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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왔다 1-1권

2020.01.02 조회 3,986 추천 25


 # 최악의 결말
 
 2019년. 벚꽃이 지는 4월의 늦은 봄.
 
 나는, 지난 5년간의 기억이 비어 있다.
 
 ***
 
 “71년생 한준식 씨는 15년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어요.”
 
 진한 눈화장에 보라색 립스틱을 바른 여자가 사진을 한 장 내밀었다. 승용차 안에 새까맣게 탄 시신 두 구가 보인다.
 
 “75년생 송여진 씨는 16년도에 동네 호프집에서 일을 하던 중 양아치들에게 흉기에 찔려 사망하였습니다. 12방이요. 목에 4방, 가슴과 배에 8방.”
 
 이번에는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피범벅이 된 중년 여인의 사진이다.
 여자는 손수 자신의 목과 가슴을 가리키며 설명을 붙이고는 바로 사진을 옆으로 치웠다. 감정이라고는 단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고 철저히 일을 대하는 자세.
 
 “99년생 한지희 양은 그쯤에 실종되었다가 1년 만에 길거리에 버려진 채 발견되었어요. 당시에 질 내 감염, 마약 과다 복용이었고 지금은 식물인간 상태예요.”
 
 마지막은 해골이나 다름없이 비쩍 마른 여인이 발가벗겨진 채 도롯가에 널브러져 있는 사진이다.
 
 “현재는 대명병원에 입원 중이고요.”
 
 한지수는 마트 캐셔처럼 무미건조한 어투와 표정으로 말을 잇는 여자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3초간 마주 보다가 소파 등받이에 등을 붙이며 다리를 반대로 꼬았다.
 
 “고객님께서 사망 신고된 한지희 양의 친오빠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찾아가 봤자 입원비 폭탄으로 평생 빚만 갚다 죽을 겁니다.”
 
 “알아서··· 합니다.”
 
 한지수는 사진들을 꾸기듯이 거칠게 잡아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2019년 4월 29일. 잃어버린 5년의 기억과 함께 화목했던 나의 가족도, 사라져 버렸다.
 
 ***
 
 후미진 골목길의 싸구려 여인숙.
 
 한지수는 청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거울로 자신의 몸을 관찰했다.
 극한까지 단련되어 있는 세밀한 근육, 일일이 세기도 힘든 수많은 칼자국, 목 뒤에는 아직 아물지 않은 5센티가량의 상처가 새겨져 있다. 지수는 그곳의 피딱지를 매만지다가 재킷의 지퍼를 끌어 올렸다.
 
 ‘지금은, 지난 5년간 내가 뭘 했든 중요하지 않다.’
 
 ***
 
 ―사박사박
 
 검은 인영이 고양이처럼 은밀한 발걸음으로 병원 복도를 지나간다. 5년 만에 병신이 된 여동생을 찾아 숨어 들어가고 있는 한지수다.
 
 ‘천애 고아가 1인실이라···.’
 
 병실에 다다른 지수는 순간 얼음이 된 듯이 멈췄다.
 아무도 없어야 할 병실 불이 켜져 있고, 직사각형의 작은 창문 너머로는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이 보인 것이다.
 환자 침대 위에.
 
 ―끼익 끼익 끼익
 
 의사로 추정되는 그는 지수가 들어왔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행위’에 열중하고 있다.
 가까이서 눈을 감고 있는 여동생의 얼굴을 확인한 지수는 표정 변화 없이 의사에게 고개를 돌리고 바로 손을 뻗었다.
 
 ―콰직
 
 지수는 의사의 목덜미를 잡아 침대 밖으로 거칠게 끌어 돌바닥에 내팽개치고, 그의 가슴 위로 올라타 허여멀건 얼굴에 주먹을 거침없이 꽂았다.
 
 ―퍽 퍼억 퍽
 “커헉, 사, 살려 크읍!”
 
 의사는 하얀 공깃돌과 피를 내뿜으며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지수는 그 모습을 보곤 갑자기 주먹질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화장실로 가더니 변기 뚜껑을 집어 서슴없이 바닥에 내리쳤다.
 
 ―카앙!
 
 경쾌한 소리와 함께 변기 뚜껑이 산산조각이 났다. 지수는 그중에 가장 날카로운 것을 집어 밖으로 나갔다.
 없다.
 바닥에는 그가 줄줄이 흘린 핏자국만 남아 있다. 바로 복도로 나간 지수는 입을 부여잡고 도망치는 의사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겅비! 경, 겅비 불러! 미친 새끼야! 미킨!!”
 
 그의 어눌한 외침에 간호사 둘이 튀어나와 지수의 앞길을 막아섰다.
 지수는 그의 뒤를 쫓으며 자신을 향해 두 손을 뻗는 간호사의 손가락 두 개를 잡아채어 손등이 닿도록 꺾은 후에 어깨로 밀치고, 반대편에서 오는 간호사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짧게 끊어쳤다. ―우득 소리와 함께 그는 마취총에 맞은 것처럼 픽 쓰러졌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의사는 지수를 보고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벌벌댔다. 지수는 금수의 눈빛을 하고 돌조각을 앞세우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타다다다닥
 “빨리, 빨리, 빠 으아아악!!”
 
 그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미친 듯이 누르며 소리쳤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열리며 병원 소속 경비들이 튀어나왔다.
 
 “선생님 무슨···.”
 “빨리 저 새끼 잡아!!”
 “아! 잡아!!”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건장한 체격의 경비 네 명이 지수에게 달려들었다. 지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에게 마주 덤볐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엘리베이터 안으로 피신하는 의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건장한 남자들 네 명 대 한 명. 영화에서나 가능한 싸움이지 현실은 다수에게 압살당한다. 경비들도, 간호사들도, 의사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지수는 먼저 자신을 잡기 위해 한쪽 팔을 뻗은 경비의 손목을 잡아채 안쪽으로 당기며 겨드랑이를 수도로 찍고, 연이어 덤벼드는 다른 경비의 턱을 손바닥으로 올려 쳤다. 강제로 입이 닫히는 경비의 입에서 치아 조각이 튀고 동공이 반쯤 풀린 것이 보인다.
 
 지수는 다리가 풀려 무너져 내리는 그의 멱살을 잡아 또 다른 경비에게 밀어 버리고, 옆구리로 들어오는 마지막 경비의 팔을 꺾고 돌조각을 그의 경동맥을 향해 휘두르다가 순간 멈칫했다.
 세 명의 경비를 무력화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10초 이내, 지수의 몸놀림은 일반인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때, 지금 지수가 멈칫한 것은 알아챈 경비가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더, 덮쳐!!”
 
 경비들은 지수가 잠시 멍해 있는 사이 오른손에 들린 돌조각을 빼앗으며 온몸으로 덮었다. 이어서 주변에 있던 남자 간호사들도 달려와 제압을 도왔다.
 성인 남성 여섯 명의 완력은 지수가 혼자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크흐, 크흐, 크아악!”
 
 지수는 바닥에 얼굴을 바짝 붙인 채 짐승처럼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눈을 번뜩 떴다.
 
 “후··· 별게 다.”
 
 남자 의사, 여동생 위에 올라타 있던 그놈은 피가 흐르는 입을 거즈로 틀어막고 지수를 벌레 보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
 
 신흥경찰서 강력계.
 
 “그럼, 확실하게 좀 처리 부탁합니다.”
 “아, 예예. 선생님, 걱정하지 마시고 편히 쉬십시오.”
 
 남자 의사가 검은 양복에 비싼 넥타이를 갖춰 입은 사내 둘을 대동하고 형사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형사는 그 앞에서 연신 굽신거렸다.
 외과 전문의이자 대명병원 병원장의 아들, 그의 사회적 권위는 신원 조회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수상한 부랑자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의사가 데리고 온 변호사들로 인해 지수는 경찰서에 잡혀 온 지 30분 만에 식물인간 여환자를 강간하고, 정의로운 의사에게 들켜 그를 폭행하고 날카로운 흉기로 살인까지 하려다가 경비들에 의해 제압당한 미친놈이 되었다.
 
 “이두회, 이두회···.”
 
 한지수는 철창 너머 남자 의사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그의 이름을 되새겼다. 그때 그가 갑자기 잊었던 것이 떠올랐다는 듯이 검지를 들어 흔들며 뒤돌아섰다.
 그는 지수가 있는 철창으로 느릿하게 걸어와 얼굴을 마주하고는 씨익 미소를 보였다. 위아래로 부러진 네 개의 이빨이 유독 눈에 띈다.
 
 “내가 좀 알아봤지, 네가 그년하고 남매 사이라고? 화날 만했네, 인정.”
 
 그는 위험한 비밀을 공유하려는 듯이 더욱 얼굴을 가까이 하며 한 손으로 입 모양을 가리기까지 했다.
 이제 철창 사이로 지수와 이두회의 거리는 한 뼘.
 
 “근데 그거 아나? 니 여동생 아까 뇌사 판정받고 화장 들어갔어, 아마 지금쯤 불타서 뼛가루밖에 안 남았을 거야, 바로 너 때문에, 하··· 그 특유의 무표정이 참 쌔끈했는데··· 아쉽···.”
 
 이두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악귀의 눈빛으로 변한 지수가 쇠창살 사이로 두 팔을 뻗었다.
 그의 괴력에 팔뚝의 살가죽이 밀려나 찢기고 쇠창살이 미세하게 벌어지는 것이 보인다.
 
 ―드득 으드득
 지수의 손아귀에는 다행히 이두회의 모가지가 잡혀 있었다.
 
 “으, 으아아악!!”
 
 지수의 이마와 팔뚝에서 힘줄이 불끈 튀어나왔다. 이두회는 눈알이 뒤집혀 흰자를 보이며 코와 입에서는 투명한 액체를 뿜어 댔다.
 그 돌발 상황을 본 형사들이 기겁하며 동시에 그들에게 달려들었다.
 
 “야야 잡아 잡아!!”
 “말려!”
 “저러다 죽어!”
 
 형사들이 우르르 달라붙어 지수의 팔을 붙잡고 두회의 몸을 잡아떼어 내려고 했다. 하지만 실핏줄까지 터진 채로 악착같이 붙들고 있는 지수의 손은 좀처럼 떼어지지 않았다.
 
 “아아아악!!”
 ―우드득
 
 지수의 날카로운 절규와 함께 그의 목이 닭 모가지처럼 힘없이 꺾였다. 입에서는 피거품이 흐르고 두 팔은 축 처졌다. 동시에 철창 안에 들어온 형사가 지수에게 테이저건을 발사했다.
 
 ―텅!
 “끄으···.”
 
 그 찌릿한 충격에 지수는 다리가 풀려 가는 중에도 그의 목을 놓지 않았다. 붉은 핏물이 눈 앞을 가리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터엉
 
 두 번째 발포와 함께 지수의 눈이 완전히 감겼다. 그의 마지막 시선은 여전히 이두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 삼키다
 
 ―끔뻑끔뻑
 
 눈을 떠 보니 낯선 천장이 보인다. 지수는 그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올렸다. 손목을 옥죄고 있는 싸늘한 수갑이 현실을 일깨워 준다.
 그렇게 5분여간 가만히 있던 지수는 몸을 일으켜 철창 너머 경찰관에게 다가갔다.
 
 “화장실을 가고 싶습니다.”
 “아··· 한지수 씨 일어났군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경찰관은 서류를 한번 훑어보고는 한 명을 더 데리고 와서야 유치장 문을 열어 주었다.
 화장실에 도착한 지수는 대변 칸을 한 번 보았다가 경찰관에게 고개를 돌리며 수갑이 채워진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닦아 주시나요?”
 “하하, 이 청년이 농담도.”
 
 경찰관은 옆에 동료의 허리춤에 있는 테이저건에 잠시 시선을 주고는 열쇠로 지수의 수갑을 풀어 주었다.
 
 그와 동시에 지수의 손이 올라갔다.
 그는 손바닥으로 수갑을 풀어 준 경찰관의 턱을 올려 치고, 옆에서 다급히 테이저건을 들어 올리는 경찰관의 목 뒤를 잡아 대변 칸 문에 얼굴을 냅다 꽂았다.
 
 ―쿠웅!
 
 금세 두 경찰관이 눈을 까뒤집으며 기절했다. 지수는 경찰관 한 명의 모자와 셔츠를 벗겨서 겹쳐 입고는 화장실을 나섰다.
 그의 눈에는 싸늘한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
 
 충청남도에서 가장 권위가 높은 대명병원.
 
 지수는 먼저 여동생이 있던 병실을 찾아갔으나 이미 공실이 되어 있었다. 지하에 있는 병원 화장터에도 동생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원무과 앞에서 초등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를 붙잡았다. 그리고 허리를 굽히며 노란 지폐를 한 장 건넸다.
 
 “저기 가서 한지희라는 환자가 어디 있는지 물어봐 줄래?”
 
 아이는 노란 지폐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고개를 끄덕이고는 번호표도 뽑지 않고 원무과로 쪼르르 달려갔다. 금세 다시 온 아이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제 화장했대요. 유골함은 저쪽 납골당에 배치되어 있을 거라는데요.”
 “···그래.”
 
 지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돌아서 한 발을 떼다가 휘청거렸다. 그러자 초등생이 다가와 그의 팔을 붙잡으며 물었다.
 
 “아저씨 어디 아파요?”
 “아니, 아니··· 고맙다.”
 
 지수는 초점이 흐릿한 눈으로 아이의 머리 위에 손을 한 번 툭 얹고는 걸음을 다시 떼었다.
 
 [99년생 故 한지희]
 
 동생의 이름이 새겨질 유골함은 납골당의 가장 후미진 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지수는 ‘한지희’라는 글자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가 유골함에 손을 뻗으려는 그때,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타닥 타다다닥
 
 덩치 큰 사내 대여섯 명이 달려 들어와 한곳에 모이는 것이 보인다. 그중 한 명은 지수가 테이저건을 맞을 당시에 보았던 형사였다.
 
 “너, 너 이두회 선생님 입원실로, 너랑 너는 흩어져서 찾아다니고 신입은 나 따라와.”
 “넵.”
 “예 알겠습니다.”
 
 ―꽈득
 
 지수는 유골함에 채 닿지 못한 손을 동그랗게 말아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는지 피가 주륵 새어 나왔다.
 그는 여동생의 유골함 앞에서 모자를 깊이 눌러쓰며 뒷걸음질 쳤다.
 
 ***
 
 병원 건물이 아득히 멀리 보이는 골목길.
 지수는 그 좁은 길에 주저앉아 여동생이 잠들어 있는 병원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그의 눈동자는 회색처럼 느껴졌다. 팔도, 다리도, 목에도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는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그곳에 그대로 있을 것만 같았다.
 
 “뭐야 이 그지는.”
 
 그때, 입에 담배를 문 사내 둘이 건들거리며 지수에게 다가왔다. 인상이나 행동, 평일 낮에 이곳에 있는 것으로 종합해 보면 동네 양아치들로 추측된다.
 
 “어이 꼬맹이, 여기서 길 막고 뭐 해?”
 
 사내 하나가 지수의 몸을 발로 툭툭 건드렸다.
 
 “새끼야 형이 묻잖···.”
 
 지수는 사내의 말이 끝나기 전에 그의 발을 두 손으로 잡아 발목을 홱 돌렸다.
 
 ―우드득
 “끄어악!”
 
 사내의 발목은 180도 돌아가 뒤꿈치가 앞으로 향하게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지수는 망설임 없이 그 옆에 주먹을 쥐는 사내의 얼굴을 잡아 벽에 꽂았다.
 
 ―콰앙!
 
 뒤통수가 콘크리트 벽에 박힌 사내는 눈을 까뒤집으며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로 인해 벽에는 붉은 줄이 굵게 그어졌다.
 지수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들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발을 떼었다.
 
 그는 걸음을 옮기며 자신의 두 손을 들어 살폈다.
 
 전투 모드가 따로 켜지는 것처럼 줄곧 싸울 때마다 슬로비디오처럼 세상이 느리게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이 동체 시력은 반복 훈련으로 얻을 수 있는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다. 실제로 전투에서 확실한 결과로 보여 주니 착각으로 치부할 수 없다.
 잃어버린 5년이 자신을 일반인에서 전투 머신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차라리··· 잘됐어.’
 
 ***
 
 흐릿한 달빛마저도 먹구름에 가려진 짙은 밤.
 도시 외곽에 넝쿨이 담벼락을 뒤덮고 있는 허름한 집이 보인다. 귀신이 나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오래된 폐가다.
 
 ‘작년에 경매로 넘어갔는데 소문이 워낙 흉흉해서 안 팔리니까 대명병원이 최저 입찰로 샀어요. 재개발하기도 애매한 곳이라 아무도 안 산 거죠. 지금은 그냥 빈집이에요.’
 
 한지수는 흥신소 여인의 말을 떠올리며 대문을 열었다. 마당에 키가 허리까지 자란 수풀이 가득하다.
 
 그때, 눈앞에서 수풀이 사그라들고 푸르른 잔디로 변했다.
 그 앞에서 두 꼬맹이가 신나게 뛰노는 것이 보인다.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두 중년인 남녀가 그것을 보며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그곳은 공기마저도 포근하다.
 
 “아···.”
 
 그러나 이내 사막에 신기루처럼 그 그림 같은 영상이 흩어지며 다시금 키 큰 수풀과 어둠이 찾아왔다. 현실이다.
 
 ―턱
 
 지수는 한 걸음도 채 옮기지 못하고 두 무릎을 꿇었다. 눈동자에 얇게 수막이 생기며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는 다급히 눈을 질끈 감고는 주먹을 꾹 쥐었다.
 
 ‘다, 다 끝내고.’
 
 그는 눈가를 거칠게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탈칵
 
 화분 밑을 들어 보니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열쇠가 있다. 거실로 통하는 커다란 창문이 깨져서 의미는 없지만,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현관문을 따고 들어갔다.
 5년 만에 집으로 들어선 지수는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거실 중앙에 네모난 페인트통이 있고 그 주변에는 신문지가 널려 있으며, 통 안에는 침과 꽁초가 가득하다. 화장실 변기에는 오물이 넘쳐 있고 집기는 모두 어질러져 있다.
 
 ―끼익
 
 그는 자신의 방이었던 작은 방을 열어 보았다. 누가 뒤적거린 흔적은 있지만 대부분 그대로다. 시기상 자신의 사망 신고 후 1년이 넘게 그대로 둔 것이다.
 
 남편과 아들, 아버지와 친오빠를 한 번에 잃은 가족의 마음은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으리라.
 
 지수는 깊게 눈을 감았다가 뜨고는 침대 위에 깔린 요를 탁탁 털어서 다시 깔고, 굴러다니는 달력을 뒤집어 새하얀 면을 책상 위에 놓고 매직을 들었다.
 
 1. 어머니: 김태현, 남인수
 2. 여동생: 납치범(?), 이두회 (대명병원 원장 아들)
 3. 아버지: ?
 4. 나: ?
 
 그는 자신이 적은 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장판을 들어내 그것을 넣고는 걸음을 옮겼다.
 
 ***
 
 화려한 네온사인이 거리를 무지갯빛으로 만든다. 번화가 중심의 나이트클럽 앞에는 젊은 남녀가 길게 줄을 서서 서로를 탐색하고 있다.
 
 그곳에서 한 쌍의 남녀가 흐느적거리며 걸어 나온다. 남자는 여자의 허리를 부서질 듯이 감싼 채 걷다가 갑자기 멈춰 서곤, 검지를 들어 여자에게 까딱거리며 말했다.
 
 “아 잠깐 잠깐, 오빠 물, 물 좀 빼고.”
 
 남자는 비틀거리며 건물 옆길에 으슥한 곳으로 들어갔다. 남자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여자는 갑자기 눈을 말똥말똥 뜨며 화장을 체크했다.
 
 “흐응 흥흥 난 이제 지쳤어요 땡뻘 땡뻘.”
 
 ―툭툭
 
 남자가 볼일을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던 그때, 어둠 사이로 손이 나와 남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남자는 시선을 아래에 고정한 채 으쓱거리며 대답했다.
 
 “아아 그새를 못 참고 온 거야? 오빠가···.”
 
 그때, 저음의 목소리가 남자의 말을 끊었다.
 
 “김태현.”
 “누, 누구.”
 ―빠직
 
 김태현은 고개를 반쯤 돌린 채 그대로 벽에 얼굴을 박았다. 지퍼도 아직 올리지 못한 상태다.
 목소리의 주인공, 한지수는 김태현의 팔을 잡아 돌리며 발목을 차올렸다. 태현은 공중에서 휙 돌고는 돌바닥에 엎어졌다.
 
 ―쿵!
 “쿠흡!”
 
 지수는 바닥에 엎어진 태현의 등과 팔꿈치를 무릎으로 짓누르고 그의 손목을 잡았다.
 
 “2016년 6월 17일.”
 
 지수는 말을 이으며 그의 손목을 위로 쭉 들어 올렸다.
 
 ―우드득
 “목에 4방, 배와 가슴에 8방의 칼을 맞고 죽은 40대 여인.”
 “끄아아읍!”
 
 지수는 비명을 내지르는 태현의 뒤통수를 눌러 그의 소변이 묻은 바닥에 입을 밀착시키고는 얼굴을 가까이 하며 말했다.
 
 “생각나지?”
 
 한지수의 어머니를 칼로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한 양아치는 두 명이다.
 한 명은 아직 감방에 있는 남인수, 한 명은 복역을 마치고 나온 지 1년이 지난 김태현이다.
 
 ***
 
 “새, 생각나요. 생각납니다!”
 
 김태현은 신음을 삼키며 필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한지수는 그의 남은 팔을 붙잡으며 물었다.
 
 “누가 시켰어.”
 “네?! 아무도 안···.”
 
 지수는 그의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팔을 꺾었다.
 
 ―으득
 “끄아아악!! 오 사장! 오 사장입니다!”
 “오 사장?”
 “야, 약장수입니다. 발 뺄까 봐 녹음해 뒀습니다!”
 
 그 말에 지수가 압박을 풀자 태현은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왼손으로 휴대폰을 꺼내어 녹음 파일을 들려주었다.
 
 ―···이 아줌마를 왜요?
 ―알려 줘야 되나? 잔말 말고 처리나 확실히 해.
 ―알겠어요. 사진 찍어 보내면 바로 송금해 주시는 거죠?
 ―못 하겠으면 말해, 할 놈들은 넘쳐.
 ―아아 아닙니다. 해요. 합니다.
 
 녹음 파일을 듣는 동안 지수의 눈동자는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의 눈치를 살피던 태현은 다른 파일을 또 틀어 주었다. 이번에는 전화 통화였다.
 
 ―자수하면 3장 더 준다.
 ―3장이요? 몇 년 살다 나올지도 모르는데···.
 ―그냥 잡혀 들어갈래, 돈 받고 자수할래?
 ―아니 무슨··· 오 사장님, 이건 너무 하시는···.
 
 녹음 내용은 태현이 결국 오 사장이라는 사람의 반협박에 넘어가 자수를 수락하는 내용이었다.
 눈을 감고 가만히 듣고 있던 지수는 녹음 파일이 종료되자 다시 입을 열었다.
 
 “오 사장은 어디 있지.”
 
 그의 눈빛은 날이 선 칼날처럼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
 
 인적이 드문 다리 밑, 검은색 승용차 하나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차량 진행 방향에는 두 명의 사내가 서 있다.
 
 “어어어!”
 ―끼이익
 
 김태현이 지레 겁을 먹고 뒷걸음질을 칠 때 차량이 급정거하며 바로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문이 거칠게 열리며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이 김태현, 내가 연락하지 말라고 안 했냐?”
 “오, 오 사장님···.”
 
 오 사장은 성큼성큼 다가오며 태현을 향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때, 옆에 있던 한지수가 그의 겨드랑이 아래로 손을 넣어 목을 틀어쥐며 발목을 걸어 올렸다.
 
 ―콰앙!
 
 순식간에 자신의 차 보닛에 엎어진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수를 보았다가 태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김태현 너 이··· 큽!”
 
 지수는 그의 목젖을 틀어쥐고는 얼굴을 가까이 했다.
 
 “왜 죽였지?”
 
 지수의 물음에 그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눈을 마주했다. 영문을 모르는 눈빛이다. 지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어머니를.”
 
 지수의 말에 오 사장은 물론 그 뒤에 있던 김태현의 눈도 번쩍 뜨였다. 오 사장은 지수의 눈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술을 떼었다.
 
 “나도··· 시킨 대로 말벌을 찾은 것뿐이야, 목숨만 보장해 주면··· 다 말하겠다.”
 
 말벌은 칼침을 놓고 버려지는 존재를 지칭한다.
 
 오 사장은 말을 끝내고 다시 지수의 눈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마치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의 모습과도 같았다.
 지수는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뜨고는 입을 열었다.
 
 “들어 보지.”
 
 ***
 
 ―브르릉
 
 검은색 승용차가 사라진 자리, 두 명의 사내가 벽에 기대어 앉아 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안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물자, 옆에 두 팔을 붕대로 칭칭 감은 사내가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오 사장님···.”
 
 오 사장은 불을 붙이며 무심하게 대답했다.
 
 “됐다. 나도 똑같은 놈이지.”
 “···그런데 저놈이 찾아가면 사장님도 위험해지는 거 아닙니까?”
 
 오 사장은 태현에게 시선을 돌리며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지금이 더 위험했다. 이제 살길 찾아야지.”
 
 그는 휴대폰을 꺼내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야.
 “형님, 죄송합니다. 또라이 한 놈이 형님 찾아갈 겁니다.”
 ―한 놈? 크큭, 농담하나?
 “조심하십시오. 사람 한두 명 죽여 본 눈이 아닙니다.”
 ―아 그래? 재밌네, 알았다. 일 끝나고 보자.
 “예 형님,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오 사장은 전화를 끊고는 조용히 강물만 바라보았다.
 
 ***
 
 기차역 뒤 은밀한 길거리, 분홍빛 조명 아래에 젊은 여인들이 속살이 비치는 옷을 입고 유혹의 손짓을 한다.
 
 ―저벅 저벅 저벅
 
 그 욕정이 일렁이는 거리에 유독 튀는 기운의 남자가 나타났다. 검은 장갑에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여인들을 훑어보며 무섭게 걸음을 옮겼다.
 
 “오빠, 이리와. 나 좀 안아 줘.”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 짙은 다크서클에 흐느적거리는 몸짓, 한지수는 자신에게 말을 건 여인에게 곧바로 발끝을 돌렸다.
 여인은 활짝 웃으며 자연스럽게 지수의 손을 붙잡고 안으로 안내했다.
 
 건물로 들어가니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좁은 복도가 나왔다. 양쪽 벽은 굵지 않은 판자로 이루어져 있었다.
 
 “혼자 온 거야? 오빠 잘생겼··· 아얏!”
 
 지수는 그녀의 손목을 쳐 내고는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거닐었다. 복도 끝에는 의자에 앉아서 휴대폰을 매만지는 사내가 있었다. 그는 지수를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했다.
 
 “아저씨, 여기 들어오면 안···.”
 ―퍽
 
 지수는 주먹으로 그의 턱을 짧게 끊어 쳤다. 무방비 상태로 턱을 가격당한 사내는 흰자를 보이며 픽 쓰러졌다.
 지수는 양쪽을 둘러보고는 왼쪽 끝에 철문이 굳게 닫혀 있는 곳으로 발을 옮기며 오 사장이 했던 말을 상기했다.
 
 ‘뭐··· 예상했겠지만 단순한 일은 아니야, 당신 어머니가 걸림돌이라고 했어, 나 같은 조무래기는 모르지만··· 역 뒤 창녀촌에 김길현이라는 포주를 찾아가 봐, 그 형님이 내 윗대가리야, 나한테 말벌 찾으라고 시킨 사람이라고.’
 
 ―끼익
 
 걸음을 옮기는 중에 철문이 열리며 덩치 큰 사내 둘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빛과 기세가 방금 의자에 앉아 있던 사내와는 사뭇 달랐다.
 앞에 선 사내가 손목을 풀며 말했다.
 
 “이놈인가? 그 또라이가.”
 “그런가 보네.”
 
 지수는 자신의 두 배는 될 법한 덩치들의 등장에도 걸음에 망설임이 없었다. 그가 거의 다 다다랐을 때 덩치 한 명이 솥뚜껑 같은 손을 휘둘렀다.
 
 그 순간, 지수의 세상이 느려졌다.
 
 지수는 반 박자 빠르게 안쪽으로 파고들어 덩치의 겨드랑이를 가격하고, 등과 머리를 잡아 옆 벽으로 밀쳤다. 덩치의 머리가 허술한 판자벽을 뚫고 들어가 뾰족한 부분이 그의 목과 얼굴을 찔렀다.
 지수는 연이어서 주먹을 뻗는 다른 덩치의 손목을 잡아 끌어당기며 얼굴에 정권을 찔렀다. 덩치는 코뼈가 안쪽으로 파고들어 가며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끄읍!”
 “크헉!”
 
 지수는 삽시간에 바닥에 쓰러트린 덩치들의 등을 밟고 넘어가 철문을 열었다.
 방음에 신경을 썼는지 꽤 두꺼운 문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난생 맡아 보지 못한 퀴퀴한 냄새가 지수의 코끝을 찔렀다.
 
 안쪽과는 다른 분위기의 복도, 양쪽으로 십여 개의 방문이 나 있고 대부분 그 안에서 미세한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음···.”
 
 살짝 열려 있는 문틈 사이로 발가벗고 있는 여인이 보인다. 그녀는 마치 중세 시대처럼 목에 쇠로 된 족쇄를 걸고 초점 없는 눈으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당시에 질 내 감염, 마약 과다 복용이었고···.’
 
 지수는 주먹을 강하게 말아 쥐며 정면의 가장 끝 방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콰앙!
 
 거칠게 문을 열자 소파에 다리를 쩍 벌리고 앉아 있는 사내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박고 있는 여인이 보였다.
 사내, 김길현은 고개를 들어 지수와 눈을 마주하며 엄지손가락처럼 두꺼운 담배를 뻐끔대며 말했다.
 
 “어, 왔냐.”
 
 지수는 서슴없이 그를 향해 무섭게 걸어갔다. 그때, 사방에서 네 명의 사내가 서슬 푸른 칼을 꺼내며 다가왔다.
 건장한 사내가 칼날 길이만 30센티가 넘는 사시미칼을 눈앞에 들이대면 몸이 먼저 얼어붙는다. 상대가 거침없는 사람이라면 도망칠 생각을 하기 전에 이미 찔린 상태일 것이다. 무기가 가진 힘은 일반인들에게 그렇게 크다.
 그러나, 지수는 처음 겪는데도 이상하리만치 동요가 없었다. 칼이라는 흉기에 잠시 멈칫했으나 그뿐이다.
 하지만 그 틈을 두려움으로 해석한 김길현은 손가락을 앞으로 까딱거리며 명령했다.
 
 “잘 다져 줘, 죽여도 돼.”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네 명의 사내가 무섭게 들어왔다. 사람을 향해 칼날을 뻗는 데 망설임이 없다. 처음이 아니라는 뜻이다.
 
 ―훅 훅
 
 칼날이 바람을 가르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지수는 칼을 피해 뒷걸음을 치며 겉옷을 벗어 오른손에 들었다.
 그러고는 몸을 옆으로 틀어 칼날을 피하고 옷으로 칼날을 감싸고 사내의 팔꿈치를 위로 올려 쳤다. ―우득 소리와 함께 사내의 팔이 위로 꺾이며 칼이 떨어졌다.
 그사이 또 하나의 칼날이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왔다. 지수는 팔이 꺾인 사내의 멱살을 잡아당겨 방어막으로 쓰며 바닥에 떨어진 칼을 잽싸게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어찔하며 지수의 머릿속에 흐릿한 사진 몇 장이 스쳐 지나갔다. 수많은 칼, 송곳, 망치 등 흉기로 쓰일 수 있는 물건들이다.
 
 찰나지만 그사이 목숨이 오갈 수 있는 상황,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목을 노리고 오는 칼날이 바로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다급히 고개를 기울이며 몸을 틀었으나 목젖을 살짝 스쳤고, 배에서는 불에 댄 것처럼 화끈한 통증이 몰려왔다.
 지수는 자신의 목젖을 스친 칼날을 쥔 손목을 잡아채 안쪽으로 끌며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본래 있던 자리에 금세 두 개의 칼이 무섭게 들어왔다.
 지수는 딸려 온 사내의 손목을 칼로 그어 버리고 뒤돌아 세워 목에 칼을 들이대며 상황을 살폈다. 목의 상처는 얕으나 배에는 아직도 뜨거운 것이 느껴진다. 팔이 꺾인 사내는 뒤로 빠졌고 멀쩡한 두 명이 몸을 낮추며 신중하게 다가온다.
 ―푹
 지수는 그들을 건조한 눈을 바라보다가 서슴없이 잡은 사내의 목에 칼을 깔끔하게 쑤셔 넣었다가 빼고는 옆으로 치웠다. 남은 두 사내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로 덤벼들었다.
 지수는 먼저 뻗어 오는 칼을 향해 마주 칼을 뻗으며 중간에 교묘하게 틀어 칼날을 튕겨 내며 사내의 손을 베었다. 서로의 힘이 만나는 지점에 칼날과 손이 부딪쳐 그의 손가락 네 개가 우수수 잘려 나가는 것이 보인다.
 지수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대로 밀고 들어가 그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었다.
 
 ―푸욱
 “끄으으···.”
 
 칼을 뽑자 그의 가슴에서 붉은 핏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지수는 얼굴에 튀는 그것을 눈도 감지 않고 맞으며 휘둘러 오는 칼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일본도처럼 리치가 길지 않으면 찌르는 것이 훨씬 더 위협적이다. 이 짧은 칼로 지금처럼 휘두르는 것은 기껏해야 생채기만 낼 뿐이다.
 지수는 집중하여 엄지와 검지로 그의 칼날을 잡아냈다. 힘에 밀려 칼날이 손바닥까지 닿았으나 장갑을 찢고 상처를 주지는 못했다. 그 믿지 못할 상황에 처음으로 당황하는 눈빛을 보이는 사내의 턱밑으로 지수의 칼이 박혔다.
 ―푹
 칼끝이 턱을 뚫고 오른쪽 광대 쪽으로 툭 튀어나왔다. 지수는 칼을 뽑고 허공에 한 번 휘둘러 피를 털어 내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지수가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오니 김길현이 담배를 껌처럼 씹어 대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왼손에는 겁에 질린 여인의 머리채가 잡혀 있었다.
 
 “너, 누가 보낸 거냐.”
 ―서걱
 
 대답 대신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 길현은 낯선 감각이 느껴지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손목이 깔끔하게 잘려 나가 피를 울컥울컥 쏟아 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길현은 여인의 머리칼을 움켜쥔 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왼손을 보고는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다.
 
 지수는 고통과 절망에 빠진 그의 표정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얼굴을 가까이 했다. 피를 뒤집어쓴 채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은 마치 악귀와도 같았다.
 
 그는 번뜩거리는 눈으로 길현을 노려보며 느릿하게 입술을 떼었다.
 
 “송여진이 보냈다.”
 
 ***
 
 김길현은 아직도 피를 울컥울컥 뿜어내고 있는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송여진, 송여진··· 아, 그 고딩 엄마.”
 “···!”
 “큭, 맞네, 아··· 어쩐지 찝찝하더라니, 그 일로 내 사업이 접힐 줄이야.”
 
 길현은 남은 한 손으로 굵은 담배를 다시 집어 물었다.
 
 “너도 안타깝네, 재주는 있다만 대상을 잘못 골랐어.”
 “···계속해.”
 “그래, 김인촌, 그 아줌마 죽이고 딸을 납치한 자다. 네놈이 어떻게 뒈질지 보고 싶지만··· 내가 그때까지 살아 있진 못하겠지?”
 “맞아.”
 
 지수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시미칼을 그의 목에 깊게 쑤셔 넣었다. 서서히 죽어 가는 그를 바라보는 지수의 눈빛은 복잡미묘했다.
 
 ***
 
 어둠이 짙게 드리워진 새벽, 검은 모자를 눌러쓴 한지수가 약국에서 나왔다. 오른손에 든 봉지에는 소독약, 포비든, 붕대 따위가 들어 있다.
 그는 배를 부여잡고 빠른 걸음으로 검은 차에 몸을 실었다.
 
 ―끼이익
 
 검은 차는 지수의 집 앞에서 거칠게 멈춰 섰다. 긴장이 풀리니 배에 난 상처의 통증이 심해진다.
 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데 안에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지수는 잠시 멈칫했다가 다시금 발을 옮겨 안으로 들어섰다.
 
 ―타닥 타다닥
 
 거실 가운데에 있는 페인트통에 불이 붙어 있고, 그 주변으로 많아야 고1쯤 되어 보이는 앳된 학생 네다섯 명이 둘러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다.
 신나게 떠들던 그들은 지수의 등장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뭐야, 저 아저씨는.”
 “뭐지?”
 
 지수는 그들의 얼굴을 살짝 둘러보고는 말없이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방 안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읍, 제발!”
 “아 이 썅년이 진짜··· 어?”
 
 방문을 여니 지수의 침대에 교복을 입은 두 남녀가 누워 있는 것이 보였다. 여학생은 셔츠가 반쯤 뜯어져 있고 눈물범벅이다. 남학생은 멍청한 표정으로 지수를 바라보았다.
 지수는 개의치 않고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약국 봉지를 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
 
 지수의 말에 남학생이 이내 인상을 확 찌푸리며 밖을 향해 소리쳤다.
 
 “이 씨발··· 야! 이 아저씨 뭐야? 얼른 치워!”
 
 그의 말에 다른 학생들이 방 안으로 들어오며 욕을 지껄였다.
 
 “아저씨, 아저씨 얼른 나가, 쥐어 터지기 전에.”
 “아저씨 노숙자야? 잘 데 없어? 근데 미안해서 어째, 여긴 우리 집이야, 딴 데로 꺼져.”
 
 그들의 말에도 아무 반응이 없자 여학생을 덮치고 있던 남학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주둥이만 턴다고 말을 듣냐? 아저씨, 일단 맞···.”
 
 지수의 어깨에 남학생의 손이 닿기 직전, 지수는 그의 손을 먼저 잡아채 당기고, 몸이 딸려 오자 목을 잡아 책상에 얼굴을 꽂았다.
 
 ―콰직!
 “뭐야 씨!”
 “이런 씨팔!”
 
 그 모습에 다른 학생들이 욕을 내뱉으며 지수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지수는 한 손으로 그의 발등을 잡아채 획 돌리고, 주먹을 뻗는 학생에게는 마주 주먹을 뻗어 부딪쳤다.
 
 ―쾅!
 
 한 명은 발목이 돌아가며 문지방에 얼굴을 부딪쳐 쓰러져 있고, 또 한 명은 주먹을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수는 뒷걸음질 치는 학생에게 손가락을 뻗어 까딱까딱했다. 그러자 그가 쏜살같이 달려와 지수 앞에 두 무릎을 꿇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형님! 살려만 주십시오!”
 
 지수는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옷을 올려 상처에 소독약을 뿌렸다. 그 모습에 남학생은 더욱 기겁하며 턱을 덜덜 떨었다.
 
 “데리고 나가.”
 “예, 옙 알겠습니다.”
 
 그는 책상에 코를 박고 기절해 있는 남학생을 끌고 밖으로 빠르게 나갔다. 주먹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던 남학생도 발목이 돌아간 학생을 데리고 그곳을 나섰다.
 시끄러웠던 집 안에 다시금 적막이 찾아왔다. 그때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흐윽, 흡···.”
 
 마지막 남은 여학생이 흐느끼는 소리다. 지수는 배에 붕대를 감으며 입을 열었다.
 
 “넌 왜 안 나가지?”
 “저는, 전 갈 곳이 없어요···.”
 
 지수는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그녀의 눈을 쳐다보았다.
 
 “내가, 그들보다 안전해 보이나?”
 
 지수의 물음에 그녀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다가 옷깃을 여미고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무겁게 발을 한 걸음 한 걸음 떼며 느리게 밖으로 나갔다.
 
 “후우···.”
 
 지수는 그제야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침대에 몸을 누였다.
 등에 무언가 배겨 더듬거려 보니 ‘진세연’이라고 적힌 이름표가 있었다. 지수는 그것을 잠시 바라보다가 거실에 있는 페인트통에 던져 버렸다.
 
 한지수는 침대에 다시 누워 자신의 방 천장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
 
 다음 날 아침.
 지수는 일어나자마자 먼저 배에 잡지를 두르고 청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인촌파, 충남에 뿌리가 깊은 조직으로 포주이자 청부업자인 김길현의 본거지보다 몇 배는 더 살벌한 곳이다. 지수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곳이기에 이름만 듣고 김길현의 목숨을 취한 것이다.
 
 ―지이익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리고 차 키를 챙겨 집을 나서다가 멈칫했다. 깨진 거실 유리창에 등을 기대고 무릎을 모으고 고개를 박고 있는 여학생이 보인다. 이곳에서 밤을 지새운 모양이다.
 지수는 그녀에게 금세 시선을 떼고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이제 못 올 곳이다.’
 
 지수는 차에 타기 전에 뒤돌아서 집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거두었다.
 
 ***
 
 ―지이잉
 
 폭이 넓은 도로의 사거리, 검은색 세단이 신호등에 걸려 천천히 멈춰 섰다.
 그 안에는 앞 좌석에 검은 양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 둘, 뒤에는 흰 셔츠에 흰머리가 눈에 띄는 중년인 한 명이 타고 있다.
 그는 충남을 주름잡는 거대조직 인촌파의 두목 김인촌이다.
 
 조수석에 앉은 사내가 전화를 끊으며 김인촌에게 고개를 돌렸다.
 
 “회장님, 어제 김길현이 급습을 당했답니다. 김길현 포함해서 청부받는 애들은 싹 다 정리되었답니다.”
 
 그의 말에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던 인촌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누가.”
 “어디 애인지 확인이 안 된답니다. 그런데 한 명이라고 합니다.”
 “한 명?”
 “예, 거기 애들 대부분 약 빤 애들이라서 신뢰는 가지 않지만···.”
 “중근아, 너 혼자 길현이 애들 다 제낄 수 있겠냐?”
 
 중근이라고 불린 사내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느리게 저었다. 그때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어 차가 움직였다.
 
 “맨손이라면 몰라도··· 칼잡이들이라 힘들 것 같습니다.”
 
 인촌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 명이라···.”
 
 그때, 검은 차가 무섭게 돌진해 와 그들이 탄 차의 옆쪽을 강하게 들이박았다.
 
 ―콰아앙!!
 
 조수석의 중근은 물론 김인촌도 머리로 차 옆 유리를 깨고 반대쪽으로 쓰러졌다. 차는 옆으로 5미터 가까이 밀려나 멈추었다.
 
 ―탁
 
 앞이 상당히 찌그러진 차에서 검은 모자를 쓴 한지수가 내렸다. 김인촌의 차는 옆으로 깊이 찌그러지고 트렁크도 열려 있었다.
 뒷좌석을 향해 걸어가던 지수는 무심코 트렁크를 지나치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러고는 다시 트렁크로 가까이 다가갔다.
 
 손발이 묶여 있는 중년 남성이 트렁크에 실려 있다.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에다가 입에는 방금 쏟아 낸 것으로 추정되는 피를 한 움큼 흘린 상태다.
 지수는 검지와 중지를 중년인의 턱 아래에 가져다 대었다. 그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지진처럼 흔들렸다.
 
 “크, 크으···.”
 
 그때 앞쪽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가 현실을 일깨웠다. 지수는 손을 떼고는 그의 안주머니에 살짝 빠져나와 있는 지갑을 챙긴 후 트렁크를 대충 닫고 걸음을 옮겼다.
 
 조수석 창문으로 손이 나온다. 지수는 손목을 잡아 손바닥이 위로 가도록 뒤집은 뒤에 아래로 꺾고는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턱
 주먹이 잡혔다. 피범벅 상태에서도 용케 남은 한 손으로 막아 낸 것이다. 지수는 잡힌 주먹을 교묘하게 돌려 그의 손목을 잡으며 다른 주먹을 다시 그의 얼굴에 꽂았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가 쓰러졌다. 운전석에 있는 사내는 이미 눈을 까뒤집고 기절해 있다. 지수는 바로 뒷좌석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서걱
 
 문이 열리자마자 아래쪽으로 서슬 푸른 칼이 튀어나왔다. 재빨리 발을 뺐으나 꽤 깊게 스쳤다.
 숨 쉴 틈도 없이 이번에는 옆구리를 노리고 찔러 온다. 지수는 오히려 앞으로 더 다가가며 몸만 살짝 틀었다. 칼날이 옆구리에 살짝 닿았으나 들어가지 못하고 옆으로 튕겨 나갔다.
 그사이 지수는 인촌의 손목을 낚아채 차 옆면에 부딪혀 단검을 놓치게 하고, 반쪽의 살점이 다 뜯겨 너덜너덜해진 김인촌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쾅
 
 지수는 눈이 풀리며 픽 쓰러지는 인촌의 멱살을 잡아끌어 자신의 차에 태웠다. 벌써 사람이 여러 명 몰려들어 휴대폰을 들어 올리는 것이 보인다. 지수는 모자를 더욱 깊이 눌러쓰고 액셀을 밟았다.
 
 ***
 
 도시 외곽의 폐공장, 흰머리 중년인 김인촌이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있다. 마지막 다리 한쪽까지 단단히 포박한 한지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서슴없이 따귀를 갈겼다.
 
 ―퍼억
 
 살과 살이 맞닿은 소리로 어울리지 않는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인촌은 그 한 방에 눈을 번뜩 뜨고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지수와 시선을 마주했다.
 
 “너구나, 길현이 친 게.”
 
 지수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왜 죽였어.”
 
 지수의 물음에 그는 눈썹을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 그의 목소리는 지극히 차분했다.
 
 “복수? 실망이군··· 그래, 누굴 말하는 거지? 알잖아, 이 손에 묻은 피를 한 명 한 명 기억할 만큼 겸손하지 않아.”
 “송여진, 한지희.”
 “아··· 음? 의외네, 그년들의 복수를 해 줄 사람이 남아 있었어?”
 
 지수는 그에게서 빼앗은 단검으로 그의 발목 뒷부분을 서슴없이 베었다.
 ―칙
 
 “끄아으읍!! 끄, 크흐··· 따끔하네, 너 같은 족속은 이해 못 하겠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건 뭐든 가져야 하거든, 여자라면 더더욱.”
 
 그는 살점이 너덜거리는 얼굴로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왜 죽였냐고 했지? 이 대한민국 경찰은, 독촉하는 사람이 없으면 금방 접거든, 그게 실종이라고 해도.”
 “한지희를 납치하기 위해 송여진을 죽였다는 말이군.”
 “이해가 빠르네, 만족스러운 대답이 되었나?”
 
 지수는 초점 없는 눈으로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느리게 입을 열었다.
 
 “···그래, 충분히.”
 “그럼 이제 거래를 해 보지, 산 사람은 살아야지, 나는 한지희와는 다르게 실종되면 이 지역 전체가 뒤집힌다고, 평생 살인자로 깜빵에서 썩지 말고 미래를 생각해야지, 나는 충분히 너의 등에 날개를 달아 줄 수 있다. 이건 부탁이 아니야, 너한테 기회가 찾아온 거지, 송여진이 이어 준 기회.”
 “기회··· 괜찮군.”
 
 그는 대답과 동시에 단검을 들어 김인촌의 남은 발목 한쪽과 두 손목을 베었다. 그 움직임은 마치 하나의 연결 동작처럼 부드럽고 정확했다.
 
 ―핏
 
 “아··· 읍.”
 
 지수는 인촌에게 가까이 다가가 입을 틀어막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기회를 줄게, 5분 안에 응급 처치하면 죽진 않을 거야, 궁금하군, 네 운명이 어떻게 될지.”
 
 지수는 그의 옷깃에 칼날을 문지르고는 서슴없이 뒤돌아섰다. 그는 귓가에 들리는 김인촌의 발악을 무시하며 걸음을 박찼다.
 
 ***
 
 ―찰칵찰칵
 
 진한 남색 점퍼를 입은 사내가 디지털카메라로 무언가를 열심히 찍고 있다.
 좁은 복도에 흩뿌려져 있는 피, 섬뜩한 사시미칼, 눈을 감지도 못한 싸늘한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다.
 이곳은 한바탕 피바람이 휩쓸고 간 김길현의 본거지다.
 
 방 안쪽에는 가뜩이나 짧은 머리를 위로 틀어 묶은 여형사가 쭈그리고 앉아 김길현의 잘린 팔과 관통된 목을 살펴보고 있다.
 
 “폭이 이 정도인데 손목을 단번에 잘라 냈다고? 일본도야 뭐야···.”
 
 그녀는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로 나갔다.
 
 “야야 비켜 봐, 그 징그러운 사진 많이 찍으면 뭐하니?”
 “아 옙.”
 
 그녀는 칼부림이 시작되는 철문 앞에 멈춰 서서 그 참상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진압봉을 꺼내어 짧게 잡고는 느리게 걸으며 손을 휘적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피하고 찌른 다음에, 이렇게 밀치고 다시 찌르고, 여기서 마무리를 촤악, 캬.”
 
 그녀의 행동에 사진을 찍던 형사가 피식거리며 물었다.
 
 “조 팀장님, 영화 찍으십니까?”
 “그치? 영화 같지? 현실에서 영화 찍는 놈이 있네, 무섭다 야.”
 “놈? 한 명이 저질렀다는 말씀입니까?”
 “응, 확실해, 어마어마한 놈이 나타났어···.”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턱을 쓰다듬자, 마주 보던 형사의 눈빛이 심각하게 변했다. 그녀의 현장 추리력은 80퍼센트에 육박하는 정확도를 보이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지이잉 지이잉
 
 때마침 울리는 진동에 조 팀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휴대폰을 꺼내었다.
 
 “누가 이 중요한 순간을 방해하나? 여보셔.”
 ―조 팀장님! 김인촌이 시체로 발견되었답니다!
 “뭐?!”
 
 신흥경찰서 소속 조직폭력배 전담수사팀장 조아은 경위, 그녀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소식에 눈을 추켜 떴다.
 
 ***
 
 차가 들어서지 못하는 좁은 오르막길, 한지수는 두리번거리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홍은로 32―14···.’
 
 그는 피 묻은 지갑에서 주민 등록증을 꺼내어 보며 중얼거렸다. 김인촌의 차 트렁크에 실려 있던 중년인의 지갑이다.
 그의 발이 파란색 철문 앞에서 멈춰 섰다. 한 명이 간신히 통과할 만큼 작은 철문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초인종 따위는 없다. 지수는 손을 들어 철문을 두드렸다.
 
 ―쿵 쿵
 “계십니까.”
 
 두어 번 더 두드려도 집 안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혼자 사는 사람이었나? 아니, 주민 등록상 주소와 현재 사는 주소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수가 걸음을 옮기려는 그때,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문 너머로 창문이 살짝 열리며 누군가의 얼굴이 나왔다가 쏙 들어갔다. 지수는 창문을 바라보며 외쳤다.
 
 “여기가 진성태 씨 집이 맞습니까?”
 
 지수의 말에 다시금 얼굴이 빼꼼 나와 눈이 마주쳤다. 옆으로 길고 동공이 유독 많이 차지하는 눈, 긴 생머리, 하얀 얼굴.
 
 “어?”
 
 그녀는 지수와 눈을 마주치자 가녀린 탄성을 내뱉고는 창문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란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끼이익
 후줄근한 옷차림의 소녀, 그녀는 지수의 집에서 보았던 그 소녀였다. 이번에는 그녀와 눈을 마주한 지수의 눈동자에 놀람이 담겼다.
 페인트통에 버렸던 이름표와 중년인의 주민 등록증이 머릿속에서 겹쳐졌다.
 
 ‘진세연, 진성태.’
 
 “아저씨가··· 여긴 어떻게 왔어요?”
 
 천진한 눈, 그녀는 아직 진성태의 죽음을 모르는 것이다. 지수는 그녀의 눈을 잠시 마주 보다가 발끝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탁
 
 그때, 진세연이 달려와 지수의 손목을 잡으며 물었다.
 
 “아빠가 돈 빌렸죠? 아저씨도··· 깡패예요?”
 
 지수는 자신의 손목을 잡은 그녀의 가느다란 손을 내려다보다가 뿌리치고는 다시 발을 떼었다.
 진세연은 빠르게 멀어져 가는 지수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돈 받으러 왔으면 받아 가야죠! 나 돈 있어!”
 
 세연이 따라오며 소리쳤지만, 지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
 
 ―띠링
 
 “어서 오세요. BS24시입니다.”
 
 지수는 편의점에 들어서서 아르바이트생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구석에 비타민이 들어 있던 빈 박스에 멈춰 섰다.
 그는 검지로 그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거, 써도 되는 겁니까.”
 “에? 아, 네에.”
 
 지수는 다시 꾸벅이고는 박스를 챙겨 조립하고, 안주머니에서 노란 지폐를 꺼내어 넣었다. 두께를 보니 100장은 넘는 듯했다.
 택배 운송장까지 뽑은 지수는 카운터로 물건을 가지고 가서 물었다.
 
 “테이프 있나요?”
 “아, 여기요.”
 
 ―찌직 찌지직
 그녀에게 테이프를 받아 든 지수는 마치 미라를 만들겠다는 기세로 비타민 박스를 칭칭 감기 시작했다.
 
 “어, 어, 그, 그렇게까지···.”
 
 지수는 그녀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테이프를 감았다. 그녀는 따지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그가 내민 운송장을 받아 들였다.
 
 “2,500원··· 입니다.”
 
 지수가 오만 원권을 알바생에게 건넸다. 알바생은 작게 입을 삐죽삐죽 대며 거스름돈을 지수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지수가 손을 들어 막으며 입을 열었다.
 
 “아, 필요 없습니다.”
 “네, 네?”
 “전 이제, 필요 없거든요.”
 “에···?”
 
 지수는 그 대답을 끝으로 뒤돌아서 편의점을 나섰다. 알바생은 멍한 얼굴로 지수가 나간 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
 
 대명병원 앞에서 검은 모자를 눌러쓴 사내가 나타났다.
 한지수는 안주머니에 품고 있는 단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그의 눈빛에는 살기가 짙게 배어 있었고, 그의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이두회의 진료실은 점심시간도 아닌데 외출 중이라는 팻말이 달려 있다. 지수는 관여하지 않고 문고리를 돌렸다.
 
 ―철컥철컥
 
 잠겨 있다. 지수는 해당 과에서 그가 나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온 것이다. 그가 발로 차려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을 때, 문이 열렸다.
 
 “엇, 아, 안녕하세요···.”
 
 진료실에서는 아직 단추를 다 채우지 못한 채 간호사가 상기된 얼굴을 하고 나왔다. 지수는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무섭게 문을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목에 깁스를 한 이두회가 뒤돌아선 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거참, 외출 중이라는 거 못 보셨나···.”
 
 말을 하며 돌아서던 이두회는 지수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얼음이 되었다.
 
 “내가 올 줄 몰랐지.”
 
 멍청한 얼굴로 눈알이 빠질 듯이 크게 뜨고 있던 이두회는 지수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뜩 들었다. 그는 지수를 귀신 보듯이 바라보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
 
 “겨, 경비! 경비 어딨어!! 경비!”
 
 ―저벅 저벅
 지수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이두회는 뒷걸음질 치며 두 손을 들어 올리고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자, 잠깐!! 잠깐 기다려 봐, 당신, 자네, 선생님, 우리 서로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아니, 없어.”
 
 지수는 단호히 대답하며 이두회의 사타구니 사이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푹
 “끄아아읍!”
 
 지수는 한 손으로 그의 입을 막고, 5센티도 안 되는 초근접 거리에서 금수와도 같은 눈빛으로 그를 노려다 보며 입술을 떼었다.
 
 “지옥에서 보자.”
 
 멘트와 함께 지수의 단검이 현란하게 돌아 그의 목을 두 번 찌르고 심장에 박히며 멈춰 섰다.
 
 ―치이이익
 
 분무기를 뿌리는 소리와 함께 깁스가 빨갛게 물든다. 깁스 덕분에 지수의 얼굴까지 붉은 피가 튀지는 않았다.
 
 “끄르르···.”
 ―으드득
 
 지수는 칼날을 돌리고 이두회의 눈동자를 노려보며 마지막 숨통이 끊어지는 것을 끝까지 확인했다.
 
 ―푸슉
 
 단검을 뽑자 심장에서 뜨거운 피가 울컥울컥 쏟아졌다.
 
 지수는 건조한 눈으로 이두회를 5초간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리고, 검은 모자를 벗고 옷걸이에 걸려 있는 하얀 가운을 걸치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걸을 때마다 붉은 발자국이 남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
 
 ―끼이익
 
 굵직한 유리문이 열리고, 단단한 워커를 신은 남자가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신흥지구대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
 
 모니터에 집중하던 순경은 뒤늦게 고개를 돌려 방문한 남자를 보고는 말문이 막혔다. 그가 피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단검을 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 살벌한 남자, 한지수가 경찰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자수하러 왔습니다.”
 
 
 # 신흥교도소
 
 “피고인은 불우한 가정을 정기적으로 돕던 의인이자 생명을 살리는 의사 이두회 씨에게, 사전에 피해자의 동선 및 위치를 파악하여 치밀한 계획하에 범죄를 저질렀으므로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판단됩니다. 법정 최고형인 무기 징역에 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피고인 측, 최후 진술 하세요.”
 “피고인의 잘못을 인정합니다. 판사님의 선처를 바랍니다.”
 
 “판결하겠습니다. 피고인 한지수는 죄질이 악하여 법정 최고형인 무기 징역에 처한다.”
 
 ―탕 탕
 
 ***
 
 자동차가 여러 대 주차되어 있는 카센터, 범상치 않은 인상의 사내가 누워서 자동차 아래쪽을 점검하고 있다.
 
 ―또각또각
 
 본능적으로 남자의 귓가를 자극하는 구두 소리에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쫙 달라붙는 청바지에 늘씬한 각선미, 그런데 신발이 기대했던 하이힐이 아니라 워커다.
 그때,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기훈 씨, 신흥서 조폭 전담수사팀 조아은 경감입니다.”
 
 오기훈, 오 사장은 차 아래에서 나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조 형사에게 인상을 썼다.
 
 “뭐야?”
 “뭐야? 너 91이지? 내가 너보다 누나야 새꺄, 반말하지 마.”
 
 여차하면 손으로 얼굴을 내려칠 것만 같은 자세를 취하는 조 형사, 그 모습에 오 사장은 상체를 일으키며 욕을 내뱉었다.
 
 “이런 미친···.”
 
 그런데 한 명이 아니다. 그 뒤로 덩치 큰 사내 두 명이 따라 들어온다. 그중 스포츠머리에 곰을 닮은 사내는 오 사장도 익히 알고 있는 자다.
 그자가 오 사장을 바라보며 검지를 들어 자신의 입술을 툭툭 치며 말했다.
 
 “오 사장, 입조심 해, 입. 우리 팀장님이시다.”
 “그래, 나는 몰라도 저기 저 마약반 미친개는 알지? 내가 쟤 상사야, 근데 니 차 어딨어.”
 
 오 사장은 욕설을 하려던 입을 다물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답했다.
 
 “모릅니다. 누가 훔쳐 갔습니다.”
 “아하, 도난당한 지 최소 일주일은 넘었는데 도난 신고는 왜 안 했어?”
 “하려고 했습니다. 좀 바빠서.”
 “우리 오 사장이 약 파느라 바쁘셨구나, 일단 이것 좀 볼까?”
 
 그녀가 패드를 오 사장에게 들이밀었다. 그곳에는 하나의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큰 사거리 중앙에 찌그러진 두 대의 차가 정차되어 있다. 그중 한 대는 오 사장에게 매우 낯익은 차다. 곧이어 그 차에서 검은 모자를 쓴 사람이 내려서 맞은편 차로 간다. 주먹다짐, 칼부림이 일어났지만 검은 모자는 영화 같은 손놀림으로 모두를 제압 후 흰머리의 중년인을 그 차에 태우고 사라졌다.
 
 오 사장이 자신도 모르게 그 영상에 열중하는 사이, 가느다란 손가락이 영상 한 부분을 가리켰다.
 
 “쟤 누구야? 니 차 타고 간 애.”
 
 오 사장은 가만히 눈알을 굴리다가 뒤늦게 입을 열었다.
 
 “모릅니다.”
 “몰라? 너 아니야? 니 차고, 가만 보니까 체형도 비슷하고, 너 맞는데?”
 “장난하십니까?”
 “장난 같아 보여? 문성동 창녀촌에서 포주 김길현 포함 다섯 명, 인촌파 두목 김인촌까지 여섯 명, 이틀 사이 여섯 명의 목이 따였어, 범죄 현장에는 항상 니 차가 있었고, 너는 둘과 관계가 있지, 누가 유력 용의자일까?”
 
 오 사장은 그녀와 눈을 잠시 마주 보다가 다시 영상에 시선을 돌리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서워서 그래? 쟤가 니 목도 딸까 봐?”
 
 조 형사는 패드를 거둬 자신의 품에 안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그래 관둬, 나 같아도 무섭겠다. 혼자서 칼잡이 다섯 명을 쓸어 버린 놈인데, 깜빵에 들어가면 안전할 거야.”
 “차를 도난당한 것뿐인데, 무고한 시민을 그렇게 쉽게 깜빵에 집어넣습니까?”
 “응 쉬워, 내가 약쟁이 하나 깜빵에 못 넣을 정도로 무능력해 보여? 우리 아빠 경찰청장이야~! 아무튼 난 바빠서, 그럼 수고.”
 
 조 형사는 미련 없이 돌아서 걸음을 옮겼다. 마약반 미친개라 불린 형사는 동정의 눈으로 오 사장의 어깨를 한번 두드리곤 조 형사의 뒤를 따랐다.
 그 순간 오 사장의 눈동자가 빠르게 돌아갔다.
 
 “저기.”
 
 오 사장의 목소리에 조아은은 씨익 환한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섰다.
 
 ***
 
 ―덜컹덜컹
 
 버스 안, 운전석과 뒷좌석은 방탄유리문으로 분리되어 있고, 창문은 모두 견고한 철창으로 막혀 있어 마치 닭장을 연상케 한다.
 방탄유리문 앞에 선글라스를 낀 사내 한 명이 꼿꼿이 서서 허리에 손을 얹고 있다. 그는 버스 안을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너희는 이제부터 사람이 아니다. 쓰레기다! 사람 취급받으려고 하지 마라. 구치소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사회에서 얼마나 잘난 새끼였든지 모두 잊어버려라. 이름까지도!”
 
 그는 허리에서 손을 내리고 중앙을 가로지르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서 너희를 식별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바로 왼쪽 가슴에 달린 번호다. 1297번!”
 
 교도관은 한지수의 바로 옆자리에 있는 사내의 번호를 불렀다. 팔뚝부터 목 위까지 뱀 문신으로 도배된 사나운 인상의 사내다. 그가 아무 말 없이 살짝 고개만 들어 교도관을 노려보았다.
 
 “1297번, 대답 안 하나?”
 
 사내의 고개가 살짝 비틀어졌다. 그러자 교도관은 허리춤에 달린 진압봉을 거침없이 뽑아 사내의 머리통을 갈겼다.
 
 ―퍽!
 “컥!”
 
 사내가 옆으로 쓰러지며 수갑을 찬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교도관의 손속은 멈추지 않았다.
 
 ―퍽! 퍽! 퍽! 퍼석!
 
 계속되는 잔혹한 구타에 막았던 손도 으깨지고 머리에서도 피가 터져 나왔다. 사내가 완전히 엎어져 아무런 신음도 하지 않자 그제야 행동을 멈추는 교도관이었다.
 버스 복도에는 사내의 진한 피가 흘러내렸다.
 
 “쓰레기! 너희는 쓰레기다! 같잖은 자존심 따위 찾으려다가 재활용도 안 되고 소각장에 버려지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는 한지수에게 고개를 돌리며 봉을 휘적거렸다.
 
 “치워.”
 
 지수는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않고 교도관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교도관도 이름표가 붙어 있다. 그의 이름은 배은기다. 그의 입술이 비틀어지며 진압봉이 다시금 올라갔다.
 
 그때, 교도관의 시선이 지수의 이름표에 닿으며 행동이 멈추었다. 사형 또는 무기 징역을 뜻하는 빨간색 이름표,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반대편에 있는 죄수를 봉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2177번, 치워라.”
 “예.”
 
 교도관은 뒤돌아서기 전에 지수의 얼굴을 한 번 더 노려보았다. 지수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마주 보다가 창문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교도관은 뒤돌아 문을 열고는 조수석에 앉았다. 원래부터 조용했지만, 지금은 공기 자체가 살얼음판같이 싸늘해졌다.
 
 지수의 눈에 저 멀리 5미터는 돼 보이는 담이 보였다. 대한민국에서 죄수 사고사가 가장 많은 것으로 유명한 신흥교도소다.
 
 ―끼익
 
 닭장 버스에서 내리니 철창 너머로 다른 죄수들이 쭉 붙어 있는 것이 보인다. 그들은 하나같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버스를 바라보며 창의적인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휘유~ 뉴페이스 똥꾸녕들 안녕~?”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찌질이 새끼들아.”
 “거기 햇병아리, 오빠 방으로 찾아와, 예뻐해 줄게.”
 
 하나같이 정상적이지 않은 사람들뿐이다. 그곳에 190센티 정도의 키에 느끼하게 생긴 한 사내가 지수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지수와 눈이 마주치자 한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발사하였다. 지수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신체검사 때는 완벽한 알몸으로 허리를 숙여 엉덩이 안 깊숙한 곳까지 자세히 살피는 수치스러운 검사까지 받았다.
 입 안, 장기 안에 뭐가 있는지까지 모두 확인하고 나서야 신체검사가 종료되었다.
 
 버스에서부터 죄수들을 이끄는 배은기 교도관은 꽤 높은 지위에 있는지 지나가는 내내 다른 교도관들에게 경례를 받았다.
 정신 이상 검사, 신체검사까지 이끌던 그 교도관은 방 배정만 남기고 사라졌다. 다른 교도관들은 그처럼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지는 않았다.
 
 5미터 정도의 꽤 넓은 폭의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감방이 쭉 늘어져 있다. 2층까지 있는데 방끼리 서로 마주 보는 형태다. 지수가 배정된 방은 17호다.
 7센티는 돼 보이는 통철문이 열렸다. 안에는 다섯 명의 사내가 방 여기저기에 누워 있었다. 그들은 지수가 들어오자 단번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오호···.”
 “아까 봤던 햇병아리네.”
 
 그 방에는 아까 봤던 느끼한 얼굴의 사내가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철컥
 
 문이 닫히자 삐쩍 마르고 눈이 째진 사내가 지수를 보며 말했다.
 
 “병아리, 자기소개 좀 해 봐.”
 
 지수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구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그 사내가 벌떡 일어나 지수에게 발길질했다.
 
 ―퍼억
 
 그의 발이 옆구리에 정통으로 박히며 지수는 가지고 왔던 생활용품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사내는 지수의 온몸을 발로 사정없이 짓밟으며 외쳤다.
 
 ―퍽 퍼억 퍽!
 
 “요즘, 어린 새끼들은, 싸가지가 없어, 세상, 무서운 줄, 몰라!”
 
 그가 말을 하면서 박자 맞춰서 발로 밟던 중에, 느끼한 얼굴의 사내가 고개를 들어 낮게 말했다.
 
 “그만, 애 잡겠다.”
 “알겠습니다. 형님.”
 
 흥분한 상태에서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지만, 사내는 군인처럼 칼같이 멈추고는 뒤로 빠졌다.
 느끼한 사내는 몸을 수그리고 엎드려 있는 지수의 몸을 천천히 훑어보며 말했다.
 
 “적응 기간도 줘야지, 어린 나이에 빵에 들어와서 정신없을 텐데.”
 “역시 이남 형님은 어깨도 마음도 넓으십니다. 존경합니다.”
 “똥구멍 그만 핥아, 헐겠다.”
 “헤헤 진심입니다. 형님.”
 
 이남은 옆에서 손을 비비며 아부를 떠는 사내를 무시하고, 천천히 일어나 엉망이 된 용품들을 집는 지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
 
 “배식~!”
 
 감방에 들어와서 처음 맞이하는 배식 시간, 배식차가 17호실 앞에 서자 눈이 째진 사내가 구석에 앉아 있는 지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야 병아리! 배식 받아.”
 
 지수는 당연하게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인상을 팍 쓰며 일어서서 지수에게 다가갔다. 그때, 민머리에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끼어들었다.
 
 “어이 김무한, 네가 해.”
 “아 예, 맞다. 적응 기간 적응 기간.”
 
 김무한이라고 불린 사내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배식을 받아 상을 차렸다.
 
 이제 막 먹을 타이밍이 되자 지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밥상 앞에 앉았다. 처음으로 움직이는 지수의 행동에 17호 죄수들의 이목이 쏠렸다.
 이남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입을 열었다.
 
 “꼬맹이, 생각보다 적응이 빠르네.”
 
 지수는 아무 말 없이 밥을 떠먹었다. 그 모습에 김무한은 욱하며 그에게 또 소리쳤다.
 
 “이 새끼가 형님이 말씀하시는데, 대답 안 해?!”
 “밥이나 먹자.”
 “예 형님, 저건 뭐 병아리가 아니라 벙어리네 벙어리, 아오···.”
 
 식사 시간이 지나고 지수는 다시 구석으로 가서 앉았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이 교도소의 첫날 밤이 지나가는 듯싶었다.
 
 ―부스럭
 
 모든 방의 불이 꺼진 새벽, 지수는 낯선 감각에 눈을 번쩍 떴다. 눈앞에는 진한 눈썹에 느끼한 얼굴을 한 이남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한쪽 입꼬리를 말며 지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못 참겠단 말이야, 적응도 끝났잖아? 잡아.”
 
 그가 턱짓하자 사내 세 명이 지수에게 다가왔다. 김무한과 험악한 인상의 사내 둘이다. 나이든 중년인 한 명은 구석에서 뒤통수를 보이고 누워 있다.
 
 한 명은 다리, 두 명은 양팔을 활짝 벌리게 해서 단단히 잡았다. 지수는 그들이 하는 대로 가만히 몸을 맡긴 채, 감정 없는 눈동자로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남은 빨간 혓바닥으로 윗입술을 핥으며 지수의 배 위로 올라탔다.
 
 “참, 예쁘장하게 생겼네.”
 
 그는 거칠게 지수의 상의를 확 젖혔다. 그리고 혓바닥을 가져다 대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이건··· 뭐야?”
 
 지수의 팔다리를 잡고 있던 다른 사내들도 이남과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극한으로 단련된 성난 근육들, 그 위로 하중을 알 수 없는 수많은 흉터, 이 방의 가장 막내인 김무한에게 찍소리 못 하고 처맞던 모습과는 상반되는 몸이었다.
 
 “카, 칼잡이였나?”
 
 무한은 그 몸을 보고는 지레 겁먹고 말을 더듬었다. 그때, 저 깊은 동굴 속에서 나듯이 깊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지수의 흐릿한 회색 눈동자의 초점이 선명해졌다.
 
 ***
 
 신흥교도소 3사동 17호실.
 그곳에는 네 명의 사내가 한 사내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 위에 올라탄 사내, 이남은 지수를 내려다보며 이죽거렸다.
 
 “어라, 벙어리가 아니었네?”
 
 지수는 이남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대답했다.
 
 “모두 자리로 돌아가 취침하면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큽, 꼬맹아··· 밖에서 칼침 좀 맞아서 깡다구가 있나 본데, 여긴 그렇게 만만한 데가 아니야.”
 
 이남은 실실 웃으며 손가락 끝으로 지수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 지수가 허리를 튕기며 이남을 옆으로 밀쳐 내고, 몸을 확 비틀어 팔다리를 빼냈다.
 그 심상치 않은 한 수에 이남은 물론 다른 사내들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지수는 보급받은 속옷을 오른손에 감싸며 입을 열었다.
 
 “기회는 한 번이었습니다.”
 “이런 미친놈이!”
 
 한 번 밟아 본 적이 있는 김무한은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그에게 주먹을 뻗었다. 그와 동시에 무한의 몸이 들썩였다.
 
 ―쿵
 
 무한이 마취총을 맞은 것처럼 뻣뻣하게 굳어 뒤로 넘어가고, 양쪽에 있는 험악한 인상의 사내들과 눈이 마주쳤다.
 그중 민머리 사내가 먼저 두 손을 뻗어 왔다. 그의 자세는 유도 유단자였다. 지수는 반 박자 빠르게 그에게 붙으며 얼굴과 볼에 주먹을 연달아 꽂았다.
 ―퍼벅
 그는 손이 지수의 옷깃 3센티 앞에서 더 다가가지 못하고 쓰러져 내렸다.
 ―휙
 지수가 몸을 숙이자 그 위로 다른 사내의 발끝이 빠르게 지나갔다. 지수는 그대로 뒤돌아서며 그의 허벅지 안쪽에 주먹을 꽂았다.
 ―우득
 뼈가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지수는 그에게 따라붙어 어깨를 바짝 뒤로 당겼다가 강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주먹을 정통으로 맞은 사내는 교통사고라도 난 것처럼 그대로 옆으로 픽 쓰러졌다. 그의 눈은 이미 검은 눈동자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수는 그대로 얼음처럼 굳어 있는 이남에게 다가갔다. 살짝 벌어진 입가에 침이 떨어지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듯하다. 지수는 천천히 허리를 숙이고는 작게 속삭였다.
 
 “다음에는 터칩니다.”
 “뭐?”
 
 이남이 무슨 뜻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릴 때, 지수의 한쪽 발이 올라가 그의 가랑이 사이로 쇄도했다.
 
 ―퍽!
 “크하읍!”
 
 어마어마한 고통에 이남의 입이 쩍 벌어짐과 동시에 지수의 커다란 손이 그의 얼굴을 덮쳤다. 그는 머리가 번쩍하는 것을 느끼며 의식을 잃었다.
 
 ***
 
 17호실의 새벽, 세 명의 사내가 지수를 중심으로 둘러앉아 공손히 손을 모으고 있다. 이남은 사타구니를 감싼 채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수는 그들을 느리게 둘러보다가 입술을 떼었다.
 
 “저는, 이곳에서 오래 있어야 합니다. 피곤해지고 싶지 않습니···.”
 “으음··· 윽.”
 
 그때, 이남이 신음을 흘리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고는 쌍꺼풀이 진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조용히 김무한의 옆에 앉아 손을 모았다. 움직일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 아직 통증이 가시지 않은 듯하다.
 지수는 이남을 3초간 바라보다가 시선을 떼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아무 문제 없이 지내야 합니다. 저는 이런 깜빵에서 권력을 쥐는 것 따위 관심 없습니다. 그냥 저에게 피해만 주지 마십시오. 없는 듯이 지내겠습니다.”
 “아, 알겠습···.”
 
 김무한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을 하다가 이남의 눈치를 보며 말을 끊었다. 지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으로 가서 누웠다.
 그 모습에 다른 방원들도 슬금슬금 움직이려고 할 때, 지수가 그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순간 방원 사람들의 행동이 일시 정지되었다.
 
 “아, 방금 일어난 일은 머릿속에서 없애 버리십시오. 이 말은 명심해야 합니다.”
 “어, 예···.”
 “예 알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형님.”
 
 그의 말에 조폭으로 예상되는 두 사내가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형님이라는 단어에 지수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형님 자 빼시고, 말 놓으십시오.”
 “예, 아, 응.”
 
 민머리 사내가 큰 실수를 한 듯이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지수는 그들을 한 번 더 둘러보았다가 몸을 돌려 잠을 청했다.
 이남은 지수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자리로 돌아가 누웠다.
 
 ***
 
 신흥교도소 이틀째.
 17호 죄수들은 모두 이렇다 할 상처가 남은 것도 아니고, 현장 목격이 아닌 사후 신고에 적절한 조치를 해 주는 교도소도 아니기에 아무도 지수의 구타를 알리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게, 교도소 첫날을 의미 있게 보낸 지수에게 단 하루 만에 면회가 왔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 눈이 크고 동그랗고 볼살이 적당히 붙어 있는 다람쥐상, 짧은 커트 머리, 화장기 없는 얼굴, 처음 보는 여자다.
 
 ***
 
 불이라고는 모니터에서 나오는 불빛이 전부인 어두운 방 안, 조그마한 여자가 다리를 의자에 올리고 두 무릎 위에 턱을 괸 자세로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다.
 모니터에는 병원 CCTV로 보이는 영상이 돌아가고 있다.
 
 ―저벅 저벅
 
 검은 모자를 쓴 사내가 화면에 나타나자 그녀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사내는 빠른 걸음으로 이두회의 진료실에 들어갔다. 그녀는 그 장면에서 멈춰 놓고 다른 장면을 모니터 한쪽에 틀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김인촌 납치 영상이다.
 
 그녀, 조 형사는 두 개를 번갈아 보며 중얼거렸다.
 
 “완벽하게 일치해.”
 
 그녀는 검지로 자신의 이마를 톡톡 치며 혼잣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얘가 5년 전에 사망 처리된 한지수인데 갑자기 나타나서 사람들을 막 죽이다가 마지막에 이두회를 죽이고 자수를 했다? 근데 멀쩡히 살아 있는데 사망 처리는 왜 금방 됐지?”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서류 더미 중 하나를 집어 미친 듯이 넘겨 댔다.
 
 “한지수, 한지희, 5년 만에 여동생을 찾아가서 성폭행하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이 양아치 새끼들 이거··· 제대로 된 사실 관계가 필요해.”
 
 조 형사는 휴대폰을 꺼내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오 사장, 나야 조아은.”
 ―···조, 아은? 아, 조 형사님··· 뭡니까.
 “왜, 오랜만에 여자 전화라서 떨렸어?”
 ―할 말이나 하십시오.
 “응 그래, 니 차 가져간 애, 한지수라는 거 또 누가 알아?”
 ―저랑 양아치 한 명이 압니다.
 “응, 이제부터 그 말 새 나가면 니 잘못이다. 책임지고 입단속 해.”
 ―그게 무슨 소립니까?
 “따지지 마, 안 그럼 너 걔한테 목 따일 수도 있어, 명심해, 그럼 난 바빠서 이만, 뿅.”
 ―조 형···.
 ―띡
 
 조 형사는 단호하게 전화를 끊고 일어나 기지개를 늘어지게 폈다.
 
 “흐아으읍, 흐음, 그럼, 주인공을 보러 가 볼까?”
 
 ***
 
 3사동 면회실, 한지수는 조아은 경감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있다.
 지수가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자, 그의 얼굴을 열심히 살펴보던 조아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안 궁금해요? 모르는 여자가 찾아왔는데.”
 
 지수는 대답 없이 건조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조아은은 얼굴을 낮추고 고개를 홱홱 돌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CCTV에서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 패드를 들어 지수에게 보여 줬다.
 창녀촌 인근에서 찍힌 영상, 김인촌을 납치하는 영상, 마지막으로 이두회의 집무실로 가는 영상이다.
 
 “이거 다 한지수 씨죠?”
 “네.”
 
 조아은은 너무 쉽게 튀어나오는 대답에 화들짝 놀라며 큰 눈을 깜빡였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그녀는 다시 주변을 둘러보곤 검지로 목을 가르는 시늉을 했다.
 
 “다··· 한지수 씨가 ―끽 했어요?”
 “네, 다 제가 죽···.”
 
 조아은은 두 손을 팍 들어 올리며 과장된 몸짓을 하더니 검지로 그녀의 입술을 툭툭 치며 말했다.
 
 “쉿, 쉿, 그만.”
 
 지수는 그녀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껴 살짝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경찰입니까?”
 
 조아은은 고개를 대충 주억거리며 말을 다다다다 이었다.
 
 “네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지수 씨한테 궁금한 게 많은데··· 아무튼 나중에 또 봐요. 여기 말고 딴 데서, 지금 이거 딴 사람한테 얘기하지 말고, 다 한지수 씨 위해서예요. 명심해요. 아주 중요해.”
 
 지수는 그녀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녀는 가지고 왔던 패드와 가방을 대충 챙겨 들고는 다급히 면회실을 나갔다. 지수는 그녀가 나간 문을 3초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
 
 지수는 17호실로 돌아와 가만히 앉아 방원들을 둘러보았다.
 190의 큰 키에 마르고 느끼하게 생긴 이남, 그는 특수폭행 및 강간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강간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고 한다. 놀랍게도 그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 남색을 한 적이 없다.
 단단한 몸에 험악한 인상의 두 사내, 둘 다 조폭으로 민머리는 망치, 스포츠머리는 뺀찌라고 불린다. 둘 다 집단폭행으로 들어왔다.
 키가 작고 눈이 쫙 째져서 얍삽한 인상의 김무한은 빈집털이 도둑이다. 집털이 이외에도 날치기, 금은방 털이 등등 여러 가지 털이를 겸업한다고 한다. 어울리게 몸은 날쌔다.
 얼굴이 하얗고 해탈한 느낌을 주는 중년인, 신 박사라고 불리는 그는 의료 과실로 들어왔다. 그는 무슨 이유인지 이남도, 두 조폭 형제도 건드리지 않고 존중한다.
 
 다들 각자 할 일을 하는데 김무한만 지수의 눈치를 보고 있다. 지수는 그에게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여기는 다른 방의 재소자들과는 언제 마주칩니까?”
 
 무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짝 다가왔다.
 
 “아, 그건 하루에 한 번 운동할 때랑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할 때인데, 점심시간 이후니까··· 이제 곧 부를 거야.”
 “3사동 사람들만 봅니까?”
 “그렇지, 다른 사동 재소자들이랑은 마주칠 일이 없어, 아, 노역 가면 보겠네.”
 “노역?”
 “일하는 거, 목재, 미싱, 미화, 이런 것들, 근데 노역도 이게 말만 일이지 경쟁이 심해, 그때는 좀 자유롭기도 하고 돈도 버니까··· 아, 저기 신 박사가 노역 가니까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
 “알겠습니다.”
 
 신 박사는 자기 별칭이 들리자 고개를 들었다가 금세 다시 책에 집중했다.
 김무한은 지수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눠서 그런지 많이 편해진 느낌이다. 조폭 둘은 원래 생활했던 습관 때문인지 지수와 눈을 마주치면 각을 잡는다. 이남은 원래 이런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자세는 편안한데 쥐죽은 듯이 조용히 TV만 보고 있다.
 
 ―운동 시간입니다. 3사동의 모든 재소자는 13시까지 운동장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딱 됐네.”
 
 김무한이 가장 먼저 일어나 문 앞에 섰다. 곧이어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17호실 방원들은 방을 나섰다. 밖에는 수십여 명의 교도관들이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전원, 이동!”
 
 군기가 바짝 잡힌 목소리가 3사동 내에 쩌렁쩌렁 울리며 재소자들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운동장으로 나가는 문 앞에는 선글라스를 낀 교도관이 각 잡힌 열중쉬어 자세로 있다. 무한은 지수의 옆에 붙어서 그 교도관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선글라스 앞에서는 질 나쁜 재소자들도 다 몸을 사려, 한번 걸리면 어떻게 될지 몰라, 쟤한테 찍혀서 밖으로 나간 사람만 세 명인가? 영안실로.”
 
 그와 가까워지니까 입을 다물었다가 작게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별명이 사냥개야 사냥개, 한번 물면 안 놔.”
 
 무한이 말하는 교도관은 버스에서 봤던 배은기 교도관이다. 이미 교도소 내에서도 유명한 자였던 것이다.
 그를 지나치려는데 손이 훅 튀어나와 지수의 멱살을 잡고 끌어당겼다. 몸 전체가 장난감처럼 딸려 가는 것이 언뜻 봐도 배 교관의 강력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배 교관은 지수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고 노려보았다. 지수도 그를 마주 바라보았다. 선글라스 너머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반짝였다.
 
 순간 줄이 멈추고 장내에 정적이 맴돌았다.
 
 ***
 
 “4885, 사고 치지 마라.”
 
 배은기 교도관은 목소리마저 각이 잡혀 있는 듯했다. 한지수는 한 박자 느리게 대답했다.
 
 “네.”
 
 배 교관은 지수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멱살을 놓아주었다. 지수는 차분하게 옷매무새를 다듬고 다시 행렬에 합류했다.
 
 하루 중 유일한 야외 활동 시간이다. 이 시간에 햇볕을 쬐지 못하면 비타민이 모자라 빈혈이 올 수 있으니 꼭 나가야 한다. 물론 강제로 내보낸다.
 이곳에 나와서는 자연스럽게 한 패거리처럼 17호 방원들이 같은 자리에 뭉치게 되었다.
 교도소 내에서도 파벌이 나뉘는데, 어느 곳에도 붙지 않은 중립들은 다른 재소자들과 섞일 때 이렇게 같은 방원끼리 뭉쳐야 살기 때문이다. 의외로 조폭 형제는 중립이었다.
 
 “···그래서 크게 보면 파벌이 네 개인데, 1강 3중이라고 봐야 맞지, 그래서 3중들의 관계가 그리 나쁘지는 않아, 지들끼리 으쌰으쌰해서 1강을 견제···.”
 
 지수는 김무한의 수다를 들으며 눈으로는 재소자들을 세세히 살펴보았다.
 
 ‘남인수는··· 없다.’
 
 지수는 사진으로 보았던 남인수를 떠올렸다. 사진 한 장으로는 부족하여 그의 SNS를 파헤치며 여러 장의 사진을 보고 얼굴을 각인시켰다. 여기서 머리를 잘라 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못 알아볼 수는 없다.
 김무한이 얘기했던 노역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할 때, 그가 손으로 지수의 어깨를 건드리며 작게 속삭였다.
 
 “왔다. 쟤가 금두석이야 금두석.”
 
 그의 말에 고개를 들어 턱짓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서 반삭발에 양어깨에는 큼지막한 도깨비 문신을 한 근육질의 사내를 필두로 한 무리가 들어섰다. 그 무리가 나타나자 죄수들은 자연스레 뒷걸음질 치며 길을 트기 바빴고, 몇몇은 방원들과 떨어져 그 뒤에 붙었다.
 
 도깨비 문신의 이름은 금두석, 현재 교도소 파벌 중에 가장 강력한 파벌의 두목이다. 그의 뒤에는 이미 스무 명 가까운 죄수들이 따르고 있다.
 그런데, 그의 방향이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응?”
 “으, 응?”
 
 망치와 김무한이 이상한 소리를 냈다. 금두석 패거리가 걸어오는 방향이 이쪽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리지는 않았지만 이남도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그를 의식하고 있다. 뒤쪽에는 철망뿐이니 이곳으로 오는 것이 확실했다.
 금두석이 이남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자연스럽게 그의 패거리가 둘러싸서 한낮에 그늘이 졌다.
 
 “어이 게이 새끼, 요즘은 좀 조용하네? 젖비린내 나는 놈 먹고 체하셨나?”
 
 금두석의 눈동자가 살짝 지수를 가리켰다가 다시 돌아갔다. 이남은 여전히 시선을 다른 곳에 두며 대답했다.
 
 “같은 계통도 아닌데 신경 많이 쓰시네, 왜, 이쪽으로 넘어올 생각 있으신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금두석이 손을 뻗어 이남의 볼살을 잡았다. 가뜩이나 마른 이남의 볼살이 저 정도로 늘어날 정도면 얼마나 강하게 쥐었는지 상상이 안 될 정도다.
 금두석이 그 상태로 앞뒤로 흔들자 이남의 머리가 장난감처럼 휙휙 움직였다.
 
 “그새 싸가지는 더 없어졌네, 옛날 기억 떠올려 줘?”
 
 이남은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금두석은 입 냄새가 느껴질 정도로 얼굴을 가까이 하며 입을 열었다.
 
 “나도 잡아먹것네, 눈알 뽑아 줄까?”
 
 볼 한쪽이 완전히 붉어진 채 가만히 있던 이남은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금두석은 재미없다는 듯이 그의 볼살을 거칠게 던져 버리고는 지수에게 다가가며 한 손을 들어 올렸다.
 순간 17호 방원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돌았다. 지수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는 의미가 컸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금두석은 지수의 머리 위에 손바닥을 툭 올려놓을 뿐이었다.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싱거운 새끼, 아야, 나중에 또 보자.”
 
 금두석은 지수의 고개가 살짝 숙여질 정도로 툭 툭 두 번 치고는 뒤돌아서 갔다.
 
 그의 패거리가 꽤 멀어지자 김무한이 턱을 괴는 척 입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저 새끼 내가 언젠가 아주 그냥··· 아오.”
 
 이남은 벌게진 볼을 매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팔오 금두석한테 찍힌 것 같다.”
 “파, 팔오가요? 갑자기 왜···.”
 
 무한은 호들갑을 떨며 지수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수는 금두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
 
 운동 시간이 끝나고 17호실로 돌아온 지수는 바로 신 박사에게 다가갔다. 신 박사는 앉아서 책을 막 꺼내려다가 멈추고 그에게 시선을 주었다.
 
 “뭐죠?”
 “노역장, 어떻게 들어가는 겁니까?”
 
 신 박사는 지수의 눈을 5초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나도 어쩌다 보니 차출된 거예요.”
 “그렇습니까?”
 
 신 박사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지수에게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지수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며 뒤로 물러섰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분명한 건 그는 자신에게 노역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 주기 싫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지수가 벽에 등을 기대고 고민하던 때에, 가만히 지켜보던 이남이 한마디 툭 던졌다.
 
 “노역은 왜 들어가려고 하지?”
 “알려 줘야 합니까?”
 “관둬라, 노역장이 금두석이다. 네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금두석은 패거리야.”
 “금두석···.”
 
 조금 전에 지수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려놨던 근육질 사내다. 지수는 허공에 시선을 두며 그의 이름을 되새겼다.
 
 ***
 
 ―운동 시간입니다. 3사동의 모든 재소자는 13시까지 운동장으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날 운동 시간이 돌아오자 지수는 고민 없이 금두석 패거리가 모여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 방향을 보곤 17호실 방원들은 기겁했지만 말리지는 못했다.
 
 “어, 어···.”
 “저런 미친놈.”
 “역시 보통은 아닙니다.”
 
 신 박사는 불편한 시선으로 지수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다가오는 지수를 보곤 금두석 패거리 중에 덩치 큰 사내가 몸으로 그를 막았다. 지수는 금두석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가만히 있었다.
 
 “허, 당돌한 놈이네, 와 봐.”
 
 그의 말에 덩치 사내가 길을 열어 주었다. 지수는 두석에게 한 발자국 앞까지 다가가서야 멈춰 섰다.
 
 “노역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뭐? 노역? 노, 큽, 크하하학!”
 
 두석은 뭐가 그리 웃긴지 배를 부여잡고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가 갑자기 정색하며 지수에게 물었다.
 
 “아야, 노역은 10년은 썩어 있던 놈도 못 들어와서 안달인 곳이여, 너 들어온 지 얼마나 됐지?”
 “어떻게 하면 들어갈 수 있습니까?”
 “캬 이 새끼 패기 봐라, 이제 이틀 된 놈이 뭘 안다고, 그렇게 들어오고 싶냐?”
 “예.”
 
 지수의 대답에 두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고 서서 말했다.
 
 “그려, 그럼 기어가 봐.”
 
 두석은 자신의 사타구니 아래를 손가락으로 까딱거렸다. 주변에 있는 그의 패거리들은 킥킥대며 비웃었고, 지수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그의 손가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지수가 걸음을 막 떼려는 순간, 두석이 다시 벤치에 앉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흐흐 농담이다 농담 새끼야, 그려, 다음 주부터 들어와.”
 “형님?”
 
 그의 말에 바로 옆에 뺨에 흉터가 있는 사내가 나섰다. 그와 동시에 두석의 솥뚜껑만 한 손바닥이 휘둘러졌다.
 
 ―퍼억!
 “큽!”
 
 완력이 얼마나 강한지 몸무게가 100킬로 가까이 될 것 같은 사내가 따귀 한 방에 바닥에 엎어졌다.
 두석은 인상을 확 찌푸리며 그에게 말했다.
 
 “내 말에 토를 달어?”
 
 사내는 재빨리 일어서 열중쉬어 자세를 취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죄송할 짓은 하지 말어, 사지 멀쩡하고 싶으면.”
 “알겠습니다. 형님.”
 
 금두석은 고개를 돌려 지수에게 손짓했다.
 
 “꼬맹이는 가 봐.”
 “예.”
 
 지수는 그 한마디만 하고는 뒤돌아서 방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석은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며칠 전.
 
 “금두석, 면회다.”
 
 금두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부른 교도관을 보며 이죽거렸다.
 
 “이야, 몸 무거우신 배 부장님이 직접 데리러 오고, 이게 무슨 일입니까?”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교도관, 배은기 교도관은 두석의 손목에 수갑을 걸며 말했다.
 
 “쓰레기, 말 몇 번 섞으니까 만만하지, 주제 파악하고 그 혓바닥 간수 잘해.”
 “예, 예 알겠수.”
 
 배 부장은 그를 잠시 노려보다가 발끝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두석은 그를 따라가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얼레? 배 부장님, 면회실 저기 아닙니까?”
 
 배 부장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걸었다. 두석은 의문을 품은 채 그의 뒤를 따랐다.
 낯선 곳에 발을 들인 두석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깜빵 생활 3년 만에 접견실은 처음 오는구만.”
 
 금두석은 면회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크기의 쾌적한 공간을 보며 감탄하다가 그 중앙에 앉아 있는 정장을 입은 중년인을 발견했다.
 중년인은 두석에게 눈인사를 하다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배 부장, 선생님 손목이 불편해 보이는군요.”
 “죄송합니다.”
 
 배은기 교도관은 칼같이 대답하고는 바로 금두석의 수갑을 풀어 주었다. 금두석은 손목을 돌리며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보이는 곳의 CCTV는 모두 돌아가 있다.
 
 “와··· 배 부장이 껌뻑 죽는 걸 보니 높으신 분 같은데, 내가 왜 필요하대요?”
 “하하, 시원시원하시네요. 일단 앉으시지요. 배 부장은 나가 봐요.”
 
 배 부장은 정확히 15도로 목례를 하고는 접견실 밖으로 나갔다.
 배 부장이 나가자 고삐가 풀린 금두석은 삐딱하게 앉아 턱을 들고 중년인을 내려다보았다. 중년인은 살짝 미간을 좁혔다가 이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금두석 씨는, 상대가 흉기를 휘둘러 정당방위를 하였으나, 피치 못하게 두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여 8년 구형을 받았다.”
 “그게 뭔 소리래요? 나는 20년···.”
 
 중년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두석의 말을 끊었다.
 
 “곧 바뀔 선생님의 죄목이에요.”
 
 그의 말에 두석은 몸을 뒤로 살짝 물러서며 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
 
 “아, 거래고만, 이거 어마어마한 분이고만요. 12년이나 감형해 준다니.”
 “결과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그래서, 무슨 일이요?”
 “한지수.”
 “한지수? 처음 들어 보는 놈인데.”
 “어제 들어갔습니다. 방은 17호, 죄수 번호는 4885.”
 “17호라··· 그래서, 그놈 목 따 주면 돼요?”
 “아니, 아니요. 그건 너무 쉽지요. 그놈은 무기 징역입니다. 놈이 평생 지옥을 살아가게 해 주세요.”
 “아, 반병신으로 만들어라? 뭐 다리 하나 팔 한 짝이면 돼요?”
 
 중년인은 눈을 감고는 느리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너무 아쉬워요. 눈··· 이 적당하겠네요. 두 눈하고 팔 하나 정도면 되겠어요.”
 “아 이거, 있는 양반이 더하다니까, 기한은?”
 “2주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
 
 두석은 손을 모아 눈알을 굴리다가 대답했다.
 
 “어지간히 급한가 보구만, 어차피 무기라면서··· 알겠수.”
 
 두석의 시원한 대답에 중년인은 그의 손을 두 손으로 맞잡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만 믿겠습니다.”
 “예예, 일 처리만 확실하게 해 주슈.”
 “네, 그럼, 천천히 쉬시다 가십시오. 배 부장에게는 말해 놓겠습니다.”
 “아 예.”
 
 중년인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먼저 나갔다. 접견실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검은 양복의 사내가 중년인을 에스코트했다.
 
 중년인은 교도소를 나오자마자 인상을 팍 쓰며 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검은 양복의 사내가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주었다.
 
 “으··· 더러워서··· 하여튼 쓰레기 새끼들은 냄새부터가 구린내가 나, 이거 말고 물티슈 없어?”
 
 사내는 익숙하게 바로 물티슈를 꺼내어 그에게 보였다.
 
 “여깄습니다. 병원장님.”
 
 병원장이라 불린 중년인은 물티슈로 손 가죽이라도 벗기듯이 빡빡 문지르고는 바닥에 던지고 걸음을 옮겼다.
 
 “어으··· 빨리 가자, 여긴 공기도 탁하냐.”
 “예.”
 
 ―부르릉
 
 중년인을 실은 검은 세단은 부드럽게 출발하여 교도소를 빠르게 벗어났다.
 
 <『아저씨 왔다』 1-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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