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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3루의 귀신 [E]

3루의 귀신 1-1권

2019.05.09 조회 3,999 추천 23


 # 1화
 
 그곳은 미국에 있는 어느 마이너리그 싱글에이 야구장이었다.
 거기에는 언젠가 빛날 자신의 모습을 그리는 꿈나무들이 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크흠······.”
 
 헌데 그 안에는 다소 특이한 선수가 한 명 있었다.
 한국인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 자체는 크게 이상할 게 없었다.
 인종과 국적을 가리지 않고 모이는 게 바로 미국 야구가 아니던가?
 괜히 메이저리그가 별들의 무대라고 불리는 게 아닌 것이다.
 마이너리그는 그들에 가려져 대다수가 주목받지 못하곤 했지만, 그 본질 자체는 어디까지나 비슷했으니 한국인 선수가 있는 게 이상할 건 없었다.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
 허나 여기에는 걸리는 게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건 그 한국인 선수한테만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엇, 빨간색이네? 야, 꼬맹이. 빨간색 나왔다. 아무래도 전 타석에서 너한테 커트 많이 당한 것 때문에 열받은 거 같은데?
 
 그한테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게 보였다.
 간단하게 말하면 유령이었다.
 게다가 믿기 어렵겠지만 서로 꽤 친한 사이였다.
 
 ‘흠 빨간색이라면··· 많이 흥분했다는 거군.’
 
 타석에서 타격을 준비하던 한국인 선수는 상대 투수를 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전공한 만큼 덩치는 꽤 컸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해외로 진출한 터라 꽤 앳된 모습이 남아 있는 청년이었다.
 
 “······!”
 
 청년은 그러다가 눈을 빛냈다.
 지금 타석에서 치열하게 기싸움을 벌이던 상대 투수로부터 원하는 모습을 보게 된 여파였다.
 짧게 혀를 차며 입맛을 다시는 그 모습은 데이터에 기록된 그대로였다.
 손장난 없이 타자와의 정면 승부를 노릴 때 나오는 특유의 버릇이었다.
 
 ―··· 꼬맹이, 너도 지금 봤지? 빨간색에 드디어 기다리던 버릇까지 나왔네. 이건 놓치면 바보다, 바보. 알겠지, 바보?
 
 유령은 청년을 향해 잔뜩 빈정거렸다.
 꽤나 익살맞은 모습이었다.
 
 ‘도대체 누구 편이에요, 영감님? 제가 놓치기를 바라시는 것처럼 보일 정도인데요?’
 
 청년은 유령을 향해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두 눈을 부릅뜨며 배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스윽―
 상대 투수가 다리를 살짝 뒤로 빼더니만 와인드업 자세를 취한 것이다.
 이제 피칭에 들어간다는 걸 의미했다.
 청년은 그 모습으로부터 눈을 떼지 않았다.
 휙―
 곧 투수가 공을 던졌다.
 무려 150km의 포심 패스트볼로, 칠 테면 쳐 보라는 것처럼 대담하게도 한가운데의 높은 코스였다.
 부웅―
 당연히 타자인 청년은 이걸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투수가 공을 던지는 그 타이밍에 맞춰서 자신의 무기인 배트를 힘차게 휘둘렀다.
 헌데 그 타이밍이 매우 절묘했다.
 심지어 코스까지도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 모습은 마치 구종과 코스를 미리 다 알고 있던 것처럼 느껴졌다.
 따악―
 그런 만큼 그들의 이번 대결은 타자한테 있어 최상의 결과로 이어졌다.
 청년이 당겨서 친 타구가 외야를 향해 심상치 않은 궤적을 그리며 쭉쭉 뻗어 나간 것이다.
 게다가 그 타구는 그 어떤 선수도 건드릴 수가 없는 위치에 떨어졌다.
 터엉―
 좌측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홈런으로 이어진 것이다.
 군더더기가 없는, 실로 깔끔한 타격이었다.
 
 ―흥, 역시 이래야 내 꼬맹이지. 잘했다. 만약에 그거 놓쳤으면 야구 때려치우라고 말할 생각이었어.
 ‘늘 생각하는 거지만 말씀은 참 잘하신다니까···. 이것도 쉬운 거 아니거든요.’
 ―내가 쳤으면 장외였어, 인마!
 
 유령과 함께 천천히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돌며 티격태격하는 청년이었다.
 그 모습은 의외로 어울려, 꽤나 유쾌하게 느껴졌다.
 
 # 2화
 
 야구의 꽃이라고 불리는 홈런을 쳐 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런 만큼 그라운드를 한 바퀴 돈 소년은 이내 홈플레이트를 밟고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솔로 홈런인지라 겨우 1점이었지만, 0:0으로 중반까지 팽팽하게 맞서고 있던 균형을 마침내 무너뜨리는 아주 귀중한 점수였다.
 
 “잘했어, 레이!”
 “제대로 맞았더라!”
 
 소년이 덕아웃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환영받는 건 아주 당연한 전개였다.
 그는 모두와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덕아웃으로 복귀, 이내 헬멧을 벗고 보호 장비를 풀었다.
 
 ―큭큭, 레이라···. 전부터 느낀 건데, 별명 참 잘 지은 것 같단 말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조금 과분한 느낌도 없지는 않지만요.’
 
 이어서 소년을 향해서는 이제 좋은 파트너로 정착한 유령이 자연스럽게 말을 붙였고, 소년은 그의 말에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동의했다.
 한국인인 걸 보면 알 수 있듯 소년의 이름은 레이가 아니었다.
 소년의 이름은 이령이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는 이미 탈고교급이라는 평가를 받아 고등학생 1학년부터 언론의 관심을 모으곤 했다.
 파워, 스피드, 컨택, 강견, 수비를 모두 갖춘 전형적인 5툴 플레이어 취급을 받았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로부터도 오퍼를 받는 건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거기서부터는 오로지 이령의 선택이었다.
 국내 구단과 접촉하여 신인 드래프트에 남을지, 해외로 진출하여 별들의 무대인 메이저리그 도전을 놓고 말이다.
 이령은 오랜 저울질 끝에 해외 진출을 선택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역시 가장 큰 건 자신이 있어서였다.
 허나 아무리 국내에서 날고 기었다고 한들 그 시작은 눈물 젖은 빵으로 유명한 마이너리그였다.
 메이저리그의 특급 유망주들도 우선은 마이너리그를 거치는데 이령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그렇게 루키리그에서 스타트를 끊었는데, 시작이 제법 좋았다.
 의외로 빠른 적응에 성공한 것이다.
 이령은 준수한 타율과 안정된 수비력을 선보이며 모두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루키리그를 평정한 다음 싱글에이에 입성하여 더블에이까지 무난하게 올라가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관문인 트리플에이 승격도 머지않은 느낌이었으나······.
 거기에서 잠시 문제가 생겼다.
 그로 인해 성적이 급감하는 바람에 트리플에이 승격은커녕 오히려 다시 싱글에이로 떨어지고 말았다.
 물론 지금은 앞서 타석에서 보여 준 것처럼 다시 서서히 나아지는 추세였다.
 뭐, 그때와 지금의 차이라면 역시······.
 
 ―혹시 아까 봤냐, 꼬맹이? 저 투수도 어지간히 화가 난 모양이더라. 글러브를 땅에 내팽개치더라고.
 
 이 유령의 존재였다.
 서로 만나게 된 배경은 간단했다.
 최근에 일 때문에 잠깐 한국으로 귀국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달라붙었다.
 헌데 여기에는 약간 머리가 아픈 전개가 있었다.
 유령 본인이 자신의 존재를 전혀 설명하지 못한 것··· 기억 상실을 토로한 것이다.
 유령이 이령한테 붙은 이유는 역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였다.
 당시 이령은 그 유령을 도와주려고 하긴 했는데, 잠깐 한국에 돌아온 만큼 시간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미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헌데 여기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령이 동행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이령이 유일한 말벗이었으니 지극히 당연한 선택인 셈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이 애매한 관계가 계속 이어지기 시작한 순간은 말이다.
 
 ‘아··· 네, 어르신. 화가 날 법도 하죠. 생각을 읽힌 것과 다를 게 없을 테니까요.’
 
 이령의 이러한 말마따나 유령은 스스로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건 그의 나이가 제법 되는 느낌이라는 것이었다.
 말투로부터 추측한 결과였다.
 그래서 이령은 지금처럼 그를 부를 때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주로 쓰곤 했다.
 물론 고분고분할 때 그런 거고, 서로 티격태격 다투거나 할 때는 조금 낮춰서 영감님이나 할아버지, 할배(···) 등으로 부르곤 했다.
 그래도 서로 그렇게 다투는 일은 거의 없었다.
 둘은 이제 명실상부 최고의 파트너가 아니던가.
 우선 이령은 곧 다시 움직이게 되었다.
 퍼억―
 
 ―쓰리 아웃! 체인지!
 
 자신이 소속된 팀의 공격이 끝난 것이다.
 홈런을 맞고 나서 정신을 차린 건지 죄다 범타로 물러났다.
 이제는 수비에 나설 때였다.
 수비 시간에도 쉬는 건 지명타자를 제외하면 없었고, 이령의 포지션은 엄연히 따로 있는 만큼 그는 심판의 콜에 얼른 모자와 글러브를 챙겨서 팀원들과 함께 그라운드로 나갔다.
 
 ‘으···. 더워······.’
 
 그라운드로 나가게 되자 문득 괴로움을 호소하는 이령이었다.
 30도를 훌쩍 넘는 더위가 자신을 반긴 결과였다.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내색조차 하지 않는 건 사람인 이상 솔직히 불가능했다.
 
 ―어허, 사내 녀석이 그것도 못 참아? 정신 차려, 꼬맹이! 기합으로 극복하는 거다!
 ‘쳇, 할배는 덥지도 않으면서······.’
 ―젊은 놈이 벌써부터···! 너도 나이 먹어 봐, 인마!
 ‘아, 이거하고 나이랑 무슨 상관인데요! 그냥 더우면 다 더운 거지!’
 
 정말 쉬지 않고 사사건건 충돌하는 이령과 유령이었으나, 그들에게도 선은 존재했다.
 
 ―플레이 볼!
 
 적어도 시합 중에는 되도록 자제하는 편이었다.
 일종의 공과 사는 구분하는 느낌으로 보면 될 듯했다.
 
 ―꼬맹이, 아까 치는 거 보니까 컨디션 괜찮은 느낌인 것 같던데 좀 어때?
 ‘어르신이라면 묻지 않고도 알 수 있지 않아요?’
 ―쯧, 하여간 귀여운 맛이 없다니까······.
 ‘저 지금 무슨 색깔인가요?’
 ―파란색. 그것도 아주 선명해.
 
 유령은 이령의 물음에 히죽 웃으면서 대답했다. 만족감이 서린 모습이었다.
 그렇다.
 이게 바로 이령에게 달라붙은 유령의 능력이었다.
 그에게는 소설이나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다양한 능력은 없었다.
 그래도 능력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는데, 그게 바로 지금처럼 사람을 보고 색깔을 운운하는 것이었다.
 무슨 말이냐면 유령의 눈에 사람의 감정 상태가 색깔로 나타난다는 뜻이었다.
 우울하면 회색, 흥분하면 빨간색, 기분이 좋으면 파란색.
 거의 이런 식이었다.
 조금 전에 이령이 타석에서 상대했던 투수는 다소 흥분한 상태라 빨간색이라고 표현했었다.
 이령 본인은 지금 막 수비를 나와서 그런지 꽤나 들뜬 느낌이라 파란색이었고 말이다.
 유령의 이 능력은 현재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이령에게 있어 굉장히 큰 도움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앞서 타석에서 그랬듯이, 어마어마한 이점인 것이다.
 
 ‘하여간 어르신 앞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가 없겠네요······.’
 
 이령의 말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좌우로 건들거리던 자세를 멈추고는 두 눈을 부릅떴다.
 
 스윽―
 같은 팀의 투수가 와인드업 자세에 들어간 까닭이었다.
 진짜 경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여기서부터는 절대로 한눈을 팔면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령은 투수가 초구를 던지자마자 활약을 하게 되었다.
 따악―
 
 ―온다, 꼬맹이!
 
 타자가 초구부터 과감하게 배트를 돌려서 타구를 날렸는데, 그 타구가 정확하게 이령의 앞으로 굴러온 것이다.
 
 ‘오케이······!’
 
 그렇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타구였다.
 이령은 천천히 앞으로 대시하며 그 타구를 품에 안아 1루를 향해 부드럽게 던졌다.
 퍼억―
 
 ―아웃!
 
 물론 그 결과물은 아웃이었다.
 아무리 쉬운 타구였다고는 해도 마치 하나의 예술을 보는 것처럼 정말 깔끔한 처리였다.
 
 “나이스, 레이!”
 “베리 굿!”
 
 투수를 포함한 팀원들의 찬사는 덤이었다.
 이령은 그들의 인사에 가벼운 글러브 박수로 화답하고는 수비에 집중했다.
 
 ―흠, 그냥 수비 하나 한 건데 왜 이렇게 난리지?
 ‘보기에는 쉽겠지만 이게 또 그렇지가 않아요, 영감님~ 직접 해 보시면 생각 바뀌실걸요. 3루에서 1루까지 던지는 게 얼마나 먼데요.’
 
 그렇다.
 지금 둘의 대화처럼 이령의 포지션은 바로 3루였다.
 그가 해외 진출로 가닥을 잡는 데에 가장 중요한 근거로 자리 잡은 자신감 역시 포지션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중학교 시절부터 3루수로 내내 뛰었는데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탈고교급 소리를 듣는 만큼 고타율은 기본이요, 안정적인 수비까지 선보였다.
 이령의 고등학교 시절 통산 필딩률은 무려 0.998에 달했다.
 물론 이게 미국 무대에서 그대로 통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메이저리그의 거대한 벽 앞에서 좌절하여 무너지는 유망주의 수는 엄청나게 많았으니 말이다.
 헌데 이령의 수비력은 놀랍게도 여전했다.
 많이 뛴 건 아니었지만 더블에이에서 실책을 하나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대로 있으면 메이저리그 콜업도 정말 꿈이 아니었는데, 애석하게도 그때는 일이 있어서 그 모습을 계속 유지하지 못 했다.
 다행히 다시 올라가는 지금은 비록 싱글에이라고 해도 주전 3루수로 계속 나와서 준수한 타격과 나쁘지 않은 선구안, 높은 필딩률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더블에이 복귀도 그렇게까지 먼 꿈은 아닐 듯했다.
 
 ―헹, 내가 했으면 무조건 너보다 잘했어, 짜샤.
 ‘말로는 누가 못 하냐고요~’
 
 언제나 여전한 케미를 자랑하는 이령과 유령이었다.
 물론 이령은 그러면서도 여전히 준수한 3루 수비를 선보였다.
 희한하게도 이번 이닝에는 타구가 계속 그가 있는 쪽으로 날아왔다.
 퍼억―
 
 ―아웃!
 
 우선 두 번째 아웃은 라인드라이브였다.
 머리 위를 빠르게 지나가는 타구를 이령이 잽싸게 뛰어올라서 낚아챈 것이다.
 반사 신경이 웬만큼 뛰어난 게 아니면 불가능한 수비였다.
 
 ―더 빠르게 했어야지! 아슬아슬했다!
 
 유령의 평가는 의외로 조금 냉정했다.
 지금은 찬사를 보내도 괜찮을 법한데 고칠 부분을 말하기만 했다.
 헌데 백미는 바로 그다음에 나온, 이번 이닝의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는 수비였다.
 타악―
 말 그대로 메이저리그급 호수비가 나온 것이다.
 이령이 서 있는 쪽에서 오른쪽인 파울 라인 방향으로 애매한 바운드의 타구가 날아왔다.
 놀랍게도 그는 앞으로 대시하여 숏바운드로 타구를 단숨에 처리, 그대로 몸을 한 바퀴 돌리더니만 1루를 향해 다이렉트로 송구했다.
 여기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그 송구가 노바운드라는 부분이었다.
 강견이 받쳐 주지 못하면 불가능한 수비였다.
 퍼억―
 
 ―아웃!
 
 물론 그 결과물은 아웃이었다.
 타자는 좌타인 데다가 코스가 애매하게 깊어서 생존을 확신하고 죽어라 달렸으나, 이령의 송구가 간발의 차이로 더 빨랐다.
 
 ―우와아아아아~!
 ―나이스 플레이!
 
 짝짝―
 이령의 그 수비는 지금 야구장에 있는 팬들의 박수를 끌어내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들이 마이너리그 야구장을 방문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멋진 수비를 보여 주는 미래의 스타들을 보기 위함이었으니 당연한 것이다.
 
 “굿, 레이!”
 “정말 멋진 수비였어!”
 
 그건 같은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쓰리 아웃으로 다시 공수를 교대하게 되자 모두가 이령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기 바빴다.
 여담이지만 이게 바로 이령의 별명이 레이로 고정된 이유였다.
 3루에서 언제나 정말 광선 같은 정확한 송구를 보여 주니 자연히 정해지는 것이다.
 사실 별명이 레이로 굳어진 이유는 이름도 한몫했다.
 외자 이름인 령이 외국인들 발음으로는 좀처럼 쉽지가 않아서 자연스럽게 레이로 고정되었다.
 그리고······.
 
 ―나쁘지는 않았는데, 상체가 약간 쏠리는 느낌이 없지 않았다. 조금 더 집중하도록 해.
 
 그 마지막은 유령이 장식해 주었다.
 앞서 보여 준 것처럼 역시 냉정한 시선이었다.
 
 ‘하하, 어르신한테 칭찬 듣는 건 참 어려운 것 같네요~’
 
 이령은 그들 모두의 반응을 즐기며 덕아웃으로 향했다.
 원래부터 존재감이 상당했지만 지금은 말 그대로 주인공이 되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흠······?
 
 헌데 유령은 그대로 이령과 함께 덕아웃으로 향하려다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그쪽 방향에 있는 이들··· 코치와 감독으로부터 꽤나 신경 쓰이는 말을 접한 까닭이었다.
 
 # 3화
 
 덕아웃으로 돌아온 이령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툭툭―
 타격코치가 다가오더니만 말없이 자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고는 자리로 돌아간 탓이었다.
 
 ‘뭐지···? 코치들이 먼저 다가오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이령은 타격코치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했다.
 코치들이 열성적으로 가르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명백하게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간단하게 말하면 지독한 방임주의였다.
 너희들 알아서 크라는 식으로, 그런 만큼 자신들이 먼저 다가와서 선뜻 말을 거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애석하게도 영어가 능숙한 편은 아니라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문제는 없었다.
 파트너인 유령의 도움을 받으면 깔끔했다.
 영적인 존재라 그런지 모든 언어에 통달한 것이다.
 한국어, 영어, 일본어는 기본이요, 스페인어에 아랍어(!?)까지.
 그야말로 할 줄 모르는 언어가 없었다.
 그저 통역을 부탁하기만 하면 깔끔했다.
 이령이 유령과 함께 있게 된 이후로 가장 반기는 게 바로 이 부분이었다.
 덕분에 통역을 따로 고용할 필요가 없으니 돈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어르신, 코치가 지금 뭐라고 한 건가요?’
 
 따라서 이령은 즉시 유령을 향해 통역을 요청했는데, 그는 거기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접하게 되었다.
 
 ―그냥 잘했다고 칭찬한 거야···. 그보다도 꼬맹이, 엄청 좋은 소식이 있어.
 
 유령이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며 이렇게 중얼거린 것이다.
 그가 이런 식으로 말을 꺼내는 경우는 처음이니만큼 이령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유령이 말했다.
 
 ―아까 우연히 들은 건데, 감독하고 코치들이 네 더블에이 승격을 엄청 긍정적으로 보고 있더라고. 조금만 더 좋은 모습을 보여 주면 복귀도 꿈은 아닐 듯해.
 “······!”
 
 확실히 좋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유령의 이야기에 이령은 모처럼 생기가 도는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그거 아주 좋은 소식이네요. 지금 당장 기회가 오면 좋을 텐데······.’
 
 곧 그는 그라운드를 응시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은 후반부로 접어들며 1점 차로 리드를 가져가는 상황이었다.
 여기에서 추가점을 내서 점수 차를 확 벌리면 그보다 더 인상적인 활약은 없으리라.
 
 ―왜, 그런 말 있잖아. 존버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조바심내지 말고 기다려라, 꼬맹이. 내가 보기에도 왠지 이대로 끝날 것 같지는 않거든.
 
 이령을 향해 기를 불어넣어 주는 유령이었다.
 헌데 이령은 그의 말에서 전혀 다른 부분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요?’
 
 전혀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유령이 유행어를 구사하니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유령이 말했다.
 
 ―왜? 인터넷에서 본 건데. 계속 버틸 때 쓰는 말 아니야?
 ‘하아···. 어르신, 부탁이니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제발 그런 말 하지··· 아, 어차피 상관없구나.’
 
 유령을 향해 당부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젓는 이령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자신한테만 들린다는 걸 뒤늦게 떠올린 것이다.
 아무튼 둘은 덕아웃에서 주의 깊게 마운드를 응시했다.
 현재 자신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할 수 있는 승격이 걸린 만큼 그 모습으로부터는 진지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보통 서로 이런 때면 쉬지 않고 나누던 농담 따먹기가 전혀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유령의 말은 현실로 다가왔다.
 퍼억―
 
 ―세이프!
 
 밥상이 제대로 깔린 것이다.
 이령 앞에 무려 2사 만루의 기회가 찾아왔다.
 우선 선두 타자가 볼넷으로 출루했고, 후속 타자가 삼진을 당했지만 그다음 타자가 곧바로 유격수의 키를 살짝 넘어가는 안타를 쳐서 1사 1, 2루의 찬스를 잡았다.
 그 상황에서 안타깝게도 삼진이 나왔는데, 그다음 타자가 초구부터 등에 사구를 맞아서 출루에 성공했다.
 이렇게 완성된 2사 만루의 기회에서 타석에 서게 되는 사람은 거의 오늘 경기의 주인공으로 등극한 3루수 이령이었다.
 어엿한 주전이었고, 전 타석에서 홈런도 친 만큼 타격감이 절정인지라 당연히 대타를 기용하는 일은 없었다.
 
 ―레이! 레이!
 ―레이! 레이!
 
 또한 관중석에서는 일제히 이령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당연히 그의 활약을 기대하는 것이다.
 
 ―큭큭···. 떨리냐, 꼬맹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조금은요.’
 
 킬킬거리는 유령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숨김없이 말하는 이령이었다.
 유령이 말했다.
 
 ―떨 거 없어, 꼬맹이. 그냥 이 순간을 즐기도록 해.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잖아. 내 생각에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퉁명스러운 느낌이 없지는 않았으나 최고의 응원이었다.
 적어도 이령이 받은 느낌은 그랬다.
 
 ‘하하···. 그래야죠. 맞는 말씀이에요.’
 
 그렇기에 그는 웃으면서 타석으로 향했다.
 가볍게 스윙을 연습하는 그 모습으로부터는 긴장한 기색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건 유령의 말마따나 즐기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허나 이령은 거기에서 잠시 기다리게 되었다.
 
 ―타임!
 
 상대 팀 벤치에서 움직임을 취한 것이다.
 투수 코치가 새로운 공을 가지고 마운드에 올랐다.
 투수 교체를 의미하는 광경이었다.
 
 ―흠···. 저쪽도 필사적이군. 어찌 보면 저게 당연하지만.
 ‘여기에서 맞으면 오늘 경기를 완전히 넘겨주는 꼴이니까요. 물론 선수 본인은 아쉽겠지만······.’
 
 유령과 이령은 그 광경을 보며 서로 중얼거렸다.
 원래 있던 투수는 복수를 바랐는지 못마땅한 눈치였지만 이내 수긍하고는 마운드를 내려갔다.
 그에 따라 새로운 투수가 등장했고, 그는 연습 피칭을 시작했다.
 퍼억―
 
 ―구속은 아까 그놈보다 더 빠르군.
 ‘구위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요. 릴리스 포인트도 일정하고요.’
 
 둘은 새로운 투수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거기에는 유령이 이내 말했다.
 
 ―··· 어때, 도와주랴?
 
 다소 거만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였는데, 이에 대한 이령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내저은 것이다.
 
 ‘아시잖아요. 처음에는 가급적이면 저만의 힘으로 해 보는 거···. 필요할 때는 제가 먼저 말씀드릴게요.’
 
 그렇다.
 사실 이령은 무조건 유령의 도움을 받는 편은 아니었다.
 최대한 자신의 힘으로 부딪쳐 보곤 했다.
 유령의 역할은 정확히 말하면 또 한 명의 지도자였다.
 그는 앞에서 무작정 끌어 주는 게 아니라 뒤에서 조용히 보다가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등을 밀어주는 식이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서로 동의한 부분에 속했다.
 너무 타인의 힘에 기대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언제까지고 이 기묘한 동행이 이어질 리가 만무했으니 말이다.
 유령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는 노릇이지 않던가.
 이령이 늘 도움만 받는다면 그 순간 바로 낙오되기 마련이었으니, 최대한 자립심을 기르는 게 나은 것이다.
 애초에 그렇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유령이 상대 팀 배터리의 사인을 보고 알려 주는 것이었다.
 구종과 코스를 완벽하게 꿰고 있으면 세상만사 두려울 게 없을 터이니 말이다.
 
 ―그래도 승격이 걸렸으니 너무 고집부리지는 말고. 도움 필요하면 얼마든지 말만 해.
 ‘··· 늘 고마워요, 어르신.’
 
 유령의 배려가 느껴지는 목소리에 희미하게 미소를 짓는 이령이었다.
 그는 곧 두 눈을 부릅떴다.
 마침내 상대 투수가 연습 피칭을 마친 것이다.
 지금 새로 마운드에 등판한 투수하고는 전에도 몇 번 붙어 본 적이 있었다.
 
 ‘속구가 최대 155km까지 나오고 주 무기는 종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와 포크볼, 낙차가 큰 커브. 아무리 그래도 지금 땅에 냅다 처박히도록 던지는 건 무리겠지. 빠지면 바로 1점이니···. 스트라이크존을 조금 좁히고, 초구를 한번 보자.’
 
 그렇기에 이령은 상대에 대한 정보를 속으로 떠올리며 배트를 쥔 두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는 상대를 향해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면서 초구를 기다렸다.
 
 휙―
 곧 투수가 와인드업을 통해 초구를 던졌다.
 이령은 처음에 한 생각대로 침착하게 그걸 보기만 했다.
 퍼억―
 
 ―볼!
 
 상대 투수의 초구는 볼이었다.
 127km의 커브가 높은 코스로 들어왔다.
 
 ―나쁘지 않은 판단이었어, 꼬맹이. 전 타석에서 홈런을 칠 정도로 타격감이 좋은 너한테 쉽게 승부를 들어올 리가 없지.
 
 그리고 거기에는 유령이 평가를 내려 주었다.
 심드렁한 느낌이 없지 않았으나 일종의 만족감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흠, 지금부터가 문제인데···. 좋아. 하나만 더 보자.’
 
 이령은 고민 끝에 하나를 더 기다리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건 아주 괜찮은 선택이었다.
 퍼억―
 
 ―볼!
 
 2구째 또한 볼로 판정된 것이다.
 154km의 강력한 속구가 바깥쪽으로 예리하게 꽂혔는데, 심판은 그걸 빠졌다고 봤는지 볼로 선언했다.
 
 ‘솔직히 스트라고 봤는데······.’
 ―또 기다리는 건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어쨌든 승부를 보려고 온 거였으니···. 잊지 마라, 꼬맹이. 이 투수의 성격은 전형적인 싸움닭이라는 걸. 덧붙여서 지금 저 투수의 색깔은······.
 
 이령을 향해 평가를 내리다가 자기도 모르게 조언까지 내뱉으려는 유령이었는데, 그는 그러다가 살짝 놀랐다.
 
 ‘빨간색··· 맞죠?’
 
 이령이 도중에 자신의 말을 자른 것이다.
 거기에서 가장 놀라운 건 정답을 말했다는 점이었다.
 
 ―큭큭···. 너도 나처럼 혹시 다 보이는 거 아니냐, 꼬맹이?
 
 나름 자신만의 찬사를 보내는 유령이었다.
 거기에는 이령이 금방 말했다.
 
 ‘하하, 그랬다면 제가 이 고생은 안 하죠······.’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타격에 집중했다.
 
 ‘현재 카운트는 2―0. 투수 입장에서는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 존을 더 좁혀도 괜찮아. 가운데로 몰리면 위험하니 몸쪽은 어렵고, 변화구 역시 힘들다. 커브는 초구에 손에서 크게 빠진 걸로 보아 제구가 안 되는 느낌이니 제외해도 될 것 같고. 즉, 직구 아니면 슬라이더가 카운트를 반드시 잡으러 온다는 건데······.’
 
 꽈악―
 속으로 빠르게 정보를 정리하던 이령은 이내 노림수를 정했다.
 그는 곧 배트를 쥔 두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두 눈을 부라렸다.
 휙―
 투수가 3구째를 던졌다.
 
 ‘그렇다면 지금 이 투수가 던질 공은 역시······!’
 
 부웅―
 
 ‘바깥쪽 직구를 제외하면 없지!’
 
 이령은 거기에 맞춰서 똑같이 배트를 휘둘렀다.
 전 타석에서 홈런을 칠 때처럼 모든 게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정답이다, 꼬맹이!
 
 그리고 거기에는 유령이 호쾌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만큼 이령의 이번 2―0에서의 타격은 아주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따악―
 
 ―와아아아아아~!
 
 바깥쪽을 제대로 밀어낸 것이다.
 그 타구는 쭉쭉 뻗어서 중견수와 우익수의 사이를 완전히 갈라 펜스까지 굴러갔다.
 명백한 장타 코스였다.
 2사이니만큼 주자들은 이미 뛰기 시작한 지 오래였다.
 타타탓―
 
 ―달려, 꼬맹이!
 
 물론 그건 타자인 이령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지금은 홈런이 아니었으니 당연히 뛰어야 하는 것이다.
 타구가 펜스까지 구른 만큼 주자들을 전부 불러 모으는 것과 타자인 이령이 2루에 도달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2루에서 멈춰···!? 아니다! 그냥 3루까지······!’
 ―3루 가도 돼! 뛰어!
 
 타탓―
 2루로 내달리며 속으로 잠시 갈등하던 이령은 유령의 외침에 지체하지 않고 계속 달렸다.
 그의 날카로운 외침도 있었지만 3루의 주루 코치가 계속 손을 돌리는 걸 놓치지 않은 것이다.
 헌데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야! 그냥 계속 달려! 홈까지 가도 돼!
 
 유령이 이와 같이 외친 것이다.
 상황을 감안하면 꽤나 파격적인 외침이었다.
 
 ‘윽, 이번에는······!’
 
 이령은 속으로 잠시 갈등했다.
 3루 주루 코치가 이번에는 정지하라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그러다가 이령은 잠시 고개를 돌려서 상대 팀의 릴레이 과정을 보았고,
 
 ‘에라, 모르겠다―!’
 
 타탓―
 그냥 멈추지 않고 계속 홈까지 달렸다.
 유령이 이령한테 무작정 홈까지 달리라고 외친 데에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상대 팀이 릴레이 과정에서 공을 실수로 더듬고 만 것이다.
 그래도 홈까지 파고드는 건 꽤 위험했지만, 이령의 주루 스피드를 감안하면 걸어 볼 가치는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최상의 결과로 이어졌다.
 타악―
 
 ―세이프!
 
 이령이 홈인에 성공한 것이다.
 상대 팀에서도 포수까지 릴레이를 이어서 태그를 시도하긴 했으나 이령의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이 주효했다.
 태그 이전에 손가락 끝이 홈플레이트를 먼저 스쳤다.
 2사 만루의 상황에서 벌어진, 주자를 전부 불러들이고 자신마저 홈에서 사는 이령의 인사이드 더 파크 만루 홈런이 작렬하는 순간이었다.
 
 # 4화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다.
 이령이 소속된 팀이 5: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물론 오늘 경기의 MVP는 이령이었다.
 오늘의 모든 점수인 5타점을 혼자서 다 올리며 말 그대로 팀의 멱살을 잡고 캐리했는데 그 외에 누가 받을 수 있겠는가.
 투수들도 실점이 아예 없었던 만큼 잘하긴 했지만 역시 이령이 최고였다.
 균형을 무너뜨리는 솔로 홈런도 있었지만 점수 차를 확 벌리는 인사이드 더 파크 만루 홈런이 특히 인상적이이었다.
 덕분에 이령은 무려 방송국 인터뷰까지 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이령은 거기에서 또 의외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영어를 너무나도 능숙하게 구사한 것이다.
 당연히 그건 이제 자신의 든든한 조력자라고 할 수 있는 유령의 도움을 받은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오늘의 경기를 끝낸 이령은 팀원들과 함께 곧바로 뒷정리에 들어갔다.
 
 ‘아야야···. 조금 얼얼하네요.’
 ―쯧, 사내 녀석이 엄살은···. 몸이나 제대로 풀어 둬라.
 
 이령의 우는 소리에 딱 잘라서 말하는 유령이었다.
 그래도 그 시선은 달랐다.
 오늘의 활약을 옆에서 톡톡히 봐서 그런 것인지, 이령을 향한 유령의 두 눈으로부터는 상냥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엇차······.’
 ―자세가 틀렸어. 조금만 더 왼쪽으로.
 ‘이렇게요?’
 ―그래. 잘하고 있어.
 
 곧 이령은 유령의 지도에 따라 몸을 이리저리 풀어 주었다.
 경기가 끝나면 몸에 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늘 해 주는 마무리 운동이었다.
 
 ‘그나저나 볼 때마다 신기하단 말이지······.’
 
 이령은 그 과정에서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그의 시선은 옆에서 늘 그렇듯 귀여운 개의 모습으로 변해 있는 유령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뭐, 오늘 경기에서 보여 준 것처럼 유령은 이제 이령에게 있어 또 하나의 코치와 같은 존재였다.
 놀랍게도 그는 야구에 대한 지식이 엄청나게 해박했다.
 특히 심리전 쪽이 엄청났다.
 이령은 단 한 번도 유령의 예상이 빗나가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서로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소속이 싱글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게 뭐 대단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확실하게 대단했다.
 이건 이령 본인이 장담할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지내기 시작한 뒤로 모든 부분에서 크게 향상된 결과였다.
 덕분에 소속팀 코치의 도움을 받는 일이 거의 없었고, 이건 좋은 평가로 이어졌다.
 방임주의가 주를 이루는 미국 야구에서는 그게 자연히 가산점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사실 이쯤 되면 자연히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건 유령의 정체였다.
 기억이 일절 나지 않는다고 한 주제에 가지고 있는 건 어마어마하게 많지 않던가?
 특히 사람의 얼굴을 보고 색깔로 감정을 읽어내는 그 능력은 볼 때마다 혀를 내두르게 될 정도였다.
 사실 서로 만났던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아예 추측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기습적으로 떠본 결과 전혀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지 않아서 이령은 그저 유령의 정체에 대해 고개를 갸웃하기만 할 뿐이었다.
 당연히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뭐야, 뭐가 신기하다는 건데?
 
 지금처럼 아무래도 생각을 완전히 읽히다 보니 프라이버시(···)가 일절 없었다.
 뭐, 천애고아인지라 미국에 오고 난 뒤로 늘 혼자서 살던 거랑 비교하면 훨씬 낫긴 하지만 그래도 살다 보면 가끔은 그런 시간을 원하게 되는지라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이렇게 하는 거 맞나요, 어르신?’
 ―반대로 해야지. 너 그러다가 손목 꺾일 수도 있어.
 
 아무튼 이런 식으로 유령의 도움을 받아 계속 스트레칭을 하는 이령이었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 이봐! 레이!”
 
 같은 소속인 싱글에이의 팀원들이 일제히 이령이 있는 쪽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들은 포지션을 막론하고 모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이령은 그들을 말없이 응시했다.
 거기에 유령을 통한 해석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널 잊지 못할 거야, 레이.”
 “금방 따라갈 테니까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오늘 최고였어, 레이.”
 “레이, 승격 축하해.”
 
 지금 모두가 어떤 이유로 모였는지를 잘 아는 것이다.
 이령이 오늘의 경기를 통해 더블에이 승격을 확정 지었다는 소문은 이미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일종의 착한 스포일러로, 코치들이 슬그머니 흘린 것이다.
 해당 선수가 거기에 놀라지 않고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말이다.
 팀원들이 지금 일제히 모인 이유는 작별 인사를 위함이었다.
 이령이 승격하면 더 이상은 서로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덥석―
 
 “고마워, 다들.”
 
 덥석―
 
 “너희를 잊지 못할 거야.”
 
 이령은 모두와 포옹을 통해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알게 된 시간은 극히 짧았지만, 함께 마이너리그라는 이름의 진흙탕을 굴렀던 만큼 정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경쟁자였지만, 동시에 믿을 수 있는 동료였다.
 
 ―확실히 양놈들이 솔직하다니까······.
 
 유령은 그 광경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거기에 흐뭇한 미소는 덤이었다.
 
 ‘···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요!’
 
 이령이 앞서 그랬듯 지금 들은 유령의 말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
 
 저벅저벅―
 팀원들과의 작별 인사는 금방 끝이 났다.
 이령은 곧 유령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감독실이었다.
 선수들이 가장 가기를 바라면서도 바라지 않는, 명백하게 모순된 장소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승격을 통보받을 수도 있지만 강등 역시 통보받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던가.
 물론 지금의 이령은 이미 결과에 대해 잘 아는 만큼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그는 가슴을 쭉 편 채 감독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 어깨 각도 좀 좁히지 그러냐, 꼬맹이?
 ‘하하, 제가 지금 그러게 생겼어요?’
 
 늘 그렇듯 빈정거리는 유령의 말에 히죽 웃는 이령이었다.
 그래도 그들의 만면에는 똑같이 웃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똑똑―
 
 “감독님, 저 왔습니다.”
 
 이령은 금방 감독실에 도착했고, 이내 문을 노크하면서 말했다.
 
 ―오, 들어와.
 
 그에 대한 대답은 금방 들려왔다.
 감독의 목소리로, 굉장히 밝았다.
 끼이익―
 
 “실례합니다······.”
 
 이령은 감독의 허가에 방으로 들어갔다.
 비록 싱글에이라고 해도 최소한 필요한 것들은 다 갖춰진 장소였다.
 감독은 그 안에서 책상에 앉아 있었다.
 
 “어서 와, 레이. 기다리고 있었어.”
 
 감독은 이령을 웃으면서 맞이했다.
 이령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말없이 고개를 숙이기만 했다.
 감독의 말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당연히 감독은 기쁜 소식이니만큼 거기에서 더 이상 뜸 들이지 않았다.
 
 “축하해, 레이. 내일부터 다시 더블에이로 가도 돼.”
 
 감독은 이령의 어깨를 두드려 주면서 말했다.
 고생 끝에 결과물을 쟁취한 상대를 보는 그의 시선은 한없이 흐뭇했다.
 
 “··· 감사합니다, 감독님.”
 ‘고마워요, 어르신.’
 
 도중에 잠깐 좌절했던 만큼 남다른 감정을 느끼는 이령이었다.
 그는 그러다가도 감독을 향해 고마움을 나타냈고, 그건 유령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혼자서는 결코 쉽지 않았을 터이니 당연한 것이다.
 유령의 도움이 컸다.
 
 “우리가 다시 보는 일은 없으면 좋겠어.”
 “하하···.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거예요.”
 
 감독과 이령은 서로 익살스러운 농담을 주고받았고, 그것은 곧 둘의 마지막 대화로 남게 되었다.
 이령은 조용히 유령과 함께 감독실을 나왔다.
 
 ―축하한다, 꼬맹이.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라는 거 알지?
 
 금방 이령을 향해 당부하듯 말을 붙이는 유령이었다.
 괜히 승격에 신이 나서 그가 해이해지지 않기를 바라서였다.
 
 ‘물론이죠. 어디까지나 시작일 뿐이니까···. 아직 갈 길이 멀어요. 더블에이부터가 진짜라고 봐야 하잖아요.’
 
 이령이 말했다.
 그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전의를 다지고 있었다.
 
 ―흠···. 꼬맹이, 혹시 슬슬 말해 줄 수 있냐? 네가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지······.
 
 거기에는 유령이 슬그머니 말을 붙였다.
 그렇다.
 사실 유령은 돈독한 파트너라는 별명이 무색하게도 이령이 왜 이렇게 메이저리그를 목표로 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는 간단하게 말해서 독종이었다.
 외모만 놓고 보면 순박했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는 소리를 내는 경우가 없었으며 의지 역시 대단했다.
 말 그대로 모든 게 야구에 맞춰져 있었다.
 보통 이 정도 되면 현실에 좌절하여 한 번 정도는 국내 복귀를 검토하거나 할 수도 있었지만 이령은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실로 엄청난 집념을 보여, 메이저리그 입성에 아예 목숨까지 건 느낌이었다.
 애석하게도 유령은 이령이 그러는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물론 지도하는 과정에서 너무 궁금한 나머지 몇 번 묻기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이령이 회피하곤 했다.
 지금은 그토록 복귀하길 바라던 더블에이에 승격한 만큼 이제는 말해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물어본 것이었다.
 허나 이건 유령의 헛된 기대에 그치고 말았다.
 
 ‘죄송해요, 어르신. 아직은 좀···. 언젠가는 꼭 말해 드릴게요.’
 
 이령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는 면목이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 본인이 밝히길 원치 않는다면 그걸 계속 닦달하는 건 아무래도 잔인한 행동이었다.
 
 ―그래, 그럼 그래라. 아무튼 얼른 돌아가자. 거기도 혹시 여기처럼 머냐?
 ‘음···. 만만치 않은 거리예요. 솔직히 가깝다고는 말할 수가 없어요.’
 ―확실히 땅이 너무 넓어도 문제구만~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역시 돈독한 사이를 보여 주는 이령과 유령이었다.
 그들은 서로 킬킬거리면서 숙소로 향했다.
 
 # 5화
 
 고즈넉한 새벽녘의 거리.
 해가 막 뜬 시간이라 아직 어두운 감이 없지 않았다.
 그곳을 지금 홀로 겁도 없이 돌아다니는 존재가 있었다.
 
 ―흐음,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나은 느낌이란 말이야. 여기는 미세먼지가 없어 공기도 맑으니까.
 
 그는 바로 이령에게 달라붙은 유령이었다.
 이건 그에게 있어 일종의 일과였다.
 어디까지나 유령이니만큼 파트너인 이령과 달리 음식을 먹을 필요도, 잠을 잘 필요도 없는 것이다.
 허나 유일한 파트너인 이령이 잠을 자기 시작하면 마땅히 할 게 없는 만큼 그때는 주로 주변을 돌아다니며 산책하곤 했다.
 영체에 불과한지라 물건 하나도 마음대로 만질 수가 없었으니 무료할 따름인 것이다.
 그래도 밖으로 나오는 게 훨씬 나았다.
 게다가 주어진 시간이 제법 되어서 느긋하게 즐길 수 있었다.
 사실 미국에서 늦은 시간에 이런 식으로 돌아다니는 건 매우 위험했다.
 한국과 달리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인 총기를 합법적으로 소지할 수 있지 않던가.
 실제로 가끔 발포하는 소리(!)가 나기도 하여, 밤에 나오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허나 유령은 거기에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만큼 안심하고 돌아다니곤 했다.
 오히려 자신을 알아보고 총을 쏴 주면 더 반가우리라.
 그건 이령 외에도 말을 섞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되었으니 말이다.
 
 ―엇차, 슬슬 돌아가는 게 좋겠는데······.
 
 해가 더 밝아지는 걸 보며 중얼거리는 유령이었다.
 그렇게 그는 이령이 머무르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는데, 그 과정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뚜벅뚜벅―
 근처를 지나가는 어느 여성의 모습을 말이다.
 한국인 여성으로, 전형적인 늘씬한 미녀였다.
 드물게도 여성치고 키가 굉장히 컸다. 최소 170cm 이상은 될 듯했다.
 근처에 한국인이 은근히 많이 머무르고 있어서 사실 크게 이상한 부분은 아니었다.
 
 ―······.
 
 그러나 유령의 반응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그녀로부터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한 것이다.
 딱히 그 뒤를 쫓아간 건 아니었고, 그저 여성이 점점 멀어져서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유령은 그러다가 퍼뜩 정신 차릴 수 있었다.
 
 ‘어··· 여기 계셨네요, 어르신.’
 
 자신의 유일한 말동무 상대인 이령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아침 운동의 일환으로 산책을 나왔다가 때마침 유령을 발견한 상태였다.
 
 ―아··· 뭐야, 꼬맹이.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냐?
 
 당황은 아주 잠시에 불과했다.
 유령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금방 의연한 표정으로 이령을 향해 물었다.
 
 ‘지금은 부지런히 움직여야죠. 겨우 복귀했는데···. 데이터 분석하고 있었어요, 흐아암······.’
 
 이령은 유령의 물음에 크게 하품을 하면서 대답했다.
 싱글에이에서의 멋진 활약으로 더블에이 승격에 성공한 이령이었으나, 감독실에서 나온 직후에 유령과 한 말처럼 그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다음 단계인 트리플에이··· 그리고 대망의 메이저리그 무대가 아니던가.
 고작 더블에이 좀 올라왔다고 해서 현실에 안주하여 느슨해지는 건 어리석은 것이다.
 데이터 분석은 이령의 주요 일과 중 하나였다.
 내용 자체는 간단했다.
 같은 리그 소속 선수들의 각종 기록과 동영상 등을 보며 분석하는 것이었다.
 자고로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이런 작업은 정말 큰 도움이 되는 중이었다.
 싱글에이까지 추락한 이령이 다시 더블에이에 복귀할 수 있게 해 준 또 다른 원동력이었다.
 더욱이 지금은 막 더블에이에 복귀한 터라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만 하는 시기였다.
 여담이지만 이령은 더블에이에 올라오고 나서 크게 안도했다.
 주식인 빵과 땅콩버터,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허름한 숙소는 여전했지만 로비에 공용 컴퓨터가 떡하니 놓여 있었던 것이다.
 싱글에이 숙소는 시설도 시설이지만 컴퓨터 같은 건 꿈도 못 꿀 일이라 스마트폰으로 여기저기서 간신히 잡히는 와이파이를 통해(···) 데이터 분석을 말 그대로 눈물겹게 했었다.
 다행히 더블에이부터는 그 수고를 덜게 되었다.
 뭐, 아무래도 공용이니만큼 오래 붙들고 있는 건 무리였지만 그런 건 늦은 밤이나 지금처럼 새벽엔 깨어 있는 사람이 드문 시간에 하면 되었다.
 지금은 필요한 작업은 우선적으로 마쳤다고 판단, 잠 좀 깰 겸 산책 겸 유령을 찾을 겸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다행히 오늘 경기는 원정이 아닌 홈이라서 시간에 다소 여유가 있었다.
 한국과 달리 훈련도 거의 자율적이었고 말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 법이지. 아주 좋은 자세야.
 
 유령은 이령의 자세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들은 그렇게 다시 숙소로 향했다.
 더블에이 복귀에 성공하고 나서 첫 경기를 코앞에 둬서 그런 것일까?
 둘 다 꽤나 들뜬 모습이었다.
 
 ***
 
 이령의 마이너리그 더블에이 복귀는 순조로웠다.
 예전에 잠시 뛰었던 만큼 구면인 이들이 있어서 환영을 받은 것이다.
 물론 그사이에도 감독을 비롯하여 구성원의 변화가 꽤 생긴 터라 초면인 이들도 있었다.
 어쨌든 그들은 모두 모여서 곧바로 몸을 푼 다음 경기에 들어갔다.
 이령의 영광스러운 더블에이 복귀전의 첫 스타트는 바로······.
 
 ―쩝, 예상은 했지만 역시 이런 신세인가······.
 
 이러한 유령의 말마따나 벤치 대기였다.
 이령은 엄밀히 말하면 백업에 불과했다.
 싱글에이를 말 그대로 폭격하여 승격했다고는 하지만 더블에이는 그보다 엄연히 한 단계 위의 리그가 아니던가.
 또한 이령이 내려간 사이에 이미 더블에이에서 주전을 굳힌 3루수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주전들이 모든 자리를 꿰찬 상태였다.
 이제부터는 운이 좀 따라 줄 필요가 있었다.
 그 선수가 늘 그 자리에 있으라는 법은 없었다.
 변수는 다음 단계인 트리플에이 승격을 포함하여 늘 있기 마련이었다.
 지금 이령이 해야 하는 일은 언젠가 찾아올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철저하게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이령은 지금 마냥 손을 놓고 있지 않았다.
 슥슥―
 
 ‘저 투수는 손장난을 제법 잘 치네. 디셉션도 훌륭하고, 익스텐션 역시 활용을 잘해. 그 외에 달리 눈에 띄는 점은······.’
 
 이령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대비하여 벤치에서 열심히 데이터 분석에 집중하고 있었다.
 숙소에서 컴퓨터로 할 때하고는 확연하게 달랐다.
 해당 선수들을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것과 동영상으로 보는 것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덕아웃은 전자기기의 반입이 금지되어 있어서 손으로 직접 필기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러다 손 다치겠어, 꼬맹이. 쉬엄쉬엄해.
 
 이령의 데이터 분석 작업은 파트너인 유령조차도 학을 뗄 정도였다.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너무 무리해서 몸이라도 상하면 본말전도였으니 어느 정도는 조절을 해 주는 게 맞는 것이다.
 
 ‘괜찮아요. 저도 전부 생각하고서 하는 거니까요. 조심하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어르신.’
 
 매우 신중한 목소리였다.
 슥슥―
 이령은 대답을 하면서도 두 눈이 그라운드에 고정되어 있었고, 수첩에 필기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어른 다 됐구나, 꼬맹이. 보통은 이렇게 찬밥 취급당하면 불평하기 마련인데······.
 
 유령은 이령의 그 모습에 먹먹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기분 좋게 승격했는데 첫 경기가 백업에 벤치 대기라면 기분이 좋을 리가 만무했고, 투덜거려도 이해할 수 있건만 이령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지 않던가.
 오히려 거기에 곧바로 수긍하며 공부하는 자세까지 보여 주고 있었다.
 이러니 지도자인 유령의 입장에서는 대견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큭큭, 이게 당연한 거니까요.’
 
 뿐만이 아니라 여유로운 모습으로 웃기까지 하는 이령이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전에 더블에이에 있을 때 급격하게 부진했던 게 조금 아쉬워요. 그 기록을 보면 누구라도 고개를 갸웃하게 될 테니까요. 더군다나 지금은 주전 3루수가 떡하니 있고······.’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는, 놀라우리만치 침착한 목소리였다.
 
 ‘뭐, 간단하게 말하면 이거죠···. 제가 감독이라면 저 기용 안 해요.’
 ―푸하하, 네가 무슨 BK냐?
 
 결국 이령의 그 대화에는 유령 역시 동참했다.
 둘은 늘 그렇듯 킬킬거리며 경기에 시선을 고정했다.
 퍼억―
 
 ―아웃!
 ‘히야···. 그나저나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문득 감탄사와 함께 중얼거리는 이령이었다.
 
 ―그래. 조금··· 아니, 많이 까다로운 상대야. 동작에 군더더기가 전혀 없어.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속도도 빠르고, 공격력도 괜찮아. 심지어 장타력까지 갖추고 있고, 너처럼 나이까지 어리니······.
 
 유령은 이령의 말에 공감을 나타냈다.
 그들이 지금 말하는 건 현재 최대의 경쟁상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속 팀의 주전 3루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를 제치고 주전 자리를 굳혀야 더 많은 게임에 나갈 수 있었고, 그게 바로 어필로 이어질 터였으며 그래야 다음 단계인 트리플에이로 올라갈 수 있었다.
 웬만하면 금방 넘어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실력이 생각 이상이었다.
 역시 세상의 모든 유망주들이 모이는 마이너리그라는 느낌이었다.
 
 ‘··· 저하고 비교하면 어때요?’
 
 문득 유령을 향해 묻는 이령이었다.
 지나가는 듯한 가벼운 어조였지만 그 속내는 달랐다.
 
 ―음···.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내 기준으로는 저쪽이 조금 더 위야. 전체적으로는 엇비슷하지만 힘에서 너보다 확실히 앞선다고 보거든.
 
 그만큼 유령은 솔직하게 대답했고, 거기에는 이령 또한 금방 대답했다.
 
 ‘후우···. 더 노력해야겠네요.’
 
 그는 더욱 전의를 다졌다.
 실망한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유령에게서 사탕발림을 바라지 않은 까닭이었다.
 사람을 평가하는 데에 냉정한 잣대만큼 정확한 건 없는 것이다.
 
 ―우선 그렇다고 해서 너를 벤치에 계속 썩히지는 않을 거다. 싱글에이 감독의 평가는 이미 봤을 거고, 네 나이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완전히 깡패니까 우선순위는 앞에 있겠지. 내가 보기에 백업 1순위는 무조건 너야. 혹시 이따가 경기 후반에 투입되거든 눈도장 제대로 찍을 수 있게 미리 준비를······.
 
 유령이 이런 식으로 여러 조언을 해 주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타임!
 
 그라운드에 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지금 둘의 주요 화젯거리로 등극한 3루수가 돌연 트레이너를 호출했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부상인가?
 ‘글쎄요. 조금 전에 수비할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그 상황을 보며 중얼거리는 유령과 이령이었는데, 그들은 그 과정에서 보게 되었다.
 까딱까딱―
 그건 바로 코치의 이령을 향한 손짓이었다.
 경기에 출전할 수 있도록 불펜에서 미리 몸을 풀라는 뜻이었다.
 
 # 6화
 
 주전 3루수가 갑자기 트레이너를 부른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부상 때문이었다.
 포구 과정에서 불규칙 바운드가 일어나는 바람에 타구가 예상보다 더 크게 튀어 올라 맨손에 직격하고 말았다.
 다행히 자연스럽게 후속 동작으로 이어져서 아웃으로 연결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꽤 강하게 맞아서 계속 뛰는 건 무리였다.
 그렇기에 이령은 코치의 호출을 받았다.
 백업 3루수로 벤치에 대기시켰던 만큼, 지금이야말로 투입할 때인 것이다.
 
 ―하핫,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왔네. 설마 바로 주전 대신 뛰게 될 줄이야.
 
 유령은 지금의 상황에 크게 만족감을 느꼈다.
 물론 부상은 선수를 막론하고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그게 곧 자신의 파트너인 이령에게 기회로 다가오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기쁜 감정이 조금 더 앞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휙―
 이령은 유령의 목소리에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는 불펜에서 몸을 푸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이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에 주전 3루수가 수비 이닝의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처리한 터라 현재 이령의 소속 팀은 공격에 들어선 상태였다.
 다행히 3루수의 타격은 다시 돌아올 때까지 타순에 약간 여유가 있었고, 상대 투수가 오늘 제법 잘 던지고 있어서 몸을 푸는 데에만 집중하면 될 듯했다.
 이번 공격이 끝나면 바로 수비에 들어가야 했으니 지금은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닌 것이다.
 
 ―몸이 너무 굳었어, 꼬맹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움직여!
 
 그렇기에 거기에는 유령 역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지도자의 입장에서 열심히 이령을 조련시켰다.
 애석하게도 그 시간은 극히 짧았다.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소속 팀의 공격이 허무하게 삼자범퇴로 끝이 나버린 것이다.
 단 한 명도 출루를 해내지 못한 게 아쉬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다고 해서 우는 소리를 낼 때가 아니었다.
 오길 바랐던 천재일우의 기회가 정말로 온 만큼, 그럴 시간에 최선을 다할 때였다.
 
 “잘 부탁해, 레이!”
 “같이 잘해 보자!”
 
 다행히 내야에는 구면인 선수들이 있었다.
 
 “아···! 잘 부탁해요!”
 
 이령은 그들을 향해 모자를 벗어 보이면서 인사를 건네고는 주 포지션인 3루 근처로 이동, 자세를 낮춘 채 두 눈을 부릅떴다.
 수비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 긴장되냐?
 
 유령은 그를 잠시 응시하다가 툭 내뱉었다.
 평소와 달리 거기에 질 나쁜 농담은 일부러 섞지 않았다.
 대답이 어느 정도 예상되어서였다.
 
 ‘하하···.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죠. 워낙 갑작스럽다 보니······.’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리는 이령이었다.
 미소가 나타나는 걸 보면 알 수 있듯, 완전히 여유를 잃은 상태는 아니었다.
 
 ―큭큭, 사람 일이라는 게 다 그렇지. 쉽게 예상할 수 있으면 고생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거야···. 침착하게만 해라. 네 실력이 부족한 건 절대로 아니니까.
 
 유령은 이령을 향해 진중한 목소리로 조언을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그의 옆에서 마찬가지로 경기에 집중했다.
 그 모습은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연장자라는 느낌이었다.
 
 ―플레이 볼!
 
 마침내 수비가 시작되었다.
 우선 이령은 그 분위기를 그냥 가만히 즐겨도 괜찮았다.
 따악―
 
 ―와아아아아~!
 
 타자가 타격을 하기는 했는데 그 방향이 이령의 수비 범위라고 할 수 있는 삼유간이 아니라 그 반대인 1, 2루 사이를 뚫고 지나간 것이다.
 초구부터 힘차게 당긴 선택이 주효했다.
 
 ‘후우···.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타구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네요.’
 
 이령은 그 광경에 작게 숨을 토해 내며 중얼거렸다.
 벤치에서도 주의 깊게 봤지만 그라운드에서 보니까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여기가 싱글에이와 같다고 생각하면 명백한 오산이지···. 여기 있는 애들 모두 싱글에이에서 최소한 너 이상은 했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꼬맹이. 메이저리그 구단의 특급 유망주들도 대부분 여기서부터 시작하잖아. 더블에이부터가 마이너리그의 진짜 시작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이령을 향해 진지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유령이었다.
 거의 늘 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읽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은 다소 걱정이 묻어나는 듯했다.
 물론 뭘 걱정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겁먹을 거 없어, 꼬맹이. 예전에도 더블에이에서 잘했었다며. 지금은 그때보다 실력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 분명히 잘할 수 있을 거야. 긴장만 하지 마.
 
 이어서 유령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귀여운 강아지 모습이라 다소 우습긴 했으나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의지될 수밖에 없었다.
 
 ‘··· 네, 어르신. 물론이죠.’
 
 이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하고는 다시 한번 수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사 1루의 상황이 이어졌는데, 여기에는 다소 허무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타악―
 
 ―뛰어, 뛰어!
 
 투수가 그만 폭투를 범한 것이다.
 변화구를 던진다는 게 그만 너무 일찍 떨어지는 바람에 크게 튕겨서 포수 입장에서는 만약에 블로킹을 해내면 기적인 수준이었다.
 허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공이 뒤로 크게 빠진 것이다.
 그 덕분에 1루 주자는 여유 있게 2루에 무혈 입성할 수 있었다.
 
 ―뭐지···? 설마 오목 두는 건 아니겠지?
 ‘에이, 손에서 공이 빠진 거겠죠.’
 
 유령은 투수의 모습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핀잔을 놓았고, 이령은 그의 말에 적당히 대답하다가도 2루 쪽을 주시했다.
 지금 거기에 있는 주자로부터 신경 쓰이는 움직임을 포착한 까닭이었다.
 
 ‘흠, 리드폭이 조금 큰 것 같은데······.’
 
 그건 바로 주자의 리드폭이었다.
 2루에서 슬금슬금 움직이는 것까지는 주자들의 기본 소양이었지만 그 길이가 매우 컸다.
 명백하게 다른 의도를 느낄 수 있는 모습이었다.
 
 ―어르신은 어떻게 보세요?
 
 따라서 이령은 유령을 향해 자문을 구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의 경기 흐름을 읽는 눈은 정확하다는 판단이었다.
 거기에는 유령이 금방 대답했다.
 
 ―착안점이 좋구나, 꼬맹이···. 대비해서 나쁠 건 없다고 본다.
 
 이렇게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이령의 날카로운 눈썰미를 확인할 수 있게 되어서 그런지 만족감이 서려 있었다.
 
 ‘네, 어르신.’
 
 스윽―
 이령은 유령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내야를 향해 슬그머니 사인을 보냈다.
 그런 다음 3루 주변에서 수비에 집중했다.
 곧 투수가 초구를 던졌는데, 거기에는 약간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지금이야, 꼬맹이!
 ‘네!’
 
 타탓―
 이령이 그와 동시에 번개같이 3루에 커버를 들어갔고,
 퍼억―
 
 ―3루!
 
 포수는 투수의 공을 받자마자 3루로 냅다 던졌다.
 그들이 지금 이와 같은 작전을 펼친 이유는 간단했다.
 2루 주자로부터 도루 낌새를 알아차린 것이다.
 리드폭이 길다는 건 3루를 노리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던가.
 마이너리그는 보통 승패보다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과욕을 부린 게 분명했다.
 이령이 유령을 향해 의견을 물은 게 바로 이거였다.
 그리고 그 역시 동감을 나타내자 내야에 사인을 보내 도루에 대비하는 걸 추천했다.
 다행히 투수를 포함한 모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투수는 아예 피치아웃을 하듯 초구를 크게 빼 주었다.
 그래야 타자가 함부로 건드릴 수 없었고, 포수가 송구하기에도 편한 것이다.
 투욱―
 
 ―아웃!
 
 다행히 그 노림수가 훌륭히 적중하여, 무사 2루의 위기는 1사에 주자가 없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3루에서 이령에게 잡힌 2루 주자는 설마 자신의 생각이 읽힐 줄은 몰랐던 것인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최고였어, 레이!”
 “그걸 읽어 낼 줄이야!”
 
 이령의 같은 팀원들은 엄지를 치켜세우기 바빴다.
 그 미세한 틈을 놓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것이다.
 
 “아니에요! 전부 여러분 덕분이죠!”
 
 이령은 그 공을 모두에게 돌렸다.
 묵살할 수도 있는데 다들 동의하지 않았던가.
 특히 투수가 볼카운트 하나를 냅다 버리는 것과 다를 게 없건만 피치아웃처럼 해 준 게 컸다.
 잡힌 2루 주자는 주루 스피드가 꽤 빨랐던 만큼, 그게 아니었다면 말 그대로 접전이 펼쳐졌을 듯했다.
 타자가 초구부터 건드려서 진루타 또는 런앤히트로 이어질 수도 있었고 말이다.
 
 ―큭큭, 이거 참···. 누가 주전이고 누가 백업인지 알 수가 없구만.
 
 그 광경에 킬킬거리는 유령이었다.
 백업으로 부랴부랴 들어온 주제에 떡하니 중심을 차지하고 있지 않던가.
 긴장은커녕, 바라던 것 이상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이령이었다.
 
 ‘조만간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그 흐름에는 당사자인 이령 또한 기꺼이 탑승했다.
 그는 담담한 목소리로 포부를 밝히고는 수비에 집중했다.
 멋진 작전의 중심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방심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실점 위기를 벗어나서 그런 것일까?
 퍼억―
 
 ―아웃!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이다음은 의외로 싱겁게 끝이 났다.
 두 번째 타자는 높게 오는 걸 잘못 건드려서 2루수 위로 떨어지는 내야 플라이를 쳤고, 세 번째 타자는 루킹 삼진을 당했다.
 이령의 더블에이 복귀전 첫 수비는 아주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봐도 될 듯했다.
 비록 수비라고는 해도 복귀전을 나름 성공적으로 마친 만큼 편안해진 느낌이었다.
 
 ―공격에서도 멋진 거 하나 보여 줘, 꼬맹이. 가운데로 큰 거 하나 넘기는 거야. 그런 다음 빠던 한번 간지 작살나게 딱 해 주자고.
 ‘저 그러면 다음 타석 무조건 빈볼 맞아요, 영감님······.’
 
 그렇기에 이령은 유령과 함께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타격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타순이 올 가능성이 높아서였다.
 헌데 거기에는 또 이변이 발생했다.
 
 ―···! 투수를 바꾸는군.
 
 유령의 이러한 말마따나 상대 팀이 투수를 교체한 것이다.
 오른손의 사이드암이었다.
 
 ‘윽······.’
 
 이령은 그 투수 교체에 살짝 주춤했다.
 물론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 투수는 아직 제대로 못 뜯어봤는데······.’
 
 데이터 분석을 못 한 투수인 까닭이었다.
 오늘 선발을 포함해서 중요한 선수들 위주로 봤었는데 지금 교체된 투수는 공교롭게도 거기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였다.
 주전 선수의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일찍 출전하게 된 게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 느낌이었다.
 허나 그렇다 해도 믿을 구석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 말만 해, 꼬맹이. 나는 늘 네 옆에 있고, 늘 네 편이다.
 
 자신의 곁에는 유령이 있지 않던가.
 그의 뛰어난 눈썰미와 감정을 색깔로 읽어내는 능력을 빌리면··· 전혀 분석하지 못한 선수라고 해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흠······.’
 
 그렇기에 이령은 금방 뜻을 정하지 않았다.
 그는 연습 피칭에 집중하고 있는 새로운 상대 투수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령이 뜻을 정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조금 어렵다고 해서 냅다 어리광을 부릴 수는 없죠···. 그렇지 않나요, 어르신?’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이령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건 지금의 대답을 들은 유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 7화
 
 이령의 생각은 기존과 거의 동일했다.
 아직 분석되지 않은 선수라고 해도 웬만하면 자신의 힘으로 부딪쳐 보겠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시간은 있었다.
 선두 타자로 나오는 게 아닌 것이다.
 세 번째 타순이라 앞의 타자들이 줄줄이 범타로 물러나도 나와야 하는 건 아쉬웠지만, 그래도 선두 타자보다는 나았다.
 허나 여기에는 유령의 조건이 있었다.
 
 ―··· 명심해라, 꼬맹이. 내 허용 범위는 2스트까지야. 그때부터는 네가 싫다고 해도 무조건 끼어들 거다.
 
 이처럼 그는 상황에 따라 개입을 예고한 상태였다.
 모처럼 더블에이에 올라온 첫 경기의 첫 타석이니만큼 마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판단이었다.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이번에 감독과 코치한테 인상적인 면모를 보여 줘야만 했다.
 물론 타자는 다들 아는 것처럼 열 번의 기회에서 세 번만 성공하면 되는 법이었다.
 평소에도 그래서 웬만하면 이령 스스로 해결하도록 두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어디까지나 예외였다.
 이령은 지금 어디까지나 부상으로 빠진 주전 대신에 들어오지 않았던가.
 촉망받는 유망주라 1순위로 기회를 부여받았을 뿐, 별로라고 판단되면 즉시 뒤로 밀려날 가능성이 농후했다.
 마이너리그는 선수 스스로의 성장을 도모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넘치는 게 선수인데 일개 백업에 불과한 이령을 마냥 기다려 줄 리가 만무한 것이다.
 다른 특급 유망주들처럼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좀 봐 달라고 따로 부탁을 한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 네, 어르신. 알고 있어요.’
 
 이령은 유령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스스로의 위치를 잘 아는 만큼 마냥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오히려 유령에게 감사를 표현해도 모자랐다.
 냅다 끼어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터인데 기다려 주는 것이니 말이다.
 퍼억―
 
 ‘여기 애들이 거의 다 그렇지만 공이 참 좋단 말이야······.’
 
 덕아웃에서 새로 올라온 투수의 피칭을 보며 침착하게 생각에 잠기는 이령이었다.
 그의 두 눈은 이채를 띠고 있었다.
 초면인 투수를 살피는 만큼 흥미로운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반드시 어딘가에 약점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저 나이에 아직도 더블에이에 있는 걸 테니까.’
 
 동시에 이령은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지금 마운드에 올라온 투수는 28살의 나이였다.
 한국에서 보면 아직 한창인 나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마이너리그에서는 이미 글렀다고 봐도 무방했다.
 세상에서 여기만큼 나이가 깡패인 무대는 없었다.
 하다못해 트리플에이 소속이라면 모르겠으나··· 그 아래인 더블에이에 있다는 건, 역시 완벽한 건 아니라는 사실의 방증이었다.
 퍼억―
 
 ‘공은 빠르지만 볼 끝이 좀 가벼운 느낌. 제구는 그렇게까지 좋은 것 같지 않은데? 지금 버릇을 간파하는 건 역시 무리겠군······.’
 
 연습 피칭은 끽해야 공 몇 개를 던지는 게 끝이라서 상세한 데이터 분석은 무리였다.
 이령은 그 사실에 유감을 금치 못했지만, 그건 아주 잠시에 불과했다.
 지금은 그런 부분에 좌절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손에 있는 것들로 최대한 싸워야만 했다.
 
 ―플레이 볼!
 
 투수의 연습 피칭은 금방 끝이 났다.
 그렇게 이령의 소속팀은 공격을 시작했다.
 
 ―뭔가 좀 알겠냐, 꼬맹이?
 
 이령을 향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 유령이었다.
 그는 보호자와 다를 게 없는 만큼 당연한 것이다.
 
 ‘음···. 대충은요. 조금만 더 보면 알 것 같아요. 제발 앞의 타자들이 승부를 길게 끌고 갔으면······.’
 
 이령은 유령의 물음에 대답하다가도 바람을 나타냈는데, 그의 바람은 황당하게도 정반대로 이루어졌다.
 따악―
 
 ―얼씨구?
 ―아웃!
 
 따악―
 
 ―허허······.
 ―아웃!
 
 유령의 황당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듯 앞의 타자 둘이 서로 냅다 초구를 치고 범타로 물러난 것이다.
 둘 다 자기 나름대로 초구부터 공격적으로 올 걸 예상하고 노림수를 가진 듯했는데, 각각 투수 앞 땅볼과 2루수 앞 땅볼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고 말았다.
 
 ―공 2개로 2아웃인가···. 최소한 공 3개로 3아웃은 주지 말자, 꼬맹이.
 ‘끄응···. 말이 씨가 되는 법이라고요, 영감님.’
 
 유령의 독려 아닌 독려에 표정을 구긴 채 우는 소리를 내는 이령이었다.
 그는 그러면서도 움직였다.
 물론 그 방향은 이제 자신이 타격할 차례이니만큼 타석이었다.
 
 ‘우선 공 하나는 그냥 봐야겠지. 속구 위주로 와주면 좋겠는데. 속구에는 나름 자신이 있으니···. 그러고 보니 초면인 건 저쪽도 마찬가지였구나. 과연 어떤 볼배합으로 덤빌까?’
 
 이령은 여러 생각에 잠긴 채 타격을 준비, 곧 배트를 들고 타석에 자리했다.
 그의 타격폼은 의외로 평범했다.
 그저 양다리를 적당하게 벌린 채 배트를 쥐고 있는 게 전부였다.
 물론 이령 본인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폼이었다.
 실제로 이 평범한 타격폼으로 싱글에이를 폭격하고 왔고, 고교 시절에는 만나는 지도자들마다 극찬을 받았다.
 자고로 폼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게 중요한 것이다.
 이건 또 다른 지도자인 유령하고도 완벽하게 일치하는 부분이었다.
 아무튼 이령은 그렇게 초구를 기다렸는데, 초구는 그에게 타격 의사가 있었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퍼억―
 
 ―볼!
 
 그만큼 엄청나게 멀리 빠진 것이다.
 공이 손에서 빠진 듯했다.
 의외로 초구는 변화구였다.
 
 ‘흠, 이쪽은 혹시 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나······?’
 
 이령은 그 광경에 속으로 생각했다.
 상대 배터리가 초구로 변화구를 선택한 부분이 다소 의외인 것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허나 그것만으로 속단을 내리는 건 금물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이령은 신중하게 2구째를 기다렸다.
 
 ‘존을 살짝 좁히고, 들어오면 바로 치는 거야.’
 
 이번에는 나름 타격 의사도 있었는데, 이령은 2구째를 건드리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피하기에 급급했다.
 
 ―···! 조심해, 꼬맹이!
 
 퍼억―
 2구째가 몸쪽으로 깊게 들어온 것이다.
 다행히 이령이 맞는 일은 없었다.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뺀 게 주효했다.
 
 ―볼!
 
 물론 2구째는 코스가 코스이니만큼 볼로 판정되었다.
 2구째는 151km의 속구였다.
 
 ‘··· 혹시 속구 컨트롤이 되지 않는 건가?’
 
 이령은 지금의 상황에 눈을 빛냈다.
 앞선 타자들이 쳤던 구종과 지금 자신이 타석에서 직접 보고 나니 어느 정도 상대 투수에 대해 가닥을 잡게 된 것이다.
 앞서 범타로 물러났던 타자들은 전부 변화구를 건드렸다.
 게다가 이령도 초구에는 변화구를 봤었고, 2구째는 속구인데 크게 빠졌다.
 ··· 제구에서 애를 먹는 게 분명했다.
 그중에서도 속구인 포심 패스트볼이 특히 말썽인 느낌이었다.
 
 ‘내 생각이 정확하다면 이번에 들어오는 공은······.’
 
 이령은 신중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는 이번에도 그냥 하나를 더 지켜볼 심산이었다.
 그 판단은 정확했다.
 휙―
 
 ‘···역시 변화구!’
 
 상대 배터리가 예상대로 3구째에 변화구를 선택한 것이다.
 말썽인 제구와 달리 디셉션은 은근히 뛰어나서 구종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꺾이는 각도를 보면 어렵지 않게 분간이 가능했다.
 헌데 여기에는 의외의 판정이 이어졌다.
 퍼억―
 
 ―볼!
 ‘어···? 이걸 볼로?’
 
 3구째는 나름 제구가 잘 되어 스트라이크존 모서리에 예리하게 걸친 느낌이었는데 심판이 볼로 판정한 것이다.
 던진 투수조차 순간 펄쩍 뛰면서 아쉬움을 표출했을 정도였다.
 이로써 카운트는 3―0이 되었다.
 상황만 놓고 보면 타자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령의 입장에서는 마냥 반길 수가 없었다.
 
 ―쯧, 이대로 걸어 나가는 건 별로 좋지 않은데······.
 
 작게 혀를 차는 유령의 이러한 말마따나 지금 이령에게 볼넷은 크게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게 치열한 접전으로 전개되는 풀카운트였다면 또 모르겠으나, 지금은 누가 봐도 투수의 제구 난조였다.
 첫 타석이니만큼 멋진 결과를 내고 싶은 이령의 입장에서는 결코 달가울 수가 없는 부분이었다.
 
 ‘윽···. 이런 상황은 좀······.’
 
 이령은 자기도 모르게 살짝 벤치의 눈치를 봤는데, 그는 거기에서 꽤나 의외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스윽―
 놀랍게도 감독이 이령의 시선을 예상했다는 것처럼 즉시 사인을 보낸 것이다.
 헌데 그건 웨이팅이 아니라 전부 너한테 맡기겠다는 뜻이었다.
 
 ―감독도 너한테 기회를 주는구나, 꼬맹이.
 ‘하하···. 그러게요.’
 
 유령과 이령은 감독의 그 모습에 각자 중얼거렸다.
 감독 역시 이령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2아웃에 주자도 없는, 작전이 별로 필요가 없었고 출루 역시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닌 상황이었으니 그냥 한번 기회를 주는 게 분명했다.
 뭐, 이에 대한 이령의 선택은 하나를 제외하면 없었다.
 
 ―큰 거 하나 날려 보자, 꼬맹이!
 ‘걱정 마세요, 어르신!’
 
 당연히 타격인 것이다.
 그런 만큼 이령은 배트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투지를 불태웠다.
 휙―
 이윽고 투수가 4구째를 던졌는데, 거기에는 다소 의외인 결과가 이어졌다.
 따악―
 이령이 과감하게도 쓰리볼 타격을 시도한 것이다.
 
 ―파울!
 
 애석하게도 그 결과물은 3루 방향의 평범한 파울이었다.
 타이밍이 살짝 빨랐다.
 
 ―큭큭, 안 쳤으면 볼인데······.
 ‘볼넷은 지금 의미가 없으니까요.’
 
 이령은 유령의 킬킬거리는 목소리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사실 4구째는 유령의 말마따나 또 존에서 빠지는 공이었다.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제 발로 걷어찼다.
 허나 이령은 그 부분을 전혀 아쉽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 스스로의 말마따나 볼넷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잊지 마라, 꼬맹이. 2스트야. 그때부터는 나도 무조건 끼어든다.
 
 동시에 유령은 경고를 잊지 않았다.
 이령은 그의 목소리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지금 저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는 안 봐도 뻔하지···. 결과물은 이제 나한테 달린 거야.’
 
 속으로 짧게 생각하며 타격에 집중했다.
 그런 그의 두 눈은 투수로부터 떨어질 줄을 몰랐다.
 휙―
 마침내 투수가 5구째를 던졌다.
 그와 동시에 이령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변화구를 제외하면 없어!’
 
 자신의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심지어 코스까지도 일치했다.
 부웅―
 이령은 거기에 맞춰 주저하지 않고 배트를 휘둘렀다.
 배트와 공이 정확하게 맞물렸다.
 따악―
 
 ―와아아아아아~!
 
 이령의 타구는 커다란 아치를 그리며 쭉쭉 중월을 향해 뻗어 나갔다.
 중견수는 그 공을 따라가다가 곧 포기했다.
 터엉―
 이령의 타구가 담장을 넘어간 것이다.
 놀랍게도 앞서 유령이 말했던 것처럼 가운데 담장을 훌쩍 넘기는 솔로 홈런이었다.
 
 ―하핫, 제법이야, 꼬맹이. 내가 나설 필요는 없었구나.
 ‘뭐, 어르신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저는 노인을 공경할 줄 알거든요~’
 
 유령과 함께 천천히 그라운드를 돌며 킬킬거리는 이령이었다.
 당당하게 홈런을 치고 그라운드를 도는 그의 모습은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첫 타석에서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쓰리볼 타격을 감행한 끝에 뽑아낸 홈런.
 이보다 더 나은 임팩트는 없으리라.
 
 # 8화
 
 수비에서는 상대 선수의 틈을 놓치지 않고 도루 시도를 읽어내 팀에 전파, 그걸 정확하게 잡아냈다.
 
 “눈썰미가 장난이 아니더라고.”
 “칼을 보는 느낌이었어.”
 
 공격에서는 쓰리볼 상황이니만큼 부담감이 없지 않았을 터인데 중월을 훌쩍 넘기는 솔로 홈런을 쳐 냈다.
 
 “걔는 백업이라고 볼 수가 없는 실력이야.”
 “전에 왜 싱글에이로 떨어졌던 거지?”
 
 여러모로 화려한 복귀전을 치른 이령이었다.
 당연히 이건 대성공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보다 더 나은 복귀전이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더군다나 이령은 주전 선수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급히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모습을 보였다.
 감독과 코치들에게 인상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여기에는 호재 아닌 호재가 있었다.
 현재 이령의 최대 경쟁상대라고 할 수 있는 주전 3루수 선수의 부상이 병원 검진 결과, 생각보다 심하다는 진단이 나온 것이다.
 새끼손가락 미세 골절 판정을 받아서 복귀에는 시간이 꽤 걸릴 듯했다.
 그 사이에 3루를 지킬 사람은··· 뭐, 감독이 공언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정해진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오늘의 경기는 끝이 났다.
 이령의 소속팀이 가뿐하게 승리를 거두었다.
 
 “MVP는 레이가 받는 게 맞아.”
 
 이번 경기의 MVP 또한 이령이었다.
 그는 비록 중반부터 급히 투입되었다고는 하지만 여러모로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치지 않았던가.
 게다가 홈런 뒤에 한 번 더 기회가 와서 타석에 섰는데, 그때 초구를 냅다 통타하여 삼유간을 깔끔하게 뚫는 안타까지 쳤었다.
 안정적인 수비와 결승타를 쳤으며 멀티히트까지 기록했다.
 이러니까 MVP를 받는 게 당연한 것이다.
 
 ―핫하, 오늘은 정말 잘했다, 꼬맹이. 네가 잘하니까 내가 다 기분이 좋더라.
 
 유령은 오늘의 경기에 만족감을 느꼈다.
 평소와 달리 순수하게 칭찬만 하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 이령은 오늘 정말 잘했다.
 게다가 사실상 주전 3루수의 역할을 곧바로 수행하게 된 만큼 오늘 같은 모습을 꾸준히 보여 주면 조만간 트리플에이로 승격하는 것도 꿈은 아닐 듯했다.
 
 ‘음, 확실히 오늘은 제가 생각해도 잘한 것 같아요.’
 
 이령은 유령의 칭찬에 모처럼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의 플레이는 매우 완벽했던 만큼 본인 스스로가 생각해도 만족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큭큭, 그나저나 빠던 좀 해 주지 그랬냐. 그때 하나 딱 해 줬으면 더 멋졌을 텐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킬킬거리며 중얼거리는 유령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 아찔한 순간이 잠깐 있었다.
 
 ‘하···.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영감님 때문에 꽤 위험했다니까요.’
 
 그렇기에 이령은 답답함을 토로하듯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중얼거렸다.
 사실 이령은 첫 타석에서 솔로 홈런을 쳤을 때 자기도 모르게 빠던··· 그러니까, 배트플립을 시도할 뻔했었다.
 유령에게서 들은 말을 순간 의식한 것이다.
 게다가 진짜로 중월을 훌쩍 넘기는 대형 홈런이 나왔고, 공이 배트의 중심에 제대로 맞아서 느껴지는 손맛 역시 엄청났다.
 그렇다 보니 정말로 배트를 던질 뻔했는데, 도중에 겨우 자제할 수 있었다.
 당시 상대 배터리의 상황을 고려하면 빠던을 했을 경우 다음 타석은 무조건 빈볼이었다.
 덕분에 이령은 진심으로 십년감수했다.
 그래서 화려하게 던질 뻔하던 배트를 겨우 멈춘 다음 다소곳하게 내려놓고 그라운드를 돌았었다.
 
 ―난 개인적으로 그게 좀 아쉽다. 빠던이 얼마나 멋진데···. 쩝, 그런 점은 KBO가 부러울 따름이야.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렇다면 여기 문화에 따르는 게 맞죠. 여기는 KBO가 아니니까요.’
 
 툴툴거리는 유령을 적당하게 달래 주는 이령이었다.
 그는 그러면서도 하던 식사에 집중했다.
 이령은 경기가 막 끝난 직후라 배가 좀 출출하여 숙소 근처에 나와 조금 일찍 식사를 하고 있었다.
 
 ―윽, 보기만 해도 토할 것 같다······.
 
 물론 그 메뉴는 질색하는 유령의 이러한 목소리를 보면 알 수 있듯 마이너리그의 특징으로 거의 굳어졌다고 할 수 있는 땅콩버터를 덕지덕지 바른 식빵이었다.
 통칭 눈물 젖은 빵으로, 솔직히 말하면 맛이 없는 건 아니었다.
 땅콩버터가 왜 맛이 없겠는가?
 문제는 메뉴가 달랑 그거 하나라는 점이었다.
 사람이 하나만 계속 먹으면 물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땅콩버터는 고칼로리라 허기를 때우는 데에 결코 나쁘지 않았고, 선수가 원하기만 하면 소속팀에서 얼마든지 공짜로 주는 메뉴라 지출이 아예 없어서 그렇게까지 나쁜 건 아니었다.
 
 ‘에이, 토가 뭐예요. 먹는 사람 앞에서······.’
 ―땅콩버터 색깔이 설사 같아······.
 ‘아, 좀! 할배!’
 
 중요한 경기를 끝낸 만큼 긴장감이 풀린 터라 늘 그렇듯 티격태격하는 이령과 유령이었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 레이!”
 
 갑자기 이와 같은 목소리가 뒤쪽으로부터 들려온 것이다.
 반색하는 느낌이 적지 않은 목소리였는데, 그건 이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이야, 슌스케. 그동안 잘 지냈어?”
 
 오래간만에 친구하고 다시 만난 것이다.
 지금 말을 건 사람은 같은 소속의 선수로, 카츠라기 슌스케라는 이름의 일본인이었다.
 슌스케는 이령과 비슷한 케이스였다.
 일본 고등학교 야구의 꽃이라고 불리는 고시엔에서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좋은 성적을 기록, 여러 구단들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고민 끝에 미국 무대로 직행하는 쪽을 선택했다.
 어린 시절부터 일본에서 야구를 배운 사람이라면 영웅과 다를 게 없는 노모 히데오를 동경한 결과였다.
 그렇게 슌스케는 미국으로 건너왔고, 같은 소속인 이령과 금방 친구가 되었다.
 서로 나이가 동갑인 데다가 처지가 비슷하다 보니 자연히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서로의 조국인 한국과 일본은 솔직히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었지만 그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둘 다 메이저리거가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안고 바다를 건너 미국에 온 처지가 아니던가.
 의기투합하게 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둘은 잠시 이별하게 되었다.
 꾸준히 괜찮은 성적을 내던 슌스케와 달리 이령은 갑자기 부진하는 면모를 보이는 바람에 싱글에이로 떨어진 까닭이었다.
 물론 지금은 이령이 더블에이 복귀에 성공한 만큼 해결된 문제였다.
 둘이 마음 편히 대화를 나누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이령은 어제 늦은 밤에 도착해서 그럴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예정된 경기를 위해 서로 연습하기 바빴고, 다 끝난 지금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럴 시간이 생겼다.
 
 “이야~ 언제 이렇게 일본어를 배운 거야? 너무 자연스러운데?”
 “너하고 다시 만날 때를 대비해서 열심히 배웠지. 다행히 잘 배운 모양이네.”
 “하하, 그렇게 말해 주니 기뻐!”
 
 여담이지만 슌스케는 이령과 재회했을 때 적잖게 당황했었다.
 서로 친구인 건 맞았지만 언어의 장벽 때문에 통역이 없으면 대화가 불가능했는데 이령이 아무렇지 않게 일본어를 구사한 까닭이었다.
 물론 그건 파트너인 유령의 도움을 받은 덕이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언어를 말할 줄 알았으니 슌스케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꽤나 반가운 재회였는데, 이령은 거기에서 잠깐 움찔하게 되었다.
 
 “··· 그 일은 잘 해결된 거야?”
 
 슌스케가 이처럼 민감한 주제를 언급한 탓이었다.
 자신도 알고 있는 것일까?
 그는 말을 던지긴 했지만 이령에게서 살짝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아··· 응. 이젠 괜찮아.”
 
 그렇기에 이령은 애써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의연한 느낌이 드는 모습이었다.
 슌스케가 금방 말했다.
 
 “다행이야, 레이. 걱정 많이 했었어···. 참, 더블에이 복귀 축하해. 앞으로는 서로 잘해서 트리플에이로 올라가고, 메이저리그까지 같이 가자.”
 
 순수한 목소리였다.
 실제로 슌스케는 활짝 웃으면서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그래야지···. 걱정 마. 그때처럼 또 흔들리는 일은 없을 테니까. 내 목표는 오히려 더 확고해졌거든.”
 
 이령은 슌스케와 악수를 나누면서 대답했다.
 
 ‘착한 녀석···. 궁금할 텐데······.’
 
 그와 동시에 속으로 생각했다.
 슌스케의 모습으로부터 일종의 배려를 느낀 것이다.
 부진도 부진이었지만 잠시 한국에 다녀올 정도라면 심각한 사안이라는 걸 알 텐데 하나도 묻지 않았다.
 당연히 궁금할 터인데 말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알아보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알아볼 수 있었겠지만, 슌스케가 그렇게 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만약에 그 일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면 지금처럼 계속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명백하게 불가능한 까닭이었다.
 처음 더블에이에서 만났을 때와 변함이 없는 이 모습은, 전혀 모르는 게 확실했다.
 
 “그나저나 오늘 진짜 엄청나더라, 레이. 하는 거 보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확실히 전보다 더 나아진 느낌이었어.”
 “하하,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야.”
 
 이령은 슌스케가 자신의 오늘 플레이를 칭찬하자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래도 절친한 친구답게 쑥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너 하는 거 보니까 나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더라···. 그런 의미에서 같이 어때? 마침 러닝 할 생각이었거든.”
 “좋지. 같이 뛰자. 그러면서 요즘 어땠는지 좀 들려줘.”
 
 그러다가도 이령은 슌스케의 요청을 금방 받아들였다.
 안 그래도 자신 역시 저녁에는 데이터 분석 작업에 앞서 가볍게 러닝 좀 해 줄 생각이었는데 같이하면 딱 좋은 것이다.
 혼자서 뛰면 심심했으니 말이다.
 
 “그럼 나 잠깐 숙소 가서 옷 좀 갈아입고 올게.”
 “어, 그래. 나도 그럼 잠깐 방에······.”
 
 ‘··· 어르신? 왜 그러세요?’
 
 러닝에 앞서 슌스케와 함께 숙소로 향하려던 이령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유령이 평소와 달리 따라오려고 하지 않고 자리에 가만히 있어서였다.
 그가 말했다.
 
 ―어차피 이쪽으로 다시 나올 거잖아. 난 잠깐 여기에 있을게. 산책도 할 겸.
 ‘아··· 네, 뭐. 그럴게요.’
 
 이령은 유령의 말에 잠깐 말끝을 흐리다가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의 통역이 없으면 의사소통에 무리가 오긴 하겠지만 서로 숙소에 가는 것이니만큼 괜찮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유령은 혼자 남게 되었다.
 
 ―흠···. 이걸 꼬맹이한테 말해 주는 게 좋을지······.
 
 혼자 남은 유령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그는 슌스케와의 재회를 마냥 반길 수가 없었다.
 물론 그에 대한 건 이미 싱글에이 시절에 이것저것 들은 터라 알고 있었지만, 직접 얼굴을 보고 나니 전혀 다른 부분을 눈치채게 된 까닭이었다.
 그건 바로 슌스케의 색깔이 회색이라는 점이었다.
 근심 걱정 하나 없이 밝게 웃는 겉모습과 달리 속내는 우울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지금 유령이 일부러 이령과 떨어져서 혼자 남은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자기 혼자 그 부분에 대해 잠시 고민을 해 보기 위함이었다.
 
 <『3루의 귀신』 1-2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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