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이것저것 다 해보지 뭐

1. 앙코르와트 (1)

2021.12.20 조회 51,266 추천 938


 “콜록! 콜록! 컥!”
 
 강우진은 필사적으로 누르고 있던 기침이 터져 나오자 서둘러 손수건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곤 급히 함께 비행기에 동승해 있는 탑승객들의 눈치를 살폈다.
 손수건을 적시며 흘러내리는 피 때문이었다.
 기침 정도야 별 상관없지만 손수건을 적실 정도로 터져 나온 피는 문제가 될 것이다.
 
 ‘아! 이런!’
 
 아니나 다를까.
 바로 옆 좌석의 탑승객, 비행기에 올라 자리에 앉자마자 뭐가 불만인지 강우진을 아래위로 훑던 중년 사내의 찌푸린 시선이 강우진에게 꽂혀 있었다.
 그저 자신의 초라한 복장 탓이려니 했다.
 게다가 늘상 겪었던 익숙한 시선이라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도 했다.
 지금까지 한두 번 경험한 것도 아니고, 그저 한 번 못 본 척 참으며 지나가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달랐다.
 지금 신경질적으로 바라보는 중년 사내는 언짢은 기색이 역력한 게 금방이라도 뭔가 터질 것 같았다.
 강우진은 불안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거··· 괜찮으쇼, 노인장?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말투는 걱정하는 말투였지만, 왜 하필 옆자리에 이런 사람이 앉았나, 짜증난 심정이 역력했다.
 말로는 노인장이라고 부르면서 말투는 완전히 깔아보는 말투였다.
 
 “괜··· 콜록! 괜찮습니다. 가벼운 감기입··· 콜록! 니다.”
 “···단순한 감기인 것 같지가 않은데.”
 “코, 콜록! 단순한 감기 맞, 콜록! 맞습니다!”
 “거참! 알았소. 감기라고 칩시다. 그럼 얌전히 병원에나 갈 일이지 뭐 한다고 여행 올 생각을 한 거요? 안색도 죽은 색이고, 얼굴도 식은땀 천지고.”
 “콜록! 시, 신경 쓰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습니다. 앙코르와트에 여행하는 것이 제 평생의 소원이라서···.”
 
 말하는 중에도 강우진은 계속 사정하듯 상체를 굽실거렸다.
 누가 봐도 남에게 고개 숙이는 게 익숙한 사람의 행동.
 강우진의 경험상 이렇게 머리를 숙이면 특별히 심성이 극악한 자를 제외하곤 대부분 넘어가곤 했다.
 다행히도 강우진의 대응방식이 오늘도 통한 것 같았다.
 
 “거 참! 거 기침이나 좀 조심하쇼.”
 “예. 예에. 조, 조심하겠습니다.”
 
 마치 봐준다는 듯 말을 한 중년 사내는 더 이상 말을 붙이지는 않았다.
 다만 강우진이 피를 토하는 게 불안했는지 두 눈에 여전히 가득 의심을 담아 간혹 강우진을 힐끔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절대로 사소한 감기 따위로 봐주지 않겠지. 기침하며 토한 피를 본 이상.’
 
 누가 봐도 단순한 감기로 기침을 하면서 피를 토하지는 않을 일.
 강우진은 다만 이 순간이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
 
 
 강우진의 추측은 맞았다.
 중년사내는 가벼운 감기라는 강우진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래서 안 보는 척 계속 강우진을 살피고 있었다.
 
 ‘이 양반 혹시 폐결핵 아냐? 젠장! 스트레스 좀 풀려고 여행 왔다가 폐결핵 옮으면 좆 되는 건데. 그게 아니더라도 안색 보니 곧 죽을 사람처럼 죽상인데 저러다 비행기가 착륙하기도 전에 송장 치르는 것 아냐?’
 
 중년인의 눈에 보이는 강우진은 겨우 160센티나 될까 싶은 키에 왜소한 체격을 가진 노인.
 게다가 한 눈에 봐도 온갖 풍상을 겪은 것이 확연한 주름 많은 얼굴에, 육체노동 때문인지 잔뜩 앞으로 굽어있는 등허리 그리고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을 가졌다.
 처음 볼 때부터 다른 여행객들과 비교되는 초라한 복장도 맘에 들지 않았는데.
 그런 사람이 기침을 하며 피까지 토하니 어떻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장 쓰러지게 생긴 양반이 병원에나 갈 것이지, 앙코르와트가 뭐야. 왜 하필 저런 사람 옆에 앉게 되어서 원···.’
 
 하지만 이미 기침이나 조심하라고 말한 처지에 뭘 더 하려는 게 귀찮기도 했다.
 막말로 가이드나 비행기 승무원에게 말한다 해서 자신에게 뭘 더 줄 것도 아니고.
 게다가 자신도 지친 심신을 쉬고자 여행을 온 몸.
 기껏 큰 맘 먹고 떠나온 여행길에서 엉뚱한 일로 여행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중년 사내는 결국 아예 모른 척 하기로 했다.
 
 ‘그건 그렇고 안됐네. 어렸을 때는 꽤나 잘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양반인 것 같은데. 에잉. 그러니까 돈이 있어야 해. 이 노인장처럼 늙어서 초라하지 않으려면.’
 
 중년 사내는 마지막 상념을 끝으로 강우진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
 
 
 ***
 
 
 중년 사내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진 강우진은 그제야 겨우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한편으로, 눈 깊은 곳에서는 처연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허허. 노인장이라···. 하긴 내 지금의 겉모습만 보면 누구라도 칠십은 넘긴 노인이라고 착각하겠지···.’
 
 1992년 12월생인 강우진은 2045년 현재 한국 나이로 54세.
 누구한테라도 노인장이라는 소릴 들을 나이는 아니다.
 하지만 강우진의 겉모습만 본 사람들은 예외 없이 강우진을 칠십이 넘은 노인으로 봤다.
 왜소하고 잔뜩 굽어진 등허리와 햇볕에 검게 탄 주름 많은 얼굴, 그리고 온통 백발인 그의 머리카락은 모두에게 그의 나이를 착각하게 만들었다.
 강우진의 시선이 힐끗 중년 사내에게로 향했다.
 중년 사내는 오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지만, 좋은 피부와 건강해 보이는 안색을 보면 어쩌면 강우진 자신보다도 더 나이가 든 사람일지도 몰랐다.
 그런 사람에게 노인장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처연한 눈빛을 할 수밖에.
 강우진은 긴 탄식을 토하며 내심 중얼거렸다.
 
 ‘부럽구나. 여유 있게 캄보디아 여행을 올 수 있는 그 재력도, 건강한 육체도.’
 
 부러움도 잠시, 중년 사내에게서 시선을 돌려 창밖에 펼쳐진 구름바다를 보는 강우진은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빌었다.
 
 ‘부디 내 생의 마지막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생의 마지막 여행.
 
 그렇다.
 강우진은 지금 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온 참이었다.
 
 폐암 말기.
 
 일 개월 전 강우진이 의사로부터 받은 죽음의 선고였다.
 그 선고를 듣자마자 강우진은 의사의 당장 입원하라는 권고를 뿌리치고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넋이 나가 비틀대는 걸음으로 어떻게 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게 돌아온 지하방.
 강우진은 습관처럼 낡은 TV를 켜고 방벽에 기대어 멍하게 그 TV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저 습관처럼 TV화면에 시선을 둔 채 견딜 수 없는 절망과 슬픔을 안에서 삭여내고 있었을 뿐이다.
 그날 그때까지 전 생애의 강우진이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마도 몇 시간은 흘렀으리라.
 강우진의 눈에 문득 TV 화면의 내용이 박혀들었다.
 모 방송국에서 하는 여행프로그램 중 출연자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여행하는 내용이었다.
 그 앙코르와트를 보는 순간 마치 그 앙코르와트가 강우진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았다.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그 순간 강우진은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앙코르와트로 가자.
 
 강우진이 열네 살 이후 최초로 내린 주체적인 결정이자 그의 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결정이었다.
 곧바로 임대한 방의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몸 상태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방의 보증금을 빼서 마지막 생의 여행을 하겠다고 밝혔다.
 다행히 마음씨 좋은 주인은 평소에도 말썽 없이 몇 년을 살아준 임차인 강우진을 배려해 주었다.
 계약기간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방을 내놓았고, 운도 좋아서 며칠 지나지 않아 새로 방을 쓸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주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돈으로 보증금을 미리 내주었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사람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다.
 그리고 강우진은 받은 보증금으로 바로 앙코르와트 여행상품을 구매했다.
 그걸로 그의 대부분의 재산이 사라졌다.
 보증금이래야 겨우 수백만 원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강우진이 사는 곳이 대도시 변두리의 지하 단칸 월세방이었으니까.
 
 평생 지하 월세 단칸방을 전전하며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이어온 인생이었다.
 남들은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뭐 했냐고 비웃겠지만, 강우진에게는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살아온 인생의 결과가 그것이었다.
 그러니 강우진에게는 남들에겐 하찮을 그 몇 백만 원이 너무도 소중한 전 재산이었다.
 
 
 ***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
 왜 성치 않은 몸으로 앙코르와트를 가고자 했을까.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다큐를 본 직후부터 머릿속에 온통 앙코르와트를 가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강우진 자신도 자신의 그런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결정의 이유를 몰랐다.
 다만,
 
 ‘설사 도중에 죽더라도 잘 온 거야. 앙코르와트라도 보고 죽으면 내 불행했던 삶에 작은 위안이라도 되겠지···.’
 
 비행기 창밖을 멍하게 바라보는 강우진의 입가에 자조적인 웃음이 걸렸다.
 한없이 처연한 웃음이었다.
 
 상념이 이어지는 중에 다행스럽게도 겨우 기침이 가라앉았다.
 강우진은 조심스럽게 피 묻은 손수건을 호주머니에 숨기며 등을 좌석에 깊게 묻었다.
 지치고 병 든 몸이 아까부터 계속 눈을 붙이고 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강우진은 몸이 명령하는 대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제 두 시간 정도만 더 가면 캄보디아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강우진에게는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여행이었다.
 
 
 
 ***
 
 
 강우진을 비롯한 여행객들을 이끌고 온 여행가이드는 앙코르와트와 가장 가까운 도시인 씨엠립의 호텔에 짐을 풀게 한 후 다시 일행을 호텔의 1층 라운지로 소집했다.
 
 “앙코르와트 탐방은 내일입니다. 오늘은 가까운 시내의 캄보디아 전통시장을 둘러보고 난 뒤,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호텔 연회장에서 공연을 관람할 겁니다.”
 
 가이드의 인도에 따라 일행은 준비된 관광버스에 올라탔다.
 강우진도 힘겨운 몸을 끌고 겨우 짐을 푼 후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작가의 말

너무 오랜만에 문피아에 연재를 하는 것 같습니다.

완결까지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댓글(94)

료이    
ㅎㅎ 반갑습니다.
2021.12.20 13:26
중턱    
잘 보고 가요~
2021.12.20 19:30
ro*****    
작가님. 오랜만에 작품으로 만나요. 반갑습니다. ^^
2021.12.20 20:34
불곡산    
반갑습니다. 전작은 완결까지 따라갔는데 이번 작품도 기대합니다.
2021.12.21 02:12
ca******    
작가님 작품 기기대됩니다~~화이팅요!!
2021.12.25 13:01
풍뢰전사    
건필하세요
2021.12.31 17:03
임산    
애고!!! 최근 화에 악성 댓글러가 붙은 것 같아서 확인했더니 여기서도 장난을 쳐놨네요. 혹시라도 이 글 보는 악성 댓글러 씨. 누군지 알게되면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말 진심으로 충고할게요. 응보라는 게 정말 있습니다. 남에게 악의를 드러내면 반드시 그 댓가를 치릅니다. 하지마세요.
2022.01.01 00:56
su*****    
작가 님의 전작 '구르뫼, 운산' , '활강시가 간다'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새 작품도 기대됩니다.^^
2022.01.01 11:03
임산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2022.01.01 11:12
쫄리면자라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22.01.10 00:07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