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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21세기 용병왕! [E]

21세기 용병왕! 1-1권

2018.08.30 조회 8,563 추천 54


 # Prologue.
 
 밤거리를 환하게 밝히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과 더해, 어두운 하늘에 연결되듯 저 높이 뻗어있는 다양한 건축물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오랜 옛 기억에 남아있던 별자리까지.
 저 멀리 보이는 광경 그리고 풍경을 보며 깨달았다.
 ‘돌아왔다!’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이 텁텁한 공기가 오랜 과거의 기억을 들춰내며, 감각적으로도 그의 귀환을 인정하게 만들었다.
 “지구···.”
 미묘한 감동이라고 해야 할까?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느낌이 들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숨을 골라야만 했다.
 국자 형태의 별자리,
 북두칠성을 눈에 담으며 진한 여운을 즐겼다.
 ‘···정말로 돌아왔구나.’
 그러다가 발견했다.
 “별똥별인가?”
 저 멀리 반짝이는 무언가가 하늘을 가르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라? 저건···.’
 흐릿하니 언젠가의 기억이 떠올랐다.
 “···미사일?”
 뒤늦게 그 정체를 깨달았을 땐,
 콰콰콰콰콰쾅···.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수백년의 세월을 건너 다시금 지구로 귀환한 날,
 마치 축포를 날리듯,
 시원한 폭격이 그를 반겨주었다.
 
 
 # 1. 용병왕!
 
 몇 날 며칠이나 지났을까?
 흙무더기 속에 박혀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이건, 뭔가?’
 화려한 네온사인을 바라보며 지구로 귀환했다는 사실에 잠시 기뻐할 틈도 없이, 왜 이런 몰골로 흙더미 속에 파묻혀 있어야 하는 것일까?
 ‘설마 귀환 장소가 군사훈련 지역이었나?’
 거기에 더해서 한 가지 더,
 ‘초재생이 사라졌어?’
 그를 이계에서 생존하게 했던 이능력이 사라진 것이다.
 덕분에 폭격으로 인한 회복이 더뎌, 이처럼 귀환과 동시에 본의 아닌 묏자리를 봐야만 했다.
 ‘끄응··· 그 말이 설마 이런 의미였나.’
 불현듯 생각나는 ‘여신’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대에게 허락되었던 것들을 놓고 가야 할 거야.]
 아마도 거기에 초재생이 포함되었던 모양이다.
 ‘쩝···.’
 미련 한 자락이 남았지만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그가 이뤄낸 경지가 있는지라, 지금 이 순간에도 육신은 끊임없이 회복을 거듭하는 중이었다.
 심장이 뜯겨나가도 단숨에 복구하는 초재생에 비한다면야 부족함이 있겠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회복하는 건 무리가 없을 터였다.
 물론, 시간이 제법 걸린다는 문제가 있었는데, 이는 폭격의 후유증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차원의 폭풍우를 넘어오며 발생한 타격감이 더 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썩을··· 그냥 거기서 살 걸 그랬나.’
 생각해보면 굳이 지구로 돌아올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귀환을 결심한 건 별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지겹다.]
 마왕군과의 기나긴 전쟁을 끝냈다.
 그리고 이어진 평화의 시대,
 그 끝에서 새로이 시작된 인간들의 갈등과 다툼,
 그렇게 피어난 탐욕까지.
 또 다른 전쟁의 불씨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어후··· 반세기도 안 지났는데.’
 제대로 쉰 것 같지도 않건만, 그새를 못 참고 다시금 칼날을 가는 왕국들의 모습에 치를 떨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전쟁은 싫다고.’
 지긋지긋한 전쟁을 피해 은퇴를 결심했다.
 하지만 상황이 그걸 허락하지 않았고, 또 용납하려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용병왕 바론!
 지난 마왕군과의 전쟁에서 가장 큰 공로를 꼽자고 한다면, 아무래도 그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두서없이 제멋대로 날뛰던 용병들의 힘을 한데 모은 게 그의 존재감이었다. 당연히 그들을 뭉치게 만든 그의 존재는 각국 수뇌부의 경각심을 한계치까지 키울 수밖에 없었다.
 떠난다고 해서 그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게 아닌 까닭에, 그의 은퇴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우리와 함께하자.]
 [저 은혜를 모르는 돼지 같은 귀족 놈들에게 정의의 철퇴를 먹여주는 거다.]
 [참된 자유를 위한 투쟁이다!]
 은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옛 동료들이 수시로 찾아오며 그를 괴롭혀댔다.
 결국, 진정한 은퇴를 위해 ‘귀환’을 선택해야만 했다.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서, 어지간하면 안 넘어오려고 했는데.’
 이계에서 보낸 세월만 무려 300년에 가까웠다.
 지구가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간 때문에 오히려 또 다른 이계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귀환을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옛 동료에게 칼을 들게 만들려 하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드래곤을 찾아 사정을 설명한 뒤, 대대적인 차원이동을 준비했고, 그렇게 차원을 넘을 수 있었다.
 차원의 경계 속에서 여신을 만나 짤막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대가 한 선택을 존중한다. 하지만··· 운명을 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문득, 여신이 남겼던 이야기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모를 일이라며 상념을 털어낸 뒤, 차분히 몸 상태를 점검했다.
 ‘차원의 폭풍 때문인가.’
 갑작스레 들이쳤던 폭격보다는 그 경계의 틈 속에서 겪었던 고통이 더욱 큰 후유증을 남기고 있었다.
 강철 같던 육신이 잘 다진 고기처럼 말랑해진 것뿐만 아니라, 그곳을 헤쳐 나오며 쌓인 여독으로 내부가 엉망이었다.
 그 상태에서 뜬금없는 폭격까지 맞았으니.
 ‘몸뚱이가 아주 엉망이네.’
 육신에 새겨놓았던 절대방어의 발동이 아니었다면, 자칫 여기 이 장소가 정말로 묏자리가 됐을지도 몰랐다.
 ‘아티팩트라도 가져올 수 있었으면 지금 상황에 도움이 좀 됐을 텐데.’
 [그대가 가져갈 수 있는 건, 오로지 육신뿐일지니.]
 경계에서 만난 여신은 그리 말하며 지니고 있던 아공간을 비롯하여 계약한 사역마와 각종 무구들을 회수해갔다.
 특히,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금덩이들을 놓고 온 게 더더욱 아쉬웠다.
 ‘알거지가 될 줄이야··· 젠장!’
 편안하고도 안락한 노후를 위한 비상금이 탈탈 털려버린 것이다.
 실제로 귀환 당시 그의 몰골은 옷가지 하나 허락되지 못한 자연체, 즉 알몸이지 않았던가.
 이리 될 줄 알았다면 그냥 그곳에서 뼈를 묻었을 것이다.
 ‘빌어먹을! 그냥 적당히 도마뱀들 근처에 말뚝 박고 은거나 할 것을.’
 유난히 그를 꺼려하던 드래곤들을 생각한다면, 차원이동을 도와준 것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생각해보니 지들 세상에서 나를 치워버리려고 거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네.’
 차원 너머로 온 지금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가능성이 높긴 하지···.’
 어쨌든 지금 상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래저래 눈칫밥 먹는 걸 피하려다 제대로 흙 파먹을 위기라 할 수 있었다.
 ‘후우··· 일단은 회복이 먼저.’
 차원폭풍의 후유증인 것일까?
 회복은 생각보다 더뎠고, 그가 다시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폭격이 발생하고 정확히 반년의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
 
 2020년!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아 나선 소년의 우주 이야기를 그린 언더한 키드의 애니메이션처럼, 저 먼 우주를 향한 항해가 이뤄지진 않았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써 세상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이레귤러(Irregular)!
 또는 ‘차원균열’이라고도 불리는 세상 전반에 걸친 이상 현상과 거기서부터 튀어나오는 괴물까지.
 우주인을 대신하여 차원 너머의 괴수들이 지구를 침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로 갑작스런 출현이었다.
 그 때문인지 각국의 대처 역시도 제대로 이뤄지기가 어려웠고, 거리 위로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피가 흩뿌려지기 시작했다.
 아비규환의 지옥과도 같은 풍경 속에서 절망과 통곡의 울부짖음이 하늘에 닿을 무렵,
 그들이 깨어났다.
 [각성자!]
 혹은 초능력자라 불러야 마땅할 존재들로서, 괴수들의 위협 속에서 그들 능력자들이 하나둘 잠재되었던 이능을 개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등장은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다.
 쏟아지는 괴수들을 막으며 사람들의 안전을 지켰고, 차후 출동한 군대와 손발을 맞춰가며, 최초의 균열사태를 진정시켜나간 것이다.
 괴수 그리고 각성자!
 그야말로 지각변동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은 만큼, 세상은 대격변의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호~! 괴물에다가 각성자란 말이지?”
 “예···옙! 그렇습니다.”
 사내의 물음에 무릎을 꿇고 있던 배동훈은 퉁퉁 부은 얼굴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상대가 잠시 생각에 빠진 듯 보이자, 이를 방해하지 않으려 가만히 숨을 죽인 채 눈치를 봐야만 했다.
 ‘어쩌다 내가··· 대체 어째서?’
 그러면서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인지, 바삐 상황을 되새기며 시간을 되돌려갔다.
 ‘레이더 따라서 한창 삽질을 했었지.’
 생각지도 못한 신호음에 기대감을 품은 채 삽을 들었다.
 ‘반년 전에 이곳에서 발생했던 차원균열은 분명 규모가 제법 되는 거였으니까.’
 때문에 한동안 이 부근에 군부대가 주둔하며 이런저런 조사를 하지 않았던가. 그쪽에 꽂아놓은 정보원을 통해서, 당시에는 제법 소란이 일었던 것을 알고 있었다.
 워낙 갑작스런 균열이었던 까닭에, 능력자들을 부르기보다 폭격으로 상황을 정리했을 것이다.
 ‘그나마 산중이어서 다행이었지, 만약 도심이었으면 피해가 어마어마했을지도···.’
 애초에 도심지에 폭격이 이뤄질 가능성 자체가 낮은 편이기는 했다.
 어쨌든 별다른 성과가 없었음일까?
 오래지 않아 군부대는 사라졌고, 배동훈은 그 흔적이 완전히 지워졌다 싶을 즈음 이렇게 발길을 한 것이었다.
 ‘진정한 트레져 헌터는 꺼진 불씨도 다시 보는 법!’
 그 같은 이유를 내세우며 끈질긴 조사를 이어갔고, 그러던 중 가져온 측정기가 뭔가를 발견하며 신호를 알리자 열정적으로 삽질을 시작했다.
 ―까앙!
 ‘그러다가 삽 끝에 뭐가 걸렸었지.’
 옳거니 싶은 마음에 한껏 신나서 흙을 파냈고, 이내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놀라야만 했다.
 [하···놔! 폭격으로도 부족해서 대가리에 삽질이라니. 지난번부터 환영 인사가 참···놔! 아름답다. 아름다워.]
 눈앞의 사내가 흙더미에서 고개를 빼꼼 내민 채 뭐라뭐라 중얼거리고 있던 까닭이었다. 사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처음은 실수로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다음에 있었다.
 [으아아악―!]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과 함께 재차 삽질을 해버렸단 것이다.
 ‘어쩔 수 없잖아!’
 땅속에서 대뜸 머리가 튀어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젠장···.’
 두 번째 삽질은 사내의 눈을 돌아가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이내 땅거죽이 뒤집히며 사내가 튀어 오르더니, 그를 신명나게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구타가 이어졌지만, 결과는 보는 바와 같이 멀쩡히 살아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질의문답.
 “좋아. 대충 이야기는 이해했어. 그러니까 세상이 아주 개꼬라지라 이거지.”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런데 지금 몇 년도냐?”
 “···2041년입니다.”
 “흠···.”
 배정훈의 대답에 사내는 재차 생각에 빠진 듯, 턱을 괴고는 조용히 혼잣말로 뭐라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뜻밖의 이야기에 사내, 바론은 적잖이 놀라야만 했다.
 ‘겨우··· 21년밖에 안 지났다고?’
 300년의 세월을 다른 세상에서 지내다가 왔건만, 이곳에서는 그 반의반도 안 되는 시간만이 흘렀을 뿐이었다.
 [그대를 위한 작은 선물을 주지.]
 이것저것 뜯어가기만 해서 미안했던지, 여신은 그리 말하며 차원의 폭풍 속으로 그를 떠밀었었다.
 [부디 좋은 만남이 있기를···.]
 저도 모르게 심장의 박동수가 빨라졌다.
 ‘설마, 선물이 이건가? 그렇다면···.’
 어쩌면 하는 기이한 감각이 그의 등허리 타고 뒷목을 두들겼다.
 [부모님!]
 다시금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리라.
 사실, 꼭 만나야 한단 생각이 드는 건 아니었다. 이계에서의 생활은 정상적이지 않았고, 여러 방면에 걸쳐 감정적인 부분을 비틀어 놓은 까닭이었다.
 “그래도 일단··· 자식된 도리로써, 얼굴을 비춰드려야겠지.”
 바론은 배동훈의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이 많은 부분에서 크게 변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놀라웠던 부분이라면 역시나 ‘각성자’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의문이나 의심은 들지 않았다.
 배동훈과의 첫 대면 당시, 그의 머리를 두들기던 삽질에는 분명한 괴력이 담겨있던 까닭이었다.
 직접 몸으로 겪었으니 더 말할 이유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 신명나는 매타작 속에서 배동훈의 맷집이 일반인의 영역을 벗어나 있다는 것도 확인하지 않았던가.
 뻔히 눈앞에 각성자가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처음에는 배동훈의 존재로 인해, 그가 또 다른 이계로 넘어온 게 아닌가도 싶었다.
 하지만 비명에 섞여 나온 한국어를 통해서 한 가닥 희망을 품게 되었고, 이어진 배동훈의 설명으로 상황에 대한 정리 및 이해까지 마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주 이상한 것도 아닌가.’
 애초에 그가 이계로 넘어갔던 차원균열을 생각한다면, 이곳 세상에서도 기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배동훈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가 이계로 넘어간 시점과 세상에 괴물이 출몰했던 시기가 얼추 맞물리는 느낌이기도 했다.
 좀 더 시대의 변화를 파악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게 생겨버렸다.
 ‘일단은 부모님 먼저.’
 물론, 상황이 마냥 희망적인 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이번만큼은 여신의 이야기를 한번 믿어보고 싶었다.
 어쨌든 부모님이지 않던가.
 마모된 감정도 일견 희망을 바라고 있었다.
 
 
 # 2. 첫 균열.
 
 “꺄아아아아악―!”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아찔한 비명에 저도 모르게 맞장구를 쳐버렸다.
 “으아아아아악―!”
 “변태! 꺄아아아아악―!”
 비명 중간에 섞여 나온 한 단어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러고 보니···.’
 스스로가 자연체 그대로, 즉 알몸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눈앞의 여성이 스피릿이 충만한 샤우팅을 내지르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던 것이다.
 ‘끄응···.’
 추위나 더위 같은 날씨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몸뚱이를 지니다 보니, 이 서린 한파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고, 그런 이유로 스스로의 상태를 깨닫는 게 생각보다 늦어버렸다.
 ‘알몸으로 행동하는 게 처음도 아니고.’
 저쪽 세상, 이계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수시로 맨몸이 되어 전장을 뒹굴 때가 많았다.
 어지간한 갑주가 아니고서는 마왕군의 전력을 버텨내기가 어려웠고, 그러다 보니 항상 전투 막바지가 되면 헐벗다시피 하는 게 일상이었다.
 차후에 그의 명성에 어울리는 신기를 얻게 되지만, 그마저도 여신에게 전부 반납해야 하지 않았던가.
 “꺄아아아아악―!”
 여전한 여인의 비명에 사방에서 불이 켜지며 하나둘 사람들의 인기척이 다가드는 게 느껴졌다.
 “무슨 소란이야?”
 “변태다! 변태가 나타났다!”
 몇몇 그를 발견한 이들의 성난 외침도 들려왔다.
 ‘젠장!’
 황급히 도망치듯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만약 시간대가 밤이 아니었다면?
 뿌우···
 코끼리 아저씨의 손이 어딘지 들켰을지도 몰랐다.
 쓰게 웃고 있을 때, 뒤편에서 흐릿하니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끄으으응···.”
 뒤를 돌아보자 웬 중년의 알몸 사내가 원망 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으음··· 나쁜 놈···. 상도덕도 없는 놈! 동업자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
 이어지는 중년인의 음성에 인상을 구겨야만 했다.
 “그쪽하고 동업자 아니니까 착각 마셔.”
 바론은 좀 전에 중년인으로부터 갈취한 바바리의 허리띠를 졸라매며 이야기를 이었다.
 “되도 않는 물건으로 지랄은···쯧! 족 잡고 반성이나 하셔.”
 맘 같아서는 잠시 시간을 들여 참교육을 실천할까도 싶었지만, 조금 전 여인의 비명을 쫓던 인기척이 다가드는 게 보였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뜬금없이 만난 눈앞의 중년인 덕분에, 적당한 옷가지를 얻은 것뿐만이 아니라, 좀 전 사건도 떠넘길 수 있을 듯싶었다.
 가볍게 쑤셔 넣은 정권 한방에 사지가 마비된 만큼, 아마도 저 중년인은 다가올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럼 고생하라고.”
 짤막한 인사말을 남기며 자리를 피했다.
 “꺄아아아아악―! 여기 변태다.”
 떠나기 전에 작은 선물을 남겨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음성 변조쯤이야.’
 문득, 바닥에 주저앉아 신음하던 중년인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저 멀리 다가오는 호각소리를 들은 까닭이었다.
 “이놈이다!”
 “이놈인가?”
 “뭔가 다른데?”
 “물건이 좀···.”
 왠지 어깨가 으쓱해지는 내용까지만 귀담아들은 뒤,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
 
 ***
 
 생각보다 짧은 바바리코트의 길이 때문인지, 여전히 밤의 어둠을 틈타 움직여야만 했지만, 그 정도는 크게 문제될 부분이 아니었다.
 마왕군의 그림자를 타고 넘으며 생활하던 시절도 있었으니, 이 정도야 누워서 떡먹기 수준이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다른 부분에 있었다.
 앞서 여인과 마주하던 그 순간까지 고민하고 있던 문제이기도 했는데, 이를 해결하기 전에는 상황을 진행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모르겠네. 모르겠어. 끄응···.”
 열심히 머리를 싸매고 생각을 거듭하고 있지만, 도통 답이 나오질 않았다.
 “집이··· 어디였지?”
 어렵사리 돌아온 고향이건만, 이게 웬일? 주소가 기억나질 않았다.
 “젠장! 내가 이렇게 빡대가리였나. 끄응···.”
 저 이계에서 100년의 세월을 넘겼을 때, 이미 스스로를 그곳의 사람으로 인정했었다.
 시간의 흐름이 흐름이다 보니, 지구로 돌아간다 할지라도 누구 하나 반겨줄 이가 없을 거라고 여겼던 부분이 그 같은 결심을 하게 만든 것이다.
 이후로는 지구를 잊은 채, 말 그대로 이계의 일원으로서 살아갔을 뿐이었다.
 “설마, 20년밖에 안 흘렀을 줄이야.”
 그나마 뿌리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써, 본래의 이름을 사용하며 생활했는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바론!]
 이계에서도 크게 어색하지 않은 이름이기도 했다.
 사실, 이 이름 때문에 그의 고향에서는 이런저런 놀림을 받기도 했었다.
 [외국인이냐?]
 [교포라고 하던데?]
 [영어 한 번 해봐.]
 뭐, 뻔히 있을 법한 오해로 시작된 놀림이었다.
 “건방진 짜식들이 순우리말인 것도 모르고 놀려댔었지.”
 언뜻 외국식인 듯 보이지만, 그의 이름은 ‘바른’의 옛말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써, 바르게 살라는 의미로써 지어진 이름이었다.
 아이들의 끈질긴 관심 혹은 놀림 덕분에 바른 삶을 살기가 어려워, 한때는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절을 겪기도 했지만, 그런 과거도 이제는 죄다 추억이 되어있었다.
 사실, 그뿐만이 아니라 부친을 비롯한 친가 대다수가 순우리말로 된 이름을 지녔는데, 이는 그들 가문 나름의 전통이기도 했다.
 ‘놀림도 집안 내력이고···.’
 부친 역시도 이름 때문에 어릴 적 자잘한 말썽들이 제법 있었다고 하니, 소년기의 풍파도 나름 웃픈 전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상법이라고 해야 할까?
 과거, 그의 이름을 통해 발생했던 여러 놀림들이 떠오르더니, 이내 이를 통한 사건 사고들까지 생각이 닿았고, 점차 바닥 깊이 가라앉아 있던 옛 기억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른치킨!”
 번쩍, 눈이 뜨이는 기분이었다.
 모친이 하던 치킨 가게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동네의 풍경 역시도 하나둘 그려지기 시작했다.
 “일산!”
 벼락처럼 터져 나온 외침이 그가 가야 할 목적지를 명확히 제시해줬다.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많은 것들이 변했을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큰 발전은 없던 것일까?
 거리의 분위기나 풍경 자체는 커다란 차이가 없어보였다.
 “그 도굴꾼 녀석 말처럼, 크게 변한 건 없네.”
 배동훈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하늘을 나는 자동차 같은 걸 기대했지만, 전과 다를 게 없는 풍경도 크게 나쁜 건 아니었다.
 물론, 사람들의 표정에서 은은히 비치는 긴장감 등은 차원균열이라는 단어를 재차 상기하게 만들었지만, 일단 전체적인 거리의 이미지 자체는 옛 기억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목적지를 찾아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확실히 도로 표지판이 잘 돼 있네.”
 안개 짙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작정하고 달리는 이상, 이 어둠 속에서 그를 꿰뚫어 볼 존재는 없었다.
 사실, 현재 그의 몸 상태는 정상이라 보기에는 어려웠다.
 [오러, 마나, 영력!]
 이계에서 농담처럼 ‘삼신기’라 부르던 세 종류의 기운들을 차원 폭풍의 후유증으로 전부 잃어버린 까닭이었다.
 용병이라는 이유 때문일까?
 명확한 명성을 얻기 전까지는 그의 대우가 생각보다 좋지 못했고, 당연히 신기라 칭해지는 무구를 받기도 어려웠음에, 스스로 신기를 품겠다며 오러와 마나 영력을 쌓은 뒤 이를 삼신기라 칭했었다.
 이후, 왕의 칭호를 받고 난 뒤에야 진짜 신기를 접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지금은 전부 반납했지만.’
 물론 그런 무구들이 크게 아쉽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나의 기운을 품기도 어렵건만, 무려 세 종류의 기운을 품었다는 부분에서, 그의 내부에는 ‘신기’라 칭하기에 충분한 기운이 깃들었던 까닭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삼신기는 동료들도 인정한 명칭이기도 했다.
 용병왕을 대표하던 세 종류의 기운들이건만, 지금은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땅속에서 반년가량을 회복에 힘써야 했던 것도, 순수하게 육체적인 능력만으로 회복하려다가 보니 시간이 길어진 것이지 않던가.
 “삼신기도 회복해야 할 텐데.”
 차원이 달라서 그런 것일까?
 일단 대기를 타고 흐르는 기운의 성질에서 묘한 이질감을 느끼는 중이었고, 이를 분석하기 전까지는 비어버린 그릇을 채우기란 어려울 듯싶었다.
 “뭐, 이런 맨몸으로 마왕군 12군단 돌격대로 짓이겨 놨으니.”
 삼신기가 없다고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세 번에 걸친 바디 체인지!]
 이미 그 몸뚱이의 강도만으로도 초인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단지, 속이 텅 빈 느낌이 어색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확실히 있다 없으니까. 좀 그렇긴 하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까진 아니지만, 확실히 불편한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허한 배를 두드리면서도 표지판을 따라 쉼 없이 내달린 결과, 오래지 않아 목적지인 일산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그리고 굳어버렸다.
 “여기가··· 일산?”
 장갑차를 비롯하여 생각지도 못한 군용시설들과 함께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으며, 그 너머로 폐허가 되어버린 것 같은 세기말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황급히 지나온 표지판을 살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게··· 일산이라고?”
 희망이란 단어로 달궈졌던 심장이 차갑게 식어가는 걸 느꼈다.
 사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기는 했었다.
 배동훈이 이야기했듯, 최초의 균열이 발생하던 당시, 무수히 많은 피가 흩뿌려졌고, 수많은 통곡과 절규가 세상 가득 채워졌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만약’이라는 가정이 남아있음에, 심장의 펌프질을 일단 내버려뒀던 것이다.
 “하···.”
 어깨의 힘이 쭈욱 빠졌다.
 “···의미가 없군.”
 꾸역꾸역 옛 이름과 기억 추억들을 떠올리려고 한 노력들 때문일까? 밀려오는 탈력감도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냥 해외에서 살까?”
 힘없는 웃음과 농담으로 가슴을 달래보지만, 한순간에 식어버린 심장은 쉬이 온기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잠시간 그렇게 넋을 놓고 있을 때였다.
 우우우웅···
 저 너머, 폐허가 된 풍경 속에서 이질적인 울림 혹은 파동이 밀려드는 걸 느꼈다.
 입술을 잘근 씹은 그가 바리케이트를 넘었다.
 주변으로 군인들의 철저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신형을 발견하지 못했고, 그렇게 바론은 폐허가 되어버린 일산으로 스며들었다.
 
 ***
 
 우우우웅···
 북풍길드의 공략 3팀 팀장인 차일권은 인상을 구기며 욕지거리를 쏟아냈다.
 “아오··· 진짜! 꼭 잠들라고만 하면 상황이냐. 한 서너 시간은 더 여유가 있을 줄 알았더니. 지랄 맞네!”
 저 앞으로 폐허가 된 한편의 허공이 갈라지는 게 보였다.
 “균열 측정기 값은 뭐라디?”
 “거 참, 장사 하루 이틀 합니까. 이번에도 3레벨입니다.”
 부팀장 장건의 대답에 차일권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하아··· 피곤하겠네. 잘 시간에는 적당히 2레벨 정도만 나왔으면 참 땡큐인데 말이지.”
 “그러게요. 대체 이 지랄은 언제쯤 끝난답니까?”
 “일단 올해로 잔여균열 처리도 2년째니까. 우리한테는 이번 파견이 마지막일 것 같긴 한데. 확신은 못하겠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열린 6레벨의 차원균열이니까. 이것저것 조사한다며 비비다 보면, 글쎄다. 아무래도 한 번쯤은 더 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누가 들으면 재해급인 7레벨이라도 열린 줄 알겠네요.”
 “뭐, 우리나라 입장에서야 6레벨도 충분히 재앙이나 다름없었잖냐. 여기 일산 풍경을 봐라. 그 멋진 도시가 아주 쑥대밭이 된 거.”
 “그나마 시민 피해라도 없었으니 다행이죠.”
 “균열 측정기가 나온 덕분이지. 일찌감치 대피령을 내릴 수 있었으니까. 뭐··· 헌터 피해야 어마어마했지만. 쯧!”
 레벨 6 정도쯤 되면 일주일 전쯤에 이미 그 신호가 잡히는 만큼, 일찌감치 대피 및 대비를 하며 상황을 준비할 수가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반년 전쯤에 측정값이 안 잡히는 균열이 하나 나왔다고 하던데. 그건 어떻게 되었답니까?”
 “글쎄다. 생각보다 조용히 지나간 모양이더라.”
 “의외네요. 레벨 측정도 제대로 안 되는 균열이 갑자기 발생해서 KEA 측에서도 제대로 비상 걸렸었다고 들었는데.”
 “워낙 갑작스러워서 능력자들을 제대로 불러 모으기도 어려웠다고 하긴 했었지.”
 지금이야 이렇게 가벼이 이야기를 하지만, 당시에는 여러 길드 및 단체에 비상경계령이 내려오며, 이런저런 난리가 났던 게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다행히 산중에서 발생한 거라, 일단 균열 열리자마자 폭격을 쏟아부어서 해결했다고는 하는데··· KEA, 협회 측에서 제대로 통제를 들어가서 그런지, 이후의 이야기는 나도 별로 들은 게 없다.”
 “폭격으로 잠재운 거 보니, 5레벨은 못 넘었나 보네요.”
 “뭐, 이후에 별다른 소식이 없던 걸 보면 그렇겠지.”
 어깨를 으쓱이던 그들 두 사람의 눈가에 섬뜩한 빛무리가 어렸다.
 균열에서 드디어 몬스터라 불리는 괴수가 튀어나오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어후··· 젠장! 벌레는 딱 질색인데.”
 “그러게나 말이다.”
 한숨을 푸욱 내쉬며 질색하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팀원과 타 길드의 요원들 역시도 질겁한 얼굴로 균열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을 바라봤다.
 거미의 형상을 한 몬스터였는데, 그 덩치가 어지간한 성인들보다도 더 커 보였다.
 쏟아지는 거대한 거미무리를 향해, 대기하고 있던 각 길드의 능력자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
 
 “후···.”
 바론은 차원균열의 현장을 바라보며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저게 차원균열인가.’
 멀찍이서 날아들던 파동을 느끼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걸음을 했건만, 생각이 그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물론, 예상치 못한 부분도 있었다.
 “···왜 저렇게 약해?”
 오랜만에 찾은 그의 고향을 엉망으로 만든 게 괴수며 균열이라는 건 이미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의 희망을 짓밟고 심장과 감정을 동결시킨 존재들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때문에 파동을 쫓아 균열을 찾은 것이지 않던가.
 하나,
 그 실상은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정말, 딱 벌레 수준이군.”
 얼어버린 심장과 마찬가지로 그의 머리마저 차게 식어버렸다.
 한심한 수준에 분노할 가치마저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 맞서는 능력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삐리하네.”
 속된말로 가관이었다.
 
 ***
 
 저쪽 세상,
 이계에서 살아가던 와중에 수시로 생각했던 게 있었다.
 [총 한 정만 있어도 참 편할 텐데.]
 오로지 초재생에만 의존해야 했던 초반의 비리비리하던 시절에, 특히 그 같은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리고 오늘 상상이 현실이 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타타타타타탕···
 균열을 막기 위해 능력자라 불리는 이들이 총을 들고 난사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종류들도 다양했다.
 한때나마 그에 대한 상상력을 무궁히 키웠던 시절이 있던 까닭인지,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었다.
 과거 그의 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K계열의 총기류부터 것부터 시작해서, 저건 이 동네에 있으면 안 될 거 같은 A계열 총기에 미군에서 쓰일 법한 것들까지, 마치 세계의 전쟁사가 눈앞에 펼쳐져 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다양한 총화기가 불을 뿜을 때, 그 사이사이에 개별적인 능력들을 끼워 넣음으로써, 그들이 마냥 총기류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굳이 비율로 하자면 7대 3 정도로, 능력을 최대한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유심히 이를 지켜보던 바론은 저들의 전투방식에 대한 이유를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뭐, 조루도 아니고. 쩝···.”
 저들 내부에 일렁이는 기운 축적량의 문제였다.
 때문에 총기류를 사용하면서 최대한 기운을 아껴가며 전투를 이어가는 것으로 보였다.
 내심 총기류에 대한 환상을 지니고 있던 까닭일까?
 “생각보다 약하네.”
 소총의 화력으로 압도하고 압살하는 걸 기대했건만, 의외로 거대거미들은 총격을 잘 버텨냈고, 덕분에 기대감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을 맛봐야만 했다.
 이외에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들도 여럿 비쳤는데, 그 대부분이 능력을 이용한 전투 방식에 대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능력 활용의 방법이 실망스러웠던 것이다.
 “기운이 딸리면 기술이라도 있어야지. 이건 뭐, 이도 저도 아니잖아.”
 짐작하기를 총기류가 지닌 화력에 기대서 전투를 끌어가다 보니, 기운 자체에 대한 섬세한 컨트롤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 떼고 차 떼도 장군을 칠 줄 알아야지. 엉망이구만.”
 이계에서 뛰어난 고등 수학자들을 접하다가, 갑자기 덧셈뺄셈의 기본적인 초등산수 수준의 공부를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몬스터가 출현한 게 20년 정도랬던가.’
 능력 활용에 대한 개발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고는 하나, 아무래도 그 시간 만에 이계시절과 비교할만한 운용 방법을 이뤄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고개를 저은 그가 흥미를 잃었다는 얼굴로 발길을 돌릴 때였다.
 “음?”
 차원균열 너머에서 색다른 변화가 느껴지더니, 갈라졌던 허공이 크게 흔들리며 한층 더 넓게 벌어지는 게 보였다.
 전투가 한창이던 능력자들도 이를 느낀 듯, 경악성 섞인 외침을 내지르며 소란을 떨기 시작했다.
 “젠장!”
 “이상 균열 발생! 이상 균열 발생!”
 “빌어먹을! 물러나. 거리 벌려.”
 “당장 지원 요청해. 쉬는 놈들 싹 불러오라고.”
 그와 동시에 능력자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여전히 거대거미들이 밀려들고 있어서인지, 그에 대한 대처도 잊지 않았는데, 이전과는 전투방식에서 커다란 차이가 느껴졌다.
 좀 전의 전투가 총기류의 화력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면, 지금은 쌈짓돈마냥 꿍쳐둔 비자금을 풀 듯, 능력을 아낌없이 드러내며 전투에 임하고 있단 점이었다.
 바론은 그 모습을 보며, 마치 곧 다가올 무언가를 위해 무대를 정비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과연, 작정하고 실력발휘를 하고 있는 것인지, 좀 전보다는 한층 볼만한 광경들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최후방에서 지원하던 능력자가 모든 무기를 조달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건넨 물건이 뜻밖이었던 것이다.
 ‘검?’
 갑자기 현대전쟁에서 중세로 퇴보하는 느낌이었지만, 뜻밖에도 검을 든 이후의 몸놀림은 이전보다 더 인상적인 부분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검이라는 병기의 특성상 거대거미와의 근접전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와중에 총화기를 든 이들의 사격 실력이 새롭게 빛을 발했다.
 근접전을 치르는 동료의 움직임을 정확히 피해가며 거대거미에게 총알을 때려 박고 있던 것이다.
 ‘생각보다 호흡이 좋은데.’
 오랜 시간 합을 맞추며 익힌 합이리라.
 앞서 평가했던 능력자들의 점수가 슬며시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근접전이라는 치열한 위험을 무릅쓴 덕분일까?
 균열 앞 대지에 들끓던 거미 떼가 빠르게 그 자취를 감춰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대의 정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그 불완전한 정비 속에서 원치 않던 본 공연의 시간이 다가와 버렸다.
 “젠장! 인면지주다. 거리 더 벌려. 물러나.”
 “까스 까스 까스!”
 “레벨등급 한 단계 상향 조정하고, 올 때 방독면 챙기라고 무전 보내. 일단은 각자 능력으로 주변 통제하면서 버텨.”
 넓혀진 균열에서 튀어나온 건 놀랍게도 머리가 사람의 모습을 한 거대한 거미였다.
 기존 거대거미의 배는 되어 보였다.
 등장과 동시에 주변 공기가 눅눅하게 젖어 드는데, 경력깨나 있는 능력자들은 그것이 인면지주가 발산하는 독기운이라는 걸 알고는 주변 동료들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상당히 강한 독기운인 듯, 주변에 무성했던 잡풀들이 순식간에 꺼멓게 시들어가는 게 보였다.
 “빌어먹을!”
 욕지거리가 절로 튀어나오는 상황이었다.
 “거미줄 좀 치워놓을 것이지.”
 “젠장! 누가 이렇게 될 줄 알았나.”
 거대거미와의 전투 중에 펼쳐진 거미줄들이 사방에 그득해, 근접 능력자들의 이동을 방해하고 있던 것이다.
 그 끈끈한 접착력을 경시하긴 어려워서 발밑에 주의를 기울여야만 하는 탓에, 그렇잖아도 껄끄러운 상황이 더욱 불편하게 되어버렸다.
 거기에 더욱 최악인 건, 기존의 거대거미들이 독기운에 피해를 입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날래진 것 같은 움직임으로 능력자들을 덮쳐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키에에에에엑―!
 문득, 인면지주가 섬뜩한 괴성을 내지르며 펄쩍 뛰어오르는 게 보였다.
 촤아아악!
 그리고 사방으로 펼쳐지는 거미줄에 능력자들이 기겁하며 이리저리 몸을 굴렸다.
 “피햇!”
 인면지주의 거미줄은 두 가지 능력이 있었다. 산성능력과 끈끈한 접착능력이었는데, 그 색깔의 여부로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게 가능했다.
 지금 날아드는 건 녹색 빛을 머금고 있었는데, 이는 산성 효과가 있는 거미줄이었다. 자칫 저기에 닿았다간 그대로 몸이 녹아버릴 수도 있었다.
 혹여 능력으로 버텨낸다 할지라도, 일부 접착능력도 섞여 있는 까닭에 접착제에 붙어버린 듯, 그대로 묶여버릴 위험까지 품고 있었다.
 “산성이다!”
 “잡히면 관 짜는 거다!”
 인면지주를 경험해 본 이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애초에 이곳 일산으로 파견을 온 능력자들은 각자 기본적인 경력이 있는 이들이었다.
 나름대로 머릿속에 든 정보가 많아서인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물론 완전히 피한 건 아니었던지, 몇몇이 거미줄에 섞여든 산성과 독기운에 당해 비틀거리며 안색을 꺼멓게 물들였는데, 그들이 속한 능력자 팀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피해자들을 뒤로 뺐다.
 그 재빠른 반응에 바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는 좀 삐리해도 대처는 그럭저럭 괜찮네.’
 이내 인면지주에게로 시선을 보냈다.
 ‘그래도 아주 맹탕은 아닌 건가.’
 앞서 거미들과 능력자들의 전투에서 적잖이 실망했었건만, 인면지주는 그런 생각을 일부나마 바꾸게 할 만한 수준이 되어 보였다.
 그 같은 생각 변화에 호응하려는 것일까?
 키에에에엑―!
 인면지주의 독침이 그를 향해서 날아오는 게 보였다.
 “으잉?”
 그의 위치가 들켰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한 걸음 움직임으로 이를 피해낸 바론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감이 좋은 놈일세.”
 숨을 죽인 채 어둠에 몸을 담그고 있던 상황이건만, 인면지주는 놀랍게도 그걸 파악하고 공격을 해 온 것이다.
 갑자기 방향감각을 상실하기라도 한듯, 뜬금없게 터져 나온 인면지주의 공격은 몇몇 능력자들의 시선도 함께 끌어모았다.
 “헛! 누구?”
 “벌써 지원이 온 건가?”
 “에라이! 무전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럼, 저건 뭔데?”
 뒤늦게 그를 발견한 능력자들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바바리맨?”
 누군가의 의문 섞인 외침이 터져 나오고, 바론의 신형이 일순 휘청거렸다.
 ‘끄응···.’
 허리띠를 졸라매서 앞을 가렸다고는 하나, 원주인의 신체를 따라 코트의 길이가 워낙 짧다 보니, 아랫도리가 제법 훤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와락, 인상을 구기며 신음하고 있을 때, 기회를 노리듯 인면지주의 공격이 재차 이어졌다.
 그가 있는 위치까지 영역을 넓히려는 것인지, 재차 거미줄이 뻗어 나오며 덮쳐오는 것이 보였다.
 이번의 거미줄은 백색으로써 접착능력이 대거 포함된 녀석이었다.
 “어엇!”
 지켜보던 북풍길드의 차일권이 경악성을 터트렸다. 바바리의 사내가 너무도 쉽게 거미줄에 걸려버린 까닭이었다.
 ‘좀 전의 몸놀림은 우연이었나.’
 독침을 피하던 모습을 봤기에 걱정하지 않았건만, 이 무슨 반전이란 말인가.
 비록 산성효과는 없을지언정 인면지주라는 몬스터의 기본 특성상, 독기운은 일부 섞여 있을 터였다. 짐작건대 이제 고통에 울부짖으며 꺼멓게 죽어가는 것만 남았으리라.
 “회복술사 빨리···.”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음에, 치유 능력자를 움직이려는 찰나였다.
 쫘아악!
 마치 종잇장이 갈라지듯, 옭아매고 있던 거미줄이 찢기고 뜯겨나가며 바바리의 사내, 바론이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헛···”
 “···저게 뭐야?”
 여기저기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당장 지척에서 달려드는 거대거미들만 아니었다면 그대로 턱을 떨치며 넋을 놔버렸을지도 모를 장면이었다.
 독기운? 접착력?
 인면지주를 대표하는 능력들이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상황을 봤으니,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할 것이다.
 그들 못지않게 바론 역시도 다른 의미에서 넋이 나갈 위기였다.
 “젠장··· 어느 정도인지 확인만 하려던 건데.”
 어차피 들켜버린 상황이니만큼, 생각을 달리해 인면지주 거미줄의 위력과 독기운을 한 번 감상하려고 멀뚱히 거미줄을 받아들였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괴수이기에 가볍게 간만 보려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치명적인 실수가 될 줄이야.
 “와···이건 뭐, 아주 그냥 거렁뱅이가 따로 없네.”
 인면지주의 독기운에 삭아버리고, 거미줄의 끈끈함에 뜯겨나가면서, 그가 입고 있던 바바리가 한순간에 넝마가 되어버린 것이다.
 찰나의 호기심에 사달이 났다.
 뿌우우우···
 코끼리 아저씨가 나와 버렸다.
 갑작스런 카메오의 등장이 당혹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짙은 어둠이 그의 몰골을 일부 가려준다는 점이었다.
 “숙녀분도 계셔서 민망하니까 빨리 끝내자.”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분명 저들 능력자들 사이에는 여성들도 끼어있었고, 이는 바론으로 하여금 전력을 내비치게 하기에 충분한 이유로 작용했다.
 팍···
 강하게 발밑의 돌멩이를 걷어찼고,
 퍼억···
 인면지주의 대가리가 터져나갔다.
 “······.”
 “···어?”
 “···억!”
 침묵 그리고 의문, 뒤이어 터져 나오는 경악성까지. 충격적인 상황이 능력자들로 하여금 일순간 판단력을 앗아가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도주.
 “······.”
 모두가 벙찐 얼굴로 바바리맨의 탄탄한 엉덩이가 멀어지는 걸 바라봐야만 했다.
 
 ***
 
 “캬아아아아악!”
 “캬아악!”
 남아있던 거대거미들이 우두머리의 죽음에 분노하듯,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어 능력자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젠장!”
 “일제사격!”
 사라진 바바리맨의 뒤를 쫓을 생각은 잠시 미뤄둔 채, 다시금 그들은 전장에 집중해야만 했다.
 인면지주는 사라졌지만, 잠시간 놈이 남긴 흔적으로 인해 주변은 독기운과 부식효과가 있는 거미줄 그리고 한층 더 접착력이 강렬한 거미줄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거대거미의 수가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처리하는 건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어려웠다.
 특히, 잠시나마 전력을 끌어냈던 게 문제였던 듯, 일부는 탈진해서 지친 몰골을 한 채, 최후방으로 물러나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인면지주의 죽음 이후, 균열이 그 틈을 메우기 시작하며 몬스터를 더는 토해내지 않는다는 부분이었고, 이는 남아있는 거대거미의 수를 생각해 봤을 때,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란 점이었다.
 즈즈즈즈즈즉···
 그 끝을 알리는 듯, 균열이 닫히는 소리가 공간을 채웠다.
 파아아앙!
 오래지 않아 그 끝에서 파동이 터지며 균열이 닫혔고, 그 즈음에는 거대거미 처리도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나 그들의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빨리, 찾아!”
 “본부에 통신 보내고, 주변에 요원들 배치 시켜.”
 “움직여!”
 호들갑을 떨며 바바리맨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안 찾습니까?”
 다른 길드를 살피던 장건이 그리 물으며 팀장인 차일권을 바라봤다.
 “찾아서 어쩌게?”
 “일단, 신분 확인을···.”
 “어떻게? 체포라도 하게? 인면지주를 한 방에 처리한 놈인데?”
 “···으음! 협조를 요청하는 형식으로··· 안 될까요?”
 “그런 걸 허락할 거면 왜 도망갔겠냐. 게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더만, 지금 쫓아가 봤자 늦었어. 그러니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앉아서 쉬어.”
 차일권은 그리 말하며 공략 3팀의 팀원들에게도 손짓하며 휴식을 지시했다.
 그렇지 않아도 갑작스런 이상균열 발생으로 인해 한껏 기운을 끌어내면서 지칠 대로 지친 팀원들이었다.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지시에 일제히 바닥에 주저앉으며 늘어지기 시작했다.
 장건 역시도 그 사이에 끼어 엉덩이를 걸치며 물었다.
 “누굴까요?”
 “멍청한 질문 할래. 그걸 모르니까 저치들이 저 지랄을 떠는 것 아니냐.”
 민망함에 뒷머리를 긁은 장건이 재차 물었다.
 “등급이 어떻게 될까요?”
 이번에는 타박이 날아들지 않았다.
 정체는 알 수 없으나 인면지주를 잡을 때 그 실력의 편린을 봤던 까닭에, 나름대로 추측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고심하던 차일권이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S등급··· 이려나.”
 “역시!”
 장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듯 동의를 표했고, 다른 팀원들도 비슷한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인면지주가 비록 4레벨로 분류되지만, 그 지독한 독기운에 단단한 껍질, 그리고 두 가지 특성을 지닌 괴랄 맞은 거미줄까지, 워낙 까다로운 상대라서 5레벨 못지않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단 말이지.”
 등급을 조정한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였다.
 “사실, B등급만 돼도 어찌어찌 인면지주를 혼자 상대할 수 있겠지만, 조금 전에 본 것처럼 단숨에 정리하는 건··· 솔직히 A등급이라고 할지라도 어려울 것 같다.”
 그 이상의 말은 아꼈다.
 아무리 그가 초기 각성자로써 오랜 경력의 베테랑이라 할지언정, 결국 C등급에서 장시간 체류해있는 수준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두 단계 이상의 윗 등급을 평가한다?
 ‘주제 넘는 소리지.’
 게다가 S등급이라고 하면 전 세계에서도 몇 없는 초인급의 강자들이지 않던가.
 특히, 이곳 한국에서는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는 게 S등급의 능력자이니만큼, 그들에 대한 이야기는 섣불리 입에 담을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와··· 누군지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찾는다면 대박이겠네.”
 “한국도 드디어 초인을 얻는 건가?”
 “그렇게만 되면 일본 놈들도 엿 먹일 수 있을 텐데.”
 “일본뿐이겠냐. 중국 놈들도 못 까불걸.”
 팀원들이 호들갑을 떨며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다른 길드 놈들도 그것 때문에 움직이는 걸지도 모르지.’
 차일권이 생각한 부분을 다른 길드의 베테랑들이 생각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바바리맨의 뒤를 쫓아 움직이고 있었다.
 추격은 불가능할 것임을 알면서도 그의 팀원들과 비슷한 생각이 저들의 등을 떠밀었을 거라 여겼다.
 ‘일단 누군지 찾기만 해도 보상이 엄청날 테니.’
 한국의 현 상황을 생각해봤을 때, 상대가 정말 초인급의 실력자라면 자그마한 정보 자체만으로도 가치를 지닐 터였다.
 그 같은 의미에서 그도 움직여야 하겠으나, 근래 들어 길드장과 이런저런 불화가 쌓여있던 까닭인지 그리 내키지가 않았다.
 ‘가능성도 낮으니까.’
 때문에 일찌감치 미련을 털어버리며 팀원들의 수다에 동참하려는 찰나, 저 멀리서 익숙한 기척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인면지주의 등장으로 인한 북풍길드의 지원군이었다.
 “뭐야? 지원 부른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와.”
 거대거미를 잡느라 제법 시간이 걸렸다고는 하나, 본진과의 거리를 생각한다면 분명히 빠른 건 사실이었다.
 이에 지원군이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근방에 볼일이 좀 있었어.”
 “흐··· 그래서 5팀장 혼자 온 거구만.”
 “그래.”
 어느새 다가온 사내, 북풍길드의 공략 5팀장은 차일권과 동갑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였는데, 그는 주변을 살피며 눈살을 찌푸렸다.
 “인면지주가 튀어나왔다고 들은 것 같은데. 벌써 끝났어?”
 “뭐, 그럴 일이 좀 있었지.”
 “상황 해결이 됐으면 재깍 무전을 날려야지. 괜히 뭣빠지게 뛰어왔잖아.”
 “이 친구야. 우리도 방금 끝난 거라고. 딱 한숨만 돌렸다가 무전 칠 생각이었어. 애들 좀 봐라. 지쳐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거.”
 사실, 워낙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 까닭인지, 정신이 없어서 무전 생각을 못한 부분이 더 컸다. 아마도 이 부분은 다른 팀들도 비슷할 거라 여겼다.
 당연히 5팀장은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었기에, 떨떠름한 얼굴로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내심 식은땀을 흘린 차일권은 바삐 장건에게 지시하여 상황 정리 무전을 보냈다.
 “그나저나 근방에 볼일이라면, 또 그거야?”
 5팀장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차일권은 잠시 안타깝단 눈빛을 띠었으나, 행여나 그 기색이 들킬까 고개를 돌려 표정을 감췄다.
 ‘에휴··· 20년도 더 전에 죽었다는 아들놈 물건들을 뭐 저리 찾아대는지.’
 5팀장은 원래 이 근방에서 살았는데, 6레벨 사태 당시에 하필 해외로 가족여행을 떠난 상태였던지라 집안의 귀중품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급한 대로 가까운 지인들을 통해서 물건들을 제법 챙겼다지만, 역시나 이것저것 빠진 것들이 많았는데, 거기에는 20년 전 실종되었다던 아들의 물건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귀국을 했지만, 그 즈음에는 이미 통제가 이뤄지고 있었고, 결국 상황이 끝날 때까지 발만 구를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앨범을 잃어버렸으니.’
 따로 핸드폰에 저장을 해 놓은 게 있다지만, 역시나 앨범 원본을 잃어버린 건 생각보다 심적 타격이 컸던 모양이었다.
 세월이란 약으로 떨쳐냈던 아픔이 다시금 들춰지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쯧! 핸드폰에 저장한 사진도 몇 장 안 되니···.’
 그런 이유로 5팀장은 본인의 팀 파견이 아닐 때에도 개인적으로 신청서를 올리며 이곳에 발길을 하고 있었다.
 균열들이 전부 닫히고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하면 더는 찾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더더욱 위험지대에 발을 들이는 것이리라.
 서로가 초기각성자이며 은퇴가 머지않은 나이라는 부분까지, 그 동질감으로 더욱 마음이 맞는 동료이자 친구였기에 더욱 안타까웠다.
 왠지 우울해지려는 분위기를 털어버리려는 듯, 그가 환기를 위한 화제전환을 시도했다.
 “빌어먹을 이상균열 때문에 밤도 늦었는데, 어차피 늦잠 잘 것 차라리 자기 전에 야식이나 한판 때리고 눕자.”
 “오~! 팀장님이 쏘시는 겁니까?”
 “팀장님, 멋땡이!”
 “똬랑합니다~!”
 팀원들의 혀 짧은 환호성 속에 차일권이 5팀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직 영업하지?”
 그 순간 5팀장이 태세를 전환하며 손을 비볐다.
 “오늘도 저희 바른치킨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에 한 차례 웃어 보인 차일권이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엣헴! 언제나처럼 각 1닭에 무 많이. 알겠느냐?”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두 친우의 가벼운 농담 덕분일까?
 확연히 변화한 분위기와 공기 속에서 북풍길드는 치느님의 영접을 위해, 무거운 몸을 이끌며 바삐 정리에 들어가야만 했다.
 
 ***
 
 부모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희망이 무너져버렸다.
 하지만 그 때문에 절망하진 않았다.
 이미 200년도 전, 저쪽 세상에서 더는 가족과 만날 수 없을 거라 여기며 일찌감치 마음의 정리를 마친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감정적인 흔들림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때문에 무너지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기분이 가라앉는 건 어쩔 수 없는 반응이자 현상이었다.
 “후··· 울적하네.”
 입맛이 썼다.
 그렇잖아도 기분이 꿀꿀하건만, 넝마가 되어버린 바바리코트가 그의 몰골을 더욱 처량하고 씁쓸하게 만들었다.
 다행이라 한다면 마냥 최악은 아니었던지, 그 와중에 구원의 희망상자를 발견했다는 점이었다.
 [헌옷 수거함!]
 유일하게 긍정적인 상황이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이런 것도 있었지.”
 진작 떠올랐으면 좋았겠지만, 300년이나 흐른 과거의 기억인 까닭인지, 마주하고 나서야 생각이 난 것이다.
 그렇게 헌옷 수거함을 털어 대충 구색을 갖추고 난 뒤에야 밝은 불빛 아래로 나설 수 있었다.
 “흐음··· 이제는 뭘 할까나.”
 바론은 기존의 계획을 떠올려봤다.
 “저쪽에서 가져온 보석들로 편하게 지낼 생각이었는데··· 쯧!”
 대뜸 여신이 등장해서 죄다 압수당해버렸다.
 “일이라도 해야 하나?”
 하지만 지난 반세기 가깝게 탱자탱자 놀고먹기만 했던 까닭인지, 치열한 그 경쟁사회에 뛰어들고 싶단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으음···.”
 잠시간의 고민 끝에서 하나의 결론이 내려졌다.
 “일단, 좀 돌아보자.”
 무계획도 계획이라 밀어붙이며, 그렇게 그는 거리로 나갔다.
 이후 귀환하고 첫 새해를 맞았고, 시린 겨울을 지나 보냈으며, 온기 가득한 계절까지 흘려보낸 뒤, 어느새 열기 가득한 여름이란 계절과 마주했다.
 그리고 그 즈음,
 그는 완벽한 노숙자가 되어있었다.
 
 
 # 3. 노숙인 A.
 
 길거리에서 잔다는 거, 그리고 산다는 거.
 “별로 어려울 거 없지.”
 충분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동냥질이 일상인 시절도 있었는데. 이 정도야.”
 그도 나름 이 바닥 베테랑이었다.
 특히, 그는 ‘용병왕’이라 불리기 이전에도 그는 이미 ‘왕’의 칭호를 지니고 있었다.
 “왕초라고 불렸을 정도니, 레벨로 치면 만렙 아닌가? 큭!”
 전직 트리가 어쩌다 보니 용병왕으로 넘어갔을 뿐이었다.
 “이 정도면 꿀이지.”
 바론은 이계에서의 초창기 삶을 떠올리며 빠르게 거리 생활에 적응해갔고, 오래지 않아 그는 노련한 노숙자가 되어 그들 무리에 너무도 자연스레 녹아 들어버렸다.
 “정보 수집은 역시 밑바닥에서부터 모으는 거지.”
 노숙을 하게 된 실질적인 이유였다.
 이계에서 쌓은 그의 경험을 토대로, 지난 세월의 정보를 구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게 거리의 일원이 되고, 흙 좀 묻혔을 때 깨달았다.
 “아! 인터넷.”
 스스로가 너무 이계화 되어 있었음을 인정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끄응··· 그 좋은 걸 깜빡하고 있었다니.”
 곁에다 바다를 두고 우물에서 물질을 한 꼴이었다.
 이후 생각이 날 때마다 틈틈이 도서관을 찾아 그곳의 공용컴퓨터로 정보의 바다를 유영하며, 그간 놓쳐온 것들을 머릿속에 주워 담았다.
 물론, 그런 날이면 공원 화장실에서 깨끗이 씻어야만 했다.
 “나이트도 아니고, 입구 컷을 당할 순 없으니까.”
 복장도 최대한 말끔하게 갈아입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너무 자주 이용하는 편은 아니었다.
 헌옷 수거함을 뒤지는 것도 나름 귀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한 번 갈 때마다 뽕을 뽑아야지.”
 차라리 돈을 벌고 멀쩡한 신분으로 복귀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도 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이미 늦어버렸다.
 “노숙··· 너무 편해!”
 이 생활에 제대로 적응해버린 까닭이었다.
 과거, 이계에서 왕초 노릇 할 때보다 더 편하다고 해야 할까?
 “솔직히 거긴··· 삶이 너무 팍팍했지.”
 아무래도 전쟁이 한창인지라 제대로 된 음식은 구하기도 어려웠으며, 어렵사리 구해온 먹거리도 썩은 내에 흙 맛만 날 뿐이었다.
 하지만 여긴 달랐다.
 “배고프면 무료 급식소 찾아가면 되고, 피곤하면 그냥 아무 데나 드러눕고 자면 되는 데다가, 공원 화장실에서 씻고 싸고 다 할 수 있는데. 이 정도면 완전 천국이지.”
 특히, 화장실에 관한 부분에서, 이계 생활을 압살하고 있었다.
 “비데는 정말···.”
 박수 받아 마땅한 문명의 결정체였다.
 짝짝짝짝!
 게다가 주에 두어 끼니만 먹어도 문제없는 아주 특별한 몸뚱이라서, 급식소가 열리는 날짜 맞춰가며 이리저리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무리한다면 보름 정도는 그냥 퍼질러 잘 수도 있었다.
 “세월아~네월아~”
 한 자리에서 먹고 자고 싸고의 완벽한 삼위일체가 가능한 것이다.
 “이게 진정한 무위도식 아니겠어.”
 기존의 노숙자들과는 달리, 그에게는 놀고먹으며 한껏 게으름을 피우는 이 생활이 신선놀음 부럽지가 않았다.
 다른 베테랑 노숙자들도 그에게 난놈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울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런 식으로 유유자적 지내다 보니, 어느새 반년 남짓의 시간이 흘러있었다.
 
 “몬스터들의 사체를 이용한 무기 개발이라.”
 바론은 오늘도 오랜만에 쫙 빼입고선 도서관을 찾은 뒤, 여느 때처럼 인터넷이라는 정보검색의 바다에서 서핑이 한창이었다.
 그가 최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몬스터들을 상대하기 위해 개발되고 있는 병기관련 정보였다.
 “일반적은 총화기로는 상대하기가 어렵단 말이지.”
 기존의 무기들로 감당할 수 있는 건 2레벨의 몬스터들까지라고 나와 있었다. 3레벨에도 어느 정도는 먹힌다고는 하나, 그야말로 난사에 폭격 수준으로 화력을 낭비해야 한다는 문제점이 존재했다.
 그 때문에 무기개발에 힘을 쏟게 되는데, 그 와중에 탄생한 것이 바로 몬스터들의 부산물을 이용한 화력증진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예를 들자면, 괴수들의 사체를 갈아 넣어서 만든 탄알 등으로, 지난 인면지주 사건 당시에 북풍길드를 비롯한 일산의 능력자들이 사용하던 화기가 바로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각 탄알에 쓰인 몬스터 부산물의 수준에 따라서, 상대 가능한 균열레벨도 달라진다고 나와 있었다.
 “몬스터 레벨에 따라서 가공 레벨도 올라간다는 게 함정인가.”
 어찌 되었건 그 같은 이유로 몬스터들의 부산물에 돈이 붙는 것인데, 여기서 또 흥미로운 내용이 이어졌다.
 “마석이라.”
 저 이계의 초월종, 드래곤들의 하트이자 현자의 돌이라 불리는 마력의 정화와 닮은 결정, 놀랍게도 그와 비슷한 게 저들 몬스터들의 내부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일개 몬스터가 이런 걸 품는 건지. 거 참···.”
 물론, 전부가 지닌 건 아니지만, 그래도 3레벨 수준만 되어도 자그마한 결정은 쉬이 구할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
 “흐음··· 차원균열의 영향일라나?”
 당연히 그 윗 레벨에서는 더욱 크고 선명한 마석들을 구할 수 있을 터였다.
 인터넷이 보여주던 내용은 자연스레 무기류에서 마석을 통한 발전과정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마석을 통한 발전기라.”
 새로운 에너지원의 등장이었다.
 이는 균열발생 이후 10년차가 되던 무렵에 이뤄낸 성과로써, 이후 기존 문물들은 이 새로운 에너지로 대처하고 변환하는 과정을 거쳐서 지금에 이르렀다.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문명 수준은 20년 전 상태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하지만 그 내부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바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운 파도를 타기 위해 인터넷 창을 넘겼고, 그 넘실거리는 정보위로 재차 보드를 띄운 채 이리저리 서핑을 즐겼다.
 “세상 참 좋아졌어.”
 습관처럼 그리 중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실상은 무너졌다가 회복을 거친 까닭에, 그가 머물던 당시와 크게 달라진 게 아니었지만, 300년 이란 시간 동안 이계에 한껏 물들어 있던 그에게 있어서, 이런 문명의 결정체들은 그야말로 신세계나 다를 게 없었다.
 요란하니 마우스를 클릭하던 그의 손짓이 일순 침묵했다.
 [일산 6레벨 사태··· 사건··· 사망···]
 멈출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일산···.’
 균열 관련 정보를 조사하다 보면, 간간히 6레벨 그리고 일산이라 적힌 연관검색어들이 나올 때가 있었다.
 [천문학적 피해··· 부대 전멸···]
 기본적으로 메인에 떠 있는 기사들은 자극적이다 못해 아픈 것들로 넘쳐나고, 간간이 보이는 사진도 죄다 모자이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로 득시글댔다.
 일산!
 잠시나마 가족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 장소였던 까닭일까?
 쓰라린 소식 사이사이 올라와 있는 불편한 사진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예 손을 대기도 어려운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전멸··· 사망자 수···]
 그에 관한 클릭 자체를 제외해버렸다.
 아니, 도망쳐버렸다.
 이전에도 괜한 희망으로 쓰린 경험을 하지 않았던가.
 그 때문일까?
 “자꾸 피하게 되네. 쩝···.”
 의도적으로 그와 관련된 검색은 외면하고 또 우회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도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었다.
 슬그머니 방향을 틀어버렸다.
 한 차례 가족에 대한 희망이 꺾였다.
 물론, 친척과 같은 혈연이나 옛 인연 등을 만나는 것도 잠깐 염두에 뒀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버렸다.
 “인연이 되면 만나겠지.”
 굳이 무리해서 찾을 생각까진 들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6레벨 상위 균열은 해외에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니까.”
 상위 균열과 관련된 소식은 한국보다 해외 쪽에 더 다양한 정보들이 많았다.
 굳이 일산 소식을 건드리지 않더라도, 상위 균열에 대한 정보를 구할 방법들은 충분한 것이다.
 기분이 가라앉을 땐, 적당히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밀린 웹툰은 이럴 때 보는 거지. 흐흐···.”
 자그마치 20년간 쌓아놓은 것이니만큼, 생각 없이 시간을 때우기에는 그야말로 최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근래 들어서는 정보 수집보다는 이런 인터넷 유희거리들 때문에 도서관을 찾는 느낌이 강해진 것 같기도 했다.
 한참을 그렇게 즐기고 있을 때였다.
 “오랜만이네요.”
 그의 옆 좌석으로 그림자가 하나가 내려앉는가 싶더니 대뜸 말을 걸어왔다.
 돌아보니 여학생으로 보이는 소녀가 방끗 웃고 있었다.
 “으잉? 선희 네가 이 시간대에 웬일이야? 학교 안 가?”
 “제가 고딩인 줄 아세요? 대학생들은 지난주부터 방학이라구요. 그러니 제겐 이 시간을 만끽할 자유가 있죠.”
 “흐··· 작년에 쌓인 게 많나보네.”
 “수험생이 다 그렇죠.”
 어깨를 으쓱이는 여인은 험난한 수험을 걸어, 올해 대학의 문턱을 넘은 임선희라는 학생이었다.
 그들 두 사람의 인연은 무료 급식소에서 시작된다.
 임선희가 급식소 봉사활동을 참여했을 때 서로 안면을 익히게 되는데, 이후 그녀는 도서관에 멀끔한 모습으로 나타난 바론을 보게 됐고, 이에 놀라 호기심을 느낀 그녀가 좀 더 다가가면서 제대로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게다가 마침 그들 둘 사이의 관심사도 비슷하다는 게 중요했다.
 헌터학과에 들어간 임선희와 지난 20년의 세월을 알기 위해 차원균열에 대해 조사하는 바론의 만남이었다.
 친분을 쌓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늘도 균열 관련 정보 검색이에요?”
 “뭐··· 웹툰도 좀 보고. 그나저나 대학 들어가고 처음으로 맞는 방학인데, 어디 놀러 안 가냐?”
 “나중에 봐서 바다나 한번 다녀오려고요.”
 “그래. 그나저나 오랜만에 봤는데, 여기 동전 좀 채워주라.”
 이곳 청량 도서관은 비록 그 규모가 작기는 하나, 인근에서는 유일하게 동전으로 컴퓨터 사용이 가능한 곳이었다.
 별도로 카드나 회원증 같은 걸 끊을 필요가 없다는 부분에서, 그가 이곳을 애용하는 이유가 되었다.
 특히, 구형 컴퓨터에 게임도 불가한 만큼, 요금도 매우 저렴해서 공병 몇 개만 주워도 충분히 하루 이용료가 나온다는 게 결정적이었다.
 “아저씨도 돈 챙겨왔을 거 아니에요.”
 “에헤~이! 불우이웃을 도우라잖아.”
 그리 말하며 손바닥을 비벼대니 결국 할 수 없다는 듯 임선희가 지갑의 동전을 털어주었고, 바론은 희희낙락하며 신나게 검색에 몰두했다.
 이런 그의 모습에 실소한 그녀가 이내 고개를 저은 뒤 안쪽의 열람실로 향했다.
 모니터에 열중하던 바론이 슬쩍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백화선 팬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한국 최고의 재능이라 불리는 백호 길드 간판스타의 얼굴이 떠올랐다.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A등급에 오른 실력자로서, 차후 S등급의 가능성을 보이며, 한국 최초의 초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여겨지는 여인이었다.
 그녀에 대해 검색을 할 때면,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빙판 위의 요정으로 태어나 여제가 되어 종래에는 여신이라 불렸던 여인!
 외형적으로 그녀와 닮았다는 게 아니라, 백화선의 현재 위치가 그녀와 비슷하다는 의미였다.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는다는 부분이 특히 그랬다.
 ‘미녀라는 점은 다를 게 없나.’
 어깨를 으쓱인 그가 백화선의 현 위치를 상기했다.
 ‘S등급 전에는 여신님은 무리일 것 같고, 지금은 얼추··· 요정에서 여제로 넘어가는 정도이려나?’
 갑자기 이런 생각들을 하는 이유가 뭘까?
 ‘바로 옆에 백화선이 있는 걸 알면 깜짝 놀라겠지?’
 백화선이 이곳 초량 도서관에 있는 까닭이었다.
 물론, 얼굴을 가리고 들어 온데다가, 개별 칸막이가 있는 제3열람실로 들어간 만큼, 아무도 그녀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단 한 명 바론만큼은 아니었다.
 ‘내 심미안을 피할 미녀는 없지.’
 서큐버스의 위장도 간파했던 눈썰미가 아니던가.
 ‘걔들이 밤에는 끝내줬는데··· 꿀꺽!’
 잠자리를 넘어 꿈에까지 들어오는 마족, 그야말로 골수 약탈자가 따로 없었다.
 백화선은 이 근방에 사는 모양인지, 간혹 저처럼 도서관에 모습을 보이고는 했는데, 언제나 얼굴은 싸매고 오는 까닭에 정체가 발각된 적은 없었다.
 좀 전에 임선희가 들어간 열람실도 제3열람실이니 만큼, 그야말로 지척에 동경의 대상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말해줄까 싶다가도 백화선이 얼굴을 싸맨 이유를 굳이 그가 걷어낼 필요는 없다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괜히 쓸데없이 얽힐 수도 있고.’
 귀찮은 일은 사전에 차단하는 게 좋았다.
 물론, 세상일이라는 게 언제나 계획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애당초 접촉사고도 혼자 조심한다고 안 나는 게 아니지 않던가.
 “아저씨. 아저씨. 저 화선 님을 본 것 같아요.”
 “푸웁!”
 점심시간, 식사 중에 튀어나온 임선희의 이야기에 바론은 저도 모르게 입안의 밥알을 해방해버렸다.
 “꺄악! 더럽게. 이게, 뭐에요.”
 해방군들은 맹렬히 진지를 점령하며, 도시락에 각자의 깃발을 꽂아버렸고, 임선희는 인상을 구기며 젓가락을 내려놔야만 했다.
 혹시 바론을 만날까 싶어, 평소보다 많이 싸 온 도시락이었지만, 이제는 온전히 바론을 위한 도시락이 되어버렸다.
 “매점에서 라면에 계란도 풀어주더라.”
 바론은 미안한 마음에 그리 말하며 도시락을 챙겼고, 임선희는 인상을 구기며 매점으로 가야만 했다.
 물을 붓고 기다리는 사이 멈췄던 이야기가 다시 진행됐다.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왠지 눈에 익은 신발이 하나 보이더라구요.”
 그건 한정판으로 나온 운동화였는데, 이미 5년도 더 전의 물건이라서 별로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물건이었다.
 한데, 하필이면 그 얼마 안 되는 사람들 중에 임선희가 끼어있던 것이다.
 ‘위하고 아래는 잘 감춰놓고, 바닥에서 들킨 건가.’
 언뜻 신발도 잘 위장했다고 여겼었다. 다 닳은 구닥다리 운동화를 보면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임선희는 달랐다.
 “제가 언니의 광팬이라서 헌터 데뷔 초창기부터 쭈욱 컬렉션을 만들어서 가지고 있거든요.”
 그 때문에 신발을 놓치지 않았다. 이를 통한 호기심에 여인을 응시하다가 이내 백화선의 그림자를 발견했고, 정체를 숨기려는 복장에서 더더욱 의심이 커진 것이다.
 ‘그 정도면 그냥 팬 수준은 아닌 것 같은데?’
 바론은 말을 아꼈다.
 앞서의 이야기에서 ‘본 것 같다’고 언급한 건, 아직 명확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리라.
 “만약 맞으면 어쩌려고?”
 그의 물음에 임선희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싸인··· 해달라고 하면 안 되겠죠?”
 그녀도 백화선의 복장을 떠올리니 막상 욕심을 채우기가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팬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선을 지킬 줄 아는 바람직한 팬이라고 자부하기에, 백화선의 여가생활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얼굴 가득 심어진 실망감을 감추기는 어려워보였고, 결국 바론이 한 마디 조언을 더했다.
 “정 뭔가 나누고 싶으면, 그냥 쪽지나 하나 남겨. 음료수에 포스트잇 붙여서 파이팅이라고 써 봐. 뭐··· 그 정도면 충분하겠네.”
 “오~! 그거 괜찮네요.”
 서로에게 부담 없는 거리를 유지하기에 딱이었다.
 그리고,
 별 것 아닌 이 행동이 별난 사건을 불러왔다.
 
 ***
 
 두 눈을 감은 채, ‘감시자의 눈’을 펼치고 있던 사내가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감히··· 여신님의 휴식을 방해하다니. 으득!”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 4. 환각자.
 
 성공적이라고 해야 할까?
 음료수와 포스트잇 그리고 정체를 밝히지도 알리지도 않는 적당한 거리감의 팬심 작전이 제대로 먹혀든 모양인지, 임선희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을 수 있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책상 위로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라는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 있던 것이다.
 “얏호! 아저씨 이거 봐요. 언니가 이걸 줬다니까요. 이 필체! 글씨 너무 잘 쓰지 않아요?”
 “······.”
 스스로의 정체를 숨기기 위함인지 싸인은 적혀있지 않았지만, 백화선의 필체가 적힌 포스트잇만으로도 충분한 듯, 마치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포스트잇을 조심스레 품에 갈무리했다.
 “오늘은 제가 쏩니다!”
 임선희는 그리 말하며 저녁 시간에 맞춰서 바론을 끌고 나갔다.
 “끄응··· 괜찮은데.”
 “웹툰은 배 채우고 와서 보면 되죠.”
 공짜 밥이라는 이유로 결국 바론은 무거운 엉덩이를 뗄 수밖에 없었다.
 시간대가 저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지만, 해가 길어진 까닭인지 바깥은 아직 밝고 푸른 기운이 넘쳐나고 있었다.
 “국밥 드실래요?”
 임성희는 그리 물었고, 바론은 웃으며 답했다.
 “스떼끼.”
 “···안 어울리게···.”
 “편견이다.”
 학생인지라 돈이 없단 이유로, 스테이크 대신 삼겹살을 맛나게 씹고 나올 즈음, 저 하늘 너머로 노을이 퇴근 도장을 찍고 있었다.
 “오랜만에 기름지게 잘 먹었다.”
 “뭘요. 오늘은 고마웠어요.”
 별것도 아닌 걸로 저런다고 여겼지만, 어쨌든 덕분에 얻어먹었다는 걸 상기하며, 바론은 그저 어깨만 으쓱일 뿐이었다.
 그리고 짧은 인사말을 끝으로 서로 발길을 돌리는데, 얼마나 걸었을까?
 “얼씨구?”
 문득, 바론이 걸음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고개를 돌려 임선희가 떠난 방향을 노려보는 것이 아닌가.
 “내가 아니었네.”
 도서관을 나설 때, 그는 미묘한 시선 하나가 따라붙는 걸 느꼈었다.
 그 정체를 파악하고 싶었지만, 마치 안개에 휩싸인 듯 명확한 방향이 제시되질 않았기에, 일단 내버려두며 식사를 마쳤었다.
 하지만 조금 전, 임선희와 헤어지고 난 뒤, 그 미묘하던 시선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그 즉시 깨달을 수 있었다.
 임선희!
 시선이 노린 건 그가 아닌 그녀였다는 것이다.
 “어쩐다···.”
 진한 갈등이 이어졌다.
 느낌이 불순했던 게 걸렸다. 물론, 귀찮음을 피하고자 한다면 여기서 무시하고 넘어가면 된다. 어차피 무료 급식소에서 이어진 짧은 인연일 뿐이지 않던가.
 “꺼어어억···.”
 그 순간 소화를 마친 듯, 시원한 트림이 이어지며 좀 전의 저녁 식단을 알려왔다.
 “쯧! 얻어먹은 게 있으니. 일단 값은 치러야지.”
 포스트잇에 대한 보상이라지만, 그에 대해서는 여전히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그런 의미로써 바론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보니 선금을 받아버렸네.”
 용병시절의 기억을 떠올린 듯, 그가 실소하며 임선희가 향한 방향을 쫓았다.
 
 ***
 
 슬금슬금 어둠이 찾아들 때, 여느 때처럼 꽁꽁 싸맨 모습으로 도서관을 나오던 백화선은 생각지도 못한 전화를 받게 된다.
 “삼촌? 무슨 일이에요?”
 그녀가 속한 백호 길드의 길드장이자, 그녀의 보호자이기도 한 김정훈에게서 온 전화였다.
 부모님과의 추억이 있는 이곳 초량 도서관에 오는 날에는 연락을 자제하던 그가 갑자기 전화를 했다는 게 의아했다.
 [아직 도서관이냐?]
 “예. 이제 슬슬 돌아가려고요.”
 [좀 전에 파악된 건데. 그 미친놈이 한국에 들어온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백화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근래 들어 삼촌이 ‘미친놈’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한 명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크루얼!
 오래 전, 반지전쟁이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어둠 군주의 다른 이름이었는데, 이를 본인 스스로에게 붙여 부르는 사내가 바로 그 미친놈의 정체였다.
 차원균열이 발생하고 등장한 건 몬스터만이 아니다.
 각성자 혹은 능력자라 불리는 인류의 수호자 역시 그 무렵에 등장했다.
 하지만 그들은 온전한 인류의 편이 아니었다.
 선한 이들에게서만 각성이 이뤄진 게 아니라, 각종 범죄자들 역시도 각성의 시기를 보냈고, 당연하게도 그 능력을 악용하는 범죄들도 성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환각자!>
 흔히 각성범죄자들을 부르는 용어로써, 존재하지만 없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이들, 어쩌면 없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는 자들이기에, 그처럼 칭하고 부르는 것이었다.
 크루얼도 그 같은 환각자의 일원이었다.
 그가 각성한 능력은 앞서 반지전쟁의 어둠 군주를 연상시키는 그런 종류였는데, 바로 관측자 혹은 감시자의 눈이라 불리는 능력이었다.
 먼 거리에서도 상대를 확인하고 정찰하며 관찰할 수 있는 것으로써, 이를 통해서 크루얼이 벌인 범죄는 실로 음흉하기 짝이 없었다.
 “관음증 변태새끼!”
 그를 아는 여성 능력자들이 따로 그에게 붙인 명칭으로써, 그 특별한 능력으로 유명세를 타는 여인들을 스토킹하며 변태적인 성욕을 채우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크루얼의 행위가 거기서 한 걸음 이상을 더 나아간다는 것이다.
 관측 대상과 접촉을 시도한다는 수준을 넘어, 대상과 그 주변에 극악한 피해까지 입힌다는 점이었다.
 당연하게도 이를 제재하기 위해 여러 길드가 움직였지만, 여기서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A등급!]
 놀랍게도 크루얼이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수준의 능력자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관측자라는 능력 때문에 그는 손쉽게 포위망을 뚫고 달아날 수 있었고, 덕분에 매번 허탕을 치거나 뒤꽁무니만 쫓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다.
 [그 미친놈이 중국에서 배를 탔다는구나.]
 당연하게도 목적지는 이곳 한국이리라.
 백화선의 표정이 굳어졌다.
 “언제 들어왔는지 확인 가능한가요?”
 [명확하진 않지만, 일주일은 됐을 거라는 게 정보원들의 추측이다.]
 입술을 잘끈 씹었다. 크루얼이 한국에 들어온 방문목적이 바로 그녀에게 있음을 아는 까닭이었다.
 크루얼이 새롭게 찍은 대상이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일주일이나 지났다면 그의 능력상 원하는 정보를 수집하기에 충분한 시간일 터였다. 결계를 펼쳐놓지 않는 한 그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까닭이었다.
 김정훈의 전화는 크루얼의 위치를 알아낸 것을 위함이 아니라,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리라.
 짧은 기간이지만 이미 크루얼에 대한 조사는 마쳐놨기에, 그의 변태적인 행위가 어디까지 뻗쳐있는지도 대략적인 짐작이 가능했다.
 ‘나와 접촉한 모든 것에 집착할 게 분명해.’
 길드와 같은 세력에는 위협을 넣지 않겠지만, 그녀의 일상에 관해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괴롭혀 올 터였다.
 그 와중에 그녀가 일상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걸 보고 즐기는 것, 그게 바로 크루얼이라는 환각자의 변태적인 특징이기 때문이었다.
 부모님을 모두 여윈 그녀이기에, 더더욱 별 것 아닌 일상에도 간섭을 하려 들지도 몰랐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떠올랐다.
 ‘젠장!’
 그녀의 머릿속으로 음료수와 포스트잇이 떠올랐다.
 ‘받기만 하고 끝냈어야 했는데.’
 거리감을 유지해 준 팬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짧은 답례를 한 게 실수였다. 그걸 ‘관심’으로 여길 수도 있는 까닭이었다.
 “삼촌. 죄송한데 부탁 좀 드려야겠어요.”
 때문에 바삐 몇 가지를 전한 뒤, 통화를 마무리하고 움직여야만 했다.
 파악···
 어둠으로 물드는 거리 위로 그녀의 신형이 녹아들었다.
 
 ***
 
 처음 의문을 느낀 건 유난히 어두운 거리의 풍경이었다.
 ‘이 시간이면 원래 가로등이 켜져야 하는데.’
 해가 길어져서 평소보다 늦어지는 걸까?
 의아하게 여기면서도 일단은 옅게 남은 하늘의 붉은빛을 의지한 채 길을 걸었다.
 그러다 두 번째 의문으로 접어들었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퇴근 시간대라고 할 수 있건만, 이상하리만치 인적이 드문 현상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의문 혹은 의심에 닿았다.
 “어···? 여기가 어디야?”
 한 동네의 장소인지라 생소하진 않았다.
 단지, 그녀는 분명 집으로 가는 길이었건만, 길모퉁이를 도는 순간 전혀 다른 장소가 눈앞에 나타났다는 게 이해되질 않는 것이었다.
 ‘갑자기 왜? 공사장이 눈앞에 있는 건데?’
 등허리가 짜릿해지며 경각심이 일어났다.
 ‘정상이 아냐!’
 일반적으로 겪을 수 없는 현상이라는 걸 직감했고, 능력을 일깨워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늦어. 늦어. 이렇게 늦게 알아채면 어떻게 하냐고.”
 그 순간 들려온 음성이 그녀의 안색을 창백하게 만들었다. 혹시나 싶던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누구···?”
 긴장감 어린 그녀의 음성에 맞춰, 공사장 건물 안쪽에서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외국인?’
 흑갈색의 장발을 뒤로 질끈 묶은 사내였는데, 브라운 계열의 피부에 깊게 파인 눈과 커다란 코 등등, 한눈에 아랍계의 외국인이라는 걸 알 수 있는 흔적들이 곳곳에서 비쳤다.
 “오는 내내 힌트를 줬는데도 도착하고 나서 알면 무슨 소용이야.”
 외국인에게서 튀어나오는 유창한 한국어에 놀라는 것도 잠시, 임선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뒤로 물러났고, 이내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봐야 했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데?’
 뭔가 보이지 않는 장막이 그녀의 후퇴를 막아서고 있던 것이다.
 헌터학과의 학생답게, 단번에 정답을 유추해냈다.
 “결계?”
 “그렇지. 이 주변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라고 보면 돼.”
 나름 정중한 말투와 함께 사내가 천천히 다가오는 게 보였다.
 임선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비록 각성을 하고 이를 기반으로 헌터학과에 합격했다고는 하나, 그녀는 아직 초심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다.
 최하위 능력자인 F등급보다는 위인 E등급이라지만, 장비 없이는 1레벨 균열도 감당하기 어렵기에, 일반인과 크게 다를 것 없는 위치라 할 수 있었다.
 당연히 결계까지 사용하는 능력자와의 대치에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너지진 않았다.
 이를 악물고 흔들리는 다리를 바로 세우며, 작은 능력이나마 일깨워 경계심을 극도로 부추겼다.
 반년이나마 대학에서 배운 게 있었고, 그게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격투기들을 통해 수시로 몸을 단련한 상태였다.
 “여신님의 휴식을 방해한 벌로 훈계를 좀 내릴까 싶었는데, 흐음··· 이제 보니 잠깐 정도는 데리고 놀아도 되겠네.”
 그러면서 사내가 그녀의 전신을 훑는데, 그 순간 전신으로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소름끼치는 감각을 맛봐야만 했다.
 “한동안 함께하게 될 사인데, 일단 자기소개는 해야겠지? 나는 크루얼이라고 불리는 환각자라고 하는데, 외부에는 그리 유명하지 않아서 아무래도 낯선 이름일 거야.”
 ‘환각자···.’
 크루얼이라는 이름은 모르지만 환각자는 알고 있었다.
 ‘미친 또라이들!’
 그들을 칭하는 또 다른 용어였다. 밀려드는 긴장감과 압박감 그리고 두려움을 이겨내려는 듯, 그녀가 능력을 일으켰다.
 화륵···
 크루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발화계열인가. 자세로 보아하니 체술에 접목시킨 거려나. 좋아. 눈빛이 아직 살아있어서 좋네. 그 눈빛이 좌절감에 물드는 걸 보는 것도 재밌겠어. 츠릅···.”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으며 크루얼이 기세를 일으켰다.
 바르르르···
 공기가 일변하고 바로잡혔던 임선희의 다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격한 떨림 속에서 심장이 질주하듯 뛰었고, 심경도 크게 요동을 쳤다.
 그저 기세를 마주한 것만으로도 무너질 것 같은 공포심이 피어나며 그녀를 짓누른 것이다.
 “혹시나 하고 말해주는 건데. 저 뒤쪽 세상에서 내 평가는 A등급으로 여겨지더라고. 뭐, 나는 초인이란 놈들도 자신 있기는 한데, 어쨌든 주변 평가는 그 정도야.”
 결정타였던 것일까?
 비록 그 크기는 작았지만 선명하던 임선희의 불길이 흐릿해지는 게 보였다.
 의지가 약해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으로써, 그걸 본 크루얼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그려졌다.
 ‘게임 오버군.’
 분위기를 조성하고 몇 마디 말을 던진 것만으로도 상황을 끝내버린 것이다.
 ‘좀 더 반항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마냥 달가운 것도 아니었다.
 ‘상품에 훼손이 가는 건 싫으니까.’
 날름, 입술을 핥으며 전진하던 그의 표정에 일순 균열이 일었다.
 그러더니 다급히 양팔을 교차시켰다.
 빠아악!
 그 위로 밀려드는 격통에 인상이 한껏 구겨졌다.
 “누구냐?”
 통증 때문인지, 아니면 방해를 받은 까닭인지, 버럭 성난 음성으로 외친 그가 정확히 한 방향을 응시했다.
 “얼씨구? 막은 것도 제법인데. 내 위치까지 알아채?”
 그 순간 하나의 음성과 함께, 임선희의 뒤편 대기가 갈라지는가 싶더니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지만 크루얼이 관측했던 상대이기도 했다.
 사내의 복장에 듬성듬성 끼어있는 묵은 때를 통해서 이미 상대를 기억하고 있었다.
 “으득! 너 이 거지새끼!”
 “···씨바! 반박할 수가 없네.”
 갑작스레 등장한 사내, 바론이 입맛을 다시며 슬쩍 시선을 임선희에게 보냈다.
 “뭘 그리 쫄아 있어?”
 “···아···아저씨가 여긴 어떻게···?”
 “밥값 하러 왔다고 치자.”
 어깨를 으쓱인 그가 임선희의 앞으로 나서며 크루얼의 시야에서 그녀를 가렸다.
 그 순간 질식할 듯 밀려들던 아찔한 압박감과 섬뜩한 공포심이 거짓말처럼 씻겨나가는 걸 느꼈다.
 그녀가 뭐라 물으려 했지만, 바론이 성큼 걸음을 내디디며 멀어져 버린 탓에, 그저 조용히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파직···
 성큼성큼 다가가던 바론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일순 눈가에 찌릿한 통증을 느낀 까닭이었다.
 “쿨럭!”
 그리고 크루얼이 헛기침과 함께 뒷걸음질을 쳤다.
 관측자로 각성하고 이를 발전시켜서 얻은 능력인 시야 장악에 실패한 까닭이었다.
 상대를 감시하는 걸 넘어 대상의 시야를 공유하고, 그마저도 뛰어넘어서 아예 대상의 시야에 간섭하며 거짓된 정보까지 부여하는 것인데, 임선희를 이곳으로 이끈 것 역시도 바로 이 시야 장악의 효과였다.
 난입자에게도 이를 걸었건만 너무도 쉽게 튕겨내 버린 것이다.
 그게 의미하는 건 하나였다.
 ‘말도 안 돼! 저 거지새끼가 나와 동급이라고?’
 그 정도가 되지 않고서는 그의 능력을 이리 깔끔히 튕겨낼 수 없었다.
 짧은 마찰이었지만, 그를 통해 일어난 결과는 놀라웠고, 심경과 달리 감각이 상대를 경계하라며 경고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거지새끼!”
 “아··· 진짜 할 말 없게 만드네.”
 크게 틀린 말이 아니라서 도통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거지새끼한테 거지같이 맞을 준비는 됐냐?”
 바론이 양 주먹과 손목을 꺾어대며 그리 물었고, 입술을 짓씹은 크루얼이 품에서 총을 꺼내 들었다.
 “어? 그거 반칙···.”
 타앙!
 세간에선 데저트 이글이라 불리는 맹수가 불을 뿜었다.
 
 ***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흔적을 찾는 한편, 감각을 한껏 키워서 주변에 발생하는 이상 현상을 탐색했다.
 하지만 마땅히 걸리는 게 없었다.
 ‘삼촌. 빨리!’
 백화선은 그녀와 접촉했던 여인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얼마나 쓸모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요청한 것이다.
 물론, 크루얼이 나타나지 않았고, 여인이 무사히 귀환했다는 경우의 수도 있기에, 필히 조사는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이제 막 조사에 들어간 만큼, 도서관의 감시카메라와 이용권 등등, 이것저것 추격을 해야 하기에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상황의 다급함과 조급증이 그녀를 재촉하는 중이었다.
 타앙!
 그녀의 신형이 우뚝 멈춰 섰다.
 ‘이건···.’
 흐릿하니 청각을 자극하는 총성이 들렸다.
 ‘크루얼!’
 백화선의 눈이 번쩍 뜨였다.
 유럽에서 그와 마주쳤을 때 들었던 바로 그 총성이었다. 너무 예민해져 착각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균열 징후도 없는 상황이건만 이 근방에서 총성이 울린다는 것 자체가 의심해봐야 할 부분이었다.
 그녀의 신형이 희미한 한 줄기 흔적을 쫓아 움직였다.
 
 ***
 
 사나운 야수의 포효를 연상시키는 총성이 울려 퍼지고, 그 성난 울음에 놀란 듯 임희선이 주저앉아 버렸다.
 가까스로 버티던 다리가 결국 풀려버린 것이다.
 ‘아저씨···.’
 그러면서도 시선만큼은 바론의 등을 놓치지 않았다.
 절망과 공포, 그 사이로 새어나오는 걱정까지, 복합적인 감정들이 그녀의 두 눈 속에서 소용돌이치며 바론을 향하고 있었다.
 각성자가 사용하는 무기였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총기에 비해 더욱 무시무시한 괴력을 지니고 있을 게 분명했다. 당연하게도 저 무서운 화력에 멀쩡할 리가 없다 여긴 것이다.
 하지만 이게 웬일?
 “아오··· 졸라 아프네.”
 쓰러지고 무너져야 옳은 바론이 멀쩡한 모습으로 손을 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얌마! 주먹질에 총기는 너무하잖아. 이건 페어플레이가 아니지.”
 바론의 투덜거림에 크루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좀 전에 쓰인 데저트 이글은 임선희의 예상처럼 일반적인 화력을 한참이나 웃도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사용자가 A등급에 이르는 능력자인 만큼, 화력 역시도 거기에 합당한 개조가 된, 그야말로 대 몬스터용의 괴물인 것이다.
 크루얼의 눈가에 옅은 경련이 일었다.
 ‘그걸··· 맨손으로 쳐냈다고?’
 더욱 놀라운 건 방어 방식이었다.
 ‘포스의 유동도 없이?’
 관측자라 불리는 능력을 극한까지 단련한 덕분일까?
 그는 능력자의 상징이라 불리는 포스의 움직임을 눈으로 ‘본다’는 행위가 가능했다.
 물론, 완벽히 관찰하는 게 아닌, 그저 유동을 살피는 것일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할 수 있었다.
 그러한 관측자의 극에 이른 능력으로도 좀 전 어떻게 총알을 막아냈는지, 숨겨진 기운의 흐름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신체강화 계열의 능력자라 할지라도, 그 내부의 포스 유동이 있어야 할 것이건만, 그런 흔적이 없던 것이다.
 그저 맨몸으로 막았다는 것밖에 볼 수 있는 게 없었다.
 “너··· 뭐냐?”
 때문에 그리 물어버렸다. 바론이 인상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그런 건 쏘기 전에···.”
 크루얼은 대답을 다 듣기도 전에 결론을 내려버렸다.
 ‘직접 확인하면 될 일.’
 전력 개방을 위해 사방에 뿌려두었던 감시자의 눈길을 거둬들인 순간, 데저트이글이 재차 포효했다.
 탕! 타앙! 타앙···
 바론의 표정이 구겨졌다.
 “썅!”
 낮은 욕지거리와 함께 양손이 요란한 춤을 췄다.
 타타타탁···
 마치 콩 볶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사방으로 자그마한 폭발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탄알을 튕겨내고 있는 듯싶었다.
 그에 놀란 임선희의 어깨가 더욱 움츠려졌지만, 놀랍게도 어느 하나도 그녀를 향해 날아가는 건 없었다. 이는 즉, 비스듬히 쳐내는 게 아니라는 의미였고, 그만큼 받는 타격도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쯧!’
 크루얼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가만히 서서 막는 것에만 집중할 줄 알았던 난입자가 훌쩍 거리를 좁혀오는 걸 본 까닭이었다.
 이는 총탄을 막아내는 와중에도 그만한 여유가 있었다는 의미와 같았음에, 한층 상대에 대한 경각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눈앞까지 치닫는 속도에 잠시 놀랐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 역시 A등급이라 불리는 고위 능력자였고, 그만한 경험을 쌓아 올린 실력자가 아니던가.
 훌쩍 뒤로 물러나며 탄창을 갈며 총격을 날리고, 그와 동시에 품 안에서 작은 구슬을 꺼내 던졌다.
 퍼엉···
 연막탄이었던 듯 일순간 바론의 시야가 가려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형은 멈추지 않았다.
 ‘이 무슨?’
 크루얼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관측자로서의 능력 덕분에 이런 연막 속에서도 상대를 꿰뚫어 볼 수 있기고, 이를 통해서 난입자의 움직임을 생생히 확인하는 중이었다.
 때문에 한 점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 다가오는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언뜻 일반적인 연막으로 보이지만, 그가 직접 제작한 것으로써 시야를 가리는 것 외에도 감각 교란이 가능한 것이건만, 그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게 제법 충격으로 다가왔다.
 탕! 타앙!
 바론이 쫓아오는 와중에 두 번의 총알이 더 발사되었지만, 거리가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바론은 이를 쳐냈고, 결국 크루얼은 따라잡히며 간격을 허락해야만 했다.
 ‘사내놈하고 달라붙는 건 취향이 아니지만.’
 쑤욱 연막을 뚫고 들어오는 바론의 주먹을 흘려보낸 뒤, 그대로 카운터를 내질렀다. 포스를 듬뿍 담은 일격이었다.
 쩌걱!
 ‘제대로 들어갔다!’
 묵직하니 전달되는 감각에 입 꼬리가 올라가려는 찰나, 믿기 어려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제대로 들어간 일격이었다.
 어지간한 몬스터도 이 일격이면 머리가 터져나가도 이상할 게 없을 터였다.
 ‘그걸··· 버텨?’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덥석!
 비껴냈던 주먹이 어느새 그의 뒷덜미를 잡고 있었다.
 잠시 놀라서 반응이 살짝 늦어져 잡혀버렸지만, 대응은 착실히 이뤄졌다. 날렵히 움직인 양팔이 바론을 팔꿈치를 앞뒤로 압박하며 몸을 흔들었다.
 ‘헛!’
 하지만 마땅한 반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 무슨 괴력···.’
 콰앙!
 놀랄 틈도 없이 충격이 밀려왔다.
 덜미를 잡은 채 그대로 그를 바닥에 내리꽂아버린 것이다. 반동을 주려던 그의 행동이 오히려 역으로 작용하며 더 큰 충격으로 돌아왔다.
 진득하니 밀려드는 공사장의 흙내음을 맡으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위험하다!’
 이 잠깐의 격돌로 상대의 실력을 전부 읽어낸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일단, 다른 걸 다 떠나서 상성 자체가 좋질 않았다.
 포스의 유동!
 그걸 읽어내면서 상대의 틈을 잡고 반격을 꾀하는 게 그의 전투방식이었다.
 ‘이놈은 그게 읽히질 않으니.’
 실력이니 뭐니, 그런 것들을 죄다 떠나서 일단 그의 전투방식을 버려야 한다는 부분에서 최악인 것이다.
 설마 포스의 유동을 읽을 수 없는 상대가 있을 줄이야.
 ‘방식을 달리 했어야 했어. 젠장!’
 짓씹는 입술 사이로 흙먼지가 밀려들었다.
 ‘던전으로 끌어들였어야 하는 건데.’
 항시 스스로를 마법사라 소개하길 주저하지 않는 만큼, 그의 둥지는 던전으로 부르고는 했다.
 등 뒤로 보이는 공사장 건물이 현재 이곳에서 그가 뿌리내린 둥지이며 마굴이었다. 아직 설계가 부족하긴 했지만 저 안에서라면 S등급의 초인이라도 한방 먹여줄 자신이 있었다.
 ‘어떻게든 저기까지만···.’
 감당키 어려운 적수는 그 안에서 함정을 통해 사로잡거나 도주할 시간을 버는 게 평상시 그의 방식이었다.
 그 같은 기색을 읽은 것일까?
 “어딜 도망치려고.”
 덜미를 쥔 손이 뒷목으로 옮겨가고, 신체계열로 예상되는 괴력이 목을 강하게 압박했다.
 “끄으윽···.”
 크루얼은 안간힘을 쓰며 포스를 일으켜 봤지만 역시 힘으로 대항하는 건 무리라는 결론만 나왔다.
 타앙!
 때문에 일단 방아쇠를 당겼다.
 팍!
 귓가로 들리는 소리로 짐작하건대 앞서와 다를 것 없이 막혀버렸음을 알았다.
 ‘어차피 통할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가 노린 건 따로 있었다. 순간 뒷목의 악력이 일부 약해지는 걸 느꼈다.
 ‘이걸 노렸···.’
 빠악!
 아찔한 통증과 함께 크루얼의 정신이 날아갔다.
 바닥에 처박힌 채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쏜 총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알은 정확히 바론의 머리를 향해 발사됐다.
 맨손으로 막고 쳐내면서, 그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화력이란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그냥 이마로 받아버렸다.
 덕분에 잠시 아귀의 힘이 풀렸지만, 즉시 놀고 있는 주먹으로 크루얼의 뒤통수를 내려쳤고, 그걸로 상황은 끝이었다.
 “아오··· 마빡이야.”
 바론은 뻘겋게 탄알의 흔적을 알려주는 이마 부위를 싹싹 비비며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다가 뜨거운 시선을 느꼈음인지 슬쩍 고개를 뒤로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대체···?”
 임선희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를 보며 떠듬떠듬 입을 열고 있었다. 하지만 바론의 뒤통수를 달궈놓던 시선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 너머,
 찢겨진 결계의 틈 사이로 번뜩이는 안광을 느꼈다.
 ‘백화선.’
 왠지 모르게 귀찮은 예감이 밀려들었다.
 
 ***
 
 크루얼!
 무려 A등급 환각자로써 세계를 떨게 만들던 고위 능력자들 중 한명이었다.
 관측자라는 특이능력을 극한까지 일깨운 까닭인지, 초인들이 투입된 작전에서도 도주하는 괴력을 발휘하던 A등급 환각자가 바로 크루얼이 아니던가.
 그런 그가 무너졌다.
 바닥에 박혀 뒤통수만 드러나 있었지만, 입고 있는 복장에서 그가 크루얼이라는 건 모를 수가 없었다.
 몬스터의 사체로 특수 제작한 크루얼 특유의 전투복이었기 때문이다.
 ‘대체··· 누구지?’
 백화선의 시선이 사내에게로 향했다.
 어설피 벌어진 결계의 틈 너머로 엿본 수준인데다가, 막바지에 도착한 까닭에 정확한 전투 양상은 파악할 수 없었다.
 유일하게 볼 수 있던 장면은 단 하나,
 ‘총탄을 이마로 받은 것 같은데.’
 그와 동시에 내지른 마지막 일격까지.
 자신이 확인한 유일한 전투장면을 뇌리로 되새기며 사내의 뒷모습을 응시하는데, 그녀의 시선을 느낀 듯 사내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고, 서로의 동공을 확인했다.
 문득, 사내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그려진다 싶을 때였다.
 ‘엇?’
 그녀의 시야 속에서 사내의 모습이 잔상처럼 흩어졌다.
 
 ***
 
 얼굴을 가릴까도 싶었지만, 입고 있는 복장이나 몰골로 정체를 숨길 수 없다는 걸 알기에 그냥 나섰다.
 물론, 시간이 없단 이유도 컸다.
 그 같은 이유로 상황종료 이후 임선희의 반응에 어찌 대응할지가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이곳의 상황 정리도 문제였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결계 너머의 여인 백화선이었다.
 ‘둘 다 도서관에서 안면은 익힌 사이니까. 뒷수습 정도는 알아서 해 주겠지.’
 귀찮은 건 일단 떠넘기자.
 바론은 그 같은 결론과 함께, 임선희를 그녀에게 맡기며 그대로 자리를 피해버렸다.
 ‘난 따로 할 일이 있으니까.’
 물론, 그게 결계를 벗어났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분명히 저기에 뭔가 있어.’
 크루얼이 마지막 순간에 공사장 건물 안쪽을 주시하는 걸 느꼈고, 거기에서 뭔가 촉이 온 것이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일단 털었겠지만.’
 오랜 용병 생활로 몸에 새겨진 그의 본능이 저 안쪽을 뒤져보라 외치고 있었다.
 ‘짭짤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빈손으로 들어가 두 손 가득 챙겨 나왔다.
 
 <『21세기 용병왕!』 1-2권에 계속>

댓글(4)

k9************    
변태 소설인 가요?
2018.10.03 03:16
g2332애다    
이게 언제완결난건지 모르겟는데 쓸데없이 네티즌반응이라고 뎃글넣어놧는데 그게 십노잼임 사이트뎃글좀읽고쓰지 뭔 혼자말하듯 뎃글반응적어놧는데 쓸데없는 분량늘리기 글은 시원하게쓰는데 중간중간옆으로새고 분량늘리고 그런거재끼면볼만함
2019.07.10 09:16
콩알이네1    
소재는 좋았는데 풀어나가질못함 산만하고 전액결제후 중반이후 하차고민중
2019.07.10 14:59
몸통    
여신이라는년이 가져갈건그대육신뿐이래 ㅡ ㅡ 마왕처리해줬으면 서비스로이것저것줘야지 암튼 어마무시한샹년이야 ㅡ ㅡ
2023.05.24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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