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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갑질 1-1권

2019.07.04 조회 4,397 추천 25


 # 프롤로그
 
 2015년 세계는 멸망했다.
 
 
 # 1장. 갑이 되다!
 
 언제나 시작은 사소하다. 그러나 그 사소함이 쌓이고 쌓여 연결될 때 그 파국은 종종 생각지도 못한 식으로 나타나곤 한다.
 ―니콜라이, 준비됐나?
 “···난 준비되었소. 동지.”
 체첸의 과격 독립 조직원 중 한 명인 니콜라이는 2015년의 여름, 관광객으로 위장하여 러시아의 심장 모스크바에 잠입했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주요 관광지인 붉은 광장에 주차한 니콜라이의 트럭에는 이 거대한 도시를 한 방에 날려 버릴 핵폭탄이 실려 있었다.
 ―긴말하지 않겠소. 부디 민족의 미래를 위한다며 이런 일을 부탁하는 나를 저승에서도 용서하지 마시오.
 “후우···. 지옥에서 만납시다. 체첸 만세!!”
 콰아아아앙.
 니콜라이가 손에든 격발장치에 힘을 주는 순간 새로운 태양이 모스크바에서 피어올랐다. 첫 번째 파국의 시작이었다.
 
 ***
 
 2015년의 동부 유럽은 시끄러웠다. 우크라이나―러시아 간의 크림반도 소유권을 둘러싼 분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민족 통합이라는 지극히 나치스러운 명분으로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에게 양보한 동부지역(주로 크림반도)을 침탈하였고, 우크라이나는 이를 막기 위해 러시아의 반대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나토(NATO:북대서양 조약기구)와 그 뒤의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우리 미합중국과 우크라이나는 상호 군사 동맹을 체결하며 양국 간 어느 국가라도 침략받을 시 핵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함께 격퇴할 것을 천명···.]
 그리고 자신들이 구축한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요청에 응답해 대통령을 포함한 행정부 다수의 우크라이나 깜짝 방문과 동맹 체결식을 준비하였다. 더 이상 자신들이 구축한 세계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무려 상호 군사 동맹을 체결과 NATO 가입이라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세계 멸망을 부르는 두 번째 파국일 뿐이었다.
 
 ***
 
 콰와앙.
 모스크바에서 자살 핵 테러에 자원한 니콜라이를 비롯하여 체첸 반군은 러시아 전역에서 구소련 해체 과정 중 은밀하게 확보한 전술핵 5발을 수도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보시비르스크, 니주니노브고로트, 예카테린부르크 등 인구 100만 이상의 주요 도시들에서 일제히 폭발시켰다. 러시아의 광대한 국토에서 5개의 새로운 태양이 피어오른 것이다. 수천만의 생목숨은 덤이었다.
 ―우크라이나에게 복수한다.
 “각하, 진심이십니까?”
 버섯구름이 일어나고 폭심지가 되었던 도시들은 흔적조차 없이 모조리 열화되어 날아갔다. 한순간에 2천만에 가까운 도시 거주와 유동인구가 말 그대로 ‘증발’해 버렸고 이것은 극동 순방을 마치고 미국의 이상 낌새를 논의하기 위해 수도로 귀국하던 러시아 독재자에게 실시간으로 보고되어졌다. 러시아는 전통의 우주 강국으로서 이미 전 지구적 위성 감시 체계를 갖추고 있었기에 파멸이 일어나자마자 그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핵 테러 보고를 들은 러시아 독재자는 자신의 권력 기반이 무너졌다는 사실에 극도의 충격을 받으며 측근들에게 주모자를 물었고, 그때까지 체첸의 테러 여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던 러시아 총정보국(Главное разведывательное управление, ГРУ, GRU)은 일단 분쟁 중이었던 우크라이나의 과격분자가 그 배후일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를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곧바로 보복 명령으로 이어졌다.
 ―위대한 조국 러시아의 5개 도시가 핵으로 열화되어 사라졌다. 내가 복수를 미룰 이유가 있는가?
 “···알겠습니다.”
 번지수를 잘못짚은 독재자의 복수 명령에 핵잠(핵 잠수함)의 함장은 잠시간 고민하였으나 우크라이나 정도를 제물로 핵전(핵전쟁)의 확전을 막을 수 있다면 나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핵 공격을 당한 러시아의 입장에서 솔직히 우크라이나만큼 만만하고 신빙성 높은 범인이자 제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조국 러시아를 위하여···!’
 “미사일 발사!”
 “타이푼 핵미사일 20기 발사합니다. 5··· 4··· 3··· 2··· 1··· 발사됐습니다.”
 퉁. 퉁. 퉁. 퉁. 퉁.
 함장의 명령과 함께 북극해 표면 수심 가까이 잠항 중이던 러시아의 핵잠에서는 아주 작은 소리와 함께 20기의 핵미사일들이 새로운 태양을 품은 채 연이어 발사되었다. 목표는 우크라이나의 주요 도시 20개, 미사일들이 빚어낼 처참한 결과와는 너무나도 다를 정도로 은밀하면서도 빠른 출발이었다. 그러나 이는 네 번째로 시작된 파국이었다.
 
 ***
 
 [명령을 취소해야 합니다! 우크라이나에 미국 대통령이 있다는 보고가―]
 핵잠에서의 발사 불과 0.1초 직후 우크라이나―미국 간의 동맹을 발표하는 기자 회견이 방송으로 송출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그제서야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머물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GRU의 총정보국장이 사색이되어 독재자에게 달려왔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핵미사일은 궤도에 떠오른 다음이었다.
 더구나 공격 목표는 러시아의 바로 옆인 우크라이나, 북극해에서 발사된 핵미사일들은 아주 짧은 시간 내에 급속도로 지상에 내리꽂혔고, 지구상 북반구를 감시하던 미국 NORAD에서 ‘어, 뭔가 이상한데?’라며 이상을 감지하던 바로 그 순간 우크라이나 전역의 도시들에는 20발의 핵무기들이 모조리 차례대로 폭발하며 장대한 버섯구름을 빚어내었다.
 쿠와아앙.
 당연히 수천만의 생목숨과 함께한 희생자 속에는 상대적 온건파로 꼽히는 오바마 미 대통령을 포함한 미국 핵심 정치 인사 다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는 예정된 다섯 번째 파국으로 이어졌다.
 [복수를!]
 미국 정권은 민주당이었으나 상대 정당인 공화당을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상대적 한직에는 공화당 장관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오바마 포함 민주당 중진 다수가 모조리 녹아내린 덕에 덩달아 이 공화당 매파 장관은 졸지에 미국 제1권력자가 되었고, 화끈한 공화당원답게 미국에 대한 신념으로 가득차 있던 그는 그 즉시 러시아에 대한 핵 반격을 명령하였다.
 ―위대한 미국을 위하여!
 투쿵. 투쿵.
 쿠화아아아앙.
 국가 최고 수반을 잃었다는 명분하에 울분에 찬 미국은 기존에 준비하던 핵반격작계 SIOP(Single Integrated Operational Plan: 단일통합작전계획)에 따라 러시아에 무려 3천여발의 핵폭탄을 퍼부었다. 덕분에 러시아의 모든 주요 도시들뿐 아니라 적의 반격 능력을 봉쇄하기 위하여 핵 기지로 의심되는 ‘거의 모든 지점’에 대한 핵 세례가 이어졌고, 하늘과 바다에서는 전면 핵 전쟁 상황에서 러시아의 국기와 상징을 단 비행기와 잠수함, 배에 대한 공격이 연이어 이어졌다.
 단 한순간에 미국에서 오랫동안 파악중이던 러시아의 군사전력 99%가 괴멸되었고 모든 도시들이 열화되었으며 시베리아 상공을 비행 중이던 러시아의 권력자 또한 미군의 공격에 그대로 고혼이 되어 버렸다. 거의 완벽한 승리, 위성으로 러시아를 감시하던 미국의 새 행정부는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였고 러시아의 모든 전력이 괴멸되었다고 판단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적들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렸으며···.
 그러나 미국의 승리를 자축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일렀다. 미국에서 미처 놓친 한 곳, 시베리아 고원의 한 오지에서 사일로가 개방되며 하나의 미사일이 하늘을 가르기 시작한 것이다. 여섯 번째 파국의 시작이었다.
 
 ***
 
 둠스데이 머신(Doomsday Machine), 천하의 미국에서 해당 정보를 놓칠 정도로 러시아에서 극도의 보안 속에서 설치해 놓은 이 장치는 지난 1984년 우랄산맥의 지하 300m에 위치한 코스빈스키산에서 벌어졌던 ‘죽음의 손(Dead hand)’과 같이 핵 반격을 위해 설치된 일종의 자동 방어 시스템이라 할 수 있었다. 지도부의 괴멸을 대비해 러시아에서 들어 놓은 일종의 ‘보험’이었던 셈이었다.
 띠이. 띠이. 띠이. 띠이.
 먼저 비행을 시작한 둠스데이 머신은 자신에게 내장된 시스템대로 수천 발의 핵 세례를 얻어맞아 온통 방사능으로 찌든 러시아의 대지 위를 비행하며 이미 괴멸된 상부와의 연락을 지속적으로 시도하였다. 그러나 수천 발의 핵 세례에 거의 모든 생명이 사멸한 러시아에서 그 신호를 받을 만한 인물은 남아 있지 않았고 자연히 이는 둠스데이 머신의 자동 보복 단계로 이어졌다.
 삐이. 삐이. 삐이.
 쿠와아앙.
 ―핵미사일 발사 감지! 1기, 2기, 3기, 10기, 점점 늘어납니다!
 그리고 북미 방공 사령부 NORAD에서는 한기의 둠스데이 머신을 감지한 직후부터 러시아 전토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을 발견하고는 패닉에 빠져야 했다. 모두 제거하였다고 생각했었지만 냉전 시절부터 쌓아 놓았던 러시아의 미사일 전력들은 한 번의 공격만으로는 도저히 제거할 수 없었음이 속속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동북부 시베리아고원 한곳에서 둠스데이 머신이 솟아오른 이후부터 그동안 적 전력이 없다고 믿어지던 시베리아 곳곳에서는 은폐된 미사일 사일로들이 자동으로 개방되며 수백, 수천 발의 미사일이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것들을 추적하던 노라드는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세례를 목격하고는 더 이상 할 말을 잃어버려야 했다.
 ―현재까지 총 14,229기의 핵미사일 발사가 감지되었습니다. 요격은··· 불가능합니다.
 “오 신이시여.”
 모니터를 바라보던 그들은 모두 섣불렀던 보복 전쟁을 후회하였으나 이미 파멸의 방아쇠는 한껏 뒤로 당겨진 이후였다. 지나간 냉전 시기를 거치며 무려 반세기 넘게 숨겨져 있던 만오천여 발의 핵미사일은 대기를 찢어발기며 상승했고, 일정 부분 대기권을 돌파하자 다시금 지상으로 방향을 틀며 그들에게 지정된 목표를 향한 낙하를 개시하였다. 파멸의 시작이었다.
 쿠우웅. 쿠우웅.
 쿠화아아아아아아악―
 미국 전역은 이미 그들이 지옥으로 보내 버린 러시아 인민들의 뒤를 따라 불타올랐다. 차례대로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걸쳐서 북미 대륙에 위치한 ‘모든 도시’들에게는 어김없이 새로운 태양의 꽃이 발화하였고 불과 1시간여가 지나는 동안 번영하였던 북미 대륙은 방사능과 죽음의 폭풍에 갇혀 버렸다.
 수억에 달하는 생명이 사그라들었고 인류 문명이 쌓아 올렸던 빛나는 번영은 열화의 폭풍 속에 녹아내렸으며 생명과 풍요가 가득하던 대륙 전체에는 찌든 방사능의 잔해와 죽음의 잔향만이 떠돌기 시작했다. 인류 문명의 가장 번영하던 곳이 두 번째로 무너지는 순간,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끝이 아니었다.
 
 ***
 
 슈퍼 화산이라는 말이 있다. 기존에 지구상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화산 활동 규모의 수천 배에 이를 정도로 강력한 화산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불행히도 만오천 발의 핵미사일을 얻어맞은 미국에도 이런 초거대 슈퍼 화산이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미국 서부에 위치한 옐로우스톤(Yellow―Stone) 화산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16만 년 전 분출을 마지막으로 곤히 잠에 들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 숨어 있던 학살자가 북아메리카 전역을 강타한 수천 발의 핵미사일 세례에 침묵을 깨고 나와 용트림을 하기 시작하였다. 비단 러시아와 미국뿐 아니라 전 지구상의 인류 문명의 파멸을 알리는 마지막 재앙, 일곱 번째 파국이 시작된 것이다.
 쿠우우웅.
 푸화학.
 쩌저적.
 
 ***
 
 사실 반―인공 지능으로 이루어져 있던 러시아의 둠스데이 머신은 러시아의 예상되는 멸망 이후 혼자 죽기 아까운 만큼 다른 이들까지 모조리 같이 멸망하자고 기획된 일종의 ‘너 죽고 나 죽자’식의 자폭 장치에 가까웠다. 둠스데이 머신이 러시아 멸망 이후를 가정한 만큼 애초부터 이 악랄한 국가는 지구 자체를 (예상되는) 그들 죽음의 동지로 삼기로 작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준비된 마지막 ‘회심의 수’가 바로 옐로우스톤 화산 지대의 폭발 유도였다. 만오천 발의 핵미사일 자동 세례로도 모자라 러시아는 무려 인류 역사상 최악이라 일컬어지는 차르 봄바의 1백 배에 달하는 초거대 핵미사일 오십 대를 묶어 옐로우스톤 화산 지대에 폭발시키겠다는 ‘지구 멸망의 최종 해결책’을 목표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콰아아아앙!
 ‘신의 분노’라 명명된 이 러시아의 마지막 목표는, 그리고 반―인공 지능의 정교한 유도 아래 훌륭하게 목표를 수행할 수 있었다. 강화된 첨단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애초 차르 봄바의 100배 이상으로 강화되었던 핵무기 오십 개 다발의 폭발력이 정교하게 확증되며 단박에 지저 깊숙이 잠든 옐로우스톤 슈퍼 화산을 깨워 낸 것이었다. 당연히 이어진 파국은 오롯이 지구 멸망의 참극뿐이었다.
 
 ***
 
 쩌저저적.
 먼저 상공에서 무려 5만 메가톤의 핵폭탄이 폭발하면서 강제로 오랜 잠에서 깨워진 흉악한 학살자가 성을 내며 준동하기 시작하자 북미 대륙 지각판 자체가 이를 버티지 못하며 거세게 요동쳤다. 급기야 북미 대륙 전체가 크게 두 조각으로 갈라지기 시작하였고 그 외의 대지 곳곳에도 잔 균열이 생기며 비단 슈퍼 화산뿐 아니라 땅속 깊숙한 곳에 억눌려 있던 마그마들이 사방에서 치솟기 시작하였다.
 쿠와아아아앙.
 그러나 결정타는 거대한 북미 대륙의 침수였다. 거대한 대륙이 두 조각으로 갈라져 바닷속으로 무너지자 태평양과 대서양이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다. 엄청난 중량의 대지가 바닷속으로 무너진 만큼 바다 전체가 흘러넘치며 거대한 쓰나미를 형성하였고 이런 메가 쓰나미는 마치 동심원을 그리듯 북미 대륙을 시작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향해 질주하였다.
 쑤와아아아아.
 파고만 무려 100m에 달하는 이 거대한 학살자는 불과 10시간 만에 ‘살아남은 전 세계’를 그대로 쓸어 버리며 유라시아 대륙의 중부인 고비사막에서 교차하였다. 육대주 전체가 파멸적인 쓰나미의 세례에 휩쓸려 가며 그 위에서 번영하던 인간과 생명을 모조리 쓸어 가 버린 것이다.
 인류는 그들 스스로 이루어 내었다 교만히 여기던 잘난 ‘인류 문명’과 함께 전쟁 발발 불과 하루도 안 되어 전 지구를 푸르게 물들인 해일에 휩쓸려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고, 이는 많은 이들의 우려처럼 인류 스스로가 초래한 대재앙이었다. 마치 6,500만 년 전 공룡의 K―T 대멸종(K–T extinction event)에 버금가거나 그보다 더한 멸종이 인류의 손에 의해 스스로 자초된 것이다.
 ―오, 신이시여―
 마치 영화와 같은 이 참극을 우주 기지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봐야 했던 마지막 우주 생존자들은 끔찍한 현대 인류 문명의 종말을 바라보며 탄식을 내뱉어야 했으나 이미 종말의 시간은 지나간 뒤였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에 마지막의 결정적인 마무리가 더해졌다.
 콰콰쾅.
 거대한 지각변동의 여파 속에 비단 옐로우스톤 슈퍼 화산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숨겨져 있던 여러 슈퍼 화산들이 연이은 대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이 과정에 전 지구적인 지각 변화가 연이어 수반되었고, 예상을 뛰어넘는 극심한 전 지구적 지형 변화는 심지어 대기권의 변화까지 초래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대기가 울부짖고 열화 폭풍 속에 피어오른 방사능이 대기 중에 농밀하게 노출되는 데다가 화산 폭발로 엄청난 잔해물이 대기권으로 퍼지면서 대기 구성 자체의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산소뿐 아니라 질소까지 대기전체가 불타올랐고 엄청난 양의 파편들이 공중으로 비산하면서 무려 지구상공 120km에 위치하던 우주 기지와 인공위성들까지 격추되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종말이 정말로 끝났을 때··· 지구상에 남은 것은 방사능으로 찌들어 숨을 쉴 수조차 없는 죽어버린 대기와 바다조차 증발해 생명은 잔해의 조각마저 남지 않은 갈색의 대지뿐이었다. 마치 누군가 예견하였던 것처럼 3차대전의 끝에 남은 것은 단순한 인류의 종말을 넘어선 지구의 완벽한 종말이었던 셈이다. 모든 것의 끝은 인류와 지구의 예외 없는 멸망이었다.
 “안돼···.”
 아니, 한 명만은 예외였다.
 
 ***
 
 [우리는 시간을 되돌리는 실험을 진행하고자 한다.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씨펄··· 받아들일 수밖에 없잖아···.”
 서연은 이 멸망의 지옥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원거리에서 지구 문명을 관측하던 외계인들은 지구가 핵전쟁으로 자멸하자 급하게 일부 생존자들을 월면 기지로 무작위 텔레포트 시켰는데 그 와중에 서연만 살아남은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인류 문명의 생존자로서 서연은 외계인이 제안한 불확실한 시간역전실험에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
 “자세하게 말해봐.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현재 우리 문명이 위치한 곳은 지구와 약 3억 광년 정도 떨어진 곳이다. 그리고 양자 간에 연결된 미세한 웜홀을 통해 우리는 지속적으로 지구 문명에 대한 관측을 시행해 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구 문명이 자멸하였으므로 마지막 생존자인 그대가 승낙한다면 우리는 웜홀로 전달되는 지엽적인 잔상을 되돌려 지구상의 시간만 멸망 이전으로 되돌리고자 한다. 이 과정에 웜홀 붕괴는 필연적이므로 실질적인 기회는 단 1번뿐이다.]
 간단하게 그동안 외계인들은 자신들의 은하계와 지구까지 뚫린 아주 미약한 웜홀을 이용해 지구상의 문명 발달 과정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이제 지구 문명이 알아서 망해 버린 이상 쓸모가 없어진 이 웜홀을 붕괴시켜 지구 문명을 되돌리는 시도를 해 보겠다는 의미였다.
 “그게 실제로 가능한 거야?”
 [모른다. 해당 실험은 아주 지엽적인 수준에서만 진행되었었으며 이번 경우와 같이 한 개 행성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시험은 처음이다. 실패할 수도 성공할 수도 있다. 실패가 걱정된다면 승낙하지 않아도 좋다.]
 “망할 새끼들···.”
 승낙하지 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미 가족과 친지를 넘어 인류라는 종 자체가 멸망해 버린 상황이었으니까.
 [솔직히 말해 우리 입장에서는 지구 문명이 자멸하였으므로 더 이상의 관찰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곧 관찰이 중지된다면 쓸모가 없어지는 웜홀을 이용한 과거역전실험을 제안한 것이다. 실험이 성공한다면 너희는 문명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고 우리는 시간 역전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으므로 상호 간에 이득이 된다.]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잖아.”
 결국 문명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서연은 외계인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승낙하겠어. 대신 실험에 성공한다면 그때는 너희와 연락이 끊긴다는 의미인 만큼 다시는 지구상에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방도를 마련해 줘. 물에 빠진 놈 건져 내니 보따리까지 건져 내라고 악악 거리는 것 같지만 너희로서도 일껏 되돌렸는데 또 망해 버리면 웃길 거 아냐? 속는 셈 치고 이왕 도와주는 김에 화끈하게 도와주라.”
 대신 서연은 얼굴에 철판을 깐 뒤 성공을 대비한 실질적인 방비책마저 요구하였다. 자신의 말마따나 물 빠진 사람 건져 놓으니 보따리도 건져 내라고 땡깡 부리는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기껏 시간역전실험의 성공으로 지구가 되살아난다 해도 다시 핵전쟁이라는 예견된 미래가 되풀이된다면 말짱 도루묵인 이상 매달릴 곳은 외계인밖에 없는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간 역전 실험의 담보가 외계인과의 연결을 보장하는 웜홀이었으니 서연으로서는 실험의 성공 가능성에 관계없이 이후의 안전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좋다. 현재 지구가 위치한 Sol-System에는 지구 문명을 관측하기 위한 기본적인 장비가 운용 중인데 이 기기들의 운용권을 너에게 넘기도록 하지. 그렇다면 시간역전실험이 성공한 이후 지구상의 핵전쟁을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을 것이다. 관련 인공 지능을 그대에게 종속시키겠다.]
 ―삐익. Sol-System 인공 지능 관리시스템이 사용자 ‘송서연’ 님을 마스터로 재등록하였습니다. 승인하시겠습니까?
 “엄청 빠르네··· 승인한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뜸 태양계에 잔존한 자신들의 기기 운용권 전체를 자신에게 넘겨주는 외계인의 행동에 서연은 떨떠름하면서도 고개를 끄떡였다. 지금 자신의 처지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니고 어쨌든 간에 기회를 주면 일단 잡아야 했다.
 ―삐익. 승인 완료. 기존 코드 등록명 ‘쿠챠얄람파트비리수이케트루차나가수리피오딘’이 폐기됩니다. 사용 가능한 신규 코드명을 등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 상아?”
 인공 지능 시스템의 말에 서연은 얼핏 자신이 게임에서 쓰던 아이디 하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 신규 코드명은 곧 인공 지능의 이름으로 ‘재등록’되었다.
 ―삐익. 등록 완료. 신규 마스터의 명령대로 신규 코드명 ‘상아’가 등록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시스템의 이양이 끝마쳐졌다. 상부에서는 곧 이곳 실험동을 폐쇄하고자 하니 그대가 원한다면 바로 실험을 시작하고 싶은데?]
 모든 과정이 끝마쳐지기가 무섭게 외계인은 호기심이 잔뜩 서린 목소리로 서연에게 선택을 재촉해 왔다. 그리고 서연은 그 말에서 이 제안이 외계 문명 전체의 제안이 아니라 관련자의 독단임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네놈··· 이거 네 단독 결정이었냐? 혹시 불법은 아니지?”
 [어차피 문명 관측 실험은 종료되었다. 그쪽 문명은 멸망하였음이 공식 확인되었고 웜홀도 이제 필요성이 사라질 텐데 독단이든 아니든 그쪽은 문명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나는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한다면 서로 간에 남는 장사가 아니겠던가?]
 “···나중에 걸리면 어쩔려고?”
 [그쪽과 우리 문명 간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일전에 말하였다시피 양자 간의 거리는 3억 광년에 달한다. 이 거리를 뛰어넘어 우리가 실시간 소통을 현재 진행하고 있는 것도 웜홀 덕분이지 우리가 그곳에 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가장 빠른 우주선을 이용한다 하여도 그곳까지는 정확한 좌푯값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항행에 지구 시간으로 3851만 년 이상이 소요된다. 웜홀이 파괴된다면 아무도 모른다.]
 “······.”
 처음의 무감정한 어조와 달리 재미있다는 듯한 감상이 가득한 외계인의 말에 서연은 잠시 할 말을 잃었으나 어쨌거나 틀린 말도 아니었으므로 곧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쨌거나 자신들의 문명을 되돌려 줄 선의를 베푼 이가 아니던가?
 “좋다. 그럼 더 기다릴 필요 없겠지. 바로 시작하자.”
 [좋다. 그럼 바로 작업을 시작하겠다.]
 “아, 그전에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그쪽 이름이라도 알려 줄 수 없나? 어찌 보면 우리 은인인데 말이야.”
 [흠, 내 이름은 그쪽 문명인의 언어 구조상 표현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문명의 이름이라면 그쪽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문명 이름은 [임펄리 문명]이다. 그쪽 언어로는··· ‘미래’라는 의미가 되겠군.]
 “임펄리라··· 알겠다. 그리고 고맙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어서.”
 서연은 피식 웃으며 진심으로 3억 광년 저편에 위치한 외계인에게 감사를 보냈다. 스스로의 욕망으로 자멸해 버린 인류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이들에게 서연으로서는 진심으로 감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서연의 감사 표시에 외계인인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약간은 기분 좋은(?) 기색으로 말을 이어 갔다.
 [···쓸데없는 말은 사절하지. 아직 실험은 성공한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나 또한 이 실험의 성과에 대한 학문적 탐구심으로 제안한 것이다.]
 피식.
 “그럼 그렇다구 해 두지.”
 [흠흠. 그럼 관련 실험을 시작하겠다. 약간의 충격이 동반될 수도 있으니 대비하도록. 통신은 이것으로 종료될 것이다. 귀 문명의 행운을 기원하지.]
 치지직.
 우우우우우웅.
 서연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외계인과의 통신이 끊기더니 곧 자신이 위치한 월면 기지 전체가 미약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실험의 시작이었다.
 
 ***
 
 우우우우웅.
 슈팟!
 “와···!”
 미약한 공명음이 지속되더니 일순간 투명한 물질로 만들어진 월면 기지의 천장으로 거대한 빛줄기가 치솟아 올랐다. 마치 만화에서나 보던 것과 같은 새하얀 빛줄기가 달의 하늘을 뚫고 솟아오르더니 저 멀리 갈색 지구를 향해 달음박질쳐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서연은 자기도 모르게 한 줄기 탄성을 내질렀다.
 슈우우우우웅!
 !!!
 그러나 그 광경은 곧이어 벌어진 경이로운 광경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치 파도가 번져 나가듯이 지구로 향한 빛줄기로부터 점차 새하얀 파도가 갈색 지구를 덮어 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새하얀 빛의 파도는 거대한 물줄기로 화해 차근차근 지구를 잠식해 나갔고 그 끝에서는 종전까지의 죽음만이 가득했던 갈색의 행성 대신 원래의 녹음과 푸른 해양이 마법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빛의 고리가 지구를 감싸듯이 죽음과 멸망을 되돌리며 죽어 버린 행성에 생명을 부여하는 장관, 그 압도적인 경이로움에 서연은 그 순간 문명 복원의 중압감도 잊은 채 순수하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단하다··· 이게 바로 외계 문명의 능력이라는 건가?’
 ―삐익. 모든 Sol-System의 임펄리 문명 자산이 귀속되었음을 확인드립니다. 이제부터는 해당 자산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삐익. 시간역전실험의 초기 위험 지점을 통과했음을 보고드립니다. 지금부터의 실패 확률은 1경분의 1로 은하단을 유지하는 핵심 9등급의 블랙홀의 급작스러운 생성을 제외하면 8시간 19분 28초 후 해당 실험은 예정대로 종료됩니다.
 그리고 때마침 이제는 서연의 부관이 된 인공 지능 상아로부터 태양계 내부의 모든 외계 문명 잔존 자산이 수습되었으며 시간 역전의 실험 또한 아주 순조롭게 초기의 위험한 상황을 돌파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정말 별다른 일이 없다면 인류가 화려하게 멸망시켜 버린 지구가 곧 제모습을 되찾는다는 의미였다. 덕분에 서연은 간신히 압도적인 지구 복원의 경이로부터 시선을 떼어 낼 수 있었다.
 “···이제 임펄리 문명으로의 통신은 완전히 불가능해진 건가?”
 ―임펄리 문명과 연결되는 웜홀은 완전히 붕괴된 상태로 더 이상의 통신은 불가능합니다.
 “쩝.”
 상아의 확신 서린 보고에도 서연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이제 인류는 우주상에 자신들만이 유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심지어 멸망의 구렁텅이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거리의 한계로 더 이상 소통이 불가능해졌다는 게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어쨌건 말이 통하는 이웃이라는 존재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안정감을 줄 수 있었으니 말이다.
 “혹시라도 지구 복원이 도중에 실패할 리는 이제 없겠지?”
 ―보고드린 바와 같이 실패 확률은 1경분의 1에 해당합니다. 급작스러운 차원 붕괴나 혹은 대우주급 블랙홀의 생성이 아니라면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그럼 안심해도 되겠네.”
 아쉬움을 달랜 서연은 혹시 모를 생각에 시간역전실험의 실패 가능성을 다시 한번 점검하였으나 상아의 확신 서린 보고에 곧 안심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지구 문명은 충분히 예정대로 복원할 수 있었으므로 서연은 소정의 목표를 달성한 셈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이 사라져 버린 죽음의 대지 대신 곧 가족과 친지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뭐, 그것도 핵전쟁이 재현되면 불가능하겠지만 말이야.’
 “상아, 네가 수습한 임펄리 문명의 잔존 자산을 브리핑해 줘. 선물을 뜯어봐야겠어.”
 한결 부담을 던 서연은 이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악동처럼 두 눈을 빛내며 상아에게 태양계에 남겨진 임펄리 문명의 잔존 자산에 대한 브리핑을 지시하였다. 선물 상자를 뜯어볼 시간이었다.
 
 ***
 
 자고로 옛말에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말이 있다. 공짜라면 그만큼 물불 가리지 않을 정도로 좋아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대용량(?)의 양잿물(?)을 받아 마시게 된 서연은 무턱대고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자신의 예상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외계 문명의 ‘클라스’ 때문이었다.
 “와··· 이게 대체 얼마야?”
 상아로부터 우리 태양계인 Sol-System에 잔류한 외계 문명의 자산을 보고받은 서연은 벌린 입을 닫을 수 없었다. 당장 기본적으로 항성계 방어를 위한 전력으로서 세간에 흔히 UFO로 알려진 전투 비행체 1천 척을 탑재하는 우주 모선이 1천 척에 달하고 있었고 이 외에도 지구 상공을 비행하면서 비밀리에 인류 문명을 관찰하기 위한 자동 비행 UFO가 10만 대에 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뿐인가? 여기에 이 모든 우주 전력들의 자동 정비와 계류를 위한 우주 기지가 태양계 각 행성&위성마다 설치되어 있었고 이를 총괄하기 위한 월면 기지가 달의 윗/뒷면의 경계에 설치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각 UFO는 또 개별체 별로 크기랑 성능이 어느 정도라고?”
 ―지구에서 UFO라 호칭되는 전투 비행체의 표준 규격은 지구상 미합중국의 엔터프라이즈급 항공모함과 동일합니다. 다만 모든 비행체마다 위상 차원 기술이 적용되어 실제적으로 3차원 물리 차원에 구현되는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
 급기야 개개의 UFO 표준 규격이 대략 미국의 엔터프라이즈급 항모와 맞먹으며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는 설명에서는 잠시 동안 질려 버려 할 말을 잊어버릴 정도였으니 외계 문명의 규모는 그야말로 서연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서연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공짜’를 얻어 낸 것, 서연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번쩍 든 채 소리 질렀다!
 “임펄리 문명 만세!!“
 
 ***
 
 “그러니까 이 모든 걸 조정하는 자동 시스템의 파트 중 하나가 바로 우리가 아는 외계인이라는 거지?”
 ―그렇습니다. 각기 여러 색상의 생체 안드로이드들이 각 UFO의 핵심부에서 시스템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커다란 대뇌 세포의 발달형이라고 보시면 되는데 각각의 독립된 지능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중앙 모선의 관제에 따라 움직입니다.
 개략적인 전력을 보고받은 서연은 내친김에 지구 재생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그동안 세간에는 미스터리로 알려진 각종 사실에 대해서 상아로부터 사실을 보고받아 나갔다. 평소 미스터리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할 만한 세계의 온갖 숨겨진 사실들이 줄줄이 상아로부터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알려진 몇 가지 진실은 정말 상식 바깥의 일들이었다.
 “그리고 인류에게 가끔 공개된 UFO 사진은 이 대뇌 세포들이 오작동을 일으켜 함선의 클록킹이 풀렸었기 때문이고. 더해서 몇 번은 지구상에 추락하기도 했었는데 이걸 미국과 러시아에서 연구하고 있다고? 외계 문명도 오류는 어쩔 수 없나 보네.”
 ―대뇌 세포의 오류는 지엽적이지만 가끔씩 발생하는 오류로 보통 10만 분의 1꼴로 발생합니다. 하지만 효율성을 떠나 무인 관측 시스템은 대뇌 세포 시스템이 기본으로 지정되기 때문에 그동안은 부작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태까지 20세기 초반 동시베리아 퉁구스카 지역과 1960년대 북미 로즈웰 지역에는 각기 한대의 UFO 조종 파트가 추락한 상태입니다.
 “회수는 안 하고? 그냥 빼 오면 되잖아?”
 ―지구 문명에 대한 관찰 업무가 우선이라는 기본 수칙에 따라 지상의 물건들은 따로 회수되지 않았습니다.
 “하, 대단하네.”
 서연은 질린 기색으로 외부 창 위쪽으로 비치는 지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재생 실험은 막바지에 이르러 아스라한 별빛뿐이 없는 심연의 우주 속에서도 고고하게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빛을 내뿜는 푸른 보석은 이제 완연하게 유혹적인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놀랍게도 더욱 엄청난 비밀들이 한가득 숨겨져 있었다. 무려 존재조차 의심되던 외계 문명과 심지어 미국과 러시아에서는 UFO의 조종 파트마저 획득해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일반인이었던 서연으로서는 경악할 수밖에 없던 일이었다.
 히죽.
 ‘하지만 이게 이제 전부 내 거라 이거지?’
 지구를 바라보던 서연은 자기도 모르게 히죽 웃었다. 통상적인 음모론의 확인은 정말 경악스러울 정도였으나 어느 정도 충격이 가라앉고 보니 이제 이 모든 게 자신의 것이 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외계인은 미국과 러시아가 가진 극히 일부의 수천 배에 달하는 본체를 가지고 있었고 이제 그것들은 온전히 서연 자신의 것이었다.
 ‘심봤다아아아!!’
 서연은 속으로 소리 죽여 환호성을 내지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짜릿한 흥분이 그의 등덜미를 타고 흘렀다.
 
 ***
 
 “일단은 관찰 업무는 범위를 축소한다. 그리고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대뇌 시스템들도 전부 무인으로 교체해 버리도록.”
 ―산하 전력의 시스템을 교체합니다. 30%··· 70%··· 100%··· 완료되었습니다.
 “엄청 빠르네···.”
 순식간에 100만 대가 넘는 전투 비행체의 모든 시스템을 오류가 많은 대뇌 시스템 대신 무인 시스템으로 교체해 버리는 상아의 끝내주는 일 처리 속도에 서연은 혀를 내둘렀다. 외계 문명의 능력은 정말 보면 볼수록 상상을 벗어나는 것 같았다.
 ―문명 관찰 범위를 축소 한계를 지정해 주시길 요청드립니다.
 “음, 그냥 지구 전체에 적당히 커다란 환경적 변화가 있나 체크하는 수준으로 맞추고 인류 문명의 동향에 포커스를 맞춰 줘. 그 정도면 적당하겠지.”
 ―범위 축소 완료되었습니다.
 “아, 그리고 미국과 러시아에 있는 우리 파편들은 즉각 회수하고 관련 정보들을 삭제해 버려. 전쟁을 벌여서 지구를 멸망시킨 놈들이 우리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게 좀 별로네.”
 ―회수와 관련 자료의 파기가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또한 서연은 외계 문명의 지구 관찰 범위를 축소하고 지구상의 외계 문명 조각을 모두 회수해 버렸다. 핵전쟁으로 지구를 멸망시킨 미러 양국이 이제는 자신의 것(?)이 된 임펄리 문명의 유산을 가지고 있다는 게 내심 불쾌해졌기 때문이다.
 “그럼 이젠 기다리기만 하면 되나? 재생 실험이 얼마나 남았지?”
 ―지구 재생 실험 완료까지 3분이 남은 상태입니다.
 “흠. 그럼 이제 핵전쟁 방지도 준비해야 되는데.”
 서연은 잠시 동안 고민에 잠겼다. 곧 지구 재생 실험이 완료된다는 말은 곧 있을 핵전쟁을 막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체첸 애들한테는 좀 억울하겠지만, 그래도 방아쇠를 애초에 당기지 못하게 만드는 게 맞겠지?’
 “처음 러시아의 핵 테러 지점에서 폭발하는 핵폭탄들을 모두 무력화해. 방아쇠에서 손가락은 때게 만들 수 있겠지.”
 이미 지구상 핵전쟁의 경과를 알고 있던 서연은 잠시 고민에 잠겼었지만 곧 아예 초반부터 방아쇠에서 손을 때 버리게 만들기로 결정하였다. 분리독립을 주장하던 체첸 반군으로서는 그들이 시도한 핵 테러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중요한 것은 핵전쟁의 방지였기 때문이다.
 ―명령을 수행합니다.
 슈팟.
 그리고 서연의 명령이 내려지자 곧 상아의 알림과 함께 월면 기지에서 5개의 빛줄기가 피어올라 지구상으로 쏘아져 나가더니 체첸의 핵이 배치된 러시아 5개 대도시 위로 내리꽃혔다.
 ―지정하신 핵무기의 모든 핵물질이 무력화 되었습니다. 곧 지구 재생 실험 완료됩니다
 “그럼··· 기다려볼까?”
 서연은 살짝 굳은 얼굴로 지구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하얀색의 빛줄기가 거의 사라져 가는 지구는 완벽한 푸른 행성으로 돌아와 있었다.
 
 ***
 
 “체첸 만세!”
 꾹.
 니콜라이는 눈을 감은채 손에 힘을 주었으나 기대했던 변화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함을 감지한 니콜라이가 다시 눈을 뜨자 그의 시야에는 어느새 그를 덮쳐오는 육중한 러시아 경찰들이 들어왔다.
 “잡아!”
 우당탕탕.
 그날 저녁 전 세계에는 러시아에서 시도된 체첸의 핵테러 시도 실패 소식이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오바마 미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깜짝 방문 소식과 더불어 속보로 알려졌다.
 
 ***
 
 지구 재생을 위한 과거역전실험은 상아의 정교한 관제하에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지구상 핵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던 체첸의 테러용 핵폭탄들은 서연의 개입으로 완전히 무력화되었고 지구는 멸망의 기억을 품은채 여전히 평이한 일상을 유지하였다.
 ‘일단 임펄리 문명의 유산을 수습하고 지구를 되돌렸다. 하지만 이대로 마냥 인류의 자정 능력만을 신뢰하고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가는 얼마든지 또다른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내려가기 전에 먼저 안전장치를 해 둘 필요가 있겠어.’
 그러나 서연은 바로 지구로 내려가지 않았다. 지구로 내려가기 전에 먼저 핵전쟁이라는 비극의 재발을 근본적으로 방지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핵전쟁으로 인한 지구 멸망을 눈앞에서 목격한 서연이었기에 이대로 인류의 자정 능력만을 믿고 핵무기들을 이전처럼 그대로 내버려 둔다는 것은 절대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었다.
 “상아, 지구상 핵전쟁의 재발을 막으려면 무슨 방법이 가장 좋을까?”
 ―가장 근본적으로 차단을 하시고자 한다면 지구상 모든 핵분열/핵융합 반응을 제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특수한 파장을 지구상에 덮어 버려 아예 기본적인 핵반응 자체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막아 버리는 것입니다.
 “지상의 모든 핵분열/핵융합 반응 일체를 제한한다?”
 이번에 지구를 멸망으로 몰아넣은 핵전의 엄청난 피해는 기본적으로 막대한 에너지를 내뿜는 핵분열/핵융합 반응에서 기초한다. 따라서 이 핵반응 자체를 막아 버린다면 앞으로 설사 전쟁이 발발한다 하더라도 재래식 무기만 사용이 가능해지는만큼 충분히 피해 규모를 제한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외에도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를 물리적으로 파괴하거나 혹은 핵전쟁을 기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각국의 지도자들을 저지하는 방법 또한 유효한 수단입니다.
 “흠···.”
 혹은 이미 상아에 의해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들이 파악되고 있었던 만큼 지구상의 ‘모든 핵무기’들을 물리적으로 제거하거나 아니면 핵전쟁 개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각국의 지도자들을 모두 설득/협박하여 아예 초장부터 싹을 뽑는 옵션 또한 있었다.
 “일단 지금 미국과 러시아 대통령의 위치는 각각 어디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현재 백악관저 집무실에 머무르고 있으며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시베리아의 보르쿠타(Воркута)의 전략핵 기지에 머물러 있는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전략핵 기지?”
 ―소비에트 연방 시절 전략핵무기가 보관되던 도시인데 인구 감소로 21세기 초 폐쇄된 이후 러시아 당국에서 이곳에 비밀리에 전략핵 기지를 설치하였습니다. 용도는 최고위층의 극비 피신용 지역과 반격 작전을 지휘하기 위한 벙커입니다.
 “그렇단 말이지.”
 상아의 보고를 들은 서연의 가슴 한편이 차갑게 식어 왔다. 금일의 핵 테러 사건으로 러시아의 독재자가 일단 전략핵 기지이자 벙커로 피신한 것 같았는데, 솔직히 그쪽 사정은 알 바 아니었고 하필 숨어 있는 곳이 전략핵 기지라는 말이 굉장히 거슬렸기 때문이다. 누구 때문에 지구가 멸망했었는데? 핵전쟁으로 멸망한 세상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려오는데 정작 멸망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핵 기지에 숨어 있다니, 자연히 서연으로서는 말이 곱게 나올수가 없었다.
 “그럼 일단 두 놈 다 이쪽으로 소환시켜. 면상보고 이야기부터 좀 해야겠네.”
 ―예스, 마스터.
 지이잉.
 곧이어 서연의 바로 앞 허공에 보라색 빛이 일렁이더니 당황한 얼굴의 두 남자가 나타났다. 언론에서 자주 보았던 아주 낯익은 얼굴의 소유자들이었다.
 “What the―?”
 “что(뭐)···?”
 버락 오바마와 블라디미르 푸틴은 급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당황하며 갑자기 자신들의 앞에 나타난(그들 입장에서) 서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이미 성질이 나 있다가 푸틴의 얼굴을 보자마자 배알이 꼬여 버린 서연은 그들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핵전쟁의 단초를 제공한 이들을 보자니 안 그래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속에서부터 한바탕 열기가 치솟아 왔기 때문이다. 서연은 새하얀 치야를 내보이며 그들을 향해 섬뜩한 미소를 지어 주었고, 시기적절하게 상아의 메세지가 전체 방송으로 들려왔다.
 ―동시 번역 시스템 가동. 말씀하셔도 좋습니다.
 “어서 와, 우주선은 처음이지?”
 “네놈은 누구냐!?”
 서연의 말에 푸틴은 오바마보다 한발 더 빠르게 반응하며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 들었다. 특수군에서 활동했던 경력 덕분인지 평시에도 권총을 휴대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서연에게는 이 모든 게 한없이 가소로울 뿐이었고 심상치 않은 장내의 공기를 파악한 오바마는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좌중의 눈치를 살폈다. 그로서는 일단 주변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눈앞에서 총이 나타났으니 사태를 지켜볼 심산 같았다.
 “성급하군. 뭐, 오바마 쪽이야 억울한 여지가 없지는 않으니까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도록 하고, 대신 먼저 주제도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미련곰퉁이부터 정리해 볼까.”
 “헛소리!”
 탕. 탕. 탕. 탕. 탕. 탕.
 서연이 자신을 바라보며 살기 어린 눈을 빛내자 순간 위기감을 느낀 푸틴은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현재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본능에 의존하던 폭급한 독재자답게 일단 눈앞에서 거슬리는 서연부터 처리하고 상황을 분석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푸틴의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었다.
 ―위험 감지. 보호 시스템 가동.
 팅. 팅. 팅. 팅. 팅. 팅.
 !!!!
 정확히 서연의 가슴으로 날아간 총알들이 난데없이 허공에 생성된 푸른색 방패에 맞더니 일순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사방으로 튕겨져 나간 것이다. 당연히 그 모습을 여과 없이 목격한 푸틴과 오바마의 표정은 그들의 상식선상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경악으로 물들었고, 서연은 그들 중에서도 특히 바짝 굳어 버린 러시아의 독재자를 바라보며 차갑게 조소를 날려 주었다.
 “그게 다야? 멍청한 불곰 새끼야. 이건 너무 간지럽잖아? 조금 더 반항해 봐. 놀아 줄게.”
 “······.”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나타난 푸른 방패로 총알을 날려 버리는 이해할 수 없는 서연의 이능을 목격한 푸틴은 서연의 이죽거림에도 마땅히 대응할 수 없어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적을 목격하자 그의 정치적 감각이 맹렬하게 위기 신호를 보내 왔기 때문이다. 서연은 이제 질린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푸틴의 멍청한 반응을 즐기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야 조금 상황 파악이 되나? 누가 앞뒤 분간 못 하고 멍청이처럼 날뛰는 무뇌 불곰새끼 아니랄까 봐 상황 파악도 못 하고 총질부터 해 대네. 형이 너한테는 쌓인 게 좀 많다.”
 푸틴은 핵전쟁으로 지구의 멸망이라는 최악의 참사를 시작한 놈이었고 투표 조작을 통해 정권을 유지하는 독재자였다. 서연의 기준에서는 애초부터 아무런 동정의 여지가 없었던 쓰레기. 거기다가 상아를 믿고 직접 총까지 맞아 주었으니 이제는 서연 자신이 푸틴에게 지구 멸망과 멍청한 반항의 책임을 묻는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너 때문에 지구가 그 개판이 되어 버렸었는데 그냥 넘어가면 그건 보살이지 사람이 아닐거야, 그렇지?”
 “그쪽은 대체 누구시오. 대체 무슨 말을 하는―.”
 서연의 말에 심상치 않은 기색을 눈치챈 푸틴이 다급하게 저자세로 돌변하였다. 독재자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익혔던 눈치 백단 스킬이 발동하며 일단 위기를 벗어나고자 재빨리 자세를 굽힌 것. 그러나 이미 시간은 지난지 오래였고 한번 쏟아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었다.
 “이미 늦었어. 넌 일단 닥치고 좀 맞자.”
 서연은 정말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까부터 치솟는 힘에 대한 통제를 완전히 놓아 버렸다. 자신에게 주어진 유산의 엄청난 규모에 깊게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일단 임펄리 문명의 유산을 수습하면서 덩달아 주어진 기본적인 마스터 보정으로 이미 범인을 아득히 뛰어넘게 된 자신의 신체에 대한 통제를 완전히 풀어 버린 것이었다.
 휙.
 그리고 재앙이 펼쳐졌다.
 쾅 퍽 빠작 우지직.
 퍽퍽퍽 푸화학.
 “끄아아아―#()$*!()@#*!(!)(@!#.”
 말 그대로 피와 살이 빠개지는 축제가 벌어지면서 인간이 낼 수 없는 최악의 절규가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하였다. 통제를 놓아 버린 채 마음껏 발산하는 서연의 본능적인 흉성 앞에서는 2억 러시아를 지배하는 현대판 차르의 위엄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그저 무력한 샌드백만 존재할 뿐이었다.
 “우욱―.”
 본의 아니게 피와 살이 튀는 축제의 유일한 관람객이 된 오바마의 얼굴이 공포와 악몽으로 일그러져 갔다.
 
 ***
 
 “후하― 이제사 좀 풀리네. 몰랐는데 나 좀 쌓였었나 봐?”
 ―아무래도 그런 큰일을 겪으셨으니까요.
 꿈틀꿈틀.
 서연은 자신의 발밑 피 웅덩이에서 꿈틀거리는 푸틴의 시체(?)를 일별하고는 상쾌한 표정으로 기지개를 폈다. 자기도 모르게 속에 스트레스가 꽤나 쌓였었던 건지 한바탕 운동을 하고 나니 좀 속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도 풀고 겸사겸사 지구 멸망의 단초를 제공한 혐오스러운 독재자에게도 그 대가를 치르도록 만들어 주었으니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움찔.
 덕분에 서연과 그의 사이에 널브러져 꿈틀대는 핏덩어리 시체(?)를 바라보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서연의 반응에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며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정치인으로서 위대한 미국이라는 기치를 들고 온갖 차별과 반대를 뚫은 채 뚝심 있게 개혁을 추진하던 그라 할지라도 폭력이라는 인간 본연의 공포에는 쉽게 초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오바마의 눈앞에서 한명이 피떡이 되어 널브러져 죽어 가고 있었으니 아무리 오바마라도 평정을 유지하는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 그럼 이제 우리들끼리 이야기를 나눠 볼까?”
 “무, 무슨 이야기를 말씀이십니까?”
 이제 서연이 자신을 바라보며 입을 열자 오바마는 최대한으로 내심에서 피어오르는 공포감을 내리누르려 필사적으로 노력하였다. 일단 상대는 피륙이 터져 나가며 반시체가 되어 버린 푸틴과 달리 자신에게는 대화를 하고자 하는 것 같았으니 최대한 공포를 가라앉히고 어떻게든 대화로 이 상황을 이해하고 풀어 나가기 위해서였다.
 “음, 일단 너무 무서워하지는 말라고. 아무래도 당신은 이쪽 쓰레기처럼 핵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고 투표로 선출된 정당한 국가 수반이니까 말이야.”
 톡톡.
 !!!
 서연이 급기야 자신의 발밑에서 미세하게 경련하는 푸틴의 시체(?!)를 톡톡 차며 말하자 오바마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서연은 이에 아무런 상관없이 오바마에게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어쨌건 간에 오바마의 죽음이 러미 핵전쟁의 중요한 단초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었고 더불어 현 지구의 슈퍼 파워인 미국의 리더인만큼 이곳으로 소환(?)한 것과 자신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뭐, 일단 간단하게 이야기할게. 일단 오늘 러시아에서 있었던 체첸의 핵 테러 미수 사건은 미수가 진짜였어. 러시아에서 핵 테러가 성공한거지. 덕분에 미국―러시아 간에 핵전쟁이 일어났고 그러다 보니 지구가 멸망해 버렸거든? 별 자체가 죽어 버린거야. 그걸 내가 간신히 되살렸고 말이야. 그러니까 적어도 그 피해 보상을 좀 받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 장치를 할 생각이야.”
 “해― 핵전쟁으로 지구가 멸망했다니요?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체첸의 핵 테러 사건은 미수로 끝났고 방금 전까지 저는 제 관저에서 잘 앉아 있었단 말입니다.”
 그러나 서연의 말은 잘 마무리되지 못하였다. 서연이 쏟아 내던 말중에서 결코 흘려보낼 수 없는 말을 들은 오바마가 화들짝 놀라며 혼란스러운 기색으로 강한 부정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하긴 오바마로서는 방금전까지 우크라이나에서 돌아오자마자 백악관에서 다음 일정을 고민하던 중이었으니 서연의 말을 황당한 헛소리로 취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물론 서연은 이에 맞장구쳐 줄 생각이 없었다.
 “미안하지만 사실이야. 지구는 핵전쟁으로 망했었고 내가 그걸 되살렸거든, 그리고 그쪽, 아까 귀국하면서 NASA로부터 천체 관측 오차를 보고받지 않았어?“
 “그걸 어떻게?!”
 서연의 지적에 오바마는 일순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귀국하면서 이미 NASA로부터 천체 시간 관측이 하루 이상 벌어졌다는 소식을 보고받은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원인을 알 수 없었기에 일단 일종의 초자연적 현상으로 결론짓고 여러 관련국들의 협조를 얻어 정보를 통제하려 하고 있었는데 상대가 그 극비 정보를 지적했으니 오바마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증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천체 관측이 하루 정도 오차가 난다는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지구가 멸망했다니요? 말도 안 됩니다!”
 “나랑 그쪽이 지금 여기에 있는 건 말이 되고?”
 “그게 무슨― 허억!”
 오바마는 자신과 서연이 일순 우주 공간상에 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까지 자신들은 분명 어떤 하얀색의 방에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심연의 우주 한가운데에서 자신들이 둥둥 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아저씨, 고개 들어 봐.]
 “!!!!!”
 마치 저 멀리서 울리는 듯한 서연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던 오바마의 두 눈은 상상조차 못 했던 광경에 휘둥그레져야 했다. 그의 바로 위에는 결코 믿을 수 없는 절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푸르름과 생명력으로 가득찬 별, 아득한 지구는 그의 바로 위에서 요요로운 푸르름을 뽐내고 있었고 사진으로만 보았던 압도적인 지구의 모습은 마치 그를 짓누를 것처럼 머리 위를 모조리 차지하며 장대하게 펼쳐져 있었다. 도저히 그 자신이 목격하고도 믿을 수 없는 장관이었다.
 “아―.”
 그러나 오바마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경탄이 안타까운 탄식이 바뀌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의 시야에서 압도적이고도 푸른 생명으로 가득찼던 지구의 모습이 일순간에 바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생명으로 가득찼던 오대양과 육대주의 위로는 하얀색 궤적 수만 개가 교차하기 시작하였고 궤적의 끝에서는 새로운 태양들이 별 곳곳을 불태우며 연속으로 발화하고 있었다.
 
 ***
 
 매일 같이 백악관저에서 보던 눈에 익은 지형,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를 교환하던 궤적들이 마치 물에 검은색 잉크를 타듯이 세계 곳곳으로 빠르게 번져 나가더니 마침내는 모든 대륙들에 하얀색 태양을 피어 올리며 종말의 꽃을 화려하게 만개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압도적인 핵전쟁의 광경이자 기록, 그러나 그 모든 종말의 기록을 바라보는 오바마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이 압도적인 죽음의 장관이 결코 영화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절절하게 인지해야 했다. 자신의 모든 감각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극이 결코 환상 따위가 아니라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
 그러나 푸르른 별의 곳곳에서 피어오르며 모든 대륙을 하얗게 물들인 폭발의 만개는 그저 진정한 파국의 전조일 뿐이었다. 돌연 북미 대륙 한복판에 이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빛 폭풍이 일어나더니 대륙이 두 갈래로 갈라지며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풍요와 문명으로 빛나던 대륙은 두 조각이나서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었고 그 여파로 북미주 양옆으로부터 시작된 메가 쓰나미는 온 지구를 뒤덮으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아시아, 오세아니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남극, 유럽까지··· 세계의 모든 곳은 물의 재앙 앞에 매몰되고 사라졌으며 메가 쓰나미는 고비사막에서 교차하며 육지란 육지는 모조리 삼켜 버렸다. 이미 그의 위에서 세계는 부정할 수 없는 결정적인 파국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바마는 그 압도적이면서 처참한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비명성을 내질렀다.
 “안돼···!”
 하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진 폭발들은 지속해서 지구를 종말로 밀어붙여 나갔다. 대지가 갈라지며 하늘 높이 솟아오른 세계의 모든 화산들은 대기에 유황 물질을 한가득 채워 넣었고 뒤틀린 대기의 흐름으로 침투한 태양빛은 전 지구를 뒤덮은 대양마저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이윽고 대양이 사라지자 생명의 고리가 연쇄적으로 부서지기 시작하였으며 인류가 건설한 문명은 지각 밑으로 빨려들어 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이미 이 단계에서 인류 문명은 그 흔적조차 사라진 것이었다.
 우주상에 떠올라 있던 모든 인공물들은 대기상으로 튀어오른 지각 파편들에 맞아 떨어졌고 하늘에서는 불덩어리들이 떨어지며 세기말의 종말을 구현하였다. 상상조차 하기 두려운 진정한 종말, 생명이 사라진 자리에는 오로지 죽음만이 남은 갈색의 별이 남아 버렸고 오바마는 넋을 잃고 그 모든 것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것은 진정 재앙이고 비극이었으며 실제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악몽이었다. 하지만 그의 직감과 영혼은 이 모든 비극이 진실이라는 것을 인지하며 비명과 절규를 내지르고 있었다.
 [어때, 저게 지구의 운명이었어. 인류가 스스로 저지른 결과였지.]
 “말도 안 돼···. 인류가 어찌···. 신이시여···.”
 진정한 재앙의 앞에서 오바마는 눈을 감고 신을 찾았다. 이것은 악몽일까? 아니다 너무나 실감이 났다. 이것은 자신이 본 것은 정말로 일어난 현실이다. 그럼 자신에게 이것을 보여 준 이는 누구인가? 멸망한 세계의 진실을 깨우치고 미몽 속에서 자신을 불러낸 참혹한 진실을 보여 준 이는 악마인가? 압도적인 현실감과 영혼의 떨림에서 어느새 오바마는 이 모든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설마···.’
 오바마는 문득 한 가지의 두려운 존재를 떠올렸다. 지구와 인류를 빚어낸 세계의 시작, 인류가 경외하고 우러러보는 단 하나의 존재. 그러나 실제조차 증명되지 않은 존재. 오바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경외를 담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몽 속에서 저를 일깨워 주신 당신께서는 혹시 신이십니까? 저는 죽음 뒤에 이곳에 있는 것입니까?”
 [하, 내가 신이냐고?]
 그러나 서연은 마치 질 나쁜 농담을 들었다는 듯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이며 오바마의 물음을 간단하게 부정하였다.
 [미안하지만 난 신 따위가 아니라 당신과 같은 인간이야.]
 “하지만 이건···.”
 오바마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이런 압도적인 진실을 보여 줄 수 있는 이가 신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신이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이 모든 게 지금 자신의 직감과 영혼이 알리는 것처럼 진실이라면 자신 또한 죽은 것일 텐데 그렇다면 자신은 지금 사후 세계에서 신과 만나고 있는 게 아니었던가? 그게 아니라면 대체 지금 자신 앞에 있어서 진실을 알려 주는 이는 누구란 말인가? 서연은 그런 오바마를 유심히 관찰하며 말을 이어 갔다.
 [당신들이 저지른 결과야. 세계는 멸망했었고 지구와 인류는 사라졌지. 어때, 내가 보여 준 진실이 마음에 들어?]
 털썩.
 “···현실이라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믿기지가 않습니다. 인류가 스스로 자멸하고 어머니 지구마저 이렇게 무너뜨리다니··· 오, 도저히 이 죄를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당신이 신이든 악마든 우리는 결코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주르륵.
 오바마는 털썩 무릎을 꿇더니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오바마는 모든 것이 멸망한 종말의 진실 앞에서 진심으로 인류의 오만을 후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오바마의 모습에 서연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한 번 더 믿어 줘?’
 사실 서연은 미러 양국의 대통령을 부르는 순간부터 대통령을 포함해 정부 각료 전체나 혹은 적어도 오바마와 푸틴 모두 핵전쟁의 책임을 물어 죽여 버릴 생각을 일부 가지고 있었다. 일반인의 삶을 살아왔었기에 살인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동시에 핵전쟁으로 멸망한 지구의 책임을 마지막 생존자이자 지구 복원의 주재자로서 자신이 누군가에게는 물어야 한다는 생각 또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론의 여지가 없는 푸틴과 달리 오바마의 경우에는 본의가 아니라는 측면 또한 일부 존재하고 있었기에 서연은 일단 당장 만나자마자 밟아 놓은 푸틴의 경우와 달리 오바마에게는 일부 진실을 알려 주고 상황을 지켜보았었다. 그의 처우를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오바마가 진심으로 경악하고 인류가 종말의 단초가 되었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후회하고 있었으니 서연으로서는 일부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것을 막을 수 있다면,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겠어?]
 “···!! 그렇다면 제 영혼이라도 드리겠습니다. 제발 지구를, 아니 인류를 살려 주십시오. 당신이 신이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제발!”
 서연의 말에 오바마는 진심으로 애원하였다. 그만큼 죽어 버린 지구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리고 그 원인이 바로 인류라는 것은 도저히 그로 하여금 이 상황을 견딜 수 없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티 파티로 대변되는 미국 기득권에 맞서는 그라 할지라도 지구와 인류 문명의 종말이라는 사실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인간일뿐이었고, 이런 진심 어린 오바마의 모습에서 서연은 자신의 생각을 결정지을 수 있었다.
 [하늘을 봐.]
 “오오!!”
 경이, 그것은 경이였다. 흐느끼던 오바마는 죽음으로 가득 찼던 지구 위에 새하얀 빛의 기둥이 어리더니 마치 환상처럼 온 지구를 차근차근 푸르름으로 물들여 가는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빛이 지구를 휩쓸며 죽어 간 대지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었고 갈색으로 물들어 썩어 가던 지구의 모습이 다시 녹색과 푸른색의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생명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던 대지 곳곳에는 다시금 천연색의 생명으로 재탄생하고 있었고, 푸른색의 대양은 마치 언제 그 엄청난 종말이 있었냐는 듯 생명의 고리를 품은 채 푸르름으로 빛나고 있었다. 마치 비디오 테이프를 되돌리듯 빛의 고리가 지나간 뒤에는 이미 지상으로 추락했을 우주의 구조물들과 새하얀 구름들이 되살아나고 있었고 생명이 약동치는 지구의 본모습을 다시 한번 빚어내고 있었다.
 생명이 되살아나는 기적이 온전히 그의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
 
 “어때, 이제 좀 믿겠어?”
 “물론입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대통령, 팍스 아메리카나를 이끄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서연의 말에 진심으로 감격하며 고개를 숙였다. 서연이 그에게 전해 준 진실을 직간적접으로 경험하게 해 주면서 이미 오바마는 서연의 말을 한치의 의심도 없이 믿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물론 갑자기 자기 집에서 멀쩡하게 있는데 납치되더니 불문곡직 옆집 조폭을 두드려 팬 납치범이 동네가 망했었는데 자기가 살렸다고 주장한다는 걸 무조건 믿는다는 게 우스운 이야기이긴 했지만 이미 증거를 목도한 오바마는 서연의 이야기에 완전히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그만큼 서연이 직간접적으로 경험시켜 준 지구 멸망에 대한 진실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인류가 저지른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21세기 지구에서 미국은 부정할 수 없는 지구상 유일의 초강대국이었지만 이미 모든 것을 놓은 오바마는 신인지 외계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간에 인류에게 또 다른 기회를 안겨 준 서연에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고, 덕분에 서연은 어색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여야했다. 서연이 그를 소환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어쨌든 지구를 살린 것은 임펄리 문명이었는데 면상에 철판 깔고 오바마의 답례를 받자니 나름 마음 한구석이 찔려 왔던 것이다.
 “흠흠. 뭐, 일단 사소한 건 넘어가고.”
 민망함을 삼킨 서연은 입을 가다듬었다. 이제 전쟁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미러 양국의 정상들을 불러들여 면담(?)을 거쳐 내심 처분을 결정지었으니 지구상에 핵전쟁을 막기 위한 안전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플러스로 겸사겸사 피해 보상도 좀 받을 생각이었고 말이다.
 “말씀만 하십시오.”
 “음, 일단 미국에서 우리 쪽 무인 비행체 일부하고 생체 안드로이드를 가지고 있는 건 우리가 모두 회수한 상태야. 이미 사라진 건 알겠지만 누가 가져갔는지는 알아 두라고.”
 “역시 인류를 구해 주신 분께서는 지구 바깥에서 오신 분들이셨군요. 원주인이 자신의 것을 찾아가는 것은 당연하지요. 얼마든지 가져가십시오.”
 “어, 음. 고마워.”
 마치 광신도처럼 격하게 고개를 끄떡이며 눈을 반짝이는 오바마의 대답에 서연은 떨떠름하게 답하였다. 그러나 어쨌거 이제는 오바마를 살려 두기로 하였으니 어느 정도 사정을 알려 주고 미국이라는 국가를 이용하는 게 더 좋아 보였으므로 서연은 떨떠름한 생각을 떨쳐 내고는 다음 용건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지구상에 다시는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할 생각이야. 애써 되살린 지구가 다시 망해서는 안 되잖아? 이건 그쪽도 동의하겠지?”
 “물론입니다. 애써 잡은 두 번째 기회를 날릴 수는 없지요.”
 오바마는 이번에도 별다른 이견 없이 동의하였다. 인류의 자정 능력에만 맡겼다가 벌어진 참극을 방금 목격하였었으니 이견이 있을 리 없었다. 어떻게든 지구상에서의 핵전쟁 위협을 사전에 분명하게 제거해 다시는 지구가 멸망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할 필요가 있었고, 여기에는 당연히 외계인(?)이자 지구를 되살린 서연만 한 적임자가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일단 핵무기들로 이번 난리가 났으니 지표면상에서 핵반응 일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해 버릴 생각이야. 내 입장에서는 가장 깔끔하고 심플한 방법이지.”
 “음···.”
 하지만 이어진 서연의 말에 오바마는 잠시 멈칫거려야 했다.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그는 서연이 말한 게 가능한 것은 차지하고서라도 일단 이 일이 진행될 경우 일어날 후폭풍이 줄줄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당장 서연의 말대로 일순 핵반응 일체가 지상에서 모조리 차단된다면 당연히 이것은 현재까지 인류가 건설하였던 국제 정치 지형부터 각국의 사정까지 엄청난 혼란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1차적으로 핵무력 위에 건설된 국제 정치 지형이 박살 나 무너지는 것은 당연했고 2차적으로는 핵발전에 의지하던 각국의 경제 구조 일부까지 연쇄적으로 무너지며 세계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게 뻔하였다. 당연히 이렇게 된다면 가까스로 금융 위기의 여파에서 겨우겨우 벗어나던 미국과 세계 경제가 그 충격을 버틸 수 있을리가 만무한 상황,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그는 이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버려 둘 수 없다. 어차피 핵전쟁으로 모두가 멸망한다면 경제 따위는 숫자 놀음에 불과하지 않은가? 최악의 상황이더라도 내가 목격하였던 지구 멸망이 다시금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여기에 동의하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역시 그가 목격하였던 지구 멸망의 충격은 너무나 거대했다. 죽어 버린 행성과 방사능과 독성으로 찌들어 버린 생명이 사라진 별의 모습을 떠올리자, 예정된 혼란 따위는 아주 사소하게 느껴진 것이다. 죽음만이 남은 별에서 경제 따위가 과연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며 돈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짧게 감상을 정리한 오바마는 굳은 얼굴로 동의를 표하였다. 일단은 최악의 경우라도 지구가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제 의견을 물으신다면 전 동의하겠습니다.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혼란이 필요하다면 감수하겠습니다.”
 “흠. 진심인가 보네.”
 서연은 오바마의 단호한 모습에 슬쩍 미소지었다. 뻔하게 예상되는 혼란과 그 와중에 있을 미국의 국제 정치적 손해들에도 불구하고 짧은 고민 끝에 바로 동의하는 그의 모습을 보자니 확실히 두 번째 기회를 주겠다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진심을 확인했으니 그 정도면 충분했다.
 “미안, 뻔하게 예상되는 국제정치적 혼란에도 동의하였으니 지구를 위하는 그쪽의 마음은 그 정도로 알아두겠어. 핵반응의 원천 차단은 일단 보류하도록 하지.”
 사실 당연한 말이지만 서연은 처음부터 지구상의 모든 핵반응을 통제한다는 첫 번째 제안을 실행할 생각이 없었다. 단순하게 핵전쟁을 막는다는 목적으로 지구 지표면상에서의 핵반응 일체를 모조리 막아 버렸다가는 핵 발전소에 의지하는 각국의 전력 업계부터 시작해서 세계 경제 한축이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핵 무력의 기초 위에 건설된 국제 균형추 자체가 중심을 잃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서연은 오바마에게 두 번째 안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핵 무력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무너뜨려 올 혼란이 짜증 난다고 해서 핵이라는 수단을 신뢰할 수 없는 인류의 자정 능력에만 맡겨 놓을 수 없다는 건 마찬가지야. 그러니 핵반응 일체를 통제하는 대신 앞으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지구상의 모든 결정권자들의 머릿속에 나노 머신을 박아 놓겠어. 어떤 국가 권력자라도 핵전쟁 명령을 내린다면 그 순간 그 인간과 속한 국가 상층부 전체의 머리가 다 터지도록 말이야. 아, 물론 가족들도 포함된거야.”
 서연은 환하게 웃으며 지구상 모든 권력자들의 생사가 바로 그 순간부터 자신의 통제 아래 들어올 것임을 선언하였다.
 
 
 # 2장. 작은 시작
 
 “더 이상 인류의 자정 능력만을 신뢰할 수 없으므로 비록 일부의 자유가 침해당한다 하더라도 기꺼이 동의하겠다라··· 확실히 괜찮은 사람이네.”
 간단한 선언(?) 이후 오바마와의 나머지 미팅(?)들도 아주 부드럽고 만족스러운 분위기에서 끝낼 수 있었던 서연은 꽤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일방적인 통고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잠시의 고민 끝에 간단하게 동의하였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지구상 최고(?) 권력자치고는 의외의 반응이었습니다. 마스터의 감상에 동의합니다.
 여기에 외계 기술로 만들어져서 그런지 이제는 능숙하게 서연의 보좌(?)역을 자처하는 상아가 마치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동의를 표하였다. 인공 지능이라지만 상아 또한 지성체로 분류가 가능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이 가능했기에 가능한 광경이었다.
 “뭐, 어쨌건 최소한 스스로 자멸해 버린 인류보다는 외계인(?)으로 보이는 내가 차라리 믿을 만하다는 거겠지. 잠깐, 그럼 내가 이제 지구를 정복한건가?”
 ―역사상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위업(?)을 달성하셨구요. 세계 정복(?)을 축하드립니다!
 서연은 장난스럽게 낄낄거렸다. 핵전쟁의 참화를 접한 오바마는 비록 자신을 포함한 지구상의 책임 있는 권력자들이 모두 일신의 자유를 구속당할지라도 지구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동의한 거였지만, 졸지에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머릿속에 나노 칩이 박히게 생긴 전 세계 강국 지도부들만을 놓고 보자면 서연은 사실상 세계 정복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아닌 말로 머리 터지기 싫으면 각국의 지도부들은 만약 서연이 정체를 밝히고 항복을 요구할 경우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럼 이제 지상으로 내려가시겠습니까?
 “이제 중요한 것들은 대충 끝났으니까 내려가야지. 나노 머신 살포는 마무리되어 가지?”
 서연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지구 복원과 핵전쟁의 책임자 처벌 및 안전장치 마련까지 끝난다면 사실상 월면 기지에서 자신이 할 일들은 모두 끝난거나 다름없었다. 때문에 진행 중인 나노 머신 살포만 끝난다면 곧바로 집으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나노 머신 생산 및 개조는 모두 완료되어 현재 대기권상에 살포 작업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작업 완료까지 총 34초가 남았습니다.
 “휘휴. 빠르긴 빠르네.”
 단순 관측 임무를 수행하던 월면 기지였기에 나노 머신과 같은 정밀 기계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계를 만들어 내야만 했다. 그런데 정밀 가공을 위한 기기의 건축과 나노 머신의 생산과 살포까지 이 모든 과정이 자신이 명령을 내린지 불과 3분 만에 이미 모두 완료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서연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이 압도적인 외계 문명의 위대함에 휘파람을 불었다.
 ―마스터, 그런데 마스터의 경호를 위한 밀착 호위 건에 대한 허가가 필요합니다.
 “밀착 호위?”
 상아의 요청에 서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임펄리 문명의 태양계 내 유산을 모두 수습하면서 이미 자신의 육체 성능은 범인 대비 5배 이상이라는 압도적인 수치로 괴랄하게 강화된 상태였던 만큼 굳이 지상에서의 경호가 필요한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하디만 상아는 단호했다.
 “지상에서는 나를 해칠 수 있는 게 이제 거의 없지 않아?”
 ―지상에서 만약 핵폭발이나 유성 충돌 및 자외선 조사로 인한 공격 등이 발생할 경우 거리 차이 때문에 보호 수단 기동까지 최소 0.2113초의 시간이 소모됩니다. 하지만 규정에 의거하여 마스터의 안전은 최우선 사항이므로 기동 시간을 0초로 줄여야만 합니다.
 “······.”
 핵폭발이나 유성 충돌 같은 위기 상황이 발생할 경우(이 위험의 현실화 확률 자체도 극히 낮았지만···) 달에서 지상에 지상에 있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을 발동하는 데 걸리는 0.2113초가 길다고 아예 밀착 경호를 허가해 달라는 상아의 요청에 서연은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려야 했다. 역시 이 압도적인 외계 문명의 규격에는 영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0.21···. 초? 여하튼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밀착 경호라면 바로 옆에 붙어 있겠다는거 아냐?”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가령 밀착 경호를 허가하시면 마스터의 상공에는 무인 비행체(UFO) 모선 한 기가 전담 배치되지만 위상 차원 기술이 적용되므로 현재의 3차원 물리 차원에는 절대 드러나지 않습니다. 또한 지상에서의 실시간 통신 기능이 지원되며 최악의 경우 원거리 서포트가 끊어진다 하더라도 외부로부터의 공격이나 충격파를 막아 내는 것은 물론 신체 내부의 밸런싱과 문제도 모두 자체 해결이 가능해집니다.
 “호오―.”
 한마디로 자신이 지구에 내려가는 순간부터 항상 UFO 천 대를 품은 모선 한 대가 자신을 집중 마크한다는 소리였다. 심지어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단순히 외부의 공격을 방어하는 것을 넘어 신체 내부까지 최선으로 유지하면서도 정작 위상 차원 기술의 적용으로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모선은 현실에 절대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으니 상아의 보고를 받은 서연은 바로 혹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완전 스토킹인데?”
 ―전 어디까지나 마스터의 보좌와 안전을 위해 존재하며 마스터의 안전은 저의 제1목적입니다.
 “쩝. OK! 그럼 경호 건은 맡기도록 할게.”
 ―감사합니다, 마스터.
 상아의 단호한 말에 서연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스토킹당한다는 느낌이 조금 없진 않았지만 어쨌든지 간에 상대는 임펄리 문명의 유산을 수습하면서 인수한 인공 지능(?)이었고 그 목적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었으므로 어느 정도는 감수할 만했다.
 “아, 그리고 이왕지사 일이 이렇게 진행되었으니 가족들과 내 주변 사람들도 모두 보호 범위에 넣도록 해. 미리미리 대비해서 나쁠 건 없겠지.”
 ―Yes, Sir. 가족 친치 분들 모두에게 독립 운용이 가능한 무인 비행체들을 배치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아드드― 그럼 할 일도 이제 끝났으니 내려가 볼까나?”
 이왕지사 아예 주변인들까지 모두 보호 범위에 집어넣은 서연은 기지개를 피며 가볍게 중얼거렸다. 큰일들을 대충 끝냈으니 이제는 다시 지상으로 내려갈 차례였다.
 “아― 그나저나 지상으로 도로 내려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UFO라도 타고 가야 하나?”
 ―아까 대통령들을 이곳으로 소환하신 것처럼 지구상으로의 물질 전송이 가능합니다.
 “아 맞다. 텔레포트가 있었지!”
 상아의 말에 서연은 두 눈을 빛냈다. 텔레포트라니! 아까는 분노에 눈이 뒤집혀 넘어갔지만 사실 이거야말로 판타지 소설과 공상 과학 소설에서 나오던 단골 소재(?)가 아니던가? 서연은 흥분으로 두 눈을 빛내며 상아를 재촉하였다.
 “그거 확실히 안전한 거지? 막 중간에 분해되거나 그러는 거 아니지?”
 ―···절대 아닙니다. 임펄리 문명에서 실용화부터 8,133년간 단 1건의 사고도 없이 이용하던 검증된 단거리 이동 수단입니다.
 “오오! 그럼 지금 당장 텔레포트해 줘!”
 ―텔레포트가 아니라 단거리 물질 전송입니다만···
 “당장!!”
 ―···지상으로의 물질 전송을 시작합니다.
 어느새 한쪽 주먹을 불끈 쥔채 두 눈을 빛내며 자신을 재촉하는 서연의 모습에 상아는 더 이상의 설명(?)을 포기하고는 그대로 물질 전송 시퀸스에 들어갔다. 그러자 곧 주위에서 기묘한 공명음이 울리더니 서연의 정면에 보라색 에너지가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에 유형화되기 시작하였다. 원래는 아무 전조 없이 가능했지만 실제 물질 전송을 처음 받아들이는 서연을 위해 상아가 배려하여 준비한 퍼포먼스였다.
 우우우우웅.
 “오― 이것이 바로 텔레포트!!”
 ―···물질 전송 시퀸스. 목표 좌표, 한반도 XXXX.YYYY.
 상아의 알림음과 함께 서연은 자신의 전면에서 응집되었던 에너지 덩어리들이 깨어지며 한순간 공간과 공간이 이어지는 장관을 목격할 수 있었다. 확실히 기대대로 지구 복원 못지않은 장관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고 찰나와 같은 시간이 영원히 흐르자―.
 쏴아아아―.
 어느새 서연은 자신의 옆으로 익숙하면서도 기분 좋은 산들바람이 슬며시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창문이 열려 있던 기억 속의 풍경 저 바깥으로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청명한 대기와 따스한 아침 햇살이 서연의 뺨끝을 톡톡 두드리며 도시를 잠에서 깨워 내고 있었다.
 “이거··· 상상 이상이잖아?”
 서연은 자신이 로또보다 더한 운을 쟁취했음을 느끼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지구였다.
 
 ***
 
 “좋아. 그럼 이젠 돈이다.”
 지상으로 내려와 일단 하루 종일 ‘침대 바깥은 위험해’를 외치면서 망중한의 여유를 즐긴 서연은 다음 행보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돈’부터 챙기기로 결정하였다. 지구를 멸망시킬 것이 아니라면 자본은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간에 가장 필수적인 기초였다.
 “상아, 현재 내가 끌어모을 수 있는 돈이 얼마나 될까?“
 ―2015년 현재 세계 GDP 총액은 총 74조 5,000달러이며 이 중에서 약 30% 정도의 규모가 지하 경제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사실상 돈과 현물을 무한대로 조달이 가능하므로 별다른 의미는 없지만 세계의 이목을 끌지 않고 편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자금은 대략 22조 달러 규모입니다.
 “22조 달러라··· 어마어마하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에 질문을 했던 서연은 잠시 질린 표정을 지었다. 세계 경제의 30% 규모에 이르는 지하 경제를 이용한다면 별다른 이목을 끌지 않고 22조 달러 규모의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그 이상도 가능하다는 말에 질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의 1년 GDP가 15조 달러 규모였으니 이제 지구의 화폐는 더 이상 자신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셈이었다.
 ―자금을 양성화할까요?
 “어― 음.”
 상아의 질문에 멍해졌던 서연은 잠시 더듬거렸다. 이건 뭐, 단위가 상상을 뛰어넘어 가니 말조차 잘 안 나올 정도였다.
 “이거 너무 많아도 문제네··· 일단은 의심받지 않을 정도로 한 500억 정도만 뽑아줘 봐.”
 서연은 소심(?)하게 일단 500억 정도만 주문하였다. 실제 자신이 끌어모을 수 있는 수치는 측정 불가능하였지만 아직까지 소시민적 관념에 머물던 서연의 기준에서 500억도 어마어마한 돈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정도라면 복권 당첨이라는 말로 어찌어찌 가족들을 설득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띠링.
 ―해외 자금 계좌 56,329,122개를 동원해 지시하신 500억 원을 마스터의 주계좌로 입금했으며 관련 거래 정보 또한 모두 통제 완료 되었습니다.
 “땡큐. 이걸로 그럼 나도 이제 합법적인 부자인건가?”
 휴대폰에 들어온 메세지를 확인한 서연은 자기도 모르게 실실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 애써야 했다. 비록 방금 답변을 들을 때도 자신의 인지 범위를 벗어나는 엄청난 단위에 얼떨떨 했었고 주문한 것도 500억 정도의 소액(?)이었지만, 정작 자신의 간단한 명령 한마디로 통장에 바로 500억 원이 꽂히는 것을 보자니 이 상황이 묘하게 웃기면서도 정말로 실감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 역전이라는 느낌이 이렇게 강할 줄은 상상조차 못 했었다.
 ‘간단한 명령 한마디에 500억이라, 하. 진짜 인생지사 새옹지마네.’
 이전에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하던 오백억이란 돈이 턱 하니 들어오는 것을 보자니 참으로 인생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인 것 같았다. 언제 내 인생에 이런 초대박이 터질 것이라 생각이라도 했었던가? 하루아침에 사는 세상이 지옥에서 아득한 천상으로 오른 기분이었다.
 ―마스터, 가족분들의 계좌로도 동일 금액을 전송할까요?
 “음, 그거 말구 오만 원권으로 한 10억씩만 준비해 줘. 복권 당첨되었다고 내가 가져다드리는 게 더 괜찮을 것 같네.”
 잠시 감상에 빠져 있던 서연은 상아의 추가 질문에 진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이제 자신의 처지가 극적으로 변하였으니 가족들 또한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도록 만들어 줄 차례였다. 아마 이따 저녁때가 되면 집이 한바탕 뒤집어지리라.
 
 ***
 
 이후 서연은 발전된 외계 기술로 평소에 쌓여 있던 몇가지 한(?)들을 풀 수 있었다. 십수 년간 지속된 외국어 교육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국민들 중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가 보이는 외국어 알레르기 반응을 외국어를 뇌에 새기는 방법으로 단 10초 만에 극복할 수 있었고, 심지어 그림과 노래 실력 또한 웬만한 가수와 예술가 뺨치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외계 문명이라는 크랙으로 현실 능력치를 최고 수준으로 업데이트한 셈이었다.
 “임펄리 문명 만세!”
 지식 전이 광선 한 방으로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일본어 등등 세계 주요 국가의 모든 언어를 단 10초 만에 올마스터해 버린 서연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구성되는 언어들의 향연에 그대로 두 손 들어 만세를 불렀다. 십수 년의 지겨웠던 외국어 공부에서 완전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오오! 이걸 내가 그렸단 말이야?!”
 뿐인가? 임펄리 문명이 기록한 인류 문명사의 주요 예술적 흐름과 능력을 고스란히 이식받은 서연은 단박에 세계적인 거장을 무시할 수준의 어마어마한 작품 능력을 갖출 수 있었다. 과거 기록을 기반으로 재구성된 만큼 선천적인 부분에 속하는 번뜩이는 창의성과 같은 감성적 능력을 강화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단순한 기술적 부분에 한해서는 세계적인 수준의 능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음치/박치였던 서연으로서는 임펄리 문명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이게 그― 누구였지? 레이 커즈와일이었던가 했던 사람이 말한 네트워크적 영생이란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건가? 난 단순히 영혼의 영속뿐 아니라 아예 육체까지 오프라인에서 최고로 강화한 거잖아? 진짜 대박이다.”
 단박에 평소 콤플렉스로 여기던 모든 능력치를 최고조로 올리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흘리던 서연은 문득 자신의 현 상황이 미국에서 ‘지칠줄 모르는 천재’라는 찬사와 ‘망상에 빠진 정신병자’라는 비판을 동시에 듣는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 예측한 네트워크 시스템을 이용한 영생의 삶보다 한발 나아갔다는 생각에 낄낄대었다.
 레이 커즈와일은 미래에 네트워크상에 영혼을 ‘업로드’함으로써 영생을 살아갈 수 있다 주장하였는데 지금 자신의 모습은 그가 말한 단순한 ‘네트워크적 영생’을 위한 사이버상의 강화를 뛰어넘어 현실 오프라인에서조차 마음대로 자신의 신체를 강화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영향력과 가능성 측면에서 이미 레이 커즈와일이 이상향으로 그리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지금 자신은 지구 최대의 미래학자가 예언한 인류의 기술적 성취보다 아득하고 실질적인 성취를 자신이 거둔 셈이었으니 레이 커즈와일의 예언을 보고 기대감에 흥분하던 서연에게 이 상황은 퍽 재미있는 것이었다.
 ―일단 레이 커즈와일이 주장한 네트워크상 ‘영혼’의 업로드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비교 대상이 될수 없습니다. 영혼이 머무는 ‘뇌’를 포함하여 육체가 사라지는 경우 해당 지성체의 존재 자체는 현재의 차원에서 완전히 배제되기 때문입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절대 다른 경우입니다.
 “그래? 좀 아깝긴 하네. 처음에 그 기사를 보고는 꽤나 흥분했었는데 말이야.”
 하지만 이어진 상아의 부연 설명에 자신의 착각(?)을 깨달은 서연은 약간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야 했다. 임펄리 문명을 계승하기 이전까지 서연은 그냥 평범한 일반인이었고, 때문에 언론에서 보도되었던 레이 커즈와일의 ‘기계적 영생’에 꽤나 감명을 받았었으나, 상아의 결론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상에 영혼을 업로드함으로써 영원을 살 수 있다니, 꽤나 매력적인 이론이지 않던가? 하지만 뇌속 자신의 기억을 네트워크상에 업로딩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나’라는 보장은 없었고, 만약 가능하다면 그것은 인류 영혼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여러모로 무리가 많았던 것. 상아는 단정적으로 선언하였다.
 ―디지털 영생을 사는 것은 뇌 속 기억의 단순 복제체에 불과합니다. 초보적인 인류 영자 학문의 수준을 생각해 본다면 진짜 영혼 업로딩이 가능하기까지 적어도 수백 년은 걸릴걸요?
 “하긴 디지털 영생이 가능하다 해도 그게 나일 수는 없겠지.”
 상아의 단언에 서연은 깔끔하게 포기하였다. 역시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다 할지라도 확실히 임펄리 문명과 지구의 예측은 넘을 수 없는 수준 차이가 있는 듯했다.
 
 ***
 
 “아버지, 선물이에요.”
 그날 저녁 서연의 아버지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아들의 선물에 황당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갑자기 그날 저녁 취준생 아들이 퇴근하는 자신을 주차장에서 붙잡더니 떡하니 선물이랍시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BMW―New 7 Class 한 대를 내놓은 것이다. 당연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이 차가 선물이라니? 대체 뭔 소리하는 거야?”
 “이 차 아버지가 갖고 싶으시다고 하시던 차잖아요. 제가 이번에 복권 당첨되었거든요. 아버지 생각나서 풀옵으로 한 대 뽑아 왔으니 나머진 집에 가서 이야기하고 먼저 한번 살펴보세요.”
 “허···.”
 실실 웃으며 억지로 키를 쥐여 주는 아들의 행동에 서연의 아버지 경인은 황당한 표정을 풀지 못한 채 자신 앞에 있는 차를 바라보았다. 평소 BMW 모델에 관심이 많았던 그였기에 나름 올해 나오는 이 New 7 Class를 탐내고는 있었지만 설마 그렇다고 이걸 선물로 받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었기 때문이다. BMW의 잘빠진 몸체가 그의 눈을 어지럽히며 마치 유혹하듯 빛나고 있었다.
 
 ***
 
 “···그러니까 이번에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네. 평소에 습관적으로 사던 거 부모님도 잘 아시잖아요. 운이 좋았어요.”
 “허허···. 이거 참.”
 서연의 부모님은 아들의 말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중산층으로 나름 부족함 없이 살아오긴 하였었지만 한번에 이런 커다란 행운이 그들을 찾아온 적은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복권 당첨이라니? 그들로서는 아들의 말에도 자신들에게 닥친 이 행운을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아, 그리고 이건 어머니 선물하고 두 분께 드리는 거예요. 한번 확인해 보세요.”
 “하···.”
 그러나 이번에는 어머니 선물이라면서 또 다른 차 키 하나와 10억씩이 찍힌 통장 두 개, 그리고 검정색 신용카드 두 장을 내놓는 아들의 모습 앞에서 결국 서연의 부모님은 그들에게 다가온 행운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한순간에 각 10억씩 무려 20억이라는 돈이 그들에게 넘겨진 것이다. 어머니가 걱정스레 물었다.
 “이건 너무 많은데··· 아니, 그보다 대체 얼마에 당첨되었길래 이렇게 주는 거니?”
 “액수가 꽤 돼요. 20억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구 누나한테도 한 십억 땡겨 줄 거니까 그거는 온전히 두 분만 쓰세요. 아, 그리고 그 카드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블랙카드(American Express Black Card)라는 건데 한도 무제한이니 필요한 건 그냥 긁으시면 되요.”
 “······.”
 현금 20억뿐 아니라 한도 무제한의 신용카드까지 떡하니 넘겨주면서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아들의 말에 서연의 부모님은 모두 잠시 동안 할 말을 잃은 채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야 했다. 이거 진짜 괜찮은 건가? 하지만 아들놈이 헛소리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결국 고민은 잠시 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고민하던 경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후우. 이건 너무 갑작스럽구나. 솔직히 좀 당혹스럽기도 하고··· 혹시라도 이상한 곳에 연관된 건 아니지?”
 “걱정 마세요. 아무 걱정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이제 그동안 못 즐기신 것도 즐기고 원하시는 것들 하면서 지내세요. 땀 흘려 번 건 아니지만 적어도 저에게 행운이 찾아왔다면 그건 이 세상 누구보다도 두 분께서 같이 공유하실 자격이 있어요.”
 “···알겠다. 그리 말하니 믿으마.”
 “여보! 하지만···.”
 간단하게 수긍하고 넘어가는 남편의 모습에 어머니가 약간 당황해하며 경인을 바라보았다. 평생을 주부로서 살아왔던 그녀였기에 급작스레 다가온 행운에도 여전히 익숙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경인은 그런 아내를 안심시키며 서연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당신이 무슨 마음인지는 알겠는데 우리 아들이야. 이렇게 단언하는데 더 이상 뭐가 필요해?”
 “그건 그렇지만··· 아직도 좀 얼떨떨해서요···.”
 “어머니. 걱정 마세요. 확실하게 복권 당첨된 거라니까요? 그러니까 걱정 마시고 마음껏 쓰세요. 적어도 이제 두 분은 제가 확실하게 모실게요!”
 “휴··· 알겠다. 그래, 내가 우리 아들을 믿어야지. 고맙구나.”
 결국 경인의 만류와 서연의 단언에 어머니 미진 또한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이 커다란 행운이 여전히 떨떠름하였지만 평생의 반려로 사랑하는 남편과 자식이 장담하니 여전히 잔존하는 약간의 불안감을 가라앉힐 수 있었던 것이다. 잠시 동안 그런 모자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경인은 다시 서연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 넌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여전히 취업할 생각이야?”
 “음···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의 물음에 서연은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답하였다. 자본을 확보하고 신체적 능력을 향상시키느라 이후의 행보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는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버지가 물어보시는 것은 어디까지나 부를 확보한 상황에서 이후의 행보를 묻는 거겠지만 실상 그 이상으로 상상을 뛰어넘는 부와 능력을 확보한 서연이었기에 이후 자신이 걸어야 할 행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심중에서 서연은 괴롭히는 한 가지 질문이기도 했다.
 “나는 내 아들인 너를 믿는다. 하지만 아버지의 입장에서 네가 넘치는 부에 휘둘려 인생을 낭비하지는 않았으면 하는구나. 앞으로 무엇을 하던지 간에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보기 바란다. 공부를 하던 세계를 여행하던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일을 함에 한 점 후회가 없으면 좋겠다.”
 “네··· 알겠어요.”
 걱정스러움과 대견스러움, 그리고 신뢰감이 섞인 경인의 진중한 말에 서연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하였다. 왠지 모르게 가슴 한쪽이 따스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현대갑질』 1-2권에 계속>

댓글(7)

창천낙화    
시작부터 다 가졌으니 남은건 플렉스 뿐이네...성취도 없고 성공도 없고 전개는 밑도끝도 없는 악당의 등장과 부숴버리는 내용이 반복되는건가
2020.08.17 13:44
꿀곰탱이    
외계인 있다잖어... 우주로 진출하것지...
2020.08.18 12:40
이즈사마    
정치성향이 너무 노골적임. 보수는 쓰레기고 노무현 문재인은 완전 대단한 인물로 그림. 소설에 현대정치를 대입시킨게 심하게 노골적이라 연재시에도 말이 많았을듯 싶은데. 적당하면 재미있게 보겠는데 심각하게 노골적이라 ...
2020.08.18 21:52
좋아좋아요    
어설픈 정치소설 그것도 장르소설은 읽다가 감정만 낭비하니 패스할랍니다
2020.08.19 21:13
멘탈갈림    
개쓰1레기 개병1신 똘추새기 아메리카 심시티보다는 이게 압도적으로 낫다
2020.08.20 07:18
파울라너    
이명박끄네보단 노골적으로 좋은 대통령이 맞지 이 빨갱이 새꺄
2020.08.21 00:10
대땅이    
선발대임 이거 정치성향 소설입니다 심하게 편중되었고 재미는 그닥입니다 감정적으로 쓴것 같네요 자세한 조사는 안하고 대충 표면적인 몇가지 사실로 복붙한 글입니다
2020.09.03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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