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필드 위 괴물 스트라이커

Prologue.

2020.03.16 조회 73,829 추천 768


 Prologue.
 
 손에 땀이 쥐어졌다.
 회장 안은 이미 침묵으로 물들어 있었다.
 나를 포함해 모두가 시상자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리고,
 
 "The winner of 2028 Ballon d'or is ... Russel Best! (2028년 발롱도르 수상자는... 러셀 베스트!)“
 
 ...X발.
 이번에도 실패다.
 
 짝짝짝짝-
 
 와아아-
 
 박수와 환호가 오고 갔다.
 모두 나를 위한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모두.
 저 빌어먹을 황금 공은 언제나 그랬듯 내 손에서 벗어난다.
 
 "동석... 유감입니다. 이번 해에야말로 당신이 받을 줄 알았는데..."
 
 이런 말을 듣는 것도 벌써 세 번째다.
 덕분에 이제는 가식적인 표정을 통해 내 본심을 숨기는 법도 배웠다.
 
 "괜찮습니다. 제가 부족해서인걸요. 러셀에게 축하를 보냅니다."
 
 아니, 전혀 괜찮지 않다.
 러셀에게도 축하를 보내고 싶지 않다.
 늙어가는 운동선수는 추한 법이다.
 내가 과연 다음 해에도 이 자리에 올 수 있을까?
 지금과 같은 발롱도르 최종 후보 3인으로서?
 글쎄.
 아마도 아닐 것이다.
 내 나이가 어느덧 서른다섯.
 이제는 단순히 나이가 많은 걸 넘어서 은퇴를 바라봐야 할 때다.
 최근 들어 내가 나이 먹었다는 걸 절실히 느낄 때가 있다.
 내년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못해질 거고, 내후년의 나는 더욱 그럴 것이다.
 나는 직감했다.
 이제 내 커리어에 발롱도르라는 영예로운 트로피를 추가할 일은 없을 거란 걸.
 
 
 **
 
 
 [대한민국의 자랑, 백동석(37). 18년 간의 프로 생활 끝에 은퇴 결정!]
 [한 시대를 풍미한 스트라이커 백동석.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은퇴 경기 치러!]
 
 그 이후 2년이 지났다.
 내 예상대로였다.
 2028년 이후로 내가 발롱도르 최종 후보에 드는 일은 없었다.
 원래도 느렸던 발은 더욱 느려졌고, 그나마 말을 듣던 육체는 이제 몇 박자는 느리게 반응한다.
 결국 내가 버틸 수 있는 건 2년이 다였다.
 뭐, 한편으로는 홀가분하다.
 점점 노화되는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같이 반복했던 트레이닝도.
 상대 선수의 움직임을 분석하기 위해 밤낮으로 영상을 돌려보던 나날도.
 이제는 그 모두가 안녕이니까.
 
 그래.
 고생 끝, 행복 시작.
 그것이 내 앞에 놓인 미래였다.
 부르는 곳도 많았고, 벌어놓은 돈은 그보다 더 많았다.
 EPL 득점왕 4회, FIFA 월드 베스트 3회, 발롱도르 최대 순위 2위.
 지금껏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있어서 전무후무했던 스트라이커가 바로 나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프로 인생 처음부터 이렇게 잘 나갔던 것은 아니었다.
 피지컬은 좋은데 뇌는 없는 무뇌아, 그저 뛰는 것밖에 모르는 황소, 축구 지능 대신 신체에 모든 재능이 몰빵된 비운의 천재.
 그것들이 유망주 시절, 아니 20대 후반까지의 나에게 붙어있던 꼬리표였다.
 그 왜.
 오프 더 볼, 축구 지능 이런 건 애초에 훈련으로 나아지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30대에 들어선 나는 어느 순간 깨달음이라도 얻은 건지 축구 지능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공짜로 얻은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따라붙던 꼬리표를 떼기 위해 매일 축구 영상을 분석했었다.
 그 노력이 어느 순간 터지면서 골을 넣기 위해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축구 지능을 얻은 때는 30세.
 슬슬 운동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그렇기에 은퇴식에서 나온 사회자의 질문.
 
 "백동석 선수. 지난 경기 득점으로 마지막 시즌까지 리그 두 자릿수 득점을 놓치지 않으면서 은퇴하게 되셨습니다. 은퇴 소감이 어떠십니까?"
 
 나는 그것에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후회됩니다."
 "네?"
 "지금의 제게는 경기를 하다 보면 보입니다. 이 상황에서 어디로 움직이는 게 효율적인지, 어디서 공을 받으면 득점으로 연결하기 쉬운지, 그런 것들이 말입니다. 단지 몸이 안 따라줄 뿐이죠."
 "예, 예. 그렇죠. 동석 선수의 골 감각은 세계에서도 손꼽히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하하. 한때는 다른 걸로 더 유명했죠. 왜, 제 예전 별명 있잖습니까. 언띵킹 호나우두."
 
 사실은 나우두가 아닌 날두다.
 하지만 내 어린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함부로 '그놈'의 이름을 부를 수 없었다.
 
 "아아... 하하하... 그렇죠?"
 "그랬던 제가 지금은 축구 도사라는 과분한 별명을 가지고 있죠. 경기 내내 잠잠하다가도 어느 순간 골을 넣는다고 말이죠. 그런데... 왜 팔팔하던 20대 그때에는 그럴 줄 몰랐을까요?"
 
 은퇴식의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 자식은 축하받아야 할 자리에서 왜 이러나 싶겠지.
 처음 내게 질문을 한 사회자의 표정 또한 굳어 있었다.
 그래도 프로긴 프로인지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사회자가 내게 재차 질문했다.
 
 "백동석 선수. 그래도 백동석 선수는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한 명이셨지 않습니까?"
 "그러니까요. 만약 지금의 제 축구 지능이 젊었을 때도 있었더라면, 세계 최고의 스트라이커 '중 하나'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요?"
 "......"
 "펠레, 마라도나, 그리고 리오넬 메시... 오로지 그들만이 닿을 수 있던 영역에 말입니다."
 
 사회자의 표정이 한 번 더 변했다.
 망했다... 라는 표정.
 그리고 저 자식은 비싼 주급 처받아 먹어왔으면서 왜 이제 와서 불평이냐? 라는 듯한 표정.
 그래.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투정으로 들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모두의 축복을 받으면서 은퇴를 한 날.
 그날 내가 느꼈던 것은 지독한 아쉬움이었다.
 최고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지독한 아쉬움.
 
 어쨌든, 그것으로 내 축구 인생이 끝났다.
 
 
 **
 
 
 ......라고 생각했다.
 
 
 "빌, 빌라노바 감독님?"
 "....? 뭐하나 자네? 자리에 앉지 않고."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댓글(43)

qw******    
오 지금 전작달리고있어요 완결까지 얼마 안남았으니까 이작품도 재밌게 많이 연재해주세요
2020.03.18 02:08
팔카오    
오랜만에 와서 신작 달리고 있는지 몰랐어 바로 달릴게요
2020.03.21 22:16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0.03.22 10:57
Binary    
건필하세요. 파이팅!
2020.03.23 03:25
real23    
잘 읽겠습니다ㅎ
2020.03.23 15:43
편광(片光)    
잘 보고 갑니다! 건필 하세요. ^^
2020.03.25 13:58
DRAGONIX    
연재 축하드립니다!
2020.03.26 18:43
팩트폭력배    
요즘 나오는것들은 모두 날강두 기본으로 까고 가니 좀 식상하네요 ㅎㅎ
2020.03.28 19:20
성호신    
요즘 한국소설은 호날두를 아예 개차반취급하더라
2020.04.01 00:59
샤옹    
은퇴식이 2030년인데 날두 까고있는건 식상하긴하네 날두ㅈ같긴하지만 그때쯤은퇴했을거고 은퇴나 죽고나면 미화되고 좋은것만 띄어주는 우리나라특성상 날두정도의 커리어면 은퇴후에는 저런식으로는 안까지 그것도 10년 지난걸로는 지금이야 몇년안됐고 아직 은퇴한것도 아니니 그렇지만
2020.04.01 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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