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기적의 테이밍 헌터 [E](종료240129)

기적의 테이밍 헌터 1권 (1)

2018.11.09 조회 3,460 추천 22


 # 보물 고블린
 
 
 어릴 적부터 동물들이 모여들었다.
 “엄마, 왜 멍멍이랑 야옹이가 나를 따라다녀?”
 “응, 그건 우리 신우가 착하고 예쁜 아이라서 그렇단다.”
 집 뒤편 산에 올라가면 온갖 새들이 내 어깨에 앉거나 근처를 맴돌았고 골목길을 걸으면 길고양이와 주인에게 버려진 개들이 다리에 몸을 비볐다. 단지 몇 마리가 붙는 게 아니었다. 주변 행인이나 부모님이 기겁할 정도로 나를 따르는 동물 무리는 군인 행진과 비슷한 규모였다.
 “엄마, 마루가 아프대.”
 “응? 얘는, 저렇게 밥 잘 먹고 잘 돌아다니는데 무슨 말이니?”
 “나한테 계속 아프다고 하는걸.”
 내가 10살일 때 우리 집 강아지가 돌연사한 날, 그게 나만이 지닌 특별한 능력임을 깨달았다. 나는 동물과 교감할 수 있다.
 “저리 꺼져. 개똥 냄새나.”
 “야, 네 친구 저기서 쓰레기 주워 먹고 있더라. 구구구! 구구구!”
 15살 무렵, 언제나 냄새나는 동물들에 둘러싸인 내게 많은 사람들이 악의 섞인 농담과 조롱을 던졌다. 그래서 내가 동물들을 외면하기 시작하자 동물들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동물과의 교감도 불가능해졌다. 나는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주신우 님, 1차 각성이 완료되었습니다. 활성화된 액티브 스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유 패시브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주신우 님의 고유 패시브 스킬은 <비스트 하우징>, 동물 및 최하급 몬스터와의 교감 능력입니다.]
 
 “하······?”
 대격변의 세상.
 나는 최악의 능력을 각성해버렸다.
 
 * * *
 
 월요일 아침 출근길은 언제나 지옥 같다.
 “이러다 과로사로 죽는 거 아닐까.”
 입사 2년 차에 접어든 주신우도 만고불변의 진리 앞에서는 마찬가지였다.
 ‘던전 찾아낸 바로 다음 날 원정이라니. 팀장님도 왜 이렇게 열정적인지. 던전 그거 하루 방치한다고 터지는 것도 아니고······.’
 신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주변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레 책상에 엎드렸다.
 “이야, 우리 팀 최고 던전 가이드 주신우 님 아니신가! 오늘도 칼같이 9시에 딱 맞춰 출근했구먼! 게다가 오자마자 이렇게 늘어져 있고. 얀마, 오늘처럼 원정하는 날에는 30분 일찍 출근하라고 했어, 안 했어?”
 “아, 아야야! 팀장님! 아픕니다, 잠깐만요!”
 신우가 책상에 엎드리자마자 한 남자가 사무실 문을 열어젖히며 들어섰다. 그는 쏜살같이 달려와 신우의 어깨를 꽉꽉 주물렀다. 신우는 원망 가득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며 불만을 터뜨렸다.
 “······ 그러는 팀장님도 지금 막 출근하시지 않았습니까? 거참 너무하시네.”
 “얀마, 지금 출근이라니. 딱 봐도 잠깐 담배 피우고 온 거잖냐. 너보다 적어도 3시간은 일찍 출근했다, 이 자식아!”
 “그렇게 쓸데없이 성실하니까 밑에 사람 다 잡는다고······ 아! 알겠으니까 등 좀 그만 때리십쇼!”
 신우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우의 등을 퍽퍽 쳐대는 남자. 신우가 소속한 헌터 팀 ‘블랙 하운드’의 리더 황주혁이다. 헌터가 아니라 던전 가이드인 신우를 어떠한 차별 없이 한 명의 팀원으로서 받아들여 준, 신우로서는 천사라는 말을 붙여도 모자랄 사람이기도 했다.
 딱 한 가지 신우를 너무 끔찍하게 귀여워한다는 점만 빼면.
 “야, 인마! 빨리 잘못했다고 안 해? 이러다 등짝에 불나도 책임 못 진다?”
 “팀장님,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이러다 등 뽀개집니다, 진짜······!”
 신우는 팀장의 우람한 팔뚝이 연신 등을 강타하자 고통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제야 주혁은 등을 강타하던 손바닥을 거두고 껄껄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다음에도 늦으면 얄짤없어. 이번에는 대박 던전 찾아왔으니까 봐준다 내가.”
 “제가 언제는 이상한 던전만 찾아왔습니까? 말만 들으면 평소에는 무슨 최하급 잡던전만 잔뜩 찾아온 줄 알겠네.”
 신우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다가 팀장이 우람한 팔을 들어 보이며 눈을 찡긋하자 곧 입을 다물었다.
 “······ 어쨌든 칭찬 감사합니다.”
 “하하, 그래, 그래. 과연 그래야 우리 ‘블랙 하운드’ 팀이 자랑하는 최고의 던전 가이드답지!”
 ‘던전 가이드. 그래, 이것도 오늘이면······.’
 신우는 팀장의 말에 쓴웃음을 머금었다.
 지난 2년 동안 그의 명함에 새겨졌던 단어. 던전 가이드(Dungeon Guide).
 8년 전의 대격변 이후 무작위로 지역 곳곳에 생기는 던전을 탐색하고 그 소유권을 확보하는 이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던전 가이드는 보통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신우와 같이 헌터 팀이나 클랜에 소속해 정해진 수당과 추가 인센티브를 받는 이들도 있다. 버는 돈이야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것과 비교하기도 민망할 정도지만 그런데도 이들이 조직에 소속되는 이유는 단 하나.
 “그건 그렇고, 이번에 원정 뛰면 2차 각성이지? 2년 동안 고생했다, 인마.”
 “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요.”
 조직에 소속된 던전 가이드는 원정 시 팀의 일원으로 참가할 수 있다. 참가한다고 해봤자 대부분의 던전 가이드는 전투적인 능력이 없기에 가만히 앉아 구경하며 경험치만 얻는다. 그리고 그러한 ‘쩔’을 통해 30레벨에 다다르면 2차 각성의 자격이 주어진다.
 “2차 각성했는데 또 그 <비스트 하우징>인가? 그 이상한 능력만 레벨업하면 어떡하냐.”
 “팀장님, 제발 저주 좀 하지 마세요. 저한테는 인생이 걸린 일이란 말입니다.”
 “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지. 어쨌든 전 세계에서 너만 가지고 있는 패시브잖냐.”
 “정체도 알 수 없는 패시브 같은 거 없는 편이 낫다구요. 괜히 어중간한 각성자 취급이나 받고.”
 2차 각성 기회가 꽝일지 대박일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일단 2년 전 신우가 얻은 첫 번째 기회는 꽝이었다. 그때 얻은 능력을 밥줄 삼아 헌터 회사의 던전 가이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와, 그래도 신우 씨 대단하네요. 보통 프리랜서 하다가 여기 들어온 가이드들은 몇 달도 못 버티고 뛰쳐나가던데.”
 “그러니까. 박봉에 야근에, 그걸 다 버티고. 신우 씨는 정말 대단하다니까요.”
 “이번 2차 각성은 분명 대박 날 겁니다. 신우와 동기인 제가 보증하죠! 저놈, 분명 뜹니다!”
 물론 그 덕에 좋은 인연들도 만날 수 있었지만. 신우는 자신을 둘러싸고 응원하는 동료 사원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통 회사 소속의 던전 가이드는 원정에서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고 던전을 탐색하러 따로 파견 나가는 업무 특성상 조직 내에서 따돌림 당하기 쉽다. 하지만 팀원 중 신우를 안 좋게 보는 이들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 감사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이번에 2차 각성 성공하면······.”
 신우가 말을 끝맺기 전에 주혁이 손뼉을 한 번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자자. 설레발은 거기까지만 해두고, 이제 슬슬 나가볼까. 다들 10분 내로 준비해! 바로 던전 지점으로 이동한다.”
 “예? 지금 당장 말입니까? 브리핑은요?”
 “그야 당연히 너 오기 전에 다 끝내놨지. 내가 말했잖냐, 30분 전에는 와야 한다고.”
 “아니, 그래도 이렇게 빨리 출발한 적은 없잖아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몸이 다셨어요?”
 “하하, 일주일만의 던전 원정이잖냐. 어쨌든 너도 빨리 준비해, 이 녀석아. 아니면 다시 한번 애정 듬뿍 담긴 안마라도 해 주랴?”
 신우는 군말 없이 자기 자리로 이동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입사 동기 최재현이 다가와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야, 팀장님이 말하지 말라 했는데. 내가 동기 정을 생각해서 말해 준다. 오늘따라 저렇게 호들갑 떠시는 거, 다 너 때문이야 인마.”
 “인마, 덮어씌울 걸 덮어씌워야지. 아니, 저렇게 하이텐션인 게 왜 나 때문······.”
 “원정 후딱 끝내고 너 2차 각성 끝나는 대로 회식할 거라고 이미 계획 다 세워놓으셨더라. 어휴, 어쨌든 그것 때문에 꼭두새벽부터 브리핑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아······.”
 그제야 주혁이 지난 새벽 보낸 ‘3시간 일찍 출근하라’라는 내용의 문자가 어떤 의도였는지 깨달은 신우는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신우를 향한 주혁의 애정은 신우의 생각보다 훨씬 대단했던 것이다. 신우는 멍한 얼굴로 재현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나한테 뭐가 미안하냐? 친애하는 동기의 2차 각성인데 이 정도쯤이야. 너나 나중에 2차 각성 대박 났다고 우리 모른 척하지 마라. 팀장님이 아마 제일 상처받을걸?”
 신우는 팀원들을 닦달하는 주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별안간 가슴이 뜨거워졌다. 대격변으로 인해 부모님을 잃은 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함이었다. 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 팀에 들어온 건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 * *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세상은 대격변했다. 곳곳에서 이질적인 기운을 방출하는 ‘게이트’가 열렸고 이제껏 한 번도 출현한 적 없던 몬스터들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이한 현상으로 인해 세상 곳곳에서 아비규환의 지옥도가 펼쳐졌고 신우의 부모님도 그 지옥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인류는 사상 최악의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인류 절멸의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보다도 ‘각성자’의 등장이었다. 대격변을 맞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각성’ 한 인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늘날 각성자들은 처음 각성이라는 기이한 현상을 접한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갑자기 눈앞에 게임 상태창과 비슷한 반투명한 정보창이 뜨면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을 손에 넣게 되었다고.
 각성자의 등장으로 위험을 벗어난 인류는 사냥당한 몬스터들이나 게이트에서 나오는 각종 희귀한 재료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즈음 몬스터와 게이트, 던전은 더는 인류의 위기가 아니었다. 각종 희소 자원과 첨단 기술의 보고였다. 세계의 중심은 군사력이 아닌 ‘각성자’의 보유 수에 따라 바뀌었고 몬스터를 사냥하고 게이트를 봉인하는 헌터가 최고의 직업으로 떠올랐다. 희소한 능력을 지닌 각성자들은 상상조차 못 할 부와 권력을 얻었다.
 주신우도 그러한 ‘희소한 능력을 지닌 각성자’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상상조차 못 할 부와 권력을 얻진 못했다.
 “자자, 모두 주목!”
 아침의 소동으로부터 3시간 뒤. 신우를 비롯한 팀원들은 장장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게이트 앞에 서 있었다. 사방이 나무로 둘러싸인 산속, 그들의 앞에는 보랏빛으로 일렁이는 원형의 게이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자, 그럼 마지막 브리핑에 앞서, 각자 상태창 확인해. 오러 보유량 충분한지 확인하고.”
 별안간 주혁이 크게 손뼉을 한 번 친 뒤 소리쳤다. 그 말에 대부분 팀원이 저마다 상태창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신우도 상태창을 확인했다.
 “상태창 확인.”
 
 이름 : 주신우
 레벨 : 29 (97%)
 보유 오러 : 130
 근력 : 34 체력: 33 민첩성: 40
 액티브 스킬 : 없음
 패시브 스킬 : <비스트 하우징 Lv.1>
 
 신우는 한 가지 항목만 달랑 표시된 패시브 스킬을 확인한 뒤 상태창을 닫았다. 지나치게 평범한 능력치에 전투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패시브 스킬이다. 각성자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자, 그럼 마지막으로 간단한 브리핑을 시작하겠다. 일단 이번 던전은 C-급 던전. D급 던전에 가까운 수준이다. 하지만, 알지? 던전은 던전. 방심은 금물이다. 따라서······.”
 주혁이 손뼉 치며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보통 이쯤에 원정을 시작하기 마련이지만, 주혁은 겉보기와는 다르게 매우 신중한 성격이었다. 그의 성격을 아는 신우를 포함한 3명의 팀원은 잠자코 그의 말을 경청했다.
 “아,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 참 말 많네.”
 문제는 다른 쪽에서 터졌다. 주혁의 ‘블랙 하운드’ 팀과 협력 파티를 맺은 다른 헌터 팀이었다.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날카롭게 찢어진 눈을 주혁에게 향한 채 말했다.
 “흠.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주혁은 헛기침한 뒤 자신의 말을 끊은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니, 무슨 그렇게 잡설이 길어. 아까 브리핑은 새벽에 끝내놨다면서요?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상태창 확인이고 마지막 브리핑이고 할 게 있수. 어차피 A급도 아니고 C-급 던전인데 그냥 후딱 들어가서 끝내버릴 것이지.”
 “언제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는 곳이 던전입니다. 그런 방심은······.”
 “방심이고 뭐고, 우리 ‘스포울’ 팀은 그럴 일이 없다니까. 그렇게 설교나 늘어놓을 거면 우리는 우리끼리 따로 탐색할 테니까. 알아서 하쇼.”
 “······.”
 주혁이 침묵을 지키자 ‘스포울’ 팀의 리더를 비롯한 팀원들은 그를 무시하고 곧장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주혁은 ‘스포울’ 팀이 한 명도 빠짐없이 게이트 너머로 사라지자 그제야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신우의 옆에 있던 재현을 응시했다.
 “이것 참, 어디서 저런 쓰레기들을 데려왔냐, 재현아.”
 “아니, 그게. 팀장님, 저도 어쩔 수 없었다니까요. 던전 찾아낸 게 어젯밤인데 당장 오늘 원정 협력해줄 팀이 어디 있어요. 구한 게 기적이지.”
 “그래도 저런 근본 없는 쓰레기들은 좀 아니지.”
 옆에서 신우가 거들었다. 저런 놈들이 협력 파티로 들어오면 게이트 봉인 자체가 꼬여버릴 수 있다.
 “넌 좀 조용히 하고 있어라. 원정 기록이나 이력이 좀 신용이 안 되긴 하는데 저 정도로 심각한 놈들일 줄은 몰랐지, 나도.”
 “어쨌든 알았다.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저놈들이 헤매는 동안에 우리는 보스 몬스터를 잡고 있을 테니까.”
 신우는 자신에게 집중되는 시선에 식은땀을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저쪽에 던전 가이드가 따로 없다면 말이죠.”
 “던전 가이드가 있어도 우리 신우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지.”
 “정말 끝까지 부담만 주시는군요, 팀장님.”
 주혁은 시원한 미소와 함께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어쨌든 웬 근본 없는 놈들 때문에 초 쳤네. 에이, 됐다. 마지막 브리핑은 생략하자. 신우야, 너는 그냥 내가 아까 차에서 말한 대로, 그리고 지금까지 해온 대로만 해 주면 된다. 가끔 우리가 헤매고 있으면 길이나 잘 잡아주고.”
 “네,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갈까요.”
 “먼저 들어가라. 네 인생의 새로운 장을 장식할 던전이잖냐.”
 “예? 아니, 아무리 그래도 제가 리더도 아닌데······.”
 “네가 먼저 들어가서 비명횡사할 가능성은 없는 거지?”
 이 정도면 고의로 괴롭히는 거 아닐까? 신우는 팀장의 짓궂은 말에 얼굴을 찡그린 뒤 눈앞의 게이트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Lv.1 <비스트 하우징>이 활성화됩니다.]
 
 패시브 스킬이 활성화되었다는 알림창과 함께 게이트 너머에서 붉은 실과 흡사한 것이 뻗어 나왔다. 다행히 실은 모두 가늘었다.
 “네, 들어가자마자 개죽음당할 일은 없겠군요.”
 “그래, 그럼 먼저 들어가라. 신대륙에 발을 내디딘 콜럼버스의 기분을 느껴 봐.”
 신우는 다시금 딴지를 걸고 싶었지만 어깨를 으쓱하는 정도로 참았다. 그리고 천천히 게이트 안으로 발을 밀어 넣었다. 이 던전만 클리어하면 2차 각성이다. 지난 2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보기까지 한 발자국만을 앞두고 있었다. 쑤욱, 몸을 빨아들이는 불쾌한 느낌마저 지금은 포근하게 느껴졌다.
 “재현아, 뭐하냐. 바로 따라 들어가지 않고.”
 “저기 그게, 팀장님. 방금 ‘스포울’ 팀 리더에게서 무전 들어왔는데요.”
 “뭐야, 이 역사적인 순간에. 하여간 초 치기는······. 네, 먼저 제멋대로 들어가시더니 뭡니까? 예, 예? 위상 변화형 던전?”
 신우는 부푼 마음을 안고 게이트 안으로 완전히 발을 들였다. 그 탓에 그는 마지막에 그를 부르는 주혁의 외침을 듣지 못했다.
 “야, 위상 변화형이면 시작점이 무작위잖아. 잠깐, 야, 신우야, 주신우! 야, 쟤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이미 늦었어요, 전이가 시작됐습니다.”
 “이거 큰일인데. 무전기도 따로 지급 안 했는데.”
 주혁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전체 던전 중 0.01% 정도밖에 안 되는 위상 변화형 던전이 활성화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며 긴장을 늦춘 게 실수였다. 무작위로 시작점이 정해지는 위상 변화형 던전 특성상 신우가 자칫 잘못해서 보스 방에 떨어지면 그대로 끝이다.
 “일단 들어가자. 서로 떨어지지 않게 로프로 묶어.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최대한 빨리 보스 룸에 돌입한다. 중간에 몬스터 잡을 생각하지 마. 무조건 게이트 봉인이 우선이야.”
 주혁은 초조한 얼굴로 게이트 너머를 응시했다. 그 이상의 방법은 없었다. 부디 신우가 보스 방에 떨어지지 않길, 자신들이 던전을 클리어하기 전에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 * *
 
 스르르륵.
 던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후덥지근한 공기가 신우의 얼굴을 감쌌다. 한국의 11월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온. 오러가 가득한 이질적인 공기. 비로소 던전에 들어선 걸 실감했다.
 신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두컴컴한 동굴. 던전 안은 그가 숱하게 보아왔던 던전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신우는 이내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상하네. 이것도 깜짝 파티 뭐 그런 건가.”
 약 3분간 기다렸지만, 신우를 따라 들어와야 할 팀원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신우가 들어왔던 게이트 입구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잠깐만, 이거 혹시.”
 이런 현상을 들어본 적은 있었다. 시작점을 무작위로 형성하는 던전. 하지만 등장 확률이 0.01%에 가까우며 신우가 2년간 회사 생활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던전.
 “위상 변화형 던전이었어?”
 사태를 파악한 신우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C-급 던전은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희소 자원과 보상에 비교해 난도는 낮기로 유명한 핫스팟이었다. 20레벨의 헌터 10명 남짓이면 어렵지 않게 클리어가 가능한 정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투 능력’이 있는 각성자에 한해서였다. 게다가 어지간하면 다칠 일이 없는 E-나 F급 던전보단 급이 높은 던전이기에 몬스터에 둘러싸이면 30레벨급 각성자여도 상황에 따라 위험한 곳이었다.
 “팀장님······. 진짜 개죽음당하게 생겼는데요.”
 그런 곳에 전투 능력이라곤 하나도 없는 신우가 홀로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신우는 딱히 큰 위기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는 그나마 유일한 밥줄이자 동아줄인 패시브 스킬을 지녔으니까.
 “일단 여기는 안전한 것 같은데.”
 신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앞에 일렁이는 실들을 응시했다. 동굴의 안쪽 몬스터들에게서 이어져 나온 붉은색 실이 주변에서 일렁였다.
 이것이 신우의 패시브 스킬 <비스트 하우징>의 유일한 능력이다. 몬스터들로부터 뻗어 나온 실을 통해 몬스터가 위치한 거리와 강한 정도를 측정하는 것. 실들은 몬스터에게 가까워질수록, 몬스터가 강력할수록 더 굵고 새빨갛게 변한다.
 능력이 늘 발동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액티브 스킬로도 생각할 수 있지만 오러의 소모가 없고 눈에 띄는 효과가 없다는 점에서 패시브 스킬과 다름없었다.
 ‘각성 당시에는 몬스터와의 교감 능력이라길래 조금이나마 기대했었지만······.’
 결국, 몬스터와의 교감 능력이라고 해봤자 이 정도이다. 전투에는 전혀 쓸모없고 기껏해야 던전 길잡이로 밥벌이나 하게 해주는.
 ‘일단 지금은 현재 상황에 집중할 때다.’
 신우는 우울함을 떨쳐내기 위해 고개를 가로젓고 다시금 눈앞에 펼쳐진 실들에 집중했다. 다행히 눈앞의 실들은 하나같이 가늘었다.
 “그럼 어디, 여기서 기다려 볼까. 이 정도 굵기면 가장 가까운 몬스터도 100m 이상 떨어져 있을 테고.”
 어차피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는 게이트 봉인이 완료된 후 정산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팀원을 찾아다닐 이유가 없었다. 신우는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았다. 신우의 눈앞에 별안간 난생처음 보는 무언가가 나타나 시야를 어지럽혔다.
 “어?”
 그것 또한 실이었다. 하지만 색이 달랐다. 피처럼 새빨간 색이 아닌 하늘을 연상케 하는 푸른빛이었다.
 “이게 뭐야, 어어? 어어어어?!”
 실은 눈에 점차 확연히 굵어졌다. 색도 옅은 하늘빛에서 짙은 남색에 가깝게 변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 실이 이어진 대상이 급속도로 신우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뜻했다.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신우는 허둥지둥 몸을 일으켰다. 지금 당장 어딘가로 피해야 했지만, 신우가 앉아있던 곳은 통로 가장자리의 움푹 팬 막다른 장소였기 때문에 도망칠 수 없었다. 몸을 숨길 장소로 선택한 장소가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뭐야, 이거. 여기서 개죽음당하는 거야? 2차 각성이 코앞인데?”
 신우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C-급 던전에서는 어떠한 몬스터가 오든 그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었다. 도망이라는 선택지조차 사라진 상황에서 신우는 엄지손가락만큼 굵어진 실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별안간 무언가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그의 바로 앞에서 소리가 끊어졌다. 그렇게 약 10초간 정적이 흐르고.
 “케엑, 켁. 키룩, 키루루룩?!”
 “으, 으아아아아!”
 신우는 괴물의 울음소리를 듣고 비명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이대로 꼼짝없이 죽는 건가. 하지만 몇 초가 지나도 신우가 각오했던 엄청난 충격은 없었다. 대신 알 수 없는 울음소리만 계속해서 들려왔다. 잠시 후 신우는 게슴츠레 눈을 뜨고 앞을 응시했다.
 “뭐, 뭐야. 고블린?”
 “키룩··· 키루루룩······.”
 신우의 허리 부근에 키가 닿을락 말락 한 조그마한 고블린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신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등에 무언가 커다란 자루를 매고 있는 게 의심스러웠지만, 겉모습은 평범한 고블린이었다. E급이나 F급 던전에서 출몰하는 녀석이 왜 C-급 던전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나름 상대해볼 만한 몬스터였다.
 “조, 좋아. 어디 덤벼 봐라. 아무리 그래도 고블린 하나 정도는······?”
 “키룩······.”
 하지만 신우는 이내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고블린은 어떤 무기도 손에 들고 있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 이내 고블린의 머리에 나풀거리는 푸른색 실로 시선을 옮긴 순간 신우는 그 푸른색이 의미하는 바를 알았다. 이 녀석은 신우에 대한 적의가 전혀 없었다. 푸른색 실은 적의가 없는 몬스터를 뜻하는 것이었다.
 “너······.”
 신우가 입을 열기 직전, 통로 반대편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이쪽이 맞는 건가?”
 “아, 내가 똑똑히 봤다니까. 여기서 이런 놈을 찾아내다니. 오늘 완전 계 탄 거 아니냐?”
 “5년 동안 헌터 짓 하면서 이런 날이 다 있군.”
 “협력이고 뭐고, 역시 이런 노다지나 캐면서 시간 보내는 게 최고지. 여기 보스 몬스터야 그 근육 돼지가 알아서 처리해 줄 테고.”
 앞서 들어간 ‘스포울’ 팀원들이 분명했다. 신우는 다리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고개를 숙였다. 고블린이 그의 옆에 바싹 붙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음, 그런 건가.’
 상황을 이해한 신우는 잠시 고민했다. 적의가 없다고는 해도 몬스터는 몬스터. 사실 그가 이 고블린을 구해줄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녀석의 머리 위에 나풀거리는 푸른색 실이 마음에 걸렸다. 또 팀장에게 무례한 막말을 내뱉고 자기들 멋대로 행동하던 ‘스포울’ 팀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우는 고민 끝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 가만히 있어. 죽고 싶지 않으면.”
 “키룩? 키룩!”
 고블린은 신우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참, 살다 살다 몬스터와 대화하는 날이 올 줄이야. 신우는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통로 쪽으로 나갔다.
 “저기요, 이쪽으로 가봤자 아무것도 없습니다. 막힌 길이에요.”
 “아씨, 뭐야. 깜짝 놀랐네.”
 “하마터면 죽여버릴 뻔했군. 뭐 상관없지만.”
 그의 예상대로 ‘스포울’ 팀원들이었다. 한 명은 후드를 쓴 채 거대한 장총을 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길게 휘어진 쿠크리를 든 거한이었다. 신우와 마주한 두 명의 남자가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지껄였다. 그들이 그러든 말든 신우는 소위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그쪽은 여기서 뭐 하는데? 아무것도 없는 거 알면서. 다른 팀원들은 어디 갔어?”
 “위상 변화형 던전인 걸 모르고 팀과 떨어져서 들어왔습니다. 함부로 움직일 수 없어서 여기서 게이트 봉인이 끝나길 기다리는 중이죠.”
 “무슨 개소리야? 팀에 합류해서 같이 싸울 생각을 해야지······.”
 총을 들고 있던 헌터가 소리치자 거한이 말을 끊으며 신우를 위아래로 쓰윽 훑어보았다.
 “이놈 그놈이군. 던전 가이드.”
 그 말에 총을 들고 있던 헌터의 눈빛이 달라졌다.
 “뭐야. 길잡이 새끼였어? 그래서 이런 쥐 소굴 같은 곳에 숨어 있었구만. 쥐새끼에게 딱 맞는 곳이긴 하네.”
 경멸의 시선이 쏟아졌지만, 신우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게 던전 가이드를 향한 헌터들의 일반적인 시선이니까.
 “야, 혹시 이쪽으로 고블린 한 마리 도망가는 거 못 봤냐?”
 “고블린이요?”
 “그래. 평범한 고블린처럼 생겼는데, 아니. 이런 거까진 알 필요 없고. 어쨌든 봤어, 못 봤어?”
 “저기, 뭔가 착각하시는 거 같은데. 여기는 C-급 던전입니다. E급이나 F급 던전 몬스터가 이런 곳에 있을 리 없잖아요.”
 어중간하게 부인하는 것보단 이쪽이 더 설득력 있었다. 신우의 예상대로 후드 쓴 헌터가 침을 뱉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씨, 됐어. 못 봤으면 그냥 꺼져. 길잡이란 새끼가 아무것도 모르네.”
 “어쨌든 못 봤다는 건가?”
 “네, 아무래도 고블린이 아니라 본 쓰레셔를 잘못 보신 것 같은데. 놈의 특성상······.”
 “닥치고 꺼지라고. 죽여버리기 전에.”
 후드 쓴 헌터가 다시금 으르렁거렸다. 신우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왔던 길을 돌아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잠자코 서서 대기했다.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진 뒤에야 고블린이 숨어있는 장소로 돌아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고블린은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너 혹시, 은혜 갚은 사슴 이야기 알고 있냐.”
 “키룩?”
 “사슴이 사냥꾼에게 쫓기고 있었는데 마침 근처에 있던 나무꾼이 그 사슴을 숨겨 주거든. 그래서 그 사슴이 답례로 나무꾼한테 선녀가 목욕하는 온천을 알려주는데······ 됐다. 네가 사슴이고 나무꾼이고 알 리가 없지. 나도 참, 몬스터한테 뭔 이야기를 하는 건지.”
 “키루루룩.”
 고블린은 다시금 자리에 철퍼덕 앉는 신우를 빤히 응시했다.
 “키룩!”
 그리고 신난 기색으로 자신의 자루를 바닥에 내려놓더니 그 안에 손을 넣고 무언가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녀석이 손을 휘저을 때마다 자루에서 ‘캉, 캉’ 하는 금속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우는 화들짝 놀라 그런 고블린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야, 야, 아까 그놈들 다시 오면 어쩌려고······ 조용히 해 인마.”
 “키룩, 키룩!”
 “이게 진짜, 그놈들이 너 찾아내면 내 힘으론 못 지켜준다고. 좀 가만히······ 응?”
 보다 못한 신우가 고블린을 힘으로 제압하려는 순간이었다.
 “키룩!”
 “어, 어, 뭐야?!”
 고블린이 자루에서 무언가를 꺼내 신우에게 겨누었다. 동굴 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지만, 신우는 놈이 들고 있는 게 날붙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녀석이 손에 쥔 것에 빛이 반사되어 날카롭게 번쩍였다.
 “너, 기껏 살려줬더니 이런 식으로 은혜를 갚는 거냐?!”
 “키룩, 키룩?”
 고블린은 손에 든 날붙이를 반대로 잡고 신우에게 내밀었다. 신우도 그제야 고블린의 행동을 이해했다. 고블린은 처음부터 신우에게 위해를 가할 목적으로 날붙이를 꺼낸 게 아니었다.
 “뭐야, 이거. 나 주는 거야?”
 신우는 순간 멈칫하다 고블린이 내민 날붙이를 받아 들었다. 신우는 날붙이의 정체를 알고 눈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단도?”
 30cm도 채 되지 않는 장난감 칼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작고 짧은 단검이었다. 생김새는······ 어디서 많이 봤는데.
 “······ 우리 집에 있는 과도랑 비슷하게 생겼네.”
 겉모습은 평범한 과도였다. 칼자루 끝부분에 투명한 구슬이 박혀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저기, 이거 무기로 쓸 수는 있는 거냐? 막 전투 시작하면 길게 늘어난다거나?”
 “키룩, 키룩!”
 신우가 한 말은 결코 칭찬이나 감사의 말이 아니었지만, 고블린은 뭐가 그리 신난 건지 가슴을 힘껏 내밀며 콧김을 내뿜었다. 신우는 녀석을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손에 든 단도를 응시하며 상태창을 열었다. 생김새는 이렇게 생겼어도 혹시나 엄청나게 특별한 능력이 존재할 수도 있으니까.
 “상태창 확인. 아이템 감정.”
 
 [아이템이 확인되었습니다. 감정을 시작합니다.]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아이템 감정이 불가합니다. 선행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습니다.]
 
 “하, 심지어 봉인 아이템?”
 요구 조건 불명의 봉인 아이템. 요구 조건을 확인하려면 우연히 그 조건을 맞추거나 몇 억이 넘는 전문 감정서를 사용해야 한다. 모양 빠지지만 고블린에게 아이템을 바꿔달라고 할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그때.
 
 [아이템 습득을 통해 고유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신우의 눈앞에 상태창이 하나 나타났다.
 
 * * *
 
 “고유 스킬?”
 신우의 눈앞에 새로운 정보가 나타났다. 신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들어본 적 있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하지만, 사용자에게 새로운 스킬을 활성화해주는 아이템이 존재한다고. 신우가 놀란 눈으로 고블린을 쳐다보자 녀석이 신이 난 기색으로 키룩거렸다. 이번에는 신우도 쿵쾅대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보통 각성 외에 스킬을 새로 습득할 방법은 거의 없다. 2차 각성을 일컬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라고 말하는 이유가 새로운 스킬을 습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건 말 그대로 엄청난 행운이었다.
 “자, 진정하자. 일단······ 상태창 확인.”
 
 이름 : 주신우
 레벨 : 29 (97%)
 보유 오러 : 130
 근력 : 34 체력 : 33 민첩성 : 40
 액티브 스킬 : <고블린 소환 Lv.1> 소모 오러 : 100
 패시브 스킬 : <비스트 하우징 Lv.1> 활성화
 
 “음? 고블린··· 소환?”
 스킬을 확인하는 신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기쁨에 의한 떨림은 아니었다. 신우는 조용히 상태창을 닫은 뒤 자루를 챙기는 고블린을 바라보았다.
 “저기······.”
 “키룩?”
 하다못해 오크도 아니고 몬스터 중에서도 자타공인 최약체 고블린? 그것도 한 마리라니. 차라리 슬라임이라면 방패막이로나마 써먹을 수 있을 텐데 그조차 불가능하다. 신우의 시선이 고블린이 들고 있는 자루에 닿았다. 다른 아이템, B급 아이템이라도 확실하게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아이템은 없을까? 이건 좀······.”
 “키룩?”
 “됐어. 아니다.”
 고블린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신우는 한숨 쉬며 시선을 돌렸다. 그래, 탓할 게 있다면 운이라곤 지지리도 없는 자신을 탓해야지. 애꿎은 고블린을 탓해 무엇할까.
 그런 신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블린은 신나서 키룩거렸다. 그리고 손가락을 들어 허공에 대고 무언가 그리기 시작했다.
 화악!
 “어, 어어?”
 잠시 후 녀석이 손가락을 멈추자 허공이 눈부시게 빛나더니 스파크가 일며 조그마한 원형의 공간이 열렸다. 신우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비록 크기는 무척 작았지만, 고블린과 그의 앞에 나타난 건 분명 게이트였다.
 “게이트?!”
 “키룩, 키루룩!”
 신우는 눈을 크게 뜨고 게이트와 고블린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한낱 고블린 따위가 게이트를 생성했다는 사실보다도 그 게이트가 찬란한 황금빛이라는 게 더 놀라웠다. 순식간에 그와 고블린이 숨어있던 동굴 안이 눈 부신 빛으로 가득 찼다.
 “잠깐만! 너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신우가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가리려 애쓰며 소리쳤지만 고블린은 고개를 한 번 숙여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는 자루를 등에 지고 펄쩍 게이트 안으로 사라졌다.
 그걸로 끝. 순식간에 게이트가 닫히고 고블린이 있던 자리에는 어둠만이 가득했다. 신우는 직감했다. 녀석이 화려하게 게이트를 연 직후부터, 이미 자신은 망했다는 걸.
 “이렇게 번쩍거리면서 사라지면······.”
 곧 그의 뒤에서 살기등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새끼가······ 역시 이럴 줄 알았어.”
 여기다 숨겨줬다는 걸 들키잖아. 이 망할 고블린아.
 신우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뒤돌았다. 쿠크리를 든 거한과 장총의 후드맨. 익숙한 얼굴들이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너 이 새끼, 길잡이 따위가 간도 크다? 전문 헌터들을 상대로 사기 치고 말이야.”
 “저,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습니다. 방금 그건······.”
 신우가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지만 쿠크리를 든 거한이 단번에 말을 잘랐다.
 “조금 전의 황금빛 게이트, 보물 고블린을 살려 보냈군. 100억이 넘는 가치를 지닌 몬스터인데.”
 “보물 고블린······?”
 “설명할 생각도, 그럴 가치도 없다. 놈을 살려 보내주었으니 뭔가 대가를 받았겠지. 내놔라.”
 “아니,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성에 안 차. 100억을 저 새끼 때문에 잃은 거라고. 지금 당장 죽여버려야겠어.”
 “흠, 그것도 나쁘지 않군. 위상 변화형 던전에 무능력한 던전 가이드라. 죽여서 조각내고 몬스터에게 당한 것처럼 꾸며놓으면 그만이긴 해.”
 ‘이건 최악인데.’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신우의 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지 오래였다. 일단 두 사람 다 그보다 레벨이 높은 건 확실했다. 특히 저 쿠크리를 든 빡빡이는 딱 봐도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실력자다. 결국, 고민 끝에 신우는 최대한 둘을 설득해보기로 했다.
 “이거, 설마 선을 넘으실 생각은 아니겠죠. 헌터 신분으로 범죄를 저지르면 형량이 일반인보다 10배 이상 무거워집니다. 하물며 살인이라면 무기징역으로는 끝나지 않겠죠.”
 “상관없다.”
 “맞아, 안 걸리면 그만인데 뭐가 문제야.”
 당연히 이성적인 설득은 통하지 않았다. 장총 든 사내가 비릿한 웃음을 띠며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지금까지 소리소문없이 죽인 헌터들만 10명은 넘을 거다. 하물며 몬스터보다도 약한 길잡이 따윈 말할 가치도 없지.”
 “이거 참, 생각보다 훨씬 더러운 분들이셨네.”
 “던전만큼 이득 챙기고 사람 죽이기 쉬운 곳도 없으니까.”
 거한이 쿠크리를 빙글 돌리면서 신우에게 다가서기 시작했다. 신우는 조금씩 뒷걸음질 치면서 필사적으로 동굴 안쪽에서 퍼져 나오는 실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실들이 격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팀장을 비롯한 헌터 팀이 교전을 시작한 게 틀림없었다.
 실이 사라지는 기세로 보니 보스 룸 클리어까지 10분 정도 남은 듯했다. 신우가 이 세상을 떠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저도 물러설 수 없겠군요. 이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막다른 곳에 몰리면 남은 건 허세뿐이었다. 신우의 말에 총을 겨누고 있던 사내가 코웃음 치며 조롱했다.
 “그래, 뭐라도 한번 보여줘 봐. 던전 가이드나 하는 놈이 무슨 재롱을 보여줄지 기대되는구만.”
 “후회하실 겁니다.”
 “그래, 어디 후회 좀 해보게 한번 보여 달라고.”
 “아니면 그냥 깨끗하게 죽던가.”
 어느새 신우의 바로 앞까지 다가선 거한이 쿠크리를 치켜들었다. 신우는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액티브 스킬 활성화.”
 
 [아이템의 액티브 스킬 활성화]
 
 상태창이 빛나고 생전 처음 보는 정보가 신우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러므로 그는 맹세를 바친 투사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을 내렸으니, 작은 몽둥이는 태산을 부수고 녹슨 검은 하늘을 베며, 조악한 화살은 어떤 맹수보다 사납게 적의 심장을 노렸다. 겨울 전쟁의 작은 거인― 한없이 작지만, 누구보다 강한 자의 탄생이었다.]
 
 ‘이야기······? 아니면 기록인가?’
 신우가 글귀의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상태창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오러가 빠져나가는 기묘한 감각이 그를 삼켰다. 신우가 든 단도의 칼자루 부분의 투명한 구슬이 검은색으로 물들며 톡 빠져 나와 땅에 떨어졌다.
 “으악, 뭐, 뭐야?!”
 파앗!
 구슬이 땅에 떨어지며 눈 부신 빛이 나와 한순간에 신우와 헌터들이 있는 공간을 가득 채웠다. 잠시 후 빛의 잔재가 남은 동굴 안. 신우와 쿠크리를 든 헌터 사이에 몬스터 한 마리가 서 있었다. 헌터들의 놀란 눈이 몬스터에게 향한 것도 잠시.
 “키룩.”
 “······ 고블린이군.”
 “하, 뭐야. 고블린?”
 몬스터의 정체를 확인한 헌터들의 눈에서 경계심이 사라졌다.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건 고블린이었다. 그들이 최하급 던전에서 한 번에 몇십 마리씩 쓸어 잡던, 파밍용으로 취급하기에도 모자란 그 잡몹.
 ‘빼도 박도 못하는 진성 고블린이네. 망했구나, 망했어.’
 헌터들의 눈에서 경계심이 사라진 만큼 신우의 얼굴에서는 여유가 사라졌다. 혹시나 기대했는데 역시였다. 보통 고블린보다 색이 검고, 푸르게 빛나는 몽둥이를 들고 있다는 점만 빼면 그냥 고블린이었다.
 크기도 조금 전 그를 사지로 몰아넣고 도망간 보물 고블린과 비슷한 수준이다. 장총 든 사내가 낄낄거리며 입을 열었다.
 “난 또 뭐라고, 그게 비장의 수냐? 크하하핫! 이건 진짜 웃겼다. 야, 어쨌든 재미는 있네. 고블린을 소환하는 스킬이라니, 와. 진짜 5년 동안 헌터 짓 하면서 처음 봤어.”
 “말하기도 민망할 만큼 저열한 스킬이군. 어쨌든 경험치는 고맙게 받으마.”
 거한이 씨익 웃으며 자신의 쿠크리를 치켜들었다. 아, 이제 정말 끝이다. 저 검은 고블린은 단숨에 두 동강 날 테고 그다음은 나겠지. 신우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눈을 질끈 감았다.
 캉!
 “음?”
 “어?”
 하지만 고블린의 비명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검이 무언가에 맞아 튕겨 나가는 소리와 헌터들의 소리만이 들렸다. 신우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뭐, 뭐야?”
 당황하는 헌터의 목소리. 신우도 순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고블린의 몽둥이가 위로 치켜 올라가 있고 그 몽둥이에 튕겨 나간 것처럼 거한이 몸의 중심을 잃은 채 휘청거렸으니까. 기껏해야 2성급 몬스터인 고블린이 베테랑급인 헌터의 공격을 가볍게 무위로 만든 것이다.
 “키룩.”
 검은색 고블린은 흠집조차 나지 않은 몽둥이를 잠시 바라본 뒤 여전히 비틀거리는 거한을 바라보며 입을 길게 찢어 웃었다.
 “······.”
 마치 가소롭다는 듯 웃는 고블린의 모습에 신우는 할 말을 잊었다. 하지만 일단 한 가지 사실은 확실했다.
 바로 지금, 조금 전까지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어, 뭐야? 야, 장난치지 마. 게이트 봉인되기 전에 시체 조각내고 처리하려면 시간 좀 걸린다고.”
 “아, 그, 그렇군. 조금 방심했다. 흐라아앗!”
 고블린의 소름 끼치는 웃음을 보고 헌터들은 정신 차린 모양이었다. 후드 쓴 사내가 당황한 목소리로 재촉하자 거한은 금세 평정을 되찾고 다시금 쿠크리를 휘둘렀다.
 쉬이익!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쿠크리가 섬광처럼 사선으로 내리꽂혔다. 신우로서는 눈으로 좇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찰나였다.
 진지한 공격. 거한의 움직임은 덩치에 맞지 않게 날렵하고 깔끔했다. 조금 전의 망신을 만회하려는 듯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키룩.”
 카아앙!
 “크헉?”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고블린은 표정 변화조차 없이 몽둥이를 한 번 휘두르는 것으로 자신보다 몇 배는 거대한 인간의 검을 튕겨냈다.
 “이, 이 새끼가··· 고블린 주제에··· 내 공격을······!”
 두 번이나 깔끔하게 반격당한 거한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우, 우오오오오오!”
 거한은 들고 있던 쿠크리와 똑같이 생긴 검을 다른 손에 생성했다. 그리고 쿠크리 중 하나는 역수로, 하나는 정수로 쥔 뒤 고블린을 향해 미친 듯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른이 꼬마를 상대로 일방적인 공격을 퍼붓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죽어, 죽어! 죽으란 말이다, 이 더러운 고블린 새끼야!”
 얼굴이 시뻘게진 거한이 뭐에 홀린 것처럼 고블린을 난타했다. 하지만 고블린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몽둥이를 휘두르면서 묘기 부리듯 거한의 공격을 전부 튕겨냈다.
 살기가 가득 담긴 연타를 파리 잡는 것처럼 하찮은 듯 튕겨내는 모습에 신우는 물론이고 후드 쓴 사내조차 입을 떡 벌렸다.
 “어, 어이. 자, 장난할 시간 없다니까? 이제 곧 게이트가 봉인될 거라고. 겨우 고블린 하나 갖고 뭐 하는 거야?”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한 후드 쓴 사내가 더듬거리며 거한에게 말을 건 순간.
 어린아이의 재롱을 받아주기도 질린 것일까.
 “자, 잠깐만 기다려! 앞으로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어?!”
 “키룩.”
 고블린이 몽둥이를 비스듬히 세워 거한의 쿠크리를 슥 흘려내고는 전광석화처럼 옆구리를 올려쳤다.
 퍼억!
 “크허어어억?!”
 근육이 찢기며 내장이 터지는 파열음이 동굴을 울렸다.
 통렬하면서도 깔끔하고 단순한 한 방. 그것으로 승부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단 한 방에 거한이 덩치와 어울리지 않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얼굴부터 바닥에 처박혔다. 땅에 엎어진 채 꿈틀거리는 거한의 옆구리는 기이하게 움푹 들어가 있었다.
 “키룩?”
 그리고 바닥에 처박힌 거한의 앞에 고블린이 천천히 다가섰다. 신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기껏해야 자신의 배꼽 부근에 닿을락 말락 한 고블린이 지금만큼은 거한보다도 훨씬 거대해 보였다.
 “켈룩, 콜록, 히, 히익!”
 그건 죽음을 목전에 둔 거한 또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거한은 사색이 되어 고블린을 향해 목숨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켈룩, 자, 잠깐······ 살려줘. 사, 살려······!”
 “키룩.”
 하지만 대답 대신 거한에게 날아든 건 뭉툭한 나무 몽둥이였다.
 콰직!
 목숨을 빌던 거한의 머리가 몽둥이에 직격당하자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짓이겨졌다. 고블린은 망설임이 없었다. 곧 녀석의 안광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사내에게로 옮겨졌다.
 “으, 으으으······ 뭐야, 뭐냐고! 오지마아아아! 켁?!”
 후드를 쓴 사내가 방아쇠를 당길 틈도 주지 않고 고블린이 던진 몽둥이가 정확하게 사내의 목을 강타했다. 목이 기괴하게 틀어져 쓰러진 사내는 조금 꿈틀거리다가 조용해졌다.
 “키룩.”
 고블린은 시체 근처에 떨어진 몽둥이를 주워 들고 멍하니 있는 신우에게 고개를 돌렸다. 신우는 흠칫 놀랐지만, 녀석의 머리에서 나풀거리는 파란색 실을 응시하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어,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최 알 수 없었다. 혹시나 잘못 꺼낸 말이 녀석의 심기를 건드리면 파란색 실이 붉게 물들면서 몽둥이에 얻어맞고 비명횡사할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결국 고민 끝에 신우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하기로 했다.
 “키룩.”
 “너, 고블린 맞지?”
 “키룩.”
 고블린이 입을 길게 찢었다. 제 딴에는 웃어 보이는 것 같은데 주변의 상황과 겹쳐 신우에게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섭게 느껴졌다. 어쨌든 그래도 녀석의 웃음에 살의가 느껴지지 않는 건 다행이었다.
 “혹시 이 녀석의 능력치도 확인할 수 있나.”
 신우가 그렇게 중얼거리기 무섭게 눈앞에 새로운 상태창이 나타났다.
 
 [소환수 쉐도우 고블린의 능력치를 확인하시겠습니까?]
 
 “그래, 대체 뭐 하는 놈인데 헌터 두 명을 피떡으로 만들 수 있는지 한번 보자.”
 
 [소환수 쉐도우 고블린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눈앞에 떠오른 상태창을 확인한 신우의 입에서 저절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이템 감정이 완료되지 않아 쉐도우 고블린의 능력치 확인이 불가합니다! 아이템 감정이 필요합니다.]
 
 “······ 그럼 그렇지.”
 이 망할 시스템이 그렇게까지 친절할 리 없었다.
 
 * * *
 
 “야, 신우야. 진짜 미안하다. 어, 내가 진짜, 팀장으로써 면목이 없다. 마음 풀릴 때까지 날 때려도 좋다. 자, 어서!”
 “아니, 팀장님. 저는 정말 괜찮다니까요. 나름 편하고 좋았습니다. 몬스터 공격 피해서 도망 다니지 않아도 되고.”
 “크흑, 그래도 임마! 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게이트가 봉인되고 30분 후. 신우는 무사히 게이트를 벗어나 귀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머더러 헌터(Murderer Hunter) 둘을 제외하면 별일 없었다. 또 도중에 몬스터 하나를 만나긴 했지만, 쉐도우 고블린의 자비 없는 몽둥이 아래 재가 되어 사라졌다.
 ‘결국, 이 아이템의 정체는 못 알아냈군. 고블린이 얼마나 강력한지도.’
 신우는 씁쓸한 표정으로 손에 쥔 단도를 응시했다. 쉐도우 고블린은 신우의 보유 오러가 0이 되자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눈 부신 빛과 함께 사라졌다. 신우의 눈이 다른 손에 쥔 검은색 구슬로 향했다.
 ‘대신 손에 들어온 게 이 구슬이고.’
 녀석이 사라진 자리에는 검은색 구슬이 남아있었다. 특이한 점은 그새 단도의 손잡이 부분에 새로운 구슬이 생겨났다는 사실이었다. 손잡이에 새롭게 돋아난 구슬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투명했다. 조금은 감이 잡혔지만 아이템 감정을 하지 않는 이상 이 단도가 대체 무슨 물건인지 알기는 어려웠다.
 “뭐냐, 그 과도는?”
 일단 겉모습이 과도라는 사실은 확실했다. 검을 손질하던 최재현이 신우의 손에 들린 단도를 보고 물었다.
 “아, 이거. 그냥 집에 있던 거 가져왔는데.”
 “과도를? 뭐 하려고?”
 “호신용으로.”
 “호신용으로 과도를 가져왔다고?”
 무슨 개소리냐는 눈빛이었지만 신우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재현은 뭔가 더 캐물으려는 기색이었지만 저편에서 고함이 오가기 시작하자 시선을 그쪽으로 돌렸다.
 “그래서, 왜 이런 식으로 뒤졌는지 아는 놈이 한 명도 없다고?”
 “리더. 우리도 몬스터 때려잡는다고 나름 바빴다고. 애초에 그 둘이 한 팀이었는데 둘 다 죽었으니 뭔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알아?”
 “액션 캠도 꺼놓고 다녀서 영상 기록 하나 없고. 그냥 한눈팔다가 몬스터한테 뒤진 거라니까?”
 그들로부터 멀지 않은 곳, ‘스포울’ 팀이 모여 서서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들의 앞에는 머리가 날아간 거한과 목이 비틀린 남자의 시체가 있었다. 게이트 봉인이 완료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게이트가 파괴되며 헌터들은 자동으로 게이트 입구 앞에 텔레포트 된다. 살아있든 살아있지 않든 그 현상에 예외는 없다. 살아있지 않으면 시체로 나타날 뿐이었다. 지금 널브러져 있는 거한과 남자의 시체처럼.
 “이건 아무리 봐도 둔기에 박살 난 건데. 이번 던전에 둔기를 사용하는 몬스터는 없었단 말이지. 이보쇼, 검은 사냥개 팀장.”
 “미리 말해두지만, 저희 팀원 중에 둔기를 사용하는 각성자는 없습니다. 되지도 않는 의심은 거기까지 해 두시죠.”
 주혁은 ‘스포울’ 팀의 리더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꾸했다.
 “아니, 의심하는 게 아니라. 어쨌든 이상하잖소? 이놈들 이래 봬도 30레벨대 중급 헌터들이라고. 그런데 이 정도 던전에서 개죽음당했다는 게 이상하잖아. 특히 저기 저 던전 가이드. 지금까지 혼자 어디서 뭐 하고 있었는지 아무도 모르잖아. 뭐라도 알고 있을 수 있지.”
 “별로 이상할 건 없군요. 당신들처럼 제멋대로 움직이는 조직에서 이런 개죽음 같은 건 한두 번 일어나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스포울’ 팀의 리더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주혁에게 성큼성큼 다가섰다.
 “뭐가 어쩌고 저째? 아니, 이게. 어쨌든 사람이 죽었는데 어디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여······!”
 “아니, 함부로 지껄이는 건 당신이지.”
 “윽······?”
 리더는 주혁이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쏘아보자 금세 발걸음을 멈추고 굳었다. 오히려 주혁이 한 발자국 나아가더니 ‘스포울’ 팀 리더 멱살을 잡아 올렸다.
 “컥, 잠깐, 이거 안 놔?”
 “어쨌든 협력해 달라 청한 건 우리 쪽이니, 앞서 독단적으로 행동한 건 그렇다고 치겠어. 하지만 그 행동의 결과까지 우리 팀원에게 덮어씌우려 하는 건 참아줄 수가 없군. 지금 행동도 리더로서는 충분히 실격이지만, 팀원들 앞에서 더 심한 꼴 보이고 싶지 않으면 이쯤 하지?”
 “윽, 젠장. 아, 알았다고. 나도 팀원을 둘이나 잃어서 잠시 이성을 잃은 모양이요. 의심한 건 사과하지. 어쨌든 우리 잘못도 있으니.”
 “당신들에게만 잘못이 있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주혁은 리더 멱살을 놓았다. 얼굴을 일그러뜨린 리더와 ‘스포울’ 팀이 주섬주섬 시체를 둘러업고 사라지자 그제야 환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자, 그럼 우리 신우. 이제 2차 각성하러 가야지?”
 “팀장님. 너무 갑자기 달라지니 징그러운데요.”
 “에이, 그런 말 하면 내가 상처받지 않겠냐. 아, 그리고 재현아. 상황이 어떻든 저딴 쓰레기들을 데려왔으니 너는 오늘 시말서 쓸 각오하고.”
 “예?! 아니, 진짜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오늘 원정에서도 돌격대장이니 뭐니 하면서 그렇게 부려먹고······!”
 신우는 티격태격하는 둘을 바라보다 미소를 띤 채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 주신우
 레벨 : 30 (1%) [2차 각성이 가능합니다.]
 보유 오러 : 10 / 130
 근력 : 35 체력 : 34 민첩성 : 41
 액티브 스킬 : <고블린 소환 Lv.1> 소모 오러 : 100
 패시브 스킬 : <비스트 하우징 Lv.1>
 
 레벨 30. 그리고 그 옆에 떠 있는 안내문. 이 안내문을 보기 위해 2년간 그 개고생을 하면서도 버텨냈다. 프리랜서에 비하면 더없는 박봉임에도 주말도 없이 던전을 찾아다니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원정에 참여했다. 2차 각성을 통해 새로운 능력을 얻고 떳떳하게 ‘헌터’로서 다시 태어나고 싶었기에.
 헌터로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무덤 앞에 맹세하고 싶었다.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나를 구하려다 돌아가신 당신들을 위해 싸우겠다고. 오로지 그 꿈 하나만을 위해 2년 동안 달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이 왔다.
 “무조건 성공하는 거다. 무조건.”
 신우의 눈은 지난 2년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고 있었다.
 
 * * *
 
 그로부터 3시간 뒤.
 “이야, 여기는 언제 와도 손발이 떨리네.”
 “팀장님 저 기억 안 나요? 각성실 들어가기 전에 화장실만 다섯 번 들락날락한 거?”
 “왜 기억 못 하겠냐. 난 네가 바지에 싸서 그거 빨려고 왔다 갔다 하는 줄 알았다니까.”
 신우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눈앞의 거대한 문을 응시했다. 하얀색 페인트가 칠해진 철문이었다. 여느 창고 입구처럼 특징 없는 출입문이었지만 그 문을 앞에 두고 신우가 느끼는 압박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저 문 건너, 그의 미래가 있었다.
 끼이익!
 철문이 열리며 연구소 가운 차림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뿔테 안경, 아무렇게나 묶은 머리에도 전혀 가려지지 않는 이목구비가 그 미모를 짐작하게 했다.
 “오오, 은영 씨! 여전히 아름다우시네! 아직도 여기서 일하세요?”
 주혁이 손을 흔들어 보이며 아는 척했지만, 은영은 눈길도 주지 않고 손에 든 장부를 보며 신우의 얼굴을 확인했다.
 “블랙 하운드 팀 소속 주신우 씨, 맞나요?”
 “아, 네! 네. 맞습니다.”
 “2차 각성실 담당자 김은영입니다. 일루미네이션 봇(Illumination Bot)이 가동 준비를 마쳤습니다. 들어 오세요.”
 
 
 # 2차 각성
 
 
 “아! 네. 잠시만요.”
 신우는 마음을 다잡고 자신을 둘러싼 팀원들을 바라보았다.
 약 3년 전 그가 처음으로 각성하던 순간, 주변에는 그를 축하해 줄 누구도 없었다.
 이른 새벽, 아르바이트하던 술집 화장실에서 누군가의 토를 치우며 신우는 첫 각성을 경험했다.
 실로 외롭고 쓸쓸한, 어떻게 보면 비참하기까지 했던 첫 각성.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의 두 번째 기회를 축하해 줄 이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었다.
 “들어가라, 신우야. 대박 한번 내 보자.”
 주혁의 말에 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지금까지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에이, 신우 씨. 벌써 울려고 하면 어떡해!”
 “야, 일단 각성이나 대박 내고 와. 대박 나면 오늘부터 일주일간 네가 쏘는 거다.”
 신우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여 보인 뒤 은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이제 준비됐습니다.”
 은영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각성실 안으로 사라졌다. 신우 또한 침을 꿀꺽 삼키고 그녀를 따라 각성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쿵! 철문이 닫히고 동료들의 응원 소리가 멎자 신우의 혼란스럽던 정신도 차갑게 식었다. 그의 눈앞에는 수술대를 크게 늘린 것처럼 보이는 기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일루미네이션 봇의 겉모습은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수술대와 다를 바 없었다. 단지 조명이 있어야 할 부분에 커다란 모니터가 설치되어있다는 점이 달랐다.
 “거기 수술대에 누워 계시면 됩니다. 바로 구동 시작할게요.”
 은영이 벽 한 편 빼곡하게 놓인 기계들을 조작하며 신우에게 말했다. 신우는 생각이 들킨 것 같아 움찔하며 물었다.
 “수, 수술대요?”
 “그쪽이 더 알아듣기 쉽잖아요? 2차 각성이란 게 수술과 비슷하기도 하고. 어쨌든 무슨 말 하는지 알죠?”
 “아······ 네, 알겠습니다.”
 신우는 중얼거리듯 대답하고 ‘수술대’ 위에 누웠다. 이렇게 누워서 보니 시야를 가리는 커다란 모니터가 마치 그를 바라보는 의사처럼 설치되어있었다.
 ‘의사라면 의사라고 할 수 있지. 망가진 장기를 교체해주는 의사.’
 전 세계에서 단 3대뿐인, 2차 각성이라는 기적을 실현하는 정체불명의 기계, 일루미네이션 봇. 일루미네이션 봇을 통해 2차 각성을 마친 이들은 저마다 그 기묘한 경험에 관해 이야기하곤 한다.
 신우도 팀에서 일하며 팀원들에게 경험담을 들었다. 주혁은 순간 빛이 번쩍하더니 이전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생생하게 재생되었다고 했고. 재현은 하늘을 나는 듯한 부유감이 자신을 덮쳤다며 호들갑 떨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전기가 통하는 물에 들어간 것처럼 찌릿한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좋아, 나도 이제······’
 하지만 신우의 경우는.
 “······ 끝났네요.”
 “네?”
 그와 비슷한 어떤 것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단지 가만히 누워서 10초 정도 멍하니 있었을 뿐인데 은영이 끝났다고 말했다. 은영은 신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기계를 만지작거리며 지나가듯 말했다.
 “각성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곧 신우 씨 앞에 있는 모니터로 결과가 표시될 거예요.”
 “벌써 각성이······.”
 팟!
 신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기 직전 모니터가 빛을 발하더니 차가운 기계 음성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주신우 님의 2차 각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2차 각성에 성공하셨습니다! 아래는 2차 각성을 통해 주신우 님이 새롭게 획득하신 능력입니다.]
 
 꿀꺽. 그 어느 때보다 긴장된 순간 신우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침을 삼켰다.
 ‘괜찮아,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괜찮아, 긴장하지 말자.’
 
 [2차 각성을 통해 추가된 보너스 스텟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2차 각성을 통해 추가된 액티브 스킬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신우 님의 고유 패시브 스킬 <비스트 하우징>이 Lv.1에서 Lv.2로 올랐습니다.]
 
 “어······?”
 
 [······.]
 
 그걸로 끝이었다. 단 세 마디만을 내뱉고 일루미네이션 봇은 침묵을 지켰다. 모니터에 표시된 정보도 그게 전부였다. 신우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뚫어져라, 모니터를 응시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이게 전부라고? 이미 일루미네이션 봇은 구동을 멈춘 지 오래였지만 신우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환자처럼 신우의 얼굴에서 빛이 사라졌다.
 “이럴 리가, 없잖아.”
 “주신우 씨, 2차 각성을 축하드립······.”
 신우의 반응을 본 은영도 이내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각성 제어 장치인 ‘일루미네이션 봇(Illumination bot)’의 담당자로 지내면서 지금껏 수많은 2차 각성자들을 봐왔지만, 신우만큼 절망적인 표정을 지은 이는 없었다. 마치 혼이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
 하지만 은영은 담당관으로서 자기 일을 해야 했다. 그녀는 손에 든 장부를 시체처럼 앉아있는 신우에게 내밀며 말을 이었다.
 “주신우 씨. 일루미네이션에 표시된 대로 2차 각성에 성공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신우 씨는 대한민국 서울, 경기 지부 소속의 2차 각성자로 등록됩니다. 자, 이쪽에 서명 부탁드리겠습니다.”
 “······.”
 “주신우 씨? 주신우 씨!”
 “아, 네. 죄송합니다. 뭐라고 하셨죠?”
 은영이 다그치자 그제야 신우의 눈에 조금이나마 초점이 돌아왔다. 은영은 얕은 한숨을 내쉬며 서명란을 손으로 짚은 뒤 신우가 서명하는 틈에 흘끗 모니터를 보았다.
 ‘2차 각성의 결과가 패시브 스킬 하나라. 확실히······.’
 신우의 반응도 어느 정도 이해 됐다. <비스트 하우징>이 무슨 스킬인지는 알 수 없지만, 패시브 스킬인 이상 특별히 대단한 능력은 아닐 터였다. 2차 각성을 통해 겨우 패시브 스킬 하나 업그레이드되는 게 전부라니. 지금까지 5년 동안 각성 담당관으로 일하면서 이 정도로 초라한 2차 각성은 본 적 없었다.
 “서명했습니다. 또 할 게 있습니까?”
 도둑이 제 발 저리다던가. 은영은 신우의 물음에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신우는 그런 은영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서명하기 전과 같이 초점 없는 눈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 아니에요. 따로 헌터 라이센스는 가지고 계신 게 없으니까 자세한 안내는 나중에 특수 재난부 서울 지부에서 온라인으로 연락할 겁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셔도 좋아요.”
 “네. 감사합니다.”
 신우는 그 말과 함께 천천히 각성실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은영은 신우의 힘없는 뒷모습을 응시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저, 주신우 씨!”
 “혹시 결과가 다시 나왔습니까?”
 “아니요. 저······ 기운 내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2차 각성을 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대단한 일이니까요.”
 실낱같은 희망에 반짝이던 신우의 눈이 금세 생기를 잃었다.
 “······ 감사합니다.”
 신우는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빠르게 각성실을 빠져 나왔다.
 
 * * *
 
 “저, 어. 신우야, 음.”
 각성실 밖에는 주혁을 포함한 ‘블랙 하운드’ 팀원들이 신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우가 각성실에 들어가기 전과 분위기가 천지 차이였다. 펄펄 끓는 물처럼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얼음보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신우의 눈이 각성실 밖에 달린 모니터로 향했다. 모니터에는 그의 2차 각성 결과가 적나라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에이, 이거 분위기 왜 이래요.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신우는 되려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패했다고 해서 끝까지 그를 응원하던 다른 이들마저 우울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신우와 2년 동안 동고동락한 이들은 그의 예상보다도 훨씬 마음씨 착하고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었다.
 “신우야.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
 “재현아. 그게 아니라, 진짜 괜찮다니까? 이렇게 된 김에 프리랜서로 전업이나 하려고. 패시브 스킬 만렙도 찍었으니 던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찾을 거 아니냐.”
 “흑, 흑, 신우 씨, 미안해요. 저희가 좀 더 알아보고 조언해 주었어야 했는데······!”
 “아니, 연지 씨! 왜 갑자기 울고 그래요?! 이러면 제가 더 미안해지지 않습니까!”
 신우가 과장된 웃음을 지으며 훌쩍이는 팀원을 토닥이고 있을 때 그의 어깨에 솥뚜껑만 한 손이 얹어졌다.
 “한 달 동안 휴가다. 신우야.”
 “팀장님?”
 “기존 월급은 그대로 지급할 테니까,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다녀와. 마음이 충분히 정리되면 그때 다시 출근해라.”
 “하하, 진짜 이 사람들이 왜 이러실까.”
 주혁은 신우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섰다. 신우는 가슴 속에서 치솟아 올라오는 무언가를 참으려 무던히 애써야만 했다. 참지 못하면 모두의 앞에서 그야말로 꼴불견인 모습을 보여줄 게 분명했으니까.
 
 * * *
 
 “진짜, 다들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이봐요, 팀장님. 그런 식으로 사람이 착하면요, 예? 이 바닥에서 사회생활 못 해요. 재현아, 너도 인마. 사람이 적당히 냉정하고, 쓰레기 같은 면도 있어야지. 동기 밟고 올라갈 생각도 하고 인마.”
 그날 밤. 신우는 손에 들고 있던 맥주캔을 찌그러트리며 이런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들어줄 당사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신우의 옆을 따라다니던 길고양이 한 마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그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한편으로는 밝게 빛나는 미래를 상상하며 퇴근하던 원룸촌 골목길.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신우는 몇 캔 째 일지 모를 맥주를 손에 든 채 쓰러지듯 집 문을 열고 들어와 엎어졌다.
 “젠장,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잖아. 어? 이건 너무하잖아!”
 신우의 절규가 차갑게 식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상태창 확인.”
 신우는 바닥에 드러누운 채 오늘 하루 스무 번은 넘게 했던 행동을 반복했다.
 
 이름 : 주신우
 레벨 : 30 (1%)
 보유 오러 : 80 / 130
 근력 : 35 체력 : 34 민첩성 : 41
 액티브 스킬 : <고블린 소환 Lv.1> 소모 오러 : 100
 패시브 스킬 : <비스트 하우징 Lv.2>
 
 “비스트 하우징, 이게 뭔데? 어? 이 빌어먹을 패시브가 대체 뭐냐고!”
 결국 신우의 입에서 분노에 찬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각성 직후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상태창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그의 인생을 바꿀 기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다. 현재와 똑같은 생활을 이어가든지 이 바닥에서 완전히 발을 빼든지.
 “그래, 아예 뜨자. 아예 이 바닥을 떠서 새롭게 시작하는 거다.”
 술에 취해 돌아다니면서도 생각은 진즉에 정리한 상태였다. 이미 그의 꿈이 박살 난 지금 그 꿈의 잔해를 딛고 같은 곳에서 계속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신우는 힘없이 일어나 손에 든 맥주캔을 싱크대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침대를 향해 걸음을 옮기던 신우의 눈에 싱크대 위에 놓인 조그마한 단도가 들어왔다. 고블린에게 받은 정체불명의 단도. 2차 각성 하기 전 방에 잠깐 들러 놓고 갔던 게 기억이 났다.
 “이따위 거······.”
 수상하긴 하지만 이제 용도를 알아볼 능력도, 그럴 필요도 없어진 아이템. 무엇보다 모든 의욕을 잃고 무기력감에 지배당한 상태에서 지금은 던전과 관련된 그 무엇도 보고 싶지 않았다.
 “치워버려야지······.”
 신우는 비틀거리며 싱크대에 가 단도를 집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스킬 <비스트 하우징 Lv.2>가 확인되었습니다. 아이템 감정의 선행 요구 조건을 충족시켰습니다! 아이템 감정을 시작합니다.]
 
 “어?”
 눈앞에 상태창이 번쩍이더니 그가 손에 쥔 단도가 찬란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 이블 테이머
 
 
 그리고 눈부시게 빛나던 단도의 빛이 은은하게 사라지기 시작할 즈음. 다시금 신우의 눈앞에 상태창이 나타났다.
 
 [감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아이템이 온전히 귀속되었습니다.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하시겠습니까?]
 
 “아이템 확인.”
 술기운은 달아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신우는 상태창에 표시된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고 아직도 술이 덜 깬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블 테이머>
 등급 : 에픽 유물
 선행 요구 조건 : 비스트 하우징 Lv.2 [선행 요구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장비 효과 : 모든 능력치 +10
 습득 스킬 : <쉐도우 고블린 소환 Lv.1 (성장형)> 소모 오러 : 100 유지 오러 : 10/10m
 <몬스터 테이밍 Lv.1 (성장형)> 소모 오러 : 30 [하루에 한 번 발동 가능합니다.]
 <보물 고블린의 공방 Lv.1> [30일에 한 번 발동 가능합니다.]
 
 “이게 대체···”
 등급 자체가 신우의 상상을 벗어난 물건이었다. 에픽 유물이라니. 지금까지 발견된 에픽 유물 아이템은 전 세계를 통틀어도 10개 정도. 한국으로만 한정하면 SSS급 헌터 한혁의 비호궁(飛虎弓)만이 유일한 에픽 유물 아이템이었다.
 모든 능력치를 10 올려주는 장비 효과, 습득 스킬이 3개나 된다는 것도 기절초풍할 만한 스펙이었다. 비록 세세하게 정보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세 가지 스킬 모두 직접 발동이 가능한 액티브 형식이라는 점도 그의 머리를 뒤흔들어놓기 충분했다. 신우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노력하면서 오늘만 스물한 번째인 행동을 반복했다.
 “상태창 확인.”
 
 이름 : 주신우
 레벨 : 30 (1%)
 보유 오러 : 90 / 130
 근력 : 45 체력 : 44 민첩성 : 51
 액티브 스킬 : <고블린 소환 Lv.1> 소모 오러 : 100
 <몬스터 테이밍 Lv.1> 소모 오러 : 30
 <보물 고블린의 공방 Lv.1> 소모 오러 : 없음
 패시브 스킬: <비스트 하우징 Lv.2>
 
 아이템은 어느 옵션 하나 빼놓지 않은 채 확실히 적용되고 있었다. 신우는 한동안 말없이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2차 각성 당시와는 정반대의 의미에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단지 아이템 하나가 그의 손에 들어왔을 뿐인데 이미 그는 어느 2차 각성자 못지않은 스킬과 스텟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게 정말 가능하단 말이야?”
 신우는 더듬더듬 새로 얻은 스킬, ‘몬스터 테이밍’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테이밍을 시도할 대상을 선택하십시오.]
 
 “테이밍이라.”
 테이밍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은 있었다. 동물을 길들일 때 어떤 이는 그것을 동물을 ‘테이밍한다’라고 표현하고는 했다. 그렇다면 몬스터 테이밍도 단어로만 봐서는 그런 매커니즘의 일종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만 해서는 설명이 너무 부족한데. 어디···.”
 신우는 혹시나 정보가 더 있는 것은 아닌지 몇 번이고 버튼을 눌렀지만, 그 외에 따로 설명이나 정보가 표시되지는 않았다. 대신 몬스터 테이밍 바로 밑에 있는 ‘보물 고블린의 공방’ 버튼에 손가락이 닿은 순간이었다.
 
 [보물 고블린의 공방을 통해 희귀한 정보를 습득하실 수 있습니다. 보물 고블린의 공방을 여시겠습니까? 보물 고블린의 공방은 30일에 한 번 사용 가능합니다.]
 
 “그래, 일단 한 번 가보자.”
 애초에 그는 맛있는 게 있으면 일단 먹고 보는 성격이었다. 이런 정보를 획득하고 망설일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
 “보물 고블린의 공방, 활성화.”
 
 [보물 고블린의 공방 Lv.1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신우가 망설임 없이 스킬을 발동하자 눈 부시게 환한 빛과 함께 황금빛 게이트가 나타났다. 신우는 방을 가득 채우는 황금빛에 눈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던전에서 고블린이 만든 게이트랑 똑같이 생겼네.”
 과연, 녀석은 헌터들의 말대로 진짜 보물 고블린이었던 것이다. 설마 은혜 갚은 사슴 이야기의 현대판을 실제로 경험할 줄이야. 신우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은은한 빛을 휘감은 단도를 들고 게이트 안으로 발을 옮겼다.
 “윽?!”
 게이트 안에 들어서자마자 시야를 찌르는 찬란한 황금빛에 재빨리 눈을 가렸다. 그리고 빛에 익숙해질 무렵, 게슴츠레 눈을 뜬 신우는 시야에 가득 찬 황금색에 입을 딱 벌린 채로 굳어졌다.
 온통 황금 천지였다. 수많은 금화와 황금 덩어리, 찬란하게 빛나는 아이템들이 가득 쌓여 거대한 산을 이루고 있었다.
 “여긴 또 뭐야.”
 신우는 자신의 볼을 있는 힘껏 꼬집었다. 눈물 나게 아픈 걸 보니 역시 꿈은 아니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던 신우의 눈에 여기저기서 자루를 메고 돌아다니는 고블린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일단 고블린의 공방은 맞았다. 고블린의 공방이라기보다는 보물창고라고 하는 편이 훨씬 모양새에 들어맞긴 했지만.
 개중에 신우와 눈이 마주친 고블린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관심조차 주지 않고 바삐 어딘가로 사라졌다. 신우도 녀석들의 머리에 나풀거리는 푸른색 실을 보고 긴장을 풀었다.
 “키룩?”
 그리고 신우가 황금빛 산을 돌아다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발견한 한 마리 고블린이 두 눈을 크게 뜨고 허둥지둥 달려왔다.
 “키룩, 키룩! 키룩키룩!”
 “그래, 너구나.”
 신우의 다리에 몸을 비비며 팔짝거리는 고블린. 굳이 녀석이 자기소개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가 목숨을 구해준 고블린이었다. 신우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블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악!
 그리고 망설임 없이 고블린의 머리에 대고 꿀밤을 한 번 먹였다.
 “끼루욱?!”
 “네 탓에 하마터면 요단강 건널 뻔했다, 이 자식아!”
 “키루구욱? 키룩!”
 “네가 화려하게 도망간 덕분에 널 쫓던 놈들이 다시 찾아와서 날 죽이려 했다고. 하마터면 쿠크리에 조각조각 나서 쥐도 새도 모르게 몬스터 밥이 될 뻔했단 말이다.”
 고블린은 신우의 말을 알아들은 건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녀석은 무언가를 발견한 듯 땅을 유심히 살피다가 팟! 하고 무언가를 잡아 신우에게 내밀었다.
 “키룩!”
 “야 씨, 이놈 또 이러네?! 사람 좀 그만 놀라게 해라, 이 망할 고블린아!”
 뭔진 몰라도 고블린의 손에 들린 게 이리저리 꿈틀대자 신우는 식겁하며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러나 그게 조그마한 두더지라는 사실을 알고 이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안도했다고 고블린의 의도를 파악했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건 두더지 같은데. 뭐야? 이걸 어디다 쓰라고?”
 신우의 말에 고블린은 손에 든 두더지를 흔들며 다시금 키룩거렸다.
 “키룩, 키룩, 키룩!”
 “······.”
 그리고 당연하게도 신우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고블린은 끈덕지게 키룩거리며 커다란 눈을 뜨고 신우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렇게 키룩거려봤자 네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결국, 신우가 답답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
 
 [우호적인 몬스터가 인식되었습니다. 비스트 하우징 Lv.2가 활성화합니다. 몬스터와 교감능력이 강화됩니다.]
 
 그의 눈앞에 패시브 스킬이 활성화되었다는 표시와 함께 고블린이 다시금 입을 열고 말했다.
 “인간님, 키룩. 드립니다, 부탁을. 테이밍, 이 두더지의.”
 “어?”
 이번에는 키룩거리는 특유의 콧소리도 아니고 영어도 일본어도 하다못해 중국어도 아닌 한국어로 말했다. 순간 신우는 드디어 뇌가 이상해져 환청까지 들리는 건가 의심했다.
 “인간님, 키룩. 드립니다, 부탁을.”
 하지만 아니었다. 고블린은 분명 한국어로 신우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결국, 신우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잠깐만, 너 지금 한국말 한 거야?”
 “저는 말합니다, 고블린어. 이세계 언어, 인간님의 능력.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제 말을. 알아듣습니다. 저도. 인간님의 말. 키룩.”
 “고블린어···?”
 신우는 멍청한 표정으로 고블린을 응시했다. 허, 몬스터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몬스터와 말이 통하기까지?
 “인간님의 시간. 남지 않았습니다, 많이. 사과의 표시입니다, 인간님의 첫 방문 선물이자, 제가 드리는. 부탁드립니다, 테이밍을.”
 “테이밍을 하라고?”
 어순이 뒤죽박죽이긴 했지만 알아듣는 데는 문제 될 게 없었다. 신우는 고블린이 내미는 두더지를 응시했다. 기껏해야 신우의 주먹보다 조금 큰 조그마한 두더지였다. 말 그대로 ‘두더지’였기에 몸집이 크지 않아도 그리 귀엽게는 느껴지지 않았다.
 신우는 문득 손에 쥔 단도를 응시하고 고블린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 테이밍이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테이밍은 어떻게 하는 건데? 테이밍이란 건 대체 뭐고?”
 “테이밍, 인간님은, 없으십니까? 그 경험이?”
 “단어라면 들어본 적 있지만, 테이밍이란 걸 따로 해본 적은 없지.”
 순간 고블린의 눈이 진지해졌다. 고블린이 눈빛이 진지해진다는 것 자체가 웃긴 상황이었지만, 신우는 웃지 않았다. 별안간 고블린이 낮게 그륵거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알려줍니다, 그것은. 테이밍이 무엇인지. 인간님의, 이블 테이머가. 키룩.”
 “이블 테이머가 알려준다고?”
 신우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물었다. 하지만 의문은 금세 풀렸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신우의 눈앞에 익숙한 반투명 창이 생겨나더니 이전 고블린을 소환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글귀가 적히기 시작했다.
 
 [테이밍은 인간과 인간이 아닌 생물이 서로 교감한 최초의 기적. 인간이란 하나의 종이 세상에 창조된 이래 최초로 자신의 우방(友邦)을 얻은 순간. 그 순간을 하나의 능력으로 승화(昇華)한 기적. 그것이 테이밍이다. 그 능력으로 짐은 천상의 시종들을 구원하고 열화(烈火)에 뛰어든 지옥의 흉견을 재로써 응징할 것이다.]
 
 잠시 눈앞에 떠 있던 글귀는 신우가 마지막 문장을 읽자마자 안개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충분히 이해되셨습니까, 설명이. 인간님.”
 고블린이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물었지만, 신우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해가 되긴 되는데. 꼭 저렇게 어려운 단어를 나열해가며 뭐라도 있는 것처럼 써놔야 했나. 저런 글을 끄적인 것도 모자라 굳이 마법까지 사용하며 하나하나 각인해놓다니. 이전 주인이 누군지는 몰라도 나중에 이불킥 좀 하겠는걸.
 “설명, 이해 안 되십니까, 인간님?”
 하지만 굳이 고블린의 환상마저 깨뜨릴 이유는 없었다. 신우는 머릿속의 말을 묻어두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 설명은 충분히 이해했어. 그런데 정작 테이밍을 어떻게 하는지는 안 알려주던데···”
 “간단합니다, 테이밍. 키룩. 이블 테이머, 꽂습니다. 트레져 몰(Treasure Mole)에.”
 예상보다 단순하고 폭력적인 방법에 신우의 눈이 커졌다.
 “이블 테이머를 두더지에 꽂으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인간, 못합니다, 보통은. 키룩. 하지만 인간님, 키룩. 할 수 있습니다. 키룩.”
 고블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신우는 단도를 한 번 바라보고 고블린의 확신에 찬 눈을 바라보았다.
 그래, 녀석이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모양 빠지게 실패하는 일은 없겠지.
 그리고 이블 테이머를 들어 두더지를 겨눈 채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몬스터 테이밍, 활성화.”
 
 * * *
 
 [몬스터 테이밍 Lv.1이 활성화되었습니다. 테이밍을 시도할 대상이 자동으로 적용되었습니다. 트레져 몰(Treasure Mole), 테이밍 대상이 시전자보다 레벨이 낮습니다. 100% 확률로 테이밍 가능합니다!]
 
 순간 상태창이 눈앞에 정보를 쏟아냈다. 그리고 신우는 그대로 이블 테이머를 두더지의 머리에 꽂아 넣었다.
 살을 찢고 들어가는 느낌은 아니었다. 실제로도 단도가 박힌 두더지의 머리에서는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뭔가 물컹한 젤리 혹은 물보다 진한 무언가에 칼날을 찔러넣는 느낌. 마치 영혼을 찌른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그리고 약 10초 뒤.
 어딘가 익숙한 그러나 글씨체가 조금 다른 문구가 그의 정보창에 아로새겨졌다.
 
 [보물을 찾아 헤매는 작은 친구여! 능력이 미흡하다고 생각하여 그대 자신을 자책하지 말게. 차갑게 식은 금덩이와 뜨겁게 타오르는 생명에 같은 잣대를 들이지 말게. 이미 그대의 존재 자체가 후일 어떤 이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보물이 될 터이니.]
 
 정보창의 글귀가 안개처럼 사라지고 단도의 칼자루 부분에 붙어있던 구슬이 갈색으로 물들면서 톡 빠져 나와 바닥을 굴렀다. 그와 동시에 고블린의 손에 들린 두더지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신우가 단도를 거두고 구슬을 집어 들자 새로운 정보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트레져 몰의 테이밍에 성공했습니다! Lv.1 트레져 몰 소환이 가능합니다.]
 
 “상태창.”
 신우는 바로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 주신우
 레벨 : 30 (1%)
 보유 오러 : 90 / 130
 근력 : 45 체력 : 44 민첩성 : 51
 액티브 스킬 : <몬스터 테이밍 Lv.1> 소모 오러 : 30
 <보물 고블린의 공방 Lv.1> 소모 오러 : 없음
 패시브 스킬 : <비스트하우징 Lv.2> 활성화
 테이밍 구슬 : <쉐도우 고블린 Lv.1> 소모 오러 : 100
 <트레져 몰 Lv.1> 소모 오러 : 10
 
 스킬 목록에 ‘테이밍 구슬’이라는 새로운 항목이 생성됐고 고블린 소환도 그쪽으로 옮겨가 있었다.
 
 ‘테이밍구슬이라, 과연. 이런 식이로군.’
 “인간님만이,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우리들의, 능력. 키룩, 감격했습니다. 역시 틀리지 않았습니다, 제 안목이.”
 신우는 손에 쥔 갈색 구슬을 응시했다. 어느새인가 이블 테이머의 끝부분에는 새로운 구슬이 나와 있었다. 과연, 이 구슬이 테이밍한 몬스터를 불러내는 매개체라는 건가. 어느 정도 매커니즘을 이해한 신우는 구슬을 집어넣고 고블린에게 물었다.
 “좋아, 테이밍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는 알았어. 그런데 혹시 테이밍 중간에 나타나는 글귀는 뭔지 알아?”
 “글귀. 말입니까? 키룩?”
 고블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래. 이블 테이머를 사용할 때마다 어떤 기록 같은 게 눈앞에 나타나는데.”
 신우의 말에 녀석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으로 턱을 짚다가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키룩, 모릅니다. 죄송하지만. 이블 테이머가 계약자에게 테이밍에 관해 설명해준다고만, 키룩. 알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고블린 또한 테이밍 중간에 나타나는 글귀에 관해서는 아는 게 없는 모양이다. 혹은 아예 그 글귀 자체를 신우 자신만이 볼 수 있거나.
 그 모습에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신우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젓고 말을 이었다.
 “죄송할 건 없어. 그건 그렇고 이 두더지는 무슨 쓸모가 있는 거지? 딱 봐도 공격 스킬을 지닌 몬스터는 아닌 것 같은데.”
 “말 그대로입니다. 트레져 몰은.”
 “말 그대로···?”
 “오래전부터 살던 고대의 존재. 이곳, 보물 공방에서. 이놈들은 잘 맡습니다.”
 고블린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길쭉한 코를 툭툭 쳤다.
 “보물 냄새를.”
 “보물 냄새라.”
 허허, 이거 참. 그렇단 말이지?
 신우의 얼굴에도 의미심장한 표정이 드러났다. 고블린과 인간, 서로의 마음이 다시 한번 통한 순간이었다.
 마치 이블 테이머를 처음 건네주었을 때처럼 고블린은 크게 콧김을 한 번 뿜었다. 그리고 바닥에 내려놓은 자루를 둘러메고 신우에게 말했다.
 “이번 방문, 여기까지입니다. 되었습니다. 헤어질 시간이. 키룩.”
 “제한시간도 있구나, 여기.”
 “뵙겠습니다. 한 달 뒤에. 인간님을.”
 은근슬쩍 떠보았지만 고블린은 더는 대답하지 않았다. 녀석이 손짓하자 별안간 신우의 앞에 커다란 황금빛 게이트가 생겨났다. 게이트 건너편에는 익숙한 신우의 방이 일렁이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이별이 살짝 아쉬웠지만, 신우는 금세 몸을 돌렸다. 딱히 미련은 없었다. 고블린의 말도 그렇고 ‘보물 고블린의 공방’ 스킬창에 설명되어있는 내용도 그렇고 한 달 뒤면 다시 이곳에 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거기다 정보라든지 선물도 충분히 얻었고 말이지.’
 신우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테이밍 구슬 두 개를 손으로 굴려본 뒤 고블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한 달 뒤에 보자.”
 “빕니다, 행운을, 키룩. 인간님의.”
 신우는 게이트에 한 발을 넣었다. 그리고 마저 몸을 집어넣기 전 그를 응시하고 있는 고블린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 그리고. 진짜 고맙다.”
 “키룩, 키룩, 키룩!”
 게이트로 넘어가며 패시브가 비활성화된 건지 고블린은 그저 키룩거리는 울음소리만 냈다. 하지만 신우는 녀석의 인사를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 * *
 
 다음 날 아침.
 
 - 팀장님, 저 그러면 일주일만 쉬고 다시 출근하겠습니다!
 - 일주일이 아니라 한 달도 상관없다니까 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냥 마음 좀 충분히 추스르고 오라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모티콘)(이모티콘)
 - 감사합니다. 금방 출근할게요!
 -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b
 
 신우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약한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람은 우는 표정을 얼마나 보내는 거야···.”
 아무리 정이 많아 그렇다지만 이 정도면 이쪽도 심히 부담스럽다. 신우는 주혁의 주변에 썸녀 발길이 뚝 끊긴 이유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아직도 이게 남아있네. 심마니들이 발견해서 신고할 법도 한데.”
 하지만 지금의 신우에게 주혁의 여자 걱정까지 해줄 여유는 없었다. 비록 정식 라이센스를 딴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 그는 1인 원정을 앞둔 헌터와 다름없었으니까.
 꼭두새벽에 출발해 장장 5시간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그가 도착한 곳. 전라남도 담양, 무등산 끝자락 깊은 산 속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은 흔적을 찾기 힘든 장소. 하지만 그의 앞에는 보랏빛으로 물든 채 스파크를 내뿜고 있는 원형의 게이트가 열려 있었다.
 신우가 이 게이트를 발견한 건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이다. 제법 괜찮은 C급 게이트가 무등산 언저리에서 감지된다는 정보를 얻고 그야말로 거지 몰골이 되어가며 산등성이를 넘어 다닌 끝에 찾아낸 게이트였다.
 하지만 그는 이 게이트를 회사에 보고하지 않았다. 게이트 중에서도 가장 돈 안 되고 번거롭기로 유명한 E급이었고 가만히 내버려 둔다고 폭주하지도 않는 정형(貞形) 게이트였으니까. 이런 게이트는 S급 게이트와는 다른 의미로 1급 기피 대상이고 국가에 신고한다 하더라도 가장 뒷순위로 방치되기 일쑤다.
 그런데도 신우가 이 게이트를 다시 찾아온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첫 번째. 신우가 정식 헌터가 아닌 던전 가이드라는 점에서 따라오는 문제다. 본래 헌터 라이센스가 없는 각성자는 게이트 내 단독사냥이 금지되어있다. 하지만 넘쳐나는 최하급 던전은 정부도 골머리를 앓는 만큼 라이센스가 없는 각성자가 클리어한 걸 확인하더라도 모른 척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두 번째.
 “이 실도 여전히 남아있고.”
 지금 그의 눈앞에 아른거리는 정체불명의 황금빛 실.
 게이트 너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수한 붉은 색의 실들, 그 중 독특한 색의 실이 하나 섞여 있었다. 붉은빛도 푸른빛도 아닌 황금빛으로 찬연하게 빛나는 실이었다. 이 황금빛 실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알아보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 건 분명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신우가 다른 곳에도 넘쳐나는 E, F급 게이트를 마다하고 굳이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였다.
 “그럼 한 번 들어가 볼까.”
 신우는 담담한 표정으로 게이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어쨌든 간에 드디어 이날이 온 것이다. 그 어떤 이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게이트 안에 진입하는 날이.
 비록 2차 각성 덕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의 그는 E급 던전 정도는 혼자 힘으로 클리어 가능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혹시 모르니까 미리 소환해두고 들어가자. 아, 그 전에···.”
 그리고 보니 이블 테이머의 귀속을 완료한 이후 지금까지 잊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바로 소환수의 능력치 확인. 이제 이블 테이머를 완전히 귀속시켰으니 소환수에 관한 정보도 온전히 나타날 터였다.
 신우는 조심스럽게 쉐도우 고블린 항목을 손으로 두드렸다.
 “일단 얼마나 대단한 놈인지는 확인해봐야겠지.”
 
 [쉐도우 고블린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번에는 상태창도 신우를 골탕 먹이지 않고 제대로 반응했다. 별안간, 그의 상태창 옆에 새로운 칸이 생기며 쉐도우 고블린의 능력치가 표시됐다.
 
 <쉐도우 고블린>
 레벨 : 40 (16%)
 특성 : 특수, 전사, 신성 축복
 보유 체력 : 1500 / 1500
 보유 오러 : 100 / 100
 근력 : 95 체력 : 74 민첩성 : 71
 액티브 스킬: <오러 클럽 Lv.1> 소모오러 : 30
 패시브 스킬: <질긴 피부 Lv.1>, <웨폰 마스터리 Lv.2>
 
 “···근력이 95?”
 신우는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허, 평범한 고블린이란 생각은 당연히 안 했지만 레벨이 40에 근력이 95라니. 이 정도면 보통의 3성급 몬스터는 물론 40레벨대 어지간한 헌터들의 능력치도 뛰어넘는 수준이다. 40레벨대 헌터들 평균 능력치가 대략 75 안팎이니까.
 거기다 레벨이 오를수록 스텟의 성장 속도가 더뎌진다는 걸 생각하면, 적어도 근력만 보면 60레벨 이상인 헌터와 겨뤄도 무방할 정도였다. 이렇게 보니 신우를 습격했던 거한과 장총의 사나이가 그렇게 간단하게 박살 난 것도 백분 이해가 됐다.
 
 [소환수의 이름을 설정하실 수 있습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허, 이름 설정까지?”
 기가 막힐 틈도 없이 이번에는 새로운 상태창이 나타나 신우의 흥미를 끌었다. 이름 설정이라니 이렇게 놓고 보니 어렸을 적 온라인 게임에서 부가 컨텐츠로 즐기던 펫 시스템과 별다를 게 없었다.
 “좋아, 어디 보자. 이름이라···.”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자주 했던 던전 게임에도 소환수로 검은색 고블린이 있었지. 어디 보자, 그 녀석 이름이 뭐였더라.
 잠시 추억에 잠겼던 신우는 주머니에서 검은색 구슬과 갈색 구슬을 꺼내 땅에 던졌다. 눈 부신 빛과 함께 검은색 고블린과 조그마한 갈색 두더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고블린이 신우를 바라보며 꾸벅 인사했다.
 “좋아. 너의 이름은 이제부터 오도르다.”
 “키룩?”
 쉐도우 고블린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그게 자신의 이름이라는 걸 파악한 듯 키룩거리며 콧김을 내뿜었다. 그 모습에 신우는 내심 뿌듯해하면서 눈앞의 상태창을 닫고 게이트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좋아, 그럼 이제 이름도 지어줬고. 시작해볼까.’
 붉은빛의 실들이 신우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금씩 굵어졌다. 하지만 그건 이제 경고의 의미가 아니었다. 무수히 많은 붉은 실들 그건 곧 그의 경험치를 뜻했다.
 
 
 # 은둔자의 공방
 
 
 퍼억!
 “끄게에에엑!”
 몽둥이로 뼈를 부수는 무자비한 파열음.
 신우에게 달려들던 코볼트 한 마리가 몽둥이에 대가리를 얻어맞고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물론 그 몽둥이는 신우가 휘두른 것이 아니었다.
 코볼트와 비슷한 크기의 검은색 고블린. 녀석의 손에 들린 몽둥이가 푸른빛을 발했다.
 “키룩.”
 검은색 고블린은 몽둥이를 빙글 돌려 가득 붙은 코볼트의 살점과 피를 털어냈다. 오도르와 신우의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코볼트들이 곤죽이 된 채 널브러져 있었다.
 30분. 신우가 게이트를 통해 던전에 진입한 지 30분 만에 벌어진 광경이었다. 최하급답다고 해야 할까, 던전 안에 가득한 몬스터들은 고블린과 함께 약체로 일컬어지는 코볼트였다.
 “키룩?”
 퍼억!
 “끄게에에엑?!”
 하지만 분명 같은 수준이어야 할 고블린 한 마리에게 수십 마리의 코볼트들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하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또 다른 코볼트가 자비 없는 몽둥이 아래 피떡이 되는 걸 확인한 뒤 신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오도르. 바로 그거야!”
 “키룩!”
 이름이 마음에 든 건지, 오도르는 입을 길게 찢으며 이제는 홀로 남아 벌벌 떨고 있는 코볼트 킹을 응시했다.
 “끼엑, 끼에에엑!”
 코볼트 킹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다가오는 오도르를 바라보며 비명을 내질렀다. ‘킹’이라는 수식어답게 보통의 코볼트보다 몇 배는 커다란 놈이었지만 결국 그게 다였다. 놈은 자신의 날카로운 발톱을 오도르에게 쑤셔 넣으려 했지만 오도르는 가볍게 발톱을 쳐내며 머리에 풀스윙을 날렸다.
 “꾸게엑!”
 푸화악!
 물풍선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코볼트 킹의 머리가 하늘을 날았다. 아니, 뭘 어떻게 하면 몽둥이로 머리를 날려버릴 수 있지. 신우는 오도르의 파괴력에 다시금 혀를 내둘렀다.
 “음, 이걸로 보스 몬스터도 죽였고. 역시 테이밍은 안 하는 게 맞았군.”
 코볼트 킹을 처음 마주했을 때 테이밍을 시도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별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아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보면 신우의 예상이 옳은 셈이었다. 하지만 신우는 게이트 봉인의 증거로 정산되는 경험치를 확인하면서도 찝찝한 기분으로 눈앞에 나풀거리는 실을 응시했다.
 ‘결국, 이 실의 정체는··· 스킬 자체적으로 생기는 오류 같은 건가.’
 이 던전을 첫 번째 사냥터로 삼은 가장 큰 이유인 노란색 실이 아직도 멀쩡하게 남아있었다. 오도르가 사냥하는 도중 노란 실의 근원을 찾아 던전 안을 헤맸지만, 결과적으로 전부 헛걸음이었다. 실이 뻗어 나오는 쪽으로 걸음을 옮겨도 어느새인가 같은 자리를 빙빙 도는 꼴이 되어버렸다.
 ‘이 녀석은 가만히 앉아서 오러만 축내고 있고.’
 신우는 자신의 발밑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두더지를 응시했다. 오러는 쉐도우 고블린과 엇비슷하게 소비하는 주제에 녀석은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신우의 뒤를 졸졸 따라다닐 뿐이었다. 이래서야 말 그대로 마스코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준이다.
 아무래도 보물 같은 건 기대할 수 없는 최하급 던전이어서 녀석도 할 일이 없는 거겠지만 그래도 사기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보물이 없으면 만들어내서라도 찾아내야지. 그러라고 귀중한 오러까지 들여가면서 소환한 건데.’
 “어?”
 신우가 그런 양아치 같은 생각마저 하고 있던 도중 별안간 눈앞의 노란 실이 크게 흔들렸다. 그와 동시에 놀랍게도 트레저 몰이 땅을 파고 어딘가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 잠깐만. 하필 지금?”
 신우는 트레저 몰의 파란 실을 따라 걸음을 옮기면서도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낭패였다. 마침 신우의 보유 오러가 바닥에 다다랐다. 예상대로 쉐도우 고블린은 신우의 오러가 바닥을 보이자마자 다시금 구슬 형태로 돌아가 버렸다.
 “이건 좀 위험한데.”
 이러다가 저 노란 실 끝에 있는 게 사실 숨겨진 보스 몬스터라면 말 그대로 옴짝달싹 못 하고 죽을 운명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더지는 거리낌 없이 노란 실을 따라 이동했다. 신우는 쉐도우 고블린의 구슬을 집어 든 채 조용히 생각했다.
 ‘여기서 확실하게 정해야 한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답이 나온 상태였다. 일단 지금까지 그가 ‘몬스터’의 말을 듣고 이득을 봤으면 봤지, 손해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거기에 더해 눈앞의 실은 강렬한 빛을 머금은 노란색. 말 그대로 황금 실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황금? 몬스터? 최고다. 몬스터와 황금의 조합. 이미 신우에게 있어서 이보다 좋은 조합은 없었다.
 ‘그래, 뭐가 되었든 어차피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운에 맡겨보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이 상황에서 머뭇거리며 뒤돌아서는 쫄보가 아니었다.
 
 * * *
 
 보물두더지의 뒤를 따라 걸음을 재촉한 지 10분. 마침내 녀석이 움직임을 멈추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겉으로는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그냥 벽이잖아.’
 위치는 예상외로 던전의 입구 근처였다. 그리고 조금 전에 그가 실을 따라 헤맸던 장소와 다를 건 없어 보였다. 입구와 연결된 일종의 통행로인 탓에 코볼트 소굴보다도 더욱 비좁은 통로. 두더지는 자신의 앞을 막은 동굴 벽 쪽으로 코를 킁킁거렸다. 거기서 신우의 생각이 어느 하나에 닿았다.
 ‘혹시 이거······.’
 신우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두더지가 코를 가져다 댄 쪽 벽을 밀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두 번째는 온 힘을 다해. 쑤욱! 그와 동시에 그의 팔과 몸이 삼켜지듯이 동굴 벽 너머로 쑥 들어갔다. 그리고 동굴 벽 너머에는 아까 전 코볼트 킹을 사냥하던 장소와 비교할 수도 없는 크기의 거대한 공동(空洞)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 거대한 공동. 특별한 조명이 없음에도 마치 햇살이 들어오는 것처럼 환했고 황토색 토벽(土壁)은 단정하고 고르게 정리되어있었다.
 신우는 앞에 펼쳐진 신비한 광경에 눈을 크게 뜨고 중얼거렸다.
 “비밀장소잖아? 이런 하급 던전에 비밀장소가 숨겨져 있다고?”
 말 그대로 얇은 벽 사이에 숨겨진 비밀장소였다. 간혹 S급이나 SS급 던전 중에 그런 장소가 존재한다는 말은 들었다. 그 비밀장소에는 희귀등급의 아이템 혹은 고가에 부속재료들이 거래되는 희귀한 몬스터가 존재한다.
 당연히 신우는 지금까지 S급은커녕 A+급 던전도 가본 적이 없었고, 따라서 이런 공간을 발견한 것도 처음이었다. 게다가 심지어 지금의 던전은 B급도 C급도 아닌 E급이다. 헌터들이 우연히 들어온다 할지라도 기껏해야 E급 던전을 주의 깊게 볼 일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비밀장소의 주인이 누구든 그 심리를 제대로 이용한 셈.
 하지만 그런 치밀한 수 싸움도 신우가 테이밍한 트레저 몰과 실을 보는 능력 앞에서는 효용이 없었다.
 “흠, 그래. 친구여. 자네의 주인은 누구인가?”
 어느새인가 트레저 몰이 노란색 실이 뻗어 나오는 근원 가까이 다가가 코를 킁킁거리고 있었다. 거기 있는 건 아이템도 몬스터도. 심지어 동물도 아니었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볼 법한 굉장히 길쭉한 귀. 판타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갈색의 펄럭거리는 로브와 다른 차원에서 튀어나온 듯 아름다운 외모. 패인 주름에서 연륜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 연륜을 초월하고도 남을 정도의 이목구비였다.
 “그렇군. 인간이라.”
 하지만 어쨌든 그곳에 있는 건 분명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드디어 이곳을 찾아낸 인간을 만나는군. 흥미롭군. 딱 봐도 대단한 능력자로 보이지는 않는데, 어떻게 여길 찾아낸 건가? 길잡이 벗을 부리는 드루이드라도 아닌 이상 이곳을 찾아내긴 지극히 어려울 터인데.”
 아니, 사람이라기보다 저런 종족을 부르는 다른 말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바닥에 비스듬히 누운 채 자신을 바라보는 존재 앞에서 신우는 멍청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엘프?”
 “잠깐, 자네. 뭔가 흥미로운 걸 가지고 있는데?”
 엘프는 느릿하게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신우는 다시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분명 꽤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엘프가 그의 코앞까지 다가섰다.
 신우는 긴장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분명 아름다운 미남자의 모습이었지만,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그 특유의 분위기와 더불어 결코 작은 편이 아닌 신우가 올려다 봐야 할 정도로 키가 크다는 점이 한몫했다.
 하지만 엘프는 딱히 어떠한 위협도 가하지 않고 찬찬히 신우를 관찰할 뿐이었다. 이건 이것대로 기분 나빴다. 신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 뭡니까?”
 “아, 그래. 이거였군.”
 한동안 신우를 줄곧 관찰하던 엘프가 그의 손에 쥐어진 단도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무한의 수정이 달린 단도라. 내가 추방당할 즈음이었나. 이게 없어졌다고 다들 난리가 났었지. 설마 이런 곳에서 이걸 볼 줄이야.”
 엘프는 신우에게 하는 건지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가 단도 쪽으로 손을 뻗었다. 당연히 이번에는 신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신우는 이블 테이머를 자신의 뒤쪽으로 숨기며 한 손에 검은색 구슬을 쥔 채 엘프를 노려보았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아, 이런. 미안하네. 그 유명한 이블 테이머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말이지. 이거 참, 본의 아니게 무례한 짓을 저질러 버렸군.”
 엘프는 양손을 들어 보이며 순순히 물러났다. 하지만 신우는 드디어 얻은 말 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여기는 어딥니까? 당신은 누구예요? 이런 곳에서 뭐 하시는 겁니까?”
 “하하, 이것 참. 하나하나 천천히 물어볼 수는 없는 건가? 역시 인간이란 생물은 성격이 급하다니까.”
 “······.”
 엘프는 신우가 아무 말 없이 표정을 굳히고 있자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좋아. 나도 오랜만에 말벗을 얻었고 하니, 질문에 대답하도록 하겠네. 다만, 그 전에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부탁입니까?”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길 바라는가?”
 엘프는 여전히 싱글거리며 말했지만, 신우는 순간적으로 등골을 파고드는 한기에 주머니에 손을 넣어 구슬을 잡았다. 물론 의미 없는 짓이었다. 굳이 상태창을 확인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까. 앞에 있는 엘프는 지금의 그가 쳐다볼 수조차 없을 정도로 위에 있는 존재였다.
 “하하, 농담일세, 농담이야. 싫다면 그냥 왔던 곳으로 되돌아 나가면 그만이야. 난 제지하지 않을 걸세. 물론 그럴 방법도 없다만.”
 엘프는 그렇게 말하면서 흘끗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았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신우도 그 눈길을 놓치지 않았다. 엘프의 손등에는 특이한 모양의 흉터가 아로새겨져 있었다.
 ‘아까 분명 추방당했다고 말했었지. 그럼 저건 일종의 주문 같은 건가.’
 신우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갔다. 좋아. 그럼 한 번 도박에 걸어볼까. 마침내 결론에 도달한 그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부탁이 뭡니까?”
 “간단해. 그 이블 테이머를 가까이서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네. 내가 알고 있는 그 이블 테이머가 맞는지 아니면 단순히 흉내만 낸 위조품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말이지.”
 “보기만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제 질문에 모두 대답해주셔야 하구요.”
 “엘프가 거짓말하는 거 봤나? 걱정할 필요 없네.”
 신우는 허리춤에 숨겨두었던 이블 테이머를 꺼내 내밀었다. 물론 칼자루 부분은 단단히 잡은 채였다. 엘프는 칼날이 코에 닿을 만큼 얼굴을 가져다 댄 채 손가락으로 칼날과 자루 끝에 달린 구슬을 쓰다듬으며 이블 테이머를 관찰했다.
 간혹 ‘오!’ 혹은 ‘흐음.’ 하는 감탄사를 흘리며 이블 테이머를 바라보는 엘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신우의 귀에 저절로 환청이 들렸다. 빠바바밤 빰빰 빠바밤. 진풍명품의 주제가던가.
 “이건, 틀림없군. 하하하하!”
 그렇게 5분 정도 지났을까. 마침내 감정을 끝낸 엘프가 고개를 젖히고 호탕하게 웃었다.

댓글(3)

gsoah    
고블린계의 헤라클레스인감
2019.09.09 15:00
좋아좋아요    
홀릭 그의 직장 성공기는 재미 하나도 없슈.. 그래서 댓글 란도 막아놨더라구요 나같은 열받는 사람 안생기게 적슈..
2019.09.09 20:08
Shristi    
12편까지 보다 포기요.. 뒤로 갈수록 어색, 유치.. 내용 진행은.그런대로 볼만한데.. 뭔가.구성이 엉성하고 대사가 유치한건.. ㅡ.ㅡ
2019.10.03 06:32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