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유성전기 [E]

유성전기 1권-1

2015.02.05 조회 5,058 추천 40


 서(序)
 
 신강의 라합산 중턱 어딘가에 뚫려 있는 동굴.
 “으음!”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어두운 동굴 안에서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작은 형체가 꿈틀거렸다.
 사람이었다.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첨벙거리는 소리가 발밑에서 들렸다. 수중동부였던 모양이다.
 “으으…, 여긴 어디지?”
 비교적 젊은 청년의 목소리였다.
 지끈!
 지독한 두통이 밀려왔다.
 손을 들어 왼쪽 이마를 만졌다.
 두개골이 움푹 파여 들어갔고, 끈적끈적한 게 만져졌다.
 선지피 덩어리였다.
 이런 상처를 입고도 살아 있다는 사실은 기적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짙은 어둠 저 멀리 작은 빛이 보였다.
 쌀알만 한 크기의 빛이었지만, 입구가 분명했다.
 청년이 빛을 향해 걸어갔다.
 비틀거리는 걸음을 따라 물이 뚝뚝 떨어졌다.
 힘겨운 걸음을 이어간 끝에 청년은 동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바깥은 밝은 대낮이었고, 중천에 뜬 태양에서 눈부신 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햇볕아래 드러난 청년의 모습은 끔찍했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온 몸이 상처였다. 붉은 선혈이 찢어진 옷 곳곳에 배여 있었고, 아직도 상처에서는 핏물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청년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주변을 살폈다.
 탁 트인 시야에 드러난 산하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나지막한 신음성이 청년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으음! 여, 여긴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지…….”
 또다시 밀려온 두통에 청년이 미간을 찌푸리며 괴로워했다. 도저히 생각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두통이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동안 숨을 고르자 두통이 서서히 가셨다.
 그때, 청년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여길 벗어나 동쪽…, 동쪽으로 가야해.’
 청년이 몸을 일으키더니 산 아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신강의 라합산에서 시작된 청년의 발길은 청해와 감숙을 지나 섬서로 이어졌다.
 두 달이라는 긴 여정을 거쳐 섬서 함양에 이른 청년은 마침내 걸음을 멈췄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 상거지 몰골이 되었지만,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청년의 눈빛만큼은 맑았다.
 청년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함양을 내려다보았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관도를 바삐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표행을 떠나는 표사들도 있었고, 물품을 잔뜩 싫은 수레들을 끌고 가는 상단도 있었다.
 “후우!”
 청년의 입에서 긴 한숨소리가 새어나왔다.
 온 몸이 물 먹은 솜 마냥 무거웠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악착같이 걸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신강과 감숙을 벗어나 섬서성에 도착하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다행히 온 몸에 나 있던 끔찍한 상처는 그동안 모두 나았다. 특별히 치료를 받은 적도 없었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지만, 상처가 저절로 아물었던 것이다.
 놀라운 회복력이 아닐 수 없었다.
 청년이 억지로 몸을 일으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간신히 함양에 들어선 청년은 어느 장원의 대문 앞에 이르자 갑자기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것을 느끼고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1. 남가장
 
 함양은 섬서성 동북부에 있는 도시다.
 섬서 외곽지역에 있는 도시 치고는 제법 큰 규모를 자랑했고,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함양에는 두 개의 대문파가 있다.
 금도문(金刀門)과 귀룡방(鬼龍幇)이다.
 함양과 주변 일대는 이 두 개의 문파가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그 아래에 크고 작은 중소문파들이 여럿 있었다. 모두 금도문과 귀룡방의 눈치를 보며 고만고만한 사업체를 운영해 먹고 사는 그런 문파들이다.
 주로 서민들이 생활하는 남육동(南肉同)에도 세 개의 문파들이 있었다. 문파라 부르기에는 조금 민망해 차라리 무관이라 불러야 마땅할 규모지만, 나름대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남가장(南家牆)은 한때 금도문이나 귀룡방 같은 성세를 자랑하던 곳이었다.
 불행히도 이십여 년 전, 철마방(鐵魔房)이라는 마도문파와 패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문파의 고수들이 거의 전멸했고, 가문의 비전 또한 전해지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넓은 장원에 휑한 바람만 을씨년스럽게 불어오는 가운데, 몇 명의 제자들이 기본공(基本功)을 수련하는 초라한 문파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얍! 합!
 한창 무공을 익히고 있던 제자들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마보(馬步)에서 내지르는 주먹에는 힘과 기세가 실려 있었다.
 제자들의 열의가 이 정도인데 남가장이 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앞쪽 단상에는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이 팔짱을 낀 채 제자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꽃처럼 아름다웠지만 차가운 눈빛 덕분에 왠지 냉기가 흐르는 얼굴이었다.
 남가장의 후손이자 가주인 소상화(素像花) 남선미가 바로 그녀다.
 현재 남가장에는 집사와 부엌살림을 책임지는 여인, 그리고 네 명의 제자들이 있었다. 엄청나게 크고 넓은 남가장의 규모를 생각한다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적은 인원이다.
 게다가 제자들이라고 해봐야 가려고 해도 갈 곳이 없는 고아 출신들이었다.
 무공을 배우는 대가로 한 달에 은자 두 냥을 지불하는 수련생들과 주루 하나가 없었다면, 남가장은 아예 명맥조차 잇지 못했을 것이다.
 차압! 핫!
 적수공권으로 권장술을 배우던 제자들의 이마에 땀이 줄줄 흘렀다.
 유달리 기본공을 중요시 하는 남가장의 무공 덕분에, 제자들은 하루 종일 마보를 취해 하체의 힘을 기르고, 꼿꼿이 세운 상체가 흔들리지 않도록 주먹을 이리저리 내뻗는 수련을 하고 있었다.
 무공의 기본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지만 수련하는 대부분의 시간을 꼬박 기본공 연마에만 쏟는다면, 질리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가장에 얼마 전까지 남아 있던 남선미의 숙부는 이런 수련방식이 제자들의 무공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가주인 남선미를 몇 차례나 타일렀다.
 하지만 남선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집을 떠난 지금, 남선미는 어엿한 남가장의 가주이고 따라서 그녀의 생각이 곧 남가장의 뜻이었다.
 결국 남선미의 숙부도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타향으로 떠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상화 남선미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잃어버린 가문의 무공을 복원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주화입마로 죽어간 부친의 마지막 말이 아직 그녀의 귀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 남천오결(南天五結), 그 끝을 보고 싶구나…….
 남천오결은 남가장의 무공이다.
 남천오결이 온전했을 때에는 그 누구도 남가장을 무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주위에서 남가장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철마방이라는 흑도 문파와 싸우느라 가문의 주력이 전멸하고, 남천오결의 비전이 끊어지자 상황은 역전되었다.
 주변 문파들의 핍박 때문에 영위하던 사업이 어려워졌고, 자금 압박에 시달렸다. 결국 가지고 있던 사업장을 하나 둘씩 정리했고 작은 주루 하나와 커다란 장원만 남았다.
 현재 남가장에 남아 있는 건 남천삼결이다. 나머지 이결의 구결은 남아 있지만 그건 구결만으로 익힐 수 없는 무공이다. 남천오결의 진의를 깨달은 선배고수의 지도가 꼭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남가장에는 그런 고수가 없었다. 그러니 실전 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남선미의 부친이 억지로 꿰어 맞춰 오결을 복원하기는 했지만, 그건 완전하지 못했다. 결국 부작용이 일어나 남선미의 부친은 목숨을 잃었고, 그 후로는 기본공의 연마에 더욱 주력하게 되었다.
 ‘속성으로 익히면 결코 끝을 보지 못해!’
 남선미가 그동안 무공을 익히며 깨달은 게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는 남아 있는 제자들이 열심히 수련하는 모습을 추상처럼 지켜보다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제자들의 나이는 열두 살에서 열여섯 살 사이다.
 열두 살이 둘, 그리고 열다섯과 열여섯 살이 각각 하나다.
 그들이 남가장에 들어온 건 오 년 전이다.
 무공을 입문하기에는 그렇게 늦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내공의 기틀을 제대로 잡아주지 못했다. 그럴 능력이 있는 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무공을 익히기 시작하면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도 일류의 경지가 한계다. 진정한 고수의 반열이라 할 수 있는 절정의 경지에 이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 남가장의 제자들은 자질도 중하(中下)였다.
 내공의 기틀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고, 자질도 중하라면 일류의 경지조차 요원하다.
 결국 남가장에서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사람은 단 두 명이다.
 남가장주 남선미와 그녀의 동생 남선우다.
 다행히 두 사람의 자질은 무척 뛰어난 편이었다.
 그러나 남선우는 아버지가 주화입마로 쓰러져 돌아가신 후, 남천삼결만으로는 남가장을 부흥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산파로 무공수련을 떠났다.
 그런데 남선우에게는 이 년 전에 열심히 무공을 수련하고 있다는 연락이 딱 한 차례 온 후,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화산파에 연통을 몇 차례 넣었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수련에 방해가 된다는 게 이유였다.
 남선미는 언젠가 동생이 고수가 되어 나타나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하앗! 핫!
 제자들의 기합성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땀을 뻘뻘 흘리며 힘들어 했지만, 그래도 그들의 얼굴에는 뭔가 해보겠다는 의지가 넘친다.
 남선미가 그 모습을 보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남가장의 제자들이지만 그들은 동생들이나 마찬가지다. 그것도 요즘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착한 아이들이다.
 남선미의 부친이 아이들을 데려올 때 자질보다는 성품을 우선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남선미는 처음에는 아버지가 제자라고 데려온 아이들의 자질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지금은 만족스러웠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무공이 전부가 아니다.
 그들은 남가장의 단순한 제자가 아니라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 주는 가족이다.
 남선미가 이팔청춘의 나이에 남가장의 부흥이라는 커다란 짐을 지고도 쓰러지지 않은 건 그들의 존재 때문이었다.
 “아가씨! 아가씨! 어서 나와 보세요!”
 갑자기 때문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남선미는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단상을 박차고 신형을 날렸다.
 그녀는 넓은 연무장을 가로질러 단숨에 대문에 도달했다.
 “무슨 일이야, 하 대고(大姑)?”
 대문 입구에 오십대의 뚱뚱한 여인 한 명이 장바구니를 든 채 서 있었다.
 그녀는 남가장의 종복으로 어렸을 때 남가장으로 들어온 남가장의 산증인이다.
 하 대고는 장을 보러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길에 남가장 대문 앞에 쓰러져 있는 거지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고함을 질렀던 것이다.
 “거지가 쓰러져 있어요, 아가씨.”
 남선미는 급히 대문 앞에 쓰러진 거지를 살폈다.
 산발이 된 머리에 온 몸은 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을 뿐 아니라 찢기고 헤진 옷과 부르튼 발이 보였다.
 그녀는 거지의 손목을 잡고 맥을 살폈다.
 남선미가 의원은 아니었지만 무공을 배운 무인으로서 인체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 제자들 네 명이 우르르 달려왔고, 그들의 뒤를 이어 육십 대 노인 한 명이 뛰어왔다.
 노인은 남가장의 모든 살림을 도맡아 처리하는 집사로 남가장에 들어온 지 오십 년이 넘었다.
 하 대고가 진맥을 하고 있는 남선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녀의 설명을 모두 들은 노인, 고 집사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어질 상황이 눈에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남선미가 거지의 손목을 놓더니 급히 말했다.
 “빨리 안으로 옮기고, 고 집사는 의원을 불러요.”
 제자들 중 나이가 가장 많고 체격이 큰 탁동해가 거지를 업었고, 나머지 세 제자들이 부축을 한 채 안으로 우르르 들어갔다.
 고 집사가 혀를 찼다.
 “또 거지를 들이시는 겁니까, 가주?”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버려둘 수는 없어요. 어서 의원을 부르세요.”
 “휴우! 알았습니다.”
 고 의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의원을 찾아갔다.
 “하 대고는 미음을 좀 끓이세요. 탈진한 것 같은데, 깨어나면 바로 먹일 수 있도록요.”
 “예, 아가씨.”
 하 대고가 장바구니를 들고 서둘러 부엌으로 향했다.
 
 ***
 
 침상 하나와 작은 탁자, 그리고 옷장이 전부인 소박한(?) 방안이었다. 침상에는 거지가 누워 있었고, 의원으로 보이는 노인이 그를 진맥 하고 있었다.
 탁자 앞에는 남선미와 고 집사가 조용히 앉아 의원과 청년을 지켜보았다.
 남선미는 산발이 된 거지의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얼굴을 보가 그가 상당히 젊은 청년임을 알 수 있었다.
 ‘저렇게 젊은 청년이 왜 탈진으로 쓰러져 있었을까?’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거지 청년의 옷을 보았다.
 여기저기 찢기거나 구멍이 뚫린 흔적들이 가득했고, 거무스름한 얼룩이 짙게 묻어 있었다.
 남선미의 두 눈이 가늘게 변했다.
 가만히 보니 옷이 찢기거나 구멍이 뚫린 곳은 모두 인체의 중요한 요혈이었다. 어느 한 곳이라도 제대로 타격을 입으면 살아날 수가 없는 자리였다. 그런데 거지 청년의 피부에는 상처나 흉터가 전혀 없었다.
 상황을 유추해 보면 거지 청년은 무인이고, 험한 싸움을 치른 게 분명하다.
 ‘어떻게 된 거지? 최소한 상처나 흉터는 남아 있어야 하는 게 정상일 텐데.’
 그때, 의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거지 청년의 손목을 놓았다.
 “허! 이상한 일이로고.”
 남선미가 급히 물었다.
 “어떻습니까?”
 “제가 오십 년 평생 의원을 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환자의 경맥과 혈도가 막 생겨난 것처럼 약해요.”
 “예?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러니까…, 이거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환자의 경맥과 혈도는 막 태어난 아이처럼 가늘고 약합니다. 이런 몸으로 발이 부르트도록 걸었다는 사실이 신기해요.”
 “그럼 몸에 이상은 없다는 겁니까?”
 “일단은 그렇습니다. 기경팔맥 모두가 약하기는 하지만 제 기능을 하고 있으니 생활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당분간 격한 일을 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런데 한 가지…, 뇌맥이 다소 혼탁한 것 같은데…….”
 의원이 청년의 머리를 살폈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을 치우자 왼쪽 이마 부분에 희미한 상처가 보였다.
 의원이 그 상처를 손으로 만지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두개골에 굴곡이 느껴졌던 것이다.
 “두개골이 파일 정도로 큰 상처를 입은 흔적이 있군요. 허! 이런 상처라면 살기 힘들었을 텐데……. 아마 뇌맥이 혼탁한 건 이 상처 때문일 겁니다.”
 남선미가 거지 청년의 이마를 직접 만져보고는 의원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
 두개골이 함몰될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면 그 내부는 곤죽이 되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피부에 희미한 흔적만 남아 있고, 또 함몰된 두개골도 단단하게 아물어 있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거지 청년의 상태였다.
 “일단 침부터 놓겠습니다. 그래서 원기를 북돋운 후에 환자가 깨어나면 미음을 먹이십시오. 그리고 어느 정도 몸을 회복하면 보약이라도 한재 지어 먹이면…….”
 “됐네.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침이나 놓아주게.”
 의원이 쓴 입맛을 다시며 고 집사를 쳐다보았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양반 같으니…….’
 의원은 속으로 고 집사를 욕하며 침을 놓았다.
 잠시 후, 치료를 끝낸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 집사가 그에게 은자 한 냥을 내밀었다.
 의원이 미간을 찌푸리며 뭐라 말하려다가 고집스러운 고 집사의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은자를 받아들고 방을 나갔다.
 
 ***
 
 거지 청년이 정신을 차린 건 의원이 다녀간 지 하루가 지난 후였다.
 “음…, 여긴…….”
 그가 주변을 둘러보다가 뭔가 골똘히 생각했다.
 ‘길을 걷다가 갑자기 쓰러진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이지? 나는…….’
 거지 청년은 자신이 처한 상황, 그리고 그 전의 일들을 떠올렸다.
 그러자 은은한 두통이 일어났다.
 ‘신강에 있는 동굴에서 나와 무작정 걷다가 섬서성으로 들어섰는데……. 내가 왜 신강에 있었지? 그리고 나는…….’
 거지 청년이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격심한 두통이 생겼고, 떠오르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이름조차도.
 “으음!”
 그가 가느다란 신음성을 흘리자 누군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열 살을 갓 넘은 아들 두 명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얼굴이 똑같이 생겼다. 쌍둥이였다.
 그들은 바로 남가장의 막내 제자들인 왕일, 왕이 형제였다.
 그래도 쌍둥이들 중 한 명의 얼굴에 작은 점이 있어서 구분은 가능했다. 왼쪽 눈가에 점이 있는 아이가 왕일, 그리고 없는 아이가 왕이였다.
 왕일이 눈을 크게 뜨고는 물었다.
 “아저씨. 괜찮아요?”
 거지 청년이 그들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래. 괜찮다. 그런데 여긴 어디지? 내가 어떻게 여기 누워 있는 거지?”
 왕일이 상황을 모두 설명해주었다.
 거지 청년이 ‘아!’하는 탄성을 흘렸다.
 상거지 차림의 자신을 장원 안으로 데려와 준 것만도 고마운데, 의원까지 불러주었다고 한다.
 그동안 먼 길을 걸어오면서 세상의 야박한 인심을 모두 경험했던 거지 청년으로서는 남가장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 이를 데가 없었다.
 “정말 고맙구나.”
 “고맙긴요. 당연히 그래야죠. 헤헤헤.”
 거지 청년은 이 쌍둥이 형제들의 심성도 무척 곱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왕이가 급히 밖으로 뛰어나가더니 잠시 후, 쟁반에 미음 그릇을 담아 왔다.
 “이거라도 좀 드세요.”
 “아, 그래.”
 거지 청년이 몸을 일으키더니 미음을 조금씩 떠먹었다.
 온 몸에 힘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미음을 떠먹는 일도 그에게는 무척 힘들었다.
 간신히 미음을 비운 거지 청년이 다시 침대에 몸을 뉘었다.
 “휴우!”
 “어때요 힘이 좀 나세요?”
 “그, 그래. 고맙다.”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세요? 어쩌다가 그런 모습으로 쓰러지셨어요?”
 “그건…….”
 거지 청년이 설명을 하려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휴우! 나도 잘 모르겠구나.”
 “아! 역시…….”
 “역시라니? 뭔가 아는 거라도 있어?”
 “의원님이 진맥을 하시고는 아저씨의 뇌맥이 혼탁하시데요. 그리고 왼쪽 이마에 큰 상처가 있다고 하셨어요. 그 때문에 정신이 정상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거든요.”
 “머리에 상처가 있다고?”
 거지 청년이 손을 들어 자신의 왼쪽 이마를 만졌다.
 움푹 들어갔던 두개골이 많이 올라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굴곡이 느껴졌다.
 ‘머리를 어떻게 다쳤더라…….’
 거지 청년이 뭔가 떠올리려다가 갑자기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붉은빛 덩어리가 먼 공간에서 나타났다가 눈앞으로 확 날아왔던 것이다.
 거지 청년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려다가 벽에 등을 부딪쳤다.
 쿵!
 그러자 붉은빛 덩어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환상이었던 모양이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그, 그래. 괜찮다.”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푹 주무세요. 그럼 좀 나아지실 거예요.”
 그렇지 않아도 쓰러지고 싶을 만큼 피로가 몰려왔다.
 거지 청년이 침상에 몸을 누이고는 눈을 감았다.
 이내 수마가 찾아왔다.
 “그런데 아저씨 이름은 뭐예요?”
 그때까지 조용히 있던 왕이가 물었다.
 거지 청년이 잠결에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유성…….”
 거지 청년은 그 말을 끝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쌍둥이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유성?”
 “유성이래. 이름인가봐.”
 “가주 누님에게 가서 알려드리자.”
 “그래.”
 쌍둥이들은 곧바로 방을 나갔다.
 
 ***
 
 거지 청년이 다시 정신을 차린 건 반나절 뒤, 저녁 무렵이었다.
 그가 인기척을 내자 이번에도 쌍둥이 형제가 방문을 열고 고개를 빠끔 내밀었다.
 “아저씨. 일어나셨어요?”
 “그, 그래.”
 “잠깐만 기다리세요.”
 쌍둥이 형제들이 문을 닫고 사라지더니 잠시 후, 미음 그릇을 쟁반에 담아 왔다.
 거지 청년이 미음을 모두 비우고 나자 두 사람이 더 들어왔다.
 한 사람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아름다운 소저였고, 또 한 사람은 완고한 표정의 노인이었다.
 왕일이 미음 그릇을 받아들더니 말했다.
 “우리 가주 누님…, 아니 가주님이세요. 그리고 이쪽은 집사님이시구요.”
 거지 청년이 ‘아!’하는 표정을 짓더니 머리를 숙였다.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남선미가 이채를 띠었다. 거지 청년의 말투나 몸가짐을 보니 예의범절을 제대로 배운 사람이 분명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예. 덕분에…….”
 고 집사가 그때 나섰다.
 “자네는 누군가? 어쩌다가 우리 남가장 앞에서 사경을 헤매게 되었는가?”
 “그게……. 잘 모르겠습니다. 무작정 걷다가 힘이 빠져서 쓰러진 것 같습니다.”
 “음! 정말 기억을 잃은 모양이로군. 쯧쯧! 그래도 이름은 기억하고 있어서 다행일세.”
 “예? 이름이라니요?”
 고 잡사가 ‘어떻게 된 거냐?’는 표정으로 왕일을 쳐다보았다.
 왕일이 급히 말했다.
 “분명히 들었어요. ‘유성’이라고……”
 ‘유성’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거지 청년이 흠칫 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머릿속에서 잡힐 듯 말 듯 한 뭔가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일어난 두통에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제가 이름을 말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왕일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저씨가 분명히 말했어요. 유성이라고요. 제가 동생과 함께 똑똑히 들었다니까요? 그렇지?”
 왕이도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쌍둥이들은 거짓말을 할 아이들이 아니다. 그들이 들었다면 분명히 들은 것이다.
 남선미가 말했다.
 “아마 부지불식간에 이름이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당분간 그렇게 부르도록 하지요.”
 거지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구명지은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남선미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더니 말했다.
 “몸을 회복하실 때까지 편히 쉬도록 하세요.”
 “예, 소저.”
 남선미가 방을 나가고 나자 고 집사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유성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회복 되는대로 떠나게. 알겠는가?”
 “예? 아, 예. 알겠습니다.”
 고 집사가 혀를 한 번 차더니 밖으로 나갔다.
 쌍둥이들이 방안에 남아 남가장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유성은 그들의 말을 듣다가 갑자기 밀려드는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쌍둥이 들은 그런 유성의 몸에 이불을 덮어준 후, 방을 나갔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유성은 잠에서 깨어나자 극심한 허기를 느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자 넓은 연무장이 보였다.
 그리고 연무장 한가운데에서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는 네 명의 제자들이 보였다.
 유성은 그들을 잠시 쳐다보다가 단상에 서 있는 남선미에게 시선을 옮겼다.
 남선미가 유성의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더니 머리를 살짝 끄덕였다.
 유성도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유성은 한창 수련을 하고 있는 쌍둥이들과도 눈을 마주쳤다.
 하지만 그들은 단단히 기합이 들어간 듯 정면만 주시한 채 수련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수련 중에는 조금도 한눈을 팔지 않는 게 습관이 된 듯했다.
 유성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남가장의 제자들이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원래 다른 문파의 무공을 훔쳐보는 건 무림에서 금기였지만, 유성은 아직 정신이 없는 상태라 거기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사실 남가장의 제자들이 수련하는 건 마보와 정권 찌르기 같은 기본공에 불과했기에, 지켜본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한동안 멍하니 수련 광경을 지켜보고 있자, 유성은 왠지 그 모습들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너무 오래 되어서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유성은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지 못한 채 서 있었다.
 마침내 아침 수련이 끝났고, 식사시간이 되었다.
 그제서야 쌍둥이 형제가 유성에게 아는 척을 했다.
 “유성 아저씨. 괜찮으세요?”
 유성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제자들이 유성에게 다가왔다.
 쌍둥이들이 사형들을 유성에게 소개했다.
 사형들의 이름은 마성주와 박동해였는데 각각 열다섯, 열여섯 살이었다.
 마성주는 매부리코에 눈이 작고 찢어져 있어 인상이 다소 날카로웠지만 박동해는 덩치도 크고 후덕해 보였다.
 박동해가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괜찮으십니까?”
 “덕분에 좋아졌네. 고맙네.”
 “기억은 차차 돌아올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유성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식사하러 가시죠. 아, 그런데 음식을 드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유성은 마음 같아서는 소라도 잡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내색은 하지 못했다.
 “괜찮을 것 같네.”
 “그럼, 어서 가시죠.”
 유성은 그들과 함께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은 긴 탁자가 줄지어 있어 수십 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을 만큼 넓었다.
 유성은 제자들과 함께 모여 앉아 기다렸다.
 잠시 후, 남선미가 고 집사와 함께 들어왔다.
 제자들일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성도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선미가 상석에 앉았고, 고 집사가 그 옆에 앉았다.
 그러자 제자들도 모두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하대고가 음식을 내어 와 상을 차렸다.
 소채 몇 가지와 멀건 국, 그리고 밥이 전부인 소박한(?) 상이었지만, 그래도 꽤 먹음직해 보였다.
 모두들 아침 수련을 하느라 배가 고팠을 텐데,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남선미가 제자들을 둘러본 후, 유성과 시선이 마주쳤다.
 “유 소협. 몸은 괜찮으십니까?”
 “예, 소저. 덕분에 많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요.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시고 빨리 기력을 회복하세요.”
 “예. 고맙습니다. 소저.”
 그때, 유성의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렸다.
 유성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고, 남선미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쌍둥이들이 ‘풋!’하는 소리와 함께 웃자 나머지 제자들도 일제히 큭큭거리며 웃었다.
 고 집사가 헛기침을 하며 눈을 부라렸다. 그러자 제자들 모두 ‘이크!’하는 표정을 짓더니 안색을 굳혔다.
 남선미가 수저를 들었다.
 “모두 배가 고플 테니 많이 먹도록 해라.”
 제자들이 일제히, ‘예!’하고 대답하더니, 수저를 들고 먹기 시작했다.
 유성은 쥐구멍이라도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지만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은 허기 때문에 도저히 참지 못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유성이 먹는 음식의 양이 엄청났다.
 대부분의 제자들이 두 그릇 정도의 밥을 먹었지만, 그는 다섯 그릇이나 먹고 나서야 수저를 내려놓았다.
 모두들 놀란 표정으로 유성을 쳐다보았고, 유성은 그제서야 자신의 추태(?)를 깨닫고 안색을 붉혔다.
 “쯧쯧쯧…….”
 고 집사가 혀를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유성을 쳐다보았다.
 “이거…, 죄송합니다.”
 남선미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오히려 다행이에요. 얼마든지 드세요.”
 “고맙습니다. 소저…….”
 남선미가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럼 반 시진 후에 다시 연무장에 모이도록 해라.”
 제자들이 일제히 대답하자 그녀는 고 집사와 함께 식당을 나갔다.
 유성은 한숨을 내쉬며 쓴 입맛을 다셨다.
 그렇게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남가장이 식구들은 유성에게 모두 잘해 주었다.
 둘째 제자인 마성주는 말을 별로 하지 않는 성격이고, 고 집사는 원래 유성을 못마땅하게 여겼기에 친해지지 못했지만 다른 제자들이나 하대고와는 꽤 가까워졌다.
 유성은 남가장의 분위기가 좋았다.
 고 집사의 눈치가 보이기는 했지만, 그곳을 떠나기 싫었다. 아니, 떠난다고 해도 어디 갈 곳도 없었다. 이름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그가 어디 가서 뭘 할 수 있겠는가.
 유성이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리고 나자 남선미가 그를 찾아왔다.
 “유 소협. 아직 기억나는 게 아무 것도 없으세요?”
 “예. 아직…….”
 “그럼 당분간 여기 머물도록 하세요.”
 불감청고소원이라.
 유성은 남선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에요. 아직 기운을 완전히 차린 것도 아니니 그때까지라도 머무세요.”
 “고맙습니다.”
 남선미가 가고 나자 고 집사가 들어왔다. 그런데 그의 손에는 빗자루가 들려 있었다.
 “받게.”
 유성이 얼떨결에 빗자루를 받아들고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뭘 하고 있는 겐가? 밥값은 해야지?”
 유성은 그제야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아, 예. 알겠습니다.”
 유성은 곧바로 빗자루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땀을 흘려가며 청소를 시작했다.
 연무장에서 제자들을 수련시키고 있던 남선미가 그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니, 뭘 하시려는 겁니까?”
 “예? 청소를 하려고…….”
 남선미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녀가 유성의 방에서 나오는 고 집사를 쳐다보았다.
 “고 집사. 손님에게 청소를 시키다니요!”
 고 집사가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 남가장에서 놀고먹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뭐라도 해야 합니다.”
 “그래도 유 소협은 손님입니다. 몸도 아직 낫지 않았어요.”
 “아무리 손님이라도 머무는 동안은 밥값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몸도 많이 회복 되었을 겁니다. 하루에 밥을 열다섯 그릇이나 먹어치우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큰 상처라도 다 나았을 테니까요.”
 고 집사의 말에 유성이 찔끔 하는 표정을 지었다.
 “소저. 저는 괜찮습니다. 운동도 할 겸 청소라도 하겠습니다. 그래야 저도 마음이 편합니다.”
 “어찌 손님에게 청소를 시킨단 말입니까.”
 “손님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고 집사님 말씀처럼 밥값을 한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유성이 이렇게까지 말을 하니 남선미도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그때, 고 집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소저가 뭔가? 가주님이라고 부르게.”
 “예? 아, 예. 앞으로는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유성은 남선미가 다시 뭐라 말하기 전에 재빨리 빗자루를 들고 뒤뜰로 향했다.
 “그럼 뒤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남선미가 묘한 표정으로 유성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뒤뜰로 간 유성은 청소를 시작했다.
 조금 무리를 하면 가슴에 은은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유성은 남가장에 머물게 되었다.
 
 
 2. 정착
 
 깊은 밤이었다.
 유성은 오늘 따라 잠이 오지 않아 방을 나갔다.
 넓은 연무장에 달빛이 내려앉아 푸르스름한 장막을 드리운 것 같았다.
 “하아!”
 유성이 가벼운 한숨을 토하며 연무장을 걸었다.
 초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남가장에 머문 지 엿새가 지났다.
 유성은 남가장의 생활이 만족스러웠다.
 제자들은 자신을 형님처럼, 하대고는 식객으로, 그리고 고 집사는 하인 대하듯 했다.
 그리고 남가장에서 가장 중요한 가주 남선미는 그를 소협이라 칭하며 무인으로 깍듯이 대했다.
 그러고 보면 유성은 남가장에서 무척 이상한 존재였다.
 손님도, 식객도, 하인도 아니니 말이다.
 유성은 그동안 기억을 되살려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럴 때면 머릿속에서 언뜻 기억의 파편들이 떠오르곤 했다. 그러나 이내 찾아온 두통이 그 파편을 깨끗이 쓸어가 버렸다.
 그래도 한 가지 얻은 건 있었다.
 ‘유성’이라는 이름이다.
 그게 정말 자신의 이름인지, 아니면 지명을 뜻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단지 밤하늘에 가끔 나타나는 별동별을 뜻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언젠가 이 ‘유성’이라는 이름이 신분을 찾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유성은 더 이상 기억을 되찾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그리고 어떤 계기를 맞게 되면 자연히 기억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복잡한 상념 속에서 유성은 어느덧 연무장을 한 바퀴 빙 돌아 장원 뒷마당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고, 정원 한 쪽에는 빈 공간이 있었다.
 만월 아래 드러난 정원은 무척 아름다웠다.
 지금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엉키고 흐트러진 곳이 많았지만, 어둠이 그런 것들은 모두 가려주었다.
 그때, 유성은 날카로운 파공음을 들었다.
 핏! 피비빗!
 정원 뒤쪽에 있는 공간에서 나는 소리였다.
 유성은 정원을 가로질러 갔다.
 “아!”
 그가 나지막한 탄성을 흘렸다.
 교교한 달빛 아래에서 검무를 추는 선녀가 그곳에 있었다.
 바로 남가장의 가주 남선미였다.
 그녀는 장검을 든 채 검무(劍舞)에 몰두해 있었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밤에는 뒷마당의 정원으로 가지 말라던 고 집사의 경고도 그 순간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유성은 남선미가 추는 검무에 빠져들었다.
 남선미의 검이 허공을 갈랐고, 그 때마다 검신이 푸르게 빛나며 달빛이 눈보라처럼 흩날렸다.
 한동안 이어지던 그녀의 검무는 이내 절정을 향해 치달렸다. 날카로운 파공음이 쉬지 않고 들려왔고, 남선미는 검광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비록 검기를 발현하지는 못했지만, 남선미의 나이가 아직 스물도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놀라운 성취였다.
 망아지경에 빠진 듯한 표정으로 남선미의 검무를 지켜보던 유성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검무가 어느 순간부터 왠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것이다. 마치 잘 맞아 돌아가고 있던 톱니바퀴가 엇박자를 내며 삐꺽거리는 듯했다.
 분명히 뭔가 달라졌다.
 ‘뭐가 문제이지?’
 유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쉬이잇!
 날카로운 파공음이 길게 울리더니 남선미의 검이 허공에 푸른 궤적을 남긴 후, 검집 속으로 사라졌다.
 “하아!”
 그녀의 입에서 가벼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남선미가 유성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유성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황급히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훔쳐보려 한 건 아닌데…….”
 남선미가 묘한 표정으로 유성을 쳐다보더니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괜찮습니다.”
 “예? 아, 예……. 그럼 전 이만.”
 유성이 그녀에게 머리를 살짝 숙여 보인 후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어땠나요?”
 유성은 흠칫 하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씀이신지…?”
 “제 검법이 어땠는지 묻는 거예요.”
 “제가 어떻게 그걸…….”
 “정말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셨나요?”
 유성이 뭐라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느낀 바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스스로도 알 수 없으니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남선미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유성을 쳐다보더니 말했다.
 “알았어요. 그만 들어가 보세요.”
 “예. 그럼 쉬십시오.”
 남선미는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지는 유성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기억을 잃기 전, 유 소협은 분명히 무인이었어. 그것도 상당한 고수가 분명했을 거다. 그렇지 않았다면 머리에 그처럼 큰 상처를 입고도 살아남을 수는 없었겠지.’
 남선미는 유성이 예전에 무공의 고수였음을 확신 했다. 그를 처음 발견했을 때 옷에 새겨진 자국이나 무인으로서의 감이 그렇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상거지 몰골로 나타난 유성을 깍듯이 ‘소협’이라고 칭하며 대접하는 건 이런 이유였다.
 남상미는 남가장의 가주다.
 그것도 남천오결의 완성과 남가장의 부흥이라는 막중한 임무가 그녀의 어깨에 지워져 있다.
 이 임무들은 둘인 듯 하지만 하나이고, 하나인 것 같지만 둘이기도 하다. 남천오결을 완성한다면 절정고수가 될 것이고, 남가장의 부흥은 자연히 따라올 테니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절정고수가 된다고 해서 반드시 가문, 혹은 문파를 부흥시킬 수 있는 건 아니다. 세력을 형성하고 일으키는 것에는 단순히 고수가 된다고 해서 이룰 수 없는 복잡한 배경이 깔려 있다.
 타 문파들과의 관계를 살펴야 하고 주변의 세력 구도를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덕을 쌓고 인망을 얻어 인재를 주위에 두어야만 한다.
 남선미는 남가장의 가주로서 항상 이 두 가지 일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녀는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항상 베풀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작은 일일지 몰라도, 언젠가 이렇게 베푼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인망이 되어 돌아오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유성을 받아들인 것도 그녀의 흉중에 있는 이런 계획의 일환이었다.
 자신의 짐작대로 유성이 무공의 고수이고, 언젠가 자신의 능력을 되찾는다면 남가장에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유성이 남가장에 머문 지 한 달이 되었다.
 이제 유성은 남가장의 일원이 되었다. 아직 ‘가족’이라고 할 정도로 깊은 관계를 맺지는 못했지만, 이런 상태로 계속 머물다 보면 언젠가는 그도 남가장의 사람이 될 터였다.
 유성의 일상은 단순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무를 해오거나 장작을 팬 후 남가장 주위를 청소한다. 청소를 마치면 새벽수련을 끝낸 제자들과 함께 아침식사를 한다.
 반 시진 가량 휴식을 취한 후, 오랫동안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해 무너지거나 부서진 장원의 여러 곳을 손보고 수리한다.
 다행히 유성은 손재주가 있었다. 기억을 잃기 전에 목수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유성의 손이 닿은 덕분에 흉물스럽게 버려져 있던 별채의 문과 창문, 비가 새는 지붕과 처마 등이 새 것처럼 고쳐졌다.
 패인 바닥에 반듯한 돌이 깔렸고, 정원 한쪽에 쓰레기장처럼 버려져 있던 지저분한 연못이 깨끗이 치워졌다.
 그래도 유성이 손봐야 할 것들은 널리고 널렸다. 워낙 규모가 큰 장원이고, 또 오랫동안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물어진 담벼락과 옆으로 기울어져 쓰러지기 직전의 창고는 아직 손을 댈 수 없었다. 그건 유성 혼자서 해내기에는 너무 어렵고 힘든 작업일 뿐 아니라 석공이나 장인의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했다.
 저녁 무렵이 되면 돈을 내고 무공을 배우는 수련생들이 찾아온다. 남가장의 무공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양 제일미인으로 알려진 남선미의 얼굴을 보는 게 목적이다.
 대부분이 젊은 청년들이었지만 혼기를 놓친 노총각들도 몇 있다.
 그들은 성가시다.
 간단한 수련조차 제대로 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게 건성이다. 애초에 무공이 아니라 남선미를 보는 게 목적이니 당연한 일이다.
 어떤 이들은 수련 도중에 남선미에게 노골적인 농을 걸어오기도 한다.
 그런 자들에게는 고 집사가 어김없이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친다.
 상황이 이렇지만 남선미는 항상 미소 띤 표정을 짓고 그들을 예로 대한다. 그들이 지불하는 은자는 남가장의 소중한 재원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남선미는 참으로 대단하고 냉철한 여인이다.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안다. 귀사대기를 날려도 시원치 않을 수련생에게도 웃음을 잃지 않으니 말이다.
 수련생들이 돌아가고 나면 저녁 식사를 한다.
 식사 후에는 자유시간이다.
 어디 가서 뭘 해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제자들은 계속해서 무공을 익힌다. 자신들의 방에서 운기행공을 하거나 연무장에 나와 목검이나 권장을 휘두르기도 한다.
 유성도 그때부터는 일을 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남가장 주변을 산책하거나, 하대고와 함께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보러 가기도 한다.
 이게 유성의 일상이다.
 유성이 하는 일은 평범했지만 남가장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무척 유용했다.
 제자들이 시간을 쪼개어 하던 허드렛일을 유성이 대신 해주었고, 따라서 제자들은 그 시간만큼 무공에 집중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가끔 귀찮은 일이 일어난다.
 매파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것이다.
 남선미는 아름다웠고, 몰락하기는 했지만 한때 함양을 좌지우지했던 남가장의 가주다.
 그녀와 혼인을 한다면 실속은 없지만 명분은 차릴 수 있다. 더구나 그녀의 미모는 없는 실속을 상쇄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러니 매파나 구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남선미는 그들에게 아직 혼인할 의사가 없음을 완곡히 밝혔다. 그러나 매파와 구애자들은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을 나무가 없다’는 속담을 근거로 끈질기게 남가장의 문턱을 드나들었다.
 남선미가 단칼에 그들의 제의를 끊어내지 않는 것도 문제다. 그녀에게 구애를 하는 자들은 함양에서 방구 꽤나 뀐다는 집안의 자재들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잘만 이용한다면 남가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니 남선미는 매파나 구애자들에게 항상 뜨뜻미지근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다소의 귀찮음을 대가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사라는 게 항상 의도나 계획대로만 흘러가는 건 아니다. 완벽하게 짜인 계획도 우연히 일어난 작은 파탄에 의해 망쳐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사람의 감정과 마음, 특히 피 끓는 젊은이들의 열렬한 감성을 정확히 예측하고 통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늘 남가장으로 뛰어든 청년은 이성을 완전히 상실한 모습이다.
 “남 소저! 소저!”
 청년은 한창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던 남선미 앞으로 고함을 지르며 달려가더니 그녀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소저! 소저를 연모한 지 벌써 일 년이 넘었소. 제발 나의 사랑을 받아주시오!”
 “조 공자님…….”
 남선미는 일순 당황했지만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와 태도로 그를 달랬다.
 “공자님. 아직은 제가 혼인을 할 처지가 아닙니다. 좀 더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어서 일어나세요. 이런 모습을 아버님께서 보신다면 뭐라 하시겠습니까?”
 조 공자의 부친은 포청의 종사관으로, 함양에서 손꼽히는 권력자다. 그런 사람이 자신의 아들이 여인 앞에 무릎을 꿇고 구애하는 모습을 본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넘어가리라.
 그러나 조 공자는 주먹을 꽉 거머쥐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관없소. 오늘은 꼭 대답을 들어야겠소. 제발 나와 혼인을 해주시오. 남 소저. 부탁이오!”
 “하아! 공자님. 이러시면 제가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어째서 제 마음은 헤아려주지 않으시고 공자님의 입장만 생각하신단 말입니까.”
 조 공자가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더니 품속에서 비수를 꺼내들었다.
 주위에 있던 제자들이 깜짝 놀라 저마다 소리쳤다.
 “저, 저런!”
 “조 공자님! 안 됩니다.”
 “가주님! 조심하세요.”
 평소의 조 공자는 무척 점잖은 사람이었다.
 남선미에게 열렬한 구애를 하면서도 예의를 잃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의 조 공자가 가슴 속에 쌓아두고 있었던 열정을 터뜨리자 그 누구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거셌다.
 조 공자는 비수를 천천히 들어 올리더니 자신의 목에 갖다 댔다.
 여기저기서 놀라움에 가득 찬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아!”
 “고, 공자님!”
 조 공자가 단호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남 소저가 나의 구애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오늘 이 자리에서 죽고 말겠소!”
 당황스럽고 난감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이다.
 그가 정말 자결이라도 한다면 종사관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유성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목숨을 걸고 여인의 사랑을 갈구하는 조 공자의 모습이 한심스럽기도 했지만,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사람이 사랑에 눈이 멀고 나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으니 말이다.
 유성은 남선미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쳐 나갈지, 기대 반 걱정 반의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남가장의 제자들이 조 공자를 설득하려 했고, 고 집사와 하대고까지 나와서 합세했다.
 “공자님. 어서 비수를 치우십시오.”
 “공자님. 그만 두세요.”
 그러나 조 공자는 그들의 목소리가 전혀 귀에 들리지 않는다는 듯 굳은 표정으로 남선미만 노려볼 뿐이었다.
 그때 대문이 벌컥 열리더니 종복으로 보이는 사내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그는 조 공자의 노복으로 함께 산책을 나왔다가 갑자기 조 공자가 사라지자 여기저기를 찾아보다가 남가장으로 달려왔던 것이다.
 “아이고, 공자님!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왜 공자님께서 칼을 들고 이러십니까?”
 종복이 그에게 다가가려 하자 조 공자가 소리쳤다.
 “이놈! 물러가거라!”
 “공자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나리와 마님을 생각하셔야지요!”
 “오늘 내가 이 자리에서 죽거든 아버님과 어머님께 아뢰어라. 불초 조천기는…….”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선미가 소리쳤다.
 “모두들 조용히 하세요!”
 공력이 실린 그녀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모두들 깜작 놀라서 입을 다물었고, 조 공자도 움찔거리다가 비수가 목을 살짝 파고 들어가 상처를 냈다.
 남선미가 굳은 표정으로 조 공자를 쳐다보았다.
 “정말 그런 각오이십니까?”
 “예…, 예?”
 “정말 저를 얻기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십니까?”
 “그, 그렇소. 소저를 얻지 못하면 오늘 이 자리에서 죽을 참이오.”
 “좋습니다. 그럼 공자님 뜻대로 하십시오.”
 “알겠…, 예? 방금 뭐라고 하셨소?”
 “공자님 뜻대로 하시라고 했습니다. 정말 공자님께서 목숨을 걸고 저를 얻고자 하신다면 그 증거를 보여 달란 말입니다.”
 조 공자는 물론 모두들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남선미가 다시 말했다.
 “저를 얻으시겠다면 그 비수로 자결을 하십시오.”
 그녀의 말이 충격파가 되어 주변 사람들을 휩쓸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오?”
 “공자님께서 오늘 자결을 하신다면, 저는 평생 공자님을 낭군으로 여기고 수절하며 살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증인입니다.”
 그녀가 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선언하듯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이 약속을 어긴다면 죽어서 십팔 층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 받을 겁니다.”
 남선미는 남가장의 가주다. 따라서 그녀의 약속은 남가장의 약속이다. 아무리 몰락한 가문의 가주라 해도 한 번 내뱉은 말을 지키지 못한다면 그녀는 물론 남가장은 완전히 신의를 잃고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말에 조 공자는 물론 모든 사람들이 입을 딱 벌렸다.
 하지만 유성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하구나. 정말 보통이 아니야. 저런 방법을 생각해 내다니…….’
 조 공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선미를 쳐다보았다.
 남선미가 천천히 조 공자에게 다가갔다.
 “그 비수를 목에 찔러 넣으실 수 있나요? 그럼 전 공자님 거예요.”
 조 공자의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조 공자가 쥐고 있던 비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헉!”
 조 공자가 헛바람을 집어삼키더니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그녀를 귀신 쳐다보듯 했다.
 “저, 저리 가시오!”
 “공자님. 왜 그러시죠? 저를 갖고 싶지 않습니까?”
 “나, 나는…….”
 조 공자가 온 몸을 부르르 떨더니 결국 비수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땡그랑!
 “으으…….”
 남선미의 표정이 사늘하게 변했다.
 그녀가 몸을 일으키더니 조 공자를 내려다보았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세요.”
 조 공자는 주저앉은 채로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쳤다.
 “공자님! 공자님!”
 종복이 조 공자의 뒤를 쫓아가며 그를 소리쳐 불렀다.
 두 사람이 남가장의 대문을 나가 사라지자 남선미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천천히 단상을 향해 걸어갔다.
 모두들 뜨악한 표정으로 남선미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꽤 강단이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남선미는 단상위에 올라가더니 모두를 내려다보고 소리쳤다.
 “뭘 하고 있어! 마보와 찌르기 삼백 회, 실시!”
 제자들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조금 전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련은 시작되었다.
 하앗! 핫!
 제자들의 기합소리가 한층 커졌다.
 연무장 한쪽에 서 있던 유성이 나지막한 탄성을 흘리며 남선미를 바라보았다.
 겉보기에는 가냘프고 연약해 보였지만, 그녀의 굳은 표정에서 강인한 힘이 느껴졌다.
 ‘힘이라…….’
 ‘힘’ 하면 떠오르는 건 무공이다. 무림에서는 무공이 얼마나 강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평가한다. 인망, 덕망, 협의지심 등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그걸 받쳐주는 무공이 없으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이상하게도 유성은 여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진짜 힘은 다른 곳에 있어. 그런데 그곳이 어디더라…?’
 유성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은은한 두통과 함께 머릿속에서 뭔가 떠오를 듯 말 듯 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 인간의 내면.
 마치 머릿속에서 누군가 숨어서 속삭이는 것 같았다.
 유성이 두 눈을 번쩍 떴다.
 “정말 강한 힘을 갖춘 무공, 그건 인간의 내면에서 나오지.”
 왜,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말을 기점으로 다른 뭔가가 더 생각나려고 했다.
 ‘인간의 내면에서 나온 진짜 강한 무공들이 있다. 그건 바로…….’
 유성은 머릿속에서 뭔가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보게.”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유성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짙은 아쉬움이 순간적으로 느껴졌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집사님.”
 “대문 앞에도 소금이나 좀 뿌리게. 다시는 저런 자들이 찾아오지 않게 말이야.”
 “그러죠.”
 유성이 가볍게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3. 난감한 구혼
 
 “하아!”
 맑은 아침공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이마에서 흐르는 구슬땀을 시원하게 씻어주었다.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하얀 눈 천지가 된 산에 오른 유성은 상쾌한 마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겨울 산은 아름답다.
 앙상한 가지에 쌓인 눈을 바라보는 것도, 얼어붙은 냇물이 수정처럼 맑은 빛을 띠는 모습도 좋았다.
 유성은 잠시 겨울 산의 정취를 즐기다가 평평한 바위 위에 가부좌를 하고 앉았다.
 그는 두 손을 무릎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무인이 내공을 수련하는 자세다.
 하지만 유성은 내공을 수련하지 않았다. 단지 이 자세가 편하고, 또 오랫동안 해왔던 것처럼 안정감을 주기 때문에 취했을 뿐이었다.
 ‘내가 무인이었을까?’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자세에서 편안함을 느낄 리가 없다.
 유성이 뭔가 떠올려보려고 하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괜한 두통을 일으켜 겨울 산의 정취를 흩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유성은 마음을 풀었다.
 점차 시간이 흐르자 ‘나’라는 존재가 흩어져 ‘자아’가 희미해졌다.
 유성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생각들을 조용히 관조하며 깊은 명상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유성은 조금도 추위를 타지 않는 것 같았다.
 무공을 익히지도 않은 사람이 겨울 산의 바위 위에서 차가운 바람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 유성의 모습은 보통 사람의 범주에서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는 마치 ‘추위’라는 현실과는 전혀 동떨어진 존재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긴 한숨과 함께 유성이 눈을 떴다.
 “후우!”
 아침 해가 정면에서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시간이 됐군.”
 유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 몸에서 힘이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팔을 들어 어깨를 휘휘 돌리고, 제 자리에서 몇 차례 뛰어오르기도 했다.
 아프거나 결리는 부분이 전혀 없었다. 약해진 경맥들도 다시 튼튼해졌는지 항상 뻐근했던 가슴의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유성은 자신의 몸 상태가 거의 ‘완벽’해졌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무공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성의 머릿속에는 무공에 대한 지식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원래 무인이 아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머리를 심하게 다치면서 무공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잃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남선미는 유성이 무인이었을 것이라 짐작했고, 그가 빨리 예전의 기억을 되찾기를 바랐다. 때문에 의식적으로 유성과 무공에 대한 대화를 자주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노력은 아직까지 전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유성은 무공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다.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주로 자연의 아름다움이었다.
 항상 이른 아침에 산에 올라 경관을 즐기고 바위 위에 올라 앉아 명상에 잠기는 게 그의 낙이었다.
 남가장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유성은 청소를 하다가도 문득 어느 한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경우가 잦았다. 온 마음이 사로잡힌 표정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가 바라보는 것들은 천차만별이었다.
 무너진 담장의 일각이기도 했고, 돌바닥 사이를 뚫고 올라온 잡초이기도 했으며, 심지어 땅바닥에 드리워진 나무 그림자이기도 했다.
 도대체 그런 것들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도통 모를 일이다.
 남가장의 식구들은 그런 유성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선미도 의아함을 느꼈지만 거기에 대해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한 번은 남선미를 제외한 남가장의 식구들이 모여 멍한 표정으로 처마를 올려다보고 있는 유성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작은 개미나 풀벌레를 발견했기 때문일 거예요.”
 “맞아. 우리들도 가끔 개미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 재미있거든요?”
 쌍둥이들의 말이었다.
 평소 말이 거의 없는 마성주가 냉소를 치더니 어깨를 으쓱 했다.
 그러자 대사형 탁동해가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유성 형님은 평범한 사람들이 사물에서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지도 몰라.”
 모두들 ‘저게 무슨 말인가?’하는 표정으로 탁동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탁동해가 헛기침을 하더니 뭔가 안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관학원의 원주님께 물어봤는데, 그런 걸 심미안(審美眼)이라 하더라고.”
 그의 말에 쌍둥이들이 ‘오오!’하는 표정으로 탄성을 흘렸다.
 그러자 곁에 있던 고 집사가 콧방귀를 꼈다.
 “심미안? 개 풀 뜯어먹는 소리 하고 있네. 일 하기가 힘드니까 꾀를 부리는 게 분명해. 아니면 정신이 오락가락 하던지.”
 하대고가 고 집사의 말을 받았다.
 “내가 전에 아궁이에서 타오르는 불을 한참동안이나 들여다보던 그에게 물어봤어. 왜 그런 표정으로 아궁이를 들여다보느냐고 말이야. 그러자 그가 대답했지.”
 모두가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하대고를 쳐다보았다.
 하대고가 짐짓 근엄한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장작이 잘 타나 보려고요’라더군. 호호호.”
 뭔가 잔뜩 기대하고 있던 제자들이 실망스럽다는 듯 ‘에이’라고 외쳤다.
 고 집사는 짐작했다는 듯 피식 웃고 말았다.
 유성은 쌍둥이들에게는 친근한 형님, 마성주에게는 관심 밖의 타인, 탁동해에게는 뭔가 숨기고 있을 것 같은 기인(奇人), 고 집사에게는 꾀부리기를 좋아하는 한심한 백수건달, 그리고 하대고에게는 사근사근하고 친절한 동네 총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정작 유성 자신은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별다른 관심이 없었고,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할 뿐이었다.
 
 ***
 
 꽝꽝꽝!
 “계시오?”
 갑자기 대문 밖에서 들려온 우렁찬 목소리가 남가장을 울렸다.
 어지간해서는 수련 도중에 눈동자조차 움직이지 않는 제자들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릴 정도로 그 목소리는 컸다.
 남선미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문을 쳐다보았고, 그때 고 집사가 급히 방에서 나오더니 대문을 열어주었다.
 고 집사의 눈이 커졌다.
 커다란 대도를 허리에 찬 키 크고 장대한 체격의 사내가 대문 밖에 서 있었던 것이다.
 고 집사는 사내가 허리에 차고 있는 커다란 대도를 슬쩍 보고는 물었다.
 “어떻게 오셨소?”
 장대한 체격의 사내가 고 집사를 힐끗 내려다보더니 말했다.
 “금도문에서 온 곽충이라고 하오. 가주는 계시오?”
 “그, 금도문이라 하셨소?”
 “그렇소.”
 금도문은 귀룡방과 더불어 함양을 양분하고 있는 이대문파 중 하나다. 그곳에서 온 사람이라면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더구나 곽충은 금도문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수로 고 집사도 익히 이름을 들어보았다.
 고 집사가 고개를 돌려 남선미를 쳐다보았다.
 남선미가 고개를 끄덕이자 고 집사가 길을 열어주었다.
 “들어오시오.”
 금도문의 곽충이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남가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연무에서 한창 수련을 하고 있는 제자들을 지나쳐 남선미에게 곧장 다가가더니 포권을 했다.
 “금도문의 곽충입니다. 남 가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남선미도 단상에서 내려오더니 그에게 포권을 했다.
 “어서 오세요, 표풍도(飄風刀) 곽 대협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아닙니다. 간단히 서신만 전하고 돌아가겠습니다.”
 그가 품속에서 서신 하나를 꺼내 남선미에게 내밀었다.
 남선미가 서신을 받아들자 그가 머리를 살짝 숙이더니 말했다.
 “그럼 대답을 기다리겠습니다.”
 “예? 아, 예.”
 남선미는 얼떨결에 그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표풍도 곽충은 그 길로 뚜벅뚜벅 걸어서 남가장을 나가더니 이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남선미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 집사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이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금도문이라도 그렇지, 용무를 밝히지도 않고 서신 한 장만 달랑 전하고 가버리다니 말입니다.”
 남선미가 굳은 표정으로 봉투를 열어 서신을 꺼내 읽었다.
 그녀의 안색이 다소 붉어졌다.
 당혹감과 분노가 어우러진 표정이다.
 고 집사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가주님. 무슨 내용입니까?”
 남선미는 아무 말 없이 서신을 고 집사에게 내밀었다.
 고 집사가 재빨리 서신을 받아 읽더니 이내 노성을 터뜨렸다.
 “이런 법이 어디 있나! 혼담을 달랑 서신 한 장으로 논하려 하다니!”
 고 집사의 말에 제자들도 분노하며 서신을 무시해야 한다, 사람을 보내 따져야 한다고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그러나 남선미는 입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고 집사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불렀다.
 “가주님. 뭐라 말씀을 좀 해보십시오.”
 남선미가 고개를 가로젓더니 제자들에게 소리쳤다.
 “어서 수련하지 않고 뭘 하고 있어!”
 제자들은 노기 어린 남선미의 표정을 보고 급히 자세를 잡았고, 고 집사도 더 이상 뭐라 말하지 못했다.
 남선미는 제자들의 수련모습을 지켜보며 내심 분노를 삭였다.
 금도문은 함양 이대문파의 하나다. 그들이 지닌 힘은 지금의 남가장이 열, 아니 백이 있어도 당하지 못할 정도다.
 그런 금도문에서 사람을 보내 혼담을 논하려 했다.
 얼핏 생각한다면 남선미의 입장에서는 얼씨구나 하고 혼담을 받아들이는 게 옳다. 금도문주의 며느리가 되면 그들의 힘을 빌려 남가장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여길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세상에 공짜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도움을 주고받는 것도 비슷한 힘을 가졌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움을 받는 쪽이 빚을 지게 된다.
 남가장과 금도문의 관계도 그렇다.
 만약 남선미가 금도문의 며느리가 되면 남가장이 그들의 힘을 빌려 부흥할 가능성보다는 금도문에 소리 소문 없이 흡수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남가장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노심초사 하는 남선미가 이런 도리를 모를 리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금도문의 혼담 제의를 무시할 수만은 없다. 어떻게든 답을 주어야 한다. 금도문이 남가장을 무시할 수는 있어도 남가장은 그럴 수 없는 게 현실이고, 힘의 논리가 그러하다.
 제자들의 수련이 끝나자 남선미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장문의 서신을 썼다. 금도문의 혼담제의를 정중하게 거절하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아침, 남선미는 고 집사에게 서신을 주어 금도문에 전하도록 했다.
 금도문에 갔던 고 집사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말이 아니다.
 남선미가 그에게 물었다.
 “서신은 전해 줬나요?”
 “예, 가주.”
 “그런데 표정이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그냥 속이 좀 거북해서……. 전 들어가서 좀 쉬겠습니다.”
 꼬장꼬장하고 괄괄한 성격의 고 집사가 이처럼 침울한 표정을 짓는 일은 드물었다.
 남선미는 그에게 뭐라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혼담 제의를 당연히 받아들일 것이라 믿고 있던 금도문이 거절 서신을 받고 고운 반응을 보였을 리가 없다.
 남선미는 고 집사의 표정을 보고 그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한창 수련을 하고 있던 제자들 중 쌍둥이 왕일이 그녀에게 물었다.
 “가주 누나. 고 집사님이 왜 저러실까요?”
 탁동해가 한숨을 내쉬며 대신 대답했다.
 “서신을 전해주며 모욕을 크게 당하신 모양이다. 모른 척 해라.”
 왕일이 입을 삐쭉이며 풀 죽은 표정을 지었다.
 남선미가 축 처진 고 집사의 어깨를 보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요, 고 집사.’
 그녀는 고 집사가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지켜보다가 제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어! 어서 수련하지 않고.”
 제자들이 급히 자세를 잡고는 기합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
 
 다음날 아침.
 여느 때처럼 힘찬 하루가 시작되었다.
 유성은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왔고, 제자들은 아침 수련을 마쳤다.
 모두들 식당에 모여 식사를 했지만 고 집사는 여전히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때문에 항상 즐겁던 식사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다.
 하대고가 죽을 쑤어서는 쟁반에 담았다.
 고 집사에게 가져다주기 위해서였다.
 “쯧쯧쯧, 도대체 금도문에서 무슨 소리를 들었기에 그 괄괄한 양반이 밥도 안 먹고 두문불출인지 모르겠네.”
 하대고의 말에 남선미는 모두들 입맛을 잃었는지 음식을 깨작거렸다.
 한 번에 밥을 너덧 그릇은 먹어치우던 유성도 두 그릇을 비우고는 수저를 놓았다.
 남선미가 가장 먼저 일어나 자리를 떴고, 나머지 제자들과 유성도 그녀의 뒤를 이어 식당을 나왔다.
 그때, 누군가 남가장의 대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계시오?”
 고 집사 대신 탁동해가 급히 대문으로 뛰어가더니 문을 열었다.
 키가 크고 비쩍 마른 사내가 대문 앞에 서 있었다.
 허리에는 검을 찼고, 얼굴에는 흉터가 가득해 상당히 험악해 보이는 인상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탁동해에게 대뜸 하대를 했다.
 “가주를 만나러 왔다. 고하거라.”
 어지간한 일로는 큰 소리 한번 지른 적이 없는 탁동해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노기가 스쳤다.
 그렇지 않아도 고 집사의 일 때문에 분위기가 좋지 않은데, 낯선 사람으로부터 하인 취급을 당하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누구십니까? 신원부터 밝히십시오!”
 사내가 미간을 좁혔다. 그러자 그의 얼굴에 있는 흉터들이 이지러지며 한결 험악해 보였다.
 “나는 귀룡방에서 온 염상천이다. 됐느냐?”
 “귀, 귀룡방의 날수혈검…….”
 날수혈검(辣手血劍) 염상천.
 별호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잔혹하고 매운 손속으로 유명한 귀룡방의 고수다.
 하루걸러 금도문과 귀룡방의 고수가 찾아오니 탁동해로서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가주님께 고하겠습니다.”
 탁동해가 가주에게 고하러 간 사이 염상천도 그냥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원래는 주인의 허락을 얻은 후에 들어오는 게 예의였지만 그의 발걸음에는 조금도 거침이 없었다.
 곧이어 남선미가 자신의 방에서 나왔다.
 염상천이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가볍게 포권을 했다.
 “귀룡방의 염상천이오.”
 일가의 가주를 대하는 것 치고는 다소 무례한 태도였지만 남선미도 그에게 포권을 했다.
 “남가장의 가주 남선미예요. 어서 오세요.”
 “방주님의 말씀을 전하러 왔소이다.”
 “일단 안으로 드시죠.”
 “괜찮소. 그냥 전하고 가겠소.”
 남선미는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꾹 참고 말했다.
 “말씀 하세요.”
 “본 방의 이 공자님이 가주와 혼례를 올렸으면 좋겠다고 방주님께서 말씀 하셨소. 하여, 며칠 내로 사주단자를 교환하고 달포 내에 혼례를 올렸으면 하오.”
 그의 말에 모두들 얼굴이 붉게 변했다.
 일방적이어도 이렇게 일방적일 수는 없었다.
 이건 혼담제의가 아니라 명령이나 마찬가지였다.
 남선미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분노를 삼킨 후 조용히 대답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어찌 인륜지 대사인 혼사를 이렇게 진행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아직 저는 혼인에 뜻이 없고, 또 부족함도 많으니 이 공자님의 배필이 되는 건 어렵겠습니다. 방주님께 그리 전해 주십시오.”
 염상천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가주는 지금 본 방의 혼담제의를 거절하는 것이오?”
 “귀방의 방주님께서 저를 어여쁘게 보아 주신 점은 감사하나 혼담 제의에는 따를 수 없으니 양해해 달라고 전해 주세요.”
 염상천의 얼굴에 서리가 내려앉은 것처럼 냉막하게 변했다.
 “가주. 한 번 더 생각하시오. 본방의 이 공자님과 혼례를 올린다면 여러 모로 가주에게 이익일 것이오.”
 “혼사에 어찌 이익을 따진답니까. 저는 그럴 생각이 없으니 이만 돌아가 주세요.”
 염상천이 남선미를 잠시 노려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회할 것이오.”
 “후회를 해도 제가 하는 것이니 그 점은 신경 쓰실 필요가 없어요.”
 “좋소. 방주님께 그렇게 전하겠소.”
 염상천은 인사도 하지 않고 그대로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가버렸다.
 방문 밖으로 상반신을 내민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고 집사가 이를 갈며 뛰어나왔다.
 “저런 무뢰배 같은 놈…….”
 “고 집사.”
 “예, 가주님.”
 “아무래도 이상해요. 금도문과 귀룡방이 하루를 걸러 혼담을 제의해 오다니 말이에요.”
 “음. 그러게 말입니다. 뭔가 곡절이 있을 듯합니다.”
 “한 번 알아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고 집사는 그길로 밖으로 나갔다.
 
 ***
 
 고 집사가 다시 남가장으로 돌아온 건 그날 저녁이었다.
 남선미가 가주의 집무실에서 집사를 만났다.
 “가주님. 다녀왔습니다.”
 “수고 하셨어요. 사정은 알아 보셨어요?”
 “휴우!”
 고 집사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그러세요, 고 집사?”
 “말씀도 마십시오. 어휴! 이놈들이 우리 남가장을 뭘로 보고……. 제가 여기저기 사정을 알아보다가 목을 축이러 금성루(金星樓)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진월장의 장 공자를 만났습니다.”
 “장 공자를요?”
 “예. 장 공자는 이미 술을 많이 마신 듯 꽤 취해 있었는데, 저를 보더니 크게 실망한 표정으로 대뜸 묻더군요. 가주님께서 금도문과 귀월방 중에서 어디로 시집을 가기로 했느냐고 말입니다. 저는 깜작 놀라서 그게 무슨 소리냐고 여쭈었죠. 그랬더니 장 공자가 오히려 의아한 표정을 짓더군요. 금도문과 귀룡방에서 매파가 가지 않았느냐고요.”
 “그래서요?”
 “매파는 아니지만 혼담은 들어왔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장 공자가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 홍화루(紅花樓)에 술을 마시러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금도문주와 귀룡방주를 보았답니다.”
 “아니, 금도문주와 귀룡방주가 함께 술을 마셨단 말입니까?”
 “그건 아니랍니다. 둘 다 따로 왔는데 우연히 마주쳤다고 합니다. 어쨌든 사이가 좋지 않은 두 문파의 주인들이 같은 장소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언쟁이 벌어졌답니다. 그러다가…….”
 한동안 이어진 고 집사의 말이 끝나자 남선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 집사의 말에 따르면 금도문주와 귀룡방주가 언쟁을 벌이다가 자식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서 자존심 싸움이 붙어 자식들 중 누가 함양 최고의 미인과 혼인을 하는지 내기를 걸었다는 것이다.
 함양 최고의 미인은 당연히 남가장주인 남선미였고, 그래서 두 문파에서 거의 동시에 남가장에 혼담을 제의하게 되었던 것이다.
 남선미는 한동안 화를 삭이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두 문파의 주인이 자존심을 건 내기를 했다면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결코 물러나려 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아무래도 복잡하게 되었군요.”
 “복잡할 게 뭐가 있습니까? 이미 혼담은 깨끗이 거절했으니 그들도 더 이상 귀찮게 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두 문파의 주인들은 항상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죠. 그러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내기에서 이겨 상대의 자존심을 뭉개려 할 겁니다.”
 “예? 그럼 그들이 다시 혼담을 제의 할 거란 말입니까?”
 “아마 그럴 거예요.”
 “가주님.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음이 흔들리셔서는 안 됩니다.”
 “걱정 마세요. 전 아직 혼인을 할 마음이 전혀 없으니까요. 하지만 걱정스럽군요. 그들이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녀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음날 늦은 아침, 혼담제의가 있었던 금도문의 삼공자가 사형제들 다섯 명을 거느리고 남가장을 찾아왔다.
 모두들 기세등등한 모습이었는데, 그들 중에는 함양에서 이름만 대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후기지수도 있었다.
 남가장의 제자들은 그들의 모습에 기가 질려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금도문의 삼공자는 꽤 훤칠하게 생겼다.
 비단 옷에 홍옥을 박은 영웅건을 이마에 둘렀고 눈빛도 상당히 날카로웠다. 그러나 입술이 가늘고 입 꼬리가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가 있어 자존심이 상당히 강하고 오만하게 느껴졌다.
 금도문 삼공자, 옥호도(玉虎刀) 차재강이 눈을 살짝 내리깐 채 남선미와 마주섰다.
 “실례하오. 금도문의 차재강이오.”
 “어서 오세요. 남가장의 남선미예요. 대명은 익히 들었어요.”
 “소문대로 대단한 미인이시오. 오늘 내 눈이 큰 호강을 하는 것 같소이다.”
 “과찬의 말씀이세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두 사람은 가주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탁자를 마주하고 앉은 두 사람은 잠시 어색한 침묵을 지켰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차재강이었다.
 “여인 된 몸으로 남가장을 이끌어 가시느라 무척 힘이 드시겠소.”
 “가솔들이 저를 잘 따르니 크게 힘든 점은 없어요.”
 “이 넓은 남가장을 몇 명 되지 않은 가솔들만으로 지키기에는 어렵지 않소?”
 “도둑이 들어봐야 가져갈 물건도 없으니 지킬 필요도 없어요.”
 “음! 선친께서 물려주신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니 여러 가지로 고충이 많겠소.”
 “제자들도 열심히 수련을 하고 있으니 조만간 가세를 일으킬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허! 소저의 성격은 무척 낙관적이시구려. 그 점도 마음에 드오.”
 “차 공자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드려요.”
 “소저도…….”
 “가주라 불러주세요.”
 “음! 좋소. 가주도 이제 혼기가 찾으니 반려자를 찾아봐야 하지 않겠소?”
 “때가 되면 나타나겠지요.”
 “내가 그 반려자가 된다면 어떻겠소?”
 “차 공자님은 제게 과분한 분이세요. 저는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점이 많아 금도문의 며느리로 들어갔다가는 폐만 끼칠 거예요.”
 차재강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나의 구혼을 거절하는 거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부족함이 많아…….”
 “그런 입에 발린 소리는 그만 하시오. 혹시 마음에 둔 정인이라도 있소?”
 “정인은 없어요.”
 “하면, 왜 우리 금도문의 며느리 자리를 거절하는 거요?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소.”
 “그 이유는 이미 말씀드렸으니 더 이상 입에 올리지 않겠어요.”
 “거 참……. 이것 보시오 가주. 나와 혼인을 하게 되면 우리 금도문이 가만히 있겠소? 남가장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크게 도울 거란 말이오. 그럼 십 년이 걸릴 일도 일 년 안에 이룰 수 있소.”
 남선미가 차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 남가장이 아무리 힘이 없다고 해도 외세를 빌려 가세를 일으킬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러니 방금 하신 말씀은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어요.”
 차재강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는 금도문주의 셋째 아들로서 금도문에 대한 자부심이 큰 사람이었다. 따라서 자신이 나서기만 하면 몰락한 가문의 어린 여 가주쯤은 턱짓 하나로 좌지우지 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보통이 아니다.
 “혹시 귀룡방과 혼담이 오가고 있소?”
 “어제 귀룡방에서 그런 제의를 해오기는 했지만 거절했어요.”
 “가주의 꿈이 상당히 큰 모양이오. 우리 금도문은 물론이고 귀룡방의 혼사 제의도 거절하다니 말이오.”
 “좋은 혼처에 시집을 가서 호의호식하며 사는 건 제 꿈이 아니니까요.”
 “그럼 가주의 꿈은 도대체 무엇이오?”
 “제 꿈은…….”
 
 ***
 
 “뭐? 그 아이가 정말 그런 말을 했단 말이냐?”
 “예, 아버지. 전 뭔가 거창한 꿈이라도 이야기 할 줄 알았죠. 그린데 고작 한다는 말이 ‘살아남는 것’이라더군요.”
 “흠!”
 금도문의 문주 팔비신도(八臂神刀) 차승헌은 무거운 표정으로 신음성을 흘렸다.
 이미 반석위에 올라와 있는 금도문에서 자란 차재강은 온실의 화초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그런 차재강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그런데 겨우 스물이 된 여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
 험난한 강호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그 말이 지닌 치열함과 무거움을 차승헌은 잘 알고 있었다.
 거기에는 차승헌이 지금의 금도문을 만들기 위해 겪었던 모든 경험이 집약되어 있다.
 차승헌이 금도문의 문주가 되었을 당시만 해도 지금의 성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차승헌은 먹고 먹히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금도문을 무슨 대단한 문파로 키우겠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지금 당장 적에게 잡혀 먹지 않고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치열한 현실의 위기를 어렵게 넘기고 간신히 살아남은 후, 어느 날 문득 뒤를 돌아보자 금도문은 함양 이대문파가 되어 있었다.
 이게 바로 강호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의 의미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강호들이나 이런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남가장의 어린 여 가주가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차승헌으로서는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 아무래도 그 한심한 계집은 제 짝으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재강아.”
 “예, 아버지.”
 “입 닥치고 조용히 기다리도록 해라.”
 “예?”
 “이 아비가 그 아이를 한 번 만나야겠다.”
 “아, 아버지가 직접 만난단 말입니까?”
 “그렇다. 네가 어떻게 해야 할지는 그 후에 이야기해주마. 그만 물러가도록 해라.”
 차재강이 아버지의 눈치를 보며 머리를 긁적이더니 방을 나갔다.
 “살아남는 것이라……. 허허허.”
 금도문주 차승헌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4. 탈각(脫殼)의 조짐
 
 금도문의 삼 공자가 다녀간 후, 그 다음날 귀룡방의 이 공자가 찾아왔다.
 물론 그도 혼자 오지는 않았다. 귀룡방에서 힘 꽤나 쓴다는 고수급 인물들 여럿을 수행원으로 데리고 왔다.
 금도문과 귀룡방은 구애 행위가 힘의 과시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와 혼인합시다.”
 귀룡방의 이 공자 투광룡(鬪狂龍) 양철군이 커다란 몸집만큼이나 거칠고 큰 목소리로 말했다.
 별호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싸우는 걸 밥 먹는 것보다 좋아한다. 덕분에 그의 몸에서는 피가 마를 날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싸움만 일삼는 대책불능의 문제아는 아니다. 그가 싸우는 목적은 무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다.
 실제로 그는 함양의 후기지수들 중에서는 단연 첫손가락에 꼽히는 무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인지 귀룡방의 차기 방주감으로 그를 지칭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선미는 금도문의 삼공자가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예의를 다해 그의 구애를 거절했다.
 “왜 거절하는 거요? 나한테 시집을 오기만 하면 화끈한 잠자리와 남가장에 도움을 주겠소. 어떻소?”
 그의 말에 남선미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구애하는 여인 앞에서 그런 언사를 지껄이다니, 어디 가서 귀사대기가 터져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지한 그의 눈빛을 보면 사심(?)이 담겨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직설적이고 단순한 그의 성격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남선미는 또 다시 그의 제의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그가 발로 방바닥을 굴렸다.
 쿵!
 육중한 소리와 함께 방 전체가 은은하게 울렸다.
 “이런 젠장! 도대체 이유가 뭐요? 내가 어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요?”
 남선미는 단순한 성격의 사람에게는 완곡한 표현방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직설적으로 대답했다.
 “남편에게 신세나 지면서 남가장을 일으켜 세우고 싶지는 않아요. 그리고 전 거친 남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남선미의 말에 양철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지금까지 자신의 앞에서 대놓고 싫다고 말한 여자는 남선미가 처음이었다.
 그는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눌러 참았다.
 그가 남가장으로 오기 전에 부친이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이 아비가 금도문주와 내기를 했다. 함양 최고의 미녀를 누가 며느리로 들여앉히는지 말이다. 네 두 형들은 이미 혼인을 했으니 너밖에 없구나. 부디 이 아비가 내기에서 이겨 금도문주의 코를 납작하게 누를 수 있도록 해다오.
 
 양철군에게는 두 형들이 있었고, 그들은 차기 귀룡방주의 지위를 차지하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만약 이번 일을 자신이 잘 해결해 남가장주와 혼인을 한다면 경쟁에서 더욱 앞서갈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콧대가 높기로 소문이 났더니 과연 그렇군. 하지만 내가 이런 제안을 해도 거부하는지 보자.
 양철군은 이내 안색을 펴더니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는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거 참! 내 앞에서 대놓고 싫다는 말을 한 여자는 지금까지 없었는데……. 좋소. 그럼 이렇게 합시다. 나와 혼인해서 아들 하나만 낳아 주시오. 그 후에는 당신 원하는 대로 해주겠소. 나를 떠나도 좋소. 돈을 원하면 백만금을 쥐어줄 테고, 힘을 원한다면 나를 따르는 수하들 절반을 떼 주겠소. 좀 거친 녀석들이기는 하지만 당신 같은 여자라면 충분히 다룰 수 있을 거요. 아니, 둘 다를 원하오? 그럼 둘 다 주겠소. 어떻소?”
 실로 파격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양철군의 얼굴에 득의에 찬 표정이 떠올랐다.
 ‘어차피 혼인을 하면 내 여자가 된다. 그럼 그때 가서 다시 빼앗아 오는 건 일도 아니지. 흐흐흐.’
 남선미는 순간 당황했다.
 그가 맹세한 대로만 해준다면 남가장을 일으켜 세우는 건 꿈이 아니다.
 그러나 남선미는 양철군이 혼인을 한 후에도 이 약속을 지키리라 믿지 않았다.
 그녀가 안색을 살짝 굳히더니 말했다.
 “그런 제안은 귀룡방주가 되신 후에 하세요. 지금은 귀룡방의 여러 공자님들 중 한 분이실 뿐이지 않습니까?”
 “흥! 귀룡방은 내 거요. 위로 형님 두 분이 있지만 내 상대는 아니오. 앞으로 삼 년이오. 내 힘이 아버지를 넘어서는 순간이 말이오. 그때가 되면 자연히 방주의 지위는 내게 떨어지게 되어 있소.”
 확신에 찬 말이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될 것 같다는 묘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남선미는 그의 구애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귀룡방이 어떤 자들인가.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할 인간들이 아니다. 그들은 금도문과 함께 대외적으로는 정도를 지향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흑도에 가깝다.
 삼공자 양철군이 제법 인물이다 싶기는 하지만 그와 혼인해서 흑도방파의 안주인이 된다는 건 상상에서조차 하기 싫었다.
 “저는 귀룡방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에요. 만약 제가 귀룡방의 안주인이 되면 소유하고 있는 사업들의 절반은 접어야 할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이오? 왜 멀쩡한 사업을 접는다는 거요?”
 “고리대금, 도박, 사창가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것들이에요.”
 “흠!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시는군. 그건 필요악이오. 우리가 접는다고 해도 결국 다른 누군가가 그런 사업을 하게 될 거요. 금도문이 나설 가능성이 가장 높지.”
 “어쨌든 제 생각은 그래요. 저는 그런 사업주와 얼굴을 맞대고 살 수 없어요.”
 투광룡 양철군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남선미를 쳐다보았다.
 ‘이것 봐라. 제법 튕기시겠다? 좋아. 한 번에 넘어오는 건 재미가 없지.’
 양철군의 한쪽 입 꼬리가 서서히 위로 말려 올라가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소.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소.”
 그가 몸을 일으켰다.
 남선미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다시 오겠다는 말씀처럼 들리는군요.”
 “열 번 찍어서 넘어가지 않을 나무가 어디 있겠소?”
 “안타깝게도 저는 나무가 아니라 사람이에요.”
 “어디 두고 봅시다.”
 양철군은 남선미에게 걱정거리를 한 아름 안겨주고는 그렇게 돌아갔다.
 “휴우!”
 남선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양철군은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았다.
 
 ***
 
 금도문과 귀룡방의 혼담 문제로 분위기가 뒤숭숭한 남가장을 뒤로 하고 유성은 오랜만에 하대고와 함께 장을 보러 나갔다.
 사고팔고 또 흥정을 하느라 시끌벅적한 시장통을 걸어가며 구경하는 것도 꽤나 흥미로웠다.
 하대고는 언제나처럼 익숙하게 장을 보더니 이내 장바구니를 가득 채웠다.
 유성이 제법 묵직한 장바구니를 들고 남가장으로 돌아오다가 주루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벌건 대낮이었지만 주루는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고, 기녀의 웃음과 음악소리, 그리고 주향이 물씬 풍겨 나왔다.
 유성은 그 주향을 맡자 갑자기 술을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 냄새만 맡았는데 마시고 싶을 정도라면 기억을 잃기 전에 술을 꽤 좋아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유성의 주머니에는 땡전 한 닢 없었다.
 유성이 아쉬운 표정으로 다시 걸음을 옮기려는데 하대고가 물었다.
 “왜? 한 잔 하고 싶어?”
 “예? 아, 아닙니다.”
 “에이, 얼굴에 다 쓰여 있는데?”
 “하대고도 참…….”
 “한 잔 마시러 갈까?”
 “예?”
 “그렇지 않아도 나도 마시고 싶었어. 그러니까 가자.”
 “하지만 전…….”
 “돈 걱정을 말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유성은 하대고의 손에 이끌려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장바구니를 든 채 태평루(太平樓)라는 간판이 걸린 주루 앞에 멈추었다. 그렇게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았지만 대로변이라 그런지 손님들이 제법 있었다.
 “어서 들어가.”
 하대고가 뚱뚱한 몸을 이끌고 태평루로 들어섰다.
 점소이가 하대고를 보더니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아! 하대고. 오셨어요?”
 “호호호, 그래. 잘 지냈어?”
 “덕분에요. 어서 이쪽으로 앉으세요.”
 “그래. 고마워.”
 하대고는 유성의 손목을 잡고 창가 자리로 갔다.
 점소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유성을 힐끔거리다가 하대고를 쳐다보았다.
 하대고가 말했다.
 “두어 달 전에 장원으로 들어온 사람이야. 유성이라고 해.”
 “아, 예.”
 점소이가 유성을 향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대복이라고 해요.”
 열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이 점소이는 인상이 아주 밝고 명랑해 보였다.
 “반갑네. 유성이라고 하네.”
 “헤헤, 저도 남가장의 식구나 마찬가지이니 편하게 말씀하세요. 앞으로 형님이라고 부를게요.”
 “그래. 그렇게 하지.”
 유성이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점소이 이대복이 하대고에게 말했다.
 “하대고. 뭐 드시고 싶으세요?”
 “늘 먹던 거.”
 “알았어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점소이가 한쪽 눈을 찡긋 하더니 주방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주방에서 숙수로 보이는 중년인이 머리를 불쑥 내밀고는 하대고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누님 왔어?”
 “어, 그래. 동생 얼굴 좋아 보이네?”
 “하하하, 고맙소. 한데, 오늘은 일행이 있으시네?”
 “응. 두어 달 전에 우리 남가장으로 들어온 총각이야.”
 “그래? 반갑네. 반우생이라고 하네.”
 유성이 그에게 머리를 살짝 숙였다.
 “반갑습니다. 유성이라고 합니다.”
 “우리 누님이 아무나 데리고 오지 않는데…, 자네를 아주 잘 봤나봐.”
 유성이 미소를 지었다.
 “예…….”
 “하하, 조금만 기다리게. 내가 솜씨를 좀 발휘해 보지.”
 “감사합니다.”
 반 숙수의 머리가 다시 주방 안으로 쏙 들어갔다.
 유성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하대고에게 물었다.
 “하대고. 이 주루에 자주 오시나 봅니다.”
 “자주는 아니고…, 달포마다 한 번씩 들러.”
 “예……. 그런데 남가장과 이 주루가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이 주루는 우리 남가장 소유야. 유일하게 남은 사업체지.”
 “아! 그렇군요.”
 “우리 남가장이 그래도 명맥이나마 유지하고 있는 것도 이 주루에서 거둬들이는 수익 때문이야. 그렇지 않으면 그 큰 장원을 어떻게 유지 하겠어?”
 유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도 그동안 수련생들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많지 않은 돈으로 어떻게 남가장을 운영하는지 이상하게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주루 하나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납득이 갔다.
 잠시 후, 점소이 이대복이 쟁반에 음식과 술을 담아서 가져왔다.
 안주는 홍소육과 소채였는데 양도 무척 푸짐했고 구수한 냄새가 나는 게 맛도 있어 보였다.
 “맛있게 드세요. 하대고. 그리고 유성 형님.”
 “호호호, 고마워.”
 “고맙다, 대복아.”
 하대고가 술병을 들고 유성의 잔을 채워주었다.
 불그스름한 빛의 술이 짙은 주향을 풍기며 술병에서 흘러나왔다.
 유성은 주향만 맡아보아도 꽤 좋은 술임을 알 수 있었다.
 “호호호, 자! 한 잔 마셔. 홍주인데, 태령루에서만 파는 고급술이야.”
 “예.”
 유성은 곧바로 술잔을 들었다.
 “캬아!”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 그런지 목구멍이 화끈 거렸다.
 하대고가 그런 유성을 쳐다보더니 물었다.
 “어때? 맛있지?”
 “예. 꽤 괜찮은데요?”
 “그렇지? 맛있다고 너무 많이 마시지는 말어. 생각보다 독한 술이니까.”
 “예, 하대고.”
 “자, 그럼 신나게 먹고 마셔 보자고.”
 두 사람은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하대고는 몸집이 큰 만큼 먹는 양도 많았다.
 그렇게 한창 술과 안주를 마시고 먹자 배도 불렀고 기분도 알딸딸하게 좋았다.
 어느새 음식은 거의 다 먹었고, 술병은 세 개나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음식의 대부분과 술 두 병은 하대고가 먹고 마셨다. 유성은 한 변 가량을 마셨을 뿐인데 제법 취기가 올랐다.
 그는 불그스름하게 변한 하대고의 모습을 보고 ‘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가끔 장을 보러 갔다가 남가장으로 돌아온 하대고의 얼굴이 불그스름했는데, 알고 보니 장을 보고 나서 태평루에 들러 술을 마시고 온 게 분명했다.
 “하대고. 한데 이렇게 술을 마시고 들어가도 괜찮습니까?”
 “가주께 들키지만 않으면 돼. 뭐, 들켜도 별 상관은 없겠지만.”
 “그럼 술과 음식 값은…….”
 하대고가 빙긋 웃었다.
 “같은 식구끼리 장사 할 일 있어?”
 “아!”
 유성이 탄성을 흘렸다.
 하대고가 자신만만하게 유성을 데리고 태평루로 온 이유가 있었다. 남가장의 식솔들은 태평루에서 공짜로 먹고 마실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너무 자주 들린다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었다. 그래서 술과 먹을거리를 좋아하는 하대고도 달포에 한 번 정도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리라.
 “그럼 슬슬 일어나 볼까?”
 유성은 얼른 장바구니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대고를 부축해주려 했다.
 “에이, 괜찮아. 홍주 두 병 마신 거 가지고 내가 끄떡이나 할 것 같아?”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홍주가 꽤 독한 술이었지만, 하대고는 두 병이나 마시고도 걸음이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유성은 자신의 주량이 얼마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하대고와 대작을 해서 이길 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 바깥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다음에 계속...

댓글(3)

초일초    
장편으로 이끌어갈 자신이 없으면 권수를 줄이셔야죠... 오타 수정도 없고 글쓴이가 지칭하는 대상도 본인이 헤깔려 엉뚱한 대상으로 그리고 중복 지칭하네요 결제 한게 아까워 끝까지 책장 넘겼네요
2017.02.05 21:04
br*********    
아 전권 대여결제 했는데 초반만 재미있게 보다가 중반부터 주인공 기억도 덜 찾은 상태에서 영혼도 바뀌고 뿌려놓은 떡밥은 전혀 회수도 안되고 내용은 아예 산으로 가고. 작가가 그냥 권수만 진득하게 늘려놓은 기승승승 소설.
2017.08.09 03:13
yamu7    
일만 벌이다가 떡밥회수도 못하고 끝남. 걍 초반만 보고 끊는게 좋습니다. 암걸림...
2017.08.19 09:18
0 / 3000

이용약관 유료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청소년보호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