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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왕 김제빵

2019.04.02 조회 1,919 추천 14


  탁구왕 김제빵
 
 
 
 
 1화 좌절이 아닌 축복
 
 
 
 
 
 
 
 
 
 퉁탕! 퉁탕!
 
 염리중학교에 있는 낡은 체육관에서 탁구공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윙을 제대로 하란 말이야. 스윙을! 드라이브는 쫙쫙 걸어! 낚아채! 채! 채라고!”
 
 녹색 그물 처진 볼 박스 안에서 감독이 목이 터지라 외쳤다.
 
 원래 탁구부 훈련은 코치나 트레이너가 주관했다.
 
 이렇게 정상준 감독이 직접 훈련에 참여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훈련 방식은 간단하다.
 
 한쪽에선 탁구대 위로 공을 던지고 반대편에선 라켓으로 공을 쳐 낸다.
 
 정 감독이 선수 한 명씩 붙잡고 동작을 반복하는 기초 훈련이었다.
 
 “후우! 후!”
 
 작달막한 키에 조막만 한 손으로 라켓을 쥔 중학생 한 명이 구슬땀을 흘리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다른 탁구대도 마찬가지.
 
 서로 랠리를 주고받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탁구공을 놓치지 않았다.
 
 초롱초롱 눈을 반짝이며 저마다 다양한 생김새를 지닌 중등부 탁구 새싹들.
 
 신기하게도 그들은 같은 꿈을 품고 있었다.
 
 
 
 국가대표 탁구 선수가 되자.
 
 
 
 비록 우리나라 탁구가 세계 순위권에서 밀려난 지 오래지만, 무럭무럭 자라나는 꿈나무가 있기에 한국 탁구의 장래는 절대 어둡지 않았다.
 
 “자, 다음!”
 
 정 감독이 외치자 선수가 교체되었다.
 
 그러자 주변 분위기가 바뀌었다.
 
 탁구장에 있는 이들은 정신없이 훈련하는 와중에 이제 막 볼 박스 안에 들어간 중학생을 힐끔힐끔 보았다.
 
 ‘드디어 쟤 차롄가.’
 
 ‘얼마나 잘 치기에···. 그 난리야?’
 
 ‘흥! 그래 봤자 중학생 수준이 거기서 거기지 뭐.’
 
 기대와 호기심.
 
 시기와 부러움.
 
 다양한 감정이 뒤섞인 가운데 중학생 한 명이 탁구대 앞에 섰다.
 
 “잘 부탁드립니다.”
 
 묵직하고 낮은 목소리로 꾸벅 인사를 하자마자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한 소년.
 
 얼마 전 염리중학교로 전학 온 배신우였다.
 
 정 감독은 훈련을 잠시 멈추고 허리를 쭉 폈다.
 
 오늘 그가 훈련에 참여한 이유도 바로 이 소년 때문이다.
 
 “네가 그 유명한 배신우냐?”
 
 감독은 괄괄한 성격을 지녔고 염리중학교에서 호랑이 선생님으로도 명성이 자자했다.
 
 신우는 담담하게 말했다.
 
 “별로 안 유명합니다.”
 
 “안 유명하긴 쨔샤. 탁구인들 사이에서 네 이름 모르면 간첩이지.”
 
 올해 중3임에도 180cm이 훌쩍 넘는 키.
 
 게다가 잘생기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시크한 이미지 때문에 벌써 팬클럽이 생겨나면서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신우는 탁구를 잘 쳤다.
 
 타고난 감각과 천부적인 재능으로 중등부는 물론이고, 웬만한 고등부 선수도 신우를 상대로 이기긴 어려웠다.
 
 그리고.
 
 4월 초에 열린 아시아 주니어 탁구 선수권 대표선발전에선 전승으로 1위를 했으며, 이어 열린 제65회 전국 남녀 종별탁구 선수권대회 남자 중등부에서도 3관왕에 오르며 동급 최강을 확인했다.
 
 정 감독이 라켓으로 탁구공을 통통거렸다.
 
 “종별 대회에선 태형 중학교 서영준과 맞붙어 남자단식 결승을 제외하곤 단 1세트도 내주지 않았다며? 용케도 그런 큰 대회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발휘했구나.”
 
 신우는 시종일관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했다.
 
 “운이 좋았습니다.”
 
 정 감독이 피식 웃었다.
 
 “좋아. 그럼 어디 한번 운인지 실력인지 확인해볼까?”
 
 통!
 
 예고도 없이 공이 날아왔다.
 
 커트성 하회전을 먹인 탁구공이 탁구대 위를 굴렀다.
 
 순간 신우가 움직였다.
 
 사전 준비 없는 동작이었음에도 곧바로 쉐이크 채를 쥐고 자세를 취했다.
 
 탕!
 
 상회전 섞인 드라이브가 반대편 탁구대 위를 맞고 튀어 올랐다.
 
 “좀 더 빨리!”
 
 정 감독은 한 손에 공을 세 개씩 쥐더니 기계가 쏘아 올리듯 빠르게 넘기기 시작했다.
 
 딱! 딱! 따악!
 
 배신우의 별명은 ‘알파고 탁구’였다.
 
 0.5cm의 오차도 없이 포핸드와 백핸드를 정확히 같은 자세를 유지하며 탁구공을 쳐냈다.
 
 “오오.”
 
 지켜보던 이들의 함성이 하나둘씩 터져나왔다.
 
 일순간 정지화면처럼 다들 훈련을 멈추고 배신우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탕! 탕! 탕!
 
 탁구부 중학생 선수에게 드라이브를 걸어 공을 반대편으로 넘기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문제는 배신우처럼 기계로 찍어내듯 되풀이하는 동작과 양쪽 엔드라인을 완벽한 컨트롤로 맞출 수 있는지에 달려있었다.
 
 훈련이 한동안 이어졌을까.
 
 감독이 공중을 튀던 탁구공 하나를 손으로 잡았다.
 
 “그 정도면 됐다.”
 
 “후우.”
 
 신우는 숨을 내쉬며 이마에 흐르는 구슬땀을 손등으로 훔쳤다.
 
 “감사합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정 감독에게 연습이 끝날 동안 한 번도 지적을 받지 않는 건 염리중학교 탁구부 역사상 배신우가 처음이었다.
 
 “자, 다음.”
 
 볼 박스 바깥으로 배신우가 나간 자리에 다른 선수가 들어왔다.
 
 두 소년은 스치듯 서로를 지나치며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신우는 이내 무심하게 걸어갔다.
 
 꾸벅.
 
 “안녕하세요! 감독님!”
 
 159cm 남짓한 키.
 
 어딘가 어리숙하고 앳된 인상.
 
 검은색 더벅머리는 쥐가 파먹었는지 한쪽 이마가 드러났다.
 
 이 아이가 바로 염리중학교 탁구부 만년 꼴찌 김제영이다.
 
 “쩝···. 제영이구나.”
 
 “운도 지지리 없지. 하필이면 배신우 다음이라니···.”
 
 “그래도 오늘은 좀 달라졌으려나.”
 
 한숨을 쉬거나.
 
 고개를 젓거나.
 
 제영이 나타나자 다들 기대 따위는 어딘가에 파묻고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정 감독 역시 다르지 않았다.
 
 “김제영이. 너냐.”
 
 “네! 잘 부탁드립니다!”
 
 정 감독이 물끄러미 제영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제영아. 요즘도 새벽 늦게까지 체육관에 혼자 남아서 서브 연습하냐?”
 
 “아.”
 
 제영은 라켓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네.”
 
 제영은 현재 열등생이었지만 불 꺼진 체육관에서 혼자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 시작하자.”
 
 “네! 감독님.”
 
 척.
 
 제영이 호기롭게 왼손으로 라켓을 들었다.
 
 작은 체구 탓인지 전혀 위압감이 없었다.
 
 중학교 1학년 이후로 제영의 성장판은 무심하게도 제구실하는 걸 과감히 포기했다.
 
 그리고 3년 전···.
 
 교통사고로 오른손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새롭게 왼손으로 탁구를 시작했다.
 
 오른손잡이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왼손으로 탁구를 한다.
 
 마치 프로게이머가 발로 마우스를 쥐고 게임을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지난번에 내가 말한 거, 꾸준히 연습했고?”
 
 “네! 거울 보면서 매일 연습했습니다.”
 
 “좋다. 어디 한번 보자.”
 
 휙.
 
 감독이 공을 라켓으로 가볍게 쳐서 네트 너머로 넘겼다.
 
 흰색 탁구공이 역방향으로 구르면서 천천히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에잇!”
 
 제영이 허공에 헛스윙했다.
 
 부웅.
 
 바람 소리가 지나가면서 탁구공은 허무하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어라?”
 
 정상준 감독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집중해!”
 
 “네? 네!”
 
 휙. 휙.
 
 정신없이 공을 날아왔다.
 
 제영은 이리저리 라켓을 휘둘렀다.
 
 앞에 배신우가 보여준 스윙 탓일까?
 
 제영의 타법은 확연히 비교되었다.
 
 어깨는 돌아가고, 팔꿈치는 들리고, 스텝을 밟을 때마다 자세는 어김없이 무너졌다.
 
 당연히 공을 제대로 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탁. 팅! 탁. 팅! 탁. 팅!
 
 라켓에 공이 맞을 때마다 맥 빠지는 소리가 났다.
 
 공은 반대편 코트에 안착하지 못하고 마치 팝콘 튀기듯이 사방팔방 날아갔다.
 
 그물이 처져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탁구장은 제영이 친 공으로 순식간에 엉망이 될 게 뻔했다.
 
 “김제영! 하나를 치더라도 제대로 쳐! 스윙해! 자세 잡고!”
 
 “예! 알겠습니다!”
 
 제영이 숨을 들이쉬었다.
 
 통.
 
 흰색 탁구공이 서서히 떠올랐다.
 
 모든 게 느려지고 제영은 오직 한곳에 집중했다.
 
 ‘이번만큼은!’
 
 이를 악물고 팔을 있는 힘껏 휘둘렀다.
 
 바로 그때.
 
 찌릿!
 
 사고를 당했던 라켓을 쥐고 있지 않은 오른손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저릿했다.
 
 손상된 신경과 근육.
 
 상처는 나았지만, 후유증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으윽!”
 
 휙.
 
 제영은 고통 섞인 비명을 지르며 어김없이 헛스윙했다.
 
 어찌나 온몸에 힘을 줬는지 왼쪽으로 무게 중심이 쏠리면서 제영은 그대로 넘어졌다.
 
 우당탕.
 
 쿵!
 
 제영의 이마가 탁구대 모서리에 찍었다.
 
 순간, 눈앞에 별이 보이면서 시큰한 느낌이 머리 전체에 울려 퍼졌다.
 
 “아야야···.”
 
 제영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감독은 더 공을 넘기지 않았다.
 
 사방으로 튀던 탁구공이 마루를 떼구루루 굴렀다.
 
 한순간 정적이 감도는 이때.
 
 “푸하하!”
 
 “우하하!”
 
 진지함을 유지하던 탁구장에 폭소가 터졌다.
 
 다들 제영을 비웃었다.
 
 정 감독은 라켓을 탁구대 위에 집어 던졌다.
 
 쾅!
 
 “다들 조용히 안 해!”
 
 뚝.
 
 카리스마 있는 정 감독의 발언에 모두 고개를 돌리고 다시 연습에 매진했다.
 
 통. 탕. 통. 탕.
 
 탁구장은 금세 익숙한 소리로 메워졌다.
 
 “후우.”
 
 정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제영아. 네가 초등학생 때 탁구부 유망주로 잠깐 이름을 날린 거. 나도 잘 알고 있다.”
 
 “···.”
 
 제영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지난 영광은 과거일 뿐.
 
 운동선수는 지금이 중요한 법이니까.
 
 “하지만 넌 여전히 왼손으로 드라이브 하나 제대로 치지 못해.”
 
 “가, 감독님. 그게 아니라!”
 
 변명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처럼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제영이 안절부절못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영야.”
 
 감독은 차갑게 말을 끊었다.
 
 “네?”
 
 “여기까지만 하자.”
 
 “그게 무슨···.”
 
 “김제영. 선수 생활은 이만 접어. 탁구는 그냥 취미로만 쳐.”
 
 쿵.
 
 제영의 귓가에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감독님···. 제가 탁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잘 아시잖아요.”
 
 “알지. 누구보다 잘 알지. 넌 3살 때부터 라켓을 손에 쥐었다며. 경력으로 따지면 이미 10년이 넘는 베테랑이야.”
 
 감독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사고를 당한 이후로 왼손으로 탁구를 해볼 생각이 없냐고 제안 한 사람도 바로 나야. 안 그래?”
 
 “그렇습니다.”
 
 “알고 있어. 김제영 네가 성실한 거. 하지만···.”
 
 감독은 검지를 들어 볼 박스 너머를 가리켰다.
 
 손가락 끝이 향한 곳은 배신우가 있는 곳이었다.
 
 신우는 의자에 앉은 채로 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었다.
 
 “설령 김제영 네가 사고를 당하지 않고 승승장구했더라도 고작 3년 전에 라켓을 잡은 배신우를 따라잡진 못할 거다. 아니, 앞으로 죽었다 깨어나도 쟤처럼은 못 칠 거야. 운동은 성실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야. 재능도 그 무엇보다 중요해.”
 
 “··· 감독님.”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현실은 원래 잔인한 거다. 김제영 네가 진심으로 국가대표 탁구 선수가 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거다. 그만 포기해. 넌 재능이 없어. 프로는 좋아한다고만 해서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제영은 혼미해진 정신으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 포기해.
 
 - 넌 재능이 없어.
 
 
 
 “어? 제영 너···!”
 
 감독이 뭐라고 큰소리쳤지만, 귓가가 멍해진 제영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피! 피! 나잖아, 인마!”
 
 주륵.
 
 제영의 이마에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렸다.
 
 손으로 더듬어보니 진득한 피가 묻어나왔다.
 
 조금 전 탁구대에 부딪힌 이마가 찢어져 상처가 벌어졌다.
 
 “어, 어······.”
 
 붉은 피.
 
 그보다 더 충격적인 감독의 말.
 
 연속 2연타 카운터펀치를 제대로 맞은 제영이 휘청거렸다.
 
 쿵.
 
 제영은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야! 다들 이리와! 119 불러!”
 
 
 
 * * *
 
 
 
 제영은 이마를 7바늘이나 꿰맸다.
 
 “치료 끝났습니다. 물에 닿으면 안 되니 당분간 격한 운동은 자제하세요.”
 
 의사는 할 말만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제영은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았다.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꼴이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나가자.”
 
 정 감독이 병실 문을 나섰다.
 
 “··· 네.”
 
 제영은 힘없이 뒤를 따랐다.
 
 병원 밖을 나오자 햇살이 쨍쨍했다.
 
 제영은 손으로 태양을 가리며 눈을 찌푸렸다.
 
 라켓을 하도 꽉 쥐어서 손가락 사이사이에는 굳은살이 잔뜩 자리 잡고 있었다.
 
 ‘날씨 좋네.’
 
 정 감독이 제영의 이마를 툭 쳤다.
 
 “아야.”
 
 “집까지 데려다주마.”
 
 제영에게 냉혹한 현실을 알려준 정 감독이었지만 탁구장 밖에서 그는 한결 인상이 부드러웠다.
 
 “아닙니다. 혼자 갈 수 있어요.”
 
 “그 꼴을 해서 무슨.”
 
 “정말 괜찮아요. 감독님. 저 어린애 아니에요.”
 
 감독은 제영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래. 그럼 여기서 헤어지자.”
 
 “네. 그럼 내일 뵙겠······.”
 
 제영은 아차 싶었다.
 
 체육관에서 장 감독이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일 아닌, 어쩌면 앞으로 영원히 그를 볼 일은 없었다.
 
 감독은 제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단, 당분간 푹 쉬어.”
 
 “들어가세요. 감독님.”
 
 제영은 멀어져 가는 감독의 등을 바라보다 화단 난간에 주저앉았다.
 
 “후.”
 
 폭풍우 속에서 목적지를 잃고 표류하는 배.
 
 딱 제영의 상태가 그랬다.
 
 어릴 적부터 중학교 3학년인 지금까지 제영의 인생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탁구.
 
 그리고 또 탁구.
 
 오직 프로 탁구 선수를 꿈꾸며 한 곳만을 보고 달려온 제영에게 감독의 말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이제 어쩐다.”
 
 제영은 누구보다 꾸준히 노력했다.
 
 사고를 당한 후에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혼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서브 연습을 했다.
 
 그러나.
 
 제영은 재능이 없었다.
 
 아니, 한때 재능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그 재능은 막상 패를 뒤집어 보니 실제론 평범한 것이었다.
 
 오늘 날, 제영의 탁구 실력은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
 
 오른손 후유증 탓인지 심리적 영향인지.
 
 동체 시력은 날이 갈수록 떨어졌다.
 
 매번 탁구공을 놓치기 일쑤였고 몸이 반응은 항상 한 박자 느렸다.
 
 왼손으로 새롭게 라켓을 쥔 이후로 볼을 컨트롤하는 감각은 다른 선수와 비교해 한없이 부족했다.
 
 “후우.”
 
 땅이 꺼지라 한숨이 폭발했다.
 
 감독 말은 옳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중학교 3학년 소년에겐 너무도 일찍 찾아온 시련이었다.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되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자신을 타일렀다.
 
 긍정적이고 성실하며 한없이 밝은 소년.
 
 그게 제영의 가장 큰 장점이었으니까.
 
 “괜찮아. 이런 적 한두 번 아니잖아. 괜찮아. 김제영. 괜찮아···.”
 
 웃고는 있었지만, 어느새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괜찮아. 괜찮···. 흐윽.”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메마른 땅이 촉촉이 젖을수록 제영은 더욱 흐느꼈다.
 
 “흑. 흐윽. 젠장! 포기하기 싫어. 포기하기 싫다고. 난 탁구가 좋단 말이야.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 말 거란 말이야. 끄윽!”
 
 터져 나오는 울음을 억지로 삼키는 그때.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쓱.
 
 제영은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땡볕이 내리쬐는 날씨에 어울리지 않게 하얀 정장을 입고 선 우월한 체구가 눈에 들어왔다. 아래에서 위로 스캔하니 흰색 페도라가 인상적이었다.
 
 “네?”
 
 피부가 유독 하얀 그가 눈처럼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승리의 여신 니케가 내리는 축복을 받지 않으시겠습니까?”
 
 
 
 
 
 - 2화에 계속 -
 
 

댓글(3)

팔카오    
선발대 없냐?? 평가좀 올려봐
2019.04.22 12:17
팔카오    
160까지 읽어보고 난 여기서 하차할게 미안해 작가씨
2019.04.23 10:37
azo    
제빵왕 김탁구 탁구버전인가??ㅋㅋㅋㅋ 이름보소 ㅋ
2019.05.20 12:07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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