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황금세가 절대무신

서(序)

2021.12.20 조회 96,606 추천 1,305


 서(序)
 
 천장이 흔들리고 회색 가루들이 떨어졌다. 난 눈을 감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고, 이렇게 됐으면 했다.
 
 “이봐.”
 
 난 바깥을 향해 사람을 불렀다.
 
 예상대로 답은 없었다. 주야를 가리지 않고 감시하던 사람도 가버린 거다.
 
 그렇다고 내가 이 묶인 몸으로 도망칠 수 있는가. 그건 아니었다.
 
 움직이는 게 낯선 팔과 다리를 한 번씩 앞으로 당겨본다. 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벽과 내 팔다리에는 강한 구속구가 묶여있었다.
 
 슬슬 바깥에서부터 타는 냄새와 매연이 들어왔다. 일반인보다 못한 나약한 내 몸은 벌써부터 헐떡거렸다.
 
 쾅!
 
 저 멀리 내가 올려다봐야 하는 계단의 끝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난 눈을 찡그렸다.
 
 “여기는 뭐야? 감옥 같은데.”
 “그런 것 같습니다.”
 
 바깥에서 희미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어느새 그들은 내 눈 앞에 와있었다.
 
 “얜 뭐지?”
 
 내게 온 사람은 세 명으로, 한 사람은 하늘거리는 무복을 입은 여자와 좌우에 남자 둘이었다.
 
 신기하다.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무공이라는 거일 터다. 난 무공을 본 적이 없었다.
 
 내 기억의 처음에서부터 나는 이런 어두운 골방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신기하게 보고 있자, 우측에 있던 남자가 품에서 종이뭉치를 꺼내 살펴봤다.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글을 어떻게 본다는 말인지. 아마 저것도 무인의 능력인가 싶다.
 
 “정보부에 의하면 아마 이 사람이 황금세가의 지낭(智囊)일 거라는데요?”
 “지낭을 이렇게 대우하는 곳도 있어?”
 
 나를 무시하고 남자와 여자는 말을 이었다.
 
 “무정에서 확인한 정보로, 황금세가 이 장로가 매일 여기로 들락거렸답니다. 여기를 들어갔다 나오면 뭔가 황금세가의 행동이 바뀐다는 정보부의 부가 의견도 있었습니다. 무슨 비밀 장로 회의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사람이 있었군요.”
 “그래? 이봐.”
 
 여자는 그제야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제야 여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있었다. 여자를 본 경험이 많지 않아, 이 사람이 예쁜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왜?”
 
 내가 반문하자, 여자는 살짝 말문이 막힌 듯했다. 뭘 질문해야할지 모르는 걸까.
 
 난 이런 일이 잦았다.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 그 놈도, 내가 화두를 안 던지면 말 한 마디 못했으니까.
 
 “내 정체가 궁금한 거지?”
 “···음, 아. 그렇네. 그게 먼저겠네. 이런 몰골의 사람은 처음 봐서 당황스러웠어.”
 “네 신원을 먼저 밝혀. 그러면 말해줄게.”
 
 여자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순식간에 내 목에 칼이 드리워졌다.
 
 “그런 유치한 기싸움을 할 때는 아니잖아? 네 목숨은 우리한테 있는데.”
 “기싸움이 아니야. 기본이지. 난 너한테 궁금한 게 없지만, 넌 나한테 궁금한 게 있잖아. 내가 저자세로 나갈 이유가 없어.”
 “목숨으로는 부족한 거야?”
 “그건 내게 가장 하찮은 협상 거리야. 지금 날 봐.”
 
 여자는 나를 봤다. 구속구에 대롱대롱 매달린 사지. 팔과 다리에 피가 몰려 푸르뎅뎅한 끄트머리. 누런 고름이 흘러나오는 욕창을 보면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터였다.
 
 “그래. 난 무림맹 은영조(隱影組) 조장, 명재희야. 넌 누구지?”
 “황금세가의 금목환이다.”
 
 내 말에 셋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이유는 대략 알 것 같다. 나는 외부에는 죽은 것으로 처리됐기 때문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네. 죽은 줄 알았던 황금세가 막내공자가 이런 몰골로 갇혀있다니.”
 “가끔은 나도 믿기 힘들어.”
 “네가 황금세가의 지낭 역할을 한 건 맞나?”
 
 난 고개를 끄덕였다. 명재희는 눈살을 찌푸렸다.
 
 “너 때문에 황금세가를 뿌리 뽑는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됐는지 알아? 기문진식도 네가 설계했지?”
 “그렇긴 한데 글쎄. 내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어. 매일 환혼공(幻魂功)을 쓸 수 있는 놈을 같이 데려왔거든.”
 
 명재희는 날 빤히 바라봤다. 아마 진실을 확인하려는 그녀 나름의 눈빛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 표정에서 뭐를 확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감정을 잃어버린 지 꽤 됐으니.
 
 “그래. 그럼 그걸 먼저 물어봐야겠네. 황금세가의 아들인 네가 왜 이 지경으로 있는 거야? 그게 제일 이해가 안 되는데.”
 “원래 우두머리 싸움에서 지면 이렇게 비참한 꼴을 당하는 거야.”
 “널 가둔 게 형제들이란 말인가?”
 “설명해줘도 넌 몰라.”
 
 명재희 때문에 오랜만에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떠올렸다.
 
 가주의 자리를 확정 받은 둘째 형의 그 오묘한 눈빛.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장로들. 가문의 모든 사람들이 날 등진 그날. 둘째 형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으리라. 사실상 황금세가의 실권을 장로들에게 넘겨준 치욕적인 날이었으니까.
 
 난 그 이후로 그냥 가문에서 나가 평범하게 살려고 했다. 그러나 난 그때까지도 순수했던 거다. 황금을 만든 핏줄은 관계가 역전된 지 오래였다. 피 대신 황금이 흐르고, 의와 협보다는 돈이 우선인 게 이 황금세가였다.
 
 난 가문에서 머리가 제일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팔과 다리가 잘리고 지하방에 나뒹굴어졌다.
 
 “네가 마교의 세작(細作)을 하라고 한 거야?”
 “그건 아니야.”
 
 명재희의 물음에 난 고개를 저었다. 마교의 첩자 노릇을 결정한 건 둘째 형이다. 언제부터 둘째 형이 그랬는지는 잘 모른다. 가주 쟁탈전 전부터 내통을 했던 것 같지만 심증일 뿐이었다.
 
 “대충 알 것 같네. 그래도 어떡하지? 무림맹은 황금세가와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주살(誅殺)하라고 했는걸.”
 
 명재희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쉬워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나도 딱히 사는 걸 바란 건 아니었다. 이미 난 죽은 목숨이니까.
 
 지금 내 뇌에는 고독(蠱毒)이 꾸물대며 움직이고 있었다. 이 고독은 악랄하게도 둘째 형의 목숨과 이어져 있었다. 첩자의 주동자 역할을 한 둘째 형은 무조건 죽을 거고, 그에 따라 나도 죽을 게 당연했다.
 
 그래, 차라리 고독에 뇌가 파먹혀 죽을 바에는 저 여자의 검에 깔끔하게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럼 빨리 죽여. 난 또 살려주는 줄 알고 친절하게 대답했지 뭐야.”
 “삶에 의지도 없어 보이는데 잘 된 거 아닐까?”
 
 명재희는 웃었다. 좌우의 남자도 낄낄거렸다. 내가 힘도 없이 무덤덤하게 말하니까 그렇게 보였나보다. 허나 적어도 그건 아니었다.
 
 “삶에 대한 의지는 없지 않아. 누구보다 살고 싶어. 다만 그럴 수 없는 걸 알뿐이야.”
 
 나는 그들을 보았다. 어둠에 적응된 커다란 검은자위, 퀭한 눈. 그들에게는 섬뜩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난 적어도 내 삶에 떳떳하다. 허나 후회되지 않는 건 없다. 삶에 대한 의지는 누구보다 충만하다.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말실수했네. 미안.”
 
 내 진심을 읽은 명재희가 간단히 목례를 했다.
 
 내 진심을 그녀가 느낀 만큼, 나도 그녀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주기로 했다.
 
 난 눈을 감았다.
 
 만약,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제대로 된 삶을 살아봐야지, 하면서.

작가의 말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감사해요 사랑해요

댓글(107)

rp******    
도입부갸 좋아요 ㅎ
2021.12.21 06:55
주니글왕    
임팩트 있네요. 기대가 됩니다.^^ 마지막 응원 문구 좋네요 ^^
2021.12.21 17:47
co******    
건필...
2021.12.22 11:00
물물방울    
회귀를 하나요? 그리고 연재시작을 축하합니다. 시작은 미미해도 끝은 창대하리라. 믿고 출발합니다. 승승장구 하시기를 바랍니다.
2021.12.24 16:37
수시망    
이거 봐도 되나요? 로맨스 헌터 때 내상 쎄게 입어서 불안한데.
2021.12.29 22:55
학교    
좋습니다...
2022.01.06 11:45
장금    
잘봤어요
2022.01.08 15:36
kotakina    
에구 ㅠㅠ
2022.01.09 22:15
ma******    
기대합니다
2022.01.10 00:04
하파타카    
잘봤습니다
2022.01.10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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