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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최강 :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E](종료230804)

최강 : 신이라 불리는 사나이 1권 (1)

2019.09.24 조회 9,576 추천 59


 # 프롤로그
 
 
 
 
 
 
 
 
 
 
 힘만 있다면,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옳은 것이 언제나 그릇된 것을 이겨 내는 그런 세상으로 말이다.
 
 
 
 
 # 버러지
 
 
 
 
 
 
 
 
 
 
 최강은 반년만 지나면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대학에 진학할 형편은 되지 않아 곧장 취업 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
 이미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랄까.
 키 170에 몸무게 50킬로.
 누가 봐도 재수 없게 생겼다고 평가하는 외모.
 게다가 성격은 내성적이다 못해 소심하기까지 했다.
 조물주는 그것조차 최강에게는 축복이라 생각했는지, 잔인한 형벌을 내리듯 부모에게 버림받도록 만들었다.
 추운 겨울, 쓰레기 더미에 버려진 그를 할머니가 발견해서 지금까지 키워 주셨다.
 초등학교 때는 버림받은 자식이라고 놀림당하며 지냈고, 중학교 올라가서는 학교 불량 서클에게 찍혀 3년 동안 시달렸다.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의 외면은 당연했다.
 이제 최강에게는 폭언과 갈굼, 갈취는 익숙하기까지 했다.
 악으로 버티며 사는 그에게 힘이 되어 주는 사람은 할머니인 김복순 여사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버림받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자 등대 같은 존재였다.
 오늘도 그는 학교를 마치자마자 곧장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서울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고물상들이 줄줄이 들어서 있었다.
 해 질 무렵이 되면 그곳에 나이 든 어르신들이 수거한 고물들을 제각각 무언가에 실어서 가지고 왔다.
 그들 중에는 최강의 할머니인 김복순도 포함되어 있었다.
 고물상 사장은 저울에 나온 무게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라? 70킬로밖에 안 되네요?”
 “씨가 말랐어.”
 김복순은 인상을 찡그렸다.
 한동안 비가 내려서 집 안에만 있었는데, 그사이 다른 사람들이 몽땅 가져가 버린 것이다.
 “50원씩 계산해서 3,500원 드릴게요.”
 “뭐야? 저번 주에 60원에 쳐줬잖아?”
 “그런 말씀 마세요. 다른 분들은 45원 쳐주는 거 제가 특별히 생각해서 50원 쳐주는 겁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은 하지도 마!”
 김복순은 성질을 버럭 내며 낚아채듯 돈을 받아 갔다.
 그녀가 리어카를 끌고 고물상을 나서려는 그때, 저 멀리서 최강이 손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할머니!”
 “오, 내 새끼 왔어?”
 “잠시만요!”
 최강은 사무실로 가더니 등에 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쿵!
 묵직한 소리가 났다. 고물상 사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가방 안에 뭐냐?”
 “오다가 쇳덩이가 보여서······.”
 “그래?”
 그는 가방 안에 든 것을 꺼내 보았다.
 “오, 이거 스텐이잖아.”
 “그래요?”
 “무게는 얼마 안 나가겠지만, 그래도 폐지보단 훨씬 낫지.”
 스텐을 저울에 올려놓았다.
 8킬로가 조금 넘었다.
 “음, 보자······. 생활 스텐이 킬로당 900원이니까 7,200원이네.”
 고물상 사장은 주머니에서 돈뭉치를 꺼내더니 최강에게 1만 원을 줬다.
 “어······?”
 “착해서 특별히 운송비까지 계산해 줬다.”
 “감사합니다.”
 최강은 소심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잽싸게 김복순에게 다가가 1만 원을 내밀었다.
 “할머니, 여기.”
 “에구, 나보다 우리 손주가 훨씬 낫네. 박 사장, 고마워!”
 고물상 사장에게 투덜거리던 김복순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최강과 함께 고물상에서 나왔다.
 둘은 집으로 가면서 고물상에 팔 수 있는 물건이 거리에 나와 있으면 리어카에 실었다.
 산동네 비탈길을 오를 때면 언제나 최강이 앞에서 리어카를 끌고 김복순이 뒤에서 밀었다.
 집에 도착한 최강은 대문 옆에 리어카를 세워 놓고, 김복순과 함께 마당에 들어섰다.
 둘은 무척 뿌듯해하며 평상에 앉았다.
 “할머니, 고생하셨어요.”
 “내가 뭘 고생했다고. 고생은 네가 다 해 놓고.”
 “조금만 참으세요. 제가 내년부터는 취직해서 호강시켜 드릴 테니까요.”
 “말만 들어도 배불러.”
 김복순은 대견스럽다는 듯이 최강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러고는 저녁을 준비하러 집으로 들어갔다.
 평상에 혼자 남은 최강은 어두컴컴해진 하늘을 쳐다보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오늘도 욕설과 폭력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
 할머니 앞에선 애써 밝은 표정을 짓고 있지만, 어렴풋이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언젠가는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래도 할머니를 위해서 어떻게든 무사히 졸업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근데 참 쉽지가 않았다.
 최강이 하늘을 쳐다보며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쉴 때였다.
 하늘에서 유성이 떨어졌다.
 “우와!”
 TV에서 몇 번 보긴 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라 계속 떨어지더니 급기야 집 뒤쪽에 있는 산에도 떨어졌다.
 다른 건 몰라도 호기심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최강이었기에 재빨리 유성이 떨어진 곳으로 달려갔다.
 
  * * *
 
 최강은 어두운 산속을 누비며 유성이 떨어진 곳을 찾아 헤맸다. 평소 생각이 많아지면 혼자서 자주 찾던 등산로였기에 산길이 무섭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간만에 호기심이 발동되어선지 눈을 반짝이며 돌아다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멀찍이 보이는 큰 바위 너머로 매캐하고 뿌연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최강은 재빨리 바위 쪽으로 다가가 뒤쪽을 살펴보았다.
 땅이 움푹 파여 있었고, 주변에는 형태를 알 수 없는 물체들이 보였다. 연기는 그것들에서 나고 있었다.
 보통 이런 낯선 상황이면 겁이 날 만도 한데 최강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연기가 나는 것들에 성큼성큼 다가가 조심히 살펴보았다.
 금속으로 보이는 재질의 그 물체는 이미 시커멓게 타 버려서 고물상에 가져가도 받아 주지 않을 것 같았다.
 널브러진 것들을 살펴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은색 가방처럼 보이는 물건의 벌어진 틈 사이로 초록색 빛이 반짝거렸다.
 “뭐지?”
 최강은 재빨리 가방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때마침 옆에 있던 부러진 나무를 들어서 가방을 열어 보았다.
 “어?”
 가방 안에는 커다란 유리병처럼 생긴 것에 초록색으로 빛나는 뭔가가 담겨 있었다.
 이 상황이 마치 SF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하지?”
 최강이 잠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쩌어쩍-!
 갑자기 유리병에 금이 가더니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수증기는 최강의 얼굴을 덮쳤고, 그는 그대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두르르르.
 휴대폰 벨소리가 산속에 울렸다.
 의식을 잃었던 최강의 입에서 나직한 침음이 흘러나왔다.
 “으으······.”
 그는 머리가 마치 바늘로 쑤시는 것처럼 지끈거리자 엄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면서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제일 먼저, 깨진 유리병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주변 어디에도 의식을 잃기 전에 본 초록색으로 빛나는 무언가는 보이지 않았다.
 액체라고 생각했는데 기체가 들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병이 깨지면서 모두 빠져나간 것으로 보였다.
 자신의 머리가 아픈 게 정체 모를 수증기를 쐐서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아 일어서려고 할 때, 또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최강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확인했다.
 액정이 박살 나 있었지만, 자신에게 전화를 하는 건 어차피 한 사람밖에 없었다.
 “네, 할머니······.”
 -밥도 안 먹고 어디 간 겨?
 “잠깐 뒷산에 올라왔어요.”
 -밤에는 산에 올라가는 게 아니라고 했잖아! 어서 내려와!
 “네.”
 김복순의 호통에 최강은 얼른 전화를 끊고 산에서 내려갔다.
 
 그 시각.
 생명공학 기업으로 유명한 미국의 ‘바이오 맥슨’사의 우주탐사선이 5년간의 임무를 끝마치고 지구로 돌아오던 중 대기권에서 폭발했다는 소식에 핵심 간부들은 망연자실했다.
 표면적으로는 우주탐사선이었지만, 그곳에서는 불법적인 연구를 진행했고, 긴 기다림 끝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돌아올 예정이었다.
 연구에 참여했던 인재들이 모두 사망한 건 물론,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결과물들도 모두 사라졌다.
 다들 자포자기한 상태였지만, 샘플을 넣은 보관한 가방 중 몇 개에서 위치 추적 장치가 작동하고 있다는 소식에 한 가닥 희망을 품었다.
 이에 조사단을 꾸려서 아시아 전역에 긴급 투입했다.
 
  * * *
 
 “강아, 학교 가야지!”
 김복순은 평소 때와 다름없이 아침을 준비하면서 최강을 깨웠다.
 그런데 오늘따라 반응이 없는 것이 뭔가 이상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에 들어가 보았다.
 “학교 안 갈 겨?”
 “······.”
 “강아?”
 김복순은 옆으로 누워 있는 그를 흔들었다.
 “헉!”
 몸이 불덩이였다.
 그녀는 재빨리 최강을 바로 눕혀 보았다.
 얼굴에는 식은땀이 비 오듯이 흘렀고, 몸은 얼마나 뜨거운지 방 안 가득 열기가 느껴졌다.
 그녀는 황급히 밖에 나가서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왔다.
 그러고는 최강이 덮고 있던 이불을 걷고 수건에 물을 적셔 그를 닦아 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김복순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수건으로 최강의 몸을 닦아 주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났다.
 임시방편으로 몸의 열은 낮췄지만, 병원에 데리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녀가 최강의 몸을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강아, 눈 좀 떠 봐.”
 “으으, 할머니······.”
 “그래, 정신이 좀 들어?”
 “모, 목이······.”
 “목이 왜? 물 좀 줄까?”
 최강이 오만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얼른 물을 가지고 와 건네줬다.
 최강은 몸을 일으켜 벌컥벌컥 마시더니 단숨에 물 한 잔을 비워 버렸다.
 “하아······.”
 “좀 어때? 괜찮아?”
 김복순은 최강이 잘못되면 어쩌나 싶어 눈가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최강은 다시 드러누우면서 말했다.
 “너무······ 아파요.”
 “이러지 말고 병원에 가자.”
 “기운 좀 차리면······ 그때 가요.”
 “괜찮겠어?”
 “예. 좀 잘게요.”
 최강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눈을 감자마자 순식간에 잠들었다.
 김복순은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날, 그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건으로 최강의 열을 식혀 주다가 지쳐 잠들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
 최강은 김복순이 지극정성으로 간호한 덕에 열은 가라앉았다. 파리했던 혈색도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고, 색색거리던 숨소리도 진정되어 갔다.
 그렇게 안정을 찾아가는 듯싶더니, 갑자기 머리가 옅은 초록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 빛은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잠시 후.
 최강의 온몸에서 강렬한 초록 빛이 뿜어졌다.
 집 안은 마치 대낮처럼 밝게 빛났지만, 종일 최강을 걱정하며 간호하느라 지쳐 깊은 잠에 빠진 김복순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상 징후는 해 뜰 때까지 지속되다가 사라졌다.
 
  * * *
 
 “강아!”
 김복순이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그녀는 재빨리 최강의 머리에 손을 얹어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열은 없는 것 같았다. 혈색도 많이 좋아진 것 같아 마음이 한결 놓였다.
 김복순은 세숫대야를 밖에 내놓고 최강이 깨어나면 먹이려고 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밖에서 들리는 도마 소리에 최강이 잠에서 깼다.
 “어으우-.”
 그는 기지개를 활짝 켰다. 모처럼 잠을 푹 잔 것 같아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최강은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헉, 지각이다!”
 그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김복순은 방에서 최강이 뛰쳐나오자 화들짝 놀랐다.
 “강아!”
 “할머니, 왜 안 깨웠어요? 지각이잖아요.”
 최강이 투덜거리며 씻으러 나가려고 하는 걸 김복순이 붙잡았다.
 “괜찮아?”
 “네에?”
 “이제 안 아프냐고?”
 “제가 아팠어요?”
 최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복순은 그를 다시 방으로 데려와 앉히며 물었다.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무슨 일이 있었어요?”
 “정말 아픈 데는 없고?”
 “네.”
 “천만다행이다.”
 김복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어제 하루 내내 그가 끙끙 앓은 사실을 말해 줬다.
 최강은 깜짝 놀라며 자신은 전혀 그런 줄 몰랐다고 말했다. 자기 때문에 마음 졸이며 밤새 걱정했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걱정 많이 하셨죠.”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죄송해요······.”
 “뭐가 죄송해? 사람이 아플 수도 있는 거지.”
 “······네.”
 “어여 씻어. 학교 가야지.”
 김복순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주방에서 하던 일을 계속했다. 최강은 김복순이 정성스레 만들어 준 죽을 다 먹은 후 집을 나섰다.
 
 다행히 1교시가 시작하기 전에 최강은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때마침 1교시가 담임 선생님 수업이었다.
 배기석은 최강을 보더니 무뚝뚝하게 물었다.
 “너 어제 왜 안 나왔어?”
 “아팠습니다······.”
 “그럼 연락을 해야지.”
 최강은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폰이 고장 나서······.”
 “쯧쯧.”
 배기석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책을 펼치며 수업을 진행할 뿐이다.
 아파서 결석했다는 최강에게 몸은 괜찮냐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 역시 최강이 교실에 들어섰을 때, 마치 벌레 보듯이 쳐다보기만 할 뿐, 어제 결석한 것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강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고 덤덤할 뿐이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자, 최강은 교실에서 나와 황급히 어디론가 이동했다.
 그가 간 곳은 건물 뒤편에 있는 소각장이었다.
 십여 명의 아이들이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불량 서클인 ‘블랙 타이거’의 애들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최강을 발견했다.
 “저기 족제비 오네.”
 족제비처럼 생겼다 하여 최강에게 붙은 별명이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최강에게 향했다.
 “야, 누가 걸어오래?”
 “아······.”
 최강은 순간 움찔하더니 뛰어갔다.
 “야, 누가 뛰래!”
 “어, 어? 그럼······.”
 “버러지답게 기어 와.”
 ‘아.’
 최강은 얼른 바닥에 엎드려 개처럼 기어갔다.
 한 대라도 덜 맞으려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야 했다.
 행여나 반항이라도 하면 거의 죽이다시피 두들겨 팼기 때문이다.
 최강이 그들 앞에 도착하자, 블랙 타이거의 보스인 한상원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최강은 그의 앞까지 기어갔다.
 한상원은 최강의 머리에 담뱃재를 떨면서 물었다.
 “어제 결석했다면서?”
 “어? 어······.”
 “왜? 우리 뒤치다꺼리하기 싫디?”
 “그, 그게 아니라······ 아파서······.”
 “아이고, 그랬어요? 우리 족제비 님께서 아프셨어요.”
 한상원은 한껏 비아냥거리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발로 가차 없이 최강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퍽!
 “커억!”
 최강은 숨이 턱 막히는 고통에 바닥을 뒹굴었다.
 “이 새끼야, 네가 학교에 안 나오면 우리 점심은 누가 챙겨? 자칫 잘못했으면 어제 몽땅 굶을 뻔했잖아.”
 한상원은 개 잡듯이 최강을 짓밟았다.
 함께 있는 애들은 마치 불구경하듯 최강을 비웃으며 쳐다보았다.
 최강의 몸이 걸레짝이 되어 가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 든 비닐에는 과자와 음료수로 가득했다.
 어제 최강이 결석한 바람에 그 대신 대타를 뛰게 된 남경수였다.
 남경수는 그들에게 비닐봉지를 건네며 말했다.
 “얘기한 거 모두 사 왔어.”
 “이야, 우리 경수 일 좀 하는데?”
 블랙 타이거의 이인자인 박계남이 씩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뭐, 이 정도는······.”
 남경수도 우쭐하며 코끝을 매만지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최강을 발견했다.
 “어!”
 “어제 아파서 결석했단다.”
 한상원이 박계남에게 음료수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남경수가 최강을 쳐다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자, 한상원이 비릿한 미소를 띠었다.
 “이놈이 할 일을 네가 대신하고 있으니까 열 받나 본데?”
 “상원아, 아니 보스!”
 “······?”
 한상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 저 새끼 좀 패면 안 될까?”
 “네가?”
 “저 새끼 낯짝을 보니까 미칠 것만 같아서 말이야.”
 “그래?”
 한상원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뭔가 재미난 생각이 떠오른 듯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너 블랙 타이거에 가입하고 싶다고 했었지?”
 “어.”
 “들어올래?”
 “정말?”
 남경수의 눈이 번쩍 커졌다.
 블랙 타이거의 일원만 되면 앞으로 학교생활은 활짝 핀 거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한상원은 최강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 녀석 팔다리 중 하나를 부러뜨려 봐. 그럼 널 블랙 타이거 일원으로 받아 줄 테니까.”
 “뭐?”
 남경수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 정도 강단은 있어야지. 안 그래?”
 한상원은 주위를 둘러보자, 애들이 수긍하는 표정으로 한마디씩 했다.
 “당연하지.”
 “그 정도 배포가 있어야 애들이 널 두려워할 거 아냐.”
 “블랙 타이거에 들어오고 싶으면 해 보라고.”
 “우리한테 보여 줘 봐, 네가 어떤 놈인지.”
 “남경수, 할 수 있다!”
 다들 남경수를 부추겼다.
 남경수는 그들의 말을 듣자 두려움이 옅어지면서 이유 모를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 나도 이제 당당해질 때가 됐지.”
 그는 최강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머리맡에 쪼그려 앉았다.
 “으으······.”
 최강이 고통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자, 남경수는 그의 뺨을 후려쳤다.
 쫘악-.
 “눈 깔아, 이 새꺄.”
 “오우.”
 지켜보던 애들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한상원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남경수는 최강의 머리칼을 꽉 움켜쥐고 머리를 뒤로 꺾었다.
 “읔!”
 “잘 들어, 새꺄. 버러지한테는 결석할 자유도 없어. 아파도 나와야 한다고. 알았냐?”
 “으으······.”
 “어제 네놈이 결석해서 우리 보스 점심 거를 뻔한 것, 내가 응징할 테니까 그런 줄로 알아.”
 남경수는 최강의 머리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퍽!
 “으아악!”
 최강이 비명을 질렀다.
 반면 블랙 타이거 일원들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의기양양해진 남경수에게 주저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소각장으로 가서 벽돌 하나를 집어 왔다.
 그러고는 벽돌로 최강의 오른팔을 내리찍었다.
 빠각!
 둔탁한 소리와 함께 최강의 비명이 터졌다.
 “으아아아!”
 “키키키.”
 남경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으면서 한상원에게 다가갔다.
 “이제 받아 주는 거야?”
 한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애들에게 말했다.
 “야, 이제부터 이 자식도 우리와 함께한다. 잘 챙겨 줘라.”
 “알았어.”
 박계남이 다가와 남경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들이 블랙 타이거의 새 식구를 축하하는 동안, 최강은 바닥을 뒹굴며 고통스러워했다.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끝나 가자 한상원은 최강에게 다가와 부러진 팔을 쳐다보았다.
 “어이구. 이를 어째? 병원에 가 봐야겠네.”
 “제, 제발······.”
 “경수야.”
 “어.”
 남경수는 재빨리 다가와 옆에 섰다.
 “이 녀석 양호실에 데려다줘.”
 “내, 내가······?”
 “계단에서 굴렀다고 해.”
 한상원은 최강과 눈을 맞추며 말을 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했다간 알지?”
 최강은 겁에 질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어두웠던 남경수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남경수의 부축을 받고 양호실로 간 최강은 곧장 근처 병원으로 옮겨졌다.
 
 최강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곧장 집으로 왔다.
 김복순은 폐지를 주우러 나간 것 같았다. 최강은 평상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멍하니 하늘만 보던 그가 흐느끼더니 이윽고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분하고 화가 났다.
 애초에 부모에게 버림받았을 때 죽었어야 하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운명을 거역했기에 이런 고난을 받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죽고 싶었다. 하지만 할머니를 생각하면 차마 그럴 순 없었다.
 자신이 세상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그 하나이듯이, 그녀도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 최강 하나였다. 그녀 역시 세상에 혼자 남았기에.
 그래서 자신은 둘째 치더라도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악착같이 살아야 했다.
 최강은 울먹이며 속으로 외쳤다.
 자신과 할머니를 지킬 힘을 가질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겠다고.
 제발 도와 달라고.
 그렇게 속으로 울분을 토하던 그는 울다 지쳐서 잠들었다.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화창하고 맑았다.
 햇살이 마당에 드리워지더니 최강에게 내리쬐었다.
 햇빛에 반사된 최강의 몸이 밝게 빛났다.
 그런데 햇빛에 반사되어 빛나는 것이라 보기에는 너무 강렬했고, 연초록빛을 띠는 게 예사롭지가 않았다.
 
 해 질 무렵.
 김복순이 끙끙거리며 마당에 들어섰다.
 최강이 고물상에 오지 않아 혼자서 리어카를 끌고 올라온 그녀였다.
 김복순은 평상에 누워 있는 최강을 발견했다.
 “언제 왔어? 강아!”
 그녀는 최강이 팔에 깁스를 한 걸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지며 다가왔다.
 그녀의 소리에 최강은 눈을 비비며 깨어났다.
 “할머니······.”
 “어쩌다 이렇게 됐어?”
 “아, 계단에서 굴렀어요.”
 “이 녀석아!”
 속상한 김복순은 그의 등짝을 때렸다.
 “으윽.”
 최강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녀가 깜짝 놀랐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최강은 애써 고통을 참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김복순의 표정에 강한 의문이 드리워졌다.
 
 그날 저녁.
 김복순은 최강이 깊이 잠든 사이 방에 들어와 그가 입었던 교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흙투성이에다가 곳곳에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제발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길 바라며 최강이 덮고 있는 이불을 조심스럽게 걷어 보았다.
 “······!”
 김복순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최강의 몸이 온통 멍투성이였다.
 러닝으로 가려진 곳도 멍이 얼마나 시퍼렇게 들었는지 멍든 자국이 비칠 정도였다.
 김복순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오래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루라도 옷이 깨끗한 날이 없었다. 처음에는 사내 녀석이 운동장에서 놀다 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옷에 핏자국이 묻어 있을 때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자신도 버림받은 몸.
 대충 짐작 가는 건 있었다. 도와주고는 싶었지만, 그가 원치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럴 만한 능력도 되지 않았고.
 자신이 그러했듯이 최강도 스스로 잘 극복해 나가길 바랐다.
 그런데, 최강의 몸을 보니 이건 도를 넘어섰다.
 김복순의 눈에 분노가 이글거렸다. 이대로 가만히 두고 볼 순 없었다.
 “이것들이······.”
 그녀는 최강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밖으로 나갔다.
 
  * * *
 
 “헉!”
 최강이 벌떡 눈을 떴다.
 그는 숨을 거칠 게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5시가 넘었다.
 “아······.”
 또 결석을 해 버렸다. 그놈들에게 또 어떤 식으로 괴롭힘을 당할까 걱정이 밀려왔다.
 최강은 문득 멀쩡한 왼팔을 쳐다보았다.
 놈들이 왼팔마저 부러뜨리진 않을까 두려웠다.
 어제 겪은 일은 악몽과도 같아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는데······.
 최강은 자신을 깨우지 않은 할머니에게 문득 화가 났다.
 지금쯤이면 수거할 곳을 다 돌고 고물상으로 이동하고 있을 시간.
 그는 고물상에 가 보기로 했다.
 최강이 무거운 몸을 이끌고 대문 밖을 나설 때였다.
 “어?”
 대문 옆에 리어카가 그대로 있었다.
 ‘뭐지?’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날씨도 화창한데 리어카가 놀고 있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늘은 폐지 주우러 가지 않으셨나?’
 최강의 얼굴에 의문이 드리워질 때였다.
 “강아!”
 저 아래에서 동네 입구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이모가 숨을 헐떡거리며 다가왔다.
 “빨리 병원으로 가 봐.”
 “네에?”
 “할머니가 응급실에 실려 가셨어.”
 “······!”
 최강은 눈을 크게 치뜨며 물었다.
 “어, 어느 병원입니까?”
 “태창병원.”
 최강은 있는 힘을 다해 내달렸다.
 그는 산동네에서 내려오자마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이동했다.
 
 그 시각. 태창병원 응급실로 김복순이 실려 왔다.
 그녀가 거리에 쓰러져 있는 걸 이웃 주민이 발견해 119에 신고를 해서 병원으로 오게 되었다.
 김복순의 머리엔 피가 흐르고 있었고, 그녀의 옷에는 무수히 많은 발자국이 보였다.
 의사들은 상태가 예사롭지가 않아 경찰에 신고부터 했다.
 그녀가 수술실로 들어가고 얼마 후에 최강이 응급실에 도착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간호사에게 물었다.
 “여, 여기 김, 김복순 씨라고······ 있습니까?”
 이렇게 긴박한 상황일 때에도 말을 더듬는 자신이 원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잠시만요.”
 간호사는 차트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분은 없는데······.”
 “조, 조금 전, 119에 실려 왔을······ 겁니다.”
 “아, 그 할머니요!”
 “제, 제가······ 보호자입니다.”
 “지금 수술 중입니다.”
 “수, 수술이라뇨?”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최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간호사를 쳐다보자, 그녀는 김복순의 상태를 알려 줬다.
 그 말을 듣자마자 최강은 재빨리 수술실로 향했다.
 그가 앞에 도착하자 수술실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김복순 씨! 어, 어떻게 됐습니까?”
 “보호자 됩니까?”
 “예.”
 “수술을 시도했으나 상태가 심각해서 중단했습니다.”
 “그럼 어, 어떻게······ 되, 되는 겁니까?”
 “조금이라도 빨리 오셨더라면 저희가 조처를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중년 남성은 고개를 숙이고는 복도를 빠져나갔다.
 최강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김복순이 중환자실에 들어가고 한 시간쯤이 지나서야 최강은 그녀를 볼 수 있었다.
 머리에 붕대를 감고 인공호흡기를 쓴 그녀의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최강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흐흑······.”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최강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입을 열었다.
 “꼭 사세요. 이대로 가시면 절대 안 돼요, 흐흐흑.”
 그는 이를 악물고 울음을 참아 냈다.
 최강은 김복순의 손을 한참 동안 꼭 잡아 주고는 중환자실에서 나왔을 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최강 씨?”
 “누, 누구십니까?”
 “예, 도봉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네에?”
 최강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들은 최강에게 할머니가 119 구급차에 실려 오면서 신고 접수된 내용과 병원에서도 접수된 내용을 알려 줬다.
 그 말을 듣자마자 최강은 눈이 크게 치떠졌다.
 “포, 폭행이라고요?”
 “확인을 해 봐야겠지만, 병원 관계자에 의하면 김복순 씨의 부상은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헉!”
 최강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가 폭행을 당해서 이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대체 누가?
 최강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전에 느껴 보지 못한 분노가 치솟았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최강의 표정을 묵묵히 지켜보던 김형수 형사가 물었다.
 “짐작 가는 건 없습니까? 평소 할머니랑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 있다든지, 아니면 금전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도 좋습니다. 알고 있는 대로 말해 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저, 전혀 없습니다.”
 “그렇군요. 근데 그 팔은 어쩌다 다친 겁니까?”
 “이, 이건 계단에서 굴러 넘어져서······.”
 “어디서요?”
 “하, 학교 계단에서······ 넘어졌습니다.”
 최강은 놈들의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사실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생각나는 게 있으면 여기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김형수는 최강에게 명함을 건네주고는 일행과 함께 그곳을 빠져나갔다.
 최강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중환자실을 쳐다보았다. 세상은 유독 자신과 할머니에게만 가혹하게 구는 것 같았다.
 그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신을 원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할머니를 보살펴 달라고 기도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
 갑자기 중환자실이 의사와 간호사들이 북적거렸다.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던 최강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문득 할머니에게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상기된 표정으로 간호사가 다가왔다.
 “들어가 보세요.”
 “깨, 깨어나셨나요?”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음의 준비를 해 두세요.”
 “아······.”
 최강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제발 이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토록 기도했건만, 결국 오고야 말했다.
 잠시나마 그쳤던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최강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지만, 한번 흘러내리기 시작한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는 손매로 눈가를 쓱 닦아 내고는 간호사를 뒤따라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김복순은 아까와 달리 인공호흡기를 쓰고 있지 않았고, 의식이 돌아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
 “내 새끼, 왔어?”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였지만, 최강의 귀에는 확실하게 들렸다, 하루도 빠짐없이 들었던 말이었기에.
 최강은 그녀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어 가며 참으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하, 할머니······.”
 그는 흐느끼며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꼭 잡았다.
 김복순도 눈물을 흘렸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그를 달랬다.
 “강아, 울지 마.”
 “가슴이 터질 듯이 아파요.”
 “며칠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한 최강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넌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까 강해져. 그래서 네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
 “흐흐흑, 흑······.”
 최강은 흐느끼면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세상이 널, 아니, 우릴 버린 게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버린 거야. 그러니까 너무 원망하지 마. 내가 한평생 원망하며 살아 보니······ 다 부질없는 짓이더라.”
 “하, 할머니······.”
 “이 또한 내 운명이라 여기기로 했으니 다른 사람들 원망하지 말고······.”
 “대체 누굽니까?”
 최강이 두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김복순은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강의 손을 꼭 잡고 있던 그녀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바이탈 체크 장비에서 ‘삑!’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신속히 다가와 그녀의 상태를 확인했다.
 “할머니, 안 돼요!”
 최강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울부짖었다.
 간호사들은 그를 김복순에게서 떼어 내 밖으로 데리고 갔다.
 의사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그녀의 죽음을 막을 순 없었다.
 삑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들 중 한 명이 참담한 표정을 띠며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안 돼-!”
 최강의 울부짖는 소리가 병원 복도에 울려 퍼졌다.
 
 
 
 # 독기
 
 
 
 
 
 
 
 
 
 
 최강은 김복순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 들어섰다.
 병원비와 장례식 비용은 동네 사람들이 그의 딱한 사정을 알고 조금씩 모아서 준 돈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그는 평상에 털썩 앉아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붉은 노을이 지고 있었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김복순과 함께 보았던 저녁노을을 이제는 혼자서만 보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가슴이 울컥했다.
 그녀를 보내면서 평생 흘려야 할 눈물을 다 흘렸다고 생각한 그였지만 눈물은 계속 흘러내렸다.
 화장한 그녀의 유골을 바다에 다 뿌리고 그도 바다에 빠져 죽어 버릴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할 일이 있었다.
 경찰의 말에 의하면 사고 발생 지점은 CCTV가 미설치된 곳에다가 목격자도 없어서 범인을 찾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최대한 노력하는 중이라고 했지만,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었다.
 자신도 어떻게든 범인을 찾기 위해 돌아다녀 볼 생각이다.
 일단 내일 학교에 가서 휴학계를 내고 그녀가 발견되었다는 사고 현장에 가 보기로 했다.
 최강은 바빠질 내일을 위해 일찍 방에 들어가 잠들었다.
 
 다음 날.
 최강은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잠에서 깼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할머니의 장례에 화장까지 하느라 피로가 가득 쌓였던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게 느껴졌다.
 멍이 들었던 자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깨끗했고, 깁스한 오른팔도 왠지 모르게 다 나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단 몸 상태는 괜찮았다. 최강은 얼른 학교 갈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학교에 도착한 그는 교무실로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다.
 배기석은 최강을 보더니 온갖 인상을 찡그렸다.
 “너 뭐야?”
 “죄, 죄송합니다.”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고는 안 나오면 나더러 어떡하라고? 혹시 엿 먹이려고 작정한 건 아니겠지?”
 “하,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뭐?”
 배기석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래서 결석하게 됐습니다.”
 “먼저 말을 하지. 근데 정정하신 분이 갑자기 왜?”
 “사고를······ 당했습니다.”
 “거참, 난감하네.”
 배기석은 계속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아무튼,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일단 교실로 가 있어 교장 선생님께 보고를 드려야 하니까.”
 “······예.”
 휴학계는 말도 꺼내지도 못하고 교무실에서 나온 최강은 교실로 올라가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며칠 결석을 한 게 학교를 발칵 뒤집어 놓을 일이었던가?
 게다가 담임은 할머니를 알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여태껏 학교에는 한 번도 오지 않은 그녀를 그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또 교장 선생님께 보고까지.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고민하는 사이 어느덧 교실 뒷문에 도착해 있었다.
 최강은 오늘 하루도 잘 버텨 낼 거라고 다짐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최강이 학교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남경수가 인상을 찡그리며 교실에 나타났다.
 “야, 버러지, 나와.”
 그는 최강을 화장실로 데리고 갔다.
 남경수는 화장실에 있는 애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낸 후 최강을 힘껏 밀치며 말했다.
 “너 미쳤어?”
 “그, 그게······.”
 “와, 이 새끼 그렇게 안 봤는데. 완전 미친놈이었어.”
 “무, 무슨 말이야······.”
 “정말 몰라서 그건 표정을 짓냐? 김복순, 그년이 교육청에 신고한 것 때문에 학교가 발칵 뒤집힌 거 몰라?”
 “······!”
 순간 최강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의 입에서 할머니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교육청에다 신고라니?
 도무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최강의 어안이 벙벙해 있을 때, 화장실에 한상원과 박계남이 들어섰다.
 박계남이 죽일 듯이 최강을 노려보며 남경수에게 물었다.
 “뭐래?”
 “이 새끼 오리발 내는데?”
 “비켜 봐.”
 박계남이 최강에게 다가가더니 사정없이 발로 그의 배를 걷어찼다.
 퍽!
 “으큭!”
 최강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박계남은 그의 머리칼을 움켜쥐고 머리를 뒤로 젖혔다.
 “이 새끼야, 그동안 예쁘다고 해 준 성의는 모르고 할머니한테 일러바쳐서 이 사달을 만들어?”
 “크윽, 나, 난 모르는 일이야······.”
 “그래?”
 그의 반응에 박계남은 살짝 의아해하며 한상원을 쳐다보았다. 한상원이 다가와 발끝으로 최강의 턱을 툭툭 건드리며 물었다.
 “정말 몰라?”
 “저, 정말 몰라······.”
 “믿어 줄게.”
 한상원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박계남에게 말했다.
 “됐다. 가자.”
 “이대로?”
 “모른다고 하잖아. 그럼 다 끝난 거 아냐?”
 “다 끝났다니? 아, 또 그렇게 되네. 역시 우리 상원이 머리 하나는 끝내준다니까.”
 박계남은 씩 웃으며 최강의 머리를 툭툭 쳤다.
 “운 좋은 줄 알아라.”
 그러고는 일어나 그를 뒤따랐다.
 최강은 한상원의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는 순간, 할머니의 사고가 떠올랐다.
 ‘설마?’
 그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 너희들 짓이야?”
 한상원이 발걸음을 멈췄다.
 “할머니를 그렇게 만든 게······.”
 “맞으면 어쩔 건데?”
 “······!”
 “버러지는 그냥 버러지답게 살아라. 그게 오래 사는 길이다.”
 “이 새끼야!”
 최강이 버럭 소리치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한상원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대처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최강과 함께 바닥에 넘어졌다.
 최강은 깁스한 팔로 한상원의 얼굴을 미친 듯이 내리쳤다.
 “개새끼야! 우리 할머니 살려 내!”
 퍽! 퍽퍽!
 한상원의 얼굴에서 피가 튀었다. 옆에 있던 박계남과 남경수가 재빨리 최강에게 달려들어 한상원에게서 떼어 냈다.
 “죽여 버릴 테다.”
 한상원이 씩씩거리며 일어서더니 구석에 세워져 있던 대걸레를 집었다. 그러더니 최강에게 인정사정없이 휘둘렀다.
 퍽퍽퍽퍽!
 “이 버러지 새끼가! 죽어! 죽으라고!”
 최강은 온몸을 웅크리며 매질을 당했다.
 박계남과 남경수도 한상원과 합세해서 그를 짓밟았다.
 그러길 몇 분이 지났을 때쯤, 화장실에 배기석이 들어왔다.
 “뭐 하는 짓이야?”
 “시발! 야, 가자!”
 한상원은 부러진 대걸레를 최강에게 냅다 던지고는 박계남과 함께 빠져나갔다.
 배기석은 재빨리 최강에게 다가갔다.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그를 보고는 오만상을 찡그렸다.
 “젠장! 재수 없게 이게 뭐람?”
 그는 어쩔 수 없이 최강을 등에 업고 양호실로 데리고 갔다.
 
 딩동댕동!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전에 양호실에 업혀 왔던 최강은 종소리에 의식을 차렸다.
 “으으······.”
 힘겹게 눈을 떠 보니 양호실 침대에 누워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온몸이 얼얼하게 아팠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한상원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다.
 그놈 짓이다. 할머니가 교육청에 신고했다는 이유로 그놈이 수를 쓴 게 틀림없었다.
 최강은 결심했다, 맞아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놈만큼은 반드시 죽이겠다고.
 ‘한상원······.’
 이를 악물고 아픈 몸을 이끌고 양호실을 나서려는 찰나, 복도가 웅성거렸다.
 “야야, 한상원 아버지가 학교에 와서 교무실을 발칵 뒤집어 놨다는데.”
 “박계남 아버지도 왔대.”
 “근데 대체 오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게 말이야, 족제비가 한상원한테 달려들어서 코뼈를 내려앉혔대.”
 “뭐라고?”
 “이야, 버러지도 발끈했나 보네. 근데 이제 그놈 어째? 한상원이 가만두지 않을 텐데 말이다.”
 “젠장!”
 최강은 양호실을 나서다 말고 문을 닫았다.
 한상원의 아버지는 태창그룹의 회장이었고, 박계남의 아버지는 국회의원이자 학교 이사장이다. 권력자 두 명이 학교에 나타났으니 발칵 뒤집힐 만도 했다.
 이렇게 되면 모든 죄를 자신이 뒤집어쓸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교무실로 가서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봤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말을 귀담아 들어 주지 않을 것 같았다.
 놈이 할머니를 폭행했다는 증거도 없는 상황.
 그렇다고 이곳에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괜히 그랬다간 자신이 모든 죄를 인정하는 셈이 되니까.
 최강은 침대로 돌아가 묵묵히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때쯤, 양호실에 배기석과 함께 누군가 들어왔다. 교장 선생님인 양춘기였다.
 그는 침대에 앉아 있는 최강을 싸늘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저 녀석이냐?”
 “예.”
 양춘기는 최강에게 다가가 그의 몸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말했다.
 “한상원이랑 왜 싸웠지?”
 “으음······.”
 최강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한상원과의 일이 집단 폭행이 아니라 한낱 싸움으로 정리됐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최강이 입을 다물고 있자 배기석이 호통쳤다.
 “교장 선생님께서 물으시잖아!”
 “싸우지 않았습니다.”
 최강이 두 눈을 부릅뜨고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살기 위해 발버둥 쳤을 뿐입니다.”
 그는 할머니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 얘기해 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배기석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살기 위해서 한상원이 코뼈를 부러뜨렸어?”
 “놈이 저한테 한 짓은 안 보이십니까?”
 최강은 분노 때문인지 말도 더듬지 않았다.
 “그건 남경수가 한 짓이잖아.”
 “뭐라고요?”
 “남경수가 다 말했어. 화장실에서 너랑 말다툼하다가 홧김에 대걸레로 널 때렸다고 말이야.”
 “이건 한상원이 한 짓입니다!”
 “증인도 있어!”
 “증인이라뇨? 그때 화장실에는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왜 없어? 박계남이 다 봤잖아. 그리고 그 녀석이 널 말려서 한상원이 코뼈 하나로 끝난 거잖아.”
 “선생님도 보셨잖아요!”
 “내가 들어갔을 때 다 끝난 상황이라서 난 본 게 없어.”
 “제기랄!”
 최강은 주먹으로 침대를 내리쳤다. 모든 것이 그들 마음대로였다. 억울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가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본 양춘기가 물었다.
 “뭐가 그렇게 억울하나?”
 “모든 게요. 어째서 제 말은 들어 보지도 않고 그놈들의 말만 듣는 겁니까?”
 “사실이니까.”
 “네에?”
 “명백하게 증거가 있잖아.”
 “그 증거가 다 조작된 겁니다.”
 “쯧쯧, 배 선생 말대로 구제 불능인 녀석이야.”
 양춘기를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한심한 눈빛으로 최강을 한참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한 회장님과 박 의원님께서 선처를 해 주신 덕에 퇴학은 면했다. 하지만 학교 폭력은 그냥 넘어갈 순 없다는 판단에 두 달간 정학이다. 집에서 자숙이나 해.”
 양춘기는 그 말을 끝으로 양호실에서 나갔다.
 최강은 그가 나간 문을 빤히 쳐다보고는 배기석에게 말했다.
 “그냥 휴학하겠습니다.”
 “야, 학교가 만만해? 네가 하고 싶다고 해서 다 들어주는 곳이야? 오늘 네가 저지른 일이 밖에 알려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렇지 않아도 너희 할머니가 교육청에 신고하는 바람에 이번 달에 감사 들어온다고 연락 왔어. 그리고 학폭위에도 그 사실이 전해져서 난리라고.”
 “학교에 불량 서클 있는 건 사실이잖습니까.”
 “뭐가 어째? 그게 어째 불량 서클이야? 공부 잘하는 애들이 모인 곳이잖아. 그걸 깎아내리는 저의가 뭐야?”
 “됐습니다.”
 더 이상 얘기를 나눠 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안 최강은 일어나 양호실을 빠져나왔다.
 그가 절뚝거리며 복도를 걸어가는 모습을 본 아이들은 한마디씩 뱉었다.
 “남경수랑 한판 붙었다면서?”
 “근데 왜 싸운 거래?”
 “족제비도 발끈한 거지. 얼마 전까지 같이 빵셔틀 하던 녀석이 블랙 타이거 일원이 됐다고 설치고 다니니 배알이 뒤틀린 거겠지.”
 “그나저나 한상원한테 왜 달려들었대?”
 “죽고 싶었나 보지.”
 “하여튼 저 새끼 때문에 한동안 눈치 존나 보게 생겼네.”
 “그나저나 한상원이랑 박계남이 전학 와서 선생님들이 좀 고분고분해져서 좋았는데, 이번 일로 또 전학 가진 않겠지?”
 “교장이 절대 안 놔줄걸.”
 “하긴 돈독 오른 교장이 한상원이랑 박계남을 다른 곳에 보낼 리가 없겠지.”
 최강은 그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또렷하게 들렸다.
 ‘전부 다 썩었어······.’
 제대로 된 녀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분한 나머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눈에 독기를 품으며 학교를 빠져나왔다.
 
  * * *
 
 최강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쓰러졌다.
 구타를 당한 것 때문인지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으으으······.”
 그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아 냈다.
 최강이 기침을 한 번 할 때마다 상체가 들썩였고,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고통을 참다못해 결국 의식을 잃었다.
 최강의 몸에선 열이 계속 났다.
 그리고 머리 쪽이 초록색으로 빛나기 시작하더니 그 빛이 온몸으로 펴져 나갔다.
 잠시 후, 온몸이 초록빛으로 물들었고, 강렬하게 빛을 뿜어냈다. 그 현상은 이틀 동안 지속되다가 멈췄고, 최강은 죽은 사람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으하암-!”
 최강이 힘껏 기지개를 켜며 깨어났다.
 구타로 온몸이 쑤시고 뻐근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 들었다.
 그는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점심때라 그런지 마당에는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최강은 담담하게 그 햇살을 맞으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몸속에서 흐르는 피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기분이 묘했다.
 그 기분을 뒤로한 채 할머니의 죽음과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니 가슴에서 화가 울컥 치솟았다.
 이런 게 버러지의 삶인가 싶었다.
 억울해도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난생처음으로 힘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최강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을 때였다.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다. 두 주먹에 초록 빛이 서려 있었다.
 마치 판타지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이게······.”
 그는 재빨리 두 손을 펼쳤다.
 그러자 초록 빛이 사라졌다.
 최강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쳐다보았다.
 “방금 뭐지?”
 손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는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평소에도 호기심이 강한 그는 한번 주먹을 꽉 쥐었다.
 “어어어!”
 주먹에서 초록 빛이 나타났다.
 최강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주먹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았다.
 단지 빛만 날 뿐이지 특이한 현상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힘이 세진 건 아닌가 싶어 마당에 있는 장독대를 들어 보려고 했지만, 너무 무거워서 포기했다.
 힘이 세진 것도 아니었고, 대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최강은 해가 저물 때까지 주먹에 맺힌 초록 빛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잠들었다.
 이른 새벽에 그는 눈을 떴다.
 최강은 벌떡 일어나 주먹에 힘을 줬다.
 “어?”
 더 이상 초록 빛이 나타나지 않았다.
 또다시 시도를 해 봤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낮에 봤던 게 혹시 착시현상 같은 건 아닌지 의문이 들 때였다.
 “어라?”
 이번에는 두 발에서 초록 빛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그가 신기한 듯 한쪽 발을 들자, 초록 빛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체 뭐야?’
 최강은 다시 발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다시 초록 빛이 나타났다.
 그는 한참 두 발을 쳐다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두 발을 번갈아 가며 들었다 올렸다가 했다.
 그러자 양쪽 발에 초록 빛이 사라졌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게 아닌가.
 “그렇군.”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발은 바닥을 딛고 있는 것 자체가 힘을 주는 것과도 같은 거였다.
 원리를 알아냈다는 즐거움도 잠시.
 왜 이런 이상한 현상이 자신에게 나타나는 것인지 궁금했다.
 최강이 진지하게 고민하자, 이번에는 머리 쪽에서 초록 빛이 빛났다. 하지만 머리를 볼 수 없었던 그는 담담하게 두 발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날이 밝아 올 때까지 생각에 잠겼던 최강은 문득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게 느껴졌다.
 지금 이 상태라면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지만, 최강은 장난 삼아 TV를 켰다.
 동네 사람들이 유선을 달아 줬기 때문에 웬만한 방송은 다 볼 수 있었다.
 제일 먼저 CNN 방송을 틀었다.
 화면을 보면서 나오는 소리를 묵묵히 들었다.
 그러길 몇 분이 지났을 때쯤.
 “헉!”
 최강의 눈이 번쩍 커졌다.
 CNN 뉴스 앵커가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그는 귀가 잘못된 건 아닌가 싶어 두 손으로 귀를 비비고는 다시 들어 보았다. 앵커가 하는 말을 모두 다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최강은 침을 꿀꺽 삼키며 채널을 돌렸다.
 이번에는 일본 방송이었다. 그것 역시 잠시 듣고 나니까 자연스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일본 모 토론에서 정치인 한 명이 한국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자, 최강의 입에서 그도 모르게 일본어가 튀어나왔다.
 “미친놈, 헉!”
 최강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CNN 방송을 틀어 보고, 또 다른 외국 방송을 계속 틀어 보며 반응을 살피길 반복했다.
 그러길 한 시간이 흘렀을 때쯤, 최강은 TV를 꺼 버렸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다.
 영어와 일본어는 물론 평생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언어들도 다 이해하고 말을 할 수가 있었다.
 ‘세상에 이게 무슨······.’
 그의 눈빛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 * *
 
 최강에게서 초록 빛이 나타나기 시작한 이후부터 그는 계속해서 뭔가를 해서 이유를 알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알아낸 건 하나도 없었고, 초록 빛은 몸통을 끝으로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최강은 초록 빛이 나타나는 건 일시적인 현상이라 여기고 다른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이틀 만에 각 나라의 언어들을 다 이해할 수 있게 된 그는 다른 것을 시도해 보았다.
 수학 교과서를 가지고 왔다.
 수학은 담을 쌓고 있었던 그였기에 정말 머리가 좋아진 것이라면 문제를 쉽게 풀어 나갈 거라고 여겼다.
 아니나 다를까. 문제를 보는 순간 답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아닌가. 최강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음 문제를 보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수학 공식들이 떠오르더니 답이 척척 나왔다.
 직접 겪으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최강은 연신 탄성을 내뱉으며 문제들을 계속 풀었다.
 모든 문제가 막힘없이 풀렸다.
 “이럴 수가······.”
 갑자기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놈들에게 구타를 당한 후부터 이런 일이 생겼다.
 늘 맞고 다니긴 했지만, 그날 한상원이 자신에게 행사한 폭력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했다.
 ‘혹시?’
 그 때문에 감춰져 있던 능력이 각성한 건 아닐까?
 아니면 신이 불쌍히 여겨 능력을 준 것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할머니가 하늘에서 보고 원통해서 신께 부탁했을지도.
 모두 허무맹랑한 이야기였지만, 그는 어느 하나라도 믿고 싶었다. 그래야 이 능력이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최강은 자신의 머리가 비상할 정도로 좋아진 것을 알고 그에 맞춰 움직이기로 했다.
 일단 어디까지 가능한 것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그런데 주변이 좀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 근처에 있는 서점으로 향했다.
 최강에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대입 관련 문제집들이 진열된 곳으로 가서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어, 영어, 수학 가리지 않고 문제들을 줄줄 풀어 나갔다.
 게다가 외국어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는 물론, 러시아, 불어까지 모두 가능했다.
 머릿속에 컴퓨터라도 들어가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책을 보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게 되었다.
 ‘어?’
 얼굴에 살이 좀 붙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입고 있는 옷도 좀 작아 보였고, 여태까지 책만 보느라 잘 몰랐는데 주위 사람들의 시선들도 느껴졌다.
 최강은 얼른 서점에서 나와 재빨리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 도착한 그는 거울 앞에 서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눈도 좀 커진 것 같았고, 납작했던 코도 세워진 것 같았고, 심하게 두툼했던 입술도 보기 좋게 얇아진 것 같았다.
 게다가 역삼각형이었던 얼굴형도 계란형으로 둥글게 변해 있었다. 족제비처럼 보였던 얼굴은 사라지고 없었다.
 좁았던 어깨도 좀 넓어진 것 같았고, 팔다리가 길어진 듯 입고 있는 옷들은 다 기장이 짧았다.
 기이한 일의 연속이었다.
 
 그날 저녁.
 온종일 자신의 변화에 놀랐던 최강은 평상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미세먼지 때문에 하늘에는 별빛 하나 보이지 않고 뿌옇기만 했다. 마치 자신의 마음과도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야 자신이 일주일 동안 기절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도 모르고 기이한 현상을 보며 기뻐하기만 했다.
 저녁이 되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자고 일어나면 예전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낯선 모습이 거울에 떡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되었고,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때였다. 문득, 할머니의 유언이 생각났다.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넌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까 강해져. 그래서 네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
 
 “할머니······.”
 최강은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세상이 자신을 버린 게 아니라, 자신이 세상을 버린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저한테 일어난 현상들 모두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게요. 할머니, 지켜봐 주세요.”
 그는 굳은 결심을 내리고는 집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부터 최강은 바쁘게 움직였다.
 정학이 풀리려면 앞으로 한 달하고 열흘 정도 남았다.
 7월 말쯤에 정학이 풀린다고 해도 여름방학이 겹쳐서 실제로 등교하는 건 방학이 끝난 이후다.
 최강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청산하기 위해 은행에 가서 아주 어렸을 때부터 조금씩 모아 놨던 통장을 해약했다.
 그래 봤자 20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그중 생활비로 사용할 돈은 떼어 놓고,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이종격투기 체육관을 찾았다.
 최강은 그곳에 등록해서 몸을 단련하기로 했다.
 관장인 이동기는 최강을 처음 봤을 때 여느 애들처럼 일주일 정도 다니다 그만둘 거라 여겼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훈련에 임하는 그의 모습에 조금은 흥미로운 표정을 띠었다.
 그리고 보름 후.
 최강을 바라보는 이동기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향상하는 그의 운동신경에 매료된 것이다.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숨을 헉헉대며 비실거리던 그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적응하더니 6개월 이상 수련한 아이를 능가했다.
 이에 이동기가 직접 최강을 가르쳐 보기로 했다.
 “운동은 할 만해?”
 준비운동을 하고 있던 최강은 보름 만에 관장이 다가와 말을 걸자 얼른 일어나 인사했다.
 “아, 예.”
 “혹시 우리 체육관 오기 전에 다른 곳에서 운동했었어?”
 “아뇨. 여기가 처음입니다.”
 “그래?”
 이동기는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는 하던 걸 하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그러자 최강은 바닥에 앉아서 스트레칭을 했다.
 이동기는 그에게 다가가 스트레칭을 도와주면서 몸을 만져 보았다.
 ‘역시.’
 그의 예상대로였다.
 근육이 부드럽고 탄력이 뛰어났다.
 게다가 뼈도 통뼈인 게 몸에 살만 붙으면 힘도 엄청날 것 같았다.
 탐나는 몸이었다.
 이동기는 반농담조로 슬쩍 물었다.
 “너 제대로 배워 볼 생각은 없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너 정도 되는 신체 조건이면 선수로 뛰어 봐도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네에?”
 최강의 눈이 동그래졌다.
 선수라니?
 몸치였던 그로선 처음으로 듣는 소리였다.
 보름 내내 죽기 살기로 훈련에 임했을 뿐인데,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은 생각도 못 했던 터라 당황스러웠다. 최강이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자, 이동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뭘 그렇게 놀라? 부담되면 안 한다고 하면 되지.”
 “아, 예······.”
 “잘 생각해 봐. 젊어서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이동기가 입맛을 다시며 뒤돌아서려는 그때, 최강이 물었다.
 “강해질 수 있나요?”
 “뭐?”
 “선수는 좀 그렇고, 훈련은 받고 싶습니다.”
 “강해져서 뭐 하게? 어깨 힘주고 다니려고?”
 “누구에게도 맞고 싶지가 않아서요.”
 “왜? 맞고 다녔어?”
 “예. 그리고 할머니 유언을 지키고 싶습니다.”
 “유언?”
 “강해지라고 하셨거든요.”
 “으음.”
 이동기는 최강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말 못 할 사연이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가슴이 짠하게 아려 왔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그럼 넌 오늘부터 선수들이랑 함께 훈련하도록 해.”
 “감사합니다.”
 최강은 벌떡 일어나 고개를 푹 숙였다.
 
 8월에 들어서자 날씨는 미친 듯이 더웠다.
 일명 ‘가마솥더위’가 한반도를 점령했다.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고, 열대야로 인해 나라가 지쳐 가고 있었다. 하지만 한 명만큼은 열외였다.
 최강은 오늘도 해가 저물 때쯤, 체육관에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우렁찬 목소리가 체육관에 울려 퍼졌다.
 외모가 바뀌고 몸에 힘이 생기자, 자신감도 부쩍 생겼다.
 그 덕에 소심했던 성격에도 큰 변화가 왔다.
 딱딱하고 어두웠던 얼굴에는 늘 미소가 자리 잡혔다.
 이동기는 최강을 보자 입꼬리를 추어올리며 맞이했다.
 “내 새끼 왔냐?”
 “전 우리 할머니 새끼입니다.”
 최강은 무뚝뚝하게 대답하고는 탈의실로 들어가자, 주위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관원들은 배를 잡고 웃어 댔다.
 이동기는 투덜거렸다.
 “자식이 한 번을 안 받아 주네.”
 “싫다는데 왜 계속하세요? 나 같으면 안 하고 만다.”
 “그러게.”
 “똑바로 안 해? 너 다리 바로 안 찢어? 내가 찢어 주리?”
 이동기는 애꿎은 관원들에게 화풀이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최강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근육으로 둘러싸인 몸을 보고 있으니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쩍 말랐던 몸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죽기 살기로 운동에 매달린 결과라 볼 수 있었다.
 열심히 운동해서 그런지 키도 부쩍 컸고, 체중도 많이 늘었다.
 170에 50킬로그램이었던 그가 이제는 180에 75킬로그램이나 나갔다. 그야말로 환골탈태였다.
 동네 사람들은 길 가다 최강을 볼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며 한마디씩 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달라질 수 있냐고 말이다.
 심지어 어떤 아줌마들은 최강에게 평소 뭘 많이 먹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키 작은 아들에게 먹여 보려고 한다며 말이다.
 그럴 때마다 최강은 있는 그대로 말했다.
 쌀밥이랑 김치, 그리고 된장찌개를 즐겨 먹고 매일 운동을 하니까 이렇게 변했다고.
 그리하여 산동네는 저녁때마다 된장찌개 냄새가 끊이질 않았다.
 이동기는 최강이 탈의실에서 나오자 재빨리 다가가 물었다.
 “한번 해 보자.”
 “싫어요.”
 “왜? 너 정도면 가능성이 있다니까.”
 “전혀 생각 없습니다.”
 최강이 딱 잘라 말하고는 스트레칭을 시작하자, 이동기는 오늘도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저었다.
 잠시 후.
 준비운동이 끝나고 기본 기술 훈련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고급자들은 사각 링에 모여 스파링 준비를 했다.
 기본적으로 1년 이상 수련한 사람들 속에 최강의 모습도 보였다.
 그는 두 달 만에 선수들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일취월장했다. 그래서 이동기가 그에게 매일 선수 전향 의사를 묻는 것이었다.
 전직 이종격투기 한국 챔피언인 그가 봤을 때, 1년만 혹독하게 훈련한다면 이종격투기의 신성이 될 재목이었으니까.
 오늘도 최강은 선수들과 함께 스파링했다.
 “잽! 잽잽!”
 “야, 광덕아, 킥을 날려야지!”
 이동기는 최강과 스파링을 하는 선수를 지도했다.
 올해 신인왕전에 나갈 녀석인데, 실력이 나쁘지 않았다.
 운동 센스, 파워 순발력 모든 게 괜찮았다.
 하지만······.
 퍽!
 “크윽.”
 광덕은 킥 한 방에 코너에 몰리더니 최강의 무차별 공격에 그대로 녹다운당했다.
 “스톱! 스톱!”
 이동기가 타올을 던지며 링으로 들어가 최강을 광덕에게서 떼어 냈다.
 그러고는 광덕을 바닥에 앉히며 그의 상태를 체크했다.
 “야, 괜찮냐?”
 “아흑, 죽겠네요.”
 “자식아, 그러게 저 녀석한테 거리를 주지 말라고 했잖아.”
 “죄송합니다.”
 “됐다. 쉬면서 몸에 이상한 곳은 없는지 체크해 봐.”
 광덕을 체크하고 일어선 이동기는 인상을 찡그리며 반대쪽 코너에 있는 최강에게 걸어갔다.
 “야! 살살하라고 했잖아.”
 “저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넌 다 좋은데.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올 줄 몰라서 큰일이다.”
 “그러게요.”
 최강은 씩 웃었다.
 “됐고, 광덕이한테 사과하고 오늘 훈련 끝내.”
 “옙!”
 최강은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광덕에게 다가갔다.
 “형, 괜찮아요?”
 “살살하라고 했잖아. 골이 아직도 흔들리는 것 같다.”
 “미안해요.”
 “미안할 것까지 없다. 아무튼 내일도 부탁할게.”
 “네, 그럼 내일도 7시쯤에 봬요.”
 최강은 탈의실에 가서 후다닥 샤워를 마치고 체육관에서 나왔다.
 그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강공원으로 이동했다.
 모처럼 한강공원을 찾은 최강은 한강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어느덧 하늘은 붉은 노을로 물들어 있었다.
 드디어 내일, 정학이 풀린다.
 그놈들이 자신을 봤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예전 버러지라 놀림받았던 자신은 찾아볼 수 없을 거라는걸.
 ‘한상원······.’
 최강은 복수심으로 불타올랐다.
 
  * * *
 
 최강은 등교하자마자 교무실을 찾았다.
 배기석은 갑자기 불쑥 나타난 그를 보며 떨떠름하게 물었다.
 “넌 누구냐?”
 “모르시겠습니까?”
 “누구······!”
 배기석은 교복에 새겨진 이름을 보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최강!
 그는 눈을 끔뻑거리며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최강을 쳐다보았다.
 “네가 최강이라고?”
 “오늘부로 정학 풀려 등교했습니다.”
 “아, 아니, 이게 무슨······.”
 배기석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옆에 있는 선생의 어깨를 툭 쳤다.
 “이 녀석 좀 봐 봐.”
 “왜요? 오우, 뉘집 아들인지 훤칠하게 잘생겼네. 누굽니까? 전학생입니까?”
 “최강이라는데?”
 “네에?”
 사내도 눈이 동그래졌다.
 이름표를 보니 최강이 맞았다.
 얼굴을 자세히 보니 예전 최강의 모습이 얼핏 보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몇 달 사이에 사람이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나?
 “이야······.”
 옆자리의 선생은 연신 탄성을 내뱉었다.
 잠시 후.
 교무실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난 최강 때문에 어수선해졌다.
 “완전 남잔데?”
 “그러게. 어떻게 하면 사람이 저렇게 달라질 수가 있어?”
 “아무래도 할머니 돌아가시고, 심리적으로 변화가 있었나 봐. 뒤늦게 성장하는 애들도 많다던데, 아마 우리 최강도 그런가 봐.”
 “어머, 최 선생 말이 좀 그렇다? 우리 최강이라니?”
 “왜요? 제가 좀 좋아하면 안 되나요?”
 여자 선생들은 최강에게 급호감을 보였다.
 배기석은 최강에게 그동안 뭘 하며 지냈는지 물어보았고, 최강은 사실대로 말했다.
 두 번 다시는 버러지처럼 살지 않으려고 운동에 몰두하다 보니 이렇게 달라졌다고 말이다.
 배기석은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띠었다.
 “알았으니까 교실로 가 봐.”
 “예.”
 최강이 고개를 숙이고 뒤돌아서려는 그때, 그가 충고했다.
 “한상원이랑 부딪치지 마라. 한 번은 용서했지만, 두 번은 어림도 없다.”
 “버러지한테 무슨 힘이 있다고요.”
 최강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교무실에서 나갔다.
 배기석은 멍한 표정으로 그가 나간 문을 빤히 쳐다보았다.
 자신이 알던 최강이 아니었다.
 조금 전 그가 내뱉었던 말도 예전 그였다면 절대 입 밖으로 내뱉지도 못했을 말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교무실에서 나온 최강은 천천히 교실로 올라갔다.
 복도를 걸어가고 있으려니 앞에서 다가오는 애들이 자신을 다 비켜 지나갔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
 왜일까?
 그들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최강이 모르는 게 있었다, 그동안 체육관에서 선수들과 죽기 살기로 훈련하다 보니 그의 기세가 달라졌다는 사실을.
 거칠면서 강렬했다.
 그랬기에 평범한 애들은 그의 기세에 절로 주눅이 들어 피하는 거였다.
 최강은 교실에 들어서자 다들 그를 쳐다보았다.
 “누구지?”
 “전학생인가?”
 “어? 저 자리는 족제비 자리 아냐?”
 “족제비 자리인데······ 헉!”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강이었다.
 족제비! 버러지였던 그가 완전 딴사람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방학 때 성형해서 나타난 애들은 여럿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체격이 몰라볼 정도로 커졌고, 얼굴에서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완전 훈남 스타일로 변해 있었다.
 다들 놀란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여자애들 몇 명이 최강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 저기······.”
 “왜?”
 “너 최강 맞아?”
 “보고도 몰라?”
 “대박! 말도 안 더듬잖아.”
 “가까이서 보니까 더 존잘이야.”
 여자애들이 탄성을 자아내자, 곁에서 구경만 하던 애들도 최강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그때였다.
 쾅!
 뒷문이 세차게 열리면서 남경수가 들어왔다.
 “야, 버러지 왔냐?”
 아이들은 겁에 질린 채 손으로 최강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남경수는 비릿한 미소를 띠며 그들이 가리킨 곳으로 다가갔다.
 “정학이 풀렸으면 보고를 해야지. 그동안 편하게 지내다 보니 군기가 다 빠진 거야?”
 길을 막고 있던 아이들이 길을 비켜 줬다.
 남경수는 모세의 기적처럼 길이 열리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최강이 있는 곳에 도착한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웬 덩치 한 명이 등을 보이며 앉아 있을 뿐 최강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어?”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애들한테 소리쳤을 때, 덩치가 일어섰다.
 “날 찾았냐?”
 “누구······?”
 “기다리고 있었다, 남경수.”
 최강은 그의 멱살을 붙잡고 화장실로 끌고 갔다.
 돌발 상황에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들은 일생일대의 재미를 놓칠세라 모두 화장실로 우르르 몰려갔다.
 남경수는 처음 보는 애한테 잡혀 화장실로 끌려오자,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자신이 블랙 타이거의 일원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기에 자신을 건드리는 건 바로 블랙 타이거를 건드리는 것과도 같았다.
 정신 나간 새끼가 아니라면 자신을 건드리지 못할 거라 굳게 믿었다.
 “너 이 새끼, 내가 누군지 몰라? 나 남경수라고! 블랙 타이거 남경수!”
 “안다.”
 “하아, 근데 날 건드려?”
 남경수가 어이없어하자, 최강은 보라는 듯이 명찰을 그의 얼굴 쪽으로 들이밀었다.
 “뭐 하는 거야?”
 남경수는 명찰을 보자 눈이 동그래졌다.
 “네, 네가 최강이라고?”
 “알았으면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이 시발 놈이! 정학 동안 개돼지처럼 밥만 처먹고 덩치만 키웠냐?”
 남경수는 그가 최강이라는 걸 알자, 조금 전까지 있었던 두려움이 싹 사라졌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의 머릿속에 최강은 버러지였고, 버러지한테 겁먹는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게 실수였다.
 지금 눈앞에 나타난 최강은 예전 최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화장실 밖에선 애들이 고개를 내밀며 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남경수는 자신이 애들 구경거리가 된 것에 너무 화가 났다.
 “이 새끼야, 덩치만 키우면 내가 겁먹을 줄 알았냐?”
 그가 주먹을 내질렀다.
 최강은 가볍게 주먹을 피하고 그의 뺨을 갈겼다.
 쫘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남경수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화장실 밖에서 아이들의 탄성이 들렸다.
 “우와, 봤냐?”
 “개쩌는데?”
 남경수가 부들부들 떨었다.
 “개새끼가······ 죽고 싶냐?”
 그는 벽에 세워져 있던 대걸레를 들었다.
 최강은 대걸레를 보는 순간, 예전에 한상원에게 죽도록 맞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분노도 치솟았다.
 “그거, 버리는 게 좋을 거다.”
 “싫다. 개새끼야, 상원이한테 처맞았던 것처럼 나한테도 죽도록 처맞아 보라고!”
 남경수는 최강에게 대걸레를 힘껏 휘둘렀다.
 최강은 날아드는 대걸레를 주먹으로 쳐 내고 남경수의 가슴을 걷어찼다.
 퍽!
 “으악!”
 남경수는 뒤로 나가떨어졌다.
 조금 전까지 탄성을 지르던 애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최강은 남경수의 머리칼을 움켜잡으며 눈을 맞췄다.
 독기 어린 눈빛을 보자 남경수는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 갔다.
 “하나만 묻자.”
 “어어어.”
 고개가 부러질 듯이 끄덕이는 남경수는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
 “그날 네가 날 때린 거로 하라고 한 놈이 누구냐?”
 “그, 그건······.”
 “처맞고 대답할래?”
 “아, 아니. 계남이가 시켰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다 알아서 해결해 준다고 말이야.”
 “그래서 넌 어떻게 됐는데?”
 “일주일간······.”
 “정학?”
 “화장실 청소를······.”
 “시발!”
 최강은 자신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상대를 반쯤 죽도록 폭행한 녀석에게 내린 징계가 고작 화장실 청소 일주일이라니······.
 아마 폭행당한 놈이 보잘것없는 놈이라서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을 터.
 최강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말했다.
 “가서 전해, 다들 죽을 준비하고 있으라고.”
 
 
 
 # 반전
 
 
 
 
 
 
 
 
 
 
 화장실 사건은 학교를 강타했다.
 물론 한상원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블랙 타이거들을 모두 옥상으로 불러 모았다.
 박계남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버러지가 전혀 다른 놈이 되어 나타났다고 난리더라.”
 “난들 알겠냐? 일단 애들 보내 놨으니까 기다려 보자고.”
 “그나저나 남경수 그 새끼가 털어놓는 바람에 일이 꼬이는 거 아냐?”
 “걱정 마. 꼰대들이 확실하게 처리했을 테니까. 선생들이 안다고 해도 이제 와서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거야.”
 “그건 그렇겠지······.”
 박계남이 수긍한다는 표정을 지을 때였다.
 최강을 확인하러 갔던 애들이 돌아왔다.
 “선배!”
 “확인해 봤어?”
 “진짜 괴물이 되어서 돌아왔습니다.”
 “운동을 존나 했는지 몸에 근육도 장난 아니고, 눈에 독기가 가득한 게 섬뜩하기까지 했습니다.”
 “내 말은 전했어?”
 “예. 점심시간 때 옥상으로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좋아. 버러지 같은 놈이 그동안 운동 좀 한 것 같은데, 그래 봤자 버러지일 뿐이다.”
 박계남도 한상원의 말에 동의하며 덧붙였다.
 “맞아, 그리고 남경수는 원래 빵셔틀 하던 놈이잖아. 그런 놈 하나 쓰러뜨렸다고 의기양양해진 것 같은데, 제대로 교육 좀 해 주자고.”
 나머지들도 비릿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딩동댕동-!
 점심시간을 알려는 종이 울렸다.
 각 교실 문이 세차게 열리면서 애들이 뛰쳐나왔다. 매점으로 가는 듯싶더니 모두 옥상으로 올라갔다.
 최강이 블랙 타이거에게 선전포고를 날렸기 때문이다.
 옥상에는 한상원을 비롯해 블랙 타이거 일원이 모두 모였다. 옥상에 올라가지 못한 애들은 계단에서 최강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길 약 5분 정도 지났을 때쯤.
 “온다!”
 복도 끝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최강이 나타났다. 그는 담담하게 계단을 밟으며 옥상으로 향했다. 최강이 옥상에 들어서자, 한상원을 비롯해 블랙 타이거 일원들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버러지?”
 “저게 최강이라고?”
 “시발,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약이라도 처먹은 거야?”
 하나같이 불신 어린 눈빛으로 최강을 쳐다보았다.
 특히 한상원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난 최강이 당황스러웠다.
 “네가 버러지라고?”
 “한상원······.”
 최강의 눈에서 살기가 흘러나왔다.
 “이야, 정말 놀랄 만한 일이네.”
 “네놈만 생각했다.”
 “나도 삐뚤어진 내 코를 보며 네놈을 어떻게 갈아 마실까 늘 생각했거든. 몸을 보아하니 운동 열심히 한 것 같은데, 몸만 키워서 날 어찌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면 큰 착각이라고. 뭐니 뭐니 해도 싸움은 실전이야.”
 “닥쳐라.”
 “이야, 입도 뚫렸네. 근데 제대로 사용하려면 교육 좀 받아야겠다. 내가 친히 교육해 줄 테니까 감사하게 잘 받아라.”
 한상원은 침을 퉤 뱉고는 최강에게 달려들었다.
 최강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개새끼, 넌 죽었어.”
 그도 바닥을 박차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둘이 동시에 주먹을 뻗었다.
 퍽! 퍽!
 서로 안면을 한 대씩 주고받았다. 한상원이 이어서 발길질을 날려 최강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퍽!
 “크윽!”
 최강이 휘청거리며 서너 발 뒷걸음쳤다.
 “역시 한상원이야.”
 “한상원! 한상원!”
 블랙 타이거들은 한상원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최강은 입가에 흐르는 피를 주먹으로 쓱 닦아 냈다.
 한상원을 보는 순간, 너무 흥분한 나머지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흥분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이날만 기다렸다.”
 “내가 말했을 텐데, 버러지는 버러지답게 살라고?”
 “닥치라고.”
 최강이 달려들었다.
 “어딜!”
 한상원이 주먹을 내질렀다.
 최강은 복싱 선수처럼 풋워크를 밟아 파고들어 가면서 번개같이 주먹을 뻗었다.
 퍼억!
 “커억!”
 한상원의 머리가 튕겨 나가듯이 뒤로 젖혀졌다. 이어서 복부에 주먹이 꽂혔다.
 퍽!
 “크윽!”
 한상원이 무릎을 꿇을 때였다. 최강은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반사적으로 킥을 날렸다.
 뻐억!
 “크으억!”
 한상원의 고개가 홱 돌아가며 쓰러졌다.
 최강의 특기인 콤비네이션 공격이 적중했다.
 신인왕 대회를 준비 중인 광덕도 이것에 걸리면 속절없이 무너졌을 정도로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순식간에 한상원이 무너지자 주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조금 전까지 한상원을 연호하던 블랙 타이거는 넋 나간 표정을 지었고, 구경하던 애들은 경악했다.
 최강은 바닥에 대자로 뻗은 한상원에게 다가가 머리칼을 움켜쥐며 물었다.
 “우리 할머니, 네놈 짓이지?”
 “으으······.”
 한상원은 반쯤 정신이 나간 채 신음을 흘릴 뿐이다.
 최강은 그를 내팽개치고는 박계남에게 시선을 옮겼다.
 “넌 알고 있겠지? 항상 둘이 붙어 다녔으니까.”
 “무, 무슨 소리야?”
 “우리 할머니를 그렇게 만든 거 네놈들 짓이잖아!”
 “저 새끼가 돌았나?”
 “매 앞에 장사 없더라.”
 “뭐야?”
 “네놈도 당해 봐.”
 최강이 달려들자 박계남이 외쳤다.
 “밟아!”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블랙 타이거들이 최강에게 달려들었다.
 최강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주먹과 발길질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주먹을 날렸다.
 한 방에 한 명씩 쓰러뜨렸다. 하지만 인원이 너무 많았다.
 아무리 강해진 최강이었지만, 혼자서 십여 명을 상대한다는 건 무리였다.
 조금씩 무너져 갔다.
 “미친 새끼, 혼자서 우릴 상대하겠다고?”
 “두 번 다시 기어오르지 못하게 밟아!”
 그들은 인정사정없이 공격을 퍼부었고, 심지어 옥상에 있던 각목으로 내리치기까지 했다.
 최강은 온몸이 부러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지만, 이를 악물며 참았다. 급기야 그는 괴성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
 살벌한 기세가 뿜어졌다. 공격을 퍼붓던 그들은 깜짝 놀라며 잠시 주춤거렸다.
 최강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번개같이 공격을 퍼부었다.
 주먹을 내지르고, 팔꿈치로 찍고, 무릎으로 차올리고, 킥을 날리며, 심지어 머리로 들이받기까지.
 그동안 체육관에서 수련했던 모든 기술을 그들에게 쏟아 냈다.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는 최강의 모습에 그들은 겁에 질리더니 한두 명씩 도망쳤다.
 그러다 보니 균열은 금세 일어났다. 최강 앞에 선 녀석은 단 한 명, 박계남밖에 없었다.
 “괴, 괴물 같은 놈······.”
 “헉, 헉, 헉.”
 최강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손가락 하나 까닥거릴 힘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여기서 무너질 순 없었다.
 “말해!”
 “대, 대체 뭘 말이야?”
 박계남은 겁에 질린 채 말을 더듬었다.
 “네놈들 짓이잖아!”
 “몰라! 난 모른다고!”
 박계남은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죽도록 맞다 보면 생각나겠지.”
 최강은 지독한 독기를 펄펄 흘리며 다가오자, 박계남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건드리기만 해 봐! 우리 아버지가 널 가만둘 것 같아?”
 “상관없어. 네놈들 다 죽이고 나도 죽으면 끝이니까.”
 “뭐, 뭐라고?”
 박계남의 얼굴에 절망감이 드리워졌을 때였다.
 “이게 뭣들 하는 짓이야?”
 배기석을 비롯해 선생들이 옥상에 나타났다.
 그들은 곳곳에 쓰러져 있는 애들을 보며 오만상을 찡그렸다. 그들 중에 한상원도 있는 걸 확인한 배기석은 눈이 크게 치떠졌다.
 “젠장!”
 그는 얼른 한상원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피더니 재빨리 업고 내려갔다. 그리고 나머지 선생들이 최강에게 다가오자, 박계남이 소리쳤다.
 “이 자식이 우릴 죽이려고 했어요!”
 체육 담당인 유동석이 최강에게 말했다.
 “내려가자.”
 “못 내려갑니다.”
 “······?”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저 새끼한테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절대 못 내려갑니다!”
 최강이 버럭 소리쳤다.
 그에 질세라 박계남도 소리를 치며 응수했다.
 “이 새끼야, 아니라는데 계속 지랄할래!”
 “사실대로 말하라고!”
 최강이 주먹을 휘두르는 그때, 유동석이 재빨리 그를 넘어뜨려서 제압했다.
 이미 힘이 다 빠질 대로 빠진 그라 저항은커녕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미친 듯이 휘몰아쳤던 태풍은 그렇게 멈췄다.
 
  * * *
 
 최강이 눈을 떴을 때는 양호실이었다. 온몸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
 “이제 깨어났어?”
 누군가 다가왔다. 마지막에 자신을 제압했던 유동석이었다. 최강이 그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그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냥 누워 있어.”
 “······아직 할 일이 남았습니다.”
 “알아, 근데 지금은 아니다.”
 “······?”
 최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 선생들의 태도와는 사뭇 달라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유동석은 피식 웃으며 침대에 엉덩이를 걸쳐 앉았다.
 “뭐 하시는 겁니까?”
 “얘기 좀 할까 싶어서.”
 “할 얘기 없습니다.”
 최강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유동석은 그의 태도에 화가 날 만도 했지만, 담담하게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
 “뭘요?”
 “네가 어떤 심정인지 말이다.”
 “······?”
 최강은 여태까지 자신에게 별 관심도 없던 그가 갑자기 이렇게 나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유동석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평교사가 무슨 힘이 있겠어? 나도 내색을 안 했을 뿐이지 회의감 많이 느끼고 있다.”
 “무슨 말을 하시려는 겁니까?”
 “상대가 너무 막강해서 어쩔 수 없었는데, 지금은 상황이 좀 달라져서 말이야.”
 “······?”
 “네가 블랙 타이거를 박살 내자, 애들이 들고일어났다.”
 “네에?”
 유동석이 손으로 창문을 가리켰다.
 창밖을 내다보자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운동장에 애들이 모두 나와 항의를 하는 게 아닌가.
 
 -학교 폭력 사라져라!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최강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유동석은 그가 기절한 이후 있었던 일을 말해 줬다.
 최강이 그에게 제압당해 옥상에서 내려오자, 복도에 있던 애들의 입에서 최강을 연호하기 시작했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누군가 ‘학교 폭력 사라져라’라고 선창하자, 다들 따라 외쳤고, 그것이 전교생들에게 전해졌다고.
 그동안 블랙 타이거의 억압에 눌려 꾹 참고 있던 것이 최강에 의해 터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애들은 자발적으로 운동장에 집결하더니 수업 거부까지 해 가며 학교에 항의하고 있었다.
 때마침 교육청에서 들이닥쳐 특별감사까지 받고 있었다고 했다.
 “아······.”
 최강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예상 밖의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줄은 몰랐다. 그만큼 그들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해결이 되길 바랐다.
 유동석이 입을 열려는 그때, 양호실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들어왔다.
 유동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중년 남성을 맞이했다. 말쑥하게 슈트를 차려입은 그가 유동석에게 물었다.
 “저 친구인가요?”
 “예.”
 “단둘이서 할 얘기가 있는데 잠시 자리 좀 비켜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음, 알겠습니다.”
 유동석이 밖으로 나가자, 중년 남성은 구석에 있던 의자를 침대 옆으로 가져와 앉았다.
 “최강 학생?”
 “누구십니까?”
 “여기.”
 중년 남성은 최강에게 명함을 건넸다.
 
 한&나 법률 사무소.
 대표 나민길.
 
 “······?”
 최강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교육청에서 나온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민길은 사람 좋은 인상을 지으며 말했다.
 “한국상 회장님께서 보냈습니다.”
 ‘젠장!’
 한상원의 아버지가 나선 것이다.
 “오늘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여러모로 상황이 안 좋다는 건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요?”
 최강은 날 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회장님께선 원만하게 해결하길 원하십니다.”
 “원만하게?”
 “네. 더 이상 문제 일으키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최강 학생에게는 아무런 피해가 가지 않을 겁니다.”
 “싫다면요?”
 “그럼 어쩔 수 없죠. 내가 가진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최강 군에게 죗값을 치르게 해야죠.”
 “뭐라고요?”
 “참고로, 전 아주 유능해서 없는 죄도 잘 만들어 낸답니다.”
 “협박하시는 겁니까?”
 최강이 눈을 부릅떴다.
 나민길은 눈웃음을 지으며 손을 저었다.
 “천만에요. 협박도 상대를 봐 가며 하는 거지,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한테는 협박이라니? 그냥 조언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겁니다. 좀 있으면 교육청에서 나온 사람이 올 겁니다. 잘 생각해서 대답하길 바랍니다, 그럼.”
 나민길은 입가에 미소를 띠며 밖으로 나갔다.
 최강은 주먹으로 침대를 내리쳤다.
 “제기랄!”
 힘만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자신은 그저 힘만 세졌을 뿐이다.
 한상원과 박계남을 조지면 할머니 사고의 진위가 밝혀질 것이라 여겼는데,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았다.
 최강은 어떻게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길 10여 분이 지났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배기석이 안으로 들어왔고, 그 뒤를 이어 몇몇 사람들이 들어왔다.
 교육청에서 나온 사람이리라.
 배기석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최강을 한번 쳐다보고는 그들에게 말했다.
 “저 애가 최강입니다.”
 “예, 지금부턴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배 선생님은 나가 주세요.”
 “알겠습니다.”
 배기석이 밖으로 나가자, 그들은 측은한 눈빛으로 최강에게 다가왔다.
 “애들한테 얘기 들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지.”
 최강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그래.”
 그들은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강은 울음이 터져 나오는 걸 간신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가슴속 깊이 억눌려 있던 한 맺힌 감정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감당을 못 한 그는 결국 목 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양호실은 그의 서러움 울음소리로 가득 메워져 갔다.
 그들은 최강이 실컷 울도록 내버려 뒀다.
 그의 속에 맺힌 울분을 모조리 비워 내길 바랐다.
 한 시간 후.
 교육청에서 나온 관계자들은 최강과 면담을 모두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감사 결과를 바탕으로 징계 위원회의 결과가 다음 날 학교로 전달되었다.
 
 -박계남 : 불량 서클인 블랙 타이거를 만들고 학교 폭력을 주도한 이유로 전학 처리함.
 -남경수 외 열세 명 : 불량 서클인 블랙 타이거에 가입해서 면학 분위기를 해친 것에 대한 처분은 학교장의 재량에 맡김.
 -한상원 : 피해자(최강)에게 가혹 행위를 한 이유로 전학 처리함.
 -최강 : 이유 불문하고 폭력을 행사한 것에 대한 처분은 학교장의 재량에 맡김.
 
 그리고 불량 서클이 활동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인하고 있었던 것에 대해 교장 정직 1월, 교감 정직 3월, 학생부장 견책을 선고했다.
 이 사실이 학생들에게 알려지자, 그들은 학교가 떠나갈 듯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최강이 그들의 마음속에 영웅으로 들어서는 순간이기도 했다.
 
 태풍이 몰아친 지 한 달이 지났다.
 최강은 또다시 한 달간 정학을 받았지만, 전과 달리 억울하지는 않았다. 놈들도 응당한 죗값을 치렀기 때문이다.
 물론 한상원과 박계남은 제외되었다.
 심지어 그 둘에게 징계를 먹였던 공무원은 지방으로 발령 갔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그 둘을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지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울분을 참고 이겨 내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나마 다른 놈들은 제대로 처분을 받았다는 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긴 했다.
 정학 동안 최강의 생활에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하지만 매일 체육관에 나가서 운동하고 집에 와서는 책을 읽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깨달았다. 힘만 있으면 모든 게 다 달라질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할 수 없는 게 있었다.
 바로 한상원에게 복수하는 것.
 그는 블랙 타이거에 관한 모든 것을 박계남에게 뒤집어씌우고는 빠져나갔다.
 바로 그의 아버지, 한국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한민국 5대 기업 중 하나인 태창그룹의 회장인 그가 가진 힘이 진정한 힘이라는 걸 깨달았다.
 최강도 진정한 힘을 가지기로 했다.
 그래서 반드시 한상원에게 할머니 사고에 관한 진실을 받아 낼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대학에 들어가야 했는데, 그의 내신 성적으로는 대학 문턱도 넘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슈퍼 히어로에 버금가는 능력이 있었다.
 현재 5개 국어는 원어민 못지않게 구사할 수 있었고, 고등학교 수학 문제 중에서 자신이 풀 수 없는 건 없었다.
 암기 과목이 문제가 되긴 했지만, 수능까지는 70일 남은 상황이라, 죽기 살기로 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1학년 교과서를 펼쳐 놓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정학이 풀린 최강이 학교에 갔을 때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그 사건이 있고 난 뒤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학생들이 SNS에 블랙 타이거가 저지른 악행을 낱낱이 올린 것이다.
 그것이 이슈가 되어 각종 방송사에서 취재하기 위해 나왔고, 심지어 9시 뉴스에도 보도가 되었다고 했다.
 그리하여 학부모들의 항의로 인해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 교감, 그리고 3학년 학생 주임이자 담임이었던 배기석은 다른 학교로 전출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최강은 학교의 영웅이 되어 있었다.
 빵 셔틀이나 하던 녀석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블랙 타이거를 무너뜨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학생들은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고, 폐단을 알면서도 묵묵히 방조했던 선생들은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강의 활약상이 그들의 머릿속에 조금씩 옅어져 갈 때쯤이었다.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다.
 최강이 대입 수능 모의고사에서 영어, 수학 과목에 만점을 받은 것이다. 여태까지 최하위 성적이었던 그였기에 담임은 깜짝 놀랐다. 배기석의 전출로 인해 최강의 담임을 맡게 된 유동석이 최강을 상담실로 불렀다.
 “최강.”
 “예.”
 “모의고사 점수 어떻게 된 거냐?”
 유동석이 의심 어린 눈빛으로 묻자, 최강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무슨 뜻입니까?”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공부했습니다.”
 “공부야 했겠지. 근데 원래 네 점수랑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말이야······.”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 열심히······.”
 유동석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최하위 성적이었던 그가 3개월 만에 상위 수준까지 올라갔다는 게 사실상 믿을 수가 없었다.
 더 놀라운 건 수학과 영어에서 만점이라는 사실.
 이번 모의고사에서 수학과 영어 만점자는 전국에서 총 145명. 그중 한 명이 최강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너도 알다시피 이게 말이 안 되는 경우라서 말이야.”
 “압니다. 근데 진짜 사실대로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확인 좀 하려고 하는데, 괜찮겠어?”
 “얼마든지 하세요.”
 최강은 여유만만했다.
 유동석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어, 난데. 지금 시간 좀 되면 진실의 방, 아니, 상담실로 와 줘. 그래.”
 “풉.”
 ‘진실의 방’이라는 말에 최강은 웃음이 튀어나오는 걸 꾹 참아 냈다.
 
 잠시 후, 상담실에 영어를 담당하는 박 선생이 들어왔다.
 “네, 유 선생님.”
 “잠깐 확인 좀 할 게 있어서 말이야.”
 유동석은 이번 모의고사에서 나온 최강의 점수를 알려 주면서 확인을 부탁했다.
 박 선생은 흔쾌히 응하며 최강에게 말했다.
 “이번 시험에서 만점 받을 정도면 실력이 최상위라 보거든. 그래서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해 주면 돼.”
 “예.”
 박 선생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그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그는 말을 멈추고 최강을 쳐다보았다. 최강은 씩 웃으며 입을 열었다.
 “······!”
 유동석의 눈이 동그래졌다. 최강도 박 선생 못지않게 유창한 영어로 말하는 게 아닌가?
 놀라기는 박 선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최강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더니 ‘엑설런트’라 말하며 손뼉을 쳤다. 그러고는 유동석에게 말했다.
 “굉장한데요. 이 정도면 만점 받을 만도 합니다.”
 “그래요?”
 박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최강에게 물었다.
 “공부를 어떤 식으로 했어?”
 “TV 보고 했습니다.”
 “아, 그럼 너도 미드나 외국 방송을 많이 봤겠구나.”
 “예.”
 “어쩐지, 그래서 발음이 좋았던 거였어.”
 박 선생은 최강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지고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며 상담실에서 나갔다.
 최강이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유동석에게 물었다.
 “이제 확인 끝났으면 교실로 가 봐도 되겠습니까?”
 “어? 어.”
 유동석은 어리둥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최강이 나간 문을 빤히 쳐다보며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이 들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 * *
 
 교실로 돌아온 최강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최강.”
 “어?”
 최강은 고개를 돌렸다. 전교 1등인 우수명이었다.
 3년 내내 같은 반을 지냈지만, 단 한 번도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 녀석이다.
 “나 좀 보자.”
 “말해.”
 “아니, 나가서.”
 “그냥 말하면 안 돼? 나 해야 할 일이 많아서 말이야.”
 “으음······.”
 우수명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미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우수명은 결심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
 “수학 선생님이 그러시던데 너 이번 모의고사 수학 만점이 받았다면서?”
 “그런데?”
 “그래서 말인데, 19번 문제······ 어떻게 풀었지?”
 “······?”
 “인강을 들어도 이해가 안 돼서 말이야. 설마 찍은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최강은 씩 웃더니 모의고사 문제지를 꺼내 그가 언급한 문제를 살펴보다가 노트에 뭔가 적어서 우수명에게 내밀었다.
 “그 공식대로 풀면 답이 나올 거다.”
 “그래?”
 노트를 건네받은 우수명은 공식을 보더니 머릿속에 뭔가 떠오른 듯 얼른 자리로 돌아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이들은 눈이 동그래졌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전교 1등이 최강에게 문제를 물어봤다. 더 중요한 건 최강이 모의고사에서 수학 만점을 받았다는 사실.
 그들 중 한 명이 최강에게 물었다.
 “야, 최강, 너 진짜 수학 만점이야?”
 “어.”
 최강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뭐?”
 다른 애가 물었다.
 “다른 건?”
 “국어랑 사탐은 못 쳤는데, 영어는 만점.”
 “헉!”
 순간 아이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때부터였다. 애들이 최강에게 달려가 그의 모의고사 문제지를 빼앗아 확인해 봤다. 가채점한 것이 보였는데 최강의 말대로였다. 수학과 영어는 만점이었다.
 애들은 최강을 마치 괴물처럼 쳐다보며 물었다.
 “너 어떻게 된 거냐?”
 “나보다 공부 못했잖아.”
 “갑자기 왜 이렇게 변한 거야?”
 “혹시 외계인한테 잡혀갔다가 온 거 아니야?”
 온갖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강은 고개를 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열심히 공부했다.”
 “그 말을 믿으라고?”
 “어.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보고 강해지라고 하셨거든. 그래서 죽기 살기로 운동하고 공부했다. 그러니까 되더라.”
 “이야, 진짜 대단한 놈이잖아!”
 “나도 좀 가르쳐 줘.”
 최강은 애들에게 둘러싸여 그들의 부러움을 독차지했다.
 
 교무실에서도 최강의 모의고사 결과는 단연 화제였다.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러게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어요.”
 “아마 하나뿐인 가족을 잃고 변화가 온 게 아닐까요?”
 “그렇긴 한데 외형적인 부분도 너무 달라져서······.”
 “그런 사람들 있어요. 저도 고등학교 올라가서 20센티 자랐어요. 제 동생은 군대 가서도 10센티나 더 자랐고요.”
 “아무튼 좋은 쪽으로 변화가 와서 천만다행입니다.”
 그들은 최강에게 좋은 변화가 왔다고만 느낄 뿐, 그가 학교의 전설을 이어 갈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 * *
 
 최강은 학교를 마치고 곧장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으로 가는 길에 그가 잠시 들르는 곳이 있었다.
 최강은 골목 안쪽으로 걸어가서 모퉁이를 돌아서 멈췄다.
 골목은 음습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이곳은 다름 아닌 할머니가 발견된 장소였다. 사람들에게 쉽게 발견될 만한 곳이 아니었다.
 사고 당일 동네 사람에게 할머니가 발견되었다고 했는데, 동네 사람 중에서 할머니를 발견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할머니를 119에 신고한 사람은 과연 누굴까?
 한상원 그놈일까? 아니면 한상원이 누군가에게 사주했는데 그놈이 119에 신고를 한 걸까?
 여전히 사건은 미궁 속을 헤맸다.
 확실한 건 한상원이 관련되어 있다는 거다.
 지금은 그에게 죗값을 못 묻고 있지만, 자신이 힘을 갖게 되면 이 사건과 연관된 놈들에게 응징을 가할 것이다.
 최강이 뒤돌아서려는 그때였다. 골목 안으로 사내 두 명이 나타났다. 둘 다 음습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네놈이 최강이냐?”
 “누굽니까?”
 경계의 눈빛을 띠며 최강이 뒤로 물러서자, 다른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새끼가 어른이 물었으면 재깍 대답해야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거참, 싸가지없네.”
 “그러니까 형님이 반쯤 죽여 놓으라고 했겠지.”
 “······!”
 순간 최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딱 봐도 둘은 평범한 일반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매서운 눈빛 하며, 살벌한 기세를 봤을 때 조직 폭력배가 분명했다. 그런데 그들이 자신을 노리는 이유가 뭘까?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을 때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한상원!
 그놈이 사주했을 가능성이 컸다. 놈의 성격이라면 어떻게든 복수하려고 할 테니까. 그동안 너무 조용하긴 했었다.
 최강은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한상원이 시켰습니까?”
 “이 자식 봐라? 지금 우리한테 물었냐?”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최강의 말투가 싸늘하게 변하는 동시에 그의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싸울 준비를 끝낸 그에게서 살벌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사내들은 최강의 기세에 살짝 당황스러워했다.
 “뭐야?”
 “단순한 고삐리가 아니잖아.”
 “후훗.”
 최강이 피식 웃었다.
 “일단 말만 주고받을 건 아니니까.”
 그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내들에게 달려들며 전광석화처럼 주먹과 킥을 날렸다.
 퍽!
 “윽!”
 갑작스러운 공격에 한 명이 뒤로 물러섰다. 최강은 둘이 떨어지자 가까이 있는 사내의 가슴팍을 파고들어 가 어퍼컷을 날렸다.
 퍼억!
 “크엑!”
 사내의 몸이 살짝 허공에 뜨더니 그대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음.”
 최강의 움직임에는 머뭇거림이란 없었다. 그는 재빨리 킥을 날렸던 사내에게 달려들며 주먹을 내질렀다.
 “젠장!”
 사내는 얼떨결에 주먹을 피하긴 했지만, 최강에게 멱살이 잡혔다.
 “어?”
 쿵!
 사내가 바닥에 내리꽂혔다. 순식간에 두 명을 처리한 최강은 어퍼컷을 먹인 사내에게 다가가 물었다.
 “한상원, 그놈이 보냈지?”
 사내는 고통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그 위가 누구지?”
 사내는 최강을 빤히 쳐다보더니 킥킥 웃으며 되물었다.
 “감당할 수 있겠어?”
 “못할 것도 없지.”
 “자신감이 넘쳐흐를 땐 매가 약이라고 했던가?”
 “잔말 말고 말해.”
 “영등포 도끼.”
 ‘도끼?’
 최강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 * *
 
 이동기는 체육관에 들어서는 최강을 보며 살갑게 반겨 줬다.
 “내 새끼 왔어?”
 “······.”
 최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뭐냐? 이제는 쌩 까는 거냐?”
 이동기는 입술을 씰룩거렸다.
 운동복으로 갈아입는 최강의 머릿속에는 ‘도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
 사내가 영등포 도끼라고 했으니 영등포에서 활동하는 조폭일 터. 조폭이 개입됐다는 사실에 최강은 얼굴이 어두워졌다. 예전 그였다면 두려움에 벌벌 떨며 어찌할 바를 몰랐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육체적으로 강해진 건 물론,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도 명석해졌다. 한마디로 상대가 조폭이라고 해서 겁먹을 자신이 아니라는 것. 일단 복잡한 생각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운동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최강이 탈의실에서 나오자, 이동기가 인상을 찡그리며 다가왔다.
 “그러는 거 아니다.”
 “네?”
 “아무리 싫어도 인사는 하자.”
 “아.”
 최강은 깜빡하고 인사를 하지 않은 게 생각났다.
 그는 얼른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리고 관원들에게도 한 번 더 우렁차게 인사하자, 이동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제 내 새끼답네.”
 “그만 좀 하세요.”
 최강이 정색하며 링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이동기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 자식아, 남들은 나한테 잘 보이려고 얼마나 노력하는 줄 알아?”
 “그야 그들 우상이니 그렇겠죠.”
 “그럼 넌 내가 우상이 아니란 말이냐?”
 “네. 그냥 체육관 관장님. 사심을 좀 보태면 친절하고 옆집 삼촌 같으신 분.”
 “끄응.”
 이동기는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관원들은 오늘도 최강에게 K.O를 당한 이동기에게 위로의 눈길을 보냈다.
 잠시 후.
 체육관은 혈기 충만한 기합 소리와 함께 훈련이 시작되었다. 최강은 그 어느 때보다 기합이 들어가 있었다. 앞으로 오늘 같은 날이 또 있을 거라는 확신 아래 더욱더 몸을 단련하기로 마음먹은 그였다.
 그 덕에 스파링 상대만 죽어날 뿐이다.
 1라운드 만에 광덕이 녹다운당하자 이동기의 눈빛이 번뜩였다. 또 한층 성장한 최강이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이동기는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글러브를 손에 끼면서 나왔다.
 “······!”
 다들 눈이 동그래졌다. 반면 최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웬 글러브입니까?”
 “간단하게 1라운드만 뛰어 볼까?”
 “네에?”
 이번에는 최강의 눈이 동그래졌다. 체육관에 다닌 지 3개월이 되어 가는 동안 그가 훈련에 참여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진심입니까?”
 “왜? 한 방에 나가떨어질 것 같아?”
 “그, 그게 아니라 관장님이 운동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지금 날 걱정하는 거냐? 이거 은근히 자존심 상하는걸.”
 “아, 아닙니다.”
 최강은 벗었던 헤드기어를 쓰고 맞설 준비를 했다. 그런데 이동기는 글러브만 낀 채 링에 올라왔다.
 “헤드기어는요?”
 “전직 챔피언이 아마추어한테 맞을 것 같냐?”
 “그래도 하시는 게······.”
 “됐고, 오늘 나한테 유효타를 한 대라도 먹이면 네가 이기는 거다. 자, 땡!”
 이동기는 스텝을 밟으며 최강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풋워크가 경쾌한 게 전형적인 아웃 스타일처럼 보였다.
 관원들은 하던 훈련을 멈추고 링 주위에 모였다.
 “이게 얼마 만이야?”
 “관장님이 글러브를 낀 게 아마 1년 넘었지?”
 “그만큼 최강이 뛰어나다는 말이겠지?”
 “그렇지. 현직 선수들도 관장님께 한 수 배우러 찾아올 때마다 거절했잖아.”
 “간만에 관장님 실력 발휘하시겠네.”
 “최강이 얼마나 버틸까?”
 “아냐, 관장님도 공백기를 생각하면 어찌 될지 몰라.”
 관원들의 눈이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최강은 이동기에 대해 알고 있는 거라곤, 전직 챔피언이라는 것, 그리고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는 사실뿐이다. 그랬기에 이동기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가지는 그에 대한 부담감이나 두려움 따윈 없었다.
 최강은 평소처럼 풋워크를 밟으면서 가볍게 킥을 날렸다.
 이동기는 다리를 들어 정강이로 막았다.
 “······!”
 최강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야? 이 느낌······.’
 마치 쇠에 부딪힌 기분이 들었다. 이동기가 씩 웃으며 말했다.
 “뭐 하냐? 안 들어오고.”
 “기다려 봐요.”
 최강은 조금씩 거리를 좁히면서 들어가다 이동기가 공격권 안에 들어오자, 재빨리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주먹을 뻗기도 전에 이동기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퍽!
 “······!”
 최강의 머리가 뒤로 홱 젖혀졌다.
 “뭐야? 실력이 이것밖에 안 돼?”
 “끄응.”
 최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타이밍상 분명 자신이 먼저 주먹을 내질렀다. 근데 자신이 당했다.
 빨랐다. 지금까지 스파링해 온 상대하고는 레벨이 달랐다.
 이동기를 쳐다보는 최강의 눈빛이 달라지자, 그의 자세 또한 변화가 생겼다.
 가드가 견고해지면서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오우, 이제 좀 자세가 잡혔군.”
 만족스러운 듯 이동기의 입가에 미소가 걸리며 잠시 풋워크를 멈췄다.
 그때였다. 최강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번개같이 달려들며 테이크 다운을 시도했다.
 “훗.”
 이동기는 예상했다는 듯이 몸을 옆으로 돌렸다.
 최강은 공격이 실패하자, 재빨리 일어서면서 엘보를 날렸다.
 스윽.
 그러나 허공만 갈랐다. 이대로 물러설 최강이 아니었다. 자신의 특기인 콤비네이션 공격을 퍼부었다.
 이동기는 마치 미트로 공격을 받아 주듯이 한마디씩 뱉었다.
 “허리가 빠졌잖아!”
 그러곤 잽으로 최강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어깨엔 힘 빼고!”
 최강은 숨이 목구멍까지 차올라올 때까지 쉴 새 없이 공격을 날렸지만, 모두 막혔다. 마치 늪 속에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최강이 자신의 모든 공격을 다 퍼부었을 때였다.
 이동기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잘 놀았다.”
 그는 상체를 숙이며 최강의 주먹을 피하는 동시에 옆구리에 가볍게 주먹을 꽂아 넣었다.
 퍽!
 “큭!”
 최강이 앞으로 숙이자 어퍼컷이 번개같이 들어왔다.
 퍼억!
 허공에 뜬 최강은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러고는 의식을 잃었다.
 
 “으으······.”
 잠시 후, 최강이 의식을 차리고 상체를 일으켰다.
 링 한가운데 누워 있었고, 링 밖에서는 한참 관원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가 깨어난 걸 발견한 광덕이 링에 들어섰다.
 “괜찮냐?”
 최강은 인상을 찡그리며 머리를 짚었다.
 “머리가 띵해요.”
 “당연하겠지. 어퍼컷이 제대로 들어갔으니까.”
 광덕은 뭐가 신났는지 어퍼컷을 날리는 시늉을 했다.
 최강은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관장님은요?”
 “오래간만에 무리했다며 조금 전에 퇴근하셨어.”
 “벌써요?”
 “시간을 봐라.”
 최강은 벽에 걸린 시계를 봤다.
 ‘9시?’
 그는 재빨리 창가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어두컴컴해진 하늘이 보였다.
 “아······.”
 “거의 한 시간 동안 누워 있었어.”
 “오, 오래 누워 있었네요.”
 최강은 겸연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일어서다 휘청거렸다. 광덕이 재빨리 그를 부축하면서 싱긋이 웃었다.
 “좀 있으면 괜찮아질 거니까 걱정하지 마.”
 최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링에서 내려왔다.
 그는 탈의실로 발걸음을 옮기려다 말고 광덕에게 물었다.
 “관장님 어떤 분이었죠?”
 “너도 알잖아, 전직 챔피언이었던 거.”
 “좀 더 자세히요.”
 “음.”
 광덕은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관장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건 아니겠지?”
 “모르는데요.”
 “이런!”
 광덕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세상에, 이종격투기를 배우면서 이동기를 모른다고? 기가 찰 노릇이네.”
 그러면서 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줬다.

댓글(7)

ra******    
선발대 출발
2020.02.04 16:50
[탈퇴계정]    
블랙타이거? 보스? ?? 고등학생들?? 설정이 너무 지나친거같은데
2020.02.12 23:33
mi*******    
배경이 무슨 70년대 인줄
2020.02.15 16:27
Shristi    
선발대 입니다.. 설정, 개연성.. 이런거 별로 안따지는 분이라면 시간 때우기로 괜찮습니다.. 즉, 개연성 없습니다.. 설정 엉망입니다.. ㅡ.ㅡ
2020.02.21 07:26
Shristi    
아! 싸움 장면 오지게 깁니다.. 타타타탕~ 으아악~ 으로만 한권 채워지기도하니.. 판단은 자유롭게.. 전 건너뛰고 봤는데.. 죈장 돈아까워..
2020.02.27 11:44
야옹고    
최강...신이라 불리는 사나이...병신이지..밑에분말대로 총소리 비명소리 끝....스나인데 스나인데... 암세포가 자라...암보험 타실분 읽을만함.
2021.08.05 03:03
늬알퐈냥    
만화책 소설버전인줄알고 기대했는디..
2021.08.08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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