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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로가기버튼 국보급 센터는 NBA로 향한다

국보는 죄송하고 부끄럽다 - 01

2022.01.21 조회 35,853 추천 389


 - 2015년 혜성처럼 데뷔, 이후 17년 동안 703경기 출전! 통산 15,733득점, 5,377리바운드, 1,789어시스트, 1,288블록을 기록하며 무려 세 가지 부문에서 통산 1위를 기록한, 대한민국 농구계가 배출한 두 번째 국보급 센터. 지금부터 태아성 선수의 은퇴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음... 턴오버가 빠졌네. 턴오버도 통산 1위인데...
 
 이후 재생된 헌정 영상에는 지난 17년 동안의 커리어가 응축되어 담겨 있었다.
 한국인 최초이자 최후의 득점왕에 등극, 정규리그 MVP와 챔피언결정전 우승, 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차지한 영광의 2020-21시즌을 비롯한 나의 빛나는 커리어들이.
 
 통산 야투 성공률 50.52%, 2점 성공률 55.31%, 3점 성공률 38.01%, 자유투 성공률 83.28%.
 MVP 5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4회, 챔피언결정전 MVP 3회, 베스트 5 11회, 올스타 12회 등등...
 
 ‘내가 봐도 꽤 했네. 열심히 했어.’
 
 다만, 헌정 영상이라 그런지 한 시즌에도 몇 번씩 일어났던 상대 선수, 심판과의 충돌은 담기지 않았다.
 승부욕과 욕심, 의무감과 자존심, 결정적으로는 리그 생태계를 파괴하는 괴물에 대한 견제에서 비롯된 어두운 역사들.
 
 ‘아직도 열 받고 억울하지만, 잊어버려야지. 지금에 와서는 아예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고.’
 
 내 잘못이었던 걸로 치자.
 사이즈와 운동능력, 스킬은 둘째치고 기본적인 향상심에서부터 KBL 기준을 아득히 초월한 주제에 정작 더 높은 곳으로 떠나지는 못했던 한심한 내 잘못으로.
 그렇게 당했는데도 올타임 NO.1, 그것도 압도적인 NO.1 자리에 올랐으면 그들이 옳았고 내가 틀린 거지.
 
 나는 조금 더 용기를 냈어야 했다.
 아니, 국내에서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던 재능에 취하지 말고 조금 더 일찍, 진지하게 위를 노렸어야 했다.
 
 그러질 못하니까 다른 선수들도 방법이 없...
 
 ‘아니, 이건 반칙이지... 사람이 진지하게 과거를 돌아보고 있는데 영상이 저러면...’
 
 그래, 은퇴식에 이 순서가 빠질 리 없지.
 아주 가끔 ‘누나’라고 부르기도 하는 호적메이트가 등장할 때부터 뭔가 불안하긴 했지.
 아니나 다를까, 바로 부모님이 나오네?
 
 나도 엘리트 코스를 밟은 다른 운동선수들과 다를 게 없어서 항상 가족들, 특히 부모님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아아, 은퇴식이라고 질질 짜는 건 꼴불견이라면서 절대 안 울 거라고 단언하고 다녔는데... 한동안 사람들 좀 피해 다녀야겠어.
 
 - 자, 태아성 선수가 팬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이제 태아성 선수에게 마이크를 넘길 테니 큰 박수로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국보급 센터, 국보 2호!! 태아성 선수입니다!!
 <우와아아아아아!!!!!!!!!!!!>
 
 팬들의 함성을 들어보니 농구 인기가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는 게 실감이 난다.
 이를 뒷받침하듯 2023-24시즌에는 13-14시즌 이후 10년 만에 평균 관중 4,000명대를 회복했고, 26-27시즌에는 4,737명을 기록하며 11-12시즌의 4,528명을 넘어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하기까지 했다.
 
 ‘둘 다 내가 MVP를 수상한 시즌이기도 하고.’
 
 리그 전체를 캐리하는 슈퍼스타.
 혼자서 리그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압도적인 괴물.
 모두가 노력했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겸손할 필요는 없겠지.
 
 KBL 부활에 지분이 있다면 분명 내가 가장 많이 가지고 있을 거다.
 국보 1호 선배님이 말씀하셨듯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활약하지 못한 아쉬움을 떨칠 수 없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만큼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압도적인 존재로 군림했고 침몰하던 리그를 살려냈으니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편하다.
 
 “국보급 센터라는 별명은 참 영광스러우면서도 민망합니다. 어쨌든 사람에게 ‘국보’라는 단어가 붙는 건 엄청난 찬사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제가 ‘원조 국보급 센터’이신 심재형 선배님의 NO.1 팬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은퇴식이라고 팬들도 평소보다 훨씬 많이 찾아와주셨네.
 5,000석도 훌쩍 넘는 좌석이 전부 매진.
 이번 시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상황이니 전부 내 은퇴식을 보러 오셨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으하하하하!>
 <태아성! 태아성! 태아성! 태아성! 태아성!>
 
 구단에서 나눠준 머플러와 플래카드 등의 은퇴식 굿즈를 들고 별것 아닌 말에도 폭소를 터뜨리는, 그리고 잠깐이라도 틈이 나면 내 이름을 목이 터져라 연호하는 팬들.
 구단에서 준비한 굿즈 외에도 직접 무언가를 제작해서 들고 온 분들도 많아 보인다.
 대학 시절 유니폼, 옛날 기사나 굿즈 등을 들고 온 분들도 많고... 음? 고등학교 유니폼은 뭐지? 저걸 사람들한테 팔기도 하는 건가? 고등학교 유니폼을 누가 산다고?
 어이구? 저기 몇 분은 벌써 울고 계시네. 아직 한마디밖에 안 했는데.
 
 “... 제가 오늘 은퇴를 하긴 하나 봅니다. 여러분들이 언제부터 제 말에 이렇게 웃어주셨다고... 적어도 코트 위에서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으하하하하하!!!>
 <태아성! 태아성! 태아성! 태아성! 태아성!>
 “그러니까요. 제가 원래는 꽤 재미있는 사람입니다.”
 <으하하하하하하하!!!>
 <우우우우우우--->
 “아니, 웃음소리가 더 커진 것 아닙니까? 글자로 표현하면 두 글자 정도 더 커진 것 같은데. 그리고 은퇴식에 야유라니...”
 
 그래, 내가 재미있는 이미지는 아니긴 해.
 물론, 시대가 바뀐 터라 KBL을 대표하는 슈퍼스타로서 지상파, 케이블, 유튜브 등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출연했고, 엄청난 예능감까지는 아니어도 코트에서와 다른 모습 정도는 보여줬다고 자부하긴 한다.
 문제는...
 
 “이게 다 제가 심재형 선배님을 보고 농구를 시작해서 그렇습니다. 심재형 선배님을 멘토로 삼고, 심재형 선배님을 본받으려 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선배님 잘못이고 제 잘못은 없습니다. 원래 어린 애들은 뭐든 빨리 배우기 마련이잖아요?”
 <으하하하하하하하하!!!!!>
 
 좋아. 웃음이 더 커졌어. 다들 공감한다는 뜻이겠지.
 
 내게 있어 최고의 농구선수는 옛날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국보급 센터’ 심재형 선배님이었다.
 선배님이 한국 농구에 환멸을 느껴 미국으로 떠났던 1995년에 태어난 나는 2005-06시즌 두 번째 MVP를 차지한 선배님의 플레이에 반해 농구를 시작했다.
 압도적인 사이즈와 피지컬을 갖췄으나 골밑에서만 머무르기 싫었던 내가 선배님을 롤모델로 삼은 것까지도 당연한 수순.
 
 문제는 리그 수준을 아득히 초월하는 아웃라이어라는 것까지 비슷해졌고, 그 덕에 상대와 심판, 리그 차원에서의 온갖 견제까지 비슷하게 겪어야 했다는 것까지 닮아버렸다는 것 정도?
 
 그나마 당시보다 정보를 얻을 방법이 훨씬 많아지고, 본모습을 보일 기회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 역시 비호감 이미지를 피할 수 없었겠지.
 
 ‘나보다 예능감이나 언변이 훨씬 뛰어난 선배님도 코트 위에서는 찌푸린 얼굴로 항상 짜증이나 화를 내는 이미지였으니... 나도 별거 없을 수밖에.’
 
 어쨌든 덕분에 심재형 선배님과는 20년 이상의 나이 차이가 있음에도 각별한 사이가 될 수 있었지.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내 농구인생에서 가장 값진 일 중 하나기도 하고.
 
 ‘국보급 센터’, ‘국보 2호’라는 별명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도 이런 팬심과 이를 기특하게 지켜보며 허락해주신 선배님 덕분이었다.
 
 다만...
 
 “아무튼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하자면...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제가 센터는 아니잖아요? 넉넉하게 잡아도 19-20시즌부터는 포워드라 봐야 할 텐데 아직도 ‘국보급 센터’라니... 그래서 참 영광스러우면서도 민망합니다.”
 
 맨발 신장 207cm, 착화 신장 210cm, 윙스팬 214cm, 스탠딩 리치 273cm, 스탠딩 버티컬 72cm, 맥스 버티컬 84cm, 레인 어질리티 11.13초, 3/4코트 스프린트 3.20초.
 타고난 파워는 상당히 부족한 대신 사이즈 대비 스피드와 민첩성은 NBA에서도 놀랄 만한 수준.
 
 신장은 그렇다 쳐도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심재형 선배님보다도 뛰어난 편이었고, 당연히 포지션은 센터였다.
 센터로 시작했고, 센터로 프로에 데뷔했지.
 
 그러나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참가한 NBA 드래프트 컴바인에서 큰 충격을 받고 내게 어울리는 포지션이 4번, 혹은 3번임을 확신, 조금씩 포워드 컨버젼을 준비했다.
 당시 소속팀 감독님은 당연히 이를 허락하지 않았으나 데뷔 2년 차인 16-17시즌 이후 NBA 도전을 선언하며 NBA G 리그로 진출했다가 3, 4번으로만 쓰겠다는 조건으로 복귀하면서 완전히 포워드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이후에는 주 활동 영역이 골밑이냐, 미드레인지냐만 바뀌었을 뿐 계속해서 포워드로 뛰었다.
 ‘국보급 센터’라는 별명 자체가 어지간한 선수보다 존재감이 큰 데다가 심재형 선배님의 뒤를 잇는 ‘생태계 파괴급 괴물’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새로운 별명이 붙지 않았을 뿐, 나는 포워드였다.
 
 “그리고 ‘국보’라는 단어도 여러모로 복잡하네요. 나도 이한울 선수처럼 NBA에서 활약해서 진짜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국보’가 되고 싶었는데... 더 잘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전 정말 더 잘하고 싶었고, 다른 종목의 수많은 영웅들처럼 농구팬 여러분들의 자랑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 ‘국보’라는 타이틀을 떼어내지 못한 게 만악의 근원이었을지도 모르지.
 농구인들이, 팬들이 자꾸 ‘국보’라고 불러주니 ‘국보’에 어울리는 선수가 되어야만 할 것 같아서, 그래서 나 자신을 미친 듯이 괴롭혔으니까.
 
 14-15시즌, 과감하게 대학을 자퇴하고 서머리그에 합류했으면 인생이 조금 바뀌었을까.
 잘못된 방향 설정 때문에 본격적인 출발이 늦었지만, 세계 최고의 지도자들과 함께 훈련했다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이번 생에서처럼 부담감과 중압감, 의무감과 책임감에 짓눌리지 않고 조금 더 여유롭게, 조금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었을까.
 농구에 목숨 걸고 모든 시합을 전쟁처럼 치르면서 온갖 징크스에 짓눌리는 것까지, 그것까지 닮을 필요는 없었는데.
 
 다들 ‘한국 농구의 구세주’라 불러주고 ‘국보’라고 불러주는데 정작 세계무대에서는 양민이라서.
 그게 너무 죄송스러워서 점점 부담을 갖고, 책임감을 느끼고, 조급함을 느끼니까 KBL에서만이라도 독보적인 존재로 군림하려 처절하게 애를 쓰고 괴로워하고...
 
 “그래도 정말 너무 죄송스럽지만, 한편으로는 후련하기도 합니다. 드디어 전선에서 물러나 편안한 후방에서, 어언 20년 만에 처음으로 여유롭게 살아갈 생각을 하니 아쉬운 와중에도 조금이나마 후련한 것 같습니다.”
 
 지난 시즌 중반 즈음부터 느꼈다. 느끼기 싫어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쳐있다는 걸.
 은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고, 그토록 고대하던 자유이기도 했다.
 
 “저는 이제 코트 바깥에서 그토록 사랑했던 농구를 다시 한 번 즐겁게 지켜보겠습니다. 오랫동안 사랑으로만 지켜보지 못했던 농구를 다시 한 번 사랑할 생각에 조금 설레기도 합니다. 아마 한동안은 내가 없는 농구를 인정하지 못하고 잠시 멀리하겠지만... 제가 어딜 가겠습니까. 결국, 언젠가는 어딘가에서 농구와 함께하고 있을 겁니다.”
 
 또 말하다 보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도 같고...
 내일부터, 최소한 지금 잡혀있는 스케줄이 모두 끝난 이후부터는 ‘국보급 센터’가 아닐 테니 20년 만에 찾아온 자유와 여유를 즐길 수도 있겠지.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팬 여러분들도 계속해서 농구를 사랑해주세요. 그러면 농구로 다시 돌아오는 그 날 우리 다시 함께합시다. 감사합니다.”
 
 ‘국보급 센터’를 은퇴한 뒤 찾아올 여유.
 앞으로 한동안은 그게 뭔지도 잊어버렸던 ‘여유’라는 놈을 어떻게 즐겨야 할지 고민 좀 해봐야겠다.
 그 녀석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지, 어떤 즐거움을 줄지도 기대가 되고...
 
 ‘벌써부터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네. 선수 생활도 이런 마음으로 했으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 아니, 아니지.’
 
 은퇴식에서도 이딴 생각이나 하다니.
 하긴, 20년을 이렇게 살아왔으니 은퇴식이라 해서 바로 바뀔 순 없겠지.
 
 앞으로는 ‘여유를 즐긴다는 것’, ‘여유로운 삶의 태도’라는 게 무엇인지, 그게 내게 도움이 되는 건지를 좀 알아보려고 한다.
 이제는 더 이상 농구선수가 아니지만, 성취라는 게 꼭 농구선수에게만 있는 것도 아니고...
 
 ‘농구선수 태아성’은 평생 버릴 수 없을 테니 여유로운 태도가 좋다는 걸 알게 되면 또 후회의 밤을 지새우려나?
 그래도 여유가 뭔지 궁금하니까 한 번 그렇게 살아봐야지.
 승부를 좋아하고 즐기긴 하지만 그게 농구만큼은 아니니까.
 
 ***
 
 그래, 이때까지의 난 분명히 앞으로 찾아올 ‘여유로운 삶’을 기대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들에 지쳐서,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만은 않아서.
 
 누가 이렇게 되리라는 걸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작가의 말

다시 출발합니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댓글(38)

수시망    
미예크 작가님 오셨군요!! 골대앞망나니는 카카오에서 다 결제하고 봤습니다.이번작도 잘 봐볼게요.
2022.01.22 02:32
[탈퇴계정]    
스포츠 장르의 강자 마이크 작가님 Come back
2022.01.22 23:16
[탈퇴계정]    
오타 났네요 자동 완성 기능 때문에 ㅠㅠ
2022.01.22 23:17
가그다    
근데 왜 한국인 최초이자 최후 득점왕인거죠? 제가 농구를 안 봐서 잘 모르는데 kbl이 한국리그 아닌가요?
2022.01.23 15:34
미에크    
KBL의 득점왕은 원년부터 계속 외국인 선수들이었습니다. 지금의 KBL에는 특별 귀화 혼혈 선수인 문태영 선수가 유일한 한국인 득점왕 기록을 가지고 있죠. 다만, 엄밀히 따지면 문태영 선수의 경우 득점왕 시즌 종료 후 몇 개월 있다가 한국 국적을 따냈기에 한국 국적이 아니었고, 한국에서 성장한 한국 국적 선수의 득점왕 등극은 지금까지도 일어나지 않은 일입니다.
2022.01.24 11:56
꿈은개꿈    
미에크!미에크!
2022.01.24 17:44
황금별똥    
농구는 1도 모르지만 미에크 작가님 믿고 보겠습니다!
2022.01.25 21:03
귀욤둥이    
와이 쪽지 안보냄! 신작 올라온지 몰랐네
2022.01.28 22:37
영혼갈아넣    
컴패리즌 듀란트인가요??
2022.01.29 15:35
태사공29    
과연 김군0619 작가님의 One Game의 퀄리티에 밀리지 않을지, 조심히 따라가 봅니다.
2022.02.03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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