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황궁법사

1화

2018.04.17 조회 2,121 추천 9


 | 작가서문 |
 
 
 
 
 
 저는 그동안 굉장히 많은 장르 소설을 봐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웬만한 책은 앞내용만 봐도 대충 어떤 내용으로 전개될지 눈에 보이더군요. 제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습니다.
 
 뻔한 소설이 아닌 참신한 소설을 써보자는 생각으로요.
 
 처음부터 큰 걸 바라진 않습니다. 그저 시간이 흐른 뒤에 황궁법사의 내용이 이랬었지 하고 머릿속에 기억이 남는 작품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지루한 일상.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이 책이 조금이나마 웃음을 드렸으면 합니다.
 
 견화(見化)
 
 
 
 序章
 
 소자, 꼭 황실의 관리가 되겠나이다
 
 
 
 
 
 산동성(山東省) 태산(泰山)에 위치한 제갈세가는 흔히 신기제갈(神機諸葛)이라 하여 대대로 뛰어난 머리를 가진 후손들을 배출하는 집안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무림에 틀을 닦고부터 언제부턴가 문가(文家)에서 무가(武家)로 바뀌기 시작하더니 요즘에 들어선 확실한 무가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현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무혁 역시 무(武)를 숭상하는 인물로 상당히 호전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무력은 제갈세가 역사상 가장 강력하다고는 하지만, 무림 전체로 보자면 겨우 절정고수 급에 들어갈 뿐이었다.
 
 오히려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유명했으니 제아무리 성질을 바꾼다 해도 확실히 피는 못 속이는가 보다.
 
 제갈무혁은 눈앞에 보이는 두 소년을 찬찬히 훑어보고 있었다.
 
 녹색 장삼을 입은 소년과 푸른색의 무복을 입고 있는 소년. 그중 푸른색 무복을 입고 있는 당당한 체구의 소년은 눈에서 당장이라도 불꽃이 뿜어져 나올 듯한 기세를 뿜어대고 있었다.
 
 ‘허허, 예로부터 우리 제갈세가는 근골이 평범하기로 소문이 자자했거늘. 이 아이의 근골은 제갈세가를 가엾이 여겨 하늘에서 은총을 주신 것이 틀림없구나!’
 
 떡 벌어진 어깨에 거대한 몸집은 여타의 제갈세가 사람들과 확실히 달랐다.
 
 제갈벽.
 
 소년의 이름이다. 제갈무혁의 차남으로 어릴 적부터 무공을 익혀 10세가 채 되기도 전에 가문의 소천성공(小天星功)을 12성까지 익힌 엄청난 수재였다.
 
 작은 그릇에 대해(大海) 넣을 수 없듯 근본이 되는 신체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어느 정도 이상의 기를 넣을 수 없는 법이다.
 
 헌데, 비록 가장 기초적인 심법이긴 했지만 그 어린 나이에 소천성공을 극으로 익혔다는 건 제갈벽의 그릇이 얼마나 큰지 말해주고도 남았다.
 
 굵고 진한 눈썹에 하늘 높이 선 콧날과 굳게 닫힌 입술이 그의 성품처럼 강인해 보인다.
 
 그에 반해 왼쪽에 녹색 장삼을 입고 서 있는 소년은 몸집이 상당히 왜소했다.
 
 물론 오른쪽에 서 있는 제갈벽에 비교하면 그렇다는 말이다. 호리호리한 몸집에 선이 얇은 얼굴.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소년은 아름답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예쁘장하게 생겼다.
 
 하지만 그를 보는 제갈무혁의 표정은 그리 곱지 않았다.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할 녀석이, 쯧쯧.’
 
 제갈무혁의 시선에 소년은 안 그래도 숙인 고개를 아예 바닥에 닿을 만큼 푹 숙였다.
 
 제갈무혁의 장남으로 동생인 제갈벽과는 달리 무공에는 영 소질이 없는 제갈진명은 매일같이 동생과 자신을 비교하는 제갈무혁을 비롯한 다른 식구들의 눈길에 죽을 맛이었다.
 
 ‘제기랄, 내가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냐고!’
 
 소년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속으로 외쳤다.
 
 누군 익히기 싫어서 안하는 줄 아는지 가족들의 시선은 항상 싸늘하기만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렇다고 자신이 모든 점에서 제갈벽에 비해 못난 것은 아니었다.
 
 제갈벽에 비해 뛰어난 것이 한 가지 있긴 있었다.
 
 머리.
 
 머리 하나는 제갈벽보다 뛰어나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제갈벽은 보통의 제갈세가 사람들과는 정반대로 이해력은 약간 떨어지는 편이었지만 무공에 관한 능력은 독보적일 만큼 뛰어났다.
 
 하지만 진명 자신은 무력이 뒤쳐지는 대신 이해력과 집중력은 가문 그 어느 누구와 비교한다 해도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마 100년만 앞당겨 태어났더라면 이런 대접은 제갈벽이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 부질없었다.
 
 어쨌든 현재는 무력이 더 중요한 때이니 말이다.
 
 진명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던 무혁은 품에서 두 권의 책자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중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책자 한 권을 제갈벽에게 건네며 말했다.
 
 “대천성신공(大天星神功)이다. 넌 우리 가문의 미래라는 걸 항상 염두에 두어라.”
 
 대천성신공이란 말에 제갈벽은 물론이고 옆에서 듣던 진명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저것은······!’
 
 대천성신공은 제갈세가의 가주가 대대로 익히는 심법으로 그것을 전수한다는 의미는 바로 제갈벽을 차기가주라고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제갈벽과 진명이 놀란 것은 당연했다.
 
 “그동안 우리 제갈세가에선 능력보다는 혈연을 중요시 해왔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얻은 건 아무것도 없었지.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는 형편이다. 희망이 곁에 있음을 보고도 전통 때문에 가문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두고 볼 순 없구나. 벽아, 너를 소가주로 임명하겠다.”
 
 갑작스런 결정에 두 소년은 하나같이 벙 찐 표정으로 굳어 버렸다.
 
 하지만 제갈무혁은 두 소년의 표정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품 안에서 또 다른 책자를 하나 더 꺼내 진명에게 던지며 말을 이었다.
 
 “그건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가보다. 넌 그것을 배우는데 힘쓰도록 해라. 우리 가문에서 그것을 배우는 건 진명이 네가 처음일 것이다.”
 
 말을 하며 무혁은 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대천성신공과는 달리 진명이 건네받은 책자는 상당히 오래된 듯 군데군데 누렇게 색이 변해 있었다.
 
 책의 겉표지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신계문(神契文).’
 
 신과 인연을 맺는 문자?
 
 진명은 책자를 뚫어지게 보다가 고개를 들어 무혁을 바라봤다.
 
 무혁은 입가에 걸린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했다.
 
 “우리가문의 자랑이신 제갈충무께서 남기신 유품이다.”
 
 ‘제갈공명!’
 
 충무는 제갈공명의 시호(관직에 있던 선비들이 죽은 후 왕에게 받는 이름)였다.
 
 제갈공명 이후로 출사를 하던 제갈세가가 어느 순간부터 무림에 발을 들인 후로 어느새부턴가 관직을 얻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였다. 무림과 황실은 영토에 대한 분쟁에 있어 서로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이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생리상 황실에 거리를 두게 되자 그들 가문의 영웅이던 제갈공명은 우스운 존재가 되어 버렸고, 무혁이 부른 시호 또한 다분히 비꼬기 위한 의도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럼, 나 보고 이걸 익히라는 소리······?’
 
 이걸 익혀 황실로 진출하란 말이나 다름없었다.
 
 ‘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존재였나?’
 
 달갑잖은 황실에 자신을 보낸다는 건 거의 연을 끊자는 말이다.
 
 하기야 자신을 제치고 동생이 차기 가주자리에 오르게 되면 자신이 껄끄러운 존재가 되리라는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빨리 내칠 정도로 불편한 존재였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명은 신계문을 고이 품에 넣고선 아버지인 무혁에게 큰절을 올렸다. 죽은 듯이 한참을 바닥에 엎드려 있다가 하품이 나올 정도로 천천히 일어나 말했다.
 
 “소자, 꼭 황실의 관리가 되겠나이다.”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는 진명의 어깨가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第一章. 출가(出家)
 
 과거시험? 그건 어떻게 보는 거지?
 
 
 
 
 
 “제기랄! 내가 무슨 죄라도 지었냐고!”
 
 기껏 폼을 잡고 떠나겠다 말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미리 준비해놓은 작은 보따리와 약간의 노잣돈을 건네주며 내쫓듯 밀쳐내는 통에 진명은 당장 잘 곳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버렸다.
 
 뭐, 배웅 따윈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잘 가라는 한마디 정도는 그동안의 미운 정을 생각해서라도 해주면 어디가 덧 나냐는 말이다.
 
 “내가 꼭 성공해서 도와달라고 비는 날이 오게 만들고야 만다. 카악~ 퉤!”
 
 곱상한 얼굴의 소년은 생긴 것과는 반대로 거친 욕설과 함께 걸쭉한 가래침을 대문간에 뱉고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렇게 호기롭게 발걸음을 떼긴 했지만 막상 길을 나서자 갈 곳이 막막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일단 과거시험이 언젠지 알아야 하는데.’
 
 진명은 곰곰이 생각하다 이내 마음을 굳히곤 당당히 걸음을 옮겼다.
 
 ‘황궁은 북경에 있으니 그쪽으로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지만 북경은 또 어디로 가야 하냔 말이지.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는 제갈진명······.
 
 고생길이 눈앞에 훤했다.
 
 
 
 * * *
 
 
 
 시끌벅적한 거리.
 
 사방이 사람들로 꽉 찬 거리를 한 소년이 걷고 있었다.
 
 ‘이야, 사람 참 많구나.’
 
 진명이었다. 세가를 나온 후 관도를 따라 정처 없이 길을 걷다 제법 커다란 마을을 하나 발견하고는 들어선 것이었다.
 
 진명으로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생전 처음 보는 거였다.
 
 당연했다. 그동안 세가 밖으로는 단 한 번도 나가 본 적이 없었기에 길가의 사소한 풍경 하나하나에도 감탄을 터뜨리고 있었다.
 
 정처 없이 걷던 진명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어느 곳에선가 걸음을 멈췄다.
 
 그 앞엔 향월루란 현판이 걸린 거대한 주루가 그 위풍당당한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일단 여기서 좀 쉬면서 뭐든 알아보자.’
 
 지체 없이 건물 안으로 들어간 진명은 주위를 한 번 훑어본 뒤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조그만 꼬마애가 혼자 주루 안으로 들어오자 칠구는 눈을 가늘게 떴다.
 
 ‘보아하니 어디 부잣집 도련님 같은데, 골치 아프게 됐군.’
 
 주루에 근무를 하다보면 간혹 가다 집나온 철부지 도련님들이 종종 오곤 했기 때문에, 이번 역시 그런 것이라고 확신하는 칠구였다.
 
 ‘오호!’
 
 색이 고운 도포에선 윤기가 흘렀고 얼굴은 잡티 하나 없는 게 웬만큼 어지간한 가문은 명함도 못 내밀 듯한 모습이다.
 
 ‘저 정도면 도대체 어느 가문일까?’
 
 칠구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소년에게 다가갔다. 어쨌든 주루를 찾은 손님이기에 주문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허이구야, 얼굴 참 곱다.’
 
 “무얼 드릴까요?”
 
 가까이서 본 소년의 얼굴은 예사롭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조금만 더 큰다면 여자에게 꽤나 시달릴 것 같다.
 
 이런 걸 가만히 보면 세상 참 뭐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집안 빵빵하지, 얼굴 되지.
 
 누군 이런데서 주문이나 받고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이 얼굴은 어쩔 거냐고.
 
 “소면 주세요.”
 
 ‘의외네?’
 
 “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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