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신권무쌍

#001화.

2020.05.14 조회 627 추천 3


 #001화.
 
 
 
 
 
 “이번 일이 잘 마무리되어 다행입니다. 중원에서 열 손가락에 꼽힌다는 금가장이 도와준다니 저희도 한시름 놓았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덕분에 저희 금가장도 세력을 더 키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으니 저희가 고마워해야지요.”
 “별말씀을.”
 두 명의 청년과 한 명의 여인이 객점 안에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선이 굵은 것이 남자답게 생긴 두 청년은 깔끔한 청색 경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여인은 분홍 빛깔의 화사한 경장을 입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모습이었다. 오뚝한 콧날에 큰 눈, 그리고 맑은 눈망울을 가진 그녀는 매우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옮겨갔다.
 “그러니까, 지금 돈도 없이 밥을 먹었다는 거냐?”
 “돈은 있소.”
 어린 소년의 말에 객점 주인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사리 같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일 문짜리 동전 두 개가 올려 있었다.
 “네가 먹은 음식 값은 족히 열다섯 문은 된다. 고작 이 동전 두 개로 어떻게 할 셈이냐?”
 “지금 생각 중이오.”
 “허참, 너 이 녀석! 혹시 상습범 아니냐? 그렇지? 상습범이야!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네 녀석을 관아로 끌고 가서 볼기짝을 쳐줘야겠다! 어린놈이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가자!”
 객점 주인이 소년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안 가겠다고 버티고 선 소년의 힘에 객점 주인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드르륵!
 “영아야?”
 “잠시만요.”
 금영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리로 다가가서는 객점 주인에게 말했다.
 “아직 어린애한테 너무 심한 것 아닌가요?”
 “아, 아가씨. 그게··· 이 녀석이······.”
 “알아요. 들어서 대충 알고는 있어요. 그래도 아직 열 살도 안 된 어린애 같은데 조용히 어르고 타일러서 보내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상습범으로 몰아요?”
 그녀의 말에 객점 주인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대답도 못하고 있었다.
 “열다섯 문이라고 했죠?”
 “예.”
 “세상에, 고작 열다섯 문 때문에 어린아이를 이렇게 대하는 게 말이 돼요? 아무리 정 없는 세상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네요.”
 금영령이 자신의 전낭에서 돈을 꺼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객점 주인도 무안했는지 살짝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자요, 거스름돈은 됐어요.”
 금영령이 객점 주인에게 은자 한 냥을 건네며 말했다. 객점 주인은 황송하다는 듯 두 손으로 은자 한 냥을 받아 재빨리 자신의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얘, 부모님은 어디 있니?”
 금영령이 쪼그려 앉아 소년과 눈높이를 맞추며 물었지만 소년은 묵묵부답이었다.
 “밥은 많이 먹었어?”
 이번에도 역시.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마냥 귀엽게 보였는지 그녀가 미소를 지었다.
 화사하게 내리쬐는 햇살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그녀의 미소에도 소년은 여전히 불편한 표정이었다.
 “자, 이리 와. 좀 더 먹어.”
 금영령이 소년의 팔을 잡아끌었지만 이번에도 버티고 서 있었다.
 “어머, 어린애 힘이 뭐가 이렇게 세니? 너, 보기랑 다르구나?”
 금영령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창피한 모양인데 걱정하지 마. 자, 저기 아저씨들 보이지? 저기에 맛있는 음식이 많이 있어. 그러니까 같이 가자.”
 금영령이 아저씨라 칭한 청년들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자, 어서.”
 그러자 처음에는 안 가겠다고 버티던 소년이 그녀를 따라 발걸음을 떼었다.
 ‘훗. 역시 아이들은 별수 없다니까.’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데에는 먹을 것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울던 아이들도 맛있는 것을 준다고 하면 눈물을 뚝 그치고 언제 울었냐는 듯 해맑게 웃는다.
 말투부터 뭔가 조금은 특별해 보이는 소년이었지만 역시 아이는 아이라는 생각에 그녀가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자, 먹어.”
 소년을 식탁으로 데려온 금영령이 음식을 가리키며 말했다. 소년은 주저하지 않고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입에 가져갔다.
 금영령은 식사를 마저 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소년의 먹는 모습만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소년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밥 먹는 사람을 빤히 바라보는 것은 실례 아니오?”
 “어? 어, 그러네.”
 금영령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녀의 오라버니인 금자천이 말문을 열었다.
 “꼬마야, 그런 말투는 도대체 누구에게 배운 것이냐?”
 “말투? 내 말투가 어떤데 그러시오?”
 오히려 되묻는 소년을 보며 금자천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다시 물었다.
 “나이 어린 꼬마가 그런 말투를 쓰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냐?”
 “나이 어린 꼬마? 내 한 가지 묻겠소. 당신은 몇 살이오?”
 금자천은 찌푸린 얼굴로 답했다.
 “올해 스물이다.”
 “스물? 그럼 나와 동갑이군. 나이 스물이면 어른이라 할 만하니 내 말투는 전혀 이상할 것 없소.”
 소년의 말에 세 사람은 황당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거짓말은 나쁜 버릇이다.”
 “거짓말 아니오.”
 태연한 소년의 말을 세 사람은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질 않았다.
 “거짓말이 분명합니다. 어른에게 거짓말을 하다니 못된 것만 배웠구나.”
 금자천의 옆에 앉아 있던 청년의 말에 소년이 슬쩍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음식을 입에 가져가며 말했다.
 “믿기 싫으면 믿지 마시오. 나도 못 믿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말하기 싫소.”
 소년의 대꾸에 세 사람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귀엽네.”
 이내 미소를 머금은 금영령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으나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소년이 그 말을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탁!
 갑자기 소년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사내에게 귀엽다는 말은 하는 게 아니오.”
 “미, 미안.”
 여인이 당황하여 말했다. 그러나 소년은 입맛이 떨어졌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먹었소. 당신들, 어디 사는 사람들이오?”
 “금가장.”
 “이 빚은 꼭 갚겠소.”
 그렇게 말한 소년이 객점을 빠져나갔다. 그가 나간 자리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은 잠시 동안 멍한 표정을 지었다.
 촌각의 시간이 흐르고 정신을 차린 금영령이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이름도 못 물어봤네. 재밌는 아이였는데.”
 
 함께 만났던 사내를 돌려보내고 금영령과 금자천은 금가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금가장으로 향하는 동안 두 사람의 화두는 단연 객점에서 만났던 소년이었다.
 “아까 그 애가 한 말, 사실일까요?”
 “거짓말이겠지.”
 “그렇겠죠? 하긴··· 스무 살 먹은 사람이 열 살짜리 꼬마 아이의 몸이라니.”
 “차라리 백 살 넘은 고수가 반로환동했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겠구나.”
 금자천의 말에 금영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소년의 말을 거짓말이라 믿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크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속았다고 하여도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천하상단하고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그 일이라면 벌써 말했잖아요. 절대 그럴 마음 없어요.”
 금영령이 단호한 어투로 답하자 금자천이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네 마음은 안다. 나도 절대 그런 놈에게 너를 시집보내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천하상단이 워낙 드센 곳이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구나.”
 “금가장이 그런 곳에 당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네요.”
 “물론 그렇겠지만, 요즘 천하상단이 녹림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소문이다.”
 금자천의 말에 금영령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너무 걱정 마라. 나도 너를 그런 개망나니에게 보내고 싶지는 않으니까. 아버지와 상의해서 어떻게든 해보마.”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는지 여전히 그녀의 안색은 어두웠다.
 
 두 사람이 금가장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명의 청년과 두 명의 중년인이 금가장 앞에 나타났다.
 “하하하! 여기가 내 색시 될 사람이 사는 곳인가?”
 청년이 금가장 앞에서 큰소리를 쳤다. 청년의 뒤에 서 있는 두 사람은 검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림인인 것 같았다.
 “문 열어라! 천하상단의 엄주명이 왔다! 금영령을 데리러 왔다!”
 백주에 그런 소리를 하면 부끄러울 법도 하건만 엄주명은 아무렇지도 않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끼이이익!
 그때 금가장의 문이 열리며 금자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군.”
 “어이쿠! 형님 나오셨습니까?”
 “누가 그대의 형님인가!”
 금자천의 호통에 엄주명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형님 대접 해줄 때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게 좋을 거야.”
 “흥! 네깟 놈에게 내줄 동생 없으니 그만 물러가라!”
 “천하상단과 사돈 관계가 되면 금가장에게도 좋은 일일 텐데?”
 “천하상단에 일방적으로 좋은 것이겠지.”
 실제로 천하상단은 중원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상단으로 산서지방의 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금가장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 말··· 후회 안 할 자신 있나?”
 엄주명이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고, 두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일월쌍검(日月雙劍). 이름은 들어봤겠지?”
 금자천의 얼굴이 흑빛이 되었다. 일월쌍검이라면 이곳 산서성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무인이었다. 절정까지는 아니었지만 일류 급은 능히 될 법한 고수들이었다.
 “됐어요.”
 “오∼! 금 소저.”
 엄주명의 얼굴이 밝아졌다. 금가장 안쪽에서 보고 있던 금영령이 직접 나선 것이었다.
 “오랜만이오.”
 “오랜만이긴 하지만 다시 안 봤어도 될 얼굴이네요.”
 “그런 섭섭한 말씀을. 우리는 부부가 될 사이 아니오?”
 엄주명의 말에 금영령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부부가 될 사이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지 않소?”
 “모르겠네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는 거예요.”
 “금 소저.”
 엄주명이 진지한 어투로 그녀를 불렀다. 그러나 금영령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고 있지 않았다.
 “이런 말 하기는 싫지만 계속 그러면 강제로라도 끌고 가겠소.”
 “흥! 누가 겁날 줄 아나요?”
 금영령은 당당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자결이라도 할 생각이었다.
 “겁낼 이유는 없소. 미래의 낭군님 곁으로 오는 것이니까. 부탁드리오.”
 엄주명의 말에 일월쌍검이 나섰다.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는데 그 앞을 금자천이 막아섰다.
 그러자 일월쌍검 중 월검(月劍)이 엄주명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자는 죽여도 되오?”
 섬뜩한 말이었다. 금자천도 금영령도 긴장한 기색이었다.
 “무슨 망발이냐!”
 금가장에서 무인 두 명이 뛰어나왔다. 금가장의 호위무사들을 책임지고 있는 섭일평과 채홍이었다.
 섭일평과 채홍이 일월쌍검의 앞을 막아서고 다른 금가장 무인 십여 명이 금자천과 금영령 앞을 보호하고 나섰다.
 “상인 가문의 무인들이라 그런지 잔챙이들밖에 없는 모양이군.”
 “일월쌍검이 언제부터 우리를 잔챙이라 불렀는지 모르겠구나!”
 섭일평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자신 혼자서 일월쌍검 두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힘들지 모르겠지만 채홍과 함께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잔챙이를 잔챙이라 부르지. 당연한 것 아닌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들이구나.”
 채홍이 자신의 검을 뽑으며 말했다. 섭일평도 검을 뽑았고 일월쌍검 역시 검을 쥐었다.
 네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언제라도 뒤섞일 것 같은 분위기가 잠시 동안 이어졌다.
 “너희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봐야겠다.”
 일월쌍검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에 섭일평과 채홍은 침을 한번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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