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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급 선수, S급 감독 되다! 1권 (1)

2019.07.08 조회 1,259 추천 10


 # 프롤로그
 
 
 “지금의 네 수준으론 당장 1군으로 뛰기엔 무리가 있어.”
 “······.”
 강건은 눈앞의 40대 중년인을 보며 두 귀를 의심했다.
 미하엘 오웨닝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고 함부르크 SV 감독으로 부임한 토르스텐 핑크.
 그런데 어째서?
 자단 테이블 너머에 앉아 있는 금발 머리칼의 핑크는 덕지덕지 자란 흰 수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재차 말했다.
 “냉정히 말해 자네를 당장 1군으로 기용할 수 없다는 소리야. 주전 센터백 자리엔 하이코 베스터만, 제프리 브루마가 있어. 그 외 벤치 자원으로 마이클 맨시엔, 슬로보단 라이코비치가 있지. 당장 다음 시즌이 시작되는 순간에 넌 1군은커녕 교체 명단에도 들지 못할 거다.”
 ‘이게 무슨······?’
 강건은 지금 이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핑크는 강건이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여겼는지 긴 한숨을 내쉬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알아, 알고말고. 지금까지 자넨 분명 이 팀에 필요한 선수였어. 주전이 아니어도 벤치를 오가며 팬들이 만족할 만한 활약을 펼쳤지. 하지만 지금은······ 그들에 비해 자넨 썩 매력적인 카드가 아니야. 경쟁력이 없어.”
 강건은 이와 똑같은 상황을 한 번 겪은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핑크가 다음으로 할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코치직을, 제안하시는 건가요?”
 강건은 핑크의 말을 가로챘다. 핑크는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코 포겔이 언질이라도 준 모양이군.”
 마르코 포겔은 함부르크 SV의 수석코치다. 시간이 갈수록 강건은 조금씩 진정되기 시작했다.
 ‘과거로 돌아왔어.’
 은근슬쩍 허벅지를 꼬집어봤지만, 눈물을 찔끔할 만큼 아팠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나 강건은 확신했다.
 ‘그것도 2010년 4월로······.’
 
 * * *
 
 강건의 꿈은 원대했다. 유럽 빅클럽을 호령해 최고스타 반열에 오르는 것.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볼 법한 꿈이었다.
 그러나 강건에겐 재능이 없었다.
 그는 중앙수비수였으나 발이 빠르지 않았고, 센터백치고는 그저 그런 182cm의 키에 점프력이 좋지 않아 공중전 경합마저 취약했다. 스스로 재능이 특출하지 않음을 알았기에 강건은 남들보다 두 배, 세 배가량 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노력만으로는 한계점을 돌파할 수 없었다. 재능은 천부적이라는 것만 뼈저리게 느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강건은 포기하지 않았다. 피를 짜내는 훈련을 거듭하던 그는 분데스리가 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함부르크 SV에 입단했다.
 고작 서브 자원이었지만······.
 하지만 이는 10년도 더 된 이야기다. 강건은 이후 3시즌 간 함부르크 SV에서 서브 선수로 뛰다 K리그로 복귀했고, 하부클럽을 전전하다 2020년 37세의 나이에 은퇴를 선언했다.
 그런데,
 “선택은 자네 몫이야.”
 지금 눈앞의 핑크는 10년 전 제안을 또다시 해왔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마르코 포겔을 통해 들었네만, AFC C 라이선스는 이미 보유하고 있다면서?”
 현역 선수로 뛰며 코치 자격증을 취득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있긴 하다. 대부분 은퇴를 앞둔 노장 선수들이 그러한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강건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AFC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부상으로 강제휴식을 취하는 동안의 일이었다.
 이는 아시아인이 UEFA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함이었다. 은퇴를 앞둘 시점엔 코치직도 고려해야 했기에.
 “내 제안에 응한다면 구단 측에서 UEFA B 라이선스를 취득할 수 있게 지원해주겠네.”
 UEFA B 라이선스를 취득할 경우 유럽 최상위 구단 유소년 지도자, 혹은 코치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토르스텐 핑크가 강건에게 이토록 코치직을 제안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축구선수로서의 재능보단 코치로서의 재능이 더욱 뛰어났으니까.
 그러나 강건은 10년 전, 핑크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27세,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나이였기에 그 제안에 모멸감마저 솟았다.
 하지만,
 “하겠습니다.”
 과거로 돌아온 강건은 일체 망설임이 없었다.
 
 # 과거로 돌아왔다
 
 어떤 이유에서 회귀하게 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강건은 그런 것 따위 개의치 않았다. 지난 몇십 년간 오로지 축구에만 목을 맸고 이렇게 10년 전 과거로 돌아왔다는 게 오히려 기뻤으니까.
 강건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토르스텐 핑크의 제안을 승낙했다. 몇십 년간 온몸의 피를 짜내는 훈련을 거듭해도 그의 한계는 고작 함부르크 SV였다.
 주전도 아닌 교체 선수로······.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감에 따라 선천적 재능의 벽이 너무 두껍고 단단하며 높다는 것만 뼈저리게 느꼈다.
 후천적 노력은 결단코 선천적 재능을 앞설 수가 없었다.
 함부르크 SV에서 FA로 풀려나 K리그로 복귀했을 때부터 강건은 매일같이 불안감을 껴안고 지내야 했다.
 ‘과연 내가 선수 생활을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을까?’
 K리그를 재기의 발판으로 삼아 다시 한번 유럽 무대에 발을 들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몇 년간 지속되었다.
 37세. K리그 하부리그 팀에서 은퇴하던 순간엔 10년 전 토르스텐 핑크의 제안을 거절한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뒤늦게 강건은 깨달은 것이다.
 선수로서는 백날 노력해봤자 빛을 볼 수 없다는 것을.
 반면에 코치라면 얘기가 달랐다.
 피치 위에서 대부분의 팀 동료들은 강건의 수비 조율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연습 경기에서뿐만 아니라 실전에서도 그랬다.
 나아가 동료들은 전담 코치가 있음에도 훈련에 관한 사항까지 강건에게 의지했을 만큼 그의 선수를 판별하는 안목과 코치로서의 재량은 남달랐다.
 
 * * *
 
 일주일 뒤.
 탓, 탓, 탓!
 강건은 거실 소파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노트북 자판을 연신 두드렸다.
 지난 몇 년간 선수 생활을 해오다 갑작스레 직업을 전향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밀려드는 건 지극히 당연한 감정이었다.
 그러나 현재 강건은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앞섰다.
 ‘나는 미래를 알고 있어.’
 나는 미래를 알고 있었다.
 그것도 10년 치에 해당하는 미래를.
 이는 앞으로 닥쳐올 고난을 헤쳐나가는 데 있어 매우 이롭게 작용할 터였다. 코치나 선수나, 그 외의 어떤 직업이든지 10년 치 미래를 알고 있다면 어떤 직업이든 도전해볼 만하잖은가.
 강건은 토르스텐 핑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며칠간 코치로서의 플랜을 짜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영입리스트였다.
 ‘미리 구체적인 영입리스트를 계획하는 건 필수야.’
 UEFA B 라이선스를 획득하더라도 당장은 성인 무대 감독으로 부임할 수 없었다. 애초에 UEFA B 라이선스로는 성인 무대 감독으로 부임할 조건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
 함부르크 정도 되는 클럽을 이끌려면 UEFA 프로 라이선스 자격증이 필요하다.
 그전까지는 코치, 혹은 유소년 감독을 임하며 틈틈이 자격증 공부에 열을 올려야 했다.
 ‘사전 물밑 작업을 통해 뛰어난 영건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말이야.’
 미래에 활약할 재목을 알고 있다는 것은 마치 로또를 맞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현재 강건이 작성 중인 영입리스트만 봐도 그렇다.
 
 [1993년생/ 마우로 이카르디/ 아르헨티나/ 바르셀로나 후베닐A]
 [1993년생/ 폴 포그바/ 프랑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유스팀]
 [1993년생/ 파울로 디발라/ 아르헨티나/ 인스티투토 데 코르도바 유스팀]
 
 이외에도 영입리스트엔 수많은 영건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마우로 이카르디는 남미 출신답게 동물적인 감각으로 득점 루트를 찾아가는 움직임이 매우 뛰어났다.
 2020년, 인테르나치오날레의 핵심 스트라이커로서 활약할 뿐만 아니라 몇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할 만큼 강건은 마우로 이카르디를 예의주시하고자 했다.
 무엇보다,
 ‘후베닐A에 속해 있으나 조만간 잘릴 거야.’
 이 시기, 바르셀로나의 감독 호셉 과르디올라는 마우로 이카르디의 재능이 썩 뛰어나지 않다고 판단하고는 그를 UC 삼프도리아로 임대이적시켰다.
 ‘실망한 이카르디와 그의 에이전트는 복귀 시기에 맞춰 삼프도리아와 완전이적을 체결할 테고 말이야.’
 호셉 과르디올라는 애초에 이카르디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었으므로 그가 완전이적 협상을 맺든 말든 간섭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 뒤, 이카르디가 인테르나치오넬레의 진정한 9번이 되리란 사실을 알면 두고두고 후회할 테지.’
 실제로 2020년,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전에서 맨체스터 시티는 인테르나치오날레를 에티하드 스타디움으로 불러들여 경기를 치렀다. 그리고 마우로 이카르디는 전반전에만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맨체스터 시티를 격침했다.
 팀이 대패하고 호셉 과르디올라는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 과거로 돌아갈 수 있었다면 난 그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했을 겁니다. 지금까지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맨체스터 시티의 스트라이커는 마우로 이카르디였겠죠.”
 
 ‘그러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건 나다.’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자 강건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더군다나 굳이 마우로 이카르디가 아니어도 강건의 영입리스트엔 앞으로 몇 년 안에 잠재력이 폭발할 유망주가 차고도 넘쳤다.
 베르나르두 실바, 라힘 스털링, 조든 픽퍼드, 에릭 다이어 등.
 알고 있는 미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강건은 새로운 꿈을 현실로 실현하고자 했다.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해 최고의 클럽을 구축하는 것.
 ‘이건 뭐······ 축구 시뮬레이션 게임이군. 큭!’
 
 * * *
 
 UEFA 코칭 라이선스는 4가지로 분류된다. Level 1 취득과정은 비교적 간단하다. 수료까지는 약 한 달여가 걸리지만, 실질적으로 코스 기간은 24시간이니까.
 Level 1을 취득하게 되면 주니어 선수들을 직접 지도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Level 2에서는 다양한 코칭 기술을 배우고 직접 선수 평가서, 훈련 계획보고서를 작성하는 등 보다 세부적인 절차를 밟는다.
 강건이 수료하고자 하는 라이선스는 Level 2보다 한 단계 높은 UEFA B 라이선스다.
 UEFA B 과정을 거치기 위해선 앞선 두 레벨 단계를 모두 취득해야 하나 강건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AFC C 라이선스로도 UEFA B 라이선스를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오늘인가?”
 지난 3년간 함부르크에서 좋은 관계를 맺은 수석코치, 마르코 포겔이 인자한 미소를 띠며 물었다.
 강건은 함부르크 주 인근에 있는 자택에서 한창 캐리어에 짐을 싸는 중이었다. 그러던 와중 마르코 포겔이 찾아온 것이다.
 포겔은 수석코치이자 강건의 옆집에 사는 이웃이었기에 시시때때로 이곳을 방문했다. 그렇기에 강건은 느닷없이 나타난 포겔을 보고도 별달리 놀라워하지 않았다.
 마저 짐을 쌀 뿐이었다.
 그러면서 작게 투덜댔다.
 “왜 하필 영국인지.”
 UEFA B 라이선스 취득과정 중엔 약 6주간 UEFA에서 랜덤으로 지정한 클럽에 파견돼 연수 과정을 밟아야만 했다.
 구단 운영부터 메디컬 닥터 임무, 선수 심리상담, 선수단 구성 등 구단 내 전반적인 대부분 임무를 직접 실습하는 것이다.
 강건은 사실 기분이 좋았다. 영국이라면 잠재력이 기대되는 유망주들이 넘쳐나지 않나. 대표적으로 토트넘 홋스퍼의 해리 케인이 있었다.
 ‘지금쯤 임대 뺑뺑이를 돌고 있겠군.’
 그 시기 토트넘 핵심 스트라이커는 피터 크라우치, 저메인 데포였다. 두 선수가 아니어도 해리 케인은 벤치에도 앉지 못했다.
 강건은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좁혔다.
 ‘3부 리그 레이튼 오리엔트FC에서 곧 임대 복귀를 앞두고 있다. 적어도 토트넘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아직 3년이나 남았군. 원래 일대기대로 흘러간다면 말이야.’
 당장 눈길을 끄는 건 해리 케인보단 루카 모드리치, 그리고 가레스 베일이었다.
 문득,
 ‘가만 보자.’
 강건은 오늘 날짜가 2010년 4월 7일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도 그럴 게,
 ‘베일이 포지션 변경하기 전이다······!’
 가레스 베일이 윙어로 활약하기 전 주 포지션은 윙백이었다.
 ‘지금쯤 베일은 베누아 아수 에코토와의 경쟁에서 패하며 벤치만 데우고 있을 시기야.’
 해리 레드냅은 사우샘프턴 FC에서 가레스 베일을 영입했음에도 초반을 제외하고는 선발로 자주 기용하지 않았다. 막상 영입해놓고 보니 수비적인 능력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강건에게 있어선 더없는 기회였다.
 ‘어찌어찌 잘만 연결되면 베일의 잠재력을 내가 먼저 터뜨릴 수도 있겠어.’
 해리 레드냅은 후에 가레스 베일을 윙어로 기용하며 주목받게 된다. 베일 또한 새로운 포지션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될 터였다.
 강건은 암만 생각해도 미래를 안다는 건 치트키를 입력하고 게임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독일을 떠나는 데 아쉬움이 남았다. 함부르크가 독일 분데스리가 내 중하위권 팀이긴 하나 유스 시스템과 훈련 시스템만큼은 유럽 빅클럽 못지않았으니까.
 이곳에서 토르스텐 핑크, 마르코 포겔의 옆에서 가르침을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능을 꽃피울 수 있으리라 보았다.
 그가 투덜댄 이유는 마르코 포겔과 한동안 떨어져 지내게 되어야 하는 아쉬움이었다.
 그런 강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르코 포겔은 끌끌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식견을 늘리는 건 여러모로 성장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될 거다. 비록 함부르크만 한 데가 흔치 않긴 해도 이번 연수로 경험을 축적한다고 생각하면 돼.”
 “빈말이라도 고맙네요. 아아, 그런데 연수 과정을 모두 거치고 나면 제게 부여될 직책은 뭔가요?”
 마르코 포겔은 강건에게 있어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K리그에서 활약하던 자신을 함부르크에 추천한 것도 포겔이었고, 3년간 그는 경기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었으니까. 강건은 일주일에 4번은 포겔의 자택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할 만큼 그와 친했다.
 주변에선 아버지와 아들이라 불렀을 정도였다.
 포겔은 어깨를 으쓱이며 거실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글쎄다. 보통은 코치부터 시작하겠지.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내가 어필할 거거든. 적어도 유소년 감독부터 시작하게끔 말이야. 내가 본 너는 충분히 감독부터 시작해도 될 만큼의 재량이 있으니까.”
 털썩, 하고 소파에 퍼지게 앉으며 포겔은 한쪽 눈을 찡긋거린다. 강건은 피식,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바로 그때였다.
 “배정된 클럽이 어디라고 했지?”
 강건은 꽉 찬 캐리어를 지퍼로 힘겹게 잠그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틀 전에도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요즘 자주 깜빡깜빡해서 말이야.”
 이내 강건은 그럴 수도 있겠다며 납득했다. 마르코 포겔은 50년생이 아니던가.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웠다. 요즘 부쩍 깜빡하는 일이 잦아진 것 같았기에.
 그러다 곧, 강건은 캐리어 가방을 현관 입구 앞에 가져다 놓으며 대답했다.
 “토트넘 홋스퍼입니다. 해리 레드냅 감독이 있는.”
 
 
 # 토트넘 홋스퍼
 
 
 08~09시즌, 토트넘은 부진의 늪에 빠지며 강등권까지 추락했다. 이에 다니엘 레비 회장은 감독을 포함해 단장 등 코칭스태프 상당수를 한꺼번에 경질하는 강수를 두었다.
 2005년, 사우샘프턴 감독 생활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던 해리 레드냅은 고심 끝에 토트넘 지휘봉을 잡게 되었고 그 시즌 강등권에 빠졌던 토트넘을 중위권까지 끌어올리는 지략을 뽐냈다.
 그리고 09~10시즌.
 해리 레드냅이 이끄는 토트넘은 애스턴 빌라,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에버턴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며 리그 4위로 우뚝 올라섰다.
 “09시즌을 앞두고 우리는 포츠머스 FC에서 활약 중인 피터 크라우치, 니코 크란차르를 영입해 더블 스쿼드를 구축했다.”
 토트넘 홋스퍼의 홈구장인 화이트 하트 레인에 도착한 강건은 구단 측에서 제공한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1군 훈련장에 출근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눈앞에서 수석코치 팀 셔우드가 강건을 포함한 3명의 연수생에게 토트넘의 일대기에 대해 읊어주고 있었다.
 “물론 이적이 있으면 방출도 있는 법이지. 우리 회장님께선 워낙 계산적인 인물이시라 지출이 발생하면 그만한 수익도 발생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이거든.”
 2010년 4월 8일.
 33라운드 헐 시티 AFC와의 대전이 불과 5일 남은 시점이다. 당장 헐 시티에 대한 대응책을 구상해도 모자랄 판이었으나 팀 셔우드는 구태여 연수생들을 호출했다.
 이는 해리 레드냅의 지시사항이기도 했다.
 런던 북부 토트넘 땅에 발을 들였으니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한시도 쉬지 말고 움직여야 한다나?
 거기다 감독 다음으로 중요 직책이라 불리는 수석코치가 직접 나선 이유에 대해선 팀 셔우드, 본인이 직접 밝혔다.
 “내 후배들에 대한 선배의 예의지.”
 그렇게 말하는 팀 셔우드의 두 뺨은 붉게 상기되었다. 코치 연수생이 토트넘 홋스퍼에 방문한 게 자그마치 1년 만이라나?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세 사람을 바라보는 셔우드의 눈빛엔 애정이 넘쳐났다.
 그 뜨거운 시선 대부분이 강건을 제외한 두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렇다고 강건을 매몰차게 바라보는 건 아니었다. 그저 두 사람에 비해 애정이 조금 덜한 정도였다.
 힐끗, 강건은 눈동자만 굴려 옆에 앉은 남자를 살펴보았다. 금발머리칼을 짧게 기른 영국 출신의 남자는 카일 에브리엄. 2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동글동글한 눈, 새하얀 피부 등 앳된 티를 벗어나지 못해 10대 후반으로 보일 만큼 동안이었다.
 무엇보다 에브리엄은 같은 UEFA B 라이선스 연수생이자 해리 레드냅과도 꽤 친분이 두터운 인물이었다. 에브리엄의 아버지가 해리 레드냅의 몇십 년 지기 친구였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좌측 철제의자에 나란히 앉은 독일 국적의 미하엘 뮐러에게 들었다. 뮐러는 186cm 다부진 체격에 구불구불한 검은 머리칼을 지닌 청년이었다.
 겉으로만 보면 미식축구 선수 출신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만큼 건장한 신체를 지녔다.
 ‘음, 조금은 편애가 있을 것 같군.’
 당장만 봐도 그렇다. 팀 셔우드는 에브리엄과 뮐러에게만 꽤 많은 질문을 건넸고 강건은 입을 꾹 닫은 채 관중마냥 두 눈을 끔뻑이며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그들 중에서도 에브리엄에 관한 질문이 70%를 차지했다.
 한참을 사적인 질문과 토트넘 홋스퍼에 관해 침을 튀겨가며 말하던 팀 셔우드는 끝에서 멀뚱히 앉아 있던 강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토트넘 홋스퍼에 온 것을 환영한다, 강건. 개인적인 바람으론 여기서 많은 것을 배워 갔으면 좋겠군.”
 그게 강건에게 건넨 첫 대화이자 마지막 대화였다.
 
 * * *
 
 미하엘 뮐러, 카일 에브리엄, 그리고 강건은 토트넘 구단 측이 제공한 코치 숙소에서 함께 생활하게 되었다.
 팀 셔우드와의 만남이 끝나고 막 숙소 입구에 발을 들였을 때,
 “너무 신경 쓰지 마.”
 뮐러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며 강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강건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팀 셔우드 말이야. 너를 약간 깔보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잖아. 거기에 상처받지 말라고. 그 사람 원래 눈빛이 아니꼬운 거니까.”
 ‘그런 것치고는 너희들한테 향한 시선은 애정이 넘쳤다고.’
 뮐러의 말은 사실이었다. 강건을 바라보는 팀 셔우드의 눈길엔 약간의 애정이 존재하긴 했으나 기대는 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리고 강건은 그 이유를 모르지 않았다.
 ‘동양인 출신이 UEFA B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
 “토트넘 홋스퍼를 거쳐 간 동양인 코치만도 3명이라던데. 그들 모두 도중에 포기했다고 들었어.”
 뒤이어 들어온 카일 에브리엄이 대화에 껴들었다. 팀 셔우드와 마주했을 때만 해도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천진한 미소를 짓고 있던 에브리엄은 어느덧 강건과 뮐러의 앞에선 냉정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전형적인 가식쟁이인가?’
 카일 에브리엄은 우측의 1인 침대에 털썩 앉고는 말을 이었다.
 “강건, 선수 출신이었다며? 그런데 왜 갑자기 코치로 전향할 생각을 한 거지?”
 느닷없는 질문에도 강건은 무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선수로서 재능이 없었으니까.”
 “그럼 코치로서는 재능이 있다는 건가?”
 툭툭 쏘아대는 듯한 말투부터가 명백한 도발이다. 옆에 있던 미하엘 뮐러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중재하려 했으나,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강건은 씨익, 입꼬리를 슬며시 끌어올리며 재차 답변했다. 그런 자신감 철철 넘치는 모습에 에브리엄은 잠시 말없이 강건을 올려다보더니 이내 푸우, 하고 입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어 에브리엄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캐리어 짐을 풀며 한 마디 더 덧붙였다.
 “그전까지 과연 버틸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 이곳, 정말 만만치 않거든.”
 바로 그때,
 “자자, 내일부터 실습이니까 오늘은 푹 쉬자고!”
 막 강건이 무어라 말하려던 바로 그 순간, 미하엘 뮐러는 강건과 에브리엄 사이를 잽싸게 가로막으며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 * *
 
 4월 9일.
 오전 8시부터 1군 훈련장에 출근한 세 사람은 현 사령탑인 해리 레드냅, 그 외 코칭스태프, 그리고 선수단과 인사를 나누며 본격적인 실습에 돌입했다.
 세 사람에게 제일 먼저 하달된 임무는 선수 상담이었다. 훈련계획에 참여하려면 이곳 토트넘 홋스퍼의 선수 개개인 특성과 성향을 알아야 하는 건 당연한 절차였다.
 코치나 에이전트 역시 선수를 관리하는 직책인 만큼 심리상담 자격증은 필수요소 중 하나였다.
 토트넘 홋스퍼에는 3명의 심리상담사가 존재했다.
 강건에게 배정된 멘토는 40대 중반의 에릭 워커였다. 그는 토트넘 홋스퍼에서 지난 8년간 스포츠 심리상담사로 활동해 왔을 만큼 선수단 내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선수 개인에 맞는 훈련계획을 구상하고 도입하는 것만이 코치 임무의 전부가 아니야. 선수의 멘탈을 관리해주는 것 역시 코치가 해야 할 의무지.”
 강건은 워커의 말에 귀 기울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훈련장 한편을 거닐면서 계속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곳 토트넘 홋스퍼에는 따로 상담실이 존재하지도 않아. 일상에서의 상담을 추구하거든. 지금처럼 훈련에 임하는 와중에도 선수가 필요로 하면 우린 그 자리에서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나간다고.”
 1군 훈련장 피치에선 한창 선수들이 인터벌 트레이닝 훈련에 임하는 중이었다.
 그중에는 미래의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게 될 루카 모드리치, 가레스 베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읍.
 순간 군침이 돌았다. 머지않은 미래에 월드클래스로까지 성장할 잠재자원이 눈앞에 떡하니 있지 않은가.
 그뿐이랴.
 ‘카일 워커······!’
 이번 시즌 셰필드 유나이티드에서 영입됐다던 카일 워커 또한 1군 훈련장에서 열심히 땀을 빼고 있었다.
 ‘여긴 다이아몬드 광산인가?’
 입꼬리가 씰룩 씰룩 끌어 올라가던 바로 그때,
 “그리고 강건, 자네가 처음으로 마주하게 될 녀석이 바로 저 녀석이야.”
 에릭 워커가 가리킨 검지 끝을 눈으로 좇던 강건은 이내 두 눈을 부릅떴다. 워커가 가리킨 방향엔 다른 누구도 아닌 가레스 베일이 있었다.
 ‘오, 갓!’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은 강건이었다.
 “녀석은 사우샘프턴에서부터 눈여겨보던 자원이었어. 레프트백으로 촉망받는 유망주이자 한 시즌 5골을 뽑아냈을 만큼 공격성이 뛰어난 선수지.”
 2007년 가레스 베일은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하였다. 첫 시즌부터 해리 레드냅에게 중용된 베일은 레프트백이면서도 2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공격성에 반해 수비적인 능력은 형편이 없었다는 게 흠이라면 큰 흠이었어. 첫 시즌 후반기 들어서부터 가레스 베일의 패턴을 분석한 상대 팀이 우측면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했고 베일은 수차례 뒷공간을 내어주며 벤치 신세로까지 밀려났으니까. 더군다나 시즌 종료 직전 버밍엄시티와의 경기에선 파브리스 무암바의 거친 태클에 발목 부상을 당하며 시즌 아웃 판정까지 받았다고.”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후 이형표, 베누아 아수 에코토에게도 밀린 가레스 베일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 유망주에서 탈피하지 못한 그저 그런 선수로 전락했다.
 피치 외각을 걷던 에릭 워커는 곧 걸음을 멈추며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다.
 “자네가 가레스 베일을 전담하게. 녀석의 고민이 무엇인지 들어주고 최선책, 혹은 차선책이라도 알려주는 거야.”
 바라던 바다!
 
 * * *
 
 “후욱, 후욱, 후욱······!”
 4 : 4 대인방어 훈련을 끝으로 오후 훈련까지 모두 종료되었다. 가레스 베일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피치 위에 털썩하고 주저앉았다.
 이번 시즌 베일은 시즌 초부터 2개월 간 부상으로 결장했고, 복귀했을 땐 에코토에게 밀려 전반기 내내 벤치 신세를 져야만 했다.
 후반기 들어선 간간이 교체 출전하긴 했으나 이는 가레스 베일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고작 후반 85분, 87분, 시간 지연 용도로 투입되는 게 전부였으니까.
 베일은 동료 선수들이 모두 떠나고 나서도 한동안 피치 한가운데 대자로 드러누운 채 상념에 빠져 있었다.
 사우샘프턴 시절만 해도 언론에선 새싹부터 남다르다, 사우샘프턴의 좌측면 지배자가 나타났다는 등 그를 찬양하기 바빴다.
 43경기 5골 12어시스트.
 사우샘프턴에서 두 번째 시즌 만에 기록한 가레스 베일의 공격포인트다. 그것도 레프트백으로.
 그해 베일은 챔피언십 베스트일레븐 명단에 당당히 들었고 팀은 프리미어리그 진출에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베일은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한 것을 후회했다.
 
 “가레스 베일 자책골! 토트넘 1 : 2 역전패!”
 “해리 레드냅 ‘가레스 베일은 아직 뛸 준비가 되지 않았어.’”
 “토트넘의 No.3 가레스 베일, 베누아 아수 에코토와 등번호 교체.”
 
 ‘이대로는 안 돼.’
 토트넘에서의 지난날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한곳이 미어졌다. 에이전트인 조나단 바넷에게 이적을 요청할 만큼 이곳 생활은 불만족스러웠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왼발에 강점을 지녔고, 타고난 스피드도 있으니······ 충분히 좌측면에서 위력적인 공격력을 뽐낼 수 있겠는데?”
 “······!”
 가레스 베일은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휙 하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저지 차림을 한 검은 머리칼의 청년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세 걸음 앞에서 멈춰선 강건은 씨익 하고 슬며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누가 뭐래도 넌 토트넘의 핵심자원이야. 그러니 그런 울적한 표정 짓지 말라고. 어울리지 않으니까.”
 
 * * *
 
 “뭐······ 라고?”
 가레스 베일은 어처구니없는 미소를 머금었다. 베일은 사우샘프턴 시절부터 여러 차례 코치 연수생들을 마주했다. 개중엔 현역으로 뛰다 은퇴한 선수도 있었고, 처음부터 코치 세계에 뛰어든 이들도 있었다.
 대체로 선수들은 전자를 훨씬 우대하는 편이었다. 현역에서 뛰다 은퇴한 선수들은 그만큼 선수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고, 무엇보다 선배였기에.
 반면에 선수로서의 경험이 없는 초짜 코치들은 선수들과 현역 선수 출신 코치들에게 은근히 무시당하는 경향이 많았다.
 강건은 조금은 다른 유형이다. 현역 선수였지만 27살의 나이에 이른 은퇴를 선언했으니까.
 오히려 그 부분에서 토트넘 홋스퍼 선수들은 암묵적으로 그를 깔보고 있었다.
 가레스 베일도 마찬가지였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 SV는 몇십 년간 1부 리그에 머문 명문 팀이었다. 그러나 함부르크 SV는 오랜 시간 중하위권 순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정체되어 있었다.
 최근 들어선 중하위권도 위태로울 만큼 외줄 타기를 하는 중이었다.
 더군다나,
 ‘백업······.’
 가레스 베일은 강건이 함부르크 내 서브 자원이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3년 전 K리그에서 이적했으나 막상 출전한 횟수는 채 50경기도 되지 않는 비운의 수비수. 그마저도 모두 교체로 출전했다.
 함부르크엔 하이코 베스터만, 제프리 브루마라는 핵심 센터백이 버젓이 버티고 있었으니까.
 토트넘 홋스퍼 선수들의 시점에서 보자면 그 두 사람은 썩 뛰어난 자원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강건에 대한 베일의 인식은 썩 좋지 않았다.
 그들에게조차 밀린 강건이 선수 생활을 포기하고 도피하다시피 차선책인 코치로 전향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으니 말이다.
 그러다 베일은 기분이 퍽 상했다.
 강건이 말한 대로 그는 스피드와 크로스에 장점을 지닌 선수다.
 하지만 지난 시즌부터 그 스피드가 자신의 발목을 붙드는 꼴이 되지 않았던가.
 무지막지한 스피드를 활용한 오버래핑이 더는 상대 선수들에게 먹히지 않았다. 패턴을 읽힌 거다. 그 탓에 베일은 자신의 수비지역을 이탈한 상태에서 볼을 수차례 강탈당했고, 상대는 베일이 빠진 공간을 적극적으로 파고들었다.
 주변 동료가 커버플레이에 돌입한다고 하더라도 늦었다. 상대는 그마저 예상하고 일찍이 베일이 돌파를 시도한 순간부터 전방에 여러 명의 공격수를 배치했다.
 수적 우위를 점한 상대는 베일의 이탈을 역으로 이용해 토트넘을 몰아세웠다.
 팬들은 비난을 퍼부었고, 첫 시즌 베일을 중용했던 해리 레드냅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돌아섰다.
 지난 시즌 말미에 당한 부상은 이번 시즌까지 이어지며 2개월이라는 공백기마저 가져야만 했다. 이후 전반기가 끝나갈 무렵 가까스로 부상에서 회복해 복귀했으나 그때엔 베누아 아수 에코토가 완전히 주전 자리를 확보하고 난 뒤였다.
 베일은 에코토가 갑작스러운 부상을 당하지 않는 한은 선발로 뛸 수조차 없을 만큼 입지를 잃었다.
 혹은 다소 중요도가 떨어지는 경기에 주전 자원의 체력 안배 차원에서 투입되었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던 베일은 라운드가 가면 갈수록 자신감을 잃어 갔다.
 그런데,
 “벤치만 데우기엔 네 재능은 너무 아까워.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래서 지금 이렇게 울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잖아.”
 베일은 으득 하고 이를 갈았다. 느닷없이 나타난 강건은 조금 전부터 성질을 박박 긁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는 웃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장단점을 모두 꿰고 있다는 듯한 그 오만한 모습에 베일은 더욱 화가 들끓었다.
 “퇴근하실 때 아닌가요?”
 베일이 화를 꾹꾹 참으며 한 마디 내뱉자 강건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려고 했는데 네가 발목을 붙잡지 뭐야.”
 “제가······ 발목을 붙잡았다고요?”
 그럴 리가 없다는 완강한 시선에 강건은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이거,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기세군.’
 베일은 강건과 거리를 두려 하고 있었다. 두 눈에 힘을 팍 준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강건은 서운한 마음이 들기보다는 오히려 신이 났다.
 길들지 않은 새끼맹수를 보는 것 같았기에.
 베일의 플레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듯,
 “스피드, 크로싱. 그게 네 장점이긴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해.”
 “지금······ 시비 거는 겁니까?”
 “시비라니, 난 코치로서 네게 조언해주는 것뿐이야. 비록 연수생 신분이라도 엄연한 토트넘 홋스퍼의 코치니까. 지금은 네 플레이에 대한 일종의 교정을 요구하는 거고.”
 “머나먼 이국땅에 와서 외로운 것 같은데 대화 상대가 필요하면 공창 지역이나 가시죠. 바쁜 사람 붙잡지 마시고.”
 “가레스, 넌 가봤나 보지?”
 “그럴 리가!”
 베일은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키다 말고 발끈했다. 두 뺨이 붉게 달아오른 것을 보며 강건은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바로 그때,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하는 건 어때?”
 강건의 끌어 올라갔던 입꼬리가 일자로 늘어졌다. 그 순간 강건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가레스 베일은 갑작스레 차가워진 강건의 얼음장 같은 시선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윙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베일의 두 눈동자는 크게 흔들리기까지 했다. 누구도 포지션 변경을 요구했던 적은 없었기에.
 조금 전과 달리 웃음기가 가신 것만으로 강건에게선 묘한 위압이 느껴졌다.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그리고
 “챔피언십 기간을 포함해 지금껏 네 플레이는 매우 직선적이었어. 이미 들통난 패턴인데도 구태여 스피드를 활용한 측면 돌파를 번번이 시도하는 탓에 더는 효과적인 찬스도 만들어 내지 못했지. 수비지역으로 돌아오지 않는 레프트백이라는 수치스러운 별명도 얻었고 말이야. 냉담하게 들리겠지만 이는 레프트백으로선 더는 활용가치가 없다는 소리이기도 해.”
 베일의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한번 탄력을 받으면 EPL에서 따라잡을 수 있는 수비수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하지만,
 “수비수의 주 임무는 결국 상대를 막아 세우는 데 있어. 그러나 이는 네게 있어 족쇄와 다를 바 없다는 게 내 개인적인 견해야. 체력을 무진장 뺏는 일이기도 하지. 공격적으로 나섰다가 급히 수비 전환에 임해야 하는 사태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니까. 특히나 EPL처럼 타 리그와 비교해 템포가 빠른 곳에선 더욱 체력을 요구하기도 하고. 네 장점이 죽은 이유도 그 때문이야. 수비에 임해야 한다는 관념이 박혀서는 어중간한 오버래핑을 시도하게 됐다고. 레프트백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네 본연의 플레이 스타일을 스스로 죽여 버린 꼴이지.”
 듣다 보니 가레스 베일은 열이 뻗쳐올랐다. 결국엔 토트넘 홋스퍼에서는 자리가 없다는 소리가 아닌가. 설령 윙어로 포지션 변경을 한다 치더라도 선발로 뛰기엔 버거웠다.
 ‘에코토보다 더한 경쟁자들이 즐비하다고!’
 아이슬란드의 상징으로 불리는 아이두르 구드욘센, 토트넘 홋스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에런 레넌, 루카 모드리치 등 더욱 견고한 자원이 버티고 있잖은가.
 “그쪽이 뭘 안다고······!”
 막 베일이 콧잔등을 찌푸리며 반박하려 했으나 이마저도 강건은 허락하지 않았다.
 “아주 잘 알지. 그러니까 지금 너와 이렇게 네 플레이 스타일에 대해 의논하고 있잖아.”
 그리고
 씨익.
 강건은 확신에 찬 어조로 몇 마디 더 덧붙였다.
 “넌 분명 에런 레넌, 아이두르 구드욘센을 뛰어넘는 최고의 윙어가 될 수 있어. 물론 나와 함께한다면 말이야.”
 “······.”
 확신에 찬 강건의 태도에 베일은 그만 할 말을 잃어버렸다.
 
 * * *
 
 ‘우선은 흔들었다.’
 초저녁, 강건은 복도를 거닐며 조금 전 일을 떠올렸다. 이 시기 가레스 베일은 반항아 기질이 다분했다. 강건은 그 점이 오히려 좋았다.
 키우는 맛이 있다고 할까.
 가레스 베일은 강건의 제안에 곧바로 응하진 않았다. 그는 그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말없이 훈련장 출구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갔다.
 강건은 그것으로 만족했다.
 토트넘 홋스퍼에서의 연수 기간은 6주. 강건은 그 안에 가레스 베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였다.
 “첫 출근 하자마자 회의에 소집되다니.”
 옆에서 나란히 거닐던 미하엘 뮐러가 긴장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두 걸음 앞서 걷던 카일 에브리엄이 살포시 미간을 좁히며 경고한다.
 “도착해서 어정쩡하게만 있지 마. 의견을 구하면 지체 없이 구상했던 것을 토해내라고. 어리바리하게 구는 건 우리 모두를 욕보이는 거니까. 그런 멍청한 짓은 나중에 소속팀이 정해지고 나서 실컷 하고.”
 카일 에브리엄은 미하엘 뮐러 역시 같은 연수생 타이틀을 달고 있었기에 한 사람이 실수해도 자신의 자존심을 갉아먹는 행위라 보는 듯했다.
 “쳇, 누가 어리바리하다고? 너나 그러지 마.”
 미하엘 뮐러는 다부진 체격과 어울리지 않게 새침한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헐 시티와의 경기를 앞두고 세 사람은 회의에 소집되었다. 사전 해리 레드냅은 미리 이 사실을 공지했기에 세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대응 전술과 엔트리 명단을 구상한 상태였다.
 그리고
 “회의를 시작하지.”
 회의실에 발을 들이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상석에 앉아 있던 해리 레드냅이 입을 열었다.
 팀 셔우드가 먼저 헐 시티에 관해 설명을 진행했다.
 “지난 시즌, 헐 시티는 104년 만에 1부 리그로 승격하더니 뉴캐슬 유나이티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블랙번 로버스, 풀럼 등 상위권 팀을 연달아 무너뜨리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물론 선수단 층이 얇았던 탓에 후반기부터 순위가 급격히 하락했지만요.”
 팀 셔우드는 헐 시티를 만만히 보아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올 시즌 헐 시티는 리빌딩에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제 갓 1부 리그로 승격한, 지명도가 매우 낮은 팀이었기에 영입리스트에 오른 대부분 선수들을 영입하지 못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죠. 그렇다고 만만히 보아서도 안 됩니다. 헐 시티 전력의 핵심이라고 불리는 지오반니가 건재하기 때문이죠.”
 지오반니는 맨체스터 시티에서 영입된 선수로 플레이메이커 성향이 짙은 미드필더다.
 그 시즌 19위의 성적을 거두게 될 헐 시티였지만 지오반니는 팀 내 최다득점자 및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을 만큼 중상위권 팀들의 주요 타깃이었다.
 이후로도 팀 셔우드는 헐 시티의 주요 선수들에 관해 몇 마디 더 내뱉고는 자리에 앉았다.
 이어서 회의실에 자리한 코치들이 저마다 몇 마디씩 의견을 내놓았다.
 그들은 구체적인 엔트리 명단과 왜 어째서 그 선수를 선발로 기용해야 하는지 말했다.
 한쪽 벽면에 벌서듯이 서 있던 미하엘 뮐러는 코치들의 열띤 토론을 들으며 점차 어깨가 축 처졌다.
 대부분이 자신이 계획한 것보다 세세했고 월등히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순간,
 “세 사람의 의견도 듣고 싶군.”
 해리 레드냅의 시선이 구석 한편에 대기하고 있던 연수생들에게로 향했다.
 
 * * *
 
 먼저 호명된 이는 미하엘 뮐러였다. 뮐러는 여러 사람 앞에 서면 말을 더듬는 경향이 다분했다.
 “어, 음, 그러니까. 제가 발표하겠습니다!”
 상당수의 코치는 별 반응을 하지 않았지만, 소수의 코치는 비웃음을 띠었다.
 뮐러 역시 선수 경험이 전혀 없는 코치 연수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뮐러는 말을 더듬대면서도 끝까지 자기가 하고자 할 말을 이어나갔다.
 “헐 시티에 맞서 제안하는 포메이션은 4-4-2, 공격이 주가 되는 전술입니다.”
 미하엘 뮐러는 장신의 피터 크라우치를 최전방에 세우고 발 빠른 공격수 저메인 데포를 드리블돌파 용도로 사용하자고 했다.
 주된 공격 루트는 측면공격과 세트피스.
 세트피스 시엔 장신인 피터 크라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계획이었다. 반면 측면공격 시엔 에런 레넌, 저메인 제나스뿐만 아니라 저메인 데포까지 측면으로 빠지면서 크로스, 혹은 직접 사이드돌파를 전개하자는 다소 개인 역량이 중시되는 전략을 제안했다.
 강건은 미하엘 뮐러의 제안도 썩 나쁘지 않다고 보았다.
 토트넘 홋스퍼의 공격진은 개개인의 면면만 봐도 헐 시티의 수비수들보다 뛰어난 역량을 갖췄으니까.
 하지만,
 “상대는 처음부터 라인을 내린 채 역습을 노릴 겁니다.”
 “올 시즌 헐 시티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죠. 수비가 매우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이를 알고 그간 상대해 온 팀들은 무리하게 공격 전술을 구사해 왔습니다. 더욱 많은 득점을 얻기 위해서. 그러나 헐 시티 감독 필 브라운은 전반기 최다실점을 허용하더니 후반기 들어선 선 수비 후 역습 전략으로 팀을 변모시켰습니다. 텐백이라고 봐도 무방한 전술로 새롭게 무장했다고요.”
 “전반기와 비교해 후반기 들어 헐 시티의 실점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반면에 득점이 늘었죠. 그 중심엔 지오반니가 있습니다.”
 미하엘 뮐러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비판이 가해졌다.
 “팀 셔우드 수석코치가 사전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던가요? 헐 시티를 얕봐선 안 된다고.”
 “공격이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면? 헐 시티의 역습은 상당히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말이죠. 헐 시티의 키플레이어인 지오반니는 1대1 경합에서도 절대 뒤처지지 않는 선수입니다. 그를 필두로 역습 전개가 이어지는 그 타이밍에 후위를 어찌 정비할 겁니까?”
 “어, 음, 그게······.”
 마치 화살촉처럼 쏘아지는 날 선 비판에 미하엘 뮐러의 등 뒤는 금세 땀으로 축축해졌다.
 미하엘 뮐러의 발언권은 그것으로 끝났다. 해리 레드냅이 한 손을 들어 제지했기에.
 “뭐, 나쁘지 않은 전략이었다. 조금 더 보완한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야.”
 해리 레드냅은 극도의 긴장에 하얗게 질린 듯한 뮐러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띠었다. 이어서 그 시선은 카일 에브리엄에게로 향했다.
 에브리엄은 기다렸다는 듯 몇 걸음 앞서 나왔다.
 그는 자신감 있게 테이블 위, 대형 작전판을 활용하며 자신의 계획을 전달했다.
 “4-4-2 포메이션입니다.”
 에브리엄은 손수 작전판 속 자석의 위치를 수정하며 대응책을 읊었다.
 그는 헐 시티가 기존에 고수하던 4-4-2 형태를 구성하며 이어서 토트넘 홋스퍼 역시 4-4-2 대형으로 맞췄다.
 “팀 셔우드 수석코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헐 시티는 지오반니를 플레이메이커로 한 4-4-2 대형으로 나설 공산이 큽니다. 지오반니의 위치는 2선의 LM에 자리할 테죠.”
 지오반니는 LM 위치에서 공수 방면으로 많은 역할을 해냈다.
 수비 시엔 풀백과 협력했고, 공격 시엔 창의적인 키패스를 곧잘 구사하며 수차례 득점 찬스를 만들어 냈다.
 “헐 시티는 여러 코치님들께서 우려했던 대로 4-4-2 대형에서 전체적인 라인을 끌어 내릴 게 분명합니다. 미드필더인 지오반니, 최전방의 조지 알티도어를 제외하고서요.”
 후반기 들어 헐 시티는 선 수비 전략을 구사하다 한순간 역습 상황을 만들어 내는 연출을 자주 보였다.
 대체로 볼을 소유하게 되면 그들은 좌측면의 지오반니에게 우선으로 연결한다. 헐 시티 내에서 지오반니보다 볼 간수 능력, 크로싱 능력이 출중한 선수는 없으니까.
 이어서 지오반니는 수비 가담 없이 처음부터 하프라인 부근에 위치해 뒷공간을 노리던 조지 알티도어에게 키패스를 연결하고, 알티도어는 186cm, 80kg의 피지컬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마크맨을 뿌리치며 직접 득점을 노린다.
 알티도어는 이번 겨울 이적시장, 비야레알에서 헐 시티로 임대되어 매 경기 선발로 출전하며 지오반니와 호흡을 맞춰 온 젊은 공격수였다.
 강건은 생각했다. 만약 자신이 헐 시티의 감독이었다면 나 또한 수비를 등지는 플레이에 능한 조지 알티도어와 지오반니와의 세트피스 전술을 핵심으로 두리라.
 그렇듯,
 “이에 맞서 우리는 기존 전술을 고수하되 지오반니에 한하여 철저한 맨투맨 디펜스를 구사하는 겁니다. 개인적으로 톰 허들스톤이 지오반니를 마크하는데 제격으로 보이는군요.”
 톰 허들스톤은 191cm의 다부진 신체조건을 활용한 압도적인 피지컬로 토트넘의 중심이라고까지 불리었다.
 토트넘 홋스퍼의 기존 전술을 고수한다는 건 4-4-2 형태의 자유분방한 축구를 말하는 것이었다.
 미드필더뿐만 아니라 공격수들까지.
 단 수비에 임할 시엔 상황이 달라진다. 해리 레드냅 전술은 수비 시 지역방어와 대인방어를 혼합하는 색이 짙다. 대체로 지역방어를 가장 많이 애용하지만.
 카일 에브리엄의 전략은 기존 지역방어 형태에서 지오반니에 한해서만 대인방어를 부여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음, 나쁘지 않은 전략인 것 같군요.”
 “카일 에브리엄 코치 말대로 톰 허들스톤이라면 충분히 지오반니를 차단할 수 있을 겁니다.”
 “공격의 물꼬를 차단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던 계획이니까.”
 “정확히 핵심만 찔렀습니다. 헐 시티의 전력의 반은 지오반니에게서 나오니까요. 그를 차단한다면 비교적 쉽게 승리를 따낼 수 있을 겁니다.”
 앞선 미하엘 뮐러 때와는 확연히 상반되는 반응이었다.
 카일 에브리엄은 해리 레드냅이 고수하는 전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전략으로 코치들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했다. 레드냅 역시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그럼 다음은?”
 팀 셔우드가 강건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 * *
 
 코칭스태프들의 관심이 눈에 띄게 사그라졌다. 코치들은 카일 에브리엄의 아버지가 해리 레드냅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에브리엄의 선수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뮐러와는 달리 처음부터 그의 가치를 높이 사는 것이었다.
 반면에 강건을 향한 시선은 썩 좋지 않았다.
 몇몇은 아예 눈길을 돌리기까지 했다.
 ‘애초에 내 전략은 고려할 필요도 없다는 건가?’
 그렇지만 강건은 당당히 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강건은 카일 에브리엄이 그랬던 것처럼 작전판의 원형 자석의 위치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뭐?”
 “이게 무슨······?”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헐 시티와의 대전을 4일 앞두고 포메이션 변경이라니.”
 코치들은 작전판 위, 토트넘 홋스퍼의 포메이션을 보고는 두 눈알을 부라렸다. 해리 레드냅이 부임한 이후 단 한 번도 구사된 적이 없는 포메이션이었기 때문이다.
 그뿐이랴.
 “가레스 베일을 선발로 기용하겠다고?”
 “이건 축구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아니야. 실전이라고!”
 “아아, 다들 진정하십시오.”
 코치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수석코치 팀 셔우드가 중재에 나섰다. 그러나 그 눈길도 썩 탐탁지 않았다.
 미하엘 뮐러, 카일 에브리엄과 달리 해리 레드냅이 고수하던 전술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형태를 띠고 있었으니까.
 반면에,
 “3-5-2 포메이션으로 맞서겠다고?”
 해리 레드냅은 호기심이 동한 눈길로 의문을 보냈다. 강건은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코치들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평정심을 유지하는 강건에게 해리 레드냅은 더욱이 관심이 갔다.
 곧 강건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계획을 전했다.
 “카일 에브리엄의 유추대로 헐 시티는 4-4-2 포메이션으로 나올 가능성이 큽니다. 최대한 라인을 내린 채 한 방을 노리는 전략을 구사할 테죠. 그 방법 외엔 토트넘을 잡을 수 있는 계책은 없으니까요. 적어도 제가 헐 시티 감독이라면 그러한 전략을 그대로 고수할 겁니다.”
 “좋아. 그런데 왜 굳이 3-5-2 포메이션을 제안한 거지? 거기다 윙백 자리엔 가레스 베일을 선발로 기용하고선.”
 해리 레드냅의 의문엔 어떠한 악의도 없었다.
 “베누아 아수 에코토는 레들리 킹, 조나단 우드게이트와 함께 최종 수비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가레스 베일을 윙백으로 기용한 이유는 그의 공격성이 에코토보다 더욱 예리하기 때문이죠.”
 강건은 베누아 아수 에코토, 조나단 우드게이트를 중앙수비수의 좌우 SB로 두었다. CB엔 토트넘 홋스퍼의 주장인 레들리 킹이 위치했다.
 세 선수 모두 토트넘 홋스퍼의 핵심 수비수들이었기에 이 부분에서 토를 다는 자는 없었다.
 하지만 가레스 베일은 예외였다.
 그는 지난 몇 시즌 부진과 잔 부상을 달고 살며 벤치 자원으로까지 밀려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수 언론은 가레스 베일의 단조로운 패턴이 토트넘에 큰 구멍을 만들었다며 날 선 비판을 가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 전술은 가레스 베일의 장점을 특화한 전술이자, 지오반니를 봉쇄하고 나아가 조지 알티도어, 얀 페네호르 오프 헤셀링크의 침투를 막아낼 수 있는 전략입니다.”
 얀 페네호르 오프 헤셀링크는 조지 알티도어와 함께 투톱을 구성하는 스트라이커였다.
 강건은 여러 코치를 돌아보며 슬며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기존 전술을 고수하는 건 헐 시티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꼴밖에 되지 않을 겁니다.”
 그로부터 강건은 약 20여 분간 3-5-2 포메이션을 활용해야 하는 이유에 관한 주장을 펼쳤다.
 
 * * *
 
 4월 10일.
 가레스 베일은 남들보다 조금 일찍 훈련장에 출근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성실함을 어필해 조금이라도 감독, 코칭스태프들에게 신뢰를 얻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그 자식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제안을 해온 거지?’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던 베일은 살포시 미간을 구겼다.
 어제 오후, 느닷없이 나타난 강건은 레프트백에서 윙어로의 포지션 변경을 제안했다.
 처음엔 어처구니없게 들렸으나 강건의 설명을 듣다 보니 갈수록 마음이 혹했다.
 
 “네 단조로움은 해리 레드냅이 추구하는 전술에 맞지 않기 때문이야. 반면에 난 네 스피드, 크로싱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어.”
 
 출처를 알 수 없는 확신이었으나 가레스 베일은 왠지 모르게 그의 말에 신뢰가 갔다.
 곧 베일은 저지로 갈아입고 라커룸을 벗어났다.
 그 순간,
 ‘······응?’
 베일은 복도를 거닐다 말고 어느 한 지점에서 우뚝 걸음을 멈춰다.
 그도 그럴 것이 복도 가운데 자리한 게시판에 플랜C 전술을 새롭게 공지한 게 아닌가.
 그것도 레프트 윙백의 한 자리를 에코토가 아닌 자신이 차지하고 있었다.
 기존 A, B 플랜에선 벤치구성원으로 포함되어 있었기에 가레스 베일은 어안이 벙벙했다.
 바로 그때,
 “일찍 왔네.”
 등 뒤쪽에서 들린 익숙한 목소리에 베일은 흠칫 어깨를 떨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불과 세 걸음 떨어진 거리엔 강건이 표정 없는 얼굴로 무뚝뚝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일단은 기회의 발판을 마련해봤어.”
 차갑기 그지없는 말투에 가레스 베일은 일순간 감정이 복잡해졌다.
 
 
 # 쇼트 카운터
 
 
 헐 시티와의 대전을 이틀 앞두고 선수들은 전술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A플랜인 4-4-2, B플랜인 4-2-3-1, 그리고 새롭게 편성된 C플랜 훈련에 중점적으로 임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수석코치 팀 셔우드가 입을 열었다.
 “유별난 녀석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벤치 한편에 서 있던 셔우드의 시선은 한 사람에게 머물러 있다. 해리 레드냅은 그가 지칭한 이가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채고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레드냅의 시선 속, 반대편 터치라인엔 현역 코치들과 함께 선수들의 움직임을 조율하고 있는 강건이 있었다.
 “코치는 원래 유별나야 해. 그래야 더욱 획기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법이거든.”
 어제저녁, 강건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했다.
 C플랜인 3-5-2 포메이션과 가레스 베일의 선발 기용에 대하여.
 현역 코치들은 강건을 향해 공격적인 질문을 활시위를 당기듯 쏘아댔다.
 “가레스 베일은 베누아 아수 에코토와 비교해서도 수비력이 매우 뒤처지는 인물입니다. 그런 자를 윙백으로 내세우겠다고요? 수비수치고는 공격력이 좋다는 것도 옛말입니다만. 차라리 마이클 도슨을 센터백으로 두고 베누아를 윙백으로 기용하는 거라면 모를까.”
 “베누아는 센터백에서 뛰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철저한 풀백에게 센터백 임무를 맡기겠다니요?”
 “3-5-2 전술은 우리 토트넘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강등권인 헐 시티를 상대로 전술실험이라도 하자는 겁니까? 리그경쟁을 아주 얕보고 있군요. 팀 셔우드 수석코치가 그렇게 강조했건만.”
 날 선 이견에도 강건은 아주 침착하게 답변했다.
 “베누아 아수 에코토를 센터백에 두고자 한 건 그가 그만한 재량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는 올 시즌 아군 디펜시브 서드에서 여러 차례 팀을 위기에서 구해 냈고, 풀백치고는 단단한 신체를 갖추고 있으니까요. 거기다 빠른 발을 지녔죠. 물론 가레스 베일만큼은 아닙니다만, 헐 시티의 투톱인 조지 알티도어나 얀 페네호르 오프 헤셀링크를 마킹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에 마이클 도슨은 부상에서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았습니다. 도슨은 190CM의 타고난 신체로 제공권, 몸싸움 경합 능력은 출중하나 올 시즌 수비지역에서 유독 볼을 소유하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전진 패스를 선호하기보단 골키퍼에게 직결되는 백 패스를 선호하며 템포를 번번이 죽이기까지. 기동력이 떨어진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죠.”
 강건은 토트넘 홋스퍼에서 오랜 시간 코치 생활을 하기라도 한 듯 선발진 개개인 성향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그런 강건의 자신감 넘치는 발언에 몇몇 코치들은 진심으로 경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해리 레드냅 또한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그는 가레스 베일을 선발로 기용한 부분에 대해서 망치로 후두부를 가격당한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게,
 “감독님은 가레스 베일의 특성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저, 저런······!”
 “그 무슨 망발을······!”
 코칭스태프들은 강건의 패기 넘치는 발언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에 해리 레드냅은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궁금했다.
 왜 강건이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그리고 강건은 그 이유에 대해서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토해냈다.
 “가레스 베일의 장점은 정교한 패싱력과 압도적인 스피드입니다. 사우샘프턴 시절, 베일은 스피드를 활용한 오버래핑으로 두 자릿수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는 업적을 남겼죠. 하지만 해리 레드냅 체제 전술에서의 베일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물론 베일이 직선적인 돌파를 지나치게 고집한 탓에 일찍이 상대에게 패턴이 읽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단 감독님의 전술이 베일의 장점을 드러나지 못하게 했죠.”
 가레스 베일이 두 자릿수 공격포인트를 기록한 시점에 사우샘프턴은 프리미어리그가 아닌 EPL 2부 리그인 챔피언십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기에 일각에선 베일을 거품 낀 선수라 비난했다.
 하지만 강건의 생각은 달랐다.
 해리 레드냅은 공격진에 자유도를 주는 반면, 수비지역에 있어선 정교한 팀 전술을 고집하는 편이었다. 수비에서만큼은 지역방어와 대인방어를 상황에 따라 혼합하여 사용한 것이다. 해리 레드냅의 혼합전술 사용빈도는 EPL에서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을 만큼 수비수들의 전술 이해력은 필수적이었다.
 풀백으로 나선 베일 역시 이러한 전술에 발목이 묶여버린 꼴이라고 볼 수 있었다.
 베일은 수비 시 주로 지역방어 지침을 하달받았고, 공격이 실패할 시 재빨리 수비 진영으로 복귀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레들리 킹이나 조나단 우드게이트가 양분하여 커버플레이에 임하긴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선수 본인이 수비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있었으니까.
 이러한 강건의 부연설명에 해리 레드냅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 또한 가레스 베일의 기용방식을 두고 그간 상당한 골머리를 앓고 있었으므로.
 한편으로는 놀랐다. 북런던으로 넘어온 지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은 강건이 이토록 토트넘 선수단과 세부 전술에 대해 꿰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마르코 포겔, 토르스텐 핑크는 복 받았군.”
 레드냅은 어제의 일을 상기하며 입맛을 다셨다.
 
 * * *
 
 식사를 끝낸 선수들은 오후 훈련에 참여했다. 그들은 C플랜 훈련을 즐기면서도 의아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그 고집스러운 영감탱이가 대체 무슨 일이래?”
 스퍼스가 사랑해 마지않는 에런 레넌이 제일 먼저 의문스러운 물음을 건넸다. 그는 3-5-2 포메이션에서 라이트 윙백 역할을 맡았다. 데뷔 이후 윙어, 혹은 중앙 미드필더로 뛰어 왔기에 에런 레넌은 윙백을 책임진다 했을 때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막상 전술 훈련이 시작되고 에런 레넌은 다른 의미에서 또 한 번 의구심을 품었다.
 윙백이라면서 윙어와 다를 바 없는 움직임을 보이잖은가.
 ‘수비 가담률이 매우 낮아.’
 축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 흔히 하는 착각 중 하나가 쓰리백이 포백보다 더욱 공격적인 전술인 줄 안다는 거다.
 하지만 쓰리백은 포백보다 더욱 견고한 수비력을 자랑한다.
 수비 시 좌우 사이드백이 디펜시브 서드에 협력하여 일순간 파이브백을 형성하곤 하니까.
 바로 그때였다.
 “나쁘지 않아!”
 쏴아아아, 툭!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선 톰 허들스톤이 좌측면으로 빠지는 볼을 환상적인 슬라이딩 태클로 막아내며 소리쳤다.
 곧 그는 바닥을 짚고 일어서 볼을 뻥 하고 멀리 걷어 냈다.
 홀딩에 가까운 역할이나 톰 허들스톤에겐 헐 시티의 키플레이어인 지오반니를 맨투맨 디펜스로 방어하라는 추가지침이 하달된 상태였다.
 그렇듯 그 앞에는 자칭 지오반니라는 윌슨 팔라시오스가 지속해서 드리블돌파와 전진 패스를 시도해 들었다.
 11 : 11.
 선수단은 실전을 방불케 하는 전술 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선수들은 코치들의 지시에 성실히 임하면서도 터치라인 바깥에서 가레스 베일의 움직임을 조율하는 강건을 힐끗거렸다.
 바로 그때, 에런 레넌이 타이트하게 좁혀오는 수비수를 플립플랩으로 제쳐냄과 동시에 좌측면으로 전진한 루카 모드리치에게 횡패스를 연결했다. 이어 레넌은 자신의 페인팅에 중심을 잃은 풀백, 베드란 콜루카에게 묻는다.
 “이번 C플랜을 저 녀석이 계획했다던데 사실이야?”
 베드란 콜루카는 레넌과 몸이 살짝 부닥치고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베인스 코치가 그렇다고 하던데?”
 라이언 베인스는 수비수 전담 코치로 베드란 콜루카와 꽤 친분이 두터운 사이다.
 “덧붙여서 싹수없는 놈이라고 하더군.”
 레넌은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럴 만도 하지. 단 하루 만에 해리 레드냅의 환심을 산 녀석이니까.”
 C플랜을 전술 로테이션에 공식적으로 도입했다는 것부터가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 아닌가.
 더불어 레넌 역시 지금의 포지션 임무에 만족스러워하고 있었다.
 수비 시 윙백이 아닌 미드필더가 디펜시브 서드에 가담한 덕에 더욱 자유로운 플레이에 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전에서 어떨지는 직접 겪어봐야 알 테지만.
 
 * * *
 
 이틀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경기 당일, 토트넘의 홈구장인 화이트 하트레인은 경기 시작 10분여를 앞두고 관중들로 만석을 이뤘다.
 해설진은 양 팀 엔트리 명단을 확인하며 중계를 진행했다.
 
 “33라운드 토트넘 홋스퍼와 헐 시티의 경기입니다! 양 팀 모두에게 중요한 일전이지요!”
 
 17위 웨스트햄과의 승점 차가 자그마치 6점이나 벌어진 현재, 헐 시티 입장에서 토트넘은 반드시 잡고 넘어가야 하는 상대였다.
 그다음 상대가 맨체스터 시티, 리버풀, 에버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 첼시였으니까.
 EPL 상위권 팀들과의 일정만 남은 만큼 헐 시티로서는 남은 경기 모두 뼈가 바스러질 정도의 노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경기에 임하는 헐 시티 선수들의 투지는 남달랐다.
 전반 11분.
 
 “풀백 버나드 멘디가 찔러 준 패스를 지오반니가 가슴 트래핑으로 연결받습니다!”
 “지오반니! 등지고 있던 베드란 콜루카를 상체 페인팅으로 따돌리며 중앙 침투를 시도합니다!”
 
 토트넘 홋스퍼는 전반전 플랜A인 4-4-2 전술을 가동했다. 최전방엔 저메인 데포, 피터 크라우치가 위치했고 2선엔 윌슨 팔라시오스, 루카 모드리치, 톰 허들스톤, 에런 레넌이 자리했다.
 포백 역시 베스트라인업으로 구성됐다.
 부상으로 이탈한 부주장 마이클 도슨의 빈자리를 조나단 우드게이트가 차지하면서 베누아 아수 에코토, 레들리 킹, 베드란 콜루카와 견고한 포백을 구성한 것이다.
 하지만 헐 시티와의 상대로 베드란 콜루카는 지속해서 뒷공간을 내어줬다.
 사전 해리 레드냅이 등분한 지역 경계선으로 지오반니가 곧잘 침투를 노리는 게 아닌가.
 지역방어에 임하고 있던 베드란 콜루카는 지오반니를 놓치자마자 쫓아가기보단 센터백 조나단 우드게이트에게 지오반니 견제를 맡겼다.
 하지만 이는 뼈아픈 실책으로 되돌아왔다.
 지오반니가 우드게이트와 콜루카가 책임지는 경계선 가운데를 가로질러 버리자 두 수비수 간의 인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 탓에,
 스윽!
 “이런······!”
 우드게이트는 지오반니의 움직임에 뒤늦게 반응하며 뒤쫓고자 했다.
 그러나
 툭!
 
 “지오반니가 대시 스킬을 사용하여 그대로 우드게이트의 뒷공간을 뚫어내 버립니다!”
 “순식간에 골키퍼와 1대1 상황을 맞이한 지오반······!”
 
 타앙!
 
 “고오오오오오올! 골입니다아! 지오반니! 페널티 박스 대각에서 왼발 인프런트 킥으로 선취 골을 뽑아내는군요!”
 “강등권에서 벗어나기 위한 헐 시티의 처절한 몸부림이 이곳 중계석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순간입니다!”
 
 토트넘 홋스퍼는 이른 시간 선취 골을 내어주며 다급해졌다.
 그래서일까?
 수비지역에서 유달리 패스 미스가 많아졌다.
 그리고 이는 또 한 번 실책으로 이어졌다.
 토트넘 진영 페널티 아크 부근을 어슬렁거리던 헐 시티의 얀 페네호르 오프 헤셀링크가 냅다 뛰어가 수비형 미드필더 톰 허들스톤의 백패스를 중간에서 가로챈 것이다.
 그리고
 헤셀링크는 몇 걸음 전진하다 말고 기습 슈팅을 때렸다.
 타앙!
 그 순간, 골키퍼 에우렐요 고메스가 우측 포스트 상단으로 날아드는 볼을 향해 힘껏 다이빙을 시도했으나,
 철렁!
 
 “고오오오오올! 헤셀링크가 헐 시티에 두 번째 골을 선사합니다!”
 
 볼은 아슬아슬하게 고메스가 내뻗은 손끝을 스쳐 그대로 상단 구석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 * *
 
 전반전 20분 만에 내리 두 골을 헌납하면서 토트넘 선수들의 표정은 엉망으로 구겨졌다.
 특히나 실책을 범한 베드란 콜루카와 조나단 우드게이트는 서로 불만을 토해냈을 정도였다.
 “왜 거기서 멍하니 서 있는 거야?”
 하셀링크에게 실점한 직후 조나단 우드게이트가 먼저 베드란 콜루카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콜루카 역시 불만에 찬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난 지오반니를 견제하고 있었어. 녀석이 내 영역 내에 들어와 있었다고. 톰의 패스는 내가 아니라 네가 연결받았어야지!”
 “내가 지역을 이탈해버리면 조지 알티도어가 뒷공간으로 파고들었을 거야. 네가 조금만 좌측으로 이동해 공간을 커버해 줬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점은 허용하지 않았을 거라고.”
 “지금 내 탓이라는 거야?”
 “그래. 첫 번째 실점도 마찬가지고!”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자 주장인 레들리 킹은 더는 못 봐주겠다는 듯 험상궂은 얼굴로 나섰다.
 “둘 다 그만해! 지금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라고. 아직 20분이야. 남은 시간 70분이나 남은 만큼 충분히 상황을 뒤집을 수 있어!”
 레들리 킹은 주장인 만큼 선수들의 의욕을 다지고자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또한 헐 시티의 예리한 침투에 곤혹스러웠다.
 지오반니를 필두로 한 헐 시티의 공격진이 수비수 간에 분담한 지역의 경계선을 매우 교묘하게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관전하고 있던 세 명의 코치 연수생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벤치에 앉을 수 있는 선수 숫자에 제한이 있듯 코치 숫자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강건을 포함한 세 사람은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봐야만 했다.
 “헐 시티의 공격이 매우 날카로워. 토트넘 홋스퍼의 급소만 찌르고 있다고 해야 하나?”
 미하엘 뮐러가 다소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카일 에브리엄이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이른 시간 2골을 허용해 버렸어. 전술변경은 필수불가결이라고 봐. 특히나 베드란 콜루카와 조나단 우드게이트 간의 호흡이 매우 불안정해. 넌 어떻게 생각하지?”
 카일 에브리엄은 경기 시작부터 잠자코 입을 다물고 있던 강건에게 의견을 구했다.
 에브리엄의 두 눈동자는 호기심을 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그는 며칠 전 회의실에서 보여 준 강건의 전략을 꽤 획기적이라고 보았다.
 강건은 헐 시티의 압박에 고전하는 토트넘 홋스퍼 선수들을 내려다보며 무심하게 답했다.
 “필 브라운 감독은 해부하다시피 토트넘의 약점을 파헤쳤어.”
 “해부하다시피?”
 미하엘 뮐러의 반문에 강건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토트넘의 수비는 지역방어와 대인방어를 혼합한 형태를 띠고 있어. 하지만 대체로 지역방어에 임하는 경우가 대다수지. 각 수비수들은 자신이 맡을 영역을 등분하여 책임진다는 거야. 그럴 때 수비수들 입장에선 상대 선수가 자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순간에만 반응하면 되니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이점이 있지. 하지만······.”
 강건은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지역방어는 그 어떤 수비 전술보다 동료 간의 호흡을 중시해. 조금 전처럼 헤셀링크나 지오반니가 등분한 영역의 가운데로 침투할 경우 아군에겐 혼전 상황이 연출될 경우가 다분하거든. 누가 나서야 할지를 모른다는 거야. 이래서 서로 간에 의사소통을 끊임없이 주고받아야 하는 거지.”
 조금 전 조나단 우드게이트, 베드란 콜루카의 플레이가 한 예다. 두 사람은 서로 간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번번이 헐 시티의 공격수들에게 배후 공간을 내어줬다.
 “그럼 지역방어를 완전히 대인방어로 돌려세우는 건? 지오반니나 헤셀링크, 조지 알티도어를 1대1로 마크하면 충분히 막아 세울 수 있지 않나?”
 카일 에브리엄의 의견에 강건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당장 해결책은 없다고 봐. 두 번째 실점은 톰 허들스톤의 실책이지만 톰은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해주고 있어. 그가 포백 앞에서 대인방어에 임하며 지오반니를 측면으로 지속해서 몰아내고 있으니까. 전반전 첫 실점은 헐 시티를 얕봤다고 보면 돼. 확실히 수세에 몰린 토트넘이지만 두 번째 실점 후엔 헐 시티가 침투하지 못하게 공간을 적절히 커버하고 있잖아? 지금 상황에서 전술 변화는 혼란만 더욱 야기할 뿐이야.”
 “베드란 콜루카와 조나단 우드게이트 간에 호흡이 맞지 않으면 두 선수 중 한 명을 아웃시키면 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도 지금 베드란 콜루카의 움직임은 너무 둔해.”
 미하엘 뮐러가 대화에 껴들었다. 그러나 이 또한 강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른 시간 교체 투입은 상대 팀에 있어 사기를 끌어 오르게 하는 역효과를 가져다줄 수도 있어. 우리 공격이 먹혀들었다! 라는 인식을 심어주니까. 반대로 아군선수들은 위축되겠지. 그러니 전반전은 버티는 수밖에.”
 그러면서 강건은 씨익,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해리 레드냅 정도의 개성파라면 지금 양상을 보고 깨달았을 거야. 후반전엔 플랜C를 가동해야겠다고.”
 
 * * *
 
 삐, 삐, 삐이이!
 주심이 휘슬을 불며 전반전 종료를 알렸다. 토트넘 홋스퍼는 전반 내내 헐 시티의 맹공에 이렇다 할 공격 한 번 못 하고 허무하게 경기를 마감했다.
 이에 해리 레드냅은 라커룸에서 대노를 터뜨렸다.
 “아주 엉망인 경기력이었다! 올 시즌 리그 내에서 포츠머스 FC 다음으로 가장 처참한 경기력을 보여 주고 있는 팀이 바로 헐 시티라고! 그런데 전반전에만 두 골을 실점하다니? 피치 위에서 대체 무슨 생각으로 경기에 임하는 거냐? 생각이라는 걸 하고 있긴 하나?”
 그는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약 7분 가까이 불만을 토해 냈다.
 그리고 후반전.
 해리 레드냅은 대노 뒤 선수들에게 분전을 촉구했으나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후반전이 시작되고 헐 시티의 날 선 공격에 하프라인을 넘어서기조차 버거워했다.
 “베드란 콜루카를 교체 아웃시켜야할 것 같습니다. 우측면에서 지속해서 공간이 노출되고 있어요.”
 팀 셔우드가 어두운 표정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벤치 한편에 앉아 있던 해리 레드냅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감독님은 최근 한 전술만을 고집하셨어요. 물론 오직 한 전술로만 리그 4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해 냈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하지만 헐 시티의 필 브라운은 배후침투를 노릴 겁니다. 그게 토트넘 홋스퍼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거든요.”
 
 며칠 전 회의에서 강건은 그렇게 경고했다. 상당수 코치는 반발했으나 해리 레드냅은 서슬 퍼렇기까지 한 강건의 시선을 멍하니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간 한 전술로만 연승을 거듭해오며 해리 레드냅은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지역방어와 대인방어를 혼합한 자신의 전술 특성상 경계선을 가로지르는 키패스나 침투가 이어질 경우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강건은 이를 단 하루 만에 캐치해 냈다. 또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톰 허들스톤을 통해 적의 키플레이어인 지오반니를 측면으로 몰아세울 생각이시겠죠. 하지만 이는 썩 좋은 효과를 보지 못할 겁니다. 단지 지오반니의 두 발만 묶을 뿐이에요. 그는 리오넬 메시가 아닙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도 아니죠. 지오반니가 아무리 팀 내에서 중요도 높은 임무를 수행한대도 팀보다 위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도 전술 일부일 뿐이니까.”
 
 그의 말처럼,
 후반 11분.
 
 “센터백 앤디 도슨의 로빙패스가 지오반니에게 다이렉트로 연결됩니다! 톰 허들스톤의 강한 압박!”
 
 퍽!
 “크윽!”
 허들스톤이 어깨를 밀어붙이자 지오반니는 좌측면으로 밀려나면서도 끝까지 볼을 소유해 냈다.
 바로 그때였다.
 스윽, 툭!
 “무슨······!”
 톰 허들스톤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터치라인까지 밀려난 지오반니가 눈 깜짝할 사이 허들스톤의 배후 공간을 파고든 우측 윙어 스티븐 헌트에게 백힐링으로 볼을 연결한 것이다.
 허들스톤은 가랑이 사이로 공이 빠지고 나서 뒤늦게 뒤돌아섰지만 늦었다.
 찔러 준 패스를 그대로 전방으로 몰고 간 헌트가 페널티 아크 부근에서 곧장 중거리 슈팅을 구사했다.
 탱!
 다행히 볼은 우측 상단 포스트를 맞고 골라인 바깥으로 벗어났다. 하지만 톰 허들스톤을 포함한 토트넘 홋스퍼 대부분 선수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반면 헐 시티의 기세는 더욱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그리고
 ‘이대로는 안 돼.’
 잠자코 있던 해리 레드냅은 결단을 내리고자 했다. 곧 그는 로테이션 자원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가레스, 준비해.”
 
 * * *
 
 [베드란 콜루카 OUT, 가레스 베일 IN.]
 
 “해리 레드냅 감독이 베드란 콜루카를 불러들이고 가레스 베일을 투입합니다.”
 “의외의 선수를 투입하는군요. 가레스 베일이 이렇게 이른 시각 교체 투입되는 건 자그마치 10경기만인 것 같은데요.”
 “이 선수······ 실전 감각을 잃지 않았나 우려가 될 만큼 그간 피치 위에서 제대로 뛰어본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해설진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화이트 하트 레인을 빼곡히 채운 관중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가레스 베일을 투입하는 거냐고!”
 “헤이, 레드냅! 벌써 경기를 포기한 건 아니겠지?”
 “베드란 콜루카를 빼고 세바스티앙 바쏭이나 카일 워커를 투입해야지, 이 못난 돼지야!”
 관중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해리 레드냅의 돌발행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토트넘 홋스퍼의 전형이 크게 변화하는 것을 보며 해설진은 또 한 번 놀라워했다.
 
 “토트넘 홋스퍼가 4-4-2 포메이션에서 3-5-2 포메이션으로 변화를 줍니다!”
 “올 시즌 처음 선보이는 전술인데요! 가레스 베일은 레프트 윙백으로 자리하는군요. 토트넘 홋스퍼의 상징적인 선수인 에런 레넌은 우측 윙백으로 위치를 옮깁니다! 아수 에코토 역시 센터백의 한 자리로 이동하는군요.”
 “해리 레드냅이 강수를 둡니다! 잘못하다간 자충수로 이어질 수도 있는 극단적인 변화가 아닐까 싶은데요!”
 
 헐 시티의 감독 필 브라운 또한 실소를 머금었다.
 가레스 베일은 저번 시즌부터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며 벤치 자원으로까지 밀려나지 않았던가. 단순한 패턴 탓에 이제는 공격적인 자원으로도 기용할 수 없을 만큼 가치를 잃었다.
 그런데 그런 가레스 베일을 투입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공격적인 자원인 에런 레넌을 윙백으로 기용하다니?
 브라운은 해리 레드냅이 전반전 2골을 실점한 직후부터 판단력을 상실했다고 여겼다.
 이어 필 브라운은 터치라인까지 걸어 나가 선수들에게 추가지침을 하달했다.
 더욱 공세적인 움직임을 취하라고.
 갑작스러운 전술 변화는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필 브라운은 토트넘의 진형이 채 정비가 되기 전 다시 한번 일격을 가하고자 했다.
 정비되더라도 필 브라운은 자신이 있었다.
 그는 토트넘 홋스퍼의 약점을 정확히 짚고 있었으니까. 이는 전술 변화가 있더라도 마찬가지라 보았다.
 해리 레드냅의 성향상 지역방어 형태의 수비까지 변화 주리라고는 보지 않았으므로.
 하지만 이는 크나큰 착각이었다.
 후반 18분.
 토트넘 진영에서 첫 번째 교체가 있은 지 불과 5분 만에 가레스 베일의 발끝에서 추격 골이 터졌다.
 
 * * *
 
 눈 깜짝할 사이에 추격 골이 터졌다. 헐 시티의 키플레이어 지오반니는 아군 지역에서 패스를 연결받자마자 또 한 번 템포를 끌어올리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그러던 순간,
 퍽!
 “컥!”
 느닷없이 나타난 톰 허들스톤의 거친 차징에 지오반니는 크게 휘청거리며 나가떨어졌다. 톰 허들스톤은 지오반니가 측면에서 중앙으로 깊숙이 침투하는 걸 선호한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렇기에 그는 수풀 속에 웅크린 사자처럼 간격을 두고 있다가 한순간 지오반니의 예상 진로로 뛰쳐나가 그를 차단했다.
 변경된 3-5-2 포메이션, 세 명의 미드필더 중 다소 처진 앵커 역할을 도맡은 허들스톤은 인터셉트에 성공하는 그 순간 망설임 없이 대각선으로 결정적 패스를 찔러 넣었다.
 거기서부터 헐 시티의 진영은 붕괴했다.
 허들스톤이 하프코트에서 찔러 넣은 볼이 상대 풀백과 센터백 사이를 교묘하게 가른 것이다.
 라이트 풀백 앤디 도슨과 센터백 앙소니 가드너는 움찔 몸을 떨었다. 허들스톤이 찔러 준 패스가 너무나 예리하게 가로질러 갔기에.
 그리고
 스윽!
 “무슨······!”
 “말도······!”
 막 볼이 굴러간 방향을 향해 뒤돌던 두 사람은 두 눈을 부릅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선수가 터치라인을 타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볼을 향해 질주하는 게 아닌가.
 그는 다름 아닌······.
 
 “가레스 베일!”
 “베일의 발에 모터라도 달린 건가요? 어마어마한 스프린트로 헐 시티의 배후 공간을 뚫어내는 가레스 베일입니다!”
 
 잠시 멈칫거리는 사이에 베일은 앤디 도슨과 앙소니 가드너마저 추월해 버렸다.
 “압박해!”
 골키퍼, 보아즈 마이힐은 눈 깜짝할 사이 디펜시브 서드까지 침투한 베일을 확인하고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외쳤다.
 그러나 늦었다.
 베일의 스피드는 EPL 내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는 수준. 톰 허들스톤의 키패스가 워낙 예리했던 탓에 헐 시티 수비수들은 잠시 얼어붙기까지 했다.
 ‘따라잡을 수 없어······!’
 보아즈 마이힐은 뒤늦게 출발한 수비수들이 베일을 견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익······!”
 결국 보아즈 마이힐은 슈팅 각도라도 좁힐 심산으로 골라인을 이탈하고자 오른발을 다급히 내디뎠다.
 그러던 순간,
 촤락!
 “······!”
 보아즈 마이힐은 왼쪽 뺨을 시원하게 스치고 간 볼과 곧바로 ‘촤락!’ 하고 물결치는 듣기 싫은 소리에 입매를 축 늘어뜨렸다.
 오른발을 내딛는 바로 그때, 가레스 베일이 페널티 박스 대각까지 침투해 왼발 아웃프런트 킥으로 추격 골을 성공한 것이다.
 그 일련의 동작은 찰나에 이루어졌다. 보아즈 마이힐마저 수비수들과 마찬가지로 얼어붙었을 만큼.
 
 * * *
 
 “와아아아아!”
 화이트 하트 레인에 방문한 홈 팬들의 반응은 대번에 일변했다. 불과 몇 분 전, 베일은 대기심 옆에서 교체 사인을 기다리는 동안 긴장했으나 한편으로 짜증이 치밀었었다.
 담장 너머 관중들에게서 끊임없는 비난이 쏟아졌으니까.
 “이봐, 베일! 염치가 있다면 어서 다시 벤치로 돌아가!”
 “토트넘 홋스퍼에 네 자리는 벤치라고! 가서 벤치나 뜨뜻하게 데우고 있으란 말이야! 거기다 머핀 좀 굽게!”
 “해리 레드냅에게 대체 뭘 준 거지? 어떤 뇌물을 줬기에 교체로 출전할 기회를 얻은 거야?”
 헐 시티 팬들의 비난은 참을 만했으나 홈 팬들 또한 합심한 듯 야유를 퍼붓자 베일은 이를 바드득 갈아야만 했다.
 “축구 말고 육상선수로 전향하라고! 넌 토트넘 홋스퍼에 어울리는 선수가 아니야!”
 “가레스 베일은 항상 서 있어! 항상 서 있어서 내려앉을 생각 따윈 못해!”
 그러나 이는 예상한 일이었다. 강건도 말하지 않았던가.
 
 “지금 네 입지는 그라운드 위에 심어진 잔디보다 못한 수준이야. 그만큼 넌 토트넘 홋스퍼에서 부진했고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 줬지. 원정 팬들뿐 아니라 홈 팬들마저 네 투입에 의문을 표할 게 뻔해. 그러니 실력으로 증명해버려. 모든 스포츠가 그래. 잘하면 장땡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강건은 무심하기 그지없었다. 평소의 베일이라면 고개를 홱 돌리고 무시했을 거다. 하지만 더는 그러지 못했다.
 3-5-2 플랜C 전술에서 강건이 자신의 선발 여부를 두고 현역 코칭스태프들과 상당한 입씨름을 벌였던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강건의 코칭 능력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났으니까.
 그리고
 ‘좋아······!’
 두 주먹을 불끈 쥔 베일은 강건의 조언을 상기하며 오히려 의욕을 다졌다.
 그 결과,
 
 “베일의 올 시즌 첫 번째 득점이 터졌습니다!”
 “굉장하군요! 리플레이 장면을 좀 보시죠! 톰 허들스톤이 지오반니에게서 볼을 스틸한 그 타이밍부터 가레스 베일은 육상선수로 빙의한 듯 전방으로 무섭게 뛰쳐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볼이 측면으로 연결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던 거죠!”
 “사전 준비된 공격 플랜이라 볼 수 있겠군요!”
 
 해설진의 말대로였다.
 베일은 기뻐할 새도 없이 그물망에 걸린 볼을 가슴께에 안고 하프라인으로 달려갔다.
 홈 팬들은 조금 전과 달리 가레스 베일의 이름을 힘차게 연호했다. 확 변한 반응에 어처구니없는 웃음마저 새어 나왔지만, 베일은 표정을 굳혔다.
 후반전 18분, 아직 한 점 차로 뒤처진 만큼 승리하기 위해선 27분 안에 두 골이 더 필요했으니까.
 그러면서 베일은 며칠 전, 플랜C 명단이 발표되고 시작된 훈련을 떠올렸다.
 
 * * *
 
 “쇼트 카운터야.”
 내리쬐는 햇살 아래, 저지 트레이닝 차림의 강건이 말했다. 가레스 베일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베일뿐만 아니라 톰 허들스톤, 루카 모드리치 또한 마찬가지였다.
 베일이 듣기로 강건은 해리 레드냅에게 별도로 세 사람을 직접 코칭할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다고 했다. 세 사람 모두 썩 좋은 반응은 아니었다. 현역 코치도 아닌 연수생 신분인 강건이었으니까.
 “쇼트 카운터라니? 전체 라인을 올린 채 경기에 임하자는 건가요?”
 세 사람 중 가장 연장자인 루카 모드리치가 다소 삐딱한 자세로 물었다. 두 눈엔 미심쩍음이 자리해 있었다.
 강건은 루카 모드리치가 아닌 베일을 똑바로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네게 쥐여 줄 무기지. 네 스피드를 살리기 위해선 몇몇 선수들의 희생은 불가피하거든. 단점인 수비를 버려야 하니까. 그중에서도 톰 허들스톤, 루카 모드리치는 네 뒤를 든든히 받쳐주는 임무를 도맡을 거야.”
 쇼트 카운터란 상대 진영에서부터 볼을 가로채 단번에 득점으로 이어지는 공격 형태를 말한다. 그리고 강건은 윙백인 가레스 베일에게 그 역할을 맡기고자 했다.
 “윙백은 일종의 페이크라고 보면 돼. 너에겐 팀 내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프리롤이 부여될 테니까. 그러니 상대 진영에서 마음껏 날뛰라는 소리야.”
 세 사람은 이 계획에 반박하진 않았으나 기대하지도 않았다. 한편으로는 해리 레드냅이 강건의 코칭을 승인했다는 것조차 믿기 어려웠다. 그는 단 한 번도 실전에 한한 전술 훈련을 연수생에게 단독으로 맡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역 코치를 멘토로 둔 상태라면 모를까.
 하지만 연습 훈련에 돌입한 순간부터 세 사람은 점차 쇼트 카운터가 썩 나쁘지만은 않은 전략이라는 걸 알게 된다.
 특히나 베일은 단 이틀 만에 플랜C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직접 수행하면서 베일은 깨달았다.
 강건이 그 어떤 코치보다 자신의 장단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그랬기에 경기 중 베일은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강건의 조언을 곱씹었다.
 
 “쇼트 카운터의 핵심은 미리미리 자리를 선점해야 한다는 거지. 전방에서 동료가 볼을 연결하거나, 스틸에 성공하면 미리 공간을 파악하고 그곳으로 달려들라는 거야. 공간은 나올 수밖에 없어. 오직 너를 위해서 주변 동료들이 페이크 플레이를 펼칠 테니까. 시선이 분산된 틈을 너는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해. 네 스피드라면 충분히 이 임무를 수행해 낼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
 
 후반 38분.
 베일의 장점은 헐 시티와의 경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추격골을 성공시킨 가레스 베일은 어느 순간 공격의 탄두가 되어 있었다.
 
 “가레스 베일이 측면에서 중앙으로 방향전환을 시도합니다! 바로 그때, 루카 모드리치의 칩패스으!”
 “베일, 가레스 베일이 앙소니 가드너를 등지고서 가슴 트래핑으로 볼을 연결하는군요!”
 
 툭!
 베일은 바짝 붙은 앙소니 가드너의 뒷공간을 노리기보단 볼을 연결받자마자 곧바로 우측면으로 뛰어든 에런 레넌에게 다이렉트 패스를 찔러 넣었다.
 그리고
 툭, 스윽!
 “······!”
 앙소니 가드너는 두 눈을 부릅떴다.
 볼이 에런 레넌에게 연결되자 고개가 잠시 돌아갔던 그 틈에 베일이 반대편 뒷공간으로 쇄도하는 게 아닌가.
 ‘빠르다······!’
 앙소니 가드너는 베일의 전환 동작이 상상 이상으로 빨라 보이자 덜컥 겁을 먹었다. 그러면서 확신했다.
 이대로 뒷공간을 내어주면 위험하다고.
 하지만
 타앙!
 에런 레넌은 측면에서 곧바로 얼리 크로스를 차올렸다. 볼이 포물선을 그리며 박스 안으로 낙하하는 중에도 가드너의 움직임은 굼떴다. 베일의 침투만으로 역동작에 걸린 상태였으므로.
 반면 앙소니 가드너의 배후 공간을 파고드는 데 성공한 베일은 페널티 박스에 발을 들이자마자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듯 높게 솟구쳐 올랐다.
 타앙!
 이어서 낙하한 볼은 정확히 베일의 이마 정중앙에 맞아떨어졌다. 그 순간 골키퍼, 보아즈 마이힐은 이를 악물며 좌측면으로 다이빙을 시도했다.
 치익!
 
 “보아즈 마이힐의 멋진 선방!”
 
 마이힐은 가까스로 손끝으로 볼을 걷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하필 세컨드 볼은 페널티 에어리어 우측면에 있던 저메인 데포에게 연결되었다.
 ‘이런······!’
 순간 등골이 서늘해진 마이힐은 옆으로 드러눕듯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세컨드 볼에 즉시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와 동시에 헐 시티 수비진이 저메인 데포를 에워싸듯 압박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데포는 마이힐에게서 튕겨 나온 볼을 가볍게 툭 페널티 박스 대각으로 굴렸다.
 그리고
 ‘안 돼······!’
 보아즈 마이힐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드는 순간이었다.
 측면으로 찔러 준 볼이 하필 위치를 다잡은 베일에게 연결된 게 아닌가.
 우측면으로 몸이 기울었던 마이힐은 뒤늦게 온몸을 비틀며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렸으나,
 철렁!
 베일은 대각에서 왼발 인프런트 킥으로 동점 골을 뽑아냈다.
 짧은 거리에서 강하게 찼을 뿐만 아니라 공이 곡선으로 휘어져 들어간 탓에 보아즈 마이힐은 그 궤적조차 읽을 수 없었다.
 ‘맙소사······!’
 멀티골을 성공한 직후 베일의 입꼬리는 째질 듯 귀에 걸렸다. 그러곤 열광하는 홈 팬들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를 터뜨렸다.
 시즌 후반기에 처음으로 멀티골을 기록한 만큼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찌릿찌릿한 전율마저 돋았다.
 아직 승리하기 위해선 한 골이 더 필요했으나 베일은 쉽사리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는 관중석의 누군가를 찾듯 두 눈동자를 연신 바삐 굴렸다.
 동시에 그 누군가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강건······!’
 
 
 # 멘토
 
 
 가레스 베일에게 동점 골마저 허용한 헐 시티는 이성의 끈을 놓아 버렸다. 수비지역에서 위험천만한 패스 미스를 연발했고, 집중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그뿐이랴.
 ‘통하지 않아.’
 터치라인 한편, 얼굴이 시뻘겋게 물든 필 브라운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도 그럴 게 전반전과 달리 지오반니, 헤셀링크, 조지 알티도어가 공격지역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토트넘 홋스퍼는 후반전부터 라인을 전체적으로 끌어올렸다. 공격 진영에서부터 거침없이 압박하는 형태에 헐 시티 선수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헐 시티의 키플레이어였던 지오반니는 톰 허들스톤의 맨투맨 디펜스에 발이 꽁꽁 묶였다.
 더는 대지를 가르는 패스가 지오반니에게서 생성되지 않았다. 그 탓에 조지 알티도어, 헤셀링크는 무리하게 적진으로 돌파를 시도했으나,
 퍽!
 
 “조나단 우드게이트의 거친 압박! 헤셀링크가 우드게이트의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크게 밀려납니다!”
 “조지 알티도어는 베누아 아수 에코토와의 스피드 경쟁에서 패하며 고립됐군요! 설령 아수 에코토를 넘어선다 해도 최후방엔 레들리 킹이 단단히 버티고 있습니다!”
 
 ‘좌우 센터백들이 스트라이커 둘을 집중적으로 마크하고 있다······! 더군다나 레들리 킹이 스위퍼로서 스트라이커가 침투할 만한 공간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어.’
 전반전 대부분을 지역방어 형태를 취했던 토트넘 수비진은 후반에 들어오며 맨투맨 디펜스로 전환한 상태였다. 레들리 킹을 제외하고서.
 필 브라운은 토트넘이 베누아 아수 에코토를 센터백으로 포지션 변경을 했을 때만 하더라도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머금었다.
 아수 에코토는 단 한 번도 센터백으로 활약한 적이 없었기에 무리수라 본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 위치에서 아수 에코토는 조지 알티도어뿐만 아니라 스위칭 플레이에 임하는 헤셀링크마저 완벽히 견제하며 페널티 에어리어로의 침투를 차단했다.
 지오반니는 미들 서드에서부터 막혔다. 그가 어찌 움직이든 항상 그 옆엔 톰 허들스톤이 모기처럼 따라붙어 움직임을 제어했다.
 그리고
 삐, 삐, 삐이이!
 가레스 베일의 극적인 동점 골로 경기는 마무리되었다. 경기가 끝나자 언론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경기 내용을 보도했다.
 토트넘 홋스퍼로서는 전반전, 그리고 후반전 초반까지 헐 시티의 파상공세에 애를 먹었지만 값진 무승부를 기록했다는 평을 들었다.
 리그 4위가 최약체 팀 중 하나인 헐 시티를 상대로 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반전 보여 준 토트넘의 변화는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반면 필 브라운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반드시 이겼어야 하는 경기였고, 후반전만 놓고 보자면 해리 레드냅과의 지략 싸움에서 완전히 패하지 않았나.
 이는 복수 매체의 반응에서 버젓이 드러났다.
 
 “해리 레드냅의 변칙 전술에 웃고 운 필 브라운.”
 “가까스로 무승부를 기록한 토트넘 홋스퍼,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
 
 선전까진 아니어도 토트넘 홋스퍼로서는 아쉬움이 남지 않은 경기였다. 그만큼 강건이 제시한 플랜C, 3-5-2 전술의 파장은 컸다.
 이 경기의 진정한 승자는 누가 뭐래도 가레스 베일이었다.
 가레스 베일의 활약상은 영국 저명한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 『미러』, 『타임즈』의 1면에 실렸을 정도였다.
 
 “공격 재능을 마음껏 뽐낸 가레스 베일! 화이트 하트 레인을 들끓게 하다!”
 “신성 가레스 베일, 윙백으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하다!”
 “해리 레드냅의 행복한 고민! ‘베누아 아수 에코토와 가레스 베일은 완전히 상반되는 성향의 수비수! 두 선수 모두 팀에 활력을 불어넣어······.’”
 
 가레스 베일의 활약상은 일시적인 게 아니었다. 이후 34라운드 위건 애슬레틱(16위)을 상대로 3 : 0, 35라운드 스토크 시티(11위)를 2 : 1로 격파하는 데 일조하며 단숨에 주전으로 도약한 것이다.
 해리 레드냅은 이 두 경기에서 3-5-2 전술을 그대로 고수했다. 베일에게는 헐 시티전을 시작으로 3경기 3골 1도움을 기록하며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다.
 베일은 이 모든 게 강건 덕분이라 생각했다.
 
 * * *
 
 4월 30일.
 “후우, 후우, 후우!”
 36라운드 리버풀(7위)과의 대전을 앞두고 선수들은 훈련에 열을 올리고 있다.
 피치 위엔 일정 간격으로 스텝레더, 접시콘, 그리고 허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선수들은 각자 50M 스프린트 전력 질주 후 곧바로 지그재그로 놓인 접시콘을 피해 달렸고, 스텝레더를 잰걸음으로 극복한 후 전속력으로 달려 허들을 뛰어넘었다.
 훈련 코스를 5번 반복하고 나자, 코치는 발 앞에 놓인 볼을 툭 차며 선수들에게 건넸다.
 “이번엔 볼을 몰면서 각 코스를 클리어하도록 해.”
 수석코치 팀 셔우드의 지시에 선수들은 거친 숨을 몰아내며 발 앞에 굴러온 볼을 길게 차며 훈련을 이어간다.
 반면 가레스 베일은 피치 한편에서 강건과 따로 면담 시간을 가졌다.
 “요한 크루이프가 말했어. 스피드란 무엇인가의 답은 상대보다 먼저 움직이면 더 빠르다는 것이라고.”
 터치라인 한편, 가레스 베일은 두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 서 있는 강건을 보며 살포시 미간을 좁혔다.
 “그게 무슨 소리죠?”
 이에 강건은 씨익, 슬며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스피드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는 경고지. 네가 암만 빠른 발을 지녔다고 해도 상대의 위치, 네 방향에 따라 속도 차이는 확연히 날 수밖에 없거든.”
 “언제는 스피드의 장점을 살려주겠다면서요.”
 베일은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어느덧 가레스 베일은 토트넘 홋스퍼 소속 코치 중 강건을 가장 신뢰하게 됐다.
 짧은 시간이었으나 강건은 베일에게 많은 것을 선물했으니까.
 베일의 입장에서 강건은 은인과 다를 바 없었다. 그간 에이전트를 통해 새로운 행선지를 물색하고 있었던 만큼 토트넘에서의 생활은 영 불만족스러웠으니 말이다.
 하지만 강건이 나타나고부터 달라졌다.
 ‘마치 내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같다랄까······’
 강건의 고동색 눈동자를 마주할 때면 발가벗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가레스 베일은 그러한 강건이 편안했고 왠지 모를 기대감이 솟았다. 자신을 더욱 발전시킬 것 같은 확신이 있었기에.
 “사우샘프턴 시절부터 유럽 복수 전문가들은 네 플레이가 단순하다고 지적해 왔어. 그건 지금도 변함없다고 말해주고 싶군.”
 쓴소리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강건 덕분에 벤치만 데우던 신세에서 단숨에 주전으로 도약하지 않았던가.
 베일은 의아한 듯 물었다.
 “하지만 최근 3경기만 놓고 보면 마주한 상대들은 하나같이 제 오버래핑과 스프린트에 이렇다 할 반격을 하지 못했어요.”
 “그건 2007년에도 그랬어. 사우샘프턴에서 막 토트넘 홋스퍼로 건너왔을 때 말이야. 기억나나? 기억나지 않으면 관자놀이에 총알이라도 박아야 할 거야. 그때 당시에도 상대 선수들은 하나같이 네 스피드에 제대로 된 태클조차 시도하지 못했어.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어떻게 됐지?”
 “······ 패턴을 읽혀 버렸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첫 시즌 반짝 활약한 이후 다음 시즌부터 가레스 베일은 두 발이 꽁꽁 묶였다.
 베일을 맨투맨 디펜스로 마크하며 상대는 그를 측면으로 몰아세웠고 한정된 패스 코스만 고의로 열어놓았다.
 그러나 베일은 무리하게 상대가 일부러 열어 둔 공간으로 돌파를 시도했고, 결국 올가미처럼 갇히며 볼을 강탈당하여 번번이 뒷공간이 뚫리곤 했다.
 ‘그렇게 벤치에 앉게 되었고 말이야.’
 베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자 강건은 대뜸 한 손을 들어 베일의 어깨에 얹었다.
 곧 지그시 힘을 주자 베일은 움찔 몸을 떤다. 강건은 그런 그를 똑바로 지시하며 말을 이었다.
 “스피드는 타고난 거야. 굳이 발전시킨다면 어느 정도 상승효과를 보겠지만 실제로는 미비한 수준이지. 그때의 데자뷔를 겪고 싶지 않다면 다른 부분을 보완할 필요가 있어.”
 “다른······ 부분이요?”
 강건은 베일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덧붙였다.
 “당장 눈에 띄는 장점은 스피드와 왼발 크로스뿐이거든. 그 두 가지 장기만으로는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없어. 그러니 드리블, 패스, 위치선정 등 나머지 부분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거지. 내가 보기에 넌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크니까.”
 “······!”
 베일은 두 눈을 크게 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리오넬 메시라고······?’
 강건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자신을 세계적인 선수에 빗대자 베일은 진심으로 놀랐다.
 
 * * *
 
 자신의 잠재력을 현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 두 선수에 빗대는 강건을 보며 베일은 울컥하는 감정마저 치솟았다.
 누구도 베일을 세계 최고의 선수까지 성장하리라 내다보지 않았고 본인 또한 최고를 목표로 하곤 있었으나 메시, 호날두와 같은 범주에 들어가리라고는 상상치 못했기에.
 비록 2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베일은 강건이 허튼소리를 할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았다.
 피치 위에서 그는 현역 코치 못지않게 냉정하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다. 토트넘 홋스퍼의 상징적인 윙어 에런 레넌에게 유일하게 비판을 가했던 인물 또한 강건이지 않았나.
 그는 며칠 전 연습경기 도중 에런 레넌에게 이런 지적을 했다.
 
 “더욱 성장하고 싶으면 발목 힘을 기르는 걸 추천할게. 네 크로스 질은 썩 좋지 않아. 뜬 크로스보단 낮은 크로스 위주를 선호하거든. 이는 피터 크라우치라는 제공권 경합에서 우위를 점하는 스트라이커의 장점을 죽이는 꼴이라고.”
 
 에런 레넌은 강건의 발언에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머금었다. 레넌의 현재 입지는 토트넘 내에서도 해리 레드냅 다음가는 위치였기에 강건의 발언은 일파만파로 퍼져 나갔다.
 상당수 코치는 그런 강건을 불편하게 여겼다. 해리 레드냅에게 중용된 그 순간부터 이미 그랬지만.
 하지만 강건의 코칭을 직접 받은 선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강건은 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토트넘 내 모든 선수의 특성을 정확히 꿰고 있었다.
 그래서 가레스 베일은 강건의 발언이 단순 말치레가 아님을 알았다.
 그래도 베일은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왜죠?”
 “뭘 말이지?”
 어느덧 강건은 피치 위, 땀에 흠뻑 젖은 채 훈련에 임하는 선수들을 눈여겨보며 반문했다.
 베일은 살포시 두 눈을 좁혔다.
 “제가 세계적인 수준까지 성장하리라 확신하는 이유가 뭡니까?”
 사우샘프턴에서 활약하던 시절 베일이 뛰었던 리그는 프리미어리그가 아닌 챔피언십 리그였다.
 엄연한 수준 차이가 있었기에 그때 당시 활약만으로는 제 수준을 판별할 수 없다. 토트넘 홋스퍼로 이적한 이후에도 베일의 활약은 반짝 활약에 불과했으며 그런 그가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만큼 성장하리라 내다보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내 재능을 높이 사고 있다······ 아니, 확신하고 있어······!’
 쿵쾅!
 심장이 크게 뛰었다.
 강건은 다시금 가레스 베일과 시선을 교차했다. 베일은 그의 고동색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양 주먹을 꽉 쥐었다.
 강건의 눈동자는 확신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확신은 가능성이 되어 가레스 베일의 심장을 더욱 방방 날뛰게 했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 사람이라면, 나를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시킬 수 있어!’
 
 * * *
 
 가레스 베일의 성장세는 뚜렷했다. 강건이 직접 나서지 않았어도 베일은 이듬해 토트넘 홋스퍼의 새로운 상징으로 우뚝 섰을 터였다.
 ‘우측면의 에런 레넌과 함께 은빛 날개로 불리게 되겠지.’
 강건은 그러한 시기를 적절히 이용했을 뿐이었다.
 그가 베일에게 도움을 준 방식은 간단했다. 그간 베일은 해리 레드냅이 추구하는 전술에서 미약한 역할을 부여받았고 또한 특성을 살리지 못했다.
 강건은 팀 전술을 베일의 장기를 살리는 방향으로 조정했을 뿐이었다.
 회귀 전 해리 레드냅이 그러했듯이.
 강건은 피치 위 선수들을 살펴보았다. 정규훈련이 끝나고 난 뒤 선수들은 마지막 스트레칭에 임하며 근육을 풀어주고 있었다. 가레스 베일 또한 선수들 틈에 껴있는 게 보였다.
 강건의 눈매가 게슴츠레하게 휘어졌다.
 ‘보면 볼수록 탐난단 말이야.’
 잠재력을 알고 있기에 강건의 눈에는 가레스 베일이 현란한 광채를 띤 다이아몬드처럼 비쳤다.
 하지만,
 이 시기의 가레스 베일은 완전체가 아니다.
 ‘빠른 발과 크로싱 능력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 이대로 두면 몇 차례 또 시련을 겪을 게 뻔하지.’
 강건이 본 베일의 현재 수준은 동년배보다 뛰어난 영건 정도였다.
 그가 정말로 빛을 보는 시기는 앞으로 2년 뒤.
 숱한 역경을 떨쳐내며 능력치가 대폭 상승한 베일은 루카 모드리치를 뒤이어 토트넘 홋스퍼의 에이스가 된다. 나아가 최고 이적료를 경신하며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운명이었다. 그런데도 강건은 베일에게 발전할 수 있는 또 다른 시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유는 명백하다.
 ‘베일의 커리어 하이를 조금 더 앞당긴다. 그래서 완전히 내 사람으로 만드는 거야.’
 목이 마른 자는 무엇이든 잘 마신다는 뜻의 ‘갈자이음’이란 말도 있지 않던가.
 지금의 베일이 딱 그러했다.
 처음 마주했을 때와 지금의 베일은 다르다. 그 시선은 동경의 빛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대에 차 있었다.
 더군다나 강건은 코치 연수생 신분이었다.
 ‘6주라는 기간이 지나면 더는 베일을 지도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미리미리 확실한 관계를 확립할 필요가 있지. 우호적인 관계 이상의 관계를 말이야.’
 강건은 머리를 굴렸다.
 ‘UEFA 프로 라이선스 자격증까지 취득하는 기간을 넉넉히 잡아 3년······. 서둘러서 UEFA A 라이선스를 취득해 클럽에서 기틀을 다져놔야 할 필요가 있어.’
 UEFA 프로 라이선스는 세계 최고 리그라 불리는 프리메라리가, 분데스리가, 세리에A, 프리미어리그에서 감독으로 부임하기 위한 필수 자격증이었다.
 우선 UEFA B 라이선스를 취득한 뒤 곧바로 UEFA A 라이선스에 도전할 것이다.
 A 라이선스만으로도 유럽 빅클럽의 성인팀 수석코치로 활동할 수 있는 권한을 얻는다.
 회귀 전 티에리 앙리가 벨기에의 수석코치로 활동하던 시절이 딱 그 위치였다.
 ‘국가대표의 수석코치도 고려할 사항이고.’
 스페인, 영국, 벨기에 같은 클럽의 코치직을 수행한다면 그만큼 선수들과의 인맥도 형성될 터.
 스페인, 영국이야 매년 뛰어난 영건들이 배출되니 선택 1순위였다. 벨기에는 2000년대 후반부터 에당 아자르, 토르강 아자르, 로멜루 루카쿠처럼 황금세대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영건들이 속속 등장할 예정이다.
 강건 입장에선 벨기에 수석코치 자리도 군침이 도는 자리였다.
 ‘여러 클럽과 국가대표 코치직을 수행하면서 인맥을 다지는 게 우선이야.’
 강건은 확신했다. UEFA 라이선스는 차후 감독직에 굉장한 플러스적인 요소로 작용하리라고.
 
 * * *
 
 헐 시티와의 무승부 이후 토트넘 홋스퍼는 위건 애슬레틱, 스토크 시티를 연달아 격파하며 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 획득에 더욱 가까워졌다.
 현 순위는 이렇다.
 
 [09~10시즌 프리미어리그 순위]
 1위 첼시 FC: 35경기 26승 4무 5패 득점 99 실점 28 득실차 71 승점 82.
 2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35경기 26승 3무 6패 득점 83 실점 25 득실차 58 승점 81.
 3위 아스널 FC: 35경기 22승 5무 8패 득점 81 실점 38 득실차 43 승점 71.
 4위 토트넘 홋스퍼 FC: 35경기 21승 6무 8패 득점 63 실점 39 득실차 24 승점 69.
 5위 맨체스터 시티 FC: 35경기 20승 6무 9패 득점 70 실점 40 득실차 30 승점 66.
 6위 애스턴 빌라 FC: 35경기 16승 12무 7패 득점 50 실점 36 득실차 14 승점 60.
 7위 리버풀 FC: 35경기 17승 8무 10패 득점 60 실점 32 득실차 28 승점 59.
 
 리그 종료까지 3경기를 앞둔 만큼 1위 첼시와 2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간의 2파전 양상이었다.
 토트넘 홋스퍼는 일찍이 우승보다 UEFA 챔피언스리그 티켓에 사활을 건 상태다.
 그렇기에 36라운드 리버풀전은 토트넘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일전이었다.
 자칫 패배할 경우 5위 맨체스터 시티에게 4위 자리를 내어줄 공산이 컸기에.
 그러나 훈련에 임하는 선수들의 표정은 전에 없을 정도로 밝았다. 다수 언론은 리버풀의 홈그라운드인 안필드에서 경기가 치러짐에도 토트넘 홋스퍼의 승리를 점쳤다.
 토트넘은 후반기 들어 상승궤도에 올랐고 몇 시즌 동안 부진을 거듭하던 가레스 베일이라는 공격 루트가 새로이 탄생했으니까.
 반면 라파엘 베니테즈가 이끄는 리버풀은 팀의 구심점이었던 사비 알론소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급격히 추락하는 실정이었다.
 그 대체자로 AS 로마에서 3000만 파운드라는 거금에 알베르토 아퀼라니를 영입했으나 그는 잦은 부상을 달고 살며 올 시즌 6경기 선발로 나선 게 전부였다.
 토트넘 홋스퍼의 대다수 선수는 리버풀과의 대전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선수들은 그 어느 때보다 의욕적으로 훈련에 임했고 훈련장엔 웃음이 끊임없이 감돌았다.
 하지만 몇몇 선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후우, 후우, 후우!”
 피치 한편에는 에런 레넌, 로만 파블류첸코, 윌슨 팔라시오스는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서서 50M 스프린트를 6회 시행 후 1분간 휴식하는 훈련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러던 순간,
 “개자식!”
 에런 레넌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냅다 잔디를 걷어찼다.
 거친 숨을 몰아쉰 그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팔라시오스와 파블류첸코를 휙 하고 돌아봤다.
 “나를 엿 먹이려는 수작이야.”
 “후아~ 엿 먹이려는 수작?”
 숨을 길게 토해낸 로만 파블류첸코가 반문했다. 팔라시오스는 혹여나 누가 들었을까 봐 고개를 휙휙 돌려 주변을 바삐 살폈다.
 다행히 선수들은 저마다 세션을 소화하고 있었고 몇몇 코치들은 선수를 맨마킹하며 개인 지도에 임하고 있다.
 에런 레넌은 찡그린 얼굴로 어느 한 곳을 눈짓했다.
 그곳엔 검은 머리칼에 검정색 토트넘 트랙탑을 입고 있는 강건이 있었다.
 한창 가레스 베일을 지도 중인 강건을 보며 레넌은 불쾌한 듯 투덜거렸다.
 “내 발목이 약하다고 비난했잖아.”
 며칠 전 연습경기에서 강건은 에런 레넌의 발목을 지적했다.
 2005년,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영입된 에런 레넌은 이른 시간 안에 토트넘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매년 클럽 내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을 만큼 팬층이 두꺼웠고 실력만 놓고 봐도 토트넘 부동의 윙어로까지 성장했다.
 시즌이 시작되고 마감될 때마다 토트넘 내 에런 레넌의 입지는 상상 이상으로 커졌다. 감독마저 쉬이 다루지 못할 만큼.
 그런데,
 
 “슈팅 찬스가 왔음에도 직접 골을 노리기보단 패스 혹은 크로스를 선호하는군. 발목 힘이 여타 선수들에 비해 약하다는 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어. 그렇지? 뭐, 지금 플레이도 나쁘지 않지만 조금 더 개선한다면 누구도 넘보지 못할 선수가 될 수 있을 텐데······.”
 
 강건은 거리낌 없이 에런 레넌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에런 레넌은 토트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였고 레넌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강건의 지적은 레넌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입히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강건을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2주 사이 강건의 입지 또한 놀랍도록 단단히 다져진 탓에.
 토트넘의 플레이메이커인 루카 모드리치, 5시즌째 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톰 허들스톤이 지지하기 시작했고 더불어 해리 레드냅 감독마저 강건을 눈여겨보지 않나.
 무엇보다 강건의 지적이 비수처럼 날아와 심장에 푹 박혔다.
 그래서 더욱이 발끈했다. 자신의 치부가 들통난 것만 같았기에.
 “진정해. 그냥 멋모르고 내뱉은 소리니까.”
 “깎아내리고 싶은 거야. 선수로서 한 번 망했던 케이스잖아? 그러니 너처럼 성공한 부류를 무작정 까고 보는 거지. 동양인은 항상 열등감에 절어 있다니까?”
 윌슨 팔라시오스와 로만 파블류첸코는 저마다 한 마디씩 내뱉으며 씩씩대는 에런 레넌을 다독였다.
 그러나
 “웃기는 소리.”
 레넌은 눈에 불을 켜고서 반대편 너머의 강건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혼잣말로 덧붙였다.
 “저 녀석은 정확히 내 문제점을 지적했어.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거야.”
 
 * * *
 
 리버풀과의 대전을 5일 앞두고 해리 레드냅은 강건을 별도로 감독실로 호출했다.
 해리 레드냅은 강건이 당도하기 전, 사무용 의자에 앉아 손에 든 전술 및 훈련계획표를 훑어보고는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이는 해리 레드냅이 코치 연수생들에게 내준 숙제였다.
 ‘카일 에브리엄은 리버풀을 상대로 지난 헐 시티전에서 꺼내 들었던 쇼트 카운터를 그대로 가져가는군.’
 훈련계획도 지난날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나쁘지 않은 전략이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는 속담도 있지 않던가.
 확실히 플랜C, 3-5-2 쇼트 카운터 전술은 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미하엘 뮐러는 3-6-1 포메이션을 제안했다.
 리버풀엔 라인 브레이킹의 귀재인 페르난도 토레스가 있었고, 이를 방지하고자 미드 서드에 수적 우위를 점하려는 계획일 터.
 그러나
 ‘이 방식은 자칫하다간 혼잡함을 연출할 수도 있어. 헐 시티전처럼 손발이 맞지 않아 역으로 균형이 붕괴할 가능성이 크다고.’
 반면,
 스윽.
 해리 레드냅은 오른손에 든 강건의 계획표를 보며 눈을 빛냈다.
 ‘4-2-3-1······.’
 기존 3-5-2처럼, 주된 공격 루트는 측면이다.
 그런데,
 ‘가레스 베일을 윙백이 아닌 윙어로 두는 건가?’
 남들이 흔히 생각할 수 없는 기묘한 전략에 해리 레드냅은 강건이 대체 어떤 이유로 이러한 전술을 구상했는지 알고 싶었다.
 ‘원톱 자리엔 팀 내 득점력이 가장 우수한 저메인 데포 대신 피터 크라우치를 선택했군.’
 지난 시즌 웨스트햄이 강등되고 나서 저메인 데포는 토트넘 홋스퍼를 새로운 행선지로 삼았다.
 해리 레드냅은 데포와 함께 영입한 피터 크라우치를 투톱으로 기용했고, 데포는 이에 화답하듯 팀 내 최다득점을 기록하며 토트넘이 빅4로 진입하는데 크게 공언했다.
 피터 크라우치도 나쁘지 않은 자원이었으나 해리 레드냅, 그리고 토트넘 내 상당수 코칭스태프들은 굳이 원톱을 세워야 한다면 저메인 데포를 선택할 터였다.
 크라우치는 공중전 경합에 능통하나 슈팅 타점이 꽤 부정확한 자원이었으니까.
 바로 그때,
 똑똑, 노크와 함께 강건이 방문을 알렸다.

댓글(2)

g1***************    
선수는 어느 감독. 어느 코치를 만나냐에 따라서 성적이 바뀌죠. 그리고 노력하게되는 계기. 이적해서 성공한 케이스들은 그런 운이 다 맞아떨어진거죠. 과연 팀에 데려온다고 다 해결이 될까요?
2019.12.12 20:03
다크라이    
포지션 변경이 몇일만에 가능하다면 위치 좀 바꾼다고 성적달라질 선수가 없고, 플레이스타일이나 크로스가 연습 몇일한다고 바뀌면 매일 훈련이 필요할까..
2020.03.01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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