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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신 카라가스 1권 1화

2020.08.25 조회 338 추천 2


 군신 카라가스 1권 1화
 
 
 
 
 
 프롤로그
 
 
 
 5백 년 전의 제르니아 대륙은 수십 개의 나라가 곳곳에 터를 잡고 있었다.
 고만고만한 이 나라들은 동맹과 배반을 반복하며, 대륙 제패를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피를 쏟았다.
 대륙은 언제나 사나운 군마의 무거운 말발굽 아래 짓밟혔다.
 백성들은 기아와 전염병에 죽어나갔지만, 이들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있는 군주들은 야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전란의 시대는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암울했고, 그 두터운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그때,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는 섬광처럼 10명의 초인이 동시대에 불쑥 등장했다.
 케이실로니아의 두 초인 불멸의 기사 렉스리온 필리어스, 황혼의 기사 파비론 제르시어!
 아쿠니온의 광명의 기사 그래프트 람체르!
 펜실비론의 흑창 지레트 헥시온!
 일리시안의 궁신 자몬 데이스칼!
 함블로어의 영검 킬립 카루시어!
 쟈렌의 화염의 기사 필라드 라몬테스!
 바람처럼 떠돌며 용병으로 활동하던 무투왕 쟈그레, 악성자 아일론, 광령사 카라가스!
 대망에 눈이 먼 여섯 나라의 군주들은 자국에 탄생한 초인들을 전쟁터로 내보냈다. 그들이 지휘하는 군대는 언제나 승리를 군주에게 안겨 주었다.
 그러나 신은 대륙이 하나의 기치 아래 모이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한 시대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초인들을 무려 10명이나 지상에 내보낸 것이다.
 자국의 초인을 앞세워 연전연승을 달리던 여섯 나라의 군대는 대륙 곳곳에서 운명처럼 격돌했다.
 초인 7년 대전이라 불린 이 전쟁에서 무려 2천만을 훌쩍 넘는 아까운 목숨이 이슬처럼 사라졌다.
 대륙은 미망인과 고아로 몸살을 앓았으며, 거리에는 온통 이들이 흘리는 피울음과 통곡만이 메아리쳤다.
 참으로 흉흉하고 슬픈 세상이었다.
 세월에 장사가 없듯 여섯 나라의 왕들도 어느새 야망보단 평안을 바라는 늙은이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한날한시에 모여 전쟁 종식을 선포했다.
 그러나 평화 협정 뒤에는 하나의 비겁한 협의가 깔려 있었다.
 그것은 여섯 왕국이 필요할 때마다 이용했던 어느 편에 서 있을지 모를 무투왕 쟈그레, 악성자 아일론, 광령사 카라가스란 불안 요인의 제거였다.
 권력자들의 이러한 야합으로 인해 삼대 초인은 역사의 뒤안길로 비참하게 사라졌다.
 대륙은 오랜만에 찾아온 평화를 기뻐했지만, 이것이 악몽의 시작이 됨을 그때 그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제1장 부활의 장
 
 
 
 거칠고 난폭한 비바람이 무서운 기세로 어둠을 할퀴며 휘몰아치고, 간간이 내려치는 번개와 천둥은 녀석들의 위세와 사기를 높였다.
 자연의 거대한 위세 앞에 웅크린 외진 별채의 창문이 쉴 새 없이 덜컹거리고 있었다.
 끼이익! 끼이익!
 낡은 경첩은 거칠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힘겹게 버티며 연신 앓는 소리를 흘렸고, 섬광은 창을 통과해 병색이 짙은 시체처럼 깊이 잠든 아이를 비추었다.
 콰르릉! 쾅!
 천둥을 동반한 번개가 별채를 강타했다.
 백색의 빛줄기는 지붕을 타고 아래로 쭉 내려와 힘겹게 신음하던 창문 경첩을 순식간에 날려 버렸다.
 와장창!
 연약한 몸뚱이로 거센 비바람을 막던 유리창은 안쪽으로 확 젖혀져 벽면에 몸을 들이박곤 박살난 채 비산했다.
 방 안은 어느새 유리 조각으로 어지럽게 변했다.
 잠자던 아이는 그제야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깨어났다. 초점 없는 아이의 몽롱한 눈은 정상이라 보기 힘들었다.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킨 아이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쏟아져 들어오는 비바람에 흠뻑 젖어버렸다.
 평범한 아이라면 놀라 비명을 지르거나 부모를 찾을 상황임에도, 아이는 초점 잃은 시선으로 멍하니 정면을 바라보다가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번쩍이는 섬광을 흡수한 유리 파편은 아이의 발아래에서 요사스럽고 섬뜩한 빛을 흘렸다.
 아이는 맨발로 이곳에 발을 딛고 위험하게도 체중을 실었다.
 꾹- 주르륵!
 연약한 발바닥으로 유리 파편이 파고들었다. 선홍색 핏물이 아이의 발 모양을 따라 옆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울 텐데도 아이의 눈 초점은 여전히 흐리멍덩했다.
 광풍에 실린 비바람은 이런 아이를 여전히 후려쳐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아이의 상하 일체형 풍성한 잠옷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물결처럼 펄럭거렸다.
 아이는 고개를 삐딱하게 옆으로 젖히고는 입을 헤벌린 채 걷기 시작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붉은 족적이 선명하게 바닥에 찍혔다.
 아이는 방문을 열고 복도를 지나 아래층으로 내려와서는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폭포 같은 빗줄기와 거친 바람이 아이의 몸을 밀었다.
 쿵쿵거리며 뒷걸음질 치던 아이는 중심을 잡지 못해 거칠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래도 아이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여전히 초점 잃은 눈길과 멍청한 표정이었다.
 곧 자리에서 일어선 아이는 요란하게 열고 닫히는 현관문을 향해 걸어 나갔다. 여기에 제대로 한방 맞는다면 어른이라도 그 고통에 기절할 만큼 사납고 위험한 기세였다.
 운이 좋은 걸까? 문이 활짝 열린 그 순간 아이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마당에 선 아이의 몸은 자유롭게 휘몰아치는 광풍에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아이는 어느새 별채 뒤편, 오래된 음산한 연못가에 도착했다.
 콰르릉! 번쩍!
 연못 중앙에 설치된 포효하는 사자 조각상이 위맹한 자태를 드러냈다.
 아이는 넋을 놓고 사자상만 죽어라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없게도 아이는 조각상과 눈싸움을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낙뢰가 사자상을 후려쳤다.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폭음과 함께 거센 충격파가 원을 그리며 주변을 강타했다.
 충격파에 휩쓸린 아이의 몸은 허리를 휘청거리던 나무를 들이박곤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쓰러진 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낙뢰를 맞은 사자상은 완전히 파괴되어, 그 자리에는 흰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 올리는 돌무더기만 수북했다.
 그곳에서 기이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너무 작은 움직임이라 헛것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움직임은 더욱 뚜렷하고 명확해졌다.
 와르르!
 돌무더기는 내부에서 표출되는 미지의 힘에 밀려 연못으로 모두 떨어져 평평한 석대만 남았다.
 석대 위에는 투명한 호로병 하나가 불그스름한 빛에 휩싸여 등대처럼 빛나고 있었다.
 기절해 있던 아이는 그제야 부르르 떨며 몸을 일으켰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호로병과 아이는 붉은 실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기이하고 신비로운 이 현상은 오로지 몰아치는 비바람과 암천만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연못을 향해 홀린 표정으로 곧장 걸어 들어갔다.
 연못의 수위는 아이의 허벅지 이상을 넘지 않았다. 첨벙거리며 석대에 접근한 아이는 팔을 뻗어 신비한 호로병을 움켜잡았다.
 쩌저적!
 아이의 악력 때문일까? 호로병 밑동에서부터 생겨난 방사형 실금이 주둥이를 향해 몰려들자 호로병은 사라지고 새파란 불꽃이 아이의 손에 잡혀 있었다.
 불꽃은 아이의 손바닥을 뚫고 들어가더니 팔을 타고 가슴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가슴 어림에서 잠시 머물던 불꽃은 도약을 위해 힘을 축적하듯 최대한 몸을 움츠리더니 무서운 속도로 위로 솟구쳤다.
 그때였다. 아이의 머리에서 백색 불꽃이 등장하더니, 밀려올라오는 새파란 불꽃을 막기 시작했다.
 두 힘은 아이의 얼굴을 전쟁터 삼아 밀고 밀리는 치열한 사투를 펼쳤다.
 이러한 힘겨루기는 무려 30분이나 계속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그 결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아래쪽에서 올라오던 새파란 불꽃이 백색 불꽃을 머리 밖으로 완전히 밀어낸 것이다.
 뚝!
 백색 불꽃이 완전히 내몰린 순간, 팽팽하게 당겨진 실이 뚝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영역 싸움에서 밀려난 백색 불꽃은 분한 듯 허공에서 미친 듯이 날아다니다가, 그 힘이 다한 듯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렸다.
 신비롭고 괴이한 현상이 끝남과 동시에 아이의 몸은 힘없이 석대 위에 쓰러졌다.
 
 * * *
 
 양발이 붕대로 칭칭 감긴 검은 머리의 아이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치료사로 보이는 자가 갈색의 액체와 물을 적당량 섞어서는 잠든 아이의 입술을 벌리곤 밀어 넣었다. 그리고 잠시 방 안을 둘러보더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 순간, 깊은 잠에 빠진 듯 미동도 않던 아이가 눈을 떴는데, 간밤에 보았던 초점 없는 멍청한 눈빛이 아니었다.
 그 눈빛은 뭐랄까··· 심연처럼 깊고 안정적이며, 때론 날카로움을 내포하고 있었다.
 “영혼 전이에 성공한 건가?”
 목소리는 앳됐지만 표정과 눈빛은 어린아이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진지함과 무거움을 담고 있었다.
 아이의 입 매무새가 비틀리며 기이한 미소가 얼굴 전체로 번지고 있었다.
 의미심장한 나직한 목소리를 흘린 아이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바닥에 발을 디뎠다.
 살덩이가 떨어져 나가는 섬뜩한 고통이 발밑에서 무서운 속도로 솟구쳐 뇌를 강타했다.
 움찔.
 “응? 다친 건가?”
 새하얀 붕대로 칭칭 감긴 발을 본 아이는 그저 살짝 눈살만 찌푸렸다. 아이의 반응치곤 너무나 무덤덤한 편이었다.
 “아! 토렌 도련님! 깨어나셨군요?”
 그때, 뒤쪽에서 들린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 아이는 상체를 틀었다.
 황갈색 원피스를 입고, 두건을 쓴 20대 초반의 평범한 여인이 문가에 서 있었다.
 “토렌이라고? 흠··· 이 몸의 이름인가? 너무 평범하군.”
 의미를 알 수 없는 괴상한 중얼거림은 이질적인 인상을 물씬 풍겼다.
 “에구! 도련님이 말씀하실 리 없는데 내가 또 실수를 했구나. 도련님,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그리고 몸이 불편하시더라도 좀 더 누워 계셔야 해요. 치료사님도 당분간은 움직이지 않는 게 좋다고 하셨답니다.”
 여인은 친절한 태도로 위로하며, 익숙한 동작으로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
 순간, 아이의 입술이 벙긋거리다가 이내 숙고하는 눈빛으로 조용히 닫혔다.
 ‘기억 흡수부터 먼저 해야겠군. 괜한 의심을 살 필요는 없을 테니깐.’
 여인은 측은한 눈길로 아이의 까만 눈동자를 지그시 들여다보았다.
 밤하늘의 한 조각을 떼어다 박은 듯 깊고 신비한 눈동자는 보면 볼수록 빨려 들어가는 매력을 갖고 있었다.
 “오늘따라 도련님의 눈빛이 참 깊고 맑은 것 같네요. 하루빨리 정신을 차리셔서 예전처럼 힘차게 뛰어노셔야죠.”
 여인은 이불을 아이의 목까지 올려 주며 자상한 손길로 토닥여 준 뒤 방을 나갔다.
 얌전히 누워 있던 아이는 여인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조용히 상체를 일으켰다.
 “어린 녀석의 기억이니 금방 흡수할 수 있겠지.”
 또다시 이상한 말을 흘린 아이는 명상하듯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러한 명상은 며칠을 두고 꾸준히 계속됐다.
 명상을 통해 뇌리에 각인된 기억을 흡수한 정체불명의 이 영혼은, 전 주인인 아이의 기억을 모두 흡수한 뒤 혀를 끌끌 찼다.
 “이 어린 녀석의 운명도 가련하군.”
 띄엄띄엄한 단편적인 기억들 중 유일하게 선명하고 뚜렷한 모자간의 영상을 통해 자신이 들어앉은 아이의 현재 처지를 알게 되었다.
 흡수한 기억을 풀어놓자면, 이 아이의 작은 장난에서 람피르 남작가의 불행은 시작됐다.
 지나가는 뱀을 그저 막대기질로 한번 몰았을 뿐인데, 뱀은 어미 곁에서 얌전하게 풀을 뜯고 있던 말들을 미쳐 날뛰게 만들었다.
 놀란 말은 순식간에 가축이 아닌 제어할 수 없는 위험한 맹수로 돌변했다.
 공포에 휩싸인 아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달아났다면 아이를 슬프게 만든 운명은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말발굽 아래 잔인하게 짓밟히며 폭죽처럼 터지는 어미의 살과 빠르게 솟구치며 빠져나가는 붉디붉은 장막.
 이것은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되어 아이의 정신을 심연 속으로 꾹꾹 밀어 넣었다.
 이 사건 이후의 기억은 아이의 뇌리에서 찾을 수 없었다.
 이 기억은 불과 1년 전의 것이었다.
 ‘백치라서 더욱 쉽게 이 몸을 손에 넣을 수 있었으니, 내 입장에서는 다행인가?’
 아이는 웃었다. 아니, 아이의 몸을 점령한 영혼이 웃었다.
 이 영혼은 누굴까? 수많은 의문이 든다.
 “카라가스란 나의 이름은 당분간 묻어놓아야겠지.”
 5백 년 전, 모든 나라가 대륙 일통이란 대망에 젖어 하루도 쉬지 않고 전쟁을 하던 그 시절.
 우후죽순처럼 등장한 막강한 실력자들을 밟고 올라선 지상 최강의 사내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대륙 십대 초인이라 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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