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강남 퇴마사 [E]

강남 퇴마사 1-1권

2019.07.24 조회 1,497 추천 11


 # 프롤로그
 
 왜 하필이면 이 길을 선택했느냐고?
 선택, 선택이라···.
 음··· 글쎄. 따지고 보면 내가 선택한 게 맞긴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시 내겐 이 길 말고는 다른 걸 선택할 선택권 자체가 없었어.
 이건 여러 보기 중 그나마 마음에 드는 걸 골라 선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거든.
 하거나 아니면 죽거나. 둘 중 하나라고 봐야 돼.
 하긴, 그냥 깔끔하게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순 있었겠네.
 하지만 당시 내겐 그럴 용기가 없었고, 고백하건대 그럴 용기는 지금도 없는 거 같아.
 어쨌든 내겐 선택권 같은 게 애초에 없었어.
 일단은 살아야 했으니까.
 
 
 # 진짜가 나타났다
 
 날 만나려면 최소 일주일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신년이나 수능 기간, 결혼, 이사 시즌이 다가오면 법당 출입까지 한 달 이상이 걸릴 수도 있으니 이 점 명심하고.
 그날도 그랬다.
 마지막 10번째 클라이언트를 맞이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보다 말발이 잘 올라오는 날이었다.
 클라이언트들의 사연도 다들 고만고만해서 상담이 무척 수월한 편이었고.
 당연히 평소보다 상담이 빠르게 진행됐고, 10번째 클라이언트였던 고3 수험생 모녀가 법당 안으로 들어올 때 살짝 시간을 확인해 보니 고작 오후 3시가 지나고 있었다.
 하나같이 다들 남편 바람기, 궁합, 이직 시점, 사업운 등 상담하기 쉬운 것들을 물어오는 클라이언트들이라 상담이 무척 깔끔하게 끝이 나고 있었다.
 특히 부적이 제법 많이 나간 날이었다.
 항상 남편 바람기를 의심하는 청담동 큰손 사모가 자식들 것까지 해서 부적을 6장이나 사 갔다.
 자주 오는 사모다.
 부적 한 장 만드는 데 들어가는 원가라고 해 봤자 500원이나 들까?
 그런데 그게 클라이언트들에게 팔릴 때엔 천 배, 이천 배, 삼천 배까지 뻥튀기가 되어서 작은 놈은 50만 원, 좀 큰 녀석은 150만 원까지도 나가는 거지.
 그날은 정말 입을 조금만 털어도 클라이언트들이 알아서 지갑을 열어 주었다.
 마지막 클라이언트도 제발 그래 주길 바라며 상담을 시작했다.
 
 “어서 들어오세요. 오래 기다리셨죠?”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아까 화장실 가는 길에 보니까 한참 전부터 오셔서 쭉 기다리고 계시는 거 같던데···. 전 그래서 당연히 순번이 좀 빠르신 줄 알았어요. 혹시라도 다음에 또 오실 일 있으시면 순번에 맞게끔 시간을 계산해서 오세요. 순번이 정해져 있는데, 뭐 하러 아까운 시간을 버립니까? 보통 한 분 모시는 데 30분 정도 걸리거든요.”
 “···네.”
 
 도사라는 타이틀에 얽매여서, 또 날 찾는 클라이언트들이 줄을 섰다고 해서 소중한 클라이언트들 앞에서 내 권위를 내세우지는 않는다.
 난 내가 하는 이 일도 일종의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최대한 클라이언트들을 심적으로 편안하게 만들어 놓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본상담에 들어가는 건 수많은 가짜들이 난립해 있는 이 바닥에서 지금의 날 있게 만들어 준 최고의 경쟁력이다.
 
 “무슨 일로 절 찾으셨을까···.”
 “실은···.”
 “쉿!”
 
 난 고3 수험생을 딸로 둔 여자의 입을 막아 세웠다.
 여자는 자신이 내 앞에서 뭔가 실수를 했을까 봐 살짝 긴장한 상태로 눈치를 살폈고, 난 그런 그녀를 향해 안심하라는 의미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 정도도 못 맞히면서 신의 말씀을 전하는 신제자인 척 거드름을 피우며 이렇게 앉아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
 “자, 그럼 어디 한번 봅시다. 제 손 위로 어머니 손바닥부터 먼저 올려 보세요.”
 
 여자가 내 손바닥 위로 자신의 손바닥을 올렸다.
 조신한 분위기와는 달리 참 많은 게 보이는 여자였다.
 출근하는 남편과 학교 가는 자식들을 위해 누군가와 함께 아침밥을 준비하는 모습, 남편과 자식들이 다 나간 후 홀로 집에 남아 있는 모습, 스마트폰으로 사람들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모습, 수영장에 들어가는 모습, 친구들과 만나 커피를 마시는 모습, 그리고···.
 난 그녀의 손을 내 손바닥 위로 계속 올려 둔 채 다른 한 손으로는 연습장에 그녀의 정보를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암호로 계속 적어 내려갔다.
 
 “따님이랑 함께 오셔서 제가 말을 어디까지 조심해서 해 드려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게 무슨···.”
 “우선 딸은 잠시만 밖에 나가 있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딸을 밖으로 내보낸 뒤 여자에게 말했다.
 
 “여기 오신 이유는 당연히 따님의 대학 진학 문제 때문이겠죠?”
 “네.”
 “전 그런데 그 부분보다 어머님 개인 사생활이 더 걱정스럽네요.”
 “···!”
 
 난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이런 데 오셔서 거짓말 같은 건 하시면 안 됩니다. 아시죠?”
 “···네.”
 “가족들 몰래 밖에서 따로 만나고 있는 남자가 한 명 보이네요?”
 “···!”
 “어머님보다 한참 연하다, 그렇죠? 민재···.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 이름이 민재예요? 박민재, 그렇죠?”
 “어, 어떻게 이름까지···.”
 
 자신이 가족들 몰래 밖에서 따로 만나고 있는 남자의 이름까지 맞혀 버리자 여자는 놀라움이 아닌 공포가 담긴 눈으로 날 쳐다보면 떨기 시작했다.
 
 “딱 봐도 사기꾼이네. 개인 사업은 무슨. 사업하는 사람이 그래 돈 이천만 원이 없어서 그걸 가정이 있는 줄 뻔히 다 알면서 만나고 있는 여자한테 빌려 달라고 해요? 어머님도 참 답 없네. 그래서 또 그 돈을 빌려주고 앉아 있다! 언제까지 갚으란 말도 없이 그냥 턱하고 빌려줘? 진짜 미친 거 아냐?”
 “사, 사기꾼이요?”
 “지금 딸 대학을 걱정할 상황이 전혀 아니신 거 같은데?”
 “···.”
 “좋은 대학만 보낸다고 해서 좋은 부모 노릇을 다 하는 게 아닙니다. 나중에 따님 상담도 따로(여기서 따로라는 표현은 참 중요하다. 꼭 짚어 줘야 하는 부분. 같이 왔지만 복비는 당연히 따로 내야 한다는 걸 의미하니까. 너무나 당연한 건데, 요즘은 그 당연한 걸 당연하지 않게 여기는 얌체들이 참 많다) 해 봐야 알겠지만, 이미 어머님만 봐도 뭔가 기운이 상당히 탁합니다. 따님 대학을 걱정하고 기대할 상황이 아니라는 말씀부터 드리고요, 그래도 딸은 또 대학에 보내야 하니까 오늘 어머님 상담은 여기까지만 하는 걸로 하죠. 더 봤다가는 이중적인 어머님 행동에 신이 노하실 거 같아요. 괜찮으시겠죠?”
 “···네. 그런데 도사님. 그 남자가 진짜 사기꾼인가요?”
 “사기꾼이 아니면 앞으로도 계속 쭉 만나겠단 뜻인가요?”
 “···.”
 
 이쯤에서 고압적인 자세를 좀 풀어 줄 필요가 있다.
 어쨌든 클라이언트니까.
 클라이언트는 언제나 소중하다.
 상대를 다독이듯 표정을 풀며 그녀에게 말했다.
 
 “이해는 합니다. 결혼해서 자식 낳고 한 20년 누군가의 아내로, 또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다 보면 어머님도 사람이고 여잔데 왜 외롭단 생각이 안 드시겠습니까? 남편은 작년부터 출장 핑계로 사흘이 멀다고 골프채 들고 해외로 나다니고 있고···. 근데 집에 돈이 좀 많으신 모양이에요? 집에 살림을 대신 살아 주시는 아주머니도 한 분 보이네요?”
 “시댁에 국회 출신이 좀 많이 있는 편입니다.”
 “그러니 남편이 나라 관련 도로 사업도 하고 그러시는구나.”
 “···네.”
 
 사실 이 정도 스펙이면 단골로 삼아 놓고 좋은 만남을 계속 유지해도 되는 알짜 클라이언트라고 봐야지.
 급할 건 없다.
 천천히 서로를 알아 가면서 어느 정도 견적이 나올지를 따져 보는 게 현명한 처사다.
 
 “흐음···. 대충 이해가 갑니다. 시댁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력이 부족한 친정. 시부모가 보내는 은근한 눈치와 멸시를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 넘기며 지금껏 버텨 내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겠습니까, 그래. 그런 외로운 어머님 마음을 위로해 줄 사람이 하나쯤은 필요하셨겠죠. 다음에 따님이랑 함께 오시지 말고 혼자 따로 한번 찾아오세요. 보니까 어머님 인생에도 굴곡이 꽤 많네요. 따님 대학 걱정할 때가 아니에요, 지금. 그래도 풀어야 할 건 풀어야 하니까, 빠른 시일 내로 다시 예약 잡아서 찾아오시고, 오늘은 따님 위주로 상담을 진행해 봅시다.”
 “···네.”
 “그럼 나가셔서 시원한 물 한 잔 드시고 따님이랑 같이 다시 들어오세요.”
 
 그렇게 단 몇 분 만에 복비 30만 원을 날로 버는 거다.
 그리고 단골을 확보하는 거지.
 이러니 이 생활 6년 만에 강남에 건물을 살 수밖에.
 보통 약점이 많은 클라이언트한테는 상담을 끝내고 부적을 업세일링하기도 무척 쉽다.
 이런 강남 사모들한테 돈이 돈이겠나? 그냥 내가 파는 부적 쪼가리처럼 종이일 뿐인 거지.
 그래도 오늘이 첫 법당 방문이니까 너무 비싼 걸 팔 수는 없고, 딸 학업 집중력 강화용 부적 한 장, 플러스 본인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줄 부적 한 장. 그렇게 모녀 디스카운트를 적용시켜서 상담비 포함 150 정도 받으면 딱 적당한 사이즈다.
 그. 런. 데!
 그런데 그날의 클라이맥스는 바로 그때부터 시작된다.
 딸을 데리러 나갔던 여자가 한참이 지나도 다시 돌아오지를 않는 거다.
 난 결국 기다리다가 밖을 향해 목소리를 높여 법당 일을 도와주고 있는 호철이를 불렀다.
 
 “어머님이랑 따님 안으로 다시 모셔 주세요.”
 
 일반 2층짜리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법당이라 클라이언트들을 상대하는 안방에서 그 정도 톤으로 말을 하면 밖에서 다 들을 수가 있다.
 그런데 최소한 지금 들어가십니다, 하는 대답 정도는 돌아올 법도 한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다. 뭔가 싶어서 결국 밖으로 나갔다.
 
 “누구···.”
 
 예상외의 장면이 상담자들 대기실 겸 거실로 쓰고 있는 공간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4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눈매가 매서운 아저씨 한 명과 3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제법 성형 수술이 자연스럽게 된 미모의 여자 한 명이 호철이와 대치 중에 있었다.
 그리고 그날의 마지막 클라이언트였던 모녀가 양쪽의 대치 사이에서 갈팡질팡 못 하고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오늘 상담은 이분들이 마지막 아니었어?”
 “신경 쓰지 마. 내가 알아서 정리할게.”
 
 호철이는 자신이 알아서 상황을 정리하겠다고 말하며 양쪽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모녀에게 얼른 손바닥 도사와 함께 상담을 받으러 들어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온 집 안이 여기저기서 쓸려 들어온 영가들에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기운이 탁하네.”
 
 입고 있는 캐주얼한 복장과는 달리 어디서 주웠는지 색 바랜 부채를 들고 법당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여자가 말했다.
 하는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니 평범한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난 단번에 그들의 정체를 알아챘다.
 어쩐지 일진이 너무 좋더라니···.
 사실 여자가 들고 있는 부채도 부채지만 엄지와 중지, 약지를 쉬지 않고 붙였다 떼어 내는 남자의 행동은 그들이 이쪽 계통 사람들이란 걸 대신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난 최대한 침착하게 그들을 상대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보아하니 저한테 상담을 받으러 오신 분들 같지는 않고···.”
 
 내 질문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여자는 날 위아래로 재빨리 훑은 뒤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차갑게 웃었다.
 
 “여기서 지금 뭐 하고 계시는 거예요?”
 
 내가 한 질문이 아니다.
 상대가 나한테 그렇게 물어본 거다.
 진짜 어이가 없는 거지.
 
 “이 상황에서 그런 질문은 그쪽이 아니라 이곳 주인인 제가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제 법당에서 지금 뭐 하고 계시는 겁니까?”
 “법당? 훗···. 지금 여길 법당이라고 하셨어요?”
 “어떻게 오셨냐고요. 여긴 예약한 분들만 모시는 곳입니다. 혹시 예약 날짜를 잘못 알고 오신 거라면 죄송하지만 오늘은 상담이 다 끝이 나서요. 다시 예약 날짜 정확하게 확인하고 방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난 딱 거기까지만 상대해 주고 모녀에게 다시 상담실로 들어가자고 했다.
 
 “아무한테나 함부로 문 열어 주고 그러지 마.”
 “미안. 난 또 오늘 상담받으러 왔던 분들 중에 누가 뭘 놔두고 가서 다시 온 건 줄 알았어.”
 “알았으니까 대충 정리하고 돌려보내.”
 
 클라이언트들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최대한 관대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러지 않았다.
 
 “당신들 지금 이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알고나 하는 거예요?”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시죠.”
 
 내가 클라이언트 모녀를 다시 안으로 모시려고 하자, 부채를 든 여자가 소리쳤다.
 
 “이봐요, 아줌마!”
 
 나름 앞뒤 상황을 따져 보려는 남자와는 달리 그와 함께 온 여자는 대책이 없었다.
 
 “그 안에 들어가지 말라니까요? 들어가면 큰일 나는 곳이에요. 여기서부터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위험하다고 말을 해 줘도 왜 듣지를 않지?”
 “지금 이거 영업 방해하는 겁니다.”
 
 결국 난 최대한 눈에 힘을 주며 한마디 했다.
 
 “영업 방해? 하··· 이건 영업 방해가 아니라 사기 현장을 잡은 거죠.”
 “지금 한 그 말은 명예 훼손이고요.”
 “사기꾼한테 명예 같은 것도 있어? 훼손이라는 것도 뭐가 있어야 할 거 아냐.”
 “이 여자가 진짜 날 언제 봤다고···. 말을 너무 막하네. 사기꾼이라니. 왜 이렇게 경솔하게 행동하지?”
 
 바로 그 순간!
 
 “이노오오오오옴!”
 
 놀래라!
 그녀가 갑자기 벼락과도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날 몰아붙이는데, 순간 나는 물론이고 호철이까지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어디서 신 한번 제대로 느껴 보지도 못한 사기꾼 같은 놈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법당을 차려 놓고 신제자 행세를 해, 신제자 행세를!”
 “뭐, 뭐라고 하는 거야, 이 여자가 지, 지금···.”
 
 여자의 드센 기운을 가볍게 누르며 남자가 앞으로 걸어 나와 말했다.
 
 “이봐요, 젊은 양반.”
 “···.”
 “대충 어떤 장면인지 짐작은 가는데, 하더라도 적당히 했어야지. 지금 이 집에 달라붙은 영가들을 보니까 젊은 양반이 가도 너무 많이 갔어요.”
 
 그런데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 것일까?
 남자가 날 향해 한 걸음 다가오는 순간 당연히 착각이겠지만, 난 남자의 어깨너머로 거대한 파도가 치솟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 뭘요?”
 “뻔히 다 아는 처지에 돌려 말하지 맙시다. 어쩌다가 풍수적으로 완벽해야 할 이 좋은 터에 이런 고약한 악취를 풍기는 영가들이 이렇게까지 많이 모여들게 된 건지는 몰라도, 내가 봤을 때 젊은 양반이 하고 있는 지금 이 일이 그렇게 바람직한 일은 아닌 거 같아요.”
 “크흠···.”
 “사람은 다 저마다 다 타고난 자신의 명이라는 게 있어요. 그런데 그 명을 노력으로 연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젊은 양반처럼 스스로 단축시키는 사람들도 많죠. 어지간하면 내 그냥 지나치겠는데, 우연히 이 앞을 지나가다가 비정상적으로 이상한 기운이 유독 이 집으로만 집중되어 있길래 도대체 뭔가 싶어서 초인종을 눌렀던 거예요.”
 
 그게 바로 나와 진 법사, 문 보살 콤비와의 첫 만남이었다.
 
 “일단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는 대충 알겠는데, 보시다시피 지금은 상담 중이라서요. 남의 법당에 이렇게 함부로 찾아와서 이러는 건 좀 아닌 거 같지 않아요?”
 
 내 말에 문 보살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고, 진 법사는 애초에 내가 하는 말 따윈 듣지도 않으며 그저 집 안 구석구석을 살피기 위해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손님들도 앞에 계시고···. 나중에 시간을 내어 드릴 테니까 시간이 많으시면 여기서 조용히 기다리시든지, 아님 그냥 돌아가세요. 안 그럼 어쩔 수 없이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건 잘 모르겠고. 이봐요, 젊은 양반.”
 “저랑 이야기하고 싶으면 조용히 기다리시라고요. 예약은 안 하셨지만, 시간 내서 만나는 드리겠다고요.”
 “쩝···. 그럼 그럽시다, 뭐.”
 
 
 # 그래서 도대체 내가 누구냐고?
 
 마지막 클라이언트가 법당을 나선 뒤 난 호철이에게 영업을 종료하자고 말하고 진 법사와 문 보살을 거실 소파로 안내했다.
 
 “제가 가급적 일을 끝내고 나면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서요. 저한테 무슨 볼일이 있으신지는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최대한 빨리 끝내고 돌아가 주세요.”
 “···.”
 “왜 갑자기 말들이 없으세요? 아깐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노오오오옴! 하면서 고함을 잘만 치시더니. 다른 들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목소리를 높일 이유가 없다, 뭐 그런 거예요?”
 “젊은 양반.”
 “아까부터 계속 젊은 양반, 젊은 양반 하시는데 저 양반 아니고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습니다. 젊은 양반이라고 누군가를 부를 정도로 나이가 많으신 것 같지도 않은데, 꼭 아랫사람 대하듯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불쾌합니다.”
 “지금 이곳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나 있어요?”
 
 난 결국 답답한 마음에 협탁 서랍에서 재떨이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누가 보냈어요?”
 “그게 무슨···.”
 “저도 대충 짐작 가는 사람이 있긴 한데, 다 알 만한 사람들끼리 말 길게 섞어서 서로 힘 빼지 맙시다.”
 
 대충 정리를 끝내고 온 호철이에게 오늘 영업해서 만든 현금을 카운팅하게끔 시킨 뒤 최대한 자리를 빨리 끝내기 위해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가 다른 곳들보다 복비를 많이 받는 건 어떻게 보면 당신네들 입장에서도 좋은 거 아닌가요?”
 “허···.”
 “서로 타깃이 다르잖아요, 타깃이. 그리고 복비에 시장 가격이라는 게 어디에 있습니까?”
 
 난 사실 진 법사와 문 보살을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온 영업 방해꾼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쪽 바닥이 밖에서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안은 정말 구정물 싸움이 많이 일어나는 바닥이다.
 오래전 모텔의 개념이 없었을 당시, 역 근처에서 여관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견제하기 위해 상대 여관에 손님으로 위장해서 들어가 방에 뱀을 풀고 그걸 또 소문내서 영업 방해를 했다는 이야기들은 그나마 인간적일 정도로 이쪽 바닥의 영업 방해는 무척 노골적이고 또 지저분하다.
 
 “아까 봐서 알겠지만, 여기 오는 손님들은 돈 일이백 정도는 돈으로 생각을 안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쪽들이랑 나랑은 아예 처음부터 타깃이 다르다니까? 돈 있는 사람들 상대로 서비스 퀄리티 제대로 갖춰 놓고 복비 올려 부르는 거 가지고 무슨 내가 시장 가격을 파괴하는 주범이니, 뭐니···. 그런 말은 나처럼 복비를 올려 받는 사람이 아니라, 저기 어디야? 삼거리 눈꽃선녀 맞죠? 아무튼 그런 아줌마처럼 자기 혼자 살겠다고 3만 원에 복비 후려치는 사람들한테 가서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때까지만 해도 난 정말 몰랐다.
 그들의 정체가 천하의 진 법사와 문 보살 콤비였다는 걸.
 아무리 내가 상대를 가리는 편이 아니라고 해도 그 상대가 진 법사와 문 보살인지 알았더라면 겸손하게 행동했겠지.
 
 “오히려 앞장서서 고급화 전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 상대하고 있는 나한테 고마워하셔야죠. 시장 가격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내가 시장 가격을 올려 주고 있는 거라고요. 내가 작정하고 당신들처럼 복비 5만 원에 후려쳐서 손님들 다 끌고 와 볼까요? 그럼 당신들 진짜 손가락만 빨아야 돼.”
 
 난 몇 모금 빨지도 않은 담배를 재떨이 속으로 비벼 끄며 진 법사와 문 보살을 차례대로 쳐다봤다.
 그리고 최대한 그들이 기분 나쁘지 않도록 말했다.
 
 “저도 압니다. 요즘 경기가 많이 어렵죠? 예전에야 경기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이쪽 시장이 호황이었지, 요즘은 딱히 그렇지도 않죠.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밌게도 저희처럼 단가 높은 점집은 또 그럭저럭 괜찮아요. 오히려 단가 높이는 점집들이 늘고 있는 추세잖아요. 그건 알고 계시죠?”
 “얼씨구?”
 “그렇게 비아냥거리기만 할 게 아니라, 이럴 때일수록 우리끼리 뭉쳐서 방법을 찾아야 할 거 아닙니까. 스스로 변해 보려는 노력은 전혀 안 하고 다른 사람 영업장이 장사가 잘되니까 배가 아파서 이렇게 꼬장을 부리러 오는 건 너무 유치해요. 그러시지 말고 누가 보냈는지는 모르겠는데 가서 전하세요. 잘 불리는 방법을 알고 싶으면 당당하게 찾아와서 도움을 요청하라고. 한 다리만 건너면 다 뻔히 아는 사람들끼리 이게 뭐 하는 겁니까? 안 그래요? 제 밥그릇 빼앗긴단 생각 같은 거 안 하고 성심껏 도와줄 테니까 누군지는 몰라도 직접 찾아오라고 하세요.”
 
 그리고 호철이를 불렀다.
 
 “아직 안 끝났어?”
 “이제 막 돈 세는 중이야.”
 “그거 조금 있다가 하고 지금 이분들 가신다고 하니까 차비 좀 챙겨 드려. 좀 넉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진 법사와 문 보살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좋게좋게···. 과연 누가 진짜 시장 가격을 파괴하는 건지, 제가 과연 당신들의 적일지 아군일지부터 곰곰이 생각해 보세요. 전 그럼 영업장 마감해야 해서···.”
 
 바로 그때였다.
 
 “잠깐 좀 앉아 봐요. 아직 우린 할 말 시작도 안 했는데···.”
 
 갑자기 문 보살이 내 손목을 잡아채기 위해 손을 뻗었고, 난 그런 그녀의 손을 피해 역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아챘다.
 
 “왜 남의 몸에 손을···!”
 
 문 보살의 손목을 잡는 순간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껏 무수한 사람들의 기억을 읽어 왔지만, 문 보살이 가진 기억만큼 말도 안 되는 기억이 읽혔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건 일반적인 사람의 인생이 절대 아니었다.
 난 놀란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며 재빨리 그녀의 손목을 놓아 주었다.
 놀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게 손목을 잡혔던 문 보살 역시 마치 못 볼 것을 본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가만히 두 눈을 감았다 뜨길 반복할 뿐이었다.
 
 “누, 누구세요?”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정체가 뭐야?”
 
 진 법사는 서로를 보며 놀라고 있는 나와 문 보살을 번갈아 쳐다봤고, 흰 봉투 두 개를 가지고 거실로 나온 호철이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당신···. 정말 신 모시고 있는 거 맞아?”
 “반말은 하지 말고요.”
 
 사이코메트리.
 현재 내가 사용하고 있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사람들은 사이코메트리 능력이라고 부른다.
 신체의 일부를 사물이나 사람에게 닿게 해서 그 기억이나 영적인 현상을 읽어 내는 능력을 말한다. 난 국민학교 2학년 때, 그것도 교실에서 우연한 계기로 내게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그동안 그걸 모르고 살아왔는지, 아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특별한 계기를 통해 그 능력이 생겨난 건지는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다만 그 현상을 처음 경험한 건 국민학교 2학년 때 교실에서였다는 것과 처음 이 현상을 경험하고 무척이나 놀랐다는 것.
 그리고 이걸 남들에게 말해서 좋을 건 없겠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정도.
 그 정도로 눈치가 빠른 나도 진 법사와 문 보살이 내게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는 순간 잠시 멍해 있었다.
 
 “이렇게 귀하신 분들을···. 제가 그런 것도 모르고 정말 실례가 많았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온 기운을 집중시키다 보니 저도 모르게 예민해집니다.”
 “···.”
 “두 분 말씀은 정말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많이 들었습니다. 특히 법사님의 따뜻한 인정과 문 보살님의 영험함은 저 같은 따라지 도사들에게는 언제나 깊은 귀감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혹시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직 시간이···.”
 “호철아.”
 “응?”
 “청담동에 우리 가는 한웃집 있지? 전화해서 룸으로 4인 상 예약하고, 7시쯤 갈 테니까 그때 마셨던 이탈리아 와인 한 시간 전에 미리 오픈시켜서 세팅 좀 해 놓으라고 해.”
 “7시? 아직 4시도 안 됐는데?”
 “법당에 잡귀가 많이 모여들었다고 걱정들 하시잖아. 그것들부터 잡아야지. 3시간이면 충분하시겠습니까?”
 “···.”
 “야, 호철아! 너 진짜 아까부터 거기 멀뚱히 서서 뭐 하냐? 얼른 커피라도 좀 내 와. 커피 괜찮으시죠? 아님 시원한 식혜라도···.”
 
 
 # 그럼 제가 법사님의 제자가 되는 건 어떻겠습니까?
 
 진 법사와 문 보살은 집 안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마치 나란 사람은 앞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대화에 끼지는 못했어도 듣는 건 다 들을 수 있었다.
 
 “봐야 알겠지만 저기가 제일 문제겠네.”
 “저기 저 방 때문에 아까부터 계속 가슴이 답답했던 모양이에요.”
 “힘들어?”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괜찮아요. 참을 만해요.”
 “참아야 될 정도야?”
 
 그들이 가리키는 곳은 바로 신당을 차려 놓은 안방이었다.
 아닌 척해 보려고 했지만, 소름이 끼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명성과 평판이라는 게 있는데, 천하의 진 법사와 문 보살이 따신 밥 먹고 남의 영업장까지 찾아와서 흰소리를 할 사람들도 아니고, 마치 미리 짠 것처럼 그들이 입을 모아 안방을 향해 그런 말을 할 때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사이 호철이가 마실 것을 준비해서 다시 거실로 나왔다.
 
 “날도 더운데 시원하게 한 잔씩 하시면서···.”
 “아까 그거 뭐였어요?”
 
 그제야 나한테 관심이 생기는지, 문 보살은 호철이가 권하는 마실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내게 물었다.
 
 “뭐가요?”
 “아까 그쪽이 내 손목 잡았을 때 말이에요. 내가 느꼈던 그 기운이 뭐냐고요. 신이 담길 탈(생김새)은 절대 아니고···. 그런데 아까 전 당신 손을 통해 분명 꽤 강한 뭔가를 느꼈거든요.”
 “그게 실은···.”
 “쉿!”
 
 그 순간 진 법사가 재빨리 나와 문 보살의 대화를 막아 세우며 손을 뻗었다.
 호철이는 쟁반을 든 채 테이블 위로 컵을 내려놓다가 진 법사의 손짓에 그대로 얼음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한참 만에 진 법사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들었어?”
 
 진 법사의 물음에 문 보살은 두 눈을 살며시 감으며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2층에도 뭐가 많네요.”
 “위에서 들리는 소리 맞지?”
 “네.”
 “어디부터 시작해야 되는 거야?”
 
 만약 진 법사와 문 보살의 존재를 몰랐다면 난 분명 색안경을 끼고 이 둘을 봤을 거고, 틀림없이 이 둘이 나누는 대화를 연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 귀엔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2층엔 뭐가 있나요?”
 
 진 법사가 물었다.
 
 “방 두 개에 화장실 하나가 있는데, 방 하나는 아예 비워 놓고 있고, 다른 하나는 창고 비슷하게 쓰고 있습니다. 물론 화장실은 물까지 잠가 놓고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2층엔 잘 안 올라가세요?”
 “올라갈 일이 거의 없죠. 예전엔 일반 주택으로 사용되던 집이었는데, 지금은··· 뭐 보시는 대로 이런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니까요. 일 층 안방과 거실, 주방 그리고 저기 저 방은 그냥 컴퓨터 두 대 놔두고 사무실처럼 쓰고 있습니다.”
 
 내 말에 문 보살은 콧방귀를 끼며 누구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지 아님 혼잣말인지 모를 말을 비아냥거리며 했다.
 
 “사무실은 무슨···.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여기서 무슨 대단한 비즈니스라도 하는 줄 알겠네.”
 
 성질 같아서는 한마디 받아쳐 줬어야 정상인데, 일단 참았다.
 
 “창고에는 뭘 넣어 놨는데요?”
 “그냥 뭐··· 법당을 꾸미다가 남은 소품들이랑 오래된 컴퓨터 정도?”
 “라꾸라꾸 침대하고 안 쓰는 선풍기도 있잖아.”
 “그래?”
 
 호철이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
 거의 1년 가까이 안 열어 봤다.
 주로 창고에서 뭔가를 꺼낼 때엔 호철이가 하지 내가 직접 하지는 않으니까.
 
 “안방이랑 2층에 창고처럼 쓰고 있다는 방이 가장 문제인 거 같아요.”
 
 문제를 찾았으면 해결을 해야지, 문제가 있다고 나한테 말하면 내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일단 저랑 이 친구는 할 이야기가 따로 있으니까 두 사람이 방마다 돌아다니면서 집 안에 있는 모든 창문들부터 다 닫아 주세요.”
 
 시키는 대로 했다.
 2층이랑 신당으로 쓰고 있는 안방이 문제라고 하니까 그곳 창문들은 호철이한테 닫게끔 시키고 난 다른 방들을 돌아다니며 창문을 닫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다 닫았습니다.”
 “혹시 집에 화재 알람 같은 거 설치돼 있어요?”
 “아뇨. 그런 거 없습니다.”
 “다행이네.”
 
 진 법사와 문 보살은 본격적으로 집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신당 안을 살필 때엔 일부러 멀찍이 떨어져서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해 줬다.
 부채를 휘이휘이 내저으며 신당 안으로 들어갔던 문 보살이 인상을 찡그리며 문지방 너머에 서 있던 내게 물었다.
 
 “촛불에, 향에···. 참 가지가지 한다, 진짜. 이 신당은 누가 차린 거예요?”
 “그게 저기···. 신당 전문용품점에 전화해서 최고급 상차림으로 주문을 했더니 직접 와서 그렇게 다 세팅까지 해 주고 가더라고요. 처음 세팅된 그대로예요. 중간에 위치를 바꾸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그랬을 거 같더라. 직접 이렇게 차릴 수가 없지.”
 “크흠···.”
 “이렇게 해 놨으니 이상한 게 꼬일 수밖에 더 있어?”
 
 물그릇 주위를 부채로 탁탁 때려 가며 다그치듯 문 보살이 말했다.
 물론 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못 했고.
 
 “아예 귀신들 들어와서 놀라고 자리를 깔아 놨네. 이런 신당은 우리 같은 무속인들이 있는 법당이 아니라 일반 가정집에만 차려 놔도 귀신들이 끓어요. 그런데 거기에 보란 듯이 촛불 켜 놓고, 향 피워 놓고···.”
 
 난 혓바닥으로 마른 입술을 살짝 적시며 뒤통수를 긁었다.
 
 “지금까지 아무 일도 없었던 게 기적일 정도로 귀신 소굴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사기를 쳐 오고 있었던 거예요. 몰랐겠지만, 목숨까지 내놓고 사람들 등을 치고 있었다고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사기는 아니죠. 저도 저만의···.”
 
 비록 짧은 만남이었지만, 꽤 젠틀한 모습을 유지해 오던 진 법사가 지금껏 내가 해 오던 게 사기가 아니었다고 변명을 하려는 순간, 이내 돌변한 눈빛으로 무섭게 날 쏘아보기 시작했다.
 난 마치 어린아이가 성난 아버지의 눈빛을 피하는 것처럼 재빨리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숙였다.
 
 “지금 이 친구가 젊은 양반한테 농담 따먹기나 하자는 게 아니잖소.”
 “···죄송합니다.”
 
 그때부터 난 그 둘의 분위기에 완전히 압도당해서 이리저리 끌려만 다녔다.
 신당을 차려 놓은 안방을 다 둘러본 문 보살이 내 옆을 지나치며 들고 있던 부채로 내 어깨 부위를 툭 하고 쳤다.
 그러더니 차가운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따라와요.”
 
 난 그녀와 진 법사를 따라 오늘따라 평소와 달리 유난히 꺼려지는 2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문제의 창고로 쓰고 있는 방문을 열며 다시 한번 인상을 찌푸리던 문 보살.
 그녀는 들고 있던 부채를 이용해 신당으로 쓰는 안방에서 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하게 바람을 만들어 냈다.
 
 “아주 그냥 난리가 났네, 난리가 났어. 이 동네 연고 없는 영가들은 모조리 이곳에 다 모여 있다고 해도 믿겠다. 아주 그냥 아지트야, 아지트.”
 
 진짜 더럽게 틱틱거리네···.
 2층까지 다 둘러본 진 법사와 문 보살은 나와 호철이에게 다시 밑으로 내려가자고 했다.
 거실에서 진 법사가 문 보살에게 말했다.
 
 “차에 가서 박스에 담아 놓은 거··· 아니다. 그냥 박스째 가져와.”
 “다?”
 “그걸로 부족할 수도 있어 이 사람아. 같이 봐 놓고도 몰라?”
 “그걸 내가 어떻게 혼자 다 들고 와요?”
 
 순간 두 사람은 나와 호철이를 쳐다봤고, 난 재빨리 호철이의 옆구리를 툭 치며 문 보살과 함께 다녀오라고 말했다.
 내가 가자니 문 보살이 옆에서 계속해서 틱틱거리며 시비를 걸어올 게 분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 법사가 가장 믿음직스러웠다.
 정말 법당에 뭔가가 있는 거라면, 진 법사의 옆이 가장 안전하겠다 싶었다.
 잠시 뒤, 문 보살과 함께 나갔던 호철이가 제법 큰 종이 박스를 양손으로 안고 들어왔다.
 
 “집이 좀 지저분해질 수도 있는데 청소는 나중에 두 사람이 알아서 하세요.”
 “네.”
 
 박스 안에는 부정풀이 쑥과 마른 화이트 세이지 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것들을 박스에서 다 꺼내자 가장 밑바닥엔 꼭 비비탄 총알만 한 크기의 굵은 소금이 담긴 비닐봉지가 있었다.
 
 “프라이팬 같은 거 있어요?”
 “네.”
 “가스버너는요?”
 “한번 찾아 보겠습니다.”
 
 진 법사와 문 보살은 말없이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알아서 나누었다.
 모든 의사소통은 눈빛으로 나누는 것 같았다.
 
 “이거 다 볶아야 할 거 같죠?”
 “다 부어.”
 
 문 보살은 진 법사의 허락이 떨어지자 호철이가 가져다준 프라이팬 속으로 소금을 모두 부었다. 그리고 그 프라이팬을 가스버너 위로 올리고 불을 켰다.
 
 “저러면 소금 다 튈 텐데···.”
 “하지 말까요?”
 “···아니요, 아닙니다.”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만 하면 물어뜯을 기세로 반격을 해 오니 원···.
 거실 중앙에서 소금이 볶아지는 동안, 진 법사와 문 보살은 몇 개의 스테인리스 대접에 부정풀이 쑥과 화이트 세이지 풀을 나눠 담고 불을 붙여 집 안 이곳저곳에 놔두기 시작했다.
 그사이 프라이팬 속에선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소금이 튀고 있었다.
 맞으면 아프겠단 생각이 들었다.
 순식간에 집 안은 쑥과 세이지 풀이 타며 만들어 낸 연기로 자욱했다.
 
 “냄새가 상당히 독하네. 넌 괜찮냐?”
 “왜? 넌 매워?”
 “넌 안 매워?”
 “별로. 난 상당히 좋은데?”
 
 난 금방이라도 질식을 할 것만 같았는데, 쑥과 세이지 풀 태우는 냄새를 호철이는 오히려 좋다고 말했다.
 그런데 냄새가 좋다고 하는 말과는 달리 호철이는 간헐적으로 인상을 찌푸리거나 코끝을 찡긋거리며 뭔가에 반응을 하는 것 같았다.
 
 “너 왜 그러냐?”
 “뭐가?”
 “뭐는 뭐야? 너 왜 자꾸 인상을 찡그려? 냄새도 좋다는 놈이.”
 “내가?”
 “그럼 내가 내 얼굴 보면서 인상을 찡그린다고 하겠냐?”
 “아···. 냄새는 좋은데 눈에는 맵네.”
 “그지? 너도 맵지?”
 “응, 조금. 눈은 맵다.”
 “거봐, 맵잖아. 상당히 맵다니까. 이 냄새가 좋을 수가 없지.”
 
 팝콘 튀는 건 거실에서 신나게 튀고 있는 소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타닥타닥···.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천지 사방을 쑥과 세이지 풀 태우는 연기로 가득 차게 만들었던 진 법사가 꽤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자영아.”
 
 자영, 문자영···. 문 보살의 이름일 거라 짐작했다.
 그리고 문 보살은 내 짐작을 인정이라도 하듯 짧게 고개를 끄덕인 후 뒷마당이 보이는 베란다 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우웩!”
 
 내 옆에 가만히 잘 서 있던 호철이 녀석이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침까지 질질 흘려 가면서 말이다.
 
 “우웩! 후우, 후우···. 우웩!”
 “너 갑자기 왜 그래?”
 “떨어져요.”
 
 절제된 음성으로 문 보살이 말했다.
 
 “떨어지라고요!”
 
 난 문 보살로부터 시선을 거둬 괴로워하는 호철이를 쳐다봤다.
 그런데 내가 아는 호철이의 눈빛이 아니었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보다 괴기하게 비틀려져 올라간 한쪽 입꼬리가 더 섬뜩했다.
 
 “크흐···.”
 
 호철이가 내고 있는 소리는 분명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크르르르···. 크하아아악”
 “얼른 떨어지라니까!”
 “야, 야, 야야야야···.”
 
 호철이가 무작정 주먹을 휘두르며 날 때리려고 덤벼들었다.
 
 “야, 야, 야···. 너 진짜 왜 이러냐?”
 “크하악! 죽어, 죽어 버려!”
 
 호철이는 막무가내로 내게 주먹을 휘둘렀고, 난 그걸 뒷걸음치며 피해 보겠다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내가 무슨 전설의 싸움꾼 시라소니도 아니고, 몸싸움이라고는 국민학교 1학년 이후로 한 번도 안 해 본 내가 녀석이 휘두르는 주먹을 무슨 수로 다 피할 수 있겠나.
 엉겁결에 몇 대 흘리긴 했지만, 흘린 주먹보다 얼굴로 받아 낸 주먹이 훨씬 더 많았던 거 같다.
 하지만 맞으면서도 너무 놀라고 호철이 녀석이 걱정이 돼서 그런지 아프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그만하라고, 인마! 정신 좀 차려!”
 
 호철이는 계속 내게 주먹을 휘둘렀고, 코너까지 몰려 버린 난 녀석의 주먹에 계속 얼굴을 강타당하면서도 녀석의 두 손을 어떻게든 잡아 보겠다고 아등바등···.
 그러는 사이에 진 법사가 달려와 내게서 호철이를 떼어 내며 소리쳤다.
 
 “열어!”
 “···네?”
 “이 친구는 내가 잡고 있을 테니까 자네는 얼른 돌아다니면서 집 안에 있는 문이라는 문은 싹 다 열어. 연기들 다 빠져나가게 문 열어서 환기를 시키라고!”
 “아, 네.”
 
 난 재빨리 현관문부터 열었다.
 
 “우웩! 우웨에에엑!”
 
 그사이 호철이는 진 법사에게 완전히 제압을 당한 상태로 뭔가를 계속 게워 내기 시작했다.
 
 “일 층에 있는 창문들은 내가 돌아다니면서 다 열 테니까 그쪽은 이 층으로 올라가요.”
 
 언제 들어갔었는지 주방에서 툭 하고 튀어나온 문 보살이 이 층을 손짓하며 말했다.
 
 “아깐 자기 입으로 양반 아니라면서요.”
 “···네?”
 “아니면 뛰어요!”
 “네!”
 
 그 순간 본능이 내게 말했다.
 생각 같은 건 하지 말라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그 생각이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할 수는 없으니 그냥 진 법사, 문 보살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이다.
 난 재빨리 2층으로 뛰어 올라가 바깥으로 통하는 문이라는 문은 싹 다 열었다.
 그리고 다시 거실로 내려왔다.
 호철이는 힘이 다 빠진 상태로 축 늘어져 진 법사에게 제압당해 있었고, 그런 호철이의 머리에 두 손을 올려놓고 문 보살이 법문 같은 걸 소리 내 외우고 있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말을 걸 수도 없는 분위기였고.
 집 안을 가득 채웠던 쑥과 세이지 풀 태운 연기가 대충 다 밖으로 빠져나갈 때까지도 호철이는 간헐적으로 저항을 시도했고, 문 보살이 들고 있던 자신의 부채를 여며 그걸로 호철이의 명치를 꾸욱 누르자 그제야 모든 저항을 포기했다.
 그렇게 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 보살은 호철이가 정신을 잃었다는 걸 확인한 뒤 조심히 녀석의 명치를 누르고 있던 부채를 떼어 냈다.
 
 “친구한테 맞은 데는 괜찮아요?”
 
 중요한 순간은 대충 끝이 났는지, 진 법사가 옷 소매를 털어 내며 내게 물었다.
 
 “아까 보니까 제법 많이 맞는 거 같던데.”
 “괜찮습니다.”
 “눈 옆에는 나중에 멍들겠다. 벌써 제법 부어올랐네. 아까 문 보살이 친구 옆에서 떨어지라고 그렇게 소리를 질렀는데, 안 들렸어요?”
 “···아뇨,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 안 듣고 왜 가만히 있었어요?”
 
 내가 지금 왜 이 두 사람에게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놀리는 듯한 말투로 살살 내 신경을 긁는 진 법사도 진 법사지만, 한심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흔드는 문 보살의 행동이 더 거슬렸다.
 
 “놀라서···.”
 “아무리 놀랐어도 그렇지. 젊은 사람이 순발력이 그렇게 없어서야···.”
 “그거하고 순발력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딱 봐도 친구한테 뭔가 이상이 생긴 게 분명한데, 무슨 일인지 확인을 해야지 그 상황에서 나 혼자 살자고 도망을 칩니까?”
 “···.”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들한테 어째서 성질을 부리고 있는 것일까.
 내가 아무리 뻔뻔하다지만, 어쩌면 생명의 은인일지도 모를 진 법사와 문 보살에게 짜증 섞인 변명을 늘어놓는 건 내가 봐도 좀 아닌 거 같았다.
 난 숨을 한 번 고른 뒤 진 법사와 문 보살을 향해 깊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다 보니까 잠시 정신이 어떻게 됐던 모양입니다. 감사하다고 절을 올려도 시원찮을 판에···. 죄송합니다.”
 
 난 두 사람을 향해 다시 한번 깊게 고개를 숙였고, 진 법사와 문 보살은 내가 재차 고개까지 숙여 가며 사과를 하자 머쓱한 듯 딴청을 피웠다.
 정신을 잃었던 호철이는 이내 나지막한 코 고는 소리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호철이가 자는 동안 나와 진 법사, 문 보살은 소파로 자리를 옮겨 차분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제 친구는 괜찮은 겁니까?”
 “정신을 차려 봐야 알겠죠.”
 “아까 그게 빙의라는 건가요?”
 “그렇다고 봐야죠. 빙의, 그중에서도 습관성 빙의일 가능성이 높은 거 같아요.”
 “습관성 빙의···.”
 “혹시 몰라서 쑥을 태워 봤던 거예요. 이런 곳에서 두 사람이 하루 이틀 생활했던 것도 아닐 텐데 지금껏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 말이죠. 젊은 양반은 타고난 탈 자체가 워낙에 강해서 애초에 큰 걱정을 안 했어요. 그런데 저 친구는 그게 아니었거든. 걱정이 되더라고.”
 “그럼 제 친구가 지금까지 빙의가 된 상태로 저와 함께 생활을 했단 말인가요?”
 “그랬을 수도 있죠. 친구가 습관성 빙의, 흔히 귀문이 열렸다고 표현하죠? 그 귀문이 열렸는지를 확인해 보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해 봤던 거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러면서 어설픈 영가들도 좀 집 밖으로 빼내고.”
 “귀문이 열렸다는 말씀은···.”
 “빙의가 돼도 본인이 그걸 못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본인뿐 아니라 당사자와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도 눈치를 못 챌 정도로 빙의가 된 상태로도 아무렇지도 않게 정상적으로 생활을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친구랑 함께 생활하면서도 젊은 양반이 그런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면 저 친구가 딱 그런 케이스였겠죠.”
 “좀 쉽게 설명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감이 안 옵니다.”
 “영가들 입장에서는 그냥 이동 수단 정도로만 친구 몸을 이용했다는 게 내 영적 추리예요. 들락날락했던 거겠죠. 친구 몸을 이용해서.”
 “그게 무슨···.”
 “자세한 건 친구가 정신이 들면 확인을 해 보도록 합시다.”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호철이가 정신을 차렸다.
 녀석은 제정신을 되찾은 상태였고, 조금 전 미쳐 날뛰며 자신이 날 때린 걸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 법사는 거실 중앙에 호철이를 눕혀 놓고 녀석의 몸에 아직 남아 있는 좋지 못한 영적 기운들을 눌러 주기 위한 기 치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진 법사가 기 치료를 행하는 동안 문 보살은 집 안 이곳저곳에 진짜 부적들을 붙이기 시작했다.
 난 문 보살을 따라다니며 그녀가 부적을 붙이는 걸 도와주었다.
 
 “이 정도로 심각한 집은 굿 말고는 답이 없다고 생각을 하셔야 돼요. 과연 급하게 만들어 붙인 이 부적들 효과가 얼마나 가겠어요? 진짜 나가야 할 악질 영가들은 꿈쩍도 안 하고 이 집에 그대로 붙어 있다고 보시면 돼요. 어설픈 것들만 연기들과 같이 빠져나간 상태죠. 이대로 놔두면 틀림없이 이 집에 붙어 있는 악질 영가들이 밖에 있는 다른 영가들을 계속 이 집 안으로 불러들일 거예요. 가장 기운이 강한 영가 순서로 모조리 다 쫓아내고 집 안 기운도 바꿔 줄 겸 눌림굿을 한판 해 줘야 그나마 앞으로 누가 들어와 살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살 수는 있을 거예요.”
 “···.”
 “왜요? 오늘 있었던 일을 직접 눈으로 다 봐 놓고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예요? 설마 여기서 신제자 코스프레를 계속하겠다는 건 아니죠?”
 
 문 보살의 질문에 난 대답을 못 했다.
 
 “미쳤네, 진짜.”
 “그런 게 아니라 저 만나겠다고 예약을 잡아 놓고 몇 주째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래요.”
 “그러다 죽어요. 아무리 돈도 좋지만 목숨까지 내놓고 사기를 칠 이유가 있나?”
 “여기선 좀 힘들겠죠?”
 “여기서 뿐만 아니라 다른 데 가서도 그런 짓은 두 번 다시 하지 마세요. 그러다 진짜 큰일 난다니까요?”
 “보살님, 한 사람당 30만 원입니다.”
 “뭐가요?”
 “복비가요. 거기다 같이 나가는 부적까지 계산하면 상담 한 번에 평균 7, 80만 원이 들어온다고요.”
 “그게 당신 목숨값이 될 수도 있다고요.”
 “그런 사람들이 하루 열 명씩 옵니다.”
 “대화가 전혀 안 통하는 사람이네.”
 “쩝···.”
 “아, 몰라! 됐어요. 그냥 알아서 하세요. 당신 인생이니까 당신이 알아서 사세요. 이럴 줄 알았음 괜히 도와줬네. 힘 빠진다, 힘 빠져···.”
 “그 예약자들을 보살님께서 만나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
 “아깝잖아요. 예약한 사람들 입장에서도 기껏 상담 한번 받아 보겠다고 몇 주 동안이나 기다렸는데, 갑자기 안 한다고 하면 얼마나 힘 빠지고 어이가 없겠습니까?”
 
 문 보살이 재빨리 진 법사의 눈치를 살폈다.
 진 법사는 기 치료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기에 아마도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못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문 보살이 진 법사의 눈치를 살핀다는 뜻은 일단 본인은 관심이 있다는 소리.
 
 “보살님이야 워낙에 명성이 자자하시니 당연히 찾는 사람들이 많겠죠. 하지만 제가 받아 놓은 예약자들은 복비부터 스케일이 다릅니다.”
 
 벌써부터 문 보살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제가 지난 몇 년간 이 법당을 운영하면서 나름 고가 전략으로 컨셉을 아주 제대로 잡아 놨거든요.”
 “뭐, 듣고 보니까 그쪽한테 예약한 사람들 입장에선 상담 한번 받겠다고 몇 주씩이나 기다렸는데 갑자기 안 한다고 하면 좀 그렇긴 하겠네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그런데 그쪽한테 상담을 받겠다고 예약을 한 사람들이 저한테 와서 상담을 받으려고 할까요?”
 “천하의 문 보살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니 앞으로는 좀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단 생각이 드는군요. 그 부분이야 제가 예약한 분들한테 전화를 돌려서 상황을 설명해 주면 될 일입니다. 싫다고 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지만 보살님께 상담을 한번 받아 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제가 최대한 주선을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아깝잖아요. 복비 30만 원.”
 “크흠···.”
 “제 손님 대부분은 기본적으로 부적까지 다 나간다고 보시면 됩니다. 부적까지 나간다는 가정하에 상담 한 번에 평균 7, 80만 원.”
 “오해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 건데, 제가 돈 때문에 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알죠, 잘 압니다. 그래서 말인데, 소개비 명목으로 50퍼센트 정도는 저랑 나누시는 게···.”
 
 문 보살은 미간을 좁히며 날 한참 동안 쳐다봤다.
 
 “예약이 3주 치 정도가 밀려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은 상담이 없는 날이고, 주 6일에 60명. 3주면 180명 아닙니까? 대부분이 재방문 고객들이죠. 제가 상황 설명만 좀 잘 해 주면 잡혀 있는 예약자들 중 최소 90퍼센트 이상은 보살님과 새로운 인연을 맺겠다고 보살님 법당으로 향할 겁니다. 그리고 아닌 말로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마당에 더 이상 법당 운영은 힘들겠지만 그래도 기존 고객들을 상대로 들어오는 예약은 계속 받을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흐음···.”
 “5 대 5.”
 “7 대 3.”
 “6 대 4.”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죠.”
 
 ***
 
 진 법사와 문 보살은 급하게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나누는 대화를 듣자 하니 이곳에 오기 전 이미 다른 집에서 몇 차례 퇴마 의식을 했던 것으로 보였다.
 
 “성수동 그 집도 그 집이지만 이 집도 지금 당장 끝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거 같은데. 챙겨 온 건 아까 그 집에서 다 썼잖아.”
 “있어도 지금은 체력이 못 받쳐 줘서 못 해요. 그리고 그 집보다 이 집이 더 심각하죠.”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거기다 저 친구 몸에 있는 것들도 아직 다 못 빼냈어. 아직 큰 것들 몇 개가 버티고 있는 중이야.”
 “오늘 여기저기서 힘을 너무 많이 빼셨어요.”
 
 진 법사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뭔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최대한 기운을 눌러놨으니 당분간은 못 설치겠지.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내일 다시 와서 살펴보자고.”
 “그러지 말고 내일은 그냥 따로 움직이죠?”
 “따로?”
 “어느 천년에 차례대로 다 돌아요? 어후, 전 못 해요. 저도 제 스케줄이라는 게 있는 사람이라고요.”
 
 문 보살의 말에 진 법사는 가볍게 아랫입술만 깨물 뿐이었다.
 
 “법사님이 성수동 그 집하고 아까 그 아저씨 ㅋ집, 그리고 미영이 집 가셔서 경과를 확인하세요.”
 “나 혼자 가라고? 그럼 넌?”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제가 법사님이랑 같이 잡귀 잡으러 다니는 사람인 줄 알겠어요. 저도 제 법당 일 해야죠. 법사님이랑 함께 다니느라 어제, 오늘 신당에 물그릇도 못 갈아 드렸다고요. 이 집까지만 제가 마무리하고 당분간은 법당 살림 좀 신경 써 챙겨야겠어요.”
 “요 며칠 사람들 요청 밀려드는 거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요청이 밀려드는 게 아니라 법사님이 계속 오지랖을 부리시는 거죠.”
 
 갑자기 왜 자기들끼리 싸우고 난리야?
 
 “야, 문 보살.”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성수동 그 집하고 아까 그 아저씨, 그리고 미영이 집 정도는 이제 굳이 제가 같이 안 가도 법사님 혼자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일을 나누자는 뜻이에요. 이 집도 따지고 보면 길 잘 가다가 법사님이 갑자기 오지랖을 부린 거지. 안 그래요?”
 “흐음···.”
 “이 집도 이 정도면 대충 눌러놓을 건 다 눌러놨고. 이 집은 제가 내일 아침에 장구 이모 한 분 모시고 와서 굿 한번 하고 갈 테니까 나머지는 법사님이 돌아보시라고요. 나눠서 하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을 뭐하러 그럴 필요도 없는데 계속 같이 다니면서 생산성을 낮춰요?”
 “···쩝.”
 “전 법사님과 다르게 신들의 힘을 빌려야 하는 사람이에요. 마냥 사람들 돕는다고 챙겨야 할 법당을 방치시킬 수가 없는 사람이라고요.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 그리고 요즘 저 너무 많이 부려먹으셨어요.”
 “계속 사람들이 도와 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그걸 어떻게 외면하나?”
 “그게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전 법사님과 다르다는 걸 알아 달란 말이에요. 지금처럼 무턱대고 저 부려먹으시다가 나중에 신빨 다 떨어지면 법사님께서 저 책임지실 거예요?”
 “문 보살 네가 신빨 걱정을 해?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아까 성수동 그 집에서는 진짜 기력이 딸리는 게 느껴지더라니까?”
 “그럼 문 보살 네 말대로 그렇게 하는 걸로 하자. 내일 이 집은 문 보살이 와서 마무리 지어. 나머지는 내가 살펴볼 테니까.”
 
 그렇게 난 자연스럽게 문 보살과 연락처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난 기진맥진해 있는 호철이와 함께 대문까지 나가서 진 법사와 문 보살을 배웅했다.
 호철이가 아까 챙겨 놓았던 흰 봉투 속으로 각각 100만 원씩 더 넣어서 두 사람에게 건넸다.
 
 “식사 대접을 할 거라고 좋은 고깃집으로 예약까지 해 놨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건 뭐요?”
 “별거 아닙니다. 가시는 길에 식사라도 하시라고···.”
 “됐습니다. 그냥 넣어 둬요.”
 
 진 법사의 스타일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 큰일을 해 주고도 돈을 받지 않는다?
 말이 안 되는 거지.
 우리 상식에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난 재빨리 문 보살의 표정을 살폈다.
 문 보살은 못마땅하단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애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도리라는 게 있는 건데···.”
 “이런 건 됐고. 이봐요, 젊은 양반.”
 “네, 법사님.”
 “아까 내가 한 말 명심해요.”
 “무슨···.”
 “사람은 다 타고난 명이라는 게 있어요. 그걸 굳이 앞당기려고 애쓰지 말란 말이에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 네.”
 “이런 데 찾아오는 사람들은 다들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겠죠?”
 “그렇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그렇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양반이군.
 다른 곳은 몰라도 내 법당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돈이 넘쳐 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넘쳐 나는 그들의 돈은 얼마든지 사기를 쳐도 되는 돈이고, 그들의 입장에선 티끌만큼도 티가 안 나는 돈들이다.
 누군가의 피땀이 전혀 안 들어가 있는 눈먼 돈들이 대부분인데, 무슨 감성팔이?
 너무 순진하신 게 아닌지 모르겠네.
 하지만 난 명심하겠다며 몇 번이나 고개를 조아렸다.
 
 “그런데 도대체 뭐요?”
 “뭐가 말씀이십니까?”
 “젊은 양반이 신을 받은 것도 아니고···. 보아하니 찾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은데, 그 비결이 뭐냔 말이오.”
 “사실 제가···. 사람들의 기억을 좀 읽을 줄 압니다.”
 “기억을 읽어?”
 “사이코메트리라고···.”
 “아, 그런 재주를 가지고 있소?”
 “네.”
 “그런 재주를 가진 친구가 도대체 그 좋은 재주를 왜 이렇게 사용하고 있는 거요? 좀 좋은 데 쓰지 않고···.”
 
 난 겸연쩍게 웃었다.
 그런 날 문 보살은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한참 동안 바라봤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까 보살님 손목을 잡았을 땐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날 쳐다보던 문 보살의 미간이 좁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뭐가 잠시 보이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보살님의 기억은 아닌 거 같아서요.”
 “뭐가 보이던가요?”
 “···.”
 “말해 봐요. 뭐가 보였나요?”
 “구름 속 같았어요. 그리고 거길 벗어나는 순간 등 뒤로 금빛이 발사되는 것 같은 후광을 가진 할머니 한 분이 보이더군요. 등이 굽으신 할머니였어요.”
 “그리고요?”
 “그 짧은 순간 보면 뭐 얼마나 볼 수 있었겠습니까? 그게 전부였습니다.”
 
 진 법사와 문 보살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며 눈빛을 주고받았다.
 한참 뒤 문 보살이 말했다.
 
 “아무튼 내일 아침에 다시 올 테니까 그때 보자고요.”
 “네, 보살님.”
 
 그리고 진 법사가 말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거요? 가능하면 오늘은 여기 말고 다른 데 가서 자요.”
 “생활하는 집은 각자 따로 있습니다. 여긴 그냥 일종의 직장이죠.”
 
 기다렸다는 듯 문 보살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신당까지 차려 놓고 잠은 다른 데서 잔다? 참 대단들 하십니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평소엔 호철이가 날 태우러 오지만, 전날 있었던 일도 있고 해서 내가 직접 호철이를 태우러 녀석의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녀석은 평소와 같은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아파트 입구까지 나와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좀 어때? 괜찮아?”
 “어제 잘 때도 그렇고 오늘도 눈뜨자마자 전화로 확인했으면서 뭘 또 물어봐?”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새끼야. 여기, 여기···. 어제 너한테 맞아서 멍든 거 안 보이냐? 또 맞을까 봐 겁나서 물어보는 거지, 너 걱정해서 물어보는 거 아냐.”
 “괜찮다니까. 멀쩡해.”
 “씨바 새끼···. 평소에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어떻게 네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냐?”
 “내가 한 게 아니라니까. 난 기억도 안 난다고.”
 “조까, 씨벌럼아. 너 나중에 조용할 때 오랜만에 검사 한번 해 봐야겠어. 너 어제 나 때리는 거 보니까 그동안 나한테 쌓인 게 아주 많은 거 같았어. 완전 감정 제대로 실어서 때리더라?”
 “내가 때린 게 아니라고.”
 “닥쳐. 네가 한 게 맞는지 아닌지는 나중에 네 손 잡아 보고 내가 직접 판단한다. 틀림없이 그동안 나한테 쌓인 게 졸라 많았던 거야. 안 그럼 그런 파워가 나올 수가 없는 거거든.”
 
 우린 그렇게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법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평소처럼 클라이언트들을 받기 위해 준비를 했다.
 난 호철이가 법당 거실을 청소하는 동안 문 보살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쯤이냐고 물었다.
 잠시 뒤 문 보살이 5 대 5 가르마로 쪽머리를 반질반질하게 만든 아주머니 한 분을 모시고 법당을 찾았다.
 그런데 여기서 전날 의사소통에 약간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 됐다.
 문 보살은 장구 이모라고 하는 아주머니와 굿을 하기 위해 준비를 했다.
 그런 문 보살 곁으로 조심히 다가가 굿을 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냐고 물었다.
 
 “넉넉잡고 두 시간 정도?”
 “아이고··· 그럼 좀 문제가 있겠는데요.”
 “···?”
 
 난 한 시간 뒤면 첫 클라이언트가 상담을 받으러 올 것이라고 말했다.
 문 보살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럼 클라이언트에게 전화를 걸어서 한 시간만 더 늦게 오라고 하면 될 것 아니냐며 별 대수롭지도 않은 일을 그렇게 큰일이 난 사람처럼 호들갑이냐고 말했다.
 
 “그게, 첫 클라이언트 상담 시간을 뒤로 미루면 그 뒤로 오는 9명 모두 시간을 뒤로 미뤄야 해서요.”
 “그래서 뭐 어쩌자고요?”
 “상담부터 다 끝내고 나서 여유롭게 진행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문 보살과 함께 온 장구 이모라는 사람이 자신은 이곳 말고도 다른 곳 도우미를 하러 가야 한다며 울상을 지었다.
 그런 장구 이모에게 흰 봉투에 5만 원권 20장을 넣어 건네며 부탁했다.
 
 “다른 데 가셔서 시간 보내시다가 오후 4시쯤에 다시 와 주세요. 굿판 끝나면 따로 좀 더 챙겨 드릴게.”
 “···.”
 
 문 보살의 눈치를 살피던 장구 이모는 내가 건넨 돈 봉투를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이내 “어쩔 수 없지. 4시까지 오면 되는 거죠?” 하고 물었다.
 
 “간밤에 별일 없었어요?”
 
 문 보살이 호철이에게 물었다.
 
 “어제 법사님께서 시키신 대로 인터넷에서 불경 다운받아서 그거 틀어 놓고 잤더니 아침이 훨씬 상쾌하더라고요. 별일 없었습니다.”
 
 호철이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문 보살.
 그녀는 그럼 굿은 나중에 하더라도 첫 클라이언트가 오기 전에 호철이를 눕혀 가볍게 기 치료라도 하자고 했다.
 
 “혹시 또 모르잖아요.”
 “그거야 뭐 얼마든지 보살님 원하시는 대로···.”
 
 문 보살. 크흐··· 역시 네임드 무당의 깡다구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첫 클라이언트부터 대박.
 나와 호철이는 사무실(말이 사무실이지, 실은 컴퓨터 책상 두 대를 갖춰 놓고 주로 호철이와 함께 게임을 하는 곳이다)에서 CCTV 모니터로 문 보살이 상담을 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평소 내가 명절이나 생일, 혹은 그녀의 결혼기념일 때마다 연락을 넣어서 정성껏 고객 관리를 하고 있는 역삼동 사모를 아주 그냥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부채를 여며 역삼동 사모의 팔뚝을 후려갈기지를 않나, 모니터로만 봐서는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알 방법이 없었지만 계속해서 삿대질을 하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가 센 역삼동 사모가 문 보살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계속 쩔쩔매더라는 거다.
 물론 내가 그 사모를 상담할 때에도 퍼포먼스 삼아 그녀의 인성에 질책을 할 때도 있는데, 그래도 문 보살이 하는 것처럼 신체 터치까지 해 가며 탈곡기에 넣어 탈탈탈 털지는 못하는 기가 무척 강한 사모다.
 역삼동 사모는 상담을 마치고도 몸을 굽신거리며 뒷걸음으로 신당의 안방을 빠져나왔다.
 난 재빨리 사무실을 나와 거실에서 그녀를 맞이했다.
 
 “어떠셨어요? 상담 내용은 만족스러우셨습니까?”
 “도사님.”
 “네, 사모님.”
 “도대체 누구세요, 저분은?”
 “문 보살이라고, 신제자들 사이에선 그 영험함이 자자하신 분이세요. 열일곱에 무불통신하셨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인간문화재로 등재되셨던 진양고현이라는 만신께 가리를 받으신 분이세요. 어떠셨어요?”
 “나 무서워.”
 “뭐가요?”
 “아니, 어떻게 도사님보다 더 족집게야? 나도 긴가민가했던 우리 친정 내력까지 싹 다 훑어 주시더라니까?”
 “아이고, 사모님도 참···. 그러게 어제 제가 통화하면서 뭐라고 했어요? 저랑은 급이 다르신 분이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저랑은 클라스가 달라요, 클라스가.”
 “어우, 정말 소름 돋아서 그거 참느라 식겁했네. 그런데 저 보살님은 부적 가져가란 말씀을 안 하시네?”
 “그, 그래요? 그럴 리가···. 잠시만요. 잠시만 저기 소파에 앉아서 기다려 주세요.”
 
 난 재빨리 문 보살을 찾았다.
 
 “부적은?”
 
 난 최대한 소리를 낮춰 입만 벙끗거리듯 말했다.
 
 “부적은 무슨···. 고민 같지도 않은 고민을 가지고 온 사람한테 무슨 부적까지 하라고 해요?”
 “잘 가다가 왜 갑자기 삑사리를 내시지?”
 “뭐요?”
 “어제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상담비는 30. 하지만 우린 평균 한 명당 7, 80은 해야 한다고. 그걸 또 6 대 4로 나눠야 하는데 좀 더 성의껏 해 주세요. 전 거기서 다시 또 호철이랑 8 대 2로 나눠야 한다고요.”
 “부적 한 장 쓰는 데 얼마나 기가 많이 들어가는 줄 알아요? 아직 굿도 안 했는데 부적 쓰느라 그 기를 다 쓰라고?”
 “하아, 진짜 대화 안 되네···. 그럼 이건요?”
 “이게 뭔데요?”
 “제가 만든 부적이요.”
 
 문 보살은 내가 만든 부적을 만지작거리더니 비웃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부적이에요. 아무것도 안 느껴지구만.”
 “플라시보. 보살님한테는 아무것도 안 느껴지시겠지만, 밖에 있는 저 아줌마는 보살님이 못 느끼시는 걸 느낀다니까요?”
 “그게 사기라는 거예요. 지금 신을 모시고 있는 사람한테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라는 거예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보살님은 그냥 상담만 해 주시고 상담 끝낸 분들한테 나머지는 밖에 있는 윤 도사랑 이야기하라고 말만 해 주세요.”
 “···.”
 “그건 거짓말 아니니까 그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요.”
 “후우···. 그래요, 그럼.”
 
 난 다시 밖으로 나가서 역삼동 사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보살님이 오늘 이곳이 처음이라 아직 제대로 적응을 못 하신 모양이에요. 부적 가져가란 말을 한다는 게 깜빡하셨다네요.”
 “그렇죠? 그럼 그렇지.”
 
 난 역삼동 사모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안방에서 문 보살과 역삼동 사모가 나눈 대화의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친정 쪽 작은 오빠 되시는 분이 하고 계신 사업이 걱정된다시며 큰 거 하나 가져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가져가야지, 그럼.”
 “그리고 또 큰 오빠 되시는 분 바람기 잡는 부적도 한 장 가져가라고 하시네요.”
 “그게 제일 급해.”
 “그럼요. 안 그래도 보살님이 다른 사람 부적은 몰라도 큰 오빠 되시는 분 부적은 꼭 가져가셔야 된다고 하시네요. 오빠분께는 사업운 트여 주는 부적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드리세요.”
 “고마워요. 두 장이면 돼?”
 “다른 건 뭐···.”
 “뭘 또 우리 사이에 아껴요, 아끼긴. 그러지 말고 줄 수 있는 거 있음 다 줘요.”
 “그럼 항상 가져가시는 것들까지 같이 가져가시는 걸로 하죠.”
 “역시 도사님밖에 없다니까?”
 
 장당 150짜리 두 장과 100짜리 한 장, 50짜리 두 장. 거기에 디스카운트를 조금 넣어서 첫 클라이언트부터 600만 원을 당기는 쾌거를 올렸다.
 첫 클라이언트를 그렇게 보내고 나서 다시 문 보살을 찾았다.
 
 “두 번째 상담자 넣어 드려도 되겠습니까, 보살님?”
 “나 다 들었어요.”
 “···뭘요?”
 “아까 그 아줌마한테 얼마나 팔아먹었는지. 나한테까지 사기 칠 생각은 안 하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그런 말씀을. 신용. 제가 그깟 푼돈 몇 푼 사기 치자고 보살님을 놓치겠습니까? 아무 걱정 하지 마시고 상담에만 집중해 주시면 됩니다.”
 “다음 사람 들어오라고 해요.”
 
 어디서 진짜 이런 보물이 내게 떨어졌단 말인가.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두 번째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280만 원을 했고, 세 번째 클라이언트를 상대로 160만 원을 했다.
 그런데 그건 그저 시작에 불과했다.
 여섯 번째 클라이언트까지 상담을 끝내고 나니 돈 2천만 원이 그냥 떨어져 있었다.
 이건 나랑 호철이 둘이서만 했을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스케일이 커져 버렸다.
 내가 권하는 게 아니라, 문 보살과 상담을 끝낸 클라이언트들이 부적을 달라고 부탁을 해 오는 거다.
 5만 원권을 발행해 준 정부에 감사하며 그렇게 일곱 번째 상담자를 문 보살에게 보냈을 때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당연히 예약자일 거라 생각을 했다.
 난 대문 밖 CCTV 모니터는 보지도 않고 호철이에게 얼른 나가서 문을 열어 주라고 했다.
 그런데···.
 
 “법사님인데?”
 “뭐, 뭐?”
 
 난 꼭 나쁜 짓을 하다가 걸린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호철이의 말처럼 모니터엔 대문 앞에 서 있는 진 법사의 모습이 잡혔다.
 
 “저 양반이 여긴 왜···. 오늘 다른 데 간다고 하지 않았냐?”
 “나야 모르지.”
 
 그사이 다시 또 초인종이 울렸다.
 
 “자, 잠깐만.”
 
 난 별생각 없이 대문을 열어 주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는 호철이를 잡아 세웠다.
 
 “왜?”
 “내가 열어 줄게.”
 
 대문을 열어 주러 가는 동안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인지···.
 문 보살은 상담 중이라 그녀의 상담을 방해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문 보살에게 귀띔을 해 준들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직감했다.
 난 집 안에서 인터폰으로 대문을 열지 않고 일부러 직접 대문을 열기 위해 마당까지 나갔다.
 
 “법사님이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일정을 좀 바꿨어요. 원래라면 성수동 쪽으로 먼저 가려고 했는데, 차가 많이 막힐 거 같아서 그냥 이 동네에 있는 다른 집부터 확인하고 가려고.”
 “그, 그러셨군요.”
 “이 동네에서 볼일은 다 끝나서 이동하기 전에 여긴 어떻게 됐나 확인차 잠시 와 봤어요. 그런데 아침에 문 보살 왔다 간 거 맞아요?”
 “네?”
 “집 기운이 어째 어제 나 나갈 때와 바뀐 게 하나도 없네?”
 “···.”
 “하나도 안 걷힌 거 같은데? 아침에 문 보살 안 왔어요?”
 “그게··· 오시기 전에 보살님과 통화라도 한번 해 보고 오지 그러셨습니까.”
 “전화기를 꺼놨더라고. 아무리 해도 안 받네.”
 “···그러셨군요.”
 “문 보살 안 왔죠?”
 “왔습니다.”
 “왔다 갔어? 그런데 이렇다고? 그럴 리가.”
 “그게··· 지금 안에 계십니다.”
 “···?”
 
 그 순간의 난처함이란···.
 집 안으로 들어선 진 법사에게 모든 현장을 들키고 말았다.
 상담을 받기 위해 거실에서 대기 중인 사모들, 그리고 안방에서 흘러나오는 문 보살의 호통 소리.
 진 법사는 미간을 좁히며 집 안 이곳저곳을 훑고 있었고, 나와 호철이는 그런 진 법사 옆에서 죄지은 사람처럼 두 손을 앞으로 공손하게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나오라고 해요.”
 “···.”
 
 너무나 차분하게 가라앉은 음성이라 더 무서웠다.
 진 법사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차갑게 말했다.
 
 “들어가서 문 보살 나오라고 하라고.”
 “지금 상담 중이시라···.”
 “이놈들!”
 
 진 법사의 호통에 대기 중이던 사모들이 화들짝 놀란 건 둘째 치고 안방에서 상담을 하던 문 보살까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밖으로 뛰어나왔다.
 
 “자영아, 너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냐?”
 “버, 법사님···.”
 “뭐 하고 있는 거냐고!”
 
 정말 무서웠다.
 난 사람이 저렇게 무서운 눈을 할 수 있다는 걸 진 법사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전날 이성을 잃고 날 때리려고 덤벼들었던 호철이의 눈빛도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기다리고 계신 분들께는 알아서 잘 말씀드리세요. 다들 돌아가라고 하세요.”
 
 문 보살이 체념한 듯 한숨을 깊게 내뱉으며 내게 말했다.
 진 법사와 문 보살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내가 끼어들 자리는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결국 난 대기하고 있던 사모님들께 부적 몇 장씩을 무료로 나눠 주며 오늘은 사정상 상담을 끝내야 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모두가 다 나간 뒤 진 법사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집 안을 이 꼴로 그대로 놔두고 넌 저기 들어가서 지금까지 점을 봤단 말이지?”
 “···.”
 “네가 그러고도 신제자야? 스승님 신딸이라고 말할 수 있어?”
 
 문 보살의 눈썹 끝이 꿈틀거렸다.
 아마도 진 법사가 자신의 스승이자 문 보살의 신어머니인 만신, 진양고현의 존재를 들먹인 것 때문에 발끈한 것 같았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고 대답을 해 봐!”
 “소리치지 마세요!”
 
 문 보살이 받아쳤다.
 
 “그리고 더 이상 나한테 강요하지 마세요.”
 “자영아···.”
 “내 삶에, 내 인생에 그 어떤 강요도 하지 말라고요, 더 이상.”
 “···.”
 “지금껏 이만큼 참았으면 된 거 아니에요? 내가 이 길을 걷고 싶어서 걷고 있는 거예요, 지금? 열일곱에 이 길에 들어서 지금까지 지난 십수 년, 단 한 번도 내 의지대로 내 인생을 살아 본 적이 없어요. 신들의 강요에 의해 이 길에 들어섰고, 또 신어머니 살아 계셨을 땐, 어머니 말씀대로만 살아야 했어요. 그리고 이젠 아저씨까지? 아니요. 더는 못 하겠어요. 어차피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운명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요. 그런데 거기까지. 아저씨까지 저한테 이래라저래라···. 그러지 마세요. 숨 막힌다고요!”
 
 저 둘은 어제부터 느꼈지만, 이상하게 같은 편 같으면서도 같은 편이 아닌 거 같다.
 왜 내가 저 두 사람 때문에 내 공간인 이 법당에서 호철이와 함께 죄인처럼 찌그러져 있어야 했던 것일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
 눈싸움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저게 지금 도대체 뭐 하자는 걸까?
 서로는 서로를 쳐다보며 한참을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한참 만에 문 보살이 입을 열었다.
 
 “저도 이젠 정말 지쳐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요, 아저씨.”
 
 문 보살은 힘 빠진 모습으로 낮게 말했고, 진 법사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을 받았다.
 
 “뭘? 뭘 그만하자는 거야?”
 “지금 아저씨가 하고 있는 그 일, 그리고 나한테 강요하고 있는 일들···.”
 “이게 내가 그만하고 싶다고 해서 그만할 수 있는 일이야?”
 “최소한 일 양을 줄일 수는 있잖아요. 그럼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는 있잖아요.”
 “지금이 뭐가 어때서?”
 
 급기야 문 보살은 눈물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모르긴 해도 문 보살의 두 눈에 고인 눈물은 서러움이나 억울함이 만들어 낸 것 같지는 않았다.
 답답함과 지긋지긋함,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자신을 속박하고 있는 뭔가로부터 벗어나려는 발악처럼 보였다.
 
 “지금이 뭐가 어떻냐고요? 말씀해 드려요? 당장 다음 달 법당 월세 낼 돈도 없어요. 보증금은 밀린 월세로 다 차감된 상태고, 당장 다음 달부터는 진짜 법당을 빼야 하게 생겼다고요. 건물 주인이 사람이 좋아서 그렇지, 요즘 같은 세상에 그런 건물주가 어디에 있어요? 그것도 그나마 신어머니 얼굴 봐서 참아 주고 있는 거지, 더 이상은 그 사람들도 한계라고요.”
 “···.”
 “아저씨 말처럼 난 신제자니까, 그러니까 어떻게든 법당 유지는 해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지금 이게 뭐냐고요. 아저씨랑 난 다르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신어머니 돌아가신 뒤부터 지금까지 2년. 어려운 사람들, 힘든 사람들 돕는다는 핑계로 이리저리 다 퍼 주기만 하다가 결국은 그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가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어요.”
 “법당 유지는 내가 어떻게든 해결하겠다고 말했잖아.”
 “어떻게요?”
 “···.”
 “어제 저 사람이 주는 돈도 안 받았잖아요!”
 
 문 보살은 날 손가락 끝으로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
 
 “왜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아야 하는 거냐고요. 왜 안 그래도 되는데 일부러 더 이렇게 바닥까지 가려고 하는 거냐고요! 그 정도는 받아도 되는 거잖아. 아니, 인간적으로 당연히 받아야 되는 거잖아. 그런데 이게 뭐냐고요, 진짜! 아저씨가 봤을 때 지금 저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들이에요? 집 앞에 세워 놓은 저 사람들 외제 차 못 봤어요? 사람들 등이나 처먹는 저런 사람들도 보란 듯이 외제 차 끌면서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는데, 왜 우린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냐고요, 도대체 왜!”
 
 싸우려면 자기들끼리 싸우던지, 갑자기 왜 불똥을 나한테 튀기고 난리야.
 그런데 불똥이 내게 튀기는 건 둘째 문제고, 천하의 진 법사와 문 보살이 법당 월세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게 난 더 신기했다.
 이 업계에 나 있는 문 보살 정도 평판 클라스가 되면 월세 걱정이 아니라 건물을 사도 몇 채는 샀어야 정상인데, 당장 다음 달 법당 월세가 없어 법당을 빼야 하게 생겼다는 게 진짜인지 농담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스승님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셨던 말 벌써 잊었어?”
 “아뇨! 똑똑히 기억해요. 오히려 제가 아저씨한테 묻고 싶어요. 아저씨야말로 신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저랑 아저씨 불러 놓고 어머니가 하셨던 말씀 벌써 잊으셨어요?”
 “···.”
 “모기는 집 안에 들어와서 사람을 귀찮게 구는 것들만 잡거나 쫓아내면 된다. 세상에 있는 모기들을 너희 둘이 무슨 수로 다 잡을 거냐, 그리고 때론 그 모기들이 이 생태계를 유지시켜 주기도 한다. 그러니 몸 버리지 말고 두 사람 힘 합쳐서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라.”
 “아주 중요한 걸 빠뜨리는군. 사특한 힘을 가진 영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눈을 감으시는 그 순간까지도 걱정을 하셨지.”
 “신어머니가 남기신 그 걱정이 지난 2년간 아저씨가 절 법당 일까지 소홀히 할 수밖에 없게 만들면서 끌고 다녔던 걸 정당화시킬 수는 없어요.”
 “자영아.”
 “정의로운 건 아저씨 혼자 하시라고요. 난 정의가 아닌 현실을 살아야겠으니까. 아저씨가 추구하는 그 정의도 결국엔 현실 속에 존재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 당장 내가 내 밥벌이를 도와주시는 조상신들조차 제대로 바라지를 못 하는 마당에 정의가 어디에 있고, 어려운 사람들 도와줄 여유가 어디에 있어요?”
 
 일단 난 무조건 문 보살에게 한 표.
 다른 건 몰라도 어제 내가 건넨 돈 봉투를 진 법사가 거절할 때에는 나도 그 거절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두 사람의 말싸움을 통해 대략적인 그들의 경제적 처지를 감안해 보면, 어제 내가 건넨 봉투를 거절하던 진 법사의 행동은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낭만파 꼰대의 전형이라고밖에는 생각이 안 든다.
 내가 두 사람의 처지를 미리 알고 불우 이웃 돕기를 하듯 적선을 한 것도 아니고, 마땅히 해야 할 보답을 했을 뿐인데, 그걸 거절할 때엔 이게 뭐지 싶었다.
 그런데 지금 문 보살을 통해 그들의 경제적 처지를 알게 되니 지금 누가 누굴 도왔던 거야? 하는 생각에 그러면 안 되지만 비웃음까지 나오려고 했다.
 그만큼 내 기준에서 진 법사의 어제 그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내가 끼어들 상황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네가 오늘 여기서 한 행동이 잘한 행동이라는 거야?”
 “가르치려고 하지 마시고요. 딴 데로 말 돌리지도 마세요.”
 
 문 보살은 눈물을 닦아 내며 아예 이 자리에서 끝장을 보겠다는 기세로 진 법사를 몰아세웠다.
 
 “지금 아저씨한테 과연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여유가 있으세요? 진짜 그렇게 생각해요? 허구한 날 허리가 안 좋아서 낑낑대는 사람이 그래, 의료 보험도 안 돼, 병원 가서 CT 한번 찍어 보자고 해도 그 돈이 아까워서 다 헤진 복대나 차고 다니고···. 그런데 뭐? 남을 도와? 지나가는 개가 웃어요, 아저씨.”
 
 결국 말로는 안 되겠던지, 진 법사는 뜨거운 콧김을 한 번 길게 내뿜은 뒤 호철이를 불렀다.
 
 “아직 이 친구 몸에 있는 거 다 안 털어 냈지?”
 
 진 법사의 물음에 문 보살은 가만히 눈물만 닦으며 아랫입술을 잘근 씹었다.
 
 “어제 이후로 별다른 일은 없었소?”
 
 진 법사가 호철이에게 물었다.
 
 “네. 아침에 보살님께서 기 치료를 한번 해 주셨어요. 간밤에는 법사님께서 시키신 대로 불경을 틀어 놓고 잤더니 평소보다 더 잘 잔 기분이고요.”
 “그래도 아직 몸에 다 못 빼낸 영가들이 좀 남아 있어요. 어제보다 더 힘들 수도 있어요.”
 “···네.”
 “이쪽으로 한번 누워 봅시다.”
 
 바로 그 순간.
 
 “아아아아악! 그만 좀 하라고요, 제발 그만 좀!”
 
 문 보살이 악다구니를 지르며 미친 사람처럼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내가 할 거예요. 안 그래도 내가 하려고 했어! 조금 있다가 장구 이모도 오기로 되어 있다고. 내가 하면 된다고. 내가 하면 되니까··· 아저씨는, 아저씨는 제발 쓸데없는 데 기 좀 빼지 말라고!”
 
 문 보살은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내 옆을 휙! 하고 스쳐 지나가 진 법사 앞에 서 있는 호철이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리고 자신의 뒤로 호철이를 숨기더니 진 법사에게 말했다.
 
 “내가 한다고.”
 “누가 하는 게 뭐가 중요해?”
 “내가 한다고! 내가 할 거라고! 그러니까 아저씨는 좀··· 하아, 하아··· 아저씨는 아저씨 몸이나 좀 챙기라고.”
 
 뭐지? 갑자기 분위기가 또 왜 이렇게 흘러가?
 알고 보면 두 사람 사귀는 사이였다, 뭐 그런 거 아냐?
 문 보살에게 손목이 잡힌 채 그녀의 뒤에 서 있는 호철이도 그렇고 나도 마찬가지로 급변화된 두 사람의 감정선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크흠···. 저기 두 분 말씀 중에 끼어들어서 진짜 죄송한데요.”
 
 결국 최대한 조심스럽게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며 내가 말을 꺼냈다.
 
 “장구 이모라고 하는 분이 4시까지 오기로 되어 있잖아요. 아직 오시려면 시간이 좀 남았으니까 다들 서서 그러지 말고 저기 소파에 앉아서 뭐 시원한 거라도 한 잔씩 드시면서, 또 각자 조금씩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혀 놓고 좀 건설적인 대화를 나눠 보는 게 어떨까요?”
 
 다행히 내 말이 먹혔다.
 우린 소파로 자리를 옮겼다.
 진 법사와 문 보살이 제일 떨어져 앉고 그 사이에 나와 호철이가 나란히 끼어 앉았다.
 주객이 전도된 자리 배치.
 하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난 우선 호철이가 가져온 마실 것들을 문 보살과 진 법사 앞으로 차례대로 내려놓으며 말했다.
 
 “허리가 많이 안 좋으십니까? 어쩌다가···.”
 “별거 아니요. 그냥 일하다가 살짝 삐끗한 거뿐이에요.”
 “삐끗은 무슨···. 어떨 땐 누워서 혼자 힘으로는 일어서지도 못해요.”
 
 다행히 문 보살은 어느 정도 이성을 되찾은 것 같았다.
 여전히 뾰족한 말투였지만, 그래도 악다구니를 내지르던 아까와는 그 모습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아이고, 다른 데도 아니고 허리면··· 조심 좀 하지 그러셨습니까. 일이라면 퇴마 일을 하시다가 그렇게 되신 겁니까?”
 “거기까지는 젊은 양반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에요.”
 “그렇긴 합니다만··· 알겠습니다.”
 
 그리고 시작된 잠시간의 어색한 침묵.
 결국 난 어쩔 수 없이 그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뭐라도 말을 꺼내야 했다.
 이런 분위기는 정말이지 적응하기 힘드니까.
 
 “사실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내 말에 대꾸를 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 법사, 문 보살 모두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 채 서로를 외면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난 어떻게든 내게 두 사람의 시선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어제 제가 문 보살님 팔목을 잠시 잡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뭔가를 봤잖아요.”
 
 그제야 진 법사와 문 보살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어제 그 순간 제가 봤던 게 보살님께서 모시고 계신 조상신의 기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
 
 진 법사가 미간을 좁히며 날 쳐다봤다.
 
 “사실 이런 경험이 어제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이 아니었다면···.”
 
 진 법사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예전에 자주 귀신을 본다는 클라이언트가 한 분 계셨죠. 지금처럼 고퀄 클라이언트들만 상대할 때가 아닌, 독립해서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였는데, 그분의 손을 잡았을 때도 어제 문 보살님의 손목을 통해서 봤던 것과 비슷한 장면을 봤었습니다.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기억이 읽히더라고요. 그 이후로 전 빙의나 신들림 현상을 겪고 있는 클라이언트들은 아예 받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는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때 그 일 이후로 영적 존재를 정말로 믿게 됐고요.”
 “···.”
 
 문 보살이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저도 그럴 거 같았어요.”
 “뭐가 말씀이십니까?”
 “어제 그쪽이 묘사한 할머니 말이에요. 제가 모시는 할머니와 허리가 굽었다고 하는 부분에선 일치해요. 그리고 그쪽이 제 손목을 잡았을 당시 그 할머니가 제 앞에 서 계신 상태였고.”
 “그럼 저한테 이노오오옴! 하고 호통을 쳤던 게 보살님이 아니라 할머니 조상신이었단 말이세요?”
 “아뇨. 그건 제가 소리친 건데요?”
 “크흠, 그렇군요.”
 “어제 표현은 못 했지만, 어쩌면 그쪽이 영매(신, 혹은 죽은 자의 뜻을 전달하거나 그들을 몸으로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를 통해 신이나 영가들의 기억을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봤어요.”
 “그 중요한 걸 왜 잠시 생각만 하셨습니까?”
 “그럼요?”
 “···.”
 “그런 능력이 있다고 제가 그쪽한테 그런 능력이 있는 것 같으니 우리랑 같이 귀신이나 잡으러 갑시다! 하고 꼬셔요? 이게 뭐 좋은 일이라고.”
 “그렇지만···.”
 “그런 건 모르는 게 약이에요.”
 “아는 게 힘이죠.”
 “하아···. 그 입 진짜. 물에 빠지면 입만 둥둥 떠다니겠네.”
 “익사할 일은 없겠군요.”
 “그만.”
 
 나와 문 보살의 실랑이를 막아 세우며 진 법사가 말했다.
 
 “진짜야?”
 
 진 법사의 질문에 아직 화가 다 풀리지 않은 듯 문 보살은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마 맞을 거예요.”
 “그럼 나한테라도 말을 했어야지.”
 “이런 반응을 보일까 봐 일부러 말 안 했던 거라고요. 지금 아저씨가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대충 알겠는데 하지 마세요. 나 하나로 만족하라고요.”
 “아니, 지금 제 이야기하는 중인데 보살님이 왜 중간에서 이래라저래라 하시는 겁니까?”
 “뭐, 뭐요?”
 
 난 문 보살에게 따졌다.
 
 “지금 제가 궁금한 게 있어서 법사님께 물어보는 거잖아요. 왜 남의 호기심을 본인 판단대로 덮으려고 하는 거냐고요.”
 “알아서 좋을 게 없으니까. 그냥 모르고 살면 될 일이니까 그런 거죠.”
 “그런 건 본인이 판단을 하는 거죠. 보살님 영험함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살님께서 제 인생 굴곡에 대해 다 아시는 건 아니잖아요.”
 “허···.”
 
 난 문 보살이 헛웃음을 흘리든 말든 진 법사에게 계속 물었다.
 
 “어제오늘 제가 두 분 앞이라서 억지로 참고는 있는데, 사실 제가 법사님과 보살님께서 오해하시는 것처럼 마냥 사기만 치는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처음 이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경험하고 나서 지금까지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해 왔겠습니까?”
 
 드디어 진 법사가 내 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 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짧은 기억을 읽어 내는 데에만 몇 분, 어떨 땐 몇 시간씩 걸리기도 했습니다. 그걸 지난 십수 년간 계속 연습하고 또 연습했죠. 그래서 지금은 웬만한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훑어보는 데 단 몇 분이면 충분합니다. 물론 굵직한 사건, 디테일까지 잡는 데는 좀 더 오래 걸리지만 말이죠. 법사님이나 보살님이 수행하고 기도하시는 것처럼 저 역시 지난 세월 두 분 못지않게 연습하고 또 연습하며 이 재주를 발전시킨 사람이라고요.”
 “사물도 가능한 거요?”
 “가능하죠. 가능한 정도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제가 정상적인 삶을 못 살고 있는 겁니다. 사실 저라고 처음부터 이런 일을 하고 싶었겠습니까? 이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는 것 같고, 이 일이어야만 남들 눈에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쪽으로 집중을 하기 시작했던 겁니다.”
 “흐음···.”
 “전 식당에 갈 때에도 제 개인 수저를 가지고 다닙니다. 안 그럼 식당 수저를 쓰면서 저도 모르게 그걸 썼던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읽게 되거든요.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전 새집 아니면 못 살아요. 전에 살았던 사람들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집에서 어떻게 맨정신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
 “사람 관계도 힘들어요. 앞에서는 헤헤헤 거리면서 뒤에서는 제 험담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 왔고 그래서 상처 또한 많이 받았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심만 늘었고, 결국 저 스스로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아 이 친구를 제외한 모든 인간관계는 다 끊은 상태라고요.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건 제가 겪고 있는 일상의 빙산의 조각일 뿐입니다.”
 
 진 법사가 물었다.
 
 “내가 실험을 한번 해 봐도 되겠소?”
 “얼마든지요.”
 
 진 법사는 호철이를 거실 바닥에 눕게 만든 뒤,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참 뒤에 뭔가에 반응하는 호철이의 단전 왼쪽 부분을 검지와 중지를 붙인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그러자 호철이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이리저리 비틀기 시작했다.
 난 두려웠다.
 하지만 해야만 했다.
 
 “크하하악! 놔, 이거 놔!”
 
 난 진 법사와 문 보살에게 제압된 채 이리저리 발버둥 치는 호철이의 허벅지에 조심히 손을 올렸다.
 
 “보여요? 뭐가 보여?”
 “이름 박진수. 1984년생. 부산 반송이라는 동네 출신이네요. 그냥 그럭저럭 평범한 인생이었고, 대학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와 취업을 했고, 32살 때 교통사고로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습니다. 평범한 인생이었다는 건 수정. 외로운 인생이었네요. 직장을 서울로 잡는 바람에 가족들과 떨어져 살아야 했고, 회사 업무 강도가 높아서 직장 안에서 말고는 친구들을 사귈 시간적 여유가 없었어요. 연애는 더더욱 힘들었고. 더 해야 합니까?”
 
 난 호철이의 몸에서 손을 떼어 내며 진 법사에게 물었다.
 진 법사뿐만 아니라 문 보살 역시 무척이나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이자가 죽은 뒤 다른 사람들 몸에 들어가서 했던 행동들을 차마 문 보살님 앞에서 할 수가 없네요.”
 “괜찮아요, 해요. 알아야 퇴마를 하지.”
 
 문 보살이 눈에 빛을 내며 말했다.
 진 법사에게 자신의 인생을 살게 해 달라고 악다구니를 지를 때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냥 뭐 말 그대로 전형적인 악귀들의 만행을 저지르네요. 비슷한 또래 남자 몸에 들어가서 술 마시게 만들고, 담배 피우게 만들고, 야동 보면서 자위하게 만들고···. 그리고 또 다른 사람 몸에 들어가서 여자들이랑 성관계 가지게 만들고···. 무엇보다 술을 너무 많이 먹이네요.”
 “딱 전형적인 몽달귀신들의 특징이지.”
 “하나 더 있는 거 같은데 그것도 말씀드려야 해요? 솔직히 하고 있으면서도 이건 좀 무섭거든요.”
 “됐어요. 그만하면 됐어.”
 
 진 법사는 곧바로 퇴마에 들어갔다.
 내게 집에 술이 있느냐고 물었다.
 난 이곳에서 간단하게 라면 정도는 끓여 먹어도 술을 마시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진 법사는 술이 필요하다며 마트에 가서 술을 좀 사 오라고 했다.
 어떤 술을 얼마만큼 사 와야 하냐고 물으니 과일주 담는 담금 전용 소주면 된다고 했다.
 
 “음··· 스무 통 정도? 더 있으면 좋고.”
 “그걸 어떻게 저 혼자 들고 옵니까?”
 
 난 가까운 마트에 전화를 걸어 담금 전용 소주 2리터짜리 마흔 통을 배달시켰다.
 그리고 배달되어 온 그 소주를 진 법사가 시키는 대로 욕조 속에 부었다.
 2리터짜리 마흔 통을 다 부었지만, 막상 욕조 속에 부으니 그 양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앞으로 목욕할 때 물을 아껴 써야겠단 생각을 하며 진 법사를 도와 호철이를 술을 부어 넣은 욕조 속으로 담갔다.
 
 “으으으으···.”
 
 마치 오르가즘을 느끼듯 빙의가 된 호철이는 황홀한 표정으로 술이 담긴 욕조 속에서 온몸을 떨었다.
 그렇게 호철이를 몇 분 정도 일부러 욕조 속에 방치시킨 진 법사.
 몇 분 뒤 호철이의 몸을 잡아먹은 박진수라는 존재는 진 법사가 특별한 행위를 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호철이의 몸을 통해 정체를 드러냈다.
 살아 있었으면 그저 평범한 30대 중반의 아재일 뿐이다.
 거기다 진 법사와 문 보살도 옆에 있고.
 무섭기보다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이 신기할 뿐이었다.
 그리고 호철이가 걱정스러웠고.
 진 법사는 문 보살이 피운 향을 가지고 욕조로 들어갔다.
 그리고 호철이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존재에게 말을 걸었다.
 
 “이 친구 몸에는 언제 들어왔어?”
 “왜? 나가라고 하려고? 안 나가. 내가 어떻게 찾은 꼭 마음에 드는 몸인데, 네가 뭔데 나가라 마라야?”
 “나가란 말 안 했다? 그냥 언제 들어왔는지 궁금해서 물어본 거뿐이야.”
 “그렇게 꼬신다고 내가 순순히 말해 줄 거 같아?”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나도 신사적으로 널 안 대해 주면 되니까.”
 
 그 말을 끝으로 진 법사는 타고 있는 향을 욕조 속 소주에 담갔다.
 향은 희미한 연기만 남기고 이내 꺼졌다.
 하지만 놀라웠던 장면은 욕조에 담긴 호철이가 마치 타는 듯한 고통을 얼굴에 띠우며 무척이나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었다.
 진 법사는 욕실 바깥에 대기 중이던 문 보살에게 소리쳤다.
 
 “향 몇 개에 불 더 붙여.”
 “네.”
 
 문 보살이 전달한 향을 가지고 진 법사가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언제 들어왔어?”
 “몰라. 크아아아아악!”
 “언제 들어왔어?”
 “모른···. 크아아아악! 너 이 개새끼, 죽여 버린다!”
 “그래. 네가 이기는지, 내가 이기는지 어디 끝까지 해보자 한번. 문 보살.”
 “네.”
 “향에 불 다 붙여.”
 “네!”
 “언제 들어왔어?”
 “하,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이 씨발놈아! 아아아아악!”
 “고놈 참···. 언제 들어왔어?”
 “한 일 년쯤 됐다, 왜 이 씹새끼야. 크아아아아악!”
 “말 예쁘게 해야지. 살아 있었어도 나보다 한참 아래였을 놈이···.”
 “살려 주세요.”
 “내가 신이냐? 죽은 놈을 살려내게.”
 “난 아무것도 안 했어요, 이 안에서. 진짜예요.”
 “누가 뭐래?”
 “그런데 나한테 왜 이래요? 그냥 나 여기 살게 내버려 두면 안 돼요?”
 “그러고 싶어?”
 “부탁드립니다. 진짜 조용히 아무 짓도 안 하고 착하게 지내겠습니다.”
 “좋아. 그럼 그 부분은 한번 재고해 보자. 지금 이 안에 너 말고 누가 또 있어?”
 “저밖에 없어요.”
 “그래서 내가 너 같은 몽달 새끼들 말을 안 믿는 거야.”
 “크아아아아아악!”
 “너 말고 누가 또 있어? 힘 빼지 말자. 어차피 말할 거잖아. 그냥 말하면 쉽게 갈 수 있는데, 왜 스스로 고통스러운 길을 선택해? 그러면서 나 같은 노땅 힘이나 빼고 말이야. 안에 너 말고 또 누가 있어?”
 “자, 자, 잠깐! 향 그거 그만 담가요.”
 “왜? 말하게?”
 “말하면 저는 봐주는 거예요?”
 “솔직하게 말하면.”
 “한 명 더 있어요. 아아아악! 아, 왜요!”
 “솔직하게 말하면이라고 했잖아.”
 “진짜라고요. 저랑 할아버지 한 분 더 계신다고요.”
 “진짜야?”
 “진짜에요. 아아아아악! 그만하라고 이 개새끼야! 진짜라고!”
 “확실해?”
 “확실하다고요!”
 “오케이···.”
 
 귀신들이랑 싸우는 거 보니까 이상하게 진 법사도 살짝 양아치 같았다.
 
 “됐으니까 넌 이제 들어가 있어. 할아버지 나오셔.”
 “···.”
 “나오시라고. 할아버지?”
 “흐음···.”
 “할아버지셔?”
 “내 이놈 할애비 되는 사람이오.”
 “이 친구 할아버지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할아버지가 사람은 아니죠.”
 “법사님이 이렇게 이놈 몸에 자리 잡은 진수 놈까지 찾아내셨으니까 이제 마음 놓고 나가리다.”
 “···?”
 “얼른 하소. 하려는 거.”
 “뭐 다른 하실 말씀은 없으시고요?”
 “뭐가 있겠소. 아 참, 규현아.”
 
 자신을 호철이의 할아버지라고 칭한 존재가 갑자기 날 불렀다.
 
 “모자란 놈 데리고 여기까지 온다고 네가 진짜 수고가 많았다.”
 “···.”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앞으로도 지금처럼 옆에서 잘 챙겨 주면서···. 이놈 좀 부탁한다.”
 “이 안에 그럼 할아버지하고 아까 그 친구 둘밖에 안 남은 거예요?”
 
 진 법사의 물음에 상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진 법사는 욕조 수챗구멍을 열어 버렸다.
 그 순간 호철이가 다시 발작을 일으켰다.
 
 “야이, 개새끼야! 이 안에서 살게 해 주겠다며. 뭐야, 뭐 하는 거야! 이거 안 멈춰? 수챗구멍 막으라고 이 개새끼들아!”
 
 진 법사는 더 이상 상대를 해 주지 않았고, 욕조에 담긴 술이 수챗구멍으로 어느 정도 빠져나갈 때까지 호철이의 발악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몸속의 영가들이 빠져나가는 듯, 호철이는 몇 차례 헛구역질을 해 댔다.
 그리고···.
 똥을 쌌다.
 
 “얘 지금 똥 싼 거 같아요. 엉덩이 부분에 뭔가가 번지는 게···. 색깔이 좀 이상해요.”
 “크크, 흠···.”
 
 멍청한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젠 하다 하다 옷에 똥까지···. 이건 정말 사진으로 찍어 놓고 평생 약점으로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분위기상 그랬다가는 진 법사한테 혼이 날 것이 분명했기에 거기까지 하지는 않았다.
 
 “뜨거운 물 틀어서 친구 몸 좀 적셔 주지? 안 그럼 감기 걸릴 거야. 하는 김에 술 냄새 사라지게 몸도 좀 씻겨 주고.”
 
 결국 나보고 똥 싼 거 치우라는 소리잖아!
 난 호철이의 뺨을 몇 차례 때려 정신이 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갈아입을 옷을 던져 준 뒤 얼른 씻고 나오라고 말했다.
 호철이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 거실에서 진 법사와 문 보살을 앉혀 놓고 다시 이야기를 진행했다.
 어느새 날 대하는 진 법사의 행동에는 더 이상 거부감이 없었다.
 오히려 문 보살이 불안한 눈으로 나와 진 법사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저 정도면 사실 법사님께서 하고 계시는 그쪽 계통에 어느 정도 자질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닙니까?”
 “이쪽 일이 그래. 그만두고 싶다고 마음대로 그만둘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거든.”
 
 언제부턴가 진 법사는 내게 말을 놓고 있었다.
 말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연 거 같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자네는 굳이 이 일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다른 일을 시작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글쎄요. 만약 제가 이 법당을 더 이상 운영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사기 쳐서 벌어 놓은 돈도 많을 거 아니에요?”
 
 문 보살이 끼어들었다.
 
 “집 밖에 세워 놓은 차들 보니까 그쪽이나 그쪽 친구는 먹고사는 걱정 따윈 안 해도 될 거 같은데 뭘 그래요?”
 
 난 문 보살을 무시한 채 다시 진 법사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전 그동안 호철이 몸에 들어가 있는 존재들을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어제 내가 말했잖아. 습관성 빙의. 영가들이 아예 들어와 살고 있었던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친구의 몸을 빌려 사용해 왔던 게 틀림없어.”
 “그랬더라도 이 집 안에 살고 있었단 말인데, 꼭 호철이를 통하지 않더라도 제가 전혀 눈치를 못 챘다는 게 이상해서 말이죠.”
 “영가들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단순하면서도 눈치가 빨라. 이 집 안에서의 자네 행동 반경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겠지. 신당을 모셔 놓은 안방에 자기들이 좋아하는 것들이 많으니 모여 있긴 했지만, 자네가 전혀 손을 안 대는 신당 주위로 몰려 있었고. 또 자네가 아예 발길을 하지 않는 이 층 창고 방에 모여 있었던 것만 봐도 자네가 가진 능력을 알고 있어서 미리 조심을 해 왔던 거겠지.”
 “흐음···.”
 
 난 진 법사와 문 보살을 차례대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앞으로 호철이는 괜찮은 겁니까?”
 “그야 장담할 순 없지. 이미 귀문이 열린 상태고, 보아하니 그 귀문도 꽤 오래 열려 있었던 거 같은데. 그걸 닫기 위해선 또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앞으로 본인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어.”
 “예를 들면···.”
 “영가들이 좋아할 만한 곳은 조심하고, 또 귀신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멀리하는···.”
 “그걸 저희 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조심합니까?”
 “그게 숙제지···.”
 “그럼 이런 방법은 어떻습니까?”
 
 진 법사는 어디 한번 말을 해 보라는 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보살님이 운영하고 계시는 법당. 당장 다음 달부터 빼야 할지도 모른다면서요.”
 “무슨 제안을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해요.”
 
 문 보살은 불안한 표정으로 사전에 내 말을 끊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일단 들어 보세요. 저도 어제오늘 보고 느낀 게 있는데, 이 일을 계속할 수는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무리 돈이 좋아도 목숨까지 내놓고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
 “참고로 이 집은 제집입니다. 월세 같은 게 아니라 제 소유라고요. 한때 법당을 운영했던 곳이니 싸게 세를 놓아도 들어와 살겠다는 사람을 찾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세를 놓을 생각으로 샀던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보살님이 모시는 신당을 옮겨 와서 보살님의 법당으로 쓰셔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뭐 부정 같은 거 걷어 내는 건 전문이시니 알아서 하시고요.”
 
 내 말에 문 보살은 혀끝으로 마른 입술을 적시며 눈치를 살폈다.
 
 “월세 같은 거 내란 소리 안 할 테니까 그냥 들어와서 법당 운영하세요. 짬짬이 호철이 녀석한테 열린 귀문이 닫히도록 도와주신다면 그걸로 전 충분합니다. 그리고 법사님.”
 
 진 법사는 뭔가를 기대하는 표정으로 이어질 다음 말을 기다렸다.
 
 “문 보살님이 여기서 오늘처럼 찾아오는 사람들 상담을 하는 거 정도는 이해해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
 “주제넘게 제가 중간에 끼어서 교통정리를 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지만, 이게 제 비즈니스와도 직결되는 부분이라서요. 제가 직접 안 하면 아무 문제가 안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크흠···.”
 “하루 10명씩 받고 있는데, 정 이 일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시면 앞으로 그 예약 수를 조금씩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그 부분만 눈감아 주신다면 앞으로 법사님께서 하시는 그 일의 경제적인 부분은 이 법당에서 올라오는 매출로 모두 서포팅을 하겠습니다.”
 
 문 보살의 눈빛까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쪽 바닥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법사님과 보살님이 월세 걱정을 하고 있다고 하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말이 안 되는 거죠. 어떻게 진양고현의 애제자와 신딸이 고작 월세 때문에 서로 고성을 주고받습니까? 그건 누가 들어도 말이 안 되는 겁니다. 제가 법사님 큰일 하시는 데 경제적으로 아무 걱정 없이 하실 수 있도록 서포팅을 하겠습니다.”
 “난 그보다 자네가 가진 그···.”
 “아저씨!”
 
 문 보살이 차갑게 소리쳤다.
 난 그런 문 보살을 가볍게 진정시키며 진 법사에게 말했다.
 
 “저 역시 법사님께서 생각하시는 그걸 기대하고 있습니다.”
 “진심인가?”
 “지금껏 제가 살아온 인생을 들어 보시면 저 역시 두 분 못지않게 제 인생이지만, 이 인생에 제가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없는 사람이라는 걸 금방 아시게 될 겁니다.”
 “크흠···.”
 “그런 의미에서··· 그럼 제가 법사님의 제자가 되는 건 어떻겠습니까?”
 “···.”
 “법사님도 그렇고, 보살님도 지금부터는 최소한 벤츠 정도는 타고 다니셔야죠.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강남 퇴마사』1-2권에 계속>

댓글(3)

별지기02    
이거 연재분으로 소장중입니다 퇴마물치고는 깔끔합니다 퇴마하는 사람들 모여서 유투버하는 얘깁니다 사이다 먼치킨은 아니고 공포물이라긴 살짝 아쉽고 사람냄새나는 이야기입니다
2020.04.10 20:24
등골휜다    
재미있음
2020.04.18 18:19
설악범바위    
건필하세요
2020.05.18 21:50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