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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2021.03.18 조회 23,439 추천 322


 2017년 8월 19일
 대한민국 남해
 
 “조심, 조심. 재원아, 잘하자···. 잘못하면 터진다.”
 
 이런 망할 일이···.
 퇴역 직전의 이 망할 배는 또 골칫거리를 안겨주고 있었다.
 내가 있는 곳은 76mm 함포 내부.
 오전 사격훈련까지만 하더라도 잘나가던 이 76mm 함포는 오후 사격 훈련 때 불발이 났다.
 
 불발탄 제거를 가장 고참이 해야 하는데, 이 망할 함의 병기사 중에서 가장 고참이 중사인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총대를 메고 지금 비좁은 76mm 함포탑 안에서 불발탄을 제거하고 있었다.
 
 “더럽게 좁네.”
 
 원래는 내가 할 일이 아니다.
 71포 포장이 해야 할 일을 내가 하고 있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71포 포장이 신혼여행으로 자리를 비웠거든. 지금 71포 포장을 임시로 맡고 있는 게 바로 나다.
 
 평범하게 태어나 해군에 입대해 중사로 진급하고 울산급 프리깃 전남함에서 근무한 지 1년 5개월째.
 7년 동안의 군 생활 도중 가장 위험한 작업 중이라 긴장됐다.
 
 “됐다···.”
 
 폐쇄기에 끼어 불발이 나버린 76mm 포탄을 낑낑대기는 했지만 끼어버린 포탄을 빼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이제 포탄을 안고 나가면 된다.
 제발, 불발만 나지 마라. 이 망할 함포야···.
 
 “71포장이 CIC에, 불발탄 제거 중.”
 
 -알았다.
 
 “임 중사님, 어떻게 됐습니까?”
 
 “탄 걸린 거 풀었고 조금 이따가 나갈 거야! 탄 바다에 버릴 준비해!”
 
 “알겠습니다!”
 
 함포 바깥에는 병기사인 김재익 하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초임하사에 워낙 어리바리해서 같이 작업하기는 뭐 한 그런 친구라 위험해서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안쪽 상황이 그렇게 궁금해? 그럼 네가 와서 처리할래?
 일단 나가자. 나가서 불발탄만 바다에 버리면 이 위험한 일도 끝난다.
 그런데 느낌이 싸하다···.
 
 ‘느낌이 좋지는 않은데 한번 이야기하고 처리해야지···.’
 
 “재익아, 나가니까 대기해라! 탄 잡을 준비하고!”
 
 “임 중사님! 포탄 처리하셨습니까?”
 
 “아직, 탄을 잡기는 잡았는데 폐쇄기에서 뽑지는 못했어!”
 
 “71포에서 CIC에 불발탄 제거 완료된 듯.“
 
 뭐라고? 아직 제거 안 했다니까! 잡기만 잡았다니까 저게 무슨! 황급히 무전기에 손을 가져다 댔다.
 
 “71포장이 CIC에, 아직 불발탄 제거 중이고 폐쇄기에서 탄 제거하기 전에 전원 연결···.”
 
 퍼엉!
 
 X발··· 불발탄 제거도 끝나지 않았는데 CIC의 누군가 71포의 전원을 연결했다.
 아직 폐쇄기에서 제거되지 않은 포탄이 전기 신호를 받아 폭발해버린 것이다.
 
 그러고 보니 CIC에서 71포를 맡고 있는 놈이 배속된 지 얼마 안 되는 막내였지···.
 하아, 웬일로 일이 쉽게 풀리나 했다.
 
 오늘 따라 재익이가 말을 잘 알아듣더라.
 어리바리한데다 듣는 귀가 먹었는지 항상 다시 말해줘야 했던 놈이 오늘 따라 한 번에 알아듣더라니···.
 이제 정신 바짝 차리고 일하는 줄 알았지, 결정적일 때 어리바리를 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엄청난 고통이 몸을 강타하고 의식이 없어지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삶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태어나서 철이 들고 지금까지 제대로 놀아본 기억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즐길 걸 그랬네.
 
 ‘다음 세상이라는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이렇게는 안 살아야지···.’
 
 그 생각을 끝으로 시야가 암전됐다.
 
 ***
 
 “···헙!”
 
 숨이 쉬어지고 눈이 떠졌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전혀 본 적 없는 낯선 천장.
 
 분명히 불발탄 제거하다가 폭발에 휘말린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뒤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정도 폭발이면 분명히 포탑 안에서 죽었어야 정상인데··· 뭐지?’
 
 76mm 포탄이 폭발하던 것까지는 기억이 난다.
 내부 구조가 좁고 기계 부품들이 배치되어 피할 곳도 없는 76mm 포탑 내부에서 불발탄이 터졌기 때문에 분명히 폭발에 휘말리고 산산조각이 났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살아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상황 파악이 전혀 안 된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서 양손으로 관자놀이 쪽을 문지르는데···.
 
 ‘어라? 내 손이 이렇게 고왔나?’
 
 굳은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뭐야, 굳은살은 다 어디로 가고··· 내 피부는 또 왜 이래?’
 
 뭔가 이상하다.
 햇볕에 타서 갈색으로 물들어 있어야 할 피부가 새하얬다. 우리나라가 피부 안티에이징 기술이 이렇게 좋았나?
 거기다 손의 굳은살이 없어지기까지.
 
 “으으, 골이야. 지금 이게 무슨 일이야. 어···?”
 
 내 입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말에 놀라고 말았다.
 한국어가 아니다.
 이게 어느 나라 말이더라···.
 
 기억났다.
 내 입에서 나오는 이 말은··· 프랑스어다.
 참고로 나는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못했다.
 그런데 몇 마디 안 하긴 했지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프랑스어. 그것도 한국어를 쓰듯 자연스럽게 나왔다.
 
 “지금 내가 프랑스어를 하는 건가? 뭐야··· 여긴 어디지? 도대체 무슨 일이야?”
 
 도무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이 전혀 안 되는데···.
 
 “몸에 힘은 들어가네···.”
 
 몸에 힘을 주고 침대에서 벗어나 거울 앞에 선 나는 당황했다.
 
 “헙! 누구야, 이건···.”
 
 거울 속에는 내가 아닌 다른 백인 남자가 보이고 있다. 그것도 내가 짓는 표정을 따라하고 있는.
 
 “이게 무슨···.”
 
 잠깐 상황을 정리해보자···.
 분명히 나는 76mm 함포 불발탄 제거 도중 죽었다. 그리고 깨어났더니, 이 모습이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데···.”
 
 거기다가 왜 프랑스어가 내 입에서 나오고 거울 속의 모습도 내 모습이 아닐까?
 도무지 무슨 일인지 전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철컥.
 
 문이 열리는 소리에 이어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서 문을 바라보는데 간호사와 눈이 마주쳤다.
 
 “세상에!!”
 
 뒤를 돌아보니 간호사가 아주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놀라서 들어오다 말고 황급히 뛰어나가는 간호사.
 이러니까 상황 파악이 더 안 되는데···.
 
 간호사가 뛰어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뛰어 들어온 의사들이 나를 침대에 눕혀놓고 진료를 시작했다. 청진기로 심장소리를 듣기도 하고 맥박도 잰다.
 
 “대령님, 어떻게 다치셨는지 기억이 나십니까?”
 
 “분명히 폭발에 휘말려···.”
 
 이 사람들이 왜 나를 대령이라 부르는지는 모르지만 아는 대로 이야기해줘야지.
 나는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을 이야기했다.
 
 “기억은 있으신 것 같은데··· 의사 선생, 대령님 몸 상태는 어떠신 것 같소?”
 
 “기초적인 부분은 문제가 없으신 것 같습니다. 이건 기적입니다.”
 
 “여기가 어디요?”
 
 “툴롱 해군병원입니다.”
 
 툴롱 해군병원?
 잠깐··· 그러면 여기가 프랑스라는 건가?
 
 “오늘이 몇 년, 몇 월 며칠이야?”
 
 “1939년 8월 19일입니다. 대령님은 한 달 동안 의식이 없으셨습니다.”
 
 1939년? 지금은 2017년이 아니었나? 그런데 1939년이라니? 몰래카메라라도 찍는 건가?
 
 “내 이름이···.”
 
 “대령님? 이름이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프랑수아 르블랑입니다. 의사 선생, 대령님이 왜 이러시는 거요?”
 
 “단기 기억상실일 수도 있습니다만 정확한 것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경과를 두고 지켜보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날 단기 기억상실이라고 진단한 의사는 난감한 눈빛으로 군인들을 쳐다봤다.
 
 그때 조금 두통이 몰려왔다.
 두통 때문에 표정을 찡그리니 의사가 사람들 보고 이야기했다.
 
 “일단 대령님께선 안정을 취하셔야 하니 나가주십시오.”
 
 의사의 말에 병실에 있던 군인들은 자리를 떴고 의사는 내 몸 상태를 끝까지 확인한 뒤에 병실을 나섰다. 의사가 병실을 나간 뒤 나 혼자 남게 됐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몰래카메라인가?’
 
 창문가로 가서 커튼을 걷었다. 해의원이나 다른 병원이면 분명히 익숙한 풍경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진해 해의원 병실 바깥에서 보던 주차장이 보이겠지···.’라고 기대했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주차장이 아니었다.
 
 “여긴 어디야?”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진해가 아닌 다른 이국의 항구였다.
 병원이 언덕 위에 있는 듯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은 진해에서 볼법한 풍경이 아니었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고,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눈앞에 보이는 풍경은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니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폭발에 휘말려 의식을 잃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다른 세계에 와 있다니···.
 다리에 힘이 풀린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작가의 말

작년부터 생각만 하던걸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댓글(37)

흑돌이    
잘 보고 갑니다.
2021.04.08 19:50
왕상준    
프랑스 만세!!!!! ㅠㅠㅠ
2021.04.19 15:08
ga*******    
엘랑스
2021.04.24 15:38
양마루    
건필
2021.04.25 13:18
cu*********    
완결까지 가즈아
2021.04.25 21:21
할젠    
엘랑 멈춰!
2021.04.26 14:04
글장난    
고문관이구만 탄 제거는 탄 보고 이야기해야지 설마 고의?
2021.04.26 14:17
푸비짱    
정주행 시작합니다
2021.04.28 02:22
JHa    
후임도 귀머거리지만 된둣이라는 말 듣고 격발한 놈도 정상은 아니네
2021.04.28 18:20
고기흡입    
엄한 놈 옆에 있음 도탄 맞는다더니 여긴 폭사 당해버리네ㅋㅋㅋ
2021.04.3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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