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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틱스 1권 (1)

2014.12.19 조회 6,629 추천 47


 Liga 1. 신임 감독
 
 레오니는 눈을 떴다.
 에메랄드 빛 눈을 가진 아름다운 미녀.
 우윳빛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일.
 스물여덟에 찾아온 사랑을 보기 위해서.
 역시 그가 옆에 있었다.
 그 역시 눈을 뜨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허공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일어나 그가 있는지 살피는 의미.
 어디로 도망갈까 봐 겁이 나서 그렇다.
 그저 그런 동양 남자였는데, 그에게 빠지니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자신에게 잘해 주는 것도 아닌데.
 자신이 깬 것을 느꼈는지 그 역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고 있었다.
 허무함과 열정을 같이 품고 있는 신비한 검은색 눈동자.
 바로 저 눈빛에 홀려 버렸다.
 “일어났어?”
 “응.”
 아침이 밝으면 이들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아마 피곤한 하루가 될 것 같은 느낌.
 하지만 레오니는 자신이 선택한 남자를 믿었다.
 분명히 그는 해낼 것이다.
 그와 지냈던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천재임이 확실하다.
 “그럼 갈까?”
 “응.”
 
 길을 나서는 연인의 목적지는 올덴부르크 구단 사무실.
 오늘 폭탄선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작년에 인수한 팀으로 나름 적극적인 투자를 감행해서 겨우 리가에 승격했다.
 기껏해야 독일의 3부 리그라고는 하지만 리가의 벽은 매우 높았다.
 그렇게 최하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전반기가 끝이 났고.
 이런 경우 감독 경질이라는 극단적인 결정을 할 수 있었다.
 투자와 성적의 상관관계를 통해 책임을 물으려는 것이다.
 물론 구단주 맘대로 한다는 것이 쉬운 게 아니었다.
 이사회를 설득해야 했고, 단장과 최종적인 협상이 있어야 한다. 그래도 그녀는 감행하려 했다.
 바로 자신의 연인을 믿고.
 박정, 연인의 이름이다.
 과거 축구선수였던 그는 한국에서 전도유망한 기대주였다.
 하지만 부상의 악령이 찾아왔고, 그는 뜻하지 않게 축구선수로 사는 삶을 끝내야 했다.
 독일에서 라이센스를 획득하는 중에 그는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자신과는 네 살 차이.
 “자신 있지?”
 “응.”
 그의 독일어 실력은 유창했다.
 언어 습득에 일가견이 있는 것일까?
 독일 생활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그는 의사소통에 아무 문제가 없다.
 그래도 항상 이렇게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그것을 모르고 그와 사귄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가끔 야속하기만 했다. 좀 더 다정하게 자신을 대해 주었으면 좋으련만.
 사무실에 도착한 두 연인.
 이미 단장과 감독이 나와 있었다.
 이미 그들도 감지하고 있는 상황.
 스포츠 구단에서 이들의 목숨은 파리보다 못했다.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그것을 기다려 주는 구단주가 매우 드물기에.
 “아시겠지만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아요.”
 레오니는 자리에 앉자마자 선언하듯이 말을 했다.
 자신의 얼굴을 보고 일말의 기대를 안고 있는 그들에게 표정을 굳히면서.
 구단을 경영하는 그녀에게 비즈니스란 이런 것이다.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계속 안고 갈 수 없는 사업.
 적극적인 투자를 했다지만 그녀가 상속받은 유산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해를 바라고 있지만 역시나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이었나 보다.
 “승격한 해에 많은 것을 이루기는 힘든 법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미안해요. 계약을 해지하는 보상금은 바로 지급해 드리겠습니다.”
 사실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를 괴르간이 하고 있었다.
 성적 부진으로 해임되는 감독이 부지기수다.
 그중에 한 명이 자신이 된다는 것이 과히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버티고 싶은 눈동자.
 성적 부진에 대한 해임을 받아들여야만 하는데 리가에서 잘리게 된다면 그의 커리어에 결코 도움이 될 리가 없었으니.
 “재고하실 수는 없습니까?”
 뷰코크 단장은 그녀에게 다시 한 번 부탁했다.
 사실 본인의 책임도 있었다.
 그래서 경질되는 감독에게 미안할 뿐이다.
 구단의 자금을 효율적인 투자로 이어지게 하는 게 단장의 몫.
 그러나 그는 제대로 된 선수를 공급하지 못했다.
 아니면 감독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거나.
 “죄송하지만 단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
 “……!”
 이건 예상하지 못했나 보다.
 감독과 단장을 둘 다 해임하는 경우는 드물다.
 동반 해임이라니?
 그녀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결국, 둘은 보따리를 싸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속으로야 어떻든 간에 겉으로는 웃으면서 퇴장하는 이들.
 후임 단장이나 감독을 묻지도 못했다.
 쿨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인지.
 나가서는 그들이 한마디씩 했다.
 “어린 것이 어쩌려고?”
 “그러게 말입니다. 앞날이 훤하네요, 퉤!”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난 오후.
 새로운 감독과 미팅이 있다고 구단 직원들에게 전달했다.
 그때까지 아무도 새로운 단장과 감독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맞이한 사람이 젊은 코리안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선수들의 표정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만이 가득했다.
 
 “저 사람이 우리 감독이라고요?”
 “그렇습니다.”
 레오니는 당연한 질문을 왜 하느냐는 식으로 팀의 주장을 맡은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에메랄드 눈빛.
 어떨 때에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오늘은 정말 차갑게 보였다.
 아름다울 때에는 자신의 마음을 홀랑 가져가 버리더니, 지금은 명령에 따르라는 시선이었다.
 비즈니스를 하는 여자라서 이렇게 변신이 가능한 것일까?
 “이해하기 어렵네요. 전 처음 보는 사람인데. 어디 국가대표 선수를 한 사람입니까? 아니 감독이라도 한 적이 있는 분인가요?”
 “아뇨, 감독은 처음입니다. 저희 팀을 처음으로 맡게 될 것입니다.”
 그는 말문이 막혔다.
 아무리 팀이 순위권에 곤두박질쳤다고 할지라도 이럴 수는 없었다.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감독을 맡기다니.
 그것도 코리안이다.
 요즘 축구를 좀 한다는 한국의 유망주들이 독일 무대에 활약하고 있을지라도 아직 그곳은 축구 변방국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들을 아우를 수 있는 경험 많은 감독이 더 어울릴 것이다.
 “구단주님, 저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저희 구단과 계약을 했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계약 해지를 하시면 됩니다. 그에 대한 책임은 여러분들이 지는 것이고요.”
 그녀의 이 말.
 아무리 그래도 구단이 갑의 위치였다.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 감독. 그것도 축구 변방국에서 온 사나이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
 그들에게는 침통한 일이지만 계약에 묶여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정 그렇게 나오시겠다? 알겠습니다. 두고 봅시다.”
 루카스는 이를 갈았다.
 그로서는 계약 해지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협조할 생각도 없었다.
 자신들을 무시하는 처사로 비친 구단주의 말.
 새파란 감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될 일이다. 물론 은근슬쩍 해야 했다. 대놓고 했다가 벌금이라도 받으면 큰일이었다.
 “레오니, 그만둬.”
 그때 지금까지 잠자코 있었던 박정이 나섰다.
 선수들은 그가 입을 열자 그에게 주목했다.
 그리고 레오니를 저지시키자 그래도 한 가닥 양심은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그다음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이 그들의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어차피 주전은 다시 뽑아야 해. 이들을 몰아붙이면 악에 받쳐서 열심히 한단 말이야.”
 그들은 순간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레오니가 아닌 자신들을 보면서 확정을 짓듯이 말하는 그의 음성을 듣고 그만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주전과 비주전이 확연히 구분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 정해진 주전은 없다. 심지어 정해진 포지션도 없다. 훈련을 통해서 전 포지션을 파괴하고 분석하여 새롭게 주전을 짤 것이다. 말했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다.”
 “뭐라고?”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겠지?”
 “저런 미친…….”
 모두가 각자 한마디씩 했다. 그를 정신 나간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청년.
 박정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계속 이었다.
 “다만 주장과 부주장은 계속 유임된다. 본인이 원하지 않을 때까지…….”
 “아니, 지금 무슨 말을…….”
 “내 말 아직 안 끝났는데. 유임은 네가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팀을 유지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변하지 않는다면 난 신뢰하겠다. 부주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잘 생각해 봐라. 팀에 애정을 갖는 것과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이다. 왜 성적이 나오지 않는지 주장과 부주장은 반드시 파악해야 했다. 둘은 그것에 소홀했다.”
 “…….”
 이제 그들은 대꾸하는 것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요즘 감독은 소통을 중요시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 동양인 감독은 철저한 유교주의에 물든 사람인가 보다. 전혀 사람 말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애정이라.
 그것은 맹목적으로 팀에 바치는 감정이 아니다. 비전이 있고 희망이 생길 때 드러나는 것이다.
 “겨울 휴식기에 팀이 왜 승리를 못 하는지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그것을 위해 내가 부임을 했으니. 하지만 경기에 뛰는 것은 내가 아닌 여러분들이다. 즉, 패배에 대한 원인을 알아야 하고 알면 바꿔야 하는 것은 여러분이란 말이다. 30분 후 훈련장에서 보자. 왜 패배를 거듭하는지 알려줄 테니. 이상!”
 그는 바로 등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선수의 시선이 자신의 등에 꽂혀 있다는 것을.
 아마 자신을 잡아먹을 듯한 눈빛일 것이다.
 원래 성격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천천히 올덴부르크 구단의 전용 구장인 마르쉬베크 슈타디온으로 향할 뿐.
 2015년을 시작하는 겨울. 이렇게 후반기 시즌을 앞두고 불어오는 바람이 선수들에게는 매우 차갑기만 했다.
 
 Liga 2. 새로운 전술
 
 마르쉬베크 슈타디온.
 관중 수용 인원이 15,552명인 아주 작은 구장이다.
 하지만 올덴부르크 시민들의 축구 열정은 그렇게 작지만은 않았다. 평소에도 둘러보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하긴 독일의 모든 구단은 시민 친화적이었다. 훈련 모습도 개방하며 같이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이곳에 한국인 감독이 서 있었다. 지금까지 팀을 맡아서 훈련해 온 코칭스태프와 함께.
 선수들과의 면담이 끝나고 이들과 한 미팅.
 반발은 없었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간에 코치들과 트레이너들은 성질이 다르다. 이들도 계약 관계이기는 하지만 자리를 보전해 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 구단주와 감독의 뜻을 따르겠다는 말을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선수들과는 다른 특징이 이들에게 있었다.
 바로 생계유지.
 그리고 그것을 걱정할 만큼은 되는 나이였다.
 당장 직장을 잃으면 다시 찾는 일도 골치 아프다.
 누가 감독이 되었든 그들은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책임은 그가 지는 것. 물론 책임 분담이라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것에서 회피할 수 있는 자리를 보전하는 게 이들에게는 최선의 일이었다.
 현재 올덴부르크의 코치진은 코치 둘, 골키퍼 코치 하나, 그리고 유소년 코치 겸 트레이너가 한 명이었다.
 대형 구단이 아니기에 이 정도가 적정 수라고 볼 수 있었다.
 사실 구단의 살림살이를 고려하면 이들 중에서도 코치 한 명 정도가 필요 없을 수도 있었다.
 선수들이 훈련장에 들어오고 있었다. 얼굴에 불만을 가득 담아서.
 1군과 2군을 합쳐서 총 48명.
 유소년 훈련은 오후에 있었기에 그들을 제외한 인원이었다.
 그들을 향해 걸어가는 코치. 40대 중반의 나이로 보였다.
 이름은 마빈 비에팅.
 코치진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다.
 “스무 바퀴를 돈 후에 시작한다.”
 “네?”
 “스무 바퀴라고요?”
 훈련을 시작하기 전에 간단히 몸을 푸는 구장 돌기.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섯 바퀴 정도였다.
 감독이 바뀌니 훈련 과정도 달라지나 보다. 자신들의 귀를 의심하는 숫자가 나왔으니 말이니.
 “그럼 지쳐서 나머지 훈련 과정을 소화할 수 없을 텐데요?”
 역시 주장인 루카스가 항명에 가까운 불만을 토로했다.
 스물여덟의 나이. 수비수로서 꽃을 피우기 시작한 연령대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의 활약은 나쁘지 않았다. 주장이라는 책무를 다 하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주장으로서 선수들의 심정을 대변한 그의 이 말.
 마빈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아니 듣긴 했지만, 책임을 감독에게 전가하는 말로 그들을 달래 본다.
 “감독이 바뀌었다. 왕이 바뀌면 법도 바뀌는 것 아니겠나? 일단 돌아라. 그러고 나서 불합리하고 생각하면 그때 이야기하면 되지 않겠느냐?”
 결국, 이 말을 듣고 체념하는 선수들.
 불만을 가진 얼굴로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다.
 훈련 시작이 벌써 이러니 그다음 과정은 더욱 불만이 쌓일 것이다. 그때마다 달래주고 변명해야 하니 마빈은 벌써 골치가 아팠다.
 “약간 불만인가 봅니다.”
 돌아와서 운동장을 지켜보고 있는 박정에게 그는 선수들의 의견을 전달했다.
 하지만 묵묵부답.
 이 코리안 감독은 지켜만 보고 있다. 혹시 누가 가장 체력이 좋은지 확인을 해 보려는 것일까?
 마빈은 다른 코치진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는 것으로 자체적인 표현을 할 뿐이었다. 어쩔 수 있겠냐는 몸짓이었다.
 오자마자 새 감독이 주문한 것은 스무 바퀴의 운동장 돌라는 말밖에 없었다. 그다음 스케줄은 아직 말하지 않았다.
 결국, 궁금한 사람이 물어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다음은 어찌하면 됩니까?”
 박정은 손가락을 들었다.
 집게손가락이다.
 간단하게 그것이 가리키는 곳. 운동장 한끝부터 다른 한끝까지를 허공에서 점을 찍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저기서부터 저기까지 전력질주를 합니다. 가장 주력이 좋은 선수를 보겠습니다.”
 “선수 중에 가장 주력이 좋은 선수는…….”
 “알고 있습니다. 안다치입니다. 이미 서류는 다 살펴보았습니다. 백 미터를 12초에 주파한다는 기록. 그러나 모르지 않습니까? 눈으로 다 확인은 해야 합니다.”
 마빈은 다시 머리가 아파졌다.
 새 감독은 눈으로 보지 않은 것을 다 믿지 않으려는 눈치였다.
 이렇게 된다면 누가 가장 슛을 잘하고 패스를 잘하는지도 눈으로 확인할 것임이 분명했다.
 그럴 때마다 선수들을 다독이고 이해시키는 역할은 다 자신의 몫이 될 텐데.
 초보 감독이라 그런지 영 서툴러 보였다. 쓸데없는 자존심만 가득했다.
 뒤에 서 있는 구단주는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다.
 도대체 그녀와 그는 무슨 관계일까?
 조금 있다가 알게 되었다.
 그녀가 그에게 다가와서 볼에 키스하는 장면. 확실했다. 연인 관계라는 것이. 그렇다면 자신의 연인을 감독으로 부임시켰다는 말인데.
 ‘나중에 입방아에 오르겠군. 이거 새로운 직장을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네.’
 그는 불길함을 느꼈다. 구단주가 구단을 인수했을 때만 해도 과감한 투자로 라기오날 리가에서 리가로 승격을 시키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렇게 4부 리그에서 3부 리그로 왔을 때만 해도 부푼 희망을 품고 왔었는데.
 하지만 1년 만에 사고로 죽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딸이 바로 구단주의 임무를 수행할 때부터 팀은 악순환을 거듭했다.
 9무 10패.
 전반기에 그들이 거두었던 총 승점이 9점이었다.
 지금부터 한 반타작을 한다면 강등을 피할 수 있을까?
 가능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현재의 전력으로는 기적에 가까운 일일지도 몰랐다.
 ‘강등 탈출? 그게 누구 애 이름인가?’
 아마도 강등 탈출을 위해 그를 새 감독으로 임명한 모양인데, 꿈이 매우 크다고 생각했다.
 초보 감독과 맞이하는 강등.
 그렇게 된다면 다시 악순환이 시작된다. 선수단의 규모도 줄고, 코치진의 연봉도 줄고.
 잠시 후 그는 벌써 선수들이 지친 기색을 보이는 것을 보고 낙담을 했다.
 열 바퀴를 돌았을 때부터 저 모습이었다.
 몇몇 선수들은 아니지만 대부분 그랬다.
 이 훈련의 목적을 이제 깨달은 마빈. 결국, 체력 테스트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측정이 될까?
 다섯 바퀴에 적응된 사람이 갑자기 그 네 배수를 뛸 수는 없다.
 열다섯 바퀴를 돌고 나서부터는 뛰는 둥 마는 둥, 어떤 선수는 걸었다가, 그리고 쉬었다가 다시 뛰는 이들도 있었다.
 마르쉬베크 슈타디온은 관중 수용은 작지만 크기가 좁지는 않았다.
 가끔 육상경기도 하므로 트랙이 있다. 한 바퀴가 약 400미터니까 스무 바퀴면 8킬로미터라는 이야기인데, 지칠 만도 했다.
 선수들이 오와 열을 무시하고 가까스로 다 돌고 누워 버렸다. 쌀쌀한 날씨에 그들이 내뱉는 입김이 하얗게 되어 공중을 흩뿌렸다.
 “5분 휴식 후 속도를 측정하겠습니다.”
 냉정한 목소리가 마빈의 귀에 들리고 그는 다시 선수들에게 뛰어갔다.
 숨이 차서 불만을 터트리지도 못하고 있는 그들의 귀에 청천벽력 같은 지시가 떨어졌다.
 “이런 젠장.”
 “헉, 헉.”
 그나마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덜 지친 선수들의 입을 통해서였다. 나머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게 진정이 되지 않는 한, 불만도 터트리기 힘들었다.
 혹시 듣기 싫은 말을 할까 봐 이런 지시를 내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은 따라야 했다.
 속도 측정.
 스톱워치로 측정하니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안다치 쉬를레이고.
 백 미터를 12초에 끊는 왼쪽 날개.
 그가 당연히 가장 앞에 나와야 하는데 중간쯤에 처져 있었다. 가장 먼저 끝에서 끝까지 온 선수가 카이 프뢰게르다. 그 뒤를 이어 마르첼 고취실링, 프랑코 우젤라취가 당도했다.
 100미터가 아니어서 그럴 것이다.
 끝에서 끝은 오백 미터가 넘는다. 더구나 스무 바퀴를 돈 상황. 안다치는 단거리가 빠른 것이지 중장거리는 힘든 선수였다. 즉, 체력이 받쳐 주지 않았다. 처음부터 뒤처져 있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했다.
 마빈은 다음 과정을 예상해 보았다.
 체력과 주력 측정이 끝났으니 이제는 볼을 다루는 기술을 시작할 것이다.
 그가 감독의 입을 보는 것은 다음 지시를 기다리기 때문이었다.
 “골키퍼들은 스타르당 코치가 봐 주세요. 그들을 제외하고는 드리블을 측정해 보겠습니다.”
 역시 그의 예상대로였다.
 이제 선수들은 체념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들 또한 감독의 의중을 파악해 버렸다. 그다음 순서가 무엇인지 대략 알고 있다.
 아마도 오늘은 전술 훈련이 없을 것이다.
 마지막은 청백전과 마무리 훈련으로 이루어질 게 분명할 테니.
 코치진의 눈에 허무한 듯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는 박정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과연 무엇을 얻었을까?
 아니 얻은 것이 정확한 정보가 되었을까?
 불만이 가득하며 의욕이 없었던 선수들에게서 얻은 자료는 써먹을 수가 없다.
 시간이 흐르고 청백전을 시키는 그의 명령을 받으며 그들 역시 허무한 눈빛이 되어 있었다.
 이제 이 팀의 운명은 거의 끝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 눈동자들.
 다만 레오니만 달랐다.
 뭔가 가득 희망을 품고 있는 눈빛.
 그것을 보며 코치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헛된 희망은 실망으로 바뀔 때 자신들이 가진 허무함보다 더한 좌절을 맛보게 해 줄 것이다.
 부친의 죽음으로 잘못된 길을 선택한 것인지 그녀는 망상에 젖어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훈련이 끝나고 선수들은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물건을 챙기며 슈타디온을 떠났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코치진을 구단 사무실로 소집한 박정은 훈련 내내 별말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새로운 지시를 내리고 있었고.
 “포지션을 새롭게 부여할 것입니다. 아마도 상당수가 자신의 포지션에서 뛰지 못할 것 같군요. 에 또……, 여러분들의 의견도 중요한 것이니 내일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의 생각과 조율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음…… 맞다. 또한, 내일 훈련도 같습니다. 질문 있으면 받겠습니다.”
 그들은 입을 닫고 있었다.
 무엇을 물어도 씨알도 안 먹힐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고 그는 질문을 재촉하지 않는 쿨한 모습으로 사무실을 떠났다. 그리고 그 뒤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레오니가 따라나선 것은 누구라도 추측할 만한 일이었다.
 “끝났군.”
 “그러게요. 이제 다른 구단을 알아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야 말문이 열리는 코치들.
 그들의 시선은 박정이 남기고 간 암담함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클럽하우스에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온 선수들은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 감독에 대한 항명.
 제대로 일으키리라고 다짐을 하는 그 표정들.
 레오니는 박정과 함께 들어왔을 때 잠시 놀라는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자신의 자리들을 찾으세요. 여기에 초대 받지 못한 사람들은 나가 주세요.”
 그녀의 말이 의미하는 것.
 새로운 포지션과 전술을 위한 자리에 선수들은 동석할 수 없었다.
 아니 할 수는 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라운드에서 몸으로 해야 할 것이다.
 박정의 시각에서 명령에 따르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기에.
 “우리도 들을 권리가 있습니다!”
 역시 루카스.
 말은 레오니에게 하고 있지만, 그의 눈빛은 박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게 이 인간은 놀라지도 않았다.
 자신들이 여기에 존재한다면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도 되지 않는가?
 마치 예상하고 있었다는 시선.
 그게 더 싫었다.
 “무슨 소리세요? 어서…….”
 “됐어, 레오니. 상관없어. 오히려 두 번 이야기하지 않아서 좋은데, 뭘.”
 그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에서 나오는 첫 번째 미소를 이런 식으로 보게 될 줄이야.
 하지만 곧 그 미소를 지우고 무표정함을 다시 유지하는 새 감독.
 “새 포지션을 말하겠다. 최전방 공격수는 루카스, 원톱!”
 “……!”
 “저……!”
 처음부터 말문을 막히게 하는 그의 목소리.
 루카스는 부동의 센터 백이다.
 즉 중앙을 수비하는 선수라는 말이다.
 190센티미터에 달하는 큰 신장. 언제 어디서든지 피지컬에서 뒤지지 않는 몸. 그리고 헤딩력. 심지어 후방에서 전달하는 음성에서 리더십이 담겨 있기에 그의 포지션이 바뀌리라고는 모두가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원톱이라니?
 최후방 수비수에서 최전방 공격수라는 것은 모두가 받아들이기 힘든 명령이었다.
 “이런 개뿔! 미친 것 아냐?”
 “욘, 기다려 봐. 다 듣고 이야기하자.”
 욘 디터.
 올덴부르크의 스트라이커다.
 공격을 책임지고 있는 투톱 중 하나.
 나머지 다른 최전방 공격수의 자리는 로테이션.
 즉, 돌아가면서 한 명이 그를 받쳐 주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그는 팀의 확실한 주전. 그것도 부동의 핵심 멤버였다. 가지고 있는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지만, 이름값 못 한다는 것을 전반기 내내 증명한 최하위 팀의 스타 아닌 스타플레이어.
 그의 눈이 살쾡이처럼 변했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는 것도 억울한데 그것도 수비수에게 넘겨주어야 하니 독기가 오른 것이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바탕 난리를 칠 기세.
 턱.
 그러나 그를 말리는 것은 팀의 주장인 루카스였다.
 그의 손은 따뜻했지만, 눈은 차가워지고 있었다.
 과연 어디까지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 듣고 싶어 하는 모양새였다.
 그래서 욘은 결국 참고 말았다.
 얼굴에 갖은 인상을 다 쓰는 것으로 일단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을 뿐이다.
 그런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이 새로운 동양인 감독이 자신의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선수들의 표정은 점점 변해 가고 있었고.
 당연한 일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포지션 변동이 시작되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황당함에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상당수가 생소한 포지션으로 그의 입에서 이동되고 있었다. 주전과 후보를 망라하며 자신의 위치가 달라졌고, 실험 아닌 실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할 말이 있지만, 꾹 참는 선수들.
 그의 마지막 말을 다 끝내고 나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포지션과 주전 후보를 구분 짓는지 듣고 싶은 이유 때문이었다.
 “3-6-1. 생소한 포메이션이기는 하지만 여러분들이 전술훈련을 충분히 해 준다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이상이다.”
 3-6-1이란다.
 수비수 셋, 미드필더 여섯, 그리고 공격수 하나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전술.
 루카스가 가장 꼭짓점에 있다.
 이전의 전술과는 매우 달랐다.
 이 생소한 전술에 생소한 포지션을 든 선수들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어이가 없어서 잠시 말까지 잊은 듯했다.
 하지만 이런 선수들의 반응을 더 살펴보는 것은 박정에게 무의미한 일인가?
 그렇게 드디어 자신의 이야기를 끝마쳤다.
 그리고 기대했던 충분한 설명은 없었다. 잠시 이들이 침묵하는 것은 그가 뭔가 더 납득할 만한 부연 설명을 해 줄 줄 알아서였는데.
 일단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선수들뿐만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계가 달려 있다고는 하지만 코치들은 호구가 아니기에.
 그래서 마빈은 루카스와 눈을 마주쳤다.
 ‘제가 말할까요? 아니면 코치님이 말씀하실래요?’
 그의 눈빛은 이렇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감독님, 말씀하신 것들에 대해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이유? 9무 10패에 대한 이유를 먼저 듣고 싶지만, 그건 됐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못 했으니 그런 성적이 나온 것입니다. 선수는 말로 축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공으로 증명하면 되는 일. 불만이 있다면 공으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지금 바로 청백전을 하죠. 내가 한 팀을 맡을 테니 코치가 한 팀을 맡으시죠.”
 어이가 없었다.
 여기서 박정의 편은 단 한 명이었다.
 레오니. 구단주라고는 하지만 과연 그녀가 축구를 잘 아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실제로 그녀가 구단을 맡고 팀은 추락했으니 공을 골대에 넣으면 일 점을 얻는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가끔 단장과 감독은 아무것도 모르는 구단주와 이야기하는 게 답답하다고 선수들에게 호소해 왔다. 이제 그녀와 더불어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감독까지 생겼다.
 암담한 상황.
 “좋습니다. 그렇게 하죠. 팀은 어떻게 선택하면 되는 것입니까?”
 “너는 내가 맡는다.”
 박정은 자신을 노려보며 동의를 하는 루카스를 바라보았다.
 “나를 믿습니까? 당신 팀에 자살골을 선사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렇게까지 쓰레기라면 어쩔 수 없다. 분명히 말하지만, 너희는 프로다. 운동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보여 주는. 최선을 다하라고 부탁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해 보지도 않고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면 쓰레기와 다를 게 뭐가 있단 말이냐?”
 “흥.”
 콧방귀로 그의 말을 받았지만, 그는 최소한 팀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허무한 듯 보이는 새 감독의 눈빛.
 어느새 열정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이 코리안 감독은 자신들을 통해서 실험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 실험에 놀아나 주마. 하지만 결과를 보면 네가 지금까지 말했던 포지션과 포메이션이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 절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결국, 그라운드에 모인 이들.
 두 팀으로 나뉘었다.
 나름 만족하는 것이 주전과 비주전이 섞여 있었다.
 감독이 무모하기는 하지만 최소한의 도리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선수들.
 만약 주전 대 비주전의 구도로 팀을 짰다면 어땠을까?
 선수들은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내 주문은 매우 간단하다. 수비수들과 미드필더는 공을 올려라. 항상 루카스의 머리로.”
 “이…… 이건…….”
 “그렇다. 너희가 생각하는 것이 맞다. 뻥 축구.”
 “그리고 설마 나보고 골대 안으로 슛하라는 것은 아니겠지?”
 루카스는, 아니 선수들 모두 황당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요즘 현대축구에서 지양하고 있는 뻥 축구.
 공을 최전방 공격수인 포워드에게 올리고 골문 안으로 집어넣는 식의 축구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른바 포스트 플레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한 번 막히기 시작하면 그 단조로움에 경기를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은 방법.
 관중들도 재미없어하는 그런 축구를 지시하고 있었다.
 “어제 훈련에서 너의 재능을 보았다. 너는 골문 밖으로 쳐내는 것을 더 잘한다.”
 루카스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수비수였고 당연히 그의 머리는 골문 안에 넣는 것보다 외곽으로 쳐내는 것을 더 잘하도록 길들여 있었다.
 “그래서 주문을 하는 것이다. 공을 떨어트려라. 그리고 떨어진 공은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다른 선수들이 마무리하면 된다. 웬만하면 네가 슛을 전담해라.”
 그가 가리키는 사람.
 야닉 비안.
 며칠 전 스무 살 생일을 맞이한 그는 아직 어렸다.
 비주전이기도 했지만, 매우 느린 주력과 작은 키로 적당한 포지션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제가요?”
 “그렇다. 너는 아마도 평소에 슛 연습만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나?”
 “그건 그런데…….”
 “그럼 됐다. 자신감을 가져라.”
 “이봐요. 저쪽 골키퍼는 주전입니다. 왜 이렇게 팀을 짰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제외하고 주전 수비수도 다 저쪽에 가 있는데, 도대체…….”
 “대신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미드필더는 다 이쪽에 있다. 걱정하지 마라. 이기라는 것이 아니다. 오늘 이 실험을 하는 이유는 경기가 끝나면 알게 될 것이니.”
 그의 주문은 여기까지였다.
 뻥 축구와 포스트 플레이를 제외한 그 어떤 주문도 하지 않았다.
 과연 이것으로 무엇을 어떻게 실험을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중앙선에 공을 가져다 놓고 그 꼭대기에 발을 대면서도 루카스는 진한 의문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반면 상대편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투톱이 고스란히 있다. 거기다 주전 수비수들과 골키퍼까지.
 호르륵!
 결국, 청백전 심판으로 나선 스타르당의 호루라기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루카스는 공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앞으로 뛰어 나갔다.
 다행히 공격수와 수비수를 이어 주는 미드필더들은 이쪽이 주전에 속했다. 그나마 점유율이 심각할 정도로 밀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들 때문이리라.
 그들은 공을 돌리다가 감독의 주문으로 공을 올렸다.
 자신의 머리로 오는 그 공.
 헤딩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점프를 하며 공을 따냈다.
 그리고 떨어진 공. 자신과 함께 중앙 수비수를 보는 상대편의 토르스텐 퇴니스의 발로 떨어졌다.
 그 이후 아주 그는 간결하게 공을 이끌고 갔다.
 루카스가 붙자 그는 공을 전방으로 돌렸다.
 지금까지 해 왔던 4-4-2 포메이션.
 수비 넷, 중앙 미드필더 넷, 마지막으로 공격수 둘.
 익숙함으로 무장한 상대인데 못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미드필더들을 거치면서 가는 공은 곧바로 페널티 에어리어에 있는 욘의 발 앞에 떨어졌다.
 완벽한 득점 기회였다.
 “막아!”
 루카스는 자신도 모르게 내려와 있었다.
 원톱이라는 것.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이다.
 역시 수비수의 본능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주력도 느린 데다가 공보다 자신의 몸이 더 빠를 리가 없었다.
 눈으로 보는 위기가 그의 뇌리를 지배했다.
 그런데…….
 역시 고질적인 골문 앞에서의 미숙함.
 공은 공중에 뜨고 말았다.
 욘은 늘 저랬다. 완벽한 기회를 놓치는 그가 경기 중에 얼마나 원망스러웠던지.
 “슈나이더, 벌써 한 골 먹을 뻔했잖아. 정신들 똑바로 차려!”
 “네, 네.”
 땀을 뻘뻘 흘리면서 대답을 하는 어린 수비수들.
 그들에게 루카스는 하늘같은 선배였다.
 그런 그들의 얼굴을 보며 약간 미안함이 들었다.
 윽박지르는 것이 다가 아닌데 항상 자신은 그랬었던 것 같았다.
 “됐어, 됐어. 긴장들 풀고. 이왕 이렇게 된 것 이겨 보자고. 감독이 이상하지만 이렇게 해서 새로운 해법을 찾으면 좋은 거잖아.”
 마치 자신에게 하는 주문 같았다.
 그러면서 문득 자신의 위치가 여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그는 이번 경기에서 공격수다.
 불현듯 느끼고 감독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비친 박정.
 표정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자신을 꼭 책망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위치를 고수하지 않는 것에 대한.
 물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좋아, 뜻대로 해 보지. 이래서 이긴다면 꾹 참고 당신의 지시대로 해 주마.’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자신에게 없는 공격수의 재능을 발견해 볼 참이었다.
 어느새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 들어와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
 좌측에 보이는 야닉.
 그의 발 앞에 정확히 공을 떨어트렸다.
 그리고…….
 쾅!
 그의 귀에 마치 그렇게 들리는 것 같았다.
 출렁이는 그물.
 야닉이 드디어 해낸 것이다.
 그렇게 슛 연습만 하더니.
 연습 경기지만 드디어 득점을 올렸다.
 자신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리고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축하해 줄 사람을 찾는가?
 야닉과 눈이 마주친 루카스.
 그 역시 믿을 수 없는 눈빛이 되었다.
 그가 자신에게 뛰어오고 있다.
 그를 안는 손.
 어느새 루카스의 얼굴에는 미소가 드리워졌다.
 
 Liga 3. 선수 다루기
 
 경기가 끝났다.
 무려 5대 1.
 점수가 보여주듯 일방적인 승리였다.
 어느 팀이?
 물론 박정이 지휘하는 팀이었다.
 경기를 마치고 나오는 선수들.
 승리한 팀에는 자신감을 그리고 패배한 팀에는 짙은 좌절감을 주고 있었다.
 그들이 모인 곳에서 올덴부르크의 새 감독이 눈빛을 빛냈다.
 “이제 여러분들의 훈련 일정을 내가 짜겠다. 성격은 고칠 수 없지만, 습관은 가능하다.”
 “…….”
 선수들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역시 결과가 최선의 해답이었다.
 그들을 이렇게 조용히 시킬 수 있으니.
 박정은 계속 하고 싶은 말을 이어갔다.
 “다만 오랫동안 몸에 배어 있는 그 습관을 한순간에 고칠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 더 어린 사람들은 쉽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뼈를 깎는 습관화 훈련이 가해질 것이다. 무리라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훈련에서 빠져라. 그래도 연봉은 지급될 것이니. 이상이다.”
 그를 만나고 나서 가장 긴 일장 연설이었다.
 그리고 그를 만나고 나서 가장 반발을 하지 않은 순간이기도 했고.
 진 팀은 진 팀대로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에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결정적인 게 있었다.
 그들이 깨달은 바가 적지 않았다.
 작은 분석으로 승리를 따낼 수 있는 전략.
 아마 그들은 상대에게 그렇게 분석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항상 승리가 요원했고, 패배는 쉬웠다. 그나마 무승부를 했던 것은 그들의 수비가 강했기 때문이다.
 박정은 이 점을 꿰뚫어 보았다.
 공격이 무디고 수비가 강한 팀.
 그렇다면 치유법은 간단했다.
 공격의 다변화. 그리고 환부를 제거해 주는 일.
 그가 생각한 환부는 골 결정력이었다.
 가장 슛을 잘하는 사람의 전방 배치는 그래서 이루어졌다.
 다만 조력자가 필요했고 루카스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레오니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중간에 쇼핑몰로 방향을 틀었다.
 그녀는 매우 기쁜 나머지 그와의 시간을 밖에서 더 보내고 싶었다.
 박정은 달갑지 않았다.
 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기에.
 당장 훈련 일정표부터 완성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에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었다.
 아니 예측할 수 없는 남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녀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오늘따라 너무 강렬한 의지를 보여 주는 그녀였다.
 “나 당신에게 너무 푹 빠진 것 같아.”
 레스토랑에서 그녀가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그에게는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기에?
 그것을 알면 모든 남자가 그처럼 행동할 것이다.
 사람의 매력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타고난 것이지.
 “알고 있어.”
 “호호, 그렇게 말하는 것도 아주 좋아. 이히 리베 디히.”
 Ich liebe dich.
 독일어로 사랑한다는 뜻이다.
 말과 동시에 그의 입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자신과 같은 말을 듣고 싶었기에.
 그러나 그의 입은 그가 썬 스테이크만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는 박정.
 “한국 남자들은 자기처럼 그렇게 표현을 안 해?”
 “응.”
 “피, 재미없군.”
 “다 그렇지는 않아. 난 고전적인 사람인가 봐.”
 “그래? 그럼 다른 한국 남자들은 자기 같지 않아?”
 “요즘은 다들 표현하는 것 같아.”
 “그럼 다른 사람을 만나 볼까? 다른 매력적인 한국 남자들로?”
 “뜻대로…….”
 자신감인가? 아니면 진심인가?
 레오니는 약간 서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그에게 먼저 끌린 것은 자신이었고, 그는 그녀에게 살짝 마음을 열어 준 것뿐이니.
 “자기는 여자 친구 사귀어 본 적 없어?”
 “있어.”
 “그래? 어땠어?”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는 갑자기 씹던 스테이크를 삼키고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허무한 눈동자.
 그의 눈빛은 늘 그랬다.
 하지만 축구를 이야기할 때 생기는 열정.
 그 두 개의 상반된 감정이 섞이면 대단히 묘한 눈빛이 만들어졌다.
 레오니는 그것에 빠졌다.
 그러나 지금처럼 허무한 눈동자를 보면 왠지 불안했다.
 “……기분 좋아?”
 “응? 무슨 뜻이야?”
 “사랑하는 사람의 과거를 아는 것.”
 “알고 싶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사랑했는지.”
 그녀의 눈은 그와는 완전히 달랐다.
 매력적인 에메랄드 빛.
 거기다가 사랑이 잔뜩 묻어 있었다.
 동양 남자에 대한 그 열망이 어찌 생겼을까?
 “말하고 싶지 않아. 다른 이야기하자.”
 “에이, 재미없어. 또 축구 이야기하자고 할 거지?”
 그녀는 실망한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는 박정.
 와인으로 목을 축였다.
 갑자기 담배를 물고 싶었다.
 선수 시절에는 입에도 대지 않았던 물건인데 요즘 그는 헤비하게 그것을 소비했다.
 “자금 상황은 괜찮아?”
 “아니, 휴우.”
 그녀는 말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꼭 집어서 이야기하는 그가 원망스러웠다.
 사실 최악이었다.
 독일의 축구단은 경영을 잘해야 한다.
 규정을 지키지 않고 적자운영을 하기 시작하면 승점 삭감이라는 벌칙을 부여 받았다.
 “감독과 단장을 해임하면서 그들에게 준 보상금. 그리고 지속해서 생기는 누적 적자. 사실 힘들어.”
 “선수를 팔자.”
 “그건…….”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처음 그녀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팀을 받았을 때 그녀는 그들에게 말을 했다.
 세미프로가 아닌 프로 계약을 하겠다고.
 원래 그것은 올덴부르크의 전통이었다.
 4부 리가로, 그리고 5부 리가로 내려갔어도, 이전 구단주도, 그리고 구단주가 바뀌었어도 선수들에 대한 예우는 매우 좋았다.
 팬심도 두터웠다.
 기본적으로 약 천 명에서 이천 명의 원정 응원단이 조직될 정도로.
 하지만 사실 그때부터 팀의 자금 사정이 악화한 것이다.
 프로 계약을 한 선수들의 연봉.
 당연히 높아졌다.
 그리고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팀의 성적이 좋아야 했다. 그래야 관중 수입과 독일의 축구 연맹에서 나오는 성적 배당금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그러나 패배를 거듭한 팀 성적은 현재 최하위.
 의리를 지키는 관중도 있지만, 현재는 많이 등을 돌린 상태였다.
 옆에 있는 도시 브레멘은 잘 나가는 상태.
 라이벌이라고 하기에는 그들과 상대가 되지 않지만, 희망이라는 이름을 부여했을 때는 달랐다.
 4부 리그에서 승격할 때만 해도 그들은 부푼 희망을 꾸었다. 베르더 브레멘과의 더비를 말이다.
 옆 도시에 있는 라이벌이 뭔가?
 심지어 니더작센 주의 메펜은 리가 1위를 하고 있었다.
 원래 사촌이 땅을 사면 더더욱 배가 아픈 법이다.
 올덴부르크의 팬들은 메펜이 승격하리라 생각을 하면 축구장에 발걸음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같은 지역에서 한 팀이 올라가고 다른 한 팀은 강등이 될 것 같은데, 그게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면 쉽게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이러니 관중 수입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게 한정이 되어 있었다.
 투자는 많이 하고, 이익은 눈에 띄게 줄고 있으니 경영이 힘들 수밖에 없었다.
 지역 유지들은 그나마 이사라는 직함을 가졌는데, 발을 빼려고 했다.
 그녀가 이번에 박정을 억지로 집어넣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감독으로.
 결정적으로 전 단장과 감독이 맘에 들지 않았지만, 보상금을 준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이것을 설명했다.
 “관중 수입은 레기오날 리가에 있을 때보다 더 안 좋은 것 같아. 씀씀이는 더 커졌고. 하지만 선수들을 내치면 신뢰를 잃게 돼. 벌써 감독과 단장을 해임한 것으로 지역 내 여론이 들쑤시고 있어. 특히…….”
 그녀는 말을 하다 말고 멈추었다.
 그것은 박정과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많이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녀가 새로운 감독으로 한국인을 선임했고, 그와 내연의 관계라는 말.
 사실이니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자신의 남자 친구가 비하된다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입으로 그것을 비치고 싶지도 않았고.
 그래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박정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다만 모르는 척은 할 수 있다.
 원래 크게 마음을 쓰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자신의 이득이 먼저고, 다른 사람의 심경은 그다음이었다.
 그래서 다시 와인을 한 잔 들이켜고 그녀에게 말을 했다.
 “결국, 승리에 승리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는 거네.”
 “맞아. 그래서 난…… 자기를 믿어.”
 “그 믿음, 보답할게.”
 사실 그는 몇몇 선수를 처분하고 싶었다.
 감독이 새로 부임하면 늘 있는 일이었다.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
 그리고 그것에 따라오는 선수와 그렇지 못한 선수들.
 그 가운데서 결국 타협을 거부한 이들에게 철퇴를 내리는 일.
 그것은 트레이드와 방출이다. 또는 다른 팀에게 파는 것은 더 금상첨화다. 자금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레오니가 말한 것은 그에게 지금 있는 자원들을 최대한 활용하라는 뜻과 같았다.
 어쩔 수 없었다.
 구단의 살림살이가 이렇다면 그것에 맞추는 수밖에.
 결국, 그의 능력을 믿는다는 그녀의 말은 그에게 부담을 준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래도 그는 묵묵하게 대답을 했다. 그 믿음에 보답하겠다는 말로.
 그런 점이 좋았다.
 그래서 레오니는 그를 사랑하며 신뢰했다.
 오늘 있었던 연습 경기에서 그는 더욱 그것을 증명해 냈다.
 그의 능력.
 축구를 보는 눈은 없어도 아버지를 닮아 사람을 보는 눈은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의 도전.
 과연 그것이 성공으로 결실을 볼지는 알 수 없었다.
 하나 그녀는 확신했다.
 집으로 돌아와 밤을 맞고 그의 방에 불이 꺼지지 않는 것을 보면 더욱더 확신이 들었다.
 다음 날 있을 훈련 계획표를 짜는 것이다.
 그 노력을 보면 어찌 성공을 예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그녀의 주관적인 판단이기는 하지만.
 새벽이 되어 그녀의 침대로 들어오는 그를 기다렸다가 꼭 안아 주었다.
 그것이 그녀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선물이었다.
 몇 시간 못 자고 구단으로 가야 하는 그를 위해 애정이라는 선물, 그리고 휴식이라는 보상으로 그에게 보답했다.
 곧 있으면 올덴부르크에 해가 뜰 것이다. 한 사람으로 빛날 수 있는 찬란한 태양이.
 그런데…….
 ‘머리가 아프군.’
 밤을 새워서일까?
 아니면 다른 병이라도?
 박정은 아픈 머리로 인해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러 주며 고통을 완화하려 했다.
 하지만 그래서 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은 포기. 그냥 그대로 아픔을 참으며 그녀의 품속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훈련 일정표가 발표되었다.
 전날의 일도 있고 해서 박정의 지시를 따라 주겠다고 생각한 선수들.
 그러나 그 어마어마한 양에 거품을 물었다.
 코치들도 마찬가지다.
 하루의 훈련량이 너무 많았다.
 어쩔 수 없이 마빈이 또 대표로 항의해 보았다. 그나마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선수들은 속된 표현을 쓰며 언쟁을 하기 시작할 테니.
 “통상 여름 훈련량이 많고, 겨울 훈련은 전술 쪽에 치우칩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그걸 모르겠습니까? 난 여름에 어떻게 훈련을 했는지는 모릅니다. 만약 제대로 했다면 팀이 이 모양 이 꼴은 아니었을 것으로 믿고. 그러니 따라 주십시오.”
 “그…… 그래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따르세요.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 줄 겁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과정에서 시작됩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는 새 감독.
 질렸다는 얼굴을 짓고 마는 나이 많은 코치. 그도 그리고 나머지 코치진도. 마지막으로 선수들까지 모두 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자, 자. 어제 봤잖아. 저렇게 말씀은 하시지만 결국 우리가 이기는 해법을 알고 있으신 것 같다. 한번 따라가 보자. 힘들어도 우리는 프로다. 돈을 받고 하는데 일을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란 말이다.”
 그래도 달래는 역할은 마빈의 것이었다.
 마치 구단의 어머니가 되는 양. 그의 말을 듣고 결국 움직이는 선수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양이기에?
 기본적으로 첫날 했던 것은 그대로였다.
 운동장을 돌고 그다음에 빨리 달리기.
 시간을 점검하는 것은 같았다. 그날 선수들을 파악하려고 한 것으로만 알았는데 아예 그게 훈련의 표본이 된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개인 훈련이었다.
 원래 이것도 이상했다.
 전술훈련을 한 다음에 개인별 훈련을 하는데, 신기하게 순서가 뒤바뀐 상태였다.
 골키퍼는 그들끼리 골키퍼 코치에게 개인 훈련을 받았다.
 올덴부르크의 주전 골키퍼는 파울러 디트리히.
 이제 서른 살인 그는 수비진의 도움인지 아니면 본인 능력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최하위 팀치고 적은 실점을 하며 슈퍼 세이브를 가끔 올리는 선수였다.
 “이게 지금 정상적인 훈련 과정인가요?”
 “난들 알아? 그래도 우리는 다행이라고. 일단 하라는 대로 해야지, 군말 말고 해 봐. 어제 넌 다섯 골을 먹었어.”
 골키퍼 코치의 말에 그는 얼굴을 붉혔다.
 맞는 말이다.
 박정이 이끄는 팀은 주전 공격수가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 골을 헌납했다.
 할 말이 없는 상황.
 물론 표정은 좋지 않았다. 핸드볼 골대를 옮기는 모습에서 드러나 있었다.
 쾅! 약간 신경질적으로 골대를 놓았다.
 이렇게 삼각대형으로 모아 놓은 핸드볼 골대.
 골키퍼 셋이 10미터 간격으로 서로 슛을 하며 세이브 연습을 하라는 지시.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지만, 코치의 말대로 일단 군말 없이 따라주기로 했다.
 다른 선수들은 슈팅을 연습하고, 패스를 주고받았다. 누군가는 헤딩하며, 주력이 빠른 선수들은 드리블에 그 훈련이 배정되었다.
 골키퍼를 제외한 이들 중에는 정해진 포지션은 없다고 했다.
 감독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어제도 주전 수비수 루카스를 포워드에 위치시켜 놓았으니 말이다.
 이렇게 모든 선수가 제각각 자신이 배정 받은 곳에서 개인 훈련을 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 했을 때 이미 기진맥진한 선수들.
 개인 훈련인지 아니면 스파르타식 체력 훈련인지 모를 정도였다.
 속된 말로 ‘토 나온다’라고 말하고 싶을 때쯤 다음 과정으로 전술 훈련을 지시한 박정.
 “이렇게 지쳐서 전술 훈련이 될까요?”
 “몰라. 난들 알겠어? 난 지금 빨리 훈련이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어.”
 선수들의 대화.
 여기저기서 이와 비슷한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요지부동이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다 듣고 있으면서도 표정의 변화는 차갑기 짝이 없는 새 감독.
 그가 주문한 전술 훈련의 핵심은 3-6-1.
 지난번 시합에서 효과를 본 바로 그것이었다.
 그동안 해 왔던 전술을 버린다?
 모험이다. 겨울 훈련 기간은 매우 짧으니 그것에 익숙하게 숙달하는 데에는 분명 조직력 붕괴가 따를 것이다.
 그런데도 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그래도 어제 몸으로 체득했으니 선수들이 이 전술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해와 습득은 다른 이야기이지만 그들의 뇌리에 그의 전술이 스며든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골 넣는 맛을 느꼈던 선수들은 더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루카스도 헤딩 연습만 했더니 머리보다는 무릎이 저렸다.
 대체로 힘들지만 잘 따라 주는 편이었다.
 어제의 일.
 그들에게는 많은 시사점을 남긴 연습 경기였다.
 수비진은 수비진대로, 공격진은 공격진대로 자신들이 가진 문제점을 확실히 느꼈을 것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올덴부르크 부동의 스트라이커, 욘은 입이 나와 있었다.
 아까부터 훈련도 불성실하게 임했다. 짜증스런 표정에다가 대충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시간만 보내고 있다는 것. 프로의식이 빠져 있는 그 모습. 그것을 보고 마빈 등 코치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나 문제가 생겼다.
 “욘, 뭐 하는 거야?”
 갑자기 그가 슛을 골대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차 내는 것을 보고 루카스가 외치고 만 것이다.
 그 역시 아까부터 대충대충, 그리고 짜증을 내며 훈련에 참여하고 있는 욘이 못마땅했기에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전술 훈련이라고는 하지만 골대 앞에서 슛하는 것은 그의 임무.
 골문 안에 넣을 생각이 없는지 거의 옆줄 쪽으로 차 버렸다.
 “보면 몰라? 슛한 거야!”
 “지금 장난하는 거야?”
 “장난이라니? 나는 진지해. 원래 내가 이렇잖아. 골대 안에 넣는 기술보다 밖으로 차 내는 것을 더 잘하잖아. 몰랐어?”
 삐뚤어지고 있었다.
 그러자 루카스의 눈과 눈 사이에 주름이 만들어졌다.
 화가 난 표정.
 그래도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는 욘.
 훈련이 멈추어졌다.
 대립 관계가 형성되었고, 갑자기 이렇게 둘이 맞서게 되니 다른 선수들이 주위에 모여들었다.
 훈련하다 보면 과격해지는 때가 있었다.
 실전처럼 하라고 하는 코치진의 말에 따라 진짜로 슬라이딩을 하다가 부상을 당할 뻔한 선수는 화를 내며 주먹질을 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런데 이처럼 훈련이 불성실하다고 선수가 선수에게 질책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웬만하면 이럴 때 선수들은 공동 운명체처럼 묶여 있었기 때문에.
 “지금 그게 아니란 것을 네가 잘 알잖아. 넌 지금 고의적으로 볼을 저쪽으로 찼잖아.”
 “아니라니까. 내 발이 삐꾸인 것을 어떻게 해? 아이, 짜증 나!”
 그는 급기야 화를 냈다.
 그리고 등을 돌려 박정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천천히 걷는 그의 발걸음에 분노와 짜증이 섞여 있었다.
 새 감독을 노려보는 눈에도 같은 감정이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그 순간.
 드디어 욘은 그의 앞에 섰다.
 “트레이드 시켜 주세요. 도저히 못 해먹겠습니다.”
 “안 돼!”
 욘은 눈을 빛냈다. 뜻밖에 자신을 잡았다.
 거의 정해진 절차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는 감독 눈에 들지 못했다고 확신을 한 것이다.
 어제의 경기.
 그는 능력의 한계를 보였다. 스트라이커로서 골문 안에 골을 잘 넣지 못하는 선수는 자격이 없는 셈이다.
 “어째서요?”
 “네가 팀에 필요해서다.”
 이건 진심인가?
 그의 눈을 보면 도무지 알 수 없는 검은색 눈동자가 자신을 직시하고 있었다.
 그 안에 담긴 허무함.
 그리고 또 그와 상반된 열정.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저는 말입니다, 벤치에는 앉고 싶지 않습니다. 시즌이 시작되면 벤치에서 남들이 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단 말입니다.”
 “누구나 벤치에 앉을 수 있다. 그리고 누구나 그라운드에서 뛸 수 있다. 너는 그 자격을 증명하면 된다. 나는 아직 주전을 고르지 못했다.”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그의 말에 설득력이 있었다.
 조건 없는 약속이 아니므로.
 그리고 그 이전에 했던 말.
 팀에 필요하다는 그의 이야기는 진짜인 것 같았다.
 이런 식의 대화가 되어서 문제였지만, 나중에 물어보고 싶다. 팀에 어떻게 필요하다는 것인지?
 그래도 그는 굴복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남자가 칼을 빼 들었으면 무라도 잘라야 하지 않겠는가?
 벤치에 들어가서 아예 의자에 앉았다.
 할 테면 해 보라는 식으로.
 오늘 훈련은 여기서 마치고 싶다는 의지를 표현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몇 명 더 있다.
 어제의 경기에서 욘의 편에서 있던 선수들.
 전반기에 로테이션으로 포워드를 담당했던, 훔멜스와 헬러 역시 더 훈련에 참가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코치들에게 열심히 전달하고 있었다.
 균열.
 수습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박정은 상관이 없다는 모습이었다.
 훈련하기 싫어하는 선수들이 있으면 빼도록 지시했다.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사람이다. 스파르타식 일정표를 짜 오더니 그것을 거부하는 선수들에게는 자유를 선사하니 말이다.
 물론 방임에 가까운 것이지만.
 다른 선수들로 그들이 나온 틈을 메우는 박정.
 다시 전술 훈련이 시작되었다.
 팀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는 않지만, 그는 전혀 미동이 없었다. 단지 열심히 눈으로 보고 있다. 선수들의 훈련하는 모습을.
 그의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그림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드디어 하루의 모든 훈련이 끝났다.
 시간을 다 보냈다는 듯 욘과 패거리들은 가장 빠르게 그라운드에서 사라졌다.
 오히려 초반에 감독과 부딪쳤던 루카스가 선수들을 다독이고 있었다.
 한 번 해 보자는 그의 말에 눈빛을 빛내는 것은 그동안의 주전들이 아닌 벤치 멤버들.
 흔히 후보라고 하는 이들의 표정은 살아 있었다.
 그렇다.
 기회가 왔을 때 감독의 눈에 들고 싶어 하는 선수들은 늘 존재했다.
 이것을 불태우는 역할은 감독의 몫.
 다만 욘이 필요하다고 한 그 말의 사실 여부만 의문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것이다.
 그가 말한 그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여전히 훈련 일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 다음 날에도, 또 그 다음 날에도.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잘 따라하는 선수들이 있는가 하면 욘처럼 빗나가기 시작한 친구는 여전히 태업이었다.
 그래도 박정은 전혀 신경을 쓰는 것 같지 않았다.
 그가 머쓱해질 정도로.
 자연스레 그와 행동을 같이했던 이들도 루카스 등과 같이 땀을 흘리는 선수들과 동화되기 시작했다.
 “치, 의리 없는 것들.”
 멀리서 땀을 흘리며 훈련을 하는 것을 보는 외톨이 선수.
 그의 눈에 짜증이 가득 담겨 있었다.
 같이 태업할 때에는 언제고 결국 감독의 뜻을 따라야 한다면서 이제는 자신을 떠나가서 저렇게 훈련을 하는 훔멜스와 헬러가 얄미웠다.
 “저렇게 해서 될 것 같아? 결국, 헛심 빼고 있는 거라고.”
 이제 욘은 외톨이와 같았다.
 주변인.
 마치 사춘기 소년처럼 그렇게 중심에서 빗겨간 주변인처럼 보였다.
 듣는 사람은 없지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
 이상하게 자신이 소속되었던 팀들은 늘 강등을 면치 못했다. 그게 그의 과거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인가? 모처럼 승격을 했었는데…….”
 작년에 이적해 온 올덴부르크.
 그래서 그 징크스가 없을 줄 알았다.
 항상 강등하고 다른 팀으로 옮기는 일.
 작년에 이 팀을 이끌고 승격을 하며 득점왕을 차지했을 때 다시는 그 좌절감을 맛보기 싫었다.
 그런데 전반기에 이미 그 징조를 한껏 보이고 있었다.
 뿐인가? 새로운 감독은 전혀 경력도 없는 젊은 초보 감독. 그것도 축구 변방국에서 온 동양인이었다.
 그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위상을 심하게 훼손하는 것까지는 못 참았다.
 팀 내에 부동의 스트라이커.
 비록 전반기에 득점을 세 개밖에 올리지 못했지만, 작년 4부 리가 득점왕은 그였고, 그가 승격의 1등 공신이었다.
 그런 그를 건드렸으니 당연히 심통이 날 수밖에.
 “감히 나를 건드려? 감히?”
 원래 다혈질이었다.
 곧잘 퇴장도 받았다.
 경기가 특히 풀리지 않을 때 그의 플레이는 거칠었고, 서슴없이 했던 심판에 대한 항명은 빨간색 카드를 양산하게 하였다.
 그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그는 태업으로 이 모든 것에 대한 해결점을 찾으려 했다.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다.
 그래도 박정은 여전했다.
 그를 질책하지도 위로하려 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끔 마빈이 그를 설득하려 했다.
 “이봐, 결국은 새 감독한테 맞춰야 해. 알잖아? 그라운드에서는 그가 왕이야!”
 “코치님, 새 팀을 찾고 싶습니다. 겨울 이적 시장이 끝나기 전에 말입니다.”
 “안 내보낸다잖아! 어떻게 할 건데? 그렇다고 훈련을 안 할 수 없어. 그렇게 된다면 당장 벌금을 물릴걸?”
 “에이, 젠장! 훈련은 안 빠져요. 아시잖아요? 훈련을 빠지지는 않았다고요.”
 그는 성질을 부리며 앞에 있는 축구공을 찼다. 있는 힘껏.
 뻥!
 그대로 멀리 날아가는 공.
 관중석까지 날아갔다.
 놀라운 힘이었다.
 하지만 그를 보는 동료들은 그렇게까지 놀란 눈초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의 킥 능력을.
 그래서 사실 그가 스트라이커가 되었다. 거의 모든 공을 그에게 투입했고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도, 그리고 밖에서도 그는 골을 뽑아내었다.
 사실 그가 포워드가 된 과정은 미들라이커의 임무를 잘해서였다.
 미드필더와 스트라이커의 합성어인 미들라이커.
 미드필더였던 욘은 그 뛰어난 킥 능력으로 중거리 슛을 곧잘 골로 연결해 게임의 향방을 바꿔 놓았다.
 그러다 보니 그는 어느새 스트라이커가 되어 있었다.
 통, 통, 통.
 그의 앞에 공이 굴러 왔다.
 그는 그 공을 보고 그것을 굴린 사람을 보았다.
 박정이었다.
 무슨 의미로 그에게 공을 주는 것일까?
 조금 전처럼 관중석으로 공을 날려서 화를 풀어 보라는 의미였을까?
 그는 박정을 노려보았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의 뜻대로 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자신을 향해서 감독이 걸어오고 있다.
 처음이었다.
 아니 두 번째인가?
 며칠 전에 자신에게 팀에 필요하다는 말을 한 그때를 제외하고 드디어 자신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이봐, 사춘기 소년.”
 “뭐?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렇잖아. 자기 자신의 감정도 못 이기는 그런 나이는 지난 것 같은데, 여전히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지 않은가?”
 “난 너에게 화를 내는 거야! 이 동양인 꼬마야!”
 인종 차별적인 말투.
 선수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하지만 정작 박정은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루카스는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이 동갑내기 친구가 비록 요즘 엇나가기는 해도 주장으로서 해야 할 역할과 시기가 지금이라고 생각을 했다.
 “욘! 뭐 하는 거야?”
 “닥쳐! 넌. 새 감독에게 알랑방귀 뀌는 모습이란. 역겹다, 역겨워서 토할 것 같으니, 말 시키지 마.
 “이 새끼가…….”
 “어쭈? 한판 하자는 거야? 좋아. 좋다고. 덤벼, 덤비란 말이야!”
 악에 받친 욘의 목소리.
 그것을 보고 루카스가 흥분했지만, 그의 어깨에 얹는 손이 있었다.
 박정의 것이었다.
 그는 잠시 눈동자로 그를 진정시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지 말고 시원하게 공을 차 보지? 공은 계속 내가 내줄 테니. 마빈 코치는 다른 훈련을 관리해 주세요.”
 도대체 무슨 속셈인가?
 욘은 그가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유분수지.
 그래서 청개구리가 되려는가?
 그는 자신 앞에 있는 공을 건드리고 싶지 않다는 듯이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자 박정은 웃었다.
 이거야말로 그를 조롱하는 것 같은 웃음이었다.
 “후후후, 골문 안으로 볼을 집어넣고 싶나?”
 “흥.”
 골문에 공을 집어넣는 것.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맘대로 되지 않았다.
 그가 전반기에 획득한 득점의 숫자.
 세 개다.
 그중에 하나가 페널티 킥. 그나마 마지막으로 성공한 페널티 킥 이후에 두 번을 실수하고 팀 동료에게 양보 아닌 양보를 하게 되었다.
 무능력하다는 비판이 나올수록 그는 위축되었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감을 잃었다.
 “득점을 올리지 못하는…… 스트라이커라…….”
 염장을 찌르고 있었다.
 주먹을 불끈 쥐게 할 정도로.
 노려보는 그의 눈에는 핏발이 섰다.
 입술도 부르르…….
 불끈 쥔 주먹도 부르르…….
 그런데 박정은 전혀 겁먹은 표정이 아니었다.
 잘못하면 폭력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열 받나? 그렇다면 공을 차 봐라! 나를 맞혀 봐라. 축구선수라면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하하하.”
 뒤돌아 걸었다. 그렇게 그 말을 마치고.
 갈등에 휩싸이는 욘.
 그의 등을 향해 공을 차고 싶었다.
 약 11미터.
 묘하게 그 자리에 있었다. 페널티 킥을 차는 위치 정도에.
 그렇게 서 있는 박정은 등을 돌리고 있지만, 꼭 자신에게 맞춰 보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결국, 그는 못 참고 공을 찼다.
 그가 차라고 해서 차는 것이다.
 자신의 죄가 아니라는 변명을 하면서…….
 쉬익.
 공이 날아갔다.
 그러나 전혀 엉뚱한 방향이었다.
 최소한 그가 서 있는 곳에 근접해야 할 것 아닌가?
 “킥킥킥, 킥킥킥.”
 다시 욘의 귀를 자극하는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박정이 걸어갔다.
 어느 순간 축구공이 있는 곳까지.
 그곳에서 다시 공을 찼다.
 통, 통, 통.
 박정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번에는 욘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보다 훨씬 멀리 떨어진 곳에서.
 40미터는 넘어 보였다. 그들이 떨어진 간격이.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자신을 비웃는 것 같은 그 표정.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두 번째로 자신의 앞에 있는 공을 갈겼다.
 쉬익!
 직선.
 마치 허공에 점과 점을 그려놓고 선을 그어 놓는 것처럼 공은 그렇게 날아갔다.
 빨랫줄같이 그어지는 그 끝에는 박정의 얼굴이 있었다.
 그가 피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얼굴이 상했을 것이다.
 훈련하는 모든 사람이 이 장면을 보고 입을 벌렸다.
 심지어 공을 찬 욘마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예전의 느낌이 그의 발끝에서 왔다.
 잊고 있었던 그 시간.
 자신은 중거리 슈팅을 잘했다.
 그런데 스트라이커가 되고 나서 항상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머물었고, 공을 받고 슛을 쏘았는데, 득점 확률은 낮았다.
 통, 통, 통.
 다시 공이 자신에게 굴러 왔다.
 감독은 오늘 자신의 다리 힘을 모두 빼 버리고 싶은가 보다.
 그가 자신에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따라와라. 골문으로. 거기서 계속 훈련한다. 당분간 너는 내가 맡겠다.”
 따라갈까?
 놀랍게도 따라간다.
 박정의 명령 때문에?
 아니다.
 그 자신을 위해서다.
 욘은 다시 한 번 방금 공을 찼던 느낌을 되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타협을 했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는 것은 감독의 지시 때문이 아니라 모처럼 찾은 골 감각을 되살려 보기 위한 것이라고.
 그렇게 자신에게 자위했다.
 개인 연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였다.
 다혈질의 골 못 넣는 골게터가 새롭게 바뀌는 전환점이 된 시기가.
 변화하고 있다.
 올덴부르크가.
 
 Liga 4. 연습 경기
 
 며칠 뒤 연습 경기가 잡혔다.
 상대는 1부 리가에 있는 뉘른베르크.
 이 팀은 바이에른 주, 뉘른베르크를 연고로 하는 축구팀이자, 전통의 명문이었다.
 1987년 이전까지 뉘른베르크는 약 60년간 최다 챔피언십 우승팀이었다.
 비록 그때부터 바이에른 뮌헨이 그 기록을 경신했지만.
 어쨌든 강팀이라는 것은 전통이 있고, 이 역사와 전통은 절대 무시할 게 못 된다.
 하지만 올덴부르크 역시 전통과 역사가 있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뉘른베르크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1900년에 창단된 뉘른베르크보다 3년 전에 창단이 되었기 때문에.
 물론 세월이 흐르고 지금은 3부 리가를 전전하는 팀이 되었지만.
 보통 이맘때에는 하부리그는 매운맛을 보여 주기 위해서, 상위 리그는 가벼운 스파링 상대로 서로 생각하고 경기를 치르곤 했다.
 “이봐, 욘. 감독 바뀌었다면서? 구단주를 유혹한 행운아라고, 크하하하.”
 경기 전에 자신의 감독을 비꼬고 있는 상대 팀 선수.
 욘은 팀에서 유일하게 1부 리가를 경험한 선수였다.
 점점 내려오면서 작년에 4부 리가까지 추락했고, 그래도 그나마 그곳에서는 득점왕을 차지하며 팀을 승격시키는 최고의 공로를 세웠다.
 그런데 이런 공로에도 불구하고 그는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큰 것은 바로 다혈질이라는 점이다.
 “뭐? 이 새끼…….”
 그가 욕을 하려 할 때 그의 어깨에 손이 올라갔다.
 그 손의 주인공은 루카스.
 그래도 역시 주장다웠다.
 경기 전에 상대의 속을 긁는 소리를 듣고 흥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살짝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것을 보며 감독의 미소를 닮아 간다고 생각한 것은 욘의 착각일까?
 “좀 있다가 경기할 때 쟤들 다리 내가 분질러 줄게. 알잖아? 내 몸 튼튼한 거. 그리고 내 몸값이랑 얘들 몸값이랑 비교나 될까? 몸 사려야 하는 게 누군데 저따위 말로 우리를 자극하는 거지?”
 욘한테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시선은 방금 말을 했던 상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가 기가 죽어 버렸다.
 어쨌든 부상이라도 당하면 큰일인 쪽은 올덴부르크보다 뉘른베르크의 선수들일 테니…….
 “그런 말로 상대를 자극하지 마라. 빨간 카드, 노란 카드 다 꺼내 준다.”
 이번에는 심판이 가만있지 않았다.
 연습 경기라도 과감하게 퇴장을 시킬 수 있다는 눈빛.
 그 덕에 상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조심해야겠어. 루카스라고 했나? 수비수 같던데…….’
 라인하르트는 몸을 사려야겠다고 판단했다.
 예전에 같은 팀에서 훈련했던 욘에게 가볍게 던진 농담이었다.
 물론 상대를 경시하는 게 없지는 않았다.
 전날 자신의 감독도 이야기했다.
 동양인 꼬마가 새 감독으로 왔다고.
 그런데 여자 친구의 후광으로 감독 자리에 앉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요즘 분데스리가에서 한국 선수들의 주가가 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래 봤자 축구 후진국 출신이라고 생각을 하며 많은 선수가 그들을 경시했다.
 2002년 월드컵 때에나 심판의 편파 판정으로 4강에 오른 나라. 그리고 준결승에서 자신들의 나라에 깨진 그런 축구 후진국.
 따라서 연습 경기지만 오늘 만약 진다면 감독의 체면을 완전히 구기는 일이 될 것이고, 잘못하면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몸까지 조심해야 하니 이래저래 신경 쓰이는 연습 경기였다.
 하지만 생각은 거기까지.
 삐이이익!
 주심의 호루라기 소리로 전반전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실력으로 보여 줄 차례.
 아무리 그래도 패스 게임을 하면 함부로 슬라이딩을 그리고 태클을 해대지는 않을 것이다.
 마르쉬베크 슈타디온.
 올덴부르크의 홈이다.
 관중들이 나름 적지 않았다.
 관심의 표현이다.
 그들도 왜 소문을 모르겠는가?
 한국인 새 감독.
 구단주의 남자 친구.
 반쯤은 기대를 표현하며 들어왔지만, 반쯤은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쪽이었다.
 박정은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오늘의 전술 역시 3-6-1 시스템이다.
 지난번과는 선수 구성이 달랐다.
 거의 모두 주전급.
 야닉만이 비주전에 속해 왔던 선수다.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한 그는 감독의 기대를 고맙게 여기며 빠르지는 않지만, 열심히 뛰어다녔다.
 놀라운 것은 욘이었다.
 박정이 그에게 부여한 새로운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다.
 늘 원톱 또는 투톱 중 하나가 그의 자리였었는데, 그 위치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욘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박정은 요 며칠 그에게 밀착 훈련을 진행했다.
 그러고 나서 결정한 포지션이었다.
 뭔가 생각이 있으리라.
 포워드는 여전히 루카스가 맡았다.
 선공은 올덴부르크.
 얕보는 것인지 밀착해서 붙지 않는 뉘른베르크의 선수들이었다.
 프레싱이 전혀 없으니 욘은 공을 드리블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위험지역이 가까워져 오자 그제야 붙는 상대 수비수들.
 하지만 그는 문전 앞에서만 서투르지, 필드의 다른 지역에서는 팀 내 최고의 테크니션이었다.
 한 명을 제치고 루카스에게 패스하는 척하다가 그대로 내갈겼다.
 쉬이이익!
 빨랫줄처럼 직선으로 가는 공.
 ‘텅’ 소리를 내며 크로스바를 맞히고 뒤 그물로 떨어졌다.
 조금만 낮았어도 들어가는 거였다.
 그래서 욘은 무지 아쉬워했다.
 “잘했어, 정말 잘했다고, 하하.”
 루카스가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야 욘은 제자리를 찾은 것으로 보였다.
 원래 4부 리가였지만 득점왕을 차지했을 때에 중거리 슛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포워드로 끌어올린 것은 전임 감독이었는데, 그것이 오판이었다.
 지금 이 자리다. 바로 이 자리가 그에게 딱 맞았다.
 중거리 슛은 문전에서 하는 것보다 부담이 상당히 적었다.
 들어가면 칭찬 받고, 지금처럼 들어가지 않아도 역시 잘했다고 박수를 받았다.
 따라서 부담이 적으니 더 신 나게 때릴 수 있지 않은가?
 “자, 이제 수비야. 빨리들 라인 잡고, 거기 뭐 해? 수비수들만 믿고 있을 거야?”
 루카스의 호령.
 리더십이 발휘되었다.
 얼마 전까지 수비수였던 그는 아직도 지금의 포워드 자리가 생소했다.
 오히려 이렇게 수비를 조율하는 게 그다웠다.
 원래 그가 지켰던 올덴부르크의 수비진은 탄탄하다는 평을 들었다.
 문제는 득점이었지 수비가 아니었다.
 승리는 없었지만, 무승부가 많았던 것도 거의 다득점이 없었던 게임.
 패했을 때도 다득점을 주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랬다.
 상대가 치고 들어오는 것.
 역시 분데스리가 팀의 모습이었다.
 물 흐르듯이 벌써 문전까지 와 있었다.
 아까 자신이 한바탕 쏘아붙여 주었던 라인하르트가 전방에 침투했다.
 확실히 달랐다.
 클래스라는 이름.
 루카스는 그를 향해 태클을 시도했다.
 움찔.
 라인하르트는 깜짝 놀랐다.
 아까 자신의 다리를 부러트리겠다는 이는 뜻밖에 최전방 공격수였다.
 그런데 지금 수비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향해 태클을 시도하고 있었고.
 갑자기 겁이 났다.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그 정도에 당해 주고 페널티 킥을 얻는 게 나을 텐데, 어쩔 수 없이 겁먹고 자세도 잡기 전에 쏜 슛.
 골대와 한참 벌어진 곳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그는 태클에 점프하고 나서 자신을 향해 슬라이딩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는 열심히 다시 전방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쳇…….”
 자신이 겁쟁이 병아리가 된 기분이었다.
 정상적인 태클에 겁을 먹어 버리다니…….
 이렇게 공방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올덴부르크는 빠르지 않았다.
 아니 빠를 수 없었다.
 매우 투박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경기 시간이 20분이 지나갈 무렵까지도 중앙에서 공을 빼앗기며 더 앞으로 진행하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
 그래도 수비가 강했다.
 위험스런 장면을 더는 연출하지 않았다.
 루카스 덕분이었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위태로울 때마다 지시를 내리며 손수 밑에까지 내려와 수비에 가담했다.
 그러다 보니 역습이 전혀 되지 않았다.
 “루카스, 우리를 믿으라고. 넌 이제 공격수잖아, 하하하.”
 퇴니스가 그에게 말했다.
 그동안 같이 중앙 수비수를 봤던 친구이자 선배였다.
 나름 3부 리가 통곡의 벽이라고 자신들을 불렀었는데…….
 “그래, 그럼 믿고 간다.”
 다시 올라갔다.
 이렇다 보니 체력적인 소진이 상당했다.
 그래도 필사적으로 뛰었다.
 오늘 온 관중들에게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감독이 맘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팀에 대한 애정은 그 누구 못지않은 루카스다.
 그런 그를 향해 공이 날아왔다.
 지금까지 보여 준 그의 모습.
 공격 쪽에서 전혀 존재감이 없었던 그가 안다치의 크로스를 머리로 받았다.
 텅.
 머리에 맞는 소리.
 이 느낌을 평생 간직하고 싶었다.
 왠지 모를 기분 좋음이다.
 눈이 가고 있었다.
 공을 따라서.
 좋은 예감이 들었기에 무언가 일을 낼 것 같았다.
 휘이이익…….
 자신의 머리에 맞은 공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출렁.
 상대의 그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골키퍼도 예측을 전혀 못 한 듯 허망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모두가 다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표정으로 말이다.
 심지어 루카스 자신도 그들과 같은 표정이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자신이 해낸 일.
 이게 진짜 꿈인지 아니면 생시인지.
 벤치를 보았다.
 감독이 앉아 있었다.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
 하지만 그는 알았다.
 그가 표현은 안 하지만 지금 속으로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아니 자신도 모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외쳤다.
 두 손을 쭉 내뻗으며.
 “감독, 당신이 옳았소. 당신이 옳았단 말이오. 하하하!”
 루카스가 인정한 말.
 박정이 옳다는 그 말은 사실이었다.
 팀이 변하고 있었다. 팀다운 팀으로.
 그 이전까지는 팀이 아니었다.
 조직력이 없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팀 스피릿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지는 것에 익숙한 것은 팀으로의 존재 가치가 없으니까.
 “감독님,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팀을 바꿔 놓다니요?”
 “내가 바꾼 것이 아닙니다.”
 겸손인가?
 그럴 수도 있지만, 이 젊은 감독은 그런 것을 할 줄 모르는 사람 같았다.
 아니면 처음부터 너무 강한 성격으로 선수들을 휘어잡으려고 연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잘 해 주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것은 오랜만에 봅니다.”
 마빈의 말은 진심이었다.
 이기는 장면을 오랜만에 보기도 하지만 선수들이 의욕에 불타는 모습 또한 본 지 꽤 되었다.
 루카스는 엄청나게 달리고 있었다.
 다시 수비수 사이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온몸으로 상대의 공격을 차단했다.
 욘은 슈팅 가능 지역으로 갈 때 상대의 견제가 매우 심해졌다.
 무엇보다도 뉘른베르크의 선수들은 상대를 이제 얕보지 않았다.
 그들의 진짜 실력으로 올덴부르크를 상대하고 있었다.
 “안다치! 막아!”
 갑자기 루카스가 소리를 질렀다.
 골 에어리어 부근에서 상대가 자유롭게 움직이고 그에게 가는 치명적인 킬패스.
 근처에 보이는 안다치에게 다급하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그는 상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하는 위험한 태클.
 결국, 공이 아닌 그를 쓰러트렸다.
 삐익!
 “공을 건드렸어. 공이요!”
 “내 눈을 보고 이야기해 봐. 진짜야?”
 “내 눈에 그렇게 보였다는 이야기죠. 하하. 어쨌든 카드를 꺼내지는 않을 거죠?”
 주장인 루카스는 심판에게 다가가 그의 신경을 분산시켰다.
 그가 말한 카드는 붉은색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물론 심판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안다치를 부른다.
 “연습 경기야. 왜 이리 진지해?”
 “연습은 실전처럼 해야 합니다. 감독이 바뀌었어요. 정말 칼 같은 사람이란 말이에요. 저 잘못하면 주전에서 밀려나요…….”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말을 하는 안다치.
 팀 내에서 가장 준족이었다. 비록 저번에 체력 테스트를 한 후 측정한 스피드에서 죽을 쑤었지만.
 왼쪽 윙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감독은 그를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사실 그 누구도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지 않았다고 보는 게 정확했다.
 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네 말이 맞아. 연습은 실전처럼 해야지. 그래서 나도 네게 카드를 주는 거야. 다만 실전이었으면 빨간색이었어.”
 위험한 태클이었다.
 그리고 완벽한 득점 기회를 주었을지도 모르고.
 결국, 노란 카드를 내밀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들.
 하지만 상대의 기회는 계속 이어졌다.
 우측 골 에어리어.
 뉘른베르크의 프리킥은 쏘니가 전담하고 그는 그 부분에서 마법사라고 불렸다.
 벽을 쌓고 골키퍼가 선수들에게 위치를 교정해 주었다.
 선수들이 쌓는 벽으로 인해 시야가 가리지만 그 대신 그 좌우만을 신경 쓰면 된다.
 하지만 쏘니의 킥은 단지 그것만을 신경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벽을 살짝 넘기는 그 공이 위로 치솟는 듯하다가 갑자기 꺼졌다.
 드롭킥이었다.
 공의 회전 방향을 위에 걸어 아래로 꺼지게 하는 기술.
 골키퍼 파울러가 갑자기 벽 위로 보였다가 자신의 머리 위로 들어가는 공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결국 버스 지나간 뒤 손 흔드는 꼴이 되어 버렸다.
 “와아!”
 “잘했어, 쏘니!”
 클래스는 다른 것인가?
 허망하게 골문으로 들어간 공을 보고 있는 골키퍼.
 얄미운 상대의 목소리들만 들리고 있었다.
 결국, 한 골을 주고 말았다.
 선수들의 얼굴에 다시 자신감이 사라지고 있었다.
 사실 멘탈이 이 정도이니 그동안 승리를 못 했던 것이다.
 이걸 그대로 다시 반복하는 것일까?
 “이제 동점이다, 이제 동점이야. 겨우 동점 골을 준 거라고! 자, 다시 하자. 나 오늘 골 맛을 알았어.”
 격려하는 루카스.
 지금 골을 준 게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는 주장이었다.
 빠르게 팀 분위를 추슬러야 하는.
 그의 옆에서는 안다치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신 때문에 상대에게 득점을 제공하게 된 것 같아서 자책하고 있었다.
 젊은 선수들이 더더욱 그랬다.
 한껏 분위기에 도취하여 올라갔다가, 갑자기 실점하면 경기력이 저하되는 일.
 이것에 대한 해법은 결국 경험 많은 이들의 몫이었다.
 “이 봐. 난 조금 먼 곳에서 골을 노릴 거야!”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안다치에게 말을 하는 사람.
 욘이었다.
 조금 먼 곳?
 그의 차는 힘을 최대한 살린다는 뜻이었다.
 상대 진영에 붙으면 이제는 몸으로 부딪혀 왔다.
 사실 올덴부르크의 현재 공격 루트는 매우 단조로웠다.
 몇 번 크로스로 올리니 이제는 앞에서 차단하는 뉘른베르크의 선수들.
 그 이외에는 욘이 처음에 보여 주었던 중거리 슛인데, 그의 능력을 파악하고 위험지역에서는 강한 압박이 들어왔다.
 “빠르게 달려가서 휘저어야지. 안 그래?”
 격려인가?
 작전이었다.
 그의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심판의 호루라기가 울리고, 중앙선에서 몇 미터 나가지 않아서 욘은 진짜로 슛을 쏘고 있었다.
 엄청난 힘으로 쏘아져 나간 공.
 슈우우웅!
 파공음이 들릴 정도였다.
 속도 역시 빨랐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그 슛을 수비수 하나가 육탄 방어를 했다.
 퉁!
 튕겨 나간 공이 있는 그곳에 달려가는 안다치.
 필사적이었다.
 자신의 실수로 득점을 주었으니 그 공을 따내려고 안간힘을 썼고 결국에는 성공했다.
 박정의 눈이 빛났다.
 바로 저것이다.
 하고자 하는 의욕.
 실점하면 따라잡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그동안 그들은 왜 하지 못했을까?
 “안 해서 그런 거다. 못 한 것이 아니라…….”
 혼잣말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마빈이 그를 보지만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한국어였기에.
 그는 꿈을 생각했다.
 자신에게 그 말을 한 사람을.
 그는 항상 말했다.
 못 해서, 그리고 안 해서 그런 거라고.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도해야 하고 그렇게 된다면 잘할 거라고.
 평범한 말 같지만, 지금은 그가 곱씹고 있었다.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항상 잘 풀리는 것은 아니었다.
 안다치는 무리한 돌파를 했다.
 의욕만 앞섰다.
 그러다가 둘러싸여 버렸다.
 하지만 그의 눈에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 있는 야닉이 보였다.
 자신에게 셋이 붙으니 그에게 공간이 났다.
 다행인 것은 그는 약해 보였고, 작았으며, 심지어 너무 어려 보였다.
 연습 경기라지만 충분히 경계하지 않을 정도로.
 공이 그에게 갔다.
 그동안 연습한 슛을 때리려는 것인가?
 그렇지 않았다.
 골대를 두고 등을 지고 있으니.
 180도 회전을 해서 터닝슛을 하기에는 늦었다.
 또다시 그를 향해 몰려드는 수비들.
 분데스리가의 수비수 간판은 그냥 따낸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매우 빠르게 판단하며 붙었다.
 다시 공이 이동했다.
 자유롭게 공간을 확보한 위험지역의 욘에게.
 자신에게 굴러오는 공을 차면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를 이용할 수 있었다.
 그것을 보여 주는 그의 힘.
 종아리의 근육이 힘차게 일어서고……,
 골망이 춤을 추게 하였다.
 이번에는 골키퍼도 골대도 이 슛을 막을 수 없었다.
 “헛!”
 “욘! 너! 욘!”
 믿을 수 없는 눈들.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헛바람.
 이것이 바로 그의 힘이었다.
 단 한 방으로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중거리 슛의 소유자.
 “하하하. 봤어? 봤어? 이게 바로 나라고. 하하하!”
 “그래, 그래. 잘했다. 잘했어.”
 의기양양한 그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은 주장인 루카스였다.
 그렇게 전반전을 2대 1로 마치는 득점을 내고 그는 너무나도 신이 났다.
 모든 동료가 그에게 붙었다.
 그들의 얼굴에 보이는 자신감. 아마 자신도 그들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하늘을 날고 싶었다.
 잠시 후 라커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선수들.
 아니 휴식보다는 수다였다.
 전반전에 대해 자평했다.
 그런 그들에게 다시 믿을 수 없는 지시가 떨어졌다.
 “4-4-2로 전환한다.”
 “네?”
 “아니, 왜?”
 “수비해라. 2대 1로 끝낸다.”
 4-4-2가 수비 전술이었던가?
 감독이 보기에는 그럴 수도 있었다.
 9무 10패를 한 전술.
 그나마 올덴부르크 순위 위의 세 개의 팀이 패가 더 많았다.
 그렇다는 것은 무승부를 잘 이끌어냈다는 뜻이다.
 그래도 이건 너무 아쉬웠다.
 “오늘 너희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
 연습 경기일 뿐이었다.
 ‘반드시’라는 말. 여기에 붙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오히려 이런 연습 경기는 전술이나 선수들을 시험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왜?
 “작은 눈덩이는 굴러갈수록 커지게 된다. 오늘 그 작은 눈덩이를 만들어 내라. 소수지만 관중들이 보고 있다. 소문을 내 줄 것이다. 다음 연습 경기에는 오늘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이 나설 것이다. 그때 승리하면 난 계속 그들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경쟁은 필수다. 그리고 깊은 선수층을 만들 것이니, 팀은 강해진다. 무엇보다도 오늘은 너희가 경기가 끝난 후 가지고 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자신감이다. 이것을 위해 반드시 이겨라. 필사적으로.”
 “…….”
 “안다치, 있는 힘껏 달려라. 조금 전에 네 주력은 인상 깊었다. 공이 있는 곳에는 언제든지 쫓아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보았다. 필사적으로 달려라. 만약 지쳐 보이면 벤치로 불러들이겠다. 루카스, 수비로 복귀해라. 대신 공격을 가담한다. 지금처럼 하는 것이다. 공격하다가 수비로 가담한 것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욘!”
 “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
 이제는 그 목소리에 반항하지 않을 것 같았다.
 시키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득점이 그를 변화시켜 주었다.
 자신이 팀에 필요한 존재라고 그는 말했었고, 그것을 증명했다. 물론 욘이 해냈지만, 박정이 해낸 것이기도 했다.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가지 마라. 밖에서 쏘아라, 아까와 같은 슛을. 감명 깊었다. 상대라면 그 누구도 너를 경계할 것이다.”
 그를 스트라이커의 위치로 되돌려 보낸 박정.
 하지만 역설적으로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야닉을 포워드로 삼아 웬만하면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 슛을 쏘라고 지시했다.
 안과 밖.
 그들의 호흡을 기대한다고 힘주어 말하니 둘의 눈빛은 더욱 공고해졌다.
 해 보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후반전이 시작되며 이들은 느꼈다.
 자신들이 강해졌다는 것을.
 그동안의 훈련이 헛되지 않았던가?
 아니다. 며칠이나 했다고?
 그것보다는 팀으로서 자리 잡게 된 것 같았다.
 결국, 이들은 그 점수를 유지했다.
 드디어 승리한 것이다.
 적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었다?
 아니 그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박정의 말대로 이들이 가지고 간 것은 바로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관중들이 가지고 간 것은 승리의 소식이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본 것을 알릴 것이다.
 자신들의 직장 동료, 그리고 이웃들에게.
 독일이다.
 관중석으로 모여드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 나라.
 이곳에서 한국인 새 감독이 전설을 위한 한 페이지를 쓰게 되었다.
 오늘 그 첫 장을 쓴 것이다.
 나머지 장을 다 채울 날이 기대되고 있었다.
 그때에는 아마 새 감독이 아닌 명장이 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댓글(6)

낙장서생    
천원? 후덜덜하네요...대여소 한권천원인대..거기 소설 한권 값어치보다 퀄리티높다는 자신감 인가?
2015.01.20 07:36
後來者三盃    
내용이 많이 달라졌나요?
2015.01.24 21:54
rl********    
어이없군요. 이미 완결된걸 다시 올리는건데도 권당 3천3백원이면 너무한거 아닌가요? 택틱스 8권이 완결이고 대부분 1권 무료이니 7권에 23000원이네요. 보고 싶었던 책이지만 씁쓸한 마음만 느끼고 갑니다.
2015.02.20 11:30
한이당    
대여점도 800-1000원사이인데 최소 3.3배 비싸게 받네요. 권당 1500원선이 적당할듯 싶은데.. 너무 비싸네요..
2015.06.01 17:36
샤를페로    
스타트가 개인적으로 너무 거북한... 여자 빽으로 감독이 된거는 그렇다고 치지만 사실 현실적으로 아무런 증명도 안되는 사람을 감독으로 올려놓는다는게... 여자에 대해서도 축구에 축자도 모른다고 설명했으니 그저 남자에 눈이 먼 여자로밖에 안보여서 읽기가 꺼려지는
2016.08.07 22:41
샤를페로    
처음을 막무가내로 밀어넣은거먼 주위 눈도 생각해서 공과사는 구분하던지. 다보는 앞에서 연애행각이나 벌여서 남자 위치만 더 떨어트리고...
2016.08.07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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