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플라잉버스터 [E]

플라잉버스터 1권

2019.08.18 조회 236 추천 0


 프롤로그
 
 
 “흑흑.”
 한 여자가 울고 있었다.
 그녀는 푸른색 치마와 붉은색 블라우스 차림으로 얼굴을 가린 채 흐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관전 포인트, 여자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상하다.
 좀 건강해 보이는 다리라든가 여자치고는 조금 큰 상체가 말이다.
 여자라고 하기에는 약간 미묘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미묘한 느낌에 속아 넘어가는 존재도 분명 있었다.
 “여, 여자다.”
 이상하게 생긴 괴물이었다.
 붉은색 눈이, 그것도 하나만 달려있는, 오우거의 모습을 한 괴물.
 이제껏 그 누구도 발견해 내지 못한 몬스터였다.
 그 이상한 몬스터는 흐느끼는 여자에게 침을 삼키면서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흐느끼던 여자가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잡았다, 이 버그 자식!”
 “······.”
 “펜들, 크레이스 존 설치해!”
 “얼마 줄 건데?”
 “죽고 잡냐?”
 “난 소중하니까 무보수 사절!”
 “제길, 저 자식을!”
 여자로 분장한 남자가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르자, 그 소리에 반응해 12살 정도의 귀여운 남자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온 것이다.
 “크르릉.”
 한편 그 괴상망측한 괴물은 여장을 한 남자를 보고 으르렁 대듯 소리를 질렀고, 남자는 주변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아무도 없겠지?”
 남자는 머리에 쓴 가발을 천천히 벗어 한쪽에 내던졌다.
 그리고 어느새 뽑혀져있는 그의 검.
 순식간이었다.
 그의 검이 괴상망측한 괴물의 배를 관통한 건 말이다. 얼마나 빠른 스피드였는지 움직임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남자는 배가 관통되어서, 고통스러워하는 괴물에게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 돈이 되어라! 플레임 스트라이크!”
 콰앙!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검에 강력한 마법이 걸렸고, 그와 동시에 괴상망측한 괴물은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웃는 남자.
 “돈 벌었다!”
 
 “이번에는 얼마 주시는데요?”
 “350만 원.”
 “에에? 금액이 왜 그래요?”
 “분명 말했을 텐데. 유저들에게 발견될 위험이 있으니 크레이스 존은 꼭 설치하고 버그를 잡으라고 말이야.”
 “그, 그렇지만 펜들 자식이! 왜 그딴 놈을 제게 붙여 주는거에요?”
 “그것도 운명이야.”
 “그런 게 어디 있어요!”
 “헌터의 기본자세는 친화력이지.”
 “그놈은 친화력보다 돈에 눈이 먼 놈이라고요”
 “잘해 보라고.”
 제길! 완전 사기다, 사기.
 아, 분명 이번 건 500만 원이 넘어가는 일이다.
 그런데 크레이스 존을 설치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350만 원만 주다니, 정말 날도둑이다, 날도둑.
 솔직히 말해, 펜들 그 자식을 그냥!
 펜들은 크레이스 존을 설치해 주는 펫(?)과 같은 놈이다.
 여기서 말하는 크레이스 존이란 버그를 잡기 전에 의례적으로 하는 행사로, 그 결계식을 사용하면 다른 유저들은 그 공간을 볼 수 없게 된다.
 한마디로 일루전과 비슷하다고나 해야 하나?
 그런 기능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크레이스 존을 설치해 주는 통칭 ‘켄틴’ 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헌터들의 말을 들어준다.
 하지만 단 한 놈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나의 펫(?) 펜들.
 진짜 무지하게 말 안 듣는다.
 “젠장! 일주일이나 잠복했는데!”
 350만 원이라니, 크윽!
 또 빚 갚고 나면 이번 주도 라면인 게냐?!
 울고 싶다······.
 
 
 
 
 
 1장 랭킹 1위 파멸의 데스티니
 
 
 
 
 
 
 
 어느새 이 직업을 선택한 지도 8개월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이 직업을 선택할 당시에만 해도, 정말 이것에 모든 걸 올인하는 마음이었는데 말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헌터라는 직업이다.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하면, 게임에서 생기는 버그 괴물들을 처리하고 다니는 직업이라고 할까?
 제스틴 월드.
 전 세계에서 제일 뛰어나다는 호평을 받은 게임이었다.
 완벽하게 구현한 현실성, 얼마나 완벽한지 실제 세상보다 더 실제 같은 곳이 제스틴 월드였다.
 특히 다른 게임들과 달리 싱크로율이 상당히 높았기에, 일부 직업 그러니 요리사 같은 경우는 현실에서 일류 요리사라면, 게임 안에서도 일류 요리사에 도달하기 무척 쉬웠고 게임 안에서 일류 요리사가 된 사람도 현실 세계의 영향을 끼칠 정도의 영향력을 끼쳤다.
 게임 안에서 요리는 게임이 아닌, 말 그대로 요리였으니까.
 물론, 그것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현실과 연관성을 가지게 해줄 정도로 싱크로율이 높은 게임이었다.
 그럴 정도로 완벽하다고 칭해지는 제스틴 월드.
 하지만 단 하나, 불완전한 점이 있다.
 그건 바로 버그다.
 전문 용어로 ‘센트리라이트 버그’ 라고 부른다.
 갑자기 등장한 이 버그는 일반 몬스터를 감염시켜서 새로운 존재로 탄생시킨다. 혹은 마구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전혀 예상치 못한 몬스터를 생성하기도 하고 말이다.
 이 돌연변이를 생성하는 놈은 게임 안에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놈을 잡으면 500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금액이 굴러들어 온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게임 안 어디에 존재하는지는 전혀 예상치도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놈이 생성시키는 버그를 잡는다고 급급한 게 지금 이 현실이다.
 그런 버그를 잡는 존재가 바로 ‘헌터’ 라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다.
 간단히 요약해서, 그 버그를 잡고 우리는 일정량의 돈을 습득한다. 그리고 먹고산다.
 참으로 편리한 시스템이다.
 어찌 됐든 그런 버그는 세간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오직 일부 관계자들만 알 정도로 극비인 것이다.
 완벽한 게임이라고 칭해지는 제스틴 월드에 그런 게 있다는 게 밝혀지면 참으로 난감하기 그지없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앞으로 남은 빚이······ 300억 정도인가?”
 생각할수록 암울해진다.
 흐흑, 300억이라니!
 내 나이 이제 18살이다. 창창하다 못해 날아다닐 정도인 내 나이에, 300억 이라는 돈에 굴복해야 하다니······.
 내가 사실 이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돈 때문이다.
 영어로 풀이하면 아임 유월 머니?
 내가 좀 영어 실력이 그러므로 패스.
 어찌 됐든 돈을 위해 뛰어든 사업이다.
 사실 우리 집은 1년 전만 해도 부유했다. 너무 부유해서 눈물 날 정도였다. 그런데 망하는 건 정말 금세더라.
 아버지가 차린 회사가 부도가 나 버린 것이다.
 그때부터 내 인생은 미묘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남들처럼 평범한 인생과는 아주 이별을 해 버렸고, 내 눈에는 단 하나만이 보일 뿐이었다.
 ‘돈’ 이라는 것 말이다.
 ‘돈만 보면 벌떡! 돈만 보면 아잉, 돈만 보면 헐크!’ 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로 돈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벌 수 있는 금액은 정해져 있다.
 아무리 성실하게 하루에 네다섯 탕을 뛰어도 그게 한계였다, 무엇보다 아르바이트이다 보니 잘 벌어도 300만 원 정도였다.
 하지만 그 돈으로는 턱도 없었다.
 물론 부모님도 엄청나게 일을 하시기는 하지만 역시나 한계가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나에게 들려온 소식 한 가지, 떼돈을 벌 방법이 있다는 거다.
 떼돈, 그 얼마나 아름답다 못해 거룩한 단어란 말인가?!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감동 먹을 단어, 떼돈!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 그런 떼돈을 볼 수 있는 게 바로 게임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게임만큼 돈 잘 버는 직업도 없다. 물론 자신의 캐릭터가 초고렙이라는 전제조건이 붙어야 하지만.
 보통 고렙은 일반 알바보다 좀 더 나은 수입을 올린다. 열심히 할 경우에 말이다.
 하지만 초고렙은 아니었다.
 운만 좋으면 몇 천만 원짜리 아이템도 먹을 수 있고, 고렙 사냥터에서는 많은 돈이 나와서 현금 거래로 엄청난 액수로 바뀌기도 한다.
 돈에 미쳐 있던 나에게 단비같은 소식임이 분명했다.
 나는 당장 게임기를 하나 구입한 뒤 본격적으로 게임을 할 준비를 하는데, 마침 며칠 뒤 절묘하게도 제스틴 월드라는 게임이 오픈 베타를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폐인기는 시작되었다.
 완전 머신 수준이랄까?
 그만큼 미친 듯이 했다.
 남들은 즐기기 위해서 하고, 명예를 위해서 했다.
 하지만 난 아니다. 빚의 압박으로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들보다 월등한 위치에 올라가 있는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남들보다 뛰어난 운동신경 때문에 게임 내에서 발생하는 싱크로율의 혜택을 받았다는 건 인정한다.
 그리고 운 좋게 히든 클래스인가 뭔가를 획득해서 남들보다 좀 더 좋은 직업을 가진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를 이렇게 만든 건 돈이라는 단어였다.
 돈에 생명을 맡긴 채 게임을 한 나.
 분명 초인적인 힘이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난 랭킹 1위였다.
 한 마디로 남들보다 강한 몬스터를 잡아서 좋은 아이템을 먹고 비싸게 팔 수 있는 여건은 완성된 것이다.
 그렇게 모든 여건을 완성한 난 정말 비싼 아이템을 준다는 놈들은 싸그리 다 잡으러 다녔지만 생각 외로 몇 천만 원짜리 아이템이 잘 떨어지지는 않았다. 단 한 번, 천오백만 원에 육박하는 아이템을 먹은 적 밖에 없었다.
 분명 내가 아는 놈들은 서너 개까지 먹었다는데, 난 한 개 밖에 먹지 못한 것이다.
 그 점으로 미루어 보아 난 아이템 운이 지지리도 없다는 거다.
 물론 아이템을 제외한 순수한 돈을 팔아서 생긴 돈도 엄청 짭짤했다.
 한 달에 천삼백만 원 정도?
 이건 저절로 헉 소리가 날 정도의 금액이다.
 하지만 내가 갚아야 할 300억이라는 금액에 비해서는 무척 초라한 금액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랭킹 1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초고급 아이템님들이 잘 나타나지 않아서 난 심각하게 슬퍼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그들이 접촉해 왔다.
 그들은 자신들을 제스틴 월드의 운영자라고 소개했고, 이곳에서 서식하는 버그들을 잡아 준다면 ‘돈’ 을 준다고 했다.
 돈, 머니 말이다.
 그 말에 난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금세 웃으면서 말했다.
 “저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웰컴!”
 이렇게 말이다.
 흐음, 그날부터 난 이렇게 헌터가 된 거다.
 
 터벅터벅.
 나는 어느 한곳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게임 안에서 내게 버그에 대한 정보를 주는 란젠이라는 운영자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그는 이곳 제스틴 월드의 실질적인 정보력을 가진 존재로, 게임 안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정보는 그의 귀에 들어간다.
 즉 버그라는 놈들에 대한 정보도 저분의 귀에 다 들어간다는 소리다.
 끼이익.
 나는 도착하자마자 그가 근무하고 있는 ‘꽃의 주점’ 이라는 곳의 문을 열었다.
 정말 이름이 꽃의 주점이 뭐냐? 촌스럽게.
 좀 더 임팩트 있는 이름을 원하는데 말이다.
 “어, 어라? 오랜만이다.”
 “오랜만이에요”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나를 반기는 란젠 형은 나보다 7살이나 많은 25살이다.
 꽤나 큰 키(185cm)에 여자깨나 울렸을 것 같은 외모를 가진 남자, 바로 내 앞에 있는 남자다.
 기운이 없어서 비실거리는 나를 본 형은 물었다.
 “무슨 일이냐?”
 “펜들 자식 때문에 돈 날렸어요.”
 “아아······.”
 “진짜 그 자식! 아, 생각만 하면 혈압이······. 으윽!”
 “펜들이 돈을 밝히긴 하지.”
 “아니 왜 밝히는 건데요?!”
 “주인 닮아서?”
 “······.”
 “솔직히 말해 데스티니, 너의 그 돈에 대한 집착에 난 감탄했어.”
 “······.”
 “한마디로 피장파장? 그리고 펫은 주인을 닮잖아?”
 으윽, 그렇게 말하니 왠지 할 말 없잖아!
 흐흑.
 사실 내가 이렇게 돈에 무지무지 집착을 하는 것도 다 궁핍하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다. 살아가려는 자의 마지막 발악이라고나 할까? 으윽!
 “아. 그나저나 데스티니, 네가 온 이유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지?”
 “네. 뭐······.”
 “없다.”
 “엥?!”
 “방금 전에 진홍의 아레안이 가져갔어.”
 “아······.”
 “꽤나 큰 액수가 될 버그 같아 보였는데, 안타깝다.”
 “이,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왜 하필 내가 오기 바로 전에 아레안 자식이 정보를 가져가느냔 말이다! 왜, 왜, 왜?!
 하지만 분명 자그마한 놈들은 남아 있을 거다. 그래, 나는 행운아(?)니까.
 “저기 형, 좀 자그마한 놈들도 되니 걔네들이라도······.”
 “이런! 파멸의 데스티니라고 불리는 네가 그런 등급 낮은 애들을 잡으려고?”
 “······.”
 “헌터들 사이에서도 전설이라고 불리는 네가 그 등급 애들을 잡으면 욕한다?”
 “그, 그렇지만 돈이······.”
 “아, 빈곤한자식. 하지만 참고적으로 말하지.”
 “······.”
 “없다.”
 “······.”
 “등급 낮은 일도 없어.”
 “그, 그럴 수가!”
 “이번에 좀 쉬어라, 돈벌레야.”
 “쉬고 싶어도 빚이······.”
 “현금 거래라도 하든가.”
 “형도 알잖아요. 저번에 한 번 바꾸고 난 뒤 거지된 거.”
 “그럼 유저들 사이에 끼어서 용병이라도 하든가 뭘 해서 돈을 모아. 참고로 한동안 일은 없을 것 같다.”
 “······.”
 란젠 형의 말에 난 좌절했다.
 이럴 수가······.
 일이 없다니, 일이······. 으아아악!
 콰앙!
 “야, 야!”
 나는 그대도 문을 박치고 뛰쳐나갔다.
 이건 아니야! 난 행운아(?)인데, 말도 안 돼! 누군가 나에게 일을 달라!
 
 “아아, 역시 재미있는 놈이라니까.”
 란젠은 그 말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헌터들 사이에서도 전설이라고 불리는 파멸의 데스티니, 공식 랭킹 1위이자 버그들에게조차도 공포의 대상인 그다.
 그런 그가 위엄하고는 완전 별개인 저런 모습을 보인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아, 배도 고프다.
 하지만 배 채울 돈도 없다.
 왜냐하면 난 지금 무일푼이니까. 빚에 쪼들려 게임 안에서 까지 빵조각으로 배를 채우는 내가 참으로 비참하다 못해 눈물이 나온다.
 그 순간, 약 올리는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려 왔다.
 “어이, 가난뱅이?”
 “펜들, 너 죽었어!”
 “주, 주먹으로 해결하지 마! 이, 야만인! 짐승! 변태!”
 “뭐라고? 이 개자식을!”
 “······.”
 “······.”
 그때 허공에다 대고 혼자 외치는 나를 본 유저들과 NPC들은 미친 사람 보듯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 모습에 어색한 웃음을 지은 뒤 말했다.
 “저는 무지무지 정상입니다.”
 “······.”
 “······.”
 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나 보다.
 급 무안이다.
 
 
 어떤 일이든 다 들어드립니다.
 
 나는 깃발 하나를 장엄하게 꽂은 채 묵묵히 그 자리에 서있었다.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깃발을 본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기 봐.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데.”
 “키키! 정말인가?”
 “말도 안 돼. 어떤 소원이면 드래곤도 잡아 주나?”
 “말도 안 되지.”
 “아마도 쥐 잡는 일이나 하겠지. 키키.”
 뭐라고 해도 좋다.
 나는 어떤 일이든 한다.
 사실 드래곤도 잡을 수 있다. 한때 ‘드래곤 슬레이어’ 라는 명칭을 달았으니까 말이다. 물론 드래곤인만큼 액수는 무지막지하게 커지겠지만.
 한편 주변에 몰린 사람들은 신기한 듯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조금······ 이상한가?
 흑흑.
 “많이 빈곤하군.”
 “제라스!”
 그때 갑자기 내 등 뒤에 나타난 한 남자.
 얼음을 연상시키는 차가운 인상의 남자였다.
 이름 제라스, 나이는 나랑 동갑인 18살에 별명은 얼음 왕자. 직업은 나와 같은 헌터에 랭킹 14위에 육박하는 엄청난 놈이다.
 그리고 그의 애검 ‘냉혹의 소드’ 는 모든 걸 얼려 버린단다.
 참고적으로 워낙 싸움을 잘하는 놈이어서, 자기보다 높은 랭킹도 곧잘 이기곤 하는 무서운 놈이다.
 “파멸의 데스티니, 내가 유일하게 인정한 놈이 이렇게 비굴하게 살다니.”
 “너도 내 상황이면 되면 이해가 될 거야!”
 “······.”
 “네놈은 돈 잘 벌지? 네놈은 아이템 막 떨어지지? 난 안 나와! 아이템들이 나만 보면 도망간다고! 으아아악!”
 난 절규했다.
 제라스는 그런 나를 보더니 한마디 던졌다.
 “빈곤한 놈.”
 으윽! 왠지 저 말투, 은근히 화나게 만든다. 은근히 말이다.
 그 순간 천사의 외침이 들려왔다.
 “참고로 한 가지 알려 주지. 이곳으로 오는 길목에서 초보 헌터 세 명이 버그를 잡는 모습이 보였다.”
 “······.”
 “도와 달라고 했다.”
 “꼬락서니를 봐서는······ 무시하고 왔지?”
 “그렇다.”
 “······.”
 “나는 남의 일에 끼어드는 성격이 아니다.”
 정말 매정하다.
 차가운 것보다 매정한 게 더 심한 제라스. 쯧쯧.
 “그걸 도와주면 돈을 받을 수는 있······.”
 ······.
 
 “흐음.”
 제라스는 짧게 신음했다.
 거의 빛의 속도였다.
 가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사라진 거다. 역시 돈에 관련된 일에서는 눈이 번쩍이는 데스티니였다.
 “그나저나 그 버그, 최악의 상대를 만나겠군.”
 평소에는 그리 멋진 놈은 아니다.
 하지만 전투할 때만은 파멸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존재, 그게 바로 ‘데스티니’ 라고 불리는 존재였다.
 
 “저, 정말 사신의 레루스님이세요?”
 “그렇게 불리기는 하는데······.”
 “정말 대단하세요! 제 눈으로 랭킹 250위에 육박한다는 사신의 레루스님을 뵙다니!”
 “자꾸 그러시면······ 부담돼요.”
 “아니에요! 저희들을 구해 주셨잖아요! 이번에 받을 버그 금액은 모두 드릴게요. 아니, 저희 목숨을 살려준 것에 대한 보상도 같이 해드릴게요!”
 “그, 그럼 곤란······.”
 “저희들 성의입니다. 받아 주세요!”
 “받아 주세요!”
 “네?!”
 나는 급 좌절했다.
 제라스의 말을 듣고 거의 제트기 수준으로 왔는데, 벌써 저기는 상황종료.
 사신의 레루스가 와서 말이다.
 그리고 추가로 자신들의 목숨을 살려준 보상도 해주신단다.
 크아아악!
 “정말 운은 지지리도 없다니까.”
 “펜들, 정말 뒈지고 싶냐?”
 “만날 폭력만 사용하려고 그래!”
 “그건 네가 하는 꼬락서니가 그래서 그런 거다.”
 “이런 야만인!”
 “닥쳐!”
 “야만인, 야만인!”
 “이 자식을!”
 나는 그대로 근처에 있는 나무를 걸어 올라가다시피 해서 공중에 떠 버렸다. 그리고 허공을 저었다.
 “헉!”
 “잡았다, 펜들! 크크크.”
 “사, 살려 줘.”
 “닥쳐라!”
 “······.”
 내 손에 잡힌 이상하게 생긴 동물은 하얀색 솜털같이 생긴 놈인데, 이게 바로 크레이스 존을 설치하는 놈이다. 사실 외모로만 보자면 여자들이 다 넘어갈 정도로 귀엽게 생겼지만, 하는 짓거리는 보다시피 엄청 재수 없다.
 “배고픈데 이거나 삶아 먹을까?”
 “헉! 마, 말도 안 돼!”
 “농담이다.”
 “그, 그런 저질적인 농담밖에 못 하는 거야?!”
 “진짜 탕 속 에 들어갈래? 나 배고픈데.”
 “······.”
 “닥치고 있어라. 기운 없다.”
 나는 그 말과 함께 근처에 있는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으아악! 난 왜 이리 돈복이 없는 거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뭐 해! 이게 뭐야!
 
 
 
 
 
 2장 보디가드?
 
 
 
 
 
 
 나, 나에게 일을······ 달라.
 이대로 가다가는 오늘 죽 쑤겠다.
 이러면 안 된다. 배는 고프고, 빚님은 나를 닦달하고 있다. 그런 지경에 돈을 못 벌다니 말도 안 되는 거다!
 어서 어떤 일이라도 잡아야 한다. 어떤 일이라도!
 차라리 이럴 바에는 몬스터 잡는 게 더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대박'이 터지면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누군가의 저주를 받았는지 절대 아이템이 안 떨어진다. 한마디로 아이템이 사람 차별하신다.
 “정말 불쌍하군.”
 “제라스, 왔냐?”
 그때 나타난 한 남자. 방금 전에 내게 정보를 준 착한(?)놈이다.
 냉혹의 소드라는 이름을 가진 존재.
 그는 말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일이 잘 풀리지 않았나 보군.”
 “레루스가 먹었어.”
 “흐음······.”
 “젠장, 레루스 자식······.”
 “역시 재수 없는 인생이군.”
 저기요, 얼음 아저씨, 그런 건 굳이 상기시켜 주지 않으셔도 되거든요?
 “너같이 불행한 인생을 살 수 있다니, 신비다.”
 “······.”
 “어느 의미에서는 존중해 주지.”
 그 어느 의미가 무슨 의미 인지 바보가 아닌 이상 대충 이해할 수 있긴 하다.
 젠장, 저 자식은 누구 약 올리려고 나타난 거냐?!
 갑자기 나타나 왜 순진한 사람 허파를 뒤집는 거냐!
 그렇게 속으로 구시렁거릴 때였다.
 “일이 있다.”
 “친구!”
 “······.”
 “난 자네만 믿었어.”
 “······.”
 “항상 아름답잖아?! 하하하하.”
 난 일이라는 말에 그대로 제라스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너무나도 감동적이다. 일이 있단다. 일이!
 “난 남자에게 취미 없다.”
 “나도 없는데?”
 “근데 왜 내 손을 붙잡는 거지?”
 “······.”
 “닭살 돋는다.”
 “미 투.”
 난 그 말에 당장 그 자식과 마주 잡은 손을 놓았다.
 난 엄연히 여자를 좋아하는 순수한 남자다.
 절대 이상한 애들과는 상관이 없다. 절대 말이다.
 그나저나 일이라니, 흐흐흐!
 난 흐뭇한 표정으로 제라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무슨 일인데?”
 “보디가드다.”
 “보디가드?!”
 “한 귀족의 영애를 데려다 주는 일이다.”
 “오! 보수는?”
 “100만 골드.”
 “······!”
 100만 골드라고 하면 현금으로 100만원이잖아?
 1골드에 1원, 이게 바로 게임 시세다. 그러므로 100만 골드라면 당연히 100만 원이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100만 원짜리 알바라니?!
 “원래 내 아는 동생이 이 일을 하려고 했다.”
 “······?”
 “하지만 그 동생이 사정이 생겨서 나에게 부탁한다고 했다.”
 “······.”
 “그런데 귀찮았다.”
 그러니까 자기가 하기는 귀찮고, 동생의 부탁은 들어주고 싶어서 이 일을 나에게 맡긴다는 거냐?!
 이 자식, 순수한 의도가 아니잖아!
 제라스의 말이 이어졌다.
 “부디 무사하기를.”
 “저, 저기, 제라스······.”
 “······?”
 “방금 그 말은?”
 “그냥 해 봤다.”
 넌 그냥 해 본 말이 '부디 무사하기를' 이라는 말이냐?!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진다. 이상한 낌새가······.
 하지만 액수가 정말 크다. 100만 원이다. 보디가드를 해서 100만 원이 나오는 경우는 흔치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자!”
 끝내 돈을 선택한 나다.
 
 “랭킹 700위에 육박하는 속검의 케라스님인가요?!”
 “아, 뭐.”
 “랭킹 1,000위 안에 드는 분을 보는 건 처음이네요!”
 “······”
 내 앞에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한 아가씨, 나이는 대략 15살로 보인다.
 키는 163CM 정도에 꽤나 귀여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단정하게 묶은 포니테일 형식은 머리는 그 귀여움을 살려주고 있었다.
 그런데 제라스의 아는 동생이라는 사람이 속검의 케라스였군.
 본래 이 일은 케라스가 맡은 일이다.
 하지만 케라스는 사정상 못하게 되었고, 그게 제라스에게 넘겨지게 되었다.
 하지만 제라스의 성격상 이런 보디가드? 말도 안 된다.
 그 자식이 누군가를 보호한다고 생각하면, 흐음······.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만큼 제라스와 보디가드라는 단어랑은 안드로메다와 지구와의 거리만큼 동떨어져있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속검의 케라스인 척하는 건 어차피 이 일 자체가 속검의 케라스가 맡을 일이었으니, 굳이 그가 아니라고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것보다 이분, 랭킹 유저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걸로 봐서는······.
 “유저인가요?”
 “네!”
 역시 유저였다.
 그나저나 부럽구나. 귀족 집 자제의 영애로 태어나다니 말이다. 이러한 조건을 가지고 있으니 남들보다 월등하게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게 사실이다.
 뭐, 히든 클래스와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귀족들로 탄생된 유저들은 말이다.
 물론 내 생각에는 히든 클래스가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흐음, 그런데 유저라면 인간이라는 소리인데, 꽤나 귀엽다? 사실 저 정도로 귀여운 여자는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사실 내가 은둔형 외톨이다.
 전문용어로 ‘히키코모리’에 해당되는 관계로, 여자들은 별로 못 본 것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눈의 수준이 낮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러므로 저 여자는 꽤나 미소녀다. 물론 ‘그분’들에 비해서는 많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말이다.
 참으로 명쾌한 해석이군!
 “저기요!”
 “네?”
 “랭킹 유저가 되려면 얼마나 해야 해요? 몇 백만 명이나 하는 이곳에서 랭킹 700위라니, 꿈같아요.”
 그냥 미친 듯이 하면 됩니다.
 이게 바로 정답이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기에?
 “무슨 일인가요?”
 “네?”
 “무슨 보디가드라고······.”
 “아, 저를 지켜 주는 일이에요.”
 생긋.
 그 말과 함께 미소 짓는 그녀.
 흐음, 너무나도 귀엽다. 아, 안 된다. 이성을 찾자! 그녀는 외뢰인이다. 그래!
 나는 잠시지만 그녀의 미소에 노예가 될 뻔했던 나를 다독거리면서 빠져나왔고 그때 그녀의 말이 들려왔다.
 “사실 제가 아닌 이 물건이지만요.”
 “······?”
 그러면서 그녀는 푸른색의 보석을 내밀었다.
 이 물건?
 “이게 뭔지는 잘 몰라요. 하지만 이게 마리스 제국 황제 폐하의 손에 들어가야 한대요.”
 “마리스 제국 황제의 손에요?”
 “네. 엄청 중요한가 봐요.”
 중요해 보인다.
 왜냐고? 비싸 보이니까.
 비싼 건 중요하다.
 아주 멋진 공식이다. 그나저나 이런 엄청난 물건을 왜 이 소녀에게 맡기는 거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데 말이다.
 “사실 저는 뒤로 돌아가는 역할이에요.”
 “무슨 말인가요?”
 “음, 한마디로 이 보석을 운반한다고 알려진 아버지의 마차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속임수죠. 사실은 제가 들고 가는 거고요.”
 “흐음.”
 “누가 생각하겠어요? 제가 직접 이 물건을 배달하리라고 말이에요.”
 그건 그렇다.
 누가 이렇게 귀중한 물건을 여린 여자아이에게 배달을 시키겠는가? 절대적으로 예상치 못할 반전이다.
 그리고 나를 고용한 이유는 혹시나 모를 산적이나 이상한 애들을 예방(?)하기 위해서겠지.
 “앞으로 잘 부탁해요.”
 그 말과 함께 미소 짓는다.
 아, 아름다워라.
 
 “속검의 케라스라는 자가 그 소녀를 보호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속검의 케라스인가?”
 “네.”
 “흐음, 랭킹 유저를 고용하다니 철저하군.”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들은 이미 본대가 미끼라는 걸 우리가 알아차렸다는 사실은 예상치 못하고 있습니다.”
 “크크크. 그게 바로 우리가 절대적으로 성공한다는 시나리오지.”
 “그나저나 속검의 케라스라는 놈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최소 못해도 백 명의 정예는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백 명이나 필요한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완벽하게 끝내는 게 더 좋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흐음, 그것도 그렇군. 그럼 자네에게 모든 걸 맡기겠네. 속검의 케라스라는 놈을 제거하고 보석을 가져오도록.”
 “네, 마스터.”
 
 
 룰루랄라!
 지금 나의 기분은 업 된 상태다.
 왜냐고?
 오랜만에 편한 일자리를 맡았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귀여운 미소녀와의 오붓한 여행까지 하고 있으니!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딱히 별 생각은 안 했어.”
 굳이 밝힐 내용의 생각은 아니었기에, 대충 얼버무렸다.
 참고로 여기서 현경이가 나에게 말을 편하게 하는 이유.
 30분 전 그녀는 어린 외모와는 달리, 고1이라는 나이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나는 1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기에 그냥 편하게 말을 놓으라고 권유했기 때문이다.
 “아 나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응? 자랑? 무슨 자랑?”
 “속검의 케라스라는 랭킹 유저 오빠 두었다고 말이야. 헤헷!”
 아웅, 찔린다.
 난 속검의 케라스가 아니다.
 걔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사칭하려니 상당히 그렇다. 지금이라도 속검의 케라스가 아니라고 말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던 난 표정이 굳어졌다.
 왜냐고?
 갑자기 나의 현경이의 주변을 둘러싸는 엄청난 인기척 때문이다.
 “오빠, 왜 그래?”
 내 표정이 굳어지자, 의아한 듯 내게 묻는 현경이.
 난 그녀에게 애써 웃음 지으면서 말했다.
 “그 분들이 오셔서 말이다.”
 “······?”
 “잠시 뒤면 알 거야. 내 말뜻 말이야.”
 스르륵.
 스르륵.
 스르륵.
 그 말과 함께 우리 주변을 포위하다시피 나타나는 가면맨들.
 참으로 미묘하다.
 왜 가면인 거냐?!
 차라리 복면이 더 멋진데 말이다. 진심으로 말이다.
 “속검의 케라스를 처리한다. 그리고 보석을 차지한다.”
 그때 가면맨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말했고, 그 말에 가면맨들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본 난 착잡하기 그지없다.
 사실 어쌔신한테 습격당하면 그래도 뭔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가면맨들에게 습격당하니. 이거야 원.
 “척살.”
 그 순간 가면맨들의 입을 열렸다
 척살이라는 말을 내뱉으면서 말이다.
 “오, 오빠!”
 그런 그들을 보고 너무나도 당황하는 형경이.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고. 조금 귀찮기는 하지만. 저 정도 인원은 충분히 정리 가능하니까 말이다.
 난 허리춤에 매어 놓았던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파이어 볼!”
 파앗!
 나는 곧장 검안으로 마법을 걸어 버렸다.
 나의 직업의 능력, 인첸트 매직 앤더다.
 인첸트 매직 앤더, 간단히 설명하겠다.
 검안에 어떤 마법을 주입시켜서 검 속성 자체를 주입한 마법으로 변환시켜버리는 능력이다. 즉, 지금은 파이어 볼을 주입한 상태이기에, 이 검 자체는 파이어 볼 자체로 변해버린 상황이고, 이 검에 스치거나 베인 상대는 몸 안에서 파이어 볼이 터지게 되는 상황이 발생된다는 거지.
 아주 멋진 능력이다.
 “죽어라!”
 그때 가면맨들은 아주 진부한 대사를 날리면서 한꺼번에 달려들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미소 지었다.
 오랜만인가? 이런 다구리는 말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가면을 뒤집어쓴 남자는 자신의 앞에서 일어난 일이 꿈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니다. 이 생생한 느낌이 꿈이 아니라는 걸 알려 주고 있었다.
 자신들의 정예들이 저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다음 시나리오는 그 남자가 벌집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순식간에 그 남자의 검은 휘둘러졌고, 그 검에 스친 부하들은 엄청난 폭발을 일으키면서 그대로 죽어 버렸다.
 한마디로 검 자체에 마법이 걸려 있는 상황.
 이런 황당한 상황은 처음이다. 그리고 너무나도 강하다. 백 명을 상대하면서 여유로운 미소까지 지을 수 있다니!
 그것도 자신들의 정예들을 상대하면서 말이다.
 번뜩!
 그 순간, 그 남자의 머리로 어떤 한 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다. 그럴 리는······.
 그러나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지금의 상황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다! 그 존재다!
 “파멸의 데스티니······.”
 랭킹 1위이자 모든 존재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존재.
 바로······ 그다!
 
 “후퇴한다!”
 “어, 어라?”
 한참 전투를 하던 내게 들려오는 음성.
 후퇴? 에이, 쫀쫀하게 후퇴라니, 더 싸워야지!
 하지만 이런 내 생각과는 달리 열 명 남짓 남은 인원들은 그대로 사라져 갔다. 도망가는 건 거의 빛의 속도다. 흐음.
 이런 내 전투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한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바로 내가 호위하는 현경이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잠시 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오, 오빠 속검의 케라스······ 아니죠?”
 “에, 그러니까······ 속일 생각은 없었는데 대타를 하다 보니······”
 “······.”
 “미안.”
 “아, 아니에요.”
 “감사.”
 나는 괜찮다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었고 그녀는 그런 나를 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오빠, 정체가······ 뭐에요?”
 “내 정체?”
 “네.”
 “흐음. 그냥 데스티니라고 불리는데.”
 “······!”
 
 “그게······ 사실인가?”
 “네. 확실합니다.”
 “이런 미친!”
 부하의 말에 남자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얼마나 흥분했는지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까지 한다. 그는 최대한 진정하기 위해 심호흡을 해 봤지만 그것도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기를 한참, 그는 겨우겨우 진정시킨 뒤 중얼거렸다.
 “파멸의 데스티니 자식이 붙었다니······.”
 “저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검안에 마법을 인첸트 해서 싸우는 놈은 그놈밖에 없습니다.”
 “으윽.”
 “어떡하죠?”
 “정말 미치겠군. 그놈만은 절대 상대하고 싶지 않은데······.”
 “포기해야 할까요?”
 “······”
 “마스터.”
 “젠장!”
 콰앙!
 그는 너무나도 답답한 마음에 그대로 자신의 책상을 한번 내리치더니 화가 난 어조로 말했다.
 “왜 그 자식이 이번 일에 관련되어 있는 거지?!”
 “······.”
 “그 자식하고는 상관없을 텐데? 그리고 무슨 수로 그놈을 고용한 거지? 그놈을······제길!”
 마스터라고 불린 남자는 거의 발작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흥분했고,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그제야 좀 진정이 되었는지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 남자는 조용히 말했다.
 “그 보석은 포기한다.”
 “······.”
 “다른 보석들을 차지한다.”
 “알겠습니다.”
 
 “저, 저기.”
 “네?!”
 갑작스럽게 생긴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조심스럽게 불렀는데, 그 부름에 심히 당황하신다. 어,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존댓말이네. 크윽!
 “그렇게 어색해 할 필요 없어. 하하하!”
 “······.”
 “그리고 갑자기 존댓말을 하면 난감하잖아.”
 “그, 그래도······.”
 “그래도라니?”
 “오빠의 이름을 듣고 반말하기에는······.”
 “내 이름이 어때서?”
 “파멸의 데스티니.”
 “······.”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파멸만이 남을 뿐이라고.”
 내가 무슨 벌레 떼니? 내가 지나가면 파멸만이 남게 말이다.
 분명 헛소문이다. 절대적으로 말이다. 내가 지나가도 이 세상에는 아무 일도 없다. 현경이는 괜한 헛소문에 나를 이상하게 보고 있었다.
 “저기, 현경아.”
 “네?”
 “그 소문, 다 헛소문이야.”
 “······.”
 “절대적으로, 내가 지나가도 아무 이상 없어.”
 “······.”
 “그러니까 편안하게 대해 줘.”
 생긋.
 난 그 말과 함께 미소를 지었고. 그런 내 모습에 현경이는 약간 긴장감이 풀린 얼굴을 하더니 물었다.
 “정말요?”
 “물론! 그리고 말 놔.”
 “응!”
 그제야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휴우, 도대체 어떤 자식들이 순수하게 사는 나를 그렇게 모욕했는지 정말.
 “그래도 파멸의 데스티니라는 오빠를 보니 여전히 꿈같아.”
 “하하하. 꿈같기는······. 나도 여타의 사람들하고 다를 게 없다는 거. 그리고 이런 말 내 입으로 하기 쑥스럽지만 난 순수해.”
 “······.”
 농담이다.
 그냥 분위기를 가볍게 업 시키기 위한 농담.
 그런데 그런 농담에 태클을 거는 놈이 있었으니······.
 “쿠헤헤헤 지나가던 개뼈다귀가 블루스 추는 소리.”
 “······.”
 “말도 안 돼! 쿠헤헤헤”
 “오, 오빠!”
 현경이는 갑작스럽게 들려온 음성에 깜짝 놀라 내 등 뒤로 숨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어쩐지 이 개자식이 조용하다 싶었다.
 펜들 말이다.
 “주인, 그런 구라는 좀 심하지 않아?”
 “······.”
 그러면서 나타나는 하얀색 솜털같이 생긴 자식.
 거듭 말하지만, 외모만은 엄청 귀엽다.
 '외모' 만은 말이다. 다른 건? 아주 싸가지 없다. 그런 까닭에 외형만으로 모든 걸 판단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는 거겠지.
 “저, 저거 뭐야?!”
 펜들을 본 현경이는 당황하면서 내게 물었고, 난 대충 핑계를 둘러대기 시작했다.
 저 자식이 버그를 처리하기 전에 결계를 만들어 주는 놈이라고 설명하기는 난감하니까.
 “애완동물.”
 “애완동물?”
 “응.”
 “저런 애완동물은 처음 보는데······.”
 “좀 희귀한 놈이야.”
 “그, 그래?”
 “어, 좀 많이 희귀하지.”
 희귀하다 못해 너무 독특해서 문제지만 말이다.
 펜들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주인 거짓말은 나쁜 거야.”
 “······.”
 “순수? 그런 단어랑은 절대 주인하고 어울리지 않는데.”
 “죽고 잡냐?”
 “앗! 봐, 아가씨. 지금 들었지?! 죽고 잡냐라는 말?!”
 “······.”
 “저게 주인의 본색이야.”
 빠드득.
 내 이마에 혈관 마크가 생겨났다.
 저 자식.......
 “왜, 왜? 또 폭력 휘두를 거야?!”
 내게 시비 거는 펜들, 난 그 자식을 보면서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포, 폭력이라니, 하하하, 남들이 들으면 오해하겠다.”
 “푸헤헤헤! 착한 척한다.”
 아, 저 개자식! 나중에 묻어 버린다.
 “꺄! 귀여워!”
 “내가 좀 귀엽긴 하지.”
 현경이는 펜들을 보고 귀여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저 자식의 외모에 넘어가면 안 된다. 현경아, 정말 저 자식은 외모만 귀엽지. 다른 건 정말 아니다.
 “나도 이런 펫 가지고 싶어.”
 “절대적으로 권유해 줄 놈은 아니야.”
 “응?”
 “돈만 밝히는 돈벌레거든.”
 펫 주제에 돈은 더럽게 밝힌다. 누굴 닮았는지, 원. 쯧쯧!
 
 마리스 제국의 성안.
 현경이는 보석을 직접 전해 주기 위해 왕을 보러 갔다.
 그리고 난 그런 현경이를 기다리기 위해 성안에 마련되어있는 접대실에서 열심히 빈둥거려 준다.
 카, 이 성 더럽게 크구나. 이런 데는 돈도 많겠지?
 흐흐흐.
 “당연히 돈도 많아요. 후훗.”
 “······.”
 그때 누군가가 내 머릿속을 읽었나 보다. 혼자 생각한 것에 이렇게 대답해 주는 것을 보니 말이다.
 난 자상한 목소리로 말을 건 존재가 있는 쪽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 다음 그 존재를 향해 다가가 말했다.
 “미소의 스테리아.”
 “요오,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
 “두 달 만이잖아요.”
 “······.”
 그렇긴 하다.
 두 달 만이니 오랜만이라고 치자. 그나저나 저 자식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미소의 스테리아.
 왜 저 자식의 별명이 이러냐 하면 간단하다.
 저 자식은 상대방을 죽일 때 웃는다.
 참으로 섬뜩한 자식이야.
 참고로 랭킹도 34위로 초고렙 유저다. 나이는 나랑 동갑. 그런데 이상한 특징이 하나 있는데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동갑인 사람한테도 항상 존댓말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놈이 더 무서운 거다.
 저놈은 미소를 짓고 존댓말을 하면서 적을 죽이니까 말이다.
 그런대 정말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네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냐? 요새 한동안 안 보이더니.”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곳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네.”
 “······.”
 개인적인 일이 뭐기에 마리스 제국에서 근무를 다 할까? 물론 저 자식 정도의 힘이면 이곳 황제가 맨발로 맞이할 정도로 대단한 놈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저놈은 싸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런 곳에 있다니 참으로 의문스럽다.
 “그나저나······.”
 “······?”
 “왜 데스티니님께서 이곳에 있는 건가요?”
 “일.”
 “오호? 일이라, 무슨 일이죠?”
 “이곳에 들어온 아가씨 호위”
 “그래서 무사했던 거군요.”
 “뭔 말이냐?”
 “정보가 들어왔어요. 습격당했다고요. 하지만 고용된 속검의 케라스라는 분이 그 여자를 지키고, 모든 습격자를 전멸시켰다고 말입니다.”
 “······.”
 “사실 의아했어요. 속검의 케라스님이 강한 축에 드는 건 분명하지만, 백 명이라는 정예를 쓸어버릴 수는 없거든요. 하지만 속검의 케라스님이 아니라 당신이었다면 당연한 결과죠. 어떻게 보면 저희 쪽에서는 너무나도 기뻐요. 당신 같은 초거물 급이 직접 호위해 줬으니 말입니다.”
 “······.”
 “참으로 운이 좋았습니다. 후훗.”
 그러냐?
 뭐, 나야 어차피 일도 없는 상태였기에 승낙을 했으니 별 상관없다만.
 그때 갑자기 스테리아가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난 그걸 보고 움찔했다.
 “뭐, 뭐냐?”
 왜 나한테 다가오는 거냐?!
 설마 고백?!
 안 된다. 이러지 마! 남자한테 고백당하는 취미 따위는 없단 말이다. 그 자식이 점점 다가올수록 나는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의 삽질이라는 걸 깨달았다.
 “데스티니님, 일 하나 하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일이라니?”
 “어차피 요새 버그들이 생성되지 않아 돈벌이가 없는 걸로 압니다.”
 그렇긴 하다.
 요새 웬일인지 버그 놈들이 조용하다.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것이지 나오는 객체 수도 현저히 줄었고 말이다. 마치 폭풍 속의 전야처럼······.
 스테리아의 말이 이어졌다.
 “저희는 세 개의 보석을 찾고 있습니다.”
 “세 개의 보석?”
 “네, 프렌체스타인 보석이라고도 불리죠.”
 그건 뭐 하는 보석이냐? 난 생전 처음 들어 본다.
 “저희는 그걸 원해요.”
 “그래서 어쩌라고?”
 “알면서.”
 “뭘?”
 “훗, 뭐 그렇게 나오신다면 직접 설명 드리죠. 방금 저 아가씨가 가져온 보석이 프란체스타인 보석 중 한 개죠.
 뭐, 대충 예상했다. 나는 바보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보석은 세 개가 모이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나머지 보석 두 개를 찾아야지만 의미가 부여되는 보석입니다.”
 “그러냐?”
 난 그 말에 대충 말했다.
 “1억 골드를 드리겠습니다.”
 번쩍
 1억 골드래, 1억 골드! 으악! 잘 생각해 보자 1억 골드면 현금으로 1억.
 한마디로 엄청난 가격이다.
 난 언제 대충 대답했냐는 듯 눈을 반짝였다.
 “당신 같은 초거물 급을 움직이려면 그 정도 액수는 필수니까요.”
 난 그 말에 흥분해서 눈까지 새빨개졌다.
 1억짜리 일이다. 솔직히 말해 그 누가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겠는가? 오히려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놈이 미친놈이지.
 “연인의 마을 델라케스터와 레드 드래곤 클라나스 영토 이렇게 두 군데에 존재합니다. 물론 정확한 장소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는 건 확실합니다.”
 연인의 마을 델라케스터와 레드 드래곤 클라나스 영토?
 이 두 곳에 프렌체스타인의 보석인가 뭔가가 있다는 거냐?
 그런데 한 가지가 걸린다.
 레드 드래곤 자식의 영토 안에 보석이 있다니, 드래곤 자식은 꽤나 찜찜한데 말이다.
 “하실 건가요?”
 스테리아가 내게 물었다.
 난 그 말에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되물었다.
 “무슨 목적이냐?”
 “무슨 말씀이신지?”
 “그 세 개의 보석, 어디다 쓰려는 거냐?”
 “그거까지 제가 가르쳐 드릴 의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맞는 말이다. 그 보석을 어디에 쓰는지 목적까지 내게 알려 줄 이유는 없다. 그리고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난 그 보석을 찾아 주고 그 대가를 받으면 되는 거다.
 원래 드래곤이라는 생물이 끼어 있으면 하기 싫어했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1억 골드다.
 그 정도면 드래곤 자식이 걸리기는 하지만, 한번 해 볼 만도 하다.
 “좋아. 그 의뢰, 받아들인다.”
 
 “이런 미친! 그게 사실이냐!”
 “네, 스테리아 놈이 파멸의 데스티니를 고용했다고 합니다.”
 “······.”
 “다른 존재도 아니고 하필 그놈을······.”
 “제길!”
 가면을 뒤집어쓴 남자들은 순식간에 침울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놈도 아니다. 하필 그 자식을 고용하다니! 하필······.
 “마스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보석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럼 파멸의 데스티니 놈을 적으로 하시겠다는 겁니까?”
 “······.”
 “차라리 드래곤을 적으로 만드는 게 나을 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 존재는······.”
 “그렇다고 포기해야 한다는 거냐?!”
 “······.”
 “그 보석은 '그곳'으로 통하는 열쇠란 말이다.”
 “······.”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 파멸의 데스티니라는 놈을 피해서 보석을 찾아낸다. 한발 앞서서 말이다. 그렇다면······.”
 
 
 
 
 
 3장 연인의 마을 델라케스터
 
 
 
 
 
 
 이 게임에는 싱글들이 제일 파괴하고 싶어 하는 마을이 있다.
 그곳의 명칭은 바로 델라케스터!
 연인이 아닌 자, 출입 불가라는 말이 있는 거지같은 마을이다.
 이런 빌어먹을 마을 같으니라고! 도대체 이런 거지같은 마을은 왜 만들어 낸 거냐?!
 “헤, 델라케스터 마을을 구경할 생각을 하니 무척 기대돼.”
 “고마워.”
 “응?”
 “내 무리한 부탁을 들어줘서.”
 “무리한 부탁이라니! 나도 한번 들어가 보고 싶었어.”
 지금 난 현경이에게 부탁을 한 상태다.
 뭐를 부탁했냐고? 그건 바로 나의 연인이 되어 달라는 부탁. 물론 실제로는 아니다. 그냥 연인인 척만 해 달라는 거다.
 방금 전에도 말했다시피 델라케스터 마을은 연인이 아닌 자 출입금지다.
 개거지 같은 마을.
 
 “아이잉.”
 “달링!”
 “사랑해.”
 “아이 러브 유.”
 “자기야!”
 “아이잉.”
 “너무 귀여워.”
 “우리 아기······.”
 내 눈이 썩어 들어간다.
 내가 이런 미친 광경을 보고 있어야 하다니. 크아악!
 “조, 좀 그렇다. 헤헷.”
 그 미친놈들의 광경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현경이. 그녀도 나와 같은 심정일 게 분명하다.
 무슨 닭살 커플들만 모아 놓은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광경이······!
 “너의 그 맑은 눈에서 수영하고 싶어.”
 “앙, 자기도?”
 “진심이야. 베이베.”
 이런 미친, 썩을, 죽일 놈의 자식들!
 으악! 난 개생지랄을 해 대는 연인들을 보고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이딴 거지같은, 아니 쓰레기 같은 마을을 만든 거냐?!
 도대체 왜, 왜?!
 이 마을을 만든 자식을 확 어떻게 해 버리고 싶은 게 지금 내 심정이다.
 그나저나 이런 마을에 프렌체스타인인가 뭔가 하는 보석이 있다는 게 확실한 건가?!
 나는 그런 생각과 함께 주섬주섬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러자 보이는 그림 속 푸른색의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이는 보석. 크기는 대략 내손의 절반 정도 되는데, 보석치고는 큰 편이었다.
 이게 바로 이곳에 있다고 전해지는 프렌체스타인 보석이다.
 이걸 찾아야 한다.
 “이게 그 보석이야?”
 “응, 뭐. 그나저나 무슨 수로 찾지?”
 “흐으음.”
 “아, 사람들한테 물어보는 건?”
 “글쎄······.”
 저 미친 듯이 애정 행각을 벌이는 커플들에게 물어봐도 정답은 나오지 않을 걸로 보이는데 말이다.
 그런데 여전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한 가지 의문.
 도대체 이 마을 왜 만든 거냐?!
 다른 건 다 이해해 주겠다. 하지만 왜 이 마을을 만들었는지는 정말 이해가 안 된다. 무슨 이유로 만들었을까?
 “자기야.”
 “아이잉.”
 쪽
 “······.”
 “······.”
 그때 한 커플이 남들의 시선은 의식도 하지 않은 채 키스했다.
 뽀뽀도 아니었다 프렌치 키스라고 약간 수위가 높은 키스였다. 하지만 그런 키스에 아무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반응.
 그 모습을 본 현경이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내게 더듬더듬 말했다.
 “오, 오빠 조금······ 개방적인 곳이네.”
 “조금이 아니라 많이 그렇다.”
 지금에야 살펴보니 주변에는 온통 키스하고, 포옹하고, 애교 부리고, 이런 사람들밖에 없었다. 이런 곳에 보석이 있다니, 정말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스테리아 자식의 정보다.
 있기는 있을 것이다. 있기는 말이다.
 “오호! 새로운 연인들이신가요?”
 그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한 남자 대략 20대 중반으로 보인다. 노란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채 느끼한 인상을 한 남자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 뭐······.”
 난 그 남자의 질문에 흐지부지 대답했고, 그런 나의 질문에 그 느끼맨은 나와 현경이를 바라보더니 약간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연인치고는 상당히 거리가 있으시네요.”
 “······.”
 아!
 주위에 펼쳐진 너무나도 광기 어린 모습에 어색했던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조금 거리를 벌린 상태다.
 연인치고는 확실히 이상하다.
 그렇다면!
 스윽.
 난 능숙한 손놀림으로 현경이의 어깨를 잡고 끌어당겼고, 우리는 순식간에 찰싹 달라붙었다.
 현경아, 미안! 이해해 주기를.
 “하하하, 뭐.”
 “역시 연인은 그래야죠. 후훗.”
 지랄.
 난 이 마을 정말 싫어 어서 목적을 달성하고 이 거지 같은 마을을 벗어나고 싶은 게 지금 내 마음이다.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를. 후훗.”
 그 한마디 날리고 다시 사라지는 느끼맨.
 “휴우.”
 그 모습에 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했다. 별 이상한 놈한테 걸릴 뻔했어.
 “저, 저기, 오빠······.”
 “응?”
 그때 더듬거리면서 말하는 현경이.
 “왜?”
 “너, 너무 강하게······.”
 “아, 미안!”
 난 그 말에 현경이 어께에 올렸던 손을 다급하게 내렸다. 나도 모르게 갑작스러운 상황에 힘을 너무 주었다 보다. 나도 참!
 “정말 미안.”
 “아, 아니야 괜찮아.”
 그러면서 배시시 웃는다.
 귀엽다. 크윽!
 그나저나 정말 무슨 방법으로 찾아야 하나?
 정말 답답하다.
 “꺅!”
 “뭐, 뭐야?!”
 “적이야!”
 “뭐?!”
 “꺄아, 자기야!”
 그때 근처 카페에서 현경이와 주스 한 잔 마시고 있던 내게 들려오는 비명 소리.
 적? 이곳에 적이라니?
 내가 알기로는 여기는 국가가 아니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 마을, 그게 바로 이곳이다.
 그런 이곳에 적이라니? 아니, 근처에 산적이나 도적들이 급습했다면 가능하지만 이 근처에는 그런 애들이 없는 걸로 아는데?
 “오빠?!”
 그때 나를 보면서 당황하는 현경이.
 난 그녀에게 다소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여기에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응.”
 난 그렇게 말한 뒤 다급히 가게를 나섰다. 갑자기 적이라니, 이건 무슨 개소리냐?!
 
 “와이번 기사단 트레킨.”
 저 하늘 위에서 수백 마리의 와이번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면서 날아왔다. 참고로 와이번에 는 두 사람씩 탑승을 한 상태였다.
 나는 저들이 누군지 안다.
 제로미티 제국에 존재하는 3대 기사단 중 하나.
 그리고 4개의 제국 14개의 기사단 중 유일하게 와이번을 다루는 기사단이기도 한 곳이다.
 끼이익! 끼이익!
 “꺄아!”
 “마, 막아!”
 “왜 이곳에······!”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사실 이곳 마을은 방위 능력이 거의 없다. 아니, 아예 없다.
 그냥 난동을 피우는 사람들을 제지하기 위한 병사 몇 십 명 만이 배치되어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이곳은 중립 관광지였기에 이런 급습은 일어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어났다. 그것도 소위 제국이라는 곳에서 보낸 놈들 때문에.
 끼이익.
 그때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내 앞으로 와이번 한 마리가 착륙했다. 그리고 와이번의 몸체에 탄 남자가 내렸다.
 20대 초반에 190cm 정도의 큰 키, 우락부락한 근육,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이 인상적인 남자다.
 “왜 네가 여기 있지?”
 그는 내게 물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랭킹 19위이자 와이번 기사단 단장이신 네켄님께서 왜 애들을 데리고 중립적 마을을 급습했는지 난 그게 더 궁금한데 말이다.”
 “볼일이 있어서다. 그럼 넌 여기에 무슨 용건이지?:
 “나? 찾을 물건이 있어서 말이야.”
 그 말에 여전히 와이번에 탄 채 나를 바라보던 네켄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더니 물었다.
 “스테리아가 고용했나?”
 “어, 어라?”
 “반응을 보아하니 맞는 것 같군.”
 “······.”
 “스테리아 자식, 네놈을 움직이다니······ 진짜로 한번 해보자는 건가?”
 “······.”
 무슨 말인 거냐? 뭘 해보자는 건지.
 아, 설마······.
 “너도 보석이냐?”
 “······.”
 대답이 없는 걸로 봐서 맞나 보군
 도대체 그 보석, 뭐냐?!
 왜 사방팔방에서 그 보석을 얻으려고 난리인 거지? 그 보석이 그렇게 대단한 건가?
 “스테리아가 네놈을 얼마에 고용했지?”
 “나? 1억 골드.”
 “2억을 주겠다. 우리 쪽으로 와라.”
 2억 주겠대! 간도 크다.
 뭐, 제국의 기사단 단장이니 그 정도의 능력은 있겠지. 하지만 말이다.
 “이래 봬도 선계약은 잘 지키는 몸이어서. 나중에 고용해 주든가.”
 “그 말은······ 지금은 나와 싸우겠다는 소리인가?”
 “상황 봐서.”
 “나에게는 부하도 수백 명이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
 “크하하하!”
 뭐냐?!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 대는 네켄
 쟤, 미쳤어?
 한참을 신나게 웃던 네켄이 잠시 후 중얼거리듯 말했다.
 “역시 네놈답군.”
 “글쎄올시다. 그것보다 이런 중립적 마을을 완전 급습하다니, 너도 참······.”
 “그 보석을 찾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할 것이다.”
 “······.”
 저 정도면 완전 보석에 맛 간 상태이군.
 그나저나 계속 그렇게 말하니 은근히 그 보석에 대해 궁금해지는데? 물어본다고 대답해 줄 것 같지 않지만 말이다.
 “오늘은 물러나지.”
 네켄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그거 참 고마운 소리군. 여기서 한바탕 하면 난리 날 게 분명하니까.
 “하지만 스테리아에게 전해라.”
 “뭘?”
 "그쪽에서 네놈을 고용했다면 우리도 가만있지 않겠다고 말이다.“
 “오호?”
 “차원의 쥬르, 피의 광열전, 영혼의 캐스틴, 파괴의 마법사 블레지아. 접촉 중이다.”
 아, 나 원 참. 그것들과 접촉 중이라고?
 젠장! 진짜 이것들 뭐냐?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데스티니.”
 파악!
 그 말과 함께 그대로 와이번을 타고 사라지는 네켄.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머리 아파하는 나.
 “도대체 이것을 무슨 꿍꿍이냐?”
 지금 내가 제일 궁금한 거다.
 그리고 이런 찜찜함의 극치를 달리는 일, 아무리 많은 액수를 줘도 사양이다. 이용당하는 기분 따위는 느끼고 싶지 않으니까.
 
 
 
 
 
 4장 변태 마검 홀락
 
 
 
 
 
 "계약 파기야.“
 “흐음······.”
 난 스테리아에게 가서 그대로 이 한마디를 던졌다.
 계약 파기.
 웬만해서는 돈과 관련된 일에 계약 파기라고는 있을 수 없는 나다. 하지만 말이다, 이번에는 예외다.
 왜냐고? 무언가 속고 있는 느낌이니까.
 스테리아 저 자식은 분명 날 속이고 있다. 그뿐 아니라 그 보석에 관련된 일을 하면 상당히 머리 아파질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돈도 좋지만 괜히 이런 찜찜한 기분을 갖고 하고 싶지는 않다.
 “계약 파기라······.”
 스테리아는 내 말에 그렇게 중얼거렸고, 난 그런 스테리아에게 말했다.
 “네켄 놈하고 너하고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는데, 조용히 해라. 괜히 이 게임 물 흐리지 말고.”
 그래야지. 이 게임이 내 밥줄인데 물 흐려지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그러므로 싸우려거든 둘이서 싸우렴.
 “하하하, 계약 파기를 하신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말입니다. 그냥 무사히는 돌아가기 힘드실 텐데요.”
 “지금 협박하냐?”
 “뭐, 그렇게 들리기도 하겠죠.”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거구나.
 하하하. 역시 뭔가 예사로운 짓거리는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순수하게 돌아가는 나를 제거하려고 하다니, 더 찜찜한걸.
 스르륵.
 스르륵.
 스르륵.
 그때 순식간에 나를 둘러싸는 기사들.
 한 명 한 명이 강해 보인다. 하지만 별 상관은 없다,
 “스테리아.”
 “······?”
 “한번 해보자고 나, 몸도 나른했는데 잘 됐네.”
 “······.”
 난 그 말과 함께 그대로 허공을 저었다.
 그러자 검은색의 공간이 열렸고, 주저 없이 그 공간을 향해 손을 집어넣는 나.
 스윽.
 난 그 공간을 통해 무언가를 뽑아냈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멋들어진 검. 보기만 해도 그 마기에 압도될 것만 같다.
 하지만 이 검은 보는 것만큼 멋지지는 않다. 왜냐고? 변태였으니까.
 ―꺄울!
 마검의 음성이 들려온다.
 젠장! 오랜만에 제대로 된 전투를 하기 위해 이놈을 소환하기는 했지만, 소환되자말자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 걸 들으니 기분이 우울해진다.
 ―꺄아아악!
 “이 변태 마검, 괴상한 소리 좀 내지 말라고.”
 ―변태라니! 난 순수해!
 지랄 염병을 해라.
 네놈이 순수하면 이 세상 멸망한다. 이 변태 마검아.
 그때 변태 마검 홀락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꿀꺽.
 그리고 말소리도 추가적으로 들려왔다
 ―저 아가씨는 누구?
 “아는 동생이야.”
 ―헤이 걸?
 “······.”
 갑자기 자신을 헤이 걸이라고 부르는 마검을 보고 굳어 버리는 현경이.
 홀락은 행복한 말투로 물었다.
 ―아가씨, 팬티 색깔 무슨······.
 퍼억!
 ―크아악!
 “······.”
 나는 그대로 밟아 버렸다.
 어떻게 처음 보는 여자한테 물어보는 것이 팬티 색깔이냐?
 변태 검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현경이는 자신의 팬티 색깔을 물어보는 변태 마검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난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미안.”
 “아, 아니야.”
 내 말에 애써 괜찮은 척 그렇게 말하지만 아닌 것 안다.
 그 어떤 여자가 저런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받고 괜찮겠는가?
 ―헤이 걸, 팬티 색깔이 곤란하면 브래······.
 “묻히고 싶냐?”
 ―······.
 “묻히고 싶으면 더 해라.”
 ―주, 주인도 차암. 하하하하.
 갑자기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웃어 대는 마검 홀락.
 젠장, 정말 이런 변태적인 마검은 소환해 내고 싶지 않았지만 능력으로 따지면 최강이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내 힘을 두 배 이상 끌어올려 주니까 말이다.
 “전투다.”
 ―오호호호호호호호!
 “······.”
 ―왜 그래?
 “웃음이 왜 그러냐?”
 ―내가 어때서? 오호호호호호호!
 변태에다가 미친 마검이라니.
 하아, 이걸 얻은 나로서는 기뻐해야 하는지 슬퍼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겠다. 정말로 말이다.
 ―그나저나 주인, 오랜만에 피나 잔뜩 먹여 달라고. 크크크
 그제야 마검 같은 대사 한마디 하는데 그 말을 듣는 난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진짜로 해보겠다는 겁니까?”
 내가 마검까지 소환하자 스테리아가 굳어진 체 말했고, 난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럼 가짜로 하겠냐? 자. 시작해 보자고! 체인 라이트닝!”
 파지직!
 나는 그대로 홀락에게 마법을 주입했다. 그러자 홀락의 주변을 감싸 안는 전기 스파크, 체인 라이트닝이 걸린 상태다.
 한 번 스치면 감전과 동시에 상대방에게 쓰리 쿠션(?)을 주는 마법이다.
 이렇게 상대방이 많을 때는 그야말로 최강의 마법이지.
 다다닥.
 난 그대로 체인 라이트닝이 걸린 홀락을 들고 나에게 검을 들이민 기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조용히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을 괜히 건들다니, 너희도 피가 보고 싶었구나?
 “죽어라!”
 내가 달려들자 너무나도 진부한 대사를 날리면서 강하게 검을 찌르는 기사들.
 난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런 정직한 공격은 죽어 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콰앙!
 난 그대로 내 발을 내리 찍었다.
 그 순간······.
 “어어어어.”
 “어어어?”
 “뭐, 뭐지?!”
 중력을 무시한 채 갑자기 자신의 몸이 하늘로 떠오르자 당황하는 기사들.
 뭐기는, 중력 조절 마법을 약간 손본 내 기술이지.
 “천공의 힘을 가진 영혼이여, 내 앞에 있는 적을 모두 베어버려라. 플레이진 카운터!”
 파앗.
 그 순간 내 몸이 사라졌다.
 그와 함께 내 몸은 방금 전에 있던 자리의 반대편 자리를 점령했다.
 잠시 후······.
 지지직.
 지지직.
 지지직.
 “크아아악!”
 “크아아악!”
 “으아악!”
 그대로 감전이 되면서 바닥에 내팽겨쳐지는 어마어마한 수의 기사들.
 내가 생각해도 멋지다. 감동이야!
 “지금, 방금 전에 한 이야기를 취소하면 용서해 줄 건가요?”
 그때 나를 보고 표정이 굳어진 채 말하는 스테리아.
 난 그를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내 별명을 기억한다면 내 대답이 뭔지 알 거라고 생각되는데?”
 “그렇군요. 제가 잠시 미쳤나 봅니다.”
 “으응?”
 “당신을 건들다니 말입니다.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습니까?”
 “무슨 부탁?”
 “지금 저를 죽이고 후에는 저에 대한 감정이 없어지기를 말입니다.”
 “생각해 보고.”
 “그렇군요. 하지만 이대로 당하지만은 않습니다.”
 “그래야 미소의 스테리아지?”
 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소를 짓는 스테리아
 그리고 커다란 봉을 집어 든다.
 저 자식과 대결하는 것도 오랜만이다.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최대한 쏟아 주지.”
 “그거······ 영광이군요.”
 
 폐허였다.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단 한 명도······.
 “이런, 정말 바보 같은 짓을······ 해 버렸군요. 쿨럭.”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자신의 상처를 잡은 채 고통스러워 하는 스테리아.
 잠시지만 자신이 미쳤나 보다.
 그 존재를 건들다니, 파멸의 데스티니를 말이다.
 “하하하······. 이런, 한동안 접속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군요. 하하. 그나저나 역시 별명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그녀’ 가 잘해 줄 거에요 ‘그녀’ 가 말이에요. 후훗. 너무 안심해도 안 될 겁니다.
 데스티니가 파멸의 데스티니라는 명칭을 단 이유, 그건 지금과 같은 상황 때문이었다.
 적이라고 판단되면 그 누구도 살려 놓지 않는다.
 오직 파멸이라는 단어만이 남아 있게 된다.
 그런 까닭에 그가 파멸의 데스티니라는 이름이 붙게 된 거였다
 
 “저, 저기······.”
 “으응?”
 내 말에 현경이는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내가 스테리아랑 싸운 직후의 모습이다.
 조금(?) 과격하게 싸운 건가? 흐음······.
 ―헤이, 걸! 하아······. 이 오빠랑 침대에서 뒹굴지 않겠나?!
 “······.”
 ―뭐, 그러고 싶다고?!
 미쳤냐?
 현경이가 할 짓이 없어 검과 침대에서 뒹굴게 말이다. 그리고 그런 19세 이하 금지에 걸릴 단어는 좀 자중했으면 하는데, 이 변태 마검아.
 그것보다 지금 또다시 생긴 이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해야 한다.
 “오해야.”
 “······.”
 “난 절대적으로 원래 순수해.”
 ―푸헤헤! 그런 저질 농담은 그렇다, 주인.
 그때 홀락이 태클을 걸었다.
 정말 이 자식을······!
 파지짓.
 난 그대로 허공에 손을 저었고 그와 함께 저번처럼 어둠의 공간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 공간을 보고 홀락은 절규했다.
 ―야, 얌전히 있을게!
 “······.”
 ―저기 들어가면 심심하단 말이야! 제발, 주인!
 “······.”
 ―플리즈 미. 아임 유월 겟 굿 잡
 저기, 홀락 군. 영어 쓰는 건 좋은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 간다네.
 ‘플리즈 미’ 까지는 그런대로 이해가 되는데, ‘아임 유월 겟' 하고 ’굿 잡‘ 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단어다.
 신종 영어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저렇게 애걸하니까 이번 한 번만은 봐주도록 하지.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현경이에게 오해를 풀어 주는 거다.
 “에, 다시 이야기를 원점으로 돌려서······.”
 “괜찮아.”
 “으응?”
 “오빠가 멋있었는걸.”
 들었나?
 방금 난 분명히 들었다.
 현경이가 한 말, ‘오빠가 멋있었는걸’이란다!
 으아아악! 내가 멋지대, 내가!
 “미쳤군.”
 “······.”
 “아가씨, 벌써 미친 거야?! 어떻게 저 주인이 멋있을 수가 있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불가능하다고!”
 그때 갑자기 나타난 펜들은 잔뜩 흥분한 채 현경이에게 소리쳤다.
 나는 그런 펜들을 향해 미소를 한 번 지어준 뒤 그대로 펜들을 낚아챈다. 그리고는 그대로 냅다 던졌다.
 강속구였다.
 “나 살려!”
 펜들의 절규 어린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그런 펜들의 비명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갑작스러운 펜들의 개소리에 놀란 얼굴을 하고 있던 현경이에게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놈 말은 신경 쓰지 마. 원래 미쳤으니까. 그렇지, 홀락?”
 ―······.
 “왜 대답이 없지? 너도 날아가고 싶냐?”
 ―아, 아니 당연히 그럴 리 없지. 쿠헤헤헤! 펜들 저 자식은 미친놈이야!
 그럼, 그럼!
 
 
 
 
 
 5장 버서커 오크
 
 
 
 
 
 “오빠······.”
 “응? 왜 그래?”
 무언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거는 현경이. 난 그녀에게 친절하게 물었고 그런 내 물음에 현경이는 쑥스러운 듯 되물었다.
 “오빠랑 같이 다녀도 돼?”
 “나랑?”
 “응.”
 “······.”
 “어차피 집에 돌아가 봤자 재미없단 말이야.”
 나랑 다닌다?
 저렇게 아리따운 미소녀가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하는 일이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점
 그녀가 알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거다.
 “부탁할게.”
 그러면서 나를 부탁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크아악, 그런 눈으로 보면······.
 오는 여자 막지 말고, 가는 여자 배 째라는 식으로 막으라는 명언이 있다. 그 명언에 의지해 당연히 데려가야 하지만······. 크으윽.
 ―데려가자. 주인
 그때 홀락이 내게 속삭였다.
 변태 마검은 음흉한 웃음소리와 함께 말했다.
 ―파티에 아리따운 미소녀 한 명은 필수이자 의무야. 크흐흐흐!
 “······.”
 ―솔직히 남자끼리만 다니면 칙칙하잖아?
 그렇긴 하다.
 칙칙하다 못해 음침하지, 기분 나쁠 정도로. 그것도 평범한 놈들도 아니라 한 놈은 돈벌레, 한 놈은 변태 마검이다.
 참으로 음침해.
 ―주인, 데려가자. 주인 일은 몰래 처리하면 되잖아!
 “몰래 말이지?”
 ―그럼. 몰래!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버그 처리하는 장면에서만 살짝 사라져 주면 된다. 그리고 펜들이 크레이스 존만 제대로 설치해 준다면 문제없다.
 물론 펜들이 순순히 크레이스 존을 설치해 주지 않을 것을 대비해 난 펜들에게 돈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각인시켜줄 것이다.
 
 “여기서 기다려 줄래?”
 “응!”
 나의 말에 현경이는 경쾌하게 대답해 주었다.
 참으로 귀엽구나.
 아 참, 이게 아니지. 난 이곳에 온 목적을 상기해 냈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 그것은 다름 아닌 다시 일거리를 찾기 위해서라고 할까?
 1억짜리 일을 걷어차는 바람에 일이 없어졌다.
 지금 사정상 큰일이라도 하나 물지 않으면 안 된다. 크윽!
 그렇게 난 불안한 마음을 감춘 채 꽃의 주점으로 향했다.
 란젠 형이 근무하는 곳이자 버그들의 대해 정보가 있는 곳 말이다.
 덜컥.
 꽃의 주점의 문을 조심스럽게 연 순간이었다.
 “야, 너 잘 왔다!”
 “······?”
 “시간 절묘하네.”
 “에?”
 “방금 10분 전에 버그의 기척이 발견했는데 말이다.”
 “지, 진짜요?”
 “어. 그것도 1000만 원짜리다.”
 “······!”
 1000만 원짜리란다.
 컥! 이 정도면 엄청난 일. 크아악! 너무 감동스러워서 눈물이 난다.
 “당장 할게요! 근데 무슨 일인데요?”
 “오크 중에 돌연변이가 생긴 것 같다.”
 “오크 중에요?”
 “그래. 트렌 숲에서 기운이 포착되었거든.”
 트렌 숲이라면 오크들만 사는 숲. 그러다보니, 당연히 그 안에서 발생했으면 오크 돌연변이일 확률이 거의 확신시된다.
 “할 거지?”
 란젠 형이 물었고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물론이죠.”
 “그럴 줄 알았다. 그럼 처리하고 오면 돈을 주마. 이번에는 크레이스 존을 꼭 설치하고 말이다.
 “······.”
 크윽! 그 말에 과거가 떠오른다.
 돈 밝히는 펜들 때문에 크레이스 존을 설치하지 못했다. 그래서 난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그냥 버그를 잡았는데, 150만 원이나 차감이 되었다.
 대략 30% 정도의 금액이 떨어져 나가는 것으로 보아 이번에도 크레이스 존을 설치하지 않으면 300만 원이 날아가 버릴 것이다.
 절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하던 나. 그런 내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지나갔다.
 한 가지 의문점이······.
 “형.”
 “응?”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당연히 되지. 뭔데?”
 “스테리아랑 네켄, 그것들이 무슨 짓거리를 하려는 거죠?”
 “······.”
 란젠 형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진다.
 이것으로 보아 란젠 형은 분명 무언가 알고 있다. 무언가를······.
 “형 가르쳐 줘요.”
 “하아, 솔직히 말해서······.”
 “······?”
 “가르쳐 주고는 싶지만 가르쳐 줄 정보가 없다.”
 “형!”
 “진짜다. 그냥 단순히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 것만 우리 운영진에서 잡아냈지. 그리고 설사 잡아냈다고 하더라도 게임 안에서 우리 운영진들은 힘 자체를 쓸 수 없다는 걸 네가 제일 잘 알잖아?”
 “······.”
 “참고로 우리가 알아낸 건 스테리아와 네켄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는 거다.”
 “그, 그럼?”
 “나머지 두 제국도 움직이고 있어. 폭풍의 제라와 스피드 테르핀, 이 두 놈도 움직이고 있다.”
 그놈들이 움직이고 있다?
 그 말은 란젠 형 말대로 나머지 두 제국까지도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가 확실하다.
 그놈들은 제국의 중심축에 해당되는 놈들이니까.
 “한마디로 네 개의 제국에서 무언가를 노린다는 거지. 무언가를 말이야.”
 “보석이에요.”
 “응?”
 “보석 말이에요.”
 “무슨 말이냐?!”
 “처음에 속검의 케라스에게 보석을 지니고 있는 소녀의 보디가드를 의뢰했어요. 정확히는 그 소녀가 가지고 있는 보석이었지만요. 하지만 속검의 케라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봐요. 그런 이유로 그 일이 제라스에게 들어가게 된 거죠. 그런데 형도 알다시피 제라스 성격상 누굴 호위하는 건 말도 안 되죠.”
 “그건 맞다. 그놈이 호위하는 모습을 본다면 내가 죽을 때 가 다 된 것이라는 뜻이겠지.”
 “어찌 됐든 그런 제라스가 소개시켜 준 일, 그걸 바로 제가 하게 되었거든요. 그리고 아가씨를 호위하던 중 이상한 가면맨들 백 명에게 급습을 당했어요.”
 “급습?”
 “네. 뭐, 충분히 막아 냈지만요.”
 “그건 당연한 거지. 네놈이 막아 내지 못하면 그 누가 막아 내겠냐?”
 “어찌 됐든 그 보석을 지닌 소녀를 무사히 데려다 주자, 스테리아를 만났어요.”
 “스테리아를?”
 “네, 그놈은 저에게 무슨 보석을 찾아 달라고 하더라고요. 1억을 줄 테니 말이죠.”
 “1억?!”
 1억이라는 말에 란젠 형도 놀란다.
 그만큼 엄청난 금액이다. 1억은 말이다.
 “네. 그리고 전 그 의뢰를 받아들였죠.”
 “역시 돈벌레.”
 “도, 돈벌레라니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만큼 준다고 하면 당연히 승낙한다고요!”
 “그렇다고 쳐라.”
 “······.”
 크윽.
 순식간에 돈벌레로 취급되는 나.
 왜 이리 서글프지? 흑흑.
 “자, 나머지 이야기나 해 봐.”
 “네.”
 란젠 형은 궁금하다는 듯 내게 물었고, 난 그 물음에 말을 이어 갔다.
 “그래서 그 보석을 차기하기 위해 전 스테리아가 알아낸 정보를 통해 연인들의 마을 델라케스터로 들어갔어요.”
 “어떻게?”
 “네?”
 “넌 싱글이잖아.”
 “······.”
 “그것도 싱글 중에서도 너무 서러운 싱글.”
 “가, 같이 가 줄 여동생은 있다고요!”
 “오호? 치료의 여신 레나?”
 “아뇨.”
 “엥? 레나가 아니면 누구?”
 “저번에 호위해 준 귀족 가의 영애요.”
 “아······.”
 “그 애한테 부탁해서 같이 들어갔어요.”
 “아, 그렇구나. 그래, 바람을 피우는 거구나”
 “무슨 소리에요 형?!”
 “아니야. 혼잣말.”
 “······.”
 “레나가 이 사실을 알면 슬퍼하겠다. 그치?”
 “왜요?”
 “둔한 놈”
 “······?”
 “됐다, 됐어. 레나 같은 초 미소녀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놈을······. 휴.”
 “저, 정말 이해 안 되거든요?”
 “됐어. 네놈이 이해하면 세계 종말이야.”
 ······.
 뭔가 무시하는 발언 같다.
 뭐, 내가 이해하면 세계 종말이라니?!
 그러니까 내가 눈치 없다고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거지?
 분명하다. 하아, 어이없다. 나 같은 눈치 백단을 보고 눈치가 없다니.
 아 참, 이게 아니지. 또 이야기가 샜군.
 “어찌 됐든 거기에 들어가서 보석인가를 찾으려고 하는데······.”
 “하는데, 네켄이 왔다고?”
 “네. 그것도 중립 마을에 와이번 기사단을 데리고 말이에요.”
 “중립 마을에 와이번 기사단이라······.”
 “완전 미쳤다니까요. 뭐. 다행히도 물러나 주었지만요.”
 “네놈 때문이겠지.”
 “······.”
 “만약에 그 자리에 네가 없었으면 그놈 성격상 마을을 다 쓸어버리고 보석인가 뭔가를 차지하려고 했을 것이다.”
 “······.”
 그렇긴 하다.
 네켄 자식. 성격이 보통 잔혹한 게 아니니 말이다.
 “그나저나 네놈이 스테리아 놈을 쓸어버렸다는 게 이제 이해가 가는구나.”
 “아, 뭐.”
 “넌 찜찜해서 일 안 한다고 했을 터이고, 그 말에 스테리아 놈은 너를 제거한다고 했겠지.”
 “······.”
 이 형, 그 자리에 있었나?
 뭘 저렇게 아주 섬세하게 아시는 건지 모르겠네.
 “그렇지만 스테리아의 무력으로 네놈을 이길 수는 없을 터.”
 “······.”
 “스테리아도 한동안 안 보이더니 바보가 되었구나. 네놈한테 덤비니 말이다.”
 “꼭 괴물인 것처럼 묘사하지 말아 주세요.”
 “아무리 다르게 표현하려고 해도 그렇게만 표현이 되는 걸 어떡해?”
 “······.”
 난 순수한데, 남들이 오해한다. 흑흑
 그때 란젠 형은 갑자기 표정을 굳히더니 말했다.
 “그나저나 웬만해서는 네놈은 이 일에 움직이지 마라.”
 “왜요?”
 “그걸 몰라서 그러냐? 네놈은 걸어 다니는 핵폭탄이야.”
 “······.”
 “모든 제국이나 왕국들은 너의 발걸음을 주시한다고.”
 “······.”
 “그러니까 웬만해서는 움직이지 말라고. 걸어 다니는 핵폭탄 군.”
 걸어 다니는 핵폭탄이라니, 좀 암울한 별명이다.
 사실 난 문제 일으키는 걸 그다지 좋아하는 스타일도 아닌데. 그것보다 버그나 열심히 잡아야겠다.
 그나저나 4대 제국 놈들, 무슨 이상한 짓거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만 내 밥줄인 이 게임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 같으면 다 쓸어버린다.
 내 이름을 걸고 말이다.
 
 “트렌 숲으로 가야 할 것 같아. 현경아.”
 “트렌 숲이요?”
 “응.”
 트렌 숲이라는 말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오빠랑 안 어울리는데요?”
 “뭐가?”
 “거기는 초보자들이 사냥하는 데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런 곳에 오빠가 무슨 일로······.”
 현경이의 질문에 순간적으로 난 말문이 막혀 버렸다.
 뭐라고 해야 하지? 버그 잡으러 간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내가 당황스러워 어찌할지를 몰라 할 때였다. 홀락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우리 주인의 취향이 독특하거든.
 “······?”
 ―오크 아가씨를 좋아하지. 크크크.
 “······.”
 홀락의 말에 그대로 굳어 버린 그녀, 순간적으로 나와의 거리를 벌린다.
 “혀, 현경아.”
 “오, 오빠, 저, 저기, 취미 가지고는······ 뭐, 뭐라고 할 수는 없는데 그, 그건······.”
 심하게 더듬거리면서 말하신다.
 아······
 “현경아, 속지 마. 개소리야.”
 “······.”
 “내가 좋아하는 게 아니고 이 변태 마검이 오크 아가씨를 좋아한다니까.”
 ―미친!
 그때 내 한마디에 홀락이 격렬하게 반응한다.
 너도 검 주제에 오크 아가씨를 좋아한다는 말은 되게 충격이었나 보다? 이렇게 격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내가 오크 아가씨라니! 미친, 썩을, 염병! 으악!
 지랄 발작을 하시는 마검님
 그냥 농담 삼아 한마디 한 건데 반응이 이토록 격렬하니 아주 재밌다.
 반짝반짝.
 홀락의 격한 반응에 내 눈은 빛났고, 난 현경이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홀락은 오크 아가씨들 중 구타를 잘하는 오크를 좋아해.”
 ―마, 말도 안 되는 허언비하를 퍼트리지 마!
 저기, 허언비하는 뭐니?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인데 말이다.
 유언비어는 들어 봤다. 하지만 허언비하는 처음 들어 보는데?
 “쯧, 바보. 그럴 때는 유언비어라고 쓰는 거지.”
 그때 솜털같이 생긴 펜들이 나타나면서 말했고, 그 말에 홀락은 발끈했다.
 ―바, 바보?!
 “그럼 바보지. 유언비어도 제대로 모르고 허언비하라니, 푸헤헤. 무슨 코미디 찍어? 아니, 그런 유치한 코미디는 하라고 해도 안 하지.”
 ―······.
 “지식을 좀 쌓도록!”
 펜들 자식, 역시 재수 없는 걸로는 1순위라니까.
 저 자식, 꽤 잘난 척이 심하다. 하지만 태클을 걸 수는 없다. 왜냐고? 실질적으로 똑똑하니까. 솜털같이 생긴 것에 비해 저 자식. 천재다.
 그것도 초천재.
 대충 아이큐가 170 정도 된다고 들었다. ‘켄틴’ 들 중 제일 똑똑한 놈이 저놈이라던가?
 그런데 아이큐가 높은 것에 비해 필요도는 별로. 쩝!
 “오랜만이군.”
 이 차가우면서도 미묘한 느낌의 말투.
 난 그에게 말했다.
 “제라스 씨, 오셨나요?”
 “그렇다.”
 아, 저 대화에 생겨나는 미묘한 장벽! 제라스랑 대화하다 보면 그런 걸 느낀다.
 “제, 제라스! 냉혹의 소드 제라스?!”
 그때 제라스라는 말에 기겁하는 현경이.
 제라스는 놀라는 현경이를 잠시 동안 빤히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말했다.
 “누구지?”
 “아아, 네가 소개해 준 일의 의뢰인.”
 “그런가?”
 “아, 뭐.”
 “그렇군.”
 또 느껴진다. 이 미묘한 대화의 장벽.
 역시 저 자식과의 원만한 대화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안 된다. 어, 언제쯤이면 저 자식과 원만한 대화가 될까?
 영원히 무리일 것 같다. 흐음······.
 그나저나 여기는 무슨 일로 왔을까.
 “여기는 웬일이냐?”
 “그냥 왔다.”
 “······.”
 참으로 할 짓 없나 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제라스는 알까? 그 일을 말이다.
 난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제라스에게 다가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너, 그거 아냐?”
 “무얼 말인가?”
 “제국 놈들이 움직이는 거 말이야.”
 “대충 들었다.”
 “자세한 건?”
 “모른다. 내가 알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저렇게 말하면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자기가 알 필요가 없다는데 말이다. 참으로 문단이 딱딱 끊어지는 분이다.
 그때였다.
 “왜 아까부터 나를 보고 있는 거지?”
 “네?”
 “아까부터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
 현경이에게 한마디 내던지신다.
 “나랑 대결하고 싶나?”
 “네?!”
 “나랑 대결하고 싶다면 상대해 주겠다. 데스티니 놈과 아는 존재니까.”
 “저, 절대 아니에요.”
 “그럼 왜 날 본 거지?”
 “그, 그냥 랭킹 14위이신 분을 만나서 너무 신기해서······.”
 “난 별로 신기하지 않다.”
 “······.”
 “정상적이다.”
 저기, 제라스 아저씨? 현경이는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저렇게 가냘픈 여자한테 나랑 대결하고 싶으냐고 묻다니, 네놈의 머리 구조도 정말 궁금하다.
 그때 다시 제라스는 나를 보더니 여전히 감정이라고는 볼 수 없는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데스티니, 어디 가지?”
 “나?”
 “그렇다.”
 난 그 말에 제라스에게만 들리게 나직이 속삭였다.
 “버그 잡으러.”
 “생겼군.”
 “뭐, 그것도 아주 큰 건이야.”
 “너에게도 이런 운이 오다니, 기적 같다.”
 저기요, 그렇게 말하시면 제가 비참해지잖아요?!
 저 아저씨는 잘나가다가 사람 기운 축 빠지게 하는 능력이 있다.
 그때였다.
 “나도 가겠다.”
 “응? 너도?”
 “그래.”
 “웬일이래?”
 “할 게 없다.”
 많이 심심했나 보구나.
 난 제라스가 일 따라온다는 거 처음 본다. 그만큼 저놈은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놈인데 따라 온단다.
 이건 기적이다 못해 초기적이다.
 그만큼 엄청난 일, 신기하군.
 ―쿠하하하! 나의 애인 엘리.
 그때 갑자기 내 허리춤에서 저 혼자 빠져나오더니 제라스의 검을 향해 다가가는 홀락. 그와 함께 짜증난 여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라스! 난 저 변태 마검 정말 싫다고!
 “······.”
 ―데스티니, 도대체 검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저기, 엘리 양. 나에게 그렇게 따져 봤자 저놈은 교육 자체가 불가능하거든요?
 ―오. 베이베. 좋아.
 ―좋기는 뭐가 좋아. 이 변태야!
 ―튕기는 것도 매력이지.
 ―나 정말 세상에서 네가 제일 싫거든?!
 ―보통 반대로 말하지. 크크크!
 ―아 짜증, 짜증, 짜증!
 ―짜증날 정도로 좋아해?!
 ―제라스, 좀 어떻게 해 봐!
 제라스의 검 엘리는 애타는 어조로 제라스에게 부탁했고, 그 말에 제라스는 단 한마디를 내던졌다.
 “잘해 보도록.”
 ―······.
 엘리야, 기대할 사람한테 기대해야지. 저 자식에게 뭘 바라니?
 그나저나 제라스가 온다면 이번 일은 꽤나 쉽게 마무리가 되겠는데 말이다.
 
 “파멸의 데스티니가 이 일에서 손을 뗀 것 같습니다.”
 “크크크. 그거 엄청난 희소식이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미소의 스테리아가 섣불리 파멸의 데스티니를 건드렸다고 합니다.”
 “오호? 그렇다면 전멸이었겠군.”
 “그렇습니다.”
 “바보 같은 놈. 미소의 스테리아, 제일 건들지 말아야 할 놈을 건들다니.”
 “저도 동의합니다.”
 가면을 뒤집어 쓴 남자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 이유는 단 하나, 파멸의 데스티니가 이번 일에서 손을 놓았다는 것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미소의 스테리아조차 죽음을 당했다.
 파멸의 데스티니에게 말이다.
 “이렇게 되면 그 보석은 우리 마르티나 왕국이 차지한다. 그래서 나머지 제국 놈들보다 유리하게 ‘그것’ 을 찾을 것이다.”
 “그것만 찾는다면······ 단숨에 우리는 제국을 압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질 것입니다.”
 “그렇지. ‘그것’ 만 있으면 말이야. 크크크.”
 그 말과 함께 가면의 남자들은 가면 안에서 미소를 지었다.
 
 “아아아. 역시 바글거려.”
 엄청난 인원을 자랑하는 트렌 숲.
 정말 눈 아플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
 “파티 모집해요!”
 “저렙 좀 도와주실 분!”
 “고렙님들아!”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같이 사냥해요!”
 파티를 요청하거나 쩔을 받기 위해 외치는 유저들로 가득하다. 흐음, 이 게임이 시작된 지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곳이 활성화되어 있다니 의외다.
 뭐, 그만큼 이 게임의 인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늘어난다는 거겠지만 말이다.
 “몇 시간 할 거냐?”
 “······?”
 “1시간에 1골드다.”
 이건 무슨 개소리?
 그때 갑자기 한 남자가 다가와서 나와 제라스를 한 번씩 바라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한다. 1시간에 1골드라니? 그건 뭐니?
 “몇 시간 할 거냐고?”
 “······.”
 “시발, 귀찮아 죽겠는데! 아, 진짜! 하기 싫으면 쳐 가. 할 사람 널렸으니까.”
 “······.”
 빠직!
 내 머리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자식 뭐냐? 갑자기 사람을 보자마자 반말을 까지를 않나, 무슨 1시간에 1골드를 내놓으라고 하지를 않나!
 미친 거 아냐?
 푸직.
 그 순간 무언가 지나갔다.
 하지만 난 알면서도 가만히 있었다.
 짜증이 나 있었으니까.
 “······.”
 “······.”
 “······.”
 “······.”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사냥을 하던 사람들과 파티를 구하던 사람들, 쩔을 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 모두 굳어버렸다.
 영어로 스톤! 흐음······.
 어찌 됐든 모든 사람이 굳어 버린 원인은 내게 반말을 툭툭 해 대면서 욕까지 하신 분, 거기다가 뜬금없이 돈까지 내라고 하셨던 그 분이 지금 제라스의 검 엘리의 의해서 배를 관통 당했기 때문이다.
 “무, 무슨······.”
 푸욱.
 털썩.
 그놈은 무슨 말이라도 해보려고 하짐반 제라스가 엘리를 뽑아 버리자 그대로 쓰러졌다. 전문용어로 ‘즉사’ 했다.
 잠시 후 엘리의 외침이 들려왔다.
 ―꺄아악! 또 피 묻었어! 싫어, 싫어! 나 말고 다른 검 사용해!
 “······.”
 ―자꾸 쓸데없는 데 피 묻히지 마. 더러워지잖아!
 “고려해 보겠다.”
 ―고려해 보겠다는 게 아니라 나 같은 숙녀에게 자꾸 피를 묻히다니······ 정말 야만인!
 엘리의 투정이 들려온다.
 왠지 귀여운걸.
 만약에 내가 남의 배에 칼을 꼽았으면 분명 홀락은······.
 ‘오 마이 피! 베이베 컴 온.’ 이라는 불분명한 소리를 지껄였을 텐데. 내 검은 왜 여성체가 아니고 남성체지? 그것도 변태라니, 흐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무, 무슨 짓거리를!”
 “뭐, 뭐냐?!”
 “네놈들은?!”
 “감히 랭킹 4,542위이신 세란님의 영토에서 무슨 짓거리를!”
 4,542위?
 평범한 사람에게는 분명 높은 거다.
 내가 알기로 이 게임의 동접 수만 해도 수백만이고 전체 회원만 해도 동접 수에 10배가 넘는 수준이니 그중 10,000위 권 안에 들어간다는 건 엄청나다는 거다.
 하지만 일반인과는 달리 나에게는 별로 와 닿는 랭킹은 아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말해 봤자 못 알아들어요.
 “당장 저 자식들을 죽여라!”
 “세란님의 영토에서 감히!”
 “오늘 네놈들은 살아가지 못한다.”
 “척살해라!”
 “당장 죽여라!”
 그 순간 사람들이 그 말과 함께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어디선가······. 흐음, 신기한데?
 갑자기 싸움 분위기가 되자, 근처에서 파티를 구하던 유저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우리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아이, 이렇게 주목받으면 쑥스러운데.
 농담이다. 안 하겠다.
 그나저나 아까 분명 1시간에 1골드라고 했지?
 흐음, 그게 무슨 뜻일까 심히 궁금한데 말이다. 이럴 때는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면 즉효겠지.
 터벅터벅.
 난 주변에서 조금씩 다가오는 적들에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초보자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초보자가 움찔 물러섰다.
 나, 나쁜 놈 아니다.
 그냥 물어보려고 할 뿐이다.
 “저, 저기.”
 움찔!
 급 무안하다.
 내가 말을 걸자, 움찔하면서 뒤로 물러서는 유저. 이럴 때는 뭐라고 해야 하나? 심히 난감하다.
 “절대로 불순한 의도는 없습니다.”
 “······.”
 “그냥 궁금한 게 있어서······.”
 “궁금한 거요?”
 그 말에 남성 유저가 반응하자 난 이 기회를 틈타 재빠르게 물었다.
 “방금 전에 무슨 1시간에 1골드라던데, 그게 무슨 뜻이죠?”
 “아, 그거요?”
 “네.”
 “여기 사냥터를 사용하는 비용인데요.”
 “······?”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뭐? 사냥터를 이용하는 비용?
 “저기 다시 한 번만 말해 주실 수 있나요?”
 “아, 네. 뭐 1시간마다 1골드를 줘야만 이 사냥터에서 사냥 할 수 있거든요.”
 이걸로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는 판정이 났다. 그러니까 저 남자의 말에 의하면, 이곳 오크들이 서식하는 트렌 숲에서 사냥을 하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한단다.
 하하, 어이가 없다.
 난 다시 제라스에게 돌아가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별 요상한 게 생겨 버렸네.”
 “······.”
 “사냥터에서 사냥을 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고 하다니 할말이 없다.”
 “······.”
 “다른 사냥터들도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아니.”
 “······?”
 그때 나 혼자의 말에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하는 현경이.
 아니라고?
 “몇몇 사냥터를 제외하고는 이런 일이 없어.”
 “호오?”
 “고렙 사냥터 같은 경우, 당연하지만 이런 제도는 상상조차도 할 수 없어. 하지만 일반적으로 초보자 사냥터 같은 경우는 이렇게 돈을 받고 숲을 빌려 준다고 들었어.”
 “흐음, 그렇구나.”
 한마디로 힘없는 애들만 노리는 거냐?
 참으로 추접스럽게 논다.
 “이곳, 없애 버리겠다.”
 그 순간 제라스의 말문이 열렸다.
 난 그의 말에 무심히 대답했다.
 “마음대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꺅! 싫어, 싫어! 나 사용하지 마.
 “알겠다.”
 엘리의 투정에 제라스는 엘리를 집어넣었고, 잠시 후 자신의 보조용 검을 꺼냈다.
 저 자식, 돈도 많은 놈이 저게 뭐냐?!
 솔직히 말하겠다.
 저건 검이 아니다. 철이다.
 얼마나 많이 사용했으면 녹이 슬어서 검인지 아닌지 도무지 분간이 안 갈 정도다. 웬만하면 한 번이라도 닦아주면 좋겠는데 말이다.
 제라스는 엘리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검도 닦지 않는다.
 참으로 성격 이상한 놈이야.
 “푸하하! 들었어?!”
 “우리보고 없애 버리겠단다.”
 “아, 미치겠다. 무슨 병신 새끼가.”
 “엿 같은 새끼.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시팔, 오늘 네놈 완전히 죽여주마.”
 한편 제라스의 한마디에 욕이 난무하는 놈들, 참으로 저질이다. 욕밖에 할 줄 모르는 거냐? 쯧쯧.
 그나저나 냉혹의 소드 제라스를 건드리다니, 간덩이들이 참으로 많이도 부었다.
 물론 자신들의 앞에 있는 남자가 제라스라는 걸 전혀 예상치도 못하니까 저러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저 쪽 수가 대략 백 명 정도 되니까, 이게 말 그대로 그 유명한 1대 100인가?
 “시작하지.”
 그 한마디와 함께 검인지 철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검을 치켜세운 제라스, 난 그 모습을 보고 현경이의 손을 잡고 뒤로 물러선 뒤 말했다.
 “괜히 불똥 튀어.”
 “······?”
 “저놈 전투 들어가면 살벌해지거든.”
 “······.”
 ―푸헤 주인보다는 훨씬 양호한데?!
 그때 내게 한마디 내던지는 홀락.
 난 그런 홀락의 말에 웃으면서 물었다.
 “내가 어때서?”
 ―그걸 내 입으로 말해야 돼?
 “······.”
 ―주인 전투 중에는 완전 ‘악마’ 라고······.
 “죽고 잡냐?”
 ―노, 농담이야. 하하하하.
 나의 한마디에 급격히 말을 변경하는 홀락. 저 자식이 죽고 싶어서 염병을 하는구나.
 뭐, 악마?!
 나같이 지적인 존재를 악마라니.
 물론 싸울 때 조금(?) 난폭해지는 거 인정한다.
 하지만 홀락 말대로 악마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조금 난폭(?)해질 뿐이다.
 “죽어. 개새끼야!”
 “시팔, 오늘 너 죽었어!”
 “이리와, 시팔 놈아!”
 그때 제라스를 향해 욕을 한껏 퍼부으면서 달려드는 놈들. 그리고 조용히 제라스의 말문이 열린다.
 “아이스 크리스털.”
 파직
 “······!”
 “······!”
 “뭐, 뭐야?!”
 “이, 이건?!”
 “어, 얼음?!”
 “뭐, 뭐지?!”
 적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제라스의 공격 한 번에 말이다.
 제라스가 시전한 아이스 크리스털. 그건 한마디로 땅 밑으로 다수의 얼음 기둥이 덮치는 거다. 하지만 이 공격에닌 직접적인 데미지가 없다.
 하지만 후속적인 데미지는 장난 아니다.
 그건······.
 “어, 얼어붙고 있어?!”
 “끄아악!”
 “고통스러워!”
 “내, 내 몸이!”
 “무, 무슨 짓을!”
 보는 것과 같이 건들기만 해도 몸이 완전히 얼어붙는 거다.
 그리고 그냥 얼어붙는 것도 아니다. 상당히 고통스럽다.
 저기에 한 번 당했다가 그대로 피 볼 뻔했던 나로서는 꽤나 기억에 남지.
 “모두 죽이겠다.”
 파앗.
 그 말과 함께 순간적으로 달려드는 제라스.
 그는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끄아악!”
 “크아악!”
 “마, 말도 안 돼!”
 순두부 잘리듯 적들이 죽어 나가신다.
 참으로 인정사정없는 분이야. 흐음, 역시 명칭 냉혹의 소드라는 말이 그 누구보다 잘 어울린다.
 그렇게 한 몇 분이 지났을까?
 학살이 종료됐다.
 싸움도 아니다. 이건 학살이다. 일방적인 학살 말이다.
 “······.”
 “······.”
 “······.”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초보 유저들은 제라스에게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을 짓지만, 이를 본 제라스는 익숙하다는 듯 별로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이었다.
 무심한 듯 제라스의 말이 들려왔다.
 “이곳은 무료 사냥터다. 사용해라.”
 “······.”
 “엇!”
 “무료로?!”
 “지, 진짜?!”
 “와!”
 제라스의 무료라는 말에 초보자들은 흥분했다.
 왠지 멋지잖아? 흐음.
 그렇게 왠지 모르게 제라스의 멋진 모습에 감탄을 하고 있던 나. 순간적으로 기운을 캡처했다.
 이 기운은······.
 푸직
 나는 한 곳을 찔렀다.
 그건 바로 제라스의 등 뒤, 그리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한 남자.
 “쿠, 쿨럭!”
 그 남자는 한 모금의 선혈을 내뱉었고, 난 그 자식에게 웃으면서 물었다.
 “너냐, 세란이라는 놈이?”
 “······.”
 “이거 어쌔신이었다니, 예상치도 못했는걸.”
 “쿠, 쿨럭 어, 어떻게 내 기척을······. 부, 분명 이 기술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걸릴 확률은 거의 없을텐······데.”
 “그거야 뭐, 네놈 같은 애들 한두 번 보니?”
 “······.”
 “그럼 잘 가렴. 아이스 플래머!”
 파직.
 나의 주문과 동시에 내 검에 주입되는 마법, 아이스 플래머.
 순간적으로 절대영도로 상대방을 얼려 버리는 마법이다. 그게 몸 안에서 시전되었으니 살아남을 가망성은 제로.
 파앗!
 한편 내가 검을 뽑자마자 그 놈의 몸이 부서져 버린다.
 “······.”
 “왜?”
 그때 그 모습을 본 제라스는 표정이 굳어졌고, 잠시 후 한심하다는 듯 자신을 자책했다.
 “바보 같군.”
 “······.”
 “방심하다니 말이다.”
 “방심보다는 원래 어쌔신이라는 놈들이 한 방이 있는 놈들이잖아.”
 “······.”
 “그러니까 그렇게 낙담할 필요는 없어.”
 “그런데 네놈은 어떻게 어쌔신의 기척을 그렇게 손쉽게 잡아내지?”
 “나야 뭐······ 혈화 양에게 심심하면 당해서.”
 “아직도 혈화랑 사랑의 전투 중인가?”
 “내 생각이기는 한데, 심심하면 암습하는 게 사랑인 것 같지는 않은데?”
 그게 사랑이면 거 참.
 “그나저나, 언제쯤 공격을 그만하려나.”
 “한 번 죽어 주면 된다.”
 “절대 사절. 아무리 예쁜 여자라지만 죽고 싶지는 않아.”
 “평생 사랑의 싸움을 하겠군. 그런데 혈화가 너를 공격해서 성공하면 분명 너희 둘 결혼한다고 하지 않았나?”
 “······.”
 그랬나?
 난 그 대답에 응답한 적 없는데 말이다.
 그건 엄연히 혈화 양의 혼잣말이었다. 자신이 나를 공격하는 걸 성공하면 결혼하자고······. 물론 그런 미녀가 그런 말을 해 주는 것이 싫지는 않지만, 결혼이라니!
 아직 미성년자에다 빚 때문에 암울한 인생을 사는 내게 말이다.
 그런데 요새 혈화 양, 실종되셨더라?
 목숨을 위협받지 않아서 다행이기는 하다만.
 흐음, 그나저나 이제 일도 무사히 끝났으니까 다시 변종 버그나 잡으러 출발해 볼까?
 
 ―아, 맛없어!
 “······.”
 ―이런 저질적인 피 주지 마! 주인.
 “왜 오크 피는 저질적인데?”
 ―주인은 못 느끼지만 난 느껴. 저질적인 맛!
 그 저질적인 맛이 무엇인지 심히 궁금하다. 그것보다 피 맛이 저질적일 수가 있는지 그게 더 궁금한 나다.
 지금 우리들은 트렌 숲에 들어온 상태다. 그러다 보니 우리를 반기는 건 오크님들. 바글바글하다.
 푸직.
 “꾸에엑!”
 돼지 멱따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간단하게 오크 비명 소리. 제라스가 죽인 것일 테니 안 봐도 비디오.
 “오빠.”
 그때 갑자기 현경이가 나를 불렀다.
 “왜?”
 “저기, 가르쳐 주면 안 되는 일이야?”
 “······.”
 “분명 무슨 목적이 있어서 이곳에 온 거잖아.”
 “······.”
 “그거 가르쳐 주면 안 돼?”
 현경이는 궁금하다 듯 물었지만, 난 대답해 줄 수 없다.
 이건 엄연히 국가 기밀······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버금가는 엄청난 정보이기 때문이다.
 “미안.”
 “아,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헤헷”
 그러면서 웃는 현경이.
 크윽! 귀엽다.
 마음 같아서는 가르쳐 주고 싶지만, 이게 함부로 가르쳐주면 안 되는 거다 보니······.
 파직.
 그때였다.
 갑자기 무언가의 기운이 느껴진 것은!
 하지만 난 설마했다. 이놈들이 손쉽게 기운을 내뿜을 놈들이 아니기를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파지짓
 그렇지만 다시 한 번 느껴지는 무언가의 기운에 난 설마가 아닌 것을 깨달았다.
 확실했다. 버그다!
 허얼, 이게 무슨 행운이란 말인가!
 벌써 버그 발견이라니 이건 기적이다.
 보통 버그들은 이렇게 강하게 기운을 내뿜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재수 없으면 1주일이나 잠복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별별 일이 생길 정도로 짜증나는 놈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운을 뿜어내다니?!
 이건 거의 심봤다 수준이다.
 “으악! 제라스, 뒷일을 부탁한다.”
 “······.”
 “오, 오빠?”
 “현경아, 잠시만!”
 나는 그렇게 말한 뒤 그 기운이 느껴진 곳으로 달려 들어갔다.
 아자, 아자! 이건 아주 감동적이야!
 
 “······.”
 어쩐지 너무나도 일이 잘 풀린다더니, 역시 하늘은 날 배신하지 않으신다.
 취르르륵.
 내 앞에 붉은 눈을 한 채 나를 바라보는 오크 한 마리.
 꼬락서니를 봐서는 분명 버서커 상태다.
 버서크 오크. 크윽.
 참고로 그냥 버서크 오크도 아니다. 분명 보스 몬스터인 오크 히어로가 변형된 것 같다.
 어떻게 아냐고?
 오크의 두 배에 해당되는 몸집을 가진 오크는 오크 히어로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취르륵.
 그놈은 나에게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붉은색의 눈을 밝힌 채 말이다.
 난 그 모습을 보고 외쳤다.
 “펜들, 크레이스 존!”
 “얼마?”
 “······.”
 “50%?”
 빠득.
 저 개자식을······!
 나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버서커 오크를 바라본 채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설치 안 하면 이 일 끝나고 보자.”
 “또, 또 협박이야?! 이런 저질!”
 “저질? 풋. 죽고 싶으면 계속 그렇게 놀아.”
 “······.”
 “난 30% 안 받고 네놈을 구워 먹을 테니 말이야. 아니, 삶아서 양념해 먹어도 좋고 말이야. 케케케.”
 “······.”
 “자, 선택해.”
 “······,”
 나의 말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펜들.
 잠시 후.
 “제길, 나쁜 주인!”
 이렇게 외친 펜들은 내 앞으로 나타나서 하얀색의 전기를 뿜으며 크레이스 존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크레이스 존.
 간단히 설명해서 일정 지역을 그대로 복사하는 기술이다.
 복사한 지역은 실제 지역을 완전히 복사하기 때문에 근처에 있는 모든 걸 완벽하게 재현한다.(당연한 말이지만 복사한 지역이기 때문에 여기서 무슨 생난리를 피어도 현실 세계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파지짓.
 펜들의 하얀색 전기가 한동안 뿜어져 나왔다.
 그와 함께 새로운 공간이 창조됐다.
 오케바리!
 드디어 크레이스 존 설치 완료! 이제는 내 세상이다! 우아!
 스윽.
 그 순간 오크의 몸이 사라졌다.
 그리고 내 앞을 점령하는 오크. 선공이냐? 젠장!
 “아쿠아 체인지!”
 난 그대로 홀락에게 마법을 주입한다.
 아쿠아 체인지, 순간적인 수압으로 상대방을 터트려 버리는 마법이었다.
 이게 검과 만날 경우, 이 검에 스치기만 해도 수압으로 인해 몸이 터진다. 상당히 유용한 마법중 하나다.
 휘리릭.
 홀락에게 마법이 걸리기 무섭게 무언가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려왔고, 잠시 후 내 앞으로 무언가 날아왔다. 그건 바로······.
 “이런 썩을!”
 버서커 오크가 들고 있던 몽둥이였던 것이다. 사실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다. 누가 자신이 들고 있던 무기를 냅다 던질 거라고 생각하겠는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무기를 말이다.
 난 다급히 그 던진 무기를 홀락으로 막아 내었다.
 그 순간.
 취이익!
 버서커 오크의 몸이 사라졌다.
 이 자식, 뭐 이렇게 빠른 거냐? 정말 오크 맞아?!
 난 너무나도 빠른 스피드에 당황해서 잠시지만 굳어 버렸고, 그 때문에 오크 버서커에게 내 등 뒤를 내주고 말았다.
 제길.
 이대로 가다가는 한 대 맞는다.
 꼬락서니를 봐서 맞으면 무척이나 아플 거 같은 한 대 말이다.
 이대로 맞을 순 없다.
 무슨 파훼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난 그렇게 머리를 맹렬히 돌렸고 끝내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내었다.
 “타임 리미트!”
 파지직.
 나의 주문과 함께 시간의 균형이 깨졌다.
 그와 더불어 나를 공격하려던 버서커 오크의 움직임도 멈췄다.
 사실 이 기술은 몸에 무리가 많이 가서 별로 선호하지 않는 기술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시간까지 너무나도 짧으니 더욱 선호할 수가 없다.
 난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돌리는데, 거기에는 금방이라도 나를 잡아먹을 듯 바라보고 있는 돼지 머리님이 계셨다.
 별로 환영할 만한 얼굴은 아니야.
 파직!
 그 순간 타임 리미트가 깨졌다.
 역시 시간 제어 마법은 지속 시간이 암울하다니까!
 하지만 충분하다.
 저 자식을 죽이기 위해 번 시간은······.
 “일루전 스트라이크!”
 파아앗!
 그 순간 내 검이 수백 개가 되었다. 그 수백 개의 검은 버서커 오크의 몸을 한 치의 틈도 없이 모두 꿰뚫었다. 그리고 잠시 후.
 퍽!
 그대로 터져 버렸다.
 수압에 의해서 말이다.
 “으아! 드디어 1,000만 원 벌었다!
 난 감격적이다 못해 눈물을 흘릴 뻔했다.
 이렇게 감격적이다니, 정말······.
 파앗.
 그때 순간적으로 내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있었다.
 하지만 워낙 순식간이었기에 착각으로 오해할 만한 기척이었다. 하지만 착각이 아니다. 잠시지만 나를 보고 있는 인기척을 확실하게 느꼈다.
 뭐 하는 놈이냐?
 
 “아, 하필 저놈한테 걸리다니. 쩝!”
 버그들의 왕, 버그들을 창조하는 능력을 가진 게르니아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꽤나 공들여서 만들었는데 또 파괴되었다.
 그런 게르니아의 모습을 본 그의 심복 베론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주인님, 왜 저자를 처치하지 않는 겁니까?”
 “아아, 저놈을 말이야?”
 “네. 조금 무리하시면 충분히 저놈을 제거할 수 있다고 봅니다만.”
 “안 돼.”
 “······?”
 “다른 놈은 몰라도 저놈은 건들면 골 아파져.”
 “그만큼 강한 존재입니까?”
 “강하지 미칠 정도로 말이야. 저놈만은 최대한 건드리고 싶지 않은 게 지금 내 심정이다.”
 “······.”
 “그나저나 바보 같은 인간들이 지금 알아서 놀아 주고 있으니 저 자식만 개입하지 않으면 이 게임의 파괴는 원활해질 거야.”
 “역시 인간이란 종족은 힘에 목숨을 거는군요.”
 “그러게 말이야. 크크크!”
 
 “······.”
 “앞으로 갚아야 할 금액 297억 4,200만 원.
 언제 갚지?
 으아아악!
 난 절망했다. 정말 열심히 한다. 온갖 버그들 다 잡고 먹는 아이템을 무조건 팔아 치우는 나다. 그런데, 그런데 빚은 줄어들지가 않는다.
 이건 아니다. 이건 아냐!
 ―게르니아를 잡는 수밖에 없다니까, 주인.
 그때 절망하던 나에게 한마디 하는 홀락.
 난 그놈의 말에 절망 어린 어조로 중얼거렸다.
 “내가 그걸 모르겠냐? 그놈만 잡으면 500억이라고.”
 ―그러니까 그놈 잡으면 되잖아.
 “못 찾잖아?”
 ―······.
 “완전 쥐새끼 할아버지 같은 신분이어서 모습을 정말 안 드러내는데 어떡하라고?”
 ―그건 그렇지.
 “에휴.”
 난 그저 한숨을 내쉬는데, 그때 문뜩 홀락이 내게 충격적인 말을 한다.
 ―근데 주인. 이대로라면 평생 주인 빚만 갚다 죽는 인생을 사는 거 아냐?
 “······.”
 빚만 갚다가 죽다니!
 내 인생 라인은 돈 갚다가 그대로 마감하는 것이었던 거냐?!
 그건 아니다. 정말 아니다! 으아악!
 이건 정말 아니다!
 그래, 그런 인생을 살 바에는 홀락의 말대로······.
 “잡겠어!”
 ―오?
 “내 최종 목표는 게르니아 자식이다.”
 ―주인 멋져!
 “그 자식을 잡아서 내 이 빚의 종말을 끝내리라!”
 ―주인 파이팅!
 그래, 지금 이대로 버그만 잡으러 다니다가는 언제 다 갚을지 모른다.
 물론 버그 잡는 걸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 건 할 준비는 해야 한다는 거다.
 그 한 건이 바로 버그들의 왕 게르니아, 그 자식을 잡는 거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지.
 으응?
 그때 뜬금없이 한마디 하는 홀락.
 다른 방법?
 ―내가 알기로는 세 개의 신급 아이템이 장난 아니라던데?
 헉! 그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파괴의 검 지크라이트, 영원의 지팡이 크레시스진, 소멸의활 데스파라.
 이게 한 개당 100억에 해당된다.
 한마디로 이것만 모아도 대박이란 이야기다. 와!
 근데 문제는······.
 “이것도 단서를 잡기가······.”
 애매하다는 거지.
 버그들의 왕 게르니아를 잡나 신급 아이템을 찾나 그게 그거다.
 
 
 
 
 
 6장 보석의 비밀
 
 
 
 
 “난 가겠다.”
 내게 한마디 던지고 제라스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참으로 저분과의 대화는 미묘해, 으음.
 ―엘리!
 그 모습을 본 홀락은 제라스의 검 엘리를 향해 애타는 어조로 불렀고, 그 부름에 엘리는 상쾌하다는 듯 말했다.
 ―꺅! 너무 좋아! 드디어 저 변태 마검이랑 헤어진다!
 ―뭐? 나랑 헤어져서 눈물이 나온다고?
 ―······.
 무슨 개 삽질하는 소리냐?
 언제 엘리가 그랬냐? 너랑 헤어져서 좋아하는 건데?
 ―미치겠어, 엘리도 나를 그렇게 좋아할 줄이야.
 ―······.
 ―사랑해, 아이 러브 유.
 ―내가 저 변태 마검이랑 이야기하려는 것 자체가 미쳤지, 흥!
 그 말을 끝으로 엘리는 제라스와 함께 사라졌다.
 그런 엘리를 본 홀락은 또다시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놈의 인기는 불타오르는구나.
 쟤 언제부터 저런 자뻑 증세까지 있었냐?
 변태인 것도 모자라 이제 저런 자뻑 증세까지 있다니, 심히 암울한 검이다. 흠, 그나저나 돈을 받으러 가 볼까?
 
 “통장에 1,000만 원 입금 완료했다.”
 “으아!”
 난 란젠 형의 말에 감격의 눈물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했다.
 1,000만 원이다. 이번에는 깎이지도 않고 제대로 받았어. 흑흑!
 그것도 생각 외로 아주 손쉽게 버그를 처리하고 말이다.
 저번에 일주일 정도 해서 350만 원 받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건 단 몇 시간 만에 1,000만 원이라는 금액을 벌게 된 거니까.
 흐흑! 이런 일만 있다면 난 금세 빚을 다 갚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물론 무리한 소원이겠지만.
 그때 란젠 형의 부름이 들려왔다.
 “데스티니.”
 “왜요?”
 “저번에 말이다, 제국들이 보석들 찾는 거.”
 “아, 그거 왜요?”
 “내가 개인적으로 알아봤다.”
 “······?”
 “다들 왜 그렇게 눈이 벌게져 있는지 알겠더라.”
 “무슨 말이에요, 형?”
 “파멸의 활 데스파라라고 들어 봤지?”
 당연하다.
 그건 레벨 1자리 완전 초특급 초보자들도 아는 단어. 이곳 게임에서 3대 신기 중 하나로 알려진 무기다. 그걸 모를 수는 없지.
 “형도 참, 당연한 걸 묻다니 난감해요. 그거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렇긴 하다.”
 “그런데 그게 왜요?”
 “그 보석들이 소멸의 활 데스파라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
 “······.”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방금 뭐라고? 그 보석? 그때 내가 배달해 주고 스테리아 자식이 1억 줄 테니 나머지 두 개도 찾아 달라고 하던 그 보석?!
 “그런 것 같다.”
 란젠 형의 입이 열렸다.
 그런 것 같다고?
 “그 보석 세 개가 소멸의 활 데스파라를 찾는 유일한 단서인 듯싶구나.”
 “허!”
 “그 보석 세 개가 모이면 '그곳'으로 가는 열쇠가 생긴다고 하니까.”
 난 그 말에 진지한 얼굴을 한 채 란젠 형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래서 제국들이 미친 듯이 그 보석을 찾으러 다녔군요.”
 “그렇지. 솔직히 신기는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는 무기. 그런 무기라면 충분히 4대 제국에서 미친 듯이 이러는 것도 이해가 가지.”
 그렇긴 하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
 신기를 가진 자가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된다나 뭐라나? 그런 소문이 있을 정도로 대단한 게 신기다.
 그러니까 100억 이상이나 값이 매겨지는 거겠지만.
 “그 정보, 어디서 나온 거에요?”
 “뭐?”
 “그 세 개의 보석이 모이면 데스파라가 있는 곳을 알려 주는 거요.”
 “그, 글쎄다.”
 “······.”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이런 극비 정보를 제국이나 왕국 기타 힘 있는 길드 등은 대부분 알고 있던데?”
 그건 뭐냐?
 그런 엄청난 정보가 이렇게 허술하게 새고 있다고?
 진짜이기는 한 건가?
 나는 그런 의구심이 들자, 란젠형을 향해 말했다.
 “형, 누가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아니, 확실한 정보인 것 같기는 해. 그 세 개의 보석은 프렌체스타인이라고 불리는데 우리 운영진한테서 비밀리에 들려오는 이야기 중, 그 보석이 신기로 가는 열쇠라는 말이 있기는 있어.”
 “······.”
 허! 그럼 진짜일 확률이 엄청 높다는 거잖아?!
 그 순간 내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초롱초롱하게!
 “어라? 너, 무슨 생각 해?”
 내 눈이 강력하게 빛나자 란젠 형이 의아한 듯 물었고, 난 그 물음에 음침한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좋은 생각이요.”
 “너 설마!”
 란젠 형이 경악에 찬 얼굴을 했다. 그러더니 머뭇거리면서 물었다.
 “너도 끼어들 거냐?!”
 “당연하죠.”
 “······.”
 “몇백 억이에요, 몇백 억!”
 “야, 몇 번 말을 하냐? 네놈은 걸어 다니는 핵폭탄이라고! 네놈이 움직이면 이 게임 시끄러워져.”
 “형, 그렇다고 몇백 억짜리 신기를 포기할 수 있겠어요?”
 “······.”
 “형이 제일 잘 알잖아요, 빚에 쪼들리는 거.”
 “······.”
 “300억이에요. 300억! 그 금액을 무슨 수로 갚아요! 이런 기회는 하늘이 내게 주신 기회입니다.”
 “제길! 잘못 말했다.”
 란젠 형의 후회 어린 음성이 들려왔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크하하하! 돈이다, 돈! 그것도 어마어마한 금액의 돈이 걸린 신기다. 그것만 찾는다면! 우아, 미래가 보여!
 자자, 다시 연인의 마을인가 뭔가로 떠나자!
 
 좀 난감한데?
 연인의 마을은 이미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다른 놈들이 있었다. 그놈들이란, 네켄이 있는 곳이자 3대 제국의 하나 제로미티 제국에서 온 병사들.
 델라케스터라는 마을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여기서부터 출입 금지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으면 우리 제로미티 제국의 적으로 간주한다.”
 우리 앞을 막아서는 제로미티 제국의 병사들.
 참 어이가 없다.
 언제부터 여기가 제로미티 제국의 영토였다고 그러는 거냐? 그리고 분명 너희들은 힘으로 강제로 뺏었다.
 그것도 아무런 죄도 없는 중립 마을을 다 파괴하고 말이다.
 “꺼져라.”
 한편 나와 현경이를 보고 나지막하게 말하는 병사.
 난 그 말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못 꺼지겠는데?”
 “죽고 싶냐?!”
 그 말과 함께 내 목을 향해 창을 들이댄다.
 미안하지만 죽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이곳에 목적이 있으므로 절대적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는 거.
 난 그 병사에게 말했다.
 “해보자는 거냐?”
 “지금 우리 제국을 향해 검을 들겠다는 거냐!”
 “들어 보지, 뭐.”
 “이런 미친!”
 그 말과 함께 창을 찌르는 병사.
 그리고 순식간에 뽑히는 검. 내 검은 엄청난 속도로 병사의 목을 베기 위해 달려갔다.
 챙!
 “······.”
 “······.”
 그런데 무언가가 나를 막았다.
 그 무언가는 바로 검. 그리고 그 검의 주인은 그 자식이다.
 와이번 기사단의 단장이자 랭킹 19위의 네켄.
 “데스티니, 무슨 일로 온 거지?”
 네켄은 내 검을 막은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고,
 난 그 물음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여기에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
 “왜?”
 “여기는 제로미티 제국의 영토다. 이곳에 출입할 수 없다. 무력으로 출입하려고 하면 넌 제로미티 제국의 침입자가 된다.”
 “경고는 감사한데 말이야, 너희들끼리 독식하는 건 그렇잖아?”
 “······.”
 “들었어. 그 보석들, 소멸의 활 데스파라로 가는 열쇠라고 말이야.”
 “······.”
 “그래도 너무하지 않아? 그걸 위해서 한 마을을 이렇게 점령해 버리다니 말이다.”
 “너와는 별 관계가 없을 터.”
 “뭐, 별 관계는 없지. 그나저나 난 이곳에 들어가 봐야겠는데?”
 “······.”
 나의 말에 살벌한 눈빛으로 나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네켄.
 난 그런 네켄의 반응에 더욱더 진한 미소 한 방을 날려 주었다.
 나의 살인 미소에 쓰러지는 거 아냐?
 흐음, 자중하겠다.
 한참 동안 나를 보던 네켄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우리 제로미티 제국과 싸우겠다는 소리로 들어도 되겠는가?”
 “생각 나름.”
 “······.”
 “난 웬만해서는 평화(?)를 좋아한다고.”
 나는 그 말과 함께 네켄을 바라봐 주었다. 그리고 네켄도 그런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대치하고 몇 분이 지났을까?
 네켄의 말문이 열렸다.
 “들어가라.”
 “네, 네켄님!”
 “그, 그건 안 됩니다!”
 “절대적으로 저희 제국 사람을 제외하고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안 됩니다!”
 네켄의 한마디에 주변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고, 병사들은 말도 안 된다는 아우성이었다.
 그런 모습을 본 네켄은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내 말을 거역하겠다는 건가?”
 “······.”
 “······.”
 “······.”
 “······.”
 “내가 정한 일이다. 조용히 해라.”
 “······.”
 “······.”
 “······.”
 “······.”
 그 말에 다들 굳어 버린다.
 네켄 저 자식, 은근히 멋지단 말이야.
 난 굳어 있는 네켄의 어깨를 툭툭 친 뒤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그럼 좀 실례할게.”
 “······.”
 그 말과 함께 난 당황한 모습의 현경이를 데리고 델라케스터 마을로 입성했다.
 이번으로 두 번째로 들르는 건가?
 
 “네켄님, 왜 그런 결정을······.”
 네켄의 심복 나젠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어조로 물었고, 그 물음에 네켄은 자존심 상한 얼굴로 한 채 말했다.
 “저놈이 누구인지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누구인지 가르쳐 주실 수 없습니까?”
 “가르쳐 줘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알아봤자 별로 좋은 건 없지.”
 “······.”
 “하지만 단 하나 알려 주자면, 지금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우리 제국의 병사들을 살리기 위한 방법이었다.”
 “······.”
 “만약에 내가 막았다면, 여기에 살아남은 존재는 없었을 것이다.”
 
 “유후?”
 병사들이 바글바글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일반 사람들은 없다.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오로지 제로미티 제국의 병사들뿐이었고 그들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마을 전체를 샅샅이 뒤지고 있었다.
 그 물건이 뭐인지는 대충 유추할 수 있지만.
 “저기 오빠······.”
 “응?”
 “여기에는 무슨 일로······.”
 말없이 나를 따라 들어온 현경이가 당황한 듯 물었고, 난 그다지 숨길 내용은 아닌 것 같아 말해 주기로 했다.
 “신기 아이템.”
 “네?”
 “저번에 너희 집에서 보낸 보석 말이야.”
 “아! 그게 왜?”
 “그게 신기를 찾는 열쇠.”
 “······!”
 “그걸 포함해서 세 개의 보석이 만나면 소멸의 활 데스파라가 있는 곳으로 가는 열쇠가 된다고 하더라.”
 “저, 정말?”
 “응.”
 “그, 그래서 제국들이······.”
 “뭐, 그렇지.”
 “그럼 오빠도 그걸 노리는 거야?”
 “어.”
 “아, 그래서 여기에 다시 온 거구나? 그 보석을 찾기 위해서?”
 “그런 거야.”
 그제야 수긍 가는 얼굴을 하는 현경이.
 그나저나 그것보다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아직도 계속해서 찾는 걸 봐서는 발견을 못했다는 건데.”
 “당연하지!”
 그 순간 내 앞에 솜털같이 생긴 펜들이 나타나 말했다.
 저 자식은 갑자기 나타나기도 잘해.
 펜들의 말이 이어졌다.
 “그런 중요한 걸 잘 보이는 데 놔둘 리 없잖아?”
 “그건 그렇지.”
 “내 뛰어난 추리력으로 보면 대충 지하 통로나 이런 곳이 있을 것 같은데?”
 “흐음······.”
 다른 놈이 말하면 솔직히 못 믿는다.
 특히 변태 마검 홀락, 이 자식이 저런 소리를 했다면 당장 씹어 준다. 하지만 그게 펜들이라면 달라진다.
 비록 외모만 귀엽고 행동은 전혀 귀엽지 않은 녀석이기는 하지만, 저 자식은 천재다.
 거듭 말하지만, 아이큐 170에 달하는 천재.
 한 번 본 건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정도의 기억력과 머리 회전력이 무척이나 뛰어난 천재말이다.
 그런데 머리가 크면 지능이 뛰어나고, 작으면 뇌 용량이 적어서 머리가 나쁘다는데 저놈은 아니다.
 머리는 진짜 작은데 엄청 똑똑하단 말이야.
 나중에 해부하라고 넘기면 얼마 주려나?
 “무, 무슨 눈빛이야?!”
 “으응?”
 “바, 방금 섬뜩한 눈빛으로 날 봤잖아.”
 “내가?”
 “확실해!”
 “착각이야!”
 "착각이 아니었어, 분명 그 사악한 눈빛, 나를 가지고 이상한 상상을 한 거지?!“
 쳇! 역시 눈치도 빠르다. 머리가 좋다 보니, 흐음······.
 “지, 짐승!”
 “······.”
 “변태!”
 “······.”
 “악마!”
 “······.”
 “사탄!”
 나를 향해 쉴 새 없이 퍼부어 대는 펜들,
 난 그 말을 듣고 그대로 펜들 자식을 움켜쥔 뒤 미소 지으면서 입을 벌렸다.
 “잘 먹겠습니다.”
 “으아악!”
 내가 그대로 솜털같이 생긴 펜들을 먹는 흉내를 내면서 내 입가로 가자, 기겁을 하는 펜들.
 “으아악! 머, 먹지 마!”
 “······.”
 “제, 제발.”
 장난인데 과민 반응을 보이니 꽤 재밌다. 크크크.
 헉! 나도 모르게 이런 사악한 소리를 하다니. 어느새 약간(?) 음침해졌구나.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생 걸(?) 먹겠냐?
 요새 안 그래도 식중독도 많은데 말이다.
 저런 거 먹었다가는 100프로 식중독이다.
 난 그 생각과 함께 그대로 펜들 자식을 뒤로 던졌다.
 “으아아앙.”
 내가 확 던지자 펜들 자식이 귀여운 척하면서 현경이의 품속에 안겼고, 그걸 본 난 왠지 모르게······. 부러웠다. 흠, 흠.
 “주, 주인은 악마야!”
 “오, 오빠, 너무 심했어.”
 “흑흑.”
 “펜들 괜찮아. 진정해.”
 “내가 너무 잘나서 질투하는 거야!”
 “······.”
 왠지 모르게 순식간에 나만 나쁜 놈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젠장.
 내가 속으로 이런 탄식을 내뱉는 사이, 내 눈에 기이한 광경이 들어왔다.
 검이 기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열심히 말이다.
 그 검, 굳이 누구인지는 말 안 하겠다. 세상에서 기어갈 검이라고는 한 놈밖에 없으니까.
 마검 홀락······.
 근데 저놈이 왜 기어가고 있는 거지?
 그것도 군인들이 하는 포복 자세로 말이다.
 그리고 목적지는······?
 퍼억.
 그대로 기어가는 홀락을 밟아 버렸다. 그러자 들려오는 비명 소리.
 ―컥!
 “너 어디 가냐?”
 ―어, 어디 가기는. 하하하하.
 “······.”
 ―무, 무슨 소리야, 하하하! 참 주인도.
 “내가 보기엔 지금 목적지는······.”
 ―저, 절대 현경이의 팬티를 보기 위해 치마 속으로 들어가려는 건 아니었어!
 바보 자식, 스스로 다 불다니.
 이런 바보가 또 있을까?
 지금 현경이는 치마를 입은 상태였다. 푸른색 주름치마를 말이다. 무릎까지 오는 길이기에 이렇게 변태 검이 마음만 먹고 현경이의 다리 밑으로 가면 볼 수 있었다.
 그것을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런데 그녀의 팬티를 말이다. 흐음.
 ―지, 진짜 그냥 기어가고 싶었을 뿐이야!
 왜 그냥 기어가고 싶은 건데?
 네놈이 굼벵이냐? 넌 검이잖아.
 난 말도 안 되는 설명을 하는 변태 바보 검을 보고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정말 바보다. 쩝.
 “아아아앙.”
 뭐냐, 이 개소리는?
 그때 들려오는 개소리, 아니 뭔 소리라고 해야 하나?
 펜들이 넨 소리니까 펜들 소리라고 해야 하나?
 갑자기 저 자식, 이상한 신음을 하다니 드디어 미친 거냐?
 “아아아앙.”
 “왜, 왜 그래?”
 “아아아앙.”
 “······.”
 펜들의 이상한 소리에 당황하는 현경이. 당연하다. 나도 당황스러운데 그녀라고 당황스럽지 않을까?
 그나저나 갑자기 쟤 왜 저래? 갑자기 미칠 수도 있는 건가?
 흐음, 잘 모르겠는데 말이다.
 “느낌이 왔어!”
 “······.”
 “······.”
 ―······.
 펜들의 갑작스러운 그 한마디에 모두 침묵에 싸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펜들에게 시선이 몰렸다.
 그러자 펜들은 신났다는 어조로 말했다.
 “이 마을에서 한 군데, 미묘한 기운이 펴지는 곳을 알아냈어!”
 “미묘한 기운?”
 “흥!”
 미묘한 기운? 서, 설마?!
 그게 그 멋지다 못해 감동적이기까지 한 비밀 통로라는 이야기?
 난 당장 현경이의 품속에 있는 펜들을 손으로 집은 채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디냐?”
 “내가 공짜로 가르쳐 줄 것 같아?”
 “죽고 가르쳐 줄래? 살고 가르쳐 줄래?”
 “이번에는 절대 그냥은 못 가르쳐 줘!”
 “······.”
 “배 째!”
 “······.”
 “돈 안 주면 안 가르쳐 줘!”
 허! 이 개자식을.
 배 째라고 하는 펜들.
 어이없다. 그리고 네놈은 일단 배가 없잖아. 어떻게 째니?
 그리고 째라고 하면······.
 “째지 뭐.”
 “······.”
 “홀락.”
 ―앙?
 “이리 와”
 ―오케바리"
 내 말에 땅바닥에 있던 홀락은 그대로 내 손에 빨려 들어오듯 잡혔고, 난 그대로 홀락을 들어 올렸다.
 그와 함께 당당히 나를 보고 있던 펜들.
 나는 그를 보고 웃었다.
 움찔!
 그러자 순식간에 겁먹은 모습이 되어 버린 펜들, 난 그런 펜들에게 말했다.
 “배 내밀어.”
 “······.”
 “배 째게.”
 “······.”
 “뭐, 내밀기 싫으면 내가 직접 해 주지. 크크.”
 난 그 말과 함께 그대로 펜들을 향해 홀락을 갖다 대었다.
 홀락의 날카로운 부분이 다가올수록 완전 당황하는 펜들.
 그때 펜들이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조, 좋아!”
 뭐가?
 “10만 골드만 받을게!”
 “······.”
 “더, 더 이상은 양보 못해.”
 풋, 10만 골드라.
 분명 그리 큰 금액은 아니다. 내가 버는 돈에 비하면 말이다.
 하지만 난 남에게 돈을 줄 정도로 여유로운 놈도 아니다.
 그러니 10만 골드도 못 준다. 절대 말이다.
 “그냥 배 째자.”
 “······.”
 “컴 온.”
 “아, 알겠어! 5만!”
 “후후.”
 “1만!”
 “후후후.”
 “1,000골드만!”
 “후후후후.”
 “아, 알겠어. 100골드만!”
 “후후후후후.”
 “10골드만······.”
 “특별히 주지.”
 난 그러면서 현금 십 원에 해당되는 금액을 펜들에게 쥐어 주었다.
 그러자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펜들. 나는 그를 보면서 친절히 말했다.
 “어서 안내해 주세요.”
 “······.”
 “뭐 하냐?”
 “이 완전 돈벌레!”
 네놈한테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은데 말이다.
 
 “여기냐?!”
 “응. 미묘한 무언가가 있어.”
 “그 미묘한 게 뭔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아아앙한 느낌?”
 개인적으로 펜들 네놈의 아아아앙한 느낌이 뭔지 정말 알고 싶다. 아아아앙이라니.
 그런 신종 기분,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나저나 여기라고?
 내 앞에 있는 무언가에 대해 간단하게 말하겠다. 침대들이 가득하다.
 다른 게 없다. 공터에 침대들만 있다. 도대체 이런 곳은 왜 만든 거지? 왜, 왜, 왜?!
 난 이 원인도 알 수 없는 공터 침대 제작자에 대한 의문이 마구 생기면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왜 만들었을까?
 공터, 그것도 이렇게 눈에 잘 띄는 곳에 침대를 대량으로 만들어 놓은 목적이 무엇인 거냐?!
 “······.”
 그걸 본 현경이도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저기, 펜들.”
 “······.”
 “여기에 무슨 아아아앙한 느낌이 있다는 거냐?”
 “확실하게 느꼈어!”
 “······.”
 “날 믿어!”
 “······.”
 흐음, 저놈이 돈벌레이기는 하지만 이런 쪽으로는 믿을 만한 놈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정체불명의 비밀통로가 있다는 거.
 사실 이런 시스템은 처음이어서 너무나도 당황스럽다.
 생각을 해 봐라. 공터에 널려 있는 침대들, 그리고 이곳에 비밀 통로가 있단다. 허!
 ―소녀, 나랑 뒹굴지 않겠나?
 “······.”
 ―이리 와, 베베이. 굿 타임! 모시모시?
 그때 현경이에게 다가가 집적거리는 홀락.
 홀락, 집적거리는 건 좋다. 근데 좀 제대로 집적거려라. 하지도 못하는 외국어 사용하지 말고 말이다.
 베이비가 베베이가 되지를 않나, 그 뒤에 굿 타임이 붙지를 않나. 갑자기 전화 받을 때 쓰는 일본어가 나오질 않나. 쟤 정말 이상하다.
 미친 거 아냐?
 혹시 요새 정신병원에서도 검도 진찰해 주려나? 만약에 그렇다면 정말 병원에 데려가고 싶다. 더 악화되기 전에.
 “사, 사양할게.”
 ―부끄러움이 많은 소녀군. 후후후.
 “······.”
 현경이의 거절에 그렇게 대답하는 마검.
 제발 정신 좀 차려. 내가 여자라도 절대 검하고 침대에서 뒹구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은 원치 않을 거다. 절대, 절대, 절대!
 그나저나 지금 중요한 건 이곳에서 비밀 통로를 찾아야 한다는 거다.
 다른 병사들도 이곳에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찾아야 하는데, 도대체 이곳 어디에 비밀 통로가······.
 아!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번쩍 지나는 그 무엇!
 설마?
 “침대 밑에?”
 푸하하하!
 내가 미쳤나 보다.
 침대 밑에 통로가 있다니. 이게 무슨 게임도 아니고······가 아니라 게임이잖아?
 잘 생각해 보자. 침대 밑에 비밀 통로가 있다는 건 게임에서나 나올 만한 상황이다. 그리고 이건 게임이다. 그러니 가능하다?
 뭔가 정리가 애매모호하지만 허황된 소리는 아니라는 거.
 그렇다면!
 “있는 거다!”
 
 20분 후.
 “으아!”
 난 찾았다, 비밀 통로를.
 공터에 널려 있는 침대 중 정확히 72번째 침대 밑에서 말이다. 그 밑에 계단이 있었다.
 들어가기가 상당히 난감하기 그지없는 구조이기는 하지만, 억지로 들어간다면 못 들어갈 것 도 없는 구조였다.
 “미, 믿기가······.”
 현경이는 침대 밑의 비밀 통로를 보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조금(?) 충격이었을 것이다. 침대 밑에 비밀 통로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 마음 이해해. 그나저나 이제 가 볼까? 시간을 끌어 봤자 좋을 건 없으니까.”
 난 그 말과 함께 그대로 침대 밑에 있는 계단을 통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참으로 별 경험을 다 해 보는구나.
 
 “라이트.”
 파앗.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밝게 빛나는 구.
 상당히 크다.
 침대 밑에 이런 커다란 동굴이 있을 줄은 예상도 못했다.
 흐음.
 그나저나 이곳에 보석이 있다는 건가?
 어디에?
 막막한데 말이다.
 “저기, 오빠.”
 “응?”
 “여기에 보석이 있는 걸까?”
 “아마도 말이야.”
 “확실해?”
 “일단은 펜들이 느꼈잖아? 저래 봬도 조금은 쓸모 있는 놈이거든.”
 “으응. 그렇구나.”
 그 말과 함께 미소를 짓는다.
 하아, 이제 여자와의 여행도 쫑인가? 슬픈데 말이다.
 스으윽
 그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기척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싸는 의문의 어쌔신들이 대략 수십 명 정도 되어 보인다. 복면을 쓴 어쌔신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강해 보인다.
 한마디로 랭킹 애들 정도?
 흐음, 저 정도 애들이 저렇게 몰려다니는 건 흔치 않은데 말이다.
 “오빠, 미안.”
 “······.”
 갑자기 현경이가 복면을 쓴 어쌔신들을 향해 가면서 내게 한마디 던졌다.
 “난 사실 오빠의 적이야.”
 “······.”
 “오빠를 이용해 먹기 위해서 붙어 다닌 것뿐.”
 “······.”
 “정말 미안해, 어쩔 수가 없었어.”
 그러면서 현경이는 내게 거듭 사과했다.
 난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러자 오히려 당황하는 현경이.
 “우, 웃다니?! 오, 오빠는 지금 나한테 속아 넘어간 거라고!”
 “내가?”
 “······.”
 “난 속아 넘어간 적 없는데 말이야.”
 “마, 말도 안 돼!”
 “사실 어떻게 보면 내가 너를 이용하게 된 거니 좀 미안하게 됐다.”
 “······.”
 “그나저나 그쪽 분들은 스테리아가 고용한 용병들이지?”
 “······.”
 “아아, 스테리아 자식, 한 번 당하고도 또 이런 짓을 하다니, 정말 보석에 눈이 멀었군.”
 “도, 도대체 언제부터?!”
 “네가 보석의 운반을 맡았다는 사실부터가 수상했지.”
 “······.”
 “네가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
 “무, 무슨 소리야?”
 “아무리 속임수라고 하더라도 일개 영애한테 그런 엄청나게 귀중한 보석을 배달시킨다는 게 말이야.”
 “······.”
 “물론 속검의 케라스를 고용한다 하더라도 솔직히 말이 안 되지. 그런 엄청난 보석을 운반하는 데 케라스만으로 부족하잖아?"
 “······.”
 “그나저나 너희들은 정말 철저했어. 나를 처음부터 노린 거였으니까 말이야.”
 “······!”
 “너희들은 속검의 케라스를 고용했지만 당일 날 속검의 케라스에게 무슨 일을 벌인 거겠지. 그래서 그가 일을 할 수 없게 만들었지."
 “······.”
 “한편 너희들은 케라스가 그와 친분이 있는 제라스에게 부탁할 걸 대충 예상했겠지. 하지만 제라스 성격상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는 거 너희들도 잘 알지. 그렇게 되자 그 일은 제라스와 친 분이 있는 내게로까지 넘어왔지. 약간 쑥스러운 말이기는 한데 내가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것까지 잘 알고 있었지.”
 “······.”
 “그 다음부터는 스테리아를 만나고 스테리아는 나에게 보석을 찾아 달라고 한 거지. 그리고 넌 감시자 겸 연인의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 도움을 주는 역할로 따라붙은 거야. 처음부터만난 너를 감시자라고 절대 생각할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야.”
 “······.”
 “하지만 일이 잘못됐지. 내가 낌새가 이상하다 하고 당장 일을 때려치웠으니 말이야.”
 “······.”
 “그래서 너희들은 비상사태에 돌입, 돈에 약간(?) 목숨을 건 나에게 눈이 번쩍할 소식을 준 거지. 물론 나에게 직접적으로 주지는 않았고 란젠 형을 통해서 말이야. 그리고 그걸 나는 찾으러 온 거지. 그리고 찾았다고 하는 순간, 이렇게 애들을 풀어 버린 것이 지금까지의 상황. 내 말이 틀려?"
 “어, 어떻게······ 그렇게······ 상세하게······.”
 “물론 내 머리는 그렇게 똑똑하지는 않아. 이놈 덕택 좀 많이 봤지.”
 난 그러면서 펜들을 내밀었다.
 그러자 펜들을 노려보는 현경이. 훗!
 “이놈이 이래봬도 아이큐 170이 넘는 천재걸랑.”
 “······.”
 “눈치도 더럽게 빨라서 말이야. 그리고 찜찜한 건 그냥 안 넘어가거든.”
 그 말에 현경이는 당황한 어조로 물었다.
 “그, 그럼 며칠 전 나의 정체를 알고도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해 준 건?”
 “일. 망. 타. 진.”
 “······!”
 “언젠가는 지금 같은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기다렸어. 보석을 찾고 너희들이 행동 개시를 할 때 까지 말이야. 그리고 내 예상대로 행동 개시를 해 주셨어. 아주 감사하지. 훗.”
 “우리를······ 이길 수 있다는 말이야?”
 “물론 너희들은 강해. 충분히 강해. 하지만 말이야. 내 힘을 잘못 계산했어.”
 “······.”
 “아니, 스테리아 자식이 잘못 계산한 건가? 어찌 됐든 이 정도의 힘으로 밀기는 부족할 거야.”
 “······!”
 나는 그 말과 함께 홀락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홀락의 안타까운 음성이 들려왔다.
 ―쳇! 별로 착하지 않은 여자였군. 역시 나에게는 레나와 혈화밖에 없다니까!
 “레나는 그 말을 들어도 웃어 주겠지만. 혈화는 당장 네놈을 용광로에 처넣으려고 할 걸?”
 ―······.
 “그나저나 오랜만에 강한 자들의 피다. 즐기라고.”
 ―안 그래도 그럴 예정이었어. 쿠쿠쿠.
 “고, 공격해!”
 그때 현경이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내 몸이 움직였다.
 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게 파멸이라는 이름이 붙은 진정한 이유를 가르쳐 주지.”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저번에 스테리아가 전멸될 당시에도 있었던 그녀였다. 당연히 엄청난 무력을 가진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저번과 다르다.
 하늘과 땅처럼 너무나도 확실하게 차이 나는 압도적인 힘.
 그에게서 그 힘이 느껴진다. 파멸이라는 힘이 말이다. 왜 그 존재에게 파멸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왜 그 존재를 다른 엄청난 존재들도 피하는지 이제야 이해가 갈 것 같다. 이제야······.
 하지만 너무 늦었다.
 어느새 모든 존재들이 죽었으니까.
 터벅터벅.
 자신에게 천천히 다가오는 데스티니.
 그의 모습은 마치 파멸이라는 이름을 품고 있는 카오스 같았다. 카오스 말이다.
 다가온 그는 말했다.
 “특별히 살려 줄게.”
 “······.”
 “그동안의 정도 있고 말이야. 그리고 내가 너를 이용하게 된 거였으니 그 기념으로 말이야. 웬만해서는 다 전멸시키지만, 현경이 네가 여자라는 점과 앞의 이유가 합쳐져서 너만은 특별히 예외.”
 그 말과 함께 등을 보인 채 보석을 찾으러 안으로 들어가는 데스티니.
 현경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한편 그녀는 잠시 후 허리춤에서 자그마한 단검 하나를 꺼내더니 잠시 후 엄청난 스피드로 데스티니의 등 뒤를 향해 단검을 찔러 갔다.
 하지만······.
 푸욱.
 “······.”
 “두 번의 기회는 없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마검 홀락만 뒤로 쑤셔서 그대로 현경이의 복부를 관통한 데스티니. 그리고 가차 없이 검을 뽑았다.
 털썩.
 “쿠, 쿨럭.”
 그러자 그대로 쓰러지면서 숨이 끊어져 버리는 그녀.
 데스티니는 홀락을 다시 집어넣으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여성을 존중해 주기는 하지만 나를 공격한 존재에게까지 베풀 자비는 내게 없거든. 그리고 내가 준 마지막 기회를 버린 건 너야.”
 그 말과 함께 데스티니는 동굴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가 사라진 자리에는 말 그대로 파멸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장면만이 남아 있었다. 파멸이라는 이름만······.
 
 “이건가?”
 내 앞에 펼쳐진 계단 위에 놓여 있는 붉은색의 보석.
 보는 것만으로도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참고로 현경이가 가지고 있던 보석과 흡사하다. 모양이라든가 기운이 말이다. 그걸로 보아 이게 맞을 것이다.
 소멸의 활 데스파라로 가는 열쇠가······.
 이게 그렇다면 스테리아 자식하고 붉은 도마뱀을 면담하면 되는 건가?
 
 
 
 
 
 7장 귀갑
 
 
 
 
 
 “아아, 이런! 외롭다.”
 “뭐가 말이냐?”
 “갑자기 여자가 사라지니 말이에요.”
 “배신자는 없는 게 훨씬 낫지.”
 “그렇긴 하죠.”
 난 란젠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파티에 배신자보다는 없는 게 낫지.
 란젠 형이 말했다.
 “그나저나 레나는?”
 “아아, 레나 일이 있어서 아직도 접속 못하고 있어요.”
 “무슨 일이래?”
 “글쎄요.”
 “보고 싶냐?”
 “당연히 난 남자니까요.”
 “크크크, 나도 동감!”
 여기서 내가 '남자니까요'라는 대사를 친 이유는 레나의 외모 때문이었다.
 키 166CM 정도에 아담한 체구, 검은색의 긴 머리를 길게 늘인 소녀, 그리고 얼굴은 천사다, 아임 유월 베이베 천사.
 잠시지만 홀락 때문에 내가 맛이 갔나 보다.
 어찌 됐든 천사의 미모라고 평가해도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그녀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성격도 무지 착하다. 그런 까닭에 그녀에게 '치료의 여신'이라는 명칭이 붙은 거겠지만.
 “이럴 때는 간단하지.”
 “뭐가요?”
 “레나에게 전화해서 ‘네가 보고 싶어 미쳐 버릴 것 같아. 어서 들어와, 컴 온’ 이라고 네가 그러는 거지.”
 “에에?”
 “그럼 당장 들어올걸. 무리해서라도.”
 “그럴 리가요.”
 “바보.”
 “제가 왜 바보에요?”
 “궁금하면 여자의 심리에 대해 공부하든가.”
 “제가 왜요?”
 “등신.”
 “······.”
 도대체 내가 왜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뜬금없이 여자의 심리를 공부하라니.
 내가 그런 걸 왜 공부해? 돈 벌기 바빠 죽겠는데 말이다.
 그때였다.
 ―쿠쿠쿠! 나는 레나보다 혈화가 더 보고 싶은데······ 혈화가 내 취향이잖아.
 “넌 용광로에 들어갈 뻔 한 기억을 잊어버린 거니?”
 ―아니.
 “근데 아직도 혈화 타령?”
 ―그래도 매력적이잖아.
 “······.”
 ―하아, 하아. 생각만 해도 흐, 흥분이······.
 “······.”
 ―으아아아앙.
 미친 검.
 내가 해 줄 말은 이거밖에 없다.
 자신을 용광로에 넣으려고 했던 여자를 사모하다니, 참으로······.
 과거로 돌아가 보자.
 홀락은 일단 여자만 보면 다 집적거린다. 여자이기만 하면 된다. 다른 조건 없다. 그리고 특히 미녀들에게는 완전히 미쳐 버리는 검이다.
 그런데 혈화 같은 초미소녀를 보고 그냥 넘어갈 놈이 아니다.
 그렇기에 홀락은 한 달에 한 번만 할 수 있는 본체 현신이라는 걸 시도한다.
 이때는 유일하게 홀락이 인간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되는 날이다.
 그날 홀락은 범죄를 저질렀다.
 그건 바로 기습 키스!
 하지만 실패했다.
 왜냐고? 혈화 양이 그냥 당해 주실 분이 아니니까.
 어쌔신들 중에서 랭킹 1위에 달하는 혈화.
 에스테나파라는 어쌔신 길드를 총지휘하는 게 그녀다.
 그런 그녀가 아무리 마검이라고 하지만 홀락에게 당한 레벨은 아니다. 당연히 홀락 사건은 미수로 남았고, 우연히 마검이 홀락이라는 걸 깨달은 그녀는 홀락을 그대로 용광로에 넣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수만이 없었다.
 왜냐고?
 마검 홀락은 비싼 놈이었으니까.
 아, 아니, 그것보다 우정(?)이었다.
 믿든가 안 믿든가는 본인 자유.
 어찌 됐든 난 홀락을 구출하기 위해 혈화와 싸웠다. 그런 미소녀와 싸우는 내내 참으로 가슴이 아팠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싸운 우리들.
 혈화는 분명 엄청나게 강하다.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돈이라는 악귀에 눈이 멀어 전투 머신이 된 나에게는 약간 뒤쳐지는 게 사실. 난 그날 혈화를 이겼다.
 당연히 우리 쪽, 그러니까 홀락이 잘못한 것이기에 그녀의 몸에 상처를 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때 혈화는 말했다. 얼굴을 붉게 물들은 채 '나를 책임져!' 라고······.
 난 당황했다. 책임지라니?! 그 단어는 한마디로 결혼?!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되어 버린 거다.
 그것도 저런 초미소녀에게 그런 황당한 프러포즈라니.
 사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승낙하고 싶었던 나. 하지만 할 수는 없었다. 난 빚쟁이니까.
 나의 거절에 그녀는 금방이라도 울듯이 나를 바라보았고, 그걸 본 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때 그녀는 말했다.
 ‘내가 너에게 공격을 성공하면 그때는 결혼이야!’ 라고······.
 그런데 난 혈화가 우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고, 지금 같은 이야기 라인이 된 거다.
 참으로 미묘해, 흐음.
 ―혈화
 애타게 부르는 마검······.
 그리고 그걸 보고 고개를 젓는 펜들.
 쯧쯧.
 그나저나 레나와 혈화가 보고 싶어지네, 흐음.
 
 아, 죽치고 있는 것도 힘들다.
 난 오늘 한 개의 버그라도 잡아서 식비라도 마련하려고 했건만 버그 소식이 안 들려온다. 혹이라도 란젠 형 가게에서 죽치고 있으면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란젠 형 가게에서 형이 준 오렌지 주스를 열심히 먹고 있던 나.
 그러던 중 내 눈에 한 장면이 포착되었다.
 그 장면은 누군가 란젠 형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고, 그 말에 란젠 형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거였다.
 왜 저러는 거지?
 “알았다.”
 “저는 이만.”
 그때 란젠 형이 알았다고 하자, 란젠 형에게 무언가를 말하던 남자는 서둘러 다른 곳으로 갔고, 란젠 형은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더니······.
 “큰일 났다, 데스티니.”
 “왜요?”
 “케티나 왕국에서 귀갑이라는 걸 만들어 냈다는구나.”
 “귀갑이요?”
 “그래.”
 “그게 뭔데요?”
 귀갑, 생전 처음 듣는 단어다.
 내 질문에 란젠 형은 표정을 굳힌 채 말했다.
 “귀갑, 귀신의 힘을 이용해 만들어 낸 갑옷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그 갑옷을 착용하면 일정량의 대가로 자신의 능력을 대폭 상승시켜 준다는구나.”
 “······!”
 “이거 큰일 났어. 밸런스에 엄청나게 문제가 생길 아이템을 만들어 내다니.”
 “하지만 형, 운영진에서는 아무런 제제를 할 수 없잖아요?”
 “그렇지. 이 게임이 파괴할 정도의 힘이 개발되어도 우리는 손을 쓸 수가 없지. 그게 이 게임의 방침이니까.”
 “······.”“아 참 데스티니.”
 “네?”
 “랭킹 유저들 중 귀갑을 구입하는 애들도 있으니 조심해라.”
 ······저 형이 저런 말을 하는 이유.
 랭킹 유저들 중에는 나랑 원수 진 애들이 조금(?) 있는 편이고, 그들이 힘이라는 걸 얻게 된다면 분명 나를 노릴 확률이 높았으니까.
 “뭐, 너무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거야. 귀갑을 살 수 있는 랭킹 유저는 아주 소수일 테니까.”
 “······?”
 “일단 귀갑 자체가 만들기 어렵다보니, 공급이 힘들고 그래서 귀갑의 가격이 한 개당 3억이거든.”
 “······.”
 3억?!
 아이템 하나에 3억?!
 컥! 숨이 넘어갈 것 같다. 3억이라니······.
 “그나저나, 그 귀갑. 작동 원리가 영······.”
 그때 인상을 찌푸리며 란젠형을 한 마디 했고, 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작동 원리가 어떻기에 그런 표정을 짓는 거에요?”
 “일정량의 대가를 지급해야 하는데, 그 대가라는 게 여자의 피라고 한다. 그것도 15살 미만의 소녀의 피.”
 정말 더러운 갑옷이네.
 그냥 여자 피도 아니고, 15살 미만에 여자 아이 피라니.
 기가 막힌다.
 “어찌 됐든 조심해라.”
 “충고 감사합니다.”
 “뭐, 걸어 다니는 핵폭탄에게 이런 충고를 하는 내가 조금 이상하지만.”
 “형, 그런 이상한 별명으로 좀 부르지 마요.”
 “사실인데, 뭐.”
 “······.”
 
 “흐음······.”
 한편 란젠은 끝내 일을 얻지 못하고 절망적인 모습으로 사라지는 데스티니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걸어 다니는 핵폭탄하고 귀갑이라······ 꽤나 흥미로울지도?”
 
 
 
 
 
 8장 암살 쥐를 잡자?
 
 
 
 
 
 “우어억!”
 난 굉음을 지르면서 달려 나갔다.
 어느 한 곳을 향해서 말이다.
 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우연치 않게 본 한 전단지 때문이다.
 
 저희 집에 있는 쥐를 처치할 시 1,000만 골드를 드립니다.
 
 쥐 잡는 데 1,000만 골드란다.
 한마디로 현금 1,000만 원에 해당되는 돈.
 이런 엄청난 기회를 놓칠 내가 아니다. 절대적으로 이 일은 내가 맡아야 한다. 그래서 쥐를 상큼하게 잡아 준 뒤 1,000만 원을 버는 거다.
 크하하하!
 
 “흐음.”
 생각 외로 적막하다.
 분명 이 일을 맡기 위해서 엄청난 라이벌들이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적막하다. 그것도 많이.
 나밖에 안 보인다.
 이상하다. 이상해.
 분명 쥐 한 마리만 잡으면 1,000만 골드를 주는, 말도 안 될 정도로 쉬운 일거리다. 그런데 사람이 없다.
 이게 뜻하는 바는 뭘까?
 그와 함께 나를 엄습하는 불길함.
 좋지 않아.
 “쥐 잡으러 오신 분인가요?”
 그때 머뭇거리는 나를 발견했는지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여자가 다가왔다. 시녀 복을 입은 걸로 봐서는 이 대저택의 시녀이겠지.
 당연한 건가?
 아무튼 나는 그녀에게 궁금하던 것을 물어봤다.
 “그, 그렇긴 한데요, 좀 이상하게 삭막하네요?”
 “당했으니까요.”
 “······?!
 “지금 이런 말씀을 드리긴 뭐하지만, 웬만해서는 이 일을 맡지 마세요.”
 “무슨 말인가요?”
 나의 질문에 얼른 주변을 살펴보는 그녀.
 누군가를 의식해서 하는 행동인 게 분명하다.
 그녀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모두 죽었어요.”
 “엥?”
 “쥐를 잡으러 온 사람들은 모두 다 죽었어요.”
 “쥐 잡으러 왔다가?”
 “네.”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쥐를 잡으러 왔다가 다 죽었다니······
 물론 걸린 돈을 봐서 분명 평범한 쥐는 아닐 거다. 하지만 평범한 쥐가 아니라 하더라도 쥐는 쥐일 뿐이다.
 아무리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이상해진다고 해도 그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저기요.”
 “······?”
 “몇 명이나 여기에 왔는데요?”
 나의 질문에 그녀는 침을 한 번 삼키더니 말했다.
 “지금까지 오신 분들만 해도 1,000명이 넘어요.”
 “······!”
 헉! 뭐, 뭐라고?!
 쥐 잡으러 온 사람이 1,000명이 넘는다고?! 그럼 그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쥐 한 마리한테 죽었다는 거냐?!
 뭐, 뭐냐?!
 “그래서 여기 집주인이신 페르카니아 공작님께서는 실상 이 집을 버린 상태에요 그 '쥐' 때문에요. 그래서 이 집 근처에는 아무도 없고 그저 저 근처에 머물면서 이렇게 의뢰를 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저기, 잠시요.”
 “······?”
 “집을 버렸다고요?”
 “네.”
 보는 것만으로도 ‘헉!’ 하는 크기를 가진 이 저택을 버렸다고?
 팔기만 해도 장난 아니겠다. 거짓말 안 하고.
 대략 정원 같은 걸 다 포함하면 최소 못해도 500평 이상.
 한마디로 초특급 울트라 크기를 가진 집이라는 거다.
 그런 집을 버리다니! 차라리 나한테 주지, 쩝! 이게 아니라······
 “도대체 어떤 쥐인 거예요?”
 “암살 쥐요.”
 암살 쥐?
 그건 뭐 하는 쥐일까?
 “저, 저기. 방금 암살 쥐라고 했어요?”
 “네.”
 “······.”
 “그 쥐는 검은색의 단검 하나로 정확하게 사람의 동맥을 긋는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 때문에 단 일격에 죽어 버리는 거에요.”
 사실 암살하기에는 최적일 것 같다.
 쥐라는 놈 자체가 몸이 작다 보니 말이다.
 그리고 작은 만큼 민첩할 것은 당연한 거고.
 하지만 말이다, 쥐가 단검 들고 사람 동맥을 끊어서 암살한 다는 건 그 어느 곳을 뒤져 봐도 사상 유래에 없는 일이다.
 분명히 말이다.
 “그러니 죽기 싫으면 안 가시는 게······,”
 “아뇨.”
 “······.?”
 “갑니다.”
 “위, 위험하세요.”
 “괜찮아요. 1,000만 원을 위해서라면!”
 “······.”
 “그리고 뭐 하는 쥐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입니다.”
 난 그 말과 함께 당당하게 그 커다란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뭐 하는 쥐인지는 모르겠다만, 네놈의 몸에 1,000만 원이 걸린 이상 넌 인생, 아니 쥐생(?) 끝났어!
 
 터벅터벅.
 너무나도 커다란 저택 안에서 오로지 혼자 걷는 것은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그리고 주변을 휩싸는 이상한 적막감, 새로운데?
 ―별별 일을 다 하는구만.
 “관심 끄셔.”
 ―주인은 돈 귀신이야.
 “다 세상 살기가 힘들어지면 이런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주인 레벨에 쥐랑 놀아?
 “······.”
 ―아이고! 랭킹 1위가 쥐 잡으러 돌아다니는 걸 알면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시끄러!”
 ―쿠케케케.
 나도 이런 일까지는 하고 싶지 않다.
 쥐까지 잡으러 다녀야 하다니, 참으로 마음이 미묘하고 복잡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액수를 봐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
 그때였다.
 “헉!”
 순간적으로 내 목을 향해 느껴지는 살기.
 난 거의 반사적으로 홀락을 들어서 내 목을 막았다.
 그 순간.
 채앵.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순식간에 뒤로 물러 난 내게 한 마리의 쥐가 보였다.
 일반 쥐의 크기만 했다.
 그 쥐는 검은색의 미니 단검을 든 채 나를 살벌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였다.
 진짜 있었던 거야!
 미치겠군.
 “인간, 죽어라!”
 쥐가 말도 하신다.
 허! 이런 비과학적인 상황은 너무 괴롭다. 쥐가 단검을 들고 날 암살하려고 하지를 않나, 쥐가 말을 하지를 않나, 이건 너무 비과학적이잖아!
 그런 내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사라진 암살 쥐.
 엇?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이 정도라면 돈을 노리고 이곳에 쥐를 잡기 위해 들어온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왜 무기력하게 죽어 나갔는지 알 것 같다.
 그리고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방금 전 본 검은색의 미니 단검에는 엄청나게 치명적인 독으로 추정되는 것이 발라져 있었다.
 그게 중요한 동맥 부분에 조금이라도 침투하는 순간, 그대로 즉사다.
 저 자식, 은근히 강하네.
 그 순간 다시 내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는 쥐.
 이번에는 정면 승부냐?
 근데 난 솔직히 웃음이 나온다.
 객관적으로 봐서 강하다.
 저놈은 쥐인데도 불구하고 웬만한 사람들 다 잡을 정도로 강하다.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는 별로다.
 저 놈보다 센 상대를 매일까지는 아니라도,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은 싸우는 게 나니까.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슬며시 웃었고, 그런 나의 웃음이 걸렸는지 암살 쥐는 갑자기 공중에서 멈추더니 그대로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하지만 그건 네 실수야.
 그것보다 원래 목숨이 붙어 있는 게 더 비싸니 포획해서 데려가면 더 주겠지. 흐흐흐.
 콰앙.
 난 그런 생각과 함께 그대로 바닥을 발로 강하게 굴렀다.
 그러자 붕 하고 뜨는 쥐.
 전에도 사용했지만, 중력 조절 마법을 개조한 내 전용 기술이다.
 “무, 무슨 짓을!”
 한편 쥐는 자기 몸이 하늘로 붕 뜨자 당황한 듯한 음성으로 말했고, 난 그런 쥐에게 최대한 상냥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가자, 돈아!”
 
 “흐흐흐.”
 난 밧줄로 묶은 그 이상한 쥐를 운반 중에 있다.
 크크! 이것만 갖다 주면 1,000만 원에다가 분명 보너스 금액도 나올 거다. 살아 있는 것을 잡아왔으니까.
 후후후.
 그렇게 음침한 미소를 지을 때였다.
 “나는 아무것도 발설하지 않는다!”
 그 순간 그 암살 쥐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더니 그대로 자결했다.
 입 안에 무언가를 물고 있었나 보다.
 보라색의 무언가가 터지면서 그대로 죽어 버렸으니까.
 이런 어이없는!
 쥐가 자살도 해? 아니, 그것보다.......
 “내 돈!”
 난 절규했다.
 
 난 1,000만 원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생포해 갔으면 확실히 더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쥐 주제에 아무것도 발설하지 않는다고 하더니 그대로 자결해 버리는 바람에 보너스도 날아가 버렸다.
 너도 인간들이 하는 걸 많이 봤구나. 절실히 느껴진다.
 그리고 그것보다······.
 “또 저런 미친 쥐가 있다는 거냐?!”
 ‘아무것도 발설하지 않는다’ 는 이 의미를 달리 풀이하면 그런 의미에도 근접한다.
 아아아, 몰라. 돈 받았으면 됐지, 저런 미친 쥐가 있든지 말든지 내 알 바가 아니다.
 
 
 
 
 
 9장 치료의 여신 레나.
 
 
 
 
 
 ―오, 마이 걸.
 “······.”
 ―아가씨, 나랑 커피 한 잔?
 “꺅! 거, 검이 말한다!”
 ―사랑해.
 “꺄악!”
 ―거기 서!
 “제, 제발 죽이지만 말아 주세요!”
 ―거기 서라니까! 하하하!
 나 같아도 안 서겠다.
 지금 상황에서 말이다.
 날카로운 검이 자신을 찌를 듯 쫓아온다. 과연 저기서 용감하게 멈출 여자는 어디 있을까? 그뿐 아니라 검이 말도 해.
 이러면 벌써 게임 오버.
 보통 여성으로는 상상을 할 수 없는 공포다.
 “쟤는 왜 저럴까?”
 그런 모습을 본 펜들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고, 난 그 말에 펜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나의 아늑한(?) 눈빛에 당황하는 펜들.
 “왜, 왜 그래?!”
 “아니, 네가 그 말을 할 군번인가 해서 말이다.”
 “당연하잖아? 난 아이큐 170을 넘는 초천재거든.”
 “······.”
 쩝, 이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진짜 저 자식이 초천재이기는 하다. 만약 저놈이 아니었더라면 현경이에게 아주 거하게 한 방 맞았을 테니 말이다.
 그건 인정해 주지.
 “그나저나 주인, 일 안 해?”
 “쉬고 싶다.”
 “그럼 쉬어.”
 “그럼 빚은?”
 “안 갚으면 되지.”
 “네놈 일 아니라고 막말하지 마라. 슬프다.”
 안 그래도 슬퍼 죽겠는데, 자기 일 아니라고 막말한다. 저 자식도 빚이 300억 정도 있어 봐야 나의 이 아픔을 알 텐데, 흐음.
 그렇게 한숨을 푹푹 쉬던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냐면 인기척이 느껴졌으니까.
 난 허공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야?”
 스르륵.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앞에 나타나는 어쌔신.
 원래 적이었다면 당장 전투 태세였지만, 이분은 적이 아니다. 엄연히 혈화의 부하 중 한 명이었으니까.
 “마스터가 이걸 전해 드리라고 합니다.”
 “혈화가?”
 “네.”
 그러면서 편지 한 장을 건넨다.
 갑자기 편지라니? 흐음······.
 난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당장 그 편지를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보이는 너무나도 예쁜 글씨. 글씨도 참 잘 쓴단 말이야.
 
 무멸의 진이 움직인다고 해.
 
 진? 한동안 얘가 잠수 타더니 어디 있다가 나타난 걸까? 그리고 얘가 나오면 귀찮은데. 나중에 분명 나 찾아와서 ‘결투다!’ 이럴 게 뻔하잖아?
 그리고 제일 상대하기 싫은 놈도 이놈이다.
 나와는 레벨도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투 실력도 장난 아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도 엄청나지.
 무멸의 진.
 전투의 투신이다. 정말 싸움 실력을 보면 헉 한다, 헉 해.
 아, 골 아파.
 비록 내게 해를 주는 놈이 아니기는 한데 워낙 싸우는 걸 좋아하다 보니 자꾸 나한테 대전을 신청한다.
 그러면 난 다른 애를 알아보라고 하는데, ‘다른 놈들은 약하다. 내가 꺾지 못한 존재는 너 하나다’라고 하면서 달려든다.
 랭킹 2위나 되시는 분이 좀 자중하시지 만날 저래, 흐흑.
 그 순간 괜히 머리가 아파짐에 따라 나도 모르게 이마를 붙잡았고, 그 순간 내 눈에 띄는 글씨.
 
 레나를 제외한 다른 여자를 데리고 다니거나 바람을 피우면 그 여자 죽여 버릴 거야.
 
 이걸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러면 내 주변에 오는 여자들은 전부 다 목숨의 위협을 느껴야 한다는 거냐?! 참으로 무섭군.
 그리고 추가적으로 내 주변에 올 여자는 없어.
 “현경이는?”
 “······!”
 그때 펜들의 한마디.
 맞다, 현경이. 잠시지만 난 아무것도 모른 채 그녀와 여행을 했다. 그런 사실이 만약에 혈화에게 들어간다면?
 피 본다.
 “너랑 홀락만 입 다물면 돼.”
 “······.”
 “그리고 너도 입 다물고.”
 “······.”
 난 내 앞에서 편지를 전해 주고 쭈뼛쭈뼛 서 있는 어쌔신을 향해 그렇게 한마디 던져 주었다. 이 말속에는 엄청나게 다양하고 미묘하고 심오한 내용이 담겨 있다.
 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알 거다. 이 의미를 말이다.
 “안 다물 거야?”
 “며, 명심하겠습니다.”
 내 말에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어쌔신.
 그래야지.
 만약에 네가 이 이야기를 혈화에게 한다면 진짜 완전 피 볼 거야. 크크크.
 그나저나 오늘은 무슨 일로 돈을 벌어 볼까?
 
 “으아악!”
 “······.”
 “······.”
 “······.”
 “······.”
 “······.”
 나를 열심히 바라보는 광부(?)들.
 왜냐고?
 미친 듯이 곡괭이질을 하는 내 모습을 보고 감동해서겠지.
 ―정말 어마어마하구만.
 “본전의 100배다!”
 ―······.
 나는 그 말과 함께 곡괭이질을 하는 손에 더욱 힘을 실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거기다. 광산.
 내가 왜 이곳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난 간단하게 말하겠다. 돈을 벌기 위해서다. 대박을 위해서······.
 이곳 트레티나 광산에는 많은 광석이 나온다.
 구리나 철, 금, 은, 동 등 모든 광석이 나온다. 그리고 그 광석들은 꽤나 돈이 된다. 물론 금이나 은 같은 경우지만.
 그리고 여기서 하나만 터지면 정말 대박이다.
 그 대박은 바로 미스릴!
 이곳에 딱 세 번 미스릴이 나왔다고 한다.
 하루에 수천 명이 찾는 광산치고는 터무니없는 숫자이기는 하지만 난 믿고 있다, 나올 거라고······.
 그 미스릴만 나오면 대략 1,000만 원.
 경악할 만하다.
 한 탕에 1,000만 원이라니, 이런 엄청난 일이!
 그래서 지금 입장료(?) 10만 원을 내고 이곳에 들어와서 삽질하는 거다.
 “으아악!”
 나는 더욱 힘을 끌어올렸다.
 1시간 반 남았다. 10만 원당 2시간으로 계산해 보면 말이다. 남은 1시간 반 동안 나는 해낼 것이다.
 미스릴을 위해.
 꿈과 사랑을 위해!
 
 “하아······.”
 펜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돈 귀신.
 정말 완벽한 돈 귀신이다.
 돈만 된다면 무슨 일이든 한다. 그게 저 주인의 모티브다.
 그의 눈빛에선 광기조차 보인다.
 “하하하하!”
 신나게 웃어 대면서 곡괭이질을 하는 자신의 주인 데스티니. 솔직히 말해 인간의 삽질이 아니다.
 대략 다른 유저들의 수십 배 이상의 속도를 내는 곡괭이질. 그리고 그걸 보고 모두 굳어 버린 유저들······.
 정말 말 그대로 대략 난감한 상황이다.
 
 “헉, 헉, 헉.”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약 2시간 동안 1분도 쉬지 않고 곡괭이질을 했다. 그런데, 그런데······.
 “미스릴이 안 보여.”
 거짓말 안 하고 광석을 한 수백 개는 캔 것 같다. 단 두 시간 만에 말이다. 하지만 그 안에 미스릴은 없었다.
 행운의 여신은 나를 비웃었다.
 이런 빌어먹을! 으악!
 털썩.
 나는 몸도 지치고 정신도 지쳐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거의 곡괭이질의 신이 들렸을 정도로 온몸이 불타올라서 보석을 캤다. 그런데 이건 뭐란 말인가?!
 내 뒤에 펼쳐진 암울한 광석들.
 구리나 철, 동, 그리고 가끔씩 은이나 금이 보이는 게 전부였다.
 저걸로 오늘 낸 입장료나 채우려나 모르겠다.
 “대단하군, 자네.”
 “······?”
 그때 한 남자가 내게 슬며시 다가오다니 한마디 던졌다.
 나이는 대충 50대 중반의 할아버지였다.
 그는 내가 캐낸 광석을 한번 훑어보더니 말했다.
 “이거 다 100만 골드에 쳐줄 테니 팔지 않겠는가?”
 100만 골드?! 그렇다면 현금으로 100만 원?!
 헉! 내가 파낸 광석들이 그만큼의 액수라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 앞에 있는 할아버지가 거짓말을 할 분은 절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진짜다!
 “팔겠나?”
 “무, 물론이에요!”
 “잘 선택했네!”
 내 말에 미소 짓는 그 할아버지.
 우아! 웬 장땡이냐, 2시간 일하고 100만 원이라니. 이런 아름답다 못해 샴티풀(?)한 상황이라니, 눈물이 나올 것 같다.
 그나저나 여기서 ‘샴티풀’이 뭔지 궁금할 거다.
 그건 바로 뷰티풀의 형님 샴티풀이다.
 누가 만들어 냈는지는 모른다. 정체불명의 단어니까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어쨌든 생각지도 못한 100만 원의 수입이다.
 이건 아름다워!
 
 2시간에 100만 원, 엄청 매력적이다 못해 폭발할 것 같은 일자리다.
 그건 바로 광물 캐기.
 2시간 동안 죽도록 파면 굳이 미스릴이 나오지 않아도 잡광석으로만 100만 원을 넘게 번다.
 하지만 문제는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인간이······.
 나는 여관 침대에 누운 채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나 죽네!”
 ―바보다.
 “주인 바보.”
 크윽, 이것들을!
 날 바보라고 하는 홀락과 펜들.
 난 당장이라도 일어나서 저것들을 향해 ‘날아라, 하이 킥!’을 시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 소원은 이룰 수 없을 것 같다.
 왜냐고 묻는다면.
 “으윽.”
 온몸이 아팠으니까.
 일어나지를 못하겠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무리했다. 인간이 위기 상황 속에서는 최고의 힘을 발휘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에 힘입어 이 게임에서도 현실과 같이 가끔씩 위기 상황에서 정체불명의 힘이 솟아오르기도 한단다.
 나도 그런 케이스로 위기······ 상황은 아니지만, 돈에 대한 집념 하나로 내가 가진 힘의 수십 배에 달하는 에너지를 발산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한 번에 다 터지자, 지금 이 모양 이 꼴이고 말이다.
 ―힐러에게 치료라도 받지 그래?
 “그게 말이 되냐!”
 ―······.
 홀락의 ‘힐러’라는 말에 기겁하는 나.
 내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냐 하면 그들의 어마어마한 몸값 때문이다. 거짓말 안 하고 치료 한 번 해 주고 현금 5만 원에 달하는 5만 골드를 뜯어 가는데 그게 말이 되냐?!
 물론 한 번 치료받으면 약 5시간 동안 약간의 능력치 상승의 효과가 있다.
 그걸 감안하면 괜찮은 가격일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아니다.
 절대 힐러에게 돈을 주고 힐을 받은 적이 없다. 이때까지 단 한 번도.
 아무리 심한 상처를 입었다 해도 레나만 있다면 단 몇 초 만에 치료가 된다. 그런데 힐러에게 돈을 지급하고 힐을 받으라니, 말도 안 된다!
 펜들이 말했다.
 “그러다가 한 며칠 누워 있으면 일도 못할 텐데?”
 그건 맞는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힐러에게 돈 내고 치료를 받으라니. 이런 미친!
 ―정말 무식해.
 “너의 돈에 대한 사랑에 진정으로 감동.”
 “······.”
 그 말과 함께 홀락과 펜들은 그대로 창문을 통해서 나가 버렸고, 난 그 모습을 보고 괘씸해서 미칠 뻔했다.
 나만 버리고 가 버리다니, 저런 썩을 검과 정체불명의 미생물을 봤나!
 흑흑, 이래서 키워 봤자 소용없는 거라고.
 난 저들의 행동에 괘씸해서 이를 갈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저들은 이미 떠났으니까, 흑.
 이럴 때 레나라도 있었으면······.
 레나야!
 
 “아!”
 레나는 오랜만에 느끼는 게임 안의 공기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근 한 달 만일 것이다.
 이 게임에 접속한 것이 말이다.
 부모님의 사정상 접속을 하지 못한 그녀. 마음 같아서는 당장 접속해서 그 ‘오빠’를 보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드디어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데스티니를 말이다.
 그렇게 그녀는 기대감에 부푼 채 데스티니가 있는 곳을 향해 가기로 결정했다.
 이 게임에서는 귓속말이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현실성을 살리기 위해서 메시지 전달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안 된다면 많이 불편한 것. 그래서 만들어 낸 게 자신이 등록한 베스트 친구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제도인 거다.
 그렇게 레나는 위치 추적 시스템을 통해 데스티니의 행방을 조회했고, 잠시 후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데스티니는 바로 자신이 있는 마을 데라코스의 한 여관에 있는 것이었다.
 
 “나, 나 죽네, 크아악!”
 병세가 호전되기는커녕 더 나빠지고 있다.
 이게 바로 고통의 미학?
 이런 미친! 크아아악! 아, 아프다.
 그나저나 이런 상황이 되니 문득 궁금증이 생긴다. 아픔 속에서 마구 좋아하는 미친 변태들, SM의 선구자들은 어떻게 이런 고통을 행복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이해하는 순간 난 미친 거다.
 그러니 이해 안 하련다.
 그나저나 지금은 그것보다······.
 “으악!”
 아, 정말 아프다.
 이렇게 아프기는 생전 처음이다. 이건 아니야! 전투를 하다가 다친 것도 아니고 과도한 곡괭이질로 이렇게 완전히 누워 버리다니.
 남들이 들으면 욕한다.
 그만큼 지금 내 상황은 어이가 없다 못해 개뼈다귀 디스코 추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그런 상황이다.
 “레, 레나······.”
 그 말과 함께 난 의식을 잃었다.
 설마 과도한 곡괭이질로 사망은 아니겠지?
 
 “오빠!”
 레나는 침대에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보이는 데스티니의 모습에 경악했다. 너무나도 심각한 상태였다.
 이대로 놔두면 몇 분 안에 숨이 끊어질 정도로 말이다.
 도대체 그렇게 강한 데스티니가 저런 모습이 가능한지도 의문이었지만, 그것보다는 일단 그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오빠, 조금만 기다리세요!”
 레나는 그 말과 함께 그대로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나직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의 병을 제거하는 생결의 힘, 그대의 힘으로 내 앞에 있는 존재에게 힘을 부여하리라. 센트라이트 라이프!”
 모든 질병이나 아픔, 고통 등이 치료되는 엄청난 마법.
 그렇지만 이걸 한 번 사용하고 나면 한동안 쉬어야 된다는 페널티가 있는 엄청난 마법이다.
 하지만 레나는 상관없었다.
 그녀는 데스티니가 무사하기만 하면 되니까.
 
 “으윽.”
 난 서서히 눈을 떴다.
 나, 살아 있는 거냐?
 그리고 이 몸을 감싸 안는 엄청난 힘. 당장이라도 날아다녀서 건물이라도 파괴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다.
 그뿐 아니라 내 몸 전체 어느 곳에서도 아픔이란 단어는 없다.
 말 그대로 완벽 치유?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러지?”
 분명 기절하기 전에는 너무 아파서 뒈질 뻔했는데 깨어나니까 완전 날아다닐 것 같다니, 이 무슨 신기한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난 거지?
 그 순간 내 눈에 한 명의 소녀가 보였다.
 하늘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 키는 대략 165cm 정도, 긴 생머리에 분홍색의 리본을 질끈 맨 소녀.
 몸매 작살, 그리고 얼굴은 미쳤다.
 말 그대로 미친 얼굴이다.
 여기서 내가 말한 의미는 이상한 의미가 아니다. 한마디로 요약해서, 남자들이 보면 미쳐 버릴 정도로 예쁜 얼굴이라는 소리다.
 연예인 따위는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할 정도의 외모라니.
 그리고 저 가냘픈 몸과 그녀의 몸을 덮고 있는 푸른색의 원피스······.
 그런 존재는 한 명밖에 없다.
 “레나?!”
 “오빠······.”
 “왜, 왜 그래?!”
 난 너무나도 지쳐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레나에게 다급히 다가갔고, 그런 내 모습에 레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아무것도 아니라니, 이 정도면 엄청난 거잖아!”
 “······.”
 “도대체 왜? 아!”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무언가가 연결되었다.
 갑자기 깨어나자마자 말도 안 되게 상쾌해진 내 몸, 그리고 그런 내 앞에 있는 레나. 이 두 가지를 조합하면?
 “너, 센트라이트 라이프 사용한 거야?”
 “죄, 죄송해요.”
 “······.”
 참으로 당황스럽다.
 죄송하다니, 내 목숨을 살려 주고 그런 말을 하면 그걸 듣는 나의 입장으로서는 급 무안일 수밖에 없다. 아, 정말 인간이 이렇게 착해도 되는 거냐?
 왜 하늘은 레나에게 천사 같은 외모와 천사 같은 마음을 주셨나이까.
 “오빠가······ 너무 위독해 보이셔서.”
 그때 내게 그렇게 한마디 하는 레나.
 내 목숨이 위독해 보였다고?
 난 설마 하는 어조로 다시 물었다.
 “나, 죽어 가고 있었니?”
 “네. 도대체 무슨 일인 거예요?”
 “······.”
 “고, 곤란한 질문을 했다면 죄송해요.”
 “아니, 곤란한 것까지는 아니고······.”
 내가 머뭇거리자 곤란한 질문을 한 줄 알고 사과하는 레나.
 뭐, 곤란한 질문은 아니지. 너무 곤란하지 않아서 문제지만.
 레나는 내 말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눈치였고, 난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면서 말했다.
 “곡괭이질.”
 “네?”
 “너무 성실히 보석을 캐다 보니······.”
 “······.”
 “인간이 낼 수 없는 초인적인 힘이 나를 감싸 안았어. 그래서 그만······.”
 “······.”
 “하. 하. 하.”
 나는 그대로 굳어 버린 레나를 보고 그렇게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정말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해 전투를 하다가 그만큼 다쳤으면 이해라도 되지, 전투는커녕 광석 캔다고 초인적인 힘을 끌어와 완전히 죽을 뻔하다니, 이건 좀 아니다.
 “······.”
 “그, 그래도 괜찮아졌으니 다행이에요. 헤헷.”
 싱긋.
 그러면서 미소 짓는 그녀, 정말 사랑스럽다.
 심장이 뛴다. 저런 소녀가 사랑하는 남자라면 정말 엄청나게 기쁘겠지?
 흐흑. 왠지 모르게 질투가 난다. 쩝.
 난 그런 생각과 함께 바닥에 쓰러져 있는 레나를 그대로 번쩍 들었다.
 “오, 오빠······.”
 당황하면서 얼굴을 붉힌다.
 아, 왜 이러지. 저 모습조차도 이렇게 귀엽다니. 나 혹시 사랑?
 아, 안 된다. 나에게는 임무가 있어, 나에게는! 으악!
 나는 떨리는 심장을 최대한 진정시킨 채 레나를 내가 누웠던 침대로 데려갔다. 그런 다음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혔다.
 “무리했을 텐데 좀 쉬어.”
 “괘,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아서 그래.”
 “······.”
 “그리고 정말 고마워.”
 “아, 아니에요.”
 그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그녀.
 귀여워. 훗.
 ―헉!
 “······.”
 그때 들려온 친숙한 목소리. 이 목소리는 변태 에로에로 마검 홀락이 아닌가? 감히 나를 버리고 갈 때는 언제고 이제야 돌아오다니, 이제 넌 죽었다.
 그렇게 내가 이를 갈 때였다.
 ―주, 주인이 레나를 덮친다!
 “······.”
 ―짐승 같은······!
 “······.”
 ―레나 양, 내가 구하겠소!
 그러면서 나에게 달려든다. 하지만!
 퍼억!
 ―크아아악!
 내가 대충 손을 휘둘러 홀락을 쳐 대자, 열심히 날아간 뒤 비명을 지르는 홀락. 이 자식, 뭐냐? 갑자기 나타나서 웬 개뼈다귀 삶아 먹는 소리를 해 대는 거냐?
 그리고 내가 네놈한테 짐승이라는 단어를 들을 만한 레벨은 아닌데?
 나에게 맞고 날아간 홀락은 소리쳤다.
 ―나,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오.
 “······.”
 ―레나, 나의 사랑 레나. 우리의 사랑이 저 악인에 의해 깨지다니······. 크으윽.
 저놈은 무슨 삽질을 하는 건지 심히 의문스럽다.
 그리고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니, 어디서 많이 듣던 대사인데? 그뿐 아니라 넌 용광로에 처넣지 않는 이상 안 죽는 거 내가 다 알고 있다.
 그러니 그런 말도 안 되는 발언은 삼가 주었으면 한다.
 ―레, 레나!
 “······.”
 ―나의······ 레······나.
 “······.”
 ―우리 다음 생애는 부디······. 크윽!
 아주 꼴값을 떨어라.
 저 미친 검, 갑자기 웬 상황극이냐? 뜬금없이 말이다. 그리고 네놈의 미친 상황극을 무진장 정상적인 레나가 받아 줄 리는 없다.
 그러니 당연히 레나는 홀락의 미친 짓거리에 멍하니 있을 뿐이다.
 난 홀락에게 다가가 가볍게 짓밟으면서 레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신경 쓰지 마.”
 “아······.”
 “원래부터 약간 미쳐 있었는데, 요새 좀 더 애가 이상해. 상태가 심각해지더라고.”
 “······.”
 “혹시 치료 마법이 미친 것도 치료해 줘?”
 “그, 글쎄요······.”
 “아마도 불가능할 것 같다.”
 아무리 치료 마법이라고 해도 상처를 치료하는 거지 미친 것을 치료하는 건 무리다. 사실 미친 게 치료가 된다면 홀락을 데리고 당장 힐러에게 가겠다.
 돈이 드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이 미친 검이 제대로 된 검으로 바뀌기만 한다면 약간의 투자는 가능하다.
 
 “레나야, 괜찮아졌어?”
 “아, 조금요.”
 “이거 죽이야. 먹어.”
 “고마워요.”
 “내가 고맙지.”
 나는 내가 내민 전복죽에 감동 어린 얼굴을 한 레나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사실 고마운 건 나지.
 죽을 뻔했던 내 목숨을 살려 준 사람이 레나, 그리고 그 대가로 이렇게 된 거니까 말이다.
 난 내가 건네준 죽을 받으려는 레나에게 말했다.
 “내가 먹여 줄게.”
 “······.”
 “싫어?”
 “아, 아니에요!”
 나의 말에 고개를 맹렬히 흔들면서 말하는 그녀.
 뭐, 그렇게 과민 반응까지.
 그나저나 저런 미소녀에게 죽을 먹여 준다니 생각만으로도 황홀해지는구나. 난 그런 생각과 함께 죽을 한 숟가락 퍼서 레나의 입으로 갖다 대었고, 나의 행동에 레나는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힌 채 입을 살짝 열었다.
 아아, 저 죽이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
 참으로 죽이 부럽기는 처음이다.
 크윽!
 ―벼, 변태!
 “······.”
 ―도대체 뭐 하는 거야!
 “······.”
 ―이 짐승, 주······. 큭!
 난 개소리를 해 대는 홀락을 발로 열심히 밟으면서 무시했다.
 부디 이 행복한 시간을 방해하지 마렴.
 
 
 
 
 
 10장 바람둥이 천사 제킨
 
 
 
 
 
 
 나의 목표는 스테리아다.
 보석뿐만 아니라 다른 점에서도 면담을 해야 하므로 반드시 만나야 할 존재다. 사실 도마뱀 구역에 먼저 갈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만, 드래곤보다는 그래도 스테리아가 친숙하니(?) 스테리아로 결정한 나다.
 물론 스테리아 자식은 제국 깊숙한 곳에 있을 것이다.
 내가 전투에 자신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수많은 제국의 병사들이나 기사들을 전멸시킬 수는 없는 법. 물론 보조계의 완벽한 존재 레나도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리. 최대한 몰래 잠입해서 그 자식과 면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리스 제국에 들어가야 한다.
 “오빠.”
 “응?”
 “그런데 갑자기 왜 스테리아 씨를······.”
 “아, 너 없는 사이에 우리 둘에게 미묘한 시간이 있었거든.”
 “미묘한 시간요?”
 “응.”
 “그게 뭐예요?”
 “······.”
 그 말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힌 나.
 내가 왜 말문이 막혔냐 하면 그 미묘한 관계에서 현경이가 끼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스테리아의 사주를 받고 나를 죽이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레나에게 말하면 레나가 없는 사이에 다른 여자랑 돌아다녔다는 게 들키고 만다는 거다.
 물론 레나와 난 애인 사이라든가 그런 건 아니지만, 왠지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라고나 할까?
 그런 게 있다.
 “그건 말이야, 한 여자를 두고 싸웠거든.”
 “펜들!”
 그때 갑자기 레나의 앞에 나타나더니 한마디 지껄이는 펜들.
 그리고 그 말에 굳어 버린 레나.
 난 그대로 달려가서 ‘날아라, 하이 킥’으로 그대로 펜들을 차 버렸다.
 퍼억.
 “크아악!”
 구수한 비명 소리가 들려오면서 펜들은 한참을 날아갔고, 그 모습을 본 난 세차게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절대적인 오해야.”
 “······.”
 “지, 진짜야.”
 “그, 그런 건가요.”
 “아, 아니라니까. 절대 저놈의 말처럼 그런 건 아니고······ 에, 뭐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내가 곤란함에 말을 이어 가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스테리아랑 한 여자를 두고 싸웠다고······.
 휘이익!
 ―우어억!
 난 펜들의 이어 또 개소리를 하는 홀락을 그대로 냅다 집어 던졌다. 그런 모습을 본 레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있었고, 난 당황하면서 외쳤다.
 “서, 설명해 줄게!”
 
 15분 후.
 “그, 그런 건가요?”
 “응!”
 “다행이에요.”
 “뭐가?”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가 묻자, 기겁하면서 놀라는 그녀.
 뭐가 다행인데? 그것보다 지금 이 상황이 다행이다. 이 미묘한 오해가 풀렸으니 말이다. 잘못했으면 펜들과 홀락의 사악한 음모에 당할 뻔했다.
 “저기, 오빠.”
 “응?”
 “목이 말라서 그런데 잠시 마을에 가서 음료수 좀 사 와도 될까요?”
 갈증을 느꼈는지 내게 그렇게 묻는 레나. 그런 건 굳이 안 물어봐도 되는데 말이다.
 “내가 갈게.”
 “아, 아니에요. 제가······.”
 “네가 가면 마을 초토화되잖아.”
 “······.”
 “그러니까 내가 초스피드로 갔다 올게. 어차피 가까우니까.”
 “죄송해요.”
 “아니, 죄송할 거까지야, 하하하.”
 이런 미소녀에게 음료수를 사다 주는 것만으로도 모든 남자의 로망이다.
 그나저나 내가 앞서 말했다시피 레나가 마을에 가면 마을이 초토화된다는 건 그 이유 때문이다. 레나의 외모 때문에.
 내가 오버하는 감이 약간 있기도 했지만, 그녀는 말 그대로 천사 같은 외모의 소유자다.
 그녀를 한 번 보면 여자에게 관심이 없던 남자들조차도 휘둥그레지는 건 기본이고, 애인이 옆에 붙어 있어도 침을 질질 흘리면서 보다가 결별하는 커플들도 널렸다. 그뿐 아니라 어떤 놈들은 막 레나에게 무작정 돌진하기도 한다.
 그만큼 그녀는 움직이면 초토화되는 거다.
 다행히도 레나를 지켜 주는 ‘켄틴’ 중 최고의 무력을 자랑하는 붉은 머리의 여검사 미에니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레나야, 갔다 올게.”
 “네······.”
 난 그 말과 함께 마을을 향해 냅다 달렸다.
 초스피드로 다녀오마!
 
 제킨은 목표를 탐색 중이었다.
 그가 ‘목표’라고 하는 것은 여자.
 바람둥이 계의 전설이자 천사 중의 미친 천사라고 일러지는 제킨. 그의 수려한 외모와 말발로 그 어떤 여자라도 100%로 넘어온다는 거다.
 그렇게 한참을 천사의 날개로 하늘을 날며 살피던 제킨.
 그런 그의 눈에 믿을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건 바로······.
 “천······사?!”
 자기가 천사이면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아는 천계의 천사들보다 더 뛰어난 얼굴과 몸매. 마치 천사라는 단어는 저 소녀에게만 해당되는 단어인 것만 같았다.
 천계에 있는 천사는 모조품이고, 저건 진품이라는 소리다.
 “심봤다!”
 제킨은 그런 정체불명의 비명을 지르면서 그대로 레나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레나는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미남자를 보고 당황해서 똑같이 인사했고, 제킨은 그런 모습이 자신을 보고 떨려서 그런 줄 알고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
 제킨의 말이 이어졌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분이세요.”
 “······.”
 “이렇게 아름다운 분은 제 생애 처음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레나는 제킨의 칭찬에 그렇게 말했고, 그걸 본 제킨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서서히 해야 한다.
 저렇게 순진한 아가씨에게는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 강하게 말이다.
 “이야기를 돌리지 않고 하겠습니다.”
 “······?”
 “저는 당신의 아름다움에 빠져 버렸습니다.”
 “······.”
 “이미 노예라고 해야 할까요? 한마디로 미칠 것 같습니다.”
 “······.”
 “이런 남자에게 단 1시간의 시간을 주지 않겠습니까? 1시간이면 됩니다. 딱 1시간만. 그리고 마음에 드시면 저랑 정식으로 사귀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제킨은 확신했다, 레나가 허락할 것을.
 저런 순진한 여자는 거절을 못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시간이라는 걸 정해놓아서 부담감을 약간 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 죄송해요.”
 “······.”
 “저는 좋아하는 오빠가······.”
 “······!”
 쿵!
 제킨은 돌덩이가 자신의 머리를 강타하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을 거절했다.
 그것도 무참히 말이다. 이런 일은 일어나서도, 아니 일어날 거라는 생각조차도 못한 그다. 그런데, 그런데 거절당했다.
 “1시간도······ 안 되는 겁니까?!”
 “저, 정말 죄송해요. 저는 남자랑 이야기도 잘 못해서······. 죄송해요.”
 꾸벅.
 그러면서 고개까지 숙이는 그녀.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제킨은 결심했다. 좀 더 강력하게 밀어붙이기로.
 그는 그대로 레나의 팔목을 낚아채려 했고, 그 순간 그의 목에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닿았다.
 붉은색의 검이었다.
 그리고 어느새 그의 앞에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미모의 여자 검사.
 물론 레나랑 비교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지만, 분명히 객관적으로 봐도 미녀였다. 붉은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미녀.
 그녀는 말했다.
 “우리 레나 아가씨에게서 떨어져라.”
 “흐음.”
 “안 그러면 이 검이 너의 목을 관통할 것이다.”
 “미, 미에니······.”
 레나는 미에니의 살벌한 말에 당황해서 말했고, 그 말에 미에니는 여전히 차가운 어조로 대답했다.
 “레나 아가씨, 이런 버러지 같은 놈들에겐 이 정도는 해야 합니다.”
 “······.”
 “여자라면 무조건 집적거리는 바람둥이 같은 놈한테는 말입니다.”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킨은 웃었다.
 흠칫.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미에니는 당황했다.
 분명 자신의 검과 제킨의 목과의 거리가 몇 센티미터도 안 될 정도로 가까운 상태다. 그런데 웃다니, 그건······.
 “개인적으로 여자랑 싸우는 건 안 좋아하지만, 살짝 실례하겠습니다. 무력만 봉하지요.”
 “······!”
 그 말과 함께 제킨은 사라졌다.
 엄연히 제킨은 천족이다. 바람둥이기는 하지만······.
 그런 천족이 무력이 약할 리는 없다, 절대.
 “이런!”
 미에니의 비명이 들려왔다.
 어느새 미에니의 손에 있던 붉은색의 장검은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고, 미에니의 두 손은 밧줄로 결박을 당했다.
 너무나도 순식간의 일이라서 보이지 않을 정도다.
 한편 무기력해진 미에니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놓은 제킨은 다시 잔뜩 겁먹은 레나에게 다가가더니 그대로 레나의 손을 붙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제킨의 바람.
 어느새 그의 몸이 허공을 날고 있었다.
 “어, 어라?!”
 제킨은 영문도 모른 채 허공을 나는 자신을 보고 당황하다가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쿵!
 바닥과 제킨의 몸이 부딪치면서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왔다.
 제킨은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몰라 혼란스러웠고, 그때 제킨의 눈에 들어오는 미남자.
 꽤 잘생겼다.
 자신과 비교해 동급이라고 해도 될 정도다.
 천사 중 외모로 10순위 안에 드는 그와 말이다.
 갑자기 나타난 미남자는 이를 바글바글 갈더니 말했다.
 “감히 레나에게 집적거려? 너 죽었어!”
 
 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음료수를 사 오던 난 엄청난 광경을 목격했다. 레나의 켄틴인 미에니가 결박당한 광경. 그리고 레나에게 다가가는 어둠의 손을 말이다.
 난 그걸 보자 알 수 없는 슈퍼 분노를 느끼면서 그대로 냅다 달렸다.
 그리고 하이 킥 한 방. 그걸 맞고 그대로 날아가는 변태 자식.
 변태 자식은 어기적어기적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한마디 외쳤다.
 “난 천사다!”
 “······.”
 “······.”
 나와 레나는 굳어 버렸다.
 천사란다. 그것도 자기 입으로······.
 그런데 요새 천사는 여자에게 집적대냐? 그럴 리는 없다. 그렇다면 간단하게 말해······.
 “미친놈.”
 이런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이 자식이 어디서 레나에게 집적거려!
 “나와 붙기 싫으면 그 소녀와의 시간을 방해하지 마라!”
 “지랄하네.”
 “······.”
 “안 그래도 넌 오늘 그냥 못 가.”
 “나랑 붙겠다고?”
 “그래. 붙자, 이 자식아.”
 “풋! 인간이 나에게 도전장을 내밀다니, 이거 어이가 없어······.”
 퍼억.
 “쿠엑!”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의 주먹은 그 자칭 천사라고 우기는 녀석의 배에 꽂힌 상태다. 그리고 내 공격에 그대로 몸이 직각으로 숙여진 상태다.
 난 주먹으로 그놈의 얼굴을 올려쳤다.
 퍼억.
 “크악!”
 그 자식의 비명이 들려오지만 개의치 않는다.
 왜 이럴까. 이 알 수 없는 분노 말이다.
 분명 레나에게 집적거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는 느끼기 힘든 과도한 분노다.
 나, 설마 레나를······?
 크아악! 아, 안 되는데! 그러면 지금같이 아름다웠던 사이가 깨질지도 모른다. 그래, 아닐 거야! 아니야!
 “비겁한!”
 “닥쳐! 넌 죽었어!”
 난 그대로 분노에 몸을 맡겼다.
 레나에게 집적거린 놈, 죽여 버리겠어.
 
 10분 후.
 내 앞에 무릎 꿇고 있는 한 놈이 있었다.
 난 그놈의 앞에 서서 깡패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네놈의 잘못을 알겠느냐?”
 “넵!”
 나의 말에 잔뜩 긴장한 채 대답하는 자칭 천사. 난 그의 머리를 툭툭 건들면서 말했다.
 “감히 레나에게 집적거리다니······. 으윽, 생각할수록 분하구나!”
 “사, 살려 주세요!”
 그러면서 고개를 땅바닥까지 숙이는 자칭 천사.
 난 그 모습을 보고 약간의 안타까움에 분노를 진정시켰다. 그래, 난 지성인이다. 더 이상 이러면 안 된다.
 “살려 주겠다. 네가 미에니에게 조금의 상처를 입혔다면 넌 죽었어. 하지만 미에니에게 상처 하나 없었기에 네가 아주 나쁜 놈은 아니라는 결론으로 살려 주겠다.”
 “전 천사이니까요.”
 “죽고 잡냐? 자꾸 구라를?!”
 “지, 진짜예요!”
 “이 자식이!”
 “아, 아닙니다!”
 다시 주먹을 쥐자, 솔직하게(?) 말하는 자칭 천사.
 어디서 계속 구라를 치는 건지, 이 자식.
 “저, 저기······ 물어볼 게······.”
 “뭐냐?”
 “저 천사 같은 아가씨를 좋아하시는 건가요?”
 화끈.
 그 말에 난 다급히 레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 있어서 이 대사를 듣지 못한 게 분명하다. 그리고 내 얼굴이 붉게 불타오른다.
 이 자식을.
 “무, 무슨 개소리냐?!”
 “근데 왜 떨죠?”
 “너 죽었어!”
 “으아악!”
 난 그대로 다시 구타에 들어갔다.
 
 5분 후.
 완전 만신창이가 된 채 해롱거리는 자칭 천사.
 나는 진정했다.
 왜 그 말에 내가 그렇게 흥분했는지 모르겠다. 왜 그런지 말이다. 하아, 진정하자, 진정해.
 그래, 저 미친놈을 더 상대하면 나만 이상해질 뿐이다. 어서 보내 버리자.
 “꺼져.”
 “저, 저기.”
 “또 왜?”
 그때 다시 한 번 나를 부르는 놈.
 이 자식은 왜 이러냐?!
 “가, 같이 가도 될까요?”
 이건 무슨 개뼈다귀 소리?
 뜬금없는 소리에 난 기가 막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솔직히 말해 그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대답은 한 가지다.
 그건 바로 노.
 그런데 저 자식은······.
 “제 성의입니다!”
 그 순간 하얀색의 다이아몬드를 내민다.
 내 손의 절반 정도 크기의 다이아몬드, 대충 육칠천만 원 정도는 할 것 같은 엄청 비싸 보이는 다이아몬드다.
 난 당장 그 자칭 천사라고 부르는 놈의 손을 잡은 채 미소를 지었다.
 “웰컴!”
 이런 내 자신이 잠시지만 싫어진 나였다. 흐흑!
 그것보다······.
 “레나에게 집적거릴 생각이면 관둬. 그때는 가만있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무, 물론입니다!”
 
 제킨이 데스티니를 따라간다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미에니 때문이었다.
 사실 레나는 포기 상태다.
 자기가 짐작한 결과, 둘은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이. 자신의 완벽한 기술로도 그들의 벽을 부술 수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비해 미에니는 아니다.
 미에니도 누군가 좋아하는 듯한 느낌이 온 제킨이었지만, 아직 충분히 가망성이 있다. 레나가 절대로 정복 못할 산이라면 미에니는 약간 그 밑의 단계.
 한마디로 가망성이 있다.
 
 “페, 펜들.”
 미에니는 솜사탕같이 생긴 펜들을 보고 얼굴이 붉어진 채 말을 더듬거렸다. 저 차가운 이미지의 미에니가 저런 반응을 보이다니······.
 이러한 현상을 보이는 이유는 단 한 가지뿐이다.
 그건 미에니가 사모하는 녀석이 펜들이라는 거다.
 이건 미치지 않고서야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지만, 사실인 듯싶다. 크윽!
 “어라? 미에니, 오랜만.”
 “오, 오랜만이에요”
 “왜 그래?”
 “아, 아뇨.”
 “쿠쿠쿠.”
 “······.”
 아, 펜들 자식 정말 답답하게 만든다.
 저렇게 자신을 좋아한다고 완전히 광고하는데도 못 알아차리다니, 저 정도면 완전 국보급이다.
 저런 놈을 좋아하는 미에니도 참 불쌍하군, 쩝!
 
 
 
 
 
 11장 긴급 버그?
 
 
 
 
 
 
 
 “레나?”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다!”
 레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하는 란젠 형.
 형은 레나에게 다가왔고, 그 모습을 본 난 무의식적으로 레나의 앞을 막아섰다.
 나 왜 이러니? 크윽!
 그 모습을 본 란젠 형은 정체불명의 웃음을 지었다.
 “흐흐흐.”
 “왜 그렇게 웃어요?”
 “아니, 재밌어서.”
 “······.”
 “재밌구나, 에혀디여!”
 “······.”
 저 형, 무슨 말인 거야!
 형은 마치 모든 걸 안다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절대 아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것보다 나를 이렇게 부른 이유나 가르쳐 달라고요!
 갑자기 마리스 제국으로 가던 나를 긴급 호출한 이유를 말입니다.
 “형, 이상한 미소 짓지 말고 저를 갑자기 부른 이유나 가르쳐 주세요.”
 “아, 내 정신 봐라.”
 그러면서 갑자기 표정이 굳어진다.
 무슨 일이지?
 “염화의 루진 알지?”
 “당연히요.”
 염화의 루진.
 랭킹 90위에 달하는 초고렙으로, 불을 자유자재로 다뤄서 염화라는 이름이 붙은 애다. 실제로 만나 본 적은 없지만, 우리 업종에서는 꽤나 유명하다.
 버그 잡는 걸로 말이다.
 “걔가 실패했다.”
 “······?”
 “며칠 전 헤란이라는 마을이 갑자기 사라졌다.”
 “사라져요?”
 “그래. 말 그대로 사라졌지.”
 “······.”
 저기요, 마을이 사라지기도 하는 겁니까? 저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돼서 말입니다.
 난 란젠 형을 보면서 물었다.
 “마을이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말?”
 “아니.”
 “말 그대로 사라졌어. 마을 전체가.”
 “······.”
 이런 상황에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을이 사라지다니? 그럼 거기에는 뭐가 남는 건데?
 그때 마침 이런 내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란젠 형이 말을 이었다.
 “그냥 땅만 남았지. 마을이 있었다는 흔적조차도 없어져 버렸으니까 말이다.”
 “그거 참 미묘하군요.”
 “그래, 참으로 미묘하지. 마을 전체가 언제 있었냐는 듯 완벽히 사라졌으니 말이다.”
 “······.”
 “그리고 그곳에서 버그의 기운을 포착, 우리는 마침 일을 구하러 온 염화의 루진에게 의뢰를 했지. 3,000만 원짜리였다.”
 헉! 3,000만 원?!
 버그 중 최고의 가격이다.
 지금까지 저만한 액수를 본 적이 없다.
 사실 버그의 액수를 정하는 건 생각 외로 쉽다. 운영진에서 버그들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무언가가 있단다.
 그 무언가는 버그의 추적뿐만 아니라 그 버그의 힘까지도 대략적으로 추정, 그래서 버그의 값이 나오는 거다.
 그렇게 따지면 3,000만 원짜리는 장난이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루진이 현실 세계로 돌아간 뒤 내게 연락했다. 죽음을 당했다고 말이다.”
 “흐음.”
 “무슨 이상한 거대 괴물이었다고 하더라. 그 괴물에게 맥없이 죽임을 당했다고······. 염화의 루진이 말이다.”
 “역시 3,000만 원짜리 일인가 보네요.”
 “그런가 보다.”
 란젠 형도 이런 거금의 액수에 달하는 버그는 처음이었기에 이런 반응이다.
 3,000만 원짜리 버그는 역시 예사로운 놈이 아니었다. 염화의 루진을 맥없이 죽이다니 말이다.
 “그래서 너를 긴급 호출한 거야.”
 “······?”
 “넌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잖니.”
 “그, 그건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염화의 루진을 맥없이 죽일 정도면 상당한 무력을 가진 버그라는 소리. 안전하게 너를 보내기로 한 거다.”
 “······.”
 “당연하겠지만 물어보겠다. 할 거지? 참고로 3,000만 원.”
 왜 마지막에 3,000만 원을 강조하시는 겁니까? 왜!
 분명 난 란젠 형의 의도를 알고 있다. 나는 바보가 아닌 관계로. 하지만 사람은 알면서도 넘어가 주는 센스를 발휘해야 하는 시기도 있다.
 그게 바로 지금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네가 절대 거절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지.”
 그거 칭찬으로 들어도 될까요? 쩝.
 
 여기인가?
 심히 난감한데, 이거?
 내 앞에 펼쳐진 거대한 땅. 그리고 끝이다. 땅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난 내 손에 쥐어진 란젠 형이 준 지도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나온 결과는 여기가 헤란이 있던 곳이 확실하다는 거다.
 그렇지만 보이는 거라고는 땅뿐이다. 여기에 진정 마을이 있었다고는 믿기 힘들다.
 “오빠, 진짜 이곳에 마을이 있었던 게 맞을까요?”
 한편 레나도 나의 생각과 동일했는지 그렇게 물었고, 난 그 물음에 답했다.
 “내가 직접 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지도에도 상세하게 표현이 되어 있네.”
 난 그러면서 레나에게 지도를 내밀었다.
 그러자 지도에서 이곳을 가리키는 이름, 헤란.
 확실하다.
 “이거 재밌는데?”
 “뭐가?”
 그때 갑자기 나타나 한마디 던지는 펜들.
 뭐가 재밌는데?
 “이런 미스터리한 일.”
 “······.”
 “주인의 목숨을 걸고 전부 다 파헤쳐 주겠어.”
 묻고 싶다. 왜 내 목숨을 거는 건데? 그리고 굳이 목숨까지 걸지 않아도 추리와는 별 상관관계가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음하하하!”
 내 목숨 걸고 신나게 웃어 대는 펜들, 난 그놈에게 속으로 한마디 해 주었다.
 ‘미친놈!’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우우~! 알 수 없구나. 흠!
 난 조금이라도 단서를 잡기 위해 열심히 뒤졌다. 하지만 결과는 꽝이다.
 흑!
 ―크아악!
 “왜 그러냐, 미친 검?”
 ―미친 검이라니?!
 “갑자기 비명을 질러 대니 그렇지.”
 ―······.
 “그나저나 웬 비명이냐?”
 ―아 참, 느꼈어!
 뭘 느껴?
 난 갑자기 이유도 없이 생뚱맞게 말하는 홀락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쟤는 정말 나날이 상태가 안 좋아진다. 나날이 말이다.
 홀락의 말이 이어졌다.
 ―여자 냄새!
 “······.”
 ―이 그윽한 여자 냄새, 확실해!
 “확실히 여자 냄새가 납니다!”
 그때 홀락의 말에 동조하는 미계 생물체 제킨. 자기가 천사라고 우기지만, 난 믿지 않는다. 저 자식이 천사면, 홀락은 성자다.
 어디서 구라를 까도 그런 과도한 구라를 까는지 모르겠다.
 어찌 됐든 변태 마검과 미생물체 제킨은 여자 냄새가 난다고 한다.
 다른 존재라면 모를까, 여자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두 존재가 말한 내용이다. 절대 신빙성이 없는 정보는 아니라는 것!
 난 당장 이곳에서 사람이라도 보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안 보이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인다.
 도대체 어디에 여자가 있다는 거냐?
 여자는커녕 개미 한 마리도 안 보이는데 말이다.
 킁킁.
 그때 바닥에 코를 댄 채 킁킁거리는 제킨.
 처음 볼 때부터 예사로운 놈은 아니라고 생각은 했었다. 그가 보석을 건네줄 때도 이상한 놈이 또 설치겠다는 생각까지는 기본적으로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범위보다 더 이상한 놈이었다.
 자기가 개도 아니고 땅바닥에 코를 댄 채 킁킁거리다니, 미묘하다.
 킁킁!
 한 번 더 킁킁거리면서 개처럼 기어가는 제킨.
 보는 내가 무안할 정도다. 크윽.
 그렇게 제킨은 보기에도 난감한 행동을 한참 동안이나 했고, 잠시 후였다.
 “앗!”
 제킨은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그러자 나의 시선도 제킨이 가리킨 곳으로 돌아갔고, 거기에는 제킨의 말대로 ‘여자’가 있었다.
 그것도 미녀였다. 물론 레나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찌 됐든 그런 미녀가 위독해 보이는 상태로 쓰러져 있다.
 난 그 모습을 보고 다급히 그녀에게 뛰어갔고, 그녀는 나를 보더니 숨이 넘어갈 듯한 모습으로 불렀다.
 “사, 살려 주세요.”
 “······!”
 레나도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다급히 달려왔지만 난 레나를 저지했다.
 “오, 오빠.”
 당황하는 레나, 의아했을 것이다.
 내가 치료를 하지 못하게 막은 것이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엄청난 이유가 있지.
 터벅터벅.
 난 살려 달라고 애타게 말하는 여자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대로 홀락을 집어 들었다. 그와 함께 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배를 향해 검을 관통시켰다.
 “······!”
 “······!”
 ―주, 주인!
 이런 나의 행동에 레나와 제킨, 그리고 홀락까지 굳어 버렸다.
 당연한 건가?
 죽어 가던 여자를 검으로 찔렀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근사한 이유가 있다.
 “꾸아아아악!”
 여자의 비명이라고 하기에는 난감한 울음소리. 그와 함께 여자의 몸속에서 무언가 꾸역꾸역 나온다.
 대형 지렁이같이 생긴 이상한 생물.
 참으로 보기 난감하다.
 “꺅!”
 그걸 본 레나는 나의 품에 안겼고, 난 그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나이스, 이상한 생물!’
 ―주인, 저, 저게 뭐야?!
 “내가 알 리가 있겠냐?”
 ―······.
 “확실한 건 저 여자는 이미 죽어 있었다는 거.”
 ―주, 죽어 있었다고?
 “그래. 아주 미세하지만 이미 죽음의 기운에 휩싸인 상태였어. 그리고 그 죽은 시체를 저 생물이 조종했다는 거지.”
 ―난감하군.
 “동의.”
 난 그 말과 함께 대형 지렁이를 홀락으로 찔렀다.
 푸직.
 “꾸에엑!”
 단발의 비명과 함께 죽어 가는 지렁이. 그와 함께 들려오는 비명(?).
 ―꺄! 저질이야!
 “······.”
 ―난 이런 저질적인 피 안 좋아한다고.
 “대충 처먹으렴.”
 ―······.
 “그리고 참고적으로 하나 더 말할게.”
 ―······?
 “많이 먹어야 할 것 같다, 저질적인 피.”
 푸드득, 푸드득.
 그 말과 함께 땅속에서 기어 나오는 사람들, 마치 좀비 같다. 하지만 좀비랑 다른 점은 좀비는 썩은 상태지만 저분들은 멀쩡한 상태. 이 한 가지가 다르다.
 그때 그 이상한 괴물들은 중얼거렸다.
 “신성한 곳에서 난동을 피우다니.”
 “신성한 곳에서 난동을 피우다니.”
 “신성한 곳에서 난동을 피우다니.”
 “신성한 곳에서 난동을 피우다니.”
 “신성한 곳에서 난동을 피우다니.”
 참으로 미묘하군.
 신성한 곳이 이리 없단 말이냐? 여기가 어딜 봐서 신성하다는 거냐?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어.
 한편 똑같은 말을 해 대는 미생물체들은 천천히 내게 걸어왔고, 그 모습을 본 난 홀락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절규하는 홀락.
 ―으아악 싫어. 맛없어!
 “이해해 주렴.”
 ―시, 싫어!
 난 절규하는 홀락을 무시한 채 그대로 달려들었다.
 대략 수를 헤아려 보면 백 명 정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수로 말이다.
 “클레전.”
 콰앙!
 난 그대로 홀락을 바닥에 꽂으면서 외쳤다.
 그와 함께 바닥에서 생성되는 강력한 화염의 소용돌이. 그 소용돌이는 그대로 그 미생물체들을 덮쳤다.
 “꾸어억!”
 “꾸어억!”
 “꾸어억!”
 사람 몸에서 마구 튀어나오는 지렁이들도 내가 생성해 낸 화염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잠시 후 그곳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해졌다.
 한마디로 화염의 소용돌이에 모두 불타 사라진 거다.
 
 “재밌어.”
 재밌기는 개뿔.
 도대체 무엇이 재미있다는 것인지 궁금하다만, 펜들.
 난 어이없는 말에 멍하니 펜들을 바라보았고, 펜들은 마치 명탐정이라도 된 듯한 표정을 짓더니 외쳤다.
 “아이큐 170에 달하는 내가 못 풀 미스터리는 없다!”
 저기요, 그런 거 굳이 상기시켜 주지 않아도 되거든요?
 그리고 그런 대사는 남이 하는 거지, 자기 자신이 하는 대사는 절대 아니거든요?
 남이 저런 대사를 한번 해 주면 멋져 보인다. 하지만 자기가 멋지다고 하면 그건 정말 아니다. 왠지 추해 보인다.
 펜들은 그렇게 한참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피식 웃는다.
 왜 그러는 거냐?
 “끝.”
 “뭐가?”
 “비밀을 파헤쳤어.”
 “······!”
 뭐라고?! 비밀을 파헤쳤다니?
 난 펜들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 사실 저 자식이 똑똑한 것은 무의식적으로 인정하던 나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없는 이 땅에서 비밀을 알아내다니?
 펜들의 말이 이어졌다.
 “크레이스 존.”
 “······?”
 뜬금없이 크레이스 존이라니, 이건 무슨 솜사탕 소리?
 펜들은 요리조리 돌아다니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이 공간 자체가 크레이스 존으로 이루어져 있어, 주인.”
 “저, 저기, 잠깐······.”
 “······?”
 “크레이스 존이라니?”
 “주인, 바보?”
 “이 개자식을!”
 “그, 그렇잖아! 항상 내가 쓰는 걸 잊어버렸으니 말이야!”
 허! 그렇다면 지금 펜들이 말한 크레이스 존이 그 크레이스 존?
 버그들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혹은 피해를 없애기 위해 만들어 내는 크레이스 존. 전에도 말했다시피 이 크레이스 존은 공간을 복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지형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복사한 공간에만 파괴가 일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 크레이스 존은······.
 “공간 자체가 복사가 되더라도 마을의 외형은 남아 있을 텐데?”
 그렇다. 사람들은 몰라도 마을의 집이라든가 이런 외형은 남아 있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엔 땅만 있다.
 그뿐 아니라 크레이스 존은 안쪽의 공간이 나타나기에 이렇게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절대!
 “변형이 됐어.”
 “······!”
 “크레이스 존이 변형된 거야. 이 반대편 공간에는 마을이 있을 거야.”
 “서, 설마?”
 “그래. 변형된 크레이스 존이 이 밖으로 나왔고, 실제 공간은 원래 크레이스 존이 설치되는 공간에 있겠지.”
 헉! 상당히 복잡하다.
 하지만 대충은 알아듣겠다.
 그나저나 이런 변태적인 짓거리를 할 수 있는 놈은······?
 “버그들의 왕 게르니아.”
 끄덕.
 난 펜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식밖에 없다.
 켄틴들의 고유 능력인 크레이스 존. 그 능력을 이렇게 변형시키고 사용할 수 있는 놈은 전국 각지를 돌아 봐도 없다.
 그런데 게르니아 자식이 왜 굳이 이런 걸 해야 되지?
 이러면 오히려 버그를 가둬 두는 꼴일 텐데?
 아마도 내 추정이 맞는다면 반대편에는 기존 마을과 버그가 숨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숨어 있으면 쟤들은 난동을 못 피우고, 그것은 게르니아 입장에서 봐도 좋을 게 없다.
 “주인, 이 변형 크레이스 존, 깨 버릴까?”
 “깰 줄 아는 거냐?”
 “당연히. 크레이스 존은 마나의 이어짐으로 연결된 고리가······.”
 “······.”
 뭔 말이니?
 이해가 안 간다.
 펜들이 주절주절 크레이스 존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계시지만, 난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무슨 정체불명의 단어가 튀어나오고, 별 개소리 다 나온다.
 아무리 그래도 뭔 말인지 모르겠다. 제길.
 “알아들었어?”
 “당연히. 하하하.”
 티끌만큼도 알아듣지 못한 나였지만, 못 알아들었다고 하면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서 말이다.
 “알아들었으면 다행.”
 “······.”
 저거 비꼬는 것같이 들리는 건 왜지?
 내 귀가 잘못된 건가?
 아니면 실제로 비꼬는 건가. 나의 머릿속은 순간적으로 뱅글뱅글 돌았다.
 하지만 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여기서 과도하게 반응하면 자기가 한 설명을 이해 못했다는 사실을 들킨다는 것.
 영리한 자식. 쳇!
 “주인, 시작해?”
 “그려.”
 “오케바리!”
 그 말과 함께 펜들은 하늘로 올라갔고, 난 그 순간 아차 했다.
 이 광경을 보면 안 되는 존재가 있다. 그건 바로 제킨!
 난 그대로 날았다. 그와 함께······.
 퍼억.
 “꾸에엑!”
 나의 하이 킥 한 방에 깊게 잠드시는 제킨님.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이건 일반인(?)이 알면 안 되는 내용이어서.
 파지짓!
 파지짓!
 파지짓!
 펜들이 눈을 감고 기운을 뿜어내자, 불꽃과 함께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아, 이제 나오는 거냐? 이 정체불명의 버그 자식아.
 난 그 생각과 함께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이제 이 공간이 파괴되면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버그가 말이다.
 레나도 너무나도 익숙한 듯 내 뒤에 선다.
 솔직히 말해 레나와 눈만 마주쳐도 내가 원하는 보조 마법을 써 줄 정도다. 그만큼 레나와 함께한 전투 시간이 장난이 아니라는 거다.
 그렇게 긴장감이 고조됨에 따라 손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파징!
 “끄아아악!”
 “······!”
 그대로 공간이 부서지면서 마을과 함께 거대 지렁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사람들 몸에서 나온 지렁이들의 크기가 대략 내 손만 했다면 얘는 아니다.
 가로 세로 30미터 정도 되는 붉은색의 초특급 지렁이다.
 한마디로 블러드 웜의 버그냐?
 블러드 웜, 피 빨아먹는 지렁이다.
 블러드 윔의 특징이라면, 사람이든 동물이든 몬스터든 보이는 족족 모든 생물체를 공격한다. 그리고 그 공격에 당하면 피가 줄줄 흐르게 되고······.
 보통 크기는 10센티미터에 달하지만, 지금은 버그로 인해 그 삼백 배 정도 되는 크기로 완성된 상태다.
 “꾸어어억!”
 괴상한 비명을 지르는 블러드 웜.
 그와 함께 땅에서 솟아 나오는 사람들.
 이거 참으로 심플하네?
 아까 이 마을에 있던 사람들이겠지. 그리고 저 몸속에는 죽은 사람들을 조종하고 있는 블러드 웜의 새끼들이 있고 말이다.
 츠르륵.
 파앗!
 그때 블러드 웜은 그 거대한 몸을 그대로 내게 들이박기 위해 돌격했고, 그 모습을 본 난 홀락을 들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레나!”
 “인폴렉션 실드!”
 파지짓.
 레나의 주문이 끝나기 무섭게 내 주변을 감싸는 푸른색의 방어막 인폴렉션 실드.
 일정 시간 동안 상대방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방어막이다.
 배리어 같은 경우는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 내지만, 인폴렉션 실드는 상대방의 공격을 막아 내는 동시에 밀어낸다.
 그러니 옆에서 꾸역꾸역 오는 마을 사람들은 무시하기 위한 나의 방법.
 블러드 웜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공격하고 싶어서 말이다.
 “인케이션!”
 파아앗!
 그때 레나의 추가적인 주문이 들려오면서 순간적으로 붉게 변한 홀락.
 10초 동안 무기의 공격력을 2배 이상 끌어올려 주는 아주 고마운 마법이지. 그리고 여기에다가······.
 “윈드 커터!”
 바람의 마법을 걸어 버리는 거다.
 공격력에 첨가되는 바람 속성. 이러면 완벽한 조합!
 난 그런 생각과 함께 그대로 뛰어올랐다. 워낙 몸뚱이가 큰 지렁이여서 도약은 필수일 것 같았으니까.
 그 순간.
 “꾸어억!”
 커다란 블러드 웜의 입에서 마구 튀어나오는 지렁이들.
 너무나도 징그럽다.
 역겨울 정도니 할 말 다 했다.
 한편 블러드 웜에서 튀어나온 거대 지렁이들은 나를 향해 다가왔고, 난 그 모습을 보고 그대로 홀락을 휘둘렸다.
 푸직.
 푸직.
 푸직.
 내게 날아오는 지렁이들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베는 그 순간!
 콰앙!
 “크윽!”
 그대로 무언가가 부딪쳤다.
 그리고 뒤로 주르륵 밀려 나가는 나. 상당히 아프다.
 “오, 오빠!”
 레나의 비명이 들려왔다.
 젠장, 한 방 먹은 건가?
 내가 잔 지렁이들 상대하는 사이에 저 자식의 거대한 몸통이 나를 직격한 거다. 그나마 인폴렉션 실드가 아니었다면 내 몸은 완전히 박살났을 거다. 저 거대한 몸통에 말이다.
 “빌어먹을 지렁이 같으니.”
 나는 주춤거리며 일어나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 다음 곧바로 냅다 달리면서 외쳤다.
 “레나야, 부탁해!”
 “네! 인시테이션. 워시터리어 배리어. 케젠티아. 폴라카스타. 센트라이즈. 인케이션!”
 인시테이션, 내 몸을 무중력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
 워시터리어 배리어, 단 1회 완벽하게 공격을 막아 주는 방어 마법.
 케젠티아, 순간적으로 스피드를 최대한 끌어올리게 만들어 주는 마법.
 폴라카스타, 상대방을 공격했을 때 생기는 반동을 없애 주는 마법.
 센트라이즈, 한 곳에 고정시켜 주는 마법.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케이션은 공격력을 2배로 올려 주는 마법이다.
 간단히 말해, 난 무중력 상태가 돼서 저 빌어먹을 블러드 웜의 머리를 정복할 거고, 거기서 한 곳에 고정시킨 뒤 최대한의 스피드와 공격력 두 배의 홀락으로 그어 버린다는 것이다.
 폴라카스타라는 마법은 너무나도 강한 일격에 내가 오히려 튕겨 나갈지도 모르기 때문에 걸어 준 거고, 워시터리어 배리어는 아까와 같은 박치기를 대비한 거다.
 “꾸어억!”
 블러드 웜은 하늘에 뜬 나를 보더니 그대로 머리를 들이박았다.
 콰앙!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워시터리어 배리어와 저 자식의 머리가 부딪치는 소리겠지.
 그리고 참고적으로 완전 방어이므로 제 놈 머리만 아플 뿐이다.
 그런 내 생각이 적중했는지 그대로 멍하니 있는 블러드 웜.
 난 그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은 뒤, 홀락을 들어 그놈의 커다란 머리를 쪼개 버릴 듯 무서운 기세로 그었다.
 푸지직!
 그대로 머리가 2등분이 된다.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난 기쁘다.
 돈 벌었으니까. 크윽!
 
 “아아, 또 죽어 버렸나?”
 버그들의 왕 게르니아는 또다시 사라지는 버그의 기운을 느끼고 중얼거렸다.
 게르니아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꽤나 공들였는데 말이야. 웬만한 헌터 자식들은 이길 수 없을 텐데. 흐음, 역시 그럼 무멸의 진이나 환상의 데페라, 혹은 파멸의 데스티니인가?”
 후보자로 세 명을 올려놨다.
 하지만 무멸의 진이나 환상의 데페라 같은 경우는 지금 다른 일을 하는 중이어서 움직임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게르니아다.
 그렇다면 남는 건.
 “이번에도 데스티니 놈이군.”
 거의 스토커라고 할 정도로 자신을 따라붙어서 일을 방해한다. 상당히 거슬릴 정도로 말이다.
 그 모습을 본 게르니아의 심복 베론이 말했다.
 “주인님,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무엇이 말이지?”
 “분명 그놈은 강합니다. 인간치고는 엄청 강하죠. 하지만 위대하신 주인님의 힘에는 한참 모자랍니다.”
 “모자란 건 맞아. 한참 말이야.”
 “······?!”
 갑자기 긍정하는 게르니아의 대답에 베론은 당황했다.
 이야기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힘이 한참이나 모자란 존재를 왜 지켜보고만 있는 걸까? 왜?
 그때 게르니아가 이런 베론의 의문점을 풀어 주었다.
 “겉으로만 말이야.”
 “무슨 말씀이신지?”
 “데스티니, 그 자식의 힘이 저게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냐.”
 “서, 설마?!”
 “저건 일부분에 지나지 않아.”
 “인간 중에서도 당해 낼 자가 없을 정도로 강한데, 일부분이라니요!”
 “난 그놈의 진정한 힘을 봤다.”
 “······.”
 “두려웠다. 내가 탄생된 이후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
 “무멸의 진이나 환상의 데페라 같은 경우도 강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두려움이라는 요소가 있지 않았어.”
 “······.”
 “하지만 말이다, 저놈 파멸의 데스티니와 직접 싸워 본 난 잘 알아. 저놈의 본성이 나오면 어떻게 되는지 말이야.”
 “그, 그럴 수가······.”
 “그래서 최대한 저놈은 건들지 않는 것이다. 인간 중에서 최강이라고 불리는 존재를 얕보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베론. 저 파멸이라는 이름을 가진 데스티니는 특히 말이다.”
 
 
 
 
 
 12장 마리스 제국
 
 
 
 
 
 흐음······.
 지금 나에게는 할 일이 있다.
 그건 스테리아를 만나서 보석을 친절히(?) 받아 내는 것.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만나기는 힘들 것 같다.
 마리스 제국 안에 짱 박혀 계셨으니까.
 ―주인, 어떻게 할 거야?
 “몰라, 몰라. 마리스 제국에도 못 들어가잖아.”
 지금 난 마리스 제국의 주변에서 열심히 맴돌고 있는 중이었다. 분명 마리스 제국의 입구에서 검문을 받으면 날 곱게 보내 줄 리 없다.
 스테리아 자식이 아주 친절하게 나를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린 상태겠지.
 그럼 개난리를 치면 마리스 제국에도 나에게도 좋을 게 전혀 없다는 거다.
 일단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 제국 안으로 먼저 잠입해야 하는데 마땅히 방법도 없고.
 휴우······.
 그렇게 깊게 한숨을 내쉬던 나. 그런 나의 뒤에서 왠지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제라스냐?”
 난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렇게 말했고, 그 말에 친절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렇다.”
 “조금 더 매끄러운 대화는 안 되겠니?”
 “그럴 필요성이 없다.”
 역시 이 미묘한 언어의 장벽.
 시간이 갈수록 더욱 깊어진다.
 레나도 제라스를 만나더니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했다.
 “제라스 씨, 안녕하세요.”
 “그렇다.”
 “······.”
 이 아저씨, 정말 뇌 구조가 궁금하다.
 레나 같은 초미소녀가 반갑게 인사하는데 대답이 그렇다가 끝이라니······.
 그리고 왠지 그 대사가 나올 장면은 아닌 것 같네만?
 휴, 저놈에게 뭘 바라는 내가 잘못이지.
 ―오우, 나의 베이비.
 ―꺅!
 ―이리 와!
 ―시, 싫어! 오지 마!
 ―가까이 와, 내 걸.
 ―싫어, 싫어! 제라스, 쟤 좀 어떻게 해 봐!
 ―후훗, 귀여운 것!
 어느새 나에게 벗어나서 제라스의 검 엘리에게 집적거리고 있는 홀락. 그리고 그런 상황에 도움을 요청하는 엘리지만 난 제라스의 대답을 알 것 같다.
 ‘잘해 보도록.’
 “잘해 보도록.”
 ―너무해!
 역시 내 예상은 적중했다.
 엘리는 너무하다는 듯 소리를 질렀지만 제라스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펜들이나 마검 홀락의 정신세계도 궁금하기는 하지만, 이분 정신세계도 궁금하다. 심히.
 “헬로!”
 한편 나를 매수해서 우리 동료가 된 제킨은 반갑다는 듯 제라스를 향해 인사했고, 제라스는 궁금한 듯 물었다.
 “넌 누구지?”
 “난 갑자기 지나가던 천사 1인!”
 그 말에 나를 본 제라스는 내게 참으로 충격적인 한마디를 내던졌다.
 “너는 이상한 애들을 좋아하는가 보군.”
 “······.”
 절대 아니야!
 “그나저나 제라스, 여기에는 웬일이냐?”
 “일이 있다.”
 “그래?”
 “그렇다.”
 아, 이분과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분이 존재한다면 평생 존경하겠다.
 어떻게 대화가 이렇게 이어지지 않는 거지? 과연 이런 현상이 인간적으로 가능한가 말인가?! 흐음.
 ―엘리, 엘리!
 ―오지 마!
 ―하아, 하아, 하아!
 ―꺅! 변태적인 소리도 내지 마!
 ―좋으면서! 훗.
 ―내가 미쳤어?! 그런 변태적인 소리를 좋아하게!
 ―넌 나의 모든 걸 좋아하잖아!
 ―난 너의 모든 걸 싫어해!
 그때 티격태격하면서 추격 신을 벌이는 홀락과 엘리.
 엘리는 도망가고 그 뒤를 홀락이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쫓아다닌다. 저 정도면 스토커 수준을 넘어섰다.
 완전 미친놈 수준이지.
 그 모습을 무표정하게 바라본 제라스가 조용히 말했다.
 “멋지군.”
 어딜 봐서?
 어디를 봐서 저게 멋지다는 소리가 나오는 거냐?! 아무리 긍정적으로 새롭게 봐도 그런 단어는 절대 떠오르지 않는데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얘도 정상은 아니야. 흐음.
 그때 제라스는 나를 빤히 바라봤다.
 “왜?”
 “스테리아랑 싸웠나?”
 “뭐, 조금.”
 “네 목에 돈이 걸렸다.”
 “호오?”
 “스테리아가 너를 죽이고 네가 가지고 있는 붉은색의 보석을 가지고 온다면 5,000만 골드를 지급한다고 했다.”
 “재밌네.”
 “긴장되지 않는가?”
 “별로.”
 “그런가?”
 “물론. 오기만 해 봐. 다 갈아 버릴 거야.”
 “각오 하나는 좋군. 그나저나 넌 이 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태겠군.”
 “빙고.”
 난 제라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긍정했다.
 이렇게도 내 상태를 잘 알아주시다니, 왠지 모르게 감격적이다. 그때 제라스는 내게 엄청난 한마디를 던져 주었다.
 “마리스 제국 안으로 갈 수 있는 비밀 통로를 알고 있다.”
 “지, 진짜?”
 “그렇다.”
 “그, 그럼 나 좀 거기로······.”
 “상관없다. 따라와라.”
 그 말과 함께 터벅터벅 어딘가로 떠나시는 제라스.
 음, 항상 말은 저렇게 하지만 은근히 도움을 주는 제라스라니까. 고마워라.
 
 끼이익.
 제라스는 바닥에 있는 철문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퍼져 나오는 그윽한(?) 향기.
 이, 이건?!
 “쓰레기 하수구다.”
 “······.”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심히 난감하다.
 “이곳으로 가면 제국 안에 있는 쓰레기 분리소에 도착할 수 있다.”
 “저기, 제라스 군.”
 “······?”
 “좀 더 평범한 루트는 없을까?”
 “없다.”
 “······.”
 “이곳이 전부다.”
 그렇게 잘라서 말하면 내 여린 마음이 상처받잖아! 아, 씨.
 
 “레나랑 제킨은 성문으로 들어가. 어차피 둘은 문제없으니까.”
 “저도 오빠랑 같이 갈게요.”
 “아니야, 레나야. 이런 곳에 너를 들여보내면 마음이 편하지 않아.”
 “······.”
 “제라스, 레나 좀 부탁해도 되지?”
 “알겠다.”
 항상 말은 적고 대화에 미묘한 벽이 있기는 하지만 제일 믿음직스러운 것도 제라스다. 걱정할 필요 없다.
 여기서 문제는 내가 저 쓰레기 하수구를 뚫고 제국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거. 흐음.
 “주인, 수고해.”
 ―그려, 그려.
 그때 갑자기 내게 수고하라고 말하는 펜들과 홀락.
 난 그 말에 두 자식을 움켜쥐며 물었다.
 “무슨 개소리니?”
 “······.”
 ―······.
 “너희들도 가야지.”
 “마, 말도 안 돼! 내가 왜 가!”
 ―마, 맞아. 나도!
 쓰레기 하수구로는 가고 싶지 않았는지 그렇게 말하는 검 하나와 미생물체 하나. 난 그들을 보고 화사한 미소와 함께 살짝 협박을 가했다.
 “조용히 갈래, 시끄럽게 갈래?”
 “······.”
 ―······.
 “대답해.”
 “조, 조용히 갈게.”
 ―동의.
 꼭 이런 폭력적인 말을 써야지 알아듣는다니까, 얘들은.
 “근데 여기서 물어볼 게 있는데요.”
 “뭐냐?”
 그때 천사라 사칭하고 다니는 제킨이 의아한 듯 물었고, 난 그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제킨은 말했다.
 “왜 거기로 가요?”
 “갈 데가 없잖아.”
 “하늘로 가면 되잖아요.”
 “미안한데, 마법사 없거든? 그리고 있어도 마나 때문에 플라이 마법은 걸린단다.”
 “날개로 날면요.”
 “새도 없는데? 넌 왜 갑자기 나와 개소리냐?”
 난 제킨의 미친 소리에 안 그래도 짜증이 나 있는 마당이었기에 그렇게 말했고, 그 말에 제킨은 오른손을 번쩍 들더니 외쳤다.
 “전 날 수 있습니다!”
 풋.
 날 수 있데. 지가? 뭔 수로?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막힌다. 차라리 개가 비상한다는 말이 더욱 신빙성이 있다. 그렇게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제킨을 바라볼 때였다.
 파아앗!
 “······.”
 등 뒤로 펼쳐지는 하얀색의 날개.
 상당히 크다. 꼭 천사들이 사용하는 날개······.
 “전 천사입니다.”
 분명 전에도 저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가 천사라고 말이다. 그뿐 아니라 방금 전에도 제라스에게 자기가 천사라고 소개했다.
 난 그 말을 오직 개소리로 치부했다. 아니, 개소리조차도 과분했다. 개를 모욕하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런데 정말 천사라니?!
 아니, 잘 생각해보니 저 날개만으로 천사라고 단정 짓기는 그렇잖아? 저 날개가 가짜일 확률도 배재할 수 없으니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 날개의 진실 여부를 밝히기 위해서 제킨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 날개를 이리저리 살펴본다.
 ······진품이었다.
 완전 진품 명품이다.
 즉, 저 자식은 진짜 천사였다.
 
 이렇게 간편할 수가!
 난 제킨의 도움으로 그냥 날아서 성을 넘었다.
 정말 멋지다!
 “제킨, 너 정말 천사였구나.”
 “그렇습니다. 음하하하.”
 “근데 왜 그렇게 바람둥이인 거냐?”
 “천사도 여자 좋아합니다.”
 “······.”
 “천사도 요새는 웰빙 시대에 맞춰 가거든요.”
 웰빙과 바람둥이의 상관관계가 심히 궁금하다. 그 둘의 관계가 실질적으로 있기는 있는 걸까? 아무리 봐도 없는 것 같은데, 흐음.
 “어찌 됐든 이걸로 제가 천사라는 건 확실히 밝혀졌습니다!”
 그래 확실하게 밝혀지기는 했다.
 그런데 밝혀지니 더 충격적이다. 차라리 몰랐으면 했는데, 흐음.
 “음하하하하!”
 자아도취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제킨.
 그리고 그걸 보고 왠지 모르게 나락으로 빠지는 기분을 경험하는 나. 슬프군.
 자자, 신경 쓰지 말자.
 저런 놈을 신경 쓸 바에는 마리스 제국 성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이나 생각하는 게 효율적으로 생각해도 1억 5천만 배 낫다.
 그나저나 제킨 덕분에 마을 안까진 쉽사리 들어왔지만 성안은?
 날개로 쉽사리 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뭔가 좋은 방법 없나?”
 그렇게 곰곰이 고민에 잠기던 나.
 그런 나의 등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좋은 방법을 제안해도 되겠습니까, 파멸의 데스티니님?”
 나는 거의 빛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어느새 뽑혀져 있는 홀락.
 홀락의 칼끝은 내 등 뒤의 목을 가리키고 있었다.
 “요오, 역시 대단하시군요. 스테리아님이 두려워하시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후훗.”
 스테리아라.
 저 자식은 나의 정체를 알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미소의 스테리아를 스테리아님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결론은······.
 “스테리아가 보낸 거냐?”
 “그렇습니다. 후훗.”
 “······.”
 “정중히 모셔 오라고 하시더군요.”
 “정중히라······.”
 “가시지 않겠습니까?”
 내 앞에 있는 20대 초반의 남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고, 난 그 모습을 보고 홀락을 그대로 검집에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안내해.”
 “오빠.”
 한편 레나는 걱정스러운 듯 나를 불렀고, 난 그런 레나에게 미소를 지어 주면서 말했다.
 “괜찮을 거야.”
 “저, 저도 따라갈게요!”
 레나는 그 말과 함께 나와 함께 가려고 했고, 그 순간 스테리아의 심복으로 보이는 남자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안 됩니다. 출입이 가능한 건 파멸의 데스티니님뿐이거든요.”
 “······.”
 뭐? 나만 출입이 가능하다고?
 이 자식, 한번 해보자는 거냐? 그래, 원하던 바다.
 난 제라스와 제킨을 한 번 본 뒤 말했다.
 “제라스, 제킨. 레나를 부탁해.”
 “······.”
 “알았습니다!”
 제킨만 대답하고 제라스는 대답이 없었지만, 제라스는 저게 긍정이다.
 그러니 뭐 상관없겠지.
 “그럼 안내해 드리죠. 후훗.”
 누가 미소의 스테리아의 심복 아니랄까 봐 웃는 꼬락서니도 동일하다.
 재수 없는 웃음 말이다.
 
 터벅터벅.
 나는 천천히 내 앞에 있는 남자를 뒤따라갔다.
 인적이 없는 엄청난 넓이의 공터였다.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는 공터.
 그나저나 역시 성안에서는 나를 별로 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건가? 그게 뜻하는 것은 바로 이거겠지.
 스르륵
 스르륵.
 스르륵.
 순식간에 내 주변을 둘러싸는 수천 명의 기사들.
 저번보다 강하다.
 그뿐만이 아니라 숫자도 많다. 대략 다섯 배 정도······.
 짝짝짝.
 “환영합니다, 파멸의 데스티니님.”
 그때 박수 소리와 함께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나타났다.
 한 남자는 미소의 스테리아 놈이고, 한 여자는 현경이다. 그녀는 나를 마주 보지 못한 채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있었고, 그에 반해 스테리아는 나를 구워 먹을 듯 이글대는 눈빛이다.
 “정말 저번에······ 후회했습니다.”
 “뭐가?”
 “당신을 건든 것을 말입니다.”
 “그럼 또 후회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아니죠. 이번에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절대 말입니다.”
 야,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 튀어나오는 거냐? 나를 겹겹이 둘러싼 기사들? 물론 강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인원으로는 나를 죽일 수 없다는 건 제일 잘 알 텐데, 스테리아.
 그 순간 스테리아는 내게 기분 나쁜 미소를 지은 채 손 두 배만 한 크기의 붉은색 판때기를 내밀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선물은 안 좋아하는데?
 “이게 뭔지 아십니까?”
 “별로 관심 없어서 말이다.”
 “후훗, 들어는 보셨습니까?”
 “뭐를······.”
 “귀갑이라고 말입니다.”
 귀갑?!
 설마 란젠 형이 말한 그 귀갑?!
 자신의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물건이자 엄청난 가격의 주인. 그뿐 아니라 귀갑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15살 미만의 소녀의 피가 필요한 아주 재수 없는 물건이다.
 그 귀갑을 저 자식이?!
 “이걸 가지기까지 아주 힘들었습니다, 후훗.”
 그 말과 함께 그 붉은색의 판때기를 자신의 몸에 갖다 대었다.
 그러자······.
 츠츠츠츠츠.
 이상한 소리와 함께 붉은색의 갑옷이 그의 몸에서 완성됐다.
 이게 무슨 변신물도 아니고, 갑자기 판때기가 갑옷이 되다니! 혼동되잖아!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난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엄청나군!”
 말 그대로 엄청났다.
 왜 귀갑이라는 물건을 란젠 형이 조심하라고 했는지 이제야 그 의미가 제대로 파악이 됐다.
 물론 스테리아는 강하다. 하지만 저렇게 강하지는 않았다.
 온몸이 떨릴 정도로 강하다니, 이거야 원.
 “훗. 느껴지십니까, 제 힘이?!”
 “글쎄올시다.”
 아주 팍팍 느껴짐에도 불구하고 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고, 그 말에 스테리아는 더욱더 진한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는 정보를 가르쳐 드릴까요?”
 “······?”
 “버서커, 크레니아님이 와 계십니다.”
 “크레니아 자식이?”
 “그렇죠. 크레니아님이 말입니다. 초대한다고 좀 힘들었답니다. 후훗.”
 “너 설마?!”
 “그래요. 특별히 레나님과 제라스님에게 보냈습니다. 레나님이 있다면 제라스님이 크레니아님을 이길 수 있죠. 하지만 저희도 크레니아님만 보낸 게 아닙니다. 우리 정예의 기사 수백 명도 함께 보냈거든요.”
 “······.”
 크레니아, 랭킹 12위에 달하는 놈이다.
 내가 저번에 제라스는 뛰어난 전투 능력으로 자신보다 레벨이 높은 유저를 곧잘 이긴다고 했는데, 이놈도 마찬가지다.
 완전 싸움을 위한 존재다.
 그런 존재와 정예의 기사 수백 명이면 제라스와 레나의 힘으로 막아 낼 수 없다.
 그때 미소와 함께 들려오는 스테리아의 말.
 “후훗. 그럼 4,000명의 피로 얼룩진 귀갑의 힘을 볼까요?”
 4,000명! 저 귀갑 하나에 4,000명 여자 아이들의 피가 들어간 거냐? 스테리아, 웬만해서는 그냥 넘어가고 싶었다만, 너 정말 짜증난다.
 그리고, 나 말고 레나와 제라스까지 같이 공격했다는 점이 더욱 더 나를 짜증나게 한다.
 “시작하죠.”
 그 말과 함께 사라진 스테리아.
 “······!”
 빠르다. 제길!
 콰앙!
 “우욱!”
 어느새 내 배에 강하게 봉을 찔러 넣은 스테리아. 그리고 엄청난 충격파와 폭발로 이미 나에게 데미지를 준 상태다.
 이 자식.
 주르륵.
 단 한 방에 내 입에서 흘러내리는 피.
 그걸 본 스테리아는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이거, 이거 정말 좋은데요. 파멸이라고 불리는 데스티니님의 피를 제가 직접 보게 만들었으니까 말입니다.”
 “좋냐?”
 “······?”
 “내 피가 그리 좋냐?”
 “훗, 그렇습니다.”
 저질 새끼, 좋아할 게 없어서 내 피를 좋아하나.
 난 그런 생각과 함께 내 배에 꽂힌 봉을 그대로 잡았다. 그리고 그 봉을 밀쳐 내면서 그대로 홀락을 집었다.
 싸늘한 표정으로.
 “그거 아냐?”
 “······?”
 “파멸이라는 이름이 가진 또 다른 의미를 말이야.”
 “······.”
 ―서, 설마 주인!
 “아, 안 돼! 주인, 진정! 진정!”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난리치는 홀락과 펜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못 넘어간다.
 난 그대로 내 팔목에 찬 은빛 색깔의 고리를 향해 손을 가져갔다.
 ―주, 주인! 진정하라니까!
 “그, 그래! 정말 아니야! 나 정말 욕 들어먹는다고!”
 ―우, 우리 원만하게. 아임 유월 닷컴?
 어이, 홀락. 영어 틀렸어.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원만하게’라는 단어는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네만.
 “펜들, 뒤처리 부탁.”
 “아, 안 돼!”
 난 펜들의 절규를 무시하고 은빛의 팔찌 고리를 열었다.
 그와 함께 내 몸을 감싸는 힘.
 오랜만인데?
 “제, 젠장, 엿 됐다! 크레이스 존을 설치해도 크레이스 존 자체가 다 파괴되는데 나보고 무슨 수로 하라는 거야!”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