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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부르는 역전의 용사

2020.04.06 조회 489 추천 3


 기적을 부르는 역전의 용사
 
 
 
 타다당!
 타앙!
 투두두두두둣!
 고막을 때리는 강렬한 소음들이 끊이지 않는 전쟁터. 피와 화약으로 물든 그 절망의 공간 속, 한 건물 안에서 세 명의 사내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옅은 갈색의 두꺼운 옷으로 보아 이 사람들 또한 건물 밖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이들과 마찬가지로 어딘가의 군인인 듯싶었다.
 가만히 침을 삼키고 있던 남자가 말하였다.
 “어, 어떻게 하지? 완전히 포위된 거 같은데?”
 “이런, 젠장! 이래서 내가 저놈들과 엮이기 싫었다니깐! 물량공세 미쳤다고! 근데 우린 셋밖에 없잖아!”
 혼란스러운 남자와 흥분해 소리치는 남자.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들은 매우 절망적인 상황에 부닥쳐있었다.
 설마하니 적들이 자신들의 엄청난 물량을 믿고 무작정 밀고 들어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실책.
 이들의 수뇌부가 누구였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분명한 실책이었다.
 분명 처음에는 사소한 문제였으리라. 그러나 그 사소한 문제 덕분에 이들이 속해있던 부대는 여기 모인 단 세 명을 제외하곤 모두 전멸하였다.
 그러나 그 절망의 가운데에서도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 하지만 얼굴의 대부분이 고글과 방독면으로 덮여있어서 제대로 불 수 있는 부분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그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이질적일 정도로 거대한 총이었다.
 Barret M82A1.
 통칭 바렛이라 불리는 거대한 흉기.
 12.7mm의 구경에 최대사거리 3,000m, 유효사거리 1,500m라는 굉장한 능력을 발휘하는 이 총은 그 무게만도 10kg이 넘어가는 거체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방에 장갑차의 외장갑마저 뚫어버리는 이 대물은 그 파괴력과 명성에 비해 상당히 수수해 보이는 외관을 선보이며 깨어진 창틈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엄청난 물건을 들고 있는 여기 이 남자. 얼굴은 방독면에 가려 보이지도 않았다.
 본명보다는 크레스니크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며, 정작 그와 친분이 있는 이들은 그를 역전의 용사라고 부르곤 했다.
 다른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며 절망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침묵을 고수하던 크레스니크가 입을 열었다.
 “아니.”
 내용도 짧고 소리도 매우 작았지만, 두 남자는 그의 목소리를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그 와중에 크레스니크가 말하였다.
 “아직은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게 알려지지 않았어.”
 “어떻게 그렇게 장담하는 건데?”
 “FK 녀석들은 물량전을 좋아하지. 게다가 그 녀석들의 우두머리인 안현준은 참을성이 부족한 인간이야. 독단적이기도 하고.”
 “으음, 그렇지.”
 “만약 그 인간이 우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분명히 이곳으로 대규모의 인원을 투입 시키든가, 그도 아니면 건물 안에서 죽어버리라고 건물 자체를 폭파했겠지.”
 거기까지 말한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상황이 너무 암담한 나머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피곤하네······. 어차피 여기 계속 있어 봐야 되는 일도 없으니깐 빨리 끝내자. 남은 물량은?”
 “개인화기를 제외하면 다이너마이트 일곱 개와 아날로그타이머를 사용하는 C4 두 개가 전부야.”
 “너무 적은데.”
 크레스니크가 내뱉은 그 짧은 한마디에 암담한 표정을 짓는 두 남자.
 그러나 그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충분해.”
 그 한 마디에 함께 있던 두 남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크레스니크가 누구인가?
 다들 그를 뭐라고 부르고 있던가?
 바로 역전의 용사가 아닌가!
 크레스니크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였다.
 “적어도 받은 만큼은 돌려줘야겠지?”
 
  * * *
 
 한 남자가 탱크의 장갑 위에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잠이 든 것은 아니었다. 그는 현재 자고 싶어도 잠을 잘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는 언어권에 따라 여러 명칭으로 불리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그를 거버너 오브 워(Governor of War)라고도 불러 댔으며, 또 누군가는 그를 독재황제(獨裁皇帝)라고도 부르곤 했다.
 단 한 사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기엔 하나 같이 강렬하고 그 수도 많았지만, 이 인간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미치광이 전술가 안현준.
 클렌 FK(Freelance Killers)의 모든 것을 쥐고 있는 총대장.
  전국각지에서 뜻이 맞는 동료들을 끌어모아 젊은 나이에 이미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가히 대부대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해진 조직을 지배하는 독재자. 그런 그가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잠을 잘 리가 있겠는가?
 전쟁이란 그에게 있어 마약과도 같은 존재였다. 총성과 화약의 잔향은 그의 마음을 고양시켰으며, 적들의 비명과 폭격기의 엔진소리는 그의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런 남자가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잠을 잘 수 있을 리가?
 지금의 휴식은 그저 이 흥분감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려는 방편에 불과했다.
 그러나 역시나 맘 편히 쉴 수는 없었다. 극도로 예민해진 그의 감각은 이렇게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주변의 모든 정보를 그러모아 뇌에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촤라라락, 캉!
 ‘내 옆에서 세 번째? 탱크에 걸쳐져 있던 사슬을 풀었나 보군.’
 끼릭, 끼릭, 끼릭.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총에 화약 잔재가 남아 노리쇠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소리······. 이번 게 끝나면 싹 굴려야겠어.’
 말도 안 되는 집중력과 그를 토대로 한 정확한 분석. 그 경지는 이미 인간의 것이라곤 보기 힘들 정도였다.
 바로 그때 그의 귀에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이 가볍고 뛸 때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보니 전투요원은 아니군. 게다가 뛰는 소리가 어색한 것을 보면 상반신은 고정된 상태. 무언가를 들고 있군. 하지만 저렇게까지 뛸 수 있는 걸 보면 무거운 것도 아니고······.’
 그제야 눈을 뜨는 그. 그러자 누군가가 소리쳤다.
 “대장, 대장!”
 “시끄럽게 소리치지 마. 잠 안 들었으니깐 작게 말해도 들린다고.”
 “아, 옛.”
 안현준이 있는 곳까지 헐레벌떡 달려온 부관은 한껏 긴장하며 정자세를 했다. 그러자 안현준은 누워있는 자세 그대로 질문했다.
 “그래서. 뭔 일이냐?”
 “아직 남아있는 놈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놈들 그냥 단숨에 쓸어버리라고.”
 그게 뭐 어쨌냐는 듯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 그의 손이 악단을 지휘하듯 허공에서 춤췄다.
 “뭐를 위한 물량공세냐? 뭐를 위한 인해전술이냐? 다 이럴 때를 위한 거 아니냐?”
 “그, 그게······.”
 “싹 쓸어버려.”
 그의 명령은 간단명료했다. 하지만 그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부관은 여전히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적들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릅니다.”
 “탐지 레이더는?”
 “안 잡힙니다.”
 “열 감지 탐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흐음~?”
 그제야 약간의 관심이 생겼는지 눈을 뜨는 그.
 “그래 봐야 아직 도시 안에 있겠지. 도시에 폭격을 가해버려.”
 “그럼 이번 전쟁은 적자가 나게 됩니다? 더군다나 전후처리까지 계산하면······.”
 “꼬투리를 남겨 놓는 것보단 났잖아. 쓸어버려.”
 “알겠습니다.”
 무차별폭격이라는 엄청난 명령을 일말의 표정 변화도 없이 하달하는 안현준. 그의 그런 모습은 대부대의 총대장만이 가질 수 있는 그릇마저도 초과해버린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나 진중하고 믿음직한 총대장이 왜 미치광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걸까?
 그런데 그때였다. 또 다른 부하가 그가 있는 곳으로 뛰어와 말하였다.
 “대, 대장님!”
 “왜 또? 뭐야?”
 “시가지 동지구 백화점 근처에 수색을 나갔던 이들이 전멸당했습니다. 아무래도 잔존 세력은 그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전멸?”
 “네, 그리고······.”
 잠시 숨을 돌리는 것인지 심호흡을 하는 부하의 행동에 안현준을 미간을 좁혔다. 그다음 말을 빨리 이어야 할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그다음 순간 부하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정말 예사 것이 아니었다.
 “전멸을 당한 이들의 마지막 무선을 통해 적들의 잔존병력 중 ‘역전의 용사’가 있는 것이 파악되었습니다.”
 “뭣!”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호칭이 부하의 입에서 튀어나오자 그제야 놀라며 몸을 일으키는 안현준.
 역전의 용사라면 FK의 총대장인 안현준만큼이나 유명한 이였다.
 실력이든 뭐든 뭐 하나 꿀리는 게 없으며, 수십 번의 불리한 전투에서 그때마다 아군을 승리로 이끈 기적을 부르는 용병!
 갑자기 이번 전쟁에 흥미가 생긴 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좀 재밌네. 그래, 어떻게 된 상황이지?”
 “혹시 남아있을지 모르는 적 병력을 찾으려고 여기저기로 그······. 병력! 병력을 쫙 보냈습니다. 그런데 동지구 수색을 나갔던 수색대가 적을 찾아냈다고 전하더니······.”
 “계속 보고해.”
 “그······. 거의 2분 지나고? 폭음과 함께 전멸했습니다.”
 “2분이라고?”
 부하의 말에 안현준은 잠시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기관총과 유탄발사기로 무장한 열여섯 명의 중무장수색대가 전멸하는데 고작 2분이 걸렸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건가?
 도대체 적의 잔존병력은 그 수가 얼마나 되는 것일까?
 화기는 어느 정도를 소지하고 있는 거지?
 지금까지 쭉 거기에 숨어있던 건가?
 여러 가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안현준은 이내 냉정함을 되찾곤 중얼거렸다.
 “역시 대단해. 크레스니크. 여전히 훌륭해. 재수 더럽게 없지만. 기적을 부르는 새끼라고 불리기에 충분한 놈이야. 그래! 충분해!”
 드디어 어느 정도 상대할만한 인물이 나타나자 기분이 좋아진 그는 탱크 위에서 뛰어내리며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폭격은 중지다. 이번엔 내가 직접 간다. 놈들을 데려와.”
 “노, 놈들이라면 설마······?”
 크레스니크에게 흥미가 동한 것인지 명령을 철회하는 안현준. 그런데 그의 새로운 명령에 부하들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있었다. 그가 이런 상황에서 데려오라는 인물들은 단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FK 내에서도 경외와 경멸을 동시에 받는 단 하나의 집단. 안현준의 개라고도 불리는 그의 친위대들.
 그러나 안현준은 누가 놀라거나 말거나 일말의 신경도 쓰지 않으며 즐거운 듯이 소리쳤다.
 “하하하하하! 거나하게 놀아보자고! 역전의 개새끼!”
 
  * * *
 
 “녀석들은 온다. 분명히.”
 크레스니크의 단언에 잔뜩 긴장한 두 남자는 침을 삼켰다.
 근처를 배회하던 적들을 소극적인 전투로 유인한 뒤 트랩으로 처리한 것이 벌써 11분 전의 이야기였다.
 잔뜩 긴장해있는 두 남자를 보며 크레스니크는 문득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그에겐 담배는커녕 라이터조차도 없었다. 보통 영화 같은 것에서는 전쟁터에서 담배를 피우며 서로 얘기를 하거나 시간을 죽이는 군인들의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사실 전쟁터에 가져가서는 안 되는 물건 중 하나가 바로 담배였다.
 담배 연기 때문에 적들에게 자신들의 위치가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고,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그 자체가 공격할 시간을 만들어주는 신호였으니까. 또한, 잘못하면 담뱃재나 꽁초에 화기들이 폭발할 위험도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실 이 정도로 철저하게 따지는 사람은 크레스니크 정도밖에 없었다. 그는 돈이 걸린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완수하는 프로니까.
 크레스니크는 괜히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 근처에는 무너진 잔해물이 많으니까 탱크 접근은 불가능해. 그러니까 녀석들은 뛰어난 개인화기를 지닌 중무장부대를 대량으로 보내겠지.”
 “그러면······.”
 “한마디로 엄청난 물량 공세가 예상된다는 거지.”
 꿀꺽.
 조용한 가운데 크게 울린 침 넘김 소리. 그 가운데 크레스니크는 오히려 눈웃음을 지었다.
 “뭐, 폭격이나 그런 걸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지. 녀석의 성격을 생각하면 100% 폭격인데 조용하잖아?”
 “······.”
 방금 건 가벼운 농담인 거 같았지만 그것에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때문에 머쓱해진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가 믿을 거라곤 총보단 남은 폭탄뿐이라는 거지. 작정하고 쳐들어오는 녀석들한테 총은 안 통할 테니까. 겁나 비싼 방탄복 입고 올걸?”
 “하하, 하······.”
 “아, 그렇다고 내 것까지 안 통한다는 건 아니니까. 난 총 쏠 기회가 있으면 쏠 거야.”
 슬그머니 눈웃음을 지으며 묵직한 대물저격총을 들어 올리는 그.
 그래, 애초부터 전신이 철로 만들어져 있는 장갑차를 목표로 정하고 만들어진 이 괴물 앞에서 어떤 방탄복이 착용자를 지켜낼 수가 있을까?
 혹시라도 그런 게 가능한 물건이 있어봤자 총알에 얻어맞은 충격으로 장기가 엉망이 될 거다. 뼈도 산산조각으로 박살 날 거고.
 “아무튼······. 그건 끝났지?”
 “지정해준 위치에 다 하고 왔어.”
 “나도 마찬가지야.”
 갑작스러운 질문에 긍정의 뜻을 보이는 두 남자. 게다가 한 남자는 어째서인지 언뜻 비장미까지 엿보이고 있었다. 이들은 도대체 무슨 작전을 짜고 있는 걸까?
 “후우······.”
 잠시 짧은 한숨을 내쉬는 크레스니크. 그는 얼굴에서 비장미가 흐르고 있는 남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였다.
 “미안. 아니, 미안합니다.”
 “미안하긴! 나중에 밥이나 한턱 쏘라고!”
 쓸데없는 말 대신 나중에 밥이나 사달라는 그에게 크레스니크는 한 손을 내밀었고, 상대방 또한 손을 내밀어 악수를 받아주었다.
 그러자 크레스니크의 마지막 말이 그의 귓가에서 울렸다.
 “무운을 빕니다.”
 그리고 그 시각, 세 사람이 있는 곳으로 진입을 시도하는 이들이 있었다.
 “엄폐물들이 장난 아니게 많네. 이지경이 될 정도인데 저 백화점은 왜 안 무너진 거지?”
 하나 같이 중무장한 군인들을 병풍처럼 세워놓고 느긋하게 주변을 구경하는 한 남자.
 바로 안현준과 그의 친위대라 불리는 병사들이었다.
 안현준은 뒤로 손짓을 하며 물었다.
 “그 새끼들 여기에 있다고?”
 “보고서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그래?”
 부하의 보고에 비릿한 웃음을 머금는 그. 인간의 표정에서 피비린내를 느낄 수가 있다면 딱 저런 얼굴이리라.
 그런데 명색의 친위대라면서 지켜야 할 대상이 가장 선두에서 나가는 걸까?
 그것에 대해선 안현준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편이 가장 빠르고 속 시원할 것이다.
 그래봤자 돌아오는 대답이라곤 개 같은 소리를 지껄이지 말라거나 감히 자기가 뒤로 물러나라는 뜻이냐는 등 헛소리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들의 눈앞에 목적지인 백화점의 정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건물 또한 상당한 타격을 받았는지 건물 외벽에 금이 가고, 상층부가 약간 허물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건물에 금이 가고 조금이라도 무너져 내렸건만 이 건물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주변에서 무너져 내린 다른 건물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안현준은 잠시 멈춰 서 그 건물을 경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이거 졸라 튼튼하게 지었나 보네.”
 그러곤 뒤를 돌아 자신의 친위대에게 명령했다.
 “내가 내릴 명령은 잘 알고 있겠지?”
 그의 질문에 친위대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안현준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쓸어버려.”
 그 명령에 가장 선두에 서 있던 친위대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대전차로켓에 매달곤 백화점까지 발사했다.
 퓌유우웅~!
 그것의 정체는 놀랍게도 소형수류탄이 잔뜩 매달려 있는 두꺼운 와이어였다. 그리고 더욱 경악스러운 건 로켓에 매달린 와이어를 따라 날아가는 그 수많은 수류탄에선 안전핀이 차례대로 뽑히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는 거다.
 오해는 하지 마라.
 안전핀이 빠지고 있다는 게 경악스럽다는 게 아니다. 여기서 경악해야 할 부분은 지금 날아가고 있는 십수 개의 수류탄이 죄다 안전핀이 뽑혀있다는 거다!
 콰광! 쾅! 콰과과광!
 역시나 연달아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한 로켓과 수류탄들. 만약 저곳에 부비트랩 같은 거라도 있었다면 폭발의 충격에 그냥 박살 나버렸을 거다.
 게다가 이것은 엄폐물들 뒤에 숨어있는 적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데에도 효과적인 파괴 전술이었다.
 그리고 그 효과를 입증하듯 수류탄들이 터지는 소리에 섞여 커다란 폭음이 들려왔다. 수류탄보다 확실히 소리도 크고, 진동까지도 유발할 정도의 폭발이었기에 안현준은 엄폐물 뒤에서 침을 삼켰다.
 ‘재미있군.’
 분명 적들이 매설해놓은 기관폭탄의 일종이리라. 그리고 그의 생각은 정확하였다.
 하지만 그 정확함으로 인해 놓치는 것이 있다는 건 아직 모르고 있었다.
 안현준은 먼지구름이 채 사라지지도 않은 그곳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가라! 방해되는 걸 모조리 부숴버려!”
 그 말이 신호라도 되는 걸까? 대기하고 있던 친위대들은 안현준과 소수의 인원만을 남겨 놓은 채 전부 그 먼지구름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시각.
 이미 작전에 돌입하여 몸을 숨긴 채로 주변 상황을 주시하던 크레스니크는 갑작스러운 안현준의 등장에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설마 설마 했더니 진짜로 왔네!’
 지휘관들은 보통 작전을 짤 때 아주 당연하게 자신들을 보호하며 자신들의 거점을 중심으로, 혹은 적이 어디서 올 것인지 알 수 있는 경우에는 목진지에 부비트랩을 설치하는 편이다. 그것이 전쟁의 정석이자 기본이니까.
 그런데 크레스니크는 그런 전쟁의 정석을 과감히 깨버렸다. 그는 부비트랩의 안쪽이 아니라 오히려 바깥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주 먼 거리도 아니었다. 설마 어느 적이 트랩의 안전지대 밖에 적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겠는가?
 그러나 이것도 어찌 보면 실책이라면 실책이었다.
 아니, 그의 말마따나 뛰어난 개인화기를 지닌 중무장부대가 온 것은 맞았지만, 저건 뛰어나도 너무 뛰어났다. 솔직히 말해 친위대가 하고 있는 짓은 보통사람으로선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뿐이니까.
 그야말로 폭력을 위해 기행을 일삼는 미치광이들.
 “친위대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안현준까지 납시다니······. 설마 나 때문인가?”
 또다시 담배 한 모금이 간절해진 한영이었지만 아무리 간절하다 한들 없는 건 없는 거였다.
 그런데 이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놀라울 정도로 침착하게 안현준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이 암담한 현실은 아직까지도 그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도대체 이 남자는 무엇을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는 걸까?
 이 상태로 곧바로 안현준을 저격하는 것도 보기 좋으 그림이겠지만, 솔직히 말해 저 미치광이가 무얼 준비하고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대물저격총의 탄환조차 튕겨내는 비정상적인 무언가를 준비했다고 한들 전혀 이상하지 않은 게 저 안현준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그림자의 어둠 속에 녹아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대물저격총으로도 죽일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면, 더 확실한 방법으로 죽이면 되지 않은가?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돼. 기다리기만 하면······.’
 그가 알고 있는 안현준이란 인간의 성격상 절대로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 거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멋지게 적중했다.
 “어라? 이게 왜 여기 떨어져 있지?”
 예상대로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것’에 다가가는 안현준. 그런 그의 뒤를 그의 친위대원이 말없이 따르고 있었다.
 “P90? 녀석들이 떨어뜨린 건가?”
 그것은 바로 FN P90이라는 이름의 기관단총이었다. 직선보다는 곡선 위주로 만들어진 그 세련된 외관은 건물의 잔해와 쓰레기들 사이에서도 그 매력을 유감없이 뽐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쟁에 미친 안현준의 이목을 잡아끌기에 충분하였다.
 안현준이 전쟁과 무기에 대해 논하기를 좋아하는 밀리터리 마니아라는 건 꽤나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런 인간이 20세기에 만들어진 손꼽히는 예술품을 보고 그냥 지나칠 리가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튜닝 된 물건도 아니고 순정이라니?
 결국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총기를 집어 드는 그.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콰광!
 “뭣!”
 갑작스러운 폭음에 놀란 안현준과 그의 친위대원이 뒤를 돌아보았다.
 쿠구구구구구구구궁!
 그곳에는 조금 전까지의 위용이 무색할 정도로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는 백화점이 있었다. 그 웅장한 광경에 놀란 안현준이 소리쳤다.
 “말도 안······!”
 그러나 그는 그 말을 미처 다 이을 수가 없었다.
 째깍, 째깍, 째깍!
 콰과앙!
 FN P90을 줍겠답시고 무방비하게 다가간 안현준은 시한폭탄의 스위치를 건드렸고, 그가 한눈을 판 사이 어느새 시간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크레스니크는 크고 작은 폭발이 일어나는 두 지점을 바라보며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엿 먹어라, F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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