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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직이 사파지존(1)

2019.12.23 조회 18,773 추천 226


 1 전직이 사파지존
 
 
 나는 사파의 지존이다.
 뭐 지금은 평범한 대학생이지만. 남들처럼 취업 걱정을 한다는 게 우스울 뿐이다.
 
 “하아······ 지루하군.”
 
 처음에는 평화로운 일상이 마음에 들었지만, 이것도 하루이틀이지. 요즘에는 ‘전쟁이라도 안 터지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루하다.
 내 한심한 투정을 듣고 생각했겠지만, 난 이 세상의 인간이 아니다.
 무림.
 무협소설을 보면 나오는 그런 무림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나는 그런 세계가 실제로 있던 곳에서 태어났다.
 
 『혈마교』
 
 내가 태어난 곳이다. 이름만 들어도 딱 감이 잡히지?
 이 정파라는 놈들은 천마교가 나타났다고 하면 두려워서 꽁지 빠지게 도망치면서, 우리 혈마교는 사파로 규정하고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나는 그런 혈마교주의 3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투쟁 아니 생존의 시작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내 기억에는 없지만, 독살에 협박에 온갖 생존의 위협이 닥쳤으리라.
 그러나 나는 잘 성장했고, 생존을 건 투쟁 끝에 결국 사파의 지존 혈마교주의 자리에 올라섰다.
 나의 생존을 위한 투쟁은 혈마교주가 되었다고 해서 끝나지 않았다. 이 망할 정파 놈들이 천마는 두려워하면서 이상하게 난 꼭 죽이려고 하더라.
 하긴 천마 이놈은 강호의 일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가? 반면에 혈마교는 강호 정복의 야욕으로 똘똘 뭉친 단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래서 정파 놈들과 싸웠다.
 생존을 위해서 그리고 정파라는 놈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숱한 전투를 치렀고, 나는 내가 이길 줄 알았다. 그러나 무림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정파의 힘은 강해도 너무 강했다.
 아니 강한 건 나의 혈마교가 더 강하지만, 정파 놈들은 끈질겼다.
 그리고 혈마교는 역시 사파라서 내부의 분열이 끝없이 일어났다.
 결국 내 나이 마흔에 20년 동안 투쟁한 무림정복의 야욕이 끝났다.
 나는 죽기 싫었다.
 혈마교의 역대 교주 중에서 최연소 교주 등극에, 최초로 혈운마공을 극성으로 익힌 사람인데.
 이런 내가 꼭 죽어야 해?
 내 나이 겨우 마흔이잖아?
 억울해서 못 죽지!
 혈마교 내부에서 그리고 무림에서 평생 싸우느라 혼인도 못 해봤다고. 여자 손목 잡아본 적도 없다고.
 내가 이러려고 그토록 몸부림을 치면서 싸운 게 아닌데.
 어차피 죽을 운명!
 그래서 나는 ‘이혼대법’을 사용했다.
 그래서 눈을 뜬 곳이, 바로 이곳! 『21세기의 대한민국 서울』이었다.
 
 강현호!
 
 내가 육체를 얻은 17세의 소년! 아니 그냥 병신이라고 해두자. 내가 이혼대법으로 이놈의 육체를 차지한 이유는, 이놈이 자살로 막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니까.
 날 괴롭히는 놈들이 많았다.
 그래서 나도 무공을 다시 익히려고 했었는데, 아니 이 빌어먹을 세상!
 이곳에는 무공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기(氣)라는 게 없었다.
 망할······ 소설에서는 마치 정말 존재하는 것처럼 나오더니. 저 산속에서 기공술을 익히는 사람도 있고, 기를 이용한 치료술이라는 것도 있다더니.
 기는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내공도 없다.
 그래도 내가 전직이 사파지존인데 고딩 애들에게 당할 리는 없다.
 한 차례 이놈들과 대판 싸우고 이겼더니, 내 주위는 평화를 되찾았다.
 뭐 나름 평화로운 일상도 나쁘지는 않았다.
 생명의 위협도 없고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투쟁도 없고, 바로 내가 원하던 세상이었지 않나?
 다만 정말······ 지겨울 정도로 평화로운 일상이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군대도 다녀오고, 이제 남들처럼 취업 걱정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세계는 너무 지겨울 정도로 평화롭고, 이게 내가 평소에 입던 옷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루하다.
 삶이 너무 무미건조하고 지루해서 미치겠다.
 오죽했으면 ‘졸업하고 킬러라도 해볼까?’ 라는 생각을 했겠는가.
 복싱이나 종합격투기도 해봤는데, 나의 이 지루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종합격투기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도 해봤다.
 생존을 위해서 싸운 나에게 그런 스포츠는······ 뭐랄까, 오히려 더 지겨운 일이었다.
 싸우는데 무공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답답함이 원인인 듯한데.
 뭐 어쩌겠나?
 여긴 기가 없는데.
 공부나 해야지.
 나는 강현호의 몸을 차지했다.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서 강현호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효도는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그래서 공부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지만 공부는 열심히 했고. 지금은 부모님을 위해서 취업 걱정을 하는 중이었다.
 친구와 소주 한 잔 걸치면서.
 
 *
 
 “와, 씨버럴! 내가 벌써 4학년이라니! 벌써 졸업이라니! 나 학교 다니면서 도대체 뭘 했냐? 공부도 못 해 취업도 못 해! 영욱이 얘기 들었냐? 벌써 공무원 합격해서 발령만 기다리고 있잖아. 나도 공무원 준비나 할 걸 그랬나?”
 “네가?”
 “뭐가, 이 자식아! 비웃냐? 나도 하려고 하면 할 수 있거든!”
 “네가?”
 
 나는 박현민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두 번이나 ‘네가?’ 라고 물었다.
 
 “넌 취업 걱정 안 하냐?”
 “취업 걱정을 왜 안 하겠니?”
 “아주 그냥 태평천하네.”
 
 물론 나도 취업 걱정을 한다. 다만 걱정하는 것과 별개로, 내게 이런 걱정은 정말 중요하지 않은 일일 뿐이었다.
 내가 전직이 사파지존인데, 내가 어떻게 살았는데, 겨우 취업 걱정으로 곧 죽을 놈처럼 전전긍긍하겠는가?
 
 “뭐 좀 재미있는 일 없나?”
 “내가 보기에 넌 계속 그 바닥에 있었어야 했어. 너 정도 실력이면 세계 챔피언 아니냐?”
 
 종합격투기 대회를 말하는 거였다.
 
 “별로 재미 없어. 애들 노는 데 내가 끼어들어서 재미가 있겠냐?”
 “미친 새끼······ 크크크크크, 야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 너 괴롭히던 새끼가 격투기 선수로 나와서 우승하는 거 보면 배알이 꼴리지 않냐?”
 
 강현호를 한 번이라도 이겨보려고 아득바득 격투기를 배우더니, 결국에는 정신 차리고 본격적으로 그 바닥으로 나선 놈이 있다.
 
 “현민아, 술이나 처마셔. 그리고 네 아버지 따라서 의사 일이나 배워라.”
 “야! 이 미친 새끼! 의사를 내가 하고 싶다고 하냐?”
 “뭐 어쩌라고? 연예인은? 가수는? 개그맨은? 네가 하고 싶다고 하냐?”
 
 강현호는 이런 말을 하며서 키득거리며 웃었다.
 박현민 이 녀석도 진짜 웃긴 놈이다.
 군대에서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복학한 후 연예인이 되겠다고 지랄을 해대더니, 나중에는 꿈이 가수에서 개그맨으로 바뀌었다.
 얼마 전 개그맨 시험도 본 모양인데, 뭐 지금 이 지랄을 해대는 걸 보면 낙방한 게 분명할 테고.
 
 “요즘 BJ가 인기잖아? 너 워-그라운드라는 게임 해봤냐?”
 
 이제는 BJ로 전향했나?
 워-그라운드?
 ‘그거 안 해본 사람이 있냐?’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안 해본 사람이 여기 있다.
 게임?
 그런 걸 왜 하지?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내 꿈은 게임 쪽인 것 같다.”
 “하아······ 병신.”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생각을 하지마!”
 “네가 그래도 격투기에 엄청난 실력이 있잖아? 그래서 네가 워-그라운드를 하면서 BJ로 방송을 하는 거야. 그리고 나는 네 매니저도 하고 동영상도 편집하고. 어때? 내가 동영상 편집 같은 거 좋아하잖아.”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편집하고 인터넷에 올리고, 그런 걸 좋아하기는 했다.
 
 “영화나 찍지 그러냐?”
 “내가 그럴 깜냥이 되냐?”
 “미친······ 그러면서 연예인을 한다고 그 지랄을 했냐?”
 “시끄러, 인마. 넌 BJ 난 매니저, 오케이?”
 “나보고 그 따위 게임이나 하라고? 그거 재미나 있냐?”
 “일을 재미로 하냐? 돈 벌려고 하지! 야, 말 나온 김에 우선 한 번 해보자.”
 “재미 없어.”
 “그냥 따라와. 재미가 있든 없든 한 번 해보자니까. 너라면 정말 엄청 잘할 거야.”
 
 『WAR-GROUND』
 
 세계 최초의 완벽한 VRS, 가상현실게임이다.
 뇌파와 신경계를 이용한 어쩌고저쩌고 엄청난 수준의 기술로 만들어낸 완벽한 가상현실의 격투게임이라던데, 신기한 게 전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이 게임을 만든 회사가 오리무중이라는 사실이다.
 
 *
 
 워-그라운드의 컨트롤러라고 할 수 있는 VRS 헤드기어는 꽤 비싸다. 하나에 500만 원도 넘어가는 물건이니,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PC방에서 몇 대 구비했는데, 워-그라운드가 유명해지며 전문 게임방도 생겼다.
 그래도 좀 기다려야 한다.
 가격이 좀 비싼데,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온다. 기다리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게임방에 구비된 간식을 사먹는 사람도 많다.
 둘은 속도 풀 겸해서 라면을 얼큰하게 먹었다.
 조금 더 기다려서 자리가 났다.
 흔히 리클라이너라고 불리는 편안한 의자가 최고급 사양의 PC 앞에 놓여 있다.
 편안하게 앉은 후 머리에 헤드기어를 착용한다.
 헤드기어에 디스플레이와 스피커 등 게임에 필요한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었다.
 
 『생체정보를 입력합니다. 반갑습니다, 플레이어님! 워-그라운드에 처음 접속하시는군요?』
 
 뾰로롱!
 바로 앞에 나타난 것은 귀여운 2등신의 도깨비였다.
 
 『우선 정보부터 저장을 해볼까요? 워-그라운드에서 사용할 이름을 알려주세요.』
 
 흐음······.
 그냥 대충 불러줬다.
 
 “전직 사파지존!”
 
 강현호는 이렇게 말하면서 히죽 웃었다.
 
 이름: 전직 사파지존
 등급: 브론즈
 
 『워-그라운드는 승급전과 대전 모드, 캠페인 모드로 진행됩니다. 승급전으로 스킬을 획득하고 대전 모드로 등급을 올리시면서, 캠페인 모드를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운이 좋으시면······ 세계를 구하기 위한 위대한 여정에 참여하실 수도 있으실 겁니다. 그러면 튜토리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튜토리얼은 게임의 캐릭터를 현실의 육체처럼 움직이기 위해서 연습하는 거야. 목각인형하고 싸워서 이기거나 지면 끝이야.”
 
 바깥에서 컴퓨터의 화면을 보며 박현민이 이야기를 해줬다.
 
 “세계를 구하기 위한 위대한 여정이 뭐냐?”
 “그냥 하는 말이겠지. 뭘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냐? 나온다! 네 실력을 보여줘!”
 
 전형적인 게임의 공간이다. 그 앞에 목각인형이 하나 나타나서 복서 같은 자세를 잡았다.
 
 ‘하아······ 내가 이런 걸 꼭 해야 하나?’
 
 그는 캐릭터의 이름 그대로 전직이 사파지존이다. 내공만 없지 수많은 무공을 섭렵했다. 검술을 비롯한 권장각과 보법까지, 더욱이 복싱과 주짓수을 비롯한 종합격투기를 배웠고 대회까지 나갔던 사람이다.
 
 혈기류
 
 그가 익힌 혈운마공과 함께 가장 중요한 무공이다. 혈운마공의 내공으로 전신에 흐름을 만들어내 움직이는 법으로, 권장각에 보법까지 망라된! 혈운검법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엄청난 무공이었다.
 내공은 없지만 혈기류의 경험이 그의 격투에 큰 영향을 준다. 혈기류처럼 격투의 몸의 움직임에도 흐름이 있으니까.
 
 파앗!
 
 눈앞의 목각인형이 빠르게 달려와서 스트레이트를 날린다.
 강현호는 카운터로 훅을 날렸다.
 퍼억!
 퍼억!
 강현호는 뒤로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했고, 목각인형은 고개만 잠깐 뒤로 넘어갔다.
 진짜 경기였으면, 이 정도면 오히려 상대방이 다운이 되어야 한다.
 
 “허? 뭐야?”
 “게임이잖아, 인마! 집중해! 목각인형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게임 시작할 때 튜토리얼에서 목각인형 이긴 놈은 한 명도 없어. 나 지금 이거 녹화하고 있다. 너 영원히 박제할 거야.”
 “아니 내 눈 위에 뭐가 있는데?”
 “HP, MP잖아! HP 게이지 0이 되면 죽는 거다. 오른쪽이 네 HP고 왼쪽이 목각인형 HP야. 넌 지금 스킬 없으니까 목각인형이 스킬 사용하면 무조건 피해.”
 
 말하자마자 목각인형이 스킬을 사용했다.
 강현호는 뭔가 이상한 힘이 목각인형을 휘감는 것을 느꼈다. 사파지존으로 무림을 활보할 때의 경험이 그의 감각을 일깨운다.
 스트레이트였지만, 조금 전과 분명히 달랐다.
 스텝과 함께 목각인형의 주먹이 포탄처럼 날아온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탁!
 가볍게 손목을 쳐내면서 강현호는 안으로 파고들어 하체를 굳건하게 받쳤다. 그 후 어깨로 목각인형의 가슴팍을 세게 때렸다.
 
 퍼어억!
 
 『COUNTER』
 
 굉음과 함께 목각인형의 가슴이 부서졌다.
 
 “오, 역시 우리 현호! 실력이 어디 도망간 게 아니구나! 오, 죽인다, 죽여! 어서 끝내버려!”
 
 당연히 강현호는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목각인형을 따라가서 주먹을 속사포처럼 퍼부었다.
 
 ‘MP면 내공 비슷한 거 아닌가? 혹시 사용할 수 있나?’
 
 MP는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있는지 감각하고 인지해야 사용할 수 있다. 내공의 사용법도 우선 인지하는 것부터 시작하니까.
 다행이라면 전신에 자리를 잡고 있는 MP가 느껴졌다. 게임에서 아무리 감각이 좋아도 MP를 직접 느끼다니.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지만, 강현호는 이상함을 별로 느끼지는 못했다.
 
 ‘대단한데? 내가 다시 내공을 사용할 수 있다고?’
 
 뭔가······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 나왔다.

작가의 말

수라백입니다.

신작을 연재합니다.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댓글(20)

[플래터]    
잘 읽고 갑니다잉!
2019.12.23 18:28
수라백    
네에, 감사합니당^^
2019.12.24 11:11
7773    
잘 보고 갑니다
2019.12.24 13:10
수라백    
감사합니다^^
2019.12.24 14:26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19.12.25 17:11
수라백    
감사합니다^^
2019.12.25 19:39
1693373    
92% 가볍고→가볍게
2019.12.26 19:21
항마력3성    
호우
2020.01.08 12:41
OLDBOY    
잘 봤습니다.
2020.01.12 22:15
식인다람쥐    
도깨비ㄱㅇㅇ
2020.01.12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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