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기연은 어플을 타고

1화

2018.05.08 조회 2,289 추천 13


 prologue
 
 
 
 
 
 
 
 
 
 
 
 
 
 
 
 나는 이제껏 살아온 내 삶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전혀 불행하거나 슬프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어머니가 다섯 살 때 돌아가시기는 했지만, 아버지는 내가 열 살 때, 웃는 모습이 아름다운 새어머니와 여동생을 데리고 오셨다.
 
 
 
 당신께서는 내가 정에 굶주려 다른 아이들과 다른 삶을 사는 것을 절대로 원치 않으셨던 것이다.
 
 
 
 그런 아버지 덕분에 나는 연희를 내 친동생처럼 아끼고 보살피며 자라 올 수 있었다.
 
 
 
 내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릴 아무런 의심 없이 친남매로 생각할 정도였다.
 
 
 
 그리고 친동생과도 같다고 생각해 왔기에, 나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내 동생을 위해 과감히 내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었다.
 
 
 
 악몽 같은 시절의 시작.
 
 
 
 나는 그때를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 * *
 
 
 
 화르르륵!
 
 
 
 강원도 영월 산골짜기의 한 콘도는 아수라장과 다름이 없었다.
 
 
 
 한밤중인 현재, 원인 미상의 불길이 건물 전체로 번지면서 10층 건물이 대참사의 현장으로 변했던 것이다.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해!”
 
 
 
 한 180쯤 되는 키를 가진 중년 남성이 소리를 질렀다. 양손으로 그의 자식들인 두 남매를 꼭 붙든 채였다.
 
 
 
 그러나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데다 연기를 잔뜩 들이마신 두 남매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가장이란 언제나 가족을 지켜야 하고 희생하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은 자기 몸 하나 희생해서 해결될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콰광!
 
 
 
 불에 타 버린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굉음이 터졌다.
 
 
 
 순간, 산소가 들어오며 겨우 정신이 든 아이들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고는 경악했다.
 
 
 
 “콜록콜록! 뭐, 뭐야······!”
 
 
 
 너무 깜짝 놀라서 말을 잃어버린 소년이 여동생의 앞을 몸으로 가린 자세로 자신의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여동생은 울음부터 터뜨렸다.
 
 
 
 이제 몇 달 후면 18세가 되는 소년, 주원은 순간 절망을 느꼈다.
 
 
 
 “주원! 정신 차려!”
 
 
 
 망연자실한 그를 나무라듯 아버지가 호통을 쳤다.
 
 
 
 “잘 들어라! 네 엄마는 이미 정신을 잃었다. 이 사람은 내가 부축하여 빠져나갈 테니, 너는 동생을 데리고 어서 밖으로 나가거라!”
 
 
 
 “하, 하지만!”
 
 
 
 아버지는 주원의 어깨를 붙잡고 눈동자를 응시했다.
 
 
 
 “남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데에 주저하면 안 된다. 지금부터 너는 네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한다. 알겠니, 아들?”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주원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도 희망을 버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원은 자신의 아버지를 굳게 마주 보았다.
 
 
 
 “······그럴게요. 그 대신에 아버지도 엄마를 꼭 데리고 나오셔야 돼요.”
 
 
 
 “녀석, 걱정하지 말고 어서 가라!”
 
 
 
 아버지는 물에 적셔 둔 헝겊을 손에 칭칭 감은 채 천장에서 떨어져 길을 막은 불덩이를 치워 내며 주원에게 소리쳤다.
 
 
 
 “지금이야!”
 
 
 
 공포에 질려 몸을 덜덜 떨고 있는 여동생의 손을 꼭 잡은 주원이 펜션 방을 빠져나와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주원은 어쩌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참았다.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어디까지나 동생을 데리고 이곳을 안전하게 빠져나가는 게 최우선이었다.
 
 
 
 콜록, 콜록!
 
 
 
 “오, 오빠! 눈이 너무 매워······.”
 
 
 
 주원은 상의를 벗어 복도에 위치한 정수기에서 물을 충분히 적신 후 동생의 입을 가렸다. 학교에서 한번 듣고 넘겼던 화재 대처법이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몸을 최대한 낮추어 이동하던 주원은 불길이 바람을 타고 빠르게 번져 나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곳은 8층, 지금 같은 상황에서 엘리베이터는 이용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탈출구는 단 두 가지뿐이었다.
 
 
 
 비상계단을 이용해 마지막 층으로 내려가든지, 아니면 8층 건물에서 몸을 던지든지.
 
 
 
 ‘8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면 십중팔구 죽어 버릴 거야!’
 
 
 
 “하는 수 없어! 어서 움직이자, 연희야!”
 
 
 
 주원이 다급히 소리치며 연희의 손을 잡아끌던 순간.
 
 
 
 퍼엉!
 
 
 
 “꺄악!”
 
 
 
 화재 때문에 합선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펜션 실내를 비추던 형광등들이 하나같이 환한 불빛을 잃은 채 꺼졌고, 주변은 온통 암흑천지로 변해 버렸다.
 
 
 
 “으으, 오빠······.”
 
 
 
 동생의 손을 꼭 잡은 주원은 그녀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나만 믿어!”
 
 
 
 전력이 나가 버린 비상구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한 발 한 발 계단을 내려가는데도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뎌야 했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서 한층 수월해졌다.
 
 
 
 놀랍게도 어린 주원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물론 그의 마음속에서는 두려움과 조바심이 슬슬 머리를 쳐들고 있었지만, 오로지 자신만 의지하고 있는 동생을 생각하면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칠흑 같은 암흑을 얼마나 헤맸을까, 이윽고 주원은 응급차 사이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추, 출구인가?”
 
 
 
 마침내 펜션 입구에 도달했던 것이다.
 
 
 
 안도의 한숨을 몰아쉰 주원은 연희를 돌아보았다.
 
 
 
 “어디 다친 곳은 없어?”
 
 
 
 “응······.”
 
 
 
 연희는 얼굴 여기저기가 검게 그을음이 묻어 있었지만, 작은 상처 이외에 별다른 외상은 없는 듯했다.
 
 
 
 다행이었다.
 
 
 
 이제 부모님만 나오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장이 풀리니 아까의 끔찍한 상황이 생각나, 주원은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나 부모님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시지 않았다.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는지 연희가 느닷없이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엄마! 엄마!”
 
 
 
 퍼엉!
 
 
 
 “안 돼! 연희야!”
 
 
 
 순간, 주원은 보았다.
 
 
 
 창문이 폭발하면서 튕겨 나온 불에 싸인 커다란 물체가 연희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는 것을.
 
 
 
 “엎드려!”
 
 
 
 “꺄악!”
 
 
 
 쿠웅!
 
 
 
 주원의 고함과 뒤늦은 연희의 비명이 교차한 순간, 주원은 사력을 다해 뛰어서 연희의 몸 위로 쓰러졌다.
 
 
 
 “오빠아!”
 
 
 
 간신히 목숨을 건진 연희는 서서히 타들어 가는 오빠의 얼굴을 보고는 비명처럼 소리쳤다.
 
 
 
 치이익!
 
 
 
 가연성 제품이 자꾸만 녹아내려 주원의 얼굴과 머리를 순식간에 태워 갔다.
 
 
 
 “끄아아아악!”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지만, 화마의 아가리에 얼굴을 통째로 물려 버린 주원이었다.
 
 
 
 이미 그의 얼굴은 이목구비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녹아 있었다.
 
 
 
 그 광경에 놀라 잠시 멍해 있던 소방대원들이 허겁지겁 뛰어와 그의 몸에 소화기를 뿌렸다.
 
 
 
 불씨가 진압되고 거대한 가연성 물체를 치워 내자, 끝끝내 정신의 끈을 놓은 주원의 모습이 드러났다.
 
 
 
 꿈틀거리는 오빠의 손을 잡은 연희는 부모님이 나오지 못했다는 것도 잊은 채, 창백할 만큼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1. 기연은 작은 창을 통해 시작되었다
 
 
 
 
 
 
 
 
 
 
 
 
 
 
 
 안면에 3도 화상을 입은 주원은 사람의 형체가 아니었다. 그저 두 눈으로 정면만 보고 입만 벌릴 수 있을 뿐이었다.
 
 
 
 상주인 주원이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는 통에 장례식도 주원의 삼촌인 주정철이 조카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그나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연희도 울다가 지쳐서 기절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모든 절차는 주원의 친가에서 진행을 했다.
 
 
 
 친가 친척이라고 해 봐야 러시아와 중계 무역을 하는 정철이 전부였다.
 
 
 
 하지만, 장례식은 절대 소홀하게 치러지지 않았다.
 
 
 
 자신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 버린 동생의 장례를 치르는 정철의 가슴도 미어지기는 것은 매한가지였다.
 
 
 
 다만 어린 조카들 생각에 억눌러 속으로 삭일 뿐이다.
 
 
 
 장례를 치르고, 동생 내외의 유골도 고향에 뿌린 뒤, 정철은 조카의 회복을 위해 그를 미국으로 데려가고자 했다.
 
 
 
 아직 혼인을 하지 않은 정철에게 주원은 세상에서 단 하나 남은 혈육이었다. 때문에 할 수 있는 방법은 뭐든 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워낙 주원의 상태가 심각했다.
 
 
 
 얼굴 전체가 녹아 버려 숨도 간신히 쉬는 지경인 주원이었다.
 
 
 
 그런 그가 미국까지 이송되는 것도, 새로운 피부를 이식받는 것도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람의 외모가 변하면 그에 따라 마음도 변하기 마련일까?
 
 
 
 주원의 나이 열여덟, 한창 꿈을 키우며 장래를 준비해도 모자랄 판에 주원은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남자답고 쾌활하던 그의 성격은 어느새 패쇄적이고 소심해졌다.
 
 
 
 또래 친구들이 이따금씩 다녀갔지만, 절대로 얼굴을 보여 주는 일조차 없었다.
 
 
 
 사람을 피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그는 삼촌인 정철 이외의 사람들은 절대로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나마 그의 여동생이나 죽마고우인 재식과는 뜨문뜨문 통화를 하는 정도였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섞이려는 생각조차 갖지 않았다.
 
 
 
 이미 대인기피증마저 생긴 것이다. 오죽하면 한동안은 실어증까지 겪었던 주원이었다.
 
 
 
 만약 연희와 재식, 그리고 정철이 없었다면 주원은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 덕분에 주원은 조금씩, 조금씩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회복해 가고 있었다.
 
 
 
 그렇게 1년여의 세월이 지났다.
 
 
 
 세상과 단절되어 1년이라는 시간을 버틴 주원은 드디어 일상생활을 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건강해져 있었다.
 
 
 
 얼굴이 녹아 버려 말이 어눌해졌다거나 단백질로 만든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한다든가 했지만 말이다.
 
 
 
 일상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주원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학업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사실 사고로 뇌를 다친 것도 아니겠다, 주원 자신만 흔들리지 않으면 학교를 다니는 것에 큰 문제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정철, 연희와 깊은 대화를 나눈 끝에 다시 고등학교를 다니기로 굳게 결심했다.
 
 
 
 물론 주원이 1년을 휴학하는 바람에 동생 연희와 같은 2학년으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난 1년간은 절망 속에서 지내느라 한동안 잊고 있었는지 몰라도, 지금 주원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남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데에 주저하면 안 된다. 지금부터 너는 네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한다. 알겠니, 아들?”
 
 
 
 
 
 
 
 아버지의 그 말씀은 지금부터 주원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그의 신념이 될 것이다.
 
 
 
 흉측하게 변한 자신을 보면서도 절대 미소를 잃지 않는 연희는, 주원에게 있어 삼촌 정철을 제외하면 이제 유일한 가족이었다.
 
 
 
 앞으로 주원은 그런 자신의 동생을 지키기 위해 살아갈 것이다.
 
 
 
 기필코, 뭐든 할 것이다.
 
 
 
 * * *
 
 
 
 어려운 결심 끝에 복학하기는 했지만, 막상 학교를 다니는 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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