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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2020.05.11 조회 32,416 추천 513


 불행은 겹쳐서 온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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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말이 나에게도 해당하는 줄은 정말 몰랐다.
 약혼까지 한 연인의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 맡고 있던 프로젝트 무산. 직책 강등. 3년 넘게 키운 걸그룹 담당 해임.
 이 모든 게 무려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다.
 
 “알아들었으면 이제 나가 봐.”
 
 한국에서도 순위를 다투는 글로벌 매니지먼트 YP의 대표 이한성.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직책 강등은 그렇다 해도 초기부터 제가 키워온 그룹에서 손 떼라는 건 정말 너무 하지 않습니까?”
 
 이미 이성적인 생각은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살아오면서 이뤄놓은 전부를 내놓으라는데 이성적이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너무하다고? 지금 김 팀장, 너 때문에 회사에서 입은 손해가 얼만지는 알아?”
 
 훤칠한 키에, 멋들어진 양복. 그 사이로 보이는 탄탄한 몸매. 부장 타이틀보다는 배우 타이틀에 더 걸맞은 사내. 한 부장이 나를 보며 성을 낸다.
 회사에서 입은 손해. 맞는 말이다.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던 6인조 걸그룹 ‘레아’ 의 네 번째 앨범도 완전히 무산되었고, 내가 맡고 있던 배우는 지금 실시간 검색어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으니까. 물론 안 좋은 이유로.
 
 “당분간 이채연만 신경 써. 오늘은 그만 들어가 쉬고.”
 
 이한성 대표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 *
 
 일찍 퇴근을 하고 근처 포차로 발길을 옮겼다. 도저히 맨정신으로 집에 들어갈 자신이 없어서.
 한 잔이 두 잔 되고, 한병이 두 병 되고. 안주도 없이 술잔을 계속 기울였다.
 으음. 내일도 출근 해야 되는데. 이렇게 마시면 안 되는데......
 
 "김 팀장님."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반사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취해서 그런지 시야가 흔들린다. 애써 눈에 힘을 주었다.
 깔끔한 정장에 화장기 없는 맨얼굴. 고양이처럼 위로 올라간 눈꼬리.
 비슷한 시기에 YP에 입사해서 고작 3년 만에 팀장까지 올라간 홍보팀 에이스, 김나영 팀장이 눈에 들어온다.
 
 "김나영 팀장님......? 여긴 어쩐 일로?"
 "개인적으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김나영 팀장이 자연스럽게 빈 술병이 가득 놓인 테이블 맞은편에 앉는다. 그리고는 대뜸 핸드폰을 얼굴에 들이민다. 자연스레 핸드폰 쪽으로 시선이 움직였다.
 호텔 로비로 추정되는 장소에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남녀.
 사진 속의 둘은 뭐가 그리도 행복한지 서로 진득한 시선을 보내며 활짝 미소짓고 있다.
 
 "······ 이게 뭡니까."
 "이새롬 실장과 한성호 부장이에요."
 
 술잔을 쥔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다.
 예전에 선물해주었던 귀걸이를 하고 잘 입지도 않는 원피스를 걸치고. 약혼녀가 특유의 보조개를 입에 걸친 채 한 부장을 바라보고 있다.
 
 "왜 저한테 이런걸 보여 주시는 겁니까?"
 "후배가 바람피우는 걸 목격했는데 상사로써 그냥 지나치기에는 마음에 걸려서요."
 
 대체 뭐가 마음에 걸린다는 거지?
 이새롬과 내가 연인관계라는 건 같은 회사고 부서 내 상사니까 알게 됐다고 치자.
 그럼 내가 여기서 술은 마시는 건 대체 어떻게 알고 찾아온거지?
 
 "그리고 이채연 마약 스캔들, 그거 조작이에요."
 "네?"
 "회사 내에서 꾸민 조작이요."
 
 한창 잘나가는 여배우가 술집에 갔다는 것도 문제가 되는데 내가 맡은 배우는 거기에 마약 스캔들까지 추가가 됐다.
 이미지가 나락으로 추락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고 지금 회사 내에서는 CF 관련 소송 문제로 난리도 아니다. 근데 그게 전부 조작이라고?
 
 "아까부터 자꾸 알 수 없는 말만 하시는데···"
 “일단 이걸 좀 들어보시죠."
 
 김나영이 다시 핸드폰을 툭툭 건드린다.
 
 【 약물을 쓰든 몸에 마약을 집어넣든 내 알 바 아니고, 이채연 확실히 묻기만 해. 그래, 결과만 나오면 바로 해외 계좌로 약속한 금액 입금해 준다니까? 】
 
 핸드폰 너머로 새어 나오는 음산한 목소리에 침이 저절로 넘어간다.
 이채연을 묻어? 해외 계좌?
 
 "이 목소리 설마···?"
 "네, 맞아요. 한 부장이에요."
 
 올라왔던 술기운이 확 달아난다.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내 약혼녀와 바람이 나고 이채연을 묻기 위해 사람까지 고용해서 조작을 하고.
 지금까지 김나영이 한 말을 정리해보면 오늘 일어난 악재는 전부 한 부장하고 관련이 있다는 건데.
 대체 왜? 내가 한 부장의 철천지 원수라도 되나?
 
 "이건 대체 어디서 나신 겁니까?"
 "그게···"
 
 김나영이 떨떠름하게 입꼬리를 매만진다. 얘기하기 싫다는거구나.
 
 "알겠습니다. 그럼 그 녹취록 저한테 보내주세요. 제가 내일 대표님 찾아가서 전부 말하겠습니다."
 "소용없어요."
 "김 팀장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이한성 대표랑 한세연. 그 사이에서 나온 자식이 한성호 부장이에요."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내 마음속의 지우개, 그 영화에 나온 그 한세연 말하는 겁니까?"
 "잘 아시네요."
 
 한세연은 80년대 영화계에 한 획을 그은 배우다.
 그녀의 첫 작품 '내 마음속의 지우개' 는 최고의 로맨스 영화라는 타이틀과 함께 동남아시아 전체에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키며 큰 파급력을 몰았었다. 같은 세대가 아님에도 그녀가 나온 영화를 몇 번이고 돌려 봤을 만큼.
 그 한세연이 이한성 대표의 애를 가졌고, 그게 한 부장이라고?
 그렇다는 건 설마 대표도 마약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건가?
 이 사건 때문에 바닥까지 떨어진 회사의 이미지와 실질적인 주가 폭락까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한성 대표가 이런 일을 꾸밀 이유 같은 건 생각나지 않았다.
 자연스레 핸드폰 쪽으로 손이 움직인다. 손가락 사이로 핫 이슈 기사란의 글자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연예 뉴스 HOT! 탑 배우 L 양, VIP 술집 마약 현장에서 체포】
 
 - 금일 23시, 경찰은 고급 술집에서 실신하듯 잠들어 있는 탑배우 L 양을 체포했다. 검찰의 발표 결과 그녀의 몸에서 소량의 마약 성분이 검출됐으며······
 
 헤드라인을 그대로 복붙한듯한 기사를 읽고 있자니 숨이 차오른다.
 어제 밤 10시경 이채연한테 전화가 왔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 도와달라. 분명 이채연은 울먹이며 그런 말을 했었다.
 뒤늦게 머리가 새하얗게 질려간다.
 
 "레아의 막내 이유나가 탈퇴한 것도 한 부장 짓이에요."
 "잠, 잠시만요. 유나요? 그럼 지금 유나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저도 몰라요."
 
 얼굴에 스트레이트를 연속으로 맞는 기분이다.
 마셨던 술이 전부 올라 올 것 같다.
 엄청나게 공들인 네 번째 앨범이 무산된 이유는 다름 아닌 막내의 그룹 탈퇴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녀석은 그 이후로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다만 이건 알아요. 만약 오늘 나눈 대화가 다른 곳에 발설되거나 제 이름이 언급되면 이런 호의는 앞으로 없을 거라는 걸."
 
 김나영 팀장이 그 말을 하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도 이 상황에 술이나 퍼마실 수는 없어서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상이 빙빙 도는 것 같다.
 술값 계산을 하고 김나영을 따라서 밖으로 나왔다. 찬 공기에 정신이 조금은 깨어나는 느낌이다.
 대체 김나영이 왜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해 준 건지도 잘 모르겠고 지금까지 한 말 중 어디까지가 사실인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한 부장이 정말 나쁜 개자식이라는 거다.
 
 "이런 얘기 쉽지 않으셨을텐데. 감사합니다."
 "마음 잘 추스르시고 내일 회사에서 봐요."
 
 김나영이 고개를 까닥이고는 몸을 돌린다.
 멀어져가는 김나영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나도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 걸을수록 한 부장 그 인간을 향한 증오심만 거대해졌다.
 내 손에 들려있는 모든 걸 빼앗겨 버렸는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나를 미치게 했다.
 
 『검찰 조사 끝나면 집에 있어. 내가 아침에 데리러 갈게.』
 
 이채연에게 그런 문자를 남기며 한적한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귓가에 거대한 클랙슨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빠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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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은 겹쳐서 온다는 말이 있다.
 오늘은 그 말을 몸소 체험하는 날인가 보다.

댓글(40)

견정태    
프롤로그로는 볼만하네요 ㅎㅎ 근데 제목어그로가 너무 심각해서 이게 복이 될지 화가 될지는 좀 두고봐야겠군요
2020.05.11 17:24
g8************    
제목을 바꾸시는것을 권장합니다 안그러면 욕 먹을 수도 있습니다
2020.05.12 05:45
앵카    
처녀작이신지 모르겠지만 일단 필력 좋으신것 같습니다. 범람하는 양판소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 탑매랑 비슷한 제목으로 간 것도 또 인물정보가 나오는 상태창의 등장도 뭐 그러려니 하겠는데...(그래서 재밌게 읽으려고 마음의 준비를 하려던 찰나) 인물 정보가 지나치게 상세합니다. 저렇게 상태창이 세세한 것까지 전부 알려주는 소설이 과연 몇 회까지 긴장감을 유지할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탑매가 재밌었던 이유는 미래 노이즈가 모든걸 다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도 일단 기대하고 선호작 누르고 갑니다. 좋은 결과 있으시길~^^
2020.05.12 19:10
테리빈스    
상태창은 많은 고민끝에 더욱 간결하고 깔끔하게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조언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꾸벅)
2020.05.14 11:42
mel    
제목이 장르를 모르겠는 혼종이라서 진입장벽이 너무 높습니다.. 바꾸시는걸 추천드려요
2020.05.13 22:11
[탈퇴계정]    
탑매.. 는 어그로로 쓰기엔 너무 지나친, 애독자들의 역린 같은 이름임
2020.05.13 23:35
루빼    
답방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은 이세계물의 클리셰같네요 여기서 약간 뻔하다는느낌을 조금 받고 왠지 모르게 어디서본 라노벨같은 전형적인 프롤로그 같았습니다.
2020.05.14 07:34
드래곤육포    
읽기 시작합니다아~
2020.05.14 07:39
너튭작성TV    
다른 작가님 글 보다 우연히 건너건너 왔습니다. 읽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2020.05.16 01:36
흑돌이    
잘 보고 갑니다.
2020.05.1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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