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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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2018.06.04 조회 1,897 추천 13


 Prologue.
 
 
 
 
 
 1
 
 
 
 
 
 삭막한 감방의 창문에 누군가 쇠창살을 붙잡고 매달렸다.
 
 헝클어진 머리를 길러 내린 미끈한 용모의 청년은 창밖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있는 힘껏 쇠창살을 흔들어 댔다.
 
 끼익! 끽!
 
 ‘아오! 좀 부서지란 말이다!’
 
 쇠창살은 보통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을 만큼 굵고 튼튼했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은 관리를 안 해 녹이 많이 슬었고, 청년이 감옥에 들어온 뒤론 더욱 심하게 부스러졌다.
 
 청년이 매일 간수의 눈을 피해 쇠창살에 스프를 발라 놓았기 때문이다.
 
 이 형무소의 스프는 상당히 짠 편이었는데, 그는 스프에 든 소금이 쇠를 부식시키길 기대했던 것이다.
 
 그렇게 쇠창살에 스프를 바르고 밤새 체중을 실어 흔들어 댄 것이 어언 반년째.
 
 ‘제길, 아직 무리인가?’
 
 아무래도 오늘도 날이 아닌 모양이다.
 
 지친 청년이 손을 놓으려던 순간, 둔한 파열음이 귀에 울려 퍼졌다.
 
 우―직!
 
 녹슨 쇠창살이 부서지는 바람에 청년이 뒤로 나동그라졌다. 바닥에 떨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기쁨으로 인해 전혀 아픈 줄도 몰랐다.
 
 ‘훗, 하늘이 이 제스를 버리지 않으시는구나!’
 
 감방에서 나온 청년, 제스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저편에서 경비병 둘이 다가오는 것을 보곤 재빨리 건물 그림자 뒤로 숨었다.
 
 좋아하긴 아직 일렀다.
 
 형무소를 둘러싸고 있는 두껍고 높은 담장을 벗어나야 비로소 탈출했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분명 밀거래상의 마차가 자정에 찾아온댔지.’
 
 죄수들은 여러 가지 노역을 통해 크게는 죗값을 치르고, 작게는 밥값을 한다.
 
 이 와중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소장과 간수들이었다.
 
 그들은 죄수들을 이용해 제 배를 불리는데, 제스가 있는 형무소의 소장과 간수들은 간이 남달리 컸다.
 
 양조 기술을 가진 죄수들을 빼돌려 국법으로 엄금한 밀주(密酒)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만든 밀주는 밀거래상들이 늦은 밤에 몰래 찾아와 가져가곤 했다.
 
 공을 들여 꼬드긴 고참 죄수로부터 들었던 정보를 떠올린 제스는 조심조심하며 목공소 뒤의 창고로 다가갔다.
 
 공구 창고라 간판이 붙어 있지만, 실제론 형무소의 소장과 간수들이 몰래 운영하는 양조장이었다.
 
 그 양조장 앞에는 지금 커다란 짐마차들이 서 있었다.
 
 “서둘러! 오늘 밤 안으로 중계업자에게 넘겨야 한다고!”
 
 밀거래상들과 죄수들은 술통을 옮겨 싣느라 여념이 없었고, 간수들은 건네받은 돈을 헤아리느라 바빴다.
 
 슬그머니 창고로 접근한 제스는 태연하게 죄수들 틈에 끼어 술통을 날랐다.
 
 밤이 어두웠던 데다 그의 행동이 워낙 능청스러워 의심하는 자가 없었다.
 
 그렇게 술통을 나르던 어느 순간, 그는 창고 구석에 있던 술통 하나를 비워 버리고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뚜껑을 닫았다.
 
 “크으, 술 냄새! 어떤 새끼가 아깝게 술을 쏟은 거야?”
 
 “어느 멍청한 놈이 옳기다 실수했나 보지. 우리가 마실 것도 아닌데 신경 꺼.”
 
 뚜껑을 완전히 닫는 순간, 발자국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오자 제스는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 들킨 것 같지는 않았다.
 
 대신 술통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간 덕분에 어지럼증을 느껴야 했다.
 
 “으윽!”
 
 흘러나온 신음 소리를 들었는지 술통을 운반하던 죄수가 멈춰 섰다.
 
 그러자 옆에서 감독하던 간수가 고함을 질렀다.
 
 “뭐하는 거야! 서둘러야 할 판에!”
 
 “그게 술통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농땡이 부리려는 수작은 아니고? 꾸물거리면 독방에 처넣어 버릴 테니까 빨리 움직여!”
 
 “아, 알겠습니다.”
 
 괜한 불똥이 튈까 봐 죄수는 술통을 들어 짐마차에 실었다.
 
 “이게 마지막인가? 그럼 우린 가 보겠네.”
 
 “조심해서 잘 가라고.”
 
 얼마 후 밀거래상이 간수와 인사를 나눈다 싶더니, 짐마차가 덜컹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됐다!’
 
 살며시 뚜껑을 열고 틈새로 바깥 풍경을 본 제스는 쾌재를 불렀다. 짐마차가 형무소를 나와 어두운 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흐흐흐, 기다려라 이쁜이들. 오빠가 간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려던 제스는 움찔하며 다시 통 속으로 기어 들어가야만 했다.
 
 짐칸 한 켠에 밀거래상의 졸개로 보이는 녀석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녀석은 바깥을 살피고 있어, 제스를 보지 못했다.
 
 ‘제길, 잘된다 싶더니!’
 
 낭패 어린 표정을 짓던 제스는 낙관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바로 나갈 필요가 없다고, 때를 봐서 빠져나가도 늦지 않다고.
 
 ‘뭐 그때까지 느긋하게 쉬고 있을까?’
 
 그리 마음먹고 나자, 졸음이 무섭게 몰려왔다. 긴장이 한꺼번에 풀려 버렸기 때문이다.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아 버린 제스는 좁은 술통 안에서 깊은 단잠에 빠지고 말았다.
 
 
 
 
 
 2
 
 
 
 
 
 “드디어 자유다! 으하하하하핫!”
 
 제스는 광명의 세계에 있었다.
 
 하늘에 태양은 눈부시게 빛났고, 고운 백사장 위로 밀려온 파도는 하얗게 부서졌다.
 
 제스는 바다가 보이는 아담한 저택에서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화려하게 치장을 한 미녀들이 다가와 속삭였다.
 
 “오빠, 여기서 혼자 뭐하세요? 저랑 같이 놀아요.”
 
 “이 쿠키 좀 먹어 봐. 동생님 주려고 내 손으로 직접 만들었어.”
 
 “무례하군요! 감히 오라버니께 그런 천박한 음식을 권하다니!”
 
 “흥, 내 과자보다 하찮은 어린 계집이······.”
 
 “뭐라고요? 나잇값도 못하는 할망구가!”
 
 제스를 둘러싸고 있던 미녀들이 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 몇몇은 소매를 걷어붙였는데, 금방이라도 머리끄덩이를 쥐고 싸울 것만 같았다.
 
 그녀들의 모습에 제스는 짐짓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아, 왜 다들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거야? 난 싸움이 싫어. 증오가 가져오는 건 추한 모습뿐이란 말이야. 다들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봐. 악마같이 찡그리고 있다고.”
 
 끔찍하다는 듯 도리질을 치는 제스의 우아한 탄식에 여인들의 마음이 여지없이 흔들렸다.
 
 “오, 오라버니, 죄송해요.”
 
 “미안해, 동생님. 다시는 안 그럴게.”
 
 ‘흐흐, 그래야지. 내가 너희들을 어떻게 꼬셨는데. 하나라도 떨어져 나가면 손해가 막심이라고.’
 
 그렇게 제스가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그 어떤 여인들보다 화려한 성장에 아리따운 미모를 갖춘 아가씨가 제스에게 다가와 고운 입을 열었다.
 
 “야, 인마 넌 뭐야?”
 
 제스는 처음에 뭔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저런 아리따운 여인의 입에서 거칠고 퉁명스러운 사내의 목소리가 튀어나오다니.
 
 “지금 뭐라고 하셨······?”
 
 “넌 뭐냐고, 새끼야!”
 
 여인이 거침없이 따귀를 날렸다.
 
 짜악!
 
 눈앞에 번개가 번쩍이더니 주변의 풍광이 싹 바뀌었다.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 입은 미녀들은 온데간데없고, 대신 감색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자신을 빙 둘러싼 채 키득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대장인 듯 보이는 우락부락한 인상의 사내가 눈앞에서 자신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손을 치켜든 것이 좀 전에 따귀를 날린 게 그였던 듯.
 
 그들의 뒤로는 푸르른 바다가 펼쳐져 있어야 할 풍경 대신, 회색빛의 높고 두터운 벽이 서 있었다.
 
 마치 그가 지난 반년 동안 지겹게 보아 왔던 듯한 모습의······.
 
 “여, 여기는 어디죠?”
 
 제스의 물음에 우락부락한 인상의 사내가 피식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알카트레스다.”
 
 “······에?”
 
 순간 제스는 자신이 잘못 들은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락부락한 인상의 사내는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듯 친절하게 한 자 한 자 끊어서 응답해 주었다.
 
 “알.카.트.레.스! 카리아 왕국 최고, 아니 엘트로나 대륙 최고의 형무소가 바로 여기다!”
 
 “그, 그런!”
 
 제스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은 분명 밀거래상의 마차에 타고 있었다. 그런데 깨고 나니 왕국 반대편의 형무소라니!
 
 그것도 한 번 들어오면 죽어서도 못 나간다는 최고의 악명을 떨치는 그 알카트레스라니!
 
 “크아악!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다고!”
 
 머리를 움켜쥔 제스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1장.
 
 
 
 
 
 “크하하하핫!”
 
 카리아 왕국의 왕궁 한쪽에서 통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웃음소리가 나온 곳은 법무대신의 집무실로, 주인공은 다름이 아닌 법무대신인 지브릴 백작이었다.
 
 책상을 탕탕 치다 못해 심지어 눈물까지 질금 흘리던 지브릴 백작은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곁에 있던 부대신(副大臣)에게 말을 건넸다.
 
 “정말인가? 그 제비 녀석이 알카트레스에 들어갔다는 거 말이야.”
 
 “그렇습니다, 각하. 꽤 주도면밀하게 탈옥을 한 듯합니다만, 결국 더한 막장으로 떨어진 셈이지요.”
 
 “크하하핫! 역시 세상에 신은 존재하셨군!”
 
 10년 묵은 체증이 확 날아가는 것을 느낀 지브릴 백작은 또다시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어느 정도 백작의 웃음이 잦아들었을 쯤, 부대신이 다시 말을 건넸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놈의 처분을 어떡하실 겁니까?”
 
 “응? 놈의 처분을 어떡하다니?”
 
 “왕국법령에 따르자면 탈옥수는 가중 처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당연히 원래 있던 형무소가 3급이었으니 2급 형무소로 보내야 합니다.”
 
 “귀찮게 그런 짓을 왜 하나? 그냥 알카트레스에 박아 두라고 해.”
 
 어느새 웃음을 거둔 법무대신이 정색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부대신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알카트레스는 대역죄인들과 무기수들을 가두는 특급 형무소입니다. 탈옥을 했어도 그놈은 한낱 잡범일 뿐인데 거기 박아 두기엔······.”
 
 “잡범? 그 자식이 잡범이라고?”
 
 법무대신의 굵은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진정하라는 듯 부대신이 양 손바닥을 내미는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언성을 높였다.
 
 “자네는 아들만 둘이니까 그놈의 사악함에 대해서 잘 모르겠지! 하지만 딸 가진 왕국 귀족들치고 클로드 엘로이스에 대해 치를 떨지 않는 이들이 없어!”
 
 클로드 엘로이스.
 
 제스라는 본명보다 작업명이 세간에 더 잘 알려진 평민 출신의 제비족이다.
 
 지난 5년 동안 수많은 귀족가의 여인들이 놈에게 몸과 마음을 농락당했다.
 
 놈의 마수에 걸린 여인들 중에는 상경한 지방 영주의 영애들도 있었고, 왕도에서 이름 높은 명문가의 귀부인들도 있었다.
 
 그녀들은 놈이 여러 여인들과 사귄다는 것을 알면서도 분노하거나 관계를 끊지 못했다.
 
 놈의 뺀질한 인상과 현란하고 교활한 말솜씨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기네끼리 다투면 다투었지, 놈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아무튼 놈이 나타난 뒤로 왕국 귀족가에선 부부간 불화와 파혼이 끊이지 않았다.
 
 지브릴 백작의 무남독녀도 놈의 마수에 걸렸다.
 
 백작의 외동딸은 놈에게 헤어날 줄을 몰랐고, 결국 왕실과의 혼사가 취소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분노한 백작은 귀부인들의 아우성을 무시하고 놈을 체포해 감옥으로 보냈다.
 
 “그 악마 같은 놈은 나라를 어지럽힌 중범죄자야! 내 마음 같아선 그냥 단두대로 보내고 싶지만, 국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참는 것이야!”
 
 ‘그 때문이 아니면서······.’
 
 부대신은 백작이 제비 녀석을 처형시키지 못한 이유가 카리아 왕실 근위기사단장인 린드버그 여후작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 제비를 총애하고 있었다.
 
 체면 때문에 제비 놈의 처벌을 반대하지 않았지만, 중형을 받지 않도록 재판관들에게 은근히 압력을 행사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판결이 공정(?)하지 못하면 근위기사단에 있는 재판관들의 아들을 국경으로 좌천시키겠다고.
 
 “어흠, 하여튼 알카트레스에 박아 놓도록! 위법이긴 하지만, 자네가 손을 써서 밖으로 말이 나가지 않도록 하란 말이야.”
 
 ‘역시 린드버그 여후작의 눈치를 보는군.’
 
 그렇다고 백작을 탓할 수는 없었다.
 
 린드버그 여후작은 전쟁에서 매번 승리하여 왕국의 위상을 드높인 여걸.
 
 그런 그녀에게 찍히고 싶은 귀족은 없었다. 그래서 그녀와 반대 파벌인 지브릴 백작 역시 은근히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알카트레스에 대해서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그’는 아직 살아 있나?”
 
 ‘그’에 대해 언급되자, 부대신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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