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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장 레이지 1화

2019.01.30 조회 682 추천 10


 함장 레이지 1화
 
 
 #프롤로그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하얀머리를 뒤로 늘인 보기 드믄 흰고양이과 수인족이었다. 예쁜 브로치에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고 남해바다를 항해했다.
 소녀의 아버지는 제국의 부호 중 한명으로 어머니를 일찍 여윈 어린 딸을 각별하게 아꼈다.
 그녀가 10살이 될 무렵 그는 그녀를 데리고 남국(南國)의 아름다운 섬의 별장으로 가기 위한 여행을 했다.
 
 ***
 
 여태껏 집에서 지냈던 소녀는 단번에 바다에 매료되었다.
 그녀는 짠 내가 가는 바닷바람, 따뜻하면서 뜨거운 햇빛, 투명하고 에메랄드빛이 감도는 남국의 바다를 만끽하며 함선의 하얀 돛이 부푼 모습에 탄성을 질렀다.
 소녀의 아버지는 연줄이 많았다. 그는 시시한 여객선을 타는 것보다는 군함을 타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섬과 대륙 본토사이의 항로를 순항하는 대포 40문 프리깃, 제국전함 오르소호를 탔다.
 
 ***
 
 그 배를 지휘하는 함장의 모습은 당당하고 멋있었다. 금실자수가 된 암청색 코트에 커다란 이각모를 쓰고, 흰색 바지를 입은 것이 정말 멋있었다.
 함장의 명령에 선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소녀는 그날부터 바다를, 그리고 해군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녀가 자신의 가산을 물려받아 안정적인 삶을 살길 원했기에 해군에 입대하겠다는 소녀의 뜻을 당연히 반대했다.
 또 제국 육군은 여군을 받아들이긴 하지만, 해군은 여전히 금녀의 영역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사설 연대를 창설해서 대령이나 장군으로 가거나, 돈으로 계급을 살 수 있는 육군으로 가라 권했지만, 소녀는 단호했다.
 결국 아버지의 단호한 반대에 소녀는 몰래 짐을 싸 남장을 한 채, 집을 나섰다. 그녀가 14살 때 일이었다.
 
 
 #준함장 레이지
 
 
 12년이 지났다.
 초조한 얼굴의 해군 대위는 대포 122문, 남해함대 기함이자, 제국전함 알렉산더 1세호의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떡갈나무로 된 나무 칸막이 너머로 들리는 두런두런 거리는 대화 소리는 정황상 매우 심각한 대화 같았지만, 그에겐 들리지 않았다.
 사관은 방금 배를 타고 온 것처럼 살아 누렇게 타 원래 나이에 비해 삭아보였다.
 거기에 흰머리가 특성인 흰고양이과 수인인지라 더욱 노안으로 보였다.하지만 그 머리를 뒤로 넘겨 땋아 검정색 리본으로 묶고, 향유를 발라 잔털을 숨긴 덕분에 머리는 매끄럽게 보였다.
 작지만 아름다운 하늘색의 사관의 동공은 연신 흔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만 있으면 제독과의 접견이 있기 때문이었다.
 제독과의 접견, 이는 그녀가 해군생활을 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그녀는 비단 프릴셔츠에, 크림색 비단, 울 혼방의 두꺼운 조끼와 같은 색의 착 달라붙은 바지에, 가장 좋은 장화를 신고 금실 자수에 금도금이 된 단추가 달린 제복코트를 입었다.
 그렇게 복장에 크게 신경을 썼지만, 단추의 도금은 다 벗겨져 구리가 드러났고 코트의 색은 오래된 옷처럼 바래있었다. 해군에선 보통 이것을 바닷바람에 찌들어졌다고 했다.
 가장 좋은 제복이 이 모양이었으니 그다지 재산이 많지 않은 장교가 분명했다. 제복과 개인 장구는 오로지 장교 개인이 구비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제독과의 접견이 평범한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뭘까? 혹시 집에 계신 아버지가 결국에는 연줄을 사용해서 강제 예편시키시려는 것은 아닐까? 아버진 줄곧 내가 해군에 있는 것을 반대해 왔으니까.
 당장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일단 그녀는 제독 앞에서는 당당히 보여야 했다. 하지만, 그다지 좋지 않은 제복 때문에 그녀는 마음이 아파왔다.
 그때였다.
 “난 자네가 어떠한 공적을 세웠는지 잘 아네, 이는 정당하게 평가되었고, 그 가슴에 달린 훈장이 그 증거이지. 하지만, 자네의 평소 행실은 바르지 못하고 그 전공하나로 업무 성적과 공적이 뛰어난 사관들을 제치고 승진할 권리는 없다네, 또한, 친우나 지인들을 통해서 추천서를 보내고 내 앞에서 자네가 가지고 있는 막대한 재산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었네.”
 작지만 단호한 음성이 들려왔다. 단어 하나마다 힘을 조금씩 주는 것이 분노를 참는 듯 했다.
 “더 이상 볼 것은 없네. 이만 나가게.”
 쿵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얼굴이 시뻘게진 해군대위의 얼굴이 나왔다. 그자는 분노를 감추기 위해 차렷 자세로 부들거렸지만, 내면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해 얼굴의 핏줄이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레이지 대위.”
 부관의 호명에 레이지는 그 사관을 뒤로 하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윽고 안으로 들어서자 화려하게 꾸민 선실이 눈에 띄었다. 작지만 화려하게 조각한 샹들리에, 흰색 식탁보가 깔린 탁자와, 바닥에 깔린 융단. 그리고 근엄하게 앉아있는 제독. 이곳은 제독의 응접실 이었다.
 레이지의 앞에 앉은 자는 남해 함대 사령관인 제라드 폰 베스트팔렌이었다.
 올해 나이 50인 그는 흑인으로 오랜 해군생활로 머리가 이미 희끗해질 대로 희끗해져 60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주름이 많고 깊었다.
 
 ***
 
 그는 반달모양의 안경을 코끝으로 내리며 레이지를 빤히 보았다. 전신을 엄습하는 눈길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양 옷깃을 잡아 앞섬을 여며 최대한 신체를 가렸다.
 제독은 신체에 비해 사이즈가 큰 코트로 몸을 가린 것을 보아 레이지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몸을 숨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여성이라는 것을 숨기는 것과 별개로 왜소한 체격도 숨기려는 목적이 분명했다. 거기에 쏙 들어가서 광대뼈가 도드라진 볼살은 측은한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여서 제독은 혀를 낮게 찼다.
 “레이지 체스터위크.”
 레이지가 발뒤꿈치를 딱! 소리 나게 부딪치고 경례를 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라드는 그녀의 이름을 호명하며 인적사항으로 보이는 종이를 접었다. 레이지는 그것에 신경이 갔지만, 얼른 다시 시선을 제독에게 돌리고 존경심을 가득 담아 그를 보았다.
 “귀관의 이력서는 방금 읽어보았네, 성별을 속이고 수습사관이 된 것으로 해군 내에서 논란이 되었지만, 군법상 전군을 통틀어 여성들도 지원제로 받아들이고, 귀관이 수인족인 덕분에 체력면에서 크게 불리하진 않아 허락되었지. 지금껏 매우 훌륭히 싸워왔어. 참전한 전투가 22번이고, 그중에 3번은 대해전이군, 6개월 전에 루드비히 대전(大戰)(서해상에서 있었던 대규모 해전)에도 참가했군. 그라니트 호의 생존한 사관이 함장을 포함해서 자네 혼자였구만. 나포상금(적의 배를 나포하면 해군에서 매입비로 주는 보상금)으로 쫌 짭짤하게 벌었겠어.”
 그 말에 레이지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큰돈이긴 하지만, 빚들이 많아 채무를 갚는데 전부 사용했던 것이다.
 “그라니트호의 2등부관이었군. 1층 포열갑판을 지휘했다고?”
 “그렇습니다.”
 제국전함 그라니트호는 74문짜리 2열포열갑판을 가진 전열함으로, 1층 포열갑판은 32파운드짜리 대포 16문이 1줄로 정렬되었고 적함을 향해 최대한 신속하게 대포를 발사하는 임무를 지닌 전함이었다.
 
 흔히 이곳은 도살장이라 불렸는데 적함의 공격에 가장 받기 쉬울 뿐만 아니라, 3톤이 넘는 대포 하나당 12명~16명이 배치되었기에, 사람이 많아 적의 포탄과 그 포탄이 만든 나무 파편에 몰살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살아남다니, 운이 좋군. 해군에 입대한 지 몇 년째인가?”
 “올해로 12년째입니다.”
 정확히는 3개월 하고 12일 째라고 말하려는 순간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제독은 자신의 잔에 커피를 담았다.
 “커피를 한잔 하겠나?”
 감미로운 커피의 향기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녀는 입안에 침이 고이긴 했지만, 참아야 했다.
 “괜찮습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제독은 침을 삼킨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라니트호에서 나온 직후 휴직생활을 6개월 정도 하였던데 오늘 내가 귀관을 부른 것은······.”
 그는 손가락을 깍지를 끼며 허리를 굽혔다.
 “지금 해군 공창에서 의장공사를 마무리 중인 배가 하나 있다. 바로 아쿠아마린호이지.”
 레이지는 그 배를 잘 알고 있었다. 그 배는 해군 내에서 유명한 배였다..
 
 ***
 
 아쿠아마린호는 원래 대포 28문 소형 프리깃으로 계획되어 건조 중이던 배였지만, 건조도중 해군에선 프리깃은 최소 대포 32문, 그리고 1천톤짜리 배들을 주력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함 정책을 바꾸는 바람에 건조 중지가 된 배였다.
 하지만, 배의 공정률이 80%가 넘은 상태에서 배를 해체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고, 연안 순시용 대형 등급외전함이 필요하다는 해군정책 위원회의 결정으로 설계가 변경되어 28문 프리깃에서, 대포 20문 코르벳으로 바뀌었다.
 보통 코르벳과, 슬루프를 비롯한 등급외 전함들은 최대 18문의 대포를 운용하는데 반해 아쿠아마린호는 20문의 대포를 비롯해서 배가 크고 폭이 넓었기에 말이 등급외전함이지 실상은 6등급 정식전함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등급외전함의 함장을 준함장이라 불렀다.
 “해군인사위원회에서 자네를 대령으로 진급시키고 그 배의 준함장으로 임명하겠다.”
 
 레이지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며 입꼬리가 입에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존엄한 사관에서 신과 같은 함장으로 오르는 것이었다. 비록 등급외전함의 함장이고, 등급을 가진 배의 정식함장이 아니지만, 어차피 그쪽은 준함장에서 진급을 해야 갈 수 있는 지위이고 진급하지 못해 육상에서 배도 못타고 휴직급여나 받으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사관도 많았다.
 그런데 승진이라니! 그것도 배의 지휘관으로! 레이지는 연신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제독님. 정말 감사합니다.”
 “자네 명령서이네.”
 그는 붉은색 밀랍으로 봉인된 서류를 탁상에 두고 그녀의 앞으로 내밀었다. 함장 임명장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 배는 아직 의장공사중이기 때문에, 함장으로서의 준비를 마친 후 최대한 빨리 그 배로 가서 지휘권을 받아내는 것이 나을 것이다.”
 “잘 알겠습니다. 제독님.”
 레이지는 그것을 받기위해 탁상으로 허리를 숙였다. 그 순간이었다.
 “귀관의 아버지와 나는 막역한 사이지.”
 레이지의 몸이 굳었다.
 ‘어쩐지 갑자기 불러서 준함장으로 임명하려고 했어······.’

댓글(2)

wa******    
흨흨 베드엔딩확정이라니
2019.04.17 17:12
ch******    
잠만 이 소설 창해:바다의 심장 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됐었지 않아요? 내 4000원!
2020.12.17 07:56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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