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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이터 001화

2019.06.19 조회 3,825 추천 38


 던전이터 001화
 
 
 ‘흐흐흐. 네가 아무리 도도한 척해 봐야 소용없다. 결국엔 넘어오게 되어 있지.’
 김동령은 버스에 오르자마자 신수지을 찾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미스 김이라 불리는 자재부 여직원과 함께 앉아 있었다.
 “미스 김. 자리 좀 바꿔 줄래? 내가 신 과장 하고 할 이야기가 있거든?”
 “가지 마. 여기 있어 줘.”
 신수지가 또렷하게 말했음에도 김동령은 빤히 미스 김을 바라봤다. 당연히 바꿔줄 거라는 듯이 말이다. 미스 김은 그 눈길을 당해내지 못하고 다른 자리를 찾아 앉았다.
 김동령은 미스 김이 떠난 자리에 앉자마자 신수지에게 몸을 밀착해 앉았다.
 “섭섭하네. 나는 신 과장이 내 자리를 맡아 놓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설마 나 혼자만 썸 타는 거야?”
 “네. 전 아니에요.”
 신수지의 목소리에는 누구나 알 수 있을 만큼 쌀쌀한 기운이 들어 있었다.
 “하하하. 솔직해서 좋네. 그런데 말이야. 전에 저녁 먹자고 했을 때 신 과장이 나중에 연락한다고 했잖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소식이 없네? 약속을 어기면 쓰나? 과장으로 초고속 승진한 거 내 덕인 건 알지? 연봉도 다른 사람보다 많이 올랐을걸? 내가 특별히 신경 써주라고 했거든. 뭐 피차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어? 내가 기가 막히게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알고 있는데······.”
 그러면서 슬그머니 자신의 손을 신수지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왜 이러세요?”
 신수지는 소리를 빽 질렀다. 버스 안에는 많은 사람이 타고 있었지만, 그 소란의 주인공이 누군지 확인하자 다들 창밖만 바라볼 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결국 신수지는 벌떡 일어나 다른 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도 신수지를 반기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내 옆으로는 오지 말라는 듯이 등을 돌리고 앉아 있었다. 회장님의 아들이자 망나니인 김 이사의 미움을 받고 싶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신수지가 새삼 세상인심을 깨달으며 갈 곳을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신수지를 잡아끄는 손이 있었다.
 몇 달 전 프랑스 회사에서 파견된 파견사원 이후혁이었다. 이후혁은 프랑스 시민권자였다.
 “수지 씨, 안 되겠습니다. 우리 공개연애합시다.”
 신수지는 순간 멍한 표정이 되었는데, 그때 이후혁이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다 들으라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여러분. 우리 사귑니다. 사귄 지 3개월 됐습니다. 축하해 주십시오.”
 “언니, 축하해요. 이 대리님 축하해요. 이렇게 공개하고 나면 좀 좋아요? 내가 비밀 지키느라 얼마나 답답했는데. 나 같으면 진작 공개했겠다.”
 김 이사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던 미스 김이 미안했는지 얼른 축하한다는 소리를 하며 둘의 사이를 공증하듯 나섰다.
 “아. 축하합니다.”
 “두 분 참 잘 어울리세요.”
 버스에 타고 있던 직원들은 다들 축하한다는 덕담을 주고받았는데, 그때 어디선가 이빨 갈리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물론 그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김동령이었음은 당연한 이야기였다.
 
 * * *
 
 “이 대리님. 이게 도대체 뭔 소리예요?”
 축하인사가 끝나고 분위기가 가라앉자, 신수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글쎄요. 도움이 필요해 보여서요. 싫어요?”
 나도 신수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어쩌시려고요? 김 이사 저놈 뒤끝이 있는 놈인데요.”
 “난 프랑스 회사 사람이라 김 이사가 지랄해도 버틸 만하거든요.”
 “고마워요.”
 신수지의 나긋나긋한 손이 내 손을 잡아왔다.
 “어?”
 당황해서 쳐다보자 신수지가 미소를 지었다.
 “연기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죠.”
 “그건 괜찮은데, 뭔가 오해하실 상황이 생길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데, 저 딸도 있습니다.”
 신수지는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이 대리님. 미혼 아니었어요?”
 “사연이 있습니다. 미혼이긴 한데, 딸은 있죠. 지금은 외할머니가 키우고 있습니다.
 “애 엄마는요?”
 “하늘나라요.”
 “아······.”
 신수지는 고개를 몇 번이나 끄덕이더니 내게 살포시 기대왔다. 다정한 모습인지라 누가 봐도 연인들이 틀림없어 보였다.
 “출발합니다. 안전벨트 매세요.”
 버스는 출발했지만 신수지는 내 손을 놓지 않았다. 시시때때로 창밖의 광경을 가리키며 이야기도 하고 깔깔거렸다. 마치 오래된 연인인 것처럼.
 그렇게 버스로 30분쯤 달렸을까?
 “뭐······ 뭐야?”
 운전기사의 외마디 소리와 함께 버스가 급정거를 시도했다.
 안 그래도 제동력이 좋다는 ABS 브레이크의 급제동인지라 벨트를 매지 않았던 사람들이 튕겨지듯 날아가며 비명소리를 질렀다.
 급정거를 한 보람도 없이 순식간에 버스가 어둠에 삼켜졌다. 그리고는 거짓말같이 환하게 비쳐오는 태양빛이 찾아왔다.
 “꺄아아악! 꺄악! 꺄악!”
 빛이 돌아오자 사람들이 찢어져라 비명소리를 질러댔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던 직원 두 명이 버스 앞 유리에 머리를 처박고 피를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용! 조용히 해.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다들 난리가 났는데 김동령이 소리를 질러 진정시켰다. 창밖의 풍경이 아까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분명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숲속의 자그마한 공터가 아닌가.
 애초에 고속도로를 달렸다는 게 거짓말인 것처럼 사방이 빽빽한 나무에 막혀 있어 버스는 더 이상 움직일 수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이건 공간이동이 아니라면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설······마 엑스월드?”
 “말도 안 돼. 내가 왜 엑스월드에 온 거야? 아니지? 아닐 거야. 안 돼~~~!”
 한 사내가 엑스월드를 언급하자 여자 사원이 비명을 질러댔다.
 ‘엑스월드(X-World)’는 최근 3년 전부터 세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기현상을 말한다.
 워프홀과 같은 검은 구멍이 무작위로 출현하면서 사람을 빨아들였다. 언론에서는 이런 기현상을 X-World라고 불렀다. 물론 X-World로 사라진 사람은 아직 한 명도 돌아온 적이 없었다.
 “헛소리하지 마. 뭐가 엑스월드라는 거야? 다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어이, 김 과장. 여기가 어딘지 확인해봐.”
 “네. 이사님.”
 김 과장은 대답을 하며 핸드폰을 꺼냈다.
 하지만 뜨악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빵빵했던 핸드폰의 전원이 모두 방전되어 있었다.
 “이 대리. 핸드폰 봐봐.”
 “과장님. 제 것도 꺼져 있는데요?”
 버스에 타고 있던 모두가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다들 핸드폰의 배터리가 모두 방전된 것을 확인할 뿐이었다. 그리고 보니 버스도 역시 시동이 꺼져 있었다.
 “제기랄! 기사 양반. 당신이 나가 봐. 당신이 운전했으니까 여기가 어디쯤인지 당신이 제일 잘 알 거 아냐?”
 “그래. 당신이 나가봐.”
 김동령의 질책에 직원들이 운전기사를 닦달했다.
 기사는 마지못해 쭈뼛거리며 버스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가 채 몇 발자국 디디지 않았을 때였다. 대형견만한 크기의 동물 3마리가 숲속에서 튀어나왔다.
 “히이익!”
 기사는 깜짝 놀라 버스 안으로 되돌아오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김동령이 버스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기사가 문을 열려고 힘을 쓰는 사이 3마리 짐승은 뒤쪽에서 기사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살려줘. 문을 열어줘!”
 기사가 버스 문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김동령은 문을 열지 않았다. 오히려 발로 문을 밀어 버스 문을 단단하게 닫을 뿐이었다.
 “뒈지려면 혼자 뒈지란 말이야. 그런 걸 끌고 들어오면 여긴 어떻게 하려고?”
 몸부림치던 기사는 결국 죽었고, 그 자리에서 짐승들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우욱! 우욱!”
 갑작스럽게 펼쳐진 충격적인 장면에 사람들이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봉투에다 해. 봉투. 여기에 냄새를 가득 채울 셈이야? 여기서 얼마나 지내야 할지 모른단 말이야.”
 김동령의 말에 사람들은 봉투를 찾았다.
 구토를 하는 사람만 15명. 엑스월드에 도착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사람들은 공포에 의한 패닉을 겪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 사람들을 더 큰 혼란에 밀어 넣는 메시지가 들렸다.
 [여러분 X-World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때요? 버스기사님이 죽는 걸 똑똑히 보셨지요? 환각이냐는 둥, 꿈이냐는 둥 그런 헛소리를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현실감각을 깨우기 위해서 특별히 한 명 죽이고 시작하는 거니까요.
 그럼 지금부터 X-World의 1차 듀토리얼을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보고 있는 짐승은 샤카라는 짐승입니다. 이 숲에는 수천 마리의 샤카가 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숲을 뚫고 나가 북쪽 마을을 찾아가십시오. 먹을 것을 가지고 간다면 격하게 환영받을 겁니다.]
 X-World라는 말에 사람들은 다들 패닉에 빠졌다.
 [아참! 3시간 전에 마을에 도착해야 합니다. 그때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숲속의 모든 샤카 무리가 여러분을 쫓을 거고, 그러면 마을 문이 열리지 않을 테니까요. 저 김동령 씨가 버스 문을 틀어막았던 것처럼 말이죠?]
 
 터무니없는 내용을 담은 그 메시지는 머릿속에 새겨놓은 것처럼 명확하게 인식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들은 소리를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때 신수지가 내 고민을 해결해 주었다.
 “후혁 씨. 마을로 가라는 소리 들었어요? 이게 꿈인가요? 이거 꿈 맞죠?”
 신수지뿐만이 아니었다. 직원들 모두가 서로 믿을 수 없다면서도 다 똑같은 내용의 말을 떠들어 댔다.
 그렇게 다들 1차 듀토리얼의 충격적인 내용을 곱씹고 있을 때 김동령이 분위기를 깼다.
 “어이, 최 부장. 그거 이리 줘.”
 “네?”
 “그거 말이야. 지팡이.”
 나이 53세의 최 부장은 일찌감치 무릎관절이 안 좋아져서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손잡이 쪽이 얼음을 깨거나 찍을 수 있는 아이스픽과 반대쪽은 망치 형태의 극지 탐험용 지팡이였다.
 “안······ 됩니다. 전 이거 없으면 잘 걷지도 못합니다.”
 “좋은 말할 때 내놔! 회사 그만 다니고 싶어?”
 이제 겨우 36살인 김동령이지만 그는 회장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삼촌뻘인 최 부장에게 반말을 지껄이며 협박을 했다.
 하지만 최 부장은 방금 전 흉흉한 장면을 보고 나니 무기가 될 만한 지팡이를 놓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김동령이 달래기 시작했다.
 “내게 달라고. 내게 주면 당신을 마을로 데려다줄게. 나 특수부대 나온 거 알잖아. 그런 무기가 내 손에 있는 게 효율이 더 높지. 안 그래?”
 “그······래도······.”
 “이런 젠장. 왜? 나 못 믿어? 여기서 천년만년 살 거야? 원래 살던 데로 안 돌아가? 돌아가면 오늘 일을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
 김동령은 금방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통했다.
 “아······닙니다. 여기 있습니다. 분명히 도와주셔야 합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들었습니다.”
 “참나. 최 부장은 속고만 살아왔나? 나 그런 사람 아니야. 걱정 말라고. 내가 책임져 줄게. 하하하. 하하하하.”
 김동령은 삼촌뻘 되는 최 부장과 어깨동무를 하며 웃음을 지었다.
 “어이. 다들 뭐해? 어서어서 무기 될 만한 것 있나 찾아봐.”
 “여기 과도 있어요.”
 그때 여직원 하나가 외쳤다.
 “그거 최 과장에게 넘겨.”
 “그럼 저도 책임져 주세요.”
 “오케이. 어이 다른 사람들도 가방들 좀 뒤져봐. 뭐 쓸 만한 무기 없나. 무기를 주는 자는 내가 책임져 주겠다. 물론 회사로 돌아가도 책임져 준다. 사고만 치지 않으면 정년퇴직은 보장해주지.”
 엑스월드에서의 안전과 지구 복귀 후의 안락함 두 가지를 제시하자 다들 김동령에게 넘어갔다.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뀔 수밖에 없었다.
 엑스월드에 끌려간 사람들은 3년이 지나도록 돌아온 자가 한 명도 없었는데 어떻게 저런 협박이 통하는 건지. 이들에겐 아직도 이 낯선 환경이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보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나만 해도 이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지구로, 딸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나 역시 지구로 돌아갈 것을 전제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행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은 모두 김 이사 라인의 사내들 손에 들어갔다.
 바로 그때 내 손으로 뭔가가 들어왔다.
 “이거. 수박 자르려고 가져온 거예요.”
 신수지가 내게 속삭였다.
 신문지 포장 밑으로 느껴지는 촉감은 확실히 식칼이었다. 그것도 민속촌 대장간 같은 곳에서나 파는 커다란 식칼!

댓글(3)

코알라    
환생 재벌을 재밌게 본 독자로써 이번작품 대박나시길 기원합니다^^
2019.06.23 00:19
ㄴㄷㅆ    
~~~¿
2019.07.02 13:04
dm******    
어지간해야 읽지 초딩 일기장을 올려놓고 돈달라면 x나오지 않겠어요? 제발 기본은 합시다
2021.05.08 08:38
0 / 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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