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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양(罷養)

2022.03.31 조회 53,541 추천 923


 파양(罷養).
 알고는 있지만, 일반인들은 마주할 일 없는 단어.
 하지만 눈앞에 놓인 서류는 내가 일반인과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주고 있었다.
 
 [협의상 파양 확정 증명서]
 
 “······.”
 
 예상한 일이기는 하다만······.
 
 ‘실제로 보니 조금 쓰리네.’
 
 이선우라는 내 이름이 박힌 파양 증명서를 확인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친부모에게 버려진 거로 모자라 양부모한테서도 파양이라니.
 
 “우리나라에 나 같은 놈이 몇이나 있으려나.”
 
 없지는 않겠지.
 하지만 많지도 않을 거고.
 멍한 표정으로 증명서를 바라보니 가벼운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크흠. 성준이 학원 끝나기 전까지 물건 좀 빼 줬으면 한다, 선우야.”
 
 아버지··· 아니, 양아버지의 목소리다.
 
 ‘이제 양아버지도 아니지.’
 
 나는 그리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당장 뺄게요.”
 “······.”
 
 눈을 마주치며 대답했지만, 그는 거북한 표정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그마저도 부족했는지 소파에서 일어나 집 밖으로 나섰다.
 
 철컥.
 
 “······.”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힘겹게 관리하던 표정이 팍 구겨졌다.
 동시에 몸을 자극하던 긴장감이 풀리며 혼잣말이 절로 나왔다.
 
 “마음의 준비를 10년은 한 거 같은데 이 모양이라니.”
 
 체감상 10년이란 게 아니라, 정말로 10년가량을 준비했다.
 내 나이가 스물넷이란 점을 감안하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파양을 직감하고 있었던 셈이다.
 
 ‘열네 살이 아무리 뭣 모를 나이라지만······.’
 
 애물단지를 바라보는 듯한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사실 둔감한 편이었기에 어찌 보면 늦게 알아차린 수준이었다.
 친자식처럼 끔찍이 바라보던 시선이 달라진 건 내가 입양되고 2년이 흐른 아홉 살.
 
 ‘성준이가 그때 태어났으니 5년이나 더 지나서야 알아차린 거지.’
 
 하아.
 
 ‘병신도 이런 상병신이 없다니까.’
 
 물론 지금 와 생각해 보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던 처지였다.
 눈치가 없던 걸 떠나 그 혼란한 눈빛마저도 고팠던 시기이기도 했으니까.
 
 “쯧. 됐다.”
 
 이딴 거 더 생각해서 뭐 하랴.
 이미 합의 파양은 끝난 상태고, 내가 질질 끌어 재판까지 끌고 간다 했어도 달라질 건 없었을 텐데.
 
 “얼른 올라가서 짐이나 정리해야지.”
 
 자칫 지체했다가 성준이 그놈이랑 마주치면 왜 아직도 남의 자식이 우리 집에 있냐며 고래고래 소리칠 게 분명했다.
 
 ‘괜히 아저씨 곤란하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아버지란 단어 대신 아저씨란 말이 머릿속에 절로 그려졌다.
 나름 다년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 놓은 성과다.
 괜히 상상으로라도 아버지, 아버지 입에 달고 살면 상처만 더 클 게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내가 뭐 학대당하면서 자란 것도 아니고.’
 
 적어도 이성준이 태어나기 전까지.
 아니, 그 녀석의 임신 사실을 아줌마가 알기 전까지는 부모의 사랑이란 걸 처음으로 알려 줬던 사람들이다.
 놈이 태어나고 태도가 확 변하기는 했다만, 그렇다고 곧장 파양하여 다시 보육원에 보내는 몰상식한 행동도 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기다려줬다.
 물심양면까지는 아니라지만, 물질적인 요소 하나만큼은 결코 다른 아이들에게 꿀리지 않을 정도로 지원해 줬다.
 
 시험을 잘 보고 싶다고 하니 학원에 모자라 명문대생 과외를.
 운동에 관심을 보이니 축구, 농구, 테니스 할 것 없이 전문가를 붙여 제대로 가르쳤다.
 다른 예체능 부분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이제 와 왜 나를 버리냐고.
 어째서 나를 버리는 거냐고.
 
 아저씨 앞에서 그리 떼를 쓰지 않는 건 내 나이가 스물넷이기 때문이 아니다.
 비록 그들이 부모로서 책임을 끝까지 다하진 않았지만, 보호자의 책임은 끝끝내 지켜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울 필요 없다.
 괜히 감성적일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계단을 올라 방에 들어서니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내가 언제 비싼 학원 보내 달라고 했냐고······.”
 
 그저 칭찬이 고팠을 뿐이다.
 이성준이 태어나기 전.
 반에서 10등을 했는데도 천재가 따로 없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그 기억을 되살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반에서 1등을 해도.
 전교에서 1등을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무언가 잘하게 될수록 양부모의 눈빛에는 안도감이 서렸다.
 
 ‘나중에 뭐라도 먹고 살겠구나.’
 ‘공부라도 잘해서 다행이네.’
 
 그리고 그 감정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게 열네 살이었다.
 그때부터 파양을 직감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다.
 방 곳곳에는 그러한 노력을 대변하듯 자잘한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체르니 악보가 아직도 있었네.”
 
 서랍 구석에 박혀 있던 피아노 악보.
 벽과 떨어진 옷장 맨 위에 놓인 테니스 라켓.
 책상 아래 고이 모셔 둔 축구화랑 농구화까지.
 
 개중에서도 가장 많은 흔적을 남긴 건 당연히도 수능과 관련된 문제집이다.
 그마저도 반년간 다닌 기숙 학원에서의 특강 재본이나 시험지가 없어서 저 정도인 거다.
 
 “어후. 서울대 한 번 가 보겠다고 저 개고생을 하다니.”
 
 괜히 어깨가 파르르 떨려 왔다.
 우리나라 최고라는 서울대에 합격하면 혹여나 칭찬해 줄까 싶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빡세게 준비했던 입시다.
 무려 3년.
 더욱이 무언가 하고 싶다는 말을 할지언정 대놓고 지원해 달라 말 한마디 않던 내가 기숙 학원에 들어가겠다며 금전적 지원까지 요청했었다.
 
 하필이면 지역 내 빌어먹을 명문고로 진학한 탓이다.
 내신 쌓고 수시를 넣기가 힘들 것 같아 정시를 준비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래도 중학교 때 전교급으로 놀았으니까 하면 될 줄 알았다.
 
 근데 이게 웬걸?
 
 수능은 개같이 멸망해 SKY는 고사하고 인서울에 간신히 합격했다.
 그것도 여태 관심도 없던 의류디자인 학과.
 사실상 수능 실패로 이곳저곳 인서울이라면 다 넣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다.
 이곳이 아니더라도 인서울 다른 곳에 합격하기는 했다만······.
 
 ‘인서울 최하위 평범한 학과랑 중간급 관심 없는 학과라면 당연히 후자지.’
 
 애초에 우리나라만큼 혈연, 지연, 학연에 끈끈한 나라가 얼마나 있다고.
 
 “어차피 평범한 사무직 들어가면 학과가 무슨 소용이냐.”
 
 그나마 직장 선임 중 더 많은 학벌에 속할 대학교 고르는 게 낫지.
 
 “원래라면 긴장해서 망친 수능이니 재수라도 하고 싶었는데······.”
 
 나도 염치란 게 있는 사람이다.
 이제 나를 편히 놔 줘도 되겠구나 싶어 하는 두 사람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재수란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없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서울대에 들어갔으면 자랑스러워해 주셨으려나.’
 
 더 나아가 끝내 파양이란 선택을 되돌아보지 않았을까 싶은 그런 아쉬움.
 어디까지나 그런 작은 아쉬움일 뿐이다.
 
 “이미 파양 확정됐는데 이런 생각 해서 뭐 하겠어.”
 
 괜스레 곧장 버려지는 게 무서워 반 학기만 다니고 군대로 도망갔다.
 제대하고 나서는 곧장 복학하지 않고 1년간 휴학까지 하며 돈을 벌었다.
 헤어지는 마지막까지 손을 벌릴 수는 없었던 탓이다.
 성인이 되자마자 결정 날 것 같던 파양이 스물넷인 지금에야 이루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암묵적인 유예기간 같은 거였지.’
 
 독립을 위한 준비 기간.
 양부모와 나는 그것과 관련해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그건 암묵적인 룰이었다.
 
 준비하는 나도 알고, 지켜보는 그들도 알았지만 구태여 꺼내지 않았던 말들.
 이제 그 준비가 끝났으니 파양이 결정 났을 뿐인 거다.
 씁쓸하게 올라가는 입꼬리를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정리나 하자.”
 
 나는 잡생각을 털어 낸 채 준비해 온 여행용 가방에 옷가지를 챙겨 넣었다.
 챙길 물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어차피 대부분은 버릴 물건이다.
 10개 중 9개는 추억보다 상처로 물들었으니 구태여 챙길 필요가 없었다.
 당연히 필요로 하는 옷가지들을 제외하고 챙길 거라고는······.
 
 “이거 하나뿐이네.”
 
 작은 철제 상자.
 보육원에서 느끼지 못했던 고급스러운 외제 쿠키의 달달함.
 그 달콤함을 잊지 못한 채 그나마 추억할 만한 물건들을 담아 둔 내 보물 상자다.
 물론 파양 당한 지금에 와서 보물이라 부르기도 뭐하지만, 여튼 파양이 확정 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나는 차가운 철제 상자의 감촉을 느끼며 뚜껑을 열었다.
 사진 몇 장과 수첩이 보인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놀러 갔던 놀이공원에서의 사진.
 입학 기념으로 갔던 동물원에서 찍은 사진.
 그리고 그곳에서 느낀 감정들을 삐뚤빼뚤하게 일기로 작성한 수첩까지.
 
 지난 추억들을 저도 모르게 웃으며 바라보니 괜스레 가슴이 답답했다.
 그 답답함을 지우고자 뚜껑을 닫으려던 찰나.
 상자 구석에 박힌 검은색 USB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저건 뭐였지?”
 
 하나하나 소중히 아꼈던 물건들을 보관했던 상자인데, 이상하게 저 USB는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무언가 떠오를 듯하면서도 떠오르지 않는 머릿속 간질거림을 참아내길 몇 분.
 
 “······아!”
 
 나는 양부모의 관심 받기를 포기하고 잠시 엇나갔던 사춘기 시절을 떠올렸다.
 
 ‘한창 해외 온라인게임에 빠졌을 때지.’
 
 게임에 빠진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눈빛에 못 이겨 영어 공부랍시고 미국에서 오픈한 MMORPG를 했었던 때가 있었다.
 
 “진짜 추억이네.”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고작 생각해 낸 반항이 게임이라니.
 사실 가출을 시도하려다가 참고 게임을 선택했었다.
 이미 파양을 직감한 뒤였고, 가출했다가는 진짜 안 찾으러 올까 봐 무서웠으니 당연했다.
 
 “뭐, 그래서 재밌게 즐기기는 했는데······.”
 
 분명 그랬는데······.
 
 ‘이 찝찝함은 뭐지?’
 
 분명 뭔가 놓치고 있었다.
 그 게임 속 스크린샷이나 동영상 파일을 저장해 두겠다고 저 USB가 있는 게 아닐 텐데.
 
 ‘도대체 내가 뭘 까먹고 있는 거지?’
 
 이내 그러한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기억의 파편을 차곡차곡 재생했다.
 
 ‘중학생치고 컨트롤 좋다고 나름 레이드도 많이 뛰었고······.’
 
 그러다 득템도 많이 하고, 개중에는 전섭급 템도 하나······.
 
 “······맞다. 그거네.”
 
 당시 최강 레이드 몬스터에게 얻은 PK 최강 무기.
 부르면 수천 달러는 가볍게 넘어갈 거라는 길드원의 말에 판매했던 무기다.
 근데 그 무기가 저 USB랑 무슨 관계냐고?
 
 “관계는 존나 많지.”
 
 6,000달러에 산다던 놈이 달러는 고사하고 이것도 화폐라면서 뭣 같은 가상화폐를 떨궈 주고 갔으니까.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열이 뻗치네. 병신같이 0 빼기까지 당했······ 잠깐만.”
 
 가상······화폐?
 
 순간 소름이 끼쳤다.
 동시에 흩어졌던 머릿속 기억들이 순식간에 몰아치며 영화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Tes라는 닉네임의 사기꾼.
 그놈이 6,000달러 대신 0 빼기라는 2차 사기까지 치며 보낸 600개의 가상화폐.
 그리고 그 가상화폐의 이름은 현존하는 1티어.
 
 비트코인.
 
 “······.”
 
 나는 딱딱하게 굳은 손가락에 힘을 주며 스마트폰을 만졌다.
 뒤이어 액정을 두드리며 ‘비트코인 시세’를 검색하자마자 숫자들이 떠올랐다.
 
 [65,328,900]
 
 “······.”
 
 오른손으로 강하게 볼을 꼬집으니 약간의 통증이 몰려왔다.
 
 “하, 하하.”
 
 하지만 웃음이 났다.
 
 “테스 형.”
 
 이거 꿈 아니지······?
 
 “하하··· 하하하······.”
 
 왼손을 더해 고통은 두 배가 됐지만, 웃음 역시 곱절로 늘었다.
 
 파양 당한 날.
 나는 그렇게 벼락부자가 됐다.

댓글(89)

니노링    
아 파양은 신선했습니다 이야기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함 따락보겠습니다
2022.04.01 22:23
SIZEUP    
감사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재밌는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2022.04.01 22:37
나민(羅民)    
친자가 생기고도 양자를 키울만큼 다 키운 양부모.. 유산 나누기 싫어 파양했다기보단 노후 책임에서는 벗어나게 해준듯한 끝모를 은혜를 느끼네요
2022.04.02 19:25
    
24살까지. 파양이 아니라 독립이네요
2022.04.03 00:36
g3*************    
장난하나 24살이면 성인인데 뭘 더 바라냐? 친자식도 성인되면 자립하는거다 개소리가 심하네
2022.04.03 19:47
멍몽    
와 이런 훌륭한 양부모가 있다니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2022.04.03 23:18
D단테    
입양 하고 자식 생긴건 입양을 해서임. 언제가 됐든 파양 하면 친자식에게 문제 생긴 다는 말이 있음 난 두번 봄. 애 생기고 입양한 아이 파양한 가정 한집은 친자식 사고로 죽고었고 한집은 친자식 실종 됨
2022.04.04 19:51
D단테    
부모 자식 관계를 정리히는던 파양이지 독립이 아니라. 뭐 그나마 24살까지는 돌봐 줬으니 다행이네. 밑댓에 말한 두 집은 친자식 태어나고 2번후로 파양 했음 입양한 아이 하나는 초딩 하나는 중딩 7년 10년 정도 키운 아이들인데 놀랐음
2022.04.04 19:54
D단테    
그리고 댓글들 웃긴게 고아 후원한 거면 훌륭 하지만 자식으로 입양한 아이에게, 자식에게 저렇게 하는게 훌륭 하다라고 해야 하는 건가 당연한거지 안 그럴거면 왜 입양함 자식으로 정성을 다해서 키울려고 데려 간거 아닌가? 뭐 보여 줄려고 아이 키우나 꼭 없는집 사람들이 성인 되면 독립 운운 하면서 빼애액 함 어디 있는집 사람들이 성인 됐다고 이십대 초중반에 애들 독립 하라고 지원 다 끊음 ㅋㅋ 결혼 해서도 지원 해주고 죽고 나서도 유산 남겨 주는게 있는집임.
2022.04.04 20:04
D단테    
그리고 댓글들 웃긴게 ㅋ 고아 후원한 거면 훌륭한거 맞지 근데 입양이잖음 자기 자식으로 키울려고 데리고 온건데 정성들여 키우는게 당연 한거지 뭐 보여 줄려고 과시 하려고 입양 함? 안 그럴거면 왜 입양을 함? 꼭 없는집 사람들이 성인 되면 독립 이라고 난리임 ㅋㅋㅋㅋㅋㅋㅋ 부모도 물려줄거 없고 자식 독립 일시켜서 용돈 받으려고 하고 자식도 부모 부양하게 될까바 ㄷㄷㄷ 어디 있는집 사람들이 성인 됐다고 이십대 초중반에 독립하라고 지원을 다 끊음??ㅋ 공부든 뭐든 제대로 하려면 30초중반까지 하는 경우 대부분임. 결혼 할때도 집사주고 뭐해주고 결혼 해서도 지원 해주고 죽고 나서도 유산 남겨줌 그게 있는집임. 무슨 성인=독립임 ㅋㅋ
2022.04.0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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