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마법도 이력서에 써도 되나요?

1화

2018.12.11 조회 8,306 추천 149


 만남
 
 
 
 “우리 이만 헤어지자.”
 처음부터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듣게 되니 입 안 가득 쓴맛이 감돌았다.
 무표정하게 우영을 바라보던 지영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래, 너도 그동안 힘들었겠지. 미안하다.”
 “뭐, 너도 이제는 그만 정신 차리고, 잘되길 바랄게. 이제는 좋은 곳에 취직해야지? 항상 말하던 대로.”
 그런 지영의 얼굴엔 비릿함만이 남았다.
 허울뿐인 인사치레.
 반응을 살피던 지영은 자리에서 벗어나 밖으로 향했다. 그러곤 자연스럽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한 남자의 차에 올라탔다.
 우영도 잘 아는 얼굴이다.
 ‘기석현.’
 고등학교 동창.
 부모님의 사업이 성공하면서 금수저는 아니라도 은수저쯤은 될 법한 녀석이다.
 지금은 어디 대기업의 대리로 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대기업에 취직하겠다며 스펙 쌓기에 열중한 시간만 벌써 3년이다.
 그런 우영을 바라보며 뒷바라지한 시간 역시 3년이다.
 지영으로서도 지쳤을 것이다.
 “하, 그래 내 주제에 무슨 연애냐. 취업도 못 하는 인간이.”
 그동안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만을 바라 왔다.
 남들보다 더 뛰어난 스펙을 가지면 끝이라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자신보다 못났다 여겼던 동기들은 이미 어디 기업에 주임이다, 대리다 하고 있고, 기석현과 같은 계층의 녀석들은 더 높은 곳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관심조차 없겠지.’
 우영은 쌓아 온 모든 것이 부질없다 느껴졌다.
 그때 우영의 핸드폰이 울렸다.
 띠링.
 
 [······지원에 감사······. 불합격······ 모든 일에······ 감사합니다.]
 
 확인해 보니, 얼마 전 면접의 결과가 나온 모양이다.
 ‘예상했던 대로네.’
 당연했다.
 이건 우영이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닌, 사내 정치에 결과물이니까.
 우영은 면접 날 우연히 들었던 면접관들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들은 우영이 완전히 나갔다 여겼는지, 별안간 큰 소리로 자기들끼리 떠들어 댔다.
 
 -이 정도 판 깔았으면, 김 대리 선에서 알아서 할 수 있지? 최 부장 아들은 아까 왔다 갔으니, 대충 정리해서 면접 끝내. 그리고 이따 이사님과 식사 잡혔다. 우리도 라인 하나 잡고, 승승장구 좀 해야지. 안 그래? 다들 고생들 하자고······.
 
 결국 채용이라는 무대 위로 잘 만들어진 각본.
 준비된 엑스트라는 힘 있는 자들을 위한 한 편의 코미디였다.
 그런 그들의 손짓 아래, 몇 년간 준비했던 스펙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X발. 세상 참 불공평하네.”
 힘없이 집으로 돌아온 우영은 무너지듯 침대에 쓰러졌다.
 아무런 의욕도 들지 않았다.
 그저 쉬고 싶은 마음만 가득할 뿐이다.
 눈앞에 거슬리는 반투명의 아지랑이만 아니라면······.
 “뭐, 뭐야?”
 -오, 내 모습이 보이는가?
 “귀, 귀신······.”
 -오해요. 본인은 귀신이 아니라······. 흠, 그렇구려. 지금은 귀신이라고 보는 것이 좋겠구려, 껄껄. 아무래도 본인이 귀신은 처음인지라, 껄껄껄.
 쿵.
 -이, 이보시오!
 자신을 귀신이라 한 존재의 말을 끝으로 기절한 우영이다.
 
  * * *
 
 “······그러니까. 칼망제국의 대마법사이신 갈지아 님?”
 -가르지아일세.
 “그, 그래요, 가르지아 님. 그런 분께서 어떻게 이곳에······.”
 -공간 이동의 극을 위한 본인의 숙원이었소. 반평생을 수련하고 공부했지요.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공간 이동 마법을 실현하자, 밀려든 빛 무리에 정신을 차려 보니 이곳이었소.
 “아, 그러시구나.”
 우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하게 이해는 되지 않았다.
 공간 이동의 극은 뭐고, 칼망제국은 또 뭐란 말인가?
 서른 살 인생을 사는 동안 한 번도 듣지 못한 지명이었다.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본인이 모르는 세상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다만, 이쪽이 더 현실감이 없지.’
 우영은 자신 앞에 떠다니는 가르지아를 바라보았다.
 60대쯤으로 보이는 외모는 가히 ‘꽃할배’라 불리어도 될 정도의 매력이 가득했다.
 곱게 빗어 넘긴 흰머리며 얼굴 가득 자리한 주름까지, 가르지아의 얼굴에 자리한 모든 것에서 중후한 매력이 넘쳐 났다.
 또한 반투명하게 하늘거리는 영체를 보자면, 고풍스럽고도 신비롭기까지 했다.
 전체적인 느낌은 영국의 노신사다. 말하자면, 영화 킹스맨에 나왔던 콜린 퍼스의 나이 든 모습이랄까?
 ‘그래 봤자, 귀신이지만.’
 다시금 아찔해지는 느낌에 고개를 흔든 우영이다.
 “그럼 공간 이동 마법은?”
 -처음에는 마법이 성공한 줄 알았소. 일생 동안 이런 풍경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으니 말이오. 공간 이동의 극은 공간을 넘어 차원을 넘나드는 것임을 안 것만으로도 큰 성과였소. 하지만 곧 성공이 아닌 실패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어, 어째서요?”
 우영의 되물음에 가르지아는 한숨을 팍 내쉬었다.
 -육신을 잃고, 혼백이 되어 버렸지 않소.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요. 마법은 성공했지만 육체가 버티질 못했거나, 혹은 죽음으로써 차원을 넘을 수 있었다가 되겠지요.
 “네?”
 ‘솔직히 그게 그 말이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어쨌든 둘 다 죽어서 넘어왔다는 의미니까.
 하지만 가르지아의 표정은 무척 진지했다.
 -만약 전자의 의미라면 육체를 그만큼 단련한다면······ 차원을 넘나드는 것을 성공할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껄걸, 그래도 후회는 없소. 이렇게 차원을 넘어 우영, 그대와 대화를 한 것만으로도 평생의 숙원이 조금이나마 풀렸으니 말이오. 그대에게는 정말 감사하오.
 “아, 아니에요. 제가 뭘 했다고.”
 당황한 우영은 급히 손사래를 치며, 가르지아를 잡으려 했다.
 휙.
 역시나 잡히는 것은 없었다.
 다시금 영체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그보다 그대의 저택을 구경해도 되겠소? 방에만 있자니, 조금은 답답하구려.
 “네? 저택이요? 그냥 여기가 제 집인데요.”
 -이, 이곳이 말이오? 이 좁은 곳에서······. 우영 그대는 평민이었소?
 놀란 표정의 가르지아다.
 ‘뭐래, 이 미친 할배가.’
 9평 남짓의 원룸.
 서울에서 지내야 성공한다는 부모님께서 우영을 위해 얻어 주신 방이다.
 이곳에서 지낸 지도 5년이 지났다.
 그만큼 쌓여 온 정도, 추억도 많은 곳이다.
 우영은 자신의 보금자리를 보며, 놀라운 표정을 지은 가르지아를 보자 울컥한 마음도 들었다.
 ‘귀신 주제에······.’
 그런 우영의 눈빛을 읽었는지, 가르지아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우영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본의 아니게 결례를 범한 모양이오. 그대의 복장을 보아 귀족이라 여겼던 것이 화근이었소. 미안하게 되었소. 그럼 다른 이들도 우영과 비슷하게 지내는 것이오? 이 세계는 평민들도 잘사는 부유한 나라인 모양이구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얼추 비슷하기는 해요. 무엇보다 이 세상에는 계급은 존재하지 않아요. 아니다, 몇몇 나라에서는 아직도 계급이 있긴 하지만, 그게 끝이에요. 만인은 평등하다는 생각이 대다수이거든요.”
 -허허허, 그럼 귀족도 없다는 의미요?
 “네, 귀족도 왕족도 없지요. 대신 장관이나 대통령이란 직책은 있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왕족은 아니에요. 그저 똑같은 사람일 뿐이죠.”
 -신기하구려.
 “물론 모두가 평등하다고는 못 하겠네요. 계급이 없는 대신 돈이 최고거든요. 돈 많은 사람이 장땡이랄까? 하하······.”
 -그것은 본인의 세계와 똑같구려. 재력은 곧 권력과도 연결이 되는 법이지요. 하지만 본인의 세상과는 다르게 이곳에서는 평민들에게도 기회가 많다는 의미 아니오?
 “하, 그게 말은 쉽죠. 취업이 하늘에 별 따기라는 말 못 들어 보셨죠? 남들보다 뛰어난 스펙을 만들어 봤자, 부모 잘 만난 놈들은 띵까띵까 놀다가 ‘아, 이제 슬슬 일이나 해 볼까?’ 하고 생각만 해도 취직한다는데, 저 같은 놈들은 개고생을 해야 될까 말까랄까요? 벌써 5년이에요, 5년. 취직도 못 하고 지나간 시간이······.”
 -그렇구려.
 그제야 가르지아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어느 정도 이해가 된 모양이다.
 “세상에 그것뿐인지 알아요? 저번에는 어떤 일이 있었냐면······.”
 우영의 입에서는 그동안 담아 두었던 불만들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만 어렵지, 한번 터진 봇물은 쉼이 없었다.
 “하, 너무 제 얘기만 했네요, 죄송해요.”
 -아니오. 본인도 이 세상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것 같아, 그대에게 더 감사하오.
 부끄러웠다. 동시에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이도 아닌 귀신에게 신세 한탄이라니, 최악이다.’
 한숨을 푹 내쉰 우영이다.
 그런 우영의 모습과 달리 가르지아는 푸근한 미소로 말을 이어 나갔다.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는 법이오. 아직 그대의 때가 오지 않았을 뿐이니, 너무 걱정 마시게. 참 그보다 몇 가지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괜찮겠소?
 “가, 감사합니다. 뭐든 물어보세요.”
 -저것은 무엇이오?
 가르지아가 가리킨 것은 한쪽 벽면에 걸려 있는 TV였다.
 “TV요? 그건······.”
 이어지는 우영의 설명에 가르지아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신기하구려. 그렇다면 저것은 또 무엇이오?
 “저건 냉장고라고 하는데, 문을 열어 보면 이렇게 음식을······.”
 -저것은? 이것은?
 계속된 질문에 우영은 점점 지쳐만 갔다.
 “후, 이제는 조금 지치네요. 여기까지만 하고 쉬어도 될까요? 물론 더 구경하시다 가실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셔도 되긴 하지만······.”
 우영은 슬며시 고개를 들어 시계를 바라보았다.
 새벽 2시.
 가르지아를 처음 만났던 시간이 오후 4시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이런, 미안하오. 너무 내 생각만 했구려. 이곳은 그대의 집이지 않소. 본인이 물러나는 것이 맞지요. 실례가 많았소.
 “별말씀을요.”
 -오늘 그대를 보니, 세상 어딘가에 또 그대와 같은 사람이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기는구려. 그럼 또 뵙길 바라겠네.
 “예, 살펴가세요.”
 스르륵.
 벽면으로 스며들듯 사라진 가르지아를 보자, 그가 귀신임이 다시금 실감이 났다.
 ‘귀신이고 나발이고, 아 피곤하다······.’
 침대에 머리를 파묻은 우영은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오늘은 평소와는 많은 것이 달랐던 특별한 하루였다.
 
  * * *
 
 “흐아암, 얼마나 잔 거지?”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개운함이다.
 우영은 달콤함마저 느껴진 기분에 침대에서 일어난 우영은 콧노래마저 절로 나오는 듯했다.
 물론, 불청객이 끼어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오, 우영 일어났는가?
 “우, 오, 에? 아, 아직 안 가셨어요?”
 놀란 우영의 말에 가르지아는 난색을 자아냈다.
 -어제 그대와 헤어지고, 거리를 헤매던 본인의 혼백이 점점 흩어지기 시작했소. 처음에는 이 세상에 허락된 시간이 끝나고 있다고만 여겼지. 그래서 더욱 많은 곳을 보고자 했었소.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소. 그대와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혼백은 더욱 빠른 속도로 사라졌고, 종전엔 사고조차 하기 힘들 수준이었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대의 집으로 향하자, 거짓말처럼 흩어지던 혼백이 돌아오더이다.
 “그러니까······.”
 -쉽게 설명하자면 그대와 본인의 영혼이 이어진 모양이오, 껄껄껄. 역시 그대는 본인의 은인이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소.
 “예에?”
 아직 우영의 특별한 하루는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댓글(41)

니무라    
영광스러운 첫댓이네요. 현실속에서 펼쳐지는 신비로운 마법처럼 승승장구 하시길 기원합니다
2018.12.15 07:47
k6174_bakadlwjddls12    
2019.01.04 20:02
덤블도어    
잘보고갑니다
2019.01.08 06:44
조쿠나    
재미있는 글 잘 보고 갑니다.
2019.01.21 12:21
하하악    
요즘은 소재들이 너무 비슷한게 많아서 차별화가 어렵죠? 무탈하게 완결까지 가시고, 건강하시길 응원합니다.
2019.01.21 14:46
라크안    
재미있게보겠습니다....^^ 수고하세요.....^^
2019.01.21 17:25
뻔쏘    
마법사는 다 해도 됩니다 ㅎㅎㅎ
2019.01.22 00:46
앙큼상큼    
이벤트 참여합니다 돼지돼지!!
2019.01.22 10:41
앙앋    
이벤트 참여합니다 ㄷ
2019.01.22 14:43
앙큼상큼    
이벤트 참여합니다 돼지돼지!!
2019.01.22 20:24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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