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회귀군주(종료230417)

회귀군주 1화

2018.03.21 조회 5,579 추천 54


 1화 프롤로그
 
 
 레스톤 제국.
 대륙에 존재하는 다섯 왕국을 홀로 찍어 누르고 최강의 나라로 군림하는 곳.
 시작은 이러했다.
 왕국이었던 시절 우연히 발견하게 된 고대의 유적, 크기는 작았으나 실상 다른 곳에 위치한 거대 유적들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안내도였다.
 레스톤 이 유적들에서 참으로 많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을 초인으로 만들어주는 오러 연공법, 신마저 갈라버린다는 전설 속의 마법검, 귀하기 때문에 보물의 기준이 된다는 금과 은이 산처럼 쌓인 아공간.
 어찌 이걸 가지고도 왕국에 만족할 수 있으랴?
 레스톤은 제국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압도적인 무력! 압도적으로 많은 보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금력!
 순식간에 이웃 국가 두 곳을 멸망의 길로 인도한 레스톤은 제국으로 승격해 그 이름을 대륙을 공포로 떨쳐 울리고 있었다.
 이렇게 레스톤이 제국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름조차 거론되지 않은 어떤 암살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름 없는 암살대, 그저 그렇게 불렸던 자들 중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깜깜한 감옥에 널브러진 신체.
 사형 집행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도주에 실패한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사지의 힘줄이 모조리 잘렸고 무거운 쇠구슬이 달린 수갑과 족갑은 걷는 것마저 힘겹게 만들었다.
 ‘개 같은 자식들.’
 놈들은 우릴 보고 개에 비유했으나 놈들이 하는 짓이야말로 거기에 가깝지 않나 싶다.
 실컷 이용해먹고 죽이다니, 약속된 부귀영화가 역모죄였더냐?
 살심이 끓어올랐으나 이내 허탈해졌다.
 곧 사형이 집행될 거다. 암살대의 마지막 일원이니만큼 살려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겠지.
 추억이랄 것도 없지만 머릿속에선 과거의 기억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고 있었다.
 
 10살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은 삶을 살았었다. 그때까지는 어머니도 살아계셨고 몰락한 귀족가문이지만 다들 귀여워해줘서 행복했었다.
 기억이 흐릿한 걸 보면 특별히 힘들거나 신났던 일은 없었던 듯,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좋은 한때를 살았었던 거겠지.
 어머니가 그립다.
 
 11살의 봄.
 새어머니가 들어오셨다.
 당시 아버지는 날 위해서라고 하셨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오히려 독이 된 선택이었다.
 얼마간은 새어머니도 날 자기 친자식처럼 대해주셨다. 간간히 느껴지는 이상한 시선에 가까이하길 꺼렸었지만 그래도 어머니, 어머니, 이렇게 부르며 따랐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확신한다. 그 이상한 시선은 벌레를 바라보는 시선이요, 살의가 깃든 추악한 욕망이었으리라.
 
 12살······.
 가을이다. 내가 이때를 가장 강렬히 기억하는 이유.
 새어머니의 자식이 정식 후계 구도에 올랐다.
 이게 말이 되나? 가문의 핏방울 하나 안 섞인 인물이 후계 구도에 오르다니.
 사춘기에 막 접어들었던 나는 강하게 반발했지만 가문의 가신들과 아버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체 왜?
 
 15살.
 떠올리기도 싫군.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좋은 기억이 없다.
 나는 후계 구도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가신들에게 핏줄은 중요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왜냐? 귀족이라고 해봤자 허물만 남은 상황, 어려운 상황 속에서 새어머니의 친가는 상인 가문답게 부를 토대로 무너져가던 가문을 되살려내고 있었다.
 아니, 자기 사람을 심느라 여념이 없었던 거겠지. 그래도 겉으로 보기엔 레이몬드 가에 춘풍이 부는 듯했다.
 아버지는 점점 소외되어가는 날 안쓰럽게 바라보셨지만 손을 뻗지는 않았다.
 아버지, 그때 아버지는 조금이라도 참견을 하셨어야 했습니다. 그건 춘풍이 아니라 칼바람이었거든요.
 
 16살.
 줄리아아아!!!
 과거의 일이지만 아직도 분노에 차오른다.
 감히 레이몬드 가의 적통인 날 노예로 만들어?
 그동안 갖은 수난 속에서도 새어머니라 부르며 따르려고 노력했었거늘 그 대가가 날 노예로 팔아버리는 것이었더냐!!
 음모의 뒤에 왕실이 있었다지만 네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거다.
 줄리아, 그리고 네년의 아들인 크루타. 너희 잡것들이 아직까지도 무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 난 아직도 당신을 용서할 수가 없소. 내가 당신의 자식이긴 했던 거요?
 
 죽음으로 위장돼 노예로 전락했다.
 왕실에서 도와주니 약간의 공작으로도 손쉬운 일이었겠지.
 더럽고 냄새나는 철창 안에선 복수심마저 탁하게 흐려졌다.
 그땐 몸과 마음도 귀족의 때를 벗기고 노예로 물들어 있었기에 의심이란 생각 자체를 떠올리지도 못했다.
 그곳에 모인 노예들은 나 말고도 수십 명이 더 있었다. 얼핏 보아도 대부분 15살에서 19살 미만.
 그때부터였다.
 노예가 아닌 암살자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은.
 
 -도망치는 놈은 죽는다.
 자신을 교관이라 소개한 사내의 말에 우린 피식 웃었다.
 노예는 재산이다. 벌을 줄지언정 죽이진 않는단 소리다.
 죽인다는 것은 돈을 포기하겠다는 소리니까.
 그러나 사내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옆에서 나와 같이 실실 웃던 녀석의 머리가 반으로 갈라지는 것을 보고 알 수 있었다.
 -교관을 우습게 봐도 죽는다.
 ‘미쳤어, 미쳤어.’
 속으로 그렇게 끊임없이 되뇌었지만 현실은 현실일 뿐,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제국이 왕국이었던 시절이니까, 당시엔 주변에 적이 많았다.
 암살자를 키우는 일도 그러한 적들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했다.
 근데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 우리를 잡아와서 이토록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인가?
 토할 때까지 달리기를 시키거나 산을 오르고, 늦는 놈에겐 채찍질을 가하니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그 와중에 여러 사람이 죽었고, 죽은 만큼 또 보충되어 몇십 명이란 인원은 항시 유지되었다.
 그렇게 사람이 죽을 때면 교관은 항상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신음소리 하나 내지 마라. 너희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면 뭐지? 괴물이라도 된다는 건가?
 
 훈련을 가장한 고문에 익숙해질 무렵, 더는 죽는 이가 없자 다음 훈련으로 넘어갔다.
 -모두 잘 버텨주었군. 계속 이렇게 잘 따라주면 가족이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웅성웅성.
 말수가 줄어가던 훈련생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말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교관님, 질문 있습니다.
 도저히 못 참겠던지 훈련생 중 하나가 손을 들며 입을 열자 웬일인지 교관도 대답을 해주었다.
 -말해봐.
 -방금 하신 이야기는 대체······?
 -흠, 너흰 모두 가족이 있지. 그것도 정을 준 사람이 말이야.
 교관은 질문을 한 훈련생 곁으로 다가가 빙글빙글 돌며 이야기를 이었다.
 -훈련 도중 못 견디고 죽으면? 가족도 연좌제로 죽는다. 여기서 도망치면? 가족이 죽는다. 교관에게 대들다 죽으면? 그래도 역시 죽는다. 가족이 곧 너희의 목숨이라 생각해라.
 충격적인 발표였기에 모두 부들부들 떨었다.
 -그, 그럼 설마?
 -그래. 너희들은 우리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교관은 빙글빙글 돌던 걸음을 멈추더니 질문자를 노려보았다.
 -누가 감히 질문을 하라고 했지?
 서걱!
 충격적인 발표 후에 교관은 더 충격적인 행동으로 우리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단순히 질문을 했을 뿐인데 질문자의 머리를 베어버렸다.
 -암살자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걸 명심하도록.
 교관은 피가 묻은 검날을 죽은 시체의 옷에 슥슥 닦더니 자리를 옮겼다.
 시체 처리는 우리 몫이었다.
 이날 질문자의 가족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교관이 통보해왔다.
 문득 이곳이 지옥은 아닐까, 생각했다.
 
 훈련을 받은 후 실전에 투입되었다.
 암살자로 교육받았으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암살밖에 없다.
 화술, 은신술, 변장, 위조, 살인술, 검술, 독약 조제. 우리가 교육받은 내용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첫 임무에서 반이 죽었다. 아무리 혹독한 훈련을 받았어도 실전을 겪지 못했으니 변수에 약했다.
 임무 수행 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가족을 떠올리면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어째서 가족이 있는 자만 노예로 만든 것인지 뼛속 깊이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복귀를 하고 나니 교관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오러 연공법을 가르쳐주었다.
 -축하한다. 너흰 이제부터 귀한 기술을 배우게 되었으니 견마지로를 다하도록.
 우릴 개에 비유했으나 확실히 개와 다르지 않았다. 죽어가면서도 주인을 물지 않는 우리가 개하고 어디가 다를까?
 그 귀하다는 오러 연공법을 배우면서도 마음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미완의 오러 연공법이었다.
 분명 속성으로 빠르게 마나가 쌓이는 것이 느껴졌지만, 어딘가 도착점을 미리 정해놓고 달리는 것처럼 길이 정해져 있었다.
 순식간에 소드유저를 지나 소드익스퍼트에 도달했지만 갑자기 꽉 하고 막힌 것처럼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암살자에겐 이만한 무력도 충분했기에 우린 왕국이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특기를 뽐냈다.
 말로써 상대를 속이고 독으로 찻잎을 우려낸다. 문서를 위조해 서로 간의 불신을 유도했고 때론 귀족으로 변장해 나라 간의 충돌을 만들었다.
 그러다 실패하면 산과 산을 타며 도주하다가 다시 원래의 지점으로 돌아와 변장을 통해 대놓고 탈출에 성공하기도 했다.
 최후의 수단으로 무력을 동원하기도 했는데, 아주 깔끔하게 칼침 한 방 먹이는 것으로 저세상으로 보낼 수 있었다.
 수많은 암살을 거치면서 마음은 점점 마모되어갔고 종내엔 죄책감이란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나라의 적들이 사라져갔으니 국력이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에게 나라를 위해서라고 하더니, 암살을 거듭할수록 무시무시할 정도의 성장세를 보였다.
 내가 속한 나라의 이름은 레스톤. 국가의 품격이 높아질수록 암살자인 우리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만 갔다.
 -레이스, 나와 함께 탈출하자!
 세월이 흐를수록 살아남는 동료의 수는 하향 곡선을 그렸다. 이 와중에 더는 못 버티겠다는 듯 문서 위조의 달인인 파블랑이 내게 권유를 해왔다.
 -가족은 어떡하고?
 -우린 할 만큼 했어! 그들에게 우린 이미 죽은 사람이야, 미안해할 필요 없어!
 파블랑이 이토록 격앙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살아남은 암살자들은 최소 소드익스퍼트, 거기서 더 나아가 검 한 자루로 군대를 상대한다는 소드마스터가 된 이는 나를 포함해 단 둘뿐이었다.
 무엇이 됐건 우리쯤 되는 자들이라면 항시 마음을 다스릴 수 있기에 파블랑의 반응은 신기하기만 했다.
 -미안 파블랑, 나는 그럴 수 없다.
 얼음처럼 차가워진 마음이지만 가족이란 단어를 떠올리자 십수 년이 지났음에도 가슴이 아려왔다.
 -나는······ 가족이 중요해.
 -그 탓에 네가 여기로 오게 된 것인데도?
 문서 위조의 달인이라서 정보 또한 남다른 듯했다. 하지만 내 사정을 안다고 해서 결정이 바뀌진 않는다.
 -······.
 -레이스! 더는 네가 지킬 것은 없······!
 무언가 더 말하려던 파블랑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빨갛게 달아오르던 그의 얼굴은 차갑게 변하더니 내게 통보하였다.
 -좋아, 그럼 나 혼자라도 떠나겠어. 설마 밀고하진 않겠지?
 -잘 가라.
 안녕 친우여,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 바라마.
 그렇게 내가 암살자로 살면서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문서위조의 달인 파블랑은 본단을 떠난 지 얼마 안 있어 소금에 절여진 머리통으로 내게 다시 인사를 건넸다.
 -좋은 선택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나라에 충성하도록.
 -······.
 흰머리가 설핏 생겨난 교관의 말에도 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다시 만나지 않기를 그토록 바랐건만, 결국 만나게 되고야 말았구나.
 교관이 떠나고 나서야 나는 파블랑을 향해 묵념을 올렸다.
 ‘미안하다. 어머니의 묘가 그곳에 있는 이상 나는 떠날 수 없어.’
 고향이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어차피 돌아갈 수도 없는 운명이었기에 관심을 끊었었다. 하지만 그곳에 어머니의 묘비가 있고 아버지가 있음은 변하지 않았기에 나는 소드마스터임에도 여전히 암살자였다.
 탈출을 시도하면 동료에게 죽는 암살자, 우리가 서로를 믿을 수 없었던 이유임과 동시에 서로의 발목을 붙잡는 족쇄이기도 했다.
 정말이지 끔찍하고 더러운 이중삼중의 족쇄들.
 
 왕국은 어느새 제국임을 선포하며 주변 나라에 국력을 과시했다.
 확실히 소드마스터가 포함된 암살대의 위력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비록 초입에 불과한 경지였으나 소드마스터는 격이 다른 존재, 암살이란 방법을 통한다면 정통의 소드마스터라 할지라도 우리의 손을 피할 수 없었다.
 이 정도면 될 줄 알았다.
 이제 왕국, 아니 제국도 적수를 찾을 수가 없었으니 우릴 풀어줄 줄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우릴 기다린 것은 토사구팽이라는 형태의 보상이었다.
 동료들 모두가 나라를 위해 큰 공훈을 세웠다. 지금의 레스톤 제국을 만든 것은 이름조차 없는 암살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릴 죽이겠단다. 그동안 두문불출하던 황제가 나타나 우리에게 역모를 비롯한 온갖 누명을 씌웠다는 것을 발표했을 때는 분노에 잠겼었다.
 
 이후로 살기 위해 도주하는 나날.
 도저히 소드마스터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하찮고 추잡한 방법까지 동원하며 도주에 도주를 강행했다.
 ‘빠져나갈 구멍이 안 보여. 어떻게? 무슨 수를 쓴 거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결과가 그랬다. 소드마스터인 나도 이러할진대 다른 동료들은 어땠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동료들은 모두 붙잡혀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말이 제국 전역에서 들려왔다.
 어떻게 잡았을까? 루이드도 소드마스터 초입이었는데 무슨 수를 쓴 걸까?
 각종 의문이 들었었지만 이내 실소를 머금게 되었다.
 
 “십만 군대가 둘러쌌으니 도망갈 수가 없지.”
 이젠 과거를 회상하는 것도 지쳐서 벽에 기댔다.
 풀썩.
 곰팡이가 등에 달라붙었지만 지쳐서 떼어낼 힘도 없다. 날 소드마스터로 만들어주었던 오러는 금제에 의해 산산이 흩어져 평범한 사람만도 못하다.
 우리가 그토록 무서웠나? 아무리 나라도 해도 십만 군대는 상상도 가지 않는 스케일이었다.
 그렇게 허망함을 품은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자니 감옥의 문이 열리며 빛이 새어 들어왔다.
 철컹, 철커덕.
 “일어나!”
 감옥 문이 열리며 황실 친위대 두 명이 각기 팔 하나씩을 봉쇄하며 질질 끌고 갔다.
 날 어찌나 경계하는지 등에는 수도 수비대의 정예병이 창을 들이미는 중이었고 머리엔 자루를 씌워 빛을 차단시켰다.
 그륵-. 그륵-.
 발목의 쇠구슬을 끌며 앞으로 나아가니 얼마 안 있어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와아아! 와아아아!
 죽여라! 죽여라!
 도착한 것인지 우악스런 손길로 자루가 벗겨지며 환한 빛에 안구가 강타 당했다. 신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으니 점차 적응이 된다.
 저기 황제가 있다. 우리에게 사람을 죽이도록 강요한, 암살자로 살아가게 만든 인물이.
 뭐가 저리도 거만한지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황제 또한 사람인 것을.
 ‘뭐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만일 내 손에 뭐라도 하나 있었더라면 수십 미터나 떨어져 있는 황제의 숨통을 끊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경계심이 상상을 초월했기에 폐인이 된 지금도 약간의 틈은 존재하지 않았다.
 터벅, 털썩.
 오금에 강한 충격이 가해지며 무릎이 꿇렸다.
 버틸 기력도 없는 상태로 단두대에 목이 대어진다.
 연설도 없이 형을 집행하려는지 테라스 위의 황제가 손을 치켜들었다.
 척.
 황제와 내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 같았기에 나는 황제를 볼 수 없었다.
 그러나 관중의 반응으로 보건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겠지.
 숨을 죽이고 이쪽을 응시하는 시민들.
 내가 이 나라를 만들었다, 너희가 발 뻗고 살 수 있는 일을 우리가 해냈단 말이다!
 “으으······ 내······ 아······!”
 스스로를 사냥개라고 여겼지만 나도 사람은 사람인가 보다. 울분을 참을 수 없어서 입술을 비집고 신음 비슷한 말들이 흘러나오는 것을 보니 말이다.
 덜컹.
 고정된 무언가가 떨어진다.
 무게는 10kg, 상당히 무거운데도 예리한 파공음은 오직 넓은 면을 가진 단두대에서만 낼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암살자의 본능을 버리지 못하다니, 당신들의 훈련이 어지간히도 대단했던 모양이오.
 텅!
 고통은 없었다.
 단두대란 것이 사형인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만들어진 것이라서 그런지 깔끔하게 베였다.
 그저 약간의 따가움과 희열 비슷한 이상한 기분뿐.
 시야가 빙글 돈다.
 처음엔 바닥이 보였고 그 다음엔 단두대에 묻은 피가 보였다.
 그 다음엔 조금 더 돌아서 쾌청하고 맑은 하늘이 보였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은 하늘도 슬피 우는 것처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더니 내가 죽을 땐 구름 한 점 없다니.
 데구르르르.
 머리가 바닥을 구른다.
 내가 죽였던 자들도 이런 느낌으로 죽었던 것일까······.
 
 
 「제국력 1년 5월 22일.
 암살대 소멸 확인.
 앞으로의 계획엔 소드마스터 육성은 넣지 말 것.
 
 - 레스톤 1대 황제 페스토니피아 직인 -」

댓글(9)

수월류    
설정이 황당하네요
2018.03.26 00:22
뭐랄까까    
아버지 증오하고 새어머니는 자기 팔아넘겼는데 가족이 중요하다고 탈출안함? 이해안되네요
2018.03.26 09:32
[탈퇴계정]    
묘가 있다고 탈출 안하다니 진짜 신박한 설정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8.03.27 03:06
[탈퇴계정]    
묘가 인질인건 진짜 첨봤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8.03.27 03:06
재미잇는책    
가족을 왜중요하다함? 이해안되는데 설정 개이상하네 뼛속까지 호구새끼라 이걸 봐야되나 고민이된다
2018.04.04 10:18
az****    
ㅋㅋㅋ 어이가..묘를 미친새퀴--살아있는 내 자신이 중요한거지 죽은 어머니 묘가 나보다 중요한건가? 설정 미스네
2018.04.11 09:33
    
가족에게 버림받고 배신 당하고 계모의 음모에 당해서 노예로 팔려간다. 제국의 암살자로 개처럼 사육 당하는 일생을 보낸다. 그런 와중에 무력은 소드마스터. 가족을 위해서 또 친모의 무덤이? 고향에 있기에 탈출은 상상조차 안하는 주인공.. 껄껄.
2018.04.28 15:55
zi******    
거의 1편에서 모두 하차 하는 소설은 참 오래간만이다. 이따위 설정을 독자가 이해하고 납득하길 바란다면 쌍팔년도에 나오던 선데이 서울은 명작 이겠다.
2018.05.22 23:39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0.01.23 18:06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