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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좌의 탑

2019.12.11 조회 2,516 추천 12


 제1편 왕좌의 탑
 
 
 인생은 한순간 변한다더니······.
 공부만 하던 내 인생이 게임 때문에 바뀔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우연히 접한 가상현실게임.
 왕좌의 탑.
 게임을 시작하고 내 미래는 180도 뒤바뀌어 버렸다.
 현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
 무신武神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세상에서.
 나는 무신이다.
 
 
 * * *
 
 
 수능이 며칠 안 남은 11월 초.
 고3 수험생인 이호의 앞에는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 교과서가 놓여 있었다.
 책을 통째로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봤기 때문이다.
 “읏챠! 화장실이나 다녀와야겠다.”
 호는 학교에 등교한 이후로 3교시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고 있었다.
 한 번 앉으면 좀처럼 움직일 줄 모르는 그는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하루의 대부분을 책상 앞에 앉아서 보냈다.
 그때문일까.
 지독하게 공부하는 호의 집념과 독기 때문인지 반 친구들은 그를 어려워했다.
 단, 두 사람을 빼고는.
 “덕배야! 호 일어났다.”
 오수가 옆에 앉아 있는 덕배를 ‘툭’ 치며 말했다.
 호의 X알친구인 이덕배와 김오수.
 두 사람은 호가 언제 자리를 비울지 1교시부터 지금까지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친구인 호를 놀리는 일은 그들의 학교생활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빨리 가자, 늦겠다.”
 화장실로 느긋하게 걸어가는 호의 뒤로.
 덕배와 오수는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병신춤을 따라 추며 껑충껑충 호의 뒤에 따라붙었다.
 “가자! 가자! 호우! 호우!”
 전교 1등인 호는 학교에 일단 등교를 하면, 거의 하루 종일 의자에 자석처럼 붙어 있다시피 했다.
 급식을 받으러 가는 점심시간, 체육 시간,
 그리고 화장실 가는 시간.
 이런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책만 봤다.
 문제는 호가 원래 이렇게 공부를 하는 친구가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이호, 김오수, 이덕배. 이 셋은 중학교 때 유명한 꼴통 3인방이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호가 정신을 차리더니 공부에 미쳐버렸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로는 전교 1등까지 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오수와 덕배는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 친구에게 서운한 마음을 유치하게나마 이런 식으로 풀고 있었다.
 “호야? 똥 싸? 호야? 똥 싸냐고?”
 “얼마큼 쌌어? 많이 쌌어?”
 둘은 호를 놀리며 그의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도, 화장실에서 나올 때도, 그 뒤를 끝까지 쫓으며 온 동네 소문내듯 소리를 질러댔다.
 ‘이 자식들은 질리지도 않나. 작년부터 계속 저러네.’
 중학교 3학년 때, 마음을 다잡고 공부를 시작한 이후.
 작년 고2 1학기 중간고사에서 호가 전교 1등을 차지하자, 오수와 덕배의 똘끼는 폭발했다.
 그때부터였다.
 호가 화장실만 가면 뒤에서 병신춤을 추며 고함을 질러대고 따라오는 짓이.
 이제는 하루도 빼먹지 않는 일례 행사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웃긴 일은 두 친구가 저런 짓을 해대니 다른 놈들도 따라 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한 번도 같은 반을 안 해 본 처음 보는 놈들까지.
 “호우! 호우! 호우! 호우!”
 “와아아아아아!”
 미친놈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오수와 덕배를 따라 병신춤을 추며 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같은 학년 학우들.
 이런 놈들은 대부분 공부를 포기한 놈들이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예외는 있었다.
 ‘······영재까지 왜 저러는 거야?’
 전교 2등. 박영재.
 타 중학교에서 충무고등학교로 진학한 그는 이호의 열렬한 팬이었다.
 “우와아아앜! 쩔어! 쩔어! X나 쩔어! 호우! 호우!”
 전교 2등까지 저런 행태를 부리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었으나 호는 그러려니 했다.
 세상엔 별별 사람들이 다 있으니까.
 ‘뭐가 쩐다는 건지 모르겠네. 킁킁! 내 몸에서 냄새나나?’
 드르릉! 탁!
 화장실을 다녀와 교실 문을 닫자,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듯이 이호를 따랐던 남학생들은 문이 닫힘과 동시에 순식간에 흩어졌다.
 ‘······고맙지 뭐. 덕분에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친구들이 야단법석을 떠는 것은 화장실을 갈 때뿐.
 평소에는 호를 가만히 두기에 딱히 공부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친구들 덕분에 그 흔한 연애편지 한 장 받아보지 못했으니.
 내심 고마운 마음도 있었다.
 ‘하긴, 하루 종일 책만 봤다가는 지쳤을 것도 같아. 덕배랑 오수가 있어서 활력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자, 다시 시작해볼까?’
 자신의 자리에 앉은 호는 다시 교과서를 펼쳤다.
 이제 수능이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
 
 
 * * *
 
 
 수능이 있는 고3 2학기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일정이 조정된다.
 중간고사 이후 짧은 시일 안에 기말고사까지 끝내는 학교가 있고, 수능 후 가벼운 마음으로 기말고사를 보게 하는 학교도 있다.
 충무고등학교는 수능 전에 기말고사를 보는 쪽이었다.
 오늘은 수능이 끝난 다음 날.
 이미 기말고사 시험도 마쳤기에, 고3 학생들은 졸업만을 앞두고 있었고, 충무고등학교 3층, 각 교실에는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호야 수능 몇 점 예상함?”
 “대학은 어디 갈 건데?”
 오수와 덕배는 궁금증 가득한 표정으로 호에게 물었다.
 최선을 다해 수능을 본 호와 달리 두 친구는 대학진학을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궁금해! 가채점해봤을 거 아냐? 몇 점 나왔어?”
 책상 주변에는 중학교 때 꼴통 3인방. 그들 외에도 한 사람이 더 있었다.
 본래 세 명이었던 무리가 네 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새로 영입한 네 번째 멤버는 이호의 열렬한 팬 박영재였다.
 영재는 특유의 귀여움으로 오수와 덕배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반 꼴찌 둘과 전교 1등이 함께 있는 이 기괴한 조합의 무리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들과 친구가 된 것이다.
 “너는 몇 점인데?”
 “나? 나는 전 과목 다 따지면 다섯 개 정도 틀린 것 같던데.”
 “아······. 잘 봤네. 이번 수능 어려웠다던데.”
 “너한테도 어려웠어?”
 “나는 헷갈린 게 한두 개 있긴 했는데······.”
 잠시 뜸을 들인 이호가 입을 열었다.
 “채점해보니까 다 맞았어. 만점!”
 “헐······. 대박!”
 “역시 호야! 죽인다!”
 영재는 뭐를 죽인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만점이라는 말에 세 친구는 호들갑을 떨어댔다.
 뉴스에서는 이번 수능이 유난히 어렵다는 말이 많았기에 아무리 호라도 만점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 지독한 친구는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수능 만점이라는 학창시절의 마침표를.
 “얘들아······. 나는 성공한 인생이야······.”
 갑자기 덕배가 나오지도 않는 눈물즙을 쥐어짜며 말했다.
 이럴 때는 무시가 답이다.
 혼자서 신파극을 벌이기를 좋아하는 친구이기에 호는 덕배를 무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영재는 아직 덕배에 대해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장난질을 받아 준 것이다.
 “왜 성공했는데? 왜~?”
 “전교 1, 2등이 내 친구잖아. 그거면 성공한 인생 아냐?”
 “맞아, 너희들은 우리의 자랑이야.”
 덕배의 신파극에 오수까지 합세했다.
 둘은 서로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크~ 우린 성공한 인생이야. 맞지?”
 “고럼고럼, 맞고말고.”
 쿵짝이 잘 맞는 두 친구의 모습에 호의 입에서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 둘은 자신이 아무리 잘나가도 절대로 질투하지 않을 녀석들이었다.
 성적이 반 꼴찌에서 전교 1등으로 수직 상승 하는 와중에 몇몇 친구들은 질투의 눈빛을 보낸 반면, 이 둘만은 진심으로 기뻐해 줬었다.
 -호야, 우리는 니가 해낼 줄 알았어! 진심으로 축하해!
 -그럼 이제 게임은 안 하는 거지? 그럼 챌린저 아이디는 누구 줄 거야? 나야? 오수야?
 -너는 전교 1등을 유지해야 해! 게임하면 안 되잖아! 나 달라고!
 뭐, 이유야 어쨌든 둘은 진심으로 기뻐해 줬다.
 나중에 듣기로는 예전에 했던 게임. ‘LOL’의 챌린저 아이디를 둘이 번갈아 썼는데······
 대리로 신고를 받았다나?
 패배로 이끄는 저승행 대리기사라고······.
 지금은 티어가 골드까지 떨어졌다고 들었다.
 ‘그나저나 오수랑 덕배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공부는 완전히 손 놓은 건가······?’
 호는 친구들이 걱정이 됐다.
 “나랑 영재는 대학에 갈 건데, 너네 둘은 어쩌려고 그래?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니들이 아주 많이~ 걱정된다. 어떻게 할 거야? 덕배야, 오수야.”
 두 친구는 고3 마지막 시험까지도 반 꼴찌를 했다.
 친한 친구로서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한데, 덕배는 어쩌라는 식으로 태연하게 말했다.
 “우리? 우리는 걱정하지 마. 다 인생계획이 있다고. 사람이 공부만 하고 사냐? 다 자기 길이 있는 거지. 오수랑 나는 이미 인생 플랜을 다 짜놨어.”
 “인생 플랜?”
 “응. 우린 대학진학을 포기한 대신에 바로 돈을 벌 거야. 너네가 대학에서 뼈 빠지게 또 책이랑 씨름하고 있을 때, 우리는 돈을 쓸어 담고 있을걸?”
 호와 영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치며 이게 뭔 소리람 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 덕배가 이런 말을 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덕배와 오수는 자신들이 정한 진로가 부와 명예, 그리고 성공이 보장되어 있다고 확신에 차 있었다.
 심지어 약간의 포장을 섞어 놓기는 했지만, 이미 부모님도 설득해 놓은 상태였다.
 “······.”
 친구의 확신 어린 말투에 호와 영재가 동시에 물었다.
 “그게 뭔데?”
 오수와 덕배는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더니 말했다.
 “왕좌의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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