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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목수와 가구의 신비한 이야기 [E](종료230728)

목수와 가구의 신비한 이야기 1-1권

2019.12.03 조회 3,033 추천 22


 # 구철아 사업해라
 
 “구철아. 너 이거 해볼 생각 없냐?”
 “이거 뭐요?”
 “일.”
 
 덜컥덜컥 쏟아져 나오는 인쇄물들. 일단, 한 짐 빼서 쌓아두고 돌아본다.
 
 “사장님 이거 어디로 간다고 그랬죠?”
 “녀석아, 묻는 말에 대답부터 해.”
 “무슨 대답요. 나 지금 일하고 있잖아요.”
 “아니. 업장 인수하라고.”
 
 몸은 쉬어도 손은 움직여라. 현장에서 언제나 내가 지켜온 철칙이었다.
 사장님의 빤한 시선을 무시하며 나는 다시 작업 자세를 이어갔다.
 
 “난 또. 무슨 소리를 하시나 했더니.”
 “아~ 이제 힘들어서 더는 못 하겠다. 진짜로.”
 “또 또 우는소리 하신다. 그거 몇 개나 나르셨다고.”
 “아니야 진짜야. 그러니까 네가 사업 인수해.”
 “무슨 수로요?”
 “계약금만 줘. 나머진 차차 해결하고.”
 “네. 네. 알겠습니다.”
 “농담 아니라. 진짜라니까.”
 
 입만 열면 네가 업장 인수하라고 늘 하는 소리였다. 그래서도 그 날도 크게 대수롭지 않게 흘려듣고 있는데. 이상하게 곁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심지어 아직 할 일이 더 남았는데도 기계를 내려버렸다.
 
 “왜 그래요. 지금 한참 돌려야 하는데.”
 “이놈아 사장이 이야기하는데 가는 직원이 어딨어?”
 
 겸사겸사 담배 타임.
 이 인간이 오늘은 또 왜 이러나? 싶은 심정으로 털썩 앉아 물었다.
 
 “뭐. 그럼 진심이세요? 진짜로 인수하라고?”
 “그래. 10년 했으면 너도 이제 독립해야지.”
 “하고는 싶죠.”
 “그래! 그러니까. 나가서 장비 구하랴, 거래처 만들랴. 아이고 됐어. 뭐 하러 그 고생 해? 그냥 우리 하던 거래처랑 장비만 가져가면 너는 지금 하던 일 그대로 쭉~ 하면 되는데. 안 그래?”
 “근데 그걸 왜 나한테 그러세요?”
 “그럼 내가 누굴 믿냐. 나도 한평생 해온 일터. 누구 믿고 맡길 놈한테 맡겨야지.”
 
 사장의 신뢰는 둘째 치고, 이야기가 구미가 당기는 맛은 있었다.
 인쇄 간판 일은 재미는 없어도, 고정적인 거래처만 확보된다면 이미 끝난 내용이니까.
 거기다 장비까지 더해져 오다니. 업장이 작긴 해도 구관이 명관 아닌가. 손에 익은 게 낫지.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나쁜 조건이 아니었다.
 그래도 뭐 원체 실탄이 있어야 지르든가 말든가 하지.
 
 “하~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
 “야. 내가 늘 말했지. 일이란 건 마누라 같아서, 나이 들수록 바꿀 수가 없어요.”
 “하하하 그러는 사장님은 바꿨잖아요. 것도 세 번이나 결혼해놓고서.”
 “이 새끼가 지금 그 뜻이 아니잖아.”
 “아니 하고 싶어도 돈이 없다니까.”
 “왜 돈이 없어. 인마. 너 유산 갖다 뭐 할 거야.”
 
 스물셋에 처음 입사하여 십 년.
 십 년이란 시간은 사장과 직원이 서로 알 사정 모를 사정을 내밀하게 알기에 충분한 세월이었다.
 
 “내가 유산이 뭐가 있는데요?”
 “집! 그 고향 집. 그거 계속 놀려서 뭐 할 거야?”
 “뭐 하긴 뭐 해요. 제사 있을 때 한 번씩 가고. 또”
 “야 이놈아. 그런 새는 돈을 모으면 너 여기 인수하고도 충분히 남지.”
 “···사장님. 지금 진심이세요?”
 “그래. 야 인마. 가뜩이나 건설 경기도 안 좋은데 춘천에 무슨 개발이 된다고 그걸 버텨. 거기다 너 사고 보상비. 그건 또 뭐 할 거야.”
 “아 씨 진짜. 내가 그 소리 함부로 하지 마시라니까. 또 그러시네···.”
 
 타인의 아픔을 선뜻 쑤시는 인간의 경박함. 그런 걸 일일이 상대하다간 내가 십 년을 한 직장에서 버틸 수 없었겠지. 맞서 봐야 나만 골치 아파지고.
 
 “집은 몰라도, 보상금은 내가 건드릴 게 아니죠.”
 “야. 니 조카들만 엄마 잃었어? 너도 너희 어머니 돌아가셨잖아.”
 “그만하라고. 좀 거 자꾸.”
 “알았어. 알았어. 아니 말이 나오다 보니까.”
 
 아무리 한세월을 허물없이 지냈어도 그렇지. 사람이 넘어야 할 선이 있고 아닌 것이 있는 법. 인상이 구겨지고 말았다.
 
 “아무튼, 구철아. 눈앞에 기회가 있는데 안 잡는 게 말이 돼?”
 
 뒤돌아 서 있는데도 홍 사장은 계속해서 설득하고 나섰다.
 
 “잘 생각해라. 너 아니면 나도 빨리 다른 사람 구해야 해서 그래. 진짜 힘들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갑자기 사업을 인수하라는 법이 어딨어요.”
 “왜 없어? 그나마 너니까 기회를 주는 거 아니야. 나도 받을 건 받아야 넘기지.”
 
 진지한 얼굴에 사뭇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반쯤 피웠음에도 필터까지 타들어 간 담배를 버리고 우두커니 업장을 둘러보니 홍 사장이 승부수를 던졌다.
 
 “인마. 지금 우리 일도 따지고 보면 너 혼자 다 하는 거 아니냐. 너도 언제까지 월급 받고 살래. 이제는 딸린 식구들도 있는데.”
 
 승희와 재희. 나의 사랑스러운 조카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내 가족들···.
 
 그래. 우리도 행복해져야지.
 남자가 돈을 벌어야지.
 즐겁게 살아 봐야지.
 
 “···그래서 계약금은 얼마 드리면 되는데요?”
 
 ***
 
 믿었다.
 십 년을 한 식구같이 지냈으니 믿었던 것이고.
 아버지 없는 내게 큰 기둥 같은 분이 힘주어 말씀해 주시니 믿었던 거지.
 설마 와···.
 설마 했는데 홍준식 이 인간이 나한테 그럴 줄이야.
 아 좆같네. 진짜 미치겠네.
 이 씨발놈이 감히 사기를 쳐?
 내가 이름이 호구철이지. 사람이 호구 새낀 줄 아나.
 
 
 # 도둑 잡아라!!
 
 “없어요?!”
 “없어! 니미럴 홍준식 개새끼! 이 썅년도 없고!!”
 
 파주로 향하는 중. 외곽 순환 도로를 헤집고 달리는 가운데 전화를 받았다.
 옆 건물 장 사장 아저씨였다.
 홍 사장의 셋째 부인이 일했던 업소를 다녀왔단다.
 그곳에서도 사모가 종적을 싸그리 감췄는데, 곗돈은 챙겨 떠나는 더러운 수작을 부린 모양이란다.
 
 “하~ 이것들. 제대로 준비하고 날랐어.”
 “알겠습니다. 지금 운전 중이라 끊을게요.”
 “넌 지금 어디냐?”
 “의심 가는 곳 가고 있습니다.”
 “어디냐고!!”
 “말씀드려도 사장님 오실 때면 이미 늦어요.”
 “그래도 어디야!”
 “아 씨발! 왜 나한테 화를 내요!!!”
 
 나만 당한 게 아니다.
 다들 눈에 핏발이 서려 있었다.
 잡으면 서로가 칼침을 놓겠다 자원하고도 남을 심정들이다.
 
 “후~ 미안하다···.”
 “미치는 거 사장님만 아니잖아요. 나도 얼마가 들어갔는데. 나 지금 외곽 순환 150으로 달리고 있어요. 이 똥차 가지고.”
 “···어디냐 구철아. 너 지금 어디 가고 있어?”
 
 아저씨 목소리에 힘이 빠져버렸다. 덩달아 나도 최대한 감정을 낮췄다.
 
 “파주 아세요? 별장 있는데. 예전에 다 같이 와서 논 거 기억하세요?”
 “···서두른다고 잡힐 놈이면 진작 잡았지.”
 “도착해서 연락드릴게요. 욕해서 죄송해요.”
 “됐다···. 운전이나 조심해라···.”
 
 피차 이해 못 할 사정이 아니다.
 상처 입은 자들끼리 서로를 보듬어 주는데, 그게 더 아프게 느껴진다.
 다들 일도 못 하고 이게 뭔 지랄인지···.
 숨을 고르며 파주로 향하는 자유로에 진입해 간다.
 
 ***
 
 파주. 헤이리라는 멋진 단독주택과 별장들이 늘어선 관광지가 멀지 않은 곳.
 그런 잘나가는 곳과는 조금 동떨어진, 어딘가의 전원주택이 위치한 앞에서. 끼이익! 타이어 명줄 갈리는 소리를 내며 차를 세웠다.
 
 “사장님! 홍 사장님!! 나오세요! 나와! 있으면 나오라고!!!”
 
 쿵쿵쿵쿵!! 성나게 대문을 두드리고 밀고 당긴들 집안은 적막하기만 하다.
 
 시골이라, 몇 가구 보이지 않는 동네인 데다가 워낙 한적한 곳이니 이웃들이 고개를 빼 들고 지켜본다.
 시선이 불편하지만, 지금 주변 체면 따질 때가 아니었다. 쳐들어간다!
 
 차로 가 준비해온 빠루를 챙겼다.
 
 이봐 사장님. 당신만 나 알아? 나도 당신에 대해서 알 만큼 안다 이 말이야.
 세 번째 부인은 정체불명의 40대 작부고, 첫 부인은 사별. 두 번째는 원수를 지고 갈라섰으니, 그쪽으로 갈 리는 없을 터.
 여기다. 분명히 여기 있어. 아니어도 한 번은 왔었을 거야.
 대문에서 떨어져 나와 담벼락을 지켜봤다. 나무로 만든 울타리가 집안 풍경을 감춰준다.
 주저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이런 건 이미 눈 돌아간 시점에서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행사하는 수밖에.
 
 콱! 콱! 와직!!
 
 아기자기하게 만들어놓은 나무 울타리들.
 그래도 어른 키를 넘는 높이기에 뛰어넘기 어려운 것을 빠루로 걸어서 당기고 때려 부숴 마당으로 들이쳤다.
 현관문은 당연히 잠겨 있었다.
 그래서 거실 창을 깨부쉈다.
 
 와장창!!
 
 전면 유리라 창문 한번 시원하게 깨지는구나.
 누가 신고하면.
 뭐 어쩔 건데.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잖아.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큰소리로 당당히 외쳤다.
 
 “홍준식 어딨어!! 나와!!”
 
 운동화가 깨진 유리창을 즈려밟으며 집안을 뒤집는다.
 아직 한여름. 2층짜리 전원주택의 온도가 높지 않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에어컨을 돌리고 있던 듯싶은데, 늦었나? 이미 난 거 아냐?
 
 부랴부랴 가택을 뒤집기 시작했다.
 뭐든 단서를 찾기 위한 행동. 어디로 갔는지, 뭘 챙겨 갔는지.
 근데 내가 이런다고 뭐 알 수 있나? 내가 무슨 경찰이나 셜록 홈즈도 아니고.
 나도 여기까지지. 이 이상의 추적은 어렵다.
 내 돈. 아니 우리 가족 돈. 그게 어떤 돈인데.
 씨발 진짜. 그게 어떤 돈인데··· 그걸 먹으려고.
 눈물이 왈칵 나오는 걸 입술을 악다물며 참아 넘겼다.
 이렇게 된 이상 여기서 뭐든 돈 될 거라도 챙겨 가지 않고선 화병 나 뒤져버리는 거 아닐까 싶은 감정으로 미쳐 날뛰고 있는데.
 근데, 이 정도 사기 치고 나른 인간이 서랍이든 서재든 유리구슬 하나 남겨둘까.
 유통기한 다 지나 접착도 안 되는 대일밴드나 면봉. 쓸모없는 단추. 명함 같은 쓰레기들을 손에 쥐고. 허무함과 절망감이 온몸을 엄습해 오고 있었다.
 
 죽여버리고 싶다.
 죽여버릴 거야.
 어떻게 나한테···.
 당신이······.
 
 그 순간, 전화가 울렸다.
 
 누구야 바빠 죽겠는데 싶은 순간.
 
 이럴 수가···.
 
 홍준식이었다.
 
 “여보세요! 사장님? 사장님!! 어디예요?”
 
 다급한 목소리로 묻지만, 저쪽은 응답이 없었다.
 
 “사장님. 홍 사장님? 농담이 지나친 거 아시죠? 예? 어디냐고요.”
 “구철아···.”
 “아 씨발! 진짜! 무게 잡지 말고!! 어딘데!! 당신 어디야!!!”
 
 핸드폰이 터져라 붙잡고 소리를 지르는데. 기계는 멀쩡하고 내 눈물만 왈칵 터지고 만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예!!”
 “미안하다···.”
 “장난치지 마요 진짜. 어디예요. 지금 나타나면 내가 사장님 다리만 잘라내고 봐 드릴게. 진짜 이러지 마요. 나한테 이러면 안 돼.”
 “정말 너한텐 미안해서···.”
 
 핸드폰 저쪽으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뭐든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정으로 다급하게 녹음 버튼을 눌렀다.
 
 “사장님.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내 돈. 돈부터. 일단 그거부터.”
 “구철아. 지금 어딨니?”
 “파주요.”
 “역시. 너는 찾아왔구나.”
 “그런 인정 받기 싫으니까 어딘지나 말하라고 좀!!”
 
 홍준식은 잠깐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안방에 장롱 있지? 거기 좀 들여다볼래?”
 
 설마. 이 인간이 날 위해서는 돈을 남겨놓은 걸까?
 실낱같은 빛에 이끌린 몸짓으로 다급히 장롱을 뒤집어 서류봉투를 찾았다.
 
 있나? 있어?
 뭐야 이건···.
 
 갈색 봉투 안에 든 것은 백지수표도 현금 뭉치나 금괴도 아닌, ‘토지대장’이라 적힌 문서였다.
 절박한 심정이 목소리에 담겨 나왔다.
 
 “뭡니까···? 뭐예요 이거?”
 “그거 가져가. 그래도 꽤 큰 산이야.”
 “아니. 돈 돌려달라니까 뭔데 이게?”
 “미안하다. 그렇지만 너 말고 딴 놈들한테는 미안하지 않아. 나쁜 놈들. 맨날 잔금 떼먹고. 그나마 돈 들어오는 날이면 업소니 뭐니 끌고 가 돈은 돈대로 다 뜯어가고.”
 “좆 빠는 소리는 그쪽이랑 하고! 씨발 나한테 왜 이러는데!!”
 
 답은 없다. 그저 허무한 핸드폰 저쪽의 소리만이 웅웅 들려올 뿐.
 그때 귓가 언저리에 “오늘. 인천발 뉴욕행 비행을 타실 손님께서는” 같은 소리가 들려오며 전화가 끊겼다.
 다음은 아무리 걸어 봐도 전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연결해 준다는 상냥한 아가씨의 보이스만 들려온다.
 
 진정하고. 심호흡하자.
 다시 서류봉투를 열어보자.
 역시나 [토지대장]이라는 네 글자로 문서는 시작하고 있었다.
 서류를 파르르 넘겨 보니. 그 안에 법무사니 뭐니,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는 땅문서가 맞다.
 산. 지필. 나머진 어쩌고저쩌고.
 마음도 날뛰고 이성도 제대로 된 이성이 아닌지라, 보면서도 이게 뭔지 알 수 없었다.
 일단 서류는 접어 허리춤에 꽂아 넣는데.
 아니 땅문서를 두고 갔다고? 집문서도 아니고 땅문서를??
 근데 나한테 이딴 거나 먹고 떨어지라고?
 
 다른 걸 찾아본다.
 이렇게 된 이상 뭐든 돈 되는 건 닥치는 대로 쓸어 가야겠다 싶은 순간에.
 
 “손 들어!!”
 
 이건 또 뭐야?
 
 위압적인 목소리에 당황해, 번쩍 손 든 자세로 돌아보니 경찰이 총을 겨누고 있었다.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뭐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들어본 대사가 왜 나한테?
 
 “왜요? 아저씨 왜 그러세요?”
 “당신을 절도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고 묵비권을···.”
 “내가 절도요? 내가? 변호사? 아니 왜 내가 도둑으로···.”
 “움직이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철컥. 엄지손가락이 레버를 당기는 모습에 그대로 멈춰버리고 말았다.
 경찰은 한 손은 총에 고정한 채, 다른 손으론 어깨춤에 걸어둔 무전기에 말한다.
 
 삑 치직 “본부. 본부. 상황 종료. 상황 종료. 갈현리 범인 제압했습니다.”
 
 범인. 내가 범인??? 뭐지? 난 사기꾼 잡으러 온 선량한 시민인데.
 
 “저 아저씨. 저는 범인이 아니라.”
 
 더 이상의 경고 없이 겨눠지는 총구.
 첫발은 공포탄이라고 들었는데 맞겠지? 아니면 죽나? 여기서?
 
 그렇게 경찰과 대치하는 가운데.
 창밖으로 나 못지않게 성난 자동차 소리가 줄줄이 들려왔다.
 경찰도 나도 동시에 고개를 돌린다.
 눈에 익은 모습이 두서없이 골목길을 막으며 주차를 하고 나섰다.
 일일이 따져 보지 않아도, 다들 십여 년간 동고동락해온 거래처나 직장 주변 인물들이었다.
 장 사장 아저씨가 말했나? 하긴 서로들 떼인 돈 돌려받을 심정으로 뭐든 하고 있었으니.
 
 “너! 구철이 이 자식. 준식이 이 개새끼 어디 갔는지 모른다면서!!”
 
 노 씨 아저씨가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그 모습에 얼떨떨해하고 있으니, 경찰이 더 얼빠진 목소리로 물었다.
 
 “뭡니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나도 알 수만 있다면 알려주고 싶다.
 사람들은 차에서 내려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다.
 부서진 담벼락을 더 뜯어내며, 깨진 거실 창문을 신발 차림으로 밀고 들어오며.
 경찰이 저지해도 막무가내로 집 안을 들쑤시고 소릴 질러댄다.
 도둑 잡으러 온 경찰은 괜히 시민들의 윽박을 듣는다.
 어느 아주머니의 애먼 사람 붙잡지 말고 사기꾼 새끼 당장 잡아 오라는 호통에는 그도 뭐라 말하지 못하고 총도 겨누지 못했다.
 그러다 나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홍 사장의 흔적을 찾다 못해, 손에 들고 갈 수 있는 가재도구니 뭐니를 마구 챙기기 시작했다.
 이성이 날아가는 풍경이었다. TV나 벽시계 등 누군가 지고지순하게 모아 꾸미고 가꾼 것들을 서로 챙겨 가겠다며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러시면 다들 절도 현행범으로 체포됩니다! 멈추세요!”
 “닥치고 사기꾼 새끼부터 잡아 와!!”
 
 그 난리 통에 나도 집을 벗어날 수 있었다.
 노 씨 아저씨가 따라와 묻는다.
 
 “이 자식 어딨냐?”
 “인천공항 같아요.”
 “인천? 지금?”
 “예! 전 갑니다!”
 
 아저씨도 트럭으로 돌아가는 가운데, 집 안에서 누군가 서류 한 장을 꺼내 들며 사람들에게 외쳤다.
 
 “이거 봐봐 이거 봐! 이 새끼 이름도 바꿨어!!”
 
 영문 이름이 CHANG SU HONG이라 적힌 A4용지.
 직접 보진 못했지만, 사람들 목소리가 모든 걸 알려준다.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을 그 서류엔 인천발 필리핀행 비행 날짜가 적혀 있었다. 현 시각 기준으로 3시간 뒤 출국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당장 인천이다!”라고 소리치며 와그작 현관문을 밀고, 거실 창을 박살 내며 각자의 차로 돌아갔다.
 나도 핸들을 꺾어 골목길을 빠져나가려는데.
 경찰이 보조석 문을 턱! 열고 막는다.
 
 “어디 가십니까!!”
 “하~ 아저씨.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아직도 모르시겠어요!”
 “그래도 가시면 안 됩니다!”
 “씨발 진짜. 그럼 나중에 경찰서로 가든가 할 테니까 지금은 그냥 좀 타시든가! 가세요!!”
 “···알겠습니다. 가시죠.”
 
 그렇게 경찰을 보조석에 태우고 도로를 달렸다.
 
 
 # 수호천사
 
 인천 국제공항 출국장. 사람들과 줄줄이 도착해 차를 멈추고 뛰었다.
 
 “어? 어? 이봐요! 여기다 주차하시면 안 되는데!”
 
 모두들 주차 요원으로 보이는 자를 무시하며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섰다.
 
 “저쪽으로 가 봐. 무턱대고 움직이지 말고! 전광판부터 살펴봐!!”
 
 누군가 외친 한마디에 다들 서둘러 정보를 모아온다.
 필리핀행 비행기가 떠나는 게이트는 두 곳.
 사람들이 각 방향으로 느낌 가는 대로 흩어지는데, 내 옆엔 파주 경찰이 함께 있었다.
 
 “저기. 대체 어디까지 따라오실 겁니까?”
 “신경 쓰지 마시죠. 당장 급한 일 있지 않습니까?”
 “···.”
 
 모르겠다. 경찰은 나중에 뭐 어떻게 되겠지. 이놈 말대로 당장 해결할 문제가 더 크니까.
 
 넓고 큰 공항. 정말 많은 사람이 움직이고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놈을 잡아야 한다.
 할 수 있을까? 이미 갔으면 어쩌지?
 아니야. 초조해하지 마.
 잡아야지. 있어. 아직 있을 거야. 반드시 있어!
 
 굶어 죽어가는 이리가 먹이를 구하듯 공항을 뒤집고 다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이 우르르 게이트로 들어가는 모습을 볼수록 마음이 더 조급해진다.
 그래도 포기 않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 정성을 하늘이 알아주는가.
 
 “있다···.”
 
 찰나의 순간. 저 멀리 스쳐 가는 인파 사이로. 여권과 티켓을 쥐고 있는 홍 사장 내외를 보았다.
 나는 자리에 멈춰 내가 잘못 본 건 아닌가 다시 한번 시선을 집중하니. 역시나, 누군가 알아보는 이라도 만날까 두려워, 몸을 숨기고 감춘다고 감춘 홍준식이다.
 놈을 붙잡고자 서둘러 달려간다.
 근데 왜 하필 그때 마구잡이로 사람들이 단체로 내 앞을 지나가는지.
 
 “저기! 잠깐만요! 잠시만. 지나갈게요!! 좀 비켜주세요!!!”
 
 사람들을 밀치고 넘고 “아! 뭐예요!” 짜증 부리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몸을 들이미는데.
 내가 간다고 그들은 가만있는 게 아니니. 쫓아가 붙잡기엔 우리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가고 있었다.
 나는 신경질을 확 내며 태연히 따라오는 경찰에게 물었다.
 
 “아저씨! 저기 저 사람이에요!”
 “예. 보이네요.”
 “···뭡니까? ‘보이네요’가 아니잖아요! 빨리 가서 잡아야죠!!”
 “···.”
 
 다급히 물어도 그는 마치 내 일 아니라는 듯 별다른 액션은 취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나는 뭐라 할 말을 잃어버리고 악이 받치며 눈에 불이 튀었다.
 그래도 일 분 일 초가 다급한 상황이었다.
 짭새 새끼 답답한 행동 지적한들 뭐가 달라질까.
 내가 잡는다. 내가 잡으면 그만이야.
 그리고.
 그리고 다음은···.
 
 아까는 부탁이라도 했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없이, 그냥 밀치고 때리며 인파의 구름 벽을 열어 길을 냈다.
 더는 홍준식과 내 사이를 가로막을 장애물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거리만 있을 뿐.
 횅하니 직선으로 뻗은 그 앞에서 이 씹새끼가 게이트를 통과하려고 여권과 티켓을 검사받는 모습을 보며 외쳤다.
 
 “어이!!! 홍준식 개새끼야! 어디가!!”
 
 버럭 소리치자 공항의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한다.
 홍준식도 ‘네가 어떻게 여기?’라고 하는 듯 멍청한 얼굴로 돌아보는데.
 그 얼굴에 지금껏 살며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분노가 끓어올라 완전히 이성을 마비시켜 버렸다.
 고개를 돌려 무책임하게 옆이나 졸졸 따라다니는 경찰을 먼저 보고, 시선을 내려 그의 옆구리를 본다.
 권총이 있었다.
 총을 보며 손이 마음보다 더 빨리 나아가 그것을 뽑아 들었다.
 
 “어. 어! 구철 씨!! 안 돼요!!”
 
 경찰이 말려도, 검은 살기가 손끝까지 번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분노가 눈앞을 가로막는 순간.
 나는 지체 없이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탕――!!
 
 그런데.
 
 쏘기 전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행동이었는데.
 
 총을 쏘고 밀려오는 후회가.
 
 총탄에 쓰러지는 홍 사장보다 더 빨리 나를 덮친다.
 
 아차···. 애들···.
 
 승희와 재희가 눈에 밟혔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엄청난 감정에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마치 존재하는 모든 것의 색이 사라진 듯 세상도 굳어 버린 기분이었다.
 
 ***
 
 어? 아닌가? 이거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지금 다 멈춰 있는 거 같은데?
 
 이상한 광경이었다.
 가만 보니, 진짜로 눈앞의 모든 것들이 딱딱한 돌같이 굳어 있었다.
 총 끝에서 터지는 탄과 불꽃.
 저 멀리 공포에 질린 홍 사장.
 다급하게 기관총을 겨누기 시작하는 공항 경비대들과 소리를 지르고 몸을 낮추는 구겨진 표정의 인물 군상들.
 그리고 두 손으로 권총을 쥔 나까지.
 아무리 봐도 이건 깊은 후회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 아닌, 정말로 세상 모든 것이 멈춰 있던 것이었다.
 
 뭐야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나였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역시···. 구철 씨.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런다고 바뀌는 거 하나도 없잖아요.)
 
 어? 어디서 들리는?
 
 마음이었다.
 처음은 소리가,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들려오고, 그다음에 “뚜벅뚜벅” 귓가로 들렸다.
 굳은 시선으로 경찰이 앞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가 내 앞에 서더니, 미간에 주름을 가득 진 얼굴로 안타깝단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도 녀석은 또 금세 미소를 보였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돌아가죠. 이 일은 제가 없던 일로 처리하겠습니다.”
 
 어딜 돌아가? 뭐가 없던 일이야? 뭔데 이거?
 
 마법도 아니고 지금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도통 알 수 없는 상황과 알 수 없는 놈 때문에 마른침을 꿀꺽 넘기는데.
 또다시 확~~! 하고 공기가 휘몰아치더니, 멈춰 있던 세상이 다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헉!!! 어···?”
 
 눈을 뜬 곳.
 멈춰 있던 세상에서 돌아온 곳.
 그곳은 두 시간 전 떠났던 파주 홍 사장의 별장 앞이었다.
 
 “뭐야. 왜 아직 여깄어?”
 
 분명 나는 방금까지도 수많은 인파 한가운데서. 비행시간 안내와 웅성거리는 소음 사이, 분노에 미쳐 총을 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순간, 차 밖 저 멀리서 노 씨 아저씨가 클랙슨을 강하게 누르며 소리치셨다.
 
 “구철아! 너 안 갈 거냐!! 계속 그러고 병신새끼처럼 멍때리고 있을 거야!!”
 “···예?”
 “젠장! 따라오든가 맘대로 해라!!”
 
 아저씨는 트럭을 거칠게 몰고 골목길을 빠져나간다.
 흙먼지가 자욱이 일어난 전원주택 골목엔 그 많던 차들이 다 사라지고, 내 구식 SUV만 남아 있었다.
 
 “구철 씨.”
 “어···?”
 
 맞다. 이 새끼.
 
 경찰이 보조석에 앉아 나를 부른다.
 그가 핸들을 잡고 있는 내 쪽으로 팔을 내밀어, 손에 쥐어진 권총을 슬며시 빼 가고 있었다.
 
 “···총이 왜?”
 “진정하세요. 끝났으니까. 이리 주시고. 하나씩 설명해 드릴게요.”
 
 경찰이 권총을 챙겨 다시 옆구리에 슬며시 넣었다.
 나는 그를 위아래 샅샅이 훑어보며 물었다.
 
 “당신 뭐야? 경찰 아니야?”
 “···아닙니다.”
 “뭐야 그럼? 나한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아까 경찰이라고 했잖아.”
 
 그는 아까 집 안에서 나를 붙잡을 때와 다르게 차분한 모습으로 말했다.
 
 “진정하세요. 시간을 돌렸을 뿐이에요.”
 “뭐?”
 “시간을 돌렸다고요. 출발하기 전 혹시 몰라 이곳에 타임 포인트를 설정해 두었어요.”
 
 내가 이해가 느린 게 아니라면, 이 새끼가 미친 소리를 하는 게 맞는 건가?
 
 “타임 포인트? 뭔데 그게?”
 “있어요. 우리가 쓸 수 있는 능력. 자세히 설명해 드릴 순 없지만.”
 “당신 내려.”
 “왜죠? 공항 가시려고요?”
 “일단 내려. 그건 네가 알 바 아니야.”
 “그렇게는 안 되겠습니다.”
 “꺼지라고. 지금 미친놈 상대할 시간 없어! 난 사람들이랑 당장 그 새끼 잡아야 한단 말이야!!”
 “그래서 못 보내드려요.”
 “왜!!!”
 
 두려움과 혼란함. 분노와 초조함이 마구 뒤섞여 소리를 지른다.
 그러자 경찰인지 미친놈인지 모를 놈도 나를 보며 역성이 차오른 감정을 비쳤다.
 
 “방금 보고 오셨잖아요. 구철 씨 그 분노에 거기 가면 무슨 일 할지 보셨잖아요!”
 “그럼 그게 진짜라고? 꿈이 아니고?”
 “둘 다 진짜입니다. 공항도. 지금도. 실재하는 것이 맞습니다.”
 “뭐라는 거야 너 지금. 야 이 새끼야 사람이 알아듣게 설명을 하든가.”
 “일단 침착하고 호흡부터 하세요. 지금 되게 위험해 보이세요.”
 
 놈의 말대로 숨조차 쉬기 어려운 긴장에 싸여 있었다.
 차분히 날뛰는 가슴을 누르며 심호흡하자, 녀석도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인 뒤,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구철 씨.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전 구철 씨 수호천사예요.”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천사가 뭔데?”
 “구철 씨는 제가 지켜야 되는 수호령입니다. 이대로 저 사람들이랑 같이 가시면, 어떤 형태든 끔찍한 결과로 이어진단 말이에요. 보내드릴 수 없어요. 직접 보셨잖아요.”
 “···.”
 “그러니까. 전 구철 씨 편이니까. 저를 믿고.”
 “내려!!! 내리라고! 내 편이 어딨어!! 세상에 내 편이 어딨는데 개새끼야!!!”
 
 없었다. 이 세상에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
 “씨발놈아! 뭐! 수호천사! 경찰인 줄 알고 고분고분 있으니까 이 새끼가 사람을 좆으로 알고.”
 
 나는 다시 손을 뻗어 그의 권총을 뽑아 들었다.
 
 “왜 이러십니까. 진정하시라니까요.”
 “하하. 천사? 천사라고? 이야 그럼 너 총 쏴도 안 죽겠네. 그치?”
 “하지 마세요. 총은 진짜예요. 저희도 상처 입고 다치는 존재입니다.”
 “하하하. 이 새끼. 쫄리냐? 어? 쫄려 개새끼야? 천사라며. 장난하냐!”
 
 아까 공항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또다시 분노로 이성을 상실해간다.
 
 “내려놓으세요. 쏘시면 저를 떠나서 구철 씨가 위험해요.”
 “닥치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뭐죠?”
 “홍준식은 죽었나?”
 “아니요. 그건 엄밀히 말하자면 지금으로부터 두 시간 뒤에 벌어질 일입니다.”
 
 왜지?
 왜 안심이 되는 거지?
 어째서 안심하는 거냐 호구철. 대체 왜!!!
 죽여버렸어야지! 이 병신 새끼야!
 
 “그럼 그 새낀 살아 있어?”
 “살아만 있을까요? 이대로 가다간 비행기 타고 문제없이 출국하겠죠.”
 
 해머라 부르나? 엄지손가락으로 총탄을 발사시켜주는 격철을 당겼다.
 찰칵 소리에 놈의 얼굴도 긴장된다.
 
 “···.”
 “그걸 아는 놈이 지금 나더러 여기 있으라고?”
 “예.”
 “왜?”
 “수호령을 살인자로 만들 수 없어서입니다.”
 “어이 천사 아저씨. 장난은 말이야, 사람 봐가면서 하는 거야. 세상에 잃을 거 없는 놈은 아쉬울 게 없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내려. 이 총 두고. 어차피 너 경찰도 아니라면서.”
 “구철 씨···.”
 “내려. 안 내리면 이번엔 진짜 쏜다.”
 
 나는 총구를 녀석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경찰인지 수호천산지 모를 놈도 한참 지켜보다 몸을 움직였다.
 
 “알겠습니다.”
 
 철컥. 그가 문을 열고 나간다.
 나는 그때까지 총을 치우지 않다가, 문이 닫힘과 동시에 액셀을 강하게 밟았다.
 
 끼리리리릭!!!
 
 “···.”
 
 그런데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계기판의 RPM이 터질 듯 울부짖고, 핸들을 비틀고 액셀을 아무리 밟아도 차가 그대로 멈춰 서 있었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 녀석을 보니, 놈이 두 손을 펼친 채 뭐라 뭐라 주절거리고 있었다.
 
 “뭐 하는 짓이야!!”
 “가실 수 없어요.”
 “놔!! 안 놔!”
 “조금 그 안에서 머리를 식히세요.”
 “씨발놈이!”
 
 나는 창문을 향해 총을 겨눠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밖에선 그 소리나 행동이 영향을 받지 않는다.
 
 세상은 고요하다.
 한 미친놈이 손을 펼쳐 주문을 쓰고 있고, 차 안에 있는 나만 총소리에 귀가 멍멍해질 뿐이었다.
 
 “이 씨발.”
 
 다시 쏜다.
 리볼버가 한 바퀴를 다 돌아 탄약이 떨어질 때까지 계속해서 총을 쐈지만.
 차 유리만 작살 나고 총탄은 허공에 둥둥 뜨고 말았다.
 
 “구철 씨를 제외한 차의 시간을 멈췄습니다.”
 “개새끼야!! 장난하지 말라고!!!”
 “천사 생활 이보다 엄하게 수호령을 지킨 적이 없을 정도로 저는 지금 진지합니다.”
 “으아아아!!!”
 
 좁디좁은 차 안에서 미쳐 날뛰었다.
 
 30대 초반은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해 미래를 건설할 나이다.
 누군가는 이미 가정을 이뤘을 것이고, 누군가는 능력을 인정받아 성공 가도를 질주하고 있을 나이다.
 하지만 나는 꿈도 미래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버거운 현실만 걸어가고 있었다.
 취미도 없었다. 남들같이 삶의 즐거움을 알 길도 없었다.
 힘들었다.
 그래도 나는 살았다.
 혼자서. 오직 혼자서.
 
 그랬는데. 사기나 처당하고···.
 그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사장님한테.
 그 사람이 나한테 어떤 사람인데.
 때려죽이고 싶어도 어쩔 땐 너무 좋아 내가 진짜 이 사람 무덤까지 같이 가려고 했던 그런 사람인데.
 전날 둘이 싸우고 욕하고 뒷말 까도, 다음 날이면 커피 한잔하고 맞담배 피우면서 배송지 묻고 점심 뭐 먹을 거냐 챙기는 그런 사람인데.
 그런데 씨발 천산지 악만지 모를 새끼가 나타나 발목이나 붙잡고.
 이 씨발! 좆같은 세상. 이 씨발!!
 
 그렇게 혼자 울부짖으며 두어 시간을 보냈다.
 노 씨 아저씨한테서 [젠장. 놓쳤다]는 문자가 하나 도착함과 동시에, 화낼 기력도 다 떨어지고 말았다.
 
 ***
 
 어릴 때 기억이다. 아직 아버지가 곁에 계시던 시절이었다.
 
 “아빠 나 운동 그만할래.”
 “왜? 지금까지 잘해왔으면서.”
 “감독님이···. 아니야. 힘들어서 그래.”
 “뭐야. 아빠한테 말해봐.”
 “아니야.”
 “호구철. 말해.”
 “···.”
 
 나는 그때도 어렸지만, 아버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분은 당신이 가진 성격만큼 세상을 우직하게 걷는 분이셨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감독이 꺼낸 말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그게 무슨 뜻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계속된 추궁에 결국 털어놓고 말았고.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오랜만에 그라운드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어땠어?”
 “응! 내가 어시도 하고”
 “골은 못 넣고?”
 “괜찮아! 어시스트가 더 중요한 거라”
 “야 인마. 그래도 시합에 나갔으면 골을 넣었어야지! 으이구.”
 
 뭐가 그리도 좋으셨을까.
 평상시 잘 웃지도 않던 양반이 시합 이야기만 꺼내면 참으로 기쁜 미소를 지어 보이곤 하셨다.
 
 “구철아 그렇게 축구가 재밌어?”
 “응!!”
 “그래. 그렇게 열심히만 해. 포기하지 말고. 알겠지?”
 “열심히 하면 돼? 잘해야 하는 거 아냐?”
 “야. 사람이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다 잘하게 돼 있어.”
 “진짜?”
 “당연하지! 구철아. 열심히 하는 사람은 하늘이 돕게 되어 있어요.”
 “하늘이 어떻게?”
 
 아버지는 당당하게 손가락을 들어 천장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천사가 보고 있거든.”
 “하하하! 아빠 천사가 어딨어!!”
 
 ***
 
 여기 있네···.
 
 어느덧 해가 저문 깊은 밤.
 우두커니 하늘 저 멀리 날아가는 비행기만 보고 있다.
 
 아까의 감정은 정말로 후회였었다.
 죽이지 못했다는 것도 후회였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된 마당에 내게 기쁨은 어디에도 없었다.
 무엇보다.
 천사 이 새끼가 계속 옆에 있는 게 존나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조금 진정되셨어요?”
 “···.”
 
 녀석이 손을 뻗는 모습에 움찔거리며 한 발짝 물러서 본다.
 나는 더는 꿈과 노력을 믿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어른이고, 냉정한 현실 속.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소시민일 뿐이었다.
 그래서도 요상한 마법이나 쓰고, 자신을 천사라 부르짖는 이 골 때리는 놈도, 내겐 그저 이해 못 할 위험하고 미친 종자로만 보일 뿐이다.
 
 “할 말 있으면 거기서 하시죠.”
 “아···.”
 
 뭘 당황하고 있어. 이 새끼 웃기네.
 
 “그래서 믿기 어려우실 거 같아서, 차분히 이야기하자고 한 건데.”
 
 뭐지? 지금 속마음을 읽힌 거 같은데?
 
 “구철 씨.”
 
 그리고 아까부터 자꾸 이름을···.
 
 “저기. 여보세요.”
 “네.”
 “저 아세요?”
 “알죠.”
 “어떻게요?”
 “수호천사니까요.”
 “후~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요? 어디 종교 단체에서 나오셨어요?”
 “아니요. 수호령을 지켜주는 존재입니다.”
 
 진심인가 이 새끼?
 근데 또 안 믿자니 이상한 마술을 부리긴 하잖아.
 
 “···.”
 “하하 괜찮다니까 그러시네.”
 
 아 존나 모르겠네.
 
 “경찰은 뭡니까?”
 “그건 진짜로 신고가 들어가서, 경찰들이 찾아올까 봐 제가 먼저 선수 친 거예요.”
 “왜요?”
 “수호령을 지켜야 하니까.”
 “···.”
 
 무슨 컴퓨터 프로그램 도우미 보는 것 같다.
 문제가 있어 이리 가고 저리 가면 매뉴얼 대로 작성된 응답만 듣는 기분.
 마치 공무원을 상대할 때 느끼는 답답함.
 
 “좋아 일단 하나씩 정리해 보죠. 그러니까 아저씨는 나를 지키는 존재라, 경찰로 나타나 나를 잡았다. 이거네요.”
 “네.”
 “···그런데 그 모습이 진짜 경찰이 나타나서 잡아가면 큰일이기에 막아준 거다 이거죠.”
 “네!”
 “아까 공항 그것도, 내가 진짜로 가면 큰일 날까 봐, 타임 뭐? 타임 뭐였죠?”
 “타임 포인트.”
 “어. 그 타임 포인트라는 걸 써서 막아준 거고.”
 “그렇죠!”
 
 녀석은 알아주어 고맙다는 듯 미소를 짓고 있는데.
 만약 이놈 말이 사실이라면.
 
 “···.”
 “왜요?”
 
 진짠가?
 
 “진짜라니까요.”
 
 와 이 새끼 마음 읽는 거 맞네···.
 
 “천사니까요.”
 “좀 그만.”
 
 거 자꾸 그러니 생각을 못 하겠네. 에잇 썅 모르겠다.
 
 “진짜 천사 맞다 이거죠?”
 “네.”
 “날 구하러 왔다?”
 “예.”
 
 노려본다.
 
 “하하하 아니 왜요?”
 
 생각을 멈추고 그냥 계속 노려본다.
 
 “아니 대체 왜. 말씀을 하세요. 그렇게 무섭게 보지 마시고.”
 
 뭐? 무섭게 보지 말라고?
 
 “저기. 이봐요.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요?”
 “지켜주는 건 좋은데, 타이밍이 좀 어긋났다고 생각되지 않냐고요?”
 “무슨 뜻···. 아~”
 
 이해가 느린 놈이구나···.
 
 “뭔 말인지 알겠죠.”
 “아는데.”
 “아까 했던 그 타임 포인트라는 거 한 번만 더 씁시다.”
 “안 돼요.”
 “왜요? 좀 씁시다. 지켜준다며.”
 “구철 씨. 그런 게 아니에요. 저희는 정말 위급할 때나. 힘들 때 도와주는.”
 “에이 씨발. 말이 이상하잖아. 그게 뭐야. 도와줄 거면 홍준식이 나한테 사기 치기 전에 왔어야지. 이건 아니지.”
 “그게 그러니까요···.”
 “맞잖아. 나한테 바뀐 건 아무것도 없잖아! 네가 날 뭘 지켜줬는데!”
 
 원망과 미움이 어디로 향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었는데. 개새끼. 너 잘 걸렸다.
 
 “와 진짜 그러네. 말하고 보니까 존나 어이없네.”
 “저기. 진정하시고.”
 
 목소리에 점점 감정이 올라오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아까도. 아까도 네가 말리지만 않았으면”
 
 그러자 천사 녀석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다시 가셔서 총이라도 쏘시려고요?”
 
 그 소리엔 뭐라 할 말이 없다.
 
 “···.”
 “후회 들지 않으셨나요? 무섭지 않으셨어요?”
 “그, 그런 생각이 들겠냐! 그 새끼를 이대로 놓칠 판국에!”
 “구철 씨. 돈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아 나 진짜.
 
 “그래 좋다. 내가 너 천사란 거 믿어준다. 넌 천사니까. 그러니까. 개새끼야 너는 인간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나 본데.”
 “왜 몰라요. 늘 지켜보고 있는데.”
 “지켜보고 있으면 그게 할 말이냐? 뭐? 돈이 중요해? 그걸 질문이라고 이 새끼가. 중요하지. 세상 무엇보다 중요해!”
 
 그러자 천사 놈이 빤하게 쳐다보며 묻는다.
 
 “가족보다 더요?”
 “···.”
 “앞으로 펼쳐질 구철 씨의 삶보다 더?”
 
 아 씨발 천사라 그러나. 이 새끼 존나 정석대로 떠드네.
 
 “천사와 사람을 떠나 그렇지 않나요?”
 “···그러니까! 가족. 삶. 그 모든 걸 위해선 돈이 필요했다고!! 잘 먹고 잘살려면 돈이 필요했는데!”
 
 터지는 분노에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그런데 사기를 당했잖아. 그것도 이런 식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홍준식한테! 우리 사장님한테!! 내가!!!”
 
 가슴이 답답해 두드린다.
 
 “내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데···.”
 “구철 씨 열심히 사셨죠. 저도 알아요···.”
 “위로하지 마 개새끼야. 그딴 말 들어도 바뀌는 거 하나도 없으니까.”
 
 녀석은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압니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그 돈이라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로를 죽이고 미워하고 원망하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셨으면”
 “늘어지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야. 그건 정신없는 미친놈들 이야기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구철 씨도 아까 제가 막지 않았으면, 그 정신없는 사람들이 되는 거였어요.”
 “······.”
 “생각해 보세요. 다시 공항까지 갔을 때. 막상 거기서 홍준식을 놓친다면, 그 분노가 어떻게 폭발했을지.”
 
 한마디를 안 지네 이 새끼.
 
 “맞잖아요.”
 
 그래. 맞아. 맞는데. 나도 아는데.
 그걸 씨발 또박또박 말하고 있어 재수 없게.
 
 “괜찮아요. 화내세요. 화내셔도 돼요. 저한텐 얼마든지 그러셔도 됩니다.”
 “왜? 내가 너한텐 왜 화를 내도 되는데?”
 “열심히 사셨으니까.”
 “···.”
 “미안해요. 잘 챙겨주지 못해서.”
 
 이 자식이 진짜.
 
 “너 아까도 그 소리 하던데, 야 내가 누구 도움 받아야 사는 놈이냐.”
 “그런 뜻이 아니라.”
 “뭐? 챙겨줘? 이 새끼가 자기 천사라고 사람 동정하고 있어.”
 “후~ 왜 자꾸 말을 오해해서 들으세요. 제 뜻은 그러니까.”
 “어?”
 “응?”
 “저거···.”
 “왜요? 뭔데요?”
 “저건 또 뭐야?”
 
 녀석이 너무 재수 없어, 한 대 때려주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요상한 마술 같은 힘을 부리는 놈을 무슨 수로 때린단 말인가.
 어쭙잖은 수작을 부려, 깜짝 놀란 얼굴로 녀석 뒤편의 어둠을 가리켰다.
 거기에 속다니 어눌한 새끼.
 그래 봐야 마법으로 다 피하겠지.
 이거나 먹어라 하는 심정으로, 주먹을 곱디고운 면상을 향해 질러버렸다.
 
 “아무것도 없는! 크억!”
 
 빡!
 
 ···.
 
 어? 맞았네?
 
 아구창을 한 대 맞자 녀석이 비틀거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 하시는 겁니까!!”
 “야. 왜 맞아···?”
 “뭡니까! 때리니까 맞죠!”
 “···.”
 “아무리 화내도 된다고 했지만, 폭력은 안 되는 거 아닌가요?”
 
 성깔 있네···. 천사가 소리 지르는 거 봐라.
 
 “성질 없는 존재가 어딨어요! 존재란 다 감정이 있지!”
 “아니 난 맞을 줄 몰랐지···. 피할 줄 알았지. 너 마법 쓰니까.”
 “맙소사 믿을 수가 없네. 아니 세상천지 천사를 때리는 사람이 어딨어!”
 
 뭔가 정색해서 그러니 내가 존나 잘못한 거 같다.
 
 “야. 때린다고 맞는 천사는 어딨는데.”
 “아 씨···.”
 
 씨···.
 
 “어디 봐봐. 괜찮아?”
 “아! 건들지 마요.”
 
 삐지기도 하는구나. 진짜 감정이 있는 존재구나···.
 
 ***
 
 어찌어찌 둘이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나눠 물며 이야기했다.
 
 “생각하시는 것과 다르게 천사는 만능이 아니에요···.”
 “만능 아닌데, 담배는 피워도 돼?”
 “우리도 밥 먹고 술 마시고 할 거 다 해요. 말씀드렸잖아요. 맞으면 상처도 입고 다치기도 한다고요.”
 “저기 어디서 온 거야? 천국 같은 게 진짜 있어?”
 “뭘 그런 시시한 걸 물어보고 그러세요.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세요. 알아도 사는 데 아무 도움 되지 않아요.”
 
 뭐 씨발 천사가 이딴 말을···.
 
 “그냥 여기저기 떠돌고 있어요.”
 “왜···?”
 “그게 우리 할 일이니까.”
 
 뭐가 뭔지 잘 모르지만, 나름 어떤 사명감이 있나?
 아무튼, 천사든 뭐든 내가 왜 이런 정체 모를 놈이랑 시시덕거리고 비싼 담배 나눠주며 시간 버리고 있지? 나 그냥 보내주면 안 되나?
 
 “진정됐으면 나 가도 돼?”
 “그래도 조금만 계셔 보세요.”
 “또 마음 읽었어?”
 “천사잖아요.”
 “만능 아니라면서.”
 “그래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요.”
 “형편 좋네. 편할 대로 떠들 수 있고. 부럽다. 나도 좀 그렇게 형편 좋게 살아 봤으면.”
 
 한숨을 뱉으니, 녀석도 입에서 후~ 하고 긴 연기를 뿜었다.
 
 그러자 어딘가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여름밤 모기 한 마리 얼씬도 않는 투명하고 맑은 공기가 나를 감싸 안는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조금씩 마음이 편안해진다.
 십여 분 전만 해도 온갖 분노에 다 뒤집어 버리고 싶었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대체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한 거지?
 
 “좀 진정이 되시죠?”
 “설마. 이것도 네가 지금 나한테 뭔가 하는 거냐?”
 “구철 씨 마음에서 미움과 분노를 뽑아내고 있어요.”
 
 어쩐지···.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더라니···.
 
 “왜? 그냥 두지.”
 “그냥 뒀다간 정말 힘들어지세요. 구철 씨 감정은 일상적인 스트레스로 표현 못 할 분노치를 넘어서고 있었어요.”
 “···그래. 고맙다.”
 “아니에요. 평상시 잘 도와드리지도 못했는데.”
 “뭐 꼭 보고 있었단 듯이 말한다.”
 “늘 보고 있었다니까요. 어릴 때나.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나.”
 
 그 말에 우두커니 물었다.
 
 “···누나랑 엄마 때도?”
 “네···.”
 “근데 왜 그땐 안 나타났어.”
 “갔었어요. 문상객으로. 구철 씨가 못 알아본 거지.”
 “미친. 무슨 천사가 문상을 오고.”
 “어쩔 수 없어요. 지금이 특이 케이스지. 원래는 이렇게 정체 드러내고 하면 안 돼요.”
 “지금은 왜?
 
 녀석도 그게 핵심이라는 듯 돌아보며 말했다.
 
 “구철 씨. 제 말 잘 들으세요. 사람의 기운이라는 건 흘러가는 대로 낭비되는 것이 아닙니다. 쌓고 베풀고 나누며 오랜 인고와 노력으로 뒤늦게라도 터지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부터가 인생의 전환점이에요.”
 “누가? 내가?”
 “네.”
 “너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 아니야?”
 “그럴 리가요. 천사는 뭐 아무나 도와주는 줄 압니까? 제가 이렇게 앞에 나타나서 정체까지 밝히고 말씀드리는데 믿어주시면 안 될까요?”
 “왜? 내가 뭐라고 도와줘?”
 
 그러자 녀석이 한마디 한다.
 
 “착하게 살아오셨잖아요. 우직하게. 누구 괴롭히지 않고. 그렇게.”
 
 뭐라 할 말 없어지는 분위기가 주변을 스쳐 갔다.
 
 “아시겠어요? 그러니 이제 마음 푸시고.”
 “야 야 잠깐. 너 생색내는 건 그렇다 치고. 도움받는 데도 무슨 자격이 필요한 거냐?”
 “당연하죠! 무턱대고 선을 베풀었는데 이 사람이 나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어떡해요. 그 사람으로 인해 더 많은 이들이 불행해질 건데.”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많잖아. 기업가라든지 정치인이라든지.”
 “그 사람들은 개인의 역량으로 거기까지 올라가서 그렇죠. 그런 일에 천사가 관여하진 않아요.”
 “흠.”
 “아무튼, 다른 건 좀 신경 쓰지 마시고. 아까 홍 사장한테 받은 거 있죠?”
 “땅문서?”
 “예. 내일 거기로 가 보세요. 제가 느끼기론 좋은 일이 있을 거예요.”
 
 점쟁이가 ‘동쪽으로 가 봐’ 하는 것과 같은 원린가?
 
 “뭐 금이라도 발견되나?”
 “설마 금이 있겠습니까?”
 “그럼 왜 가라는 건데?”
 “구철 씨랑 잘 어울릴 거 같으니까죠.”
 “야. 천사야. 너 진짜 이렇게 먹고 떨어지라고 그러는 거 너무한다 생각하지 않냐.”
 “떨어지긴요. 구철 씨. 지금 모든 걸 다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깊이. 더~ 깊이 들어가면. 이 모든 순간은 다 신의 섭리로 인해 짜이고 움직여진.”
 “신 씨발. 이 새끼 진짜 끝까지 좆까는 소리 하고 있네.”
 “어우 구철 씨. 그 말은 좀 위험.”
 
 천사 녀석이 허둥지둥 입을 막으려 하길래, 녀석의 손을 저리 치워버린다.
 
 “뭐. 손 치워 새끼야. 내가 신 욕하면 그 새끼가 듣냐? 그럼 들으라 해!”
 “···.”
 “사람 운명이 무슨 지 오줌 방울 흘러가는 대로 흐르는 줄 알아? 우리는 뭐 하루하루 의미 없이 사는 줄 아냐고.”
 “알겠으니까 진정하시고. 겨우 마음에 흐르는 탁류를 맑게 해뒀는데.”
 “야···. 진짜 너는 말이 쉽지, 그게 어떤 돈인지 알면”
 “알아요. 아니까 드리는 말씀이잖아요.”
 
 녀석이 손을 어깨에 감싸며 말했다.
 
 “가족의 사고 보상금이 담긴 일이었어요. 아픔이죠. 아픔을 돈으로 보상한다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지만, 그런 일이 구철 씨한테 나쁘게 작동한다면.”
 
 녀석은 어깨에서 손을 떼어내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제가 여기 왜 왔겠어요.”
 “···.”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도 많은 난관이 있고 과제가 주어지겠지만. 그런 게 다 사람 사는 일 아니겠습니까. 잘 해내셨잖아요.”
 
 말 한번 편안하게 쏟아내는 놈이구나. 그런데 왜 난 그 말을 믿고 싶어지는 걸까.
 
 가만히 보고 있으니, 천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그럼 이만 갑니다.”
 “가냐?”
 “가야죠. 또 다른 열심히 살지만 지쳐 있는 영혼을 구원하러 가야죠.”
 
 놈이 그렇게 말하며 떠날 채비를 하는데.
 
 “···저기 천사야.”
 “네.”
 “나 그렇게 착하게 산 거 아니야.”
 “알아요.”
 “근데 왜 도와준 거야?”
 “열심히 해오셨잖아요. 그리고 그 정도면 요즘 인간들 가운데서는 정말 선하게 우직한 길을 걸어오신 것도 맞아요.”
 
 아 진짜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하하하하···. 황당하네.”
 “왜요?”
 “아니 그냥 웃겨서. 인생 착하게 살면 개호구 소리나 듣는 줄 알았는데, 천사가 그러니까 웃기잖아.”
 “착하게 살면 어때서요. 당장 세상이 몰라줘도 결국 선한 이들은 다 알게 되어 있어요.”
 “···너 그거 원래 네가 하는 말이야?”
 “글쎄요?”
 “이 새끼. 남의 과거나 들춰 보고. 천사라는 놈이 말이야.”
 “하하. 농담하실 정도면 정말 안심입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녀석은 그리 말하며 환한 빛을 내고 사라져 버렸다.
 새끼 이왕 도와주러 왔으면 로또 번호나 알려주고 갈 것이지.
 헛된 희망 따위나 주고 말이야.
 젠장···.
 
 
 # 산에 산에 산에는
 
 꿈과 희망. 보통의 사람들은 그런 뜨거운 걸 가슴에 품고 매진해 인생을 걸어갈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한때는 누구 못지않게 목표를 이루고자 달렸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길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노력. 더욱 노력. 발악에 가까운 열정을 기울여 뛰어다닌 끝에 얻은 결과였다.
 물론 중간에 재수 없는 놈이 하나 끼어들긴 했지만, 어쨌든 결과는 실패였으니.
 그래서 더 막 뭐랄까, 에잇 젠장. 말하기도 씁쓸하네.
 
 십 년 전. 마치 세상이 내게 그러겠노라 다짐이라도 한 듯, 뭘 해도 되는 일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지쳐버린 몸과 마음으로 더는 무엇도 할 수 없고 도전도 어려워 평범하게 살자 마음먹고 일자리를 잡았다.
 처음은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당장의 생활이라는 게 있어, 하루하루 남들 사는 대로 살며, 무난하게 걸어가니 처음이 힘들지 막상 그렇게 어렵지 않게 사는 대로 살아지긴 하더라.
 물론, 가끔 악몽과도같이 과거의 영광이 떠오를 때면 속이 뒤집히고 세상이 원망스러워지지만. 그래도 어쩌겠나. 그러고 십 년을 걸어왔는데.
 과거의 길이 열정의 노력이었다면, 십 년을 걸어오는 길은 꾸준한 노력이었다.
 그 길을 걸어온 끝에 내 앞에 천사가 나타나 이제는 다 잘될 거라 말해주었다.
 
 모텔 방에 홀로 앉아 땅문서를 보고 있었다.
 
 진짜 여기 가면 뭔가 있나?
 산이라고 했는데. 산이라니, 약초니 버섯이니 같은 걸로 수억을 벌었다는 이야기도 생각나고, 둘러둘러 누가 고향 선산에 생각지도 못하게 도로가 뚫려 돈방석에 앉았다는 이야기도 떠오른다.
 그만큼 땅이란 지니고 있으면 뭐든 되는 것.
 괜히 투자의 끝판은 부동산이란 말이 있는 게 아니잖은가.
 헌데, 그런 일이 나한테 벌어진다고?
 이걸 믿어도 되는 걸까? 이걸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아도 되는 걸까?
 아 말이 안 돼.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움직여야 하는 것 아냐?
 
 천사를 만나 그런가,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했다.
 이놈이 내 안에 분노와 화를 삭였다고 하긴 했는데. 그래도 너무 마음이 침착하니 그건 또 그거대로 괜한 불안감을 안겨준다.
 파준데, 용주골 가서 물이라도 빼고 오면 좀 냉정한 정신이 들려나?
 
 “나 오늘 밖에서 자고 간다.”
 “또? 연락도 없이 외박하지 말라니까.”
 “일 때문에 그러는 거 아냐. 누군 밖에서 자고 싶어 자냐.”
 “알겠어.”
 “집은 별일 없지?”
 “응.”
 “저녁은?”
 “먹었어.”
 “재희는?”
 “아까까지 혼자 놀다 자.”
 
 흔한 부부간에나 나눌 대화의 주인공은 조카딸이었다.
 밤도 늦었고, 집까지 갔다 다시 오기도 뭐 하길래 외박을 결정하고 통화를 걸었다.
 승희는 괜히 퉁명한 목소리로 답한다. 삼촌 없어 밤새워 놀아야지 하는 마음을 지딴에 숨긴다고 숨기는 거 같은데, 다 들킨다 요것아.
 그나저나 조카딸한테 외박한다는 통보나 남기고, 남들은 이 나이에 결혼도 하고 동거도 시작하는데, 하~ 어딘지 모르게 서글퍼지는 통화라 용주골이고 뭐고 욕망도 사그라들었다.
 
 “너도 빨리 자. 내일 학교 가야 되잖아.”
 “나는 아직 할 게 있어서.”
 “TV나 보고 있겠지. 빨리 자!”
 “아. 내가 알아서 할게!!”
 “학교 늦지 마라.”
 
 자 그럼 승희한테는 알렸고.
 용주골은 미친 거지. 정신 차리자. 이 상황에 떡칠 생각이 들다니 그건 아니야. 스트레스가 날아갔을 뿐이지, 숨 막히는 상황이 바뀐 건 아니니까.
 
 허투루 돈 쓰지 말고 정신 집중해 난관을 이겨가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황 사장에게 건네받은 땅문서를 정독하며 내일을 맞이했다.
 
 ***
 
 “실례합니다.”
 
 파주 어딘가의 부동산을 찾아갔다.
 두 분 정도가 편안하게 의자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계시더니 이내 일어나셨다.
 인사를 나누고, 여차여차 집안에 묵혀 있던 땅문서를 하나 들고 왔다 구라를 치며 질문을 드렸다.
 여기가 어딘지. 뭐 돈은 되는 곳인지. 투자 가능성은 있는지. 부동산 아저씨들도 관심을 가지고 문서를 열어보는데.
 
 “아~ 이거 참.”
 “왜요? 별론가요?”
 “파주면, 교하나 운정 금촌이지. 여긴 너무 깊어요.”
 “그렇습니까···? 지도로 어디죠? 제가 이런 걸 잘 몰라서, 이게 맵으로 봐도 뭐 어떻게 표시가 잘 안 되는 거 같기도 하고.”
 “이 동네는 군부대도 많고, 길이 있어도 잘 나오지 않는 곳들이 있을 겁니다.”
 “아. 군대가 있었지···.”
 “파주잖아요.”
 “여러모로 개발이 어려운 동네죠.”
 
 아저씨 두 분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역시 기대는 기대로 접어야 하는가 싶은 마음으로 사장님들이 주신 녹차나 홀짝이는데. 한 분이 뭔가 생각이 나신 듯 번뜩이는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참! 산이라면, 제가 잘 아는 분이 한 분 계시긴 한데.”
 “누구죠? 뭐 하시는 분이세요?”
 “그분도 부동산 하시는 분이세요. 아닌가? 지금은 은퇴하셨으려나?”
 “혹시 웅담 할아버지 말씀하시는 거야?”
 
 웅담 할아버지? 네이밍 센스가 뭔가 아우라가 풍기는데?
 
 “무슨 곰 쓸개 파는 그런 분이세요?”
 “아~ 그게 아니라, 파주 깊은 데 웅담리라고 있어요. 거기서 복덕방 오랫동안 하셨던 분이 계시거든요.”
 “땅을 잘 보시죠. 명산은 명산대로 큰 가치가 있거든요.”
 
 요즘은 납골로 장례문화가 많이 바뀌었지만, 산이라면 모름지기 산소로 으뜸가는 장소라며, 그분이 그런 내용을 잘 아신다고 하셨다.
 
 “아~ 맞다. 그런 게 또 있구나.”
 “마침 여기 나온 곳이랑도 가까운데, 그분을 한번 찾아가 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겸사겸사 소개받은 곳으로 차를 몰아간다.
 웅담리는 휴전선 바로 아래 있는 동네였다. 이렇게 다녀보니 파주도 엄청 넓구나.
 
 “여긴가?”
 
 부동산도 아닌 복덕방. 낡디낡은 가게 전면에 이제는 떨어지고 없는 스티커 흔적이 산소 임야 토지 등등을 보여주고 있다.
 웅담 할아버지라, 별명도 그렇고, 어딘가 영험한 눈을 가지신 분이란 설명에 빈손으로 가기보단 작은 음료수라도 하나 들고 가는 게 어떨까 싶어 복덕방 옆 슈퍼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내부에 들어와 보니, 슈퍼가 복덕방이고 복덕방이 슈퍼로 연결되어 있더라.
 
 “영험하신 분치고는 소박하시네.”
 
 두리번두리번하다 “실례합니다, 계세요?” 부르짖어도 사람은 나타나질 않는다.
 전화번호를 찾아보려도, 031도 아니고 0348로 보이는 스티커 흔적만 남아 있어 연락처도 없었다.
 
 “흠.”
 
 일단 기다려 보자 하는 심정으로 슈퍼에 들어가 앉아 있기를 십여 분. 버스 한 대가 가게 앞에 멈추더니, 한 할아버지가 찾아오시는데.
 
 “아우~ 덥다.”
 
 영감님이 보시더니 잠시 흠칫하고 멈추셨다.
 
 “누구요?”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를 드린다.
 
 “아. 예. 안녕하세요. 부동산 찾아온 손님인데요.”
 “부동산요?”
 “예. 옆에.”
 “흠.”
 
 주인이 아니신가? 뭘 이렇게 경계하시지.
 
 “혹시 웅담 할아버지 맞으세요?”
 “날 어찌 알고 찾아오셨소.”
 
 맞구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젊은 양반이 무슨 일이신데 그러시나?”
 “그 땅 좀 여쭤보고 싶어서요.”
 “땅이라···. 흠···.”
 
 영감님이 슈퍼 매대에 걸려 있는 담배를 꺼내신다.
 
 “선산을 찾기엔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아. 그게 아니라. 이야기가 조금 복잡하긴 한데. 저한테 산이 하나 생겼거든요.”
 “산이 생겼다고?”
 “예.”
 “흐음···.”
 
 별명이 웅담이라 그러나, 뭔 한마디만 하면 흠이고 흐음이시다.
 
 “일단 저 이거. 서류를 한번 보시겠습니까?”
 
 문서를 보여드렸다.
 영감님은 안경을 고쳐 쓰며 서류를 대충 보시지만.
 핵심적인 말을 꺼내셨다.
 
 “이거 홍가네 땅 아닌가?”
 
 바로 아시네.
 
 “어떻게 아셨어요?”
 “여기 써 있잖아.”
 “아.”
 “홍가 사람이오?”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걸 들고 있어?”
 “그게 그러니까···.”
 “훔친 거요?”
 “아니요! 훔치긴요 제가 왜요!”
 “깜짝이야. 소리는 왜 지르고 그래? 젊은 사람이.”
 “죄송합니다. 아니 오해를 하시니까.”
 “오해가 아니라면, 연유를 좀 들을 수 있을까?”
 
 겸사겸사 홍 사장한테 사기 맞은 이야기. 돈 대신 땅문서를 건네받은 일 등을 전해드렸다.
 
 “참말이오?”
 “잠시만요. 어제 통화를 녹음해 뒀는데.”
 “됐소. 앞뒤 연유만 있다면 내 더 의심할 필요는 없겠지.”
 “···.”
 
 가뜩이나 찝찝하게 얻어걸린 땅문선데, 괜한 오해를 받고 있자니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감님 입장에선 그만한 의심을 할 여지가 있으셨나 보다.
 
 “이거. 산 기운 세차게 돌겠구먼.”
 “···무슨 뜻이세요?”
 “잠깐 나와 보시오.”
 
 영감님을 따라 가게 밖으로 나선다.
 담배를 쥐고 있는 두 손가락이, 저 멀리 겹겹이 쌓인 동산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삼각산 하나를 가리키셨다.
 
 “보이시오?”
 “예. 저긴가요?”
 “그렇소만. 봤을 때 느낌이 어떻소?”
 “어떻냐 물어보셔도···. 그냥 산같이 보이는데.”
 “다른 느낌이 들지 않소이까? 서늘하다든지, 등골이 오싹한다든지.”
 
 날만 덥지 아무 느낌 없다.
 
 “글쎄요. 별로 그런 건 모르겠는데요.”
 “흠. 이거 마침내 산이 주인을 골랐는가···.”
 
 무슨 말씀을 하실지 몰라 가만히 있으니, 영감님이 담배를 던지시며 말씀하셨다.
 
 “이봐 젊은 양반. 잘 들어요. 저긴 보통 산이 아니야.”
 “왜요? 저기가 뭔데요?”
 “저곳은 선산으로 쓰기에도 기가 세서, 감히 누가 묘소로 쓰지도 않는 곳이네. 묘지를 세워도 그 집안이 무너져 나가지.”
 
 좋은 소리는 귀를 씻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구나. 홍 사장 개새끼. 어쩐지 땅문서를 그냥 줬을 리는 없겠다 했는데.
 
 “왜요? 저기 뭐가 있나요?”
 “설이지 뭐. 전쟁 때 사람이 많이 죽었다든지, 아니면, 대대로 조선 때부터 이름난 명산이었다든지. 거기서 더 깊은 내막은 나는 잘 모르겠소.”
 
 그렇게 영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근처의 노인정에서 어르신 한 분이 나오셨다.
 
 “박 씨 거기서 뭐 해?”
 “손님이 오셔서.”
 “뭔 얘기를 그리 하고 있어? 다 끝내고 얼른 와서 고스톱이나 한판 하자고.”
 “오늘은 끗발이 받지 않을 날인 거 같군.”
 “왜?”
 “여기 젊은 양반이 화룡산의 주인이라고 찾아와서 말이야.”
 “뭐?”
 
 화룡산?
 
 “할아버지. 설마 저 산 이름이?”
 “이 지역 노인들은 그리 부르거든. 산세를 하늘에서 보면 용이 웅크리고 있는 모양인데, 전체적인 모습이 눌려 있는 기운이라 화룡산이라 하네.”
 
 우와 이름 간지나는데?
 
 그러자 박 씨라는 할아버지가 노인정 안으로 한마디 하셨다.
 
 “어이! 다들 나와봐! 화룡산에 주인이 왔대.”
 
 우르르 영감님들이 무슨 구경거리라도 난 듯 나와보신다.
 
 “화룡산이 주인이 어딨어?”
 “있어. 홍가네 땅이라고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잖아.”
 “홍가가 어디 한 둘인가. 나도 홍씬데.”
 “너는 가난하잖아.”
 “이 영감탱이가 노망이 났나. 막말을 쏟아내고 있어.”
 
 두리번두리번, 두서없는 대화를 나누며 사람을 둘러보는 영감님들이 주변에 몰려든다.
 
 “젊은 친군데.”
 “기세는 있어 보이는구먼.”
 “화룡산은 어떻게 얻었대?”
 “음. 그러니까.”
 
 이거 뭐 설명을 드려야 되나? 아니 저게 뭐라고 이렇게들 관심을 가지셔?
 그런 걱정을 하고 있자니, 복덕방 할아버지와 머리가 하얗게 선 영감님이 말씀하셨다.
 
 “홍가의 기운이 다했나?”
 “그런 거 같구만. 산이 주인을 바꿨어. 누군진 모르겠는데, 듣자 하니 그 집 작은놈 같아. 사기를 쳤다는구만.”
 “산이 노하신 거지.”
 
 뭔데. 아 진짜 불안하게 만드네
 
 “뭔데요? 저 산이 대체 뭔데 그러는데요?”
 
 복덕방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시던 백발의 영감님이 돌아보신다.
 
 “영산이야.”
 “영산요?”
 “그래. 화룡산은 그냥 산이 아니야. 지신(地神)을 모시고 있는 곳이라고.”
 “신?”
 
 신이란 말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어제는 천사에 오늘은 신이라. 사기꾼은 인간적인 존재구나.
 
 “웃음이 나오는 걸 보니 대찬 젊은이는 맞구만.”
 “할아버지. 신이고 뭐고 저는 그냥. 제 재산 뭔지 그거나 확인해 보고 싶을 뿐이에요.”
 “홍가도 그런 마음으로 대대로 산을 지녀왔었지. 하지만, 이번 일로 결국 그 일도 끝났군.”
 “저는 홍가가 아니라 호가예요.”
 “호가라. 이봐 젊은 양반. 사람은 감당 못 할 재물은 탐하는 게 아니네.”
 “무슨 뜻입니까?”
 “마음은 알겠는데, 괜한 욕심 부리지 말게. 자네에게 화가 미쳐.”
 
 화가 미치긴 내가 지금 속이 터지고도 남을 지경인데.
 
 “알겠습니다. 저긴 그래서 어떻게 가나요? 가는 길이 안 보이던데.”
 “가 보려고?”
 “가 봐야죠. 영산인지 뭔지. 일단 나한테 들어온 거니까 전 가 봐야겠습니다.”
 “여기 마을 끝에 길이 있네. 거기서부터 들어가게.”
 “알겠습니다.”
 
 가 보자. 신인지 뭔지. 그게 중요하냐.
 
 “저기 할아버지.”
 “응?”
 “여기 철물점 있나요?”
 
 그래도 살짝 쫄리니까, 무기라도 하나 챙겨서 가 보자. 괜히 겁먹지 않게.
 
 ***
 
 “뭘 그렇게 찾고 계십니까?”
 
 인근의 철물점을 찾아왔다.
 차에 있는 빠루 하나로는 부족하단 생각이었다.
 
 “사장님. 칼 같은 거 없나요?”
 “뭐요?”
 “칼요. 대검이라든지, 뭐 그런 거.”
 “···예초기를 챙겨 가시지?”
 “그 정도로 안 될 거 같아서요.”
 “음. 작두칼은 하나 있긴 있습니다만···.”
 
 작두칼. 이름부터 파워가 느껴지는 네이밍이다.
 사장님이 뭔가 신문지에 둘둘 말려 있는 걸 들고나오셨는데, 인쇄소에서도 간간이 쓰는 물건으로 절삭 면을 잘라주는 칼만 따로 때놓은 물건이었다.
 
 “와~ 딱이네. 이거 하나 주세요.”
 “저기. 이보쇼. 뭐 이상한 일 벌여도 우리는 관계 없수다.”
 “···.”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저씨 얼굴이 더 무서웠었다.
 
 아무튼, 염려하시는 그런 문제는 아니라 말씀드리며 칼을 챙겨 나왔다.
 차를 몰고 산길로 향하는데, 왼손엔 빠루. 오른손엔 작두칼이라니.
 내가 무슨 조폭도 아니고, 이거 괜히 오버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
 
 막상 차를 끌고 도착해 마주한 화룡산은 무기를 챙겨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할아버지들이 입을 거 먹을 거 없던 시절에도 찾지 않던 곳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구나.
 멀리가 아닌, 바로 눈앞에서 산을 보고 있는데 나무나 수풀이 새카맣게 우거져 한 치 앞도 숲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일단 장비를 챙겨 내려본다.
 마을이 그리 멀지 않았는데, 발소리 외 모든 소음이 자연에 묻혀 정적에 가까울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진짜 사람 묻어도 모를 곳이긴 하구나.”
 
 정말 외지고 깊은 곳. 인적이 드물다 못해 문명이 멀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곳.
 그런데도 의아함을 지울 수 없는 게.
 
 “이 길은 뭐야?”
 
 마을부터 산까지 아스팔트가 아닌 콘크리트를 다져 만든 옛날 도로 같은 길이 있었다.
 
 발길을 들이기 어려울 정도로 우거진 숲. 그리고 콘크리트 도로.
 이 두 존재의 이질감이 너무 크게 다가온다.
 모르겠다. 여기서 아무리 생각해 봐야 알 수 없는 것.
 가 보자. 가 봐야지 알지.
 
 “그래, 미리 쫄지 마. 뭐든 씨발 여기서 돈을 만들어야 되잖아.”
 
 각오를 다지며 기합을 넣는 순간.
 
 푸드드득~
 
 새들이 숲을 날아갔다.
 
 이거 진짜 가도 되는 걸까?
 
 ***
 
 “허우~ 죽겄네.”
 
 산길은 한 걸음을 내딛는 게 일이었다.
 아니 한국 산이 뭔 수풀이 이렇게 정신없어. 이건 산이 아니라 거의 정글이잖아.
 이미 가지들을 쳐내고 뭐 하는 과정에서 온몸에 상처가 가득 났고 다리도 무거워졌다.
 그래도 길은 이어져 있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람이 아주 찾아오지 않던 곳이 아닌데, 대체 왜 이렇게 수풀이 어지러운 거지?
 대체 이 길 끝엔 뭐가 있을까. 그게 궁금해서라도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그때.
 
 스스슥
 
 뭐지?
 
 스스스슥!!
 
 어디선가 소리가 들렸다.
 
 휙―! 소리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어두운 숲. 그 외 다른 것은 보이질 않았다.
 
 “··· 흠. 바람인가?”
 
 그러자 바람 아니야! 하는 식으로 메마른 나뭇가지들이 마구잡이로 흔들렸다.
 
 “어우 뭐냐 이거?”
 
 오금이 바짝 저려온다.
 본능적으로 작두칼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자, 흔들리던 나무도 멈춰버렸다.
 뭔가 있는 거 같아 나는 소리를 질러보는데.
 
 “나와! 나오라고 씨발!!”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역시 착각인가? 그냥 단순한 바람인가.
 그러자 내 나약한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바람 소리가 얍실맞게 들려온다.
 
 훅훅훅 훅훅훅훅
 
 “아 괜히 짜증 나는데?”
 
 미친. 허공에 좆질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 뭘 짜증 내고 있는 걸까.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무거운 걸음을 떼기 시작한다.
 
 “후욱 후우!”
 
 또 한 번 작두칼을 내리치며 숨을 고르는 찰나.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그때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음?”
 
 이상하다. 여긴 아까 왔던 곳 아닌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느라 고개를 내린 그곳에, 스쳐 가듯 보았던, 깨져 있는 콘크리트 모양이 낯설지가 않았다.
 그래도 설마 하며, 내가 착각했겠지. 마음먹고 다시 수풀을 거닐기를 한 시간.
 역시나 그 자리였다.
 
 “···이번엔 착각이 아닌데.”
 
 등골이 오싹해진다.
 있다. 무언가 있어.
 나를 이곳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싸한 눈빛으로 주변을 훑었다.
 그러자 어제는 천사를 본 날인데, 오늘 귀신을 만난들 뭐가 이상할까 싶은 생각이 스쳐 갔다.
 그리 생각하자, 온몸에 닭살이 돋아나며 정상을 찍겠다는 각오가 흐릿해진다.
 
 하지만 나는 사기 맞은 보상으로 이 산을 손에 쥐었다.
 처녀 귀신이 가난보다 무서울 순 없었다.
 
 “씨발. 이쪽도 더 잃을 거 없는 몸이야. 막지 마!”
 
 혼자 으악 소리를 지르며 미친놈같이 양손의 장비를 정신없이 휘둘러 댔다.
 공간이 열린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불도저 같은 자세로 막 수풀을 뿌리치며 달렸다.
 그러기를 한참.
 심장이 터질 것 같고 다리가 무겁다 못해 후들거리기 시작할 때. 눈앞에 이상한 표지판 하나가 나를 멈춘다.
 
 ―위험. 지뢰 매설 구역―
 
 “뭐야 이건 또?”
 
 지뢰? 뭐지? 이런 거 아까 없었는데?
 
 주변을 돌아보니, 역시나 콘크리트 바닥을 벗어나 있었다.
 정신없이 마구 내달리다 구역을 벗어났는가 보다.
 워워 진정해 호구철. 아무리 그래도 지뢰는 아니지. 귀신 산짐승. 다 괜찮아도 지뢰는 위험해.
 
 침착하고 다시 안정된 길로 돌아가기 위해 칼을 들어 올리는 순간.
 
 척.
 
 이번엔 누군가 손을 잡았다.
 
 “···.”
 
 등골이 서늘해지다 못해 정신이 멀어지는 감각이었다.
 뒤에 누군가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봐도 거긴 사람이 있을 공간도 아니었고, 누가 다가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었다.
 
 “누. 누구세요?”
 “···.”
 
 기척은 느껴지고 손끝에 감각도 있지만, 돌아보기가 무서워 견딜 수가 없다.
 귀신 겁 안 난다 했지만 막상 닥치니 심장이 멎을 것 같구나.
 그래도 나는 천사를 만난 남자.
 정신을 굳건히 하고서, 왼손의 빠루를 움켜쥐고는
 
 “아악!”
 
 팍!!
 
 세차게 빠루를 휘둘러 댔다.
 그러나 빠루는 메마른 잔가지나 내리치고 있었다.
 
 나무에 손이 걸린 것을 착각한 것인가.
 
 아니야 이 촉감은 분명 사람의 것인데.
 
 그 순간.
 
 (가거라.)
 
 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라지 않느냐. 이곳은 네놈이 찾아올 곳이 아니다.)
 
 나는 소리를 찾아 사방팔방 고개를 돌려보고 있었다.
 
 (둘러보지 말지어다. 사람은 이곳에 와서는···)
 
 어···?
 
 “···저기.”
 “어허~ 알려고도 하지 말고,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가라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너무나도 이상하고 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백발의 노인이 숲과 어우러져 서 계셨다.
 
 “···누구세요?”
 “음?”
 “왜 사람이 여기?”
 
 누구지? 뭐지? 마을 어르신이 따라오신 건가? 싶어 당황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노인분이 자신을 내려다보며, 허둥지둥 버럭 소리를 높이셨다.
 
 “아 아차! 다. 당장 이 산을 나가!!”
 
 뭐지? 마치 모습을 들켜 난감하기라도 하듯, 냅다 뒤를 돌아 달리기 시작하는 백발의 영감님.
 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저분이 이곳 화룡산과 관련 있는 인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저기. 잠시만요!”
 
 나는 도망치는 어르신을 쫒는다.
 
 “이 고얀 놈이! 따라오지 말고 당장 썩 꺼지라니까!”
 “그게 아니라! 할아버지!”
 “으아압!!”
 
 도망치는 것치고는 기세도 있고, 무엇보다 몸이 엄청 날렵한 분이셨다.
 산비탈을 거칠 것 없이 냅다 뛰어다녔다.
 가만 보니 복장도 예사롭지가 않은데, 도복? 아니 한복?
 젠장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할아버지!! 제가 이곳 주인입니다!!”
 “뭐라고?”
 
 그 말에 영감님이 덜컥 멈춰 돌아보신다.
 나도 지척에 멈춰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헉! 헉. 너무 그렇게 경계하지 마세요. 이상한 사람 아니에요. 산 주인입니다. 그러니까.”
 “시끄러!!”
 
 아 나 진짜. 존나 마이웨이 영감님이네.
 
 숨을 고르며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영감님이 한 발씩 걸어오시며 말씀하셨다.
 
 “이 산은 주인이 없다!”
 “왜 없어요. 홍씨 가문이 가지고 있었는데.”
 “홍가 놈은 주인이 아니다!”
 “···그러는 할아버지는 누구신데요?”
 “내가 이 산이야!!”
 
 힘 있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며 온 숲에 메아리를 쳐대고 있었다.
 뭔 소리지? 자기가 산이라니 미친 노인넨가?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물었다.
 
 “할아버지가 뭔데요?”
 “산신령이다.”
 
 산신령 이 지랄. 그러니까 그게 뭔데?
 
 “거짓말하지 마세요.”
 “뭐가 거짓말이야!”
 “산신령이 어딨어요?”
 “이놈아! 그럼 내가 뭔데?”
 “마을 주민 아니세요?”
 “아니야!!”
 “소리 좀. 제발. 뭐가 그렇게 화가 나 계십니까?”
 “네놈한테 들킨 게 열 받아서 그렇다!”
 
 그게 그렇게 화가 나는 일일까?
 
 어제 못지않게 어지러운 심정이다.
 아무것도 이해가 안 돼 멍하게 있으니, 영감님이 이제는 막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이셨다.
 
 “애당초 이 무식한 놈아! 내가 신력을 쓰기도 전에 그렇게 마구잡이로 수풀을 베어내는 놈이 어딨냐!”
 “할아버지가 그러신 거예요?”
 “그렇다 이놈아!”
 
 그래. 어제 천사도 이상한 힘을 썼었지. 이 노인네도 진짜 산신령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칼을 휘두르죠. 왜 사람이 가는 길에 이상한 짓을 하세요! 할아버지 때문에 자꾸 길을 잃잖아요.”
 “그걸 알면 들어오질 말아야 할 거 아냐!”
 
 당당하다. 자신감 하나는 멋진 분인 거 같다.
 그런데 이분이 한 소리 더 지르려고 내 앞으로 다가오는 순간.
 
 철컥.
 
 존나 거슬리는 소리가, 영감님의 마지막 걸음과 함께, 낙엽이 우거진 땅 밑에서 울리고 말았다.
 
 “···.”
 “···.”
 “···설마 아니죠?”
 “······.”
 
 아까의 낡은 경고판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영감님의 인상도 더 없이 구겨지고 있었다.
 
 “아~ 제발 아니라고 해줘요. 머리 아프니까 제발.”
 “내가 이래서 육신을 드러내면 안 되는데···.”
 “지뢰 밟으신 거예요?”
 “나라고 밟고 싶어 밟았겠어?”
 
 환장하네. 진짜 환장해.
 
 “어떡할 거야?”
 “뭘 어떡해요? 내가 뭘 어째야 하는데? 군대 불러야지.”
 “부르지 마!”
 “왜요? 아니. 애당초 산신령이 지뢰를 왜 밟아요!!”
 “신령도 살아 있는 존재니까 그러지.”
 “그러니까 군대를 부르자고요.”
 “안 돼. 놈들은 꼴도 보기 싫어.”
 “왜요? 이 상황에.”
 “놈들은 싫어. 네놈도 싫지만, 놈들은 꼴도 보기 싫어.”
 
 그렇게 강경하게 부르짖던 모습이 밥 먹기 싫다고 투정 부리는 재희같이 여리게 바뀐다.
 그래. 웅담 할아버지가 그러셨지, 이곳은 상흔을 거친 땅이라고. 전쟁 때 엄청난 전투가 있던 곳이라 하셨었지.
 산신령이라니 그 마음 어딘가 군인을 거부하는 모습이 있으신 건 아닐까 싶어졌다.
 영감님도 흐린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다 없애고 하나가 어딘가 있을 거라 했더니만. 하필 여기에.”
 
 어딘가 마음이 씁쓸해지는 표정과 한마디였다.
 
 “에잇 젠장. 이것도 다 네놈이 나타나서.”
 “미치겠네. 할아버지 말을 바로 합시다. 그 지뢰 제가 매설했습니까?”
 “무식한 놈이 변명은 기가 차는구나.”
 “어 어! 움직이지 마세요!! 왜 움직이고 그러세요!”
 “터트려야지.”
 “미쳤어요!!”
 
 나는 조심히 산신령 발아래에 몸을 낮추고 엎드린다.
 
 “뭐 하는 거야?”
 “가만히 계세요. 군대도 싫다 그러고. 눈앞에서 산신령이 다진 고기가 될 판국인데, 그럼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영화에서 보던 것같이, 작두칼을 들고 살살 기어가 영감님 발아래를 긁어 보았다.
 
 “살살해.”
 “저도 무서우니까 가만히 계세요.”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땅을 긁어내기를 한참.
 반백 년이 지난 역사의 아픔을 꺼내 든다.
 
 “후~ 낡아서 그런가? 안 터지네.”
 “조심해. 그래도 포악한 거니까.”
 “알겠습니다.”
 
 고무신과 지뢰를 똘똘 뭉쳐 내려놓으니, 그제야 산바람이 불듯 영감님이 시원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하~ 드디어 다 없앴구나.”
 “···.”
 “이리 마음이 후련할 수가~”
 
 영감님은 사방 주변을 둘러보며 말씀하셨다.
 
 “그만들 가 보시게. 괜찮으니까. 이제 다 끝나지 않았나. 미안해하지 말게.”
 
 누구한테 하는 말씀이실까?
 뭐 깊이 들어가지 말자. 가뜩이나 머리 아픈데. 내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겠지.
 
 그나저나 진짜 이건 또 뭐냐. 산신령은 뭔데?
 난 그냥 사기 맞은 내 재산만 깔끔하게 돌려받으면 된다고.
 천사 이 개새끼야. 네가 말한 좋은 일이 산신령을 만나는 거였냐?
 
 그 순간 머리가 번뜩인다.
 
 잠깐. 산신령? 설마??
 
 빠루와 작두칼을 들어본다.
 빠루가 더 무거워 보였다.
 깊은 산 중에 연못이 어딘가 있겠지?
 
 “와 할아버지. 산신령이라 하시더니, 멋진 델 많이 아시네요.”
 
 마음을 달리 먹었다.
 그래. 산신령인데. 잘 대해 드려야지.
 지뢰 사건을 해결하고. 우리는 산 중턱 어딘가에서 쉬고 있었다.
 눈앞에 겹겹이 쌓인 동산이 낮고 끝없이 펼쳐지는 풍경이었다.
 
 “인간은 함부로 데리고 올 곳이 아닌데.”
 “저 진짜 산신령이세요?”
 “신령이지.”
 “인간같이 보이는데요?”
 “육신을 가지고 왔을 뿐이지. 뭘 그렇게 궁금해하나?”
 “궁금하죠. 산신령을 만났는데.”
 “그렇게 말하는 친구치고는 꽤 태연하군. 보통은 신령을 만나면 기겁하고 경외하고 그러는데.”
 “보통은 그러겠지만, 제가 어제 천사를 만나서”
 “이 친구 재밌는 친구구먼”
 “뭐가요?”
 “세상에 천사가 어딨나.”
 “그럼 산신령은 어딨어요. 왜 내가 본 걸 할아버지가 부정하세요.”
 “성질머리하고는.”
 “와 산신령이 천사가 어딨 있느냔다. 하하하 나 참.”
 
 아무튼 마음을 달리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저 할아버지.”
 “왜?”
 “연못은 어디 있어요?”
 “연못을 왜 찾어?”
 “아~ 이거 참 왜 이러세요.”
 “뭐라는 거야 이놈이? 날이 더워 실성했나?”
 
 아 진짜 산신령이라고 존나 비싸게 구네. 하긴 다 이런 레퍼토리가 깔리는 거겠지.
 
 “뭘 그리 빤~ 하게 생각하고 있나?”
 “그냥요. 어쩌다 땅문서를 하나 쥐었는데, 거기 산신령이 떡 하니 앉아 이 산은 내 것이다 하고 있다니. 내 인생도 참 기구하구나 싶어서요.”
 “네놈 관상이 그렇게 생겼다. 초년고생이 얼굴에 깔려 있구만.”
 “그쵸? 그러니까 할아버지. 불쌍한 나그네 돕는다 생각하시고.”
 
 빠루와 작두칼을 들어 보였다.
 
 “···뭐 하는 건가?”
 “어떤 걸 바꿔 주실 거예요?”
 “뭐를?”
 “음. 역시 칼보단 빠루가 낫겠죠? 무게만큼 질량이 나갈 테니까.”
 
 나는 가끔 그런 인상을 지을 때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럽고 한심스러운 걸 보면서 미간이 일그러지고 입이 벌어져, ‘뭐지 이 병신은?’ 싶은 걸 보는 표정. 산신령 할아버지가 나를 그렇게 보고 계셨다.
 
 “왜요? 왜 왜?”
 “자네 생각과는 달리 꾸밈없는 친구로구만. 속마음이 훤히 들어나 보이는 게”
 “이거 바꿔주시면 안 돼요?”
 “뭐로 바꾸라고?”
 “황금 빠루로.”
 “크하하하! 아하하하하하!!”
 
 산신령의 웃음이 산 가득히 메아리쳐댔다.
 
 “정신머리 없는 놈이라고는 내 진작 알았다지만, 이런 허무한 놈이 다 있나.”
 “아 왜요. 생색내는 거 같아 좀 그런데, 제가 할아버지 구해드렸잖아요.”
 “언제?”
 “와! 씨! 인제 와서 발뺌하기 있습니까 없습니까”
 
 혹시 몰라 그냥 둘 수 없다고 고이고이 주워뒀던 지뢰를 퍽! 하니 내밀어 보였다.
 
 “깜짝이야. 이 무식한 놈아! 그걸 왜 들고 왔어?”
 “그럼 그냥 버려요!! 이것 때문에 끙끙거리고 계셨으면서.”
 “···”
 “암튼, 착한 일 했으니까 뭐든 해주세요.”
 “하하하하”
 
 입은 웃고 계신데 주름진 두 눈은 존나 어이없다는 시선을 보내고 계셨다.
 
 “이 친구야. 세상 어느 신령이 그런 짓을 하나?”
 “와 이 할아버지 산신령 아니네. 가라네 그냥. 금도끼 은도끼도 모르시죠?”
 “하하하하. 아하하하”
 
 영감님이 눈은 또렷이 뜨고 입은 거만하게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그 망할 놈의 도끼 같으니라고. 자네가 그 얘길 어떻게 알고 있나?”
 “아이고 영감님. 읽고 쓰고 말할 줄 아는 한국 사람이면 다 알걸요?”
 “으하하하하”
 
 시원하게 웃고 계시는 산신령 왈.
 세상사 모든 부분 양면이 존재하는 법.
 가난하고 착한 나무꾼의 이면도 내가 알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 일은 강원도 고을에서 있던 일이지.”
 
 할아버지는 신령이란 존재는 물질을 바꾸는 그런 일은 할 수 없으시단다.
 
 “그럼 그 금도끼 은도끼는 어디서 난 건데요?”
 “그건 어느 탐관오리가 몹쓸 재화를 고이 보관하기 위해 만든 내물(內物)이었지.”
 “뭔가 되게 현실적인 물건이었네요···.”
 “이놈아. 세상 모든 신령이 다 그렇게 쇠를 금으로 바꿀 줄 알면, 왜 이러고 산에 쭈그리고 있겠나. 나가서 기생 불러다 술이나 먹고 춤이나 추고 다니지.”
 “···산신령이 왜 그런 짓을 해요?”
 “산에 종일 붙어 있어 봐라. 좀이 쑤시지 않고 견딜 수 있나.”
 “암튼. 이야기 다른 길로 새지 마시고. 그럼 그 도끼는 신령이 만든 건 아니라는 거네요.”
 “한양에서 어사가 내려온단 소식을 미리 알았던 관아에서 손을 쓴 게지. 물건을 숨긴다고 산속 깊은 샘물에 던져놓았었는데, 그걸 신령이 미리 챙겨 둔 거야.”
 “그런 걸 어떤 착한 나무꾼이 도끼질하다 도끼를 놓쳤고.”
 “음.”
 “그래서 그걸 나무꾼한테 줬다?”
 “그런 셈이지.”
 “그럼 나무꾼은 장물을 취득한 거네요.”
 “맞네. 그 시절에 황금 도끼 같은 게 어디 흔한 물건이던가. 녀석도 입 조심히 하지 못하고, 방방 날뛰고 자랑하다 못된 놈들한테 잡히고 말았지.”
 “못된 놈 누구요?”
 “그 마을 탐관오리.”
 
 안타까움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와~ 젠장. 장난 아니네. 자비가 없네. 꿈도 희망도 없어. 그럼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껄껄껄~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관리의 물건에 손댔다고, 졸지에 끌려가 매질이나 당하다 죽임을 당했지.”
 
 허이고 웃으며 할 이야기는 아닌데?
 
 “와 씨발 그건 좀. 아. 죄송합니다. 너무 감정이 이입되다 보니까”
 “어쩌겠나. 누가 들어도 욕 나오는 상황이지···.”
 “좀 심한데요? 그럼 나무꾼은 아무 죄 없이 그냥 맞아 죽었다는 거 아네요?”
 “그래서 기쁜 일이든 나쁜 일이든 대소사는 숨기고, 경조사나 알리라는 말이 있는 거 아니겠나.”
 
 씁쓸하다. 산신령과 앉아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어야 한다니.
 
 “하~ 나무꾼은 그렇게 죽었고. 그럼 그 산신령은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되긴. 높고 멋진 산에서 쫓겨나 작은 시골 산이나 지키고 있겠지.”
 
 뭔가 느낌이 싸한데.
 
 “···.”
 “왜?”
 “설마. 할아버지 얘기에요?”
 “그 친구한텐 미안한 일이지.”
 
 뻔뻔하고 강직하던 영감님이, 괜히 시선을 내리깔고 고무신 아래 붙은 흙먼지나 털고 계신다.
 
 “···.”
 “아― 왜?”
 “언제 있던 일이래요?”
 “그게 조선 때였지.”
 “나무꾼 가족들한텐 사과하셨어요?”
 “내가 왜? 난 잘되라고 한 일인데. 그 친구가 경솔하게 행동한 거지.”
 “와~ 그래도 영감님 때문에 그 가족들은 아버지를 잃은 거잖아요.”
 “그 친구 총각이었어. 부모도 없었네.”
 
 어디서 많이 듣던 가족관곈데.
 
 “그래도 잘살아 보라고 도와준 건데. 안타까운 결과가 되고 말았네. 암튼 그때부터야. 사람이 싫어지더군.”
 
 산신령 할아버지가 내가 모르는 그날의 풍경을 말씀하셨다.
 관아에 끌려가 어디서 이 물건을 훔쳤냐 따져 묻는 관리와 억울하다고 부르짖는 나무꾼 청년.
 그런데도 나무꾼 이야기는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는 허무맹랑한 도덕으로 갈무리 되어 세상에 퍼져 나가더란다.
 
 “당대의 통치 이념이었지. 도덕과 선함을 강요해 인간의 행동을 옥죄이던.”
 “근데 산신령이 그런 소리 해도 돼요?”
 “나도 소싯적엔 도둑질도 하고, 방탕하게 살 만큼 살았거든.”
 “잠깐만요 근데 그런 분이 어떻게 이런 신령이니 신선이니 같은 게 되셨어요?”
 “그건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아무튼.”
 
 ***
 
 나무꾼 총각의 억울한 죽음은 밝혀지지 않은 채 세상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부터,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는 말이 퍼져가며, 타인의 익선(翼善)으로 본인의 이득을 만드는 놈들이 무수히 생겨나더란다.
 더불어 산에 보이는 연못이란 연못엔, 도끼니 냄비니 일단 던지고 보는 놈들 투성이라 각 지역의 신령들이 골머리가 썩는 줄 알았단다.
 
 “그러고 백여 년인가 지나자, 인간 놈들이 아주 산에 철을 들이붓더군.”
 “···.”
 “끔찍한 일이었지.”
 “저 할아버지. 전쟁 말씀하시는 거라면. 도끼 이야기랑 전쟁은 좀 시대적인 차이가 있어요.”
 “사바세계의 일엔 관심 없네. 나는 오직 산에서 벌어지는 일만 알 뿐이야.”
 “···.”
 
 뭐 그렇다고 해두자. 일일이 설명하기도 귀찮은 일이고.
 
 “후~ 알겠습니다. 그럼 금도끼 은도끼는 없던 일로 하시고.”
 “해줄 수도 없다 이놈아.”
 “산삼 어딨는지나 알려주세요.”
 “뭐? 뭐를 알려줘?”
 “아 좀 그렇게 한마디 할 때마다 한심하게 쳐다보지 마시고.”
 “내가 네놈한테 산삼 위치를 왜 알려줘야 하냐?”
 “없어요?”
 “없어.”
 
 있다. 그런데 알려주기 싫어 발뺌하고 계시는 게 뻔히 보인다.
 
 “할아버지.”
 “왜?”
 “사바세계 일은 관여 안 하신다고 하셨지만. 이건 확실히 말씀드릴게요.”
 
 빠루를 땅에 콕 찍으며 말했다.
 
 “이 산은 일단 제 거 맞습니다.”
 “···.”
 “할아버지가 뭐라 하셔도 여긴 내 거예요. 그건 저도 물러설 수 없어요.”
 “그래서?”
 “대신 저도 할아버지가 산에 계시는 건 뭐라 하지 않을게요. 나무도 그대로 두고, 틈틈이 찾아와 말동무도 해드릴 테니까. 산삼이나 약초 같은 거 어딨는지 그것만 말씀해 주세요.”
 “싫다.”
 “아 진짜.”
 “진짜 뭐?”
 
 영감님이 목소리를 높이길래, 나도 속이 답답해 벌떡 일어나 말했다.
 
 “영감님. 나도. 나도 있잖아요. 예!! 나도 싫어요. 나도 산 싫어. 홍준식 그 인간이 내 돈이나 돌려주면 좋겠어.”
 “네놈 사정은 내 알 바 없고.”
 “그러니까. 산삼이면 돈이 되니까. 그것만 알려달라고요. 할아버지 귀찮게 안 굴 테니까!!”
 
 씩씩거리고 울분을 토해내니, 영감님도 자리에서 슥 일어나 말씀하신다.
 
 “내가 네놈 욕심 많은 건 진작 알아봤다지만, 이놈아. 산삼이 뭐 아무한테나 주는 건 줄 아냐?”
 “그럼요! 산삼 얻을람 무슨 조건이 있어야 합니까?”
 “당연하지. 삼은 선한 사람한테만 주는 것이다.”
 “나 착해요!!”
 
 욱하는 맘에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뭔가 존나 어이없는 말이긴 했다.
 
 “하하하하. 나 착해요. 진짜로요.”
 “미친놈. 세상천지 실실거리고 지 착하다는 놈치고 선한 놈 못 봤다 이놈아.”
 “아. 진짜. 어제 천사가 그랬어요. 그 정도면 착하게 살았다고.”
 “몰라. 천사가 어딨어.”
 “와 이 할아버지 진짜 대책 없네. 자기는 산신령이면서.”
 “시끄럽다. 삼 위치는 알려줄 수 없고. 정 원하면 스스로 찾아봐. 있긴 있으니까.”
 
 이 넓은 산 어디서 산삼을 찾으라는 말이냐.
 
 “아니 사람 도와주다가 잘못됐으면 반성하고 또 도울 줄 아셔야지.”
 “그래서 그렇다. 함부로 남 돕다가, 좋은 꼴을 못 봤으니까.”
 
 진지한 눈빛으로 마무리를 지으셨다.
 
 “난 사람이 싫다.”
 “···.”
 “가 봐라. 귀찮게 굴지 말고.”
 “그럼 저 포장도로는 뭔데요?”
 “뭐?”
 “콘크리트 도로. 저건 뭐냐고요. 할아버지 최근까지도 사람 도와주셨던 거 아니셨어요?”
 “네놈은 지금 나한테 도움을 바라는 거냐? 강탈하는 거냐? 야 이놈아. 산적 떼도 도움 내놔라 하진 않았다.”
 “저도 오죽하면 이러겠습니까. 저 지금 사기당했다고요. 천사가 무슨 짓을 해놔서 제가 이러고 태연하게 있는 거지. 아니면 나 여기서 죽고도 남아요. 어떤 나무가 튼튼하게 목매달 수 있을까 그거 고르고 있을 거라고요.”
 “그래서?”
 “그래서. 좀 도와주시면.”
 “내가? 난 사바세계에 관심 없다니까.”
 
 진짜 답답하네.
 
 영감님은 말도 없이 몸을 돌려 길을 나섰다.
 나도 영감님의 뒤를 따라 걸었다.
 그러자 아까와는 다르게, 몇 걸음 가지도 않아 금방 산 중턱에 도달해 있었다.
 그곳엔 산 중턱이라곤 생각지도 못할 넓은 공터와 낡고 커다란 건물이 하나 있었다.
 
 ***
 
 느낌적으로 산 중턱쯤 되는 것 같았다.
 산세가 높이 솟기 전, 골짜기가 터를 이루는 멋진 공간이었다.
 나무와 숲이 어우러진, 소설 속에나 나올 아늑함 가운데엔 이질적이고 낡은 콘크리트 도로가 그와 같은 재질,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건물로 이어진다.
 이제는 기능을 못 하고 그저 서 있을 뿐인 건물에는 주변과 어우러지지 못하는 흉물스러움이 있었다.
 그래도 공간이 주는 분위기가 원체 강렬해 그조차 그냥 어디 영화 촬영장에 온 듯 모든 걸 감싸 안는다.
 
 “와 여기 좋네요. 아까 거기는 여기에 비하면 그냥 담배 피우는 곳인데?”
 “···이놈은 비유해도.”
 “저건 무슨 건물이에요? 저 길은 또 뭐고?”
 “저 건물을 올리며 홍가 놈들이 만든 길이다.”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길과 건물을 쭉 둘러보았다.
 
 “근데 왜요? 다른 곳도 아니고 이 먼 산에다가 왜 이런 짓을 했지?
 
 그러자 산신령 할아버지가 왼손은 뒷짐을 짓고, 오른손을 넓게 들어 도포 자락을 휘두르셨다.
 콘크리트 길을 우거지게 덮어놓은 나무가 바사삭 걷어진다.
 저 아래 화룡산 입구가 드러나 보였다.
 
 “그리 멀지가 않구나. 가깝네요.”
 “먼 거리는 아니지.”
 “난 한참 헤맸는데”
 “큭큭큭.”
 
 얄미운 웃음. 영감님의 술수에 말려 빠루니 작두칼이니 미친 듯이 휘두르고 있었는데.
 
 “그래서. 이것 때문에 사람 못 오게 하신 거예요? 건물 있고 이러면 또 막 사람들 드나들고 하실까 봐?”
 “그렇지.”
 “와~ 할아버지. 인간 싫다 하시더니 그게 그냥 빈말이 아니셨구나.”
 “싫다고 했잖아.”
 
 이 정도면 거의 인혐인데? 인간혐오?
 
 “왜요? 아니 왜? 사람이 욕심도 부리고 야망도 떨고 사기도 치고 개보다 못난 짓거리 한다지만. 신령이 사람을 그렇게까지 싫어할 이유가 대체 뭐래요?”
 “···.”
 
 바로 대답을 하진 않으시고, 천천히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기셨다.
 
 “원래는 이곳에 사당이 있었네.”
 “사당요?”
 “그래. 사당(社堂). 지신을 모시는 공간이었어. 고려 적에 만들어진 건물이지.”
 “고려? 사당? 뭐 신을 모시는 그런 곳인가요?”
 
 끄덕끄덕 고개를 흔드는 모습에 재차 물었다.
 
 “할아버지가 머물던 곳인가요?”
 “나보다 더 높은 분을 위한 곳이었다. 나는 신령이지 신은 아니거든.”
 
 영감님의 그윽한 시선이 숲이 우거진 하늘을 올려다보신다.
 
 “좋은 분이셨네. 멀리서 사고 치고 좌천된 나조차도 편한 마음으로 감싸주신 좋은 분이셨어.”
 “그랬는데요? 그 신은 지금 어딨어요?”
 “반백 년 전, 철붙이가 떨어지던 때 파괴되어 버렸지. 사당이 날아가던 그때, 신께서도 같이 떠나버리셨네.”
 
 전화(戰火)···.
 휴전선 인근은 인간뿐만 아니라, 신에게까지 좆같은 영향을 미치고 말았구나.
 
 “하긴, 그때는 나무는커녕 사람도 온전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으니.”
 
 어려운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아 조용히 있었다.
 여느 을지로 영감님들과 다를 바 없이 할아버지는 흘러간 시절을 이야기하다 입을 다무셨다.
 근데 할아버지 옆 모습을 지켜보는데 묘한 공감을 느끼고 말았다.
 
 일상과 피로에 지친 나머지, 주저앉은 묘한 동질감을.
 
 산의 영혼. 신령. 신과 땅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던 이.
 그 입장으로 할아버지는 전후 이곳을 재건코자 무진장 애를 쓰셨단다.
 산에 박힌 지뢰를 치우고, 시체를 묻어주고. 전쟁으로 죽어 갈피 못 잡는 영혼들을 하늘로 인도하는 한편, 피로 물든 땅에 생명이 자라도록 많은 기운을 집중해야 했단다.
 아마 영감님들이 말씀하시던 먹을 거 입을 거 없어도 발길을 들이지 않던 독한 시절인 거 같다.
 이 할배 성격에, 누구 지나가던 사람이 슥 발길만 들여도 오죽 성질을 부렸을지는 안 봐도 뻔하지.
 나는 대학을 못 나왔지 어르신들과 술자리나 여러 잡지, 예능 방송을 통해 주워들은 게 없는 놈은 아니다.
 산에 주인이란 없다. 애당초 자연에 주인이 어딨겠는가.
 인간 편의상 행정과 재물로 묶이고 얽혀 지금에 다다른 이야기지. 그래도 사람은 땅을 가져다 내가 주인입네 으름장을 놓고 욕심을 탐한다.
 이곳 화룡산도 어느 날 그런 자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홍 사장의 가족들. 내 기준으로 홍준식 사장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뻘 되는 이들일 것이다.
 그들이 산에 찾아와 지극정성으로 제사를 올렸다.
 
 “꽤 지쳐 있었지.”
 “누가요?”
 “내가.”
 “할아버지가 지쳐요? 왜? 산을 재건하느라?”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이시며 말씀을 이어가셨다.
 
 “그런 흉물스러운 일은 내가 살아생전 인간이었을 적도, 신령직을 맡은 이후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일이었거든.”
 
 산이 상처 입은 만큼, 할아버지도 상처를 입었다.
 그렇기에 이분은 그토록 정성스레 제를 올리는 홍가네 식구들을 보며, 그게 자신을 위하는 줄 알고, 정성이 갸륵하다 여겨, 그들에게 좋은 기운을 나누어 주었다.
 일종의 착각에 불과한 선의였지만, 졸지에 산이 다시 어지럽혀진다.
 도로가 깔리고, 그들의 사업 본부가 이곳에 설치되었다.
 
 “사당이 있던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 땅이라. 저 같아도 욕심이 났을 거 같네요.”
 “에잇 고얀 놈들. 내 그런 줄 알면 진작 쫓아냈을 것을. 막걸리 몇 잔에 홀랑 넘어가 버리고 말았으니.”
 
 예로부터 술 마시다 집안 팔아넘기는 거고, 역모 들통나는 법이지.
 그때 언젠가 홍 사장 본인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
 
 “야 인마. 호구철. 너 나 무시하지 말어.”
 “내가 언제 사장님을 무시했다고 그래요. 술 취하셨나.”
 “그래도 우리 할아버지가 장교 출신이야. 아버지도 군납으로 꽤 큰돈 만진 양반이고.”
 “어이구 그렇게 잘사시던 분이 왜 지금 이러고 계실까? 같은 을지로 땅인데, 작은 구멍가게 말고, 큰 빌딩 들어가 계시지 않고”
 “큭큭큭 망했거든.”
 “그래도 그 시절에 군납이면 제법 규모가 있었겠어요.”
 “그럼. 난 어릴 때 스팸 같은 거 질려서 안 먹던 놈이야.”
 “또 또 이상한 자랑 하신다.”
 “이 자식이.”
 “그래서. 어디서 그런 일을 했었데요?”
 “파주.”
 “사장님 고향? 거기 그런 거 할 데가 있어요?”
 “지금은 몰라도, 그때는 파주서 일하면 미군도 가깝고 돈 벌 기회가 많았거든.”
 “흠.”
 “야 인마. 지금 내 말을 뭐로 듣는 거야?”
 “아 다 마셨으면 들어가요. 사장 직원 둘 있는 작업장서 뭔 회식은 회식이라고. 맨날 술은”
 
 ***
 
 저 건물이 산의 정기를 빨아먹었다.
 지쳐 있는 산신령이 겨우내 일으키던 산 기운이 뽑히다 못해 말라가고 있었다.
 결국, 사업이 잘못돼 망하는 바람에서야, 다시 할아버지는 나무를 키우고 산을 보듬을 수 있게 되었다.
 
 “또 사람 도와줬다가 잘못된 케이스네요.”
 “케이스?”
 “경우라는 거예요. 잘못된 경우.”
 “그런 셈이지.”
 “그래서 나도 못 도와주시겠다?”
 “응. 싫다.”
 
 후~ 난감하네.
 땅문서 손에 쥐고 산삼이나 뽑아다 팔아볼까 했더니 애물단지 인간 혐오증 걸린 신령이나 하나 떠맡게 된다니. 이거 독거노인 연탄 봉사하면 고맙다는 소리라도 듣지. 이건 뭐.
 
 홍 사장이 산신령의 존재를 알았을지 몰랐을진 몰라도, 가세가 기운 땅에 좋은 기분 가졌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 다 팔아 치우면서도 이 땅문서는 거들떠도 안 봤겠지.
 가슴이 답답하다.
 천사가 눌러놨던 스트레스가 다시금 피어오르는 기분이었다.
 
 “후~”
 “젊은 놈이 한숨은”
 “그럼 한숨 나오지. 안 나게 생겼어요.”
 “헛된 망상 품지 말고 가서 열심히 살기나 해라.”
 “아이고 영감님. 사바세계 관심 없다더니, 진짜 뭘 모르시네.”
 “뭐야? 너 이 자식 말이 자꾸 건방져.”
 “그럼 내가 지금 예의 따지게 생겼습니까. 돈은 돈대로 다 뜯겼지. 그래놓고 기껏 땅문서 하나 손에 쥐었는데, 들풀 하나 내줄 수 없다는 이상한 신령이나 상대하고 있지.”
 “네놈 사정은 관심 없다고 말했다.”
 “···.”
 
 얄밉다. 진짜 얄밉다. 밉다 못해 싫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이 산신령도 여기서 쫓아내 버리고 싶다.
 
 “다른 데 갈 데 없으세요?”
 “신과 약속을 했다. 당장 이 마을 주민들까지는 내가 무탈하게 지켜주기로.”
 “···나도 지켜줘요. 사람 편 가르지 말고.”
 “넌 이 마을 주민이 아니잖아.”
 “신령이 그런 것도 따집니까?”
 “절이 싫으면 중이 가는 법. 산이 싫으면 사람이 가야지.”
 “···.”
 
 돌겠네. 내가 홍가 이 인간들이랑 무슨 원수를 졌다고, 그 애비 할애비까지 내 삶에 개똥을 뿌리는 걸까.
 
 “가 봐라. 애먼 곳에 와서 고생했다.”
 “발길이 떨어져야 가죠.”
 “네놈은 직업도 없냐?”
 “사람 말을 뭐로 들으셨어요! 사장한테 사기당하고 직업도 돈도 다 뺏겼다니까.”
 “···.”
 “좀 도와줘요. 네! 산삼 백 뿌리만 캐다 팔아먹읍시다.”
 “요행을”
 “요행이 아니니까 그렇지!”
 
 높이 올라가는 목소리만큼 작두칼이 번쩍 들린다.
 
 “씨발! 천사가 나더러 이리로 가래!!”
 “···미친놈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누구 앞에서 칼을 휘두르고 소리를 지르냐.”
 “뭐! 뭐 어쩌라고!! 그럼 죽이든가!!”
 
 퍽퍽 행동이 거세질수록, 움찔움찔 놀라는 신령.
 
 “진짜 아까부터 듣자 듣자 하니 이 영감님이 사람 약이나 살살 올리고 말이야.”
 “내가 언제?”
 “진짜. 썅. 더러워서.”
 
 가방을 뒤적뒤적.
 녹슨 지뢰를 꺼내 들었다.
 영감님은 화들짝 놀라신다.
 
 “봐요! 육신이 있으니까 좀 봐 봐. 내가 이것도 치워줬잖아!”
 “뭐 이런 놈이···”
 “할아버지도 힘이 없으니까 어딨는지 몰라서 그냥 묵혀 뒀던 거. 내가 치워줬잖아! 이래도 산삼 어딨는지 안 내놓을 겁니까!!”
 “···허허 말을 말아야지.”
 “에잇 씨발!!”
 
 열이 확 올라, 지뢰를 건물 쪽으로 집어 던졌다.
 깡그랑― 쇠구슬 소리를 내며 나뒹구는 지뢰. 처음부터 터질 마음이 없던 놈이었나. 젠장! 저거까지 날 놀리는 거 같네.
 
 암튼, 나는 목숨을 바쳐 자길 구해줬는데.
 기껏 애먼 놈들 도와줬다가 자기 정기 뺏겼다고 사람은 못 도와준다니.
 삼류도 뭐 이런 삼류 산신령이 다 있어!!
 
 “에이 썅! 그러니까 한민족끼리 전쟁은 왜 해서!!”
 
 역시 천사가 분노를 없앤 게 아니었어. 그냥 억눌러 놨을 뿐. 그게 하루 늦게 터져버린다.
 
 “야 이 씨발. 너 나 보고 있냐 이 개새끼야!! 도로 포장하는 공무원도 너보단 땜빵 잘할 거다!!”
 
 속상함에 가슴을 퍽퍽 두드리며 소리소리 질렀다.
 
 “그러니까 내가. 내가! 내가 그 새끼 그냥 놔주면 안 된다고 했잖아!! 내 돈! 내 도~~온!!! 내 돈 내놔――!!”
 
 속상해 미치겠어서, 퍽퍽 가슴을 두드리고 있는데. 갑자기 영감님이 방금 집어 던진 지뢰 쪽으로 휙~ 시선을 돌리셨다.
 
 “음?”
 “또 뭐요!?”
 “저거”
 
 영감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그 끝에. 지뢰에서 영 듣기 안 좋은 카라락 소리가 들렸다.
 미친 분노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도, 생사의 갈림길에선 정신이 퍼뜩 들더라.
 
 “어 어?”
 “뛰어! 이 무식한 놈아 뭘 보고만 있어!!”
 
 황급히 달린다.
 계속 가방에 넣어오느라 흔들흔들했고, 벽에 집어 던지느라 충격이 가서 그런가.
 반백 년 땅속에서 녹이 슬다 못해 철이 일그러져 터지지도 않던 지뢰가.
 홍가가 산에 남겨놓은 오래된 건물과 함께 마지막 불꽃을 일으키며 산화되어 버린다.
 
 쿵~! 와르르르.
 
 “···.”
 “···.”
 
 지뢰가 건물을 쓰러뜨리고, 뿌연 먼지가 가라앉자 그곳에는 넓은 터만 덩그러니 놓이게 되었다.
 
 <『목수와 가구의 신비한 이야기』 1-2권에 계속>

댓글(6)

oh******    
이 작품 완결까지 일독하신분들.정말 존경합니다. 전 고구마에 넘 목이 메여 감당이 안되더군요. 그래도 작가님 수고하셨습니다.
2020.03.11 20:05
사만마리    
작가님 고구마에 목이 막혀 죽는줄 알았어요.솔직히 3분의2 보다가 홈으로 넘어갑니다. 열심히 글쓴 것 폄하하고 싶지 않지만 조금만 더 읽기편하게 해주세요. 소재는 좋아요.그러나 답답해서 죽는줄 알았어요.
2020.03.22 10:30
네발개발    
엄청 오바하네. 신비한 현상을 접하고도 별 병신같은 짓을 하고 있어. 말이 되나?
2020.06.03 14:33
파랑색맛    
무슨글인지 감도 안잡히네
2021.02.17 03:54
울금향65    
힐링이 아니라 분노의 글이네요.
2021.02.19 14:47
너솔    
ㅎ 이딴거도 ...?
2022.02.0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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