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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화-01장 아젤 제스트링어-01<일러스트>

2014.08.25 조회 6,110 추천 154


 프롤로그
 
 
 간교한 마족은 지혜를 갈구하는 용들을 현혹하여 용마족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용의 힘과 마족의 탐욕스러움을 한데 모은 용마족의 존재가 거대한 어둠이 되어 인간에게서 빛을 앗아갔을 때, 그에 맞서 싸운 영웅들이 있었다.
 그 영웅 중에 아젤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그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용마족을 쓰러뜨리고 수많은 인간의 생명을 구하였으며, 마침내 용마족의 왕 아테인을 쓰러뜨리고 대륙을 휩쓸었던 환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리고 지금, 영웅 아젤은 죽어 가고 있었다.
 “너도 알다시피 마법은 원래 용마족에게서 기인한 기술이야. 지혜를 갖지 못했던 용족들이 마족의 꾐에 넘어가 그들과 합쳐지면서 마법이 탄생했지.”
 아젤과 함께 환란에서 가장 큰 명성을 날린 남자, 마법사 칼로스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용마족과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둘은 숱한 사선을 함께 넘었고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 말에 아젤이 물었다.
 “왜 다 아는 이야길 하고 그래? 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봐.”
 칼로스가 기억하는 아젤은 누구보다도 눈부시게 빛나던 이였다. 누구보다도 강건했기에 그가 쇠약해진 모습 따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종종 현실은 지나치게 가혹하다. 칼로스의 눈앞에는 한 번도 상상할 수 없었던, 쇠약해진 아젤이 병상에 앉아 있었으니까. 지금의 그는 놀랄 정도로 말랐고 안색이 창백했다.
 그 모든 것이 용마족의 왕 아테인을 쓰러뜨린 대가였다.
 최초의 용마족이며, 수많은 용을 유혹하여 무수한 용마족을 탄생시킨 아테인은 아젤의 검 아래 쓰러져 갈 때 강력한 저주를 걸었다. 육체를 좀먹는 그 저주의 힘 때문에 아젤은 서서히 쇠약해져 죽어가고 있었다.
 칼로스는 한숨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
 “일단 들어봐. 마법은 모든 인간이 터득하기에는 너무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기에, 무식하지만 우직한 전사들은 그 기본을 응용해서 ‘몸으로 쓰는 마법’을 만들어냈어. 그게 바로 스피릿 오더고.”
 “그래서?”
 아젤이 뚱한 표정으로 물었다. 기껏 찾아와서 다 아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친구의 저의를 알 수가 없었다. 평소부터 이런저런 사실을 강의하듯이 떠들어대길 좋아하는 녀석이긴 했지만 왜 다 아는 이야길 또 한단 말인가?
 칼로스가 말했다.
 “이제부터가 본론이야. 스피릿 오더 수련자 역시 마력을 다루는 방식이 다를 뿐 마법사의 다른 모습이야. 그리고 용마족과 같은 방식으로 마력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어쩌면 마법사보다 좀 더 본질적으로 닮아 있는지 몰라.”
 “기분 나쁘군. 하필이면 용마족이라니.”
 용마족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존재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맹수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지성이 발달했던 강대한 용들과, 교활하지만 인간의 혼을 손에 넣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마족이 융합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칼로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힘으로 그들을 상대하지. 그건 어쩔 수 없는 진실이야.”
 “그래서 이 지루한 이야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들어 봐. 용마족은 용들과는 다른 존재지만, 그래도 수면기와 활동기가 나뉘어져 있다는 삶의 방식을 바꾸지 못했어.”
 용들은 매일 자는 것 말고도 마치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듯이 오랜 잠에 빠질 때가 있었다. 그 시기를 수면기라고 한다. 그들이 수면기에 들어설 때는 활동기에 지나치게 많은 힘을 사용했을 때 혹은…….
 “중상을 입었을 때지.”
 “맞아. 그들은 수면기에 들어서면 놀라운 생명력을 발휘하지. 활동을 포기하고 무방비 상태가 되는 대신에 당장 죽을 수도 있는 상처조차도 오랜 시간에 걸쳐 치료하고 다시 회생해. 그건 용들의 수면기가 동물의 겨울잠과는 다른 마법적인 활동임을 증명하고.”
 “너, 설마…….”
 아젤은 슬슬 마법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칼로스는 그의 예상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용마족과 용의 사체를 해부하면서 연구해 봤어. 내 생각에 네가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이것뿐이야. 위험성도 크긴 하지만… 나를 믿고 네 생명을 맡겨준다면, 너를 용의 수면기와 같은 상태로 유도하겠어.”
 
 
 
 제1장
 아젤 제스트링어 (1)
 
 
 1
 
 아젤은 자신이 잠들기 전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동시에 그것이 먼 옛날의 일이라는 사실도 자각하고 있었다. 의식은 잠들어 있었으되 무의식은 육체를 스쳐 가는 시간의 흐름을 느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오래 잠들었기 때문에 눈을 떴어도 현실감이 흐릿하다. 자신이 깨어난 것인지 아니면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조차 잘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쿵… 쿠과아아앙……!
 아젤이 긴 잠에서 깨어난 것은 먼 곳에서 들려오는 폭음 때문이었다.
 잠들어 있는 동안 내내 고요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시시때때로 폭음이 울려 퍼지면서 땅이 뒤흔들린다. 그래서 결국 눈을 뜨고 말았다.
 “음…….”
 문제는 눈을 뜨긴 떴는데 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자기가 살아 있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의식이 붕 떠 있었고 육체는 말을 듣지 않았다.
 아젤은 마음을 침착하게 가라앉혔다. 여전히 자신이 숨을 쉬고 있고, 심장이 느릿느릿하게 뛰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손에 힘을 주었다.
 꿈틀.
 손가락이 움직였다.
 꼬물.
 발가락이 움직인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은 몸은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긴 겨울잠을 자는 동물은 깨어난 직후에는 반 시체나 다름없게 마련이었고, 그도 마찬가지였다.
 굳어 있던 몸에 따스한 피가 돌면서 활력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죽어 있던 감각이 살아나면서 피부에 와 닿는 공기가 느껴졌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꼬물거리기 시작한 뒤로 눈에 띄는 움직임을 행할 수 있기까지는 많은 인내와 노력이 필요했다. 한 시간에 걸쳐 발버둥 친 후에야 팔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좋아. 일단 움직이긴 하는군. 그런데…….’
 여기가 어딘지 전혀 짐작이 가질 않는다.
 ‘칼로스 이 녀석, 나를 어디다 갖다 놓은 거야?’
 사방이 깜깜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누워 있는 곳은 침대처럼 푹신했지만, 별로 넓지 않은 공간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다. 손만 뻗어봐도 이쪽을 막고 있는 벽에 닿았으니까.
 ‘이거 설마 관인가?’
 구조상 널찍한 관에다가 그를 넣어 놓은 게 아닌가 의심되었다.
 살아 있는 사람을 관에다가 넣어 두다니,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다. 하지만 뭔가 마법적인 의미가 있었으리라. 아젤은 그렇게 생각하며 기억을 되짚어보았다.
 그는 용마왕 아테인을 무찌르고 대륙을 절망에서 구해낸 영웅, 아젤 카르자크였다.
 그러나 용마왕 아테인의 저주로 인해 죽어가게 되었기에 친구인 칼로스의 제안으로 긴 잠에 들었다. 용의 수면기와 같은, 저주를 이겨내기 위한 기나긴 잠이었다.
 그것을 위해 강력한 의식이 필요했다. 칼로스 본인을 포함해서 강력한 마법사 몇몇이 비밀리에 모여서 의식을 진행했다.
 아젤의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자신을 바라보던 칼로스의 안타까운 얼굴을 끝으로 모든 것이 암흑이었다. 그 후에도 뭔가 파편화된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은 현실의 경험이 아니라 꿈속을 헤매고 다닌 후유증일 것이다.
 그래서 아젤은 자기가 어디에 잠들었는지, 어떤 상태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일단은 나가봐야겠군.’
 여기서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봤자 알 수 있는 게 없다. 그렇게 판단한 아젤은 관 뚜껑을 밀어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
 한참 동안 관 뚜껑을 밀던 아젤은 힘이 빠져서 팔을 내렸다. 힘껏 밀어봤을 때의 반응으로 보건대 무작정 안쪽에서 민다고 열리는 구조가 아닌 것 같다. 혹시 뭔가 마법적인 장치로 열리게 되어 있는 것일까?
 ‘으으윽, 칼로스 이 자식 쓸데없는 짓을 해놓다니!’
 아젤이 이를 갈았다.
 용의 수면기와 같은 마법의 잠에 빠져 있을 때는 이런 곳에 갇혀 있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깨어난 이상 밖으로 나가지 못하면 곤란하다. 공기야 통하니 호흡은 할 수 있지만 이대로 굶어 죽을 게 아닌가?
 ‘좋아. 힘으로 열고 나가주지.’
 아젤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본래 그의 몸에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어마어마한 힘이 있었다. 그 힘을 발휘하면 이딴 관짝쯤이야 단숨에…….
 ‘어? 뭐야?’
 자신의 내면을 관조한 아젤은 당황했다.
 없었다.
 전신의 영맥(靈脈)을 타고 흐르면서 그를 초인으로 만들어 주었던 힘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설마… 수면기를 유지하느라 힘을 다 써버린 거야?’
 짐승들은 겨울잠을 자기 전에 잔뜩 먹어서 영양분을 보충한다. 그리고 겨울잠을 자는 동안 그렇게 보충한 영양분을 다 써버리고 깨어난다.
 아젤의 상황이 그와 같았다. 얼마나 오래 잠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생명 유지를 위해서 가진 힘을 다 썼다면 납득이 간다.
 ‘아니, 납득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아젤은 더욱더 집중력을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여기서 나갈 방법을 찾지 못하면 이대로 굶어 죽는다. 저주를 이겨내겠다고 용의 수면기까지 흉내 냈는데 굶어 죽는다면 얼마나 웃기는 일이겠는가?
 ‘좋아.’
 아젤은 말라 버린 영맥 속에 잠재되어 있는 힘의 파편들을 감지했다. 그리고 강한 의념으로 그것을 그러모았다.
 두근.
 심장이 뛴다.
 그것은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심장이 고동치고 그로 인해 호흡한 공기를 받은 신선한 피가 혈관을 타고 육체를 돌아다님으로써 그의 육체는 살아 있는 상태를 유지한다.
 또한 심장의 고동은 전사들이 쓰는 비술 ‘스피릿 오더’의 근원이기도 했다.
 심장이 고동칠 때마다 그 진동이 전신으로 퍼져 나가면서 영맥을 자극한다. 그리고 영맥을 타고 흐르는 마력이 그 진동을 받아서 증폭하면서 초인적인 힘을 가져온다.
 ‘한 번쯤은 가능하겠군.’
 몸에 남아 있던 힘의 파편들을 모으는 데 성공한 아젤은 신중하게 판단했다.
 미약한 힘이다.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이걸 갖고 뭔가를 할 생각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젤이라면 심장의 고동, 그리고 혈관의 진동을 이용해 증폭시켜 한 번쯤은 큰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자신을 가둔 관짝이 아무리 두꺼워도 부숴 버릴 수 있는 위력을!
 ‘간다!’
 아젤은 눈을 떴다. 그리고 양 손가락을 좍 폈다.
 그때였다.
 우우우우우웅!
 갑자기 주변에서 막대한 힘이 아젤의 영맥으로 유입되었다. 예기치 못한 사태에 아젤이 깜짝 놀랐다.
 ‘이런!’
 하필이면 없는 힘을 그러모아서 최대치로 증폭시키는 이 순간에 새로운 힘이 유입되다니! 그것도 자신이 발하는 것보다 훨씬 막대한 양이!
 ‘큭!’
 자칫하면 자멸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젤은 놀라운 순발력을 발휘했다. 막 발하려던 힘을 흩어서 한 차례 다시 영맥을 순환시키면서 새로 유입된 힘과 뒤섞는다. 그리고 몸에서 난동을 부리기 전에 그대로 방출해 버린다!
 그러자 양손에서 시퍼런 섬광이 분출되었다. 주변을 덮은 어둠을 불사르는 눈부신 빛이 위쪽으로 폭발한다.
 콰콰콰콰콰!
 빛과 함께 공기가 요동치며, 사방이 환하게 밝아졌다.
 

댓글(9)

상상중독자    
사과박스에서 보다가 환불되서 놀랐었는데, 문피아에서 다시보게 되겠군요.
2014.08.25 20:16
유세이    
끊긴 부분 부터 보려면 아직 한참 남았네요
2014.08.25 22:59
괴도x    
헐 이 소설을 문피아에서 보다니 반갑네요.
2014.08.26 11:43
세아라    
이리오셨나요 ㅎㅎ 반갑습니다.
2014.08.28 13:23
영생부유령    
언제 까지 기다려야 되나.....
2014.09.16 15:48
Pillow    
용마검전 재밌는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안 보지 ㅡㅡ;;
2015.01.14 01:17
잉여목록    
그러게요. 손꼽힐 정도로 재밌는데.. 이상하게 사람들이 안 보는군요.
2015.01.18 12:08
隱遁者    
일러스트 멋지네요 재밌을거 같은느낌
2016.06.29 09:08
pk******    
잘 읽었습니다
2022.07.21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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