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함
뒤로가기버튼 감자세자와 뒤주대왕

프롤로그

2022.04.01 조회 6,938 추천 238


 "저하, 벼루에 얻어맞으신 곳은 괜찮으신지요?"
 "나는 괜찮다. 하아......아바마마는 언제쯤 나를 이해해주시려는지."
 
 해가 저물고 달이 휘영청 떠오르는 야심한 밤.
 여느 때처럼 타박과 질책에 시달린 이선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낙선당으로 향했다.
 
 "산이는 깨어 있는가?"
 "이미 숙면에 들어갔다고 하옵니다."
 
 매일매일이 지옥같고 지긋지긋한 나날이었다.
 분명 자신은 미래에 조선의 지존에 오를 왕세자이거늘, 어째서 이리 핍박받아야 한단 말인가.
 
 그것도 전조의 기철같은 외척이나 청나라 놈들도 아니고, 자신의 친부에게!
 
 '난 대체 뭐지? 그저 귀씻는 물인가?'
 
 대리청정을 시작했던 6년전에는 마음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마침내 아바마마께 인정받고 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아니었다. 아바마마는 그저 자신을 길들이려는 것이었다.
 
 무슨 노력을 해도 소용이 없다.
 올라온 상소를 보고 고심에 고심을 거쳐 괜찮은 답을 내놓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바마마께 반려될 것이 뻔한데.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중요치 않았다.
 자신은 언제나 틀렸고, 아바마마의 말만이 정답이었다.
 설령 며칠만에 판단을 번복하는 꼴이 될지라도.
 
 "후우.......힘들구나, 힘들어."
 
 지금까지는 어떻게 버텨왔다지만, 이선은 자각하고 있었다.
 정신이 예전같지 않았다. 갈수록 마모되고 조각나는 것만 같았다.
 속에서 뭔가 울컥울컥 올라오려는 듯 하고, 가슴은 답답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가끔은 옷을 입는 것조차 무섭게 느껴졌다. 의관을 갖추면 아바마마를 뵈러 가야만 하니까.
 
 그래서 나인이 가져온 옷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더럽다고 찢어버리거나 체했다는 핑계로 문안인사를 넘기려고도 해봤었다.
 되도않는 트집을 잡혀 욕을 먹고 조롱당해야 하는 세자의 자리라니, 이 얼마나 비참하단 말인가.
 
 "차라리 평범한 백성으로 태어났다면 좋았을 것을."
 "그, 그런 말씀은 입에 담지 마시옵소서!"
 
 내시가 기겁했지만 이선은 진심이었다.
 백성으로 태어나 농사를 짓고 살아갔다면 마음은 편하지 않았을까.
 땅을 갈고 벼를 기르면 몸은 힘들지언정, 매일매일 스스로를 부정당하는 기분은 맛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에 보름달이 선명히 보였다.
 
 "상선, 달에 대고 소원을 빌면 신령께서 들어주신다지?"
 "예? 그, 그런 속설이 있기는 합니다."
 
 어차피 안될지라도, 어딘가에 대고 빌고 싶었다.
 이 울적함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지 않으면 폭발할 것만 같았다.
 이선은 달을 바라보며 속으로 나지막히 읆조렸다.
 
 '어디라도, 어떻게라도 좋다. 제발 아바마마에게서 벗어날 수 있기를.'
 
 이선은 잠시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뗐다.
 낙선당의 침실에 들어가 나인이 가져온 물로 세수를 하고, 너무나 지쳤기에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어째선지 오늘만큼은 자신을 괴롭혀오던 악몽도 없어, 편히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1755년 5월 13일.
 
 임오화변이 일어나기 정확히 7년전의 일이었다.
 
 * * * * * *
 
 '멍청한 새끼! 저런놈은 내 자식도 아냐! 오늘부로 저놈은 폐위다! 왕세자 자리는 아우구스트에게 넘겨주겠어!'
 
 친아비에게 몽둥이로 얻어맞고 이곳에 갇힌지도 며칠.
 아직도 그날의 광경이 눈에서 떠나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나?'
 
 '......죄송합니다, 전하. 못난 저는 먼저 가겠습니다. 전하는 부디 살아남아 이 나라를 이끌어 주십시오.'
 '카테! 안된다! 차라리 날 죽이란 말이다. 카테를 살리고 나를 죽여!'
 '.....집행해라!'
 ---서걱!
 
 사랑스런 애인의 목이 엑스큐셔너 소드에 잘려나가는 참혹한 광경.
 그 광경을 반드시 자신이 봐야 한다는 빌어처먹을 아버지의 지시로, 경비병들은 프리드리히를 붙잡고 얼굴을 감옥창살에 들이박았다.
 덕분에 목이 잘려 자신이 갇힌 방을 향해 내걸리는 광경까지 보고 있어야만 했지.
 
 슬픔과 충격에 기절했다 눈을 떴을 때는 문 앞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기절했다는 소식을 듣고 화가 나선 자신마저 참수해버리려 했고, 어머니는 미쳤냐면서, 다른 나라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보겠냐면서 뜯어말렸다.
 다행히 오스트리아의 카를 6세가 힘을 써준 덕분에 사형은 면했다.
 
 프리드리히의 입장에선 오히려 죽기를 더 바랐지만.
 
 살아서 저딴 아버지에게 고통받을 바에야 사후세계에서 카테와 재회하고 싶었다.
 그러나 저 문 밖의 경비병들은 자신이 자해라도 할라치면, 즉시 들어와서 제지할 것이었다.
 제 목숨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폐세자라니, 얼마나 비참한 신세인가.
 
 "달이 밝구나."
 
 이런 슬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밤하늘에는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라 감옥 안을 비추고 있었다.
 될거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막막한 심정에 프리드리히는 두손을 모으고 달을 바라보며 기도했다.
 
 '어디라도, 어떻게라도 좋다. 제발 아버지에게서 벗어나게 해다오.'
 
 1730년 11월 14일.
 
 원 역사에서 프리드리히가 석방되기 나흘 전의 일이었다.

작가의 말

초짜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댓글(20)

나버스    
드디어 문피아서 연재를!
2022.04.01 00:42
제르미스    
유료 가즈아ㅏㅏㅏㅏㅏㅏㅏ
2022.04.01 02:48
promethium    
ㄱㄱ
2022.04.01 07:58
ranger    
문피아 연재 ㅊㅊ
2022.04.01 09:40
실무액세스    
기대 신작
2022.04.01 11:17
한국사랑꾼    
신박하네요
2022.04.03 01:04
순한양    
오 의대증
2022.04.09 02:20
keraS.I.S    
신박하군요
2022.04.09 17:24
양마루    
건필
2022.04.11 07:55
북두천군    
프로이센도 세자인가요? 왕태자 아니고요?
2022.04.1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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