 알려왔다.
 
 두근.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에 그녀는 붉은 립스틱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습관처럼 입술을 깨물었다.
 
 ***
 
 5분 뒤.
 
 녹화가 재개되고 가볍게 합을 맞춘 밴드에서 익숙한 전주가 흘러나왔다.
 
 갑작스런 참가자의 곡 변경 요구. 그리고 이를 수락한 이상철.
 
 물론 담당 PD가 묵인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그런 모든 상황을 고려하면···.
 
 당연히 리허설 같은 게 허락될 리가 없었다.
 
 그동안 너무 긴장해서 제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공감대(?) 때문에 통과된 거지, 보통 같았으면 건방지다며 욕이나 잔뜩 먹고 통편집당했을 게 분명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잘하면 또 다른 기대주가 탄생하는 거고, 못하면 무대 울렁증을 가진 소년의 추한 마지막 발악으로 남는 거였다.
 
 전주 부분이 끝나가며 밴드 마스터가 나를 흘깃 쳐다봤다. 어딘지 모르게 걱정해 주는 기분이 느껴졌다.
 
 그가 보내준 선의 신호에 맞춰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마이크를 들어올렸다.
 
 ♪제발 그만해둬~♪
 
 “아아···.”
 
 첫 소절이 흘러나오자마자 어디선지 모를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너의 인형은 아니잖니~ 너도 알잖니~♪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는 가사처럼, 애절하고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가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마치 손에 들고 있는 마이크가 필요 없다는 듯이 공간 전체를 가득 채운 그 울림에 모두의 마음이 흔들렸다.
 
 ♪난 네가 바라듯 완전하지 못해~ 한낱 외로운 사람일 뿐야♪
 
 “흑···.”
 
 수많은 기획사에서 파견 나와 원석을 고르기 위해 집중하고 있던 우측 객석.
 
 그들 중 하나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울음을 터트렸다.
 
 ♪제발 숨 막혀~ 인형이 되긴 제발 목말라~ 마음 열어 사랑을 해줘~♪
 
 길게 이어지는 고음을 따라 모두의 몸이 앞쪽으로 기울었다.
 
 좀 더 듣고 싶다. 이대로 끝내고 싶진 않다.
 
 보통 1절만 듣고 끝내는 본선 무대의 특성상, 이 부분에서 잘라야 했다.
 
 온 몸을 에워싼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연주에 심취해 있던 밴드 마스터가 담당 PD를 바라봤다. 그가 손에 들어 빙빙 돌린다. 계속하라는 뜻.
 
 밴드 마스터는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며 강렬하게 일렉 기타의 줄을 당겼다.
 
 ***
 
 [새로운 스타 탄생? 강민호 그는 누구인가?]
 [미운 오리 새끼 강민호, 드디어 백조로 거듭나다!]
 [기록의 사나이 강민호! 순간 시청률 8%! 케이블 오디션 프로그램 사상 최고의 시청률 기록!]
 [강민호의 ‘제발’ 뷰튜브 조회 수 하루 만에 10만 건 돌파.]
 [전임권, 그 소년의 노래가 심금을 울려]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페이스북이며 각종 SNS상에 강민호에 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가 부른 ‘제발’의 편집 동영상이 단 하루 만에 수백 개가 넘게 등록됐다. 그리고 예외적으로 음원 발매된 그의 노래는 각종 차트를 휩쓸었다.
 
 어메이징 스타 K 측에서 발 빠르게 영상을 올린 덕분이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들의 관심을 잡아끈 건 강민호 그가 지닌 목소리의 힘이었다.
 
 어제의 노래가 끝난 후, 가장 기뻐한 건 다름 아닌 백지현이었다.
 
 그녀는 마치 자기일인 것처럼 환호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뿐만 아니라 스튜디오 내에 있었던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박수를 쳤다.
 
 노래가 주는 매력이 뭘까?
 
 그 질문에 스승님은 이렇게 답했다.
 
 “노래는 거짓말을 못 해. 좋으면 좋은 거고, 감동적이면 눈물이 흐르는 거지. 그래서 매력적인 거 아니겠냐?”
 
 같은 노래를 듣고 각기 다른 감동을 받은 이들이 한마음이 되어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익숙한 광경이기도 했고, 어딘지 모르게 그리운 광경이기도 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며 무대 뒤로 빠져나왔다.
 
 반쯤 얼이 빠진 스태프들의 시선이 내 뒤를 따랐다.
 
 그렇게···.
 
 혼란스러웠던 하루가 마무리됐다.
 
 ***
 
 SN 엔터테이먼트 본사 건물.
 
 강남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그곳은 이른 아침부터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그들이 맡고 있는 연예인들의 숫자만 해도 대한민국이 들썩거릴 정도였다.
 
 각자 맡은 이들을 효과적으로 굴려(?) 최대의 이윤을 뽑아내기 위한 그들의 회의는 끝날 줄을 몰랐다.
 
 12층에 있는 대표이사 사무실.
 
 고급 마호가니 책상 위에 양 다리를 포개서 올린 사내가 손수 내린 드립 커피를 손에 들고 느긋하게 그 향을 즐기고 있었다.
 
 그 평화로운 시간.
 
 아름다운 쇼팽 협주곡이 흘러나와야 할 것 같았지만 적막을 깬 건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 아닌 뾰족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아~ 진짜! 대표님! 걔 대박이라니까요. 현장에서 듣는 건 동영상하고 차원이 달랐어요. 꼭 끌어와야 합니다.”
 
 소리를 버럭 지르며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그녀를 짓궂은 얼굴로 쳐다보던 그가 피식 웃었다.
 
 “강 실장, 여기 회사고 나 여기 대표인 거 잊었어? 그렇게 막 소리 지르고 그러면 내 체면이 뭐가 되나?”
 “현석 오빠! 정말 그럴 거야?”
 “이크! 희수가 마귀할멈으로 변신했다. 피해야 해!”
 
 과한 리액션을 보이며 커피 잔을 들고 책상 밑으로 숨어들던 사내가 눈만 빼꼼 내밀고 그녀를 쳐다봤다.
 
 “아악~ 진짜 자꾸 그럴래?”
 “크크크큭. 화났냐?”
 “아니거든!”
 “에이~ 아닌 거 같은데?”
 “한 번만 더 물어보면 진짜 화낸다?”
 “오~ 그럼 안 되지. 난 오래 살고 싶거든.”
 
 그가 너스레를 떨며 가볍게 책상을 넘었다. 그러고는 더없이 우아하게 한 바퀴 턴. 음악이 없음에도 그 타고난 리듬감에 저절로 발바닥이 움직일 정도였다.
 
 그가 들고 있던 커피 잔을 애지중지 아껴가며 소파로 다가왔다. 그 와중에도 손에 들고 있던 커피 잔은 한 방울도 넘치지 않았다. 여전히 은은한 향을 내는 커피가 그의 손 위에서 가볍게 찰랑이고 있었다.
 
 왕년에 춤으로 국내 정상을 찍었다던 그의 가락이 어디 간 건 아닌지 꽤나 인상적인 몸놀림이었다. 예전이었으면 거대한 잠실 체육관을 가득 채울 정도의 환호성이 뒤를 이었겠지만···.
 
 보고 있는 관객이 강희수, 그녀 하나뿐이라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쳇, 요즘도 춤은 계속 추나 봐?”
 
 그녀의 핀잔에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은 그가 피식 웃었다.
 
 “넌 밥 안 먹고 살 수 있냐?”
 “으~ 오글거려. 그런 멘트는 잡지사 기자한테나 하시지?”
 “아으~ 나 상처받았어. 너 자꾸 그러면 확 그냥~ 한직으로 발령해 버린다?”
 “어디 보자, 요즘 이모님하고 통화를 잘 못 했던 거 같은데···.”
 “항복!”
 
 안현석이 양손을 번쩍 들며 항복을 외쳤다. 그녀가 가볍게 눈을 흘기고 다시금 대화의 주제를 틀었다.
 
 “그러니까 걔 땡겨야 한다니까.”
 “그 전 무대에서는 덜덜 떨다가 내려갔었다며.”
 
 심드렁한 그의 대꾸에 강희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뭐야, 벌써 확인해본 거야?”
 “내가 이 위치를 고스톱 쳐서 딴 줄 아냐?”
 “응.”
 “윽. 내가 말을 말아야지.”
 
 남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켠 그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단호한 시선. 그가 SN 엔터테인먼트 대표로서 그녀를 대할 때의 그 눈빛이었다.
 
 “확신할 수 있어?”
 “어느 정도는.”
 
 그녀의 말에 그의 굵은 눈썹이 꿈틀댄다.
 
 “얼마나?”
 “한 70% 정도?”
 “······.”
 
 지금 한창 잘나가는 남성 그룹의 리드 보컬을 캐스팅할 때도 65% 정도라고 대답하며 고민하던 그녀였다.
 
 그녀의 대답에 잠시 생각하던 그가 손가락을 튕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케이, 콜. 최대 다섯 장까지 지원해 준다.”
 “에게? 고작?”
 “아무것도 없는 신인인데 그 정도면 과하지.”
 “계약 기간은?”
 “최대 7년.”
 “불가(不可). 이 노예 상인아.”
 “윽. 나 상처받았어.”
 “이모한테 그렇게 혼나고도 정신 못 차리지?”
 “큼큼··· 그럼 3년.”
 “2년.”
 “뭐? 그 시간이면 잘 키워서 남이 채가기 딱 좋은 시기라고.”
 
 그가 뜨악한 얼굴로 대꾸한다.
 
 “그동안 진심으로 잘 대해 주면 되지. 좋은 음악가는 오래, 함께 가야 한다니까 그러네.”
 “끄응···.”
 
 매번 그와 그녀가 부딪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였다.
 
 돈이 될 녀석을 기가 막히게 알아보는 그와 원석을 골라 차근차근 연마를 가해 둘도 없는 보석을 만들어내길 원하는 그녀.
 
 둘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큰 차이는 시간이었다.
 
 “그래, 어차피 네가 찾은 녀석이니까 네 맘대로 한번 해봐라.”
 “8장.”
 “뭐?”
 “우승하면.”
 “뭐··· 우승하면 그 정도도 양호하지.”
 “콜?”
 “콜.”
 
 그녀가 내민 손을 맞잡은 그가 꼴 보기 싫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안 그래도 나갈 거거든? 오라버니?”
 “대.표.님.”
 “쳇. 그럴 때만 대표님이지. 큼큼··· 그럼 다음에 찾아뵙겠습니다. 대.표.님.”
 “그래, 수고해요 강 실장.”
 
 그 능청스런 대꾸에 그녀가 작게 키득거리고는 문을 열고 나섰다.
 
 ‘예~쓰!’
 
 문이 닫히고 보이지 않게 주먹을 불끈 쥔 그녀가 눈을 번뜩이며 자기가 맡은 부서로 향했다.
 
 ***
 
 1차 본선에서 통과한 이들은 이전과 달리 한 숙소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어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함께 생활하는 이들이 나를 보는 눈빛은 확실히 달라졌다.
 
 음악은 아름답지만, 그만큼 잔인하다.
 
 음악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도 음악을 하는 사람이 실력이 있으면 대접받고, 그렇지 못하면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그 어떤 외부 요인도.
 
 음악을 통해 전달받는 순수한 감동을 왜곡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실력이 있는 자에겐 아름다운 환호를.
 
 부족한 자에겐 철저한 냉대를 선물한다.
 
 음악은······ 만인에게 평등했고, 누구에게나 솔직했다.
 
 그래서 나는 음악이 좋았다.
 
 달라진 눈빛에 섞인 다양한 감정들이 여과 없이 전달되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라서 그런지 가슴에 칼을 품기는커녕 대놓고 질시의 기운을 뿜어댔다. 그게 아니라면 호의를 품고 다가오든지.
 
 바로 저 녀석처럼.
 
 예전에도 그랬지만, 각종 전자 기기를 다루는 일에 서툰 나는 내가 노래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조차 아직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게 같은 방을 배정받은 찬성이라는 이름의 소년 하나가 살갑게 다가온다.
 
 자꾸 실실거리면서 웃지 마라. 정든다.
 
 “야, 민호야. 대박 대박. 너 영상 완전~ 히트다. 히트”
 
 그가 주먹만 한 스마트폰을 들이밀며 영상 하나를 재생했다.
 
 ♪제발 그만해둬~♪
 
 턱.
 
 흘러나오던 영상은 내 손에 가려졌다.
 
 “어? 왜?”
 “관심 없다.”
 
 노래는 언제나 현재적이다.
 
 그 순간, 그 찰나의 순간을 통해 전해지는 교감이다. 그렇기에 과거의 기억은 그저 추억일 뿐.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배웠다.
 
 나는 내 뒤를 쫓는 시선을 무시한 채 욕실로 들어갔다.
 
 “후우~”
 
 여전히 거울에 비친 소년이 나를 반긴다.
 
 “만족하냐?”
 
 그 소년은 답이 없다.
 
 나는 피식 웃으며 거울에 서린 김을 손으로 닦아 냈다.
 
 “이제 어쩐다?”
 
 일단 갈 데가 없고, 수중에 단 한 푼도 없었기에 시키는 대로 숙소에 머물렀다. 배고픔과 노숙이 낯선 건 아니었지만, 굳이 자초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일단 당면한 상황은 어설프게나마 아는 노래를 부르며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난데없이 대중음악이라니.’
 
 노래는 듣는 이들의 반응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부르는 사람의 마음가짐이었다. 어디까지나 나는 클래식 보컬로서의 정통이라 할 수 있는 길을 걸어왔다.
 
 ‘결국 정체성 문제라는 건데···.’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나는 피식 웃으며 상념을 털어냈다.
 
 ‘어차피 이 몸 자체가 내가 아닌데 무슨 고민인 거냐. 어울리지 않게.’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해도, 몸도 다르고 삶의 자리도 다르다. 분명 내가 이전에 살아왔던 그 세상은 아니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 굳이 성악이라는 한 장르를 고집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보면 이것도 나름 기회인데···.’
 
 분명 그대로 죽는 줄 알았는데 다시 기회를 얻었다.
 
 물론 정상을 눈앞에 두고 이런 소년의 몸으로 돌아온 게 마냥 기쁘지는 않았지만.
 
 끝이 아니라 다른 시작이라는 게 중요했다.
 
 나는 거울에 비친 앳된 내 얼굴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녀석도 기분이 좋은지 함께 웃는다.
 
 ‘기회라면 제대로 잡아주지.’
 
 ***
 
 방 안 곳곳에는 각종 촬영장비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렇게 찍은 장면들을 편집해서 자연스러우면서도 재미있는 장면들을 뽑아내는 게 주요 목적.
 
 나는 방 한쪽 구석에 설치된 카메라를 흘깃 쳐다보고는 찬성이라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찬성아, 나 좀 도와줘야겠다.”
 “어? 뭐?”
 
 그가 귀에 꼽혀 있던 이어폰을 빼내며 묻는다.
 
 “좋은 노래 같은 거··· 내가 원하는 대로 골라서 들을 수 있는 방법이 좀 없을까? 장르는 상관없고.”
 “뭐?”
 
 그가 뭔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의 눈이 내 손에 들린 싸구려 3G폰에 잠시 머물 더니 피식 웃는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에 놓인 캐리어를 뒤적거린다.
 
 “아, 여기 있다.”
 
 그가 꺼내 든 건 조금 철 지난 스마트폰. 일명 에이 폰이라 불리는 그 기종이었다.
 
 “이번에 내가 최신 폰으로 바꾸면서 아직 처분 못 한 건데, 당분간 네가 써라. 와이파이 빵빵하게 터지니까 거기 망고에 접속해서 음악 검색하면 들을 수 있을 거야. 아이디 비번은 내가 저장해놓은 거 있으니까 걱정 없이~ 유남생? 오케이?”
 
 마지막에 가서는 알 수 없는 제스처를 취하며 내게 윙크를 하는데,
 
 “······.”
 
 나는 그냥 말없이 그의 손에서 기계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내 자리에 가서 이것저것 눌러보다가 다시 그 녀석에게 찾아갔다.
 
 “다시 설명 좀. 자.세.하.게”
 
 ***
 
 그 장면은 제법 코믹하게 편집돼서 예고편에 나갔다. 덕분에 나는 ‘신세대 유물’ 줄여서 ‘신물’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됐다.
 
 ‘너희들도 한 우물만 파면서 살아봐라 나처럼 안 되나?’
 
 나는 나직이 투덜거리며 이어폰을 귀에 꼽은 채로 노래들을 검색했다.
 
 그나마 내게도 친숙한 가수들은 꽤나 오래전 가수들이 대부분이었다. 성악이라는 분야에 몰입하기 전에 수녀님들이나 관계자들이 자주 듣던 음악들이 그런 종류여서 더 그런 건지도.
 
 ‘류지하, 김광선··· 그리고 전임권 정도인가?’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육제척인 나이는 어린데 막상 떠오른 가수는 어지간한 노친네 저리가라다.
 
 다행이라면 최근 들어 과거의 노래들을 재해석해내는 복고 열풍이 한참이라는 점이었다. 그 덕분에 내가 부른 전임권의 ‘제발’이라는 노래도 꽤나 괜찮게 먹힌 거였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나?’
 
 뭐, 꼭 이 자리가 아니어도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건 충분히 가능했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잘 깔린 판에 발을 디디게 된 건 여러모로 좋은 일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내 팔을 누가 툭툭 친다. 고개를 돌리니 찬성이가 밥 먹는 시늉을 하며 밑을 가리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참 좋구나. 밥도 알아서 차려주니 때 되면 가서 먹기만 해도 되고.
 
 나는 가볍게 몸을 튕겨 일어섰다. 확실히 젊어진 몸이라 그런지 모든 몸놀림이 가뿐하다. 계단을 내려서니 왁자지껄한 소리들이 들려온다.
 
 “어~ 민호다.”
 
 제일 먼저 나를 발견한 동갑내기(어디까지나 육체적 나이긴 하지만)인 제이가 반갑게 손을 흔든다.
 
 ‘교포2세라고 했었지?’
 
 아이들이 이것저것 잔뜩 차려진 식탁에 둘러 앉아 왁자지껄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걸 또 여러 사람들이 사방에 서서 작은 카메라들을 들고 찍고 있고.
 
 방송이란 거··· 생각보다 귀찮은 면이 많았다.
 
 “후~”
 
 나는 가볍게 숨을 내쉬며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제이가 의자를 손으로 탁탁 내리치며 눈웃음을 친다.
 
 어린 게 벌써부터 저러니··· 좀 더 크면 남자 여럿 울리겠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의 행동 하나 하나에 남자 출연자들의 눈이 빠르게 돌아간다.
 
 개중에는 나를 향해 적개심을 보이는 녀석까지 있었다.
 
 아서라, 나는 어린애한테 관심 없다.
 
 나는 또 다시 흘러나오는 한숨을 작게 흘리며 숟가락을 들었다.
 
 ‘맛있다.’
 
 음식은 간도 적당했고, 무척 맛이 좋았다.
 
 연주 때문에 호텔에 머물며 질리도록 먹었던 뷔페보다 더 술술 들어갔다. 고급 재료를 써서 만든 이름 모를 스튜보다 칼칼한 김치찌개 한 숟갈이 더 반가웠다.
 
 자연스럽게 만족스러운 웃음이 지어졌다.
 
 그렇게 한참 동안 식사에 열중하고 있다 보니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제이가 숟가락 끝을 입에 문 채 큰 눈을 껌뻑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 아니··· 너무 맛있게 먹어서.”
 “맛있잖아.”
 
 녀석의 얼굴에 홍조가 머물고, 주변 남자들의 불편한 시선이 좀 더 강하게 느껴진다.
 
 나는 어린애한테 관심 없다니까 그러네.
 
 그 말을 끝으로 식사에 열중하려는데 달라붙는 시선이 떨어질 줄 모른다.
 
 아무튼, 요즘 애들은···.
 
 내가 고개를 돌리자 제이가 나와 눈을 마주친 채로 묻는다.
 
 “다음 경연은 듀엣으로 해서 평가받는다는데··· 민호는 파트너 정했어?”
 “······.”
 
 그러고 보니 한 숙소에 몰아넣은 이유가 자연스럽게 교류하면서 음악적인 파트너쉽을 키우기 위해서라는··· 주최 측의 설명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잠시 멍해져 있자,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몸을 기울인다.
 
 “민호는 제이랑 하자. 응? 어때?”
 
 뭉클.
 
 팔에 와 닿는 익숙하지 않은 느낌에 나도 모르게 뒤로 조금 물러섰다. 얘는 어린애가 뭐가 이렇게 훌륭(?)한 건데?
 
 그러거나 말거나 제이는 먹이를 발견한 고양이처럼 눈을 빛내며 더 가까이 몸을 들이밀었다.
 
 “나랑 하는 거다? 응? 알았지?”
 
 당연히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리고, 덩달아 카메라들도 따라붙는다. 어색한 순간, 등줄기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중년의 남자에게 어린 여자의 저돌적인 육탄 공격은 너무나도 치명적이었다.
 
 “하, 할게. 한다고. 그러니까 좀 떨어져.”
 “헤헤~ 민호. 약속했다.”
 
 지켜보고 있던 남자 참가자들의 입에서 한숨 소리들이 새어 나오고.
 
 내 입에서 기어코 확답을 받아낸 그녀는 생글거리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여자는 요물이라더니, 그런 건 딱히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터득하나 보다.
 
 나는 달아오른 열을 좀 달랠 겸 물컵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 모습에 VJ들 옆에 서서 찍어야 할 것들을 지시하고 있던 조연출 성연아의 눈이 반짝거렸다.
 
 ***
 
 [어메이징 스타 K] 본선 예고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대중들의 반응은 제법 뜨거웠다.
 
 자신들이 응원하는 출연자들의 소소한 일상들이 제법 맛깔나게 편집돼서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나에게 들이대는 제이의 모습과 당황하는 내 모습이 교묘하게 편집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나마도 찬성이가 호들갑을 떨며 동영상을 보여줘서 알았지 그게 아니었으면 무슨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뻔했다.
 
 예전이야 클래식이라는 한 우물만 팠으니 그랬었다 치지만 대중음악을 해보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런 것들에 억지로라도 관심을 가져야 했다. 뭐든 처음이 어색하지 자꾸 접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법이니까.
 
 알고 보니 내가 처음 섰던 무대는 본선 진출자들을 대중들에게 정식으로 소개하는 정도의 보너스 스테이지 같은 거였다.
 
 ‘짜잔~ 이런 출연자들이 본선 경연을 시작합니다!’ 뭐 이런 정도의 홍보용 스테이지였다. 그러니 갑작스런 곡 변경 요구도 수용이 가능했던 거였고. 아무튼 나는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그리고 진짜는 이번 시즌부터 도입된 듀엣 무대부터였다. 제이가 자신이랑 같이하자고 했던 바로 그 경연.
 
 듀엣(Duet).
 
 혼자가 아닌 둘이서 함께 호흡을 맞추며 새로운 경지를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장르였다.
 
 물론, 이전에도 많이 경험했었지만··· 대중음악으로 듀엣을 해보는 건 나에게 있어서도 낯선 경험이었다.
 
 두 사람의 호흡에 따라 시너지 효과가 극대화될 수도 있고, 차라리 혼자 하는 게 더 나을 법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게 바로 듀엣이었다.
 
 “유제이라···.”
 
 나는 남다른 발육(?)을 자랑하던 맹랑한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재미있겠군.”
 
 ***
 
 경연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어느새 서로의 상대를 정한 본선 진출자들이 연습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화장실을 갈 때든지 아니면 밥을 먹을 때든지, 모두 자신의 상대와 찰싹 달라붙어서 연신 음을 맞춰보느라 바빴다.
 
 그 결과 내 곁에는 유제이라는 아이가 거의 하루 종일 거머리처럼 붙어 있었다.
 
 “민호! 이거 한번 들어 봐! 민호 목소리랑 잘 어울릴 것 같아.”
 
 그녀가 귀에 반강제로 꽂아 넣은 이어폰에서 묵직한 저음이 매력적인 가수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조금 거칠긴 하지만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멋진 목소리였다.
 
 “이거 누구?”
 
 내가 묻자마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동철이라고··· 인디 밴드 메인 싱어인데 한국 처음 왔을 때 언니 따라 홍대에 갔을 때 현장에서 녹음한 거야. 어때? 괜찮지?”
 
 딱 봐도 자작곡인거 같은데, 곡의 완성도는 조금 떨어졌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그 모자람을 충분히 메우고 남을 만한 매력이 있었다.
 
 이런 사람이 왜 여태 안 떴지?
 
 내 물음에 제이는 그들이 초반에 악덕 기획사에 속아서 계약서를 잘못 작성하는 바람에 꽤나 오랫동안 고생했다고 전해줬다.
 
 그녀의 설명을 통해 금세 그 이유를 깨달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발 담갔던 세계도 온갖 이권들이 개입해서 술수와 모략이 난무했는데, 하물며 이쪽 세계라고 다를까.
 
 그 상황에서 성공하려면 둘 중 하나가 있어야 했다. 가장 큰 힘을 가진 세력에 몸을 담던가, 아니면 그 모두를 뒤엎을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던가.
 
 나는 후자였다. 그래서 더욱더 처절하게 매달렸고, 결국 그 영광의 자리를 내 힘으로 따내고야 말았다.
 
 잠시지만 그때 섰던 무대에서의 감격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것도 추락이라면 추락인 건가? 아니면 새로운 기회인 걸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피식 웃었다.
 
 그냥 허무하게 죽어서 요절한 천재 음악가로 불리는 것보다는 새로운 기회를 얻는 게 더 낫겠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했으니까.’
 
 그런 내 표정의 변화가 생경했는지, 제이가 그 붉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좋네.”
 “그래? 그치? 근데 너무 모르는 노래라 그냥 부르기는 좀 그렇겠다···.”
 
 녀석은 뭔가 아쉽다는 듯 말을 늘이며 이어폰 줄을 배배 꼬아댔다.
 
 가만있어 보자. 아까 어색했던 부분을 이렇게, 저렇게 조금만 바꿔주면···.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른 악상을 놓칠 새라 노트를 펼치고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작곡의 기본인 화성학(和聲學)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과거 내가 인지하고 있던 내 모습과 무언가 많이 달랐다. 마치 머릿속에서 음이 범람하는 것만 같았다.
 
 처음 겪는 낯선 현상이었는데, 이에 대한 의구심보다 밀려오는 악상의 힘이 더 컸다. 지금 당장 적어 내려가지 않으면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두근, 두근.
 
 심장 고동이 적당한 미디움 템포를 이루고.
 
 ‘너의 등 뒤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 볼 때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스치듯 지나갔다.
 
 “흠~흠흠~”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런 그를 제이는 곁에서 말없이 지켜봤다. 뭔지는 잘 모르지만 왠지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뭐, 뭐야 지금? 설마. 처음 듣는 곡을 그 자리에서 편곡한다고?’
 
 그녀는 선이 고운 소년에게서 흘러나오는 허밍(Humming)에 저절로 빠져들었다. 가사는 없는데 마치 가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다 됐다!”
 
 완성된 악보를 가지고 그녀를 향해 돌아선 나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남는 피아노가 어디 있지?”
 “어? 어··· 어. 지하에···.”
 
 당황한 그녀의 대답을 듣자마자 나는 곧바로 지하로 향했다. 혼자 남은 제이는 이어폰 줄 대신 자신의 길고 부드러운 갈색 머리를 배배 꼬아가며 나직이 투덜거렸다.
 
 “쳇, 나도 같이 가자고 하면 어디 덧나나?”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곧바로 민호의 뒤를 따라 지하로 향했다. 왠지 모를 두근거림을 품에 안은 채로.
 
 “흠흠흠~”
 
 그녀에게서 조금 전과 같은 허밍 소리가 들려왔다.
 
 ***
 
 설명할 때 듣기는 했었는데 막상 내려와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어려진 몸에 적응 하는 것만 해도 꽤나 시간이 걸렸으니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육체에 정신이 맞춰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행동도 그렇고 말투도 조금씩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그 어색함과 동시에 느껴지는 자연스러움이라니.
 
 이런 이율배반적인 감정의 소용돌이가 소리를 흔들어 파도를 만들어냈다.
 
 이런 이질적이고도 상반된 몸의 반응에 적응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하로 내려와 보니 주최 측에서 지하에 제법 괜찮은 연습실들을 만들어 놨다. 아님 빌린 거려나. 아무튼, 나는 그중 비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피아노에 앉아 급하게 그린 선율 악보를 올려놓고 조금 전 들었던 악기들의 연주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악상이 마구 떠올랐다.
 
 내가 기억하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 그 묘한 위화감에 나도 모르게 멈칫거렸다.
 
 그런 나의 등을 처음과 달리 거칠게 밀려오는 음의 파도(音波)가 떠밀었다.
 
 ♪너의 등 뒤에 서서··· 말없이 돌아 서는 너의 모습을···♪
 
 어색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반주로 새로운 화음을 더하자 금세 세련된 선율이 더 돋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헤어지나요~ 이렇게 사랑하는데♪
 
 후렴구에 오자 여전히 그녀를 잊지 못하는 남자의 애절한 마음이 폭발하기 시작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그렇게 말해주면 안 되나요. 이렇게 사랑하는데···♪
 
 원래는 여기서 끝이지만 내가 듀엣용으로 다시 편곡했기에 그 절규에 이어 여성이 독백하듯이 읊조리는 부분이 나온다. 간주가 서서히 느려지고 스트링하듯 따라랑~
 
 피아노를 치고 있는 내 어깨에 닿는 손길이 느껴진다. 어느새 따라 내려온 제이가 내 노래와 반주를 들으며 노래에 젖어들고 있었던 것.
 
 그녀의 입이 천천히 열리고, 그 날숨에 맞춰 나는 건반을 두드린다.
 
 ♪더 이상 아파하지 않기를··· 나 때문에 아프지 않기를···♪
 
 악보에 휘갈긴 가사를 용케도 알아보고 내 선율에 따라 붙는다.
 
 역시···.
 
 심사위원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우승 후보다웠다. 게다가 그 타고난 음악적 센스는 어쩌면 나보다 더 나을지도.
 
 ♪이만 끝내기로 해요··· 걸어가던 그 길 그대로···♪
 ♪어떻게 헤어지나요··· 이렇게 사랑하는데···♪
 
 남자와 여자가 각기 다른 내용으로 서로를 향한 사랑을 표현한다. 어느새 곡은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고 그녀의 목소리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이만 끝내기로 해요···♪
 
 ♪그렇게 말해주면 안 되나요··· 이렇게 사랑하는데···♪
 ♪더 이상 아파하지 않기를··· 나 때문에 아프지 않기를···♪
 
 연습실 안에 짙은 슬픔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헤어지는 연인의 아픔에 취한 이들은 입을 열지 못했다. 결국 몰래 따라 들어와 촬영하고 있던 VJ가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푸아~”
 
 그제야 여운에서 벗어난 제이가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친다.
 
 “아!”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손을 들어 눈가를 훔친다. 뒤늦게 부끄러움이 찾아온 듯 달아오른 얼굴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열기를 가라앉히느라 바쁘다.
 
 “하아~”
 
 억지로 숨을 참던 VJ의 목울대가 출렁대고,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을 돌리자 눈만 동그랗게 뜬 채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 제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거로 하자.”
 “···으··· 응.”
 
 두 볼이 붉게 변한 그녀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본선 첫 번째 경연.
 
 듀엣 미션의 곡이 정해졌다.
 
 ***
 
 방송국 편집실.
 
 VJ가 자신의 메모리칩을 넘기며 연신 혀를 내둘렀다.
 
 “아~ 진짜 이번에 대박이라니까요 강 PD님.”
 “으이그, 설레발 좀 작작 하라니까 그러네.”
 “아~ 진짜 거기서 직접 보셨어야 하는데. 그냥 막~ 소름이 쫙쫙 돋고. 머리가 쭈뼛거리면서 전기가 쫘르르 흐르는데~ 아무튼 대박입니다 이번 시즌. 얘네 아주 물건이에요.”
 “흐응~ 얼마나 좋은 장면을 찍었길래 저 호들갑일까 몰라···.”
 
 편집 담당인 강 PD는 신입 VJ의 감탄을 한 귀로 흘리며 헤드셋을 착용했다. 그러고는 능숙한 손길로 화면을 조작했다.
 
 유제이가 강민호의 귀에 이어폰을 꽂아주는 달달한 장면이 스쳐 지나가고, 그 모습에 강 PD의 입꼬리가 절로 말려 올라갔다.
 
 ‘얘네는 뭐··· 같이만 있어도 그림이 나오네.’
 
 그런 사람들이 있다. 서로가 서로를 빛내주는 좋은 파트너들. 가끔 경연 프로그램에 그런 사람들이 나와서 결승전까지 함께 올라가곤 한다. 그러면 당연히 시청률이 고공 행진을 하는 건 정해진 수순.
 
 메인 PD도 이 두 사람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 같긴 한데··· 글쎄다. 과연 저 호흡이 언제까지나 가줄는지.
 
 조금 화면을 넘기자 뭔가를 중얼거리던 민호가 악보를 펼치고 무언가를 마구 적는 모습이 나온다.
 
 그 순간 그녀의 예리한 촉에 뭔가가 감지됐다.
 
 ‘뭐야 저거? 설마 즉흥적으로 그 자리에서 편곡한다고?’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쫙 돋았다.
 
 그녀의 손길이 바빠진다.
 
 민호가 지하로 내려가는 장면이 이어지고 멍하니 있던 제이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그를 따라 간다. 카메라가 자연스럽게 그 뒤를 쫓고.
 
 피아노에 앉아 있는 민호의 모습.
 
 제법 그럴싸하다.
 
 뭔가 그림이 된달··· 까?
 
 꽤나 오랫동안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던 이들에게서나 느껴지는 익숙함이 그리고 자연스러움이 그에게서 풍겨졌다. 비록 화면이지만 그 정도쯤은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부드럽고 긴 손가락이 건반 위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의 입이 천천히 열리고 부드럽고 묵직한 저음이 헤드폰을 통해 그녀에게 흘러들어온다.
 
 ♪너의 등 뒤에 서서··· 말없이 돌아 서는 너의 모습을···♪
 
 저릿.
 
 첫 소절을 들었을 뿐인데도 가슴이 욱신거렸다.
 
 자연스럽게 오랫동안 사랑했던 이전 연인과의 이별 순간이 떠올랐다.
 
 ♪어떻게 헤어지나요~ 이렇게 사랑하는데♪
 
 오싹.
 
 헤어지기를 거부하는 남자의 절규. 아직 그대를 사랑한다고 매달리는 그의 부르짖음에 소름이 돋아났다. 눈가에 가득 고인 눈물로 인해 화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그렇게 말해주면 안 되나요. 이렇게 사랑하는데···♪
 
 눈앞에 울고 있는 남자를 향해 괜찮다고, 울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대박이었다.
 
 VJ가 호들갑을 떨어댈 정도로 덜덜보이였던 강민호의 변화는 놀라웠다.
 
 그런데 영상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가슴속에 이어지는 여운을 잔잔하게 이어 나가는 간주가 끝나고, 피아노 뒤에 서있던 유제이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더 이상 아파하지 않기를···♪
 
 “흑···.”
 
 그녀의 담담하면서도 호소력 짙은 목소리에 기어이 강 PD의 입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한 손으로 급히 입을 막아보지만, 한번 터진 감정의 둑은 닫힐 줄을 몰랐다.
 
 ♪이만 끝내기로 해요··· 걸어가던 그 길 그대로···♪
 ♪어떻게 헤어지나요··· 이렇게 사랑하는데···♪
 
 서로 다른 말을 동시에 하며 가슴으로 울고 있는 두 남녀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들의 그 절절한 사랑이 가슴속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이렇게 사랑하는데···♪
 ♪나 때문에 아프지 않기를···♪
 
 두 사람의 마지막 노래가 끝나고, 그녀는 키보드에 얼굴을 파묻은 채 감정을 추슬렀다.
 
 “하아~”
 
 어느덧 방송국 생활 3년 차.
 
 볼 꼴, 못 볼 꼴 다 보면서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녀의 가슴이 아주 오랜만에 소녀처럼 콩콩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형식아.”
 “네?”
 
 그녀가 곁에 서있던 VJ를 부르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아직 눈물 자국이 채 마르지 않은 얼굴로 환하게 웃는다.
 
 “짜식! 잘~했다! 이 누나가 소주에 삼겹살 쏜다!”
 “오오오오!!”
 
 물개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형식과 그런 그의 등을 시원하게 팡팡 두드리는 강 PD의 모습이 다음 방송의 대박을 예고했다.
 
 ***
 
 VJ가 찍어온 화면을 센스 있게 편집한 강 PD가 메인 PD인 박명환에게 보여줬다. 그는 연신 엄지를 추켜세우며 대박을 외쳐댔고, 그녀가 다시 방에서 나올 때 그녀의 손에는 흰 봉투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당연히 그 두 사람의 영상이 본 경연에 앞선 예고편으로 방송에 나갔고, 예상했던 것처럼 사람들의 반응은 무척이나 뜨거웠다.
 
 헐, 대박. 저거 연출 아님? 진짜라면 완전 대to the박!
 완전 본방 사수각임. 나 야자 쨌음.
 우리 민호 님 드디어 빛을 보는 군요. 전 처음부터 굳게 믿었습니다.
 └ 님 뭐임? 언제부터 우리 민호 님? 그 전에 방송에 나오기나 했음?
 └ 네, 잠깐씩이지만 나왔습니다. 여기 증거 영상 링크 올려요~
 └ 강민호빠 등장이요!
 └ 즐~!
 저거 다 짜고 치는 고스톱~ 근데 너무 궁금하다! 못 먹어도 고우~
 이야~ 둘이 진짜 사귀는 줄. 대박 예감!
 이거 본방 시청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시는 분?
 내가 부산 사는 김대운이다!
 김대운이 누구임?
 헉, 설마 그 김대운?
 잡설 금지! 본방 사수!
 
 홍보영상을 최대한 활용해 시청자의 호기심을 극대화시키는데 성공한 [어메이징 스타 K] 연출팀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드디어 예정됐던 녹화일이 다가왔다.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폭주하는 요청으로 인해 이번 본선 녹화에는 이례적으로 시청자들을 100분씩 추첨해서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덕분에 무관심했던 다른 이들의 관심까지 높아지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어메이징 스타 K]
 
 화려한 로고가 화면을 채우고, 익숙한 아나운서의 얼굴이 나타났다.
 
 “자! 그토록 기다려왔던 어메이징 스타 K의 본선 1라운드가 드디어 시작됐습니다. 이번 라운드는 특이하게 듀엣 형식으로 치러지는데요, 먼저 듀엣이 정해지는 장면부터 감상하시겠습니다.”
 
 그의 능숙한 진행에 이어 자연스럽게 서로를 알아가며 파트너를 고르는 숙소의 장면들이 이어졌다. 원래 본선 경연자의 숫자는 총 13명이었는데, 이번 듀엣 미션을 위해 한 명을 패자부활전의 형식으로 해서 채워 넣었다.
 
 그렇게 탄생한 듀엣 팀이 총 7팀.
 
 14명의 재능 넘치는 경연 참가자들이 대기실에서 자신들의 순서를 기다리며 마무리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강민호&유제이]
 
 두 사람의 이름이 붙어 있는 방 안.
 
 볼을 한껏 빵빵하게 부풀린 제이가 숨을 토해내며 말한다.
 
 “우리 더 연습 안 해도 돼?”
 “어.”
 “아~ 왜~에~~! 하자~~아~ 응? 응? 연습하자아~”
 
 그녀가 콧소리 가득한 목소리로 졸라대며 내게 바짝 다가왔다. 나는 애교 섞인 몸짓에 따라 좌우로 흔들거리는 훌륭한(?) 가슴을 무심코 쳐다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고개를 돌렸다.
 
 아서라. 쟤는 미성년자다.
 
 그동안 듀엣 미션을 위해 거의 붙어 살다시피 했더니, 이제는 앞뒤 안 가리고 마구 들이댄다.
 
 “안 돼.”
 “아~ 왜에~!”
 “너 또 울 거잖아. 그럼 목소리 잠길 거고, 그러면 당연히 무대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으니까.”
 “으으으···.”
 
 분하다는 듯이 몸을 부르르 떠는 제이였지만, 나의 말에 딱히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번 연습할 때마다 눈물범벅이 돼서 각 티슈 한 통을 금방 다 써버릴 정도였으니까.
 
 나는 혼자 생각에 빠져드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생각도 하지 마.”
 “아~ 진짜!”
 
 그녀가 무릎위에 올려놓았던 쿠션을 집어 던진다.
 
 타고난 천재.
 
 음악을 위해 이 땅에 신이 내려준 천사가 있다면 저런 재능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뛰어난 아이.
 
 그게 내가 내린 유제이라는 아이에 대한 평가였다.
 
 미친 듯이 노력해서 유럽이라는 클래식의 본고장에 진출했던 나다.
 
 동양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무서우리만큼 깊숙이 박혀 있어서 주역으로 발탁되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는 더 연습했어야 했다.
 
 그런 곳에서 경쟁하며 부딪히다 보니 신의 은총을 한 몸에 다 받은 것처럼 뛰어난 음악가들을 가까이서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그것도 꽤나 빈번하게.
 
 타고난 재능이 차고 넘치는 이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았다.
 
 인류 전체의 숫자에 비하면 그리 많은 수는 아니겠지만,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보면 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지던지.
 
 다행히 나는 그들이 따라 올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인 음색을 타고 났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나 또한 타고난 재능을 가진 한 사람의 음악인이었던 것.
 
 그런 내 눈에도 저 아이는 특별했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내가 언제 그렇게 작곡, 편곡의 능력이 뛰어났었는지 그건 또 하나의 미스터리였지만, 그녀는 그렇게 앞서가는 내 뒤를 너무나도 손쉽게 따라왔다.
 
 마치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그녀와 노래를 맞추며 몸에 소름이 돋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넘치는 감정에 휘말려 내 자신의 페이스를 잃어버린 적도 있었다.
 
 30여 년을 음악에 투자했던 내가··· 저 어린 소녀에게 말이다.
 
 펑펑 울 거라서 연습하지 않는 거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건 내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두근, 두근.
 
 가슴이 묘하게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러면서도 기분 좋은 듯이 두근거렸다.
 
 투란도트의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오르기 전에도 지금처럼 꽤나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 찾아왔었다.
 
 문이 열리며 조연출이 우리의 이름을 부른다.
 
 “강민호 씨, 유제이 씨 준비하세요.”
 
 나는 가볍게 얼굴을 쓸어내리며 각오를 다졌다.
 
 ‘무대에서는 지지 않는다, 꼬맹아.’
 
 그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껏 상기된 얼굴로 다가온 그녀가 내 팔짱을 낀다.
 
 뭉클.
 
 굳게 다진 각오에 실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 이건 솔직히 좀 반칙이다.
 
 ***
 
 ♪철부지 어린 소녀와~ 긴 여행을 떠나는 일~ 햇살이 녹은 거리를 선물해 주고 싶은 일~♪
 
 무대 뒤편 대기 장소에 도착하자 묵직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남자의 목소리가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누구지?’
 
 살짝 몸을 기울여 무대를 쳐다보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찬성?’
 
 언제나 어색한 몸짓을 해대며 까불거리던 내 룸메이트가 노래에 완전히 빠져든 진중한 얼굴로 자신의 파트너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런 훌륭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나?
 
 하는 짓을 보면 꼭 힙합이나 랩을 할 것 같더니.
 
 같은 걸 느꼈는지 제이가 그쪽을 흘끔 쳐다보고는 말했다.
 
 “역시 찬성이는 노래할 때가 제일 멋있는 거 같애.”
 “동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런데 어째··· 그 파트너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우연히 스친 눈빛에~ 내 맘에 별이 뜨는 말~ 단 한 번 스친 손끝에~ 심장이 서버리는 말♪
 
 찬성의 노랫소리에 압도당한 건지, 아니면 무대라는 곳이 주는 그 설명할 수 없는 중압감에 눌린 건진 모르지만.
 
 찬성의 파트너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타깝구나.’
 
 실제로 ‘연습실 대가(大家)’라는 말이 있다.
 
 연습실에서 노래할 때는 기가 막힌데 무대에만 올라가면 죽을 쑤는 부류를 가리키는 말이다.
 
 실제로 꽤나 많은 음악인들이 실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왜냐하면 그 벽은 무대에 설 때 가장 크고 무섭게 다가오는 법이었으니까.
 
 그렇기에 프로가 된 이들은 하나 같이 그 중압감을 이겨낸 노련한 전사와도 같았다.
 
 물론, 오랜 노력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도 있겠지만··· 여긴 그렇게 너그러운 자리가 아니었다.
 
 결국 자신이 평소 기량의 반에 반도 안 되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걸 안 그녀는 무리하다가 자멸하고 말았다.
 
 ♪내 마음 하난 변치 않을 쑤욱~! 있다고♪
 
 결정적인 순간에 찾아온 음 이탈.
 
 속칭 삑사리.
 
 세 심사위원의 얼굴이 굳어지고 가운데 제일 왼쪽에 앉아 있던 이상철이 마이크를 들었다.
 
 “거기까지 들을게요.”
 
 찬성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서리고, 그 파트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한다.
 
 “강지윤 씨?”
 “어머, 많이 속상했나 보다. 어떻게 해.”
 “사실 이 무대가 많이 떨리긴 해. 저 어린애들이 얼마나 부담됐겠어. 혼자도 아니고 둘이 잘해야 되니까.”
 
 이상철의 뒤를 이어 백지현과 윤상신이 말을 이어 받으며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경연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방송을 위한 녹화였으니까.
 
 어린아이가 실수해서 흐느껴 우는 걸 즐겁게 쳐다볼 시청자는 없었다. 그렇기에 세 심사위원이 각자 맡겨진 역할을 통해 그 긴장감을 누그러뜨리고 그 안에서 재미와 감동을 찾아내는 것일 테고.
 
 자연스럽게 에이전트들이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찬성이가 평소답지 않은 의젓한 모습으로 파트너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를 건넨다.
 
 입모양을 보아하니 연신 ‘괜찮아, 잘했어.’를 반복하고 있었다.
 
 꽤나 훈훈한 장면이었지만, 당사자에게는···.
 
 ‘지금 이 순간이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울 테지.’
 
 꿈을 위해서긴 했지만, 한창 음악이 주는 기쁨과 재미를 느껴야 할 어린아이들이 차갑기 그지없는 경쟁에 내몰리는 게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이 몸의 원래 주인이었던 녀석도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거겠지만.
 
 그 이후 이어진 각 심사위원의 평가를 끝으로 두 사람이 무대에서 내려왔다.
 
 누가 합격하고 누가 불합격했는지는 나중에 한꺼번에 통보한다고 했다.
 
 방송이 사람 두 번 죽이는구나.
 
 어차피 떨어진 사람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잘 알고 있을 텐데. 집에도 못 가고 오랜 시간 기다렸다가 탈락 선고를 들어야 했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다 닦지도 못한 채 내 곁을 스쳐가는 여자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속으로 응원했다.
 
 포기 하지 않으면 언젠가 길은 열리니까.
 
 “강민호 씨, 유제이 씨 무대로 올라가세요.”
 
 조연출의 지시에 따라 무대 위로 올라가며 나는 피식 웃었다.
 
 많이 컸구나. 무대를 앞두고 다른 사람 걱정이나 하고 있는 걸 보니.
 
 ***
 
 두 사람이 조연출의 지시에 따라 무대에 오르자 장내의 공기가 달라졌다.
 
 느슨해졌던 분위기가 바짝 조여지고, 에이전트들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목을 축인 심사위원들도 기대가 가득 찬 얼굴로 무대를 바라본다.
 
 나는 무대에 붙어 있는 작은 표시에 맞게 자리를 잡고는 전면을 천천히 훑어나갔다.
 
 중앙에 자리한 세 명의 심사위원과 좌측과 우측에 자리한 각종 관계자들. 그리고 여러 대의 카메라와 방송 스태프들. 마지막으로 내 좌측에 자리하고 있는 밴드들까지.
 
 눈이 마주치자 밴드 마스터가 반갑게 눈인사를 건네 온다.
 
 나도 마주 웃어주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꽤나 잘 맞춰줬었는데 고맙다는 말도 못했다. 이따 찾아가서 인사 한번 해야겠다.
 
 그렇게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니 묘하게 마음이 차분해진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하고, 그들의 눈에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차오른다.
 
 턱시도와 이브닝드레스로 한껏 멋을 낸 관객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아.’
 
 이 느낌 때문에 무대라는. 어찌 보면 마약과도 같은 그곳을 벗어날 수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감성에 젖어 있던 나를 바보 같은 웃음소리가 깨웠다.
 
 “으히히히. 안녕하세요, 언니.”
 “제이도 안녕? 그동안 잘 지냈어?”
 “우으으으. 뭐~ 대충?”
 
 몸을 부르르 떠는 그 모습에 윤상신이 빵 터졌다.
 
 “크크크크, 뭐야 그 반응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한 매력.
 
 그게 대중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는 유제이라는 소녀가 가진 장점(?)이었다.
 
 “하하하하, 유제이 양은 하나도 떨리지 않나 봐요?”
 
 이상철 심사위원의 말에 그녀가 눈웃음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지금 빨리 노래하고 싶어 죽겠거든요. 민호가 연습도 못 하게 해가지고 히잉~”
 
 쏟아지는 그녀의 애교에 여기저기서 웃음꽃이 핀다. 그 대부분이 아저씨들이다. 정면에서 그녀를 잡고 있는 카메라 감독은··· 아주 좋아 죽는구나.
 
 “오~ 벌써 민호랑 제이랑 친해진 거야?”
 
 윤상신이 개구쟁이 같은 얼굴로 몸을 앞으로 기울여가며 묻는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백지현이 못 말린다며 손사래를 친다.
 
 이 모든 게 촬영 전의 분위기 전환인 것 같지만. 아까부터 카메라에는 붉은색 불이 들어와 있었다.
 
 여기에 편집을 통해 작은 효과들을 더하면···.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노래 잘하면서도 엉뚱한 소녀. 유제이가 탄생하는 거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런 나를 처음부터 쭉 지켜보고 있었던 여인. 백지현이 마이크를 들었다.
 
 “안녕, 민호? 오늘도 떨지 않네? 대체 그동안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거지?”
 
 말을 건네는 그녀의 얼굴엔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번 무대 하나로 그간 그녀에게 쏟아지던 의혹들이 단숨에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뿐인가? 모두가 포기한 원석을 유일하게 거머쥔 심사위원으로서 그 안목에 대해 온갖 칭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훗날 제작자로 변신을 꿈꾸고 있는 그녀로서는 이 상황이 무척이나 달가울 수밖에. 마음 같아서는 저 소년을 끌어안고 볼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녀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성장했나 보죠 뭐.”
 
 내 대답에 여기저기에서 작은 웃음소리들이 들려온다.
 
 최근 그의 변화 전과 변화 후의 모습을 담은 영상들이 뷰튜브에 올라와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만큼 지난번 무대가 전해 준 감동의 여운이 진했던 것.
 
 카메라 마사지를 받으면 여배우들은 더 예뻐지고, 남자 배우들은 더 세련돼진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가수는?
 
 변한다. 그 누구보다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스타로.
 
 그의 대답에 작게 웃은 방송 관계자들은 직감했다.
 
 머지않아 또 하나의 별이 탄생하게 될 거라는 것을.
 
 “후훗, 소년에서 갑자기 남자로 느껴지네. 그렇게 이 누나 마음 흔들어 놓으면 반칙이지.”
 
 눈을 샐쭉하게 뜨고 웃는 그녀의 모습에 윤상신이 경찰 부르라며 한바탕 난리를 부렸다. 그렇게 모두가 한바탕 크게 웃고.
 
 담당 PD의 손짓에 이상철이 분위기를 정리한다.
 
 “자, 그럼 두 사람이 준비한 노래를 들어볼까요? 어디보자 제목이··· 평행선(平行線)? 이거 맞죠?”
 
 그가 선글라스를 치켜 올리며 무대를 쳐다보자 곁에 있던 윤상신이 말을 받았다.
 
 “이거 최근에 인디 쪽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노래예요. 그 가수가 누구였더라?”
 
 그의 물음에 백지현이 대꾸한다.
 
 “하동철 아냐?”
 “어, 맞다 하동철. 노래가 전반부는 좋은데 마무리가 좀 어정쩡해서 내가 기억하고 있었거든.”
 “인디 밴드 싱어가 만든 자작곡이라··· 본선 듀엣 경연곡으로 부르기엔 좀 모자라지 않나요?”
 
 이상철의 말에 장내에 앉아 있던 관계자들의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그런데 서류를 읽어가던 그가 흥미로운 눈으로 선글라스를 들어올린다.
 
 “민호 군이 곡을 편곡했어요? 그것도 뒷부분은 아예 새로 썼네?”
 “오~ 그러고 보니 편곡자 이름이 민호네?”
 “정말?”
 
 그제야 부랴부랴 서류를 내려다보는 심사위원들.
 
 심사의 현장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동시에 녹화 방송이지만 생방송 같은 재미를 주기 위해 담당 PD는 심사에 관련된 서류들을 심사위원들에게 미리 제공하지 않았다.
 
 덕분에 녹화 방송이지만 시청자들은 가끔 그게 생방송이라고 착각하기도 했다.
 
 “제이 양은 민호 군이 한 편곡이 마음에 들었어요?”
 “네에~! 아주 판톼스틱~ 했다구요.”
 
 그녀의 입에서 나온 오리지널 본토 발음과 자연스런 제스쳐에 다시 한번 심사위원들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오호~ 제이가 그렇게까지 얘기하니까 기대되는데?”
 “그러게, 민호가 그런 능력이 있는지 몰랐는걸.”
 “뭐, 확실한 건 들어보면 되는 거니까. 준비됐으면 시작하죠.”
 
 이상철의 마무리 멘트에 담당 PD의 손이 크게 한 바퀴 돌고, 준비를 마친 밴드 마스터가 나를 보며 신호를 기다린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나는 제이와 눈을 마주보며 노래에 앞서 마음을 정돈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점차 이별을 준비하는 연인으로 화했다.
 
 ***
 
 두 사람이 숨을 고르는 사이 윤상신이 옆자리에 앉은 백지현을 팔꿈치로 툭 친다.
 
 “야, 쟤네 뭔가 일낼 분위긴데?”
 “나도 편곡은 솔직히 예상 못 했어.”
 “그러게, 노래도 잘하고 곡도 만들 줄 알면 아주 대박인 건데. 뭐 두고 봐야지.”
 
 곡을 만들 줄 아는 것과 잘 팔리는 곡을 만들어내는 건 전혀 의미가 달랐으니까.
 
 국내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인 윤상신의 눈이 반짝였다.
 
 신디사이저 특유의 소리로 만들어진 화음이 낮게 깔리고 부드러운 어쿠스틱 기타 솔로가 그 위를 채워 나간다.
 
 나는 그 기타 전주가 끝나고 찾아온 잠시의 정적을 깨며 노래를 시작했다.
 
 ♪기억하니? 우리 함께 걷던 그 길. 처음 잡았던 그 손♪
 
 자연스럽게 내민 내 손을 그녀가 맞잡는다. 따뜻하면서 부드러운 작은 손. 그 손에서 전해진 온기에 마음까지 포근해진다.
 
 ♪서로 다른 길을 걷던 우리가. 언제부턴가 같은 곳을 향해♪
 
 장내에 지독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숨 쉬는 소리조차 방해될까봐 모두 숨을 삼켰다.
 
 그렇게 나는 그녀와 함께 시작했던 사랑의 순간을 떠올렸다.
 
 ♪매일같이··· 혼자일 거라 생각했어.♪
 
 내 추억의 주인공인 그녀가 숨을 토해내듯 그렇게 자연스레 노래를 읊조린다.
 
 오싹.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담담하게 흘러나오는 그녀의 독백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내가 너를 만나. 우리가 되고. 그렇게 하나~가 되고♪
 
 그렇게 맞잡은 두 손이 우리가 하나가 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이 되었다.
 
 모두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걸렸다. 누구에게나 있는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들. 그 처음의 떨림, 그 미소. 그 따뜻함.
 
 그렇게 장내에 훈훈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렇게 나와 그녀가 주고받듯이 흘러간 노래가 끝나며 간주부가 시작됐다.
 
 투둥.
 
 스틱의 가벼운 놀림이 깔끔한 울림을 만들어냈다.
 
 본격적으로 드럼 비트가 들어오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어진 일렉 기타의 날카로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애절한 솔로 연주가 이전의 달콤했던 분위기를 단숨에 날려버렸다.
 
 꽈악.
 
 두 사람의 무대를 지켜보고 있던 강희수 실장이 무릎 위에 놓인 양 주먹에 잔뜩 힘을 주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두 사람의 노래에 끌려가고 있었던 것.
 
 ♪어떻게 헤어지나요~ 이렇게 사랑하는데♪
 
 욱씬.
 
 노랫소리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녀의 눈앞에 사랑하는데, 이렇게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야 하냐고. 그렇게 독백하며 속으로 울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오디션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을 정도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절규는 애달팠다. 가까이 가서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그의 숨 막히게 만들던 노랫말이 끝났다. 그렇게 한숨 돌리는가 싶은 순간, 그런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의 입술이 열렸다.
 
 ♪더 이상 아파하지 않기를···♪
 
 “흑.”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타 소속사 관계자의 입에서 흐느끼는 듯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 때문에 아프지 않기를···♪
 
 저렇게 담담히 노래하는데 어째서 슬퍼 보이는 걸까?
 
 이미 둘의 이별은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여자가 홀로 남게 될 남자를 바라본다.
 
 그녀를 마주 보는 남자는 분명 노래하고 있지 않은데 그 아픈 속마음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녀의 독백을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남자가 마이크를 들어올렸다.
 
 ♪이만 끝내기로 해요··· 걸어가던 그 길 그대로···♪
 ♪어떻게 헤어지나요··· 이렇게 사랑하는데···♪
 
 각자 다른 내용의 이야기를 동시에 주고받는데 이상하게도 전해지는 건 더없이 절절한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였다.
 
 “어떡해···.”
 
 누군가의 입에서 안타까운 탄식 소리가 새어 나오고, 심사위원 세 사람의 얼굴이 점차 변해갔다. 심사위원에서 순수한 음악인으로.
 
 둥둥둥둥 둥둥. 콰칭.
 
 점점 고조되던 드럼이 격하게 선율을 뒤흔들고
 
 쫘좌좌좡.
 
 잡아 뜯을 것처럼 거칠게 연주되는 일렉 기타의 소리가 그 선율 위에 처절함을 더했다.
 
 메인과 세컨 건반이 서로 주고받으며 풍성한 하모니를 만들어내더니 두 사람의 애절한 절규를 그 위로 부드럽게 받아냈다.
 
 ♪이렇게 사랑하는데···♪
 ♪나 때문에 아프지 않기를···♪
 
 미련이 가득 담긴 남자의 나지막한 한숨을 마지막으로 노래가 끝났다.
 
 “······.”
 
 긴 정적.
 
 생방송이었다면 방송 사고라고 여길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스튜디오 안에 정적이 흘렀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FD가 정신없이 손을 돌린다.
 
 “와아~”
 
 짝짝짝짝.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탄성이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무대를 보고 있던 윤상신이 마이크를 들었다.
 
 “와~ 이건 뭐···.”
 
 한참을 멍한 얼굴로 감탄만 하던 그가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 말을 이었다.
 
 “정말이지. 어린 친구 둘이 만들어낸 무대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훌륭한 무대였습니다.”
 “훌쩍, 훌쩍. 정말 감동적인 무대였어요. 나 정말 이렇게 무방비 상태로 울어보긴 처음이에요. 흐잉~”
 
 그의 옆에서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던 백지현이 티슈로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선글라스에 가려져 잘 보이진 않았지만 어지간해서는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기로 유명한 이상철마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코까지 빨개진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선글라스를 벗어 티슈로 눈가를 훔친 뒤 서둘러 이를 다시 썼다.
 
 “큼큼··· 아주 감동적인 무대였습니다. 이번 시즌은 참가자들의 수준이 무척 높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는 서둘러 옆에 앉아 있는 다른 심사위원들을 향해 바통을 넘겼다.
 
 “아···! 그러게 말입니다. 솔직히 저도 매달 새 곡을 써내려고 노력하면서 다양한 신인들하고 작업을 하고 있긴 하지만, 저 정도로 감각적이면서도 세련된 선율을 만들어낼 자신은 없네요. 정말이지 우리 민호 군 떨어뜨렸으면 어쩔 뻔했어요. 지현 씨가 우리를 살렸네요. 정말이지 그때의 와일드카드는 신의 한 수였던 거 같습니다.”
 
 대표적인 히트 작곡가이자 동시에 완숙한 가수인 그의 발언에 장내가 술렁거렸다. 그의 말 한마디에 저 소년의 능력이 비단 노래뿐만 아니라 작곡에까지 뻗어 있음이 인정된 것. 그것도 윤상신 그가 스스로가 인정할 만큼 높은 수준으로.
 
 <『기적을 노래하다』 1-2권에 계속>

댓글(6)

포히나    
..? 대기실에서 스탭이 부르는 소리에 깬 거 아니었나.. 이 녀석이 극단적인 선택 했다는 게 뭔 소린지;;
2018.07.14 00:44
Yh21    
몇 부분이 짤려 나간것 마냥 이해가 안되네요
2019.02.25 04:20
좋아좋아요    
홀릭 그의 직장성공기는 읽지마슈.. 재미하나도 없어서 댓글 달려고 했더니 막아놨슈..
2019.09.09 20:10
깽깽이풀    
가슴 강조는 왜 계속하는지 졸라 불쾌함 정신은 중년인데 미자애 그렇게 본다는거잖아
2019.09.22 22:44
갱상도촌놈    
세일 들어와서 6권 초반까지 읽다가 포기 진짜 정신 나간 이야기 전개 뜬금 연애라인 뜬금 배후세력 뜬금 해외진출
2021.07.23 18:03
스케쥴    
여캐 진짜... 대체 이렇게 짜증만 유발 할 거면 왜 여캐 등장시키는지 모르겠어요. 안나오는게 더 나은데...
2021.08.17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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