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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자 1화

2018.09.12 조회 8,992 추천 52


 [정복자 1화]
 
 
 
 
 
 
 자승자박 (1)
 
 
 화창한 하늘에서 내리쬐는 뙤약볕에 기자들은 텁텁한 공기를 마시며 진땀을 흘렸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신입 티가 나는 기자가 베테랑 선배를 따라가며 투덜댔다.
 법원 구석 한쪽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던 베테랑 선배는 그런 후배를 보며 차분히 말했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 했잖아. 조금만 참아 봐.”
 “새벽부터 6시간이 넘도록 기다렸는데도 안 오는 걸 보면 오늘도 허탕이라니까요?”
 “그럴 일 없으니까 안심해. 법원에서 소환장이 날아간 지가 언젠데, 오늘까지 안 오면 무시한다고 생각할 거야. 분명히 오늘 오는 게 확실해. 주위를 둘러봐라. 여기 있는 기자 놈들 중에 초짜가 보이나? 이 바닥에서 하루이틀 놀아 본 놈들이 아니니까 진득하게 기다리는 거지.”
 확실히 보기만 해도 경험이 느껴지는 기자들이 매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빛내며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정문, 후문에 자리한 기자들은 저마다의 촉을 가지고 진을 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사람을 그렇게 많이 죽였을까요?”
 입이 근질거리는지 신입 기자가 설마하며 물었다.
 베테랑 기자는 그 말에 담배 연기를 길게 들이쉬다 내쉬더니 씁쓸하게 말했다.
 “회사가 성장하면 어떤 벽을 맞닥뜨리게 된다. 예를 들면 타 회사의 방해라든가, 아니면 주식 공격. 또 아니면 사람과의 관계라든가 말이지. 그 모든 방해를 이기고 나서야 진정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지.”
 “그렇다면 산해그룹은 그 과정을 이겨 낸 게 아니라 해치운 거겠네요.”
 “지금 특종 기사를 보면 그렇게 이해가 되겠지.”
 베테랑 선배는 담뱃재를 떨어내며 자신이 쓴 기사의 일면을 쳐다봤다.
 
 [산해그룹, 강북 재개발 사업에 청부업자를 고용하다.]
 
 그가 신문을 보고 있는 사이 갑자기 기자들이 어수선해졌다.
 “산해그룹이다!”
 한 기자의 외침이 도화선이 되어 기자들이 법원 안으로 들어오는 고급 세단으로 달려갔다.
 “선배!”
 신입 기자의 외침에 베테랑 선배가 서둘러 장비를 챙겼다.
 “빨리 가서 자리를 잡아야 해!”
 “알겠어요!”
 두 사람은 부리나케 앞으로 달려갔다.
 산해그룹에서 고용된 경호원들이 기자들을 제지하는 사이, 기자들이 법원 입구 근처에 노란색 테이프를 X자로 바닥에 붙였다.
 찰칵! 찰칵! 찰칵!
 정지한 산해그룹 측의 차를 향해 셔터가 매섭게 터졌다.
 기자들은 차 주인이 어서 나오길 기다렸다.
 “씨발 놈들!”
 셔터 소리가 번개처럼 들려왔다.
 산해그룹의 오너인 강만식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그의 옆에 앉아 있던 김용준과 맞은편에 앉아 있는 대형 로펌의 변호사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 쥐새끼들을 보게. 먹이가 떨어지니 재빠르게 물고 있잖아. 다 죽어 버렸으면 좋겠군.”
 “지금은 평정심을 유지하셔야 합니다. 입가는 약간 굳어 있되, 눈빛은 결연하고 자세는 당당해야 합니다. 저희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해자의 마음을 가져야 기자들도 의구심을 가질 겁니다.”
 김용준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변호사는 그 말에 속으로 욕지기를 삼켰다.
 혐의가 모두 드러난 상태에서도 거짓을 호도하는 그들의 뻔뻔한 낯짝이 가증스러웠지만, 그들이 내미는 돈을 받아들인 자신 역시 가증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가셔야 합니다.”
 변호사는 자신의 속내를 감추며 말했다.
 김용준은 그런 변호사를 쳐다봤다.
 “대형 로펌이라고 해서 믿고 고용했더니, 아까부터 마음에 안 드는군.”
 “뭐?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변호사라고 다 똑똑한 건 아닌가 보군. 지금 바깥을 봐. 기자들이 죽일 듯한 눈빛으로 우릴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안 보이나? 저들은 우리를 가해자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바깥으로 나서야 할까? 그따위 속마음을 감춘 평범한 얼굴로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지.”
 김용준의 날카로운 말에 변호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저 변호사는 해고하시죠.”
 “자넨 나오지 말게.”
 “회장님!”
 외치는 변호사를 강만식 회장은 싸늘하게 쳐다봤다.
 “자넨 이제 우리 팀이 아니야. 더불어 자네 로펌과의 일정도 취소하겠네.”
 “대체 저 자식이 뭐기에, 저놈의 말을 들으시는 겁니까?”
 “내가 누구냐고?”
 변호사의 항변에 김용준이 싸늘하게 웃었다.
 “명함은 산해그룹의 부장이지만 회장님의 최측근이자 해결사야. 법과 합의로 해결하려는 너희 족속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지.”
 “대, 대체 무슨!”
 변호사의 어이없는 얼굴을 무시하고 김용준이 말했다.
 “가시죠. 이 싸움은 저희가 이기느냐 지느냐가 아니라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합니다.”
 “그러세.”
 강만식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용준이 먼저 반대쪽 문을 열었다.
 셔터 소리가 울리는 소리에 그는 잠시 기자들을 응시했다.
 결연하고 분기탱천한 얼굴.
 억울함을 하소연하지 못하는 분분한 열연에 기자들이 잠시 멈칫하고 쳐다볼 정도였다.
 그는 이어 매우 슬픈 얼굴로 반대쪽 차 문으로 걸어가 천천히 문을 열었다.
 나서는 강만식 회장은 무척 결연해 보였다.
 산해그룹 오너의 등장에 셔터가 바빠졌다.
 “회장님! 한 말씀 해 주시죠!”
 “대체 어떻게 된 사건입니까!”
 “청부업자의 자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정된 자리에 선 강만식 회장은 다수의 물음에도 꿋꿋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러다 잠시 안경을 고쳐 쓰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친애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산해그룹의 회장이자 한 가족의 가장이며 여러분과 같은 시민으로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맹세코! 청부업자를 고용한 적이 없으며, 이 모든 사실은 저를 둘러싼 중상모략임을 분명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저는!”
 강만식 회장이 잠시 말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주먹은 부르르 떨렸고, 다시 든 얼굴은 좀 더 숙연해졌다.
 “저는 억울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강만식 회장이 움직였다.
 기자들이 한 말씀 더해 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를 뒤로하고 김용준과 강만식 회장은 로비 안으로 들어섰다.
 “어땠나?”
 “반신반의하는 걸로도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증인과 대면을 하셔야죠.”
 “그들이 보고만 있을까?”
 “생각이 있습니다. 저만 믿으시죠.”
 김용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강만식 회장의 등장에 법원도 어수선해졌다.
 일반 검사가 맡기에는 중차대한 사건인지, 부장검사가 나타나 그들을 인도했다.
 “증인 대면을 신청하겠소.”
 강만식 회장의 말에 부장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대신 저희들도 지켜본다는 가정하입니다.”
 “물론이요.”
 심문 이전에 결백부터 입증하겠다고 난리 치면 검사들도 함부로 나서기 뭐하다.
 워낙에 거물급 인사인지라 그들의 발언에 힘을 실어 줄 수는 없어도 배려는 할 수 있었다.
 강만식 회장과 김용준은 검사들을 따라 법원 내 구치소로 향했다.
 이번 사건의 증인은 놀랍게도 청부업자였다.
 그는 자신의 죄를 뉘우친다는 형식의 뉘앙스로 자백을 했는데, 그 자백 가운데 산해그룹이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히 법원과 연락망이 있는 기자들의 귀에도 들어갔고, 이 소식은 전 국민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산해그룹은 그동안 서민의 이미지를 잘 활용한 광고 전략으로 기업 호감도 조사 1위를 달리고 있었고, 사회 환원에도 앞장서 모범 기업이라는 말도 듣고 있었다.
 그런데 청부업자 한 명 때문에 산해그룹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청부업자를 가만히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검사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철창을 사이로 강만식 회장, 김용준 그리고 청부업자 이춘식이 대면했다.
 “어이구, 회장 나리께서 친히 납시셨군.”
 이춘식은 40대 후반의 거무스름한 털 수염을 기른 남자였다.
 그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강만식 회장을 반겼다.
 “이······!”
 강만식 회장은 이춘식을 보며 욕지거리를 뱉으려다 자신의 팔을 잡는 김용준의 표정에 뱉고 싶은 말을 삼켰다.
 “왜? 뭐라고? 할 말 있으면 하슈. 나는 당신네들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니까.”
 그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사실이었다.
 강북 일대의 재개발 사업에 산해그룹이 끼어들었고, 이른바 못 박기 세입자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그중에는 조폭들도 있었고, 의뢰를 받고 일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부 김용준이 해결했다.
 김용준은 구슬리고 때로는 협박으로 해결했는데, 개중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자들은 눈앞에 있는 이춘식이 해결했다.
 음주 사고, 낙사, 심장마비 등은 전부 김용준의 지시에 의해 이춘식이 해결한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이 발목이 되어 그룹 전체를 무너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춘식.”
 그는 분기에 대답 못 하는 회장을 대신하여 입을 열었다.
 이춘식은 옆에 있는 젊은 남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뉘슈?”
 “산해그룹의 회장님과 같이 있으니 회사원이겠지.”
 김용준은 자신을 본 적 없는 이춘식을 향해 만면의 미소를 지었다.
 “지금부터 몇 가지 질문을 좀 해도 되겠나?”
 이춘식은 김용준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슈.”
 “강선, 신진, 북산, 신을.”
 김용준은 자신이 아는 대형 그룹을 일일이 읊었다.
 이춘식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뭐하는 거요?”
 “당신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지. 북산그룹의 이름을 거론할 때,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군. 역시 북산이었습니다, 회장님.”
 김용준의 말에 강만식이 주먹을 움켜쥐었고, 이춘식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북산그룹이 무슨 상관이지?”
 “질문은 끝났습니다, 부장검사님.”
 그의 말을 무시하며 김용준이 뒤에 있는 부장검사에게 말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부장검사가 물었다.
 “북산그룹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이춘식에게 사주를 한 자들 말입니다.”
 “사주라뇨?”
 “어느 멍청한 청부업자가 법원에 쳐들어와서 자백을 하겠습니까? 사람 하는 일에는 뭐든지 속셈이 있는 법입니다.”
 김용준은 그 말을 끝으로 강만식 회장과 함께 심문실로 갔다.
 
 
 
 다음화에 계속

댓글(1)

의지사나이    
제목이 정복자인데 비참한 최후로 작위도 겁나 낮은 상태로 세계관 진행도 용두사미급으로 진행도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인공이 최후를 맞이 합니다. 뭐 죽음에 의미가 있으면 모르겠는데 제목이 왜 정복자인지 이유를 모르겠구요. 결말이 완전 제목에 대비해서 완전 독자를 우롱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이 글을 씁니다. 볼지 말지는 알아서 결정하세요
2021.11.1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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