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적산부

적산부 : 1화

2019.05.28 조회 665 추천 3


 적산부 : 1화
 
 
 
 
 
 
 
 
 
 
 
 
 
 
 1.
 
 
 1. 적가(赤家)의 후예
 
 “대흉(大凶)입니다.”
 장소팔(張蘇八)은 점쟁이중의 점쟁이였다.
 “정확하게 점괘가 뭔가?”
 적운영(赤雲影)이 물었다.
 “살(殺)입니다.”
 장소팔이 눈을 살며시 내리깔며 조심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내가 죽는 건가?”
 적운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서 다시 반문했고,
 “받자옵기 황송하오나 괘로는 그리 풀이됩니다.”
 장소팔이 민망하다는 듯 고개를 조아렸다.
 “어떻게 죽나?”
 “전주님께서는 조만간 사람의 손에 살해당하게 됩니다.”
 장소팔은 감정이 전혀 실리지 않는 사무적인 어조로 답했다.
 “자네, 내가 누군지 알고 하는 말인가?”
 적운영이 게슴츠레 실눈을 뜨며 따지듯 물었다.
 “불초소생이 어찌 그걸 모르겠습니까. 전주님께서는 열흘 후, 대룡장(大龍莊) 장주에 오르실 분이시며, 또한 대룡장은 현 무림종파(武林宗派)이니 더불어 무림맹주 직에도 오르실 분이십니다.”
 장소팔이 감히 올려다보기 엄두가 안 난다는 듯 고개를 황급히 숙이며 대답했다.
 “그걸 아는 사람이 어찌 그리 말하는가?”
 적운영의 어조는 추상과 같았다.
 “글쎄 말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뚫을 수 없는 대룡장 경계인데요. 전주님이 대륭장 주작전에 계시는 한, 천하의 그 누구라도 전주님 옥체에 털끝 하나 못 건들일 텐데...”
 장소팔이 점쟁이답지 않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면?”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건 소생도 잘 압니다만...”
 장소팔이 말꼬리를 흐렸다.
 “그럼 본좌가 어디서 천재지변이라도 당한다는 말인가?”
 “점괘로는 분명히 사람의 힘이라고 돼 있습니다.”
 장소팔이 고집스레 대답했다.
 “지금 말장난하나. 여기가 바로 대룡장 주작전이고, 내가 바로 그 대룡장 주작전주 적운영이라네. 누가 감히 날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적운영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역정을 냈다.
 “소인도 모르겠습니다. 괘가 왜 이리 나오는지... 점쟁이 된 몸으로써 이번 점괘는 정말 불가해합니다.”
 장소팔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거야 원...”
 적운영은 난감했다.
 석 달 전 무림맹주이자 대룡장주인 조부 적세룡은 유명을 달리했다.
 살아생전 조부를 시기하는 자는 많았으나 그 누구도 조부의 털끝 하나 건들이지 못했다. 조부는 그렇게 주어진 천수를 다 누리고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렇듯 대룡장은 천하무적 철통 경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후임 장주로 정해진 주작전주 적운영도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이 대룡장 안에서만은 어느 누구도 적운영 근처로 접근할 수 없었다.
 대룡장 안에서만은 그 누구보다 안전했다.
 확신해도 좋았다. 대룡장의 삼엄한 경계를 모두 따돌리고 장내로 잠입할 수 있는 침입자는 결단코 없었다.
 그래도 적운영은 찜찜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장소팔은 불세출의 점쟁이였다. 그의 점괘는 백발백중이었다.
 지난 십 수 년 간 적운영이 중대 기로에 처할 때마다 점괘를 구했지만 장소팔의 점괘는 한 번도 빗나간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지금까지 백번도 넘게 점을 쳐왔지만 언제나 한결같았다.
 장소팔이 떠나간 후, 적운영이 그렇게 노심초사하고 있는데,
 그때 웬 여인 하나가 주렴을 걷어내며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허리가 하늘하늘하고, 피부도 고았다.
 여인은 어느덧 서른이 훌쩍 넘어가는 데도 본연의 요염함을 전혀 잃지 않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전주.”
 여인이 물었다.
 “아, 오셨소.”
 적운영의 얼굴에 돌연 화색이 감돌았다.
 적운영이 자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여인, 적운영의 정실부인 채숙정(蔡淑正)이었다.
 “무슨 일이에요? 안색이 안 좋아요.”
 이렇듯 채숙정은 적운영의 안색만 봐도 적운영의 심경을 한눈에 알아보는 여인이었다.
 적가(赤家) 일문은 대대손손 처복이 없기로 유명했다. 그런 면에서 적운영은 행운아였다. 채숙정은 자타가 공인하는 현모양처였다.
 “방금 장소팔이 왔다갔소.”
 적운영이 대답했다.
 “왜요? 점괘가 안 좋습니까?”
 “점괘로는 내가 죽는다는구먼.”
 채숙정의 얼굴이 대번에 새하얗게 질렸다. 채숙정도 잘 알고 있었다. 장소팔의 점괘는 어김없다는 것을.
 “자세히 좀 말해 봐요.”
 채숙정이 애가 달아 적운영을 채근했다.
 “얘기해줄 말 별로 없는데.”
 적운영이 내키지 않는다는 듯 말했지만 그래도 채숙정에게만은 자신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적운영이었다.
 적운영은 장소팔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해주었다.
 “아무 걱정 마세요. 오늘부터는 그 어떤 자도 주작전 안에 못 들어가게 하세요.”
 잠자코 듣고 있던 채숙정이 야무지게 말했다.
 “뭐요?”
 적운영이 놀라 반문했고,
 "사람의 손이라면서요? 사람 손이 전각 안에 못 들어가면 설사 염라대왕이라 해도 당신을 저승으로 부르지는 못할 겁니다.”
 채숙정이 단호하게 말했다.
 “오늘부터 당장? 에이, 그래도 그건 좀...”
 적운영이 어두운 눈빛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지금 당장 출입 금지시키면 적운영의 평소 업무는 그 즉시 정지될 것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지나친 처사라고 생각했다.
 “전주, 열흘이면 됩니다. 단지 열흘뿐이에요.”
 그래도 채숙정은 힘주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하면 열흘 동안을 난 아무 일도 못한단 말이오.”
 적운영이 툴툴거렸다.
 “그게 대숩니까. 열흘 후면 당신은 무림맹주가 됩니다. 당신 천하가 된다고요. 주작전 안에 사람을 들이지 않고 열흘만 참으면 그 후로는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아무 지장 없어요. 그전에 당신이 죽으면 아무 소용없잖아요.”
 “그야...”
 “명심마세요. 점쟁이가 바로 장소팔이라는 걸.”
 채숙정이 열변을 토했다.
 “그야 물론 무시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적운영이 잠시 갈등했다.
 “이제부터는 당신 몸종도 전각 안으로 들이지 않겠습니다.”
 채숙정이 말했다.
 “몸종도 말이요? 에이, 그건 너무 지나치오.”
 적운영이 질색했다.
 “몸종이 없는 동안 이 몸이 대신 시중들지요. 거절하지 마세요. 열흘 동안 제가 직접 그리 하겠어요.”
 “당신이 직접?”
 적운영이 화들짝 놀랐다.
 “불편해도 잠시만 참으세요. 열흘 후면 당신은 무림맹주가 되십니다. 그땐 뭐든지 다할 수 있어요. 그때가 되면 이 천녀의 공을 잊지나 마세요.”
 “일을 그렇게 억지로 한다고 사람의 힘을 막을 수는 없소.”
 적운영이 여전히 근심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걱정되시면 오늘 당장 당신의 직권으로 대룡장 경비대 고수들을 주작전으로 불러들이세요. 딱 열흘 동안만 대룡장의 기라성 같은 절정고수들이 당신을 철저히 지키는 겁니다. 그리하면 당신의 신변은 평소보다 더 안전해질 거예요.”
 “하지만 장원 경비대를 내 맘대로 함부로 부를 수는...”
 적운영이 난색을 표했다.
 지금까지 적운영은 대룡장주가 되려는 마음에 자신의 수하들에게 신망을 얻으려고 불철주야 노력했었다. 직권을 남용하면 모든 게 허사가 될 수도 있었다.
 “뭐가 걱정이세요. 열흘 후 무림맹주가 되면 그런 일쯤은 아무렇지 않게 쉽게 수습할 수 있어요.”
 채숙정이 웬일로 강하게 고집 부렸다.
 “알겠소. 부인이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야 나도 어쩔 수가 없구려.”
 채숙정의 어조가 점점 강경해지자 적운영은 고분고분 채숙정의 말에 따랐다.
 언제나 그랬다.
 채숙정의 내조 덕분에 이런 지위에까지 오르지 않았던가.
 그녀가 적운영 옆에 없었다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이었다.
 “이제부터 열흘 동안 장원 업무에 공백 없도록 만반을 기해야 합니다. 열흘 후에 해야 할 일들을 미리 처리하세요.”
 채숙정이 보챘다.
 “알겠소.”
 정운영은 중식을 마친 후, 향후 처리해야 할 일들을 부랴부랴 미리 처리했다.
 해야 할 일들을 모두 처리한 후,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주작전 출입을 그 즉시 봉쇄했다.
 어느 새 밤이 되었다. 유달리 고적한 밤이었다.
 이제 드넓은 주작전 경내에는 채숙정, 적운영 두 사람만 빼면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적운영이 지친 마음에 침실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주렴을 걷으니 등불 아래로 눈부신 여인의 나신이 눈앞에 펼쳐졌다.
 채숙정이었다. 침실에는 채숙정이 알몸으로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 몸이 전주님의 울적한 심사를 달래드리지요.”
 채숙정이 색기가 철철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허허, 그대가 원한다면 고소원일지언정 불감청이외다.”
 적운영이 서둘러 옷가지를 벗어젖혔다.
 적운영은 젊음이 아직은 남아있는 삼십대 한창이었고, 사랑해 마지않는 정실부인 채숙정의 나신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적운영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부부의 동침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채숙정의 말캉한 혀가 적운영의 입속으로 쏙 들어왔다.
 적운영은 달콤한 과일을 탐닉하듯 그녀의 혀를 빨아들였다.
 “이게 뭐요?”
 적운영은 그녀의 혀를 입에 삼킨 채 놀라서 우물거렸다.
 “여보, 씹지 말고 그냥 삼키세요.”
 채숙정이 차분히 말했다.
 “또 그것이오?”
 “쓰다고 도로 뱉으면 안 됩니다?”
 “나도 안다오. 걱정 마시오. 당신도 참 어지간하구려.”
 무언가 물컹한 것이 채숙정의 혀를 타고 적운영의 입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십중팔구 영약일 것이다.
 채숙정이 지난 십여 년 동안 갖은 정성을 다해 행하는 영약 복용이었다. 유달리 쓴 것을 싫어하는 적운영에게 내공 증진을 위해 채숙정이 직접 고안한 고육지책이었다.
 꿀꺽.
 언제나처럼 정운영은 채숙정이 혀로 내민 그 쓴 약을 눈 딱 감고 그냥 삼켜버렸다.
 “자, 이제 당신 몸에 들어가오. 쓴 약까지 먹였으니 각오해야 할 것이오.”
 적운영이 으르렁거렸고,
 “어서 들어오세요.”
 채숙정이 달콤한 콧소리로 화답했다.
 한바탕 격렬한 허리의 꿈틀거림이 오갔고, 적운영의 그것에서 운우(雲雨)가 쏟아져 나왔다.
 두 사람은 나른해져서 가쁜 숨을 헐떡이며 침상에 나란히 누웠다.
 “이거 참 큰일이오.”
 정운영이 느닷없이 너스레를 떨었다.
 “뭐가 말이에요?”
 채숙정이 뭔가를 기다린다는 듯 천장을 물끄러미 보다가 의아해서 물었고,
 “아무래도 주화입마인 것 같소.”
 정운영의 말투는 다분히 농담조였다.
 “주화입마라니요?”
 채숙정이 새침하게 되물었고,
 “당신이 넣어준 그 영약 말이오. 약효가 너무 강해서 지금 내 몸이 이상할 만큼 지나치게 뜨거워지고 있소. 어째 심상치 않소. 이 영약, 무슨 약이오?”
 정운영이 다시 되물었다.
 그러나 그 말을 받은 채숙정의 대답은 적운영 자신의 귀를 의심케 했다.
 “주화입마가 맞아요.”
 채숙정이 대답했다.
 “지금 뭐라고 했소?”
 “주화입마가 맞다고 했어요.”
 채숙정의 건조한 대답.
 정운영은 깜짝 놀랐다.
 옆을 돌아보니 채숙정이 느닷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눈물을 그냥 흘리는 게 아니라 물줄기가 쏟아지듯 펑펑 울어대고 있었다.
 “부인, 왜 그러시오?”
 “영약이 아닙니다.”
 “영약이 아니라고? 그럼 뭐요?”
 “당신의 부시독(腐屍毒)이에요.”
 “부시독이라니?”
 정운영이 기절초풍해서 되물었다.
 “부시독 모르세요? 소녀가 지난 십년간 당신의 몸에서 조금씩 빼낸 살점을 썩혀서 만든 부시독이에요.”
 채숙정이 대답했다.
 “그러니까 지금 그 말은 내가 지금 주화입마를 일으킨 게 아니라 부시독 때문에 이렇게 된 거란 말이오?”
 정운영이 불신의 표정으로 떠듬떠듬 물었다.
 “네, 그건 영약 때문이 아니라 독 발작이에요. 당신은 날이 밝기 전에 죽고 말 거에요.”
 채숙정이 구슬피 울며 대답했다.
 정운영이 서둘러 운기해보니 분명히 주화입마는 아니었다. 찬찬히 주요 경맥들을 되짚어보니 몸에서 구역질 냄새가 꾸역꾸역 났다. 체내에 정말 독이 퍼지고 있었다.
 “왜 그랬소? 왜 내게 이런 맹독을 먹인 거요?”
 정운영이 경악한 눈길로 채숙정에게 물었다.
 “미안해요. 내 의지로는 어쩌지 못해요. 난 태어날 때부터 아예 그렇게 키워진 걸요.”
 채숙정이 안타깝다는 듯 처절한 어조로 대답했다.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