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영혼의 계약

1화

2020.08.26 조회 299 추천 1


 #001화
 
 
 
 
 
 프롤로그
 
 
 
 
 
 가난과 무능력으로 점철된 나의 인생이 어느덧 마지막 기로에 섰다. 저 끝도 보이지 않는 절벽 밑으로 한 발짝만 내딛으면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가난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부모가 가난했기에 나 또한 가난했다.
 가난은 나에게서 배움의 기회를 박탈했다. 어린 시절부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막노동꾼으로 살았다.
 일생에 단 한 번, 나에게도 기회가 온 적이 있었다. 사랑······.
 너무도 달콤했던 그때 그 시간은 영원히 치유할 수 없는 깊은 상처만 남겨놓고 망각의 그늘 속에 파묻혀버렸다.
 그때부터 나의 방황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술에 절어 막노동으로 모은 재산을 깡그리 날리고 길거리를 방황하며 행려병자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보내는 질시 어린 시선은 말 그대로 고통이었다. 이제 그런 고통은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된다.
 어느 날, 나는 피를 토한 채 길거리에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사람들의 신고로 난생처음 앰뷸런스를 타보았다. 나 같은 행려병자가 갈 곳은 무료로 치료해주는 국립병원뿐이었다.
 비좁은 6인실 병실에 드러누워 삼시 세 끼 제공되는 밥을 얻어먹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행복을 느꼈다.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의사는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그 가혹한 선고에 나는 아무런 말없이 병원을 나섰다.
 희망 따위는 더 이상 없었다. 제대로 된 삶을 한순간도 살아보지 못한 나에게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
 소용돌이치는 거센 바람이 야윈 내 몸을 흔들어댄다. 바람에 떠밀려 죽나, 스스로 발을 놀려 떨어져 죽나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오직 죽음뿐이다.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자살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바로 지옥이었기에 아무런 망설임도 없었고 미련조차 없었다.
 다만 한순간도 내 마음대로 살아보지 못한 것이 억울할 뿐이다. 그 때문에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혹시 악마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다음 생에는 내 멋대로 살 수 있는 힘과 기회를 얻는 조건으로 나는 망설임 없이 악마에게 영혼을 내어줄 것이다.
 하지만 악마가 뭐가 아쉽다고 나 같은 사람의 영혼을 받겠는가.
 나는 이승에서의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두 눈을 감은 채 천천히 한 걸음을 내딛었다.
 눈을 감고 걸어가는 이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진다.
 오른발, 왼발, 오른발······ 아직도 대지에 발이 닿아 있다.
 나는 다시 한 번 숨을 고른 후, 한 걸음을 내딛었다. 이제 내 몸을 받쳐줄 대지는 더 이상 없었다.
 후오오옹!
 거센 바람이 추락하는 나의 몸을 두들긴다.
 절벽을 향해 걸었던 시간만큼이나 추락하는 시간도 길게 느껴진다.
 환생은 믿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게 된다면 부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길 빌었다. 정말로 악마라는 존재가 있어 영혼을 원한다면, 소망을 이루어주는 대가로 나는 웃으면서 영혼을 팔 것이다.
 몸은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떨어지는 시간이 꽤 길었다.
 그 순간, 엄청나게 확대된 지면이 수직으로 솟구치며 내 육신을 꿀꺽 삼켰다. 나는 ‘억!’ 소리와 동시에 의식의 끈을 놓쳐버렸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이봐, 일어나라구!”
 난데없이 누군가 내 몸을 발로 차는 것 같았다.
 눈 뜨기가 귀찮았기에 나를 깨우려는 자의 행동에 짜증이 치밀었다.
 ‘빌어먹을 새끼! 왜 건들고 지랄이야.’
 나는 속으로 지금의 편안함을 방해하는 존재에게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날 깨우던 존재는 나의 바람과 달리 더욱 강한 발길질을 가해왔다
 “이봐, 일어나! 네가 나를 불렀잖아! 네가 원하는 삶을 주겠다.”
 내가 원하는 삶을 준다는 말에 순식간에 원망과 짜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죽었다. 절벽에서 뛰어내렸고, 마지막 순간 거대하게 보이던 지면과 사정없이 부딪쳤다.
 죽은 자, 나는 죽은 자다.
 그런데 그런 나를 깨우고 있는 존재······.
 나는 죽기 전에 악마를 찾았다. 내 영혼을 팔아넘길 악마를 애타게 찾았다.
 “악마······ 인가?”
 칙칙한 색깔의 옷을 입은 창백한 안색의 20대 남자가 나를 보며 미소 짓고 있다.
 “그렇다. 네가 그토록 찾았던 악마다. 반갑지 않으냐?”
 “당신······ 당신이 정말 악마인가?”
 “그렇다.”
 “나와······ 계약을 맺을 것인가?”
 “당연하지. 그렇지 않다면 내가 왜 널 찾아왔겠는가? 그러니 어서 계약을 하지. 요즘은 어찌된 게 너무 바빠서 오래 얘기할 시간이 없다.”
 나는 두려움과 설렘을 억누르고 말했다.
 “내가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한 삶과 힘을 줄 수 있소?”
 악마가 미소 짓는다.
 그 섬뜩한 미소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외면하지는 않았다.
 기회!
 지금 이 순간은 나에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인 것이다.
 “당연히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지게 될 것이다. 또한 너의 부와 명예 그리고 생명을 노리는 적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힘 또한 얻게 될 것이다.”
 악마의 대답에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당신이 말한 것들을 나에게 주시오. 대신 내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당신에게 받치겠소.”
 악마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나는 그 미소가 싫었지만 악마가 마음을 바꿀까봐 두려웠다.
 “나에게 어떤 것을 줄 텐가?”
 나는 악마의 물음에 내가 가진 것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한 가지를 제외하고······.
 악마는 여전히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어서 빨리 악마에게 네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겠다고 말하라며 아우성쳤다.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내 영혼뿐이오. 만약 당신이 내게 새로운 삶을 준다면 삶이 끝나는 날, 당신에게 내 영혼을 바치겠소.”
 악마가 씨익 웃었다.
 그 모습이 천사의 미소처럼 아름답게 보였다. 나는 어미를 바라보는 굶주린 아기 새가 되어 악마를 응시했다. 결국 악마는 내 영혼을 받기로 했다.
 나는 악마의 허락이 떨어지자 너무도 기뻤다. 신은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떠밀었지만 악마는 나를 희망이란 구름에 태워주었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어서 빨리 새로운 삶이 주어지기만을 기다리며 악마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런 나의 시선을 받으며 악마가 입을 열었다.
 “첫째, 너를 부와 명예를 지닌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게 해주겠다. 둘째, 어둠의 기사 넷을 네 임의대로 소환하여 수족처럼 부릴 수 있도록 해주겠다. 그리고 이건 조금 파격적인 제안인데······. 1억 번째 계약자인 너에게 특별히 은혜를 베풀겠다. 아주 간단한 일이다. 10만 명의 인간을 죽여 그 영혼을 바친다면 너와의 계약은 없었던 것으로 해주겠다. 아주 파격적이지 않은가? 겨우 10만이야. 10만의 인간을 죽이면 넌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어둠의 기사 넷도 영원히 네 소유가 될 것이다. 어때, 할 수 있겠나?”
 나는 악마의 말을 재차 확인했다.
 “10만의 인간을 죽이면 내 영혼을 당신에게 바치지 않아도 되고, 더불어 당신이 얘기한 어둠의 기사 넷을 영원히 내 소유로 할 수 있다고? 그게 정말이오?”
 나는 악마의 마지막 제안을 머리에 새기며 온몸을 떨었다. 악마에게 내 영혼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 10만 명의 인간만 죽이면 그에게 받은 힘이 영원히 내 것이 되는 것이다.
 “흠, 말귀를 상당히 잘 알아듣는군! 그래, 겨우 10만의 목숨을 바치는 대가로 네 영혼의 자유와 힘을 동시에 얻는 거지. 어때, 구미가 당기지?”
 악마는 뭐가 그리 좋은지 비릿한 미소가 점점 커지더니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나는 그 웃음에 거부감이 들었다. 진실성이 결여된 그 웃음이 악마의 말을 의심케 만들었다.
 그러나 이 기회를 놓치기가 너무나 아까웠다. 나는 악마의 웃는 낯을 보며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마지막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당신이 말한 것처럼 영혼의 자유와 어둠의 기사라는 존재를 나에게 영원히 줄 수 있소?”
 순간 악마의 웃음이 멎었다.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흠, 의심이 많은 녀석이군. 악마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맺은 계약은 반드시 지킨다. 악마인 내가 이런 말을 해서 뭣하지만 믿어라.”
 그 말에 나는 잠시 혼란을 느껴야만 했다. ‘악마’와 ‘믿음’이란 말은 서로 너무 안 어울린다. 그러나······.
 “좋소! 당신과 계약을 하겠소. 당신은 당신의 말에 기필코 책임을 져야 할 것이오.”
 나는 악마와의 계약을 수락하고 말았다. 여기서 시간을 더 끈다면 악마가 사라질까봐 두려웠다.
 악마의 두 눈에서 지독한 어둠의 기운이 발산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입이 벌어지더니 위엄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골르트멧아시 푸머! 나의 이름으로 계약이 성사되었음을 알린다.”
 나는 그 엄중한 목소리에 주눅이 들어 몸을 떨었다.
 “이제 너와의 계약이 성사되었다. 너의 영혼에 계약의 인이 새겨졌다. 또한 네가 언제든지 소환 가능한 어둠의 기사 넷이 네 영혼에 봉인되었다. 네가 원하면 언제든 그들이 나타나 강력한 조력자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10만 명의 인간을 죽이는 날, 너의 영혼에 새겨진 계약의 인은 사라지고 어둠의 기사들만 남을 것이다. 참, 한 가지! 10만의 인간을 죽이는 일 말인데······.”
 악마는 잠시 말을 끊고 나를 응시했다. 나는 악마의 뒷말이 궁금해서 급히 입을 열었다.
 “말하시오.”
 “반드시 네 손으로 직접 죽여야 한다. 크하하하하!”
 악마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광소를 터뜨리더니 어느새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악마의 마지막 말이 귓가를 울렸다. 나는 사실 내 힘이 되어줄 어둠의 기사들로 하여금 10만의 목숨을 빼앗을 생각이었다. 때문에 악마의 마지막 말이 섬뜩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나는 사람은 닥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사라진 악마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좋다! 10만이 아니라 100만이라도 죽일 테다!”
 순간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어디선가 뻗어 나온 강력한 힘이 내 몸을 끌어당겼다.
 그렇게 악마와 영혼의 계약을 맺은 나는 어디론가 속절없이 끌려갔다.
 
 일그러진 공간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곳에 사라졌던 악마가 다시 나타났다.
 그의 입가에는 여전히 비릿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악마는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인간이여, 너의 보잘것없는 영혼 따위는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변화될 너의 영혼은 원하지. 미쳐라! 인간이여, 너의 자유를 위해 다른 인간의 생명과 피와 원독을 가득 담고 오너라. 어차피 네놈은 10만의 인간을 죽일 수 없을 것이다. 어쭙잖은 인간의 감성을 지닌 너는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먼 훗날, 1억 번째 퍼즐의 마지막 열쇠가 되어 내 앞에 다시 나타나거라. 내가 바라는 어둠의 영혼이 되어 나를 기쁘게 하라. 너와 함께 영천계에 나의 왕국을 세우리라. 크크크, 크하하하!”
 악마는 조금 전에 자신과 계약한 인간이 10만 명의 인간을 죽이지 못할 거라고 여겼다. 10만이란 숫자는 결코 적은 게 아니다.
 설사 정말로 10만 명을 죽인다 해도 악마로서는 별 상관이 없다. 단지 수많은 인간의 원독과 피로 얼룩진 광전사의 영혼이 되어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악마의 눈은 공간 저 너머의 영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그가 만난 인간은 1억 번째 영혼의 퍼즐을 맞춰줄 마지막 열쇠였다.
 제1장 뮤란트의 이방인
 
 
 
 
 
 그가 정신을 차린 뒤, 스스로를 인지한 것은 10세의 생일을 맞았을 때였다.
 그는 자신의 주위 환경이 상당히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데릭 가이어스.
 이것이 그의 이름과 성이다.
 성이 있으니 당연히 귀족이다. 그것도 백작가의 단 하나뿐인 정통성을 지닌 후계자.
 데릭이 태어난 이곳은 뮤란트 대륙이다. 2제국 8왕국 3소왕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 외에도 유사종족과 몬스터가 존재하고 드래곤이라는 강력한 존재도 함께한다.
 다만 드래곤의 존재는 인간의 역사에 그리 자주 등장하지는 않았다. 역사에 기록된 것 중 가장 최근에 등장한 것이 700년 전, 멸망한 아티아 왕국의 수도를 박살냈다는 기록 외에는 인간의 역사에 직접적으로 등장한 사례가 없다.
 그러니 데릭이 한평생 대륙을 쑤시고 다녀도 드래곤을 만날 일은 극히 희박하다. 전설에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처럼 인간으로 유희하는 드래곤이라면 또 모를까.
 어쨌든 데릭은 백작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것도 대륙에 존재하는 2개 제국 중 하나인 아슈라인 제국에.
 “데릭, 내일부터 너는 제국의 수도에 있는 아슈레인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생활하게 될 것이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기사의 가문으로 검과 함께 이 제국을 수호해왔다. 너 또한 대 가이어스가의 후계자로서 능력을 쌓기 위해 열심히 수련해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근엄한 표정의 칸슈타인 가이어스 백작의 명이 떨어졌다.
 데릭의 아버지다. 각성 전에 남아 있던 기억 속의 아버지란 존재는 무척이나 근엄하고 완고함을 표방하는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데릭이 태어난 후로 한 번도 그를 안아주거나 미소조차 지은 적이 없는 인물.
 각성을 하기 전의 데릭이 아버지를 보는 시선은 두려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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