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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방법 1-1

2018.07.30 조회 3,345 추천 36


 인터넷으로 사회를 지배하는 방법 1권
 
 
 목차
 
 프롤로그
 1장 이런 현실
 2장 보이는 것들
 3장 스노우 볼
 4장 의도치 않은 일
 5장 만약에
 6장 관심을 가지자
 7장 선동과 날조
 8장 간단한 게임Ⅰ
 
 
 
 프롤로그
 
 
 
 “흐아아~”
 
 임승훈은 바퀴가 달린 푹신한 의자를 뒤로 가볍게 밀었다.
 그 다음으로 양팔을 앞으로 뻗어 깍지를 낀 채 쭉 내밀었다가 그대로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꾸욱 하고 감은 눈에서는 찔끔하고 눈물이 새어 나왔고 굳었던 목과 허리에서 뚜둑 하는 소리가 났다.
 의자에 앉아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도 효율적인 스트레칭 방법이다.
 이것으로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어준 임승훈은 다시 환하게 켜진 모니터 화면과 옆에 놓여 있는 서류더미들을 바라보았다.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되건만 그가 야근을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바로 옆에 쌓인 서류더미들.
 하지만 이 서류들은 처리해야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임승훈은 서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서류더미들에는 현재 가장 잘나가는 라면에 대한 모든 것들이 담겨 있었다.
 국물 라면. 비벼 먹는 라면. 혹은 국수의 형태를 취한 것들도 전부 다 있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라면이 이 서류더미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임승훈이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새로운 라면 출시를 위한 기획 작업이었다.
 고작 라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왜냐면 라면은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음식이다.
 아무리 비싼 라면이라도 결국 라면은 라면이라는 것이다.
 장담컨대 라면에게 가치를 매기는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의 인식에서 라면은 비싸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는 것은 바로 손쉬운 접근성을 말하는 것이며 누구나 부담 가지지 않고 라면을 장바구니 안에 집어넣는다.
 동네 슈퍼부터 편의점, 대형 마트에 이르기까지 라면이 없는 곳은 없다.
 전국의 모든 유통 업체는 라면 전용 진열대를 만들어서 팔고 있으며 이 라면을 팔기 위한 경쟁은 스포츠 선수들의 금메달을 향한 열정만큼이나 뜨겁다고 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임승훈이 지금 하는 것은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마트에 공급될 라면을 기획하는 것이다.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뭐든지 만들어 판다는 대기업.
 (주) 선우 그룹의 프로젝트인 것이다.
 그렇기에 임승훈에게 라면은 절대 가치 없는 음식이 아니다.
 그의 인생, 그의 미래가 전부 여기에 달려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의 인생, 그리고 미래는 지금 새로 기획하고 있는 이 신제품에 달려 있었다.
 2017년 라면 시장의 규모는 2조 9000억 원 정도로 얼마 지나지 않아 3조원을 돌파한다.
 그리고 지금. 임승훈은 그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첫 시도를 하는 것이다.
 이제 막 대리를 달고 겨우 2개월. 그런 그에게 내려온 이 천금과도 같으며 만금과도 바꿀 수 없는 기회를 임승훈은 반드시 잡아야만 했다.
 
 ‘박 과장님 감사합니다.’
 
 임승훈은 다시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기회를 준 박상준 과장에게 속으로 감사를 표했다.
 대리 2개월 차인 그에게 누가 이런 기회를 주겠는가?
 물론 제대로 따지면 박 과장은 아니다. 다만, 박 과장은 임승훈이 선우 그룹에 신입 사원으로 들어올 때부터 눈여겨봤었다.
 더 정확히는 면접 때부터. 그리고 마음에 들어 했다.
 그가 마음에 들어 하는 만큼 임승훈은 싹싹했으며 일 처리도 잘해냈다.
 그런 박 과장은 자신의 상사인 정관진 차장에게 임승훈에 대한 것을 말해주었다.
 그 뒤에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임승훈은 모른다.
 하지만 결과를 내리자면 잘됐다.
 임승훈 혼자서 신제품을 기획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신입 사원이었으면 손도 못 대어 봤을 기회를 잡아서 이렇듯 회사에 남아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다음에도 이런 일을 맡아서 해보고 싶다면 결과를 내야하는 것이다.
 결과가 없으면 과정은 없다. 잘 안 되어도 사람 좋은 박 과장은 어쩌면 임승훈의 노력을 알아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회사는 냉정하고 냉혹하다. 실패할 경우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3조원의 시장. 이미 나올 수 있는 모든 라면은 다 나와 있다. 어떤 맛이 사람들을 끌어모을 것인가······.”
 
 임승훈은 마치 주문을 외우듯 혼자 중얼 거리며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시장에서 잘나간다는 라면은 모조리 먹어봤으며 삼시 세끼를 모두 라면으로 처리할 정도로 그는 이번 일에 열광하고 열망했다.
 평범한 맛의 라면에 온갖 소스를 뿌려 먹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임승훈은 최종적으로 나온 자신의 아이디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기 위해 거듭 고민하며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지금 임승훈의 모니터에 뜬 것이 바로 그의 결과물들이었다.
 하나는 시원하고 맑은 갈비탕 국물로 맛을 우려낸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컨셉으로 잡은 라면.
 두 번째는 정말 시원하면서도 화끈하게 매운 맛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비빔 라면.
 각각, ‘갈비탕면’과 ‘화끈! 비빔냉면’이라는 단순하지만 소비자들이 보면 이 제품이 무슨 라면인지 바로 알 수 있는 단순한 이름으로 지어놓았다. 물론 이것도 임시로 지은 것들뿐이지만.
 
 “후우.”
 
 임승훈는 한숨을 한 번 내쉬며 지금 해 놓은 것들을 저장해 놓았다.
 그리고 뺨을 착착! 소리가 나게 한 번씩 치고는 고개를 한 번 흔들었다.
 지금 졸리다고 생각할 때가 아니다. 지금이 어떤 때인데 속 편하게 눈꺼풀의 무게를 느낀단 말인가.
 그렇게 밤이 새도록 임승훈의 작업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임승훈은 자신이 좋아하는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들어간 사리를 생각하며 만든, 이름 하여 ‘짜글이면’을 저장했고 그러고 나서야 탕비실에서 겨우겨우 쪽잠을 잘 수 있었다.
 아무도 없이 고요한 회사에서 모포를 바닥에 깔고 누운 임승훈은 잠들기 직전, 다시 주문을 외우듯 뭐라고 웅얼거리며 잠에 들었다.
 
 ***
 
 다음 날 임승훈은 누구보다도 먼저 출근해 있었다.
 뭐,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퇴근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임승훈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노력의 결실이 열매를 맺어 주기만을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그다음은 정리하고 검토하고 또 한 번, 다시 한번,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검토하는 게 이제 남은 일이었다.
 
 “앞으로 한 시간······.”
 
 지금 시각은 8시 5분. 업무 시작 시간은 9시부터이나 20분에서 30분 정도 전에 사원들은 먼저 와서 준비한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태우며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마치는 것이다.
 그러나 임승훈이 자신의 결과물을 직접 박 과장에게 넘기는 것은 5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가 될 것이다.
 그렇게 임승훈은 다시 자신이 하던 작업을 반복했다.
 검토하고 또 검토 하는 것. 이제는 자신에게 행운이 따라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어릴 적에는 천주교를 다녔고, 사실상 지금은 무교인 임승훈은 정말 오랜만에 신의 이름을 불렀다.
 
 “한번만 도와주세요. ···저,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신에게 기도하며 부탁하는 것 치고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영 불량스러운 자세지만 지금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간절히 바랄 그럴 때는 아직 아니다.
 그리고 얼마 쯤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임승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으앗!”
 “왓!”
 
 정말 집중하고 있었던 듯 임승훈에게서 격렬한 반응이 튀어 나왔다.
 그러자 어깨에 손을 올린 사람 역시 깜짝 놀랐다.
 그리고 임승훈이 뒤를 바라보니 친구이자 입사 동기이기도 한 한찬성의 모습이 보였다.
 
 “깜짝이야··· 찬성이구나.”
 
 임승훈이 놀란 얼굴로 말하자 한찬성이 씨익 웃으며 임승훈의 책상 위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 올려 두었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친구였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나온 단짝 친구였다.
 그러나 고등학교가 바뀌며 헤어졌는데 이곳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아이고, 우리 대리님이 또 밤을 새셨어?”
 “그래. 그것도 오늘로 끝이지만 말이야.”
 “오늘이? 그럼 오늘은 야근 안 하냐?”
 “그래.”
 
 임승훈은 대리. 그리고 한찬성은 아직 사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둘만 있고 누군가 듣는 사람이 없을 때는 호칭 같은 건 생략해 버렸다.
 임승훈은 전혀 개의치 않았고 한찬성 역시 털털하고 낙천적인 성격 탓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대리는 할 만해?”
 “월급은 올랐는데··· 알잖아. 여기저기서 치이고 다니는 거.”
 “아, 그 병신 때문에?”
 
 임승훈이 실실거리며 말했으나 한찬성은 곧바로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적의를 내보였다.
 그러자 임승훈이 조금 놀라며 주변을 둘러본 뒤 주의를 주듯이 말했다.
 
 “야, 말조심해야 돼.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긴 그놈이 쥐새끼 같은 놈이긴 하지.”
 
 한찬성이 신나게 씹어대는 것은 바로 선우 그룹 회장의 손자였다.
 선우 그룹의 하선우 회장은 참된 기업인이다. 그가 정직함을 모토로 일으킨 기업은 올바르고 신선한 음식이라는 이미지로 착실하게 성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우 그룹은 독립군의 후손이 만든 회사라는 막강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한국에서 만큼은 가히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완벽한 이미지.
 그리고 이제 세월이 흘러 하선우 회장의 아들인 하지운 부회장이 오늘내일 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회장직을 물려받게 될 것이다.
 아니, 사실상 이미 회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하지운 회장은 아버지의 발판을 딛고 일어서 선우 그룹을 한국 굴지의 식품 기업으로 더욱더 성장시켰다.
 하지만 어디서나 나오는 흔한 이야기처럼 재벌 2세나 3세들은 개념이 없다.
 그렇지만 하지운 회장의 능력은 뛰어나다.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는 아버지에게 받은 회사를 더욱더 크게 키웠으니까.
 하지만 사실상 지금은 올바르고 바른 먹거리를 모토로 했던 선우 그룹은 여타 다른 기업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덩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지만 예전의 하선우 회장 때처럼의 실속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대기업은 대기업. 여전히 시장 점유율의 30%가 조금 안 되는 정말 무시무시한 실적을 기록하는 것이다.
 마트에서 아무 과자나 집으면 거기에는 선우라는 로고가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지금 한찬성이 신나게 씹어대는 선우 그룹의 3세는 정말 아무런 고생도 해본 적 없고 그런 것을 구경도 못 해본 놈이다.
 하영철.
 태어나자마자 금수저를 입에 물고 양손에도 하나씩 쥐고 태어난 재벌3세.
 아래로 하예령이라는 여동생이 하나 있으며 형이나 누나는 없다.
 때문에 하영철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가진 선우 그룹에서 훗날 회장직을 가지게 될 것이다.
 하나 놀랍게도 그런 하영철이 현재 선우 그룹에서 가진 직급은 사원이다.
 그렇기에 하지운 회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는 오로지 실적으로 사람을 판단했고 그것은 아들도 예외가 아니란 것이다.
 하나 이렇게 되니 피곤한 것은 회장 아들과 눈을 마주치는 사원들이 괴롭다.
 재벌 3세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고생을 모르는 25세의 개념 없는 청년.
 한찬성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새끼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놈은, 회사 내에서 일으킨 성추행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게 된 여직원을 임승훈이 본 것만 해도 세 명이나 되었다.
 물론 그런 사회적 물의는 항상 그렇듯이 한 달이 지나기도 전에 조용히 묻히고 지나가게 마련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게 아니다.
 이 개념 없는 새끼는 시도 때도 없이 임승훈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렇다.
 개념 없는 새끼 하영철은 임승훈, 한찬성과 같은 부서였고 심지어 대리도 아니고 사원이었다.
 
 “최근에는 조용하더라. 그러니까 가만히 내비 둬.”
 
 임승훈이 조금 흥분한 것 같아 보이는 자신의 친구를 달래주었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어 한 모금 빨아 삼키며 말했다.
 
 “어쨌든 고맙다. 잘 마실게.”
 “어어, 그래. 어쨌든 오늘 야근 안하면 간만에 한잔하자.”
 “나, 술 못 마시는 거 알잖아.”
 “그래. 그러니까.”
 
 한찬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가볍게 손을 흔들며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현재시각 8시 27분.
 이제 30분 정도만 있으면 박 과장이 애들아 안녕? 이라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출근할 것이다.
 그리고 임승훈은 떨리는 마음과 동시에 걱정이 뒤섞인 복잡한 심정으로 다시 검토를 시작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정신없이 모니터에 열중하던 임승훈의 귀에 애들아 안녕? 이라는 익살스러운 목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임승훈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자신에게 기회를 쥐어주었던 박상준 과장이 손을 흔들며 옆구리에 까만 가방을 하나 메고 출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임승훈은 컴퓨터에 끼워두었던 USB와 함께 꼼꼼히 정리된 기획서를 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를 바라며······.
 
 
 
 1장 이런 현실
 
 
 
 임승훈은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A4용지에 빼곡히 적힌 글들을 계속해서 읽어보았다.
 2주일 전.
 여름을 대비해서 선우 그룹은 새로운 제품들의 기획을 짜서 내놓으라 했고 오늘이 바로 그 발표날이었다.
 과자, 아이스크림. 아이들이 조그만 손으로 집어 드는 500원짜리 젤리 같은 것들은 이미 어제 발표가 끝났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식사 대용품들. 라면부터 빵 그리고 냉동식품에 관하여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발표를 한다는 것은 스포츠 경기로 말하자면 예선을 거쳐서 본선으로 올라왔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즉, 자신이 기획한 제품이 종이 속에만 머물다가 세절지에서 파쇄된 뒤 쓰레기통으로 들어갈지. 혹은 세상에 나와 사람들이 사 먹는 제품으로 빛을 볼 지가 결정되는 중요한 자리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기회는 당연하게도 2개월 차 대리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임승훈에게는 아니었다. 기회는 주어졌고 여기까지 왔다.
 현재 저 복도 끝의 방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은 바로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먹는 냉동식품에 관한 것이었고 그다음이 바로 임승훈이 며칠 동안 잠도 못자며 고생해서 만든 상품. 라면에 관한 발표 시간이다.
 그리고 그 첫 타자가 바로 임승훈 본인인 것이다.
 
 “후우.”
 
 가슴을 답답하게 옥죄는 무언가를 토해내듯, 임승훈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 갈증과도 같은 무언가는 해소되지 않았고 더욱더 몸을 옥죄는 것 같았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임승훈은 자기최면과도 같은 말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자신은 회사를 이끄는 임원들 앞에서 당당한 자세로 자신이 기획하고 만든 제품을 발표해야 한다.
 이 제품이 어째서 성공하는지. 어째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지.
 더 나아가서는 한철 반짝 장사가 아닌 10년, 20년이 지나도 사랑받을 수 있는 제품인지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한다.
 임승훈은 조금 굽혔던 허리를 다시 꼿꼿이 세웠다.
 그리고 끝부분이 살짝 땀에 젖은 기획안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때였다. 위부터 차례대로 3줄 정도 읽었을 때쯤 발소리가 들렸다.
 그 갑작스런 발소리에 임승훈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임승훈은 정말 깜짝 놀랐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로 나와 이쪽으로 걸어오는 일련의 사람들.
 그리고 그 선두에 선 큰 키에 줄무늬가 들어간 회색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
 
 ‘부회장!’
 
 바로 하지운 부회장이었다.
 그 옆으로는 회장의 아들인 하영철이 보였고 그 뒤쪽으로 따라오는 사람들은 한눈에 봐도 전부 회사의 중요직을 차지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아니, 틀림없이 그럴 것이었다.
 거기서 회장과 하영철을 제외하고 임승훈이 아는 사람은 정관진 차장. 한 사람뿐이었다.
 
 “······.”
 
 침묵 속에서 그들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져 왔다.
 그 거리가 점점 좁혀질수록 임승훈의 심장은 더욱 빠르게 요동쳤다,
 그리고 이제는 두런두런 나누는 말소리까지 확연히 들려왔다.
 무표정인지 근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하지운 부회장의 표정이 정확하게 보였고 그 뒤로,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여러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하영철의 모습이 보였다.
 하영철의 직급은 사원. 당장 임승훈보다도 아래이지만 부회장의 아들이다.
 하영철의 인성이 어찌됐든 그가 가진 배경이 부회장의 아들인 이상 사원이라고는 보기는 어려우니 어쩌면 저것이 당연한 광경이리라.
 그리고 이내 몇 발자국 더 다가온 부회장의 무심한 눈길이 슬쩍 임승훈을 향했고, 임승훈은 그것을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임승훈은 허리를 핀 완벽한 차렷 자세에서 허리만 직각으로 내리꽂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너무 크게 소리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작지도 않았다.
 다만 복도가 조금 울리지 않았을까하는 걱정은 되었다.
 고개를 숙인 임승훈에게 부회장과 하영철 그리고 다른 임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뚜벅뚜벅하는, 구두가 만들어내는 발소리만이 들렸을 뿐이다.
 ‘어, 그래’ 하는 화답도 없었다. 들리는 것은 오직 발소리뿐이었고 하영철의 웃음소리였다.
 곧, 그들은 임승훈을 지나쳐 갔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임승훈은 굽혔던 허리를 세우지 않았다.
 발소리는 점점 멀어져 갔고 몇 초 정도 더 흐르고 나서야 임승훈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허리를 피는 순간. 슬쩍 뒤를 돌아보는 하영철과 시선이 마주쳤다.
 뭐라고 말하며 입술이 달싹이는 것처럼 보였는데 거리가 멀어 들리지도 않으니 뭐라고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발표가 한창 진행 중인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것을 보고 임승훈은 더욱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곧 자신이 저기로 들어가 발표를 할 텐데 거기로 부회장이 들어가 버렸다.
 그렇다는 것은 부회장이 발표를 직접 듣는다는 것이다.
 
 “흐어.”
 
 탄식과도 비슷한 한숨이 임승훈의 입에서 더운 공기와 함께 튀어나왔다.
 최근 들어서 선우 그룹은 그 덩치를 계속해서 불려나가는 중이다.
 이제는 나이가 많아 회장직을 달고는 있지만 뒤로 물러난 하선우 회장.
 그 대신에 경영권을 받은 하지운 부회장은 정말 무서운 기세로 규모를 불려나가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신경 쓰는 곳이 바로 오늘 발표중인 식사 대용품이었다.
 선우 그룹의 라이벌인 청원 식품에서 카레나 짜장, 만두를 비롯해서 미니 돈가스 같은 냉동식품 등은 거의 선두 주자로서 꽉 잡고 있기에 그것을 부회장이 의식하는 것이다.
 적어도 임승훈은 그렇게 판단했다. 아니, 맞을 것이다. 그렇기에 부회장이 여기까지 직접 행차한 것이다.
 
 ‘짝짝짝’
 
 복도를 타고 희미하게 박수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발표가 끝난 모양이었다. 그 다음 차례는 바로 자신이기 때문에 임승훈은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때,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낮은 하이힐을 신은 여성이 나왔다.
 이름은 모른다. 직급도 모른다. 하지만 저 여자가 부르면 들어가면 된다.
 한층 더 긴장되는 순간이었으나 임승훈은 거의 본능적으로 심호흡을 하며 성큼성큼 걸었다.
 그 여성 역시 앞으로 조금씩 걸어왔다.
 그리고 서로 마주친 순간. 여성이 말했다.
 
 “임승훈 대리?”
 “예, 맞습니다.”
 
 목소리를 떨지 않은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칭찬받아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여성이 말했다.
 
 “손에 들린 그거, 이리 줘 봐요.”
 “예.”
 
 임승훈은 잠깐,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선뜻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건네받은 여성이 말했다.
 
 “수고했어요. 이제 가 봐요.”
 “···예?”
 “가서 일하면 돼요.”
 “하지만······.”
 
 정말 바보같게도 임승훈은 이제 자신이 발표할 차례라고 말하지 못했다.
 굳이 변명하자면 말할 틈도 없었다.
 여성은 임승훈을 무신경하게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결과는 나중에 알려줄 거예요.”
 
 그러고는 그대로 뒤돌아 가버렸다.
 임승훈은 손을 뻗어 그녀를 잡는다라거나 혹은, 소리쳐 무슨 일인지 말해달라는 그런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저 점점 멀어지다가 이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그 여자의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잠깐 동안 멍하니 서 있던 임승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뒤돌아섰다.
 그리고 조용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
 
 자리로 돌아온 임승훈에게 제일 먼저 다가온 것은 한찬성이었다.
 아직 업무 시간이지만 지금은 조금 널널한 시기다.
 깐깐한 정관진 차장도 없었고 박상준 과장은 조금 프리한 스타일이었으므로 이정도의 일은 눈감아 주었다.
 
 “야, 어땠냐?”
 “···뭐가.”
 “뭐긴 뭐야. 발표 말이지. 어떻디? 좋다고 박수쳐 주고 막? 응?”
 “아니··· 아니야.”
 
 임승훈은 차마 안에는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자 한찬성이 이제는 아예 옆에 쭈그려 앉으며 말했다.
 
 “너 진짜 열심히 했잖아. 혹시 잘되면 나 잊지 마라. 내가 사준 커피 그거 졸라 비싼 거다.”
 
 그 실없는 농담에 임승훈은 그제야 피식 하고 웃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그리 심각한 일도 아니었다.
 다만 대리가 부회장과 임원들 앞에서 발표한다는 것이 어쩌면 윗분들에게는 조금 그랬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게라도 믿고 싶었다.
 그래도 결과는 나중에 알려준다고 했으니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면서 다시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그래, 잘되면 졸라 비싼 걸로 갚아주마.”
 “집? 차? 요트?”
 “이런 미친놈이?”
 
 한찬성의 너스레에 임승훈은 그제야 가슴이 좀 시원해지는 걸 느꼈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뭐하니?”
 
 임승훈과 한찬성이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실실 웃는 표정의 박상준 과장이 서 있었다.
 
 “······.”
 
 무릎을 꿇고 불량배마냥 앉아 있던 한찬성은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러고는 박상준 과장에게 인사를 한 다음 그대로 말없이 자리로 돌아갔다.
 
 “어, 일어나지 말고. 그래, 어땠어?”
 
 자리에서 일어나려 움찔거리는 임승훈을 박 과장은 손으로 어깨를 눌러 다시 앉히고는 말했다.
 임승훈은 박 과장에게는 대충 얼버무릴 수가 없어 솔직히 말했다.
 기다리던 중에 회장이 지나간 것들.
 거기에 있던 하영철과 정관진 차장의 모습. 그리고 아마 비서라 생각되는 여성에게 들었던 말들.
 그 말을 들은 박 과장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이내 고개를 한 차례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그게 다였다.
 박 과장은 흐음······, 하고는 다시 임승훈의 어깨를 한 차례 툭툭 두들겼다.
 그러고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임승훈은 돌아가는 박 과장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6월의 막바지가 찾아왔다.
 그리고 오늘도 임승훈은 여느 때와 같이 출근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손을 들어 인사할 때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손을 들어 반겨주었다.
 그리고 정말 드물게, 임승훈은 박상준 과장이 일찍 출근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항상 8시 50분쯤 나타나던 박 과장이 현재 시각 8시 27분에 이미 도착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기에 임승훈은 자리에 가방을 내려두고 먼저 박 과장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그 소리에 박 과장이 고개를 들었다. 한데, 표정이 이상했다.
 항상 싱글싱글 웃던 얼굴은 어디가고 눈썹을 찡그린 게 어디 아픈 사람처럼 보였다.
 
 “···어. 승훈이구나.”
 “아, 예.”
 
 임승훈은 처음 보는 박 과장의 모습에 조금 어색하게 웃으며 역시 조금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서 박 과장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임승훈은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시 물었다.
 
 “어디 아프신 게······.”
 
 그때, 박 과장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임승훈에게 말했다.
 
 “잠깐, 어디 좀 가지.”
 
 이유는 모르지만 어째선지 절박하게까지 들리는 그 목소리에 임승훈은 바로 ‘예’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앞장서는 박 과장의 뒤를 따라서 간 곳은 사무실을 나와 복도를 조금 걸으면 나오는 휴게실이었다.
 그곳에는 먼저 온 한찬성이 다른 동료들과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러자 박 과장은 인사를 받기도 전에 손을 내저어 담배 연기를 흩뜨리곤 말했다.
 
 “내가 개인적인 일이 있는데 잠시 자리 좀 비켜주게.”
 
 평소와는 전혀 다른 박 과장의 모습에 한찬성과 다른 이들이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그리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찬성을 포함해서 전부 임승훈과 한 번씩 눈을 마주치고는 박 과장에게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휴게실을 빠져나왔다.
 이제 휴게실에는 담배 연기와 함께 적막감만이 감돌았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는 동안 박 과장은 뒷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
 
 휴게실에는 의자와 탁자가 마련되어 있지만 아직 박 과장도, 임승훈도 자리에 앉지 않았다.
 연기가 어지럽게 뿜어져 나왔고 그것이 마치 커튼처럼 박 과장의 얼굴을 가려 주었다.
 그 숨 막히는 광경을 보며 임승훈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다시 한번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박 과장이 조용히 말했다.
 
 “승훈아··· 너 해고당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부회장의 아들놈은 사원으로 있으면서 온갖 불만을 표출하는 중이다.
 경영권을 물려받은 하지운 부회장은 자신의 사업을 더욱 크게 무서울 정도로 세를 불려나가는 중이다.
 결정적으로 하지운 부회장은 냉정하고 냉철하게. 그리고 이사회에 자신의 힘을 보이고 입지를 완벽하게 다지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된 일이다.
 하지운 부회장은 이사회에 자신을 어필했다. 그리고 개념 없는 하영철은 자신의 아버지인 하지운에게 자신을 어필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 방법이라는 것은 자신의 노력이 아니다.
 재벌 3세라는 그 완벽한 위치는 타인의 노력마저도 자기 것으로 만들 정도의 힘이 있었으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이것은 정리 해고도 아니고 구조 조정도 아니며 부당 해고이다.
 진실이 아닌 현실.
 그 빌어먹을 현실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임승훈은 같이 일하는 동료이자 부하 직원이기도 한 하영철 사원의 기획 결과물을 마치 자신이 한 것처럼 꾸몄다. 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부당 해고가 아니라 징계 해고이다.
 맞다.
 개소리다. 이런 개소리가 또 있을까?
 단언컨대 임승훈은 자신의 징계와 그에 따른 조치로 해고한다는 통보. 그리고 그 사유가 적힌 봉투를 자신의 책상 위에서 발견하고 읽어 보기 전까지는 박상준 과장의 말을 믿지 못했다.
 정말 바보같이도 이것이 질 나쁜 장난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박 과장의 평소 행동이 그렇기 때문이니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박 과장은 모르고 있었다.
 정관진 차장은 그 차장이라는 직책답게 높은 연봉도 받았고 일처리도 나름대로 해내었으나 더 높은 자리를 원했고 사원이라는 직책으로 기획부에 배치된 하영철을 보며 기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천박하고도 적나라하게 속된말로 하자면, 정관진 차장 이 벨도 없는 개새끼가 하영철, 그 망나니 새끼의 뒷구멍을 빨아 재낀 것이다.
 그것도 아주 격렬하게.
 
 “개새끼들. 엿 같은 새끼들······.”
 
 거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임승훈은 자신의 앞에 놓인 소주를 한 번에 쭉 들이켰다.
 식도가 타는 듯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맛대가리도 없다.
 술을 하지 못하는 임승훈에게 소주라는 것은 그저 영업과 사회생활의 일환으로 사용되는 것일 뿐이지 고통을 잊기 위해 마시는 현실 도피처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소주잔 따위를 사용해 고상하게 술을 마시려는 생각이 없었다.
 이제 더워지기 시작되는 여름. 반팔 티와 반바지가 어색하지 않을 시기에 임승훈은 갑갑한 와이셔츠와 검은 정장 바지를 입고 소주를 들이켰다.
 
 “씨이발 놈들··· 개쓰레기 새끼들······.”
 
 욕이 절로 나왔다. 소주를 마시면 잊을 수 있다고?
 이것 역시 개소리였다. 그저 고통스럽기만 하다.
 세 번째 벌컥 하고 마셨을 때부터 임승훈은 소주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아니, 댈 수가 없었다.
 
 뚜루루루루~
 
 그때 스마트폰의 벨이 울렸다.
 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바로 한찬성이다.
 회사를 나와 집에 틀어박혀 옷조차 벗지 않은 채 하염없이 욕을 내뱉고 웃고 울고 있는 임승훈에게 하루 진종일 전화를 건 것은 친구인 한찬성이었다.
 하지만 임승훈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스마트폰의 벨이 울리고는 있지만 방은 고요하고 적막하기만 하다.
 그런 방의 한가운데에 앉은 임승훈은 공허한 가슴을 느끼며 소주를 잡았다.
 
 
 
 2장 보이는 것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2개월 차 대리가. 아니, 이제는 인간 임승훈이 자신의 상황이 부당하다고 소리칠 수 있겠는가?
 아니면 아부 떨 성격이 못되는 만년 과장 박상준이 가족도 아닌 임승훈을 위해서 이것이 부당하다고 온 사방에 떠들 수 있을까?
 아니다. 절대 불가능하다.
 개인이 기업을 상대로 덤벼 봐야 아무 소용없다.
 물론 노동부가 존재한다. 그들은 임승훈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러나 이것이 부당 해고가 아닌 징계 해고라는 사실이 있었다.
 사유의 정당성?
 징계의 적정성?
 절차의 정당성?
 전부 헛소리다. 이제 남은 것은 실업 급여라도 챙기는 일이다. 정말 슬프게도 임승훈은 자동으로 현실을 직시하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것이 싫다면 부당하다고 소리치며 피켓 하나 들고 1인 시위라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쓸데없으며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임승훈은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기업이 거느린 무수히 많은 변호인단을 혼자서 상대하는 건 어리석다 못해 미친짓이다.
 혹여 몇 개월 몇 년에 걸쳐 승소하더라도 남는 것은 푼돈일 뿐이며 그때쯤 가면 인생은 완전히 나락으로 빠질 테니 말이다.
 그 상태로 어디서 다시 취직을 한단 말인가?
 
 “씨발놈들. 씨발새끼들아! 쓰레기 새끼들! 좆같은 새끼들······.”
 
 실성한 것 마냥 욕설을 내뱉던 임승훈은 씩씩거리다가 이내 사그라들고 움츠러들었다.
 그러고는 멍한 눈으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
 
 이제는 벨소리조차도 끊겨 버린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임승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술과 담배를 하지 못하는 임승훈이 유일하게 스트레스를 해소 하는 방법은 인터넷이었다.
 딱히 뭔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연고라고는 한찬성밖에 없는 그에게 인터넷은 그 나름대로의 소통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임승훈은 마우스를 움직여 인터넷을 켰다.
 딱히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습관적이고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여 마우스의 버튼을 눌렀다.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임승훈의 눈에 온갖 인터넷 기사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임승훈은 반복적으로 그런 기사들을 하나씩 찾아서 눌렀다.
 전부 쓸모없는 것들이다.
 충격이니, 단독이니, 속보이니 하는 자극적인 제목과 선정적인 제목에 혹해서 눌러보면 안에 들어찬 것들은 전부 어처구니없는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똥덩어리들 뿐이다.
 
 “기레기 새끼들······.”
 
 임승훈은 그냥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 보인 것들은 전부 사회의 부조리함들 뿐이다.
 힘 있는 자가 약자를 얼마든지 짓밟고 위로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조롱한다.
 정치한다는 놈들은 수억대 뇌물을 받아 처먹으면서 그 아래의 사람들이 자그마한 선물을 받는 것에는 죄를 묻는다.
 연예인들은 대중의 관심을 구걸하며 앞에서는 웃고 미소 지으면서 뒤에서는 마약이나 빨아 재낀다.
 대기업은 프랜차이즈라는 딱지를 붙여 무소불위의 권력이라 생각해 갑질하는 본사라는 놈들은 가맹점의 고혈을 빨아 배를 불리기에 바쁘다.
 그리고 국민의 힘이 되어주어야 할 언론이라는 놈들은 이미 그런 놈들의 앞잡이나 다름없는 것들이다.
 물론 세상이 이렇게 팍팍하지는 않다.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의 선행도 존재하고 미담도 존재한다.
 하지만 임승훈의 머릿속에서 그런 것들은 떠오르지 않았다.
 열심히 살았다고 스스로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징계라는 탈을 쓴 부당 해고라는 놈이다.
 
 딸각 딸각.
 
 다시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려 아무리 봐도 감흥조차 없는 그 부조리한 기사들과 아래로 주르륵 달린 댓글들을 임승훈은 그냥 스크롤을 내려가며 바라보기만 했다.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목과 몸통.
 그리고 새빨개진 온몸이 그가 얼마나 취했는지 알려주는 지표였다.
 그렇게 몇 번이고 기사들을 클릭하던 임승훈은 키보드를 두들겼다.
 
 ‘이것도 기사라고? 니가 기자면 내가 신이다.’
 
 무표정하던 임승훈의 얼굴에 순간 아주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댓글 달고 관심 가져달라고 하는 악플러는 아니지만 그냥 웃음이 나왔다.
 그때, 뭔가 몸이 붕뜨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임승훈의 몸을 엄습했다.
 귀에서 삐- 하고 이명 음이 들리기 시작했고 머릿속에 심장이 들어간 듯 두근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 속삭이는 듯하면서도 멀리서 외치는 것처럼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실을 보는 눈을 습득합니다.]
 
 “어?”
 
 별안간 귀에서 들린 소리에 놀라며 임승훈은 눈을 떴다.
 그러나 이상했다.
 분명히 두 눈 멀쩡히 뜨고 인터넷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시 눈을 뜬 것이다.
 
 “···뭐지?”
 
 임승훈은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뭔가 기이한 위화감이 들었으며 누군가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곳에는 자기뿐이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 35만원의 둘러볼 것도 없는 조그만 방에는 분명히 혼자뿐이었다.
 아무래도 깜빡 졸았던 것이겠지 하고 생각한 임승훈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까맣게 암전된 흑색의 모니터에 희미하게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순간 짜증이 일었다.
 하지만 여기서는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집어 던질 물건도 없으며 임승훈 본인 역시 그렇게 스트레스를 풀 성격도 안 되었다.
 임승훈은 가벼운 한숨과 함께 손을 뻗어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오전 10시 32분.
 스마트폰의 시간은 이미 10시를 넘었다. 그것을 본 임승훈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일으키다가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 회사에 나갈 필요가 없다. 해고당했다. 개새끼들. 거지같은 새끼들.
 
 “······.”
 
 임승훈은 완전히 늘어진 자세로 스마트폰을 놓고 대신 마우스를 잡았다.
 그러자 컴퓨터에서 삑 하는 소리가 나며 다시 모니터가 켜졌다.
 기사가 보인다. 한국 최대의 포털 사이트인 네이쳐의 메인 페이지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속보로 나온 기사들이 떠 있었다.
 
 <탤런트 김정철 음주 운전>
 <배우 이옥령씨 12일 별세 향년 75세>
 <래퍼 카우키 마약 혐의 전면 부정>
 <아이돌 그룹 스틸 멤버 불화설로 곤욕>
 
 간단한 인터넷 기사의 제목들이다.
 연예인 음주 운전 적발은 항상 있던 일이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정말 흔한 일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배우 이옥령 씨, 향년 75세로 별세.
 임승훈은 이 배우가 누군지는 몰랐다. 아마 50대에서 60대의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그리고 아래의 래퍼 카우키가 마약 혐의를 전면 부정했다는 기사.
 임승훈은 그 기사를 거의 습관적으로 클릭했다.
 바로 아래에 있던 아이돌 그룹이 어쩌고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타나는 기사에, 아니, 광경에 임승훈은 눈썹을 와락 찡그렸다.
 
 “뭐지?”
 
 임승훈은 눈을 비볐다. 그리고 몇 번 끔벅이며 다시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응?”
 
 뭔가 이상했다. 기사 위에 뭔가 다른 글씨들이 겹쳐져 보였다.
 자고 일어났을 때처럼 눈앞에 뭔가 뿌옇게 끼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또렷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그 글자들은 모니터 화면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래퍼들의 선정적 가사 논란에 이어 이번에는 마약 관련 혐의가 떠오르면서 한국 연예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래퍼 카우키는 지난달 3월 이 모씨에게 대마 22g과 엑스터시 0.4g을 구입해 자택에서 삼키거나 흡연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번 가수 오승희 씨의 마약 논란이 잠잠해 지기도 전에 고작 한 달만에 다시 연예계 전반에 흐르는 마약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이에 검찰은 지난 10일 공소장을 접수하고 서울 중앙지방법원은 마약류 관리 법률 위반혐의로 첫 공판 기일을 30일로 확정했다.
 대중에게 영향력을 가진 연예계가 꾸준히 마약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다.
 특히 이들의 잘못된 선택이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것이 기사의 내용이다.
 그리고 그 기사의 위에 보이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래퍼 카우키는 지난 달 3월 이 모씨에게 대마 42g과 엑스터시 0.5g을 구입해 자택에서 삼키고 흡연했다.
 
 “마약이······.”
 
 래퍼, 카우키가 구입한 마약의 용량.
 대마 22g과 엑스터시 0.4g을 구입했다는 것을 정면으로 반박하듯이 모니터의 위에는 대마 42g과 엑스터시 0.5g을 구입해 자택에서 삼키고 흡연했다고 아주 단호하게 적혀 있었다.
 
 “이게 대체······.”
 
 임승훈은 다시 눈을 비벼 보았다.
 하지만 지금 보고 있는 것이 꿈도 아니고 착각도 아니고 환각도 아님을 어필하듯 겹쳐져 보이는 글자는 더욱 확실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것이 진짜 진실임을 임승훈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유는 몰랐다. 왜 그렇게 생각이 드는지도 알 수 없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어쨌든 눈앞의 저 떠 있는 듯한 글자가 진실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임승훈은 잠깐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러다가 황급히 마우스를 움직여 인터넷 창을 꺼버렸다.
 그리고 바탕 화면을 보는 순간, 임승훈은 비명을 질렀다.
 
 “으허억!”
 
 바탕 화면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냥 이렇게밖에, 아니, 그 외에 다른 단어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그 모습에 너무나도 놀라 임승훈은 의자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때 빨려 들어가듯, 임승훈은 누군가 잡아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없었고 실제로 몸이 움직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마치 소용돌이가 치는 것처럼 움직이는 화면을 보며 임승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컥!”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임승훈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먼저 보이는 것은 컴퓨터의 바탕 화면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탕 화면은 그대로다. 움직이지도 않았고 빨려 들어가는 느낌도 없었다.
 모든 게 꿈이었던 것처럼. 그리고 지금이 현실임을 알려주듯이 방은 고요하기만 했다.
 
 “씨, 씨바······.”
 
 임승훈은 자기도 모르게 욕을 한 번 내뱉었다.
 꿈? 방금 그것을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했다.
 그러나 바탕 화면은 여전히 그대로다. 늘 보던 화면이었고 별다를 것도 없다.
 임승훈은 오른손을 움직였다.
 어느새인지는 모르지만 마우스를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움직인 것은 고작 해야 검지 하나였다.
 임승훈은 인터넷을 킨 것이다.
 왜 그랬는지는 본인도 모른다. 방금 전의 그게 꿈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냥 인터넷을 켰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뜬 것은 네이쳐의 메인 페이지였다.
 그리고 인터넷 창을 보는 순간.
 임승훈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떠오르는 것을 알았다.
 원래 자신의 기억들인 것처럼 자연스러웠고 이질감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이 강제로 주입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그렇기에 임승훈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 중에서 하나를 바로 시험해 보았다.
 
 “아이디가······.”
 
 아이디가 있었다. 메일 주소로도 쓰이는 아이디다. 그러나 지금 임승훈이 쓰는 것은 자신이 원래 쓰던 아이디가 아니었다.
 난생 처음 쓰는 아이디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임승훈은 이 아이디의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로그인을 눌렀다.
 
 딸각.
 
 어째서인지 마우스가 클릭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리고 뜬 것은 닉네임이었다.
 로그.
 추적할 수 없는 계정이었다. 지금의 이 아이디와 비번은 추적할 수 없다.
 임승훈은 그것 역시 알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것을 알고 있는지는 이 처음 보는 아이디로 로그인을 완료한 지금도 스스로에게 물어본들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모니터 화면의 우측 아래에 뭔가 휴대폰 배터리 표시 같은 게 하나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공신력]
 공식적인 신용을 널리 받을 수 있는 힘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배터리 같은 게이지 위에는 이렇게도 적혀 있었다.
 [다음 10% 능력 개방]
 게이지를 10%이상 채우면 뭔가 다른 능력을 습득한다는 소리다.
 지금 현재 가진 능력은 진실의 눈. 발동 시 인터넷의 글에 대한 진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다음 10%의 공신력 게이지를 채우면 나오는 능력은 아직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임승훈은 그것을 잠깐 바라보다가 다시 마우스를 조작했다.
 
 딸각.
 
 마우스가 클릭되었다.
 그 간단한 조작 몇 번으로 임승훈은 기사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임승훈이 찾아 본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폭리 취하는 치킨 업체 뿔난 소비자들>
 
 요즘 가장 민감하다는 치킨 가격 인상에 대한 기사였다.
 사실 이런 가격 담합은 항상 있었던 일이다. 동네 PC방도 담합하는데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못할 게 무엇인가.
 이럴 때마다 피해자는 소비자들이다.
 그리고 임승훈은 다시 한번 마우스를 클릭했다.
 
 <폭리 취하는 치킨 업체 뿔난 소비자들>
 
 [점주에 광고비 떠넘기기. 불매운동··· 각종 이슈로 번지며 연일 ‘시끌시끌’
 프랜차이즈의 후진적 관행이 더 문제. 중간상만 이익 챙기는 구조 개선되어야.
 치킨 업체의 1위라 불리는 바베큐 치킨은 지난달 10일 주요 메뉴 가격을 인상했다.
 메뉴별로 적게는 500원에서 크게는 2000원까지 올렸다.
 이것은 바베큐 치킨만이 아니다. 구워 치킨과 삼촌 치킨 등등 치킨 업체의 선두를 달리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올린 사항이다.
 물류비, 인건비, 임차료가 다 올라 4~5년 전부터 가맹 점주들의 가격 인상 요구가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여론은 차갑다. 명분 없는 가격 인상이라는 지적에서 시작해 광고비를 가맹점들에 넘긴다는 이슈로 번지며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임승훈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글을 읽어보았다.
 
 “물류비, 인건비, 임차료가 소폭 올랐으며 가맹 점주들의 가격 인상 요구는 조금 있었다. 바베큐 치킨 본사는 가격 2000원을 올리고 여기에 광고비 500원씩을 각 가맹점이 부담. 그리고 50원의 부가세를 붙여 550원을 가맹 점주들이 부담하게끔 했다. 배달 앱의 수수료 역시 가격 상승의 원인이다. 앱 회사와 본사, 가맹 점주가 3분의 1씩 나누어서 부담한다.”
 
 월급은 오른다. 시급도 오른다. 연봉도 오르고 있다. 소폭이지만 분명히 오르고는 있다.
 지난 10년간 연봉은 20%가량 늘었다.
 사람들에게 고용해 직원으로 쓰는, 그 가치가 오른 만큼 물건 값도 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이유는 결국 하나였다.
 
 “본사 배불리기로군. 자기들 제품 광고료. 배달 앱 수수료 까지 소비자들에게 내도록 하겠다는 소리로군. 뭐, 프랜차이즈는 결국 그게 그거니까.”
 
 가맹 점주들의 가격 인상 요구가 있었다고 가격을 올린다? 아니다. 단지 그것을 핑계로 바베큐 치킨은 허울 좋은 헛소리를 대놓고 하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을 하던 임승훈은 기사의 아래쪽에 달린 댓글들을 바라보았다.
 
 ***
 
 기사의 아래에 댓글을 남기는 곳에는 이미 수많은 댓글들이 달려있어 온갖 비판과 욕설들.
 그리고 치킨 업체를 매도하는 네티즌들의 수많은 댓글들이 도배되어 있었다.
 불매운동을 한다는 둥, 이제 안 사먹겠다는 둥, 하는 댓글들.
 그것을 보고 임승훈은 쓴웃음을 지었다.
 기업에서는 저런 댓글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지금에야 이슈지 한 달만 지나면 다시 잠잠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때, 임승훈의 눈에 댓글 하나가 보였다.
 
 -오늘부터 불매운동 합니다. 바베큐 치킨 대신 다른 거 먹음. 벌써 동네 치킨 집에 싸고 맛있는 거 시켰음.
 [바베큐 치킨 배달시킴.]
 
 댓글의 위에 겹쳐 보이는 글자.
 그곳에는 이 사람이 바베큐 치킨을 시켰다는 것이 보였다.
 
 “역시 댓글도 보이는군.”
 
 그 수많은 댓글들 위로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써진 글들에서 임승훈은 완벽한 진실만을 보고 있었다.
 이런 사소한 댓글 하나조차도 말이다.
 자신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능력에 대한 것을 파악한 임승훈은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 바베큐 치킨에 관한 기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으로 자신의 능력이 진짜인지 한 번 더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임승훈이 찾은 기사는 이것이었다.
 
 <선우식품 또 성추행 논란>
 
 6달 전쯤의, 무려 반년이나 지난 기사다.
 그리고 임승훈은 기억해 냈다.
 신입 사원이며 20대의 여성이었다. 그리고 들어온 지 일주일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 개새끼, 하영철이 불러내 밥 사주고 술 먹이고 근처 호텔까지 데리고 간 것이다.
 술을 마시기 싫어서 취한 척을 했던 여사원은 집에 데려다 준다는 말에 거절하기도 힘들어서 차를 탔더니 바로 호텔로 직행하는 웃기지도 않은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신입 여사원이 취한 척을 해서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은 회사에서 비밀리에 알려진 일이다.
 아는 사람은 극히 적다.
 임승훈은 박상준 과장에게서 정말 우연히 들은 사실이었고, 대중에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임승훈은 기사를 클릭했다.
 
 <선우식품 또 성추행 논란>
 
 [선우식품이 또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다.
 경찰에 따르면 13일 오후 5시쯤 서울의 한 일식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던 이 모씨는 하 모씨가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다고 밝혔다.
 하 모씨는 식사 후 인근 호텔로 이 모씨를 끌고 갔으나 호텔 로비에서 이 모씨는 주변의 호텔 투숙객들과 직원들의 도움으로 빠져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씨는 같은 날 오후 7시 30분쯤 경찰서로 와서 신고했다.
 경찰은 목격자들을 상대로 하 모씨가 이 모씨를 강제로 호텔에 데려가려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며 조사를 마치는 대로 하 모씨를 소환할 계획이다.
 한편, 하 모씨는 성추행 혐의를 전면 부인했으며, 그저 어지럽다고 해 호텔방을 잡아주려 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기사를 본 임승훈은 기사와 겹쳐 보이면서 간결하게 진실을 알려주고 자신만 볼 수 있는 그 글자들을 한번 읽어 보았다.
 
 “13일 오후 5시 23분, 일식집에서의 부적절한 신체 접촉은 없었다. 이 모씨는 자신을 호텔로 끌고 온 하영철에게 욕설과 함께 뺨을 때리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풉, 큭큭.”
 
 머릿속에서 경험처럼 떠오르는 이 능력은 진짜였다.
 임승훈은 그 뒤로도 이미 몇 년이나 지나가 버린 기사들이나 다른 것들을 한번 읽어보고 눈에 보이는 것들과 현재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대조해 보았다.
 그리고 전부 정답이다.
 물론 그것들 중에는 은폐되고 사라져 버린 사건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른 기사들은 이것이 진짜라고 완벽하게 임승훈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좋아. 왜 이런 능력이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이건 써먹을 수 있겠어.”
 
 임승훈은 눈은 희미한 미소와 함께 이제 우측 하단에 위치한 휴대폰의 배터리처럼 보이는 게이지를 향했다.
 이것이 무엇인지도 임승훈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임승훈은 다시 마우스를 움직여 아까의 그 바베큐 치킨의 기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스크롤을 내렸다. 거기에는 수많은 댓글들이 달려 신나게 바베큐 치킨을 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임승훈은 댓글을 하나 달았다.
 
 -로그 : 바베큐 치킨 가격상승의 이유가 가맹 점주라니···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에 웃고 갑니다. 이미 다 아시는 사실이겠지만 바베큐 치킨 본사는 가맹 점주들에게도 가격 상승을 핑계로 돈 뜯어갑니다. 연예인 광고비용을 가맹 점주들과 소비자들이 부담하게 하는 거죠. 거기에 배달 앱으로 시키면 그 수수료 발생하는 것도 소비자들이 일부 부담하게 하는 겁니다.
 
 사실 뻔한 댓글이었다. 조금만 알아보면 이정도야 누구나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임승훈의 시선이 그 게이지로 향했다.
 그리고 게이지가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차오르고 있었다.
 마치 휴대폰 배터리의 충전을 1mm 단위로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임승훈은 무엇이 그리 만족스러운지 그 느리게 차오르는 게이지를 보면서도 연신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검색을 시작했다.
 이번에 새로 찾는 것은 바로 선우 그룹.
 즉, 선우 그룹의 회장들에 관한 것들이었다.
 
 ***
 
 쿵쿵쿵!
 
 거칠게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임승훈은 침대에서 눈을 떴다.
 습관적으로 머리맡에 놓인 스마트폰을 집어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각 오후 8시 32분.
 아침에 일어나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먹고 컴퓨터만 하고 있다가 허리가 아파서 침대에 잠깐 누운 게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임승훈이 찌부등한 몸을 일으키는 순간, 다시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
 
 “이 시간에 도대체 누구야··· 주인 아줌마인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빠져나왔다. 그리고 비척거리며 나가 문을 여는 순간 누군가 손을 집어넣고 문을 강하게 잡아당기며 집 안으로 들어왔다.
 
 “야이 자식아! 왜 전화를 안 받아!”
 
 한찬성이었다. 그는 시뻘게진 얼굴로 들어오더니 임승훈을 붙잡았다.
 
 “차, 찬성아.”
 “너, 큰일난줄 알았잖아! 전화라도 받고 메일이라도 좀 남기지! 왜! 아니, 됐어. 일단 들어간다.”
 
 양복에 검은 구두를 신은 모습. 아무래도 퇴근하자마자 달려온 것 같았다.
 거기에 한손에 든 검은 봉지에는 무언가 잔뜩 들어 있었다.
 임승훈은 밀고 들어오는 한찬성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그리고 한찬성은 구두를 벗고 들어와 검은 봉지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제대로 닦이지 않아 군데군데 탕수육 소스에 라면 국물이 묻은 스탠리스 재질의 조그만 밥상에 봉지의 내용물을 하나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먼저 나온 것은 소주 한 병이다. 그 뒤로 컵라면과 함께 라면 한 봉지가 나왔다.
 그것들을 늘어놓은 한찬성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더니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네, 거기 바베큐 치킨이죠? 여기 후라이드 한 마리, 아니, 두 마리 갖다 주세요. 여기가 어디냐면······.”
 
 순식간에 통닭이 주문 완료되었다.
 그리고 한찬성은 앞에 앉은 임승훈에게 말했다.
 
 “뭐··· 어떤 사정인지는 박 과장님한테 대충 들었어. 지금 바쁠 때라 나도 야근해야 하는데 박 과장님이 너한테 한번 가보라고 하더라.”
 “······.”
 “정관진 그 개새끼가 하영철 뒤를 빨았어. 더러운 새끼들.”
 
 한찬성의 분노를 보며 임승훈은 그냥 가볍게 웃고 말았다.
 그 가벼운 웃음을 어떻게 본 것인지 몰라도 한찬성은 컵라면을 하나 까더니 안에 스프를 넣으며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아니, 솔직히 너 정도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 지금 상황이 아주 거지같지만 너 정도면 어디든 들어가서 순식간에 과장 정도는 차지할 것 같으니까.”
 “그러냐.”
 “선우 그룹만 회사인가? 봐라, 내가 사온 라면은 전부 경쟁사인 청원 식품의 라면들이거든.”
 
 과연 그랬다. 선우 그룹보다는 한수 아래라고는 하지만 청원 식품은 언제든지 1위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기업이다.
 특히나 라면을 비롯해서 간단히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만들어 먹는 카레나 짜장, 군만두 등의 제품은 청원 식품이 독보적으로 앞서가고 있다.
 
 “영 거지 같으면 걍 우리 아버지 회사 갈래? 거기 봉급도 쌔고 근무 환경도 좋아.”
 “그렇게 좋은데 너는 왜 안 하냐.”
 “아니, 나는 그게 성미에 안 맞아서.”
 
 좋은 친구다. 너스레를 떠는 한찬성을 보며 임승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포트에 물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찬성은 리모컨을 집어 TV를 틀었다.
 나오는 것은 뉴스다. 이제 여름이니 식중독에 주의하라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찬성은 지체 없이 리모컨을 눌러 채널을 바꾸더니 재방송으로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틀었다.
 ‘하하하하하~’ 하는 조금 과장된 웃음소리가 TV에서 들렸다.
 그리고 임승훈은 물이 끓는 커피포트를 들고 와서 한찬성의 것과 자기 것의 컵라면에 물을 부어 뚜껑을 덮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닭이 도착했다.
 
 “4만원이요.”
 
 통닭 두 마리에 4만원. 정말 정신 나간 가격이 아닐 수가 없다.
 한찬성은 인상을 쓰면서도 통닭 값을 지불하고는 그것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가격이 미쳤네. 이거 인간적으로 너무 비싼 거 아니냐?”
 “그렇지.”
 “여기는 뭐, 어디 동네 통닭집 없나? 진짜 더럽게 비싸네.”
 “글쎄··· 하여튼 잘 먹으마.”
 
 이제는 남이 사주는 게 아니면 내 돈 내고 먹기 힘든 가격이다.
 물가는 천정부지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데 정작 피부로 와 닿은 월급 상승률은 제자리걸음이니 갈수록 서민들 지갑은 텅텅 비어버리고 정신 나간 것들이 낙수 효과라는 검증조차 안 된 헛소리를 진지하게 내뱉는 세상.
 그러나 몸은 솔직한지라 방에 퍼지는 통닭의 냄새에 이미 입에서는 침이 고였다.
 그리고 한찬성이 말했다.
 
 “이건 뭐··· 병아리를 튀겼나?”
 “푸웁!”
 
 그 말이 너무나 적절한 표현이라 임승훈은 그만 들고 있던 닭다리를 놓칠 뻔 했다.
 한찬성은 불만 가득한 얼굴로 투덜대다가 가지고 온 소주 한 병을 깠다.
 그리고 종이컵에 혼자 따르며 말했다.
 
 “같이 온 콜라는 니가 마셔라. 나는 이거면 되니까.”
 
 그렇게 한찬성은 자작으로 소주를 들이켰고 임승훈은 콜라를 마셨다.
 배 안에 뭐가 좀 들어가니 그제야 정신이 좀 나는 느낌이었다.
 TV에서 다시 들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두 친구는 잠깐, 말없이 통닭과 라면을 씹어 삼켰다.
 이내 한 마리가 비워졌을 무렵, 임승훈은 정말 진지하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한찬성에게 말해주어야 할까? 라고 고민했다.
 아침부터 아까 침대에 눕기 전까지 임승훈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확인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있는 눈.
 다만 동영상은 알 수 없었다.
 동영상으로 나오는 자막에도 그것이 진짜인지 거짓인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진 역시 마찬가지다.
 보이는 것은 오직 글로 써진 문자의 배열뿐이었다.
 그리고 이 능력은 인터넷에서만 보였다.
 현실의 책과 신문에는 전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오직 모니터 안의 것들만 보인다.
 그리고 임승훈은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지 이미 계획을 세운 뒤였다.
 임승훈은 한찬성을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슬쩍 저어버렸다.
 
 ‘말한들 믿어줄 리가 없지. 자다 깼는데 눈앞에 글자가 보이고··· 그 아이디도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우니까.’
 
 무엇보다도 앞으로 하고자 생각한 것들은 누구하나 알아서 좋을 것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것이 정말 고마운 친구인 한찬성이라 할지라도.
 
 벌컥.
 
 임승훈은 자신의 몫인 콜라를 벌컥 하고 굳이 소리 내어 한 모금 마셨다.
 그렇게 두 사람은 굳이 대화하지 않고 TV에 시선을 주며 마지막 한 조각까지 먹어치운 뒤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한찬성은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만 먹고 일어나는 굉장히 쌈박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미 늦은 시간이고 내일도 출근해야 한다. 그것을 아는 임승훈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가려고?”
 “어? 어. 내일도 출근해야 하니까.”
 “그래, 들어가라. 오늘 고마웠다.”
 “연락할게. 또 전화 무시하면 죽어.”
 “알았어.”
 
 한찬성은 구두를 신고 나가기 전까지 주먹을 쥐고 흔들었다.
 임승훈은 그런 친구를 보며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 이내 겉 부분이 조금 녹슨 철문이 닫혔다.
 
 “자아, 그럼······.”
 
 임승훈은 멀어져가는 한찬성의 발소리를 뒤로한 채 곧바로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먹고 남은 것들을 대충 정리하고 치운 뒤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제 생각해둔 것을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발걸음이 바로 이것이었다.
 닉네임. 로그.
 그리고 지금 모니터 화면에 뜬 것은 시티즌이라는 이름의 커뮤니티 사이트였다.
 
 ***
 
 시티즌은 젊은이들이 모이는 국내 최대의 커뮤니티 사이트였다.
 게임, 음악, 영화, 도서 등 청년층이 즐기는 것들이 모여 있으며 그밖에도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게시판도 마련되어 있었다.
 임승훈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곳이었다.
 정확하게는 사회적 이슈가 모이고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쉽게 알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는 게시글과 댓글로 토론이 벌어진다. 물론 키보드를 이용한 의미 없는 댓글 싸움도 일어난다.
 기본적으로 니가 틀렸고 내말이 맞다라는 식이다.
 그리고 지금 임승훈이 하려는 것은 바로 인터넷에서의 지명도를 쌓는 일이었다.
 모니터 화면의 우측 하단.
 여전히 서서히 차오르고 있는 공신력이라는 이름의 게이지가 보인다.
 요컨대 마치 게임 캐릭터를 키우듯, 이 아이디를 사용해서 공신력이라는 이름의 레벨을 올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올리는 방법은 이미 확인한 뒤였다.
 사소한 댓글이라도 그것에 사람들이 동조한다면 저 수치가 올라갔다.
 비리를 저지른 국회의원의 기사가 담긴 게시글에 이런 놈은 당장 잡아다가 광화문 광장에 거꾸로 매달아 치도곤을 쳐야 한다고 글을 쓰고 그것에 사람들이 동조한다면 저 수치가 오르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더욱 깊게 동조한다면 저 수치는 더 빠르게 차오르는 것을 이미 확인한 뒤였다.
 
 “하지만 댓글로는 너무 느리지.”
 
 한찬성이 오기 전까지 몇 시간 동안 임승훈은 기사를 찾아다니며 댓글을 달았다.
 그러나 댓글을 달아도 오르는 수치는 병아리 눈물만큼보다 적게 올랐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서 댓글이 아닌 게시글로 적기로 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절대 추적할 수 없는 아이디.
 닉네임 로그라는 아이디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임승훈은 이미 생각해 두었다.
 그리고 일단 첫 번째 목표는 선우 그룹이다.
 과거 하선우 회장이 경영할 때는 어땠는지 몰라도 지금의 하지운 부회장의 경영은 기업의 덩치만 커질 대로 커졌지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점이 많다.
 바로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는 음식들과 함께 말도 안 되는 핑계로 가격을 올린 여러 가지 식품들.
 그리고 이 계획에는 망나니 같은 하영철에 관한 것도 포함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인터넷에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서 고발 형식의 글을 써 본들 순식간에 묻혀 버릴 것이다.
 지금의 상태에서는 그래봐야 수천, 수만, 수백만의 네티즌 중 하나일 뿐인 임승훈이 인터넷으로 선우 그룹은 참 나쁜놈들입니다라고 써본들 누가 알아주겠는가?
 무언가 다른 게 하나 터지지 않고서야 얘기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여름이다.
 기업 간의 라이벌 구도는 항상 언제나 그렇듯이, 가짜 뉴스가 판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여름에 써먹기 가장 쉬운 것이 바로 식중독이다.
 마치 연례행사처럼 이어지는 상대방에 대한 근거 없는 공격을 시작으로 조용히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던 실제 소비자들에게서도 사례가 나올 것이 분명했다. 바로 그때가 기회였다.
 그래서 임승훈은 일단 기다리기로 했다. 조바심 내지 말고. 천천히.
 당장 내일이라도 선우 그룹이나 혹은 다른 회사에 대한 견제 밑 공격 형식의 기사가 나올 것이 분명했으므로 말이다.
 하지만 그때가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임승훈은 일단 지금 가장 자극적인 것.
 지금 현재 인터넷에서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좀 더 파고들어 보기로 했다.
 그게 바로 이것.
 임승훈의 눈에 보이는 기사가 바로 그것이었다.
 
 <래퍼 카우키 마약 혐의 전면 부정>
 
 바로 어제 아침 확인한 기사.
 그리고 이곳에도 아래쪽에는 별의별 댓글들이 잔뜩 달려 있었다.
 그러나 아침에 봤던 댓글과는 또 다르다.
 처음에는 우리 오빠가 그럴 리 없다는 댓글과 그것에 반박하는, 소위 진흙탕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랩도 못하는 게 마약까지 피운다며 조롱하고 욕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곳에도 카우키를 옹호하는 답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임승훈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기사의 내용에는 카우키가 구입한 대마와 엑스터시의 양이 각각 22g과 0.4g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임승훈은 실제 카우키가 구입한 마약의 양이 42g과 0.5g 이라는 것을 안다.
 이것은 진실이다.
 임승훈은 지금 현재는 누구도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
 카우키는 자신이 구입한 마약을 따로 숨겨놓은 것이 틀림없었다. 엑스터시야 차이가 0.1g밖에 나지 않으니 이것은 경찰이 조금 잘못 측정했거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마는 무려 20g차이가 난다.
 
 “어딘가 숨겼겠지··· 분명 어딘가 숨겼을 거다.”
 
 임승훈은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곧바로 키보드를 두들겼다.
 
 -로그 : 대마 22g? 제가 봤을 때는 최소 40g은 구입했을 것 같은데요.
 
 특별히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없었다.
 래퍼 카우키가 구입한 마약의 양은 42g이며 이것이 진실이다.
 그 사실을 임승훈은 고집스럽게 주장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아래쪽으로 댓글들이 달렸다.
 
 -허위 사실 유포로 신고한다. %^$#야.
 
 뒤쪽의 필터링된 것은 아마 욕이겠지라고 생각하며 임승훈은 코웃음을 쳤다.
 심지어 댓글 위에는 신고 안함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정도면 거의 독심술이나 다름이 없었다.
 임승훈은 다시 댓글을 달았다.
 
 -제가 보기에는 대마초를 한 42g 정도 구매하고 어디다가 숨겨 놨을 것 같은데요?
 -%$@#@#싶냐?
 
 아마 죽고 싶냐가 아닐까.
 그리고 다른 댓글들도 달리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님 말이 맞으면 대박이긴 하겠네요. ㅋㅋ
 -우리 있는 사실로만 깝시다.
 
 임승훈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다시 한번 웃었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다시 댓글을 남겼다.
 
 -로그 : 대마초 걸린 게 22g이고 나머지 20g은 어디다가 숨겼거나 몰래 버렸겠죠. 분명합니다.
 
 다시 아래로 댓글들이 달린다. 하지만 임승훈은 굳이 댓글들을 보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여기서 사람들과 댓글로 싸우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경찰들이 나머지 마약을 찾아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만약 수정된 기사가 뜨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면. 사람들은 정확하게 카우키가 구입한 마약의 양을 댓글로 맞춘 로그라는 닉네임을 기억할 것이다.
 처음은 그저 우연의 일치라 생각할 지라도 그것이 반복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기에 임승훈은 래퍼 카우키의 마약 혐의에 관한 기사를 하나하나 찾아다니면 조금씩 다르지만 내용은 똑같은 댓글들을 전부 달아 두었다.
 수많은 포털 사이트의 뉴스들과 커뮤니티들.
 그리고 전부 하나로 통일된 로그라는 닉네임이었다.
 
 ***
 
 “떴다!”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바로 다음 날. 임승훈은 컴퓨터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래퍼 카우키의 마약에 대한 기사가 정정되어서 올라오는 것이다.
 이번만큼은 임승훈은 감탄했다.
 ‘무슨 경찰들이 무능하네, 어쩌네.’라고 사람들은 욕을 하지만 실제로 이런 종류의 사건에서만큼은 한국의 경찰들이 열일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당장 거리의 치안은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과 비교해도 월등히 높으며 특히 살인 사건에 대한 검거율은 경이로울 수준이다.
 물론 이런 사건이 정치와 기업이 섞이기 시작하면 옅어지고 판결은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 버리지만, 어쨌든 잡은 것은 잡은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임승훈은 새롭게 보도된 기사를 클릭해 보았다.
 
 <속보 래퍼 카우키 실제 마약 구입량은 42g으로 밝혀져>
 
 [래퍼 카우키의 대마초 구매량이 실제로는 무려 42g인 것으로 경찰 조사 밝혀졌다.
 경찰은 비닐 재질의 포장지에 보관된 마약을 카우키의 자택, 화장실에서 발견 했으며······.]
 
 “화장실? 변기통에 흘려 보냈나보네. 아니, 아예 통째로 변기통에 쑤시고 물을 내렸다고? 그게 막혔다? 이런··· 큭큭.”
 
 임승훈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곧바로 그 아래에 달린 댓글들을 확인해 보았다.
 
 -42g.ㅋㅋㅋㅋ
 -인생 쫑났네.
 -실력도 없고 인성도 없네.
 -카우키가 아니고 대마키라고 합시다.
 -어제 대마초 더 가지고 있다고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있다!”
 
 댓글을 확인하던 임승훈이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곧바로 시티즌에 들어가 자신이 남겼던 댓글들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성지순례 왔습니다.
 -성지순례 왔습니다. 여기에 예언자님이 있다면서요?
 -성지순례 왔습니다. 하는 일 전부 잘되게 해주세요.
 -성지순례 왔습니다.
 ······.
 
 “그렇지!”
 
 임승훈은 우측 하단의 게이지를 확인해 보았다.
 댓글이 달리면 달릴수록 점점 차오르고 있는 게이지가 보인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빠르다.
 계속해서 서서히 차오르던 게이지가 드디어 꽉 찼고 그와 동시에 눈앞에 글자가 보였다.
 
 [대한민국에서의 활동]
 [공신력이 상승합니다.]
 [네티즌의 1%가 당신의 말을 신뢰합니다.]
 
 “이거로군. 역시··· 사실이었어.”
 
 임승훈은 나타나는 문구들과 게이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것으로 더욱 확실해 졌다.
 대한민국에서의 활동으로 인해 한국 네티즌의 신뢰도가 1% 올랐다는 것.
 거기에 공신력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까지 올릴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누군가의 글과 말에 신뢰도가 생기고 신빙성이 쌓인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된다.
 
 “하지만 1%라니? 이건 뭐, 몇 명인지 알 수가 없으니··· 게다가 너무 짠 거 아냐?”
 
 잠깐의 푸념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1명도 아니고 1%. 겨우 1%가 아니라 무려 1%라고 표현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임승훈은 그런 것은 생각지 않았다.
 %라는 것을 언젠가는 1%, 10%, 100%···는 무리겠지만 그래도 일단 10%만 채워놔도 뭔가 하나 새로운 능력을 얻는다.
 아니, 그것이 아니더라도 10%의 네티즌이 신뢰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위대하고 무서운 힘인지는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구 비율을 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임승훈은 곧바로 다음의 사회적 이슈를 찾아보았다.
 기왕이면 방금 막 올라온 속보들로.
 정치, 연예, 해외 토픽들. 뭐든지 상관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뒤적거리던 임승훈의 눈에 최신 기사가 하나 들어왔다.
 
 <청원 식품 고기만두에서 폴리에틸렌과 환경 호르몬 발견>
 [거짓.]
 
 “시작이군.”
 
 임승훈은 기사를 보자마자 알았다.
 선우 그룹의 하지운 부회장의 방식이 바로 이것이다.
 자신들이 잘해서 이겨야 하는데 남을 깎아내려서 자신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
 선의의 경쟁 따위야 허울 좋은 헛소리일 뿐이다.
 기업들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우며, 특히 하지운 부회장에게는 더욱더 힘들다.
 무더운 여름. 그리고 쉽게 부패하는 음식들.
 소비자들은 쉽게 선동 당한다.
 특히 실제로 저런 것들을 구매하는 엄마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폴리에틸렌이라고 적어 놨지만 그것은 그냥 플라스틱이다. 가정에서 쓰는 크린랩이 바로 폴리에틸렌인 것이다. 물론 사람이 먹어서 좋을 것은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기사의 내용은 임승훈이 생각한 것과 완벽하게 일치 했다.
 ‘만두 속을 뭐, 이상한 걸로 만들었네. 뭐네.’하며 근거도 없이 그냥 휘갈겨 놓은 기사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선동용 찌라시.
 그리고 임승훈의 눈에는 이것이 전부 거짓임이 여지없이 드러나 보였다.
 청원 식품의 만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방금 올라온 속보라 아직 댓글이 달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회 수는 조금씩 오르고 있다.
 첫 댓글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임승훈은 재빨리 댓글을 하나 남겼다.
 
 -로그 : 청원 식품 만두에서 그런 게 나온다는 건 생각하기 어렵네요. 기사 내용도 자세히 읽어보면 아무런 근거도 없이 그냥 뇌내 망상으로 쓴 것 같은데··· 얼마 받으면 이런 기사를 쓸 수 있어요?
 게다가 폴리에틸렌은 식약청에서 굉장히 안정된 소재로 컵라면. 그리고 종이컵에도 사용되는 소재구요. 그거 사용했다고 환경호르몬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대체 무슨 근거로 이딴 기사를 쓰시죠?
 
 완벽했다.
 그리고 첫 번째 댓글이다.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네티즌들이 참으로 웃긴 게 같은 내용의 기사라도 첫 번째 댓글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반응이 확연히 갈라진다.
 만약 첫 번째 댓글이 ‘청원 식품 쓰레기 기업이네요~’ 같은 것이었다면 사람들은 그것에 동조하고 그것에 맞는 댓글을 다는 것이다.
 아주 전문적인 지식은 필요 없었다. 사람들이 동조한다면 그것이 전문적 지식이 되어버린다.
 나중에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하더라도 임승훈에게 필요한 것은 한순간.
 그리고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청원 식품 만두 진짜 맛있는데. 기레기 수준······.
 
 바로 아래에 달린 댓글.
 임승훈은 게이지가 찔끔, 차오르는 것을 확인했다.
 그때, 다른 댓글이 달렸다.
 
 -지금 찾아보니까 윗 분 말이 맞네요. 폴리에틸렌인지 그거 안전하구만.
 
 동조한다. 그리고 이 댓글을 본 임승훈은 그만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지금 찾아보니까 윗 분 말이 맞다.’는 댓글에 겹쳐져 보이는 것.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윗 분 말이 맞네요. 폴리에틸렌인지 그거 안전하구만.]
 즉, 이 사람은 찾아보지도 않았지만 임승훈의 댓글을 보고 그냥 이렇게 댓글을 남기는 것이다.
 익명성이 보장된 인터넷 공간에서 이정도의 거짓은 우스운 정도이지만 그것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있을까?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아직 모르지만 진짜로 임승훈이 남긴 댓글이 진실이며 저 위쪽의 기사는 선동용 찌라시에 불과한 거짓 기사인데?
 그리고 그 아래로 이제 댓글이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임승훈이 이러한 댓글을 달았다고 해서 저런 찌라시가 효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댓글을 보지 않는 사람도 많으니까.
 하지만 임승훈의 이러한 행위는 서서히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이 작은 시작이 커다랗게 올 날이 머지않을 것이다.
 
 ***
 
 “하나로 끝나지는 않겠지.”
 
 저런 선동용 기사가 하나로 끝날 리는 없었다.
 임승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냉장고로 걸어가 어제 마시다 남은 콜라를 꺼내왔다.
 그러면서도 오른쪽의 게이지는 계속해서 차오르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아직, 로그라는 닉네임을 알아보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이것은 욕심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쉬웠다.
 그때, 임승훈의 머릿속에 언뜻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분명히 공신력이 증가했다고 했지··· 그러면 댓글로만 남기지 말고 내가 글을 써볼까?”
 
 정확히 얼마나 증가하였는지 수치로는 나타내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상승했다고 나왔으며 신뢰한다고 나왔다.
 그리고 임승훈은 인터넷 기사와 댓글을 한번 바라보았다.
 
 “분명히 빠르지만 댓글은 한계가 있을거야. 지금 내가, 이 로그라는 닉네임으로 가장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곳은?”
 
 임승훈의 머리가 한 차례 휙하고 빠르게 돌았다.
 그리고 지체 없이 시티즌을 켜서 들어갔다.
 이 커뮤니티는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다. 임승훈은 기자가 아니기에 대형 포털 사이트에 기사를 쓸 수 없지만 사람이 모인다는 점에서는 이곳도 똑같을 것이다.
 비록 숫자는 차이가 나겠지만.
 
 “좋아, 해보자.”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다.
 그리고 추적할 수 없는 아이디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서 하나 더. 임승훈은 공신력이 상승했다는 그 문구가 얼마만큼의 효과를 가지는지 한번 실험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임승훈은 곧바로 여러 가지 게시판 중에서 사회적 이슈를 모아놓은 게시판에 들어갔다.
 네티즌들이 퍼나른 온갖 기사들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압도적인 댓글을 자랑하는 것은 바로 임승훈이 댓글을 남긴 카우키에 관한 게시글이었다.
 
 “댓글이 135개. 그리고 모조리 성지 순례로구만.”
 
 임승훈은 점점 차오르는 게이지를 보며 마우스를 움직여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제목과 내용을 쓸수 있는 칸이 나타났다. 그리고 임승훈은 지체 없이 키보드를 두들겼다.
 
 [청원 식품 만두에 관한 기사의 진실.
 30분 전쯤에 청원 식품 만두에 폴리에틸렌에 환경호르몬이 나왔다고 기사가 나왔는데, 설마 거기에 속으시는 분들은 없길 바랍니다.
 식약청에서는 이미 폴리에틸렌이 안전하다고 결론지은 상황이고 기사 내용 자체도 아무 근거도 없고 그냥 나왔다고 선동하는 내용밖에 안 되거든요.
 보나마나 어디서 돈 받고 저런 기사 쓰는 겁니다.]
 
 별다른 내용은 없었다.
 아까 댓글로 썼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글이다.
 밑져야 본전이고 실험적인 첫 게시글.
 사람들이 주의를 기울인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그 효과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임승훈은 가만히, 자신이 쓴 글을 바라보며 댓글들을 확인했다.
 
 “조회 수 12. 아직 댓글은 없군.”
 
 임승훈은 기다렸다. 간간히 새로고침을 눌러가며 지속적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조회 수가 30을 넘어가기 시작할 쯤, 첫 댓글이 달렸다.
 
 -그 만두 맛있는데.
 
 별거 아닌 댓글이지만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임승훈은 그것을 확인하고 괜히 안도했다.
 그리고 조회 수가 40을 넘어가는 순간, 다시 댓글이 하나 달렸다.
 
 -윗 분 말에 공감합니다.
 
 두 번째 역시 나쁘지 않은 반응이었다.
 임승훈이 쓴 글은 청원 식품의 고기만두가 아무 문제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기에.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까지 댓글들이 연이어 달렸다.
 
 -만두에서 폴리에틸렌이 나온 건 문제 아닌가요?
 -아니, 그거 나왔다는 기사 자체가 근거도 없고 증거도 없는 찌라시라니까요.
 -기레기 수준이죠.
 
 임승훈은 댓글들을 확인하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직접 나서서 내가 쓴 글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말하지 않아도 이렇게 알아서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부터는 서로 의견을 나누든 싸우든 그냥 가만히 놔두면 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게이지는 계속해서 차오르고 있다.
 분명히 전보다 확실히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신뢰한다라···.”
 
 임승훈은 배고픔도 잊고 다시 집중했다.
 사람들이 퍼오는 수많은 기사들과 그 제목 뒤에는 진실과 거짓이라는 단어가 전부, 하나도 남김없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임승훈은 다시 기사 하나를 클릭했다.
 
 <넷 소프트 초과근무 시키고도 임금 30억 원 체불>
 
 [넷 소프트에 대한 특별 근로 감독 결과 근로를 시키고도 오히려 임금은 체불하는 등의 위반 행위가 드러났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5~6월 동안 넷 소프트와 그 계열사 등 10개사에 대해 근로 감독을 실시한 결과 근로자 3152명 중 2195명이 주 12시간의 연장 근로 한도를 평균 5시간 초과해 근로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8개사는 근로자들의 연장 근로 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거나 퇴직금을 과소해서 산정하는 등 30억 원을 미지급한 사실이 적발됐다.
 이 같은 불법 행위는 게임 출시 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집중적으로 장시간 근무를 하는 이른바 크런치 모드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됐으며 게임 업계에 관행처럼 자리 잡은 야근 문화가 이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밝혀졌다.]
 
 임승훈이 다음으로 찾아본 기사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기사의 진실은 이것이었다.
 
 “36억 원을 빼돌려? 쓰레기놈들······.”
 
 임금 체불에 관한 기사였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임승훈은 저쪽 업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한국 게임 업계의 야근 문화는 워낙 기사가 많이 떠서 알기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고 저런 기사가 뜨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었다.
 
 “전에는 과로사로 사람이 죽었었지.”
 
 넷 소프트는 유명했다. 대체 어떻게 일을 시키면 사람이 과로로 죽는단 말인가.
 거기에 그렇게 일을 시키고도 임금 체불이라니.
 세상에 저런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이 상사랍시고 앉아 있으니 고생하는 것은 직원들뿐인 것이다.
 
 “사람들이 내게 동조하면 게이지가 오른다. 그렇다면 올바른 글을 쓴다면 사람들이 동조할 것이고··· 거기에 글들이 공신력을 가진다면······.”
 
 임승훈은 여기까지 생각을 마치고 곧바로 다시 시티즌이라는 사이트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사회적 이슈 게시판에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내용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리고 다시 키보드가 눌리는 타닥 하는 소리가 울렸다.
 
 [넷 소프트 임금 체불 기사를 봤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네요.
 야근은 야근대로 시키고 주말에도 불러내서 죽어라 일 시키면서 임금 체불 36억이네요.
 일은 시키고 돈은 주기 싫고··· 그런 정신머리로 무슨 회사를 경영하고 무슨 유저들을 위해서 즐거움을 주네마네 하는 걸까요?
 당장 아래의 부하 직원들은 과로사를 할 정도인데··· 그 사람들의 절규는 보이지 않으면서 유저들을 위해서는 재밌는 게임을 만들어 서비스 합니다?
 항상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에게서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오는 건 모르나 봅니다.]
 
 임승훈은 여기까지 쓰고 게시글을 올렸다.
 그리고 선우 그룹에서 힘들지만 정말 즐겁게 일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회장은 비록 쓰레기일지라도 그래도 대기업이라 직원들 복지는 좋은 회사였다.
 월급도 괜찮게 나오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불과 며칠 전 일이지만 이제는 아득히 먼 과거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힘들게 일한 결과물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제 것인 것 마냥 훔쳐가는 망나니 하영철과 제품으로 승부하지 않고 남 깎아내리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회장.
 이런 자들이 머리로 있으면 손발이 아무리 깨끗해도 결국은 더러워지고 흙탕물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옛말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상황.
 그리고 아까의 청원 식품의 만두에 관한 것보다 더 빠르게 댓글이 달렸다.
 
 -완전 공감합니다. 일시키고 돈은 안 주는 회사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네요.
 -당장 감방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시키는데 사람이 과로사···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람들의 관심도가 아까보다 확실히 높았다.
 게시글을 올리자마자 곧바로 사람들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시티즌이라는 커뮤니티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에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이것은 곧, 게이지의 상승을 의미했다.
 
 “오르는군. 그리고 이것이 공신력을 가진다는 건가.”
 
 굳이 능력이 없었어도 지금 쓴 글은 그 누구에게도 호응을 얻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혀 틀린 말이 아니므로.
 임승훈은 잠깐 동안 댓글이 주르륵 달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퍼센테이지는 1%에 머무르고 있지만 임승훈은 확실히 깨달았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들이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가?
 물론이다.
 옳은 말을 하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테니까.
 그렇다면 그 수많은 글들이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가?
 물론 영향을 끼칠 것이다. 결국은 사람 하는 일인데 영향이 없을 리가 없다.
 임승훈이 선우 그룹에 들어가기 전에 있던 일이지만 인터넷에서는 선우 그룹에 대한 제품의 불매운동도 벌어진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야 그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하지만 그것 때문에 매출에 영향이 없었을 리가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임승훈은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질문했다.
 
 ‘어떤 누군가의 글이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힘을 가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소설가도 있고 작사가도 있다.
 평론가들. 그리고 비평가들. 기자들이 있다.
 그리고 언론이 존재한다.
 
 ‘내가 가진 능력은 공신력이다. 수많은 사회의 소식과 정보 속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낼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글로써 공식적으로 신용을 받을 수 있는 힘이다. 그리고 이것을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면?’
 
 확실해졌다.
 만약에 워렌 버핏이 주식이 요동친다고 말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결과를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지나가던 사람이 주식이 요동친다고 말하면?
 그렇다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시하거나 니가 뭔데 그런 헛소리를 하냐며 조롱할 것이다.
 이것이 공신력이다.
 그리고 단언컨대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공신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성공한 사람들뿐이다. 주목받는다. 아무도 무시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되었든 성공하고 유명한 사람들.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사람들은 박수를 보낼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임승훈은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문구가 떠오른다.
 
 [공신력이 상승합니다.]
 [네티즌의 1%가 당신의 말을 신뢰합니다.]
 
 또 1%다. 이것을 보고 임승훈은 왜 2%가 아니지? 하고 의문을 가졌으나 이내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을 포기해 버렸다.
 그날 밤 10시쯤에 임승훈은 침대에 누웠다.
 하루 종일 한 것이라고는 인터넷이다.
 이렇게 말하면 뭔가 방구석 폐인이라고 보일 테지만 굳이 말하자면 임승훈은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과 판단으로 글을 써서 올렸다.
 어떤 자들이 누군가에게 갑질을 했다더라, 하는 기사는 잊을 만하면 하나씩 나오고 그것에 대해서 성토하는 내용들,
 사회의 부조리함 들과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는 기사들.
 10대, 20대 청소년들의 강력 범죄에 일침을 놓았다.
 교권에 몸담아 성추행과 체벌을 일삼는 교사를 욕했다.
 노동력을 착취해 이윤을 극대화하고 열정 페이를 울부짖는 기업을 규탄했다.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검사와 변호사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법까지 무시하는 정치인.
 사람들에게 거짓 정보를 알려주며 진실을 조작하고 은폐하는 언론사들.
 임승훈은 지금 침대에 눕기 전까지 하루 종일 기사를 찾아보고 그것에 관한 글들을 올렸으며 댓글 역시 꼬박꼬박 달아두었다.
 일련의 작업과도 같은 일이었으며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고는 컵라면 하나다. 그러나 일어나서 옷을 입고 편의점으로 가서 도시락 사오기도 귀찮았다.
 
 ‘다이어트도 하고 좋지.’
 
 앉아서 일만하니 조금씩 나온 배를 툭툭 건드리며 임승훈은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고는 1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잠들어 버렸다.
 
 
 
 3장 스노우 볼
 
 
 
 임승훈은 잠들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잠들지 않았다.
 인터넷의 글들도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다.
 인터넷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세계는 절대로 꺼지지 않는다.
 지금 임승훈은 볼 수 없지만 그가 남긴 게시글에는 댓글들이 계속해서 달리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나라 법은 너무 쓰레기야. 뭐만하면 집유부터 나오잖아?
 -요즘 애들이 더 무서움. 미국 같았으면 벌써 총 맞았을 텐데.
 
 10대, 20대의 범죄에 대한 게시글에 달리는 댓글들이었다.
 그것 외에도 기업을 규탄하는 게시글.
 최소한의 양심조차 팔아버릴 검사와 변호사들에 대한 게시글.
 탈세와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의 게시글에도 사람들의 관심이 지속적으로, 조회 수와 댓글이라는 형태로써 나타나고 있었다.
 
 -맨날 눈팅만 하다가 댓글 쓰려고 가입 합니다. 완전 사이다 발언이네요.
 
 얼마 지나지 않아 임승훈이 쓴 글들은 커뮤니티 사이트의 상단부분에 마련된 베스트창에 오르기 시작했다.
 닉네임 로그의 게시글은 실시간으로 조회 수가 높은 순으로 20개만 표시되는 베스트 글에 무려 6개의 게시글이 올라오는,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이례적인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노출이 쉽게 되었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급기야 임승훈의 글을 퍼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것은 신기한 일이다. 임승훈의 글은 엄밀히 말하자면 하루에도 수천수만 건씩 올라오는 사회의 불만에 관해 성토하는 글이다.
 사람들이 공감하지만 이정도로 주목받을 정도의 글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임승훈의 글을 읽어보고 다른 곳으로 퍼나르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임승훈은 컴퓨터를 켜보기 전에 밥부터 먹기로 했다.
 지금 컴퓨터를 먼저 켰다간 어제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너무 허기져 있었다.
 모텔에서나 볼 법한 조그만 냉장고 안에는 반찬들이 있기는 하다.
 근처 마트에서 사놓은 이런저런 반찬들.
 하지만 밥솥에 밥은 없다.
 
 “······.”
 
 임승훈은 고요한 방에서 먼저 TV부터 켰다.
 그리고 방에는 TV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채워졌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임승훈은 안도감과도 비슷한 어떤 감정을 느꼈다.
 임승훈은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밥이 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기에 임승훈이 선택한 시간 때우기는 역시 컴퓨터였다.
 
 ‘위잉~’
 
 사용한지 조금 된 컴퓨터라 본체에서 소리가 조금 크게 났다.
 하지만 뭔가 대단한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고사양 게임을 즐기는 것도 아니기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쓰는 중이다.
 이내 윈도우 화면이 나타나고 임승훈은 지체 없이 마우스를 움직여 인터넷을 켰다.
 그리고 다시 기사들을 찾아보기 시작할 때 눈앞에 문구가 떠올랐다.
 
 [공신력이 상승 합니다.]
 [네티즌의 1%가 당신의 말을 신뢰합니다.]
 
 또 1%다. 상승은 했다고 하는데 1%와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을 보고 임승훈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소수점 아래로는 표시하지 않는 건가······.”
 
 지금도 느리지만 계속해서 차오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1%. 아마 소수점 아래로는 표시하지 않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임승훈은 문득, 신뢰한다는 저 말이 조금 위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된 믿음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이미 수많은 사례들이 증명하고 있다. 사이비 종교 같은 문제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사회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임승훈은 저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어렵게 생각할게 없다. 그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임승훈은 인터넷에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것들을 써놓을 생각이 없었다.
 물론 자신은 사이비 교주도 아니다.
 지금 고민할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와 그에 대한 추측이 아니라 지금,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는 저것이 얼마나 효과를 가지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좋아. 그러면······.”
 
 임승훈은 이것을 무엇으로 확인해 볼지 한번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눈으로 보고도 잠깐 눈을 의심하게 되는 기사를 발견했다.
 하지만 곧, 마음속에서 뭔가 시커먼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선우 식품의 정보를 모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하나 더 생긴 것이다.
 
 <선우 식품 하지운 회장의 아들 하영철 씨 성추행 의혹>
 
 포털 사이트에 속보로 떠 있는 기사 하나.
 
 “첫 시작을 니가 해주는구나.”
 
 무덤덤하면서도 으스스한 목소리였다.
 임승훈은 곧바로 기사를 클릭했다. 그리고 천천히 주의 깊게 읽어 보았다.
 
 “선우 식품의 하영철 씨가 이번에는 성추행 의혹에 사로잡혀··· 그러나 사실은 성매매를 했고? 본인은 모든 혐의 전면 부정? 성추행이 아니라 성매매?”
 
 임승훈의 눈에는 하영철이 성추행이 아닌 성매매를 했다는 것이 정확하게 나와 있었다.
 그리고 스크롤을 내려 기사 아래쪽에 여성에 대한 것을 읽어보던 임승훈의 눈이 부릅떠졌다.
 
 “···미, 미성년자? 이런 추잡한 새끼!”
 
 정확하게는 18살 가출 여고생이었다.
 임승훈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하영철이라는 인간의 존재 가치를 수십 단계 정도 더 낮추었다.
 개념 없는 망나니가 아니라 말 그대로 분리수거조차 안 되는 인간 쓰레기였다.
 기사에는 미성년자라는 언급은 없다. 하지만 임승훈에게는 이것이 보였다.
 
 “개새끼··· 이것도 사람이라고 숨을 쉬는구나.”
 
 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임승훈은 지체 없이 시티즌 사이트를 켰다.
 사회 이슈 게시판에는 이미 사람들이 퍼나른 이것에 대한 기사가 올라와 있었고 댓글 역시 달려 있었다.
 또 이놈이냐는 댓글. 그리고 돈 많으니 뭔 짓거리를 해도 안 잡혀간다는 댓글들이 나열돼 있었다.
 임승훈은 댓글들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하영철은 이제 끝났어.”
 
 임승훈은 다짐하듯 말하며 글쓰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키보드를 쳤다.
 하영철 같은 놈이 버젓이 양복입고 돌아다니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당장 감옥에 들어가 있어도 모자랄 놈이다.
 그렇기에 임승훈은 곧바로 자극적인 제목을 적어 넣었다.
 
 [선우 식품의 하영철. 성추행? 말도 안 됩니다.]
 
 일부로 사람들의 여론에 반하는 제목을 적었다.
 이렇게 적어 놓으면 어떤 노답이 그런 놈을 옹호하냐는 생각에 사람들은 분기탱천하여 클릭을 할 것이다.
 그러나 제목과는 다르게 내용은 이랬다.
 
 [선우 식품의 하영철. 성추행? 말도 안 됩니다.
 성추행이 아니고 성매매겠죠.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추행이 아니라 성매매입니다.
 그것도 미성년자 성매매네요.
 돈이 많으면 성매매도 성추행으로 변하는 건가요? 아니면 경찰이 무능할 걸까요?
 여성의 실명을 거론 할 수는 없습니다만 18살 가출 여고생이네요.
 하영철 같은 놈이 감옥에는 안가고 18살짜리 어린애가 성매매라니.
 어쩌다가 사회가 이렇게 된 걸까요?]
 
 임승훈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완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의자에 등을 기대고 기다렸다.
 애초 목적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서 알아볼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하영철, 이놈은 반드시 정의 구현을 당해야만 했다.
 대략 30초 정도 지났을까.
 임승훈은 새로고침을 한 번 눌러 댓글들을 확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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